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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집중호우 | 0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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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호우가 빚어낸 치명적인 산악홍수 |
고 내용은 지리산 대원사, 피아골, 뱀사골 등 각지에서 피해사실이 접수되어 정확 |
한 사고 규모를 알기 힘들었다. 이뿐만 아니라 구조를 요청하는 전화들의 경우 당 |
황한 나머지 과대 표현된 내용도 적지 않았다. 이러한 정확성과 신뢰성이 떨어지 |
는 신고 전화로 인해 구조인력의 배치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구조대 |
의 출동이 다소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
구조대원들은 빗속을 뚫고 달려가 수색과 구조 활동에 주력하였다. 그러나 물 |
이 많고 유속이 빨라 구조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었다. 집중호우가 발생한 이틀 |
후에는 헬기를 동원하여 지리산 계곡에 고립된 피서객들을 수색하였다. 또한 경 |
찰, 군 병력, 자원봉사자들도 함께 구조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총괄적으로 |
현장을 지휘하는 체계는 찾아볼 수 없었고 구조 인력 간 유기적인 작업이 이루어 |
지지 않아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
느린 피해복구와 무성의한 사고수습 |
지리산 집중호우는 야영객들에게만 피해를 입힌 것이 아니었다. 당시 지역 주 |
민 정모씨(39)는 아찔한 순간을 체험했다. 그는 순식간에 불어나는 물로 인해 가 |
족들과 급히 집을 빠져나오느라 귀중품들을 챙길 여유가 없었다. 대피소에 도착 |
했을 때는 주민들과 피서객들이 절망적인 표정으로 급류에 떠내려가는 집, 비닐 |
하우스, 가재도구 등을 지켜보고 있었다. |
그는 어느 정도 불어난 물이 잦아든 후에 집으로 돌아왔다. 집은 안팎이 엉망 |
이었다. 가전제품과 옷가지 등이 모두 물에 잠진 채로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
그는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차오른 흙과 물을 퍼내기 시작했다. 이후 군 병 |
력과 자원봉사자들이 투입되었으나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또한 장비 투입 역 |
시 더디게 이루어져 피해복구 작업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
“그래도 다행이에요. 우리는 살았으니까.” |
052 | 재난 씨, 우리 헤어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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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지리산 집중호우 |
하지만, 실종자 가족과 희생자 유가족들은 관할 지자체의 태도에 분통을 터트 |
렸다. 대책본부에는 분향소는 물론이고 편의시설도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당시 |
상황실 당직 근무자는 1명뿐이었는데 문의해도 “보고가 없어 잘 모르겠다.” 라는 |
답변만 반복할 뿐이었다. |
이뿐만 아니라 당시 대책본부는 집중호우로 인해 통신과 전기 공급이 중단된 |
상태였다. 긴급복구를 요청하였으나 이마저도 피해 발생 하루 뒤인 8월 1일 오후 |
7시가 넘어서야 임시전화가 설치됐을 뿐이었다. 답답한 일부 희생자 가족들은 관 |
할 지자체를 직접 찾아가 신속한 구조와 수색 작업, 그리고 분향소 설치 등을 요구 |
했다. 그러나 누구도 속 시원히 대답해 주는 이가 없었다. |
희생자 유가족들의 민원을 피해자 중심의 |
현장에서 신속하게 지원해주는 실효성 있는 구호 대책을 |
현장본부 설치 필요 수립해야 한다. |
•지리산 일대의 폭우로 불어난 강물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진 다리 |
제3장·집중호우 | 0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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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호우가 빚어낸 치명적인 산악홍수 |
054 | 재난 씨, 우리 헤어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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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우면산 산사태 |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 산사태 |
2011 우면산 산사태 |
프롤로그 |
“서울이 물바다가 되었다.” |
한 신문이 기록한 2011년 7월 27일의 풍경이었다. 그날은 새벽부터 |
아침까지 서울 전역에 시간당 최고 30mm가 넘는 기습 폭우가 쏟아졌다. |
이후 3일간 서울을 중심으로 중부지방에 내린 비는 약 500mm. 이 중 가장 큰 |
피해가 발생한 곳은 서울 서초구의 우면산 지역이었다. |
당시 이곳에는 7월 27일 아침 6시 50분부터 2시간 동안 164mm의 폭우가 |
쏟아졌다. 그리고 7시 40분부터 8시 40분까지 우면산 일대 12개 지역에서 |
150개소에 이르는 사면이 붕괴되었고 산사태가 일어나 흙과 돌더미가 굴러 |
떨어졌다. 8시 50분경, 우면산에서 밀려온 토사가 마을과 주변 도로를 덮쳤다. |
미처 손쓸 틈도 없이 16명이 사망했고 부상자 51명 등 총 67명의 사상자가 |
발생했다. |
제3장·집중호우 | 0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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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 산사태 |
이미 예고된 재난이었다 |
서울의 우면산은 작은 산에 속하지만 강남의 허파 역할을 했다. 주민들은 도심 |
의 빌딩 숲과 주택 지대를 끼고 펼쳐진 해발 293m의 녹지공간을 자연의 축복으 |
로 여겼다. 그들은 곳곳에 있는 등산로와 약수터를 이웃집처럼 오르내렸고 산 아 |
래쪽에는 고층 아파트와 고급 전원주택이 들어섰다. 그러나 집중호우의 흙탕물이 |
휩쓸고 내려오면서 자연의 축복이었던 이 산자락은 재난현장으로 변했다. 주민들 |
은 당시의 산사태 순간을 이렇게 회상했다. |
“아침에 두 차례 ‘펑’ 소리와 함께 물줄기가 몇 미터 솟구쳤어요. 그리고 그 뒤 |
로 흙과 자갈 더미가 쏟아져 내렸어요.” |
산사태가 날 경우 무너져 내리는 속도는 시속 30km, 발생한 지 2~3분이면 큰 |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때문에 사전 징후를 감지해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산비 |
탈의 나무가 기울어지거나 물이 솟으면 산사태가 일어나기 직전이라는 신호이다. |
당시 서초구청이 우면산의 |
2010년에 우면산의 토사 재해에 대한 |
토석류 발생지역에 대한 보수작업을 |
복구 및 방재 대책이 시행되었다면 |
장마철 이전에 조속히 |
산사태 피해를 경감할 수 |
완료했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
있었을 것이다. |
수 있었다. |
•우면산 산사태 전경 |
056 | 재난 씨, 우리 헤어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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