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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우면산 산사태 |
그리 고 땅 울림이 들릴 때는 이미 산사태가 시작됐기 때문에 신속하게 대피하는 |
것만이 최선이다. |
“처음에 기차 소리다 싶어 이상하다 왜 이런 소리가 날까 했는데….” |
우면산은 이전 해인 2010년 9월 태풍 곤파스와 추석 폭우가 내렸을 때 유사한 |
피해가 발생한 적이 있었다. 당시 덕우암과 신동아아파트, 이 두 지역에서 산사태 |
와 토석류(집중호우 등에 의해 산사태가 일어나 토석이 물과 함께 하류로 세차게 |
밀려 떠내려가는 현상)가 발생했던 것이다. 다행히 주택가를 덮치진 않았지만 차 |
량 한 대가 매몰되고 수천 그루의 나무가 뿌리째 뽑혔다. 당시 서초구청은 그해 9 |
월부터 12월까지 4차례에 걸쳐 우면산의 토석류 발생지역에 대한 보수작업을 시 |
행했다. 그러나 이 작업은 이듬해 장마철이 시작될 즈음까지도 완료되지 않았고, |
그 와중에 집중호우가 쏟아진 것이다. |
설마 서울 한가운데서 산사태가 나겠어? |
우면산 산사태 발생 15시간 전인 7월 26일 오후 5시. 당시 산림청은 전국적으 |
로 집중호우가 빈발하자 관련 지자체 공무원들에게 산사태주의보 발령을 요청하 |
는 문자메시지를 발송했다. 여기에는 서초구의 담당 공무원들도 포함되었다. 그 |
리고 7월 27일 오전 8시에는 산림청장의 명의로 산사태 예보를 발령하는 공문을 |
발송했다. 그러나 서초구에서는 어떠한 예보도 발령되지 않았다. 어찌된 일일까? |
서초구청은 산림청으로부터 문자메시지나 공문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 |
다. 하지만 뒤늦게 확인한 결과 담당 공무원이 계속되는 비상근무로 집에 들어가 |
지 못했고, 휴대전화의 배터리가 방전되어 문자메시지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해명 |
했다. 담당 공무원이 문자 메시지를 확인했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남아 있었다. 당 |
시 산림청에서 보낸 정보는 ‘귀 관할구역은 산사태 위험주의보(경보) 발령 대상 |
지역입니다.’ 라는 포괄적인 내용이었다. 따라서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강구하기 |
제3장·집중호우 | 0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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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 산사태 |
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더군다나 넓은 우면산 일대에서 어느 지역에 대형재난이 |
발생할 것인지 예측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었다. |
그렇다면 담당 공무원이 정상적으로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고, 나아가 위험을 |
예상해 선제적으로 대응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
사고 당일인 7월 27일 오전 7시 40분경, 우면산 일대에 방송과 문자메시지를 |
통해 산사태 예보가 발령되었을 것이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는 단지 내 방송 |
시스템을 통해 산사태 주의보를 발령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주민들에게 대피 지 |
시를 내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가정일 뿐 그날은 아무런 행정 조치가 이루어지 |
지 않았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
우면산의 산사태와 토석류는 발생 지점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오전 7시 40분 |
부터 8시 40분까지 한 시간에 걸쳐 순차적으로 발생했다. 그런데 각 발생 지점마 |
다 시간차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상황 전파도 없었고 주민 대피도 이루 |
어지지 않았다. |
•밀려온 토사류가 도로와 아파트를 뒤덮은 모습 |
신속한 상황전파와 |
주민 대피가 이루어졌다면 |
인명 피해를 |
최소화할 수 있었다. |
산사태 예보시스템이 |
정상 작동했다면…. |
058 | 재난 씨, 우리 헤어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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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우면산 산사태 |
복 구 비용과 보상 문제를 둘러싼 갈등 |
순식간에 발생한 우면산 산사태는 사망자 16명, 부상자 51명 등 총 67명의 사 |
상자를 유발했고, 주택과 도로가 토사에 뒤덮이는 등 많은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
주민들이 서울시 한복판에서 발생한 산사태에 망연자실한 가운데 지자체와 관련 |
기관은 즉시 사고 수습과 피해 복구에 나섰다. 그러나 피해를 입은 건물주들은 구 |
청과 공사비 부담 문제로 대립했다. |
“도배부터 시작해 창문, 현관, 욕실, 보일러 등 모두 손을 대고 있는데 구청으로 |
부터 비용 지원이 안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
당시에는 지원 기준이 세분화되어 있지 않았으며, 지급 금액이 일괄적이고 상 |
한 금액이 있었다. 따라서 피해 규모에 비해 지원 금액이 부족한 경우도 있었는데 |
지원 기준이 보다 현실에 맞게 세분화되어 있었더라면 피해 주민들의 고통을 줄 |
일 수 있었을 것이다. |
피해 복구와 보상 문제가 맞물리면서 복구 작업은 더디게 진행되었다. 일부 피 |
해 주민은 산사태로 집을 잃은 뒤 거취를 마련하지 못한 채 떠돌이 생활을 하기도 |
했다. 또한 사망자의 유가족들은 산사태 당시의 고통스런 기억들로 인해 잠을 제 |
대로 이루지 못하기도 했다. |
결국 건물주와 주민들은 뒤늦게 자비를 들여 복구 공사를 시작했다. 어렵게 지 |
원 대상에 포함된다 하더라도 지원금은 주민들의 기대보다 많이 낮은 수준이었기 |
때문에 피해 주민들의 시름은 더욱 깊어갔다. |
사고 원인을 알면 피해 재발을 막을 수 있다 |
사고 발생 이후 서울시는 한국지반공학회와 함께 정확한 사고 원인 분석에 나 |
섰다. 그러나 사고 원인 조사를 둘러싸고 크고 작은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1차 조 |
제3장·집중호우 | 0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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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 산사태 |
사에서 발표한 사고 원인은 집중호우로 인한 붕적토층의 붕괴가 산사태를 일으켰 |
다고 결론을 내렸다. 쉽게 말해 ‘천재(天災)’ 라는 것이다. 하지만 유가족들은 이에 |
대해 수긍하지 않았다. 이에 서울시는 전문가들의 자문을 구하는 한편 복합적인 |
시뮬레이션 분석을 통해 사고발생 2년 반 만에 나온 2차 최종 보고서를 마련하였 |
다. 이 보고서에서는 사고의 원인이 ‘폭우와 지질 상태, 행정기관의 대비 부족’이 |
종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했다. 1차 조사 결과에 비해 수긍할 만한 수준이었으 |
나 유가족들의 생각은 달랐다. |
“인재보다는 천재가 크다는 결론은 변함이 없는 거잖아요.” |
조사 결과를 보면 천재(天災)와 인재(人災)를 규정하는 핵심 요소인 강우량에 |
대한 분석 결과가 오락가락하면서 유가족들의 불신을 초래한 측면이 있었다. |
2011년 우면산 산사태 이후에도 우리나라에서는 해마다 여름철이면 계속해서 |
집중호우가 발생하고 있다. 집중호우의 피해를 방지하는 철저한 사전 점검과 대 |
비 태세를 갖춰 나가야 한다. |
재난 피해자를 위한 피해 주민은 물론 민, |
안심서비스와 적극적인 구호 관, 학계 등이 참여한 |
프로그램이 갖추어져야 한다. 투명한 원인조사가 |
이루어져야 한다. |
060 | 재난 씨, 우리 헤어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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