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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ole": "system", "content": "당신은 도움이 되는 어시스턴트이자 창의적인 작가입니다." }, { "role": "user", "content": "읽을 만한 이야기를 작성해주세요." }, { "role": "assistant", "content": "http://mw.joara.com/web_viewer/book_view.html?book_code=1031710&sortno=<<C>>&showinfo=no\t\t[ㅡ원하] 야성의 전설\n\n────────────────────────────────────\n\n<-- 야성의 전설 --> \n\n띠띠띠띠... 띠띠띠띠...\n\n“으음...”\n\n시끄럽게 울리는 시계의 알람소리에 한야성은 눈을 부비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이제 20살로 대학교 1학년생인 한야성은 야성이라는 특이한 이름과는 달리 전혀 야성스럽지 못했다. 그냥 길거리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보통 남자애였다. 몸에 근육도 없었고, 키도 별로 안 컸으며, 잘 생기지도 않았다. \n\n그냥 있는 듯 없는 듯한 존재감이랄까. 많은 사람들 틈속에 끼어 있으면 아무도 한야성이 있는지 알아채지 못할 정도였다. 자신이 존재감이 없다는 것은 사실 한야성 본인도 아주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n\n“휴우...”\n\n한야성은 방을 나가서 화장실로 들어가며 인상을 찌푸렸다. 무언가 기분 나쁜 꿈을 꾼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분명 옛날의 안 좋은 일이 꿈으로 나타난 것 같았는데 아무리 애를 써도 무슨 내용이었는지 떠오르지가 않았다. 그래서 다소 찝찝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어차피 즐거울 일도 없는 인생이었다. 오늘 하루 나쁜 꿈을 꿨다 해도 별로 상관은 없었다.\n\n촤아아...\n\n세면기의 수도를 틀어놓고 한야성은 거울을 쳐다보았다. 정말 평범하다. 무엇하나 내세울 것이 없다. 그건 대학에 들어가니 더 그랬다. 외모가 멋진 남자들은 그냥 걸어다니기만 해도 눈에 띄었는데 자신은 그렇지 못했다. \n\n대학 생활이 벌써 3개월째인데 아직도 자신을 잘 모르는 동기들이 있을 정도이니까. 평범한 외모와 함께 내성적인 성격이다 보니 일상에서 더욱 소외되어 있었다. 당연히 여자친구도 없었다. 아니, 제대로 얘기를 하는 여자애도 없었다. 한야성은 거울을 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n\n‘난 왜 이렇게 한심할까...’\n\n꿈도 없고, 열정도 없었다. 그냥 적당히 공부해서 적당한 대학에 들어왔다. 그게 전부였다. 그래서 한야성은 역설적으로 무언가를 꿈꾸었다. 뭔가 모험가나 탐험가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면 자신도 좀 변할지 모르니까. \n\n그러나 실제로 모험가나 탐험가가 되려고는 하지 않았다. 그게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직은 도전조차도 어려운 20살의 한낮 애송이일 뿐이었다. 20살이 세상에서 날고 기는건 소설이나 만화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현실의 20살은 이제 막 껍질을 깨고 세상에 나온 아주 작은 병아리일 뿐이었다. \n\n한야성은 세면대 앞에 서서 이를 닦고,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한 후 욕실을 나왔다. 집은 방 하나에 화장실 겸 욕실이 거실과 연결된 형식으로 되어 있는 전셋집이었다. 중학생 때 부모가 이혼하면서 얻어준 집이었다. 한야성의 가족은 그냥 무늬만 가족이었다. \n\n가족끼리 모여서 외식을 하는 일도 없었고, 함께 tv를 보며 웃는 일도 없었다. 아버지는 모 증권회사 임원으로 바빠서 못 보는 날이 더 많았고, 엄마 역시도 늘 외박이 잦았다. 부모는 그냥 형식적인 존재일 뿐이었다. 그래서 부모가 이혼했을 때도 한야성은 별 느낌이 없었다. \n\n차라리 혼자 사는 것에 대한 일말의 설레임까지 있어서 부모가 이혼한 것을 오히려 잘된 일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혼자 살아보니 좋을게 없었다. 함께 몰려다니는 친한 친구들도 없었고, 여자 친구도 없다보니 늘 집에 혼자 있었기 때문이다. \n\n그래서 어느 때인가는 자신이 좀 이상한게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다. 외톨이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너무 무료한 인생 무료한 생활이었다. 그나마 대학이라도 갔으니 다행이었다. 정기적으로 다닐 곳이 있어서 그래도 덜 심심했으니까. 중학교 때 이후 아주 오랜만에 좋아하는 여자애도 생겼고 말이다.\n\n칙칙...\n\n머리에 스프레이를 대충 뿌리고 가방을 챙겨 나왔다. 복장은 그냥 면바지에 반팔 티셔츠다. 한야성은 옷차림 같은 것에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키가 173정도로 보통이기 때문에 신경쓰며 입어봐야 옷빨이 잘 안 선다고 생각해서였다. 키가 큰 녀석들이나 옷빨이 살지, 자신은 꾸며봤자 오히려 비웃음거리만 된다고 여겨서 항상 수수하게 입고 다녔다.\n\n한야성은 햇빛을 받으면서 가방을 어깨에 맨채 계속 걸어갔다. 오전 10시가 넘은 시각이라 도시의 거리는 다소 한산했다. 한야성이 다니는 한영대학은 집에서 2키로 남짓한 30분 거리에 있었다. 그래서 버스를 타지 않고 늘 아침 운동 삼아 걸어다녔다. \n\n한참 걸어서 학교 앞에 도착하니 많은 학생들이 교문을 오가고 있었다. 여름이라 여대생들 옷차림이 가볍다. 짧은 반바지를 입은 여대생도 있고, 브라가 드러나는 흰 쫄티를 입은 여대생도 보인다. \n\n한야성도 남자로서 한창 때라 늘 그런 것에 시선이 간다. 아니, 오히려 그런 목적으로 학교에 나오는 것인지도 몰랐다. 늘씬한 여대생들을 구경하는 재미로 말이다. 이런 재미라도 없으면 학교에 나올 필요가 없었다.\n\n한야성은 계속 걸어가서 인문대 건물로 들어갔다. 오전 11시에 교양 수업이 있었다. 강의실로 들어가기 전에 화장실로 가서 머리를 약간 매만졌다. 평소에는 하지 않는 행동이었다. 지금 이렇게 외모에 좀 신경쓰는건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애가 그 강의를 듣기 때문이었다. \n\n처음 그 강의를 들으면서 그 여학생을 봤을 때 첫눈에 반해버렸다. 다시는 여자 따위 좋아하지 않겠다는 중학생 때의 맹세도 깨버릴 정도였다. 그래도 대쉬하거나 그런건 없었다. 그냥 먼 발치에서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어차피 대쉬할 용기같은건 평범한 한야성에게는 없었다.\n\n강의실에 들어가 앉아 있으니 다른 학생들이 들어온다. 다들 시끌시끌 하게 떠들고 있었다. 대학 생활의 낭만 같은 것을 즐기는 듯한 모습이었다. 한야성은 그냥 혼자 조용히 있었다. 자신도 동기들과 잘 어울리고 싶었지만 그럴 숫기가 되지 않았다. 더욱이 술도 못 마시고, 담배도 못 피우니, 누군가와 잘 어울릴 수가 없었다. \n\n학과 선배나 동기들 모임은 늘 담배 연기가 자욱한 술자리였기 때문이다. 근데 술을 못하니 자연 낄 수가 없었다. 거기다 소극적이기까지 하니 대학에 들어온지 몇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친하게 지내는 선배나 동기가 없었다. \n\n한동안 넓은 강의실이 시끌시끌 하더니 곧 자체발광을 하는 듯한 여대생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본능적으로 한야성의 시선이 향했다. 그건 다른 남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늘씬한 여대생 네명이 가슴에 책을 품고 웃으면서 강의실 안으로 들어오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n\n전부 예쁜 미인들이라 남학생들의 시선은 온통 그녀들에게 향하고 있었다. 학과의 퀸들이라 불리는 여대생들로 전부 1학년 신입생들이었다. 한야성은 그중 한명만을 은근히 보고 있었다. 다른 세명의 여대생들도 미인이지만 지금은 관심이 없었다. 오직 그녀들 중 한명에게만 시선을 온통 빼앗겼다. \n\n권서하. 20살 동갑내기. 웃는 얼굴이 예쁘고 순수한 여자애였다. 중학교 2학년 때의 처참했던 그날 이후 다시는 여자애를 좋아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깨며 다시 짝사랑을 하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권서하는 친구들과 함께 강의실 한켠에 앉아 재잘재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n\n한야성은 그 뒷모습을 힐끔거리며 몰래 쳐다보았다. 웃고 있는 옆 얼굴도 정말 예뻤다. 영어영문학과의 권서하는 이미 학교의 아이돌 스타나 다름없었다. 대학 책자의 홍보 모델로도 활동하고 있었으니까. 본인은 창피해서 하기 싫었다는데 홍보 모델의 여선배들이 자꾸 권유해서 어쩔 수 없이 하게 되었다는 얘기가 있었다. \n\n그 덕분에 한영 대학에서는 현재 권서하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인터넷에서도 유명 연예인 못지 않게 검색어 순위를 차지하며 이름이 오르내린다는 설이 있었다. 한영 대학의 신입생 여신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n\n이런 얘기들은 항상 주변에서 들려왔다. 권서하에 대한 것을 늘 강의실에서 하는 말 많은 녀석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근처에 앉아 있는 몇몇이 권서하에 대한 얘기를 하며 작게 속닥거리고 있었다.\n\n“권서하 쟤 여고생 때도 엄청 났다고 하더라. 근처 남학생들이 얼굴 한번 보려고 교문 앞에서 진치고 있었다고 하던데.”\n\n“확실히 엄청 예쁘지. 근데 쟤네들도 참 예뻐. 권서하 친구들 말야.”\n\n“학과 퀸들이 끼리끼리 노는거지. 예쁜 애들끼리 모여 있으니 참... 미친 척하고 대쉬 한번 해볼까?”\n\n“꿈깨라. 경쟁률이 너무 높아. 지금까지 대쉬한 놈들 다 깨졌다는거 모르냐? 권서하 쟨 아마 나중에 굉장한 놈과 사귈 거야. 우리하고는 아예 인생 자체가 다른 놈일걸.”\n\n“그렇겠지? 아버지가 유명한 의대 교수이기도 하니까. 나중에 의사랑 만나려나?”\n\n이런 시시콜콜한 정보들이 저절로 들려온다. 한야성은 그냥 권서하를 바라볼 뿐이다. 자신과는 다른 곳에서 살고 있는 여자애... 우연으로도 말 한번 걸어볼 수도 없다. 권서하는 자신을 알지도 못할 거다. 아니, 어쩌면 이름은 알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름만큼은 좀 특이하니까.\n\n“한야성.”\n\n“네.”\n\n교수가 출석부를 부를 때다. 주변에 있는 학생들은 한야성이 대답을 할 때 한번 대충 쳐다본다. 이름이 특이하니까. 하지만 그뿐이다. 한야성이 평범하니까. 더 이상 관심주지 않는다. 권서하는 앞자리에 있기에 굳이 뒤돌아보지 않는다. 그렇게 한야성의 존재감은 끝나는 것이다.\n\n한야성은 2시간 남짓한 시간동안 교수의 지루한 강의를 귀로 들으며 눈으로는 권서하만 쳐다보았다. 어깨로 내려오는 찰랑이는 단발이 참 예쁘다. 한야성은 원래 긴 생머리의 여자를 좋아했는데 이제는 권서하의 찰랑이는 단발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자신의 오랜 취향조차 바꿔버리는 것이 바로 권서하였다. \n\n고리타분한 교수의 지겨운 강의가 끝나고 한야성은 가방을 챙겨 느릿느릿 강의실을 나갔다. 앞 복도에서 권서하를 비롯한 여대생들이 재잘거리며 걸어간다. 뒷태를 보니 확실히 다들 우월하다. 네명이 어찌나 그렇게 몸매가 잘 빠졌는지 한야성 말고도 다른 놈들도 뒤에서 걸어가며 감상을 하고 있었다. 다들 집중적으로 나란히 함께 걸어가는 네명의 미인의 엉덩이에 시선을 주고 있었다. \n\n한야성도 다르지 않다. 학과의 퀸들이라 불리는 그녀들의 엉덩이를 보고 있으면 면바지 안에서 그것이 슬슬 일어난다. 그러면 괜히 한숨이 나온다. 자신이 초라해보이기 때문이다. \n\n한야성은 우울한 마음에 그녀들이 간 방향의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더 이상 그녀들의 엉덩이를 훔쳐보며 초라해지기 싫어서였다. 이 얼마나 추한 일인가. 동갑내기 여대생들의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고 엉덩이나 훔쳐보면서 몰래 발기나 하는 꼴이라니...\n\n한야성은 한숨을 내쉬고는 터벅터벅 혼자서 걸어가며 식당으로 향했다. 권서하를 보면 기분이 좋은데 보고 나면 늘 다시 기분이 다운된다. 그건 밤에 자위를 한 뒤의 허탈감과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n\n‘얘기라도 한번 해보고 싶다...’\n\n그런 생각이 들지만 권서하와는 아무런 접점이 없었다. 학과도 다르고 동아리도 다르다. 같은 것이라고는 고작 일주일에 한번 교양 수업 하나 같이 듣는다는 것 뿐이었다. 그것말고는 아예 없었다. 그러니 뭔가 얘기를 할 기회도 없었다.\n\n“에휴, 밥이나 먹자...”\n\n한야성은 고개를 젓고는 지갑을 꺼내며 학교 식당으로 들어갔다.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오후 3시 강의까지 할 일이 없어서 잠시 동아리방을 찾았다. 대학에 왔으니 그래도 동아리 하나는 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많이 고민하다가 얼떨결에 미스테리 동아리라는 곳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걸 딱히 좋아해서 들어간건 아니었다. \n\n그냥 동아리 모집하는 곳에서 엄청나게 미녀이면서 쭉빵한 여자를 보고는 충동적으로 가입했다. 원래는 영화 동아리나 스킨 스쿠버, 테니스 동아리 등을 고민하고 있었던 참이었다. 근데 그 엄청난 미녀가 갑자기 한야성을 와락 잡고는 미스테리 동아리에 들어오라고 권유했다. 아니, 거의 일방적으로 유혹했다고 해야 맞았다. \n\n갑자기 팔짱을 끼고는 웃으며 ‘너 신입생이지? 우리 동아리에 들어와. 여기 엄청 재밌어.’ 라면서 못가게 한 것이다. 그래서 좀 당황하는 사이 엉겁결에 손에 볼펜을 쥐고는 가입서를 쓰게 되었다. 팔에 꽉 대어진 그녀의 큰 가슴의 뭉클함에 심장을 쿵쾅쿵쾅 대면서. 그때 그녀가 3학년 선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n\n────────────────────────────────────\n\n<-- 야성의 전설 --> \n\n이름은 최유진. 호텔경영학과의 여왕이자 학내의 퀸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그녀 때문에 미스테리 동아리에 가입한 신입생 남자애들이 꽤 많았다. 근데 웃긴건 두달이 넘도록 최유진 선배가 미스테리 동아리에 나오지를 않았다는 것이었다. 최유진 선배는 열 개가 넘는 동아리에 가입되어 있었다고 했다. \n\n그날은 동기와 후배들이 울고 불고 사정해서 신입생을 가입시키기 위해 특별히 나왔다는 것이다. 미스테리 동아리의 부원들이 너무 줄어서 폐부하게 될 위기에 처하자, 학내 퀸인 최유진 선배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n\n그녀도 어쨌든 이름 뿐이지만 그 동아리의 운영진이었는지라 그날 마음먹고 덤벼들어 2시간 동안 30명이 넘는 신입생 남자애들을 가입시키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래놓고는 두달간 동아리에 얼굴 한번 내비치지 않았다. \n\n최유진 선배가 오지를 않자 혹해서 가입했던 신입생 남자들은 거의 다 나오지 않게 되었다. 사람 많고 잘 되는 동아리는 예쁜 여대생들이 많은 곳이었다. 뭔가 칙칙해 보이는 미스테리 동아리에 예쁜 여대생들이 올 리가 없었다. \n\n그래서 신입생을 비롯한 2,3,4학년 선배들까지 다 합쳐서 실제 활동하는 이들의 수는 총 13명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름 뿐이지만 신입생 가입자들이 많았기에 동아리 폐부는 되지 않았다. 자칫했으면 가입하자마자 폐부당해 나가지도 못할 뻔 한 것이다.\n\n한야성은 일주일에 한두번, 빈 강의 시간에 별관에 있는 동아리실을 들리고는 했다. 누군가 귀찮게 하지도 않고, 불편한 이들도 없었기에 가끔 가는 편이었다. 다들 무난한 성격이라서 그냥 조용히 동아리 활동을 할 수가 있었다.\n\n별관은 4층으로 되어 있었는데 모든 방을 각 동아리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말로는 한영대 동아리가 수백개는 된다고 했다. 그나마 부원이 많아야 별관에 있는 동아리실을 배정받을 수 있다고 했다.\n\n4층 계단을 올라가 미스테리 동아리라고 쓰인 문 앞에 서서 똑똑, 하고 노크를 한 뒤 문을 열었다. 동아리실에는 한명의 여자가 안경을 쓰고 테이블에 앉아서 책을 보고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한야성은 아는 얼굴이라 얼른 인사를 했다. \n\n“안녕하세요.”\n\n“야성이구나. 어서와.”\n\n그녀는 경제학과 3학년이자 미스테리 동아리의 회장인 장은아 선배였다. 최유진 선배와 동기였는데 안경을 낀 얼굴에 말수가 적고 조용했다. 별로 꾸미지도 않아서 언제나 소탈한 모습이기도 했다. 항상 머리는 뒤로 묶고 있었고, 간편한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이었다. 마른 체형이라 그런지 몸매도 그냥 그랬다. 그렇지만 한야성은 회장인 은아 선배가 편했다. 똑같이 소극적이고 말수가 없어서일지도 모른다. \n\n“강의 비었니?”\n\n“네. 이따가 3시에 있어요.”\n\n은아 선배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안경을 매만지고 책을 본다. 한야성도 책장에 있는 미스테리 관련 책을 한권 뽑아들고는 테이블 맞은 편에 앉아서 책을 보기 시작했다. \n\n그렇게 조용한 시간이 흘러갔다. 하지만 복도는 타 동아리 학생들의 소란한 말소리로 시끄러웠다. 동아리실이 전부 모여 있는 별관 건물이기에 조용할 수는 없었지만, 한야성과 장은아가 앉아 있는 미스테리 동아리실은 조용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n\n한야성은 한동안 말없이 책을 보다가 고개를 돌려 창밖을 쳐다보았다. 화창한 날씨였다. 하늘은 파랗고 흰 구름은 흘러갔다. 동아리실이 4층이라서 의자에 앉아서 창밖을 보면 늘 푸른 하늘이 가득 보였다. 그렇게 한동안 가만히 하늘을 보고 있는데 은아 선배의 말소리가 들렸다.\n\n“오늘 참 하늘 좋지?”\n\n“네.”\n\n고개를 돌리고 보니 은아 선배도 안경을 벗은 채 눈가를 문지르며 하늘을 보고 있었다. 은아 선배도 못 생긴 얼굴이 아닌데 화장도 안 하고 꾸미지를 않아서 돋보이는 면이 없었다. 그냥 수수한 모습이랄까. 그래서인지 남자친구도 없다고 한 것 같았다. 하지만 경제학과에서 과수석을 차지할 만큼 공부는 엄청 잘한다고 했다. \n\n한야성은 한동안 더 책을 보다가 시계를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기척을 느꼈는지 은아 선배도 책에서 시선을 떼고는 쳐다보았다.\n\n“지금 가니?”\n\n“네.”\n\n“그래. 잘가.”\n\n“네, 안녕히 계세요.”\n\n한야성은 인사를 하고는 동아리실을 나왔다. 이런 조용하고 편한 곳이기에 가끔 오는 것이다. 누군가 잔소리 하는 사람도 없고, 무언가를 시키지도 않으니까. 다른 동아리가 무슨 군대처럼 기합을 주고 그러는 것을 본 뒤로 더 그랬다. \n\n군대를 제대한 예비역이랬는데 군기가 빠졌다며 후배들을 쥐잡듯이 했다. 그 후 태반이 그 동아리를 나갔다고 들었다. 예비역에게 기합까지 받으면서 동아리 활동을 할 학생들은 별로 없으니까. 미스테리 동아리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면 한야성도 나왔을 것이다.\n\n오후에 있는 전공 강의를 끝마치고 한야성은 터덜터덜 대학 정문을 빠져나왔다. 오후 6시경이 되어 가면서 학교 앞 주점에서는 벌써 학생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n\n밤에 학교 앞 일대는 거의 환락가로 변한다. 술마시는 학생들, 토하는 학생들, 싸우는 학생들, 고성을 지르는 학생들, 우는 여학생들... 전에 한번 밤에 와봤다가 그런 광경에 진저리가 나서 돌아갔었다. 한야성은 그런 분위기에 익숙하지 못했다. 그래서 늘 일찍 귀가를 했다.\n\n“밤에는 뭘 먹지?”\n\n저녁으로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면서 집을 향해 걸어간다. 오늘도 별거 없는 하루였다. 권서하를 본 것 빼고는. 이제 다음주에나 강의실에서 그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한야성은 터벅터벅 걸어갔다. 절로 한숨이 나온다. 사는게 아무런 재미가 없었다. 늘 반복되는 생활이었다. \n\n대학에 들어가면 뭔가 다를까 싶었는데 고등학생 때와 비교해도 별로 다를게 없었다. 그냥 자유시간이 좀 더 많아졌다는 것 정도. 그건 곧 심심한 시간이 더 늘어났다는 뜻이기도 했다. 집으로 가는 도중 편의점에 들러서 여러 가지를 샀다. 햇반에 라면, 김치, 음료수 등. 그걸 사서 들고 집으로 향했다. \n\n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가니 휑한 거실이 보였다. 아무도 없는 집. 강아지라도 한 마리 키우고 싶단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도저히 키울 자신이 없어서 차마 도전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n\n가방을 책상 위에 대충 내려놓고 옷을 갈아입은 뒤 씻고는 햇반을 살짝 뜯어서 전자렌지에 돌리고 라면을 끓여서 저녁을 챙겨먹었다. 그리고 소파에 앉아 거실에 있는 시계를 보니 이제 겨우 밤 7시였다. 이제부터는 할게 전혀 없었다. \n\n밤마다 무료한 시간이 찾아온다. 할 일이 없어서 그냥 빈둥빈둥 거실과 방안을 오갔다. 그러다가 다락방이 있는 문을 쳐다보며 심각한 얼굴로 고민을 하는 한야성이다.\n\n“아, 다시는 가지 않으려고 했는데...”\n\n다락방으로 들어가 우연처럼 다른 곳을 한번 갔다온 후 다시는 가려고 하지 않았다. 너무 무서웠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었기에 더 그랬다. 근데 지금 너무 심심하니까 또 한번 갔다와보고 싶다는 충동이 조금 생겼다. 그쪽 세계는 여기와는 다른 곳이니까. 무언가 모험과 탐험을 할 수가 있으니까. 근데 너무 위험하고 아는게 없어서 망설여졌다. \n\n“어쩌지?”\n\n한야성은 계속 다락방의 문을 쳐다보며 고민했다. 다시 들어갔다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때는 운이 좋아서 바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운이 두 번이나 통한다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그 이상한 곳으로 다녀온 후 누군가에게 말도 못했다. 자신을 거짓말쟁이라고 하거나 혹은 미쳤다고 할 것 같아서였다. \n\n그도 그럴 것이 한야성이 경험한 일은 현실적으로는 절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누군가에게 말을 하지도 못했고, 미스테리 동아리 선배들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저쪽에 새로운 세상이 있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기도 했으니까.\n\n“후우... 준비를 많이 할려고 했는데...”\n\n한야성은 한숨을 쉬었다. 거길 다시 가려면 뭔가 준비를 많이 해야 했다. 탐험이나 모험에 필요한 체력 단련과 기초 지식 등을 알아야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늘 마음만 있었을 뿐 실제로 행동하지는 않았다. \n\n그러한 행동력이 있었다면 벌써 돋보이는 인생을 살았을 테니까." } ]
