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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655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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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기 서방 라틴 세계의 종교와 철학의 문제 -아벨라르두스의 『비교토론 Collationes』를 중심으로-
Religion and Philosophy in the 12th Century Western Latin World -Abelard’s Collatio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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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상진(서울대학교)" ]
아벨라르두스는 자신의 작품 『비교토론』을 통해 당대의 주도적인 세 가지 삶의 방식, 즉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와 자연법(철학)을제시한다. 이 논문은 작품에 대한 분석을 통해 다음과 같은 것을논증한다. (1) 비교토론의 모든 참가자는 자신들이 표방하는 삶의길이 이성에 의해 정당화될 수 있다는 공통의 전제를 가지고 있다. (2) 그들은 철학이나 종교적 가르침의 궁극 목표가 인간의 완성 혹은 행복으로 이해되는 최고선(summum bonum)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3) 유대교가 이성에 덜 부합하는 종교로 판명나는 반면, 그리스도교는 최고선의 해석에서 고전적 윤리학을 능가한다. (4) 이성성 자체가 그리스도교에 호의적인 방식으로 정의되었다는 의심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최종결론인 ‘순수한’ 의도는 건전한 지반 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철학과 종교가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12세기적 확신을 공유하는지, 혹은 철학이나 종교적 가르침들의 차이를 합리성의 관점에서 평가할 잣대로서의 이성성에 합의할 수 있는지는 질문으로 남길 가치가 있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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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dx.do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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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655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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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淮南子』의 우주생성론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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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용(건국대학교)" ]
이 글의 목표는 양한 시기 대표적인 황로학 저작인 『회남자』의우주생성론을 고찰하는 것이다. 우주생성론은 우주만물의 기원과그 기원으로부터 만물로의 전변과정 및 구체적 사물의 궁극적 근거에 대한 물음을 통해 구성된다. 『회남자』는 선진시기 노장철학, 전국중기로부터 발전된 기론과 음양오행 사상, 그리고 양한시기 자연과학의 성과 등을 적극적으로 계승하여 양한 시기 우주생성론을 대표하는 논의를 마련한다. 지금까지 『회남자』 우주생성론에 대한 이해는『회남자』 텍스트를 ‘잡가’로 규정하여 일관된 이론체계가 결여되었다고 보거나, 우주생성론 체계를 구성하는 ‘도’, ‘기’의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고 관계시키는가에 따라 다양한 관점이 제기되었다. 특히 세계의 본질인 기가 자기원인적으로 세계 만물을 구성한다는 ‘기일원론’과 최초의 원질 혹은 궁극적 실재로의 도가 자기분화를 통해[道卽氣] 혹은 기를 파생하여[道生氣] 우주만물을 구성한다는 관점이 크게 부각되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관점이 『회남자』의우주생성론을 온전히 이해하는 방식인가? ‘도’ ‘기’ 개념의 함의를어떻게 이해하고 양자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가?『회남자』는 기본적으로 태초의 혼돈 미분의 기 덩어리 상태에서우주만물이 구성된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혼돈 미분의 기 덩어리는 ‘태소=허확=일’이라 규정되고, 이로부터 단계별로 우주와 음양이기가 생성되고 최종적으로 만물을 형성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노자』의 ‘도가 일을 낳는다[道生一]’를 ‘도는 허확에서 시작된다[道始于虛霩]’, ‘도는 일에서 시작된다[道始於一]’라고 해석하여,‘도’ 개념은 생성과정에 직접 참여하지 않지만 그 과정을 이끄는궁극적 원리로 이해한다. 따라서 생성의 근본 원리는 도는 우주만물을 구성하는 최초의 원질 상태에서 그 생성작용을 펼치기 시작하고, 구체적 생성과정은 음양이기의 상호작용을 통해 진행된다. 결국 『회남자』의 우주생성론은 궁극적 실재인 도를 중심으로 하는‘기화우주론’으로 규정되며, 이러한 논의는 이후 ‘기일원론’과 도교의 자연관 및 기 철학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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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dx.do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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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655643
oai_dc
16세기 유대 문서 논쟁과 로이힐린의 『안경』
Judenbücherstreit im 16. Jahrhundert und Reuchlins Augenspiegel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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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윤기(성신여자대학교)" ]
500년 전에 요한네스 로이힐린의 책 『안경』이 출간되었다. 이책의 중심을 이루는 부분은 원래 황제의 요청에 의해 작성된 일종의 법률소견서였지만, 당시 유대 문서를 둘러싼 종교적 갈등이 첨예한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었기에, 결국 신학적-철학적으로도 각별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당시 페퍼코른이나 쾰른 신학자들로 대변되던 유럽의 주도적인입장은, 유대 문서가 사악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압수하여 소각시켜야 한다는 것이었지만, 로이힐린은 유대인들도 신성로마제국의신민으로서 기본적인 권리는 보호받아야 하며, 따라서 그들의 소중한 재산인 책을 강제로 뺏을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더 나아가서 설혹 유대인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는 것이 선하고 꼭필요한 일임을 인정한다 해도, 이를 강제와 폭력적인 방법으로 해서는 안 되고, 오직 선한 마음으로 상대를 대하고, 또 이성 원칙에기반한 대화와 토론으로 해야 할 것을 주장했다. ‘상대방의 소중한책을 빼앗아 불사르려 하지 말고, 오히려 그 책을 연구하여 상대를이해하라’는 것이 로이힐린이 이 책에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종교 간, 또 문화 간의 충돌이 인류의 가장 큰 위협으로 부각된 오늘날, 로이힐린의 이 제안은 여러 문화의 평화 공존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현대인이 꼭 유념해 들어야 할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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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dx.do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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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655616
oai_dc
『논리-철학 논고』에 나타난 비트겐슈타인의 종교철학
Ludwig Wittgenstein’s Philosophy of Religion in the Tractatus Logico-Philosophic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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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이균(가톨릭대학교)" ]
이 논문은 ‘신비적인 것’이라는 표제 아래 논의된 텍스트들을 집중적으로 분석함으로써 『논리-철학 논고』에 함축된 전기 비트겐슈타인의 종교적 관점을 밝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이 언급들이 극도로 짧고, 파편적이며, 심지어 모호하기까지 하기 때문에, 주제와 관련된 『노트북(1914∼1916)』과 「윤리학에 관한 강의」의 주요 텍스들도 함께 검토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확장된 텍스트 분석으로부터, 윤리적 혹은 종교적 “경험들”의 기본적 국면이 사실적 경험이 아니라, 절대적 가치와 관련된 세계를 하나의 전체로서 보는 ‘상(相)-보기’라는 것이 밝혀진다. 이렇게 종교적 믿음을 ‘상(相)-보기’의 유형으로 규정하는 것은 비트겐슈타인이 윤리적 혹은 종교적 표현들의 본질이 ‘무의미성’이라고 열정적으로 믿었던 진정한 이유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통찰은, 신을 인과적 연결망의 최종 종착점으로 설정하거나 불멸성을 무한정한 시간적 연속성으로 간주함으로써, 결국 종교적 믿음의 절대적 가치의 상실을 유발하는 온갖 종류의 ‘사실화’에 대한 의미 있는 경고 역할을 한다. 마지막으로 이 결과들은 『논고』자체의 기본 성격과 관련해서 이른바 ‘전통적 해석’과 ‘단호한 해석’ 사이의 최근 논쟁에 보다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공하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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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dx.do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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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655653
oai_dc
인정 투쟁의 문법적 기반으로서의 진정성에 관한 연구 -하이데거, 아도르노, 테일러를 중심으로-
Authenticity as a Grammar of Social Struggle for Recognition -Heidegger, Adorno and Tay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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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현철(연세대학교)" ]
이 글은 진정성을 사유해 이로부터 타당한 도덕원리의 원천을마련하고 동시에 그 원리의 실현을 위해 요구되는 사회ㆍ정치철학적 전망을 개창하려는 데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쓰였다. 다시 말해 이 글은 사회적 관계를 진정성의 관점에서 규범적으로 주조해내는 것과 동시에 이를 위해 요구되는 이론적 고찰을 수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이 글은 진정성을 사회적 관계 연관속에서 끌어들이는 것이 가능한지 또 그것이 가능하다면 어떤 방식으로 그것이 가능한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 글이 이 문제와 관련해 성과를 얻게 되면 도덕성 내지 도덕원리는 최근 비판이 집중되는 그것의 형식성에서 탈피함과 아울러 그것이 실현되어야 할 사회적 영역-곧 상호주관적 인정관계-자체와 괴리되지 않는 실천성을 가지게 됨이 밝혀지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회적 연대역시 그 가능성을 좀 더 구체적으로 승인받을 수 있게 될 것이며이는 종합적으로 고찰할 경우 사회적 실천에 요구되는 타당한 규범의 새로운 정초 가능성을 지시하는 것이 될 것이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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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dx.do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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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546792
oai_dc
자유로운 죽음의 방식 -헤겔의 자살론-
Freie Todesweise -Hegels Lehre vom Selbstm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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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기호(연세대학교)" ]
자살은 스스로를 죽임이다. 그러나 이 행위가 자유로운 의지의표출인 한, 자살은 스스로 죽음이기도 하다. 헤겔은 이와 같은 죽음의 능력을 인간의 절대적 자유로 보았다. 이 글은 죽음의 능력으로서의 절대적 자유가 헤겔에게서 어떻게 죽음의 극복 능력으로까지 발전하며 생의 원리로서 구체화되는지 살펴본다. 인간은 사유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것으로부터 관념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 절대적 자유의 능력을 지닌다. 그러나 개체로서 자신이 생각한 관념적 보편에 머무르면서 모든 개별적 실재를 부정하는 것은 추상적 자유 그 이상일 수 없다. 헤겔에 따르면 이러한 완고함의 자유는 자신의 개별적 삶에 대해서조차 부정적으로 대응한다. 이로부터 비롯되는 자살은 개별자로서 자신을 죽임에 지나지않는다. 그러나 개개 인간은 다른 한편으로 자신의 특수한 욕망을 오직보편성의 형식을 통해 매개된 것으로서만 충족시킬 수 있다. 다시말해 인간은 자신의 개별성의 지양을 통해서만 개별자로서의 삶을영위할 수 있다. 그런데 자신의 개별성이 지양된 삶은 단순히 개별자로서 삶이 아니라 삶의 인륜적 보편성 속에서 개별자로 삶이다. 따라서 인간의 삶은 개별자로서 스스로 죽음이며 모두의 인륜적인보편적 삶으로 다시 삶이다. 헤겔은 모든 인간의 삶 속에서 스스로죽음의 인륜적 계기를 포착한다. 이것은 결코 자살의 옹호가 아니라 오히려 공동체적 삶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자기지양 계기에 대한 통찰이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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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546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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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행위를 위한 습성화된 감정의 긍정적 역할 -토마스 아퀴나스의 입장과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신체적 표지자 가설’과의 대화-
Positive Role of Habituated Emotions on Moral Acts -Thomas Aquinas’ Position and a Dialogue of A. Damasio’s Somatic Marker Hypothe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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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이균(가톨릭대학교)" ]
토마스 아퀴나스는 철학사 안에서 감정을 인간학적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도덕적 관점에서도 다룬 선구자들 중 하나다. 이 논문의목표는, 그의 습성화 그리고 덕에 관한 이론이라는 보다 넓은 체계안에서 『신학대전』을 중심으로 관련된 텍스트를 분석하면서, 감정에 대한 토마스의 이론의 풍요로움을 드러내는 데 있다. 이 작업을통해, 토마스가 제시한 선행감정과 후속감정 간의 구분과 “감정이인간 행위의 도덕적 지위를 향상시킨다”는 토마스의 주장이 습성과 덕에 관한 그의 논의를 배경으로 할 때만 완전하게 이해될 수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또한 이 논문은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신체적 표지자 가설’이 ‘습성화된 감정’에 대한 토마스의 통찰을 신경학적 수준에서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 토마스의 사상이 현대적 분석에로 개방될 수 있음을 입증할 것이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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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546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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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한국에서의 실존주의 논쟁과 사회비평의 가능성 -최일수의 ‘민족적 리얼리즘’을 중심으로-
The Debate on Existentialism of the 1950s in South Korea and the Possibility of Social Critique -Focusing on Choi Il Soo’s ‘Nationalistic Re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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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종석(연세대학교)" ]
이 글은 50년대 실존주의 수용 과정에서 진행된 논쟁들 중 최일수의 실존주의 비평의 의미를 중심으로 실존주의 논쟁이 지니는사회비평의 함축들을 성찰해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선 실존주의가 왜 50년대에 광범위하게 수용되었는가를 문학비평의 활성화의측면에서 간단하게 살펴본다. 그 후 다루어지는 것은 실존주의에대한 최일수의 비평을 중심으로 50년대 전개된 그의 진보적 민족문학론의 의미를 서술한다. 마지막으로 50년대 한국의 실존주의사조에 대한 최일수의 비평이 현재적 맥락에서 전해주는 의미들이무엇인가를 살펴본다. 이를 통해 현재 비평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향에 대한 실마리를 추적한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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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546785
oai_dc
생명의 기원과 다양성 그리고 ‘나의 문화’로서의 생명개념 -토마스 아퀴나스와 가브리엘 마르셀을 중심으로-
L’origine et divercité de la vie et la notion de la vie en tant que ‘culture de Moi’ -Autour de Thomas d'Aquin et Gabriel Marc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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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곤(경북대학교)" ]
생명을 단순히 물리-화학적 혹은 생물학적 관점에서만 이해하고자 하는 현대인의 생명관은 생명경시현상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있다. 생명의 가치나 의미 혹은 존엄성에 대해서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명에 관한 철학적 혹은 형이상학적인 사유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 이유는 ‘생명의 기원’이나 ‘생명의 의미’에 대한 고찰에 있어서 그것이 어떠한 형태든 실증적으로 엄밀하게 증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본 논문에서는 생명의 기원과의미에 관한 가톨릭적 관점을 제시하고 있는데, 전통적인 사유로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관점을 그리고 현대적인 사유로서 가브리엘마르셀의 관점을 통해서 그 윤곽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유에서 생명의 형이상학적 의미와 다양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토미즘에 있어서 생명이란 ‘자율적인 운동’을 가진 모든현상에 부여할 수 있는 것으로 단순히 현상이 아닌, 실체로서 이해된다. 생명이 실체인 것은 모든 존재는 그 자체 하나의 유기적인통일성을 이루고 있는 실체이며, 여기서 실체적 통일성의 원리로서의 영혼(anima)이 곧 생명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즉 ‘육체적 생명’ ‘시인으로서의 생명’ ‘정치적 생명’ 등은 ‘나의 생명’이라는 하나의 실체적인 생명에서 추상된 것이다. 이러한 실체적 생명은 죽음이후에도 여전히 지속되는데, 그것은 생명의 원리로서의 영혼이개별적인 영혼이며, 존재하기 위해서 질료를 필요로 하지 않는 비-질료적인 영혼은 사후에도 자신의 개별성을 손상 없이 보존하기때문이다. 여기서 생명은 육체적인 조건을 초월하는 형이상학적인차원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아가 영혼의 개별성은각자의 생명의 개별성을 유발하는 것으로 모든 인간은 타인과 구별되는 의미로서의 ‘나의 생명’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토미즘의 사유는 가브리엘 마르셀에게 있어서 보다 현대적인 관점에서발전되는데 마르셀은 ‘생명의 개별성’과 ‘초월성’에 대해 논함에 있어서 단순히 합리적인 추론이나 계시적 진리로부터 출발하는 것이아니라, 인간의 실존적인 삶의 체험과 이 체험의 분석하면서 즉 일상적인 삶의 한가운데서 발생하는 다양한 인간문제들을 분석하면서 보다 구체적으로 논하고 있다. 마르셀은 ‘나의 생명’이란 ‘가장의미 있는 것’으로 이해하며, ‘생명’을 ‘삶’과 동일시하고 있다. 그리고 한 인간의 삶은 그 자체 ‘부름에 대한 응답’으로 고려하며 이러한 부름의 기원을 ‘초월성’에서 추구하고 있다. 진정 의미 있는삶이란 ‘주체적이고’ ‘창조적인 삶’인데, 이를 영감에 의해서 주어지는 ‘모험’처럼 이해하고 있다. 삶이 모험인 한 ‘신비’이며, 영감의기원이 ‘초월성’이기에 생명의 기원은 또한 ‘초월성’인 것이다. 생명의 기원을 초월성에 두고 삶을 신비로 이해하는 가톨릭적 사유는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가장 확고한 지반이 된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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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546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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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선진 사상에 나타난 생명관
Perspectives on Life in Philosophical Debates during Pre-Qi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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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향만(서강대학교)" ]
이 연구는 선진(先秦) 시대의 철학사상안에 나타난 생명관에 대한 탐구를 통해 현대 생명관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데 목적이 있다. 선진세대의 생명관은 문화적인 차원과 철학적인 차원으로 나눌 수 있다. 문화적인 차원에서 중국 고대의 삼대문화는 원형적인, 보편적인 자연 생명관에서 종교적 생명관, 인문적 생명관으로 발전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주대의 인문적인 생명관은 정치적 생명관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공자의 철학의 시대에 들어와서 통치자의 정치적 생명관은 개인의 사회적 생명관으로 발전하였다. 나아가 공자는 도덕적 생명관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공자이후묵자는 보편적인 도덕률을 통한 극단적인 사회적 생명관을 발전시켰다. 반면에 양자는 극단적인 자연적 생명관을 발전시켰다. 이 두극단적 생명관은 맹자와 장자에 이르러 극복되었다. 맹자의 도덕적 생명관은 덕성을 통하여 생명성이 사회적으로 발현되는 것을추구하였다. 장자는 관조적인 생명관으로 자유를 통한 생명의 내재적인 의미를 발전시켰다. 이 두 생명관은 현대의 보편적 생명관에 새로운 전망을 주고 있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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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546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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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에서 생명의 잠재성에 대한 형이상학적 의미
The Metaphyical Meaning of Virtuality of Life in Deleu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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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효숙(중앙대학교)" ]
생명의 존엄성과 생명의 창조성의 잠재적인 위력은 어디로부터오는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명의 원리를 현실태와 가능태의 형이상학적 원리로 설명하였으며, 개체들의 본성을 한 형상 내에서의질료에 의한 개별화의 원리로 제시하였다. 이러한 그의 형이상학과생물학적인 설명은 생명의 보편성과 개별성을 설명하는 원리로서,근대에 이르기까지 생명의 목적론적 세계관으로 지속되어 왔다. 근대 자연 철학의 목적론적 자연관과 유기체적 생명 개념과 결별하고 다윈의 진화론을 창조적으로 받아들여 현대 생명 철학과자연관에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 철학자는 베르그송이다. 베르그송은 전통 형이상학에서의 일과 다의 원리에 입각한 개별자의 존재론의 원리를 버리고, ‘다양체’ 개념을 새롭게 마련하여 생명을 잠재성의 차원으로 획기적으로 전환시켰다. 즉 가능한 것을 대신하는잠재적인 것은 질료형상설을 따르지 않는, 다양체에 작동하는 원리가 된다. 들뢰즈는 이러한 이념적 차원의 다양체를 생물학적 다양체로 현실화한다. 들뢰즈는 다양체가 분화의 차원에서 생명의 잠재성과창조성을 보여 준다고 생각했다. 또한 들뢰즈는 시몽동의 개체화의 원리를 수용하고, 이를 전-개체적 상태의 독특성의 지평이자,개체가 갖는 이념-잠재적인 차원과 연결시킨다. 들뢰즈는 개체화의 원리를 생물학에서의 분화의 원리에 적용하여 배의 발생으로 연결시킨다. 이러한 들뢰즈의 생명철학은 다윈의 진화론의 계보를 넘어서서, 생명의 잠재성의 차원을 리좀적인 평면으로 연계하여 윤리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지평으로 확장시킬 수 있는 의미를 지닌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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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597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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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학교의 전인교육 사명에 대한 고찰
Mission of Education for the Whole Person in Catholic Schoo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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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본만(가톨릭대학교)" ]
본 연구는 가톨릭 학교의 사명인 ‘그리스도교적 전인교육’의 풍부한 의미를 드러내는 하나의 개념 모형을 제시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본 연구에서 고찰한 내용은 교육관련 교회문헌, 성경 및 예수의 교육관, 가톨릭 윤리신학 및 영성신학, 인격(persona)개념의 역사적 논의와 현대 인격교육 운동의 흐름 등이었다. 우선 교회문헌 고찰을 통해 가톨릭 학교의 사명이 ‘복음화’와‘전인교육’으로 요약되며, 이 둘은 분리되는 사명이 아니라 ‘복음화를 통한 전인교육’, 즉 ‘그리스도교적 전인교육’으로 명명할 수 있음을 밝혀내었다. 그리스도교적 전인교육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한 시도로 고찰했던 성경 및 예수의 교육관은 가톨릭 전인교육이 ‘완전한 인간’ 양성을 목적으로 하며, 완전한 인간이란 하느님의 모상으로서의 완전성에 도달한 사람이고, 이러한 완전성은 회개, 즉 ‘인격’의 총체적 변화를 통해 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하도록 이끌어 주었다. 이러한 고찰은 그리스도교적 전인이 ‘인격적 인간’을 기반으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스도교적 인격 개념은 ‘이성적 본성’을갖고 윤리적 행위 결정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가진 주체로서의‘개별성(독자성)’; 타자에게 ‘열려’ 있으며 ‘관계’를 맺는 존재임을드러내는 ‘공동체성’; 인간적인 모든 특성이 통합된 ‘완전한 전체성’; 하느님 자녀로서의 ‘존엄성’ 등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이러한 고찰을 기반으로 본 연구에서 제시하는 그리스도교적 전인교육의 개념 모형은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교적 전인교육은 전인, 즉 완전한 인간 형성을 목적으로 한다. 완전한 인간은 그리스도의 인격에 자신을 일치시키면서 인격의 완전성에 도달한 인간,다른 말로 인격이 총체적으로 양성된 인간을 의미한다. 인격의 총체적 양성은 세 가지 원리의 유기적인 통합을 통해 이루어진다. 첫132 가톨릭철학ㆍ제17호【특집】가톨릭사상 안에 나타난 교육관과 그 실현째는 ‘복음적 가치관’ 형성으로 이 원리는 지식의 통합에 기여한다. 둘째는 ‘그리스도교 덕성’ 함양으로 이 원리는 정서⋅의지⋅행동의 통합에 기여한다. 이 두 원리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한 인격안에서 완전한 통합을 이루도록 이끌어 주는 세 번째 원리가 ‘영성’으로, 이 원리는 인격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고 완성을 구현한다. 이러한 유기적 통합 과정을 통해 인격적 완전성에 도달한 전인은‘참 사람’이며 ‘참된 그리스도인’ 곧 ‘복음화된 사람’이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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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597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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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철학과 그리스도교 철학
Analytical Philosophy and Christian Philos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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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준(서강대학교)" ]
‘분석적으로 철학한다는 것’은 오늘날 중요한 철학적 전통이 되었다. ‘분석적으로 철학함’은 단순히 분석적으로 사유한다는 의미를 넘어서 있다. 그것은 분석철학이 종합적 사유에 대응하는 분석적 사유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기존의 철학과 구별되는 철학의 경계 짓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고는 분석철학과 전통 철학의 입장에 서 있는 그리스도교 철학을 비교한다. 서로 분명한 입장차를가지고 있는 분석철학과 그리스도교 철학은 서로 양립 가능할 수있는 것인가? 대화를 단절하고 자기주장만을 고집한다면 모를까현격한 입장차를 보이는 두 철학을 비교해 봄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다. 두 철학을 비교함에 있어서 우선하는 질문은 두 철학의본질과 관련된 정체성 문제이다. 본고는 기본적으로 두 철학의 기본 입장을 커다란 윤곽 아래서 살피고, 분석철학의 그리스도교 철학의 수용의 관점에서 두 철학을 비교할 것이다. 본고는 우선 분석철학을 두 가지 관점에서 본다. 하나는 ‘철학적방법론’으로서의 분석철학이고, 다른 하나는 ‘체계적 철학’으로서의 분석철학이다. 그리스도교 철학이 방법론으로서의 분석철학을수용하는 것은 비교적 용이하다. 그러나 체계적 철학으로서의 분석철학과 그리스도교 철학의 조우 가능성은 간단하지 않다. 그것은 분명한 차이를 보이는 두 철학의 본질과 정체성에 기인한다. 그럼에도 오늘날 전통 철학의 주제들에 대한 분석철학의 관심 표명을 통하여 두 철학의 조우 가능성을 타진해 볼 수 있다. 본고는 우선 분석철학과 그리스도교 철학의 본질과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검토함으로써 두 철학의 일반적 특성과 차이를 드러낸다. 이어서 오늘날 분석철학의 ‘분석적 형이상학’과 전통 형이상학의 비교, 그리고 존재 개념의 검토를 통하여 두 철학의 만남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참된 지식과 실재의 근거 물음은 오래전부터 사유를 갈라놓는철학의 핵심적인 물음 가운데 하나였다. 두 철학도 예외가 아니다. 지식과 실재의 근거를 경험에 국한시킬 것인지 혹은 경험을 넘어서까지 둘 것인지는 사실 우리가 철학적으로 어떤 태도를 취하며어떤 관심을 갖느냐에 따라서 상당한 차이를 보일 수 있다. 이것은두 철학을 비교함에 있어서 우리가 분석철학을 방법론의 철학으로취해도 여전히 선택이 요구되는 과제로 남는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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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597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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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형이상학의 해석학적 지평
The Hermeneutical Horizon of the Metaphysics of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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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승환(가톨릭대학교)" ]
이 논문은 생명의 원리를 해명하는 형이상학적 체계에 관한 글이다. 생명체를 유전자의 층위에 제한시켜 해명하려는 현대의 생명과학은 실체론적 철학에 근거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기에이 과학은 생명의 법칙을 발견하는 데에는 유효하게 적용될 수 있을지언정, 생명을 개념적으로 이해하거나 생명의 의미를 밝혀내는데에는 타당성을 지니지 못하다. 심지어 이런 지식을 바탕으로 인간의 본성과 이해체계에 대한 자연철학적 해명을 시도하는 경향도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러한 해명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학문과문화체계는 존재론적 진리를 보지 못하기에 한계를 지니며 모순에빠질 뿐이다. 생명의 형이상학을 말하는 이유는 생명의 원리를 일면적 철학에근거하여 해명하는 잘못된 이해체계를 비판하고 극복하려는 데 있다. 그와 함께 살아있는 존재로서 자신을 선행적으로 규정하면서자신의 생명을 이룩해가는 인간 생명성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전통형이상학적 체계로 이러한 작업을 수행할 수 없기에 이 글은 그러한 사유를 위한 형이상학에 대해 논의한다. 그러한 논의를 여기서는 탈근대적 사유의 맥락과 연결지어 탈형이상학을 지향하는 체계로 해명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진화생물학에 근거한 인간이해의 철학적 관점을 논의한 뒤 형이상학으로서의 생명철학과 생명성에서 이해되는 탈형이상학적 특성을 고찰한다. 이를 바탕으로 이 글의 본래 의도인 탈근대적 사유의 형이상학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살펴볼 것이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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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597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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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적 질료와 수학적 대상의 존재론적 지위
Intelligible Matter and the Ontological Status of Mathematical Obje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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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영기(서울시립대학교)" ]
