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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6월 29일 목요일 저녁 퇴근 길에 호화롭기로 유명한 삼풍백화점에서
쇼핑을 즐기던 사람들은 어림잡아 1,000명이 넘었다. 당시 삼풍백화점은 지어진
지 5년 밖에 되지 않은 최신식 건물이었다. 백화점 내부에는 값비싼 수입품들이
진열된 고급 매장이 줄줄이 들어서 있었고, 하루 평균 약 4만 명의 쇼핑객들이
다녀갔다. 그리고 그들 중 누구도 건물의 안전성을 의심하거나 건물 옥상이
내려앉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사고는 그날 오후 5시 55분경에 시작되었다.
“지하철역에서 지하철이 들어오기 전에 들리는 그런 큰 소리가 들렸던 것
같아요.”
하늘 높이 솟아 있던 수천 톤의 콘크리트가 단 20초 만에 무너져 내렸다. 부의
상징이었던 호화 백화점이 눈 깜짝할 사이에 콘크리트 파편과 휘어진 철근으로
뒤범벅된 거대한 산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이 사고는 잘못된 설계와 부실시공,
무자격자에 의한 감리, 무리한 매장 증설과 증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총체적
부실이 원인이었다.
이 사고로 인해 사망자 502명, 부상자 937명 등 모두 1,439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건국 이후 단일 재난으로는 최대의 인명피해가 난 것이다.
제10장·붕괴사고 | 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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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목숨을 앗아간 백화점 건물 붕괴
붕괴 위험을 안고 태어난 건물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국내는 물론 전 세계의 건축, 구조 전문가들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 이유는 백화점에 적용된 공법이 전 세계적으로 흔히 사용되고
있는 ‘무량판 구조(Flat slab Structure)’였기 때문이다. 이 공법은 견고하면서도 안
전하고 공사비용까지 저렴해서 건축가들이 선호하는 공법이었다.
“무량판 구조는 웬만한 부실시공도 거뜬히 견딜 수 있는 아주 믿을 만한 공법이
에요.”
“엄청난 오류나, 일부러 잘못되게 하려고 작정해서 짓지 않는 한 절대 무너질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 삼풍백화점의 붕괴는 설계 단계부터 예고
되어 있었다. 삼풍백화점과 같은 대규모 건물은 허가받은 설계 도서에 따라 시공
해야 한다. 설계를 변경하려면 사전에 설계 변경 허가를 받아야 한다. 특히 공사
를 시작하려면 반드시 설계 도면이 완성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삼풍백화점은
이러한 절차가 무시되었다.
그 백화점은 최초 허가받은 설계 도서와 다른 별개의 시공 도서를 만들어 공사
설계, 감리, 시공 등의
안전을 고려한 철저한
과정에 기술력을 갖춘
행정조치와 준공검사가
전문가가 투입되고,
이루어졌다면….
적법한 안전감시가
이루어졌다면….
삼풍백화점의 부실공사는
막을 수 있었다
160 | 재난 씨, 우리 헤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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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를 강 행 했 다. 또한 착공 전에 설계 도면을 완성하고 그에 따른 시공 계획을 수립
해야 했으나, 건축주의 잦은 설계 변경 요구로 인해 완성된 도면이 없이 공사가 진
행되었다. 공사 완료 후에는 관련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편법을 사용해
서 사후 설계 변경 승인을 받았다.
감리 과정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당시 백화점의 건설사인 삼풍건설은 감리를
맡은 회사에 상주감리비를 지급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 회사는 건물의 골조공사
가 완료될 때까지 상주감리를 진행하지 않았던 것이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
다. 건물을 새로 지을 때 필요한 감리 업무를 수행하려면 관련 자격증과 전문 지
식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감리 회사는 해당 자격을 갖추지 못한 직원들을 현장에
파견했고, 중간 검사와 준공 검사에 필요한 감리 업무를 성실하게 수행했다는 허
위내용의 현장 조사서를 관할 구청에 제출했다.
당시 서울시의 행정에도 문제가 있었다. 서울시는 1989년 12월 백화점이 개장
할 당시 중간 검사를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수도권 정비 심의절차를 거치지 않
고 무단 증축했음에도 백화점의 가사용을 승인해 주었다. 담당자는 현장 확인 없
이 시설 기준과 매장 면적이 사업계획서와 일치한다는 허위 서류를 작성하여 일
부 매장 개설을 승인하였다. 또한 매장 면적을 125%나 무리하게 늘려 주기도 했
는데, 당시 서초구청은 백화점을 떠받치고 있는 지하 1층의 증축을 허가해 주기도
했다.
•붕괴 전 삼풍백화점의 모습
제10장·붕괴사고 | 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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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목숨을 앗아간 백화점 건물 붕괴
무시된 전조현상과 안전불감증
총체적인 부실에 의해 구조적인 결함을 안고 태어난 삼풍백화점은 개장 후 5년
이 지나도록 무너지지 않았다. 많은 오류가 있었음에도 건물이 5년을 버틸 수 있
었던 것은 공법 자체가 워낙 견고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버티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그 한계를 넘어서면 건물은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게 된다. 삼풍백
화점도 무너지기 전 여러 차례 그런 조짐을 보였다.
5년 전 개장 때부터 붕괴 당일까지 삼풍백화점은 5층 일대 곳곳에서 누수 현상
이 발생했다. 사고 발생 2년 전부터는 4층에서도 누수가 잇따랐고, 모서리 천장에
는 손가락이 들어갈 정도로 균열이 생기기도 했다. 또한 붕괴 한 달 전에는 멀쩡
한 건물에서 진동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옥상 냉각탑의 수위를 조절하기도 했는
데 붕괴 며칠 전, 당시 백화점의 시설이사는 사장에게 미세한 진동을 보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장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사고 전날인 6월 28일 밤. 야간 경비원이 순찰을 돌다가 백화점 5층 바닥에서
폭 1m, 깊이 20cm 규모의 함몰 흔적을 발견했다. 다음 날 아침 8시 그는 시설관
리 직원에게 이를 보고했다. 시설관리 담당자와 직원 10여 명은 오전 8시 5분부터
9시 사이에 함몰 현장을 확인했고, 이 사실을 윗선에 보고하였다. 하지만 시설이
사는 이 사실이 ‘언론이나 고객들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보안을 철저히 할 것’을 지
시했다. 동시에 현장 출입도 통제시켰다.
오전 11시경, 경영진이 직접 5층 바닥의 균열과 기울어진 모습을 확인하고 안
전 조치를 지시했다. 만일 이때 영업을 중단하고 고객을 대피시켰더라면 붕괴의
시나리오는 아무런 비극 없이 중단될 수 있었다. 그러나 고객에 대한 대피 지시는
없었다.
오전 11시 30분경, 5층 식당의 천장에서 물이 쏟아지고 바닥이 꺼지는 일이 발
생했다. 직원들은 4층과 5층을 비우고 보수 공사에 나섰다.
정오가 되자 감리 회사의 소장이 현장에 방문했다. 그는 백화점 옥상의 침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