[ { "role": "system", "content": "You are a creative writing expert who crafts memorable stories." }, { "role": "user", "content": "문학 작품을 써줘." }, { "role": "assistant", "content": "지금처럼 평범하게 살 리가 없는 것이다. 한야성은 평범한 사람들이 다 그렇듯이 생각과 계획만 많고 행동력이 부족했다. 항상 나중으로 미룬 것이다. 그렇기에 언제나 고민만 많이 하게 된다.\n\n그런데 오늘은 좀 달랐다. 마음속에 우울감이 컸기 때문일까. 그냥 되는대로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차피 이렇게 살아봤자 별로 대단할 것도 없으니까.\n\n“그래, 가자.”\n\n한야성은 이내 마음을 먹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서랍을 열고는 라이터 여러개를 꺼내서 가방에 챙겼다. 전에 갔을 때 불을 피우지 못해 애를 먹었기 때문이다. 비오는 날이라 추웠는데 불을 못 피워서 밤에 얼어 죽을 뻔 했다. 그래서 불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n\n그 후 나중에 갈 때를 위해 편의점에서 라이터 여러개를 사두었다. 햇반과 라면, 냄비 등도 가방에 챙겨넣었고, 옷가지에 이불도 챙겼다. 집에 텐트나 침낭이 없어서 그게 좀 아쉬웠다. 사두려고 하다가 당장 갈 일이 없다는 것에 미루다 보니 못 산 것이다. \n\n한야성은 대충 준비를 하고는 다락방의 문을 열었다. 안에서 희미한 빛이 나온다. 그걸 보니 침이 꿀꺽 삼켜진다. \n\n다락방 안에서 빛을 내고 있는 하나의 공간. 이걸 발견한건 대학에 입학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이제는 쓸모없는 고등학교 책들을 정리하고 박스에 담아 다락방 안에 넣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이었다. \n\n“어? 이게 뭐야?”\n\n전에는 이런 것이 없었다. 이사 오고 짐을 다락방에 넣을 때도 이런 것은 없었다. 다락방 안에 있는 그것은 환한 빛이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없는 듯한 새로운 빛이었다. 뭔가 투명한 빛이었기 때문이다. 신비하다고 해야 할까. \n\n한야성은 멍하니 그 빛을 바라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가까이 다가갔다. 너무나 아름답고 신비로워서였다. 설마 그 빛이 자신에게 해를 끼칠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손을 뻗어 한번 그 빛을 만져보았다. 그런데 그 순간 손이 빛 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이내 몸까지 딸려가 버렸다. \n\n“어어!”\n\n하면서 땅바닥에 주저앉아 고개를 쳐드는데 생전 처음 보는 다른 곳이었다. 군데 군데 부서져 있는 기괴한 기둥들, 그리고 주변은 온통 숲이었다. 한야성은 처음에 이게 꿈인줄 알았다.\n\n“여기는 뭐야?”\n\n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쳐다보는데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 방금 전까지 다락방에 있었는데 왜 갑자기 이런 곳에 온단 말인가. 대체 여기는 어디란 말인가. 한야성은 거의 멘탈 붕괴 수준에 다다랐다. 한번도 이런 적은 없었는데 생전 처음으로 넋이 나가버렸다. 그 후 계속 그 자리에 앉아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n\n이건 꿈일까. 아니면 환각이나 환상? 이게 현실이라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순간이동을 하지 않고서야 다락방에서 갑자기 어딘가의 숲으로 올리는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숲도 이상했다. 주변이 다 나무로 가득했는데 평소 본적이 없던 나무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n\n어떤 나무는 꼭대기가 거의 100미터에 달할 정도로 높았고, 또 어떤 나무는 색깔이 무지개 빛 컬러였다. 마치 동화나 판타지 세계에서나 나오는 듯한 나무들이 보여서 이게 뭔가 하는 마음은 더 커졌다. 더욱이 부서진 기둥들도 예사롭지 않았다. \n\n대부분 다 부서져서 뿌리쪽만 형태가 남아 있었는데 손으로 만져보니 돌도 아닌 것 같고 시멘트도 아닌 것 같은 이상한 재질이었다. 마치 동물뼈 같은 그런 느낌이 났다. 하지만 이렇게 거대한 기둥을 만들 정도의 동물뼈는 없기에 곧 고개를 저었다.\n\n“근데 나 집에 어떻게 가지?”\n\n그게 문제였다. 여기가 어딘지 왜 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건 집에 돌아갈 수 있느냐 였다. 어떻게 돌아갈 방법이 없었다. 분명 다락방에 있는 그 빛 때문에 여기를 온 것이 분명하니, 그 빛이 다시 나타나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서너시간을 기다리고 있어도 도무지 그 빛은 나타나지 않았다. \n\n────────────────────────────────────\n\n<-- 야성의 전설 --> \n\n더욱이 문제인건 수중에 아무것도 없다는 거였다. 간편한 복장으로 왔기 때문에 날이 저물수록 몸이 추워지고 있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우중충한 하늘에서는 빗방울까지 서서히 떨어졌다. 밤이 되면서 기온은 더욱 떨어졌다. \n\n한야성은 너무 추워서 아직 비에 젖지 않은 나뭇가지를 모아 불을 피워보려 했다. 어느 큰 나무 아래 뿌리가 드러나 있는 빈 공간이 있어서 나뭇가지를 들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정글 프로 같은데서 봤듯이 나무를 부비며 불을 피워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1시간이 지나고 2시간이 지나도 불 피우는 나무에서는 연기 한올 일어나지 않았다.\n\n“아, 정말 힘드네...”\n\n불 피우는게 보통 어려운게 아니었다. 하도 나무조각을 문질러 댔더니 양팔은 저리고 양손은 뻘겋게 부어 있었다. 이제 완전히 어두워지면서 빗방울은 더욱 거세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나마 나무 뿌리 안으로는 빗물이 들어오지 않는 것이 다행이었다. 그래도 너무 추워서 견디기가 힘들었다. \n\n“이러다가 얼어 죽겠다...”\n\n한야성은 웅크린 몸을 덜덜 떨었다. 주변이 숲이라 그런지 더 춥게 느껴졌다. 할 수 없이 다시 불피우기에 도전, 2시간 정도 더 문질러보다가 성질이 나서 팽개쳤다. 불 피우는건 사람의 인내심을 시험하고 있었다. 한야성은 지쳐서 숨을 몰아쉬었다. 춥고 배고프고 갈증도 일어났다. \n\n한야성은 큰 나뭇잎을 따서 빗물을 담아 조금 마셔보았다. 맛이 괜찮은게 뭔가 오염되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나뭇잎에 있는 빗물을 꿀꺽 꿀꺽 다 마시고 다시 여러번 담아서 갈증을 해소했다. 물을 마시고 나니 허기가 더 지면서 몸이 급격하게 추워졌다. 한야성은 두손으로 상체를 감싸고 덜덜 떨었다. 뭔가 덮을게 필요했다. 이대로는 정말 얼어 죽을지 몰랐으니까. \n\n그래서 밖으로 나가 인근에 있는 나뭇가지들을 마구 떼어냈다. 뿌리 입구를 막기 위해서였다. 차가운 비를 맞으며 20여분 정도 나뭇가지들을 모아오니 수북하게 쌓였다. 그걸로 입구를 다 막아버리고 나무 뿌리쪽 공간 안으로 더욱 들어갔다. \n\n추운 상태에서 비까지 맞으니 몸이 완전히 얼어버렸다. 가만히 있어도 이가 딱딱 떨리고 온몸이 덜덜 떨려왔다. 너무 추워서 이대로 죽는걸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자 너무 아쉬웠다. 지금까지 살면서 아무것도 해보지도 못하고 죽는 것이었으니까. \n\n그래도 뭐하나 해보고 죽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진짜 허무한 죽음이란 느낌이 들었다. 한야성은 캄캄한 뿌리 공간 안에서 점차 의식을 잃어갔다. 머리까지 얼어버리는 것 같아서 더는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그냥 이렇게 죽는구나... 하는 아쉬운 체념만 있었을 뿐이었다.\n\n“으음...”\n\n그런데 죽지 않았다. 한야성은 나뭇가지로 막은 입구에 있는 틈으로 환한 빛을 볼 수가 있었다. 해가 떴는지 뿌리 안 공간도 잘 보였다. 그리고 자신이 왜 죽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있었다.\n\n“어?”\n\n나무 뿌리 쪽에 있는 흙이 자신의 온몸을 덮고 있었다. 너무 추워서 자신도 모르게 흙속으로 두더지처럼 파고 들어갔던 모양이었다. 두터운 흙이 이불이 되준 것이다. 게다가 나뭇가지로 입구를 꽉 막아서 그런지 안이 훈훈한 느낌까지 들었다. \n\n“다행이다...”\n\n한야성은 흙속에 누운 채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정말 꼼짝없이 얼어 죽는줄 알았는데 살아 있는 것에 감사했다. 한야성은 몸을 일으키며 입구쪽으로 기어가 보았다. 역시 날이 새서 바깥이 환했다. \n\n비도 그쳤고 뜨거운 태양 빛이 사방에 비치고 있었다. 그걸 본 안도감 때문일까. 꼬르륵 소리가 나면서 더욱 배가 고팠다. 한야성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살아 나니 배가 고프다니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한야성은 몸에 묻은 흙을 털면서 뿌리 쪽 공간에 감사했다.\n\n“고맙다. 날 살려줘서.”\n\n커다란 나무 뿌리가 드러난 이 공간이 없었다면, 두터운 흙이 없었다면, 자신은 정말로 얼어 죽었을 것이다. 그러니 무척 고맙기만 했다. 한야성은 입구를 막고 있는 나뭇가지를 걷어내며 바깥으로 나갔다. 주변에 있는 온 숲이 깨끗하고 맑았다. \n\n“좋다.”\n\n한야성은 숨을 크게 들이쉬며 기지개를 켰다. 숲에서 야숙을 해서 온몸이 얻어 맞은 것처럼 뻐근했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어쨌든 살아 있다는 것이 중요했으니까. 한야성은 커다란 나뭇잎마다 담겨 있는 물을 모아서 시원하게 마시고는 뜨거운 햇빛으로 들어가 몸을 따뜻하게 했다. 자신이 어제 왔던 기둥쪽을 보니 아직 그 다락방의 빛은 없었다. \n\n하지만 언젠가는 다시 나타날거라 여겼다.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이대로 집에 돌아가지 못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제 중요한건 그 빛이 다시 나타날 때까지 여기서 버티며 사는 거였다. 역시나 배가 고프니 먹을 것을 찾아야 했다.\n\n“근데 뭘 먹지...”\n\n숲을 다 봐도 열매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어딘가 숲 안쪽으로 들어가면 열매가 있는 나무를 찾을지도 모르지만 그 빛이 언제 나타날지 모르기에 이 장소를 떠나기는 곤란했다. 열매 찾으러 간 사이 그 빛이 나타나 사라지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n\n그래서 부서진 기둥쪽만 어슬렁거리며 뜨거운 햇살 속에 서서 그 주변을 벗어나지 않았다. 어딘가 물고기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근처에는 냇물이나 강도 없었다. 한야성은 입맛을 다시다가 제일 중요한 것을 떠올렸다.\n\n“맞아, 불부터 피워야 해.”\n\n밤에 다시 얼어죽지 않으려면 불 피우는게 우선이었다. 한야성은 다시금 그 나무 뿌리가 있는 공간으로 들어갔다. 그런 뒤 불 피우기 위해 사용한 나무토막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n\n“분명 이렇게 문질러서 불을 피웠는데...”\n\n방송에 나온 것처럼 했는데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한야성은 조난 영화를 떠올렸다. 그 영화에서도 남자 주인공이 불을 피우지 못해 애를 먹었었다. 아예 손까지 다쳐서 피가 난 후로는 배구공을 집어 던지며 화풀이를 하기도 했다. \n\n그때는 그 심정을 이해 못했는데 지금은 알 수 있었다. 자신도 어제 정말 성질이 났으니까. 욕만 안 했다 뿐이지 밖에 대고 소리를 크게 지르기도 했었다. 평생 소리 질러 본 적이 없었는데 불 피우다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른게 처음이었다. \n\n한야성은 나무토막을 곰곰이 보다가 그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랐다. 남자 주인공은 수없이 실패를 반복하다가 갑자기 깨달음을 얻고 불을 피웠다. 근데 그게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화가 나서 나무토막을 집어 던진 뒤 어찌어찌 하다가 불을 피운 것이다. \n\n분명 그 나무토막이 어떻게 부서졌었다. 한야성은 그 모양을 떠올리기 위해 눈을 감고 애를 썼다. 그러다 갑자기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n\n“아, 새총!”\n\n그 나무토막은 분명 새총 모양으로 가운데까지 쪼개져 있었다. 그걸 떠올리자 모든게 다 떠올랐다.\n\n“그래, 공기, 산소!”\n\n주인공이 환호하며 외치던 대사까지 떠올랐다. 한야성은 힌트를 얻고는 밖으로 나가서 뾰족한 돌을 찾아다녔다. 나무토막을 새총 모양처럼 반으로 쪼갠 뒤에 불을 피워야 했다. 부서진 기둥 근처에서 도끼날 모양으로 생긴 날카로운 돌을 구할 수가 있었다. \n\n뼈인지 돌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자신이 찾는 것에 부합되었다. 그걸 들고는 다시 뿌리 쪽 공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나무토막의 끝에 있는 중간부분을 그것으로 딱딱 때렸다. \n\n도구는 날카롭고 튼튼해서 부서지지 않았다. 한참을 강하게 때리자 나무토막이 새총 모양 형태로 약간 쪼개졌다. 한야성은 좀 더 때려서 가운데까지 쪼갠 뒤 어딘가 마른 나무 껍질을 찾았다. 옆에 박혀 있는 나무의 뿌리 쪽을 만져보니 괜찮은 것 같았다. \n\n“미안. 조금만 쓸게.”\n\n그 껍질을 가늘게 살살 벗겨보았다. 한동안 그렇게 얇게 껍질을 벗기니 주먹만하게 모을 수 있었다. 그걸 새총 모양으로 쪼개진 나무토막의 정중앙에 끼워넣었다. 그 영화에서도 분명 이렇게 한 것을 떠올리면서. 그런 뒤 다시 긴 나무조각을 대고 문지르기 시작했다. 앞뒤로 앞뒤로 계속 문질러야 했다. 하지만 그래도 쉽게 불은 붙지 않았다. \n\n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문지르고 문지르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양팔이 너무 아프고 손아귀가 저려서 그만두려고 할 무렵이 되자 아주 약간 타는 냄새가 났다. 연기도 조금 나는 것 같았다. 한야성은 죽기 살기로 나무를 문질렀다. \n\n평생 살면서 이렇게 열심히 뭔가를 하는 적은 처음이었다. 북북 소리가 나면서 두손에 쥐고 있는 나무조각을 앞뒤로 무척 빠르게 움직였다. 그러자 마침내 나무토막에 끼워 넣은 나무껍질에서 하얀 연기가 훅 올라왔다. \n\n“어어!”\n\n한야성은 깜짝 놀라 더욱 빨리 양손을 움직였다. 나무껍질에서 더욱 짙은 연기가 흘러나왔다. 손을 잠시 멈추고 나무껍질에 가까이 입을 대고 훅훅 바람을 불어넣자 더욱 하얀 연기가 솟아났다. 그리고 예고도 없이 마침내 빨간 불길이 확하니 치솟았다.\n\n“으아!”\n\n한야성은 크게 환호하며 어쩔줄을 몰랐다. 나무껍질에 붙은 불은 활활 타올랐다. 그러면서 금세라도 꺼질 것 같았다. 한야성은 급히 불타고 있는 나무껍질에 마른 잎들을 집어 넣었다. 불길이 더욱 거세졌다. \n\n“으하하하!”\n\n한야성은 크게 웃으면서 마른 나뭇잎들을 모두 넣고 나뭇가지들도 꺾어서 집어넣었다. 이렇게 크게 소리내서 웃는 것도 처음이었다. 활활 불 타고 있는 나뭇잎들을 보니 그렇게나 기쁠 수가 없었다. 그것도 자신이 애를 써서 불을 피웠기에 더욱 만족스러웠다. 한야성은 신이 나서 한동안 배고픔도 잊어버렸다.\n\n“하아...”\n\n하지만 오후가 되면서 배고픔은 다시 찾아왔다. 불을 피워서 이제는 따뜻했다. 눈 앞에서 장작불이 활활 타고 있었다. 그런데 먹을 것이 전혀 없었다.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고 있는 것 같았다. \n\n“어쩌지...”\n\n뭔가 먹을 것을 찾아야 했는데 이 근처를 벗어나기가 곤란했다. 그 빛이 언제 다시 나타날지 모르기도 하거니와 숲 안쪽으로 들어갔다가 뭔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한야성이 생각하기로 여기는 한국이 아니었다. 아니, 지구라고 볼 수 없었다. 숲에 있는 희한한 나무들을 지구에서는 본 적이 없었으니까. 여긴 뭔가 다른 세상이었다. 그러니 자연스레 그 빛에 대해서도 의심이 갔다.\n\n“포탈...?”\n\n말도 안 되는 소리긴 했지만 차라리 그게 더 설득력이 있었다. 어딘가의 포탈을 건드려 이 세상에 왔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게 아니고서는 지금의 이 상황을 도저히 설명할 수 없었다. 한야성은 한동안 그 생각을 하다 고개를 저으며 뿌리 쪽 공간에서 밖으로 나왔다. 지금 중요한건 그게 아니었다. 그 빛이 다시 열릴 때까지 먹을 것이 필요하다는게 우선이었다.\n\n“뭘 먹지...”\n\n주변에는 먹을 것이 없었다. 그러다 나무들을 쳐다보았다. 칡 같은 것이 있지 않으려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나무 뿌리도 굽거나 끓여서 먹었다고 했다. 어쩌면 맛 좋은 나무 뿌리도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n\n한야성은 주변에 있는 나무를 살펴보았다. 모양을 보아하니 먹는 나무는 아닐 것 같은데 뿌리는 어떨지 몰랐다. 땅 위로 돌출된 나무 뿌리들이 있어서 그걸 좀 떼서 뿌리 쪽 공간으로 다시 돌아와 껍질을 벗긴 뒤 불에 구워보았다. 스슥, 슥 하는 소리가 나면서 나무 뿌리가 불에 구워졌다.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n\n어느 정도 구워졌다고 여겨서 한야성은 그걸 입가에 대고 조금 떼어 먹었다. 쩝쩝 거리면서 이로 씹어보니 금세 떫으면서 쓴 맛이 났다. 한야성은 도저히 먹을 수 없어서 인상을 쓰며 입안에 든 것을 퉤퉤 다 뱉었다.\n\n“이건 못 먹겠네.”\n\n허기가 더 지면서 몸에서 힘이 빠졌다. 벌써 만 하루 정도를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평소라면 하루 안 먹어도 괜찮은데 여기 오면서 체력 소모가 많아서 허기짐이 더 심했다. 그래서 기운 없는 모습으로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n\n“어?”\n\n어제 있었던 그 부서진 기둥 근처에서 갑자기 빛이 생겨났다. 다락방에서 본 바로 그 빛이었다. 한야성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n\n“포, 포탈!”\n\n당장 달려가려고 하다가 장작불이 눈에 보여서 얼른 양손으로 흙을 모아 덮었다. 자신을 추위에서 구해준 뿌리 공간을 태울 수 없었기에 불을 끄고 가야 했다. 마음이 급해서 양손이 빠르게 움직이며 흙을 모아 덮였다. 이내 흙에 다 덮여서 불길이 사라졌다.\n\n“고맙다! 나 갈게!”\n\n한야성은 입구를 뛰쳐나가며 뿌리 쪽 공간에 작별인사를 했다. 부서진 기둥 근처에 있는 빛이 여전히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한야성은 전속력으로 달려가 그 빛으로 뛰어들었다.\n\n────────────────────────────────────\n\n<-- 야성의 전설 --> \n\n“으앗!”\n\n콰당탕! 하면서 몸이 나뒹굴었다. 눈을 뜨고 보니 다락방이었다. 본능적으로 뒤를 쳐다보니 그 빛이 아직 넘실거리고 있었다. 한야성은 황급히 다락방을 내려갔다. 그곳으로 다시 또 가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락방에서 후다닥 내려와 얼른 문을 닫아버렸다. \n\n“하아, 하아...”\n\n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보니 집 거실이었다. 어제와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제야 안도감이 들었다. 다시 돌아온 것이다.\n\n“다행이다...”\n\n한야성은 거실로 가서 털썩 드러누웠다. 집으로 돌아와서 정말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그렇게 누워서 귀환의 여유를 느끼는데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안정을 취하니 다시금 허기짐이 느껴졌다. \n\n“밥 먹자.”\n\n한야성은 일어나 라면 물을 끓이고 햇반을 전자렌지에 돌렸다. 냉장고에서 음료수도 꺼내 마시고 사다 놓은 과자도 한봉지 터서 먹었다. \n\n“우적우적...”\n\n정말 맛있었다. 한야성은 약 1시간 동안 아무 생각없이 먹기만 했다.\n\n“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n\n배가 불러서 침대에 누워 있자 지난 하루가 다시 생각났다. 이건 현실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했다. 어떻게 다른 세상을 왔다 갔다 한단 말인가. 남들에게 말하면 미쳤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다락방의 그 빛을 보여주고 증명하면 다들 믿게 될 것이 분명했다. 아마 정부에서 나와 조사하겠지. 미국도 나와서 조사에 참여할 것이다. \n\n한야성은 그게 귀찮아서 알리기 싫었다. 어떻게 된건지 궁금하긴 했지만 자유를 침해당하기는 싫었다. 정부 조사단에 수없이 불려다니며 질문에 대답을 하고, 지금 살고 있는 전셋집을 조사란 명목으로 빼앗기거나, 어쩌면 오염이나 바이러스 운운하며 강제로 격리시킬 지도 몰랐다. 그게 싫어서 함구하기로 했다. 그냥 없었던 일로 하는게 제일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n\n“그런데 참 이건...”\n\n웃긴건 하나 더 있었다. 그것은 시간에 관계된 것이었다. 분명 그곳에서 만 하루를 있었다. 조금 시간이 빨리 간단 느낌은 있었는데 여기 시간과 비교하니 빨라도 너무 빨랐다. 그곳에서 만 하루를 있었는데 여기서는 고작 10여분 정도 지난 시간이었던 것이다. \n\n처음에는 몰랐는데 목욕을 하고 나와 tv를 보다가 알게 되었다. 자신이 어제 그 포탈에 들어간 것은 오후 7시경이었다. 그런데 돌아와서 보니 7시 10분 경이었던 것이다. 하루가 지난건가 싶었는데 뉴스를 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쪽 세계에서의 하루가 여기서는 고작 10분 정도였던 것이다. 시간의 차이가 너무 났다. \n\n여기서의 10분이 그쪽 세계에서는 하루였다. 그럼 여기서의 1시간은 그곳에서는 6일 정도고, 이곳에서의 하루가 그쪽에서는 144일이라는 소리였다. 정말 엄청난 차이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건 우주에서나 있다고 들었는데. 어쩌면 그곳은 우주 어딘가에 있는 행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흘러가는 시간이 완전히 다르다는 추측이 들었다. \n\n어떻게 된 것인지 궁금하긴 했지만 다시 가고 싶지는 않았다. 모험이나 탐험을 해보고 싶지만 마음만 그럴 뿐 실제로는 별로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밤새 고생을 너무 해서 그런 것이기도 했다. 한야성은 침대에 누운 채로 이불을 끌어안은 채 포근함을 느끼다가 이내 잠이 들었다.\n\n그렇게 몇 달이 흘러서 지금이 된 것이었다. 한야성은 다락방 안에 있는 포탈을 보며 망설였다. 가지 말까. 또 고생할지 모르는데. 그래도 여기 있으면 몸은 편했다. 마음은 무료해도 몸이 힘들 일은 없는 것이다. \n\n한야성은 한참 갈등하다가 고개를 젓고는 짐을 양손에 다 들고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어차피 여기 있어도 할게 없었다. 며칠만 지내다가 돌아오면 된다고 여겼다. 먹을 것도 잔뜩 챙겨가니까 어딘가 산으로 캠핑간다고 여기면 되었다. 한야성은 숨을 몰아쉬며 포탈로 뛰어들었다.\n\n콰당!\n\n“아후...”\n\n이동하는건 좋은데 늘 엎어져서 도착한다. 무릎이 아파서 인상을 쓰며 고개를 드니 예전에 봤던 숲들이 보였다." } ]