수학적 대상은 감각적 대상으로부터 추상에 의해 분리된 것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수학적 소박 실재론을 함축한다. 그의 추상 이론에 따르면, 감각적 대상으로부터 추상에 의해 분리되는 것은 감각적 대상의 속성들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수학적 소박 실재론의 문제점은 모든 수학적 대상을 감각적 대상으로부터 추상을 통해 획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기하학적 대상들은 감각적 세계 안에 물리적으로 예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수학적 소박 실재론이 안고 있는 소위 “정확성의 문제”이다. 정확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이후에 자신의 소박 실재론적 입장과 대치되는 다른 주장을 하게 된다. 즉, 그는 수학적 대상은 감각적 대상 안에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질료로서만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보편적으로이 주장은 오직 수학적 질료만이 감각적 대상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어 왔다. 이 해석에 따르면, 수학적 질료인 순수연장은 추상을 통해 감각적 대상으로부터 획득되며, 이순수 연장 위에 우리의 지성이 기하학적 형상을 부여해 기하학적대상이 구성된다. 이 해석의 장점은 정확성의 문제를 피하면서도수학적 대상이 추상을 통해 감각적 대상으로부터 획득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을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해석의문제점은 수학적 대상을 허구적인 것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수학적 허구주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적 실재론과 어긋나며, 그의실재론적 진리론의 틀 안에서 어떻게 수학이 참일 수 있는지 설명할 수 없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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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597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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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윤리 이론에서 도덕적 판단과 책임의 문제
The Problems of Moral Judgement and Responsibility in Kant’s Ethical The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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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인회(가톨릭대학교)" ]
칸트는 행위의 도덕적 가치가 행동하는 사람의 의도에 달려 있으며, 행위는 의무에서 수행했을 때만 도덕적 가치를 갖는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행위가 의무와 일치해야만 할 뿐 아니라, 행위자의의무를 완수하기 위해 행해졌어야만 함을 의미한다. 처벌받을 것이 두려워서 혹은 다른 어떤 사람에게 이로울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어떤 행위를 한 것이면, 그것은 의무에 일치할 수는 있으나 도덕적 가치는 없을 것이다. 이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이 정도까지는 칸트와 동의할 것이다. 칸트는 또한 의무에서 한 행위가 순수 선험적 도덕법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 같은의무에서 한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이것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칸트에 따르면, 하나의 법칙은 그 표현이 전혀 경험적 개념을 포함하지 않을 때 순수하다. 순수한 선험적 도덕 법칙은 그러한 특수한 도덕 원칙들보다 더 근본적이며 다음과 같은 보편법칙의 원리형식에서 표현됨에 틀림없다: 단지 네가 동시에 그것이 보편법칙이 되기를 바라는 준칙에 따라서 행동하라. 보편법칙의 원리는 각 개인의 행위들을 모든 사람들이 할 수 있고하기 원하는 것으로 제한한다. 그러므로 준칙을 선택함에 있어 각각의 개인은 다른 모든 사람의 선택의 범위에 대해 고려해야 한다. 만일 행위의 옳음이 결과에 의존한다면, 도덕규칙을 따르는 것이 그릇된 일을 하는 것에로 이끌 수도 있다. 그러나 만일 칸트가옳고, 결과들이 중요하지 않다면, 하고자 하는 의무의 수행은 결코그릇된 것일 수 없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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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597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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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시대의 다문화 교육
Multi-cultural Education in Global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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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석수(경북대학교)" ]
글로벌 시대의 도래와 더불어 기존의 국민(민족)국가는 위기에처해 있다. 자본의 국제화로 인해 이주가 잦아지면서 더 이상 단일국가, 단일 민족의 범위 내에서 살아갈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이른바 우리는 이미 다문화 사회 속에 살고 있다. 이런 급속한 변화로, 우리는 사회⋅문화적으로나, 교육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에 놓여 있다. 한편에서는 우리는 그동안 우리를 지배해온 강한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로 인해 서구적인 합리적인 개인으로 제대로 성숙하지 못하였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매우 이기적인 개인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우리 사회는 사이비공동체주의와사이비자유주의가 착종되어 있다. 공동체주의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민족’과 자유주의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시민’ 사이에 심한 균열과 갈등이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우리 사회의 다문화 교육도 이주해온 소수자들을 우리 사회에 동화시키려고 하거나, 아니면 사무적으로 대하려는 양상이작동하고 있다. 우리의 다문화 교육은 자유주의적 다문화주의를넘어 비판적 다문화주의 입장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으며, 그래서 이주자들도 우리와 함께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주체가 되도록 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기존처럼 강한 민족주의나 국가주의 입장에서 살아갈 수도 없으며, 그렇다고 민족과 국가를 외면한 채 세계시민으로만 살아갈 수도 없다. 우리는 자유주의의 ‘정의’와 공동체주의의 ‘연대’를 새롭게 종합해야 하고, 또 민족과 시민을 새롭게 종합해야 하듯이, 우리 다문화 교육 역시 연대의 원리에 입각하여 이주자 집단의 고유한 민족 문화를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동시에 정의의 원리에 입각하여 그들이 평등한 권리 주체로서 살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각 개인이 지니고 있는 감정의 특수성을 존중하면서도 함께 조화를 모352 가톨릭철학⋅제17호【연구논문】색하는 구체적 보편성을 마련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우리의 다문화 교육도 칸트의 반성적 판단력과 공통감 이론을 발전시킨 아렌트나 호바르트의 이론, 나아가 ‘말하는 너’를 모색하는 가다머의해석학의 방법 등을 통해 새롭게 구축될 필요가 있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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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597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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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육의 스승 아우구스티누스
The Influence of Augustine’s Life Experience on His Notion of Values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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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승찬(가톨릭대학교)" ]
본 논문에서는 아우구스티누스가 교육과 관련하여 직접 이야기한 내용들을 그의 생애 체험에 비추어 체계적으로 재구성하고자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이 어렸을 때 체험했던 부정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을 거부하고 학생의 인격과자율성을 존중하는 교육을 강조했다. 또는 그는 언어를 통한 교육의 한계에 대한 자각을 바탕으로 교사 중심의 지식전달 모델을 비판했다. 학습자야말로 능동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교육의 주체라는 것이다. 또한 아우구스티누스는 삶의 변화를 위한 가치교육의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향유와 사용의 구분을 토대로 사랑의 원리에따른 교육을 실천할 것을 제안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가치교육은강압적이어서는 안 되고 역할모델을 통해서 제시되는 모범에 따라서 이루어져야 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생애에서 만난 잘못된 역할모델들과 훌륭한 역할모델들에게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아우구스티누스는 교사의 사랑에 기반한 자기 제시야말로 교육의 핵심이라고 가르친다. 끝으로 위대한 스승 아우구스티누스가 제시한구체적인 체험과 충고들을 통해 우리나라의 교육현실을 재조명해보았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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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597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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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의 의미를 중심으로 본 토마스 아퀴나스의 교육관
St. Thomas Aquinas on Teaching and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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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재(백석대학교)" ]
토마스 아퀴나스는 교육을 주제로 하는 독립된 글을 남기기 않았다. 하지만 그의 저작들에서 교육과 관련된 중요한 기본 원리들을 찾아볼 수 있다. ‘가르침’에 대한 논의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진리에 관한 토론문제들」 제11문과 「신학대전」 I부 117문의 논의로부터는 교육에 관한 그의 근본적인 이해를 추적해 볼 수 있고, 그의 설교 「아이 예수(puer jesus)」에서는 교육이 인간의 어떤 측면들의 성숙을 지향해야 하며, 이를 위해 어떤 태도들이 요구되는지에 대한 일종의 교육학적 논의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논의들의 중심에는 그의 가르침 개념이 자리잡고 있다. 그에의하면 가르침이란 지식의 산출, 특히 자신 안에 지식을 산출하는배움 혹은 인식에 대응하여 자신 이외의 존재 안에 지식을 산출하도록 하는 원인행위이다. 이러한 가르침은 우선적으로 지식 산출과 관련되지만, 이해된 선만을 추구하도록 되어 있는 인간의 본성적 행위방식 때문에 사실상 인간 삶의 전 영역에 영향을 미칠 뿐아니라, 인간의 궁극적인 자기실현과도 연관된다. 한편 그는 오직 신만이 참된 의미의 교사, 즉 지식산출의 충분한원인자라고 강하게 주장함으로써, 가르침의 의미를 교육현장의 차원을 넘어 보다 근본적인 지평으로 확장한다. 이 지평에서 볼 때토마스 아퀴나스가 말하는 가르침은 단순히 지식을 산출하는 원인행위가 아니라, 인간들에게 자신을 드러내어 알게함으로써 그들로하여금 그들의 본성적 행위방식에 따라 그들의 궁극목적이자 행복인 신 자신에게로 향할 수 있게 해주는 신의 부르심, 인간들을 자신에게로 이끄시고 인도하시는 신의 부르심으로 이해될 수 있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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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597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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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적 의미의 초월철학적 반성
Transzendentalphilosophische Reflexion über den letztgültigen Si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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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욱(인천가톨릭대학교)" ]
독일의 가톨릭 기초신학자인 한스유르겐 페어바이언은 자신의 고유한 기초신학 프로그램 안에서 “궁극적 의미의 개념”(Begriff des letztgültigen Sinns)을 초월철학적으로 규명하고 이를 토대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이른바 제일철학적 해명을 감행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그의 시도는 교회전통 안에 있는 “신앙의 근거”(Ratio fidei)의 궁극적 정초라는 맥락에서 수행 가능한 것인가?물론 신앙진리의 내용(Inhalt)은 인간이성이 결코 만들어낼 수없다. 그러나 최소한 인간이성은 자신의 자율적⋅철학적 반성을통해 신앙의 내용으로 비로소 채워질 수 있는 궁극적 신앙진리의선험적 형식(transzendentale Form)을 탐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외부로부터 나에게 주어지는 신앙진리의 내용은 철저히 타율적으로 머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신앙진리의 선험적 형식에 대한 철학적 탐구는 우리에게 필연적으로 요구되며, 이러한궁극적 진리의 선험적 형식(틀)을 페어바이언은 인간이성이 초월철학적으로 해명해야 할 “궁극적 의미의 개념”(Begriff des letztgültigen Sinns)이라고 규정하였다. 또한 페어바이언은 궁극적 의미개념이라는 선험적 형식(틀)을규명함으로써 그리스도교 신앙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의 탐구기준을 마련하는 철학을 제일철학(Erste Philosophie)이라 칭하고, 이철학이 해석학적 이해에 대한 일종의 척도론(Kriteriologie)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보았다. 여기에는 절대진리의 원초적 명증성과 보복논증적으로 확인된이성수행의 부차적 명증성 사이의 발생적(genetisch) 관계, 그리고제일철학과 해석학 사이의 상호 보완적 관계에 대한 근본적 통찰이 전제되어 있다. 이러한 통찰을 전제로 페어바이언은 궁극적 의미개념을 엄밀하게 초월철학적으로 해명하였다. 여기서 초월철학적 해명의 토대는비판적으로 거슬러 더 이상 물을 수 없는 궁극적 타당성의 근거로서 “나는 생각한다”(das ‘Ich denke’)이다. 이를 토대로 그는 인간이성의 근본구조(Elementarstrucktur)로부터 보편적이고 근본적인의미물음(Sinnfrage)을 엄밀하게 초월철학적으로 분석하였다. 이때의미물음의 해답으로서 제시되는 궁극적 의미개념(Sinnbegriff)은다름 아닌 “다름 안의 통일” 또는 “다수 안의 단일”의 초월적 사유가능성이다. 페어바이언은 이를 안셀무스의 “Verbum aut imago”와 피히테의 모사개념(Bildbegriff)의 도움을 받아 철저하게 초월철학적으로 해명해 내었다. 이러한 그의 시도는 신앙의 궁극적 정초가 과연 가능한지 비판적으로 토론하는 오늘날의 신학적 담론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왜냐하면 그의 엄밀한 초월철학적 반성은-이미 본 논문에서 마레샬 학파와 아펠에 대한 비판에서 밝혀진 바와 같이-신앙진리의원초적 명증성에 대한 이해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이는 그의 기초신학적 기획이 “Ratio fidei”에 대한 철학적 반성이라는 교회전통과부합하는 것임을 알려준다. 페어바이언에게 있어서 역사적 사실나자렛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선포된 하느님 말씀의 궁극타당성(Letztgültigkeit)은 그리스도교 신앙내용의 특유성(Spezifikum)을결정한다. 바로 이 궁극타당성 때문에 신앙개념은 철학적 신앙해명이라는 프로젝트를 수행함에 있어 처음부터 자율이성의 반대개념으로 축소될 수 없고 오히려 자율이성을 해방시키는 것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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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597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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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론에서 탈재론(脫在論)에로
From Ontology to Ehyehlog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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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산춘(서강대학교)" ]
아우슈비츠는 과거가 된 비극의 한 예가 아니다. 그 전체주의 사상은 오늘날 인류적 위기와 파탄의 원점이 되어있다. 그러면 이 비극을탈출하는 사상적 단서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미야모토는 먼저 아우슈비츠의 사상적 온상을 묻는다. 그는 그리스철학의 계보를 더듬어, 타자의 말살이라는 비인간화의 문제가,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니체, 하이데거에 이르는 존재-신-론(Onto-Theo-Logia)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명시한다. 그 위에서 그리스도교 사상에 눈을 돌려,구약성경의 문학 특히 「탈출기」의 모세 스토리의 해석을 통해, 헤브라이적 전통 가운데서 타자에게 열려 있는 상생(相生)에의 단서를발견한다. 그것이 탈재론(EHYEHLOGIA)의 시작이었다. 헤브라이어 존재 동사 <hayah>의 단수 1인칭 미완료형인 <ehyeh>의 특징은, 신이 불변부동의 영원한 자기 동일자가 아니라 스스로부단히 새로운 경계에로 탈자(脫自)하여가는 동태(動態)라는 점,그리고 그 탈자는 타자에게로의 도래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ehyeh 는 ‘타자와 함께 이룬다’는 상생의 의미도 지닌다. 탈재론의 방법론적 실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토리의프네우마적 해석이다. 그러한 해석 안에서 우리는 현대의 타자인‘이방인’-레비나스가 말하는 ‘얼굴’-을 만나며, ‘나는 너다’라고말하게 하는 그 얼굴과의 잉여(剩餘)적 만남을 통해서 근원악의상징인 아우슈비츠의 심연을 건너가는 것이다. 그러기에 ‘에히예’는 자동(自同)적 이야기의 <밖>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스토리를창조하는 에너지의 원천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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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490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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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아퀴나스의 현실태 해석과 응용 -현실태와 존재-
Thomas Aquinas on Explanation and Application of ‘Energeia’ -Energeia and Es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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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혜정(가톨릭대학교)" ]
본 글은 토마스 아퀴나스가 ‘존재’에 현실태가 가지는 지시적 의미를 적용하고자 한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의미를 조명하고자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현실태(에네르게이아)라는 말은 행위로부터 파생된 것이며, 완전성인 현실태(엔텔레케이아)를 의미하고 지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실태는 행위의 완성(완료)을 지시한다. 그리고 완성은 충만한 능력으로서 역동성을 함축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와 같은 이해를 ‘존재’에 적용시켰다. “존재는 모든 현실태 중의 현실태요 그 때문에 모든 완전한 것 가운데 완전성이다” (『권능론』 제7문제 제9이론의 해답). 존재는 현실태(energeia)와 완전성(entelecheia)로서 언급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현실태의 의미적 지시에 따르면, 존재는 단지 존재함의 완성을 향한 과정이 아니라, 존재함 그 자체로 목적에 도달한 것이다. 존재는 존재의 행위이며, 동시에 존재의 완성인 것이다. 이렇게 토마스가 현실태를 재해석하고 존재에 적용할 이유는 철학적이면서, 신학적이다. 전자에 따라, 토마스는 우리가 과연 고착화되고 고정적인 의미를 초월하도록 촉구하는 존재를 가지는지, 그리고 그 존재가 역동성을 지시하는 현실화인지를 성찰하도록 한다. 후자에 따라서는 이러한 역동적인 존재에 대한 성찰만이 신과의 관계성을 회복시킬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신학적인 의미에서 존재 성찰은 우리 편에서 최고의 역동성으로서 신 존재를 지향해 가도록 촉구하는 것이다. 현대인들이 가지는 것에 못지않은 무거운 문제들로 둘러싸여 있었을 13세기에, 토마스는 시대 이상을 넘을 수 있고, 최고의 역동성인 신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 존재 완전성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토마스에게 그것은 ‘지금 여기 있음’으로서 존재의 완전성을 사유하고 통찰하는 길이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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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490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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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神)을 닮는 것: 스토아 윤리학 및 자연철학에 전해진 플라톤의 유산 -『티마이오스』를 중심으로-
Resembling God: Plato’s Legacy Transmitted to Stoic Ethics and Natural Philosophy -A Study Focused on Timae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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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우(가톨릭대학교)" ]
초기 스토아 철학자들의 윤리학 체계 안에 플라톤적 요소가 들어가 있는지의 여부는 오랫동안 분명하지 않은 문제였다. 하지만 키케로의 『투스쿨룸 토론』 제5권에 의하면 스토아 철학의 논제는 분명히 플라톤적 권위로부터 온 것이다. 『투스쿨룸 토론』 제5권에는 스토아의 근본 관점, 즉 우주의 질서는 인간의 내적, 심리적 질서를 위한 패러다임이며 행복은 우주 관조에서 출발한다는 관점이 드러나 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이 관점에 신에 대한 모방이라는 이념을 가미함으로써, 그들의 윤리학을 자연철학적ㆍ자연신학적으로 정초한다. 플라톤의 『티마이오스』, 특히 90a-d에도 우주론적 윤리학의 시각이 들어 있다. 이에 따르면 인간은 삶의 목적과 행복에 이르기 위해 신적 우주의 운동을 모방해야 한다. 『티마이오스』에서 데미우르고스 신은 우주적 지성을 위한 상징이다. 그리고 우주적 지성은 이 우주 안에서 내재화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우주는 “가시적인 신”이다. 인간의 모방의 대상은 세계 초월적이지 않다. 윤리적 패러다임은 인간과 가까이 있다. 『티마이오스』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신 모방 관념을 스토아는 수용했고 적절히 변용했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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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490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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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철학과 초월적 토미즘 -롯츠(Johannes Baptist Lotz SJ)의 이론을 중심으로-
Kantian Philosophy and Transcendental Thomism -Centering on the Theory of J. B. Lotz 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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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석수(경북대학교)" ]
이 글은 전통형이상학의 문제를 극복하고자 하는 칸트와 롯츠의 이론을 존재와 주체, 선험성과 초월, 이론과 실천의 관점에서 비교 평가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근대적 주체의 능동적 활동을 긍정적으로 수용하지만, 존재와 주체 사이의 관계 설정의 차이로 서로 입장이 갈라지게 된다. 칸트는 주체의 능동적 활동을 구성적 관점에서 시ㆍ공간 내에 탈역사적으로 묶어 둠으로써 존재 자체에 대한 이론적 접근을 반대하고 실천적으로 다가가려고 한다. 반면에 롯츠는 마레샬의 ‘지성의 역동성’을 수용하여 인식주체에 추상적 활동과 구성적 활동 모두를 허용함으로써 인식주체가 시ㆍ공간을 넘어 존재 자체에 합리적으로 접근하도록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롯츠는 칸트철학 안에 남아있는 지성과 이성의 분열, 이론이성과 실천이성의 분열을 극복하려고 한다. 그는 이 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형상적 경험으로부터 존재론적 경험, 형이상학적 경험, 종교적 경험으로 이행하는 과정을 자세히 분석하고 있다. 특히, 그는 ‘명상’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칸트가 남겨 놓은 분열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음을 보여주려고 한다. 이 글은 롯츠의 이와 같은 입장이 근대적 주체의 폭력을 극복하면서도 동시에 전통적 존재와 조화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음을 제시해보려고 한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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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490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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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나벤투라의 인간학에서 영혼의 자립가능성과 인간의 통일성의 관계
Enjeu antropologique de la substantialité de l’âme et de l’unité de l’homme chez Bonaven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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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현석(한신대학교)" ]
본 발표문은 질송(E. Gilson) 이후 약 90년간 보나벤투라 영혼론을 주도해온 주류 해석, 특히 보나벤투라의 영혼 불멸성에 대한 논의와 그의 신학적 영감에 대한 해석에 맞서 보나벤투라에 대한 대안적 해석을 제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본 발표문에서는 브라디(I. Brady)의 해석에 발맞추어 “인간의 통일성을 희생함으로써 영혼의 실체성을 확보한 보나벤투라”라는 기존의 해석이 제시한 초상(肖像)을 수정하는 한편으로, 보나벤투라의 소급적 실체로서의 인간의 영혼 개념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보나벤투라 영혼론의 일관성이 영혼이 신체와 분립하는 정신적 실체로서 정초시키려 하는 시도에서 발견된다는 질송 이후의 주류 주석가들의 입장과는 달리 영혼과 신체의 결합인 인간 존재의 통일성을 다지는 데에서 드러남을 보이고자 한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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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49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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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쩌의 공동체주의적 사회비판의 역동성과 전망
The Dynamics and Perspective in Walzer’s Communitarian Critic of the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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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현철(연세대학교)" ]
이 글은 왈쩌의 공동체주의적 사상의 비판이론적 함축과 전망을 고찰한다. 왈쩌는 그의 사상을 통해 사회비판에 유용한 역동성을 작동시킬 근거를 마련할 뿐 아니라 사회비판에 적합한 이론적 지평을 개척하고 있다. 그의 이러한 기획에 있어서 여러 부분 이론들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데 이 글에서는 그의 정체성 이론을 포함해 그 밖의 다른 부분 이론들을 조망하고 이것들 간의 관계를 살펴볼 것이다. 이를 통해 이 글은 그의 사상이 어떤 방식으로 사회비판에 요구되는 구성원들의 비판적 역동성을 추동할 뿐만 아니라 그 실천에 필요한 이론적 전망을 열어주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이와 더불어 그가 그의 이론의 공동체주의적 요소들을 결합시키는 자유주의적 방식의 특성도 함께 고찰할 것이다. 이는 그가 사회적 비판에 필요한 구성원들의 참여적 역동성을 마련하는 데 있어서 가지는 자신감의 근거를 드러내 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론 구성에 아쉽게도 결여된 측면도 있다는 점 역시 이 글에서는 지적할 것이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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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490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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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까르뜨의 도덕론에서 관대함과 사랑의 문제
The Problem of Generosity and Love in Descartes’s Moral Theory -Crossing the Border of Stoic ‘Morality without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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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희(연세대학교)" ]
데까르뜨에 의하면 행복은 영혼의 완벽한 만족에 있다. 이 만족은 최고의 선을 향유하는 데서 오는 결과이다. 그리고 최고의 선은 덕의 실행이다. 세속적 덕을 완성하기 위한 노력이 라이프니츠가 비판한 것처럼 스토아학파의 체념의 윤리학을 연장하는 데 그친다면 데까르뜨의 도덕론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는 임시적 도덕률에 불과할 것이다. 데까르뜨에게서 확정적 도덕률은 어떻게 가능할까?최고의 선이 덕의 실행이라고 할 때 우선 이는 자유의지를 기초로 한다. 자유의지를 통해 획득할 수 있는 최고의 선을 향유한다면 우리는 영혼의 완벽한 내적 만족을 얻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자유의지를 적절히 행사할 때 자신을 존중하는 자부심을 갖게 된다. 균형잡힌 자기 존중은 관대함을 가능하게 한다. 결국 데까르뜨에 있어 완벽한 내적 만족을 이룬 사람은 관대한 사람이다. 그러나 자유의지에 기초한 관대함은 한계를 갖는다. 관대한 사람이 자유의지의 힘이 미치지 않는 외부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자유의지는 자기 외적 기준을 필요로 하지 않는 최종 근거인가? 여기서 데까르뜨는 최고의 행복을 최고선을 소유하는 데 두었다고 할 때 그 연장선에서 이 최고선을 신으로 규정한다. 결국 데까르뜨는 세속적인 도덕성의 뿌리를 신성에서 구한다. 자연에 대한 순종에서 지혜를 구하는 스토아학파의 세네카를 비판하고 초월적이고 무한한 신성에 호소함으로써 그는 라이프니츠가 요청했던 희망의 도덕을 제시한다. 그는 신의 무한한 의지에 복종하는 지혜를 통해 현실에서의 고통을 이겨내는 위안을 제공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사랑이나 관대함 등이 인간의 유한한 조건에 그치지 않고 신적 기준과 교통함으로써 비로소 가장 완벽한 도덕성에 이르게 된다. 도덕의 기준이 유한한 인간의 기준에 제한될 때 이는 임시적 도덕률이 될 수밖에 없다. 데까르뜨에 있어 초월적 기준에 대한 요청은 확정적 도덕률을 위해 가장 근본적인 것이다. 그의 도덕률은 근원적으로 신적 기준을 기초로 하는 형이상학으로부터 가능하다고 할 것이다. 우리는 산재한 그의 여러 언급들을 검토함으로써 지상에서의 인간의 덕들이 초월적인 기독교의 덕들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그가 신성에 기초한 덕 개념을 통해 자신의 도덕적 입장 속에 확정적 도덕률의 토대를 구축하고자 한다는 사실을 추론해볼 수 있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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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490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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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서술의 규범적 요소
Normative Fundamente der Geschichtsschreib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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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정민(국민대학교 교양학부)" ]
본고는 역사주의의 문제를 다룬다. 18세기 이후 새로운 역사개념의 생성과 역사의식이 자리잡기 시작한 이래 19세기는 흔히 “역사주의”의 세기라 규정되어 왔다. 19세기의 역사주의는 우선 역사적 지식을 학문으로 끌어올리고자 시도하나 모든 형태의 역사철학, 특히 헤겔의 사변적인 “세계사의 철학”에 이의를 제기한다. 여기에는 사실 학문적으로 이해하는 시대에 걸맞게 전형적으로 학문과 철학의 싸움이 그 근저에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성의 역사화뿐만 아니라 역사의 역사화 이후 우리가 호소할 수 있는 곳이 없다면, 즉 이로 인해 생겨난 규범적 공백을 메울 수가 없다면 상대주의는 피할 수 없는 결말이 된다. 그래서 역사적 지식의 체계화 문제는 역사학의 핵심 문제로서 역사학파뿐만 아니라 역사철학에도 중요한 관심의 대상이 된다. 여기에 방법론상으로 두 가지 해결책이 제시된다. 즉 역사적 재생산(역사주의)와 선험적 구성(칸트와 헤겔)이 그것이다. 그러나 역사적 자료에서(사실) 구속력있는 규범적인 기준을 끌어낼 수 없다는 인식론적 결말이 대부분의 역사가들에게서 간과되었다. 이러한 배경하에서 역사의 역사성을 성찰하는 것은 주체, 즉 이성의 자율성이 우선하는 것으로 강조되어야 한다. 역사성이란 사고의 산물인 것이다. 이에 따라 칸트와 헤겔의 발상이 역사주의의 그것보다는 우월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 점에서 역사가 이성적이라는 가정은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역사의 가능성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조건으로 나타난다. 그렇지 않으면 역사 자체는 이해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따라서 역사가는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이성성의 가정을 대상적 지식을 창출하지는 않지만 완성과 정교화를 위해 그의 작업에 항상 현존하는 규제적 원칙으로 파악해야 할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절대화하는 대신에 규범적으로 그리고 수정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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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44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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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종삼의 칸트비판은 정당한가?
