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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 없이 찾아온 지진의 공포
과 마찬가지로 민방공 대피소가 지정되어 있었고 재난 임시 주거시설도 마련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시설들은 전쟁이나 풍수해 등에 대비한 시설이었다. 따라서
지진 대피소가 어디인지 묻는 질문에 지자체의 담당 직원들도 말문이 막힐 수밖
에 없었다. 결국 거리로 나온 주민들 대다수는 스스로 대피소를 찾아야 했다.
주민들은 건물이 무너질 위험이 없는 넓은 지역이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그래
서 경주시민운동장과 인근 학교 운동장 등으로 몰려갔다. 하지만 일부 학교는 교
문이 잠겨 있기도 했고 지진에 대비한 실내 구호소가 지정되거나 운영되고 있는
곳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주민들은 학교 운동장이나 자동차 등에서 밤을 지새
워야 했다.
미리 지진대피장소를
•학교 운동장에서 대피중인 주민들
지정해 두었다면
주민들의 혼란을
줄일 수 있었다.
모두가 처음 겪어보는 혼란
사람들이 대피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부상이 발생했다. 부상자는 20대에서
8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에서 나타났다. 가장 대표적인 부상 원인은 대피 도중 넘
어짐이었다. 집이 지진에 흔들리면서 장식장과 서랍장 등에 올려놓은 물건이 떨
어져 다친 경우도 있었고 놀라서 뛰어내리다가 다친 사람들도 있었다. 이러한 부
상들은 대부분 갑작스러운 대규모 지진에 공포심을 느낀 나머지 당황해서 일어난
것이었다. 실제로 이날 지진을 가장 극심하게 체험한 경주 지역의 주민들은 당시
014 | 재난 씨, 우리 헤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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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경주 지진
의 공포를 이렇게 말했다.
“건물이 덜덜덜 떨렸고, 현기증이 났어요. 너무 무서웠어요.”
“평생을 경주에 살았지만 이만큼 건물이 흔들린 건 처음이었어요.”
“정말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이런 불안한 상황이었음에도 경찰관이나 지역 공무원들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들 역시 지진을 처음으로 겪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구
호방법은 무엇인지, 대피소는 어디서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모든 것이 혼란스
러웠기 때문에 현장조치 행동매뉴얼에 따라 주민대피 안내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밤 자율학습 시간이었던 A고등학교. 갑자기 진동이 느껴졌고 학생들은
혼란과 공포에 사로잡혀 당황해 했다. 그런데 학생들을 지도하고 이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교사들 역시 지진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
했다. 그날 교사들이 공포에 질린 학생들에게 지시한 것은 대피가 아니었다.
“괜찮아. 그냥 앉아서 공부해.”
다행히 그날 그 학교는 별다른 지진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그렇지만 만일 그
대로 공부하던 중에 더 큰 지진이 발생했다면, 그래서 학교 시설이 큰 피해를 입었
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한 상황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2016 경주 지진 연령대별 부상자 수 •2016 경주 지진 부상자 피해 원인
연 80대 피 심리불안
령 70대 해
대 원 낙석
60대 인
열상
50대
질병 악화
40대
30대 뛰어내림
20대 물건 낙하
10대 넘어짐
0 1 2 3 4 5 6 0 2 4 6 8 10 12
부상자 수(인) 부상자 수(인)
제1장·지진 | 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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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 없이 찾아온 지진의 공포
재난은 안전의 빈틈을 파고 든다
공포의 밤이 지나가고 혼란과 피해 수습이 시작되었다. 2016 경주 지진으로 인
한 건축물의 피해는 주로 소규모 민간 건축물(2층 미만 또는 연면적 500㎡ 미만)
에서 많이 발생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나라의 지진은 미국, 일본에서 자주
발생하는 장주기 지진과 달리 단주기 지진의 특성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주기 지진이란 지진의 파동주기가 긴 지진을 말하는데 이 경우 고층 빌딩들
이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이에 비해 단주기 지진은 파동주기가 짧은 지진을 의
미하는데, 흔들림의 주기가 짧은 힘이 일시에 들이닥치면서 주로 지지력이 약한
저층 건물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 2016 경주 지진 당시 진앙부인 명계리(MKL)와
울산(USN) 관측소에서 관측된 지진파를 분석한 결과 이날 발생한 지진 역시 최대
지반가속도가 0.2~0.3sec로 단주기 지진에 해당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경주 지역의 많은 저층 건물들은 내진설계 의무대상이 아니
었다. 따라서 지진 피해는 내진설계가 이루어지지 않은 소규모 민간 건축물(500
㎡ 미만의 1·2층)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였다.
시설물의 피해는 기와지붕이 부서지고 건물에 균열이 발생한 것이 대부분이었
고, 심한 경우 기둥의 전단부가 파손된 곳도 있었다. 특히 학교 시설의 경우 벽체
에 균열이 발생하고 마감재와 조명이 떨어지는 등 비구조적인 피해를 많이 입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2016 경주 지진 당시 저층건물의 피해(벽체 균열, 기둥 파손 등)
016 | 재난 씨, 우리 헤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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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경주 지진
주민 안전의 거점이 위험하다
2016 경주 지진의 피해 상황을 집계하던 관련 기관은 국내 지진 대비 태세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많은 학교 시설들이 지진에 무
방비 상태라는 것이었다.
국내 대부분의 지역에서 학교는 자연재난이 발생했을 때 주민들의 대피소로
활용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미 오래 전부터 지진에 대해서도 대비해야 한다는 주
장과 함께 학교 시설의 내진설계 기준과 내진성능이 부족하다는 문제점이 제기되
어 왔다. 따라서 정부는 3~5층 이상 규모의 학교 건축물에 대해서 2005년 7월부
터 내진설계를 의무화하도록 하였고, 2009년 3월부터 전국의 모든 초·중·고등학
교 시설로 그 대상을 확대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2005년 7월 이전에 설계된 학교
건축물들은 대부분 내진설계가 적용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또한 경북·경남 지
역의 학교 시설들은 내진보강률이 전국 평균보다 낮은 수준이었다. 이러한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