[ { "role": "system", "content": "You are an experienced author known for emotional depth in stories." }, { "role": "user", "content": "재미있는 소설을 써줘." }, { "role": "assistant", "content": "근데 계절이 겨울인 모양이었다. 숲이 온통 하얀 눈에 덮여 있었다. \n\n“여긴 겨울인가...”\n\n한야성은 일어나며 주변을 쳐다보았다. 날씨는 그다지 춥지 않았다. 영하 4도나 5도 정도로 느껴졌다. 이번에는 대비를 단단히 하고 왔으니 얼어죽을 일은 없었다. 한야성은 짐을 든 채 예전의 그 뿌리 쪽 공간으로 가보았다. 눈을 치우고 안으로 들어가니 서늘했다. \n\n예전 모양과 다를바 없었지만 시간이 많이 흐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지냈던 흔적이 어렴풋하게 보이고, 흙으로 가득 덮어놓은 장작불의 흔적도 보였다. 몇 달만에 오는 것이니 여기서는 아마 수십년이 지났을 것이다. 그래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것으로 보아 뭔가 다른 것들이 오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n\n“반갑다.”\n\n한야성은 웃으며 뿌리 쪽 공간에 인사를 했다. 이제부터 캠핑 시작이었다. 한곳에 이불을 펴놓고 냄비와 버너, 식료품 등을 꺼내 정리했다. 이제 이곳은 자신의 아지트였다. 잘 정돈해놓을 필요가 있었다. \n\n옛날에 타다 꺼진 장작들은 다 수거해서 밖에다 버리고 새 장작들을 가져왔다. 수중에 라이터가 있어서 기름을 사용해 금세 불을 붙일 수 있었다. 전에 비해 너무나도 쉽게 불을 피워놓고 밖으로 나가보았다.\n\n“이곳은 생명체가 없는 걸까.”\n\n이름모를 작은 벌레 같은 것들은 본 적이 있었지만 아직 새나 들짐승 같은 것은 보지 못했다. 인간이나 외계인의 모습도 마찬가지로 보지 못했는데 부서진 기둥을 보면 지능을 가진 생명체가 있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저것도 어쨌든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n\n오랜 시간 부서져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아마도 전쟁 같은 것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예감이 들었다. 뭔가 자연재해 등으로 부서진 것이라면 근처의 숲이 온전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고의적으로 기둥 쪽의 건축물만 일부로 부순 것이 분명했다. 모양을 보아하니 뭔가 신전같은게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았다. 지금은 다 부서지고 기둥 뿌리만 남아 있지만.\n\n그곳은 금세 밤이 찾아왔다. 한야성은 간단하게 물을 끓여서 컵라면을 먹었다. 이런 것도 운치 있단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이런 것은 영락없는 캠핑이었으니까. 사람도 없고 조용해서 지내기도 좋았다. 시간이 어떻게 가나 확인해보기 위해 손목 시계를 차고 왔는데 움직이질 않는다. 그래서 그냥 감으로 추측해야 했다. \n\n이곳에 온지 한 3,4시간 된 것 같았다. 그렇다면 집에서는 한 1분이나 2분 지났단 소리였다. 여기서 일주일을 있어도 집에서는 고작 1시간 정도 지난 것에 불과했다. 정말 시간의 차이가 심했다. 오늘은 밤이 되었으니 내일은 주변 탐험을 할 예정이었다. 뭔가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n\n꿈에서만 그리던 탐험이나 모험을 한다고 생각하니 몹시 긴장되면서도 설레임이 들었다. 뭔가 자신의 인생이 바뀌는 것 같기도 했다. 재밌는 일들이 많기를 기대하면서 한야성은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n\n다음날 아침 식사를 든든히 한 후 주변을 돌아다녔다. 다행스럽게도 위험한 야생 동물 같은 것은 없었다. 식물도 위협적인 것은 보이지 않았다. 숲 안쪽으로 더 들어가자 다람쥐 같은 작은 동물들이 나타나 그냥 멀뚱멀뚱 쳐다본다. 인간을 처음보는 것인지 아예 도망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까이 와서 고개를 갸웃갸웃 하며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기까지 했다. \n\n한야성은 그런 광경에 그저 웃음이 나왔다. 이곳은 평화로운 곳이었다. 어딜 가나 숲이 가득하고, 초식성의 작은 동물들만 보일 뿐이었다. 사나운 맹수가 없어서 참 다행이었다. 숲속을 계속 돌아다니며 나무 열매 같은 것도 따보았다. 혹시나 독이 있을지 몰라 먹지는 않고 주머니에 넣었는데 작은 동물들이 따서 먹는 것을 보니 식용으로 가능할 것 같기도 했다. \n\n한참 그렇게 돌아다니다 점심 때가 되어서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라면 물을 끓이면서 생각해보니 이곳은 뭔가 아주 이상한 외계 행성 같지는 않았다. 생태 환경이 지구와 거의 흡사했기 때문이다. 약간의 모양만 다를 뿐 나무도 숲도 작은 동물들도 지구의 것들과 거의 비슷했다. 완전히 달라서 헷갈릴 정도는 아니었다. 지구인이 살기에도 적당해 보였다. \n\n그래도 조심은 해야 했다. 숲 안쪽으로 더 깊이 들어가면 혹시라도 호랑이나 늑대 비슷한 육식동물들도 있을지 모르니까. 한야성은 그런 위험 때문에 숲 안쪽으로 너무 깊이 들어가지는 않았다. 숲 일대에서만 돌며 여러 꽃이나 열매 등의 채집을 하였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갔다.\n\n“후읍...”\n\n한야성은 아침에 일어나 입구로 나와서 크게 기지개를 켰다. 여기는 참으로 공기가 상쾌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몸이 건강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이곳에서만 살면 한 100살까지 무병장수 할 것 같았다. 서울 도심의 공기와는 아예 차원이 달랐다. \n\n이곳에서 일주일을 살며 식욕도 좋아졌고, 배설도 좋아졌다. 뭔가 몸이 정화되는 것 같다고나 할까. 몸에 심각한 병이 있어도 여기서는 다 나을 것 같았다. 그 정도로 아주 살기 좋은 곳이었다.\n\n“니들 또 왔구나?”\n\n한야성은 웃으며 아래쪽을 쳐다보았다. 다람쥐 같은 작은 동물들이 와서 고개를 갸웃갸웃 하고 있었다. 숲을 돌아다니며 몇 번 먹이를 주었더니 이제는 자기들이 알아서 찾아왔다. 한야성은 숙소로 들어가서 초코바를 떼어서 가지고 나왔다. 그걸 손에 들고 있으니 이녀석들이 잽싸게 달려온다. \n\n초코의 단맛에 푹 빠졌는지 손에 들고 서 있으니 죄다 점프를 해대며 어쩔 줄을 몰라한다. 한야성은 웃으면서 손에 든 초코바를 여러 조각으로 나눠서 주었다. 작은 동물들이 금세 하나씩 나꿔채며 이리 저리 뛰어갔다. \n\n“녀석들, 당뇨 걸리면 안 되는데...”\n\n괜히 이런 걸 주기 시작했나,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어쨌든 단 것은 맛은 좋아도 몸에는 해로우니까. 한야성은 세면도구를 들고 숲으로 들어갔다. 숲 한켠에는 작은 개울이 있었다. 아주 깨끗한 물이어서 그곳에서 마시며 씻고 있었다. 여러 작은 동물들도 찾아와서 물을 마시거나 상처를 씻고 가는 곳이기도 했다. 한야성은 개울에 도착해서 우선 컵에다가 물을 떠서 마셨다.\n\n“크하...”\n\n물 맛이 엄청 좋았다. 이건 말로는 표현을 할 수가 없었다. 그 물을 마시자 마자 배에서 꾸르륵 거리며 신호가 온다. 한야성은 얼른 숲으로 들어가 바지를 내렸다. 곧 시원하게 응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저 물을 마시고 응가를 하면 숙변까지 모조리 빠져나온다. 냄새가 지독한게 단점이긴 했지만. 한야성은 응가를 다 한 뒤 흙을 퍼서 덮었다. 병든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살면 정말 좋을 것 같았다. \n\n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곳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개척이라는 명목하에 이런 곳을 개발하면 오염되기 때문이다. 나라에서 이런 곳을 알게 되면 분명 자원이니 뭐니 얻는다면서 오염시키고 말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그 누구에게도 이 세상을 알려서는 안 되었다. 이곳은 그냥 이대로 두고 싶었다.\n\n한야성은 이를 닦고 세수를 한 뒤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오늘은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일주일 정도 있었기에 식량도 거의 다 떨어졌고, 속옷도 없었다. 겨우 일주일 정도 있었을 뿐이었지만 집에서와는 달리 참으로 알차게 보냈다. 이 정도의 캠핑은 한달에 한두번 해도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조금 더 욕심이 생기는건 어쩔 수 없었다. \n\n저 거대한 숲을 벗어나면 무엇이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혹시 사람이 있을까, 아니면 외계인? 하지만 맹수가 있진 않을까? 이러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들었다. 궁금했지만 아직은 숲을 벗어나긴 무리였다. 맹수 하나만 나타나도 자신은 죽을 테니까. 숲을 나가기 위해서는 뭔가 준비를 단단히 해야 했다. \n\n────────────────────────────────────\n\n<-- 야성의 전설 --> \n\n그래서 집으로 돌아가면 어딘가 격투기 도장같은 데를 다녀볼 생각이었다. 칼 등의 무기 사용법도 익혀볼 셈이었다. 자신의 몸을 지킬 정도가 되어서야 숲을 나가볼 생각이었다. 한야성은 짐을 다 챙기고는 포탈이 나타나는 곳 근처에 갖다 놓았다. \n\n포탈의 빛은 오후 7시 전후에 나타나니 아직 시간이 한참 남아 있었다. 매일 매일 확인한 결과 거의 해가 떨어짐과 동시에 포탈이 나타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포탈은 날마다 이십여분 정도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n\n시간이 흘러서 점심을 간단하게 먹고는 주변을 돌아다녔다. 이제는 이곳 지형에 익숙했다. 주머니에서 땅콩 같은 열매를 꺼내 입에 넣고는 오독오독 씹었다. 신맛이 나는 열매였는데 작은 동물들이 즐겨 먹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번 먹어보니 의외로 먹을만 해서 주머니에 넣어놓고는 종종 간식으로 먹고 있었다. \n\n그렇게 여기 저기 돌아다니면서 놀다 보니 어느덧 해가 시기 시작했다. 이제는 집으로 돌아갈 때였다. 한야성은 짐이 있는 곳으로 돌아와서 포탈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작은 동물들이 마치 배웅을 하듯 근처에 서서는 쳐다보고 있었다. 이윽고 환한 빛과 함께 포탈이 열렸다. 한야성은 짐을 든 채 뒤돌아 작은 동물들을 쳐다보았다.\n\n“나중에 또 올게.”\n\n하지만 아마도 그때는 저녀석들이 없을 지도 몰랐다. 이곳의 시간은 너무나도 빠르게 흘러가니까. 집에서 일주일만 있어도 여기서는 몇 년이 지난 후니까. 저녀석들이 그때까지 살아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때도 있었으면 좋다고 생각하며 한야성은 짐을 든 채 포탈 안으로 뛰어들었다.\n\n집에 와서 거실의 벽시계를 보니 겨우 1시간 정도 지나 있었다. 정말로 이 시간의 차이는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그곳에서 일주일이나 있었는데 여기서는 고작 1시간 조금 지나 있다니... 한야성은 고개를 젓고는 목욕을 하기 위해 욕실로 들어갔다.\n\n그날 밤은 푹 자고 다음날 오후 강의를 마치고 인근 동네를 돌아다니며 격투기 도장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태권도나 합기도만 있을 뿐 격투기나 특공 무술 도장은 보이지 않았다. 한야성은 고민하다가 길 건너편에 있는 서점으로 향했다. 그냥 교본 몇 개를 사서 그걸 보며 저쪽 세상에서 수련하는게 나을 것 같아서였다. \n\n여기서 수련하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하지만 저쪽 세상에서 하면 이쪽 세상보다 144배 빨리 배울 수 있었다. 한야성은 격투기 교본과 특공 무술 교본 등을 구입해서 서점을 나왔다. 칼 쓰는 교본을 찾아보니 그건 없어서 인터넷에서 구해보기로 했다. 집에 가서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에서 칼 쓰는 법을 찾았다. \n\n여러 가지 다양한 검술이나 칼 쓰는 법이 있었는데 그 중 눈길을 끄는 것이 해외 특수부대에서 칼을 쓰는 것이었다. 그것은 간략한 설명과 함께 사진으로 자세히 나와 있었다. 그걸 프린트해서 한데 묶으니 두툼했다. 한야성은 다시 사냥칼을 구입하기 위해 서핑을 했다. 수많은 사냥칼이 있었는데 밀림이나 정글에서 쓰는 다소 큰 칼로 골라서 주문을 해두었다. \n\n그런 다음 저녁을 든든히 먹고 식량 등을 챙겨서 다시 포탈로 들어갔다. 겨우 하루만에 오는 것인데도 이곳은 계절이 봄으로 바뀌어 있었다. 전처럼 뿌리 쪽 공간으로 들어가 청소부터 시작했다. 집에서는 하루였지만 이곳에서는 140일 정도가 지나서 그런지 먼지가 수북했다. \n\n30분 정도 걸려서 청소를 다 끝마친 뒤 살림살이를 정리했다. 그리고는 천장에 후레쉬도 하나 켜서 걸어두고는 격투기 교본을 보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한달만 수련해도 어느 정도 초보 딱지는 뗄거라 예상했다. 한야성은 숲 안쪽 깊숙이 들어가는 것은 집에서의 시간을 기준으로 두어달 정도로 잡고 있었다. \n\n그때쯤이면 이곳에서는 수십년이 흐른 뒤이니 수련을 어느 정도 끝마쳤을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한야성은 그날을 위해 격투기 교본을 자세히 보며 공부를 시작했다.\n\n그렇게 집에서의 시간으로 한달이 지났다. 대학은 이제 여름방학을 앞두고 있었다. 한야성은 그동안 학교와 집, 저쪽 세계를 오가며 수련에 수련을 거듭했다. 이곳에서는 한달이 지났지만 저쪽 세상에서는 벌써 1년 넘게 보내왔다. 격투기와 특공무술, 복싱까지 익혔고, 사냥칼로 칼 쓰는 방법도 충실히 훈련하고 있었다. \n\n그래서 한야성의 몸은 자기도 모르는 새 많이 변해 있었다. 체형이 균형잡히면서 몸이 탄탄하게 되어 있었고, 얼굴도 젖살이 다 빠져 있었다. 친한 친구들이라면 그걸 금세 알아차렸겠지만 한야성은 오다가다 인사하는 애들이 전부였기에 다들 그 변화를 자세하게 알아보지는 못했다. 단 한사람, 학과 건물 앞에서 우연히 만난 미스테리 동아리의 회장인 장은아만이 알고는 조금 놀라워했다.\n\n“너 요즘 무슨 운동하니?”\n\n“네. 그냥 좀...”\n\n“어린애 티가 좀 없어졌다. 아주 좋은데.”\n\n그 말 그대로 한야성은 앳된 얼굴이 사라지고 점차 남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1년이나 수련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n\n“다음주에 우리 엠티 있는거 알지?”\n\n“네. 근데 저는 못갈거 같은데요.”\n\n“왜? 바쁘니?”\n\n“그건 아니지만...”\n\n동아리 사람들과 함께 어딘가로 간다는 것이 어색해서 그런 것이었다. 장은아는 그걸 눈치채고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n\n“괜찮아. 너도 알다시피 우리 회원들 다 순진하잖아.”\n\n그렇긴 하다. 미스테리 동아리는 모임도 적고 술자리도 갖지 않는다. 다른 동아리들은 허구헌날 술자리 모임이 있었는데 여긴 그렇지 않은 것이다. 아니, 다들 개인적인 일을 중시했지 동아리 모임에 열성적이지 않았다. 회원들은 대부분 내성적이었고, 남 앞에 자신을 드러내기를 싫어했다. 아직 동아리 엠티를 가본 적은 없었지만 술도 별로 안 마시면서 조용히 놀다 온다고 하였다.\n\n“야성이 너도 동아리 엠티는 한번 가봐야지. 뭐든 한번 해보고 안 하는 거야.”\n\n은아 선배가 권유를 계속하기에 한야성도 결국 가기로 하였다. 동아리 엠티가 어떤 건지 한번은 겪어보고 싶어서였다. 은아 선배 말대로 엠티가 마음에 안 들면 다음에는 안 가면 되는 거였다. 그 자리에서 회비 5만원을 내고는 은아 선배와 헤어졌다.\n\n편의점에서 먹을 것을 가득 사고 집으로 온 한야성은 다시 포탈로 들어갔다. 이건 이제 매일같은 일상이었다. 한번 들어가면 이제는 30일 정도 있다가 나왔다. 그래봤자 집에서는 겨우 5시간 정도 지난 시간이었다. 그래서인지 편의점 여자 알바의 눈빛이 좀 이상했다. 매일매일 식료품을 잔뜩 사가니 어디 피난가거나 사재기 하는 식으로 쳐다보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에는 대형 마트에 가서 사올 생각이었다.\n\n훅훅!\n\n한야성은 부서진 기둥 근처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격투기 연습을 했다. 1년이나 훈련해서 그런지 이제는 두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었다. 돌려차기, 내리찍기, 무릎치기, 공중에서 360도 회전하며 하는 발차기까지 막힘이 없었다. 아무리 1년이나 수련했어도 이건 좀 과한 면이 있었다. 한야성은 그게 이상하기만 했다.\n\n“여기 중력이 좀 가벼운가?”\n\n자신은 운동치였다. 평소 운동신경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중고등학교 때 학교에서 축구를 하든 농구를 하든 제대로 하질 못했다. 너무 못해서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하지를 않았다. 달리기도 느려서 항상 걷기만 했다. 그랬던 자신의 몸이 이제는 펄펄 날라다니고 있었다. \n\n여기서 살면서 뭔가 몸에 변화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감각이 좋아지고, 시력이 좋아졌다. 저쪽 세상에서는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여기 와서 살면서 자신이 마치 초인이 되가는 것 같았다. \n\n그래서 더욱 이곳에 와서 사는 것일지도 몰랐다. 아직 확증은 없지만 병든 사람도 여기 와서 몇 달 살면 건강해질 것 같았다. 아니, 분명 건강해질 것이다. 여기서의 물과 산소는 정말 너무 좋았으니까. 지구에 있는 물과 산소와는 확연히 달랐다.\n\n한야성은 다시 복싱 연습을 하고, 특공 무술 훈련을 했다. 몸이 잘 반응하니 훈련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물론 처음에는 억지로 했다. 숲 안쪽 깊숙이 들어가기 위해 기초만 일단 익혀보려 했기 때문이다. 목표를 확고히 잡지 않고 했기 때문에 초반 훈련은 지지부진 했다. \n\n그러나 그게 일주가 지나고 이주가 지나 한달을 넘어가 몸이 서서히 적응하면서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제는 하루라도 훈련을 안 하면 마음이 답답하고 몸이 찌푸둥했다. 매일매일 이곳에 와서 훈련을 해야 만족감이 들어서 집에 돌아가 목욕한 후 잠을 푹 잘 수가 있었다. \n\n한야성은 큰 사냥칼을 들고는 칼 쓰는 연습을 했다. 이미 교본이나 인쇄물에 있는 지식은 다 흡수해서 완전히 외운 상태였다. 여기 와서 살며 깨끗한 산소를 종일 마셔서 그런지 머리도 좋아졌다. 집중력이 올라가면서 암기와 이해를 더 빨리 할 수 있었다.\n\n휙휙!\n\n한야성은 오른손 왼손을 번갈아 가면서 사냥칼을 쓰며 자신이 정말 변하고 있다고 느꼈다. 이런 상태라면 저쪽 세상으로 가서도 누군가에게 질 것 같지가 않았다. 늘 평범해서 싸움도 제대로 못했는데 이제는 달랐다. 서너명 정도까지는 어쩌면 상대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겨났다. 분명 몸이 달라져 있었고, 눈이 달라져 있었다. \n\n자신이 뭔가 한꺼풀 벗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단단한 껍질을 깨고 나왔다고나 할까. 만족감과 함께 자신감이 충만했다. 자신을 늘 지배하고 있던 자괴감이나 불만족, 허무, 의욕 없음은 이제 사라져 있었다. 아니, 아직 가슴 밑바닥에는 그것들의 잔재가 있었지만 이제는 대놓고 드러나지는 않고 있었다. \n\n한야성은 그래서 이 세계가 좋았다. 이곳은 구원의 땅이자 자신에게 있어 유일한 낙원이었다. 한야성은 땀에 흠뻑 젖은 채 수련을 하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n\n대학이 여름방학을 시작하는 날, 미스테리 동아리는 엠티를 가게 되었다. 남자 6명에 여자 4명해서 총 10명이었다. 근데 목적지가 뜬금없게도 무인도였다. 며칠전 한야성이 동아리실을 나오지 않을 때 다들 모여서 어디로 갈까 결정을 했는데 남해에 있는 무인도로 정했다는 것이다. 미스테리 동아리이니 조금은 미스테리하게 가야 한다고 해서 그렇게 결정이 되었다고 했다. \n\n그래서 2박 3일 동안 무인도 여행을 하게 되었다. 한야성은 그게 좀 아쉬웠다. 그 포탈 세계로 가면 다들 좋아할 텐데... 진짜 미스테리에 어울리는 곳이니 말이다. 그래도 말할 수 없으니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 기차를 타고 남해까지 가서 식료품을 잔뜩 산 뒤 다시 배를 타고 무인도로 들어갔다. \n\n선장 아저씨는 이틀 후에 오겠다고 한 뒤 돌아갔다. 아무리 무인도라고 하지만 휴대폰이 터지는 곳이었다. 게다가 어부들이 잠시 쉬다 가는 곳인지 천막을 비롯한 여러 시설도 있었다. 무인도지만 완전한 무인도는 아니었다.\n\n일행들은 먼저 텐트부터 치기 시작했다. 남자들은 남자 텐트를 쳤고, 여자들은 여자 텐트를 쳤는데 처음부터 난항이 계속되었다. 3학년 선배가 15인용 텐트를 가지고 왔는데 너무 커서 잘 쳐지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남자 6명이 우왕자왕 하면서 금세 2시간을 날려버렸다.\n\n“야, 이거 좀 어렵다.”\n\n“너무 커서 그런거 아니에요? 무슨 텐트가 운동장 만해.”\n\n다들 어려움을 호소했다. 한야성은 이상하게 텐트를 빨리 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나서기가 싫어서 그냥 보조만 했다. 이런 것도 재미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도적으로 텐트 쳐서 주목받기 싫었기에 선배와 동기들이 헤메는 대로 그냥 구경을 하였다. 결국 여자 텐트를 다 치고 온 은아 선배가 주도하여 다시 남자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침착한 은아 선배가 지시를 내리면서 남자 텐트는 1시간만에 다 칠 수가 있었다.\n\n────────────────────────────────────\n\n<-- 야성의 전설 --> \n\n“여기서 20명도 자겠다.”\n\n은아 선배가 너무 텐트가 크다는 식으로 고개를 젓고는 돌아갔다. 아닌게 아니라 텐트가 너무 커서 침대를 하나씩 놓아도 될 정도였다. \n\n“그래도 넓어서 좋네요.”\n\n좁은 것보다는 넓은게 좋았기에 남자들은 다들 만족했다. 미스테리 동아리의 남자들은 다들 초식성이었다. 그래서 편하게 느껴졌다. 여자들 4명도 다들 순한 초식성이었기에 불편한 사람은 없었다. 텐트를 다 치고 나서는 밥 먹을 준비를 했다. \n\n다 함께 밥을 하면서 김치 찌개를 비롯한 여러 반찬을 만들었다. 사람들과 함께 모닥불을 피워놓고, 바다를 바라보며 버너를 켜고 밥을 하면서 반찬을 만드니 운치가 있었다. \n\n저쪽 세상에서는 늘 혼자 밥을 해서 먹었기에 더 그랬는지도 몰랐다. 밥이 다 된 후 삼겹살을 넣은 김치찌개, 그리고 여러 반찬과 함께 식사를 했다. 맛이 꿀맛이었다. 무인도에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먹는 밥은 정말 맛있었다. \n\n한야성은 요즘 입맛이 더 돌았기에 두공기나 먹었다. 다들 배불러 하면서 좋아했다. 식사 한 것들을 다 치운 뒤 어둠이 내린 사이 다들 모닥불 앞에 모여 준비한 이야기를 했다." } ]