Is Mou Zongsan’s criticism of Kant 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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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재현(서강대학교)" ]
이 글은 모종삼이 유교도덕철학을 칸트도덕철학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몇 가지 근거를 비판적으로 음미한다. 모종삼은 칸트 도덕철학이 물자체의 개념을 가치개념으로 보지 못하고, 또한 가치 개념으로서의 물자체도 지성적 직관에 의해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요청’이라고 봄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도덕 형이상학을 건립하는데 실패했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러한 모종삼의 입장이 그의 지나치게 이상적인 유교해석에서 빚어진 오류임을 지적하였다. 나의 현실적 유교해석에 입각하면, 모종삼이 지성적 직관이라고 주장하는 유가의 도덕적 인식인 사단과 양지의 지식은 모종삼의 주장과는 달리 오류 가능한 것이고, 따라서 칸트의 ‘순수이성의 사실’이나 ‘요청개념으로서의 물자체’와 다를 바 없으며, 사실이 그러함에도 모종삼이 이것을 일종의 인식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오히려 칸트가 우려한 일종의 독단성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모종삼은 유교의 양지와 사단을 독립적이고 추상적 개인의 절대적이고, 무한한 인식으로 간주하는데, 이는 공동체에서의 상호 교류를 통한 인식과 그런 인식의 오류성을 인정하는 유교의 구체적 인간관, 구체적 도덕관의 맥락에 비추어 볼 때,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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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440895
oai_dc
여성주의 연구방법으로서 젠더분석과 기술혁신
Gender Analysis as Feminist Research Method and Innovations of Techn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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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련(연세대학교 미디어아트연구소)" ]
이 글의 목적은 젠더분석을 여성주의 연구방법으로 제안하고, 젠더분석이 과학과 기술의 여러 분야에서 실제로 어떤 기술적ㆍ실천적 지식 혁신을 가져왔는지를 보여주는 데 있다. 젠더분석은 궁극적으로 여성의 삶에서 불평등을 해소하고 공정성과 역량강화를 위해 실질적인 변화를 모색하는 것을 추구하지만, 그러한 실천적 목표를 정당화하기 위해 먼저 합리적인 절차에 의거한 타당한 지식 산출에 기초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제도적ㆍ정책적 전략을 세우기에 앞서 젠더분석은 이른바 ‘지식 문제’에 대해 합리적이고 타당한 논증을 제시한다. 즉 젠더 분석은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편견과 무지에 기인하는 지적 손실을 막고 풍요롭고 도덕적으로 정의로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 균형 있고 책임감 있는 지식 생산 과정과 실천 방안을 모색하려 한다. 이 글의 전반부는 젠더와 ‘지식 문제’에 중점을 두어 논의한다. 여성주의 과학 기술과 연관하여 지식 문제는 지식 생산에서 젠더의 입지가 무엇이며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인가 하는 물음을 둘러싸고 전개되어 왔다. 과학적 지식과 젠더는 아무런 내적 관계를 갖지 않는다고 보는 전통적 입장에 따르면 젠더는 오히려 과학적 지식을 오염시키는 오염변수가 될 수 있다. 과학자 자신의 개인적인 기호나 편견이 그가 탐구하는 학문에 개입하지 않아야 하듯이, 젠더는 단지 연구자의 개인적인 문제일 뿐이므로 과학적 지식과는 연관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 반면에 현실의 변화를 도모하는 기술가의 경우, 다양한 종류의 변수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현실 세계를 초기 조건으로 갖는다. 변화를 추구하는 일은 연구자 자신을 비롯하여 기술의 잠재적 수혜자들의 신체적 필요와 욕구, 그리고 사회적 역할과 긴밀하게 연관된다. 그러므로 과학 연구와 기술 개발 과정에서 연구자의 젠더를 중요한 변수로 다루는 것은 오히려 객관적이고 풍성한 지식 산출을 유도할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젠더를 고려하지 않는 과학이나 기술은 피폐한 최소주의적 지식을 산출할 수밖에 없다. 이 글의 후반부에서는 젠더분석을 연구방법으로 삼아 과학과 기술 분야에서 새로운 지식의 생산과 기술 혁신을 이룬 사례를 고고학과 자동차공학에서 제시한다. 여성의 삶에서 유의미한 활동들의 성격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고고학적 자료에 접근할 때, 그러한 이해 없이는 접근할 수 없는 지적 지평이 열리고 창의적인 상상력을 통해 과거의 기술의 양태를 복원해낼 수 있음을 보일 것이다. 자동차 공학의 경우, 여성 운전자의 필요와 욕구를 분석하여 종래의 남성중심적인 자동차 설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함으로써 운전자의 안전과 승차감을 향상시킬 수 있었던 볼보사의 YCC 사례를 보여줄 것이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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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440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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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자연법 이론과 국가 기초의 문제
Kants Begriff des Naturrechts und Problem der Begrndung des Staa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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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기호(연세대학교)" ]
근대 자연법 이론은 자연 개념을 서로 상반되는 두 의미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를 가진다. 칸트 또한 이의적인 자연 개념을 사용함으로써 그의 자연법 이론에 많은 난제들을 초래한다. 칸트의 자연법 이론이 가장 잘 나타나는 곳은 그의 철학 체계의 완결로서 기획된 『도덕 형이상학』의 법론 부분이다. 이 글은 그의 법론을 중심으로 자연법 개념과 이에 기초하는 국가의 근거를 비판적으로 살펴본다. 칸트에게 자연법은 인간의 이성적 본성(Natur)에 대해 선험적으로 인식 가능한 법이다. 이 법은 자연 상태에서는 사법으로서 존립하며 시민사회 상태에서는 공법의 기초가 된다. 칸트는 자연 상태를 사회에 대립된 것으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사회가 가능한 상태로 규정한다. 따라서 자연 상태에서는 이미 인격들 상호간의 소통적 정의를 구현하는 사법이 타당하게 여겨진다. 이러한 자연 상태에 대립되는 것은 바로 시민사회 상태이다. 자연 상태 내 각 인격의 사법은 외적 관계를 통해 서로 충돌할 수 있기에 각자의 소유가 확정적으로 정당하게 분배되어 있지 않다. 반면 인격들 간에 분배적 정의를 법적 구속력을 갖고 실현할 수 있는 것은 시민사회의 공법이다. 그리고 공법의 법적 강제력을 궁극적으로 보장하는 것은 국가 권력이다. 그러나 한 국가의 법적 상태는 또한 다른 국가들과의 평화 유지 가능성에 의존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글은 이러한 논의를 통하여 칸트의 자연법 이론이 근대적 전통을 완전히 넘어서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칸트의 한계는 자연 상태라는 용어 속에 여전히 극복되지 못한 자연 개념의 이의성뿐만 아니라 외적 요청에 의한 법적 상태로의 이행의 필연성, 자유의 가능성을 위한 법과 강제의 동일시, 오직 법적 상태 보장만을 위한 국가 권력의 지나친 정당화 등에서 제시될 수 있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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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44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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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에 대한 철학적 인간학적 고찰
What is Authority? -An Inquiry Based on Philosophical Anthrop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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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준(서강대학교)" ]
오늘날 한편에서는 탈권위를 외치며, 다른 한편에서는 권위 상실이 가져오는 부작용을 염려한다. 이런 상반된 주장의 배경에는 권위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도사리고 있다. 권위는 탈피하고 싶다고 피해갈 수 있는 그런 임의적인 인간의 행위가 결코 아니다. 권위는 인간 본성에 근거한 인간의 본질적 행위 가운데 하나이다. 권위에 대한 철학적 연구는 권위가 인간의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다른 철학적 개념들에 비하여 미비한 편이다. 본고는 탈권위의 시대에 권위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통하여 권위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시도하는데 그 일차적 목적이 있다. 권위의 본질 탐구를 위해서 먼저 권위의 고전적 개념 정의를 고찰할 필요가 있다. 또한 권위는 철학적 인간학, 해석학, 존재론, 형이상학 등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한 개념이다. 이런 탐구를 통하여 권위가 궁극적으로 인간 이성과 진리 인식에 근거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권위는 진리에 근거한 긍정적 힘, 영향력이다. 진리를 인식하고 그것을 인정함 속에 권위가 드러난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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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44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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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적 사유의 권위적 특성과 대안적 사유의 가능성에 대하여
Autoritaerischer Charakter des modernen Denkens und eine Alterna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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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대성(연세대학교)" ]
우리는 근대 이후 오늘에 이르는 과정을 권위로부터의 인간해방의 과정으로 읽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근대의 과정은 외적 권위(예컨대 신)에서 내적 권위(예컨대 이성, 계몽의 합리성)로의 권위의 이동을 보여줄 뿐 권위자체로부터의 해방을 보여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권위는 기본적으로 지배구조를 그 패러다임으로 하고 있는데, 근대의 이성은 이러한 지배구조의 패러다임에 기초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대, 혹은 계몽의 권위파괴는 새로운 유형의 내적 권위를 세우는 것으로 끝나며, 이것은 결국 근대의 이상인 인간 해방과 그 이념인 자유와 평등을 실제로 구현할 수 없는 것으로 그치게 한다. 따라서 근대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권위 없는 권위”가 가능할까에 모아진다. 하버마스에 의해 정초된 의사소통적 합리성은 그 한 가능성으로 소개될만하다. ‘보다 나은 논증’이외에는 어떤 다른 강제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의사소통적 합리성에는 근대의 이상인 자유와 평등의 이념을 탈권위에 기초하여 세우려는 노력이 보인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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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440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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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퀴나스에서 물질적 단일자에 대한 인식의 문제
The Problem of Knowledge of Material Singulars in Aqui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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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우석(한국과학기술원)" ]
아퀴나스의 물질적 단일자에 대한 인식의 문제는 중세 인식론의 역사에서 가장 치열하게 논의되어 온 문제들 가운데 하나이다. 이는 부분적으로 알러스나 데이처럼 몇몇 학자들이 그 문제를 토마스의 체계 전체를 통해 가장 취약한 지점으로 취급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알러스와 데이의 의견을 검토하고 나서 필자는 인간 지성의 고유 대상의 문제를 통해 물질적 단일자들의 불가지성의 근원의 문제를 논의할 것이다. 필자는 이 문제들을 적절하게 논의하기 위해서는 물질적 단일자 내에 현존하는 하성(何性)에 대한 인식의 문제와 물질적 단일자에 대한 인식의 문제의 구별이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할 것이다. 이 구별을 전제하고서 아퀴나스 자신의 해결책이 그 자신의 문제를 다루기에 충분할 만큼 아주 교묘하다는 점을 보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물질적 단일자에 대한 인식의 문제는 몇몇 주석가들의 주장처럼 아퀴나스에게만 특별히 야기되는 문제가 아니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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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44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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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의 개념에 대한 외면적 접근과 내면적 접근
External and Internal Approaches to the Concept of Autho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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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동천(전북대학교)" ]
권위는 영향력의 한 형태이지만 영향력 중에서는 수용자 편의 주체적인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권위를 단순히 영향력의 한 형태로 여기는 데서 그치면 이 특징을 전혀 건드리지 못한다. 권위의 종류를 분류하는 방식으로도 역시 권위 자체가 무엇인지에는 침투하지 못한다. 이와 같은 외면적인 접근에 대비해서 본고에서는 내면적인 접근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내면적 접근은 어떤 개인이 어떤 사람이나 정책 또는 제도나 관습을 권위적이라고 받아들이는 데에는 그것이 어떤 정도로든 옳다는 감각이 작용한다는 차원을 강조한다. 물론 이 차원에 주목하게 되면, 무엇에서 어떤 권위를 얼마나 받아들이느냐는 문제가 각 개인이 어떤 성향을 가지고 무엇을 추구하느냐의 문제와 내면적으로 얽혀있다는 측면 역시 중시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그러므로 권위가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작업이 진행하다보면 결국 일정한 활동분야에 실존적으로 참여한 상태의 판단을 피할 수 없는 지점을 만나지 않을 수 없다. 정치적 권위를 탐구하는 사람이라면 해당 사회의 정치적 현안에 대한 나름의 평가를 피할 수 없는 지점을 만나게 되는데, 그 지점이야말로 철학과 정치가 서로 소통해야 하는 지점이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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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44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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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기 유명론 연구 (I)
Studies on the 12th century nominalism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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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상진(서울대학교)" ]
12세기 유명론의 철학사적 독특성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적 저작 없이 논리학적 저작을 중심으로 한 접근이었다는 점에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역으로 12세기 유명론의 지적 성취를 특징짓는 조건이기도 한다. 12세기 유명론의 대표자인 아벨라르두스(1079-1142)의 입장을 이전의 접근방식으로부터 갈라내는 것은 사물과 사태 혹은 의미 사이의 구별인 것으로 보인다. 서로 구별되는 개인들이 ‘사람에서(homo)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임’(esse hominem)에서 일치한다’는 주장이 사람과 사람임 사이의 구별에 근거하고 있다. 우리는 이 구별에서 이 보편 문제에 관한 존재론적 판본으로부터 의미론적 판본으로의 이행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구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사한 다른 구별들을 이해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가능성이나 필연성과 같은 양상을 표현하는 문장의 해석에서 사물 해석과 대비되는 의미 해석은 특정한 논리적 연관 하에서 파악한 ‘의미’를 전제한다. ‘악이 존재하는 것은 선이다’(bonum est malum esse)라는 문장에서처럼 사태(eventus rei)에도 ‘선’이 귀속될 수 있지만 사태는 사물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임 사이의 구별은 이러한 구별들로부터 이해될 수 있다. ‘사람임’은 아벨라르두스가 강조하듯 사물이 아니며, 한 개체와 그것이 갖는 특정한 모습과의 연관으로 구성된다. 이 연관, 이 사태에서 모든 개인들이 일치하며 이것이 보편명사 ‘사람’이 모든 개인들에게 적용되는 이유이다. 이렇게 설명될 때 사물과 구별된다고 주장된 ‘의미’ 혹은 ‘사태’가 정확히 무엇이며, 어떤 종류의 존재론적, 인식론적, 의미론적 가정들이 이러한 설명 뒤에 있는지는 향후 연구들이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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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388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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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식하는 성녀와 거식증 소녀 -성 카타리나(St. Catherine of Siena)와 현대거식증을 중심으로-
The Medieval Fasting Women Saints and Today’s Anorexic Gir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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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충범(협성대학교)" ]
본 논문은 경이적인 금식을 하는 중세의 성녀와 거식증에 걸린 현대의 여성들을 비교하면서 가부장적 문화와 억압적인 사회구조 를 드러내려고 시도하였다. 금식과 거식은 매우 유사한 이웃항 (terms)들을 갖고 있다. 두 현상은 일정시대에 두드러지게 나타나 는 유행성 현상이라는 점, 젠더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는 점, 매우 유사한 증상들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매우 유사하다. 금식과 거식을 현상으로 드러내는 하부구조는 우선 여성의 순결 이 숭배되는 문화이다. 여성의 성과 성욕을 소거해왔던 중세는 성 욕을 느끼는 여성들을 탐욕스럽고 비정상적인 존재로 전락하였고 이것이 바로 여성들에게 내면화된 자신들의 이미지였다. 따라서 육체를 제압하려는 열망으로 드러났다. 두 번째, 현대의 거식증과 중세의 금식은 상업자본과 가부장적 기독교가 요청하는 이상적 여 성상에 자신들을 순응시키려는 노력으로 나타났다. 매혹적인 몸매 를 자랑하는 깡마른 모델이 현대의 이상형이라면 중세의 이상형은 육체를 제압하고 자기고문을 통해 육체성을 극복한 여성들이었다. 세 번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식증과 금식은 일종의 저항을 함축 하고 있다. 먹기를 거부함으로써 거식증은 몸 숭배 소비주의에 항 거하고 금식은 단조로운 삶을 숙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여 성들이 영웅적 금식을 통해 교권에 도전하는 일종의 항거였다. 마 지막으로 금식과 거식은 육체에 머물러 있는 여성들의 자기통제를 통한 희열을 담지하고 있다. 금식이나 거식은 여성이 정치사회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재조정 하거나 자기 목소리를 낼 시기에 등장했다. 따라서 금식이나 거식 증은 권력관계를 잘 반영하고 있는 현상이며 그 권력관계는 가부 장적 사회-문화 구조라 아니할 수 없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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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388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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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와 철학사
Philsophiegeschichte Ka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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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정민(국민대학교 교양학부)" ]
본 논문은 칸트에 있어서 철학과 철학사의 문제, 철학자신의 이 해를 위해 핵심적인 주제를 다룬다. 헤겔은 철학사의 문제를 상세 히 다룬 최초의 철학자였다. 그러나 그의 선험적인 철학사 서술에 대한 사상은 이미 칸트에게서 고안되었으며 역사적 이유에서 잊혀 졌을 뿐이다. 때문에 본고에서는 특히 칸트의 선험적 구성을 다루 고자 한다. 칸트는 그의 비판주의적 입장에서 19세기에 대두되는 역사학문 과 역사신학에 맞서 역사학의 학문성에 대한 조건을 찾고자 한다. 칸트에 따르면 역사학문 또한 자연과학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선험 적이고 규범적인 토대를 필요로 하며 이러한 토대 하에 역사가 학 문으로 가능하다는 전재의 견해와는 달리 역사를 학문으로 승격시 키는 것이 가능하다. 이에 상응하여 철학사에서도 그 역사가 이성 적으로 전개되었다는 철학적 가정을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철학사의 철학적 고찰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전제조건인 것이다. 물론 이러한 가정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칸트의 비판주의에 맞 게 방법론적이고 비판의 유보하에 있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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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388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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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사의 그레고리우스의 신비 사상 -에펙타시스와 에클레시아-
The Mystical Thought of Gregory of Nyssa: Epektasis and Ekkle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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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산춘(서강대학교)" ]
이 글은 카파도키아 교부 니사의 그레고리우스의 만년의 두 걸 작 『모세의 생애』와 『아가 강화』를 통해, 그의 신비사상의 두 핵심 어인 ‘에펙타시스’와 ‘에클레시아’의 개념을 추적하는 가운데 드러 나는 인간의 자기 성립을 규명해본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인간의 자연본성(physis)이 어떠한 것인가 를 아는 것이 중요한데, 니사의 그레고리우스에게 있어서 인간의 자연본성은 고대 그리스적 사유와는 달리 완결된 것이 아니라, 히 브리 그리스도교적 사유에서 보듯이 가변적인 것임이 확인된다. 그렇다면 이 가변적 자연본성은 어떻게 하느님을 향하여 변모해 가는가? 니사의 그레고리우스는 특히 구약의 「아가」해석을 통해 영혼과 초월적인 신성과의 만남을 신랑을 그리워하며 찾아가는 신 부의 모습, 사랑의 화살로 중상을 입은 신부의 모습으로 묘사하면 서 비유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 다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탈자적 사랑의 지향을 의미하 는 ‘에펙타시스’의 개념인데, 이는 신 인식이 정적인 그리스적 본질 인식이 아니라, 역동적인 히브리 그리스도교적 청종(聽從) 즉 타자 관계적 인식임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에펙타시스는 신비가들의 하 느님과의 순간적 합일일 수는 없고, 어디까지나 그리스도인들의 일상적 삶의 방식으로서 끊임없는 전진이라는 데에 그 의의가 있 다. 하느님은 무한하시므로 전진 또한 무한한 것이다. 니사의 그레 고리우스에게 있어서 이러한 에펙타시스의 모범은 다름 아닌 모세 의 생애였다. 마지막으로 니사의 그레고리우스에게 있어서, 에펙타시스라고 하는 초월에로 열린 역동성은 에클레시아라고 하는 다(多)이면서 도 전체로서는 일(一)인 영적인 공동체의 형태로 이 유한한 세계 에 구체화하며 생기한다. 즉 니사의 그레고리우스의 신비사상에서, 초월ㆍ개인ㆍ자기의 에펙타시스는 그 날줄이, 내재ㆍ보편ㆍ타자 의 에클레시아는 그 씨줄이 되는 것이다. 이는 마치 타볼산에서의 거룩한 변모 사건을 연상시킨다. 산의 정상에 그대로 머물려는 제 자들에게 예수는 세상으로 내려가길 권하는 것이다. 이 ‘세계와 타자에로의 귀환’이야말로 구체적 역사적 인간 안에서의 ‘존재의 현성(現成)’인바, 이로써 인간의 참다운 자기 성립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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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388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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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엑카르트의 인식론의 기본 개념
die Erkenntnistheorie im M. Eckh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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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부현(부산가톨릭대학교)" ]
이 글은 M. 엑카르트의 신비주의에 이르는 이론적 통로를 밝히 기 위해 그의 인식론의 기본 개념을 밝히고 있다. 엑카르트는 인간 인식의 단계적 영역을 ① 감각 지각 ② 참여를 통해 오성적인 것 의 영역 또는 내적 감각의 영역 또는 하위의 오성 ③ 추론적 오성 또는 오성 ④ 상위의 오성 또는 이성 등으로 나누고 있다. 따라서 이 글은 이들 말마디의 기본 개념을 해명하고 있다. 그의 인식론의 궁극적 거점은 신의 순수 이성이다. 신의 순수 이 성과 인간 이성이 하나 될 때, 인간은 일의적으로 순수 이성이게 된다. 인간은 신적 순수 이성을 향해 위로도 향하지만, 감각적 외 적 세계를 향해 아래로도 향한다. 위로 향할수록 우리는 내적 인간 으로 상승하는 반면, 아래로 향할수록 우리는 외적 인간으로 하강 한다. 인간은 신적 순수 이성과 감각 사이를 오가고 있다. 우리는 위를 향하기 위해 아래 것을 모조리 비워야 한다. 엑카르 트는 수용성, 그리고 모든 힘과 행위에 반대해 그냥 놓아두고 있음 (Zulassen)을 중시하고 있다. 이 점에서 그의 인식론은 극히 논리 적이고 학문적인 아리스토텔레스나 토마스의 인식론과 달리, 인간 의 종교적ㆍ실존적 경험을 반영하고 있다. 이 작업은 엑카르트의 신비주의 사상이 나름대로 이론적 근거를 갖고 진행되고 있음을 드러내고자 시도된 일련의 작업 중 하나이 다. 하지만 어떤 차이도 허용하지 않는 궁국적 통일성인 신성에 대 한 논의는 그의 이론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그의 신비주의 사상은 이론과 경험이 합쳐져야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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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388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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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킨타이어의 자유주의적 개인주의 비판
Alasdair MacIntyre's Criticism of Liberal Individu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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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정(이화여자대학교)" ]
