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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이후 지리산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은 건 처음이에요!” |
이날 지리산에서 발생한 인명피해는 사상자만 95명. 그러나 이는 단순히 |
하늘에서 내린 재난이 아니었다. 안전수칙을 무시한 야영객들, 때늦은 |
기상특보, 계곡물이 불어 넘치도록 울리지 않은 경보시스템 등이 모두 맞물려 |
빚어낸 인재(人災)였다. |
제3장·집중호우 | 0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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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호우가 빚어낸 치명적인 산악홍수 |
때늦은 기상특보로 대피할 시간이 부족했다 |
1998년 7월 31일, TV를 켜자 때마침 기상예보가 나오고 있었다. 당시 기상청 |
이 발표한 예상 강수량은 중부지방이 30~60mm, 많은 곳은 80mm 가량의 비가 내 |
린다고 했다. 남부지방은 10~50mm로 비교적 적은 비가 예보되었다. 비가 온다는 |
소식 이외에는 걱정할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
비는 그날 밤 10시부터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정을 지나 다음 날 새벽이 |
되면서 시간당 50~100mm의 호우가 쏟아졌다. 기상청은 밤 10시 30분에 호우주 |
의보를 발령했고, 8월 1일 새벽 1시 30분에는 서둘러 호우경보를 발표했다. 그러 |
나 그 시간은 모두가 잠이 든 캄캄한 밤중이었고, 이미 당시 시간당 강수량은 전남 |
구례가 139mm, 전남 순천이 145mm를 기록하며 기상관측 이후 전국 최고 기록 |
을 갱신하고 있었다. 최대 강우량을 기록한 집중호우를 전후해서 뒤늦게 산발적 |
으로 기상특보와 경고가 쏟아져 나왔다. |
이후 기상청은 호우특보의 발표 기준을 |
변경하였다. |
당시 보다 신속한 2000년 초반부터 호우특보 발표를 24시간 |
강우기준에서 12시간 강우로 개선하였고, |
호우경보 발표가 |
최근에는 6시간, 12시간 강우기준으로 |
있었다면 사전대피가 |
변경하여 운영하고 있다. |
가능했을 것이다. |
048 | 재난 씨, 우리 헤어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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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지리산 집중호우 |
7월 31일부터 8월 1일까지 구례 316㎜, 화개 300㎜, 대원사계곡 262㎜ 등 기록 |
적인 누적 강수량을 기록하면서 지리산을 중심으로 150~300㎜ 이상의 많은 비가 |
내린 것이다. |
당시 이모씨(27)는 지리산의 한 계곡에서 야영을 하고 있었다. 그는 퍼붓듯 쏟 |
아지는 비를 걱정하며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라디오에서 호우경보가 나 |
왔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갑자기 계곡에서 바위와 돌이 부딪치는 천둥 |
소리가 들렸다. 놀라서 나가보니 컴컴한 어둠 속에서 급격하게 불어난 흙탕물 투 |
성이의 계곡물이 몰려왔다. 그는 서둘러 함께 있던 사람들을 깨워 몸을 피했다. |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검은 계곡물이 그들이 있던 야영장을 덮쳤다. |
“기상청 호우경보 발표시간과 집중호우 시간이 비슷해서 하마터면 큰일 날 뻔 |
했어요.” |
1998년 당시 기상특보는 24시간 강우를 토대로 발표되고 있었다. 따라서 단시 |
간에 쏟아지는 집중호우에 대해서는 경보를 발표할 수 없었던 것이다. |
불법야영이 사고를 키웠다 |
현재 지리산 국립공원의 모든 계곡은 취사와 야영이 금지되어 있다. 당시에도 |
이러한 규정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지리산을 찾는 일부 야영객들은 국립공원 |
관리요원의 눈을 피해 계곡과 맞닿은 곳이나 산림이 울창한 숲속으로 들어가 몰 |
래 텐트를 설치했다. 심지어 관리요원들의 지시에 따르지 않고 순찰이 있을 때만 |
잠시 숨었다가 다시 나와서 피서를 즐기기를 반복했다. |
“괜찮아. 잠깐 있다가 가는 건데 어때?” |
불법야영도 그렇지만 더 큰 문제는 야영객들이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
것이다. 야영객은 기상예보 청취에 필요한 라디오와 간단한 구조장비를 필수적 |
으로 휴대해야 한다. 그러나 당시 계곡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무시했다. |
제3장·집중호우 | 0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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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호우가 빚어낸 치명적인 산악홍수 |
또한 장마철 하천 합류지점에서는 물놀이를 삼가야 하고, 조난을 당할 경우에는 |
무리하게 산에서 내려오거나 급류를 만났을 때 불어난 계곡을 성급하게 건너지 |
말아야 하는 등의 안전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마을 주민들은 그런 야영객 |
들을 마주칠 때마다 경고했다. 그러나 사고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
“여기서 오래 살았으니까 우리는 알아요. 그런데 외지 사람들은 어디가 위험한 |
지 모르잖아요. 거긴 위험하다고 말려도 기를 쓰고 들어가는 거예요.” |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
관계기관에서는 야영객들은 |
홍수의 위험성에 대한 교육, 비상 대피요령 지정된 장소에 텐트 설치, |
교육 필수! 대피로 확인, 계곡 횡단 금지 등 |
안전수칙표지판 설치! 안내! |
산지돌발홍수로 인한 |
피해를 예방하려면? |
•당시 계곡하류부에 설치한 불법 텐트 |
관리 감독의 손길이 미치지 않았다 |
7월 31일 밤 10시부터 시작된 기록적인 집중호우. 기상청에서는 밤 10시 예비 |
특보를 발표했고 30분 후 호우주의보를 발령하였다. 뒤늦은 조치였지만 그래도 |
사고를 막을 기회는 있었다. 하지만 당시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직원은 예비특보가 |
발령된 밤 10시 이후에도 입산통제를 하지 않았다. 심지어 이미 계곡 하류부에 20 |
개 이상의 텐트가 불법야영을 하고 있었음에도 사전 제지나 경고와 같은 조치는 |
050 | 재난 씨, 우리 헤어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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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지리산 집중호우 |
전혀 이 루 어지지 않았다. |
당시 지리산 국립공원은 그 규모에 비해 관리사무소의 직원들의 인원이 턱없 |
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직원들은 호우 기간 중 관할구역 이외 지역에 대한 |
순찰은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더불어 일부 직원은 그곳에 부임한 지 3일밖에 되 |
지 않아 관할구역 파악조차 제대로 안 된 상태이기도 했다. 실제로 뱀사골 솔밭 |
인근의 야영장은 관할구역이 아니라는 이유로 순찰과 경고방송이 이루어지지 않 |
았는데, 그 때문에 큰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
통합 현장지휘 체계의 부재 |
7월 31일 밤 11시를 넘어서면서부터 119 안전신고센터에 신고 전화가 폭주하 |
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걸려온 전화는 이후 1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나 신 |
•실종자 및 고립된 야영객 수색·구조 현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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