[ { "role": "system", "content": "당신은 다양한 글쓰기 스타일에 적응하는 다재다능한 작가입니다." }, { "role": "user", "content": "독자가 즐길 수 있는 소설을 써주세요." }, { "role": "assistant", "content": "미스테리 동아리인 만큼 미스테리한 것을 각자 하나씩 얘기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먼저 대형 텐트를 가져왔던 3학년 남자 선배가 포문을 열었다.\n\n“이건 내가 얼마전에 들은건데, 정말 무서운 거야. 해도 되겠어?”\n\n“해봐. 그럴려고 하라는 건데.”\n\n은아 선배가 당연히 해야 한단 식으로 대꾸를 했다. 밤이 되어 어두운 무인도에서 파도 소리를 들으며 모닥불을 피워놓고 둥글게 앉아서 다들 약간은 긴장한 얼굴로 3학년 선배의 얘기를 듣기 시작했다.\n\n“어떤 흉가에 관한 거야. 나 아는 사람이 어느 시골집의 흉가에서 하룻밤을 자게 됐대.”\n\n그걸 시작으로 다들 하나씩 준비한 미스테리한 이야기를 하였다. 한야성은 자기 차례가 돌아오면서 어떤걸 해야 할까 고민했다. 거짓으로 지어내기는 그렇고 포탈 얘기는 하면 안 되겠고... 해서 절충하기로 하였다.\n\n“자, 그럼 이번에는 한야성.”\n\n은아 선배의 지목에 다들 한야성을 쳐다보았다. 이런 주목을 받는건 어색해서 한야성은 모닥불을 보며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n\n“오래전 일이에요. 제가 실제로 겪은 일인데... 어느날 포탈이 열렸어요.”\n\n“포탈?”\n\n남자 동기 중 하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갑자기 포탈이라고 하니 좀 뜬끔없었던 모양이었다. 회장인 은아 선배가 즉시 제제를 가했다.\n\n“지방 방송은 금지. 듣기만 하는 거랬다.”\n\n“아, 죄송합니다.”\n\n맥을 끊는다고 해서 누군가 얘기할 때 끼어들기는 금지였다. 한야성은 계속 얘기를 이었다.\n\n“이상한 빛에 쌓인 포탈이었어요. 투명하기도 하고 깨끗하기도 한... 전 저도 모르게 손을 뻗다가 그 빛속으로 들어가고 말았어요. 그리고 눈을 떠보니 처음 보는 곳에 와 있었어요. 사방이 숲이고 색깔이 다양한 나무들이 있는 곳이었어요.”\n\n다들 조용히 한야성의 얘기를 경청했다. 머릿속으로 어떤 곳인지 떠올리는 것 같기도 했다.\n\n“처음에는 뭔지 몰랐어요. 꿈인가 싶기도 하고, 환각인 것 같기도 하고... 주변을 돌아보는데 지구인 것 같지 않았어요. 나무도 크기와 모양이 달랐고, 작은 동물들도 생긴게 달랐거든요. 그래서 뭔가 외계 행성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서 그 빛이 포탈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n\n한야성은 자신이 겪은 일을 얘기하고 있는 중이었다. 어찌됐든 미스테리 하니까.\n\n“하지만 사람은 없었고, 외계인도 없었어요. 어쩌면 있을지도 모르는데 약간 무서워서 숲을 나갈 수가 없었거든요. 그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뭔가 있을 것 같기도 한데 혹시나 위험할까봐 가지 못했어요. 그러던 중 하루가 지났고 다시 그 빛이 나타났어요. 전 바로 거기로 들어갔고, 다시 이쪽 세상으로 돌아올 수가 있었죠. 그 후로는 거길 가보지 못했어요. 지금도 그게 꿈이었는지 환상이었는지 알 수가 없어요.”\n\n한야성은 약간의 거짓도 첨가해서 이야기를 끝마쳤다. 다들 조용히 듣다가 박수를 쳤다.\n\n“그게 만약 꿈이 아니라면 대단한건데 말야. 소설 책에서 보거나 지어낸 얘기는 아니지?”\n\n2학년 여자 선배가 물어보았다.\n\n“아니요. 그런거는 얘기할 필요가 없죠. 지어낸 얘기는 더 재밌는게 많으니까요.”\n\n“그렇기는 하다. 이건 잔잔한 얘기라...”\n\n다들 뭔지 몰라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이런 얘기를 처음 듣는 것 같았다. 한야성도 직접 겪어보지 않았다면 이런 얘기를 할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한동안 조용한 시간이 흐르는 그때 동기 중 한명이 말을 꺼냈다.\n\n“혹시 녹색 안개 그런거랑 비슷한거 아닐까요? 예전 유럽에서 녹색 안개가 나타나면 사람들이 없어졌다고 그랬잖아요.”\n\n“그랬지. 그럼 그것도 혹시 포탈일까? 다른 세계와 연결해주는?”\n\n“세상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스테리한 일이 많아.”\n\n그 이후로 다들 여러 가지 얘기를 하였다. 한야성은 자신이 얘기한 것에 대해 만족했다. 한번쯤은 누군가에게 그쪽 세상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 이런 식으로라도 할 수 있었으니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처럼 속이 좀 후련했다. \n\n마지막 사람까지 미스테리한 얘기를 하고 난 뒤 밤 10시경이 되어 파장 분위기가 되었다.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정리를 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은아 선배의 휴대폰이 울렸다.\n\n“어, 나야. 지금? 온 거야? 응. 근데 지금 배가 뜰까? 알았어. 내가 선장님한테 전화를 해볼게.”\n\n은아 선배가 전화를 끄는 것을 보면서 다른 3학년 남자 선배가 궁금해하며 물었다.\n\n“누군데?”\n\n“유진이. 지금 왔대. 배 어디서 타냐고 물어보는데?”\n\n“최유진? 걔가 왜?”\n\n“나도 모르지.”\n\n대화를 들어보니 3학년의 최유진 선배가 이곳까지 왔다는 소리인 것 같았다. 지금까지 한번도 동아리에 나온 적이 없었는데 뜬금없이 엠티에 왔다고 하니 다들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래도 동기를 비롯한 남자들은 좋아했다. 어찌됐든 최유진은 학교에서 알아주는 퀸카였으니까. \n\n한야성도 회원을 모집하는 최유진에게 걸려서 얼떨결에 가입을 한 것이니만큼 모르는 사이도 아니기에 불편하게 느끼지는 않았다. 은아 선배가 선장과 통화하는 사이 남은 사람들은 설거지를 하고, 주변을 대충 청소했다. 다들 최유진 선배가 온다고 하니 모닥불 앞에 앉아서 기다렸다.\n\n“얘 또 술 사가지고 오는거 아닌가 모르겠네.”\n\n은아 선배가 걱정스런 기색을 하였다. 3학년 남자 선배도 금방 얼굴에 그늘이 졌다.\n\n“재작년처럼 그러는건 아니겠지?”\n\n“모르지. 유진이야 어디로 튈지 모르니까.”\n\n재작년에 뭔가 일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동기 중 하나가 궁금한지 은근히 물어보았다.\n\n“무슨 일 있었어요?”\n\n3학년 남자 선배가 한숨을 내쉬며 대답을 했다.\n\n“재작년 겨울에 치악산으로 엠티를 갔는데 유진이도 왔었거든. 근데 술을 진탕 마시고 난리를 쳐서 민박집에서 쫓겨났어. 겨우 겨우 사정사정 해서 다시 들어갈 수 있었는데 주변에 온 타 대학 학생들의 눈초리가 많이 안 좋았지. 그래도 유진이가 워낙 예쁘니까 그다지 심하게 뭐라고 하지는 않았는데 골치는 좀 아팠어. 특히나 은아가 고생 많았지. 막 여기 저기 뛰쳐나가려는 유진이 붙잡고 밤새 있어야 했으니까. 그래서 그때 선배들이 다시는 유진이 데리고 엠티 가지 말자고 했을 정도였어.”\n\n다들 그 얘기를 듣고는 웃었다. 어쩐지 머릿속에서 상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학교 퀸이라 불리는 최유진 선배에 어울리지 않게 술주정이 심한 모양이었다.\n\n“근데 왜 갑자기 뜬금없이 우리 엠티에 온 거지. 다른 곳도 가는데 많을 텐데.”\n\n3학년 선배는 그게 잘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최유진 선배는 활동하는 동아리가 10군데나 있다고 하니까.\n\n은아 선배가 한숨을 쉬었다.\n\n“며칠 전에 우연히 만나서 우리 엠티 가니까 나오라고 했어. 근데 정말 올줄은 몰랐네.”\n\n그냥 지나가는 말로 엠티에 나오라고 했던 모양이었다. 어쨌든 최유진 선배도 미스테리 동아리의 회원이니까. 근데 정말로 오니 막막한 얼굴이었다. 늘 침착하고 조용한 성격의 은아 선배인데 최유진 선배는 골치 아픈 모양이었다. \n\n시간이 좀 지나자 멀리 밤바다에서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n\n“얘들아!”\n\n어떤 여자가 바다에서 크게 소리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모터 보트 한 대가 속력을 줄이면서 무인도로 가까이 다가왔다. 보트 안에서는 늘씬한 몸매의 최유진 선배가 웃으며 두손을 든 채 흔들고 있었다. \n\n보트가 무인도에 대어지고 최유진 선배가 폴짝 뛰면서 모래 사장에 내렸다. 다들 가까이 다가가는 사이 보트 운전사가 가방을 내려주었다. 최유진 선배는 가방을 들고는 쳐다보며 반갑다는 듯이 소리쳤다.\n\n“모두들 반가워!”\n\n은아 선배가 가까이 다가가며 말을 걸었다. \n\n“너 진짜 온 거야?”\n\n“응. 오라며?”\n\n“전에는 안 왔잖아. 왜 온 거야?”\n\n“야, 진짜 서운하다. 동기 사랑 나라 사랑인데 내가 와서 싫어?”\n\n“안 오다가 갑자기 오니까 그렇지.”\n\n그렇게 얘기하는 사이 보트 운전사가 허리를 굽인 채 뭔가를 들면서 외쳤다.\n\n“이것 좀 받아.”\n\n3학년 남자 선배가 가까이 다가가며 반문했다.\n\n“뭔데요?”\n\n“술인데?”\n\n그러면서 맥주병이 가득든 궤짝을 넘겨주었다. 3학년 선배가 그걸 받아들고 다른 2학년 선배도 받아 들었다. 맥주 두 궤짝에 팩소주 한박스였다. 그걸 보는 모두가 순간 어이가 나가버렸다.\n\n“무슨 술을 이렇게 많이 사 왔어?”\n\n은아 선배가 질린다는 얼굴을 했는데 유진 선배는 별거 아니라는 투였다.\n\n“10명 정도 되니까 이 정도는 필요하지. 다들 술 안 마셔?”\n\n“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많잖아. 팩소주가 한 박스라니...”\n\n은아 선배는 기가 차는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늘 포커페이스인 은아 선배였는데 유진 선배에게는 그게 안 되는 것 같았다. 보트 운전사는 마지막으로 커다란 짐을 내려주었다. 그건 한야성이 동기와 함께 받았다. 뭔가 굉장히 크고 무거운 짐이었는데 김치 냄새가 안에서 났다. 최유진 선배는 보트를 몰고 나가는 운전사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n\n“아저씨, 고마워요!”\n\n“잘 놀다들 와.”\n\n보트가 떠나가자 웃고 있던 최유진 선배가 돌연 인상을 찡그렸다.\n\n“어휴, 저 응큼한 아저씨. 오는 내내 내 가슴하고 엉덩이 쳐다보네.”\n\n그도 그럴 것이 최유진 선배는 짧은 청반바지에 봉긋한 가슴이 다 드러나는 하얀 쫄티를 입고 있었다. 그걸 보고 안 쳐다볼 남자는 없을 것이다. 지금 무인도에 있는 남자들도 다들 힐끔 힐끔 쳐다보고 있었으니까. 최유진 선배가 너무 섹시하게 차려입고 온 것이다. 글래머로 몸매가 워낙 좋아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n\n“휴우, 어쨌든 왔으니까 가자.”\n\n은아 선배가 한숨을 쉬며 모닥불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최유진 선배는 남자들을 마치 머슴 취급하며 이끌었다.\n\n“자, 빨리 들고 와. 한잔 해야지.”\n\n그러면서 한야성과 동기가 들고 있는 무거운 짐을 쳐다보았다.\n\n“그건 고기하고 김치하고 쌈채소가 가득 들었어. 쏟아지지 않게 조심해.”\n\n김치 냄새가 난다 했더니 먹을 것들이 담겨 있는 모양이었다. 선배들과 한야성 등은 술박스와 먹을게 담긴 짐을 들고는 모닥불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최유진 선배는 모닥불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썰렁한 텐트 앞을 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n\n“이거 뭐야? 은아야, 왜 아무것도 없어?”\n\n“밥 먹고 지금 자려고 하던 중이었어.”\n\n“벌써 자? 미쳤니? 기껏 놀러왔는데 밤새 놀아야지.”\n\n도리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최유진 선배가 가방을 내려놓고는 궤짝에서 맥주병을 꺼냈다.\n\n“일단은 맥주부터 마셔야지? 고기도 구워야 하니까 다들 준비해. 소고기, 돼지고기, 오리고기 다 사왔어. 너희 여자애들은 쌈채소 씻어오고.”\n\n마치 여왕처럼 이것저것 시키는 최유진 선배였다. 근데 웃기게도 다들 그걸 군말없이 따르고 있는 것이었다. 한야성도 후라이펜을 들고 고기 구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최유진 선배는 확실히 묘한 매력과 포스가 있었다. 이러니 은아 선배가 제어를 못해 골치 아파하는 것 같았다. \n\n────────────────────────────────────\n\n<-- 야성의 전설 --> \n\n다시금 먹자판이 벌어졌다. 후라이펜마다 고기가 구워지고, 김치가 구워지며 맛난 냄새를 풍겼다. 그러면서 이리저리 맥주병이 오갔다. 한야성도 맥주 한병을 들고는 조금씩 마셨다. 원래는 술을 못 마시는데 분위기상 마시는 흉내를 내었다. 전과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이라 할 수 있었다. 전에는 아예 분위기도 못 맞춰서 도중에 나오기 일쑤였으니까. \n\n한야성은 두어번 학과의 술자리 모임에 갔다가 적응을 못해서 나온 후 그 다음부터는 두 번 다시 가지 않았다. 술자리 모임에 안 나가니 자연 학과에서 아웃사이더가 될 수밖에 없었다. 다들 술마시면서 친해지는데 그걸 못하니 친해질 수가 없는 것이다. 근데 지금은 이런 분위기가 괜찮았다. 분명 그쪽 세상에서 지내면서 자신의 내면에 있는 뭔가가 변한 것이 틀림없었다.\n\n“야, 니들 뭐해? 얼른 마셔. 원래 이런데 와서는 마시다 죽는 거야.”\n\n최유진 선배가 청반바지 차림의 예쁜 엉덩이를 흔들며 분위기를 발랄하게 주도하니 순진한 미스테리 동아리 회원들도 조금 풀어졌다. 다들 맥주병을 들고는 마시고 있었고, 어느샌가 웃고 떠들고 있었다. 모두가 조용한 성격이었는데 최유진 선배 한명 왔다는 이유만으로 분위기가 들뜨고 있었다. 심지어 은아 선배조차도 맥주를 마시면서 은근히 웃고 있었다. \n\n어쩌면 엠티 첫날 약간은 재미없게 지나갈 수 있었는데 그것이 완전히 반전되었다. 고기는 굽는대로 없어지고 있었고, 빈 맥주병도 점차 늘어났다. 최유진 선배는 확실히 주도권을 잡을 줄 알았다. 다들 쌈을 싸라고 하더니 옆 사람에게 주라고 한 것이다. \n\n미스테리 회원들은 다들 어색해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쌈을 싸서 옆 사람에게 먹여주었다. 이런 식으로 최유진 선배는 서로가 친해지게 만들고 있었다. 한야성은 동기 여자애가 수줍어하며 싸주는 쌈을 받아먹었고, 2학년 남자 선배에게 쌈을 싸서 입에 넣어주었다. \n\n간단한 행위인데 몹시 기분이 이상했다. 금세 더 친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든 것이다. 최유진 선배는 맥주 몇병을 마시고는 약간 취기가 오른 얼굴로 말했다.\n\n“다들 놀러왔으면 재밌게 놀아야지. 내가 스트립쇼라도 할까?”\n\n그러면서 하얀 쫄티를 벗으려고 하자 은아 선배가 기겁하며 말렸다.\n\n“너 또 왜 이래?”\n\n“왜에? 은아 너도 벗어.”\n\n그러더니 갑자기 은아 선배의 상의를 벗기려고 했다. 은아 선배가 더 놀라며 뒤로 도망갔다.\n\n“어휴, 얘 또 시작이야.”\n\n골치 아프다는 듯이 은아 선배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녀의 포커페이스는 최유진의 귀여운 술주정에 완전히 무너졌다. \n\n“니들 은아 몸매가 얼마나 예쁜지 모르지? 예전에 나랑 같이 목욕한 적이 있는데 읍...”\n\n은아 선배가 설산 비호처럼 뛰어들며 최유진 선배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저렇게 빠른줄 처음 알았다. 그래서 다들 놀란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어쩌면 은아 선배의 저런 모습이 더 놀라웠는지 모른다. 늘 침착하고 조용했는데 그 이미지를 완전히 파괴하고 있었다.\n\n“너 죽어. 하지마.”\n\n은아 선배가 사납게 협박하자 최유진 선배가 바로 꼬리를 내렸다. 그러더니 다른 제안을 했다.\n\n“우리 게임하자, 게임. 키스 게임 어때? 남자들 좋지?”\n\n다들 어벙벙해서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남자들은 그냥 얼이 빠져 있는 상태고 여자들은 이게 뭔가 하는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기분 나빠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뭔가 색다른 기대감을 갖고 있는 듯한 눈치였다. 이런 식으로 노는건 모두에게 처음이었으니까. 한야성도 색다른 재미에 빠져 있었다. \n\n엠티라고 해서 그냥 조용히 며칠 놀다 오는줄 알았는데 최유진 선배가 가세하면서 그게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분명 이런 식으로도 한번 놀아보고 싶었던게 한야성의 본심이었다. 그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로 보였다. 자기 스스로는 못하니 누군가 멍석을 깔아주길 바랬던 것이다. 게다가 술기운도 올랐으니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n\n하지만 다들 숫기가 없어서 머뭇대며 대놓고 찬성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최유진 선배는 그게 답답한지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탁탁 쳤다. 그때마다 큰 가슴이 출렁거렸다.\n\n“어휴, 이 바보들! 아직도 이러고 있네. 옛날에도 그러더니. 내가 그래서 미스테리 동아리에 잘 안 나오는 거야. 재미가 없어서. 놀 땐 놀아야지, 뭘 눈치만 보고 있어. 오늘 내가 확실히 놀게 해줄게. 키스 게임부터, 팬티 벗기기 게임, 더 심한걸 원하면 그거 빨아주기 게임, 엉덩이 벌리기 게임, 그리고 또 웁...”\n\n너무 적나라한 얘길 하자 은아 선배가 다시금 급히 일어나 유진 선배의 입을 막았다. 그러면서 귀에 대고 속삭였다.\n\n“최유진, 적당히 해라. 안 그러면 너네 아빠한테 다 이른다.”\n\n“으... 비겁해.”\n\n뭔가 약점이 있는지 또다시 금세 꼬리를 내리는 최유진 선배였다. 아빠 운운 한걸로 보아 집안끼리도 서로 아는 것 같았다. 최유진 선배네는 굉장한 부자라고 했다. 은아 선배도 티는 안 나지만 집이 부자인 것 같았다. 이때 3학년 남자 선배가 새 맥주병을 들며 웃었다.\n\n“쟤네들 2년 전이랑 어쩜 저리 똑같냐.”\n\n“그러게 말이다.”\n\n다른 3학년 남자 선배도 우스운지 고개를 젓고 있었다. 엠티 온 인원 중에 4학년은 없었고, 3학년이 4명, 1학년이 4명, 2학년이 세명이었다. 최유진 선배가 와서 총 11명이었다. 4학년은 취업 준비에 바빠서 동아리에 아예 나오질 않았다. 3학년의 두 남자 선배는 8월에 입대하기로 되어 있어서 사실상 마지막 엠티였다.\n\n“자자, 키스 게임 시작하자. 이건 남자끼리 걸려도 여자끼리 걸려도 반드시 해야 하는 거야. 아, 물론 남녀가 걸려도 무조건 해야 하지.”\n\n은아 선배에게서 벗어난 최유진 선배가 다시금 주도권을 잡았다. 키스 게임에 반대하는 사람은 당연히 없었는데 조금 난처해하는 얼굴들을 했다. 하지만 설마 진짜로 시키랴 해서 농담처럼 알아듣고 있었다. \n\n하지만 한야성은 그게 진짜라는걸 느낌상 알 수 있었다. 최유진 선배가 농담처럼 그냥 하는 말이 아님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뭔가 잘 모르겠지만 진짜로 할 기세가 엿보였다. 다들 그게 안 보이는데 자신만 그렇게 보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몇 번 머리를 흔들기까지 했다.\n\n“자, 반대하는 사람 없지? 그럼 게임 시작한다.”\n\n최유진 선배는 마치 악마처럼 예쁘게 웃더니 게임에 대해 설명했다.\n\n“다른거 없어. 끝말잇기야. 틀린 사람은 그 다음 사람과 키스를 해야 해. 그러니까 키스하고 싶으면 틀리란 소리야. 자리는 여자들이 매번 이동할 거야. 그러니까 키스하고 싶으면 남자들은 무조건 틀리도록 해. 오늘만큼은 합법적으로 키스할 수 있어. 자, 그럼 자리 이동.”\n\n최유진 선배가 한데 뭉쳐 있는 여자들에게 다가가 일어나게 했다. 2학년 여자 선배들과 1학년 동기 여자애는 거의 울상이 되어 어쩔줄을 몰라했다. 설마 진짜로 할줄은 몰랐다는 얼굴이었다. 은아 선배는 아예 포기 상태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n\n그런데 웃긴게 아무도 반대를 안 한다는 거다. 이쯤에서 안 할래요! 하면서 누군가 정색하고 반대하면 안 할 수 있는데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남자들은 그냥 눈치만 보고 있었고, 여자들은 최유진 선배가 이끄는대로 남자들 틈에 한명씩 앉아 안절부절 했다. 뭔가 묘한 분위기였다. 남자들은 전혀 반대를 안 했다. \n\n남자끼리 하라면 결사 반대 하겠지만 여자들이 옆에 앉으니 반대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였다. 한야성도 양옆에 앉은 은아 선배와 2학년 여자 선배를 보면서 긴장했다. 이거 진짜 시키려나... 하는 마음이 들어서 가슴이 좀 두근거렸다. \n\n한야성은 아직 여자와 키스를 해본 적이 없었다. 물론 손도 잡아본적 없었다. 그렇기에 여자에 대해서는 전혀 면역이 없었다. 얘기도 별로 안 해봤다. 이때 최유진 선배가 3학년 남자 선배들 사이에 앉았다.\n\n“자, 그럼 시작한다. 키스하고 싶으면 틀려.”\n\n진짜 게임을 하려고 하자 그제야 현실임을 깨달았는지 여자들이 놀라고 은아 선배가 화급히 물었다.\n\n“뭐, 뭐야? 진짜 할려고?”\n\n“그럼.”\n\n“아무리 그래도... 키스는 안 돼.”\n\n“그럼 간단한 뽀뽀?”\n\n“아니, 그것도... 그냥 벌칙 같은 것으로 하면 어때?”\n\n은아 선배가 그렇게 운을 떼자 다른 여자들도 모두 찬성했다.\n\n“그래요. 간단한 벌칙으로 해요. 키스는 너무...”\n\n키스를 바라던 남자들은 당연히 실망했다. 하지만 진짜 키스를 하기에는 남자들도 민망했기에 반대는 하지 않았다. 간단한 볼 뽀뽀 정도를 염두하는 것 같았다. 최유진 선배는 여자들이 다 반대하자 미간을 찡그리더니 절충을 했다.\n\n“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틀린 남자한테 키스를 받아야 할 옆의 여자가 벌칙을 지정하는 거야. 즉, 여자는 키스하기 싫으면 남자한테 벌칙 받게 하면 돼. 벌칙은 음, 그래. 저 바다에 입수하는게 어때?”\n\n“헉!”\n\n남자들이 모두 놀랐다. 아무리 여름이라지만 밤바다는 춥다. 그런데 벌칙으로 입수를 하라니 모두 난감한 얼굴들을 하였다. 여자들도 그건 좀 심하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n\n“저기 입수는 너무 심한거 같아요. 감기라도 들면...”\n\n1학년 동기 여자애가 약하게 반대를 표했다. 그거에 은아 선배가 동의했다.\n\n“여기서 아프면 바로 배 불러서 나가야 돼. 입수는 안 돼. 다른 벌칙으로 하자.”\n\n최유진 선배는 김이 샌다는 얼굴이었다.\n\n“에휴, 이것도 저것도 못하게 하네... 이 범생이들하고 대체 뭘 해야 하나. 알았어, 그럼 다른 벌칙으로 하자. 음... 좋아, 남자들 알몸 스트립쇼는 어때?”\n\n“절대 안 돼!”\n\n이건 남자들이 전부 반대했다." } ]