알라스디어 맥킨타이어는 도덕적 논쟁이 해결불가능하게 된 원 인으로 자유주의적 개인주의를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현대 자아 는 자신의 사회적 문화적 맥락으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 독립적인 이성적 판단자로 자신을 이해한다. 현대 자아가 중립적이며 특정 한 이해관계를 갖지 않는다는 주장은 도덕적 논의를 어렵게 한다. 본 논문은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에 대한 맥킨타이어의 비판을 소개 하고 분석할 것이다. 첫째, 사적 영역에서 객관적인 도덕적 기준이 부재하게 된 원인으로 정서주의를 소개할 것이다. 둘째, 공적 영역 에서 시장 경제와 현대 국가의 등장 및 사회적 정체성의 해체가 어 떠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는지 분석할 것이다. 셋째, 정서주의와 시 장 경제 및 현대 국가의 등장이 중첩되어 책임 있는 도덕적 행위자 에게서 어떻게 실천적 합리성이 사라지게 하는지 고찰할 것이다. 본 논문은 실천적 합리성의 실현은 사적 영역에서 이성적 행위능 력을 개인이 인정하고 사회적 영역에서 선을 추구하는 것을 전제 로 한다는 것을 주장할 것이다. 본 논문은 개인에게서 이성적 행위 능력과 사회적 정체성을 구하는 것이 구체적인 사회적 역사적 문 화적 맥락에 대한 이해에 의존한다고 결론짓는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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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388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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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철학의 ‘자유’ㆍ‘권리’ 문제에 대한 여성주의 이해
The Feminist Understanding on ‘Freedom’, ‘Rights’ in Confucia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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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세서리아(성신여자대학교)" ]
이 글은 유가 철학에서의 자유와 권리의 문제에 주목하고, 이를 여성주의의 입장에서 논의함으로써 유교와 여성주의의 만남을 시 도하고자 하였다. 논문은 우선 전통 유가 철학에서의 자유와 권리 의 문제가 서구의 자유주의 전통에서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가를 살펴보고, 그것이 여성주의 입장에서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가를 논의한다. 그리고 전통 유가 철학이 지니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명말 이지(1527~1602)의 사상을 들여온다. 이지의 개체성, 개인의 욕망 등에 대한 논의는 전통 유가 철학에서의 자유, 권리에 대한 논의 방식과는 매우 다른 내용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같은 시도를 하는 이유는 유가 철학을 단지 하나의 범주로 인식함으로써, 그 안에 놓이는 복잡한 지형을 무시하게 되는 오류 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유가 철학이라는 동일한 범주 안에 놓 이면서도 개인과 공동체, 자유와 권리 등의 문제들에 대한 다양한 접근이 있었음을 소개하고, 이를 여성주의 입장에서 파악해보려는 것이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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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388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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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위기와 헤겔의 정치철학 -고대인의 자유와 근대인의 자유의 대립을 넘어서-
The Crisis of Modernity and Hegel’s Political Philos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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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종석(연세대학교)" ]
우리는 이 글에서 헤겔의 정치철학이 어떤 점에서 고대인의 자유와 근대인의 자유를 종합하는 이론인지를 검토할 것이다. 우선 홉스 및 로크를 통해서 제시된 자유주의적 인간관 및 근대적 자유의 특성을 고대의 자유관과의 대비 속에서 살펴본다. 특히 여기에서는 자치로서의 자유와 간섭의 배제로서의 자유에 대한 서로 상이한 견해가 설명된다. 이어서 다루어지는 주제는 헤겔의 사회계약론 비판이다. 특히 홉스, 로크 그리고 칸트 등에 의해서 전개된 사회계약론이 시민사회와 국가를 혼동하고 있다는 헤겔의 비판을 중심으로 근대에서 등장한 이상적 사회상의 모습이 지니는 문제점을 살펴볼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왜 근대적 개인주의가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딜레마 속에 빠지게 되는가를 보다 분명하게 인식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근대 개인주의의 제도적 표현인 시장 지향적 사회의 내적인 논리를 통해 근대성의 위기의 구체적인 모습인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헤겔의 입장을 다룰 것이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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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388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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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철학자 마이모니데스의 종교언어와 부정의 길
Jewish Philosopher Maimonides’ Religious Language and Via Negati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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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경(연세대학교)" ]
이 글의 목표는 중세 대표적인 유대철학자 마이모니데스의 종교 언어에 대한 견해를 고찰하는 것이다. 유대교 전통에 따르면, 조물 주는 절대적으로 단순하며 피조물과 다르다고 한다. 그렇다면 인 간의 언어가 신에 대해 사용될 수 있는가? 기실, 성서에는 예언자 들이 “신은 권능이 있다”거나 “신은 지혜롭다”고 말하는 대목이 자 주 등장한다. 이런 언명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마이모니데 스의 답변은 본질적 속성이든 우유적 속성이든 상관없이 어떠한 긍정적 속성도 신의 단순성과 양립할 수 없기 때문에 신에게 술어 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논점을 좀 더 뚜렷하게 밝히 기 위해 ‘정의’, ‘정의의 일부’, ‘성질’ ‘관계’, ‘행위’라는 다섯 가지 술어들의 적용가능성을 타진한 다음 행위만이 정당한 술어라고 간 주한다. 물론 행위라는 속성은 신 자신이 아니라 신이 만들거나 창 조한 것의 ‘결과’들을 가리킬 경우에만 용인될 수 있다. 작용의 술어들은 신이 자신의 본질과는 구별되는 속성들을 소유 한다는 점을 전제하지는 않는다. ‘지식’, ‘권능’, ‘의지’, ‘생명’과 같은 술어들을 신과 우리에게 함께 사용할 때 완전히 다의적이라는 것이 마이모니데스의 설명이다. 신과 피조물들에게 서술된 모든 용어가 전적으로 다의적이라면, 신에 대해 적절하게 말할 수 있는 방식은 부정의 길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 그가 염두에 두는 부정의 길은 통상적인 이중부정이 아니라 부정의 극단적인 형태다. “신에게 권능 이 있다”는 “신에게 권능이 결여되지 않거나 혹은 우리와 필적할만 한 방식으로 권능을 소유하지는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마이모니데스가 긍정의 길보다 부정의 길을 선호하는 까닭은 전자 가 신의 참된 완전성을 훼손시키고, 우상숭배에 이를 수 있으며, 나 아가 무신론과 별반 차이가 없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기초한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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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388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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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파이드로스 연설에서 이기성의 정치
Politics of selfishness of Phaedrus’ speech in Plato’s Sympos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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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흥만(연세대학교)" ]
파이드로스는 사랑받는 사람의 이익의 관점에서 에로스를 찬미 한다. 그는 모든 에로스를 수혜자의 관점에서 환영하고, 사랑받는 사람으로서 그는 에로스에 최고의 자리를 부여한다. 파이드로스의 에로스의 최고성(最古性) 논의는 생성과 생식의 구분에 실패하여 논파되고 결과적으로 에로스 찬미가 아니라 에로스의 원리인 생성 을 찬미하는 논리적 비정합성을 드러낸다. 파이드로스의 우주론적 관심의 동기는 신들의 권위를 폄하하고 인간들 스스로를 그들의 행동의 척도로 만들려는 욕망에서 비롯되는데, 결과적으로 그는 자신의 연설에서 어떤 신도 언급하지 않고, 전적으로 영웅들이나 인간의 행위에 대해 말할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들 간의 친밀한 관 계가 전제되지 않는 헬라스 사회의 수치문화는 자기규정의 고유한 힘을 사회의 관습적 탁월성에 양도함으로써 가면으로 전락하게 되 고, 이 과정에서 에로스는 순응의 힘으로 밝혀진다. 소년애적 관습 의 결과인 도시나 군대에 대한 논의에서도 그가 말하는 용기는 부 끄러움에 대한 두려움일 뿐이고, 탁월성을 촉발시키는 에로스까지 자신의 이기성을 정당화하기 위해 폄하한다. 그러나 사랑받는 사 람의 이득이 사랑하는 사람의 이기성에 놓여 있는 한, 순수한 이기 성은 정치 원리로 불가능하다. 에로스는 자기희생의 가능성을 포 함하기 때문에 영웅주의와 자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바로 여기 에 에로스의 사적 감정이 공적 공훈으로 발전될 수 있는 단초가 들 어 있다. 파이드로스는 소년애에서 남성에 대한 여성의 사랑으로 자신의 관심을 이행한다. 파이드로스가 에로스를 이익의 기준에 종속시키고 있다는 것은 그의 세 가지 실례들에서도 분명하게 드 러난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영예롭게 하는 이들은 사실상 신들이 아니라 사랑받는 사람들이고, 에로스는 자기 충족적이지 않으며, 계산적인 수취인의 관점으로부터 사랑하지 않는 사랑받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보다 선호되고 있다. 이와 같이 이익에 대한 사랑을 옹호하는 파이드로스는 에로스와 도덕성의 갈등을 철저히 무시했 고, 사랑하는 사람을 구애하도록 고무시키고 사랑받는 사람의 추 구를 단념하게 하는 관습에 만족하고 있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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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339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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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송의 방법론-방법적 실재론과 역사적 방법론
Method of Etienne Gilson-His methodical realism and historical method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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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국(서강대학교)" ]
이 글은 질송의 저서 『토미스트 실재론과 인식 비판』 ,『 방법적 실재론 』, 『철학적 체험의 통일성』 을 중심으로 그의 방법론을 살펴 본 것이다. 전통적 철학하기의 방법이자 질송의 존재의 형이상학에 기본적 인 방법론은 먼저 “객관적 실재론의 방법”이라 부르는 것으로 사 물을 보는 그의 기초적 관점과 태도를 말한다. 그는 철학적 방법으 로서의 이 실재론적 방법론이 ‘유효한 철학’을 설립하기 위해 필수 적이라 여겼다. 그래서 ‘비판적 실재론’을 ‘사각의 원’처럼 모순된 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존재가 외부사물뿐 아니라 인식주체에 대 한 인간인식을 정초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어떠한 선험적인 비판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본다. 실재론적 방법론은 존재를 첫 대 상이자 최고의 원리로서 놓고 그 명증성 위에 설립하는 방법론이 며 그것은 우리 사고의 출발점이 항상 사유 자체가 아닌 인식주체 가 경험한 실재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비판적 실재론 자들의 인식주체에 대한 논의는 이미 확보된 것에 대해 다시 논란 을 제기하는 것이라 본 것이다. 이런 실재론적 방법론을 기초로 한 질송의 두 번째 방법론은 “역사적 방법론”이라 부르는 것으로 질송에게 ‘철학사가’로서 명성 을 가져다준 방법론이다. 그의 탐구 초기의 현학적 관심으로 특정 지어지는 ‘역사편찬적 방법론’에서 출발하여 역사적 사료 해석의 종합을 시도한 시기를 거쳐 본격적인 철학적 문제에 대한 사변적 논변으로 발전되는 ‘하나의 철학의 역사’를 찾아간 질송의 방법론 인 것이다. 이 세 단계의 발전을 통해 질송은 역사주의에 빠지지 않고 철학사의 현상적 차원을 넘어서는, 그러면서도 역사 안에서 전진하며 그 안에서 철학적 목표에 도달하는 ‘본질적이고 통일적 인 종합’을 지향한다. 거기에서 질송은 형이상학적 동물인 인간이 ‘존재의 형이상학’을 탐구하는 길을 발견한다. 결국 실재론적 방법론이나 역사적 방법론은 질송에게 모두 그의 철학적 탐구의 유용한 도구로서의 역할을 했다. 철학은 역사적 귀 납의 길을 통해 형이상학적 개념이자 초월적 본성을 분별하게 했 다. 개념들의 역사는 필연성과 일관성에 따라 전진해간다. 질송은 그의 방법론을 통해 유구한 철학사에서 꾸준히 침몰과 부상을 계 속해 온 ‘존재의 형이상학’을 드러내고자 하였고 그리스도교 사상 의 독창성이 그리스도교인인 철학자의 태도에서 찾아 질 뿐 아니 라 그리스도교에서 유래한 형이상학적 사유 내용에서도 온다는 것 을 밝혀내려 했던 것이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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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339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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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리스도교 철학’을 말하려 하는가? —‘그리스도교 철학(Christian Philosophy)'을 확보하려는 질송의 이유에 대한 물음—
Why 'Christian Philosophy'? - the case of Etienne Gil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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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재(백석대학교)" ]
‘그리스도교 철학’ 개념은 종종 자기 모순적 개념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리스도교와 철학이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개념을 연결시킨 용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중세철학사가이자 토마스주의자인 질송은 그리스도교 철학의 역사적 실존을 주장하면서 1930년대 이후 줄곧 자신의 입장을 보다 발전시키고 공고히 하는데 전념했다. 이러한 작업의 배경에는 신앙에 토대를 두고 있는 신학이 필연적으로 이성에 기초를 둔 철학을 배제할 수밖에 없는가의 질문이 자리 잡고 있다. 질송은 그리스도교 철학이 신학이나 철학과 구별되는 제3의 독자적인 학은 아니라고 인정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리스도교 철학의 정체성이 단순히 신학과 철학의 관계설정에 있다고 보지도 않는다. 그는 그리스도교 철학의 고유성을 그 방법과 태도에서, 그것도 대상과 관련된 방법이나 태도가 아니라 학문주체의 태도에서 찾을 수 있다고 이해한다. 이 태도를 질송은 한 마디로 믿는 진리를 아는 진리로 바꾸려는 노력으로 규정한다. 이러한 규정은 ‘믿음으로 아는’이라는 신앙 현장의 막연한 하나의 용어를 반성적인 철학적 정신에 의해 두 계기로 구별하는 것을 포함한다. 믿음으로 알지만 이성적으로는 모르는 상태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 구별은 ‘믿음으로 안다’라는 표현이 자칫 ‘믿음=앎’으로 이해될 경우의 불충분성을 지적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차이를 상쇄하려는 노력 즉 믿는 진리에서 아는 진리 혹은 이해된 진리로 이행시키려는 노력이 그리스도교 철학의 특징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질송의 그리스도교 철학은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이라는 중세의 저 유명한 모토를 자신의 방법적 특징으로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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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34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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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철학적-종교적 이해 -삶과 죽음의 역설적 얽힘을 향하여-
Philosophico-Religious Understanding of Death -Toward a Paradoxical Unity of Life and Death-
{ "journal_name": "한국가톨릭철학회", "publisher": null, "pub_year": null, "pub_month": null, "volume": null, "issue": null }
[ "정재현()" ]
본 연구는 죽음에 대한 철학적-종교적 성찰을 통해 보다 적절 한 삶의 뜻을 추구하려는 목적을 지닌다.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동 서고금을 통해 개진된 기존의 관점들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그 문제와 한계들을 극복하는 대안을 모색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러 한 과정에서 삶과 죽음의 관계에 대한 통속적 곡해의 사례들로 기 존의 철학적-종교적 관점들에 대한 비판도 포함됨은 물론이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먼저 생명의 필연적 사멸성에 주목한다. 물론 사멸성 즉 ‘죽기 마련임’은 생명을 거스르는 자기모순이라기보다는 생명 자체의 원리이다. 그런데 ‘원리’라는 것이 가리키기도 할 ‘구 조적 필연성’은 삶의 나날에서는 ‘현실적 불가피성’으로 새겨지는 것이 일상적인 경험이다. 결국 ‘죽기 마련임’은 ‘죽을 수밖에 없음’ 을 가리키게 된다. 말하자면 죽음이 생명의 원리라는 통찰은 달리 어찌해볼 수도 없는 힘과 무게를 지닌 ‘숙명’을 뜻한다. 그런가하면 이와는 정반대로, 죽음은 삶의 온갖 올무로부터 벗어나는 해방의 사건으로 읽혀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과연 죽음은 삶을 지배하는 숙명인가, 아니면 삶의 올가미로부터의 해방인가? 숙명으로서의 죽음이 삶을 옥죄이는 것이라면 해방으로서의 죽 음은 삶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것이어서 모두 삶에 대해서는 그 바깥 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즉, 삶을 옥죄이는 숙명이나 삶으로부터 벗 어나려는 해방 모두 죽음을 삶과의 정면대결적인 모순관계로 몰아 가는 관점들인 것이다. 그런데 죽음이 ‘옥죄이기’로서의 숙명이든 ‘벗어나기’로서의 해방이든 삶에 대해서 모순적인 대결관계에 놓이 게 되면 이것은 무엇보다도 삶에 대해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숙명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다면 죽음이 삶에 대해 인과율적 저주 일 수밖에 없으며, 해방을 ‘위하여’ 죽는 것이라면 삶에 대해 죽음 이 목적론적 기만으로 전락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더 이상 죽음이 그저 숙명이나 해방 사이에서 양자택일적인 모순관계로 읽혀져서는 안 될 것이다. 나아가 죽음 이 삶의 바깥으로 내몰림으로써 오히려 삶이 죽음으로부터 소외되 어 저주받고 기만당하는 비극이 지속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 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인간의 전인적 삶을 이루는 유한성과 초월성의 역설적 얽힘이라는 통찰에서 해법의 실마리를 찾고자 한 다. 아울러 인간의 몸도 이에 대한 예증으로서의 뜻을 지니는데 몸 은 그 전체를 이루고 있는 각 부분이 모두 죽음으로써 살아가기 때 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역설의 예증을 기독교 성서를 통해 전해지 는 예수의 삶과 죽음에서 확인함으로써 규범적 모형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이러한 통찰이 우리의 일상적 삶에서 실천될 수 있는 현 실적 가능성까지 도모하고자 한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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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34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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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라너(Karl Rahner) 신학에서의 철학의 역할
The Role of Philosophy in Theology of K. Rah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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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규성(서강대학교)" ]
신학과 철학은 서로 어떠한 연관을 갖는가? 이러한 질문은 철학 이나 신학을 전공하는 이들에게는 자주 떠오르는 주제 중의 하나 일 것이다. 본 논문은 20세기 최고의 신학자 중의 하나인 칼 라너 의 이해를 바탕으로 철학과 신학의 관계에 대하여 탐구하고자 한 다. 라너는 철학이 신학의 내적 계기라고 말한다. 철학은 신학으로 부터 독립한 독자적인 학문이지만, 존재의 무한 지평에 서 있는 인 간을 그 숙고의 대상으로 삼는 한 철학은 신학에로 연결된다. 이성 이 신앙을 위한 순종적 잠재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철학은 신학을 향하여 개방적이다. 철학은 신학에게 있어서 유일한 내적 인 계기라고 할 수는 없다. 그리고 철학의 모든 것이 신학을 위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신학이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말씀을 그 숙고 대상으로 삼는 한, 인간에 대한 해명이 없이는 말씀을 해명할 수 없기에 신학과 철학은 그 탐구 주제에 있어 공통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철학은 그러나 단지 인식론적인 차원에 머물 수 없으며 결 국 인식 가능성의 조건은 존재라는 알게 된다. 철학과 신학은 그 출발점이 다르기에 서로 구분되긴 하지만 하느님으로부터 출발하 여 인간을 구명하는 신학과 인간 이성으로부터 출발하여 존재에 이르는 철학은 인간을 주제로 삼는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신 학은 다른 말로 라너에게 신앙에 대한 반성적 숙고, 즉 신앙에 대 한 철학적 숙고일 것이다. 반면에 철학적 작업의 가능성은 라너에 의하면 신학에 있다고 본다. 그것은 인식의 가능성의 조건이 존재 에 있지만 그 존재가 명시적 숙고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 것처럼 철 학의 가능성의 조건은, 철학이 궁극적으로 존재 자체에로 정향되 어 있다면, 그것은 라너의 입장에서는 신학이라고 볼 수 있다. 철 학이 신학에 질료적 요건을 제공한다면 신학은 철학에 형상적 요 소를 제공한다. 라너는 철학적 사유방식을 철저히 자신의 신학에 관철시킨 것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그는 신학을 철학에로 환원시 키지 않으면서 동시에 철학과 결코 분리되지 않는 채 수행한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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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339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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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시오도스의 『신통기』 에서 아프로디테의 탄생신화와 플라톤의 아름다움의 이데아
Der Geburtsmythos der Aphrodite in Hesiods Theogonie und Platons Idee des Schön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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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태범(연세대학교)" ]
본 논문에서 필자는 고대 그리스에서 아름다움의 본질이 최초에 어떻게 인식되었으며 어떻게 본질 규정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살펴 보고자 한다. 헤시오도스의 『신통기』 에서 아프로디테의 탄생신화 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최초에 어떻게 아름다움의 본질을 인식하였 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그리고 플라톤의 아름다움의 이데아는 소크라테스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서 아름다움의 본질규정에 대한 상관자이다. 필자는 이 둘 사이의 연 관관계를 규명함으로써 플라톤에서 아름다움의 이데아가 무엇이며 아름다움의 본질규정이 아름다움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탄생에서 플라톤의 아름다움의 이데아에로 어떻게 이행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자 한다. 그로부터 필자는 먼저 아프로디테의 탄생신화에서 ‘거품에서 태 어난 여신’이란 뜻을 지닌 아프로디테가 “흰 거품 안에서 자라났 다”는 구절로부터 거기서 아름다움은 빛 속에 빛나는 흰 거품, 즉 첨예한 감각의 대상에서 탄생했다는 것을 밝힌다. 그런 연후에 아 프로디테의 신성은 신을 만들어내는 생산력을 상징하는 우라노스 의 남근에서 비롯되었으며, 풀과 같이 생명력을 지니는 감각적 대 상을 자라게 하는 능력이 있으며, 에로스와 히메로스와 더불어 인 간들과 불사신들 사이에 어떻게 처녀의 모습으로 구현되는지 설명 한다. 그리고 일식의 비유에 의거해 전개된 플라톤의 이데아론에서 필 자는 심포지온 에서 규정된 아름다움의 이데아가 왜 태양이 아니 라 하필이면 바다에 비유되었는지의 문제를 제기하고, 그것을 바 다의 흰 거품에서 태어났다는 헤시오도스의 『신통기』 에서의 아프 로디테의 탄생신화와 연결시킨다. 그리고 흰 거품은 오직 빛에 의 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통해 그것을 태양의 비유에 연결시킨다. 그로부터 필자는 바다의 흰 거품에서 태어났다고 하는 아프로디테 의 탄생신화와 플라톤의 아름다움의 이데아를 유비적인 관계 속에 설정하고, 플라톤의 아름다움의 이데아를 좋음의 이데아가 개진된 태양의 비유와의 연관 속에서 해명하고자 한다. 전략은 먼저 『파이 돈』 편 일식의 비유에서 이데아가 무엇인지를 규정한 다음에 그 비 유에서 무엇이 태양에 비유되었는지를 밝힘으로써 『국가』 편 태양 의 비유를 통해 좋음의 이데아를 설명하고, 올바름의 이데아와 좋 음의 이데아 사이에서 아름다움의 이데아를 규정하는 것이다. 이 와 같은 해명방식에 따르면, 아름다움의 이데아는 “있는” 것의 빛 에 의해 빛나는 존재의 빛이라고 규정된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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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339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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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자 논쟁에 있어 아벨라르두스의 의미론적 전회
Abelard’s Semantic Turn in the Problem of Univers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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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성우(연세대학교)" ]
포르피리우스가 보편자에 대해 세 가지 질문을 제기하여 촉발시 킨 중세의 보편자 논쟁은 철학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논쟁 중 하나 로 손꼽힌다. 이러한 보편자에 대한 연구를 함에 있어서 철학자들 은 다양한 접근 방식을 보여왔다. 그런데 보편자를 일종의 사물 (thing)로 보고 형이상학적으로 접근하는 실재론자들은 여럿에 대 해 술어가 된다는 것이나 보편자가 귀속되는 개별자들에 동시에 공통적이라는 것 등에 대해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시하는 데 실패 하였다. 이에 대해 보에티우스는 형이상학적 질문에 대해 보편자 가 존재하는 방식과 이해되는 방식을 구분하는 인식론적 접근을 시도하여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반면 아벨라르두스는 보편자 문제에 대해 언어적 현상에 대한 분석을 통한 의미론적 접 근으로 보편자 논쟁에 새로운 측면을 도입한다. 전통적인 아리스토텔레스 주의적 언어관을 거부하고 동사구를 기 본으로 하는 아벨라르두스의 의미론은 보편자를 사물(thing)이 아닌 말(word)로 간주하며, 그는 개별자들에 대한 보편 술어의 귀속을 정 당화해주는 공통 원인은 개별자 안에 있는 어떤 존재자가 아니라 상 태(status)라고 하는 획기적인 주장을 펼친다. 그가 보편자 논쟁에 가져온 이러한 의미론적 전회는 장미들이 모두 사라진 뒤에도 ‘장미’ 라는 말이 의미를 갖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설명해주는 등 기존의 실재론자들이나 보에티우스의 설명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벨라르두스의 보편자 이론은 한계 를 가지고 있다. 그의 이론은 상태가 어떻게 원인이 될 수 있는가 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제시하지 않으며, 또한 존재하는 것은 개별 적인 것밖에 없다는 그의 형이상학과 보편 술어 귀속의 형이상학 적 근거를 필요로 하는 그의 언어철학 사이에 다리를 놓는 데 성공 하지 못한다. 이러한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아벨라르두스가 중세의 보편자 논 쟁에 가져온 의미론적 전회는 큰 의의를 가지며, 이 글에서는 이 점을 집중적으로 다룰 것이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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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34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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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 『정신현상학』 의 ‘이중구조’와 ‘방법’의 문제
Die Problematik von Doppelstruktur und Methode bei der PhdG Heg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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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철(연세대학교)" ]
