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stringlengths 0 512 |
|---|
--- 페이지 1 --- |
산불: 사소한 부주의까지 철저히 대비하라 |
▶ 작은 불씨가 태백산맥을 불태우다 |
/ 2000 동해안 산불 |
제9장·산불 | 145 |
--- 페이지 3 --- |
2000 동해안 산불 |
작은 불씨가 태백산맥을 불태우다 |
2000 동해안 산불 |
프롤로그 |
2000년 4월, 완연한 봄기운과 함께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었다. 강원도 |
고성군에 위치한 육군 부대에서는 한 사병이 평소와 다름없이 소각장에서 |
쓰레기를 불태웠다. 그날따라 바람이 강하게 불었고 소각장의 불씨가 |
이리저리 흩어졌다. 그리고 바람을 타고 옮겨 간 불씨가 인근 숲속 여기저기로 |
내려앉았다. 그 불씨는 사그라진 듯 보였으나 수북이 쌓여있던 낙엽 사이로 |
스며들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거대한 불길이 치솟았고 삽시간에 주변 |
지역으로 옮겨 붙기 시작했다. 산불이 발생한 것이다. |
이날 발생한 산불은 대형 재난의 시작이었다. 불길은 건조한 날씨와 강한 |
바람을 타고 넓게 확산되었고 4월 7일부터 15일까지 9일간 강원도 고성군과 |
경상북도 울진 등 동해안 지역 5개 시군의 산림을 불태웠다. 이 산불은 사망자 |
2명, 부상자 15명의 인명 피해를 유발했다. 그리고 소와 닭 등 수많은 가축이 |
폐사했고 건물 101동과 주택 390동이 피해를 입었으며 850명의 이재민을 |
발생시켰다. |
이 산불로 인해 서울 남산 면적의 80배인 23,794ha(헥타르)의 산림이 |
소멸되었다. 4월 15일 산불이 모두 진화되었을 때 동해안 일대의 산들은 검은 |
잿더미로 변해 있었다. |
제9장·산불 | 147 |
--- 페이지 4 --- |
작은 불씨가 태백산맥을 불태우다 |
일사불란한 대응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
2000년 4월 7일 오전 1시 45분경,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학야리의 운봉산에서 |
최초로 산불이 발생했다. 이 산불은 초속 20~25m의 강풍을 타고 인근 운봉리, 백 |
촌리와 죽왕면 야촌리, 삼포2리 민박촌까지 번졌다. 순식간에 산림 5백여 ㏊와 가 |
옥 등 56채가 불에 탔고 한우 42마리가 폐사했다. 오전 8시 50분경에는 강릉시 사 |
천면 석교리, 판교리, 진리, 노동리와 연곡면의 동덕리, 신왕리 등 11개 마을로 산 |
불이 번졌다. 또한 오후 2시에는 강릉과 주문진을 잇는 7번 국도와 해안선을 따라 |
북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때 거동이 불편한 주민 1명이 불에 타 숨지는 일 |
이 발생했다. 사천면 내 10개 마을 1천여 주민이 급히 대피했고 사천중학교는 임 |
시 휴교했다. 산림청은 대형 산불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긴급히 전국 등산로 |
의 90% 이상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
산불이 발생하자 산림청은 신속하게 산불사고수습대책본부를 구성하고 총괄 |
여러 기관의 헬기가 참여할 경우 |
산불 진화 지휘체계를 일원화하고, |
지휘용 헬기를 운영하여 통제하고, |
유관기관들의 진화인력에 대한 |
자치단체장을 중심으로 공중과 |
통합지휘가 이루어져야 한다. |
지상의 효과적인 협력 방안을 |
강구해야 한다. |
•확산되고 있는 산불 |
148 | 재난 씨, 우리 헤어져 |
--- 페이지 5 --- |
2000 동해안 산불 |
반, 진화지휘반, 홍보지원반, 복구지원반 등 4개 반을 편성해 운영하였다. 하지만 |
당시 각 반별로 업무가 세부적으로 명확히 명시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산불의 |
진화 상황, 진화 장비 배치 등의 정보가 원활히 공유되지 않아 업무 수행에 차질이 |
발생했다. 한편 당시 농림부에도 산불중앙사고대책본부가 꾸려졌는데 산림청의 |
산불수습대책본부와의 역할 분담이 명확하지 않았고 일부 업무가 중복되는 일이 |
발생했다. |
당시 우리나라에는 대형산불 발생 시 한반도의 기후와 지형에 맞는 진화 단계 |
별 지침이나 효과적인 대응 매뉴얼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시·군에서부터 중앙 |
조직까지 대책본부가 마련되어 있었지만, 시·군별 진화인력의 조직체계가 다르고 |
유관기관과의 유기적인 협력체계가 확립되어 있지 않았다. |
특히 당시 산불 진화 작업의 지휘체계는 발생 규모와 산림 소유 여부(국유림, |
사유림)에 따라 산림청과 지자체로 이원화되어 있었고, 자치단체와 관리청, 군· |
경·소방서 등 많은 기관이 진화 작업에 참여했지만 각각 지휘라인이 달라 통합 지 |
휘가 이루어지지 못한 문제점이 있었다. 또한 지상과 공중 간의 공조체계도 미흡 |
했다. |
진화 장비와 기반 시설의 부족 |
발생 이틀째인 4월 8일, 산불은 진화되지 않고 더 넓은 곳으로 번져갔다. 고성 |
지역과 강릉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긴급 대피했고 많은 이재민이 발생했다. 또한 |
이날 고성군의 육군 관측소 북쪽 비무장지대 안에서도 산불이 발생했다. 고성군 |
은 오후 4시 30분을 기해 인근 주민들을 긴급 대피시켰고 군 당국도 경계 병력을 |
안전지대로 철수시켰다. 동해안 각지로 확산된 산불은 강한 바람(풍속 14m/sec, |
최대순간풍속 23.m/sec)으로 인해 갈수록 대형화되고 있었다. |
곳곳의 산불 현장에서는 진화 작업에 모든 힘을 기울였다. 넓은 면적의 화재 |
제9장·산불 | 149 |
--- 페이지 6 --- |
작은 불씨가 태백산맥을 불태우다 |
현장을 단시간에 파악하고 산불의 확산 경로를 예측하려면 적외선 스케너를 장 |
착한 비행기 등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비가 부족해 투입할 수 없었고 산불의 확산 |
경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산불 진화용 헬기도 효율적으로 배치하지 못했다. |
산불 발생 첫날 삼척시에서는 산림청 등에 헬기 지원을 요청했으나 강풍으로 |
인해 투입되지 못하였다. 결국 공무원과 주민 등 130여 명이 직접 진화 작업을 벌 |
였다. 삼척에서 발생한 산불은 4월 9일 6시 무렵에 모두 진화되었고, 뒷불 정리까 |
지 완료되었다고 판단되었다. 그러나 다음 날 오전 6시 30분 불은 다시 타올랐고 |
강풍을 타고 경북 울진 방향으로 확산되었다. |
곳곳의 진화 현장에서는 임도(林道, 산림을 효율적으로 보호 관리하기 위해 숲 |
속에 조성한 길)가 절대적으로 부족해 산불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나마 있는 |
임도도 마을부터 임도까지 접근로의 폭이 좁고 관리가 부실해 진화 장비가 진입 |
하기 힘든 경우가 많았다. 또한 진화 용수도 부족해 소방차를 비롯한 다수의 차량 |
Subsets and Splits
No community queries yet
The top public SQL queries from the community will appear here once availab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