[ { "role": "system", "content": "당신은 상상력이 풍부한 창의적 작가입니다." }, { "role": "user", "content": "소설을 창작해주세요." }, { "role": "assistant", "content": "최유진 선배는 여러 벌칙을 제시했는데 전부 민망하고 난처한 것들 뿐이었다. 그래서 결국 최유진 선배가 마지막으로 제안한 폭탄주 마시기로 벌칙이 정해졌다. 게임을 하면서 소주와 맥주를 섞은 작은 폭탄주가 여러번 돌았다. 한야성도 몇 번 틀려서 할 수 없이 마셔야 했다. \n\n다들 폭탄주를 마시면서 하나씩 망가져갔다. 근데 아무도 이걸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한번쯤은 이런 경험을 해보고 싶었던 것일까. 남들은 자주 하는 것인데 미스테리 동아리 회원들은 이런걸 경험해본 적이 없었다. 다들 조용한 성격이고 술자리를 안 가다 보니 그런 것이다. 남들 하는 것 구경만 해봤을 뿐 실제로 해본 적이 없었다. \n\n그렇기에 한번쯤은 이렇게 해보고 싶었는지 몰랐다. 그건 한야성도 다를바 없었다. 이런 경험 한번은 해보고 싶었다. 폭탄주가 계속 돌면서 한명씩 한명씩 맛이 가서 쓰러졌다. 한야성의 동기 남자애들은 여러번 구토하고는 못 견디겠다며 텐트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남자들 대부분이 맛이 가서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여자들도 헤롱거리고 있었다. \n\n최유진 선배가 폭탄주를 안 마실거면 스트립쇼를 하라고 하니 여자들도 다들 억지로 마셨기 때문이다. 근데 한야성은 이상하게 별로 취하질 않았다. 자신은 원래 술에는 쥐약이었다. 대학에 합격한 후 오티에 가서 처음으로 술을 마셨는데 몇잔 마시지도 못하고 다 토해내며 거의 실신 지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n\n어찌나 머리가 아프고 속이 울렁거리는지 두 번 다시 술을 안 마시겠다는 다짐까지 했을 정도였다. 그래서 술자리는 애초에 가지를 않았다. 아니, 학기 초에는 몇 번 갔는데 술 안 마신다고 타박하고, 빨리 마시라고 강제로 권하는 바람에 있을 수가 없었다. \n\n술 안 마시는 사람이 술자리에 있는 것만큼 고역은 없었다. 그냥 조용히 있고 싶어도 너무 권하니까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항상 도중에 빠져나와 집에 가곤 했고, 그게 몇 번 반복되자 그 이후로는 아예 가질 않았다. \n\n한야성도 원래부터 아웃사이더는 아닌지라 술자리에 가서 여러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었지만 술을 못 마시니 그렇게 안 될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는 그냥 팔자려니 생각하고 외톨이처럼 혼자 다닌 것이다.\n\n“어휴, 남자들 왜 이렇게 술이 약해? 이 바보들, 그러니 미스테리부가 초식동물이란 소릴 듣지!”\n\n그렇게 분통을 터트리는 최유진 선배도 상당히 많이 취해 있었다. 은아 선배도 이미 취해서 무릎을 모아 양손으로 감싸안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고, 다른 2학년 여자 선배 둘과 1학년 동기 여자애도 취해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마실 사람은 없는 듯해서 한야성은 정리를 하고자 했다.\n\n────────────────────────────────────\n\n<-- 야성의 전설 --> \n\n“저기, 이제 그만 들어가서 자야 할 것 같은데요.”\n\n“뭐? 자긴 어딜 자? 술이 아직 많이 남았쪄.”\n\n최유진 선배도 혀가 꼬이고 있었다. 지금 맨정신인 사람은 한야성 뿐이었다. 하지만 한야성도 정신만 조금 멀쩡할 뿐 몸은 많이 취해 있었다. 그게 이상하게 느껴졌다.\n\n‘이상해. 전 같으면 아예 기절했을 텐데...’\n\n정신이 온전한게 이상할 정도였다. 아무래도 저쪽 세계에서 1년간 지내며 몸이 정말 건강해진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저쪽 세계를 오가면서 감기 한번 걸리지 않았다. 소화불량도 없었고, 두통도 없었다. \n\n전에는 어쩌다 한번씩 감기에 걸리고, 체해서 고생했으며, 두통 때문에 며칠 동안 약을 먹기도 했는데 저쪽 세계를 오가는 이후 그게 다 없어졌기 때문이다. 확실히 지금 자신의 몸이 건강 체질이 된 것 같았다. 그렇기에 저쪽 세계로 가게 해준 포탈에 더욱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n\n“더 마시자, 더...”\n\n최유진 선배도 맛이 가서는 옆으로 픽 쓰러졌다. 은아 선배를 비롯한 여자들은 취기를 못 이기고 전부 앉아서 잠들어 있었다. 한야성은 난처하기만 했다.\n\n“어쩌지?”\n\n여기서 자면 밤에 추울 것이다. 아니, 얼어죽을지도... 모닥불이 있긴 하지만 대놓고 밖에서 자기는 무리였다. 한야성은 우선 은아 선배부터 깨웠다.\n\n“저기, 선배. 안으로 들어가서 자야 돼요.”\n\n“으응...”\n\n하지만 입으로 대답만 할 뿐 이미 몸과 정신은 자고 있었다. 2학년 여자 선배들도 동기 여자애도 마찬가지였다. 자기 발로 스스로 텐트 안으로는 못 들어갈 것 같았다. 한야성은 고민하다가 남자 텐트 쪽으로 가보았다. 커다란 텐트 안에서 술냄새가 확 풍기며 다들 이리저리 누워서 자고 있는게 보였다. 어떻게 취한 여자들을 텐트 안으로 데려다 놓자고 깨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n\n“아이고... 어쩌지...”\n\n한야성은 취해서 잠든 여자들을 어떻게 텐트 안으로 데려다 놓을지 걱정이 되었다. 물론 한명씩 안아서 데려다 놓으면 되지만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기 때문에 주저하게 되었다. 여자를 두손으로 안는 것 자체가 민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계속 이럴 수는 없었기에 한야성은 일단 조금은 만만한 동기 여자애한테 먼저 갔다. \n\n“안으로 들어가서 자야 해.”\n\n“......”\n\n하지만 대답이 없었다. 술기운으로 이미 정신없이 자는 것 같았다. 하긴 폭탄주를 여러잔 마셨으니... 한야성은 크게 쉼호흡을 하고는 동기 여자애의 무릎 안으로 오른손을 깊이 집어넣고 왼손으로는 등을 받쳤다. 그리고는 번쩍 안아들었다.\n\n“흠...”\n\n생각보다 가벼웠다. 한번에 못 들면 어쩌나 순간적으로 약간 걱정했는데 전혀 무리없이 들 수 있었다. 힘이 많이 세진 것이 느껴졌다. 한야성은 동기 여자애를 공주님 안기로 안은 채 여자들 텐트로 향했다. 동기 여자애는 완전히 맛이 가서 입을 벌린 채 자고 있었다. \n\n한야성은 여자들 텐트 안으로 들어가 조심스레 동기 여자애를 눕혔다. 그 다음에는 2학년 여자 선배들을 차례차례 안아서 텐트 안에 눕혀주었다. 다음으로 은아 선배 차례였는데 그녀는 한야성이 안아들자 갑자기 희미하게 눈을 떴다.\n\n“으응?”\n\n“아, 텐트 안으로 가게요.”\n\n“으응...”\n\n은아 선배는 수긍을 했는지 한야성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얌전하게 안겼다. 은아 선배도 텐트 안에 눕히고 나자 이제 남은건 최유진 선배 뿐이었다. 그녀는 아직 잠이 안 들었는지 누워서 뭔가를 흥얼흥얼 하고 있었다. 한야성은 다가가서 최유진 선배도 번쩍 안아들었다. 이런 저런 얘기하며 시간 보내기보다 그냥 빨리 텐트로 가서 눕힐 생각이었다.\n\n“어? 뭐야, 너?”\n\n최유진 선배가 눈을 게슴츠레 하게 뜨고는 쳐다보았다.\n\n“텐트로 갑니다.”\n\n한야성은 그녀를 안아든 채 여자 텐트로 향했다. 그런데 갑자기 최유진 선배가 두 다리를 바둥거렸다.\n\n“너 이 나쁜 새끼, 나 따먹을라 그러는 거지?”\n\n“네?”\n\n한야성은 어이가 없어서 쳐다보았다. 최유진 선배는 정신이 없는지 입맛을 다시며 헤롱거렸다.\n\n“좋아. 오늘은 특별히 봐줬다. 해봐.”\n\n“뭐를요?”\n\n“나 따먹어 보라고... 너 잘해야 해?”\n\n“하하...”\n\n한야성은 그저 웃음이 나왔다. 이런 술주정도 있구나 싶었다. 더 뭔말이 나오기 전에 최유진 선배를 얼른 텐트로 데려가 눕혔다. 그녀는 누워서도 색정적인 말을 했다.\n\n“빨리 해봐... 나 싸게 만들어봐...”\n\n“쩝...”\n\n한야성은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저었다. 텐트 안에 누워 흐트러져 있는 최유진 선배의 몸은 정말 섹시했다. 이러니 퀸이란 소릴 듣지. 권서하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섹시한 것은 최유진 선배가 위였다. 최유진 선배는 몸 자체가 섹시했다. 한야성도 남자인지라 약간 발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n\n하지만 여자랑 하는건 아직 꿈도 꿔보지 못했다. 사귄 적도 없는데 성경험 같은 것은 아예 생각해보지도 않은 것이다. 지금 텐트 안에서 여자 다섯이 흐트러진 모습으로 누워서 자고 있으니 약간 흥분이 되긴 했다. 술냄새와 함께 여자의 은은한 살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저쪽 세계를 오가며 후각도 좋아진 것 같았다. 확실히 여자 냄새가 났다. \n\n한야성은 그 냄새를 맡으며 약간 아찔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서 그게 더 크게 발기했다. 하지만 뭐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한야성은 아쉬움을 남기면서 여자 텐트를 나와 지퍼를 내리며 닫았다. 누군가 여자를 만나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n\n하지만 옛날의 그 생각이 나서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날 이후 다시는 여자를 좋아하지 않겠다고 맹세까지 했는데... 한야성에게 있어 여자는, 특히 예쁜 여자는 두려운 존재였다. 그러니 그냥 눈으로 보는 걸로만 만족해야 했다.\n\n한야성은 술병 등을 정리하고는 남자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텐트가 넓어서 누울 곳이 아주 많았다. 한켠의 빈 곳으로 가서 눕자 편안했다. 누워서 잠시 생각해보니 엠티라는 것이 생각보다 재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니, 미스테리 동아리 회원들과 함께 와서 재밌었을 것이다. \n\n그것도 최유진 선배가 가세하면서 더욱 재밌어졌고. 학과에서 가는 엠티는 이렇지 않았을 것이다. 너무 적극적인 애들이 많다 보니 학과 엠티를 가면 분명 불편했을 것이다. 한야성은 그런 분위기에는 익숙하지 못했다. 오늘같은 엠티가 딱 좋았다. \n\n촤아아... 촤아...\n\n한야성은 밤바다의 파도치는 소리를 들으면서 편안하고 기분 좋게 잠이 들었다.\n\n다음날 아침이 되어 아침 바다의 파도치는 소리를 들으면서 모두가 우거지상을 한 채 잠에서 깨어났다. 숙취 때문에 다들 정신이 없었다. 남자들은 모두가 멍하니 텐트 안에 앉은 채 바다를 쳐다보며 멍때리고 있었다. \n\n한야성도 예외가 아니었다. 폭탄주의 영향 때문인지 자고 났더니 위가 좀 아프면서 속이 쓰렸다. 그쪽 세계에 있는 시원한 물을 마시고 싶을 정도였다. 그 물을 마시면 단숨에 쓰린 속이 가라앉을 것 같았다. 하지만 없으니 할 수 없이 미지근한 생수로 속을 달래야 했다.\n\n“너희들 다 일어났어?”\n\n은아 선배가 남자 텐트 앞으로 걸어와서는 흘끔 쳐다보았다. 그녀도 상태가 안 좋은지 푸석푸석한 얼굴과 머리를 하고 있었다. 3학년 남자 선배가 우는 소리를 했다.\n\n“응. 근데 속 엄청 안 좋다. 뭣 좀 뜨거운 국물 마시고 싶어.”\n\n“지금 북어국 끓일 거야.”\n\n“북어가 어딨어?”\n\n3학년의 다른 남자 선배가 의아해하며 반문했다.\n\n“유진이가 사왔어. 저게 철저하게 준비했더라구.”\n\n다들 숙취에 시달릴 것을 예상하고 아예 북어까지 사왔던 모양이었다. 참으로 대단한 최유진 선배가 아닐 수 없었다. 다들 어이없어 하며 그래도 북어국을 먹을 수 있단 생각을 해서인지 표정이 밝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폭탄주를 마시면서 기름진 고기만 줄창 먹었으니 위장이 좋을 리가 없었다. 뜨거운 국물이 필요했다. \n\n한야성도 여자들이 끓이는 북어국을 기다리면서 어제의 최유진 선배를 떠올렸다. 그걸 하라고 했다. 오늘만 봐준다면서. 그걸 생각하니 그게 좀 발기가 되었다. 최유진 선배와 그걸 하면 얼마나 좋을까. 아마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일 것이다. 한야성도 남자이기에 성에 대한 욕구가 있었다. 현실은 야동보면서 손장난하는 신세였지만. 언젠가는 여자랑 한번 해보고 싶기는 했다.\n\n여자들이 북어국을 다 끓여서 남자들은 어그적거리며 텐트를 나왔다. 버너 위에서 북어국이 큰 냄비 안에 담긴 채 펄펄 끓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절로 침이 삼켜졌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다들 냄비를 쳐다보며 입맛을 다셨다. 최유진 선배는 아직 자는지 보이지 않았다. 2학년 여자 선배가 국자를 들고 일회용 그릇에 북어국을 담는 사이, 은아 선배가 최유진 선배를 깨우러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n\n“유진아, 일어나. 북어국 먹어.”\n\n“으응... 시러... 졸려...”\n\n“어서 일어나. 옷 입고.”\n\n은아 선배가 달래면서 억지로 일으키자 최유진 선배가 할 수 없이 일어나며 오만상을 구겼다. 그 사이 남자들과 여자들은 시원한 북어국을 먹으면서 감탄사를 자아냈다.\n\n“캬, 좋다. 이맛이야.”\n\n다들 자리에 앉아서 경치 좋은 아침 바다를 바라보며 북어국을 먹었다. 뒤이어 은아 선배와 최유진 선배도 와서 북어국을 들고는 자리에 앉았다. 최유진 선배는 수저로 뜨거운 국물을 떠먹더니 좋아 난리를 쳤다.\n\n“이야, 진짜 좋다! 속이 다 풀린다!”\n\n얼마나 좋은지 두발을 동동거리고 있었다. 확실히 감정 표현을 제대로 하고 있었다. 예쁜 여자는 저런 행동도 다 용서가 된다. 다들 편안한 마음으로 북어국을 먹으면서 시간을 보냈다.\n\n은아 선배는 점심 때까지 자유시간을 주었다. 그러자 남자들은 물고기를 잡아보겠다며 줄낚시를 든 채 바닷가로 나갔고, 여자들은 텐트 안으로 다시 들어가 쉬었다. \n\n한야성은 줄낚시 하나를 든 채 파도가 치는 바위위에 앉아 물고기를 잡아보다가 너무 지루해서 슬그머니 빠져나왔다. 낚시 같은건 취향이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이전 같으면 그냥 했을지도 모르지만 그쪽 세계에서 활동적으로 살아온 습관 때문인지 가만히 앉아서 물고기를 낚는 행위는 취향에 맞지 않았다. \n\n한야성은 혼자 무인도 안쪽으로 들어가 어느 숲에 다다랐다. 몸도 뻐근하고 찌푸둥하니 좀 풀어야 할 것 같았다. 십여분 정도 준비 운동과 함께 스트레칭을 천천히 하고는 몸에 땀이 좀 나자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n\n격투기부터 시작해서 복싱, 특공무술 등 지금까지 배워온 것들을 하나하나 시전을 해보았다. 발차기가 자유자재로 되면서 기분이 많이 상쾌했다. 한야성 자신이 생각해도 정말 장족의 발전이었다. \n\n예전에는 발차기를 해보지도 못했는데 이제는 액션 배우 저리 가라할 정도였다. 공중으로 뛰어올라 두발 차기도 할 수 있고, 360도 회전 발차기도 할 수 있었다. 주먹 쓰는 것보다는 확실히 호쾌한 발차기가 재밌었다. \n\n한동안 신나게 몸을 움직인 한야성은 이윽고 오른발을 높이 올렸다. 요즘 재미가 들려서 하는 훈련이었다. 발 하나만 높이 올려서 땅바닥에 내리지 않고 계속 차기를 하는 것이었다. 팡팡팡, 하는 소리가 조금 나면서 한야성의 오른발이 공중에서 현란하게 움직였다. \n\n왼발로는 중심을 딱 잡고는 오른발만 수없이 움직였다. 초창기에는 이렇게 서너번 정도 하면 힘들고 균형을 잃어서 오른발을 내려야 했지만 이제는 좀 익숙해져서 오분 정도를 해도 괜찮았다. \n\n한야성은 계속 왼발로만 땅을 딛은 채 두 팔로 균형을 잡고 오른발로만 차기를 하다가 다시 왼발로 바꾸었다. 오른발에 중심을 잡고 왼발을 들어 차기를 연달아 했다. 팡팡팡, 허공을 차는 발바닥에서 경쾌한 소리가 났다. 한야성은 계속 차기를 하면서 이러다 뭔가 무술인 같은게 되지 않을까 싶어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n\n“너 뭐해?”\n\n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뒤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야성은 깜짝 놀라 왼발을 땅에 내리고 뒤돌아보았다. 발차기 하면서 딴 생각하느라 누군가가 뒤에 와 있는 것도 몰랐던 모양이었다. 뒤에는 다름아닌 최유진 선배가 멀뚱하니 쳐다보며 서 있었다. 지금 뭐했냐는 듯이. \n\n────────────────────────────────────\n\n<-- 야성의 전설 --> \n\n“아, 선배...”\n\n한야성은 민망해서 딴 곳을 쳐다보며 순간 딴청을 부렸다. 발차기 하는걸 남에게 보이다니 너무 창피했다. 그래서 얼른 화제를 바꾸었다.\n\n“선배들이 물고기 잡았대요?”\n\n“응? 몰라. 근데 너 지금 뭐한거야? 발차기 했지?”\n\n“그게...”\n\n최유진 선배는 화제를 돌린다고 돌려지는 여자가 아니었다. 금세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n\n“너 무슨 무술해? 발이 어떻게 계속 위에 떠 있어?”\n\n“......”\n\n한야성은 너무 쑥쓰러워서 어쩔줄 몰랐다. 이런건 너무 창피했다. 게다가 최유진 선배는 꽤 오랫동안 발차기 하는 걸 본 것 같았다. 어떻게 뭐라 핑계댈 말이 없었다. 최유진 선배는 그에 대한 눈치는 없는지 가까이 다가와서는 꼬치꼬치 캐물었다.\n\n“응? 너 무슨 유단자야? 그렇게 발차기 하는 사람 본적이 없는데.”\n\n“선배는 여기 왜 온 거에요?”\n\n한야성은 다시금 화제를 돌려보았다. 발차기 같은 얘긴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n\n“나? 나 저기서 쉬하다가 너 발차기 하는거 보고 왔지.”\n\n최유진 선배는 아주 태연하게 쉬했단 얘기를 한다. 원래 그런건지 아니면 자신을 남자로 여기지 않는건지 조금 기분이 묘했다. 한야성도 대충 핑계를 대었다.\n\n“그냥 몸을 좀 푼거에요. 무술 영화 같은데서 본거 따라하면서.”\n\n“아니야. 너 엄청난 실력자야. 내 친구들 중에도 운동하는 애들 많은데 너처럼 그렇게 발차기 하는 애들은 없어. 너 유단자 맞지? 태권도, 합기도? 아니면 중국 무술?”\n\n“그런거 없어요. 그냥 혼자 해본 거예요. 아, 저 이만 가볼게요. 줄낚시 달아놨거든요.”\n\n한야성은 얼른 도망갔다. 더 이상 그런 얘길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n\n“아니, 저기...”\n\n최유진은 금세 등을 보이며 도망가는 한야성을 불렀지만 소용없었다. 이름을 몰랐던 것도 한몫했다.\n\n“쟤 누구였지?”\n\n최유진은 턱에 손가락을 대고는 곰곰 생각했다. 얼굴은 대충 기억이 좀 나는데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2학년 이름도 잘 모르는데 1학년 이름을 알 리가 없었다. 게다가 올해 동아리 모임에 처음으로 나온 것이라 3학년 동기들을 제외하면 다들 생소했다. \n\n최유진은 계속해서 도망간 1학년 신입생 남자애의 이름을 떠올리다 포기하고는 땅에 있는 발차기의 흔적을 쳐다보았다.\n\n“후우, 이건 굉장한 실력인데. 계속 발이 떠 있었잖아.”\n\n옛날 중국 권법 영화에서나 본 듯한 장면이었다. 최유진은 원래 운동 잘하는 남자를 좋아했다. 공부 잘하는 범생이보다는 운동이나 싸움을 잘하는 그런 남자를 좋아한 것이다. 그러니 한야성에게 관심이 안갈 수가 없었다. \n\n처음에는 그냥 범생이처럼 보였는데 발차기하는 걸 보니 그게 아니었다. 숨겨진 실력자였다. 숲에서 오줌싸다 한야성이 발차기 하는걸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래서 최유진은 쉬를 다 하고도 쪼그리고 앉은 채 발차기를 구경하느라 한동안 일어나질 않았다. \n\n그러다 갈라진 곳에 찬바람이 부는걸 느끼고는 그제야 오줌싸던 중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휴지로 닦아내고는 일어나 뭔가에 이끌리듯 다가온 것이다. 최유진은 땅바닥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발차기의 흔적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n\n“허약한 미스테리부에 육식남이 들어왔네.”\n\n그것도 숨겨진 고수였다. 거기다 1학년 신입생 남자애였다. 뭔가 풋풋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최유진도 얼른 텐트를 향해 달려갔다.\n\n“그러니까 말야. 그애 발차기 엄청 잘하더라구.”\n\n“정말이에요?”\n\n여자들 텐트에서는 수다가 끊이질 않았다. 한야성은 그걸 간과했다. 최유진 선배가 남들한테 얘기할 거라는걸. 그냥 그 상황만 모면하면 된다고 여겼는데 와서 다 퍼트린 것이다. 여자의 가벼운 입과 수다를 미쳐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다들 알아버리고 말았다.