헤겔의 『정신현상학』 은 의식의 다양한 경험, 즉 인식론적, 실천 적, 역사적, 예술적, 종교적 경험 등을 포괄함으로써 그의 다른 어 떤 책들보다도 풍부한 논의의 지평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다양 한 경험은 일반적 의미의 이론과 실천, 인식론과 존재론 혹은 사회 철학의 수준을 아우르면서 진행되기 때문에 가히 의식의 성장에 관한 ‘오딧세이적 편력’을 방불케하는 ‘의식의 경험의 학’이다. 그 런데 하나의 동일한 책이 이처럼 ‘정신의 현상학’이면서 ‘의식의 경 험의 학’이 되고, 또 ‘정신’의 관점과 ‘의식’의 관점에서 혼재된 이 중 구조를 취한 것에는 아무런 모순이 없는가? 우리는 이 책의 이중 구조가 헤겔이 예나시대부터 관심 가졌던 유한자와 무한자, 의식과 정신, 주관과 객관 등의 절대적 대립을 매개하려는 방법론적 관심과 연관되어 있다고 본다. 이러한 이중 구조는 『정신현상학』 의 ‘서론’에서는 의식의 경험을 통해 개별적 의식이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의식에로 상승하는 관점에서 기술되 고 ‘서설’에서는 절대자 혹은 실체가 반성적 의식, 주체로 하강하는 관점에서 기술된다. 그리하여 의식에서 정신으로 상승하는 전자의 과정은 현상학적 경험이라는 인식론의 차원에서 전개되고, 실체가 주체로 파악되는 후자의 과정은 실체의 자기 부등성 혹은 부정성 을 지양, 극복하는 주체의 운동이라는 존재론의 차원에서 전개된 다고 할 수 있다. 이때 의식이 정신에 이르는 길은 정신이 의식이 라는 터전 위에서 자기 자신을 회복하는 길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정신현상학』 의 이중 구조와 현상학적 방법은 의식과 절 대자, 주체와 실체의 자립성을 절대적으로 인정한 상태에서 양자 를 매개하는 방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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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34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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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트 슈타인의 인격론-중세 실재론적 형이상학과 현대 현상학과의 연관성을 중심으로-
Edith Stein’s Personstheorie -In Beziehung der mittelalt-realistischen Metaphysik und der modernen Phänomenolo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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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영(대구가톨릭대학교)" ]
이글은 현대 철학자 에디트 슈타인(Edith Stein, 1891-1942)의 철 학적 인간학,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인격개념에 나타난 중세 토 마스 아퀴나스의 인격개념과의 연관성을 추적함을 과제로 삼고 있 다. 슈타인은 후설의 『논리연구』 에서 전개되고 있는 실재론적 현 상학의 관점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의 물음으로, 즉 인간의 본 질에 대한 물음으로 철학을 전개시켰다는 점에서 현대의 철학적 인간학자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슈타인의 인간탐구는 인간의 본질 규명에서 출발하지만, 존재문제를 끌어냄으로서 인간의 인격을 본 질과 존재의 문제로 이끌고 간다는 점에서 중세철학, 특히 토마스 아퀴나스의 인격개념과 상당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본 글은 슈타인의 철학적 인간학에 드러난 토마스 아 퀴나스의 영향을 추적함으로써 그녀의 인격개념이 과연 어느 정도 까지 토마스 아퀴나스의 영향권에 머물러 있으며, 어떤 측면에서 탈피하여 홀로 서기를 하고 있는가를 밝혀내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 작업을 통하여 현대철학자 슈타인의 철학에 내재한, 중세의 특 히 토마스 아퀴나스와의 연관성을 조명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 으리라 생각하며, 또한 현대 철학적 인간학과 중세 철학적 인간학 의 가교를 슈타인의 인격론에서 밝히고자 한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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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34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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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테스크의 시각성과 존재론적 함의
Visuality of Grotesque and its Ontological Implic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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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련(연세대학교)" ]
이 글은 그로테스크의 시각성에 초점을 두고 그로테스크 미술의 시각적 모티프와 묘사성으로부터 존재론적 함의를 이끌어내는 것 을 목표로 삼는다. 일반적으로 이질적이고 모순적인 것들의 공존, 괴물성, 기형성, 상스러움을 보여주는 시각적 면모들을 그로테스크 적인 것으로 동일시하지만, 그로테스크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는 단지 시각적 효과에 머무르지 않는다. 왜곡된 이미지들의 낯설음 과 끔찍스러움, 그와 동시에 유도되는 불편한 웃음의 반응은 소외 경험을 통해 상투적인 개인의 정체감과 사회 질서의 근거 없음을 노정하고 전복시키는 힘에 있다. 그러나 질서 교란적인 모든 것이 자동적으로 그로테스크적이 되 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이 글에서 미적 범주로서 그로테스크의 현 상적 특징을 분석하고, 그와 아울러 그로테스크의 비가시적 이면 (裏面)이 암시하는 존재론적 지평을 탐험하고자 한다. 그럼으로써 그로테스크의 표면과 이면이 공존 내지 중첩되는 아이러니적 구조 를 통해 상상과 잠재성을 축으로 구성되는 ‘묘사적 실재론’을 제시 할 것이다. 특히 필자는 모순과 갈등의 요소들이 명료하게 동일시 되거나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로테스크를 경험하는 주체의 양 가적 감정의 인식론적‧존재론적 함의에 초점을 둔다. 그러므로 형 식성을 포기하고 관념으로 전환함으로써 초월적 계기를 찾는 미적 범주로서의 숭고의 경우와는 달리, 현실 세계 안에 내포되어 있는 모순과 갈등의 잠재적 현실을 수용하면서 변화를 모색하는 그로테 스크의 내재적 초월성을 부각시키고자 한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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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34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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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성과 현재성은 하느님 안에서 양립가능한가?
Are eternity and temporality compatible in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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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우진(덕성여자대학교)" ]
본 논문은 20세기 초 맥타가트(McTaggart, J. E. M.)이후 분석 형이상학의 시간에 대한 이해를 적용함에 의해 하느님의 시간을 고찰한다. 시제가 실재한다고 여기는 A-이론에 의하면 하느님은 시간성을 가진 존재로서 무한한 과거에서부터 현재와 무한한 미래 까지 시간 속에 존재한다. A-이론은 시간 속에 존재하는 피조물에 대한 하느님의 현재적인 보존과 작용을 잘 설명한다. 반면에 시제 가 존재하지 않으며 사건들의 관계들만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B-이 론은 피조물들의 모든 사건을 선취하고 있는 완전한 존재로 하느 님을 묘사하는데 적당하다. 그런데 하느님의 두 면모를 잘 설명하 는 두 시간 이론으로부터 하느님이 비시간적인 존재이면서도 동시 에 시간적 존재인 것 같다는 모순이 발생한다. 이 모순을 해소하는 한 방법은 완전성에서 비롯하는 신에 대한 B-이론적인 견해를 우 선 받아들이면서 A-이론적인 그의 현존과 시간적 작용을 최대한 정합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본 논문은 시간적인 우리의 사건들 이 하느님 안에 이미 선취되어 있는 비시간적인 사건들에 오직 실 제 세계에서만 의존하고 있다는 약수반 개념을 제안하여 하느님의 시간성에 대한 딜레마를 해결한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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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339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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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물음으로서의 존재 - 철학적 인간학적, 형이상학적 탐구 -
Man as Question: An Inquiry of Philosophical Anthropology and Metaphys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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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준(서강대학교)" ]
인간은 물음을 던지는 존재이다. 물음은 인간 정신의 가장 기본적인 수행 방식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물음의 실제적인 행위 실행은 우리에게 감추어져 있는 존재의 심연과 밝힘 사이 그리고 그들 사이의 긴장 안에 놓여 있다. 이러한 통찰을 일찍이 가져온 현대 철학자가 하이데거이다. 하이데거는 물음은 사유의 경건함이라 말하고, 인간의 궁극적이며 본래적인 행위라 할 수 있는 물음을 존재 물음으로 귀착시킨바 있다. 이러한 사유는 칼 라너와 에머리히 코레트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특히 코레트는 한발 더 나아가 물음 자체를 그의 형이상학의 정초를 다지는 방법론으로 삼기까지 한다. 본고는 물음 자체를 그의 철학의 주요 방법론으로 삼는 코레트의 ‘물음’ 사유를 탐구한다. 코레트의 사유에 있어서 물음 자체는 그의 초월론적, 형이상학적 철학의 주요 방법이요 첫출발점이다. 이러한 탐구를 위하여 본고는 1) 물음 자체의 의미와 본질, 2) 인간 정신의 기본 수행으로서의 물음과 판단의 문제, 3) 출발점으로서의 물음과 물음의 초월론적 조건 등을 차례로 탐구하고 검토한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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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290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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儒學의 人文精神과 Leadership
A Study on the Human Mind of Confucianism and Its Leader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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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흥철(한국국제대학교)" ]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인류는 물질만능의 풍조, 환경오염과 대량살상무기의 개발, 강대국의 약육강식의 논리에 의한 국가 간의 분쟁(紛爭), 그리고 계층 간의 갈등(葛藤)과 대립이 날로 심화되고 있다. 문 밖을 나서자마자 수많은 무질서와 만나고, 사회 곳곳에는 부조리와 불합리가 산재(散在)해 있다. 특히 사회적 공인으로 반드시 모범을 보여야 할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 경우가 너무 많다. 한마디로 흔히 사회지도층이라는 사람들 가운데 능력이나 도덕적으로 함량미달의 사람들이 많다. 모든 사람에게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지고 결과에 따라 합리적인 대가(代價)가 보장되지 않는다. 21세기 세계화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고, 분배를 공정하게 하며, 공평한 기회를 보장하며, 타인을 존중하며, 윤리적 선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리더십(Leadership)이다. 이러한 리더십은 충분히 인문정신(人文精神), 충분한 자신의 계발과 실천력, 타자와의 조화(調和)를 지향하고, 넓은 포용력을 갖추어야 한다. 유학(儒學)에서 성인(聖人) 혹은 군자(君子)가 지향하는 정신이 바로 이러한 리더십이다. 유학의 인(仁)은 현대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문정신(人文精神)이며, 중용(中庸)은 정확한 판단을 위한 가치기준이며, 예(禮)를 통하여 자신의 사욕(私欲)을 극복하는 것은 자기계발의 리더십이며, 타인의 인격과 능력을 존중하는 것은 공존(共存)과 공동번영을 위한 리더십이다. 그리고 자기중심주의와 국가주의를 넘어서는 대동사회(大同社會)의 세계화 시대의 리더십이다. 유학이 가진 이러한 리더십을 재창조하여 현대화·대중화되어 소통(疏通)이 되면, 중국·일본·베트남과 함께 ‘범아시아 전근대 학문의 재해석과 현대화’라는 공통연구의 설정과 연구수행도 가능할 것이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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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290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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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츠(J. B. Lotz)의 ‘형이상학적 존재론’-‘존재론적 형이상학’*
The Metaphysical Ontology or Ontological Metaphysics of J. B. Lo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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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석수(경북대학교)" ]
이 글은 칸트의 선험주의와 토마스의 사상을 새롭게 종합하고자 하는 초월적 토미즘 계열에 속하는 로츠의 ‘형이상학적 존재론’ 내지는 ‘존재론적 형이상학’의 기본 주장을 분석하고, 여기에 대한 비판적 입장들을 조명해보는 데 있다. 그는 마레샬의 ‘지성의 역동성’을 계승한 ‘초월적 역동성’에 입각하여, 기존의 존재론주의나 개념론 모두를 비판하고, 이들을 새롭게 종합하고자 한다. 그래서 그는 존재에 대한 선취와 추상 작용, 그리고 명상을 통해 기존의 칸트, 헤겔, 하이데거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발전시켜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과 재결합을 시도한다. 이를 통해 그는 ‘유한적 존재론’이나 ‘범신론’을 벗어나 ‘형이상학적 존재론’이나 ‘존재론적 형이상학’을 구축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의 작업의 성공 여부는 그가 주장하는 선취가 지성의 역동성을 확보하면서도 동시에 존재의 초월성을 마련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선취가 너무 적극적이게 되면 존재를 개념화하게 되어 초월성을 상실하게 될 것이고, 너무 소극적이게 되면 존재를 개념화하는 일에 참여할 수 없어 불가지론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위험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의 선취와 명상의 성공적인 결합이 관건이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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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290178
oai_dc
종교적 경험의 본질과 합리성: 화이트헤드의 경우
Religious Experience and Rationality in Whitehead’s Philos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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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창옥(연세대학교)" ]
화이트헤드가 생각하는 종교적 경험은 고독의 경험 속에서 자신의 개체성을 자각한 인간이 사물의 본성에 있는 궁극적인 어떤 것, 영속하는 어떤 것과 관계 맺는 방식이다. 그래서 화이트헤드는 “종교는 개인이 그의 고독을 가지고 행하는 것”(RM 17, 47)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단순한 고독 그 자체는 전종교적(pre-religious)인 것이다. 종교에는 고독 가운데 잠재되어 있으나 우리 자신의 개체성에 대한 자기 의식적 평가에서 발전하게 되는 궁극적인 것을 지향하는 합목적적 의식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삶 자체의 가치를 묻는 물음에서 시작되는 이 자기 의식적 평가는 개인들 간의 상호 조정된 가치를 포함하는 객관적 가치세계로 확대되어 공유 가능한 보편적 원리를 산출해내고 이어서 이 자기의식은 스스로 이 보편 원리에 굴복한다. 화이트헤드가 생각하는 종교적 경험의 본질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진정한 의미의 종교는 이런 고독의 경험 내용을 정합적 체계로 합리화하면서 탄생한다. 화이트헤드는 합리화가 없을 때 종교는 퇴락하여 단순한 사회성으로 되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한다. 합리적 종교는 우리의 직관에 주어지는 특수한 가치경험에서 출발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이들을 합리적 범주로 정식화함으로써, 가치의 근원이 되는 것들을 명료하게 표현하고 또 규정한다. 이런 의미에서 화이트헤드가 생각하는 종교는 개체로서의 인간 내면의 근본정서와 인간이성 간의 화해의 산물이다. 그리고 이 화해를 이끄는 것은 형이상학이다. 형이상학은 합리적 종교가 그 기본 개념들을 결정하고 그 특유의 통찰들을 일반적 진리로 표현해내는 데 필요한 보편적 범주들을 제공하고. 종교는 인간 존재가 단순한 사실들의 계기(succession) 이상이라는 통찰, 우리에게 삶의 단순한 사실들을 넘어서서 삶의 질이 있다는 통찰을 형이상학에 제공함으로써 형이상학을 풍부하게 한다. 이 양자는 정신사의 현장에서 끊임없이 상호 작용하는 역동적 관계 속에 있다. 이것은 화이트헤드가 종교를 ‘형성과정상에 있는’(in the making) 것으로 생각하는 이유이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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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290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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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베리의 우주론
Thomas Berry’s Cosm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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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돈(가톨릭대학교)" ]
현재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생태파괴이다. 이러한 생태파괴의 직접적 이유는 과학과 기계기술의 오용이지만, 토마스 베리에 의하면 더 근본적인 이유는 현대인들이 인간과 자연과의 정당한 관계를 설명해 주고 인도해 줄 수 있는 절절한 우주론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데에 있다. 우주론은 인간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설명해 주는 맥락이다. 적절한 우주론이 없이는 인간은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에 있어서 적절한 역할을 발견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베리는 현대인들에게 적절한 우주론을 제시하고자 시도한다. 베리는 현대 지구상 일어나고 있는 생물종의 멸종과 현대 과학의 통찰에서 얻은 진화론적인 우주론이 현대인이 새로운 우주론을 필요로 하는 두 가지 이유라고 주장한다. 베리의 우주론을 역사적 역동성, 진화론적 과학의 새로운 발견, 그리고 전통종교들의 영적인 통찰로 구성되어 있는 종합적 비젼이다. 이것들이 베리의 우주론이 깊게 엮여 있다. 과학의 새로운 발견들과 종교적 통찰들이 베리 우주론의 두 개의 날개를 제공한다면, 역사적 역동성은 베리 우주론의 등뼈를 이루고 있고, 그리고 그것은 이야기 형식으로 서술된다. 우주론의 외적인 형태는 서양 과학과 역사적 개념에서 비롯되었지만, 그 깊이에 있어서는 토착종교의 지혜와 아시아 종교들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인간의 지구 파괴로 인하여 신생대가 끝난 다음에, 베리가 그의 우주론에 기초해서 제안하는 새로운 인류 문명의 모습은 생태대이다. 생태대는 기술대에 대한 대안적 비젼으로 인간 기술이 아니라 지구 기술에 의해서 주도되는 문명형태이며, 인간이 자연을 착취하는 문명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면서 공진화하는 문명형태이다. 생태대를 실현하는 것은 인간 의식과 지구적 차원의 계획에 근본적인 변화를 요청한다. 생태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네 개의 주도적인 체제인 정치 체제, 경제 체제, 대학, 그리고 종교의 기본 원리가 인간 중심주의에서 생명 중심주의에로 변해야 한다. 생태대를 실현하는 것은 인류가 겪은 일 중에서 가장 어려운 과제이며, 베리에 의하면, 이것이 우리 시대에 주어진 위대한 과업이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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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290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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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의 속성원리에 대한 13세기의 수용적 논의: 강의 헨리쿠스와 둔스 스코투스의 사례
Anselms Prinzip des Attributs Gottes und seine Interpreten im 13. Jh.: Heinrich von Gent und Duns Scot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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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보정미(독일 안셀무스재단 연구소)" ]
본 연구논문은 11세기 켄터베리 안셀무스(1033-1109)에 의해 서양사상 처음으로 ‘그러한 것이 그러하지 않은 것 보다 전적으로 더 좋은 것’(ipsum melius omnino quam non ipsum)이라는 특이한 어법으로 정식화된 신의 ‘속성원리’에 대한 13세기적 수용사를 추적한다. 첫 수용단계인 강의 헨리쿠스(Henricus Gandavensis 약 1217-1293)에 있어 안셀무스의 ‘속성원리’는 ‘그러한 것이 실존하는 것 무엇이든지 그 안에 보편적으로 그러하지 않은 것보다 더 좋은 것’(ipsum omnino universaliter in quodlibet existendi melius sit quam non ipsum)이라는 원래 원리에 없는 부분이 첨가된 표현으로 수용되고 ‘속성규칙’으로 해석된다. 헨리쿠스적 ‘속성규칙’은 둔스 스코투스(Iohannes Duns Scotus 1263-1308)의 재수용 단계에서 ‘순수완전성의 기술(記述)’이라고 일칭되고 심지어 ‘그것과 합의될 수 없는 무엇이든지(그것) 보다 전적으로 그리고 절대적으로 더 좋은 것’(quae est simpliciter et absolute melius quocumque incompossibili)이라는 표현으로 극단적으로 변형된다. 이러한 수용사에 대한 본 연구의 주된 과제는 두 사상가의 핵심적 논의와 비판의 충실한 재구성에 있다. 이를 통해 안셀무스의 속성원리의 수용과 관련된 신의 속성론에 대한 13세기의 서로 다른 두 사유방식을 다음과 같이 부각시키고자 한다. 헨리쿠스는 존재하는 것들로부터 획득할 수 있는 신의 속성이라는 안셀무스적 문제 출발점을 일관성있게 반영하여 ‘그러한 것이……더 좋은 것’(ipsum)이라는 속성을 사물에게 부여된 ‘어떤 존엄한 것’(aliuqid nobile)으로 해석한다. 이러한 선한 속성의 절대성, 즉 순수완전성을 그는 사물의 실체적 본성과 모순되지 않는 파생속성(denominatio)으로 해석함으로써 주체와 관련된 순수완전성의 보편성을 확보하고자 한다. 그러한 우유성으로서의 존엄한 속성들을 실체에로 접근하는 성향(dispositio)이라는 해석으로 헨리쿠스는 실체와 우유성의 대립을 조정하려 한다. 창조된 것들로부터라는 헨리쿠스의 출발점과 달리 스코투스는 신의 속성으로서의 순수완전성이 최고본성에 최고로 필연적으로 내재한다는 명제에서 출발한다. 명제증명을 위한 전제로 헨리쿠스로부터 수용되는 ‘속성규칙’과 순수완전성의 개념에 대한 일반적 이해는 스코투스의 비판의 대상이 된다. 그의 비판적 논의는 헨리쿠스에 있어서 ‘속성규칙’으로 이해된 ‘순수완전성의 기술’이 신의 속성과 순수완전성의 필연적 일치에 대한 구속성, 신의 속성, 즉 순수완전성의 비범주성, 그리고 순수완전성들 사이의 합의성이라는 순수완전성의 여러 조건들을 자체내 보장하지 못 한다는데 촛점을 둔다. 이러한 기능적 결핍에 대한 수정장치로 스코투스는 원래적 정식과 판이하게 다른 순수완전성은 ‘그것과 합의될 수 없는 무엇이든지(그것) 보다 전적으로 그리고 절대적으로 더 좋은 것’이라는 표현으로 ‘순수완전성의 기술’을 극단적으로 변형한다. 이렇게 볼 때 ‘속성규칙’ (헨리쿠스)과 ‘순수완전성의 기술’(스코투스)로 이해되는 13세기의 수용사는 원래적 ‘속성원리’(안셀무스)와 궁극적으로 멀어지는 ‘불행한 변형사’라고 진단할 수 있겠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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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290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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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희랍 철학에 나타난 현대적 Well-Being의 사상적 기저(基底)에 관한 고찰
Betrachtungen zum gedanklichen Fundament des modernen Well-Being in der klassischen griechischen Philosoph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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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성철(경기대학교)" ]
본 연구는 자족 개념을 통해 고대 희랍 철학에서 현대적 웰빙의 사상적 기저를 찾고, 이로써 현대적 웰빙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시각을 얻는데 그 목적을 둔다. 필자는 현대적 웰빙이 고대 희랍의 ‘자족’ 개념에 근거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희랍인의 행복주의가 내적 자유 또는 자립성과 주권의식의 획득에 그 방향이 설정되어 있으며, 이러한 용어는 희랍어로 ‘자족’이라고 불리기 때문이다. 현대적 웰빙 이해와 관련해 희랍의 사상가들, 특히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에피쿠로스가 자족 개념을 토대로 삼아 행복의 사상적 근저를 확인하기 위해 진력을 다했다는 점은 결정적인 사실이다. 이 사상가들은 자족에 도달하기 위한 다음 네 가지 방식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희랍인들은 이상적 삶으로서의 자족적 삶을 (1) 폴리스의 영역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공동체, 즉 노모스의 인정을 통해서, (2) 다방면의 활동을 통해서, (3) 관조적-정신적 자기실현(관조적 삶), 즉 이성적 사유를 통한 자연의 질서에 순응함으로써, 그리고 (4) 자기 자아에 대한 제한, 욕구 없음의 의미에 따른 개인적 자립을 통해서 혹은 좋음과의 내적 결합을 통해서 도달하고자 한다. 이러한 시각에서 현대적 웰빙을 고찰하는 주관적 측면과 객관적 측면의 사상적 진수는 희랍의 자족 개념에 그 본질을 두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희랍적 자족 개념의 시사하는 바가 많은 근본적 특징을 (a) 좋음 그 자체에 대한 포괄적 인식과 관조적 삶 가운데, (b) 중용적 태도를 근거로 하는 쾌락주의적 개인주의 가운데, 그리고 덧붙여 (c) 거의 모든 희랍 사상가들에게서 논의되는 우정을 통한 인간적 유대감 가운데 인식하게 된다. 결국 이러한 특징은 우리가 현대적 웰빙을 숙고할 때 실제로 어떤 점을 글로벌화한 21세기에 고려해야만 하고, 그리고 무엇을 추구해야만 하는가를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가르쳐 준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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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290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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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셀무스의 『모놀로기온』과 『프로슬로기온』에서 신 존재증명의 논증구조와 무로부터의 창조
Die logische Struktur des Gottesbeweises Anselms im Monologion und im Proslogion und die Schöpfung aus dem Nic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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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태범(연세대학교)" ]
본 논문에서 필자는 안셀무스의 『모놀로기온』과 『프로슬로기온』에서의 신 존재증명이 무로부터의 창조설에 근거하며, 그것을 해명하는 데 있다는 것을 밝힌다. 이것은 단지 『프로슬로기온』의 신 존재증명에서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또한 『모놀로기온』의 신 존재증명에서도 그러하다는 것을 밝힌다. 필자는 이것을 성서가 말하는 신, “나는 존재하는 자”를 “오직 이성만으로” 이해하고자 하였던 안셀무스의 합리적인 계시신학의 기획에 따라 그의 두 신 존재증명을 전체의 논리전개과정 속에서 해명함으로써 밝힌다. 다만 『모놀로기온』이 이 세계에서 발견되는 유한한 존재의 등급에 근거하여 성령, 성자, 성부의 세 가지 관점에서 신의 존재를 증명한다고 한다면, 『프로슬로기온』은 그것을 하나의 관점, 말하자면 무로부터의 창조라고 하는 관점에서 통일적으로 수행한다. 그로부터 비록 『모놀로기온』의 신 존재증명이 『프로슬로기온』의 신 존재증명과 같이 그렇게 명확한 자기 이해에 도달하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모놀로기온』 5-9장의 논의를 통해 안셀무스가 『모놀로기온』의 신 존재증명에서 궁극적으로 추구한 것은 바로 『프로슬로기온』의 신 존재증명과 같은 것이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프로슬로기온』의 존재론적 신 존재증명에 와서 비로소 명확한 자기 이해에 이르렀다는 것을 밝힌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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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290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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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끄 마리땡의 『통전적(統全的) 휴머니즘』에 나타난 토미즘의 현재성
