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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선박사고: 안전관리를 강화하라
▶ 안전불감증이 빚어낸 여객선 침몰 사고
/ 1993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제11장·해양선박사고 | 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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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안전불감증이 빚어낸 여객선 침몰 사고
1993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프롤로그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의 한 해안 언덕, 이곳에는 높이 7m, 너비 8m의
위령탑 하나가 서 있다. 탑의 전면에는 292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들은
지금은 기억하는 이가 많지 않지만, 우리 국민들에게 불안과 큰 슬픔을 안겨 준
1993년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의 희생자들이다.
1993년 10월 10일 오전 10시 10분, 부안군 위도면을 떠나 격포항으로
가던 여객선 서해훼리호가 부안군 위도 동방 4.6km 해상에서 침몰했다. 당시
이 배는 정원이 초과된 상태였고, 탑승객 중에는 주말을 이용해 바다낚시를
즐기러 온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 대부분은 구명조끼 등을 제대로 입지
않고 있었는데, 이 때문에 더 큰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승선 인원 362명 중
292명이 사망한 것이다.
당시 정부는 대규모 인명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해양사고 관리 체계를
점검하였다. 그 결과 해양수산부가 신설되었으며 해양경찰청의 독립과 더불어
수난구호법 전문이 개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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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천후 속에서 시작된 죽음의 항해
그날 기상은 북서풍이 초당 10~14m, 파고는 2~3m로 항해하기에 좋지 않았다.
폭풍주의보 등의 기상특보가 내려진 것은 아니었지만 여객선이 출항하기에는 악
천후에 해당했다. 많은 사람들이 항구에서 출항을 기다리고 있었다. 휴일을 맞아
바다낚시를 즐기러 온 낚시꾼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때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파도가 높고 초속 10~13m의 강풍이 불며 돌풍이 예상되므로 항해하는 선박은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어쩌면 배가 출항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을 주고받았다. 일반적으
로 기상특보가 내려지면 각 항구에 있는 어선 신고소에서 선박의 입·출항을 통제
한다. 그러나 이날은 기상특보가 내려지지 않았기에 선박 관계자들의 판단에 따
라 운항을 결정할 수 있었다. 당시 항해 안전운행 지침에는 “파고 2.5m, 바람 속도
10m 이상일 때는 여객선의 운항이 금지되지만, 다만 선장이 안전하다고 판단할
때는 운항이 가능하다”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서해훼리호의 승객 정원은 221명. 그러나 당시 배에는 정원보다 141명이나 더
많은 362명이 승선해 있었다. 탑승객들은 선실에 승객 정원이 기재되어 있었음에
관계 기관의 관리 감독
악천후 속에서
소홀과 탑승객,
무리한 항해와
선박운항자의 안전불감증이
정원초과
피해를 키웠다.
188 | 재난 씨, 우리 헤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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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도 아 무 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 관련 기관의 관리 감독 또한 소홀했고 선박
운항자 역시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서해훼리호의 선장은 출항하기로 결정했다. 그날은 항해사가 휴가로 자리를
비웠는데 그 자리에 경험이 부족한 갑판장이 대신해 키를 잡고 있었다. 서해훼리
호는 출발 예정 시간인 9시를 지나 9시 40분에 출항하기 시작했다. 항구를 나서
자 본격적으로 높은 파도가 몰아쳤다. 배는 뱃머리로 파도를 받으며 나아갔다. 얼
마나 지났을까? 예상보다 높은 파도가 계속되면서 선장은 더 이상 항해가 불가능
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도저히 안 되겠다’고 판단하고, 위도의 항구로 회항하기
위해 변침하는 순간 선체가 기우뚱거렸다. 심한 너울성 파도가 선체를 강타한 것
이다. 갑판 위에 적재되어 있던 약 600개의 젓갈통 등 밧줄로 묶여 있지 않은 화물
들이 한쪽으로 쏠렸다. 승객들도 한쪽 구석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승객들이 가득해서 파도가 칠 때마다 배가 심하게 흔들렸어요.”
“배가 두 번 오른쪽으로 기우뚱거린 뒤에 파도가 선체 옆구리를 때렸는데, 그
순간 천둥소리 같은 굉음이 들렸어요.”
그리고 중심을 잃은 서해훼리호는 악천후의 바닷속으로 순식간에 침몰하고 말
았다.
승객들의 안전은 뒷전이었다
서해훼리호는 사고가 발생하기 이전부터 여러 안전상의 문제점들이 지적되었
다. 당시 조선소의 수리지시서에는 선박의 복원력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빌
지킬(Bilge keel: 배가 옆으로 흔들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하는 돌출된 장
치) 우현에 문제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그러나 선박사 측에서는 수리를 하지
않았다.
서해훼리호에는 배가 침몰하면 자동으로 펼쳐지게 되어 있는 4개의 구명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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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있었다. 그러나 구명보트는 이중 1개만 정상적으로 작동했고, 구명보트 역할을
하는 구명벌의 자동분리장치도 고장이 난 상태였다. 이러한 문제점들이 사고 2개
월 전에 실시한 선박 검사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다.
또한 서해훼리호는 운행에 있어서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하루 1회 왕복
운항이라는 최소 운항 횟수로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항상 정원이 초과되었다. 쉽
고 빠르게 하역을 하기 위해 갑판의 화물을 고박하지 않고 적재하는 일도 비일비
재했다. 그리고 서해훼리호가 대규모 인명 피해를 피할 수 없었던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1993년 10월 10일 침몰 직전, 서해훼리호의 선장은 안내방송을 실시했다.
“승객 여러분이 배 한쪽으로 몰리면 배가 전복될 위험이 있습니다. 배가 기울
지 않도록 여기저기 흩어져서 앉아 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이미 그때 배는 침몰하고 있었고, 승객들을 살리기 위한 구조 요청도 하
사고 시 선박운항