\n\n“너 진짜 발차기 잘해?”\n\n동기 남자애도 의외라는 듯이 물어봤다. 한야성은 한숨이 나왔다. 최유진 선배에게 비밀로 해달라고 했어야 했는데... 그냥 도망친게 후회가 되었다.\n\n“야성아, 발차기 한번 해봐.”\n\n은아를 통해 한야성의 이름을 안 최유진이 웃으면서 외쳤다. 한야성은 난감해서 그냥 딴 곳만 쳐다보았다. 최유진은 야성아, 야성아 부르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n\n“킥킥, 야성이란 이름 너무 웃겨. 야성이... 그래도 발차기는 진짜 야성적이지. 생긴건 초식남인데.”\n\n하도 그녀가 자랑하듯 늘어놓으니 여자들과 남자들이 죄다 한야성을 쳐다보았다. 진짜로 한번 발차기를 해보라는 듯이 무언의 강요를 하고 있었다. 한야성은 어쩔 수 없이 간단한 것으로 두어번 보여주기로 했다.\n\n“저, 그냥 취미 삼아 해보는 거예요.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아요.”\n\n“얼른 해봐. 어떤지 보게.”\n\n다들 궁금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한야성은 할 수 없이 간단하게 발차기를 했다. 팡팡, 하는 소리가 나며 한야성의 몸이 왼쪽으로 약간 기울어지며 오른발이 허공을 연속으로 두 번 찼다. 간단한 동작이고 간단한 발차기였다. 하지만 그 간단한 동작과 발차기가 모두의 시선을 뺏을만큼 완벽했다.\n\n“우와, 대단하다!”\n\n동기 남자애가 감탄사를 자아냈다. 어설픈 발차기가 아니었다. 절도가 있는게 이건 무슨 무도가의 발차기에 버금갔다. 아니, 실제 무도가의 발차기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그만큼 정제되고 절도 있는 완벽한 동작이었다. \n\n다들 무술 같은건 몰랐지만 보는 눈은 있었다. 한야성이 한 발차기가 보통 애들이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금세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마치 격투기 챔피언의 발차기 같달까. 다들 놀라면서 한야성을 쳐다보았다. \n\n특히나 여자들의 반응은 더 심했다. 여자들은 다들 눈으로 보고 몸이 반응했다. 뭔가 안에서 움찔한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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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에서 차는 것도 돼?”\n\n남자들이 다들 우르르 몰려와서 이것저것 해보라고 권유하니 한야성도 하기는 싫었지만 거절할 수가 없었다. 남들 앞에서 해보는 발차기는 처음이었다. 이제는 될대로 되라, 라는 심정이 되어 남자들이 요구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다 해주었다. \n\n공중으로 뛰어올라 높이 발차기를 하고, 뒤돌아차기, 360도 회전 발차기에 이어, 뛰어오르며 두발 차기, 팽이처럼 몸을 계속 회전시키며 연속 발차기를 하는 등 마치 무협의 고수처럼 해대니 남자들은 박수를 치며 날뛰고, 텐트 안에 있는 여자들도 환호하며 좋아했다. \n\n그걸 보고 듣는 한야성도 많이 흥분이 되었다. 이런 환호 같은건 처음 들어보았다. 누군가의 주목을 받는 것도 생전 처음이었다. 한야성은 지금 태어나 처음으로 스타가 되어 있었다. 누군가의 환호를 받는다는건 굉장한 일이었다. 일시적이지만 팬들의 환호를 받는 연예인들의 심정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n\n한야성은 그날 굉장한 경험을 했다. 자신이 사람들 속에서 살아 있다는 생생함과 생동감을 전율과 함께 느낄 수 있었다.\n\n“이렇게 하는 거야?”\n\n남자들은 다들 주르르 서서 발차기를 해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야성의 발차기 시범 이후 뭔가 자신들도 해보고 싶었는지 다들 발차기를 해보며 난리였다. 마치 tv에서 레슬링 경기를 보고 난 후 따라하는 것처럼. \n\n다행히 여자들은 얍얍 하면서 몇 번 따라해보더니 관두었다. 보는건 좋았지만 하는건 싫었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우르르 서서 이얏, 이얏 하며 어설픈 발차기를 했다. 진짜 하려기 보다는 그냥 흥분되서 해보는 것이었다. 다들 10분 정도 하고는 힘들어서 관두었다.\n\n“너 정말 대단하다. 대체 얼마나 한 거야? 1,2년으로는 그렇게 안 될거 같은데.”\n\n점심 식사 준비를 하면서도 화제는 계속 한야성의 발차기였다. 특히나 1학년 동기 녀석들이 꼬치꼬치 캐물었다.\n\n“그냥 틈틈이 한 거야. 심심할 때 해보고 그랬거든.”\n\n“어릴 때부터 했지?”\n\n“응.”\n\n저쪽 세계에서 1년동안 했다는건 말할 수 없어서 그냥 어릴 때부터 했다고 인정했다.\n\n“겉으로 볼 때 너 전혀 운동한걸로 안 보였는데. 동아리 체육대회 때 나오지 그랬냐. 그랬다면 한종목 정도는 이겼을 텐데.”\n\n3학년 남자 선배가 아쉽다는 얼굴을 했다. 나중에야 들었던 건데 미스테리 동아리는 학교 동아리 체육대회에 나가 전패를 했다고 했다. 다섯 종목을 나갔는데 깡그리 졌다는 것이다. 그것도 대부분 다 꼴찌로 져서 면목이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게 미스테리부의 전통이었다. 몸쓰는건 전혀 못하는게 미스테리부의 회원들이었기 때문이다.\n\n“가을에 있는 체육대회는 할만 하겠는데? 한 종목 정도는 이기는거 아닐까?”\n\n3학년 남자 선배가 기대된다는 얼굴을 하자 3학년의 다른 남자 선배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n\n“우린 군대가잖아, 인마...”\n\n“아, 그렇지...”\n\n그제야 깨닫고는 아쉬운 얼굴을 했다. 3학년의 두 남자 선배는 8월에 군에 입대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미스테리부의 대표적인 두 초식남이 그 험한 군대를 가서 어떻게 견딜지 다들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한야성도 군대 문제가 있었다. 몸에 이상은 없었기에 이미 현역병으로 결과가 나왔다. \n\n하지만 한야성은 군대갈 생각이 없었다. 그런 집단 생활을 견딜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tv뉴스에서 종종 나오는 군대의 구타와 폭력, 총기사고 등 그런걸 보면 갈 마음이 들지 않았다. 여기서도 제대로 적응을 못하고 사는데 그런 곳에서 적응하며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n\n그래서 가고 싶지 않았는데 어떻게 안 가야 할지는 몰랐다. 아직은 시간적인 여유가 많기에 급하게 고민하지는 않았다. 나중에 생각할 문제였다.\n\n다들 점심을 먹으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어제 서로 폭탄주 마시고, 오늘은 또 한야성의 발차기를 보며 기분이 업 된 만큼 다들 한결 더 친해져서 마음놓고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전까지 그렇게 친하지도 안 친하지도 않는 사이였다면 지금은 약간 친해진 사이로 바뀐 것이다.\n\n────────────────────────────────────\n\n<-- 야성의 전설 --> \n\n오후에는 날씨가 찜통처럼 많이 더워져서 다들 바다로 들어갔다. 바닷물이 많이 차가웠지만 몇 번 물속을 오가자 괜찮았다.\n\n“바위 근처를 떠나지마. 깊을지 모르니까.”\n\n은아 선배가 당부하며 멀리 가지 못하게 했다. 남자들은 추워하면서도 물속에 한번씩 몸을 담갔고, 여자들은 대부분 발만 물에 넣었다. 수영복을 입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창피해서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예외는 언제든 있기 마련이었다.\n\n“니들 왜 수영복 안 입어?”\n\n빨간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최유진 선배의 등장이었다. 그걸 보는 여자들은 민망한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돌렸고, 남자들은 다들 넋놓고 쳐다보았다. 최유진 선배의 육감적인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저절로 그게 커지고 있었다. \n\n최유진 선배의 몸은 그야말로 화보에 가까웠다. 자체발광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남들이 보면 무슨 모델 촬영 하는줄 알 것 같았다. \n\n“너 정말 입었어?”\n\n“응. 바다인데 입어야지. 은아 너도 빨리 입고 와.”\n\n최유진 선배는 전혀 부끄럽지 않은지 바닷물로 한발 한발 들어왔다. 오히려 은아 선배가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비키니 수영복을 입다니, 대담하지 않으면 할 수 없었다. 오직 최유진 선배만이 할 수 있는 것이었다.\n\n“어휴, 좋다.”\n\n최유진 선배는 물속으로 들어가 살살 수영을 했다. 스킨스쿠버 동아리에도 있어서 그런지 수영을 안정적으로 잘 했다. 다른 여자들은 차마 수영복을 입을 수 없는지 그냥 바위에 앉아 물장구만 쳤다. 남자들이 초식남이라면 여자들은 초식녀들이었다. 스스로가 부끄러워서 수영복을 못 입는 그녀들이었다. \n\n하지만 최유진 선배는 물개처럼 수영을 했고, 가끔은 수면 위로 엉덩이가 드러나기도 했다. 빨간 비키니 팬티에 가려진 희멀건한 예쁜 엉덩이는 몹시 섹시해보였다. 바닷물에 들어가 있는 한야성은 너무 그게 커져서 시선을 돌렸다. 최유진 선배의 엉덩이는 너무 섹시했다. 보면 볼수룩 그게 커져서 감당이 되지 않았다. \n\n다른 남자들도 그런지 다들 시선을 다른 곳에 주고 있었다. 저런 섹시한 엉덩이 보고 안 꼴리면 그건 남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여자들도 은근히 흥분하는 것처럼 보였다. 질투나 질시 같은 것은 안 보였다. 자신들과 너무 다르니 오히려 호감을 보이는 것이다. \n\n질투나 질시는 뭔가 자신과 비슷할 때 생기는 감정이다. 너무 차이가 나면 되려 좋아하는 마음이 생긴다. 여자들이 느끼는 것도 그와 비슷했다. 자신들도 최유진 같고 싶다는 동경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그날밤 여지없이 드러났다.\n\n“너 가슴 크다. 근데 너무 단단해. 남자가 아직 만져준 적 없어?”\n\n“저기, 선배... 안 돼요...”\n\n“가만히 있어봐. 이런건 만지면서 풀어야 해.”\n\n여자 텐트에서 음탕한 말들이 오갔다. 최유진 선배가 뭔 짓을 하는지 여자들이 저항을 하며 애원하는 소릴 한 것이다. 그래서 텐트 안에 누운 남자들의 그것이 전부 발딱 서버렸다. 아무리 초식남이라도 그건 선다. 특히나 다들 여자친구 없는 야동매니아라 상상으로는 그걸 더 잘 알았다. 최유진이 지금 여자들 텐트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상상으로 다 떠오르는 것이다.\n\n“어휴, 쟤는 정말...”\n\n3학년 남자 선배 하나가 한숨을 내쉬며 옆으로 누웠다. 그 선배 할 것 없이 다들 옆으로 웅크리고 누운 채였다. 똑바로 누우면 텐트 친 그걸 보이니 말이다. 한야성도 손으로 발기된 그걸 잡고는 옆으로 누워 있었다. 옆 텐트에서 최유진 선배의 간드러진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n\n“어머, 넌 엉덩이 예쁘다. 아까 비키니 입지 그랬어. 이리 와봐.”\n\n“아, 안 돼요...”\n\n“어서. 어디 1학년이... 언니가 이뻐해줄테니까 이리와.”\n\n“안 되는데...”\n\n“넌 나중에 남자친구가 좋아하겠다. 엉덩이가 통통해서. 힙업 운동 열심히 해. 조금만 운동해도 넌 애플힙이 될 수 있을 거야.”\n\n그러더니 표적을 바꾸었다.\n\n“니들 은아 가슴이 얼마나 이쁜지 모르지? 얘가 항상 헐렁한 티만 입어서 그러지, 엄청 글래머다. 한번 볼래?”\n\n“너 하지마. 왜 그래.”\n\n“이렇게 이쁜 몸 두고 안 보여주면 그것도 죄야. 얘들아, 만져봐. 진짜 크고 부드러우니까. 가슴은 나보다 더 클걸.”\n\n“하, 하지마. 이상해...”\n\n여자들 텐트에서 들려오는 야릇한 소리들은 옆 텐트 안에 웅크리고 누워 있는 여섯 초식 남자들을 잠 못자게 했다.\n\n“하아...”\n\n남자들은 죄다 의미를 알 수 없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리고 두명은 끝내 몽정을 했다. \n\n다음날 아침에 다들 일어나 식사를 하고 슬슬 돌아갈 준비를 했다. 생각보다 빨리 2박 3일이 흘러갔다. 그래서인지 다들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며칠 더 놀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았다. 한야성도 예외는 아니었다. 좀 더 놀다 갔으면 하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오늘 집으로 가면 너무 빠르단 생각이 들었다. 최유진 선배도 많이 아쉬운지 놀자고 떼를 썼다.\n\n“우리 좀 더 놀다 가자. 응? 다들 집에 가도 할거 없잖아.”\n\n“갑자기 그래도...”\n\n하지만 은아 선배도 아쉬웠는지 회원들을 쳐다보았다.\n\n“누구 오늘 꼭 가야 할 사람 있어? 무슨 일이 있다거나.”\n\n그런 일이 있을리 없었다. 다들 고개를 저으며 없다는 시늉을 하였다. 여름방학이니 어차피 시간이야 널널했다. 한야성도 굳이 집에 일찍 갈 필요는 없었다. 가봤자 아무도 없으니까. 그쪽 세계로 가는 것도 급할거 없으니 며칠 미루면 그만이었다. \n\n“우리 워터파크 가자. 나 잘 아는데 있어. 회비는 안 내도 돼. 선배들이 싹 낼 테니까.”\n\n최유진 선배에 의해 졸지에 후배들 회비를 내게 생긴 3학년 남자 선배들이 울상을 지었다. 최유진은 혹시나 돈이 없어서 안간다고 하는 후배들이 있을가봐 먼저 선수를 친 것이다. 역시나 선배들이 돈을 내준다고 하니 2학년과 1학년은 워터파크로 가는 것에 별로 반대하지 않았다. 은아 선배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n\n“그럼 워터파크 가서 하루이틀 더 놀다 가자. 이따가 다들 집에 전화해서 부모님께 말씀 드려.”\n\n“아예 한 3일 놀다가 간다고 해. 하루 이틀은 너무 짧아.”\n\n최유진 선배가 3일로 못 박았다. 다들 별다른 일이 없어서인지 그 제안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n\n“빨리 배 오라고 해. 나 몸에 소금기 있어서 죽겠어.”\n\n최유진 선배가 손으로 목을 문지르며 인상을 찡그렸다. 어제 바다에 들어갔다가 나온 뒤 샤워를 못해서 최유진 선배와 남자들은 다들 찝찝한 상태였다. 생수로 대충 씻어내긴 했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n\n“그럼 빨리 갈 준비해. 텐트 걷고, 청소하고.”\n\n은아 선배가 지시하고 선장에게 전화를 하는 사이, 남자들과 여자들은 부지런히 움직이며 텐트를 걷고, 짐정리를 하며, 청소를 했다. 1시간 정도 하고 나자 그동안 지냈던 터가 깨끗해졌다. 짐을 다 챙겨놓고 모래사장에 앉아 한동안 기다리고 있으니 멀리서 배가 오는게 보였다. 배가 무인도에 대어지고 모두가 올라탔다. \n\n“술은 선장님이 드세요. 많이 남았어요.”\n\n최유진 선배는 궤짝에 남은 맥주병과 많은 팩소주를 선장에게 다 넘겨주었다. 폭탄주로 인해 고생했기에 다들 더 이상 술 생각이 없었다. 배를 타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가다 보니 금세 육지에 도착했다. 일행들은 택시 3대를 잡아서 나눠 타고 워터파크로 향했다. \n\n30분 정도를 가니 어느 산 아래 있는 커다란 워터파크의 정경이 보였다. 역시 대학마다 여름방학이 시작되서 그런지 평일임에도 젊은 입장객들이 상당히 많았다. 다들 택시에서 내려서 안으로 들어갈 준비를 했는데 은아 선배가 약간 걱정을 했다.\n\n“방이 없으면 어쩌지?”\n\n“그럼 호텔에서 지내면 되지.”\n\n최유진 선배가 쿨하니 대답하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n\n“아, 맞아. 여기 스위트 룸도 많아. 그건 아마 남아 있을 거야.”\n\n그 얘길 들은 일행들은 다들 그건 상당히 비쌀 텐데 하는 눈치를 보였다. 특히나 돈을 내야 하는 3학년 남자 선배 둘은 약간 사색이 되어 있었다. 두 선배다 그다지 부자로 안 보였기에 부담이 좀 될 것 같았다. 한야성은 아직 지갑에 돈이 있었기에 회비를 은아 선배에게 이따가 몰래 전해줄 생각이었다. \n\n다들 워터파크 안으로 들어가며 구경을 했다. 다들 처음 오는지 입을 벌린 채 좋아했다. 한야성도 이런 곳에 오는건 처음이었다. 방송에서나 보던 넓은 워터파크를 실제로 보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최유진 선배와 은아 선배는 몇 번 와봤는지 어리버리한 일행들을 데리고 큰 건물로 향했다. \n\n최유진 선배는 카운터로 가서 곧장 스위트 룸 2개를 얻더니 카드로 3일치를 일시불로 결제했다. 말로만 3학년들이 낸다고 했을 뿐 자기 혼자 다 낸 것이다. 은아 선배가 옆에서 거들었다.\n\n“유진아, 나도 낼게.”\n\n“됐어. 다들 신나게 놀 준비나 해.”\n\n역시 집이 부자라 그런지 화끈하게 쓰고 있었다. 그런걸 보면서 한야성은 부자로 사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tv 뉴스 등으로 인해 부자는 부정적인 존재라 여겨 어느 정도 반감을 갖고 있었는데 최유진 선배를 보니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확실히 부자는 편리하게 살 수 있는 것 같았다. 돈을 내지 않은 남녀 후배들이 다들 미안한 얼굴로 고맙다고 하였다.\n\n“내가 어쩌다 한번씩 오니까 이럴 땐 써야지. 다들 올라가자.”\n\n최유진 선배가 먼저 앞장 서면서 계단을 올라갔다. 돈을 많이 썼지만 별로 생색도 내지 않았다. 확실히 여왕의 품격이 느껴졌다. 조금 성질 안 좋은 여자 같으면 혼자 돈을 다 냈다고 궁시렁거리면서 생색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유진 선배는 그런게 전혀 없었다. \n\n한야성은 원래 자기 몫의 돈을 은아 선배에게 건네줄 생각이었지만 관두었다. 자신이 가진 몇만원으로는 가격이 비싸서 택도 없었고, 또한 최유진 선배가 싫어할 수도 있었기에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조용히 묻어가기로 했다. \n\n최유진 선배를 따라 5층으로 올라가서 스위트 룸으로 들어가자 이건 숫제 호텔이었다. 엄청나게 넓은 거실에 방이 3개나 되었고, 욕실도 두 개나 있었다. 역시 비싼 돈 값을 하고 있었다.\n\n“다들 수영복 입고 나와! 없으면 내가 사준다! 삼각으로!”\n\n최유진 선배가 남자들 룸을 살짝 엿보며 외치고는 금세 사라졌다. 그 얘기에 다들 안색을 찡그렸다.\n\n“니들 수영복 갖고 왔냐?”\n\n“아뇨.”\n\n남자들 6명은 수영복을 단 한명도 가져오지 않았다. 한야성도 수영복은 없었다. 그래서 다들 걱정하며 울상을 지었다. 최유진이 진짜로 삼각팬티 수영복을 사줄 것이기 때문이다. 근데 여자 쪽에서도 난리가 났다.\n\n“수영복 없으면 이 언니가 비키니 사줄게.”\n\n“네?”\n\n2학년 여자 선배들과 1학년 여자애도 사색이 되었다. 제일 사색이 된건 은아 선배였다. 이들 중 수영복을 가져온 유일한 사람은 최유진 선배 뿐이었다. 다들 부끄럼증이 있어서 처음부터 수영복을 챙기지도 않은 것이다. 짐 정리를 하고 문을 닫고 나와서 복도에 다들 불안해하며 서 있었다. 정말로 수영복을 사주면서 입게 하려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n\n근데 최유진 선배는 벌써 비키니로 갈아 입고 나왔다. 하얀 셔츠 하나만 위에 걸쳤을 뿐이어서 빨간 비키니 팬티 사이로 육감적인 엉덩이가 다 보였다. 사람들이 오가는 복도에서 대놓고 비키니 차림으로 서 있는 것에 일행들이 더 창피해 했다. 복도를 지나는 남자들이 흘끔흘끔 최유진 선배의 엉덩이를 훔쳐보며 지나갔다.\n\n────────────────────────────────────\n\n<-- 야성의 전설 --> \n\n“다들 수영복 없어? 진짜 징하다. 어떻게 한명도 수영복을 안 가져와? 다들 몸에 무슨 문제 있어?”\n\n최유진 선배는 도리어 혀를 차고는 일행들을 이끌었다.\n\n“가자. 내가 아주 멋진 수영복을 사줄 테니까.”\n\n다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걱정을 하며 안절부절했다. 일행들은 계단을 내려가 1층에 있는 수영복 매장으로 들어갔다. 남자들은 삼각팬티, 여자들은 비키니라는 최유진 선배의 억지스러운 강요에 다들 결사 반대했다. 하지만 최유진 선배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n\n“이런 곳에서는 그렇게 입어야 돼. 촌스럽게 헐렁한 사각 입고 원피스 수영복 입을래?”\n\n그래도 안된다며 남자들은 반대했다. \n\n“여자들은 비키니를 입는게 당연해도 남자들은 안 그래. 삼각 입으면 얼마나 추한데. 남자는 사각으로 좀 봐줘.”\n\n3학년 남자 선배가 거의 애원하다시피 매달리자 최유진 선배는 씁쓸한 얼굴을 하더니 이내 받아들였다.\n\n“좋아. 남자들은 사각으로 해. 아쉽지만 할 수 없지.”\n\n뭐가 아쉽다는 건지 몰라도 어쨌든 남자들은 환호하면서 사각 팬티를 고르기 시작했다. 반면 여자들은 은아 선배를 비롯해 다 우거지상이었다.\n\n“그냥 반바지에 티 입으면 되잖아. 굳이 비키니를 왜 입어?”\n\n은아 선배가 반대하고 2학년 여자 선배들과 1학년 동기 여자애도 동의했다. 궁지에 몰린 최유진 선배는 속닥이며 꼬셨다.\n\n“이런데 와서 비키니 안 입으면 평생 입을 일 없어. 누가 촌스럽게 반바지에 티를 입고 다니니? 밖에를 봐봐. 여자들 태반이 비키니야. 대신 저렇게 허리를 천으로 감싸고 다니면 돼. 다들 한번 입어봐.”\n\n여자의 욕심일까. 남들이 비키니를 입고 다니는 것을 보니 미스테리 동아리 여자들도 욕심이 좀 나는 모양이었다. 다들 한번 입어만 보겠다고 하면서 여러 수영복을 고른 뒤 탈의실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n\n그 사이 남자들은 대충 다 골라서 갈아입은 뒤였다. 패션 같은 것에 별로 신경을 안 썼기에 그런 것이었다. 최유진 선배는 남자들이 헐렁한 사각 팬티 수영복을 입은 것을 보더니 혀를 찼다.\n\n“니들 진짜 약해보인다.”\n\n근육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남자들이 주루륵 서 있으니 그런 것이었다. 한야성도 그저 탄탄한 몸일 뿐 근육질의 육체파는 아니었기에 별로 돋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건 아직 헐렁한 티셔츠를 입고 있기에 그런 것이었다. 그걸 벗으면 그래도 어느 정도 왕자의 흔적이 있는 복근이 나온다. 완성된 몸은 아닐지라도 몸이 초보를 지나 중간으로는 향해 있었다." } ]