The Actuality of Thomism in Jacques Maritain’s Integral Huma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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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은실(연세대학교)" ]
네오-토미스트로 널리 알려져 있는 프랑스 철학자 자끄 마리땡(Jacques Maritain1882-1973)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이 “불멸의 철학”(philosophia perennis), 즉, 언제나 살아있는 철학임을 보여주고자 노력하였다. 그의 방대한 저작 가운데 『통전적 휴머니즘』(Humanisme intégral)은 가장 많은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일으키고 있는 작품이다. 그는 다른 어떤 책에서보다 특별히 이 책에서 토마스의 사상이 현대에 시사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 주고자 했다. 마리땡은 이 책에서 1930년대 위기에 처한 서양의 다양한 체제, 즉, 자본주의, 공산주의, 나치즘, 파시즘에 대한 대안으로 새로운 그리스도교 체제(Chrétienté)를 제안했고 그것의 특징으로 “통전적 휴머니즘”을 제시했다. “그리스도교 체제”란 삶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개념을 특징으로 가지는 세속적인 공공의 체제(régime commun temporel)를 가리킨다. “새로운” 그리스도교 체제는 세속적인 질서를 단지 영적인 질서의 수단으로 보았던 중세의 그리스도교 체제와 구분되는 것으로 세속적인 질서의 자율성을 인정하는 체제이다. 마리땡은 이 체제의 특징을 “통전적 휴머니즘”이라고 규정짓는다. 그는 “통전적 휴머니즘”을 통해 인간 본성의 일부를 단절시키거나 왜곡하지 않고, 인간의 모든 차원, 즉, 물질적이고 영적인 차원을 통합적으로 고려하고 인간의 가치를 신과의 단절 속에서가 아니라 연결 속에서 복권하여 진정한 휴머니즘의 가치 가운데 빠진 것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이것을 인간의 자연적 가치를 망각한 중세 문명과 인간중심적인 휴머니즘으로 도리어 비인간화를 초래한 근대문명을 비판하고 문명의 새로운 시대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우리는 이 글에서 『통전적 휴머니즘』을 중심으로 마리땡이 현대 문제에 대해 반성하고 숙고하면서 토마스 철학을 어떻게 적용했는지, 또 이것을 통해 토마스 사상의 현재성을 보여주는데 얼마나 성공했는지 검토한다. 이것은 결국 토마스의 사상의 원리를 적용하면서 마리땡 자신이 발전시킨 토미즘의 현재성에 대한 평가로 연결된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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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290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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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크하르트와 후기 중세 철학
Meister Eckhart and later medieval philos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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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대칠(대구가톨릭대학교)" ]
에크하르트를 단순히 신비가 혹은 신비사상가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 사유를 전개한 철학자로 보려는 시도가 본 연구의 기본적 틀이다. 플라쉬의 해석과 마찬가지로 그의 사상을 신비철학이란 이름, 즉 철학이란 이름을 부과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그의 사상 가운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측면이 있어야만 한다. 바로 그러한 합리성 가운데 그의 신비사상이 성립될 때, 진정 그의 철학은 신비철학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는 이를 위하여 우선 그의 사상에 대한 질송과 플라쉬 그리고 리베라와 같은 현대 연구가의 다양한 해석을 살필 것이다. 그런 후에 그의 문헌 가운데 합리성의 논의를 참아 분석할 것이다. 이러한 분석을 통하여 그 역시 오캄과 같은 후기 중세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뛰어난 의미론적 논변을 구사하였고, 그러한 의미론적 논변 가운데 그의 존재론적 사유를 구사하였으며, 종국에 그의 존재론적 사유를 완성하였음을 보일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연구를 통하여 그의 철학이 탈이성적인 단순한 신비의 차원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매우 합리적인 철학의 영역 속에서 있었음을 보이고자 한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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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290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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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의 철학에 대한 벤하비브의 비판 -주체의 정치학에서 권한부여의 정치학으로 이행하기 위한 시론-
Kritik von Benhabib an der Philosophie des Subjek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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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대성(명지대학교)" ]
이 글은 벤하비브의 주저인 『비판, 규범, 유토피아』의 의미와 의의를 탐구하는 데 목적이 있다. 벤하비브는 프랑크푸르트 비판이론의 해방적 기획을 출발로 삼아 현대의 다양한 삶의 양식을 다원주의적 관점에서 해명하고자 한다. 이때 그는 무엇보다 근대를 해방의 과정으로 이끌었던 주체의 철학을 비판하는데, 왜냐하면 주체의 철학은 인간을 형이상학적 일자로부터 해방시키는데 일조하기는 하지만 새로운 형태의 권위자를 역사와 정치의 주인공으로 내세움으로써 여전히 권위주의적이고 독백적인 정치-사회형태를 지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예를 들어 마르크스가 해방의 전위로 내세우는 프롤레타리아트는 역사의 해방을 이끄는 집단적 단수로서 다양한 양태의 갈등을 오로지 경제적 계급관계로 환원한다. 이런 점에서 현대의 다양한 갈등 양상을 제대로 포착하고 있지 못하다. 이런 권위주의적 사회관계에서 벗어나 다양성을 살리는 길은 소위 담론이론적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되어야 한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그는 하버마스의 이론에 일정부분 빚지고 있다. 물론 그는 하버마스가 자아 형성의 계기로 작용하는 타자를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못하고 추상적 수준에서 자아와 타자의 관계를 분석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추적한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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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290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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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아퀴나스의 ‘천사의 말’에 관한 이론의 변화 -verbum 론의 변화에 주목해서-
The Development of Aquinas's Theory on Angelic Speech and verbum ment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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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섭(서강대학교)" ]
토마스 아퀴나스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천사들 간에게도 의사소통이 필요함을 인정하고 그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소통하는지 여러 텍스트들에서 고찰하였다. 토마스에 따르면 천사들의 말은 인간과 달리 어떤 감각 가능한 외적인 기호가 필요하지 않다. 그들에게는 소통을 가로막는 신체의 불투명성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천사들이 서로의 정신 안을 직접 들여다 볼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의 감추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사들은 외적인 기호의 필요 없이 자신들의 내적인 개념들을 현시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으면 그들의 생각을 다른 천사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 자신들이 내적으로 파악한 개념들을 타자에게로 현시하도록 질서지움, 이것이 바로 천사들의 말이다. 그런데 토마스는 이러한 생각을 전 저작들에 걸쳐 일관되게 개진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초기저작에서는 천사들의 경우에도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기호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이러한 생각의 변화의 바탕에는 ‘내적인 말’에 관한 그의 이론의 변화가 놓여 있다. 즉 초기 저작에서는 가지상과 내적인 말을 분명하게 구분하지 못한 반면에, 원숙기의 저작에서는 이 둘을 분명하게 구분하고 양자에게 각각 다른 본질적 규정을 부여하였다. 천사의 말에 관한 논의의 변화는 내적인 말에 관한 이론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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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171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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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주의 선험적 연역에 내재된 근본 문제점들
Die Rechtfertigung der transzendentalen Deduktion und ihre Grundproble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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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일(충북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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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171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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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약자로 향한 인간의 초월 - 모리스 블롱델의 제일철학적 사유가 가톨리시즘 안에서 갖는 의의와 한계 -
Transzendenz des Menschen auf das Unbedingte - Die Bedeutung und Grenze des erstphilosophischen Denkens Maurice Blondels im Rahman des Katholizism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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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욱(인천가톨릭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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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17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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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지론』에 나타난 아우구스티누스의 자유 개념
Augustine on Free Will in De libero arbit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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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시영(남서울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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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17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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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념에 대한 책임
Verantwortlichkeit f&uuml;r Leidenscha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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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율(대구가톨릭대학교)" ]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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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171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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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주의 유신론적 자연법 윤리에 대한 변호
Defense of Thomistic Theistic Natural Law Eth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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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남(숙명여자대학교)" ]
현대 토마스주의 자연법 이론의 세 가지 유형 중에서 유신론적 자연법주의에 대해 리스카가 비판한 점을 재비판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이를 위해 필자는 리스카의 논리에 있어 다음과 같은 점들을 지적함으로써 그의 논리가 타당하지 않음을 주장한다. 인식론적 문제를 형이상학적 문제와 혼동했기 때문에 근거 없이 영원법을 제2위의 형이상학적 문제라고 가치 절하한 점; 형이상학과 신학과의 구분에 대한 오해와 신의 모상의 중요성과 의무 이론이 신, 영원법과 직접 연관된다는 사실의 간과; 리스카가 제시한 자연법이 신학적 함정에서 벗어나는 세 방법의 실패; 본질 개념이 신으로부터 독립적이라고 하는 논리의 부당함; 영원법에 대한 지식과 존재의 혼동; 리스카가 제시한 아퀴나스 자연법 이론의 다섯 가지 필요조건의 불충분성. 따라서 리스카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 목적론적 형이상학만으로 아퀴나스 자연법 이론 전체를 재구성할 수 있다고 잘못 가정하였고 토마스 텍스트에 대한 충분한 주의 없이 부당하게 신과 영원법을 토마스주의 자연법 이론에서 배제시키려고 한 점을 밝혔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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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007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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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의 영웅들의 행위를 통해 본 자유와 책임
The Freedom and Responsibility in the Heroes' Behavior of Ho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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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중(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
인간이 자유를 가진다 함은 스스로의 결단을 가지는 것을 가리키며, 이런 의미에서 자유는 자기의 지배자가 자기 자신일 때 얻어진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Iliad)와 『오디세이』(Odyssey)에서 영웅들에게 결단하고 행동하도록 하는 신체의 기관은 thymos와 nous이다. 그런데 thymos와 nous는 스스로의 결단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지 못한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나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영웅들은 자신들의 행동의 원인으로서 자신 안에 있는 것을 들기보다는 자신 바깥에 있는 초월적 존재에로 그 원인을 돌린다. 그 개념이 aitia이다. 이런 경향은 초기 그리스인에게서는 행동에 뒤따르는 도덕적 책임의 개념, 이와 더불어 내적인 자아 또는 내적인 영혼의 개념이 결여되어 있는 데서 기인한다. 반대로 호메로스는 영웅들의 행동이 신들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었다. 호메로스의 영웅들은 오직 신의 명령을 받아 행동하고 갈등과 결단의 순간에는 신의 지시를 받아 선택을 했다. 따라서 호메로스의 인간에게는 자유도 없고 이에 수반해 책임도 없는 것으로 이해된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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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007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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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hilosophy of Life in the Oriental Philosophies and in the Theory of Thomas Aquinas - From the View Point of Immanence and Transcendence
The Philosophy of Life in the Oriental Philosophies and in the Theory of Thomas Aquinas - From the View Point of Immanence and Transcen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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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채(서강대학교)" ]
지금 인류 역사는 자연과학과 기술의 놀라운 발전과 그것에 상응한 인지(人智)의 발전으로 하나의 인류 형성을 급속하게 진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인류는 그 역사적, 지역적 배경과 사상, 종교, 이념, 이해관계 등으로 많은 갈등과 혼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이런 발전 과정에서 아시아는 인류의 가장 깊은 철학들과 종교들의 발상지이기 때문에 적어도 앞으로 몇 세기 동안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사실 하나의 아시아 없이 하나의 인류가 형성되지 못할 것이다. 이제 새롭게 전개되는 새 천년대에 중국은 하나를 지향하는 인류의 사상과 특히 그리스도교 문화와 만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스도교 사상은 지난 2천 년 동안 서방 세계 문화를 형성하는 데 있어 정신적 기초였다. 또 한편 그리스도교 사상, 특히 그리스도교 철학은 중국의 사상과 만남으로써 이른바 토착화의 과정을 통해 더 풍요로운 자양분을 취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교 사상과 중국의 문화는 상호 이해와 협조로써 하나의 아시아와 하나의 인류를 형성하는 데 기여해야 할 것이다.앞으로 하나인 인류를 건설함에 있어 그리스도교 철학과 중국 문화, 더 나아가 아시아의 모든 종교 문화는 인류의 가장 근본적 공통점에서 새로 출발함이 좋을 것이다. 다시 말해 어떤 민족이나 개인, 종교도 다 받아들이고 협력할 수 있는 근본 요인에서 대화하고 그런 것의 증진을 위해 상호 협력할 수 있는 공통점에서 인류의 공통 문화를 새롭게 형성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생명 사랑의 문화이겠다. 그러므로, 필자는 이 논문에서 도교의 생명관, 유교의 생명관, 불교의 생명관, 무속의 생명관과 토마스 아퀴나스의 생명관의 핵심적 요인을 탐구하며 사랑에 바탕을 둔 인류의 공통 문화 창출을 시도한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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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007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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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산업화 이전기(1945~1960)의 '기독교 철학' 형성
Searching for Christian Philosophy in Korea from 1945 to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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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재(백석대학교)" ]
이 글에서는 해방 이후부터 5 16 혁명에 이르는 시기에 현실 사회 및 지식 사회에서 활동한 개신교 인사들의 자료를 대상으로, 그 안에서 기독교적 특성을 분별해 낼 수 있는지 검토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에서의 '기독교 철학'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와 정의를 모색하였다. 자료들의 성격을 판별하는 준거로서 '기독교적 가치나 문제의식의 유무'와 '논증 방식이 철학적인지 여부'를 적용했다. 이 과정에서 기독교 철학의 가능성에 대한 모색은 결국 신앙과 이성, 신학과 철학의 조화와 공존 가능성에 대한 원칙적 긍정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독교 철학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 혹은 적극적 규정을 시도하기는 아직 무리가 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자료로부터 기독교 철학은 근본적으로 기독교적 의식 속에서 철학적 사유를 전개하는 방향으로만 이루어진다는 하나의 조건은 확보할 수 있다. 그 역방향, 즉 철학적 문제의식하에서 신앙이나 신학의 내용을 판단하려는 관심은 이성과 합리성의 궁극적 기원이 신에게 있다는 기독교의 질서 체계를 근본적으로 역전시키는 것으로서, 그 구성 요소에서의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결코 기독교 철학으로 간주될 수 없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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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171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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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스와 아가페의 종합에 의한 한국 사회의 도덕성종교성 정립에 관한 고찰
An Authentication of Morality & Religiosity of Korean Society under Basis of a Synthesis of Eros & Ag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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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병창(연세철학연구소)" ]
토마스 아퀴나스의 카리타스는 에로스와 아가페를 종합한다. 에로스는 자연적 사랑이고 아가페는 오로지 은총으로 주어진 초자연적 사랑이다. 아가페와 같이 은총으로 받은 카리타스는 불완전하게 선을 실천하는 자연적 사랑을 보완하고 완성한다. 인간은 이성과 의지를 사용하여 영원법에 참여하여 자연법을 이끌어 낸다. 인간은 자연법을 지켜서 올바르게 사랑하여 객관 선을 실천할 수 있다. 카리타스는 이런 객관 선을 근거 짓고 완성한다. 그리고 종교의 본래 의미를 여러 가지로 제시할 수 있지만 세계초월성과 인간의 지복이라는 조건이 필수적이다. 카리타스는 인간의 자연적 능력을 인정하고 보완하며 인간을 초자연적 지복으로 인도한다. 이렇게 카리타스는 종교를 근거 짓고 완성한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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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007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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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사상(儒家思想)에서의 자유(自由)와 책임(責任)
Freedom and Responsibility in Confucian Philis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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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성(한국전통문화학교)" ]
근래에 와서 서구사상, 민주주의의 상징처럼 인식되어 온 '자유'에 대한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이어서 자유와 함께 '책임' 문제까지도 아울러 논하자는 담론들이 줄을 잇고 있다.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책임이라는 문제가 부딪칠 때 어떻게 접점을 찾아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현대를 사는 우리 모두의 과제라 하겠다. 이 글은 '자유'와 '책임'이라는 서구적 관념을 유가사상에서 찾을 수 있느냐 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작성되었다. 서양에서처럼 오랜 세월에 걸쳐 체계 있고 분명하게 정리된 개념이 아닌 만큼, 연구에 어려움이 많다. 제한된 자료 속에서 유가사상에서의 '자유'와 '책임'의 의미, 성격을 각각 살펴본 뒤, 이어 서구적 의미의 '자유' '책임'과 연결시킬 만한 사상적 요소들을 찾고자 했다. 자유와 책임 사이의 연결 고리를 찾는 작업은 이후를 기대한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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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007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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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지와 결정론, 그리고 도덕적 책임
Free Will, Determinism, and Moral Responsibi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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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철(연세대학교)" ]
자유의지, 인간 행위, 무생물을 포함한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신에 의해서 창조되었건 원래 존재하건 간에,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만약 이 명제가 참이라면, 자유의지 개념이 온전할 수 있는가? 만약에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이 결정되어 있다면, 혹은 자연법칙에 의해서 설명될 수 있다면, 어떻게 우리는 통제 범위 밖에 있는 것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질 수 있는가? 나는 다음과 같은 점을 논문에서 주장하고자 한다. 1) 만약 자유의지가 무원인적인 것이거나 혹은 인과 사슬에 구속되지 않는 것이라면, 그러한 의미의 자유의지는 자연 세계 내에 있는 결정론과 양립 가능하지 않다. 2) 우리는 어떤 이전에 존재하는 사건이나 행동에 의해서 결정된 행동에 대해서조차도 책임을 져야 한다. 3) 비록 결정론이 자유의지와는 양립 가능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도덕책임과는 양립 가능할 뿐만 아니라 요구된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선택과 관계없이 이 세계에 태어난다. 그러나 이러한 영구불변의 사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우리가 도덕책임 개념을 유지하고자 하는 한, 우리는 결정론과 양립 불가능한 자유의지 개념을 포기해야 한다. 도덕책임은 인간 사회의 질서와 발전을 위하여 가치 있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결정론 개념은, 신이 세계를 임의적으로 창조하지 않았다면, 신 개념과 갈등을 일으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요구된다. 물론 우리가 모든 것이 원래 결정되지 않는 것이라서 어떠한 자연법칙도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극단적 자유주의자가 아니라면, 결정론은 세계에 대한 일관된 믿음이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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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007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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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에 나타난 실체와 본질의 동일성