[ { "role": "system", "content": "You are a creative writer specializing in compelling narratives." }, { "role": "user", "content": "흥미로운 작품을 창작해주세요." }, { "role": "assistant", "content": "남자들이 최유진 선배와 함께 기다리는 사이 여자들이 비키니 복장을 한 채 창피한 표정으로 탈의실을 나왔다. 확실히 옷이 날개인지 평소 별 매력이 없던 미스테리 동아리 여자들이 상당히 섹시하게 변해 있었다. \n\n다들 글래머는 아닐지라도 매끈한 몸매들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압권은 은아 선배였다. 비키니를 입고 탈의실을 나오자 평소 옷에 가려져 있던 육감적인 몸매가 그대로 드러났다. 최유진 선배 말대로 확실히 가슴이 크고 풍만했다. \n\n어떻게 저 큰 가슴을 지금까지 감추고 살았는지 이상할 정도였다. 은아 선배는 남자들이 집중적으로 자신의 가슴을 쳐다보자 너무 창피한지 얼굴이 빨개진 채 입술을 꾹 깨물고 있었다.\n\n“나, 난 역시 안 되겠어. 안 입을래...”\n\n“안 돼! 잘 어울리는데. 그치?”\n\n최유진 선배가 탈의실로 다시 도망가려는 은아 선배를 붙잡고는 못가게 하며 남녀들을 쳐다보았다. 다들 잘 어울린다고 하면서 은아 선배를 응원했다. 그렇게 해서 여자들은 모두 비키니 수영복을 입게 되었다. \n\n다들 부끄럽지만 설렌다는 얼굴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냥 다니기는 역시 창피한지 각기 천을 사서 허리에 감아 비키니로 드러난 엉덩이를 숨겼다. 여자들의 엉덩이가 일제히 감추어지자 뒤에 서 있던 남자들은 실망어린 눈을 했다. \n\n“우리 동아리 여자들도 상당히 괜찮다.”\n\n“그래요.”\n\n남자들은 모여서 조용히 쑥덕거렸다. 동아리 여자들이 그제야 괜찮다는 것을 안 것이다. 항상 수수하게 하고 다녀서 그 안에 감추어진 매력을 몰랐을 뿐이었다. 남녀 수영복 값은 이번에도 최유진 선배가 모두 계산했다. \n\n다들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천천히 건물을 나갔다. 곳곳에 있는 넓은 풀장과 놀이기구, 그리고 수영복을 입은 수많은 사람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확실히 가슴이 탁 트이면서 기분이 좋았다. 무인도에 있을 때보다 더 흥이 나는 것이다. \n\n미스테리 동아리 회원들은 모두가 첨벙거리며 넓은 풀장으로 들어갔다. 앞에서 파도가 연달아 들이치고 사람들은 즐거운 비명을 질러댔다. 일행들도 더욱 앞으로 나가며 물에 이리저리 휩쓸려 나가고, 쳐박히고는 했다. 다들 웃으면서 기쁨을 만끽했다. \n\n한야성도 마음껏 즐겼다. 살면서 이렇게 재밌는건 처음이었다. 아는 사람들과 함께 놀러온 것도 재밌는데 넓은 풀장에서 파도를 맞으며 노니 자신이 마치 순진한 어린애가 된 것만 같았다. 모두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n\n한야성은 일행들이 웃는 모습을 보면서 저게 진짜 숨겨진 얼굴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신도 지금 저렇게 웃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혀 창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웃을 수 있어서 즐거웠다. 물론 여자들의 비키니 차림도 볼만 했다. 허리에 감은 천이 물이 젖어서 위로 말려들며 여자들의 탱탱한 엉덩이가 드러나게 했다. \n\n남자들만 있는 곳이었다면 재미가 없을 뻔 했다. 비키니를 입은 여자들이 많았기에 눈요기도 할 수 있어서 더욱 재미가 있었다. 일행들은 한참을 풀장에서 놀다가 여러 기구를 찾아다니며 타고 다녔다. 다들 애들처럼 신이 나서 몰려다녔다. \n\n그러다 튜브를 타고 내려가는 놀이기구 앞에서 줄을 선 채로 잠시 기다릴 때였다. 한야성 앞에는 최유진 선배가 발랄하게 서 있었는데 뒤에서 잠시 몸이 밀리다보니 한야성의 몸이 앞으로 나가면서 그것이 최유진의 엉덩이에 꾹 닿게 되었다. \n\n한야성은 깜짝 놀라 몸을 빼려 했지만 뒤에서 사람들이 밀고 있었기에 빼내지를 못했다. 묵직한 그것이 최유진 선배의 엉덩이를 계속해서 누르고 있었다. 최유진 선배도 자신의 엉덩이에 뭔가가 닿아 있다는 것을 느꼈는지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n\n“아, 죄, 죄송해요...”\n\n한야성은 너무 창피하고 민망해서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했다. 그저 엉덩이만 계속 뒤로 뺄 뿐이었다. 그러나 뒤에서 사람들이 계속 밀고 있기에 그것은 계속 최유진 선배의 엉덩이에 닿았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n\n최유진은 처음에는 남자의 그것이 엉덩이를 눌러서 놀랐으나 곧 뒤에 한야성이 서 있는 것과 뒤에 있는 사람들이 밀고 있는 것을 보고는 그냥 웃음을 지었다. 사내의 중심이 엉덩이에 닿았다고 해서 당황하고 있는 한야성이 귀엽게 보이기도 해서 그랬다. \n\n발차기를 이상하게 잘하는 평범한 녀석인데 여자에 대한 면역은 없는지 엉거주춤하게 서서는 어쩔줄 모르고 있었다. 그 순진한 모습 때문에 최유진은 기분이 나쁘기는커녕 오히려 장난을 치고 싶어졌다. 그래서 엉덩이를 뒤로 조금 빼서 한야성의 그것에 꾹 닿게 하고는 좌우로 살살 흔들어주었다. \n\n한야성은 최유진 선배가 그것을 엉덩이에 품고 흔들자 한순간 미치는줄 알았다. 자극이 너무 심했기 때문이다. 자신도 모르게 그게 완전히 발딱 서버렸다. 최유진 선배의 엉덩이에 그게 닿으면서 약간 발기 상태였는데 이제는 완전히 딱딱하게 서버린 것이다. 겨우 엉덩이를 그거에 대고 문지르며 좌우로 흔들었다고 해서 그게 확 서버리니 한야성도 당황하고 최유진도 당황해버렸다. 이렇게까지나 심하게 반응할줄 몰랐던 것이다. \n\n최유진은 금세 그게 딱딱해져서 엉덩이를 짓누르자 놀라서 얼른 엉덩이를 앞으로 했다. 그 딱딱함은 상상초월이었다. 순간적으로 무슨 돌덩인가 싶었던 것이다. 남자의 그것보다 더 단단한 무엇인가 싶었다. 그래서 뭐였는지 확인해보려고 힐끔 고개를 돌려 아래를 쳐다보니 한야성이 두손으로 그걸 꽉 감싸쥐고 있었다. \n\n너무 발기해서 막아내는 모양이었다. 그걸 보니 최유진은 다시금 웃음이 나왔다. 너무 웃기고 귀여웠던 것이다. 아까의 그 딱딱한 것은 한야성의 고추가 틀림없는 것 같았다.\n\n‘이녀석, 보기보다 세네.’\n\n발차기를 잘하니 그것도 튼튼한 것 같았다. 최유진은 웃음을 짓고는 고개를 돌려 한야성의 귓가에 속삭였다.\n\n“그거 커졌니?”\n\n너무 대놓고 물어보니 어떻게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한야성은 대답도 못하고 끙끙대며 딴 곳을 쳐다보았다. 이런 곳에서 발기를 하다니 너무 창피했다. 전에는 안 그랬는데 저쪽 세계를 오가면서 그것의 발기도 강해지고 있었다. \n\n원래는 아침 발기도 별로 안 했었다. 몸이 그다지 튼튼하지 않았으니까. 근데 지금은 약간 야릇한 것만 봐도 활딱 서버렸다. 그게 건강해진 증거인지 성욕이 강해진 증거인지 알 수가 없었다. \n\n최유진 선배는 조용히 웃더니 힘내라는 듯이 손으로 허벅지를 탁탁 쳐주었다. 다행히 그게 엉덩이에 닿았다고 기분이 나쁜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 기분이 나빴다면 그거에 엉덩이를 대고 흔들지는 않았겠지. 어쨌든 크게 문제 삼지는 않을 것 같아서 한야성은 안심을 하였다. 이제는 발딱 서 있는 그걸 죽이는 것 뿐이었다. \n\n그런데 자꾸만 아까의 그 감촉이 떠올랐다. 최유진 선배의 부드러운 엉덩이가 그걸 꼭 품고는 좌우로 살랑살랑 흔들던 쾌감이 잊혀지지 않는 것이다. 여자 경험이 전무한 한야성에게는 너무나도 자극적인 쾌감이었다. 그게 얼마나 좋았는지 한번 더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까지 들었다. \n\n한야성은 먼 곳을 쳐다보고 그것을 점점 죽여가며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성욕을 풀고 싶은데 그럴 대상이 없으니 아쉽기만 했다. 하지만 자신은 여자친구를 사귀기 어려웠다. 지금껏 누군가 좋아해준 적도 없으니까. 최유진 선배도 그냥 장난이었을 뿐 자신에게 마음이 있진 않을 것이다. \n\n한야성은 자신의 주제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건 과거에 기인해서였다. 누군가에서 편지를 받아본 적도, 선물을 받아본 적도, 심지어 초콜렛 한번 받아본 적도 없었으니까. 오히려 중학교 시절 크게 용기내고 용기내서 정말 좋아하던 여자애한테 선물을 주며 고백했는데 잔인하게 차이기만 했다. 아니, 반에 소문이 나서 엄청난 망신을 당했다. \n\n그 이후로는 그 누구도 좋아하지 않았고, 그 누구도 사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살아왔는데 대학에 들어와 권서하를 보게 되면서 다시 좋아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녀와는 안 될거라는걸, 애초에 사귈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안 하고 있었다. \n\n학교에서 인기 많은 권서하가 평범한 자신을 좋아할 리는 없으니까. 그래서 아예 여자 없이 평생 혼자 살 생각까지 하는 한야성이었다.\n\n놀이 기구를 다 타면서 한참을 놀다 보니 금세 어두워졌다. 다들 배가 너무 고프고 지쳐서 샤워를 한 후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다시 만나기로 했다. 일행들은 모두 함께 웃고 떠들며 스위트 룸으로 올라갔다. 욕실에서 먼저 선배들이 샤워를 하는 동안 한야성과 동기는 음료수를 마시며 기다렸다.\n\n“야, 진짜 재밌었다. 그치?”\n\n“응. 이렇게 시간가는줄 모르고 논건 처음이야.”\n\n정말 처음이었다. 배가 너무 고프면서 어두워지는걸 아쉬워할 정도였으니까. 동기 녀석이 음료수를 다 마시고는 웃었다.\n\n“처음 미스테리 동아리에 들어왔을 때는 이런 재미 같은건 없을 줄 알았는데 정말 의외야. 최유진 선배 한명 합류했다고 분위기가 완전히 반전됐어.”\n\n“그러게 말이야.”\n\n한야성도 동조를 했다. 확실히 최유진 선배가 엠티에 합류하면서 즐거움의 강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녀가 없었다면 이런 재미 느끼지도 못했을 것이다.\n\n“최유진 선배가 인기 있는 이유가 있다니까. 성격도 좋고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죽여주니까. 학교 킹카들이 줄서 있다고 하더라. 지금 사귀는 남자와 헤어지면 자기들이 사귀려고. 정말 대단하지 않냐? 그 연예인까지도 대쉬했다고 하니까 말야.”\n\n────────────────────────────────────\n\n<-- 야성의 전설 --> \n\n그에 대한 것은 한야성도 알고 있었다.\n\n“연영과 이강진 말이지?”\n\n“응. 그 선배가 대쉬할 정도니 말 다 했지.”\n\n이강진은 유명한 영화배우였는데 지금 한영대 연영과에 다니고 있었다. 아니, 지금은 영화 촬영으로 인해 휴학한 상태였다. 한국에서 젊은 층에서는 그 이강진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키 188에 서구적인 마스크, 근육질 몸매로 남성팬들은 물론 여성팬들이 엄청 많았다. 재작년에는 그가 주연한 영화가 천만 관객을 돌파하기도 했다. \n\n그만큼 유명하고 멋있는 사람인데 그 남자까지도 최유진 선배에게 관심이 있었다고 하니 말 다 한 것이다. 한야성이 봤을 때 배우 이강진은 아예 사는 세계가 다른 사람이었다. 자신과 비교할 때 아주 차원이 다른 것이다. \n\n그런 점으로 볼 때 최유진 선배도 사는 세계가 다르다고 할 수 있었다. 미스테리 동아리라는 접점이 없었다면 최유진 선배와는 평생 말 한번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한야성은 위축이 되었다. 이 세상은 차원이 다른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n\n자신은 아무리 해도 그런 사람들을 따라갈 수 없었다. 아니, 어차피 따라갈 생각도 없었다. 완전히 다르니까. 따라갈 마음조차 생기지 않는 것이다.\n\n“그 이강진 같은 외모라면 진짜 인기 엄청 많겠지?”\n\n동기 녀석은 부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이녀석에게도 이강진은 차원이 다른 사람이니까. 그 이강진 같은 외모가 된다면 여자들이 줄줄 따를 것이다. 야동보며 손장난 따위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여자들이 알아서 유혹하며 다 해줄 테니까. 그것도 미녀라 할 수 있는 연예인급 여자들이 해줄 것이다. \n\n그렇기에 세상은 참 불공평했다. 누구는 손장난 하며 쳐다만 봐야 하는 A급 여자들을 누구는 마음대로 갖고 놀다가 버리기까지 하니까. 그렇게 버려졌다고 가질 수 있는 여자들도 아니었다. 언제나 잘난 남자들이 갖는걸 쳐다보며 손장난만 해야 한다. 최하위층인 우리 같은 녀석들은 그냥 부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n\n한야성은 음료수를 다 마시고는 쓰레기통에 넣었다. 그 이강진처럼 한번 살아보고 싶기는 했다. 남들이 다 주목하고, 최고의 위치에 서서 사람들 앞에 나서고, 여자들에게 엄청나게 인기가 많고, 남자라면 한번 꿈꾸어 보는 것이었다. \n\n무인도에서 발차기를 하며 느꼈던 일행들의 그 환호와는 아마도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주변이 떠나가도록 팬들의 엄청난 환호가 터지겠지. 그게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자들의 기쁨과 행복일지도 몰랐다.\n\n‘어차피 나에겐 불가능해.’\n\n자신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한야성은 불가능에 미련두지 않았다. 그냥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면 될 뿐이었다. 이쪽과 저쪽 세계를 오가며 아무 일 없이 편안하게 사는 것이다.\n\n선배들이 샤워를 마치고 나와서 한야성과 동기도 각각 욕실로 들어가 씻었다. 다 씻고 나와서 거실에서 tv를 한동안 보고 있을 때 은아 선배가 옷을 갈아입은 모습으로 들어왔다.\n\n“밥 먹으러 가자.”\n\n다들 배고픔에 신나 하며 방에서 나갔다. 최유진 선배를 비롯한 여자들은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복도에 서 있었다. 모두 함께 지하에 있는 뷔페로 향했다. 열심히 놀았으니 잘 먹어야 한다면서 최유진 선배가 강제로 데려갔다. 역시나 돈은 또 자신이 낼 모양이었다. \n\n하지만 그거까지는 내지 못하게 할 모양인지 은아 선배가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는 모습이 보였다. 다들 뷔페로 들어가 접시를 하나씩 들고는 입맛대로 먹을 것을 골라 담았다. 한야성도 배가 무척 고팠기에 이것저것 수북하게 접시에 담았다. \n\n모두들 배가 고팠는지 평소보다 더 많은 양을 접시에 담아서 가져왔다. 이윽고 테이블 하나를 잡고는 먹기 시작했다. 신나게 놀고 맛있는 것까지 먹으니 기분이 좋기만 했다. 혼자 왔다면 이런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한야성은 그제야 미스테리 동아리에 잘 들어왔다고 여겼다. \n\n이전까지는 그냥 가입해서 다닌 것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정말로 동아리와 사람들이 좋아진 것이다. 다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식사를 계속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이었다. 옆 테이블에 앉아 있는 남자 하나가 식사를 하면서 은근히 누군가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시선을 잠시 따라가보니 최유진 선배였다. \n\n남자는 호남형으로 키가 커 보였고, 기럭지가 긴 모델 같은 체형을 하고 있었다. 속된 말로 킹카라 부를 수 있는 남자였다. 초식남인 동아리 남자들과는 격이 달랐다. 연예인을 해도 될 법한 그런 멋있어 보이는 20대 중반 정도의 남자였다. \n\n최유진 선배도 그 시선을 느꼈는지 가끔 흘끔 쳐다보며 피식 웃었다. 멋진 남자에게 관심 받는 것을 당연하게 느끼는 것 같었다. 그걸 보며 한야성은 가슴 한켠이 갑자기 무거워졌다. 최유진 선배가 다른 남자에게 관심을 갖는 모습을 보니 이상하게 우울했던 것이다. \n\n저런건 보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 남친도 있다고 했는데... 최유진 선배는 학내 씨씨였다. 그 남친은 현재 농구부의 아주 유명한 선수였다. 거기다 무척 부자라고 했다. 아버지가 무슨 골프 업체의 사장이라고 했으니까. 거기다 2억인가 3억인가 하는 고급 외제 스포츠카를 몰고 다닌다고 했다. 그런 남자가 현재 최유진 선배의 남친이었다. \n\n하지만 최유진 선배도 빨간색 람보르기니인가 하는 차를 몰고 다녔다. 부자는 부자끼리 만나는 법이었다. 한야성은 어차피 자신은 해당 사항이 없다 여기며 접시에 든 것을 다 먹고는 다시금 음식을 가지러 나갔다. 지금은 그저 잘 먹고 잘 노는게 최선이었다.\n\n“은아 니가 벌써 냈어?”\n\n“응. 나도 내야지.”\n\n뷔페 비용은 은아 선배가 어느새 낸 상태였다. 아마도 식사 하는 도중에 계산을 한 것 같았다. 최유진 선배와 은아 선배가 돈을 다 내버리니 일행들은 다들 미안한 얼굴이었다. 특히나 3학년 남자 선배들은 면목이 없는 표정이었다.\n\n“서울에 가면 돈 줄게.”\n\n“됐어. 니들 군대 가서 까까 사먹어.”\n\n최유진 선배와 은아 선배는 받을 생각조차 없는 것 같았다. 확실히 그녀들은 부자인 모양이었다. 부자의 좋은 점을 다시금 알 수 있었다. 자신도 저렇게 부자가 돼서 한번 맛있는걸 사주고 싶었다. 하지만 부모에게 생활비 받는 처지라 그럴 수 없음이 아쉬울 뿐이었다. \n\n그렇다고 무슨 알바 같은걸 해서 사주고 싶진 않았다. 그냥 부자가 되면 사주고 싶었다. 하지만 부자될 일은 없었다. 한야성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아마 사주지 못할게 분명했다.\n\n배부르게 식사를 한 후유증으로 인해 다들 밖으로 나와서 산책을 했다. 밤이었지만 아직도 풀장에서 노는 사람들이 많았다. 조명이 환해서 밤에도 대낮처럼 놀 수 있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일행들은 이미 실컷 놀았고 샤워까지 다 했기에 다시 물에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모두 어슬렁거리면서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며 근처를 돌아다녔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n\n“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n\n남자의 목소리에 다들 뒤돌아보았다. 아까 뷔페에서 본 남자가 뒤에 서 있었다. 역시나 키가 컸다. 거의 190에 달할 정도였다. 반바지를 입은 다리가 무지막지하게 길었다. 키가 173인 한야성은 시선을 한참 위로 올려야 했다. \n\n“저 말인가요?”\n\n최유진 선배가 새침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알면서도 내숭이었다. 남자는 키가 커서인지 자신감에 차 있는 얼굴이었다.\n\n“네. 잠시 얘기 좀 했으면 하구요.”\n\n자신이 헌팅에 실패할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얼굴이었다. 역시 저 남자도 다른 세계에서 사는 모양이었다. 보통 남자라면 헌팅 같은건 못하니 말이다. 아니, 하더라도 최유진 선배 같은 여자한테는 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이 워터파크에서도 돋보이는 외모를 하고 있었으니까. \n\n최유진 선배가 지나가면 남자들은 죄다 흘끔거리고 곁에 있는 여자들은 기분 나쁜 얼굴을 했다. 그 광경을 본게 오늘만 해도 벌써 열 번이 넘었다. 그러니 저런 최고 킹카도 헌팅을 하는 것이다.\n\n“좋아요. 잠깐만 얘기해요.”\n\n최유진 선배는 일행들을 보며 잠깐 얘기하고 오겠다고 하고는 그 남자와 함께 걸어갔다. 은아 선배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고 여자들은 부러운 시선과 두근거리는 얼굴들을 했다.\n\n“역시 유진 선배다. 헌팅 당했어.”\n\n“저 남자 키 엄청나요.”\n\n그녀들은 저런 남자에게 헌팅을 당해보고 싶은 것 같았다. 어쩌면 그것이 여자의 로망일지 몰랐다. 하지만 현실은 최유진 선배에게만 해당되는 것이었다. 저런 남자에게 헌팅 당할 동아리 여자들은 없었다. 은아 선배가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그러자면 꾸미지 않는 모습을 없애야 했다.\n\n최유진이 킹카와 나란히 서서 걸어가는 모습을 보는 초식남들은 우울할 뿐이다.\n\n“야, 저 남자 죽인다. 무슨 모델인가.”\n\n“그런거 같아요. 일반인이 저럴리 없으니까.”\n\n남자로서 너무 차이가 나니 질투도 하지 않는다. 질투와 질시는 원래 엇비슷해야 하는 것이다. 키에서 딸리고 얼굴에서 딸리고 기럭지에서 딸리니 애초에 경쟁도 안 하는 것이다. 하긴, 그 정도 킹카면 못 꼬실 여자가 없을 것이다. 누구나 꼬셔셔 후르륵 하겠지. \n\n초식남들이 마음속으로 좋아하며 고백을 못해 끙끙대는 어려운 여자들을 저런 킹카들은 아주 쉽게 꼬셔서 따먹고는 버릴 것이다. 여자들이 아무리 도도해도 저런 킹카에게는 쉽게 가랑이를 벌려준다. 정말 불공평한 세상이 아닐 수 없었다. \n\n동아리의 퀸이나 다름없는 최유진을 빼앗겼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미스테리 동아리의 남자들 표정은 씁쓸했다. 마치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돌 여자 가수가 다른 남자와 스캔들이 난 것을 본 것 같달까. 자기 여자는 아닐지라도 다른 남자를 따라가는건 분명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n\n한야성도 기분이 좀 가라앉았다. 그러면서 권서하 생각이 났다. 그애도 언젠가 남자친구가 생기겠지. 수많은 남자들이 대쉬하고 있으니 언젠가는 생길 것이다. 한야성은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자신이 너무 초라해보였다. 그걸 극복하는건 현실의 바람을 포기하는 것 뿐이었다. 아예 기대 자체를 안 하는 것이다. 그러면 초라해지지도 않고 우울하지도 않으니까.\n\n“여기 아까 오락실 있던데 가볼래요?”\n\n분위기가 많이 쳐져 있어서 한야성이 제안을 했다. 다들 뭐 딱히 할게 없으니 괜찮다는 반응을 보였다.\n\n“그래, 가보자.”\n\n일행들은 다 함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1층의 로비 옆에 있는 대형 오락실로 들어가서 다들 게임기 앞에 앉아 오락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다지 재밌지는 않았지만 어차피 할게 없어서 하는 것이니만큼 지루한 시간을 때우는데는 괜찮았다. \n\n한야성은 커다란 게임기에 앉아 비행기 조종을 하고 있었다. 다른 일행들도 여기저기 흩어져서 게임을 하는 중이었다. \n\n그렇게 약 1시간 정도를 놀다가 더는 지겨워서 모두 오락실을 나왔다. 어느덧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이제는 잘 때가 됐다는 것에 일행들은 허전함을 뒤로 하고는 룸으로 향했다. 최유진 선배가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30분 정도가 지나서였다. 그녀는 술을 마셨는지 얼굴이 발그랗게 되어 있었다.\n\n“니들 왜 여기서 자? 여자들 방으로 와.”\n\n최유진 선배가 잠을 청하고 있던 남자들 방에 와서 한 말이었다." } ]