The Sameness of Substance and Essence in Aristotle's Metaphys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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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덕천(연세대학교)" ]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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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007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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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트 슈타인의 인간관
Edith Steins Anthtopolo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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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영(대구가톨릭대학교)" ]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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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234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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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아퀴나스 윤리학의 자연적 덕과 악덕 ―『신학대전』을 중심으로―
Natural virtue and vice in Thomas Aquinas’s Eth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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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병창(연세대학교)" ]
원죄로 타락한 인간은 온전하게 도덕적 선을 실현할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은 원죄 이전보다 손상되었지만 여전히 도덕적 선을 실현할 수 있는 최소한의 능력을 갖는다. 인간 영혼에는 자발적 행위의 원리로 이성, 의지, 감각적 욕구가 있다. 이성과 의지는 서로 협력하여, 감각적 욕구는 이성과 의지에 의해 통제되면서 선을 실천할 수 있다. 이성과 의지가 자발적으로 올바르게 행동해서 실천적 지혜와 도덕적 덕을 갖는다. 감각적 욕구인 감정 역시 이성과 의지의 통제에 따라서 대표적으로 호의적 욕구와 관련하여 절제, 거부적 욕구와 관련하여 용기의 덕을 갖는다. 이러한 덕은 반복하는 활동을 통해서 반대되는 성향을 없애는 과정에서 형성된다. 그런데 이성의 무지나 감각적 욕구의 지나친 감정, 의지의 악의에 의해 악을 행하고 악덕이 형성된다. 악덕을 극복하고 덕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무지에 빠지지 않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며, 악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인간이 아무리 악의에 따른 악덕에 속수무책일지라도 이성은 이런 잘못을 반성할 수 있다. 이성이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실천적 지식을 배우며, 지나친 감정이나 악덕의 부작용과 원인을 진단할 수 있다. 이성의 냉철한 인식과 이에 따른 의지의 의도적 실천이 악덕에서 덕으로 가는 길이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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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242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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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적 영성-다산 심성론에 나타난 영명성의 문제-
Confucian Spiritu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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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향만(가톨릭대학교)" ]
영성은 이성과 감성의 한계를 극복하고 변증적으로 종합하고 조화시켜나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종교철학적 개념으로 새롭게 인식되고 있다. 그리스도교가 중국에 전래되는 과정에서 예수회 선교사들은 영혼의 성향이라고 할 수 있는 영성 개념을 유교 경전에서 찾게 되었다. 실제로 중국 철학에서는 맹자이후 마음의 문제를 인간의 선천적 도덕성과 실천의지와 관련하여 깊이 있게 다루었다. 송, 명대에 이르러 신유학에서 마음을 우주론과 유비적으로 해석하여 사변철학을 발전시켰다. 다산(1762-1836)은 중용을 주석하면서 유학을 유신론적으로 해석하였다. 그는 유교와 그리스도교의 화해를 모색하면서 영성과 유사한 ‘영명성’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였다. 다산은 마음을 몸과 정신이 일치를 이루고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는 신비처로 인식하였다. 이 마음은 태어나면서부터 하늘로부터 특별한 성향을 부여받아 도덕적인 기호와 도덕적인 판단과 도덕적인 실천의지를 갖고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성향을 유지하기 위해서 도덕적인 수행이 필요하며 현실 생활 안에서 실천해야 한다고 하였다. 다산의 영성은 이성과 감성을 배제시키지 않고 종합하고 고양시키는 점에 있어서 현대 그리스도교 영성과의 유사성이 있다. 서구 영성이 이성 우위의 측면이 두드러진 데 비하여 다산은 감성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직관성을 강조함으로써 동양적인 영성의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다산의 유학해석으로부터 동양적인 영성의 토대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유학적인 인간 이해와 토착적인 영성을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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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24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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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영성의 초월철학적 이해
Transcendental philosophical understanding of modern spiritu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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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해(서강대학교)" ]
사람들이 세계 도처에서 21세기는 ‘영성의 시대’라고 말한다. 이는 현대인이 영혼 깊이 무엇인가를 찾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동시에 개인들이 자신들의 실존적 삶 안에서 자유상실, 공허, 무의미 그리고 환경파괴로 인한 생명의 위협을 안고 있음을 본다. 철학의 사명은 현대 영성의 현상을 살피고 영성의 자기 비판적 메커니즘을 발견하도록 돕는 데에 있다. 이 논문에서는 우선 영성의 개념사와 현대적 용례를 통해 영성을 잠정적으로 정의내리기를 시도한다. 그 다음으로 시대를 초월한 영성의 본질적 특성이 무엇인지를 숙고한다. 본질적 특성으로 자기초월, 회심, 자아통합을 로너간과 라너, 젤피와 슈나이더스의 초월 철학적 입장에서 성찰한다. 여기에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 이론의 기획과 미드의 정신, 자아, 사회의 상호관계 메커니즘을 사용하여 세속 안에서의 영성회복 가능성을 점검한다. 마지막으로 자기 초월적 경험을 심화시키는 영성행위에서의 작동 구조, 즉 경험-성찰-행동-평가의 순환적 구조를 숙고한다. 이를 통해 현대의 여러 영성 현상을 평가하고 그 결핍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영성을 추구하는 인간은 자기초월적 지향을 갖고 자신의 신념이나 지식을 넘어 끊임없이 더 진전된 물음으로 묻고 경험하며 이해하고 판단하면서 실재 자체에 도달할 것이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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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234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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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론 연구
God in St. Augustine and St. Thomas Aqui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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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건익(연세대학교)" ]
1.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가 제시하는 신 관념은 궁극적으로 동일하다. 이들이 말하는 신은 ‘스스로 있는 자’(ego sum qui sum), 존재 그 자체(ipsum esse), 우주의 창조자이다. 표현은 다르지만 이 말들이 지시하는 바는 모두 동일하며, 또한 그것은 그리스도교의 신을 의미한다. 이들의 차이는 각자가 선택한 ‘신에 도달하는 길’과 도구로 이용했던 그리스의 철학에서 발생한다. 2. “주여, 당신을 향하도록 우리를 지으셨으니, 당신 안에서 쉬기까지는 우리 마음에 평안이 없나이다”라는 그의 고백에서 알 수 있듯이,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의 흔적을 자신의 내면에서 찾았다. 그 흔적은 일종의 기억이지만, 일반적인 의미의 기억이 아니라 존재론적인 기억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신이 새겨 넣은 기록이자 당신 자신에 대한 기억이다. 이 기억 때문에 인간은 신을 그리워하고 갈망하는 것이다. 내면의 불안과 동요는 이러한 기억이 작동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래서 신을 만나기 전까지 인간의 마음에는 쉼이 없는 것이다. 이처럼 아우구스티누스의 철학은 신에 대한 존재론적 기억 때문에 촉발된 영혼의 운동이자 여행이다. 또한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이 ‘우리의 내면 가장 깊은 곳’(interior intimo meo)에 계신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우리가 신을 발견할 곳도 우리의 내면이라는 것이다. 물론 신을 발견하는 것은 기억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이성적 사유를 통해서도 아니다. 오히려 그가 자신의 내면여행을 통해 처음 발견한 것은 신이 아니라 자기모순과 분열이었다. 자신이 진정 사랑해야 할 대상을 사랑하지 못하고, 사랑해서는 안 될 것을 사랑하는 자기모순을 통해 그는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는 인간은 신의 은총과 사랑을 통해 신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받아드리게 된다. 이제 그의 여행은 신이 주시는 진리와 사랑을 통해 자신의 분열과 모순을 치료하는 여행이자. 선물로서 행복이 주어지는 여행이 된다. 하지만 이 여행의 온전한 주관자는 자기 자신이 아니라 하느님이라는 것이 아우구스티누스가 우리에게 말하는 역설이자 신비이다. 3. 토마스는 인간 지성의 적절한 인식대상은 물질유(物質有)의 형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방법은 감각과 추상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신이라는 대상은 우리에게 적절한 인식대상이 아니다. 신은 어떤 이미지도 없으며, 추상할 형상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에게 직접 다가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마스는 신에게 다가갈 수 있는 다른 길이 있다고 보았다. 그것은 신이 남긴 흔적을 추적하는 길이다. 아우구스티누스와 달리 그는 이 흔적을 우리의 내면에서 찾지 않는다. 그가 발견한 신의 흔적은 바로 그가 창조한 이 세계, 즉 외부세계이다. 그는 ‘밖으로의 길’을 통해 신을 찾아간 것이다. 이 우주가 가지고 있는 존재론적 기억은 신이 존재함을 증언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우주를 통해 신의 존재를 입증하고, 그것을 초월함(유비와 부정의 방법)으로써 신에 대한 인식에 도달하는 철학적 길을 통해 그는 신에게로 나아간다. 토마스는 철학적으로는 이 방법이 신에게 도달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부정의 길과 인과적 유비추리의 존재론적 배경이다. 그는 이러한 방법에 의해 비록 불완전하지만 신 인식에 도달한다. 추상이 피조물에 대해 적극적이 ...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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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238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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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개념의 철학적 사유 지평
the philosophical horizon of spirituality conce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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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승환(가톨릭대학교)" ]
근대를 벗어나려는 철학적 기획은 근대에 와서 신화적으로 재현된 이성 개념에 대한 비판과 극복으로 이루어진다. 이 논문은 이러한 논의의 철학적 배경을 살펴본 뒤 이성 개념의 수정과 새로운 이해를 위해 우리의 이성과 다른 어떤 지성이 아니라 서구 이성에 의해 배제되었던 “이성의 다름”에 대해 논의한다. 이것을 이 글에서는 초월성과의 관계 속에서 제기되는 영성 개념으로 규명하고자 한다. 즉, 영성 개념의 논의를 이성 이해 일반과 근대성 비판, 탈형이상학의 관점에서 요구되는 내재적 초월성으로 정의하고, 이를 해석하기 위한 철학적 사유 지평을 제시할 것이다. 이를 위해 계몽주의적 이성이해를 살펴본 뒤 역사적 경험에서 드러난 이성의 변증법적 자기전개과정을 살펴본다. 이어 계몽주의 이성이해의 극복 가능성을 해명할 것이다. 이를 통해 새로운 이성이해의 지평을 논의하기 위한 터전으로 전통 형이상학을 넘어서는 탈형이상학의 사유동인에 대해 논의한다. 이것은 이성이해와 형이상학의 패러다임은 동일한 철학적 논의 지평에 근거하기에, 탈형이상학적 사유동인을 밝힐 수 있을 때만이 근대 이성이해를 넘어서는 새로운 이성이해의 지평이 제시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이 글의 핵심적 논점인 영성 개념의 철학적 사유 지평을 위해 영성개념에 대한 일반적 이해와 그리스도교적 영성이해에 대해 언급할 것이다. 이를 위해 현대문화의 영성이해와 영지주의적 전통에 대해 해명한다. 이를 통해 영성개념을 이해할 철학적 지평이 해석학적 관점에서 정초될 것이다.탈근대의 관점에서 서구의 근대성과 이성 이해를 넘어설 철학적 과제는 근대의 기획을 완성하는 데 있지 않고, 오히려 이러한 범위를 벗어나 인간 본래의 존재성을 해명하는 해석학적 작업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는 이러한 해석학적 토대를 영성을 위한 철학적 지평으로 드러낼 것이다. 이를 위한 철학적 원리를 결론적으로 내재적 초월성의 철학적 원리와 연결하여 제시한다. 즉, 탈형이상학적 관점에서의 이성 이해의 전환과 그를 위한 해석학적 지평이 현대 문화에서 거론되는 영성 개념을 해명하기 위한 사유 터전임을 결론으로 제시한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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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243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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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을 찾는 인간(그리스도인)의 자기 해명-쿠사누스의 De Deo abscondito(전문 번역 포함)를 중심으로-
A Christian Self-Identifi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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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규홍(대전가톨릭대)" ]
이 글은 쿠사누스 니콜라우스(1401-1464)의 작품 가려계신 하 느님(De Deo abscondito)을 중심으로 ‘가톨릭 철학’의 정신을 되새기고자 한다. 어느덧 새로운 밀레니움(3천 년대)을 시작하면서 보편교회는 하느님을 찾아가는 인간의 자기 정체성을 곧추세워야 한다는 취지를 밝힌 바 있다. 그것은 이미 처음부터 교회가 겪어왔듯이 이 세상 안에서 하느님을 찾아나서는 길이 평탄치 않음을 재확인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찾는 하느님 스스로가 난해할 만큼 복잡하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그분은 지극히 단순하시다. 그럼에도 해가 갈수록 교회에 대한 세상의 비판과 의문은 거세어지고, 신앙인은 더 큰 유혹과 많은 시련 앞에 마주서야 한다. 이 글은 신앙인이 겪어야 할 크고 많은 어려움 가운데 ‘하느님에 대한 회의적인 질문’에 대해 답변할 수 있는 지혜를 모색하고자 하였다. 이에 쿠사누스의 상기 작품이 그에 유익한 단서를 제공해줄 것 같아 선택하였다. 그의 작품을 새삼 읽으면서 ‘하느님을 찾는 인간의 노력’이 세상이 던지는 의문으로 인해 조금도 사그라지지 않고 오히려 강화되기를 희망한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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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234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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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선험적 통각과 일상생활의 선험성1)
Kants transzendentale Apperzeption und lebensweltliches Apri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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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정민(상명대)" ]
최근 영미권의 순수이성비판에 대한 연구는 언어 분석을 통한 의미론적 비판에 집중을 하고 있다. 여기서는 특히 순수이성비판에 상호주체적 측면이 결여되어 있음이 지적되고 있다. 본고는 이 같은 비판에 맞서 칸트의 선험적 통각에 내재해 있는 일상생활적 선험성을 재구성하고자 한다. 칸트의 선험적 통각에 내재해 있는 일상생활적 선험성의 상호주체적 측면은 무엇보다도 칸트가 선험적 통각의 본원적인 사실성, 그리고 우리의 일상생활을 항상 동반되는 공간과 시간의 사실성을 강조하고 있는 데에서 드러난다. 즉 모든 상호주체성은 형이상학적 피안이 아니라 선험적 통각, 공간 및 시간을 필수불가결한 사실로 인정하고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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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242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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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G.피히테와 E.레비나스의 자유이해
Freiheitsverständnis von J.G.Fichte und E.Levi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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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욱(인천가톨릭대학교)" ]
피히테와 레비나스의 자유이해를 비교한다는 것은 무모한 시도로 보일지 모른다. 피히테는 레비나스가 강하게 비판하는 주체철학의 대표자가 아닌가? 그의 철학에는 레비나스 사유의 핵심인 타자가 배제되고 있지 않은가? 또한 피히테의 철학은 레비나스가 “전체성”의 사유라고 일컫는 철학적 전통에 서있지 않은가? 레비나스는 절대타자인 “무한”에 대한 자신의 사유에 피히테적 전체성의 사유를 철저히 대립시키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매우 상이한 이해지평에도 불구하고 자세히 보면 두 철학자의 자유이해 사이에는 적지 않은 사유방식의 대칭관계가 발견된다. 이 대칭관계는 두 철학자 사이의 선명한 내용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병행하는 사유방식의 유사함이다. 본 논문의 목적은 두 철학자 간의 내용적 동일성을 무리하게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이한 이해지평의 사실을 포착하면서 동시에 조심스럽게 그 안에 있는 사유의 대칭구조를 밝혀냄으로써 극단적 대립이라는 선입견을 해소해 보는데 있다. 두 철학자의 자유이해에서 사유의 대칭구조가 알려진다. 그들은 자유의 정초문제에 있어서 주체의 사실과 절대자를 부인하지 않는다. 또한 그들은 자유의 정초문제를 주체의 초월맥락에서 파악한다. 초월이란 주체가 절대자와 관계를 맺고 자기 자신을 넘어가는 것이며 결국 자신의 완성에 이르는 것이다. 후기 피히테에게 있어서 주체의 초월은 “절대자의 모사”가 되는 것이고, 레비나스에게 있어서 주체의 초월은 “타자를 위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피히테의 “모사”개념이나 레비나스의 “흔적” 또는 “얼굴”의 개념은 각기 상이한 지평에서 이러한 초월의 가능조건으로 기능한다. 또한 무한자의 이념은 두 철학자의 제일철학적 정초시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연결고리이다. 물론 두 철학자가 주체와 감성의 개념을 매우 상이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최소한 후기 피히테에서 주체, 타자, 감성의 문제가 전체성의 맥락에서 개념화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레비나스와의 철저한 대립구도를 새롭게 반성하고 양자 사이의 대화가능성을 모색하는데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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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243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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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 삶의 원천으로서 영성과 이성-신앙의 상호관계
The Correlation between the Spirituality as the Source of Christian Life and the Reason-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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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평만(가톨릭대학교)" ]
영성이란 존재론적인 의미에서 물질적이고 가시적인 것들의 품성이나 성질인 물성(物性)과 대비되는 의미로 영적인 존재나 영적인 것들의 품성이나 성질을 의미한다. 예컨대 영적인 존재인 하느님, 천사 그리고 인간의 특성이다. 인간은 시공의 제약에 구속되어 있는 육체를 지니고 있지만 동시에 영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인간은 영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인간이 비가시적이고 초월적인 영혼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각 종교는 나름대로 어떤 절대 존재에 대한 영성의 외적 표현으로서 고유한 생활 방식 예컨대 공동체와 예배모임이나 기도 그리고 지켜야 할 신조 등을 갖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영성은 절대존재와의 내면적인 체험으로써 각 종교의 삶의 모습을 본질적으로 규정하고 특징짓는 요소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리스도교 영성이란 그리스도교 생활을 본질적으로 규정하고 특징짓는 정신이다.그리스도교 영성의 원천은 하느님에 대한 새로운 체험 예컨대 ‘신적 지혜의 빛’(lumen divinae scientiae)을 통한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체험이다. ‘신적 지혜의 빛’은 믿음에 대한 확실성을 부여하고 이성이 믿음에 동의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며 이 빛을 통해 영적 체험이 이루어진다. 계시 진리를 수용하는 두 주체인 이성과 신앙은 신적 지혜의 빛을 통한 영적 체험에 의존되어 있다. 따라서 신적 지혜의 빛에 대한 체험 없이 계시 진리는 수용될 수 없다. ‘신적 지혜의 빛’에 대한 체험은 계시 진리를 수용케 하는 원동력임과 동시에 이성을 비추고 정화시킨다. 신적 지혜의 빛으로 조명된 이성은 신앙의 진리나 영적 체험의 내용들을 보다 잘 이해하고 명백하게 한다.초자연은 자연을 완성하기 위해 은총으로 주어졌고 자연은 초자연을 수용하기 위해 창조되었다. 은총이 자연을 완성하듯이 ‘신적 지혜의 빛’을 통한 영적 체험은 자연 이성을 정화하고 온전하게 하여 진리에 대한 깊은 확신을 가져다준다. 이성을 ‘정화’(淨化)하고 ‘신성화’(神性化)되도록 이끈다. 이렇게 영적 체험은 인간의 영적 능력인 이성과 신앙에 초월적인 혼을 불어넣는다. 하느님의 체험으로 조명된 이성과 신앙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을 알듯이 하느님을 알게 되고,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을 사랑하듯이 사랑하게 되는 그리스도인이 추구하는 삶의 최고봉에 도달할 것이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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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234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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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의료지시서』 논의와 내용에 관한 윤리적 고찰
An ethical approach on some discussions and contents about ‘Advance Medical Direc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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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익(가톨릭대학교)" ]
이 논문을 통해 다루는 「사전의료지시서」(Advance Medical Directive)는 ‘사전유언지침들’(Advance Directives) 중의 하나로 한 개인이 의료진에게 의료처치와 간호를 자신의 원의와 의도에 부합하여 진행시킬 것을 보증하려는 하나의 수단이다. 이 지시서는 한 개인이 치료를 계속할 것인지 아니면 중단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할 시기에, 그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표명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어버린 어느 특정한 상황에 처한 상태에서 계속해서 치료받기를 원한다거나 혹은 치료를 중단하기를 원한다는 등의 의사 표명이 담겨있는 문서이다. 따라서 이 지시서는 사전치료거부지시의 내용을 담고 있거나 혹은 사전치료계속지시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논의의 중심에는 치료의 계속보다는 치료의 거부가 더 핵심적인 내용으로 담겨져 있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이 지시서를 통해 인간적으로 수용하기 힘든 치료를 받지 않는다는 것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며, 의사들의 공격적인 치료를 피함으로서 인간으로서 품위를 지닌 채 임종을 맞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지시서가 지향하는 핵심적 가치는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갖춘 인간적 죽음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근거로서의 자율성의 문제는 또한 「사전의료지시서」 논의에서의 핵심 내용이 된다. 이 논문은 「사전의료지시서」가 지향하는 핵심적 가치를 지지하고 보존할 수 있기 위하여 담아야 할 윤리적 요구의 문제를 다루면서 이러한 바탕 아래 윤리적인 측면에서 피해야 할 점이 무엇이고, 강조되어야 할 점이 어떤 것인지도 함께 다루게 될 것이다. 따라서 윤리적 정당성의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이해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며,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해 한 개인의 의사 표명을 존중한다고 할 때 그 근거는 무엇이며, 그 한계는 어디까지인지를 자율성의 개념이해를 통해 고찰할 것이다. 그런 다음 「사전의료지시서」가 윤리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치료를 거부할 수 있는 치료 수단의 범위를 살펴볼 것이다. 이를 위해 전통적으로 치료 수단을 구분하고 있는 통상적 및 예외적 치료 수단에 대한 고찰과 한 걸음 더 나아가 의료집착 행위의 거부 문제 등도 함께 다루게 될 것이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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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234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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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철학의 두 유형: 야스퍼스와 플로티누스
Die Untersuchung der Weltphilosophie bei Karl Jaspers und Plo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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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양석(강릉원주대학교)" ]