[ { "role": "system", "content": "당신은 읽는 이를 몰입시키는 재능을 가진 작가입니다." }, { "role": "user", "content": "소설을 창작해주세요." }, { "role": "assistant", "content": "다들 무슨 소린가 하고 어그적거리며 여자들 방으로 들어갔다. 여자들도 최유진 선배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지 다들 거실로 나와 있었다.\n\n“엠티 왔으면 함께 자야지.”\n\n최유진 선배는 취기가 오르는지 약간 주정끼를 부리고 있었다. 여자들 룸의 넓은 거실에서 다 함께 자자는 것이었다. 남자들이야 뭐 상관이 없었는데 여자들은 조금 난감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엠티와서 따로 따로 자는 것도 의미가 없는 것 같았는지 은아 선배가 나섰다.\n\n“남자들 가서 이불하고 베개 가져와. 여기 거실에서 얘기하면서 다 함께 자자.”\n\n그래서 남자들은 다시 방으로 돌아가 그것들을 가져와야 됐다. 남자들끼리 재미없이 자려고 누워 있다가 여자들 방으로 와서 함께 자려니 다들 기분이 좋은지 히히덕거렸다. 넓은 거실에 다들 이불을 펴고 자리를 잡았다. \n\n────────────────────────────────────\n\n<-- 야성의 전설 --> \n\n남자들은 좌측, 여자들은 우측이었다. 자면서 서로 몸이 닿을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좀 어딘가 안심이 안 되는지 은아 선배가 안경을 고쳐쓰며 경고를 했다. \n\n“설마 그럴리는 없겠지만, 혹시라도 밤중에 이곳으로 몰래 넘어와서 여자들 성추행하거나 하면 끝장날줄 알아.”\n\n남자들은 그 경고에 침을 삼켜야 했다. 3학년 남자 선배가 억울한 얼굴로 항변했다.\n\n“우리가 그런 짓을 왜 하냐. 다들 안심하고 자.”\n\n우린 모두 초식남이다 라고 하는 것만 같았다. 근데 그건 사실 맞는 말이었다. 여기서 간 크게도 자는 여자 몸을 만질 남자는 없었다. 한야성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성욕이 생겨도 자는 여자의 몸을 만지며 달랠 일은 없었다. 그런데 이불 위에 누워 있던 최유진 선배가 미끈한 다리를 흔들며 갑자기 놀라운 발언을 했다.\n\n“야, 너무 그러지마. 남자들이 얼마나 여자의 몸을 만지고 싶어하는데... 엠티까지 왔으니까 특별히 가슴하고 엉덩이는 만지게 해주자.”\n\n“무슨 소리야? 유진이 너 취했으면 빨리 자.”\n\n“자는 여자 몰래 만지는건 남자의 로망이란 말야. 그치?”\n\n최유진 선배가 남자들을 쳐다보며 그렇지 않느냐는 듯한 눈빛을 하였다. 남자들은 대답을 못했다. 그렇다고 하기도 그렇고 안 그렇다고 하기도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자는 여자 몸을 몰래 만지는건 재밌을 것 같기는 했다. 감옥만 가지 않는다면. 최유진 선배는 잘 때 남자들이 몸을 만진다 해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았지만 남은 여자들은 징그러운지 다들 이불로 몸을 덮었다. \n\n그 이후로는 누워서 다들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어차피 잠이 오지 않았기에 미스테리한 얘기부터 공포 영화나 타국의 전설 등에 대한 것까지 시시콜콜한 이야기 등이 오갔다. \n\n그러다 어느 순간 대화가 잠시 끊어진 때가 있었다. 그때 베개에 가슴을 대고 엎드려서 누워 있던 은아 선배가 바로 옆에 누워 있던 최유진 선배에게 말을 건넸다.\n\n“아까 그 남자는 어떻게 된 거야?”\n\n“아? 그 사람? 지하에 있는 칵테일바에 가서 한잔 했어. 근데 그 남자 진짜 웃기더라.”\n\n“뭐라고 했는데?”\n\n“자기가 헌팅하면 내가 금세 자줄줄 알았나봐. 자기 방으로 가자고 하더라고. 그래서 그냥 왔지.”\n\n다들 조용히 그 말을 듣고 있었다. 어쩐지 그 남자 잘나 보이더니 이 대단한 최유진 선배에게 원나잇을 제안했던 모양이었다. 여자들에게 인기 없는 초식남들에게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대체 어떤 자신감이 있어야 퀸카를 헌팅하고 바로 방으로 가자고 할 수가 있을까. 용기 없는 초식남들에게는 영원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n\n한야성도 그런건 상상을 못했다. 만난 날 최대한 용기를 내서 손은 잡는다 해도 자자고 하는건 절대 불가능했다. 그런건 다른 세계에서나 사는 킹카남들이나 할 수 있는 짓이었다. 장은아를 제외한 여자들은 그런걸 제안한 킹카나 그 킹카를 거부한 최유진 선배를 대단하게 보고 있었다. 자신들이라면 어쩌면 따라갔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n\n그만큼 그 킹카남은 연예인처럼 멋졌으니까. 그런 남자에게 대쉬받는건 보통 여자들의 꿈이었다. 평범한 여자들이라면 두근두근 거려하며 따라갔을 것이다. 거절은 아마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보통 여자들의 그 꿈에 최유진 선배가 먹칠을 했다.\n\n“아마 다른 여자 헌팅해서 곧바로 데려갔을걸. 그런 남자는 이런 곳에 와서 여자 없이 못 자거든.”\n\n참으로 대단한 말이었다. 여자 없이 자야 하는 초식남들을 절망케 했으니까. 이렇게 남녀가 한데 모여서 자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하는 이들이었다. 그 킹카와 비교하니 자신이 초라해지고 있었다. 그놈은 쉽게 꼬신 잘 빠진 여자와 뜨거운 밤을 보내며 잘 텐데 우린 지금 뭐하는 거지, 하는 초식동물들의 슬픈 눈동자가 보였다. \n\n한야성도 조금 먹먹하긴 했다. 자꾸 발기는 되는데 풀지는 못하니 말이다. 요즘 들어 더 심해졌다. 아니, 여자들과 함께 있어서 그런지 더 했다. 여자들에게서는 살냄새가 났으니까. 뭔가 풋풋하면서도 야릇한 여자의 살결 냄새를 맡게 되자 그게 더욱 성을 내고 있었다. \n\n여자들과 가까이 지내는건 이게 처음이었다. 여자의 살내음을 맡아볼 기회가 그전까지는 없었는데 요며칠 계속 맡게 되니까 성욕이 계속 올라왔다. 더구나 무슨 은밀한 냄새까지 맡아졌다. 저쪽 세계를 오가며 후각도 좋아진 영향 때문인지 여자들의 음부나 엉덩이 냄새가 약간씩 나는 것 같았다. \n\n그건 치명적이었다. 그 냄새는 단숨에 그걸 발딱 서게 만들 정도였으니까. 그냥은 죽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걸 빼고 나서 자야 할 것 같았다. 여자들 몸에서는 참 신비한 냄새가 났다. \n\n밤 12시가 넘어서 불을 끄고는 다들 잘 준비를 했다. 최유진 선배는 여전히 취기 어린 말로 내일 근처 맛집 탐방을 하자고 하였다. 다들 그러마고 하고는 잠을 청했다. 한야성은 그게 계속 서 있는 상태라 잠도 못 자고 시간이 가기를 기다렸다. 다들 잠들 때를 기다려 남자 방으로 돌아가 화장실에서 그걸 빼낼 생각이었다. \n\n영원처럼 긴 30분 정도가 흘러갔다. 대부분 고요한 숨소리를 내면서 잠이 든 것 같았다. 한야성은 조금 더 기다리다가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났다. 그게 완전히 팽창해서 너무 아플 정도였다. 빨리 가서 빼야 할 것 같았다. 여자들 룸을 나와서 남자들 방으로 들어간 한야성은 화장실로 들어갔다. 반바지와 팬티를 내리자 그것이 스프링처럼 튀어나왔다. \n\n그쪽 세계를 오가며 이전보다 더 단단해진 것 같았다. 한야성은 한숨을 내쉬고는 오른손으로 그걸 잡고 흔들었다. 그냥 하면 재미가 없으니 머릿속으로 상상을 해야 했다. 아주 저절로 최유진 선배가 웃으며 나타났다. \n\n그녀가 입에 넣고 그걸 빨아주는 상상을 하자 금세 사정감이 올라왔다. 예쁜 여자들은 다 한번씩 남자들의 딸감이 되곤 한다. 그녀들은 그걸 모르겠지만 말이다. 남자들의 상상속에서 자신들이 음탕하게 범해지는 것을 알면 여자들은 어떤 기분일까. 모르는게 약일 것이다.\n\n“후우, 후우...”\n\n한야성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 그걸 잡은 손을 앞뒤로 움직였다. 상상속의 최유진 선배가 한야성의 얼굴에 엉덩이를 들이민다. 팬티를 입지 않은 맨 엉덩이여서 세로로 갈라진 곳과 예쁜 항문이 자세히 드러났다. \n\n그걸 상상하는 것만으로 사정감의 절정에 다다랐다. 한야성의 손은 더욱 빨라졌다. 사정감에 급해져서 얼른 휴지를 빼고는 귀두를 감쌌다. \n\n“으윽...”\n\n요도에서 정액이 쉼없이 꾸역꾸역 밀려나왔다. 며칠 안 해서 그런지 평소보다 양이 많았다. 사정을 다 해버리자 몸에서 힘이 급격히 빠져나갔다.\n\n“하아...”\n\n한야성은 기운이 좀 빠져서 변기 위에 앉았다. 뻘겋게 익어서 위아래로 꿈틀거리는 그것을 보고 있자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건 여자와 해서 빼내야 하는데 언제나 손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남자로서 조금 우울감이 들었다. \n\n하지만 여자친구가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고 돈을 주고 직업 여성과 그런 짓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이것도 저것도 아니었다. 한야성은 언제나 경계에 서 있었다. 그래서 그 어디에도 끼지 못했다.\n\n쏴아아...\n\n샤워기에서 물을 틀어 그것을 씻어냈다. 그래도 한번 뽑아냈다고 성욕이 많이 사라졌다. 아직도 반 발기 상태로 꺼떡이는 그것에게 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여자와 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평생 여자의 구멍속에 들어갈 일은 없을 것이다. \n\n여자의 음부로 들어가 질안에 사정하는게 그것의 절대적인 존재 이유인데 자신과 함께 있는한 그러지 못할 테니 말이다. 그러니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n\n“그러니까 다른 남자걸로 생기지 그랬냐.”\n\n하필 자기걸로 생겨서 여자 구경도 못하고 있었다. 한야성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젓고는 수건으로 그걸 닦고 반바지와 팬티를 입은 뒤 화장실을 나왔다. 혹시나 몸에서 정액 냄새가 날까 싶어서 곧장 여자들 룸으로 가지 않고 베란다로 나가서 바람을 쏘였다. \n\n어두운 밤이었지만 아직도 풀장 근처에는 노는 사람들이 많았다. 남녀들이 술을 마시면서 어울리고 있었다. 한야성은 그걸 좀 보다가 다시 전방에 있는 산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둠에 물든 산은 무척이나 캄캄했다. \n\n그걸 보니 저쪽 세계의 숲이 생각났다. 아무리 이 세상의 자연이 좋다 해도 저쪽 세계의 자연보다는 못했다. 이 세계의 자연에서는 흙냄새와 나무 냄새, 그리고 숲 냄새가 약했다. \n\n하지만 저쪽 세계는 그 냄새가 무척 강했다. 그걸 피톤치드라 했던가. 그렇기에 자신의 몸이 지금 좋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로 돌아가면 그쪽 세계에서 다시 몇주 지내기로 마음 먹었다. \n\n이제는 슬슬 숲 건너를 위한 탐험 준비를 해야 했다. 1년이나 준비했으니 탐험을 시작할 때가 된 것이다. 한야성은 한동안 베란다에 서 있다가 슬슬 잠이 와서 여자들 룸으로 되돌아갔다.\n\n다음날 오전, 미스테리 동아리 일행들은 두어시간 물놀이를 하다가 점심 때쯤 워터파크를 나가서 맛집 탐방에 나섰다. 여러군데의 유명한 식당을 돌면서 종류별로 맛있는 것을 먹으러 다녔다. \n\n그렇게 하고 다니니 한야성은 마치 자신이 부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런 식의 맛집 탐방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돈 많은 부자들이 아니면 이런건 할 수 없었다. 확실히 최유진 선배와 은아 선배는 돈이 많은지 모두 자신들이 계산을 했다. \n\n은아 선배는 원래 돈을 많이 쓰는 타입이 아니었는데 최유진 선배가 쓰고 다니니 전염이 돼서 함께 쓰는 것 같았다. 그 덕분에 일행들은 돈 한푼 내지 않고 맛있는 것들을 다 먹을 수가 있었다. \n\n그래도 3학년의 두 여자 선배에게 너무 얻어먹으니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다소 위축이 되는건 어쩔 수 없었다. 특히나 3학년의 남자 선배 둘이 더 그랬다.\n\n“나중에 로또라도 당첨되면 해외 여행 시켜줄게.”\n\n그래도 너무 동기 여자애들한테 얻어 먹으니 남자로서 조금 자존심이 상하는지 그러한 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유진 선배에게 핀잔만 들었다.\n\n“군대 가서 힘들다고 울지나 마라.”\n\n아무래도 두 남자 선배의 군대 가기 전의 환송도 겸해서 하는 것 같았다.\n\n“남자들은 항상 군대를 가니 쓸쓸하단 말야. 너도 곧 가지?”\n\n최유진 선배는 2학년 남자 선배를 쳐다보았다.\n\n“네. 2학기 끝나고 겨울에 가려구요.”\n\n“다 가버리면 쓸쓸하겠다. 동아리에 남자는 1학년 애기들만 남겠네.”\n\n그러면서 애기들인 한야성과 동기 두명을 쳐다보았다. 동기 중 하나가 잠시 의아한 얼굴을 했다.\n\n“군대 제대한 선배들은 동아리에 오지 않나요?”\n\n그 질문에는 은아 선배가 대신 대답을 하였다.\n\n“학점 신경쓰고 스펙 쌓고 취업 준비 해야 되니까 거의 안 나오지. 다들 군대 가기 전에만 동아리 활동을 하거든. 여자들도 3,4학년 되면 동아리실에 거의 안 나오고. 우리 동아리는 원래 타 동아리에 비해서 충성도가 약간 부족하거든. 나도 회장이 아니었으면 안 나왔을지 몰라.”\n\n“너 나오라고 그때 현아 언니가 회장 시킨 거야. 원래는 나 시키려고 했는데 귀찮아서 너 시키라고 했거든.”\n\n“알아. 유진이 넌 뺀질거려서 못 시킨다고 하더라. 니가 회장 되면 동아리를 완전히 타락시킨다고 했거든.”\n\n“히히, 정말 그랬을 거야. 날마다 술파티에 난교에... 앗, 장난이야, 장난.”\n\n은아 선배가 눈을 부릅뜨자 최유진 선배가 얼른 딴청을 부렸다. 갑자기 난교란 말이 나오자 일행들은 민망해서 고개를 돌렸다. 은아 선배가 분위기 전환을 하였다.\n\n“현아 언니는 회사 잘 다니는지 모르겠다.”\n\n“언제 한번 연락해서 만나자. 영화사 들어갔으니 좀 뜯어먹어야지.”\n\n가만히 들어보니 미스테리 동아리 출신의 졸업한 여자 선배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낮 동안 그렇게 맛집 탐방을 다니다가 더는 배가 불러서 거리를 어슬렁거리던 중 최유진 선배가 갑자기 어딘가를 가리켰다.\n\n────────────────────────────────────\n\n<-- 야성의 전설 --> \n\n“우리 저 영화보자. 저거 나 보고 싶던 건데.”\n\n“영화?”\n\n다들 커다란 영화의 간판을 쳐다보았다. 요즘 한창 천만 관객 몰이를 하면서 인기를 끌고 있는 영화였다. 그런데 일행 중 아무도 본 사람이 없어서 최유진 선배의 제안에 따라 즉흥적으로 영화 관람을 하기로 했다. \n\n영화관 안으로 들어가 여러 간식거리를 사들고 입장을 했다. 엠티 와서 영화까지 보니 정말 제대로 노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최유진 선배는 놀줄을 알았다. 2시간 정도의 영화 상영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재미가 있어서 그런지 시간이 생각보다 빨리 간 듯한 느낌까지 들었다. \n\n다들 영화 얘기를 하면서 영화관을 나왔고 천천히 걸어가며 워터파크로 향했다. 오후에는 어제처럼 다시 신나게 놀았다. 이제는 익숙한지 어제처럼 비키니 차림을 해도 여자들은 어색해하지 않았고, 남자들은 헐렁한 사각의 수영 팬티를 입고는 첨벙첨벙 물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한창 모두가 넓은 풀장에 모여서 놀고 있을 때였다.\n\n“유진씨 아니에요?”\n\n누군가가 최유진 선배에게 다가오며 친근하게 아는체를 했다. 그래서 돌아보니 어제의 그 킹카남이었다. 자신감이 대단한지 검은색 삼각팬티만을 입고 있었는데 기럭지가 확실히 우월했다. 온몸도 탄탄한 근육질로 허벅지가 근육으로 각이 져 있었고, 복근에는 왕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흡사 로맨스 드라마 주인공 같은 모습이었다. 저런걸 과시하기 위해서 일부러 삼각팬티를 입은 것 같았다. \n\n그런데 한야성은 그걸 보니 오히려 유치하게 보였다. 차라리 근육이 없었다면 삼각팬티 입은 것에 대해 멋있어 했을 것이다. 그런데 겨우 저런 근육을 자랑하려고 사타구니에 딱 붙는 삼각팬티를 입은 것을 보니 멋있기는커녕 좀 한심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건 한야성에게만 해당되는 것이었는지 초식남들은 연방 작게 우와 하면서 그 킹카남의 근육질 몸매에 놀라워하고 있었다. \n\n동아리 여자들은 창피한지 얼굴이 약간 붉어진 채 대놓고 보지는 못하고 힐끔거리면서 몰래 쳐다보고 있었다. 그걸 보는 한야성은 은근히 화가 났다. 동아리 여자들이 저 킹카남에게 관심이 있는게 느껴져서였다. 저런 놈 좋아하지 말지... 차라리 다른 남자를 좋아했으면 싶었다.\n\n최유진 선배가 빨간 비키니를 입은 육감적인 몸매를 뽐내며 아는체를 받아주었다.\n\n“정훈씨군요. 같이 온 분들은 친구들인가요?”\n\n“네. 인사들 해. 여기는 최유진 씨.”\n\n킹카남과 함께 온 남자 둘도 거의 킹카급이었다. 둘다 키가 크고 근육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킹카남보다는 조금 못한 것 같았다. 킹카남이 킹카 무리의 두목으로 보였다. 두 남자가 인사를 하고 최유진 선배는 여유있게 받아주고 있었다. 킹카급 남자 3명이 눈 앞에 있어도 전혀 위축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n\n남자 둘은 빠르게 동아리 여자들을 훑어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별로 퀸카라 할 수 있는 여자가 없자 실망한 눈초리를 했다. 안경을 쓰고 있는 은아 선배가 그나마 괜찮았는데 전혀 관심을 안 주니 접근을 못했다. 최유진 선배도 굳이 함께 놀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n\n“그럼 나중에 보도록 해요. 지금은 우리 친구들과 놀아야 해서요.”\n\n“아, 네... 그럼 이따가 보죠.”\n\n킹카남의 눈동자에 한순간 실망이 스쳐 지나갔다. 자존심이 상한 것 같기도 했다. 자신이 기껏 말을 걸고 아는체를 했는데 최유진 선배가 받아주지 않자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 그것도 과시하듯 친구들까지 데려와서 더 그런 것 같았다. 하지만 최유진 선배는 그러거나 말거나 멀뚱하게 서 있는 애들을 몰며 다시금 신나게 놀도록 유도했다. \n\n그렇게 한창 놀다보니 다시 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정말로 빨리 갔다. 시간 가는줄 모르고 논다는게 어떤 것인지 알 수가 있었다. 다들 룸으로 올라가 샤워를 한 뒤 저녁식사로 피자와 치킨을 배달 시켜서 먹었다. 모두가 내일은 돌아가야 한다는 것에 약간 아쉬운 얼굴들을 했다.\n\n“우리 좀 더 놀다 갈까?”\n\n최유진 선배가 은근히 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 질문에 이미 놀다 가기 힘들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평소의 최유진 선배라면 좀 더 놀다 가자, 라고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근데 갈까 하는 권유이니 본인도 며칠 더 있겠다는 확고한 마음이 없다고 봐야 했다.\n\n“이제는 가야지. 엠티 와서 5일이나 지냈음 됐어. 다들 할 일도 있을 텐데.”\n\n은아 선배가 그렇게 대꾸하며 고개를 저었다. 엠티 온지 내일이면 벌써 5일이었다. 이제는 실컷 놀아서 사실상 더 놀 것이 없기도 했다. 그래서 다들 아쉬운 한편으로 더 놀다 가고 싶어하는 마음이 크지 않은 것 같았다. 한야성도 더는 미련이 없었다. 이미 실컷 놀고 할거 다 해봤으니까. \n\n다들 마지막 밤을 위해 칵테일 한잔씩 하기로 하고는 지하에 있는 바로 내려갔다. 은은한 재즈 음악 비슷한 것이 흘러나오는 칵테일바는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였다. 일행들은 다들 테이블에 앉아 칵테일 한잔씩을 시켰다. 한야성도 뭐가 뭔지 몰랐지만 대충 하나 골라서 시켰다. 한동안 시간이 지나자 여러 종류의 칵테일을 웨이터가 가져왔다. 다들 자신의 칵테일을 손에 들고는 한모금씩 마셨다. \n\n한야성도 조금 마셔보니 쓰고 이상했다. 별로 자신의 취향은 아닌 것 같았다. 남자들은 대부분 다 인상을 찌푸리며 맛이 없다는 표현을 하고 있었는데 여자들은 아닌지 눈을 감고는 칵테일 맛을 조용히 음미하고 있었다. \n\n이 칵테일이라는 것은 여자들 취향에 맞는 것 같았다. 한야성을 비롯한 남자들은 몇모금 마시고는 아예 잔을 내려놓았다. 남자들이 다 안 마시자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최유진 선배가 핀잔을 주었다.\n\n“야, 니들 다 마셔. 돈 버릴래?”\n\n그래서 할 수 없이 초식남들은 다시금 잔을 들며 억지로 홀짝 홀짝 맛 없는 칵테일을 마셔야 했다. 하지만 한야성에게 칵테일은 정말 취향이 아니었다. 3분의 1정도까지만 마시다가 더는 마실 수 없어서 포기하며 내려놓았다. \n\n최유진 선배의 핀잔을 다시 들을 각오까지 했는데 그녀는 더 이상 별말하지 않고는 재즈 음악을 들으면서 편안하게 칵테일을 마셨다. 그렇게 마지막 밤이 지나갔다. 아니, 지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날 밤 한야성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는 엄청나게 중대한 일이 생기고야 말았다.\n\n여자들의 스위트 룸에서 다들 이불을 깔고 어제처럼 자려고 하는 중이었다. 한야성도 너무 놀고 돌아다니느라 몸이 다소 피곤했기에 오늘은 일찍 자려고 하였다. 초식남 대부분은 눕자마자 별 얘기도 못하고는 다들 곯아 떨어졌고, 여자들도 피곤했는지 두런두런 거리다가 다들 잠들고 말았다. \n\n넓은 거실에 조용히 숨쉬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그러면서 한야성도 그만 잠이 막 들려고 하는 찰나였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휴대폰 진동음이 들려왔다.\n\n부우웅. 부우웅.\n\n누구야. 막 잠이 들려고 할 때 소음이 느껴지니 한야성은 절로 인상이 써졌다. 그런데 전화를 받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최유진 선배였다.\n\n“음, 여보세요...”\n\n그녀도 잠결에 받았는지 목소리가 허스키했다. 한야성은 잠이 들락말락 했는데 갑자기 차가워지는 최유진 선배의 음성에 퍼뜩 잠이 깨고야 말았다.\n\n“왜 전화했어?”\n\n한번도 저런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정말로 싸늘한 음성이었다. 다른 사람이 아닌가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 차가운 목소리는 분명 최유진 선배였다.\n\n“끊어. 할말 없으니까.”\n\n최유진 선배는 냉기가 풀풀 나는 음성으로 휴대폰을 끈 것 같았다. 그러더니 아예 전원을 꺼버리는 소리가 났다. 한야성은 한순간에 잠이 달아난 상태라 어떻게 하질 못하고 그냥 조용히 누워만 있었다. \n\n최유진 선배는 어둠속에서 한숨을 좀 내쉬더니 일어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어디론가 가는 듯 발소리가 났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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