동양과 서양의 사상적 접촉은 상당히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것으로 보인다. 인도의 몇몇 학자들은 실제로 아테네를 방문하여 소크라테스와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정보가 있다. 산스크리트 문법의 창시자인 파니니(기원전 8세기경?)는 그리스 사람을 야야나스(yayanas: 이오니아 사람이란 뜻)라고 지칭하면서, 그리스 알파벳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시대에 페르시아 제국은 인도와 그리스를 매개하는 중간지역이었다.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를 정복한 사실에서,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인도사상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고 믿기는 어려울 것이다.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뒤 외교적 문화적 변화가 한편에서는 인도 왕국, 다른 한편에서는 그리스, 이집트, 로마 왕국 사이에 계속되었다. 회의론, 신플라톤주의, 신비적 직관주의, 그리고 몇몇 정통 기독교 및 이단적 기독교의 신비주의 형태 등은 이란과 서아시아로부터 인도 사상에 이르기까지 직접 간접으로 의존해 있거나 최소한 그것들에 의해 뒷받침 또는 강화되었다. 따라서 오르페우스 종교, 피타고라스학파 등이 지닌 영혼의 불멸성이나 윤회에 대한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의 믿음은 동양적 영향력에 기인한 것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신플라톤주의도 동양적이라면, 그것은 아우구스티누스주의에 영향을 주었고 그를 통해 기독교 철학의 분파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동양의 사상이 서양에 많이 유입되었지만 16세기에 이르러 그 흐름은 역전되었다. 동양에서 전개되고 형성되어 체계화된 사상의 상당 부분이 동양으로 역수입된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동양인과 서양인의 의식 속에는 동서양의 모든 요소가 일정 부분 있어서 동과 서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동서양 철학의 만남의 장인 ‘세계철학’이란 이념은 야스퍼스가 창안한 개념이지만, 그것은 과거의 많은 철학자들이 분명하게 파악하고 있지 못했다 하더라도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세계철학이라는 주제가 등장한다. 이 논문에서는 플로티누스와 야스퍼스의 사상에 나타난 세계철학의 문제를 고찰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왜 플로티누스와 야스퍼스를 함께 다루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일반적으로 보면 플로티누스와 야스퍼스 사이에는 역사적이고 철학적으로 건널 수 없는 심연이 가로놓여 있어서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철학에 있어 시대적 기준은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될 수 있지만 유일한 것은 아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철학적 사유의 특징이다. 두 사상가의 삶과 사유의 형태는 서로 연결점을 가지고 있다. F. Fuger는 야스퍼스가 칸트의 영향을 받은 실존철학자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그는 또한―아마 누구보다도 더―신플라톤주의자라고 이해했다. 그리고 보헨스키는 야스퍼스를 ‘플로티누스의 제자’라고 불렀다. 야스퍼스는 ‘세계철학’의 해명을 위해 그 어떤 철학자보다도 더 깊이 연구한 철학자이다. 그에게서 ‘세계철학’이라는 근본적 문제는 전통과의 동화에 의해 현대적 얼굴을 하고 새롭게 나타났다. 그러므로 우리는 야스퍼스와 플로티누스의 비교를 통해서 세계철학의 근본 특징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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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234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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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법률』 제10권에 나타난 신화와 로고스
Mythos und Logos in Platon, Nomoi X 903b-905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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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성철(경기대학교)" ]
본 논문에서 필자는 플라톤의 가장 나중 신화에 해당하는 『법률』 10권 신화에 담긴 철학적 진실성을 확인하고자 한다. 그 진실성은 다음과 같이 특징지을 수 있다. (1) 정의롭고 분명한 세계 질서, 즉 경탄할만한 용이함을 통한 신적 세계 지배는 아레테가 우월한 것을, 그리고 카키아는 열등한 것을 근거 짓는다는 데에 그 본질을 둔다. 이에 따라 각각의 영혼은 우주에서 그것에 속하는 거처를 얻게 된다. 즉 악한 영혼은 하데스로 떨어지고, 선한 영혼은 천상으로 올라간다. (2) 플라톤에게서 중요한 점은 독립적 존재로서의 영혼이 물체보다 이전에 인식된다는 사실이다. 영혼은 물체라는 다자보다 앞서 생겨난 단일체이다. 영혼으로부터 물체가 형성된다. 플라톤 철학에서 영혼과 물체를 비교할 경우 일자와 다자의 관계가 나타난다. 이러한 관계는 근본 요소의 생성이나 변용도 아니고 일반적으로 형상과 물질, 이데아와 현상도 아니며, 항시 다른 물체들과 결합되어 있는 영혼의 운명에 관한 것이다. 영혼 윤회에서 각각의 영혼이 올바르게 다뤄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것은 전체적으로 각 생명체의 아레테 혹은 카키아와 부합하는 거처를 얻음을 통해서 발생한다. 이 점은 플라톤의 신화가 논증적 로고스와 일치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3)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과 플라톤의 원자에 관한 견해 사이의 주된 차이점은 플라톤이 근본 요소의 형식을 물체 이전의, 평면적 영역에 설정하고, 이로부터 물체적인 것을 구성한다는 점이다. 그 결과, 여러 개의 평면적 요소들로부터 물체적인 것에서 통일성이 생긴다. 해체의 경우 이러한 통일성은 여러 가지 요소들로 분열된다. 필자가 보기에 플라톤적 우주론의 특징적인 점은 다자와 일자의 관계가 아니라, 세 가지 생성 단계의 차원적 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일자에서 다자 혹은 다자에서 일자”라는 언급은 차원적 연속이라는 의미에서 일자와 다자의 관계가 정해진다는 것을 뜻한다. 첫 번째 생성에서 세 번째 생성에로 이르는 전개는 분명히 한정되고 통일적 형상으로부터 매번 다음 단계 차원에서의 가능한 형성이다. 두드러진 점은 물체적인 것의 차원적 연속은 영혼적인 것에서 이미 형성되고 이로부터 만들어진다는 사실이다. (4) 이러한 사실로부터 결론지어지는 것은 플라톤에게 있어서 형상을 부여하는 것으로서의 영혼은 한계로 작용하고, 필연에 따른 정의로운 질서에 의거해 선한 자는 행복해 지고 악한 자는 불행해진다는 점이다. 『법률』 10권 신화는 물체 영역에서의 모든 변화가 인간의 운명을 결정짓는 영혼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점과, 이러한 견지에서 아레테와 행복이 필연적으로 일치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5) 이를 통해 우리는 결국 『법률』 10권 신화가 형이상학, 존재론, 윤리학 그리고 우주론에 관한 플라톤의 기본적 의도를 담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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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243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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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영성의 현주소와 여성생태주의 영성
The Current Trends of Protestant Spirituality and Christian Ecofeminist Spiritu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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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충범(협성대학교)" ]
본 소고는 현재 개신교회에서 이해하는 영성과 개신교 신학이 추구하는 영성에 대한 개괄적인 소개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논자는 개신교 영성의 현주소를 ‘혼란’과 ‘기대’라는 두 단어로 설명하고 있다. 현재 개신교회와 개신교 신학은 가톨릭 전통과는 다르게 영성이란 용어에 대하여 생소함을 가지고 있었으며 영성에 대하여 개념적, 외연적 혼란을 격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개신교 신학 역시 영성에 대한 지속적 논의를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혼란 중에 개신교 신학은 개신교 영성에 대한 공감대를 갖고 있는데 첫째는 차세대의 영성이 결코 사회, 정치, 경제와 괴리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며 둘째 미래의 영성은 개인의 내면생활이나 자아의식에 한정되었던 한계를 벗어나서 전인적 삶의 영역으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 개신교 신학은 미래영성이 몸과 깊은 연관성을 갖는 몸의 영성이 되어야 한다고 확신하고 있고 마지막으로 미래 영성을 위하여 전통, 교리, 지역의 한계성을 초월하여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미래의 영성연구는 간종교적, 간학문적, 간문화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논자는 이러한 개신교 영성학의 하나의 모델로 그리스도교 생태여성주의 영성을 소개하고 있다. 생태여성주의 영성은 자연과 여성의 해방을 동시에 추구하는 영성으로서 자연파괴와 여성억압의 근저에 가부장적 구조가 도사리고 있음을 간파한다. 이와 관련하여 그리스도교 생태여성주의 영성은 여성해방과 자연해방의 단초를 그리스도교 전통 속에서 찾거나 그리스도교를 변혁함으로써 이루고자 하는 운동이다. 그리스도교 생태여성주의 영성의 특징은 첫째 초월적 신보다 내재적인 신과 교제하며 둘째 온 지구를 하나의 몸, 즉 하느님의 몸으로 향유하며, 셋째 구원이 영광보다 창조의 축복을 향유하며, 마지막으로 로고스로서, 메시아로서의 그리스도보다는 지혜와 치유의 주체로서 그리스도를 사귄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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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052991
oai_dc
다원주의사회에서 타자인정윤리
The Ethics of Recognition for an Another in Plural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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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현주(서강대학교)" ]
사회가 다원화되면서 ‘차이’에 대한 관심은 점차 증가되고 있다. 모던사회에서 ‘차이’는 곧바로 사회 구성원의 권리를 분배하는 데 있어서 ‘차별’로 이어졌다. 이런 현상은 다민족사회 안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단일민족이나 단일혈통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한국사회 안에서도 분배는 차별적이었고, 차별은 ‘차이’ 내지는 ‘다름’에 근거하고 있었다. ‘다름’의 기준은 언제나 ‘다수자’의 가치관에 입각한 견해였고, 이들의 가치관은 늘 사회를 통합하는 주도적인 도덕적 가치였다. 이 사회 통합의 가치들은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타자’로 만들었고, 그들은 다수자에 억눌린 소수자로서 인간의 평등한 권리를 분배받지 못했다. 오늘날 이른바 포스트모던의 경향은 모던의 획일적 사고방식을 거부하고 ‘차이’를 극대화시킨다. 개인과 소집단들은 더 이상 사회의 객관적이고 주도적인 가치에 자신을 맞추고자 노력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그들은 자신들의 특수한 정체성과 가치를 주장한다. 이런 사회의 다원화 현상은 사회의 단합을 위협하고 더 나아가 국가의 권력을 약화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다수자에 의해 소외당하고 주변화되었던 소수자들의 관심은 주목을 받게 되었고, 그들의 인정 요구는 사회 구조와 제도의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다원주의사회는 이제 ‘우리 안의 타자’의 관심과 욕구들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본 논문은 사회 구성원의 정체성 분화를 사회의 통합을 저해하는 요소로 보기보다는, 오히려 사회 통합의 메커니즘이 다원적 민주사회로 나아가는 길을 막고 있다는 인식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본 논문은 ‘타자’들이 만들어지는 사회적 메커니즘을 분석하고, 그 내용을 토대로 ‘타자’를 인정하는 방식에 대한 담론을 성찰해 보고자 한다. 이는 다원적 민주사회를 만들어 가는 철학과 사회윤리의 과제라고 여겨진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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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052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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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의 '믿음적' 가족 개념을 통한 한국 가족의 전망
The Prospect of Korean Family through Catholic’s ‘Faithful’ Family No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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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세서리아(가톨릭대학교)" ]
현존하는 가족의 상태가 어떠하든, 혹은 결혼과 가족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어떠하든 분명한 것은 현대 우리에게 가족 담론이 일상적이고 친근하게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우리는 늘 가족과 더불어 가족 안에서 살아간다고 생각하며 가족을 매우 친숙한 개념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우리가 ‘가족’이라는 이름 안에 담고 싶어 하는 이상적인 ‘어떤 것’이 있다고 꿈꾼다. 그런데 그 이상적인 ‘어떤 것’은 어떻게 마련되어야 하는가? 본 고에서는 이를 혈연가족에 제한되지 않는 방식으로, 그리고 차별적 요소와 결별하는 형태로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를 가톨릭의 ‘믿음적’ 가족 개념을 통해 제시한다. 가톨릭의 신앙에 근거한 공동체 의식과 그에 따른 가족에 대한 사고가 열린 가족으로서의 의미를 확산시키는 데에 유용한 전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성경이 전통적으로 가족과 가정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또한 가톨릭 교회가 최근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형태의 가족 문제와 변화적 추이를 인식하고 이에 대한 적극적인 방안을 마련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가톨릭 신앙 이론에 근거한 가족 개념을 통해 연대 의식, 유대감, 일체감 등으로 표현되는 가톨릭의 합일성을 확인하고 강화할 수 있으며, 또한 보다 큰 공동체를 구성하는 원동력으로 만들 수도 있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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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052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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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아퀴나스의 신에 대한 앎
The Knowledge of God in St. Thomas Aqui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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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건익(연세대학교)" ]
본 논문의 목적은 토마스 아퀴나스가 말하는 신에 대한 앎을 검토하는 데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이 존재한다는 것은 이성적으로 알 수 있지만 신의 본성에 대해서 우리는 어떠한 표상이나 개념, 범주에 의해서도 알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즉 그는 신의 존재에 대한 앎은 가능하지만 신의 본성 즉 그의 존재방식은 우리에게 감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부정의 방법에 의해서 ‘신이 무엇이 아닌지’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토마스는 이것을 두 가지로 구분한다. 첫 번째 방식은 부정에 의해 부정되는 것과 다른 새로운 의미가 도출되는 방법이다. 토마스는 이것을 적극적 의미 또는 차이(positive difference)를 생산하는 부정의 방식이라고 한다. 이 방식은 토마스가 신에게 적용하고 있는 부정의 방법이 아니다. 신에게 적용하는 부정의 방법은 어떤 적극적 내용이나 새로운 의미가 생산되지 않는 방법(negative difference)이다. 말하자면 언어의 의미나 관념의 내용을 지우는 것이며, 의미화나 관념화하는 작용 자체를 포기하는 방식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부정의 방법과 제거의 방법이라는 말을 동일한 의미로 사용한다. 이러한 부정의 방법에 의해 도달되는 최종 결론은 신에 대한 ‘무지(無知)의 지(智)’이다. 즉 인간의 “신에 대한 최고의 앎은 신에 대해서 알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신에 대한 앎에 대한 단순한 부정이나 불가지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토마스는 신에 대한 무지의 지는 인간에게 허용된 한에서 신에 대한 앎이자 지혜라고 말한다.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마스는 우리가 신에 대해 전혀 말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에 의하면 우리가 신에 대해서 말을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매우 부적절하고 제한적이며, 그때 사용된 말의 의미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것과 완전히 다른 것도 아니며 동시에 동일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의 유비이론이다. 그는 의미하는 바(what the name signify)와 의미하는 방식(mode of signification)의 구분을 통해, 비록 불완전하지만 인간의 언어로 신에 대해 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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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052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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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의 덕론
Aristotle’s Theory of Virtue(ar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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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상진(목포대학교)" ]
행복을 탁월성에 따른 영혼의 활동으로 정의하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 탁월성은 행복이라는 궁극 목적에 이르는 길로 이해된다. 인간 영혼이 고유하게 수행하는 기능에 의해 정의되는 탁월성은 그것이 갖는 지속성과 안정성으로 말미암아 운명의 가변성에도 불구하고 행복을 구성하는 활동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탁월성의 지속성과 안정성은 탁월성이 영혼의 품성 상태로서 습관화의 과정을 통해 완성된 최선의 성품이라는 데서 연유한다. 습관화는 즐거움과 고통과 같은 일차적인 감성의 수준에서부터 합리적 선택이라는 강한 의미의 지성까지를 포괄하는 전인적인 차원의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이 후천적으로 만들어 가진 것이면서도 어떤 수준을 넘어서면 더 이상 임의적이지 않은 성격을 갖게 된다. 즐거움과 고통으로 말미암아 망가진 품성 상태 수준에서는 더 이상 원리가 똑바로 보이지 않고, 행위의 목적적 구조도 분명하게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바로 이런 구조에 대한 통찰 때문에 각자는 자신의 악덕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탁월성 이론에 관한 이해는 다른 덕론과의 비교 토론을 위해 다음과 같은 논점을 제시한다. 1. 아리스토텔레스의 탁월성 이론에는 이후 전통에서 무게를 받게 되는 의지 개념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2. 아리스토텔레스의 탁월성은 전혀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탁월성은 정의상 인간 고유의 기능을 잘 수행하는 것이라 그 자체 긍정적 가치 지향을 가지고 있다. 3. 아리스토텔레스가 이해하는 탁월한 인간은 고귀함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할 줄 아는 자이기에 탁월한 인간은 동시에 도덕적인 인간이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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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052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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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본질로서의 ‘순수 완전성’ ―안셀무스에 있어서의 신의 본질 ‘규정 원리’에 대한 고찰―
Die Attribute Gottes und das Prinzip ihrer Bestimm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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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보 정미(독일 안셀무스 재단)" ]
이 연구 논문은 신의 본질 인식과 관련된 완전성 개념의 구조적 한계성에 대한 비판적 반성을 그 출발점으로 하여 13세기의 신의 본질적 속성을 지칭하는 특수한 개념인 순수 완전성의 등장이라는 사상적 발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자 한다. 이때 이 개념의 규정원리로서의 안셀무스의 ‘그러한 것이 그러하지 않은 것보다 더 좋은’(melius ipsum quam non ipsum)이라는 정식이 수용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이 정식의 정초 과정과 그 사상적 의미를 고찰한다. 이러한 고찰에서 순수 완전성으로 지칭되고 그 구체적인 규정에 대한 필요성이 인식되었던 신의 본질이 이론 이성의 추론이나 개념 논리로 대상화될 수 없음에 주목하고자 한다. 오히려 이성적 정신(mens rationalis)으로서의 인간의 실천이성이 반성하고 정향하는 실천적 의미를 지닌다는 사실을 모놀로기온의 핵심적 사상을 독특하게 일축하여 표현한 ‘그러한 것이 그러하지 않은 것보다 더 좋은’이라는 판단 원리(Beurteilungsprinzip)에서 보여 줌을 밝힌다. 인간의 이성적 정신의 판단력으로서의 자기연관성(Selbstverhltnis)과 자기인식(Selbsterkenntnis)에 근거하는 자기비교(Selbstvergleich) 논리 등 판단이성의 판단력을 의미하며 이러한 판단력에 대한 신뢰는 형식 논리를 넘어서는 실천적 원리로 삼는 ‘그러한 것이 그러하지 않은 것보다 더 좋은’이라는 척도 규정(Maßbestimmung)인 원리의 발견을 가능하게 한다. 신의 모상(imago dei)으로서의 인간의 정신의 판단력을 토대로 하는 ‘그러한 것이 그러하지 않은 것보다 더 좋은’이라는 신의 속성 규정 원리는 앞서 지적한 인간의 자기인식이 완전히 수행되어 신의 인식이라는 불가분한 관계를 원리적으로 표현한 정식이라는 점에서 플라톤과 아우구스티누스의 전통을 체계화한 사상적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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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052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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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윤리학에서 덕의 개념
The Concept of Virtue in Kant’s Eth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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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호(고려대학교)" ]
매킨타이어가 덕 이후(After Virtue)를 출판한 이래 ‘덕 윤리’는 현대 규범 윤리학의 중요한 흐름 중 하나로 부상하였으며 이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덕의 개념을 강조하는 매킨타이어의 접근법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오해 중의 하나는 서양 윤리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덕의 개념과 그 중요성이 완전히 부정되었거나 아니면 최소한 거의 무시되었다가 현대 자신의 덕 윤리에 이르러 비로소 부활하였다는 인상을 준다는 점이다. 하지만 덕 개념 자체가 윤리학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결코 아니며, 아리스토텔레스가 사용하였던 것과는 다른 개념으로 변형되고 재해석되면서 끊임없이 논의되었다. 이 논문은 이런 사실을 보이기 위하여 서양 근대를 대표하는 철학자인 칸트의 윤리학에서 덕 개념이 어떻게 등장하며, 어떻게 발전하는지 그리고 그의 윤리학 전체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를 밝히려는 목적을 지닌다.칸트의 비판기 윤리학에서 덕의 개념은 주로 의무론적 윤리설을 강화하기 위한 부수적 요소의 역할을 한다. 칸트는 덕을 내적인 원리에 따르려는 행위의 엄정함이며, 자신의 의지를 도덕법칙과 일치시키려는 영속적인 심정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이런 심정으로서의 덕은 도덕법칙에 대한 존경을 포함한다. 따라서 칸트가 비판기 저술들에서 생각하는 덕은 일차적으로 의무감에 근거하여 도덕법칙에 따르려는 내면적인 심정으로 정의됨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비판기 이후의 저술인 도덕의 형이상학에서 칸트는 이전과는 다른 태도로 덕을 윤리학의 중심 개념으로 부각시킨다. 덕은 자신의 의무를 완수하려는 인간 의지의 도덕적 강건함이며, 스스로 법칙을 형성하는 이성에 의해서 부과되는 도덕적 구속으로 정의되면서 인간의 내적인 자유에 기초한 자기구속, 자기강제로 상승한다. 또한 덕이 내적 자유에 기초한다는 점은 칸트가 도덕의 형이상학을 두 부분으로 나누는 기본적인 근거로 작용한다. 왜냐하면 덕 이론은 내적 자유와 관련하는 반면, 법 이론은 주로 외적 자유 및 외적 구속과 관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덕의 의무와 법적 의무, 더 나아가 완전한 의무와 불완전한 의무를 구별하는 근거로 확대된다.칸트의 덕 개념은 특히 비판기 이후 도덕의 형이상학에서는 매우 큰 중요성을 지니는 핵심적인 개념으로 부각된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칸트의 윤리학이 도덕법칙의 준수 여부만을 기계적으로 판정함으로써 행위의 도덕성을 결정하는 냉정한 법칙 중심주의 또는 비현실적인 엄숙주의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제공된다고 여겨진다. 이 점은 최근 칸트 윤리학에 대한 논의가 그것을 단순한 의무론 또는 형식주의로 보는 폭 좁은 시각에서 벗어나 그것이 포함하는 다양하고 풍부한 요소를 재해석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진다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리고 이런 해석 과정에서 덕의 개념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함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런 측면에서 칸트의 덕 개념에 관한 논의 전반은 칸트의 윤리학이 지니는 다양성과 건전한 포용력을 잘 보여 주는 예라고 말할 수 있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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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01052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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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철학에서의 덕론 ―이황과 이이의 실천적 덕론을 중심으로―
The Theory of Virtue in the Confucian Philos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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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복희(서강대학교)" ]
동양철학에서 덕(德)이란 행위의 도덕적 원칙이나 사물의 특성을 가리키는 범주이다. 인간학적 범주로 말하자면 그것은 도덕과 동의어로서 마땅히 지켜야 하는 인간 행위의 도덕 원칙을 가리키지만, 원래 고대철학에서 덕은 세계의 모든 존재가 세계의 근원으로부터 나누어 받은 성품을 범칭하였다. 후자의 의미에서 덕이란 그러하게 존재하게 된 까닭을 얻은 것[所以然之故], 즉 존재하면서 지니게 된 본성을 가리키며, 덕성(德性)이라고도 일컬어진다. 유가철학에서도 특히 그것은 도덕 근원으로부터 부여받은 존재 내면의 도덕적 성품 혹은 도덕적 능력을 의미하였는데, 공자는 덕의 내용과 실천 방법을 구체화하면서 그 실천성을 강조하였다. 그러므로 유가철학에서 덕은 본성적 측면보다는 실천성의 측면이 늘 강조되었으며, 그 실천 방법과 실천 영역은 유가철학의 전개와 함께 지속적으로 확장되었다.본 논문에서 필자는 유가철학의 덕에 관하여, 처음 공자가 제시했던 인(仁)과 예(禮)를 중심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공자는 도덕의 실천을 위하여 인간이 모두 지녀야 할 덕인 인과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양식인 예를 제안하면서 유학의 토대를 이루었고, 맹자는 인의 보편성을 보편적 인간의 마음의 본성을 분석하여 상세한 내용을 설명하고자 하였다. 송대 성리학, 특히 주자학에서 그러한 보편 도덕과 실천 양식은 사회 정의의 실현으로 설명되었고, 그것은 조선 전기 성리학에서 김종직의 향촌사회에서의 실천, 김굉필의 덕성 교육에서의 실천과 이황의 이론적 심화를 바탕으로, 조광조와 이이에 이르러서는 현실정치에서의 실천 덕목과 양식으로 확장, 시도되었다. 유학에서 “보편적” 덕으로 제시되어 온 인(仁)은 현대사회에서 다시 조명하기가 쉽지 않다. 인간의 도덕성에 대한 관점도, 사회와 국가의 질서체계도 많은 변화를 겪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범위에서, 인의 덕목이 다른 사회적 가치들과 양립 가능하거나 혹은 가치중립적일 수 있는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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